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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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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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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전문 월간지인 와이어드WIRED는 지난 3월 <The Deaths of Effective Altruism>[1](효과/효율적 이타주의의 종언)이라는 장문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째서 특정한 철학 사조를 비판하는 철학자의 글이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잡지에 실리게 됐으며, 이토록 큰 관심을 유도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효과/효율적 이타주의(통칭 EA)가 처한 특수한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EA는 실리콘 밸리의 유력한 엔지니어들과 테크 억만장자들(이 두 그룹은 종종 겹친다.) 사이에서 이미 실질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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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는 대략 60년 정도 되는 디지털 게임의 짧은 역사 내에서도 꽤 큰 지분을 차지할 만큼 ‘근본 있는’ 장르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참신한 게임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올해 출시한 본토템 역시 기존 장르의 문법을 더 유저 친화적으로 유려하게 다듬을지언정 이 ‘오래된’ 장르를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시키는 식의 혁신추구형(?) 게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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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에 무관하게 예술 작품은 환언하기가 불가능하다. (중략) 지식은 언제나 위로 환언하기 혹은 아래로 환언하기에 해당하지만, 예술은 소크라테스적 철학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일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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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매개자의 증식이 전쟁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의 일상적인 세계는 때때로 전쟁보다도 불투명하다. 물류와 인프라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 팽배하지만, 역설적으로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는 (아이패드처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 아래서 가시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팬데믹을 거쳐 급격한 기후 변동까지, 2020년대의 우리는 마치 이 모든 비인간 행위자들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세상에 등장하기라도 한 듯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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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데스티니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 너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조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질 GPT-4(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모델)에 연동된 데스티니는 플레이어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잠재적인 사운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리 녹음을 했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운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따라 반응이 3가지 정도로 나뉘는 고전적인 NPC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대화의 분기가 한 10가지쯤 될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긴밀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며, 그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사나 대화에 있어서 데스티니에게 기존 게임 사운드의 특성들을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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