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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모전]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

    < Back [공모전]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 13 GG Vol. 23. 8. 10.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지를 좇는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믿음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현재 우리가 가진 논리나 통용되는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 누군가에겐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이 그러할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 소설가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에 의해 발전한 이 세계에는 흥미로운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우리가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해한 힘, 또는 현실, 또는 진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인간은, 그 압도적이고 불가해한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무기력한 태도가 바로 두 번째 요소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면 인간은 말 그대로 미물만도 못한 존재이며, 자신의 비천함을 받아들이고, 모든 존엄을 내려놓고, 그저 이 힘이 가진 무자비한 의지에 무릎을 꿇는다. 불가해하고 거대한 힘과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무력함. 러브크래프트는 늘 무언가를 상실한 것으로 묘사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혼란과 두려움, 무기력을 이러한 구도로 표현했다. 프로그웨어Frogwares는 2006년,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Sherlock Holmes The Awakend(이하 ’06)>를 통해 러브크래프트와 셜록 홈즈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앞서 말했듯 러브크래프트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과 그에 대한 무력함을 말한다면, 셜록 홈즈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음을 증명하는 인물이다. 이 두 세계가 충돌했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는, 얼핏 매력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대가 가진 장점에서 비롯된 한계를 정면으로 공격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지닌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2023년, 프로그웨어는 이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말 그대로, 다시 만들었다. 이들은 20여년 전 자신들의 유산에서 새로운 시각과 이야기, 돌파구를 찾았고, 불가해한 세계에 맞서는 논리의 투사를 다시 한번 그려냈다. 2006년의 홈즈에서 2023년의 홈즈가 되기까지 2000년대 프로그웨어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고전적인 어드벤처 퍼즐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는 스테이지의 형태로 구성되었고, 플레이어는 각 스테이지를 풀어나가기 위해 주변에서 유용한 아이템을 모았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확보한 문서들은 퍼즐을 위해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단서로 쓰였다. <’06> 역시 이러한 형식을 따르고 있었고, 이를 통해 탐정 셜록 홈즈와 파트너 존 왓슨, 기벽을 가진 두 신사의 모험이라는 고전적인 컨셉을 충실히 구현했다. 이런 형태의 ‘모험’은 <셜록 홈즈의 유언The Testament of Sherlock Holmes(2012)>에서 종언을 고한다. <셜록 홈즈: 죄와 벌Sherlock Holmes: Crimes and Punishiments(2014, 이하 죄와 벌)>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향상된 그래픽뿐만은 아니었다. ‘인물 묘사’, ‘기록 보관소’, ‘기억의 궁전’ 등 지금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 사용되는 핵심적인 추리 시스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셜록 홈즈의 관점에서 직접 추리를 시도해야 했다. 그리고 2021년 작 <셜록 홈즈 챕터 원Sherlock Holmes Chapter One(이하 챕터 원)>에 이르러, 프로그웨어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왔던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역설적이게도, 셜록 홈즈 시리즈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그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져있었다. 셜록 홈즈가 겪는 모험은 이야기를 위한 흥미로운 소재로 쓰이기에 충분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 자체의 견고함이 필요했다. 때문에 그 자체로 개성이 강하고 존재감이 뚜렷한 이 캐릭터는 그 기본적인 묘사 이상으로 접근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프로그웨어는 이 견고하고 뚜렷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의 내면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2023년 작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Sherlock Holmes The Awakend(이하 ’23)>가 출시되었다. <’23>은 단순히 <’06>의 시나리오를 <챕터 원>의 시스템에 입히는 리메이크를 시도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현실적인 한계들도 있었겠지만, <챕터 원>에서 시도되었던 오픈월드 구조나, 플레이어가 결말을 선택하는 시스템을 <’06>의 시나리오에 구태여 입히려 애쓰지 않는다. <챕터 원>에서의 오픈월드 구조 대신, <’23>은 <’06>의 스테이지식 구성을 활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챕터 원>의 유산을 거부하고 <’06>을 그대로 구현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프로그웨어가 이 리메이크를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했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만들려 했는지다. 셜록 홈즈의 러브크래프트적 붕괴 <챕터 원>에서 프로그웨어는 홈즈에 대한 더욱 내밀한 관점을 구축했다. 이 관점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홈즈가 가진 광기, 진실(사건 해결)에 대한 집착이라는 잠재적인 광기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상실한 그는 끊임없이 진실의 가치와 중요성을 역설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그가 스스로에게 저지르는 신체적, 정신적인 자해 행위를 수반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난제를 푸는 지적 유희가 아니라, 결핍된 진실을 추구하는 홈즈의 본능적 갈망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06>에서 낯설고 기이한 세계를 맞이하는 셜록 홈즈가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서 이 세계를 ‘관찰’하며 수사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23>에서 홈즈의 수사는 단순히 국제적인 실종과 인신매매라는 범죄의 배후를 찾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진실을 원한다. 저들이 말하는 세계, 저들이 섬기는 불가해한 힘, 그 오래된 신의 존재. 그것이 현실인지, 현실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홈즈는 저들의 세계에 직접 뛰어든다. 이로써 <’23>은 <’06>에서보다 더 내밀하고 노골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표현한다. <’06>에서 기괴한 신의 조각상과 잔혹한 의식에 대한 묘사에 그쳤던 컨셉은, 셜록 홈즈라는 샤먼을 매개로 이 불가해한 세계를 직접 보여주는 레벨을 중간중간 삽입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이는 프로그웨어의 <싱킹 시티The Sinking City(2019)>에서 연구, 사용되었던 유산을 마음껏 활용할 기회가 될 뿐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직접 이 혼란스러운(그리고 흥미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며, 이를 겪는 셜록 홈즈를 붕괴시킨다. <’23>은 셜록 홈즈가 겪는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경험을 플레이어블 레벨로 제공한다. 앞서 말했던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요소인 불가해한 세계와 그에 대한 무기력, <’23>은 셜록 홈즈를 통해 이를 충실히 구현하며, 이렇게 붕괴한 셜록 홈즈가 다시 그에게 요구되는 ‘셜록 홈즈’로써의 역할에 충실하려 할 때 이 무력함은 극대화된다. <챕터 원>에서 홈즈는 어머니를 앗아간 광기가 언젠가는 자신을 덮치게 될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다. <’23>에서는 마침내 광기에 잠식되었을 때, 그 날카로운 추론 능력과 예리한 감각은 더 이상 없을 것임을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낀다. 그리고 매 순간, 자신이 이러한 능력을 잃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절감하며 더욱 빠르게 붕괴한다. 여정의 최종장인 로체스터와의 조우. <’06>에서 등대 꼭대기에 올라선 로체스터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라’고 설득하던 ‘협상’ 장면은, <’23>에서 여정을 좇으며 목격한 진실에 결론을 내리는 ‘자기 고백’의 장면이 된다. '당신들처럼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까 두렵다'는 그의 고백은 결국 '이 모든 것은 현실'이라는 무력하고, 그가 끝까지 거부하려 했던 선언으로 귀결된다. 플레이어는 이 대화에서 제공되는 다른 대답을 선택할 수 없다. <’06>에는 이러한 선택지 대화 자체가 없었고, <챕터 원>에서는 매 선택지가 분기성을 띄었으며, <’23>의 다른 대화에서도 선택지를 통한 게임 오버 처리의 사례가 없다는 점을 봤을 때 이 대화 장면은 더욱 흥미롭다. 이는 결국 플레이어 역시 셜록 홈즈가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력한 순간을 함께 경험할 것을 요구받는 장면이다. 불가해한 세계로 입장하면서 여정을 시작한 그는 끝내 굴종과 무기력이라는, 러브크래프트 풍의 서사를 완성하는 불가피한 운명을 뼛속 깊이 맞이한다. 새롭게 지어진 셜록 홈즈의 세계 <’23>에서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핵심 요소들은 셜록 홈즈라는 인물을 통해 셜록 홈즈의 세계관에 녹아들었다. 그렇다면 셜록 홈즈의 세계관은 러브크래프트를 어떻게 수용하고 반응하는가? 러브크래프트의 무기력과 절망을 표현하면서 어떻게 범죄를 해결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셜록 홈즈의 세계관을 지킬 수 있는가? <챕터 원> 이후로 프로그웨어가 보여주는 괄목할 만한 행보 중 하나는, 다른 주요 캐릭터들을 적극적으로 서사에 끌어들여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챕터 원>은 셜록 홈즈의 내면과 개인사를 구축하는 과정을 통해, 셜록 홈즈와 존 왓슨, 마이크로프트 홈즈라는 세 인물 간의 관계를 구축한다. 그리고 이는 서사를 이끌어가고 작품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 지속적으로 유용한 자원을 제공한다. 프로그웨어의 이전작들에서, 존 왓슨은 그다지 존재감과 역할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모험에서 그는 사건과 한 발짝 떨어져 있다가 뒤늦게 따라잡거나, 홈즈가 여러 이유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할 때, 그 역할을 대신하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존 왓슨의 역할은 <’06>에 비해서도 눈에 띌 정도로 분량이 늘어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현실적인 인물인 그는 홈즈처럼 이 불가해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그러나 홈즈가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심연에 몸을 던지는 역할이라면, 현실의 영역에 머무르며, 끊임없이 닥치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홈즈와 홈즈의 현실을 수호하는 것이 왓슨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하는 지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 판단하고 행동한다. 다음 여정으로 향하는 기차를 탈 때면, 홈즈와 왓슨은 서로의 상처를 나눈다. 두 사람 모두 이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여전히 방황하고 있고, 적어도 이 방황을 함께하고 있다. 이는 <’06>의 같은 장면을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유대감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각색된 장면으로, 후에 서술할 작품의 메세지를 뒷받침하는 장치가 된다.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기차 장면은 두 사람의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각색되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해석하는 관점 역시 <챕터 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구축된다. 그는 광기가 어머니를 집어삼키는 과정을 지켜봤고,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으며, 동생인 셜록을 이 진실로부터 보호하는 젊은 가장으로 등장한다. 때문에 <’06>에서 편지를 통해서만, 셜록 홈즈의 수사를 돕는 유용한 정보원 정도로 등장했던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23>에서는 셜록 홈즈의 수사와 삶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근거를 가진다. 그는 동생이 또 다른 광기에 빠져 기이한 세계로 끌려들어 가는 것을 염려하고, 분노하며, 조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결국, 셜록이 이 사건을 빠르게 종결하도록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손수 제공한다. 그가 제공한 자료는 작품을 곧바로 종막으로 이끈다. 끈질기게 추적해왔던 사건의 배후, 핵심적인 의문이 다른 이에 의해 손쉽게 풀려버린다는 전개는 <’06>에서 역시 다소 갑작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23>은 이 전개를 그대로 가져오며, 홈즈의 자기 구원 - 사건을 해결하고 진실을 찾는 여정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존 왓슨이 셜록의 붕괴에 분노한 마이크로프트를 설득해 내는 장면으로 각색한다. 존 왓슨이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독대, 설득하는 장면은 <’23>에서 추가되었다. 이 간단한 액트를 통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기회이며 장치가 된다. 주요 인물들이 서로의 관점을 펼치고 대립하며 서로에 대한 생각과 결심을 표현하는 장치다. 주인공인 셜록 홈즈가 누구보다도 극단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에 휘말려 붕괴하는 상황에서, 이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적극적인 묘사와 구도의 구축은 셜록 홈즈의 세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전장치들에 기반해, 러브크래프트와 셜록 홈즈 세계관의 합은 드디어 결론에 다다른다. 절망과 무기력, 그리고 그 너머 마침내 사건을 해결했고, 세상을 구했고, 원하던 진실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홈즈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싱킹 시티>의 결말을 고려했을 때도,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이야기에서 모든 불안과 의혹으로부터 승리하는, 셜록 홈즈 세계관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23>의 결론은 이 승리의 상처 너머에 있다. <’06>의 셜록 홈즈는 철저히 외부인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관찰하고 접근한다. 로체스터의 의식을 막고, 그에게 자수를 설득한다. <’23>은 이 협상 장면의 방향을 러브크래프트 풍의 자기고백 장면으로 전환하며, <’06>에서 부재했던 한 가지 요소를 더한다. 로체스터는 불가해한 진실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셜록 홈즈를 굴복시키는 데에 성공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와 그의 신을 좌절시키는 것은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관계’다. 홈즈와 왓슨의 관계, 이 전형적인 주제가 <’23>에서는 오히려 두 세계의 충돌이 낳는 모순을 돌파하는 해결책이 된다. 로체스터와 달리 셜록 홈즈에게는 언제든 그를 현실로 끄집어낼 친구가 있었다. 존 왓슨의 존재, 이 관계 덕분에, 홈즈는 사건을 해결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셜록 홈즈 식 결말을, 스스로의 붕괴라는 러브크래프트적 결말을 성취하는 동시에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해 보면, 뉴올리언즈 챕터의 각색된 결말이 눈에 들어온다. 홈즈와 왓슨이 구해낸 아네슨은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폭력들을 막기 위해 이 사건에 뛰어들었지만, 그 결과로 심각하게 손상되고 붕괴되었다. 그를 염려하는 연인 루시와 수사를 도와준 샴페인은 그의 회복을 도울 것을 약속하며, 그가 이루고자 했던 뉴올리언즈의 정의를 위해 싸움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홈즈와 왓슨의 관계는 작품의 메세지를 담은 단면이다. <’23>은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무기력과 절망을 포용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그 너머로 나아가 제시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 이들과의 관계. 붕괴한 셜록 홈즈와 아네슨을 지탱하고, 그들이 폭력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며 세상을 구하게끔 만드는 것은 그들 주변을 지키는 존, 마이크로프트, 루시, 샴페인과 같은 인물들이다. 모순 가득한 두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다 러브크래프트와 셜록 홈즈라는 두 세계의 조우 한복판에서, 셜록 홈즈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사건을 파헤치고 진실을 밝혀냈으며, 거대한 범죄를 막고 사람들을 구해냈다. 이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이 가진 가치관을 깊이 있게 체화했다. 이는 프로그웨어가 전작인 <챕터 원>에서 구축한, 진실에 대한 집착이라는 셜록 홈즈의 성향에 의해 지치지 않고 추동되었으며, 플레이어 역시 모순적인 두 세계를 오가면서 셜록 홈즈의 내면이 겪는 여정을 함께한다. <’23>에서 이 여정은, 원작에서의 기이하고 잔혹한 사건을 수사하는 모험에서 더 나아가 두 세계의 조우, 그 너머를 바라보는 관점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러브크래프트가 표현하는 공포와 절망, 이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압도적인 힘을 가진 신에 의해 무용해질 수 있다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불가해한 신의 힘, 또는 사건의 해결이라는 승리를 넘어선 곳에서 제시된다. 셜록 홈즈와 존 왓슨,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관계, 이 관계가 상징하는, 현실에 존재하는 타인들과의 견고한 유대와 삶에 있다. <챕터 원>에서 구축된 인물들 간의 서사, 그리고 20여 년의 간극을 뛰어넘기 위해 선별되고 집중된 플레이 요소들은 쉴 새 없이 맞물려 돌아가며 모순과도 같은 두 세계의 조우라는 이야기를 성립시키고 메세지를 끌어내는데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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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숏폼 콘텐츠 유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 Back 숏폼 콘텐츠 유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06 GG Vol. 22. 6. 10. 1. 숏폼 콘텐츠와 연쇄적 소비 바야흐로 짧은 콘텐츠가 유행하는 시대이다. 평균적으로 50분의 상영시간을 가진 TV 드라마는 15분 내외의 웹드라마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으며, 유튜브에는 ‘너덜트’나 ‘숏박스’ 같은 채널을 중심으로 3-4분 정도로 짧은 콩트들이 유행하고 있다. 게임 역시 짧게는 수십 시간, 길게는 몇 백 시간의 플레이 시간을 요하는 PC나 콘솔 게임보다는 1회 플레이 시간이 짧은 모바일 게임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며, 모빌리티를 무기로 하는 각종 플랫폼들이 기존의 하드웨어를 대체한 2000년대 후반 이후 지속화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72초TV’가 상영시간을 채널명으로 전면화 하여 인기를 끈 것은 숏폼 콘텐츠(Short form contents)의 승리를 상징하는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 모바일 시대 초압축 드라마의 표본을 제시한 ‘72초 TV’의 한 장면 이러한 숏폼 콘텐츠가 고전적인 다른 고전적인 콘텐츠보다 주목받는 것은 이의 주 소비층이 10대와 20대의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시간을 부족한 이들에게 짧은 콘텐츠는 부족한 여가시간의 틈을 메울 수 있는 스낵 컬쳐(snack culture)가 된다. 등하교길이나 화장실에 들르는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몇 분만 할애하면 게임 한 판과 동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숏폼 콘텐츠는 금세기의 여가 문화의 틈새를 파고 들었다. 이러한 숏폼 콘텐츠의 대부분이 SNS나 유튜브 등의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서비스 된다는 점에서 구매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에게 잘 먹히는 콘텐츠가 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핵심적인 서사를 바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숏폼 콘텐츠에는 전후 맥락이 생략되어도 상관없는 내용들이 주종을 이룬다. 짧은 콘텐츠 재생시간 속에서 완전하지 못한 서사를 갖춘 숏폼 콘텐츠들은 긴 설명이나 전후 관계에 대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형적인 소재를 본론부터 진행하는 방식을 취한다. 너덜트 채널의 첫 에피소드인 “당근마켓 남편들”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중고거래 현장을 비춘다. 이 영상에서 공감대는 이미 해당 마켓들 통해 거래를 해본 기혼 남성들의 일상적 공감을 양분으로 삼아 전후의 맥락을 제거하고 거래 현장만 집중하여 짧은 상영 시간에 맞게 콘텐츠를 압축할 수 있게 해준다. * 너덜트의 〈당근마켓 남편들〉 일반적으로 숏폼 콘텐츠는 짧은 플레이 시간을 바탕으로 연쇄적인 콘텐츠 소비를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의 숏폼 콘텐츠를 멍하게 반복적으로 여러 개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게임의 경우도 한 번 플레이하는 시간이 짧을 뿐이지 이를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실제로 하드코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못지 않은 시간이 소모된다. 게임학자 예스퍼 율(Jesper Juul)은 〈캐주얼 레볼루션(Casual Revolution)〉에서 캐주얼 게이머들이 게임을 캐주얼하게 소비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실제로는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여 하드코어하게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을 실제 사용자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바 있다. (예스퍼 율, 이정엽 역, 『캐주얼 게임: 비디오 게임과 플레이어의 재창조』,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콘텐츠의 연쇄적 소비가 트래픽을 불러일으켜 광고 수익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하 BM)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유저들이 사이트에 오래 머무를수록 수익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플랫폼은 어떤 특정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서 고양된 감정으로 사이트를 떠나는 현상을 방지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하나의 콘텐츠 소비가 끝났을 때 다음 콘텐츠를 이어 보고 싶은 감정을 계속 유발해야 한다. 이는 게임으로 환원하면 짧은 플레이를 무수히 반복해서 쌓아나가는 방식에 해당될 것이다. 다만 비슷한 메커닉의 반복적인 플레이는 지루함을 유발하여 접속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여기에 캐릭터 성장 시스템과 BM을 연계시키는 방식이 사용되는 것이다. 2. 숏폼 게임의 메커닉 축소과정과 비즈니스 모델 물론 처음부터 숏폼 형태의 게임과 BM이 초창기부터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PC나 콘솔 게임이 스마트폰 플랫폼으로 처음으로 전환되던 시점에는 키보드나 컨트롤러를 이용한 복잡한 컨트롤을 손가락을 이용한 터치로 단순하게 바꾸는 UI 차원의 시도가 먼저 이루어졌다. 이 때 통상적인 게임 장르는 그대로 이식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의 환경에 따라 게임 메커닉을 약간씩 변형하면서 이식된다. 예를 들어 PC 게임 플랫폼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 중 하나인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가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같은 AOS 장르로 이식되기보다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숏폼으로 변화하게 된다. 〈클래시 로얄(Clash Royale)〉은 통상적으로 CCG(Collectible Card Game)이나 RTS(Real-time Strategy ) 장르로 분류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의 메커닉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이를 숏폼으로 축소한 게임이라 볼 수 있다. * 〈리그 오브 레전드〉 소환사의 협곡 지도와 〈클래시 로얄〉의 지도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가장 유명한 맵 “소환사의 협곡” 지도와 〈클래시 로얄〉의 지도를 비교하면 크게 3갈래로 갈려진 지도가 〈클래시 로얄〉에서는 2개의 다리를 중심으로 한 경로로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아군과 적군의 미니언들은 AI에 의해 자동으로 움직이고, 챔피언만 플레이어가 컨트롤 할 수 있지만, 〈클래시 로얄〉에서 플레이어는 각종 캐릭터의 처음 시작하는 위치만 지정할 수 있으며, 그 캐릭터의 개별 전투는 모두 AI에 의해 자동으로 진행된다. 또한 〈리그 오브 레전드〉는 특별히 정해진 플레이 타임이 존재하지 않지만 평균적으로 1회당 3-40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클래시 로얄〉은 처음 3분의 타임 어택과 추가 1분 30초의 타임 어택을 포함해 최대 1판이 4분 30초를 넘지 않게 디자인되어 있다. 다시 말해 〈클래시 로얄〉은 PC에서 사용되던 플레이어에 의한 복잡한 컨트롤을 최대한 줄이고, AI에 의한 자동전투를 극대화시키면서 플레이 타임을 거의 1/10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클래시 로얄〉에서 더욱 강조된 부분은 각 캐릭터의 성장을 ‘카드 강화 시스템’을 통해 극대화 시켰다는 점이다. CCG 장르의 카드 강화 메커닉을 활용하여 자신의 카드가 성장하는 느낌을 부여하면, 그 카드의 효용을 실험해보고 싶어 다시 플레이를 시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덱이 8장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모든 성장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어 〈클래시 로얄〉의 BM은 그다지 노골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오히려 〈클래시 로얄〉은 현질을 통해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요소를 제한하여 게임의 밸런스를 훌륭하게 구현한 좋은 예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의 성공 이후 RTS의 AI 전투 시스템은 축소하고 카드 강화의 BM만 극대화 한 게임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다. 실제 이 때에도 RTS적인 요소들이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동일한 장르로 분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방치형 이나 CCG로 불리는 현질 유도 게임은 현재에도 무수히 양산되고 있지만, 문제는 앞선 사례들에서 적절히 제한되었던 현질의 밸런스 붕괴를 막기 위한 적절한 제한 요소들은 차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3. BM의 전면화와 미학의 소외 물론 콘텐츠의 길이가 짧다고 해서 미학적으로 열등하다고 간주하긴 어렵다. 소설과 영화에서도 장편과 단편의 미학이 다르며, 단편은 장편이 구현하기 어려운 단일 플롯의 직접성과 단도직입적인 풍자 등을 통해 독립적인 미학을 쌓아왔던 것이다. 장대한 서사시와 촌철살인의 미학은 애초부터 목표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필요가 없다. 게임에서도 짧은 플레이 시간 내에 추구할 수 있는 한 판의 쾌감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플레이 타임을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풍성한 서사, 전후의 맥락, 컷신, 텍스트, 맵의 디테일, 전략적 요소 뒤에 더 강조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플레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고전적인 재미요소를 제거하고 BM만 남겨놓아도 플레이어가 잔존한다는 사실이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확인된 이상 게임 회사들은 굳이 어렵게 게임을 풍성하게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모바일 게임의 소프트 런칭 시스템(특정 국가 하나 정도만을 대상으로 게임을 시범적으로 출시하는 방식으로, 게임 회사들은 이를 통해 특정 메커닉의 잔존율(retention)을 실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잔존율 낮은 메커닉이나 BM은 도태시키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은 특정 메커닉과 BM의 잔존율을 아주 쉽게 테스트 할 수 있게 해주어, 노골적인 BM의 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게임 내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 설정만 해놓으면 해당 퀘스트가 다 클리어된다거나, 별다른 스토리에 대한 설명도 없이 바로 사냥과 전투가 시작되는 게임들을 더 이상 플레이어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치형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형식적 요소와 몰입을 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했던 것이 게임이라는 장르의 형식적 미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익성을 위해 깎여나간 게임의 숏폼화는 결국 BM와 노골적인 결제 모듈만 남기고 게임을 앙상하게 만들어버렸다. * 게임 플레이어 모두에게 1억이 지급되면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최근의 게임 광고들은 노골적으로 상당한 금액의 확률형 아이템을 지급한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지급되는 아이템이 상대적인 가치를 가질 리 만무하다. 물론 이러한 방치형 게임들을 유저의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시간이 부족한 학생이나 직장인이 성장의 재미만 누리게 하는 게임으로 일정 가치를 지닌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현실 추수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BM을 긍정해 나가면서 한국 게임 시장은 더욱 노골적으로 메타버스, P2E, NFT 등 현행 법률로 합법화되기 어려운 영역까지 허용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의 게임 회사들은 플레이의 외부적 요소로 취급되던 현금과 결제, 캐릭터의 성장 요소를 더욱 외재화하여 환금성을 부추기게 된다면, 이는 한국 게임업계가 그동안 트라우마로 안고 있었던 “바다 이야기” 사태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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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런 웨이크2> - 화려하게 돌아온 고전 컬트작의 속편

    < Back <앨런 웨이크2> - 화려하게 돌아온 고전 컬트작의 속편 15 GG Vol. 23. 12. 10. **본 기사의 영문 원문은 아래 URL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00359dad-c657-476c-a5fd-39a27a875ff3 <앨런 웨이크2>는 범죄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 앨런 웨이크를 주인공으로 하는 2010년작 게임이 오랜만에 돌아온 후속작이다. 첫편은 슬럼프로 고통 받던 앨런이 아내 앨리스와 함께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가상의 도시 브라이트폴즈(Bright Falls)로 휴가를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부는 호수 한 중간에 있는 작은 섬에 위치한 오두막에 머물기로 하는데, 아내와 싸우고 악몽 같은 저녁시간을 보낸 앨런이 자신이 운전했는지 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차 안에서 깨어난다. 브라이트폴즈의 주민들은 앨런에게 그 호수에 오두막 같은 것은 수십년간 존재한 적이 없다고 알려주는데, 그러한 가운데 앨런이 절박하게 아내를 찾아나서면서 복잡하게 소용돌이 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자신이 쓴 기억이 없는 책 속의 사건들이 앨런의 주변에서 현실로 나타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앨런 웨이크2>에서는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다른 차원에 갇혀 뒤틀린 버전의 뉴욕을 헤매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앨런은 게임의 두번째 주인공인 사가 앤더슨(Saga Anderson)이라는 FBI 요원이 개입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서 현실로 돌아오려 한다. 사가의 스토리 또한 브라이트 폴즈에서 시작되는데, 앨런의 또 다른 자아들이 앨런과 대적하면서 상황이 악화된다. 현실세계에 너무 많은 피해가 가기 전에 그들을 파괴해야 하는데, 이는 작가에게 달려있다. 3인칭 슈팅과 서바이벌 호러 장르에 속하는 이 게임은 그 템포나 액션장면의 페이스로 볼 때 <레지던트 이블>과 <사일런트 힐> 사이의 어디쯤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앨런이 갇혀있는 어둠의 장소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에 앞서, 앨런 웨이크 시리즈의 개발사인 레메디 엔터테인먼트(Remedy Entertainment, 이하 ‘레메디’) 및 이 개발사가 핀란드 게임업계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레메디 엔터테인먼트 - 데스 랠리서부터 앨런 웨이크 첫편까지 레메디는 인기 프랜차이즈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핀란드의 개발사다. 1996년 처음으로 <데스 랠리>를 출시한 이래 레메디는 핀란드를 넘어 글로벌하게 이름이 알려진 개발사가 되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어느 정도 운이 작용한 덕도 없진 않았지만, 게임의 플레이 경험 뿐 아니라 게임 디자인에 있어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했던 레메디의 야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레메디의 발전에 있어 행운이 있었다면, <데스 랠리>가 비슷한 시기 <듀크 뉴켐 3D(Duke Nukem 3D)>를 출시했던 아포지(Apogee, 후에 3D realms가 된다)를 통해 출시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듀크 뉴켐 3D>의 인기가 레메디의 거대 퍼블리셔의 일원으로서 미래를 보장받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데스랠리>는 1990년대 후반 10만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는데, 이 성공은 레메디가 후속편 <맥스 페인(Max Payne)> 개발에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2001년 출시된 <맥스 페인>은 핀란드 개발사로서는 처음으로 글로벌 규모로 큰 성공을 거둔 사례였으며, 게임 개발업이 “너드나 하는 일”로부터 “진지한 커리어”로 이동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맥스 페인>은 필름누아르 스타일의 스토리텔링과 배경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플레이어가 시간을 늦춰서 적보다 빠르게 조준할 수 있게 해주는 “불렛 타임”이라는 메카닉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레메디는 <맥스 페인> 시리즈에 대한 판권을 천만 달러에 테이크투 인터랙티브(Take-Two Interactive)에 팔았고,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는 2003년 후속작 <맥스 페인의 몰락(The Fall of Max Payne)>을 출시했다. 이 게임은 8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로써 레메디와 맥스 페인은 핀란드 게임업계에 있어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비디오게임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자 게임에 대한 연구 및 개발작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생겨난다. 2003년경부터 핀란드의 고등교육기관(HEI)에서 비디오게임을 강의나 수업 주제로 삼기 시작했고, 다수의 교육기관에서 학사 및 석사, 나아가 박사 과정까지 게임에 초점을 맞춘 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레메디의 성공은 비디오게임 부문이 핀란드 내 일상에 스며들게 한 촉매였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게 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핀란드의 게임산업 역사는 프로그래밍 및 게임 콘솔에 대한 취미가들의 관심이 증가했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90년대에 들어가서는 PC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오늘날까지 유효한 “데모씬(Demoscene)” - 일종의 컴퓨터 예술 하위문화 - 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프로그래머들은 데모씬 영역에서 일궈온 자신의 경험을 비즈니스로 만들었는데, 성공한 게임으로 데모씬을 만들면서 출발했던 최초의 개발자 집단으로는 <스타더스트(Stardust)> 및 <슈퍼 스타더스트(Super Stardust)>로 잘 알려진 블러드하우스(Bloodhouse)나 나중에 하우스마크(Housemarque)로 합쳐지게 되는 테라마크(Terramarque) 등이 있다. 하우스마크는 최근작 <리터널(Returnal, 2021)>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등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레메디나 하우스마크 같은 게임사들이 성공을 이어가면서 게임 산업과 교육, 취미, 데모씬, 그리고 커리어로서의 게임이 여전히 굳건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맥스 페인 이후 레메디는 새로운 아이디어 구상에 돌입했고 2년 뒤인 2005년 <앨런 웨이크>가 탄생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스튜디오가 협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앨런 웨이크>는 2010년 XBOX 360용으로, 2012년에는 윈도우즈 PC용으로 출시되었다. 처음에는 기대했던 수준의 판매고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이후 4백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하면서 이 게임은 서바이벌 호러 장르의 컬트작으로 자리매김한다. <앨런 웨이크>는 많은 부분에 있어 <맥스 페인>과 상반되게 만들어졌다. 레메디가 액션보다는 내러티브와 분위기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맥스 페인이 액션에 걸맞는 직업인 경찰이었던 것에 반해 앨런이 작가로 설정된 것도 다소 특이한 설정이었다. 나아가 <앨런 웨이크>는 에피소드식 구성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레메디에 따르면 <앨런 웨이크>가 게임의 결말 이후 일종의 브릿지로서 연결될 DLC의 첫 시즌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앨런 웨이크 이후 - 2010년부터 2023년까지 현 시점에서 돌이켜 본다면 2010년 출시 후 <앨런 웨이크>가 일으킨 파장은 곧장 후속편이 나올 수 있었을 정도라 볼 수 있겠지만, 퍼블리셔 입장에서 당시의 매출은 곧장 후속편 출시를 결정하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이에 더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IP를 원했기 때문에, 레메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했다. 2013년 레메디는 <퀀텀브레이크(Quantum Break)>의 2015년 출시를 공표하였으나 Xbox One 독점판매 게임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출시가 연기된다. <퀀텀브레이크>에서 초점은 어둡고 거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201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깔끔한 SF로 옮겨간다. <퀀텀브레이크>는 시간 여행이 잘못되면서 시간상 균열이 점점 커지는 와중에 세계의 종말을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한다는 내용인데, 주인공은 시간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서 이를 막아야 한다. 레메디가 만들었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 또한 <앨런 웨이크>에 비해 액션성을 추구하는 3인칭 슈터 게임이다. 레메디는 <퀀텀브레이크>를 "엔터테인먼트 경험"과 "트랜스미디어 액션 슈팅 게임과 텔레비전의 하이브리드"라고 홍보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게임 내 "정션 포인트"라고 불리는 구간에 보게 되는 라이브 액션 텔레비전쇼와 게임간의 통합이다. 이 텔레비전쇼는 플레이어의 선택/결정을 반영하며 다음 에피소드의 진행을 위한 스테이지를 구축한다. 이처럼 하나의 작품 내에 2개의 장치를 병치한 것은 스토리와 게임플레이, 비주얼, 배우들의 연기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쇼를 게임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반응이 복합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은 창의성을 제대로 밀어부칠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같은 것이고, 레메디는 그러한 시도로 유명한 개발사다. <퀀텀브레이크>는 Xbox One세대의 새 IP 중 <씨 오브 씨브즈(Sea of Thieves)>가 출시되기 전까지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퀀텀브레이크> 이후 레메디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결별하고 2017년 기업공개(또는 주식 발행)을 진행했다. <퀀텀브레이크>의 퍼블리싱 판권은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소유인 가운데 2019년 레메디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앨런 웨이크>의 퍼블리싱 판권을 인수했다. 십여년에 이르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오랜 제휴관계 이후 처음으로 구상한 신규 IP는 P7이라 불리는 프로젝트였다. 동시에 레메디는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Crossfire)> 후속편의 스토리모드를 개발하고 있다고 공표했다. 제휴를 통해 운영 해온 기업으로부터 공개 기업으로의 전환은, P7프로젝트 작업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서 개발 지연에 의한 비용의 상승을 방지해야 함을 의미했다. <앨런 웨이크>는 출시되기까지 7년이 걸렸고 <퀀텀브레이크>는 5년이 걸렸다. 레메디는 P7프로젝트를 3년만에 해내면서 또 다시 성공을 일궈냈다. <컨트롤(Control, 2019)>로 알려진 이 프로젝트에서는 다시 한 번 초점이 변화했는데, 이번에 그 초점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의 변화 보다는 플레이어 주변에서 게임 세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맞춰졌다. <컨트롤>에서 주인공 제시 페이든(Jesse Faden)은 미국의 비밀 기관 연방통제국(FBC)의 초자연 현상 전담기구인 올디스트하우스(Oldest House)>를 탐험한다. 연방통제국의 새로운 국장으로서 제시는 현실에 침투해서 오염시키는 히스(the Hiss)라 불리는 적을 해치우기 위해 다양한 능력을 활용해서 환경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게임은 제시가 어렸을 적 남동생이 납치되었던 사건 및 FBC가 확보한 힘이 깃든 물체(Object of Power)와 관련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본부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히스가 올디스트하우스 바깥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면서 히스의 목적은 무엇이며 남동생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제시에게 달려있다. 어렸을 적 그녀가 남동생과 살던 동네는 오디너리(ordinary)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컨트롤>은 레메디가 제작했던 이전의 작품들이 그렇듯 스토리텔링과 세계관, 시청각적 재현 및 캐릭터에 대한 호평 등으로 상업적 성공과 비평단에서의 성공을 모두 거머쥐었다. <컨트롤>이 말 그대로 여러가지 방식으로 스토리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세계는 결국 자신의 고유한 어둠의 장소에 갇힌 어떤 작가와 공유된 것이었다. 크로스파이어X 사태 <앨런 웨이크2>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기 전 레메디가 배워야 했던 아주 중요한 교훈이 하나있었다. 2016년 이후 레메디가 <컨트롤>과 함께 작업을 병행한 프로젝트였던 <크로스파이어X(2022)>의 스토리 모드 개발이다. 간단히 말해서 레메디는 오랜 작업기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모드의 시간과 템포가 느리고 캐릭터가 얄팍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스토리 모드 작업에서 실패했다. 여타의 개발사들도 레메디가 한 것과 다를 바 없이 할 수 있을 작업이었다. 즉 “레메디의 표식”이 그 스토리 작업에 없었던 것이다. 레메디가 이 경험으로 배운 교훈이란, 다른 이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개발사로서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크로스파이어X>는 2022년 2월에 출시된 후 16개월만인 2023년 5월에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이 게임은 형편없는 콘트롤, 지루한 스토리모드, 클리셰로 가득한 멀티플레이 경험 등으로 인해 서구 시장의 소비자를 겨냥하는데 크게 실패했다. 서구에서 1인칭 슈팅 게임은 <콜오브듀티(Call of Duty)>, <헤일로(Halo)>, <오버워치(Overwatch)>, <배틀필드(Battlefield)>가 지배하고 있으며, 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키우려면 레메디가 만든 근사한 스토리 이상의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이다. 앨런 웨이크를 위해 다시 한 번, 모든 힘을 모으다 레메디가 만든 게임의 역사를 살펴봤으니, 이제는 현 시점 우리의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앨런 웨이크>의 후속편과 위에 언급했던 것들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베데스다(Bethesda)가 특유의 스타일이 있듯 레메디도 마찬가지다. <앨런 웨이크2>에서 레메디는 기존 개발 작업으로부터 얻은 교훈과 게임이 줄 수 있는 경험의 한계를 밀어부치고자 하는 열정을 성공적으로 통합시켰다. 레메디 특유의 에피소드식 게임플레이, 타임라인과 캐릭터 스토리의 교차 등이 그에 해당한다. 나아가 플레이어는 스토리상에 개입하는 순서를 선택할 수 있으며 어둠의 시간동안 벌어지는 현실의 변화를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 <앨런 웨이크2>는 어둠의 공간에 13년간 갇힌 작가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앨런은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게임 첫 편에서 사건이 벌어졌던 브라이트폴즈에서 벌어지는 호러스토리를 쓰는 것이라 느낀다. 게임은 서바이벌 호러 장르 및 범죄물과 늘상 불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환경 속에서 디테일과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추는 레메디 특유의 스타일을 통합시켰다. 레메디가 에피소드식으로 재현되는 게임의 한계를 더욱 밀어부치는 방식 중 하나는, 게임의 스토리를 플레이어가 원하는 순서대로 완결지을 수 있도록 부여해준 자유다. 최초의 시작과 마지막의 엔딩은 사가 앤더슨과 앨런 각각의 관점에서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인물의 개별적 스토리는 약 20여 시간동안 게임이 진행되면서 점차 서로 얽혀간다. <앨런 웨이크>의 성공은 레메디가 <앨런 웨이크2>를 통해 자신들이 배웠던 교훈 및 강점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성취를 이룬 것이라 평할 수 있다. 다양한 퍼즐의 시도 및 향후 이어질 속편 작업을 위해 구축한 특정한 경험 등 <앨런 웨이크2>의 수준 높은 게임플레이와 스토리텔링에서 나타나는 양질의 엔터테인먼트 경험 제공을 향한 개발자들의 열정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023년은 다른 해였다면 여러번 상을 받았을 법한 놀라운 게임들이 대거 등장한 해였다. <앨런 웨이크2>는 2023년 후반기에 출시되었음에도 2023 Game Awards ceremony의 8개 분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올해 이미 Golden Joystick Awards 2023에서 the Critic’s Choice를 수상했다. 이 어마어마한 해에 <앨런 웨이크2>에 대적할 수 있는 게임으로는 <발더스 게이트3(Baldur’s Gate 3)>가 유일해 보인다. 레메디가 <앨런 웨이크2>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을 자명한 것이었고 그 결과물은 매우 훌륭했다. 레메디는 이 후속편을 통해 미래의 트렌드를 세웠고 고품질의 서바이벌 호러 장르를 전면으로 이끌어 냈다. 이는 레메디와 핀란드 게임업계에 좋은 소식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레메디가 일궈낸 연속적인 성공은 개발 환경이 갖춰지고 자원이 적절히 활용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엉터리 수익화 관행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레메디는 게임에 대한 열정과 애정에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면 확실히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레메디는 라이브 서비스로부터 완결된 패키지 및 완성된 엔터테인먼트 경험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주요 기업 중 하나다. 게이머들은 60달러 - 요즘은 70달러 - 의 절반이 넘는 가격이 매겨진 반짝이는 말 스킨 따위보다는, 하나의 완결작으로서의 게임을 더 원하고 또 중시할 것이다. 미래, 현재 그리고 과거 - 레메디 커넥티드 유니버스 마침내, 혹은 또 다른 시작이다. 레메디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친애하는 작가 앨런 웨이크와 어둠의 존재가 <컨트롤>의 두번째 확장판 “컨트롤:이계사(Control: AWE)”에서 등장함으로써 확인된 레메디 커넥티드 유니버스(Remedy Connected Universe, RCU)라는 세계관이다. <컨트롤>에서 플레이어는 FBC가 앨런 웨이크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문서들을 찾을 수 있었다. 레메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샘 레이크(Sam Lake)는 <컨트롤>과 <앨런 웨이크>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으며 <컨트롤: 이계사>는 그 첫번째 크로스오버 작품임을 확실히했다. 샘 레이크는 전에 레메디가 수년간 커넥티드 유니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보유해왔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마침내 <컨트롤>과 <앨런 웨이크>를 통해 그러한 측면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앨런 웨이크2>는 FBC 및 브라이트폴즈에서 벌어진 일들과 완전한 연결고리를 구축했다. FBI 요원으로서의 경력이 사가 앤더슨이 주목을 끌면서 브라이트 폴즈에서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이 유니버스를 통합시키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이 세계들은 보다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한 연결성은 스핀오프작인 <앨런 웨이크의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에도 등장하는데, 오디너리라고 불리는 마을(앞서 제시의 과거를 언급한 부분 참조)과 꽤 다루기 힘든 또 다른 캐릭터가 그것이다. 아, 그리고 브라이트폴즈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FBC의 청소부 아티도 잊지 말길. 레메디의 <컨트롤> 후속편 작업이 확정된 가운데, FBC와 제시의 이야기가 사가와 앨런의 이야기와 통합될 것임도 확실하다.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 현 시점에서는 알 수 없지만, 이 시점에 당신은 앨런 웨이크와 사가 앤더슨이 되어 손을 놓을 수 없는 환상적인 서바이벌 호러 게임 속으로 몰입할 수 있다. 준비하고 대비하되 빛을 너무 빨리 소진하지 말 것. 지난 수년을 통털어 최고인 호러게임이 여기에 있으며, 이 게임은 레메디가 지난 날 배운 교훈들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ostdoctoral Researcher) Henry Korkeila PhD, MSc, is postdoctoral researcher whose recent work has focused on the avatarization of our analog cultures as they inevitably turn into digital cultures. Special focus has been on avatars themselves, usage of avatars in their different contexts including multiple online video game genres. He has approached avatars through the types of capital, or resources, they have. His recent works in progress continue to explore the cultures of MMOs, and game accessibility and inclusivity at large.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 Back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15 GG Vol. 23. 12. 10. Are NFTs for now or for the future? Constraints can become stepping stones to innovation. The disproportionate market attention towards integrating blockchain technology into games is perhaps stemming from people’s desire to overcome the current constraints. Here, the idea of combining blockchains and games can be examined from two perspectives: First, exploring the intention behind advocating for this change, and second, discussing why such a change is deemed necessary at this time. Combining the findings from these two would allow us to acquire a comprehensive view of this matter and thus enable critical reflections on what the innovation could bring to our future. Notably,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ongoing discourse about integrating a blockchain into games is concentrating on optimistic views toward the future. Discussions about related topics like Play-to-Earn (P2E) and Non-Fungible Tokens (NFTs) are also revolving around on the view towards the future rather than present; on what could happen, and should happen according to the previous attempts. Here, we cannot get away from the feeling that something is not right – something is off. Of course, one could still argue that these messy attempts and discourse are stepping stones towards the next paradigm shift and that we must first prioritise broader and newer attempts rather than hindering innovation with over-verification. Coming from this context, this article aims to delve into the issue of NFTs in games, exploring both the social and technical contexts. First, we take a look at the context of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and the game industry’s vision towards its future, along with its remaining technical challenges. From there we look more in-depth at where these endeavours might leave their mark on games. Contexts of Non-Fungibility In recent days in South Korea, the term Non-Fungible Tokens (NFTs) is most commonly used in discussions regarding virtual assets, emphasising their potential value deriving from unique ownership attribution over notions about their technological aspects. Meaning, rather than delving into the technical feasibility of obtaining this non-fungibility status, the discourse surrounding NFTs tends to focus more on how much value can be derived from those assets and how to leverage it. Under current South Korean law, it is not possible to introduce NFTs into games, including its live operation services. There are many restrictions and thus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would be needed before any NFT games can be fully in operation at a viable commercial level in this country. But the potential gain could be high: If NFT games can somehow reach the mainstream market, they could quickly become the most accessible medium for trading cryptocurrencies, using already existing in-game markets – without making much of an early investment in facilitating entirely new channels. Not to mention, South Korean game players are already accustomed to taking financial burden while playing games. Active players are more likely to become devoted fans of the game, and for them, paying to access the blockchain currency may be perceived as an acceptable range of costs. Here it’s worth closely looking at the case of the game “CryptoKitties” (Dapper Labs, 2017) a prime example of games and blockchain integration. The in-game transactions of “CryptoKitties” occur through trading with the virtual currency Ethereum, providing opportunities to trade more exotic digitally-generated cats at higher monetary values. So, what makes this game ‘fun’? Do players find it ‘fun’ when they successfully create exotic digital cats, or does the enjoyment come from engaging in monetary trading as the prices of digital cats might increase? While the game’s primary game design mechanic revolves around collecting and breeding cute digital cats, “CryptoKitties” trade mechanisms combined with real-world monetary values (i.e., currency that can be used even outside the game) make it hard for us to articulate what the particular design elements are that truly resonate with a feeling of ‘fun’ of players.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ituation where someone has successfully generated an exotic, high-valued cat in the game. If one considers acquiring a unique cat in the “CryptoKitties” through collecting and breeding as ‘fun’: Does that feeling stem from the self-satisfaction of acquiring a rare item (in this case, an exotic digital cat), or does that come from the optimistic expectations of being able to trade it for a higher amount of money? Perhaps it could be a bit of both. Even if the player has no intention of trading that digital cat, just having an expensive object may already give the person a prestigious and satisfying feeling. This somewhat resembles other game business models already common in some South Korean MMO games – and potentially online games from other regions. Then the question is, why NFTs? What makes incorporating NFTs into the game differerent from other conventional game design and business mechanics? In the next chapter, let’s examine the benefits of NFTs from the perspectives of game companies and gamers. Contrasting views towards Non-Fungibility At the current state, one of the primary issues is that game companies have yet to clearly define how the introduction of NFTs can make more ‘fun’ to the game, and what exact innovative changes they envision for their game’s live service. For example, the game “Nine Chronicles” (Planetarium, 2020) demonstrates the notion of decentralisation by going open-source as a blockchain game. But most blockchain game projects do not seem to provide a solid answer on why they need to choose blockchain technology in particular, and rather adopt blockchain first and then find its reasoning as they run. Furthermore, one of the most widely accepted business models among these blockchain-backed games is the pre-sales scheme, selling items early in advance, which is not entirely something new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but more of a replication of existing business models but with added blockchain hype. This inconsistency leads to worrying public views on game companies’ intentions regarding NFTs, which question the corporate vision as the attempt to introduce cryptocurrency into game services while evading state regulations.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the company seems to be attempting to profit from the player-to-player item trades through NFTs. (Translator’s note: South Korean game law prevents game companies from directly facilitating player-to-player item trades if it involves purchasing or selling virtual items with real-world money, KRW. Instead, various third-party currency exchange agencies, apart from the game service providers, can mediate the exchange of virtual items with real money, subject to a certain amount of transaction fees.) Many blockchain game proposals from some major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im to gain control over direct real-world item trade; Proposing to install virtual item trade through company-issued cryptocurrencies, which is a clear indication of the corporation’s attempt to evade government’s regulations. While game companies’ vision toward NFTs is still fixated on product value, for players, the future it presents has somewhat conflicting implications. Some players may view NFTs as a channel for game items as monetary investments, while others see them as collectibles that could last even after the termination of the game’s service. Considering that all online game services’ assets and efforts that gamers accumulate over time could vanish once the game service ends, without any reliable method to possess such intangible values made in games, NFTs can perhaps provide players a permanent ownership of the things that they have achieved in games. Here, NFTs can be interpreted as a token through which players could feel personally connected with the games that they love. Perhaps the NFTs could be perceived as a medium through which players can express their attachment towards the game — a non-fungible token that signifies their devotion as a fan of the game. For these individuals, NFTs are no longer just about the technical wonder but rather a tool for the meaning-making journey of their gameplay. For instance, online game players are aware that the online game service will eventually end. Despite knowing this potential future, they remain devoted to their current satisfactions with the game, accumulating virtual assets that may one day no longer be available. Perhaps NFTs can resolve this uncertainty (the risk) that players must endure, by becoming a proof of record of in-game items that can last indefinitely. A token with which they can enshrine their love towards the game that can safely be stored without the risk of losing it. Contexts of decentralisation What the blockchain currently guarantees in terms of non-fungibility is the data. While attempts to enhance technologies such as proof-of-work (PoW) and hardware storage capacities are in progress, uploading the entire game system to run on the blockchain is still challenging.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cenario where the game system remains outside the blockchain, perhaps locally or internally within the game company’s server, while the game state (data) is kept on the blockchain. In this setup, even if the game company is no longer able to manage the game services — terminating its live operation — the records of the items still exist on the blockchain to prove who owns that particular item. However, without the game system to actually run or operate that specific item this is just a data record, which diminishes its non-fungibility – and thus, become basically worthless. While the game company could add more data, but this could significantly decrease the amount of data that can be stored in the blockchain, leading to higher costs. Higher production costs may result in slower updates , and keeping track of all gamers’ play data on the blockchain could burden computational power, potentially hindering seamless gameplay. Recent new methods proposed to improve blockchain usage (e.g., power consumption, transaction costs, and transaction times) contradict the goal of decentralisation for efficiency in proof delegation. Furthermore, most current blockchain transactions are mediated through trading platforms, which deviates from decentralisation in the first place. Another important note here is that if the game company intends to establish a genuinely centralised way to control its game service and trades, a blockchain is perhaps, unnecessary. As even with the conventional techniques already in use in current game technologies, the company could still choose and guarantee the value of their gamers’ data (and their item’s value) – and perhaps be able to do so more efficiently in terms of speed and cost than using a blockchain. Therefore, game corporations must truthfully reveal their intentions and reasoning for adding blockchains in games despite the corresponding complexity and cost risks. Without such justification, their proposals can only be seen, from the players’ standpoint, as a deceptive corporate manoeuvre – promising non-valuable values in an attempt to evade the law. What we find fascinating in attempts to decentralise games is not to facilitate a central server to operate and manage the game but rather to have it open by envisioning a pivotal shif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users – a relationship that has historically been one-sided and hierarchical. In decentralised games,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gamers can take on a more flat and open structure. This collective relationship could also influence how in-game interactions and business models are designed, potentially addressing or altering the stress on gameplay (as recently highlighted in South Korean gaming culture) caused by game designs that favour competition and a win-or-lose mentality. Finding somewhere in between What NFTs could bring to games? In this chapter, we explore intriguing attempts to mediate, compromise, negotiate, and introduce new models that could inspire further innovations. Technical enhancements could one day be able to solve blockchain-related issues. In particular, blockchain has been a significant concern because of its high power consumption due to proof-of-work (PoW). Therefore, newer technologies that do not rely on PoW are being introduced. While it is unlikely that existing blockchains already in operation will alter or adopt these new methods, it could potentially offer further future technical alternatives to issues related to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that may arise. In contrast, the game corporations’ attempts to leverage blockchain technology to free themselves from laws and social responsibilities cannot be achieved solely through technical solutions. First, let’s acknowledge that the idea (or attempt) of connecting in-game currency with real-world currency without violating the law is not particularly new; perhaps there’s a good reason for that. The issue is more fundamentally interconnected with the world, and thus, no particular technology—let alone blockchain—can be a magic wand. We believe that even if the use of blockchain becomes more common than ever before, for instance in the banking system, the practices are likely to be somewhere between convention and innovation – a fusion of blockchain technology with the existing banking system. As such, the compatibility between virtual assets and real currency should be mediated, perhaps within the scope that satisfies the existing laws of our society. Implications could also involve using blockchain technology to enhance communication between game companies and players. One such inspiration is the game “EVE Online” and its annual event, ‘Eve Fan Fest,’ which any EVE Online player can sign up for and participate in. Among the many side events in Eve Fan Fest, one we would like to point out is the ‘Player Presentation,’ which offers a 40-minute presentation or a roundtable discussion to pre-registered players. The game operates a single shared universe (global region server) for players worldwide, eliciting user participation both in and outside gameplay: At the event, EVE Online players from various factions gather for discussions and negotiations regarding faction relationships and agreements. Perhaps we could use the blockchain to create and enable various forums like Eve Fan Fest, where South Korean game devs and players can join and engage together. Company representatives can listen to players’ opinions and reflect those ideas into the game’s service, enabling a feedback loop with real in-game implications. Such attempts can perhaps prevent potential conflicts or issues that may stagnate if the company solely dictates decision-making by dismissing the power of collecting intelligence from players. Instead, the blockchain could contribute to recording and tracing player’s ideas and opinions efficiently, supporting the enhancement of fairness and transparency in player communication and game company service decisions. In addition, if the game service continues for a long time, it can serve as an archive of accumulated communication between game developers and players. The blockchain may help regain the trust between South Korean players and game developers, which has reached a dangerously precarious state in recent years. Perhaps loot box probability disclosure, mandated by law in Korea from March 2024, can be verifiably realised by archiving all records of randomised items created in the game on the blockchain. Players may be able to further verify whether the game’s system is operating as the game company intends. At the time of writing, it seems evident that many in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nd developers are concerned about what this new law could bring to the industry and how to even comply with this upcoming regulation. Perhaps with blockchain’s potential for transparency and decentralisation, the disclosure of loot box probabilities in South Korea is not far from reality. Of course, we cannot emphasise enough how a careful implementation of new technology, like blockchain, should be based on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real world and our real problems. Lastly, we again ask: So what do game companies hope to achieve through NFTs? Is the phenomenon of NFT games a futuristic indicator towards our near future, or are they just a mere reflection of the pending issues of our current reality? Attempts are being made to identify the nature of this phenomenon and clarify our understanding of the blockchain game discourse. Finding the right pathway cannot be achieved unless one can figure out one’s location, calculated based on observing the terrain relative to the starting point where one began one’s journey. As such, we must concentrate on navigating through our future discourse while carefully traversing our current and upcoming terrain of topics and never stop asking the very fundamental starting question: “What is fun in games—and can a game still be called a game when its purpose is something other than the pursuit of fun?”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 Back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04 GG Vol. 22. 2. 10. 소설 『유령』을 말하기에 앞서 2020년 초 유튜브 채널 〈CLAB〉에 영상 두 편이 올라왔다.1) 영상은 〈배틀필드4〉를 플레이하는 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FPS 게임의 왕좌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이 〈배틀필드〉 시리즈이긴 하지만 〈배틀필드4〉의 경우 2020년을 기준으로 무려 출시 7주년이 되어가는 게임이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남녀의 영상은 (이 글을 쓰는 지금 기준으로) 두 편 합쳐서 약 658,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두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탈북자’가 가상의 ‘평양’이지만 ‘김일성 동상’을 향해 총을 쏜다. 이때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동상을 보자마자 총을 쏘는 탈북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2021년에는 ‘북한 인민’을 흉내 내는 스트리머와 실제 ‘탈북자’가 함께 〈배틀그라운드〉를 플레이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2) 세 편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 역시 약 86만 조회수를 달성했다. 이 영상은 사전에 기획된 것으로, 〈조충현〉 채널에서는 커뮤니티 공지를 통해 사전에 탈북자를 모집했다. “배틀그라운드 및 다른 여러 가지 게임들 탈북민스쿼드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실제 새터민분들 중 배그 및 롤을 해보신 적이 있는 분들은 전자우편함으로 날래 보내주심 감사하겠슴다”라는 내용의 익살맞은 공지에서 운영자가 예로 들고 있는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롤〉, 〈카트라이더〉 등”이다.3) 그렇게 성사된 〈배틀그라운드〉 플레이 영상은 〈배틀필드4〉 영상보다 더 단순했다. ‘대한민국 코미디언’이 ‘탈북자’와 ‘문화어’를 쓰며 게임을 한다. 시청자들은 아슬아슬한 〈배틀그라운드〉 플레이 상황보다 코미디언 스트리머 ‘복남 동지’와 탈북자 게스트 ‘억철 동지’의 입담에 열광한다. 〈CLAB〉와 〈조충현〉 채널에 올라온 영상 모두 탈북자의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두 채널의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은 탈북자가 보여주는 게임 플레이에 큰 관심이 없다.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탈북자들의 입담과 그들이 보여주는 과감함이다. 여타 게임 스트리머들의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스트리머의 게임 실력과 센스에 따라 영상 시청을 결정한다면, 탈북자들의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들이 게임에 투영하는 경험인지도 모른다. 통일부가 집계한 국내 정착 탈북자의 수는 33,815명이다.4)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탈북자는 여전히 새롭고 낯선 존재이다. TV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탈북자는 경직되어 있거나 작위적이다. 유튜브 영상 속 탈북자는 북한 출신이지만 ‘우리’와 비슷한 존재로 다가온다. 오히려 ‘진짜 북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받는 ‘진짜 탈북자’가 되기까지 한다. 우선 『유령』을 의심하자, 그러니까 과연 분단과 탈북자란 강희진의 장편소설 『유령』은 오래된 소설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낡아버린 소설일 수도 있다.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출간된 『유령』은 “탈북자들의 소외를 리니지 게임과 연결시켜 서술한 점이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분단 상황과 가상현실 문제를 뒤섞고 가로지르며 역동적인 탈주를 보인” 것으로 이목을 끌었다.5)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우찬제는 「분단 환경과 경계선의 상상력」을 통해 강희진의 첫 장편소설이 “탈북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사정, 탈북 이후 남한의 경제적 문화적 사정 등을 실감 있게 기술”하는 동시에 “단순한 탈북자들의 생리를 그린 것이 아니라 21세기 세계의 문제의식을 독특하게 구성해 놓고 있다”고 평한다.6) 즉 강희진의 『유령』은 2011년이라는 상황 속에서 새롭고 독창적인 ‘분단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고인환은 「탈북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로운 양상 연구」를 통해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과 강희진의 『유령』을 동시에 호명한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가상의 디스토피아 현실’을 그린다는 점일 것이다. 차이점은 ????국가의 사생활????이 가까운 미래의 통일된 상황을 상상한다면 『유령』은 2010년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정도이다. 고인환이 『유령』에 주목하는 것은 “탈북자들의 삶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냉혹함은 물론, 그들에 대한 “지나친 감정 몰입”으로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는 일방적 태도 또한 경계하고 있는” 작가의 태도이다.7) 고인환에 따르면 ““객관화된 대상”으로서의 탈북자는 ‘공감의 부재’와 “지나친 감정 몰입”을 창조적으로 지양(止揚)하는 과정에서 온전히 형상화될 수 있을 것”이고, 강희진은 『유령』을 통해 그것을 적절히 보여줬다.8) 이와 더불어 이경재는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 혹은 탈북자들을 무시와 모멸의 대상으로만 삼는 한국인의 식민주의적 (무)의식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것으로 평가한다.9) 나아가 소설 속 “주인공의 부적응과 소외,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탈북자들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분석한다.10) 이것은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배제되어 ‘벌거벗은 자’가 되어가는 현실을 재현하는 데 집중하는 소설”의 하나라는 입장이다.11) 재차 강조해야 할 점은 이 소설이 2011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2011년.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었던 바로 그 무렵, 대한민국 공해에서 군함이 격침당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가 적의 포탄에 유린당한 직후의 언저리, 그리하여 반공의 기치가 다시 하늘 높이 휘날리던 바로 그 시절, 그럼에도 2천 명 넘는 탈북자가 해마다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던 상황. 아주 잠깐 탈북자 현황을 알아보자, 『유령』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는 2만 명에 가까웠다. 2만 명의 탈북자가 의미하는 것은 2만 가지 이상의 사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탈북자’이자 ‘청년’이며 ‘게임중독자’로 묘사되는 『유령』의 주인공은 과연 ‘탈북자’를, ‘탈북 청년’을 대표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문학에 없던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인물을 상징적인 존재로 위치시킴으로써 생겨난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반공의 기치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가뜩이나 차별받던 탈북자들은 무시와 멸시의 존재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그나마 동정과 긍휼의 대상으로 상상되던 탈북자들이 이제는 간첩은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대상으로, 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항상 겪어야 하는 간첩 의혹, 눈치를 봐야 하는 정착 지원 제도. 다수의 시선은 언제나 소수를 불안과 공포로 내몰 뿐이다. 다수는 소수의 존재가 성가신 정도(불편도 아니다)에 그치겠지만, 소수에겐 무엇 하나 사소할 수 없는 법이다. 2022년 현재 상황에서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오히려 간단하다. ‘탈북자’가 주인공인 이 소설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냉정한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까닭이다. 나아가 ‘탈북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소설을 과연 분단문학 혹은 디아스포라 문학이나 다문화 문학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다시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탈북자를 끊임없이 ‘탈북자’라는 따옴표 속에 가둠으로써 생기는 왜곡과 굴절의 문제이며, 탈북자라는 지칭을 통해 그들을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외부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의심하자 『유령』을, ‘탈북자’가 아닌 ‘탈북자 됨’에 대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탈북자에 대한 시선 중에 하나가 ‘미리 맞이한 통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그 표현은 좌절되고 실패하였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유령』이 결코 그러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1년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유령』이 묘사하고 있는 탈북자-북조선의 모습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오히려 『유령』이 그리고 있는 탈북자-북조선은 대한민국이 상상하는 ‘탈북자 됨’ 또는 ‘북조선 됨’의 재생산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내가 갈 곳은 방송국이 아니라 리니지 세계다. 이번에 그 속으로 들어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귀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바깥 세계로 나온다면 영원히 폐인으로 살아야할지 모른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1년이고, 2년이고 머물 것이다. 내게 리니지는 환상이 아니다. 그곳은 현실이다(325쪽). 위 인용은 『유령』의 결말 부분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문제는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그나마 ‘개명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 주인공 ‘나’가 해결한 유일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소외와 차별, 무시와 멸시, 좌절과 낙담 속에서 ‘탈북자’인 주인공의 도피처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2〉이다. 게임 속 주인공의 아바타-캐릭터 ‘쿠사나기’는 영웅이다. 혈맹의 군주인 동시에 혁명의 선봉에 섰던 전사이다. 다만 소설의 도입에서 ‘나’가 스스로 되뇌이듯 “육이오 전쟁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틀어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혁명이었던 바츠 해방전쟁에 참여한 전사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영웅에게도 현실은 냉혹한 법이다.”(11쪽) 현실이 아닌 가상, 현실보다 더 냉혹한 세계에서야 탈북자는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한다. 더욱이 ‘나’의 주변에 있는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고난과 고통 속에 살아간다. 노숙자이거나, 룸싸롱 접대부거나, 대딸방 핸플녀거나, 고아거나, 과부거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살거나, 마약에 찌들거나. 북조선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와 상관없이 남한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기구하기만 하다. 『유령』 속 탈북자는 그래서 ‘유령’이 된다. 그리고 『유령』을 읽는 독자들은 ‘탈북자 됨’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요즘은 탈북자에게 주는 정착금이 얼마 되지 않아 환상은 더 빨리 깨진다. 탈북자들이 컴퓨터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169쪽). 작가는 『유령』 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틈틈이 현실에 대한 ‘고발’도 멈추지 않는다. 문제는 그 고발의 잘못됨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2만 명, 2022년을 기준으로 3만 명의 탈북자 가운데 몇이나 컴퓨터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지 의심해야 한다. 마치 지원금이 줄어서 탈북자가 힘들어졌다는 진술을 의심해야 한다. 돈이 없어서 현실을 피해 가상 세계로 뛰어든다는 시선을 의심하고 타파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는 『유령』을 읽는 동안 그러한 의심으로부터 차단된다. 작가는 그만큼 단호하고 당당하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늘 당하는 배신, 게임 속에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믿었다”(52쪽)는 주인공의 목소리는 의심하지 말자. 다만 게임이라고 다를 게 없다는 것을 탈북자인 주인공은 몰랐을 것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게임이라고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러한 게임과 현실의 경계에 대하여 한 선학은 다음 인용의 멋진 문장을 새겨놓았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온라인 게임 열풍은 현실과 게임 사이의 이질감이 적다는 점에서 비록되는 것이 아닐까? 온라인 게임의 사건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허구의 캐릭터들은 가상의 육체와 현실의 영혼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속 모든 현상은 사회를 투영한다. 하지만 게임은 현실의 의미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동시에 현실의 의미망을 끊임없이 벗어난다. 그것이야말로 게임이 가진 탈주의 힘이다. 12) ‘게임’을 대하는 『유령』의 태도, 무엇이 그렇게 문제 이 소설의 또 다른 문제는 결코 게임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 시작부터 “온라인 게임을 정신없이 하다가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도 있다”(10쪽)고 적는다. 주인공을 상담하는 의사는 “이런 식으로 살다간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16쪽)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온라인 게임 속으로 들어가 폐인이 되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하지만 폐인을 탈출하는 데는 한 달 이상이 걸린다”(117쪽)고 고백한다. “게임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지만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공포에 대한 갈망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게임은 진짜 공포다.”(236~237쪽) 결국 “게임이, 그놈의 게임이 재밌지도,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데도 계속해 그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 공들여 온몸을 바쳐 쌓아올린 레벨 때문이다.”(280쪽)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결국 유저는 언젠가 게임을 떠난다. ‘못 떠나는’ 유저는 없다. 안 떠날 뿐이다. “유저가 어떤 게임을 떠나는 것은 게임이 지겨워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13) 이것은 게임에 대한 무례이다. “산업적 담론에서 게임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 IT 산업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문화적 담론에서는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마약으로 묘사된다.”14) 강희진의 소설 『유령』은 게임을 ‘마약’으로 치부한다. 그렇다보니 〈리니지2〉만의 사건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목을 사로잡인 ‘바츠 해방전쟁’ 역시도 『유령』에선 도구적으로 소모될 뿐이다. (진짜 의미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독재에 맞선 민중의 봉기, 독재를 물러나게 한 성공한 혁명, 혁명 뒤에 인간이 그렇듯 욕망에 점철되어 내분을 맞은 집단, 독재자의 귀환과 혁명 세력의 몰락. 그 자체로 소설이 될 수 있는 ‘바츠 해방전쟁’은 실제 ‘붉은혁명’이라는 혈맹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탈북자 중심의 혈맹 ‘뫼비우스의 띠’가 만들어지고, 〈적기가〉를 무르는 내복단이 등장하고, 해방전쟁이 혁명전쟁으로 묘사되면서 현실에선 낙오자일 뿐인 탈북자가 최전선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용맹한 전사가 되는 무대로 된다. 이때의 문제는 실제 벌어졌던 〈리니지2〉의 ‘바츠 해방전쟁’의 진의는 사라지고 ‘탈북자의 영웅 신화’로써 각색된 ‘바츠 해방전쟁’만 전면에 남는다는 점이다. 아래 인용에서 보여주는 ‘바츠 해방전쟁’이 벌어지던 즈음에 대한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리니지2〉의 스토리 세계에는 현실 역사의 ‘민중 계층’에 비유될 수 있는 계층이 존재한다. 통계 자료를 보면 40레벨 이하의 캐릭터들로 규정되는 이 민중계층은 2003년 11월 25일 현재 전체 〈리니지2〉 플레이어의 85.9%를 차지한다. 한편 5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캐릭터이면서 지배혈맹에 소속되어 있는, 현실 역사의 ‘군사 귀족 계층’에 비유될 수 있는 계층 역시 뚜렷이 존재한다. 높은 레벨이 되어 세력이 있는 혈맹에 들어가면 멋진 무기에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성에서 살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낮은 레벨의 군소 혈맹원들은 수시로 공격당해 죽고 들판에서 혈맹 모임을 가진다. 사냥터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이러한 계층 분화는 레벨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상충을 가져와 혈맹 전쟁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략)15) 하고 싶었던 『유령』에 대한 이야기, 탈북자와 게임(하기) 앞에서부터 조금씩 해왔던 이야기지만 소설 『유령』에서 ‘탈북자’가 〈리니지2〉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실에서 겪는 좌절을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는 겪지 않아도 된다. 현실에서 주인공 ‘나’는 무시와 멸시의 존재지만 〈리니지2〉의 혈맹 군주인 ‘쿠사나기’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다. “현실에서 죽었다가 깨어나도 맛볼 수 없는 것이 있다. 게임의 세계에서만 펼쳐지는 낯설고 특별한 체험이다.”(53쪽)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체험’이란 단순히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 겪는 이벤트 그 이상일 것이다. 현실과 달리 게임 속 세계에선 ‘힘’이 곧 ‘권력’이다. 자신을 탈북자가 아니라 조선족이라 속여야 할 만큼 탈북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 탈북자가 온라인 게임 속의 영웅처럼 취급받던 시절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이다(58쪽).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체제를 탈출하여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낙오와 좌절, 무시와 멸시, 천대와 모욕을 위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남쪽으로 온 것이 아니다.”(164쪽) 하지만 자유를 찾아, 진정한 낙원을 찾아 대한민국을 찾은 탈북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순전히 자본주의일 뿐이다. “그래서 가끔 자신도 탈북자라면 좋겠다는 황당한 소리를”(167쪽) 실없이 듣고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태어나 자본주의에서 성장하여 자본주의 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탈북자는 ‘치트(Cheat)’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탈북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탈북자를 극도로 경계하거나, 탈북자를 혐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겪어야 했던 경쟁에서 자유로운 존재. 학력도 주거도 쟁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학력을 위해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은 어쩌면 오히려 한국인이 갖는 낙심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설 속 탈북자들은 현실의 삶과 다르게 영웅이 될 수 있는 〈리니지2〉로 모여드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탈북자임을 숨겨야 하고, 탈북자임이 드러나는 순간 온갖 모욕을 견뎌야 한다. 그렇지만 게임에서는 탈북자임을 굳이 숨길 이유도 없고, 탈북자임이 드러나도 모욕을 각오할 필요가 없다. 게임 속 가상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힘’과 ‘권력’, 즉 레벨이다. 하지만 집단에서 벗어나 ‘솔플(solo play)’을 즐기는 유저의 상황은 좀 다르다. 저는 탈북 노숙자 한 사람의 주민번호를 빌려 아이디를 등록하고 본격적인 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리니지에서 제가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인물들을 죽일 때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리니지 안에서 칼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사냥을 다니며 닥치는 대로 죽이고 피를 보았습니다. 때로는 제가 희생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더 짜릿한 쾌감을 느꼈습니다(318쪽). 소설 속 중년 여성 탈북자(‘정주 아줌마’)에게 〈리니지2〉는 어떤 도피의 공간이기보다 본능적인 유희의 공간이었다. 다만 ‘정주 아줌마’가 즐기는 게임의 방식, 〈리니지2〉를 플레이하는 태도는 상당히 위험천만하다. 현실 세계에서 게임에 들이미는 ‘악’의 잣대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주 아줌마’야 말로 『유령』 속 어떤 탈북자들보다 게임에 충실한 인물일 것이다. 아니, 게임의 정해진 규칙마저 뛰어넘는 존재다. “RPG의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의 모험이 단순한 성장과 이동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교묘하게 감춘다. 이야기는 캐릭터의 성장을 위한 표지판이다. 그리고 이 길을 벗어난 플레이어는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일종의 성장통을 겪게 된다.”16) 하지만 ‘정주 아줌마’는 스토리텔링을 벗어나고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뿐이다. ‘게임하기(gaming/playing)’를 통해 오히려 게임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석연찮은 『유령』, 의심의 끈을 끝까지 소설 속 탈북자에 대한 묘사에 수시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소설의 편의를 위해 설정된 탈북자들의 출신 배경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소설에 장치된 인물의 설정을 모두 거짓이라 여길 필요도 없다. 교묘한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독자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을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탈북자라고 해서 무엇인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출신’이라는 이상한 표현이다. 황해도, 평안도, 강원도, 함경도, 자강도, 양강도 (여기에 더하자면 평양직할시) 출신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유령』 속 탈북자들은 출신이 명확하다. 무산, 정주, 평양. 하지만 각각의 출신 배경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책임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경험해야 하는 불편함은 탈북자의 탈북자 됨이 끊임없이 강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는 성공해선 안 되고, 성공의 기회도 잡아선 안 되고, 중독의 삶을 살아야 하며, 소외된 채로 몸부림치거나 체념해야 하며, 남성은 폭력과 무기력의 양극단 중에 하나를, 여성은 성적 대상화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운명이고 숙명이며 주어진 생인 것처럼 묘사한다. 『유령』은 게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부정한다. 주인공 ‘나’를 제외한 소설 속 모든 인물이 현실과 게임을 구분한다. ‘나’와 함께 〈리니지2〉에서 혈맹 활동을 했던 다른 탈북자들도 게임과 현실은 별개의 삶이라는 걸 안다. 주인공보다 더 극심한 삶을 사는 인물들조차 소설에서 제시하는 최후의 선택지가 게임 속은 아니다. 더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혹은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에게 “리니지는 환상이 아니다. 그곳은 현실이다.”(325쪽) 소외된 존재들의 사연을 드러내기 위한 소설로 생각한다면 『유령』은 썩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소외된 존재들을 또 다른 틀로 가둔다는 점에서 『유령』은 썩 좋은 소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탈북자가 등장하고, 탈북자 청년이 고뇌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단 현실이 아닌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탈북자를 다문화의 범주로 넣는 순간 탈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없다. 그저 영원히 이방인으로 존재할 뿐이다. 탈북 이전의 삶까지만 디아스포라이다. 탈북으로 인하여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이산(離散)이라 생각하는 것은 디아스포라에 대한 무책임이다. 2022년 『유령』을 읽어야 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런 잔소리를 남기고 싶다. 끊임없이 의심하라. 소설 속 탈북자의 정체를 의심하고,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게임에 대해 의심하라.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학연구자) 이예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북한문학이 아닌 조선문학 연구자를 표방하지만, 주류문학 말고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대중‧통속‧장르 및 기타 등등 애호가가 되었다. ​ ​

  •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 Back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16 GG Vol. 24. 2. 10. 세계관 집착이 가져온 엔드 콘텐츠의 부재 <디아블로4>는 초반의 성과를 이어가지 못한 채, 이견을 다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실패했다. <디아블로4>의 실패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동했겠으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패착을 뽑자면 장르적 소구점을 견고히 세우지 못한 점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디아블로4>는 초반의 흥행과 기대감조차 무색하게 시즌3 ‘피조물의 시즌’ 공개에도 게임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게임메카를 포함한 주요 매체는 <디아블로4>가 MMORPG와 핵앤슬래쉬, 온라인 게임과 패키지 게임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플레이의 패키징 방향을 놓쳐버린 콘텐츠 기획은 개발의 방향마저 잃어버린 듯 보였고, 플레이어들은 <디아블로4>의 플레이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고 기대감을 걸어야 할지 난감해야 했다. 그나마 자랑으로 삼을 수 있던 탄탄한 스토리는 완결을 보고 난 뒤, 2회차 3회차 플레이는 소비의 역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그 힘을 잃어버렸다. 이 모든 난관을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찾는다면, 아마 ‘앤드 콘텐츠의 부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블리자드 개발진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디아블로4>의 엔드 콘텐츠를 부재하도록 만들게 되었나? 혹자는 블리자드가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Activision과 <캔디 크러쉬>의 King을 인수한 뒤, 게임 개발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사업에 눈이 멀어 게으른 기획과 방만한 운영 끝에 현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지적할 것이다. 또는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업을 짊어지고 있었음에도 컴퓨터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뜬구름을 잡더니 결국 스토리와 같은 허무맹랑하고 현학적인 소구점에 집착한 나머지 현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하는 평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의견 모두 블리자드가 지난 10년간 <스타크래프트2> <디아블로3>를 공개하며 직면해야 했던 비판이다. 위의 비판 모두 경영진의 방심이라고 지적되어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비판 모두 다소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두 비판 중 조금 더 타당해 보이는 쪽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아블로4>는 서사, 그것도 애정 서사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게임으로서 갖추어야 할 장르적 소구를 크게 흔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동안 블리자드가 10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온 것은 경영진의 방만한 태도 때문이 아니라, 블라자드가 본인들의 장점이라고 여겨왔던 세계관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플레이의 재미를 혁신시키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디아블로의 실패 요인, ‘엔드 콘텐츠의 부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블라자드가 집착한 세계관에 대한 집착이 어떤 패착을 가져왔는지 톺아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은 반드시 플레이어블해야 한다 <디아블로> 시리즈에 있어 중세기독교의 역사와 톨킨을 떠올리게 만드는 중간계를 섞어놓은 세계관은 그 자체로 <디아블로>의 정체성이었다. <디아블로>가 구축한 장엄한 세계관은 독창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널리 알려진 요소들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여 걸출한 IP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더불어 플레이어는 우수하게 조율된 타격감을 통해 <디아블로>가 구축한 매력적인 세계관을 탐방하는 재미에서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걸 수 있었다. 이는 블리자드가 빠르게 팬덤을 끌어모으는 바탕이 되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특징은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1> <디아블로2>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서사적 주인공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게임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플레이의 미덕이 있다. 게임은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것이며, 플레이어는 어떤 방식으로든 플레이에 개입되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조금 더 쉽게 풀어보기 위해 시리즈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디아블로2>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디아블로>라는 게임 내에서 주인공의 지위는 어디까지나 ‘소서리스’ ‘네크로멘서’ ‘바바리안’ 등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마련한 서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블한 캐릭터를 플레이해야만 했다. 주인공은 단순히 서사를 탐험하고 전달하는 매개가 아닌, 선택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가는 존재에 가깝다. <디아블로2>의 이러한 특징을 대변하는 요소를 뽑자면 많은 플레이어가 <디아블로> 시리즈를 넘어 핵앤슬래시 역사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회자하곤 하는 “Act 5: Lord of Destruction”를 생각해볼 수 있다. “Act 5: Lord of Destruction”까지 <디아블로> 세계관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앞서 언급했던 서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플레이어블 한 존재로 보기는 어렵다. 차라리 이야기를 전승하기 위해 던전을 돌아다니는 캐릭터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디아블로2>의 마지막, 다시 말해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던전을 돌아다니며 레벨을 올리는 수련을 수행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자각하며 ‘끝판왕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소명을 부여받는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한 이유에 대해 단순하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며 그동안 플레이어가 겪었을 서사적 경험을 하나의 소구로 정리한다. 더불어 “Act 5: Lord of Destruction”에서 이용된 시네마틱 시퀀스는 그러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배가시키며 게임 서사로서 날카롭고도 뾰족한 소구점을 만들어낸다. 게임에 어울리는 서사, 게임에 어울리는 갈등 여기서 중핵이 되는 것은 <디아블로2>가 가지고 있는 소구의 바탕이 ‘운명을 바꾸기 위한 숙명적 결투’와 같이 커다랗고도 직접적으로 체감이 가능한 갈등 위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갈등을 십분 활용하며 선형적이며 결말이 정해진 서사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쾌감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둠 리부트>(2016)와 <둠: 이터널>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 스토리란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는 존 카맥의 격언 아닌 격언으로 유명한 둠 시리즈이지만, <둠>은 게임 스토리로서 갖추어야 할 명료하고 직관적인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갖추고 있다. 던전에 악마와 갇히게 되었으니 악마들을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단순한 소구는 둠가이라는 인상적인 먼치킨 캐릭터를 구현하는 바탕이 되었고, 그 바탕 위에서 플레이어는 둠가이를 컨트롤하며 경쾌한 악마 대학살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야기 자체에 무심한 듯 보이지만, 갖추어야 할 기본기는 <둠>과 달리 <디아블로4>는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콘텐츠에 어울리는 갈등’이라는 기본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디아블로4>는 릴리트와 이나리우스의 어긋난 사랑이라는 갈등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릴리트와 이나리우스가 어쩌다가 갈등을 겪게 되었고,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관찰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그들의 행위에 유의미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결말조차 그들의 어긋난 사랑을 담는 그릇으로 남겨지는 식으로 귀결되고 만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게임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플레이의 미덕’이 부재해 있다. 플레이어가 무엇을 플레이하든, 릴리트와 이나리우스는 그들의 선택을 한다. 여기서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디아블로4>가 가지고 있는 애정서사 그 자체가 아니라 애정 서사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릴리트-이나리우스 간에 벌어진 사실상의 부부 갈등이 게임에 적합한 갈등이었냐는 것이다. 물론, 릴리트와 이나리우스의 애정 서사는 <디아블로>라는 IP의 세계관을 두텁게 만들었다. 때문에 <디아블로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은 그 어느때보다 강렬했으며, 그 자체로 게임의 소구점이 되었다. 그 세계관에 대한 ‘감상’이 소구점이 되다 보니, 가장 플레이어블한 엔드 콘텐츠 역시 방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블리자드는 플레이어가 시네마틱 시퀀스를 보기 위해 던전을 통과하는지, 아니면 서사의 주인공을 되는 경험을 위해 던전을 통과하는지 (최소한 본편에서는) 심도 있게 피드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이 때문에 <디아블로>는 장엄한 서사시를 경험하게 만들기 위해 던전을 통과해야 하는 값비싼 예술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쉽게는 이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대중을 상대로 세일즈하는 텐트폴 상업 게임에서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블리자드 역시 세계관에 집착하며 벌여놓았던 문제들을 수습하고 극복하기 위해 서사의 주요한 인물들을 릴리트와 이나리우스가 아닌 메피스토로 두는 등 세계관 내에서 인물들의 배치를 바꿔가는 식의 스토리 이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주인공의 자리로 옮겨놓기 위한 시도들이라고 기대해본다.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플레이어가 플레이어인 이유는, 플레이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게임이다. 나아가 영화가 되려는 게임의 욕망은 그다지 독특하지 않다. 많은 개발자와 기획자들은 영화스러운 게임을 꿈꾸고, 플레이어 역시 영화스러운 플레이를 기대한다. 그러나 영화인 게임이 영화스러운 게임인 것은 아니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게이밍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

  • 유보된 이야기와 넓어진 유희공간- <용과 같이 8>

    < Back 유보된 이야기와 넓어진 유희공간- <용과 같이 8> 17 GG Vol. 24. 4. 10. <용과 같이 8>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게 돼?” 작년 한 해 무수한 게임 스트리머가 내뱉었던 말이다. <발더스 게이트 3>의 기상천외한 전략, 프랜차이즈를 다시 한번 쇄신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원더>, 전작의 아성을 매혹적인 자유도의 시스템으로 돌파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 유사-포켓몬들을 잡아 노동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고기와 가죽 등으로 해체(!)까지 할 수 있었던 <팰월드>…. 이것은 (상당히 자의적으로 해석 가능한) 게임의 자유도가 소위 ‘갓겜’이 되기 위해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해진 내러티브를 어떠한 방식으로 따라갈 것인가, 특유의 직선적 구조를 어떻게 달릴/우회할 수 있는가, 게임의 메인 플롯을 우회하며 즐길 수 있는 유희도구가 존재하는가. * <용과 같이 8> 플레이 화면 이 글에서 다루는 <용과 같이>는 전통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으로 취급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카무로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수두룩하고, 선형적인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으며, 무수한 미니게임이 게임의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게이머가 택할 수 있는 자유도란 스토리를 진행할 것인지, 100% 클리어를 목표로 모든 미니게임을 정복할 것인지 정도였다. <용과 같이 제로>에서 <용과 같이 6: 생명의 시>까지 7편의 정식 넘버링에서 키류 카즈마의, 그리고 <용과 같이 7: 빛과 어둠의 행방>의 새로운 주인공 카스가 이치반의 이야기를 따라온 게이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 기나긴 시리즈가 게임들에게 제공해주는 하나의 자유가 있다. 바로 키류/카스가의 이야기를 한없이 유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무로쵸/이진쵸 등 시리즈의 배경이 되어 온 공간은 단순히 신주쿠와 요코하마의 재현을 넘어 무수한 놀거리로 가득한 유희공간이다. 가라오케나 아케이드, 장기와 포커 등 다른 게임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미니게임부터, 포켓 서킷이나 곤충여왕 메스킹, ‘물장사’처럼 일본과 야쿠자라는 특징을 살린 콘텐츠까지, 물론 그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는 갈리겠으나 각각의 미니게임이 그 자체로 단독 게임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해준다. 8편에 이르러서 본편 바깥의 콘텐츠는 더욱 큰 분량을 갖는다. 전편의 ‘야쿠몬 도감’은 수집한 야쿠몬으로 경쟁할 수 있는 ‘야쿠몬 배틀’로 진화하였고, 하와이라는 새로운 배경에 걸맞은 음식을 배달하는 ‘크레이지 딜리버리’, 본편의 지역을 벗어난 섬에서 진행되는 ‘쿵더쿵 섬’과 같은 다양한 서브 콘텐츠가 등장한다. * <용과 같이 8>의 ‘쿵더쿵 섬’ <용과 같이>의 무수한 놀거리들이 무언가의 패러디다. 우리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용과 같이 8>에만 한정해보자면, ‘야쿠몬 배틀’은 <포켓몬스터>의, ‘쿵더쿵 섬’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크레이지 딜리버리’는 <크레이지 택시>의 패러디에 가깝다. 제작사인 SEGA가 보유한 IP를 넘어선 패러디의 대상들은, 한편으로 <드래곤 퀘스트>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 전편에서부터 조금 더 본격화된다. 물론 앞선 시리즈에서 기타노 다케시나 후쿠사쿠 긴지 등의 거장이 연출한 일본 야쿠자 영화의 대표작들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해온 사례가 있지만, 카스가 이치반이 주인공을 맡은 두 시리즈에선 패러디와 인용의 대상이 ‘내수용’을 벗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한 지점에서 <용과 같이 8>을 플레이하다보면 다른 의미의 “이게 돼?”를 외치게 된다. 첫 문단에서 짧게 언급한 <팰월드>가 어떤 논란을 불러일으켰는지 떠올려보자. 게임이 발매되자마자 <포켓몬스터>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러스트> 등 여러 게임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들끓었고,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여기서 <팰월드>가 표절인지 아닌지, 혹은 그 게임이 만들어진 방식이 윤리적인지 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켓몬스터>, <모여봐요 동물의 숲> 등의 컨셉을 거의 그대로 들여온 <용과 같이 8>의 서브 콘텐츠에 관해서 표절 논란은 없었다. 시리즈 대대로 진지한 톤의 메인 스토리와 B급 감성의 서브 콘텐츠를 다른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분리시켰기 때문일까? 혹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가 판타지 RPG 게임 속 몬스터들에 버금가는 (캠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과장된 이미지들이기 때문일까? * <용과 같이 8>의 ‘야쿠몬 배틀’ 잠깐 언급한 것처럼 <용과 같이> 시리즈, 특히 카스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7, 8편의 경우 서브 콘텐츠가 메인 스토리를 지연할 자유를 제공하는 요소로써 작동한다. 전작들의 포켓 서킷이나 물장사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거나 서브 스토리를 보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면, 야쿠몬 배틀이나 쿵더쿵 섬은 그것을 넘어 독자적인 시스템을 지닌 게임 속 게임에 가깝다. 물론 이들을 통해 메인 스토리 진행을 위한 돈이나 강화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지만, 두 서브 콘텐츠는 메인 스토리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플롯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상호보완적인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수집한 야쿠몬을 쿵더쿵 섬의 노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훈련 및 강화한 야쿠몬을 배틀에 활용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는 <드래곤 퀘스트>를 비롯한 JRPG의 전통을 <용과 함께>의 전투 시스템에 녹여내면서 등장한 새로운 렌즈, 즉 턴제 전투에 돌입함에 따라 카스가의 관점에서 ‘몬스터’로 변하는 적들의 모습과 조금 더 강하게 결부된다. 전작들에서 단순히 ‘길거리 양아치’나 ‘술 취한 회사원’과 같은 식으로 명명되었던, 길거리 인카운터로 마주치는 적들은 '자칭 마법사', '장난꾸러기 코코넛', '시티 웜'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다. 카스가의 눈으로 보게 된 <용과 같이>의 세계는 한편으로 선혈이 낭자한 야쿠자의 세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험으로 가득한 게임적 가상으로 가득한 세계다. 키류의 실시간 전투가 ‘야쿠자’라는 소재가 주는 폭력의 쾌감을 강조했다면, 카스가의 턴제 전투는 카스가의 규칙을 받아들인 동료들과 형성한 일종의 ‘매직 서클’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야쿠몬 배틀이나 쿵더쿰 섬처럼 명백히 다른 게임의 시스템을 차용한 서브 콘텐츠를 정당화할 수 있다. 카스가의 <용과 같이>는 더 이상 야쿠자의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해낼 수 없는 게임 외적인 어려움(2010년대 이래로 야쿠자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을 다분히 게임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야쿠자 대해산’으로 마무리된 7편과 언더커버 요원으로 암약하는 키류의 이야기를 다룬 <용과 같이 7 외전: 이름을 지운 자>를 떠올려본다면, 8편의 이야기는 배신과 의리 사이를 맴도는 전형적인 야쿠자 이야기로 지속될 수는 없다. 때문에 시리즈가 눈을 돌린 곳은 게임 그 자체이며, 8편은 그간 시리즈가 쌓아둔 에셋을 재료 삼은 온갖 게임의 혼성모방으로 완성되었다. 그것이 이 게임에 가져다준 거대한 유희공간은 기존에 “자유도가 높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게임들과는 다른 양상의 자유도를 선사한다. * <용과 같이 8>의 ‘엔딩노트’ 메인 스토리를 끝없이 유보하는 <용과 같이 8>의 자유에는 혼성모방적 서브 콘텐츠 이외의 것도 포함된다. 친어머니를 찾아 나선 카스가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이지만, 어쨌거나 이 게임은 카스가와 키류를 모두 주인공으로 채택했다. 6편에서 일단락되었던 키류의 일대기는 7편 외전에서 잠시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 뒤 본작에서 다시 전개된다. 게임 중반부부터 키류가 암에 걸려 죽어간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야기는 카스가가 이끄는 하와이 그룹과 키류가 이끄는 이진쵸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 시점부터 새로 해금되는 서브 콘텐츠가 있다. 바로 키류의 ‘엔딩노트’다. 엔딩노트는 키류를 간호하던 난바가 지난 삶을 정리해보라고 조언하는 장면을 통해 해금된다. 마치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아서 모건이 무법자들로 가득한 서부극의 시대가 끝나감을 알리며 죽어간 것처럼, 키류 카즈마는 야쿠자의 시대가 끝나감을 자신의 몸으로 드러내듯 죽음을 향해 간다. 키류는 이진쵸와 카무로쵸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난 삶을 회상하고, 종종 간단한 전투가 벌어진 뒤 이전 시리즈의 장면이 엔딩노트에 기록된다. 여기에는 본편 넘버링 이외에도 <용과 같이 유신!>이나 <용과 같이 OF THE END>과 같은 외전 또한 꿈의 형태로 포괄된다. 이윽고 누군가 키류를 찾아오는데, 시리즈 전체를 키류의 이야기에 함께 해온 형사 다테 마토코다. 키류는 다테와 함께 전작들에서 함께 해온 인연들을 마주한다. 이 과정을 통해 포켓 서킷 파이터나 의사 에모토부터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하루카까지, 그간의 시리즈를 수놓은 등장인물과 재회하게 된다. 이 재회는 키류의 것만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용과 같이>를 플레이하며 키류의 여정을 쫓아온 게이머들 또한 키류의 엔딩노트 위에 자신의 추억을 포개어 놓을 수 있다. * <용과 같이 8> 속 키류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 이경혁은 게임제너레이션 16호에 수록된 글 “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를 통해 스탠드얼론 게임에서 다뤄지는 서사가 게이머와 함께 나이듦을 지적한다. 로스 산토스를 누비는 범죄자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혈기 왕성했던 크레토스는 사춘기의 아들을 이해해야 하며, 이혼와 육아는 GOTY 수상작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게임의 주인공이 죽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늙음과 질병, 한 시대의 종언과 함께 이야기되는 것은, 이경혁의 지적처럼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스탠드얼론 게임 유저들의 연령과 연동되며 발전한다. 어느덧 20년의 역사를 지는 프랜차이즈가 된 <용과 같이>가 키류의 마지막(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지만)을 그려내는 방식은 시리즈의 한계와 나이듦을 직면하는 것과 같다. 규모의 확장과 한계의 쇄신이라는 이중의 임무를 지닌 <용과 같이 8>은 우리에게 게임의 주역들과 한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메인 스토리를 유보하면서 카스가와 놀고 키류를 추억할 거대한 놀이공원, 이로써 <용과 같이>라는 게임의 경계는 한층 넓어졌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

  • 판단하고 행동하는 효율의 <피크민 4>

    < Back 판단하고 행동하는 효율의 <피크민 4> 18 GG Vol. 24. 6. 10. 수치적 접근과 감각적 접근 프라스카를 포함한 루돌로지스트 관점에서의 분석대로 비디오 게임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디지털digital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본질적으로 비디오 게임은 세계를 어느 정도 계산 가능한 것digit으로 치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숫자로 치환된 현실을 가진다. 이것은 디지털 게임에 있어 불변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디지털 게임의 총체가 숫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디지털 게임과 접촉하는 접면surface은 수치적 정보와 감각적 정보의 혼합물이다. 캐릭터는 힘 18과 민첩 14와 지능 8으로 이루어지지만 한편으로는 외형 등의 시각적 정보와 (게임에 따라서는) 목소리 등을 통한 청각적 정보로 이루어지는 감각적 규정도 동시에 가진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굼바는 한 번의 점프로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체력, 수치적으로 규정된 속도, 지향성의 운동 알고리즘을 가진 존재이며 동시에 도끼눈을 하고 마리오를 죽이기 위해 덤벼드는 괴물이기도 하다. 이런 조건에서 다음의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수치가 감각에 복종하는가, 아니면 감각이 수치에 복종하는가. 여기에 명백한 대답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비디오 게임이란 수치와 감각이 일으키는 긴장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하나의 축이 다른 축을 앞지를 수 있다. 요컨대 게이머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효율론’의 경우, 전적으로 수치가 감각보다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전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치가 감각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강캐를 애캐로 삼으면 된다.’는 유쾌한 레토릭이 떠돌아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강한 캐릭터가 아닐 때 생기는 안타까움을 역설적으로 논하는 일종의 해학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결국 ‘강캐’에 대한 메타적 접근(=수치적 접근) 조차도 ‘애캐’에 대한 친밀감의 접근(=감각적 접근)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명규의 서술대로 특정 캐릭터와의 연애를 하기 위해서라면 게임의 재시작조차 불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 감각적 접근이란 말 그대로 ‘감각적’ 접근이다. 플레이어는 어느 때에 대상으로부터 감각적 친밀감을 얻는가? 그것은 감각적으로 접촉할 수 있을 때다. 요컨데 찰리 채플린의 그 명언,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의 작동이 비디오 게임에서도 일부 유효하다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인물에게 접근할 때, 요컨대 그 대상의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을 때 감각적 인식의 가능성은 오른다. 따라서 게임이 규정하는 고정된 시점을 벗어나 캐릭터를 다양한 방향에서 비추어는 컷씬은 일거에 감각 접근을 수치 접근보다 앞지르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그 외에도 음성의 삽입을 통한 청각의 접근, 진동 등의 기능을 통한 촉각적 접근은 나와 대상이 연결될 수 있다는 감각적 가능성을 증가시켜 준다. 많이 배제되는 경향이긴 하지만, 비디오 게임에서 촉각은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비디오 게임을 여타 매체와 차별화시키는 감각이 바로 촉각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동작 인식 센서를 활용하는 게임이 아닌 이상에야) 결국 컨트롤러를 ‘손으로 잡고’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러야’ 대상과 연결된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컨트롤러는 <스타크래프트>나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신경삭Nerve cord [2] 같기도 하다. 나와 게임이 연결되는 접촉의 연결지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의 손으로부터 뻗어나간 신경삭이 게임 내부의 무엇과 연결되어 있느냐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요컨대 (대부분의 액션 게임들처럼) 특정한 인간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처럼)확인 불가능한 가상의 신적god-like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 그림 1 : 코에이의 <삼국지 14> 이에 비추어 보자면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극도의 효율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에는 단순히 인구 혹은 전력戰力 따위로 수치되는 경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플레이어의 인지가 대상(=유닛)과 감각적으로 유리되어 있다는 전제도 함께 작동한다. 특히나 특별히 어떠한 인물이라 특정할 수 없는 매니저 혹은 전략 지도자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한 가상적 부표, 즉 커서는 그 전달 대상과의 촉각적 접촉을 완전히 끊어버린다. 이 때 유닛이란 신경삭으로 연결되지 않은 감각 바깥의 존재들이며 따라서 이들의 생존 혹은 고용 상태 같은 것도 어디까지나 가상적 감각으로 체화된다. 그들과 거리가 멀어질 수록, 요컨대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처럼 병사 1의 존재를 절대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단절이 발생한다면 결코 생명의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다. <삼국지>의 전투 중 부대와 부대의 싸움으로 100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우리에겐 100명의 부상 혹은 사망으로 인지되지 않는다. <피크민4>와 접촉의 메커니즘 닌텐도의 <피크민 4>는 2024년 TGA에서 최고의 시뮬레이션/전략 게임Best Sim/Strategy Award를 수상했다. <피크민> 시리즈의 장르는 제작사에 의해 AI액션AIアクション [3] 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정확히 액션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지점이 있다. 오히려 TGA의 수상이 말해주듯,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공간 내에서 유닛을 ‘생산’하고, 업무적 분류에 따라 ‘명령’하는 실시간 전략RTS:Real Time Strategy에 가까운 문법을 가진다. 다만 목표가 적진의 괴멸이 아닌 물건의 수집이라는 점, 건설의 개념이 없다는 점, 자원 수집과 생산 명령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의 RTS와는 다른 감각을 줄 뿐이다. 그럼에도 유닛을 어떻게 분리하고 운영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RTS의 전략을 상당히 공유한다. 그런 면에서 <피크민 4>를 RTS로 구분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부분적으로 ‘액션’으로 구분되는 이유는 세계를 비추는 방식이 신적이기보다는 인물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피크민> 시리즈에는 RTS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커서의 메커니즘이 배제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으로 규정되는 중요 캐릭터 [4] 를 직접 조작해 유닛인 피크민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가상적 부표가 아닌 명백히 물리적인 주체와 신경삭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거치고, 시뮬레이션 일반과 상이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특히 유닛을 운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메커니즘이 대상이 되는 피크민을 ‘들어 던지는’, 상당히 밀도 높은 물리적인 접촉 형태를 취한다. * 그림 2 : <피크민> 시리즈에는 언제나 피크민의 손실에 대한 상실의 메시지가 존재한다. <피크민> 시리즈의 독특함은 바로 이 접촉의 메커니즘에서 나온다. 전략적 판단을 전제로 하는 전략 게임의 세계임에도 개별 유닛 하나하나와 직접 접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각의 피크민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RTS의 유닛 일반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갖는다. 이들은 명백히 살아있으며, 자신들만의 생태가 있고, 때로는 죽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명령에 헌신하며 잘못된 판단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특히 피크민의 죽음은 시체 위로 승천하는 영혼으로 표현된다. 만화적 유쾌함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고체적’ 성질에서 부유하다 사라져버리는 ‘기체적’ 성질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피크민> 시리즈는 RTS로서는 이례적으로 개별적 유닛의 실존을 강력하게 표출한다. 효율과 계획력 * 그림 3 : 피크민은 스스로 놀지 않는다. 오직 플레이어가 그들을 놀리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피크민 4>에는 ‘계획력’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작품은 계획력을 ‘순서를 생각해서 효율 좋게 작업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임 내적으로는 피크민의 분산적 운용과 쉼없는 컨트롤을 통한 시간대비의 효율적인 움직임을 총칭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피크민 4>는 표면적으로 효율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효율은 전적으로 현재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의미, 즉 감각을 앞지르는 수치의 전면화와는 근본을 달리하는 개념이다. <피크민 4>는 효율적인 수치보다는 효율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앞서 구분했던 대로 수치와 감각의 개념으로 치환해 보자면, <피크민 4>가 강조하는 효율은 감각의 운용에 가깝다. 비록 게임은 몇 종/마리의 피크민과 동행 중인가 하는 수치적 스테이터스를 표시하긴 하지만, 이 수치의 효과는 전적으로 플레이어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극도로 변화한다. 이 변곡이 바로 본작이 추구하는 ‘계획력’이다. 이 감각적 효율 추구는 대상에 대한 전적인 친화를 기반으로 한다. 요컨대 여기에는 덜 효율적인 수치에 대한 배제 또는 제거의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피크민 4>의 효율은 오직 하나의 기준을 통해서만 작동한다. 그것은 플레이어의 감각 활용이며, 조금 더 물리적으로 말하자면 쉼없는 판단과 움직임의 동원이다. 이러한 규정에 의해 성패의 거시적 판단이 확고해진다. 요컨대 <피크민> 시리즈에는 ‘유닛이 약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리즈에서의 실패는 오직 플레이어의 상황과 능력에 대한 오판, 비전략적 혹은 비효율적 움직임 등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실패의 결과는 피크민이라는 생명의 소실로 연결되는 치명적인 감각의 실패를 낳는다. 전략 시뮬레이션이란 결국 매니지먼트의 시뮬레이션이다. 유닛으로 총칭되는 병력과 병기에 대한 관리가 그 규칙의 체계를 구성하는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때로 비디오 게임의 매니지먼트는 지나치게 감각의 세계를 배제하곤 한다. 실패는 냉엄한 수치의 손실인 것 뿐인가? 혹은 패배의 원인은 수치적 불완전성, ‘더 뛰어나지 못한’ 관리의 대상이 포함되었기 때문인가? <피크민> 시리즈는 이러한 수치 매니지먼트 또는 효율론의 한계 지점을 가로질러 매니지먼트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로 되돌아간다. <피크민 4>는 계획력이라는 단어를 경유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매니지먼트의 본질에 대해 설파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직접 행동하라. 바로 이것이 매니지먼트의 효율이며, 그것은 감각의 무게다. [5] * 그림 4 : 계획력이란 순서를 생각해서 효율좋게 작업하는 능력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도 계획력을 발휘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 것이다. [1] 「게임의 로맨스가 진짜 사랑은 아니지만 중요해, CRPG의 로맨스」 (이명규, GG 16호) [2] 이 두 작품에서 신경삭은 모두 다른 존재와의 정신적 연결을 위한 기관으로 등장한다. 특히 <아바타>에서는 신경 다발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장면이 다수 나온다. [3] 정확히 말하면 전작인 <피크민 3>까지 이러한 장르명으로 규정한다. [4] 전작들인 1편과 2편에는 올리마를 단독으로 조작했으며 3편에서는 알프, 브리트니, 찰리라는 3인 팀을 교체하며 조작할 수 있었다. 4편에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제작한 캐릭터를 사용한다. [5] <피크민 4>의 로딩 스크린에 나오는 문구 중에는 일상생활에서도 계획력을 발휘하는 습관을 들여보라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사유를 현실에까지 연장시키고 싶다는 바람의 투영같기도 하다. Tags: 피크민, 감각, 시뮬레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

  • 〈세계건설〉, 게임 방법론의 새로운 예술적 적용

    < Back 〈세계건설〉, 게임 방법론의 새로운 예술적 적용 06 GG Vol. 22. 6. 10. 게임 뒷면, NPC들의 세계 웹소설, 웹툰과 같은 분야에서 디지털게임을 소재로 삼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주인공이 게임 속에 들어가 전형적인 성장 서사를 풀어내기도 하고, 이른바 ‘먼치킨’이 되어 게임 속이라는 이세계이자 가상세계를 평정해 나가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콘텐츠 중에서는 주인공이 아닌 게임 세계의 다른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는 사례들도 적지 않은데, 이른바 NPC에 초점을 맞춘 경우들이다. 플레이어가 떠나면 한숨을 돌리며 몬스터 연기를 접고 자기 삶으로 돌아가는 NPC의 일상을 다루는 작품들이 보여주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펼쳐져 왔던 오늘날까지의 여러 시도들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이런 흐름은 계속 확장되는 추세다. * 영화, 웹툰, 웹소설 등 전반에서 게임적 세계관, 나아가 게임 속 대상으로만 그려졌던 NPC의 시점을 중심에 두는 흐름은 이제 꽤나 대중적이다. 리움미술관에서 2022년 7월까지 전시중인 이안 쳉의 작품 〈세계건설〉에서 가장 주요한 구성요소는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오브젝트들이다. 작품에 달린 설명처럼 이들은 시작시각과 종료시각을 갖고 동일한 내용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영상물이 아닌, 서로 얽히고 부딪히며 각자의 속성을 유지한 채 다른 객체들과 네트워크를 이루는 과정 자체를 무한히 반복한다. 대본과 스크립트로 구성되는 영상물과 달리 이 전시는 각자의 속성을 부여받아 행동하는 개별 객체들이 상상된 세계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과정 전체를 그려낸다. 영화로 대표되는, 서사 중심으로 이어지는 작품들과의 차이는 단지 이러한 작동의 기전에 머무르지 않는데, 애초에 서사라는 방식 자체가 존재하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추상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두 시간 남짓의 상영시간으로 10년의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건 대신 서사에 필요한 사건과 순간들을 발췌하여 편집하는 방식을 취한다. 무한대에 이르는 사건의 개수 중에서 이 서사에 연관된 사건만을 추려내는 영화의 방식과 이안 쳉의 작품은 기초부터 다른 입장에 선다. 영화에서는 이미 현실이 존재하고 그로부터 가상의 서사 재료를 뽑아내는 반면 이안 쳉의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발췌와 추상으로서의 ‘서사’다. 그저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각각의 객체가 알아서 작동하고 상호작용하게끔 설계할 뿐이다. 이런 면에서 이안 쳉의 작품은 영상을 기반으로 하지만 영화보다는 디지털 게임과 닮아 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없는, 객체들만의 세계 초창기 게임과 달리 요즘의 게임은 오로지 알고리즘에 의한 상호작용만으로 모든 텍스트가 구성되지는 않는다. 모든 매체가 그 이전 매체의 재현이듯, 게임 또한 순수한 연산 과정에 머물지 않고 영화와 텔레비전, 만화와 소설 같은 그 이전의 모든 매체를 참고하고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매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임만의 특유한 방식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게임적인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게임적인 방식은 이안 쳉의 작품이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식과 무척 닮아 있다. 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가 ‘문명’ 시리즈다. ‘문명’ 에는 관전모드가 존재한다.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고 이번 게임에 참가한 모든 문명의 조종을 AI에게 맡겨버린 채 역사의 진행 과정을 그저 구경만 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각 문명의 AI들은 각자 주어진 행동양식에 맞게 주변 지형과 자원, 타 문명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역사를 이어 나가고, 이 과정은 별도의 대본이 없기에 같은 조건으로 플레이해도 매번 다른 양상과 결과로 이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NPC 간의 상호작용이 디스플레이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개입을 통한 상호작용은 누락되었지만, 여전히 가상세계 안에서는 각자의 의미를 부여 받은 오브젝트들이 알아서 주변과 관계 맺으며 디지털 연산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작동하는 무언가로 만들어낸다. 〈세계건설〉 전시에 등장한 〈사절〉 삼부작이 모두 이와 동일한 방식을 통해 각자의 디스플레이에 오브젝트 간의 합의되지 않은 상호작용을 별도의 서사를 위한 압축 없이 날 것 그대로 펼쳐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전시에 녹아있는 디지털 게임의 방법론을 체감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오토마타들의 온전하게 닫힌 계 시작도 끝도 짐작하기 어려운 이 무한한 시간을 향한 관조는 그러나 여러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는 아니다. 이를테면, 네모난 프레임 안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향한 관찰의 시선은 아이들의 교구로 많이 알려진 개미집 관찰 도구를 연상케 한다. 투명한 아크릴판 안에 채워진 흙 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개미들의 모습은 네모난 아크릴 프레임을 통해 관찰자에게 그대로 전시된다. 먹이를 주는 정도의 개입은 할 수 있지만(이번 전시 출품작 중 〈BOB(신념이 담긴 가방)〉 을 보라!) 근본적으로 관찰자의 개입은 배제된 상태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는 수족관이나, 동물원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개미집, 동물원의 예시가 이미 현존하는 ‘작동하는 세계’에 대한 관찰이라면 의외로 디지털을 통해 창조된 관찰도 오랫동안 우리의 일상에 자리한 적도 있는데, 바로 PC의 화면보호기다. 이 프로그램에도 내부의 객체가 알아서 화면에 이미지를 렌더링하여 무한하게 랜덤한 결과물을 생성하고, 사용자는 그 생성에 개입하지 못한 채 관조하게 되는 과정을 향한 의도가 담겨 있다. 전시작들처럼 세부적인 관계의 네트워크까지는 아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윈도우 화면보호기 속의 3차원 파이프와, 계속 개체수를 늘려나가며 굴을 파고 방을 만들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개미집과, 어딘지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신을 찾아 떠나는 것 같은 〈사절〉 삼부작에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압축과 추상이 없고, 관찰자의 개입이 없는 대신 내부의 객체들이 정해지지 않은 상호작용으로 세계를 완성해 나간다는 공통점이 자리한다. *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용으로 활용되는 교구인 개미집은 투명한 아크릴로 완전히 닫힌 계 너머에서 관찰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스로 움직이는 대상의 모습을 관조하게끔 한다. 사용자, 플레이어로서의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내부의 객체들이 알아서 끊임없이 작동하며 움직이는 가상의 세계는 말 그대로 객체들의 세계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공학적 측면에서는 객체지향프로그래밍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절차적 프로그래밍과 궤를 달리하고, 철학적으로는 객체지향 존재론을 통해 주체 혹은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사고의 틀을 바꾸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분명 디지털 게임을 구성하는 방법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건설〉의 출품작은 한편으로는 이것이 정말 게임스러운가? 라는 질문 앞에 마주 선다. 적지 않은 게이머들은 아마도 플레이어 개입이 불가능한 작품을 두고 존재론적 논쟁을 벌일 것이다. 이를테면, 오락실의 오락기기는 동전을 넣지 않은 상태에선 데모 플레이로 캐릭터들이 알아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무료로 선보인다. 하지만 이때 플레이는 동전을 넣고 스틱을 직접 조작해 난관을 돌파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앞의 데모 플레이는 ‘본게임’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데모 플레이는 게임 텍스트의 일부이지만, 사람들이 이를 가리켜 게임이 아니라고,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플레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는 데모 플레이와 게임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플레이라는 상호작용의 이면에 존재하는, 플레이어의 개입 없는 객체들만의 상호작용을 플레이로 부르지 않는 것에 있다. 달리 말하면 이안 쳉의 ‘세계건설Worlding’ 개념은 게임 그 자체라기보다는 게임이라는 매체 형식의 이면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건설하는 방식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게임에서 비롯된, 각각의 객체들이 자신의 속성대로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며 맞물리는 일종의 프로그램화된 오토마타Automata가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플레이를 위한 전제로서의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으로부터 플레이어를 떼어냄으로써 비로소 게임을 구성하는 각각의 객체만으로 구성된 온전히 닫힌 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인간에 대한 상호작용을 위해 만들어졌던 객체들이 인간의 손을 떠나 스스로 동작하는 개미집으로 온전하게 독립할 수 있음이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카르마와 다르마, 전시와 애니메이션의 질문들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닫힌 계로서 각각의 작품은 진행의 결과에서 무한한 경우의 수를 갖는다. 어느 누구도 이 작품을 바라보면서 똑같은 전개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관심은 여기서 한 갈래를 더 뻗어 각각의 결과들이 구성해 온 경로들이 비교가 가능해지는 평행우주 속 시간을 향한다. 이른바 세계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상대성이론과 연관된 개념보다는 게임 ‘슈타인즈 게이트’에서 사용된 시간여행을 통해 분기되며 달라지는 미래에 대한 개념이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전시된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가 이를 드러낸다. 〈BOB 이후의 삶〉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는 개념인 ‘최적경로’는 BOB이라는 생체 결합형 인공지능을 통해 개인의 삶이 특정한 루트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삶의 경로를 가리킨다. 마치 내비게이션의 그것처럼, BOB은 자신과 하나가 된 인간의 삶과 행동을 통제하여 목표한 삶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루트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정작 이 인공지능을 만든 회사의 설립자인 Z는 무한한 삶의 경로에서 최적의 루트를 찾아내어 인간을 인도하는 BOB의 최적경로와 동시에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원의 시간 속을 무의미하게 유영하는 ‘신의 시간’을 거론한다. Z가 와불의 얼굴에 비춰진 프로젝트 맵핑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다분히 최적경로의 문제가 불교적인 모티프와 무관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최적경로는 불변하는 숙명으로서의 카르마로, 그 모든 숙명적 경로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선택으로 채워나가는 시간으로서의 최적경로 바깥은 다르마로 이어진다. 현대 디지털 기술의 극의極意라고 불릴 수 있을 인공지능을 통해 마침내 찾아낸 인간 삶의 최적경로는 한편으로는 인간해방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정해진 시간선을 따라가며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카르마로 기능한다. BOB에 의해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은 목표 달성에 있어 부인할 수 없는 최적경로이겠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삶이 아닌 것이 된다. 인공지능 BOB은 무한대의 인생경로 중 최적의 경로를 뽑아내 제시하지만, 삶의 경로가 애초에 수학 기반의 가치판단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 또한 동시에 드러난다. * 〈BOB 이후의 삶〉 은 수학적으로 계산가능한 최적경로를 따르는 삶과, 그 차원을 넘어서서 무위하게 시간 속을 유영하는 삶을 대비시킨다. 이는 스크립트 없는 전시작과 대본에 의해 기승전결로 달려나가는 애니메이션의 방법론적 대비이기도 하다. 〈BOB 이후의 삶〉은 그래서 다른 출품작과 함께 놓이며 그 질문을 전시 전체로 확장해 낸다. 각각의 작품이 구축한, 각각의 닫힌 계들 안에서 객체들이 무한히 상호작용하며 만들어가는 무량대수의 경로는 〈BOB 이후의 삶〉이 제시하는 질문과 만나며 하모니를 이룬다. 무한한 가짓수를 만들어내는 작품과 함께 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수많은 이야기 중 단 하나, 찰리스라는 소녀가 겪은 이야기 한 줄기를 최적경로로 뽑아낸 애니메이션 작품이 놓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이었다면 무언가 관객의 상호작용을 유도했을 법한 장치를 동원했으리라고 여겼을 진부함을 넘는 도발적인 태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들 속에 단 한줄기로 이어진 세계선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이 놓인 의미는 인류가 오랫동안 탐구해 왔지만 여전히 미답의 경지에 놓여있는 그 카르마와 다르마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접근경로에의 제시로 읽힌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

  • [인터뷰]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만들어내는 게임 문화: PUBG UX 유닛 한수지 실장,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

    < Back [인터뷰]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만들어내는 게임 문화: PUBG UX 유닛 한수지 실장,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 14 GG Vol. 23. 10. 10. 2005년 스타리그 듀얼 토너먼트 , 임요환과 문준희의 경기는 스타리그에 채팅을 금지시켰던 경기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 본진이 좁았던 포르테 맵에서 임요환이 몰래 멀티를 한 뒤 , “좁아 ㅠㅠ”라고 채팅을 쳐서 상대의 방심을 유도했던 것이다 . 이 경기는 당시 게임 문화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텍스트 채팅은 오랜 기간 우리의 게임 문화를 만들어 온 수단이자 , 커뮤니케이션 방식이었다 . 그러나 오늘날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 보이스 채팅이 생기고 , 다양한 방식의 전술적 소통 방식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 이런 변화는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가 게임의 재미와 플레이 방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 PUBG 의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과 UX 유닛 한수지 실장 을 만나고 왔다 . 특히나 텍스트 채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배틀그라운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담당하는 실무진들은 위와 같은 고민을 심도 깊게 하고 있었다 . 이경혁 편집장 :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한수지 실장 : 안녕하세요 . 저는 PUBG 스튜디오에서 배틀그라운드 인게임 , 아웃게임 두 공간에서의 유저 경험을 설계하는 조직을 이끌고 있는 한수지라고 합니다 . 이경혁 편집장 : 말씀하신 지점에서 인게임 , 아웃게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 한수지 실장 : 저희는 아웃게임이랑 인게임을 구분하고 있어요 .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공간을 저희는 인게임이라고 부르고 있고 , 로비나 상점 이런 것들이 있는 곳을 아웃 게임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요 . UX 유닛은 그런 공간을 책임지고 설계하고 , 구현하는 곳이에요 . 문휘준 팀장 : 네 . 저는 UX 유닛에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환경을 디자인하고 있는 문휘준 팀장입니다 . 이경혁 편집장 : 반갑습니다 . 그러면 저희가 그래픽을 하는 팀과 화면 설계를 하는 팀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 한수지 실장 : 네 . 크게는 UX 와 UI 로 팀이 나뉘어있고 , 그 팀들이 하나의 유닛으로 묶여있는 단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오늘은 저희가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영역들에 대해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데요 .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인게임과 아웃게임을 구분했을 때 , 아웃게임에서는 상대적으로 유저들의 소통이 좀 적은 편일까요 ? 한수지 실장 : 보이스 채팅 기준으로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요 . 하지만 로비에서도 텍스트 채팅이 있어서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고요 . 모르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 로비에서도 같이 이모트로 소통을 할 수 있어요 . 그래서 한 명이 춤을 추면 따라 춘다거나 박수를 치는 이모트를 통해서 상호작용을 할 수가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렇군요 . 배그를 즐겨 했는데도 그건 몰랐네요 . 이모트 이야기가 나왔으니 , 그 이야기를 좀 먼저 여쭤보고 싶은데 , 사실 저는 플레이를 하면서 돈 주고 샀을 때 가장 기뻤던 순간이 아이돌 댄스였거든요 . 그냥 혼자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따라서 출 수 있잖아요 . 이건 어떤 의도로 기획을 하셨을지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 문휘준 팀장 : 그 영역이 다른 회사랑 조금 다른 것 같아요 . 다른 게임은 팀원끼리만 인터랙션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 그런데 저희는 이모트를 구매하지 않았더라도 근처에 있는 누구나 바로 인터랙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서 , 경험을 좀 나눌 수 있게 하려 했던 점이 특이사항일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이모트로 이용자들이 상호 소통을 할 때 , 제작자의 의도와는 굉장히 다르게 쓰이는 경우들도 좀 있을까요 ? 예를 들어 상대를 모욕하는 데 쓰인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 문휘준 팀장 : 좀 민망하지만 , 슈팅 게임에서 티배깅 ( 죽은 상대 앞에서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 ) 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잖아요 ? ( 일동 웃음 ) 그래서 저희는 이모트나 의사소통 수단을 ‘이렇게 써주세요’하고 절대 제한하지는 않고요 . 다만 , 실제로 너무 도발성이 강한 자세들은 제작 과정에서 보류되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제작할 때 그런 고려가 들어가는군요 . 문휘준 팀장 : 네 . 그래도 게임의 재미 역시 중요하고 , 상대 팀이 죽었을 때 막 기뻐하는 것도 재미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 그 정도는 사람들끼리 그냥 웃으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어떻게 보면 그 적당한 선이라는 게 참 애매하잖아요 .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까지는 아닌지 내부에서 논의를 할 때 기준을 두기가 어렵진 않으세요 ? 문휘준 팀장 : 확실히 조금 모호하죠 . 그래서 가장 먼저 성적인 표현이나 너무 잔인한 살인 행위처럼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도를 벗어난 표현은 최대한 배제하고 , 거기서부터 ( 논의를 ) 시작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그러면 감정 표현을 만드실 때 , 여러 기준을 고려하면서 레퍼런스를 수집하는 것도 쉽진 않으시겠네요 . 문휘준 팀장 : 네 . 그리고 아까 아이돌 이야기를 하셨는데 , 사실 저작권이 굉장히 복잡해요 . 일반적으로 소속사에 전화해서 저작권료를 지불하면 될 거라고들 생각하시지만 , 실제로 들여다보면 춤 저작권은 이 회사에 있고 , 노래 저작권은 저 회사에 있고 , 가수에 대한 저작권은 또 다른 곳에 있는 식의 케이스가 많은 거죠 . 그래서 하나를 사오려면 여러 군데랑 협의를 해야 하는데 , 그 과정에서 엎어진 케이스도 굉장히 많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그렇군요 . 그럼 만들어진 결과물 중에서 제작자로서 뿌듯했던 것이 있을까요 ? 문휘준 팀장 : 제가 이모트를 많이 담당해서 할 말이 많은데요 . 이전에 ‘그랜절’의 아이디어를 기획팀에 전달드렸었거든요 . 그런데 ‘아이디어는 좋은데 너무 한국 한정 콘텐츠라서 이것이 적절할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 그래서 재차 설득을 할 때 , “요가 자세 중에서도 비슷한 자세가 있으니 , 한국은 ‘그랜절’로 하고 외국은 요가로 나가면 재밌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해서 , 저희 그랜절을 보시면 이모트 이름은 ‘최고의 예의’지만 , 요가랑 섞어놨어요 . 그렇게 만들었더니 호응도 굉장히 좋았고 , 유튜버들도 많이 좋아했어요 . * 배그 이모트 중 하나인, ‘최고의 예의’. 이후 다리를 벌려 내려오는 동작이 요가 동작과 흡사하다. 이경혁 편집장 : 그런 것을 만드시려면 사실 레퍼런스도 많이 보시고 , 스터디도 엄청나게 하셔야 하잖아요 ? 주로 뭐를 보세요 ? 문휘준 팀장 : 저희가 동작을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부서는 아니지만 , 그래도 옆에서 봤을 때 , 가장 요즘 핫한 댄스나 쇼츠 같은 것들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 한수지 실장 : 아무래도 쇼츠나 틱톡 같은 데서 유행하는 것들을 모션화 하는 것이 제일 인기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더라구요 . 이경혁 편집장 : 쇼츠 같은 경우는 굉장히 트렌드가 짧기 때문에 제작 기간의 압박 같은 것도 느끼실 것 같은데요 . 문휘준 팀장 : 그렇죠 . 그래서 이건 나가면 좋겠다 싶은 것들은 좀 타이트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제한은 없습니까 ? 배틀그라운드 같은 경우에는 신체가 결국 총 맞는 피격 부위다 보니까 이모트 동작이 실제 게임에 영향을 주게 되는 지점들에 대한 제한이요 . 문휘준 팀장 : 히트박스라 하잖아요 . 이게 완벽하게 인간의 신체처럼 돼 있지는 않거든요 . 그래서 예전에 포트나이트에서 문제가 됐던 영상이 막 허리를 양쪽을 흔들면서 총알을 피하는 영상이었거든요 . 그런 맥락에서 저희 내부에서도 미팅이 있었는데 , 그건 진짜 우연으로 겨우겨우 만들어낸 상황이고 , 설령 그걸 성공한다고 해도 게임의 재미 중 일부라고 결론을 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것들이 또 게임이 주는 재미가 될 수 있죠 . 다음으로는 이모트 외에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들에 대해서도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 초창기에는 3D 핑이 없었던 걸로 제가 기억을 하는데 , 어느 날부터 업데이트가 되었잖아요 ? 그런 기능을 만드시게 된 과정에서의 고민을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 한수지 실장 : 사실 ‘퀵 마커’라고 하는 3D 핑 같은 경우에는 ,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이루어지고 만들어진 기능인데요 . 그런데 아무래도 이 기능이 생기면 게임의 난이도에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에 , 처음에는 바로 적용해도 될까 ? 라는 측면에서 고민이 다들 컸죠 . 그런데 이제는 게임이 출시된 지 시간이 좀 지나서 , 기존 유저들도 많이 익숙해졌고 해서 , 이 기능이 들어가도 게임의 난이도에 많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 또 신규 유저들 같은 경우에는 게임의 방위나 ( 지도상에 찍는 ) 핑 같은 개념을 인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 그분들에 대한 허들을 낮추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도입된 이유도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비슷한 맥락에서 물건을 팀원에게 던져주는 기능도 언젠가 업데이트가 되었잖아요 ? 그것은 상호작용을 좀 더 늘리기 위함에서의 목적이셨는지 아니면 리얼리티에 대한 추구였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 기능 자체로는 보이스 채팅으로 ‘탄약을 떨어뜨려 줘’라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 요청하고 던져주는 재미를 일부러 넣으신 걸까요 ? 한수지 실장 : 사실 두 개 다죠 . 재미도 재미지만 , 저희 게임이 물건을 짚고 다시 자기한테 장착하는 과정이 다른 게임이랑 다르게 어렵잖아요 . 엄청 급박한 상황에서 둘 다 화면을 가려야 되고 . 그러느니 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바로 던지기로 전달해주자고 해서 전투에서 좀 유리하게끔 하는 것도 있고 , 실제랑 같게 하려고 하는 것도 있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렇군요 . 여러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적 요소들을 고민하고 계시네요 . 확실히 배그의 경우에는 난이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 그런 맥락에서 인게임 상황에 텍스트 채팅이 안 되게 하신 것도 특정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 한수지 실장 : 텍스트 채팅은 어느 게임이나 다 있는데 , 저희의 특수성 같은 경우에는 이제 긴급한 상황 속에서 긴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잖아요 ? 그래서 보이스 챗으로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첫 번째로 했었고 , 두 번째로는 저희가 엄청 다국어를 많이 지원을 하고 있어요 . 그렇다 보니까 언어가 다른 상황에서는 채팅기능을 지원해봤자 소통이 안 되잖아요 .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소통하게 할까 하다가 그러면 그냥 자주 쓰는 언어를 라디오 메시지로 만들어서 쓰게 하자 . ( 라는 판단이 있었어요 ) 그리고 라디오 메시지로 빠르게 소통하게 만들어서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자는 목적에서 어떻게 보면 텍스트 채팅을 제한한 것도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배그가 인게임에서 상대 팀하고 할 수 있는 상호작용은 사실 조금 더 제한적이잖아요 . 라디오 메시지 같은 것도 상대 팀에게는 가지 않고요 . 그렇게 디자인하신 이유 같은 것들도 있을까요 ? 문휘준 팀장 : 게임 초기에 기획되었던 기능이라 의도를 단언하긴 어렵지만 , 좀 더 전투나 팀원들에 대한 협업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지 않았을까 싶어요 . 그리고 어뷰징 요소도 있었을 것 같아요 . 솔로인데도 팀전처럼 하시는 분들도 예전에는 있었거든요 . 거기서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수단이 제공된다면 그것도 굉장히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거든요 . 이경혁 편집장 : 음성 채팅이 되면서 사실 저는 텍스트 채팅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 음성 채팅을 하려면 물리적인 인터페이스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 예전에 MMO RPG 초창기를 생각해보면 , 인터페이스가 들리기도 하고 , 안 들리고 하면 어떡하냐는 걱정이 많았었거든요 . 실제로 그런 어떤 민원들이나 이슈들이 좀 있었나요 ? 한수지 실장 : 저희가 지금 제공하는 보이스 솔루션 같은 경우에는 그런 문제는 잘 없기는 했어요 . 다만 , 이용자에 따라서 디스코드 같은 방식을 더 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 그래서 저희는 인게임 보이스는 제공을 하되 , 편한 솔루션이 따로 있다면 그것을 쓰셔도 상관이 없다는 취지로 양쪽 다 허용을 하고 있죠 . 이경혁 편집장 : 저도 사실 디스코드를 중심으로 게임을 하고 있고 , 특히 아는 사람끼리만 할 때에는 디스 코드가 훨씬 편한 것 같아요 . 다만 , 실제로 저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 모르는 사람과 함께 플레이를 할 때도 있을 건데 , 이럴 땐 이모트 같은 수단만으로는 배틀그라운드의 팀플레이를 정확히 할 수 없는 거잖아요 . 그래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고민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 문휘준 팀장 : 네 . 그래서 인터페이스 장치를 좀 더 보완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커버해 줄 수 있도록 계속 만들고 있고요 . 아까 라디오 메시지랑 또 연계되는 게 텍티컬 맵마커 (Tactical map marker: 핑의 종류를 구분하여 찍을 수 있는 전술 맵마커 ) 라고 , 이런 것도 라디오 메시지랑 연동해서 좀 더 연동성 있는 UX 환경을 제공하려고 하고 있어요 . 한수지 실장 : 웨이포인트 ( 맵에 경로를 표시하여 공유하는 기능 ) 도 유저분들이 많이 쓰시는데 , 그 장점은 그런 것 같아요 . 방향이라든가 화살표가 나오니까 언어가 꼭 같지 않아도 전략을 짜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희도 괜찮은 기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 유저들도 거의 필수적으로 쓰시고 있는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말씀을 들어보면 그게 되게 큰 것 같네요 . 기본적으로 게임 규칙 자체는 비언어니까 모두가 공용으로 쓸 수 있는데 , 팀 플레이를 하려면 언어가 필요하고 , 거기서부터는 서로 차이가 나오니까 그걸 맞춰주는 작업이 굉장히 두꺼울 수밖에 없겠네요 . 이경혁 편집장 : 조금 재밌는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 ,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에서 즐겁게 하려는 목표가 있고 , 승리의 목표도 있을 건데 , 이 둘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총을 잘 쏘는 것과 팀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것의 비중을 본다면 뭐가 더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 문휘준 팀장 : 옛날에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 왜냐하면 다들 잘하지 못했고 , 맵도 크고 하니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토론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그런데 이제 저희가 서비스를 오래 하면서 , 맵도 익숙해지고 . 어느 정도의 황금 루트 같은 것들이 공유되면서 요즘에는 그냥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도 같아요 . 다만 , 모든 총기 게임이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유저분들을 헷갈리게 하는 요소를 넣으려고 하거든요 . 예를 들어 맵의 위치를 조금씩 바꾼다든가 , 너무 유리한 고지를 없애버린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 저희도 그런 고민을 하면서 총기 밸런싱을 하기도 하고 , 유저들이 너무 고이지 않게 장치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지점은 확실히 배틀그라운드가 다른 게임에 비해서는 덜 보이는 것 같아요 . 문휘준 팀장 : 왜냐하면 저희는 우연성이 굉장히 큰 장르여서요 . CS:GO( 카운터 스트라이크 : 글로벌 오펜시브 ) 같은 거 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 유명한 철문 있잖아요 . 그냥 빼꼼하면 죽는 거거든요 . ( 일동 웃음 ) 저희는 우연성이 중요하다 보니까 그 정도는 아니고 , 실제로 유명 유튜버들의 영상을 봐도 낙하산 타고 내려오자마자 죽는 경우도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배그는 그 재미죠 . ( 웃음 ) 다른 게임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질문인데 , 우리 게임에 뭘 넣을지 고민하다 보면 다른 게임의 케이스를 공부하셔야 하잖아요 ? 실무자의 입장에서 인상 깊었던 커뮤니케이션 인터페이스가 있으실까요 ? 문휘준 팀장 : 제가 느끼기에 가장 멋있었던 사례를 이야기해드리자면 , 데이즈 (DayZ) 같은 경우에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오픈 월드 장르를 표방하는 게임인데 , 메타버스적인 그런 요소를 하고 싶었나 봐요 . 그래서 보이스 채팅도 게임의 리얼한 월드의 일부라고 생각을 하고 접근을 했고 , 그런 걸 요즘은 전문용어로 프록시미티 챗 (Proximity chat: 근접 채팅 ) 이라고 하더라고요 . 그런 맥락에서 이 게임은 근방 2m 안에 있는 사람만 직접적인 보이스 채팅을 할 수 있다든가 , 멀리 있는 사람한테 말을 건네고 싶으면 확성기를 구해서 말을 한다든가 , 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헬멧을 쓰고 있으면 목소리가 뭉개져서 나간다든가 하는 설정이 굉장히 리얼리티함을 더해서 멋있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지점에서 배그라는 게임이 갖고 있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인게임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에 대한 고민이 또 달라지실 것 같아요 . 그렇다고 팀원이랑 소통을 막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 , 반대로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MMORPG 처럼 전체 외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어렵잖아요 ? 이 공간은 리얼한 게임 공간이어야 하기에 , 어떤 커뮤니케이션은 제한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실 것 같은데 , 관련해서는 어떤 고민들이 있으셨어요 ? 한수지 실장 : 그런 지점에서는 ‘시작 섬’ 같은 곳이 저희의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아요 . 저희는 게임에 접속하면 그냥 바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 시작 섬에 일단 모여 있다가 비행기를 타고 , 그 다음에 낙하산으로 내려서 각자도생을 하는데 , 시작 섬 같은 경우에는 비행기 타기 전이니까 예전에는 저희가 보이스 채팅을 다 열어놨어요 . 그때는 본격적으로 배틀 로얄을 하기 전에 스몰 토크를 하면서 긴장을 풀 수 있었는데 , 이게 의도랑은 다르게 핵 광고를 한다거나 욕을 무차별적으로 한다거나 하는 행위들 때문에 유저분들의 피로감이 높아져서 그걸 없애게 되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래서 시작 섬이 고요해진 것이군요 . 한수지 실장 : 대신에 이제 재미를 주려고 , 축구공을 넣는다든지 , 비켄디에 가면 눈덩이를 던질 수 있게 한다든지 , 요새는 차 스킨을 내고 있어서 맥라렌이나 애스턴마틴 차를 타게 해본다든지 그런 식으로 좀 긴장도 풀고 스쿼드 원의 옷 스킨을 입어본다던가 할 수 있는 인터랙션 요소들을 넣고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어떻게 보면 시작 섬의 1 분이라는 시간이 이 게임의 가장 평화로운 순간일 텐데 , 그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제한하거나 제공하면서 게임의 분위기를 만드시는 지점이 있으신 거군요 . 한수지 실장 : 한 번 게임을 시작하면 한 40 분 정도는 긴장을 하고 , 마우스를 잡고 있어야 하니까 , 그전에 좀 릴렉스하면서 팀원들이랑 지도를 보며 , 어디서 내릴지 , 동선은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구요 . 그때까지만이라도 마음 놓고 편하게 이야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는 거구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맥라렌이 나오면서 게임 섬 분위기가 조금 바뀐 지점도 있거든요 . 이전에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친구들이랑 같이 계획하고 , 평화로웠는데 , 맥라렌이 나오는 순간부터 워낙 시끄럽다보니까 오히려 전투 의지를 불태우는 그런 변화도 있었는데요 . ( 웃음 ) 그런 지점도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의도하신 것인가요 ? 문휘준 팀장 : 사실 그건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이라기보단 상품 쪽에서 담당한 거예요 . 부분 유료화로 저희가 전환을 하면서 아무래도 유료 상품에 대한 홍보의 차원이 들어간 것이기도 하고요 . * 시작점에서 팀원들이 함께 군무를 추고, 다른 사람들이 엄지를 날리며 구경하고 있는 모습. 2초 뒤에 이들은 서로 총을 겨눈다. 이경혁 편집장 : 다음으로는 게임 안에서의 소통을 좀 여쭤보고 싶은데 , 실제 게임에 들어갔을 때의 보이스 채팅을 보면 사람들이 반드시 게임에 필요한 이야기만 하지는 않더라고요 .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워낙 친한 사람들끼리 하다 보니까 , 애 키우는 이야기나 일상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 문휘준 팀장 : 맞아요 . 유튜브 콘텐츠가 흥하는 게 , 다른 게임의 경우 너무 빠르니까 , 말을 하고 싶어도 눈만 매섭고 클릭 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 저희는 진짜 5 페이지 정도 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뭘 먹었는지 등등 가벼운 이야기들을 하면서 유저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있고 , 지루할 때쯤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때문에 , 그런 호흡들도 유튜브 콘텐츠들과 잘 맞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 실제 유저들도 초반에는 그냥 친구들이랑 스몰 토크하면서 놀다가 , 후반에 집중해서 싸우고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배그라는 게임 자체의 텐션이 선형으로 올라가기보다는 특정 텀이 있는 것 같아요 . 낙하산 떨어져서 잠깐 되게 긴장했다가 소강되면 흩어져서 서로 안 보이고 . 그런 사이사이에 게임의 텐션이 떨어지는 순간을 어떻게 보면 커뮤니케이션을 좀 메운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렇게 게임 밖으로 빠져 있지 않은데 , 텐션은 내려와 있는 상황이 배그 말고 다른 게임에서도 보신 적이 있으세요 ? 한수지 실장 : 마비노기가 좀 비슷한 것 같아요 . 수다노기 시절에 던젼 들어가서 친구들이랑 모닥불 피워놓고 놀고 . 문휘준 팀장 : 그런 케이스도 있었던 것 같네요 . WoW 시절에 팀보이스로 소통을 하는데 , 당시에는 커뮤니티에서 같이 게임하실 분을 소집했었어요 . 그러면 유명하신 분들이 있어요 . 유튜브가 없던 시절인데 , 그분이랑 게임을 하면 거의 유튜브 하나 찍는 거예요 . 그분이 와서 계속 떠들어요 . 자기가 살아왔던 썰을 풀고 , 웃겼던 썰 풀고 하니까 게임하는데 , 라디오 들으면서 게임하는 재미가 있었대요 . 이경혁 편집장 : 일종의 엠비언트이면서 게임하고 붙어있지만 또 떨어져 있는 순간들 . 그런 게 오디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네요 . 운전하면서 라디오 듣듯이 게임하면서 반드시 게임에 관련된 커뮤니케이션만 있는 게 아닌 커뮤니케이션 . 그런 게 배그의 보이스 채팅이 아닌가 싶어요 . 그런데 아무래도 다른 게임보다 오디오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배그에서 오디오 커뮤니케이션을 악용하는 사례들도 있을까요 ? 문휘준 팀장 : 저희가 사례나 지표 같은 걸 보는 부서는 아니지만 , 그런 사례가 나타났을 때 어떤 식으로 UX/UI 측면으로 커버할 수 있을까를 기획팀과 같이 고민하는 역할이거든요 . 그래서 비슷한 사례로는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싫어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었어요 .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막을 수 있는 옵션도 제공을 하고 있어요 . 크게는 두 가지가 있는데 , 하나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을거라고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요 . 다만 , 다른 팀원들이 그런 의사를 알 수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아예 아이콘으로 유저들한테 보여줘요 . 마이크 차단 버튼이 떠서 ‘나는 소통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이렇게 명확하게 알려주는 그런 기능을 넣었어요 . 그렇게 해도 핑을 찍거나 포인트를 잡는 것으로 소통을 하고 있고요 . 두 번째로 라디오 메시지 같은 경우에는 불필요한 데이터를 악용할 수 있다는 걸 내부 테스트로 사전에 확보를 했거든요 . 그것도 굉장히 게임이 진행이 안 좋아요 . 게임 프레임에 영향을 줄 수 있고요 . 예전에 오버워치에도 그런 핵이 있었어요 . 불필요한 데이터를 날려서 사람들을 굳어지게 하고 , 나는 더 유리한 위치로 가는 핵도 있었거든요 . 저희는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양의 불필요한 매크로 채팅이 올라오면 차단하는 기능이 있고 아예 꺼버리는 옵션도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트래픽을 일으켜서 그걸 핵으로도 쓰는군요 . 정말 연구들을 정말 많이 하네요 . 한수지 실장 : 상상력이 뛰어나죠 . ( 웃음 ) 이경혁 편집장 : 다른 수단들도 좀 그렇게 악용되는 케이스가 있나요 ? 예를 들어 맵에 포인트 찍는 이런 기능을 갖고 악용을 한다거나 . 문휘준 팀장 : 웨이포인트도 내부에서 테스트를 할 때 처음에 의견을 내신 분은 좀 자유롭게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었거든요 . 그런데 테스트를 해보니까 그걸로 욕을 쓴다거가 ,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거나 , 무의미하게 화면을 꽉 채운다든가 그런 행동이 가능한 걸 감지를 했고 , 그래서 서비스할 때는 개수를 제한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결국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니까 , 예측할 수 없는 사용 방안이 나올 것 같은데 ,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운영하실 때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 문휘준 팀장 : 그렇죠 . 회사마다 방침이나 의지가 틀릴 건데 저희 회사는 그런 거를 좀 명확하게 제재하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있기 때문에 , 아까 말씀드린 기능들이나 보안 장치들을 사전에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배그라는 게임을 이제 중심으로 좀 얘기를 해보다 보니 , 텍스트 채팅이 없다라는 특이점이 굉장히 재밌는데요 . 두 분 다 텍스트 채팅하는 게임의 시대를 겪어보셨을 텐데 , 지금 담당하고 있는 게임에서 텍스트 채팅이 빠졌다는 것에서 느끼는 좀 차이점이 있으실까요 ? 문휘준 팀장 : 제가 느끼기에는 이제 예전 게임에서는 채팅으로 정말 재밌게 많이 놀았어요 . 재밌는 얘기도 많이 하고 , 인간미 넘쳤던 사례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 그런데 거꾸로 다짜고짜 욕을 한다든가 , 부적절한 얘기도 굉장히 많았었던 걸로 기억해요 . 그런데 그때랑 지금이랑 좀 다른 것은 그때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고 , 부적절한 상황들도 ‘그냥 게임이니까 그런 거야’하고 넘어가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 이제는 사회가 발전되었고 , 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행해지는 행위도 법적으로도 제재가 되고 인정이 되는 세상까지 왔잖아요 . 그래서 온라인 세상에서도 그런 행위를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해 유저들도 자각을 하게 되고 , 게임사도 방지책을 준비하고 운영해야 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지점에서 클랜 서비스 같은 걸 업데이트 하신 것도 방지책의 일환일까요 ? 문휘준 팀장 : 네 . 있을 것 같아요 . 왜냐하면 좋은 클랜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이 들어갈 거고 , 여기서 나쁜 짓을 하면 쫓겨날 거기 때문에 서로 젠틀하게 게임을 하는 걸 유도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도 좀 드는데 , 회사 입장에서는 결국 몇몇 이용자들의 무분별한 행위를 막기 위해 뭔가를 만드는 것도 비용이잖아요 .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가 아닌가요 ? 문휘준 팀장 : 그쵸 . 그거에 들어가는 개발 비용도 있을 거고 , 유지 비용이 제일 클 수 있죠 . 한수지 실장 : 텍스트 채팅만 있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저희가 다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좀 많기 때문에 더 복잡도가 있는 거는 맞는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느끼는 베틀그라운드의 재미는 50% 이상이 커뮤니케이션이었거든요 . 제작하시는 쪽에서도 그런걸 기획하시는 거죠 ? 한수지 실장 : 네 . 소통도 있고 , 이제 경치가 좋다보니 구경하면서 맵을 탐험하는 재미도 저희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경험 중 하나예요 . 이경혁 편집장 : 요즘에는 AI 도 많이 늘었잖아요 ? 어떻게 보면 한 게임에 들어올 수 있는 실제 사람 플레이어의 숫자는 예전보다 좀 줄었을 수 있는데 , 그러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확실히 빈도가 좀 떨어지게 되는 걸까요 ? 한수지 실장 : 그런데 캐주얼 매치라고 해서 12 명의 일반유저와 88 명의 AI 가 섞여서 싸울 수 있는 맵에서는 오히려 더 좋아하시는 것 같기는 해요 . 왜냐하면 나랑 같이 하는 친구들이랑 계속 얘기를 하면서 이제 교전하는 재미도 같이 느낄 수 있으니까 . 난이도도 조금 낮기도 하고 . 그래서 그걸 두 개를 다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 캐주얼 매치에서 그 재미를 많이 찾으시는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 두 분 다 텍스트 채팅 시절을 다 경험해 보셨잖아요 . 세이클럽이나 하늘사랑 (skylove) 같은 곳에서 텍스트 채팅의 설레임을 느껴본 세대이실 것 같은데 , 어떻게 보면 텍스트 채팅이 점점 없어지고 있잖아요 . 배틀그라운드가 되게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기도 하고요 . 그런 지점에서 텍스트 채팅 시절을 좀 기억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 문휘준 팀장 : 저의 경우에 , 예전에는 그런 게 굉장히 신기했고 , 신문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만 한정되어 소통했던 분위기였는데 , 이제는 온라인 채팅의 영역이 굉장히 커졌잖아요 . 지금은 채팅 공간이 너무 당연한 공간이고 , 좋은 글도 써주는 사람도 있지만 나쁜 글도 굉장히 많고 , 그런 지점에서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 그래서 이제는 다음이라든가 네이버에서도 일부는 아예 댓글을 막는 솔루션도 제공을 하잖아요 . 그런 차원까지도 왔다고 생각해요 . 게임도 그렇고 . 즐기러 왔는데 욕을 들으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잖아요 . 그런 것들을 피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변화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어렵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 혹시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 문휘준 팀장 : 제일 중요한 게 있습니다 . 저희 배그를 많이 사랑해주세요 . ( 웃음 ) 한수지 실장 : 그리고 저희가 이번 12 월에 굉장한 업데이트와 콘텐츠들이 준비되어있으니 많이 즐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 웃음 ) Tags: PUBG, 배틀그라운드, 크래프톤, 의사소통, 감정표현, 이모티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

  • 아케이드가 할 수 있는 미래의 역할

    < Back 아케이드가 할 수 있는 미래의 역할 04 GG Vol. 22. 2. 10.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케이드 게임장은 1980~1990년대의 많은 게이머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다. 점차 가정용 게임기와 PC가 보급되며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어가는 환경에서도, 집에서 절대 즐길 수 없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게임을 동전 하나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의미를 넘어 게임 환경의 선두를 달린다는 이미지마저 주는 곳임을 뜻했고, 실제 게임 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분야가 아케이드 게임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아케이드 게임장은 매리트가 많이 사라져, 한국에서는 그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시기이다. 가정용 게임기와 PC의 그래픽 성능이 더욱 좋을 정도로 더 이상 시각적으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온라인 환경이 발전한 결과 집에서 편하게 게이머들이 전 세계 상대들과 마음껏 경쟁을 할 수 있는 것도 크다. 오히려 실력으로만 놓고 보면 전 세계와 경쟁을 즐길 수 있는 지금이 경험적 측면에서 훨씬 풍부한 것도 사실이다. 아케이드에서 형성되었던 게이머들의 커뮤니티 역시 개인 SNS로 얼마든지 전 세계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지금은 발걸음을 옮길 만한 매리트로 이어지지 않는다. 더해 아케이드는 가장 저렴하게 게임을 즐길 방법이었으나, 지금은 기본 무료 게임들과 모바일 게임의 보급으로 고유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으며,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으로 인해 아케이드 게임을 돈을 내고 즐기는 것이 아깝다는 그릇된 인식조차 생긴 상황이다. 결국 아케이드 게임장은 살아남기 위해 재미보다 감성을 공략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코인노래방과 인형 뽑기를 위주로, 여전히 집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체감형 게임 위주로 환경을 세팅하며, 스틱과 버튼으로 조작하는 게임은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인기 레트로 게임들로 편성하였다. 사실 2000년 이후 아케이드 게임 산업이 크게 줄어 신작 게임이 나오는 일이 드물어졌기 때문에, 이처럼 레트로 게임들로 꾸민 것은 그나마 소비자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이면서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인구가 훨씬 많고, 아케이드 게임 산업이 발달했던 미국이나 일본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미 미국의 아케이드 게임장은 테마파크나 레저시절에 같이 편승하여 체감형 게임 위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가장 게임 시장에서 아케이드의 영향력이 강했던 일본 역시 상징과 같았던 유명 게임장들이 연달아 문을 닫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인구의 규모가 커 여전히 새로운 게임들이 조금씩이나마 출시되고 있지만,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팬데믹 상황을 이야기하기가 민망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아케이드 게임장은 오랜 기간 매리트를 잃고 서서히 규모가 줄어들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 ‘동네 오락실’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지역에 오락실이 있다는 사실조차 놀라는 시대가 되었다. 아케이드 게임장의 위기에 관련 회사들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5년 전부터 도입된 VR기기이다. 아케이드가 주는 매력 중 하나가 집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새로운 체험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노린 발상이다.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어떻게든 아케이드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겠다는 이 시도는 VR 산업이 예상보다 커지지 못하면서 소프트웨어의 부족과 기술 정체, 팬데믹 상황까지 겹쳐 현재까지 유의미한 결과를 이루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더해 새로운 시도가 연달아 빠른 속도로 이어지다 보니 업계의 시도만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해, VR 테마파크를 건설하는 데 있어 법률 관련 문제가 미흡했거나, 아케이드 업체 입장에서 체감 게임이 주가 되는 이상 금형 비용 지원이 중요한데 정부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비를 기준으로 산업 육성 차원에서 지원하는 부분 등 산업 발전을 위해 손발을 맞추는 것도 버거운 모양새였다. 설상가상으로 비디오 게임 소매업체도 디지털 게임 구매의 가속화로 수익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이 흐름이 아케이드 게임과 전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게임을 위해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이유 자체가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케이드는 미래의 역할을 진지하게 파악해야 할 때가 왔다. 새로운 시대는 피할 수 없고, 아케이드는 결국 변해야 한다. 비디오 게임 소매업체의 경우,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 속에 “사람들이 매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공간”에 대한 실험을 이미 전 세계에서 2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 같은 실험에서 가장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곳은 미국 게임스탑의 컨셉 스토어이다. 협동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대형 TV와 소파, TRPG로 대표되는 테이블 게임, 함께 게임을 즐기기 위해 앉을 수 있는 12~36개의 게임 부스, 레트로 코너, 수집품 전시장 등의 코너를 준비했으며, TRPG의 경우 큰 히트를 기록해 일부 매장은 프리랜서 던전 마스터를 고용하기도 했다. 구매하기 전 즐기는 것을 넘어, 같은 게임이라도 이 공간에서 즐긴다는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PC방 서비스에 복합 게임 공간이 결합한 상황인 게임스탑의 실험 목적은 “게임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것”도 있으며, 게임스탑은 여전히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는 상황이지만 현재까지 유의미한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 같은 복합 오프라인 공간은 한국도 몇 곳이 존재하며, 모두 나름의 생존전략을 찾아 오프라인 및 온라인 이벤트로 수년 이상 활발하게 공간을 가동하고 있다. 2022년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실제 생활에서 게임들과 게임을 즐기기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결과를 끌어낸 것이다. *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있는 게임스탑의 컨셉 스토어. 이 같은 사례로 미루어 볼 때, 결국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커뮤니티 형성이고, 아케이드는 여전히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형성은, 대상의 정보를 온라인보다 훨씬 많이 빠르게 습득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낯익은 얼굴이 밸런타인데이에 나와 같은 오락실에 나타났을 때 동질감을 느끼는 망상부터, 상대가 처한 환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 수 있기에, 특유의 커뮤니티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게임에 있어 인성 역시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e스포츠 문화에 아케이드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킬러 콘텐츠와 오프라인 커뮤니티 특유의 예의 있는 교류가 합쳐진다면, 팬데믹이 지나 다시 한번 아케이드 게임 공간은 다시 사람들이 매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될 것이라 믿는다. * 디시디아 파이널 판타지 아케이드는 세 명이 팀을 이루어 다른 팀과 싸우는 게임으로, 낯선 사람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팀을 이루는 순간,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유대감이 생겨난다. 따라서 현재 가장 큰 숙제는 커뮤니티를 이끌어갈 만한 아케이드만의 경쟁력 높은 콘텐츠이다. 소속 커뮤니티가 뭉쳐 지역 최강 → 국내 최강 → 세계 최강으로 향한다는 흐름은 2022년의 게임 업계에서 아케이드를 떠나 게임 커뮤니티의 단합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의 아케이드는 네트워크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 실제 자신의 세계 랭킹을 확인하는 것이 한국도 가능한 시대이고, 점포끼리 대전도 가능하다. 안타까운 것은 콘솔 시장을 이끄는 소프트 메이커들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이끄는 구성이기도 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이 같은 인프라를 위해 달려들 기술력과 자본들 있는 아케이드 소프트 메이커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체험을 위해 구글 코리아가 기획한 게임 프로젝트인 구글 플레이 오락실 행사 역시, 애초 구글이 기획을 한 행사였기에 국내 게임사들의 다양한 모바일 게임을 전시하며 오락실이라는 명칭과 달리 유사 게임쇼 형식에 머무는 결과로 그쳤다. 90년대 출간된 만화 중 게이머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브레이크 에이지’라는 만화가 있다. 작가가 미국의 아케이드 게임인 배틀 테크를 본 뒤 이와 연관된 미래를 상상하며 그린 이 만화는, 제한된 리소스 안에서 자신이 로봇을 자유롭게 커스텀 할 수 있는 통신대전형 체감 게임인 ‘데인저 플래닛(Danger Planet)’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출간 이후 버추어 온, 아머드 코어 등 조작이나 개념이 비슷한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드디어 데인저 플래닛 같은 게임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가’라는 말이 따라다닐 정도의 인기를 얻었고, 결국 2010년 중반에 재판이 출간하게 되었다. 실제 이 만화로 인해 게임 업계에 뛰어든 사람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이 만화에 열광한 이유는, 게임의 개념이나 등장인물들의 매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다.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이 주는 박력이 상상됨과 더불어 남녀노소가 게임을 통해 건전한 교류를 하는 따뜻한 모습과, 지금의 NFT 개념과 비슷하게 자신이 만든 커스텀 기체를 판매하고 쉽게 구할 수 없는 부품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 및 실력만 있다면 개발사와 플레이어 모두 수익을 낼 수도 있는 건설적인 환경이 게이머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게임이 30년 전에는 SF에 그쳤을지 모르나, 현재의 기술로 만화 내용의 구현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현재의 아케이드 산업은 코인 노래방, 인형 뽑기, 체감형 게임으로 유지되는 상황이며, 시장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홀로그램 등 새로운 기술을 체감할 수 있는 최첨단 체감형 게임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지만,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이다. 다행인 것은 이 문제가 실제 전 세계의 대형 아케이드 게임 제작사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며, 올해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 차례차례 등장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아케이드 산업을 살리겠다는 개발사들의 시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상, 아케이드는 향후 다시 한번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게이머들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저 업계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열정이 꺾일 정도로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IGN코리아 대표) 이동헌 1999년 월간 게임라인을 시작으로 게임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기간을 게임 개발사에서 보낸 뒤, 게임 제작자보다 글로서 게임 문화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2018년부터 IGN Korea를 운영하고 있다. ​ ​

  •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 Back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07 GG Vol. 22. 8. 10.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이 ‘이야기 구조’와 ‘플레이 구조’의 대립 관계는 초기 게임학 연구의 내러톨로지와 루돌로지의 구분에서 유래하지만, ‘루돌로지스트에 속한 쪽’의 주역이었던 에스펜 올셋(Espen Aarseth, 2014)이 회상한 바에 의하면 당시 ‘내러톨로지스트’들이 게임에 서사학을 부적절하게 적용한 것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루돌로지스트’라는 자리가 주어졌을 뿐이었다. 덧붙여 그는 이 루돌로지스트들은 현재 모두 게임에 대해 서사학 이론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밝히며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 대조의 오해를 지적한다. 이렇듯 게임 연구 방법론의 이원화는 다소 인위적인 구분에 기인하지만, 주류 비디오 게임(특히 대량의 자본이 투입된 소위 ‘AAA 게임’)의 방향성이 발전된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스펙타클한 장면 연출을 위시하여 기존 영화적·문학적 서사를 게임 환경에서 재현하는 데 힘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도 2년 전 논쟁적이었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현대의 게임들은 이러한 단절을 의식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절충하는 방식을 써오면서, ‘영화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플레이 같은 영화’를 보는 것 사이에서 전통적 서사 구조에 대해 여전히 양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인성, 2020). 여기선 이런 배경에서 대두된 몰입환경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원론적인 관점에서 기존 논의를 되짚어가며 디지털 게임에 대한 이해를 재고해보고자 한다. 이야기로 환원하기 단지 산만하고 무의미한 서술이 아니라 표현력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선 그 구성요소를 온전히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바깥의 행위자, 즉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환경에서 이를 행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는 이야기의 의미 구조하에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변수이고, 이야기의 청자가 단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수용할 때와 달리 이들은 이야기의 과정과 내용 자체에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 플레이어의 존재가 게임이 기존의 수용적인 예술 매체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게 한다. 게임은 그 안에 영상이든 음악이든 텍스트든 다른 예술 형식을 적극적으로 담아낼 수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을 모방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데이터로써 포함할 뿐이다. 예스퍼 율(Jesper Juul, 2001)의 지적처럼 내러티브의 시간과 이야기되는 시간 간에는 시간적 거리가 존재하는 반면, 상호작용은 항상 현재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서술과 상호작용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때문에 이야기로서 서술되기 위해선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분리되고 그 영향력 바깥에 있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게임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의 입력이 허용되지 않는 컷신 속에서나, 시간적·공간적으로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해왔다. 이들은 그 자체로 게임 플레이를 형성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맥락을 제시하면서 현재 나의 행동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 〈오브라 딘 호의 귀환〉에서 플레이어는 특수한 시계를 이용하여 과거의 한 시점으로 이동하지만 단지 관찰하고 정황을 추측하는 해석적인 접근만이 가능하다. 한편 비디오 게임이 스포츠나 보드게임 등과 달리 내러티브 요소를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게 가능한 것은 디지털 매체로서 가지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과 케이티 세일런(Katie Salen)의 저서 〈Rules of Play〉에선 디지털 게임의 특징 중 하나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제시한다. 보드게임을 할 때는 이해한 룰에 따라 말을 손으로 움직이고 상호작용 결과를 직접 계산해야 했던 과정을 디지털 게임상에선 구현된 AI,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 그래픽 엔진 등의 모든 자동화된 절차로 대신할 수 있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비-디지털 게임에서 손수 수행하기엔 너무 복잡한 수준의 상호작용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로부터 단지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는 것 이상으로 디지털 게임은 가상의 공간과 캐릭터를 구체화하여 동적인 허구 세계를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플레이어의 존재는 이렇게 시스템이 자동화됨에 따라 축소된다기보다는 각 게임의 설정에 따라 그 역할이 바뀔 뿐이다. 최근 모바일 시장에서 지배적인 ‘방치형 게임’이라 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을 재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화를 소비하고 캐릭터나 아이템의 조합을 적절하게 구성하는 식의 운영을 요구하며 다른 조건과 방식의 플레이를 제공하고 있다. 1)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는 이러한 자동화된 구성요소 사이에서 입력을 요구받고 자동적인 절차를 거쳐 출력을 되돌려 받는다. 이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로 새로운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이에 다시 대응하는 과정이 연속된다. 게임 플레이를 이렇게 단순화했을 때 이 ‘모델’로부터 플레이어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 과정은 게임을 하는 동안 반복되지만, 플레이어가 스토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모든 시간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 구조 안에서 (상정된 것이든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것이든) ‘이상적인 시퀀스’를 그려낼 때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건은 게임에서 항상 일어나지만, 이야기는 이를 사후적으로 의미화하고 재조합할 때만 존재한다. 따라서 게임 내부에 고정된 이야기를 조합하여 연속된 하나로 이은 것이 그 게임의 스토리라는 것도 지나치게 좁은 해석이고, 반대로 게임 플레이 전체를 두고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던가 ‘각본 없는 드라마’ 혹은 ‘플레이어 스토리’나 ‘창발적 내러티브’라고 이르는 것 2) 도 가능성을 두고 말하는 비유일 뿐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 내러티브인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로 제시될 수 있는 것’에 가깝다. 3) 시스템으로 환원하기 한편으로 게임연구 초기엔 게임에 대한 텍스트적 해석에 반대하고 (‘학문적 식민지화’를 경계하며) 게임 매체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게임 내 기존 이론으로 해석하기 쉬운 요소들(텍스트, 이미지, 내러티브 등)이 도외시되기도 했다. 올셋(2004)은 한 에세이에서 체스 말이 어떤 모양을 가지든 체스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라라 크로프트의 외모는 몸이 다르게 보인다고 다른 식으로 플레이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이런 논지는 현재까지 몇몇 비평과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지속되어, 이들은 ‘진정한 게임’을 찾기 위해 ‘가장 게임다운 것’ 혹은 모호하기 그지없는 ‘게임성’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항상 룰과 상호작용을 발견하고, 거기에 더해진 스토리와 이미지, 음악은 부차적이고 메커니즘을 보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상부 구조인 이야기로 환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위 요소로 환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호모 루덴스〉에서 하위징아(Huizinga, 1949/2010)는 놀이가 ‘외양의 실현’으로서 상상력을 질서화하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디지털 게임이 놀이의 시뮬레이션적 본질을 가지고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통해 허구세계를 다른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모방 행위’라는 의미를 고려했을 때, 게임이 그려내는 픽션은 단지 뼈대인 룰을 이해하기 위해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재현하는 데 있어 생생함을 더하고 그 일부로서 참여하기 위해 질서가 부여된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율(Juul, 2005)이 설명한 것처럼 픽션과 룰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규칙에 묘사 대상의 성질이 개입되고 또 반대로 구조가 표현 방식을 지정하는 식으로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경쟁하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이다. 또한 디지털 게임은 시스템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맥락에 의해 경험하는 하나의 과정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 앞서 기계적 관점에서 단순화시킨 디지털 게임의 플레이 과정을 돌이켜 봤을 때, 룰을 먼저 이해하고 진행하는 다른 놀이 형식과 달리 디지털 게임에서 프로그램이 절차를 처리하는 과정은 숨겨진다. 플레이어는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출력된 것만을 감각할 수 있기에 작동 방식을 직접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그 기능을 알게 된다. 4) 일반적으로 가이드북이나 게임 내의 튜토리얼을 통해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메커니즘을 숙지할 순 있지만, 게임 시스템을 완전히 알고 행동할 수는 없다. 다니엘 벨라(Daniel Vella, 2015)는 이런 성질 때문에 게임의 본질로서 시스템에 대한 탐구는, 시스템이 의미하는 방식을 주장하기 위해선 전체 시스템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현상을 경험하고 이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는 대신 오히려 의도적으로 작동방식을 숨기고 플레이하면서 발견하고 추론하도록 한다.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는 행위도 근본적으로 이런 ‘미스터리’의 존재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폴 마틴(Paul Martin, 2011)은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의 풍경이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인 전체를 그리면서 ‘게임적 숭고’(Ludic sublime)를 제시한다고 하였다. *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오픈월드의 풍경에 외부는 없다. “세계는 눈이 볼 수 있는 데까지 뻗어나간다.”(Martin, 2011)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숭고함은 약화된다. 게임에 익숙해짐에 따라 시스템을 내면화시키고 전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상을 그릴 수 있게 되면, 점차 게임의 세계는 가능성의 공간에서 질서정연한 우주로 변화하면서 이에 따라 플레이도 “좌절과 발견 사이의 팽팽한 기브앤테이크에서 생산적인 놀이를 위한 일상화된 운동”에 가까워진다(Welsh, 2020). 그럼에도 벨라(Vella, 2015)는 게임에 웬만큼 숙련된 상태라 하더라도 여전히 새로움을 발견할 여지는 있으며 5) , ‘블랙박스’라는 특성상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 불가능하다는 성질이 게임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미지와 몰입 서술한 대로 플레이어는 시스템에 직접 접근하는 대신 이미지, 인터페이스를 통해 메커니즘을 해석하며 이를 통해 상호작용한다. 디지털 게임의 이미지는 단지 표면적인 기호가 아니라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되고, 지표로서 룰과 상호작용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현재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는 3D 그래픽 엔진의 사실적 재현 수준은, 게이머들이 이런 정교한 그래픽으로 그려진 신작 오픈월드 게임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특히 ‘자유도’에 대해)을 가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외적 사실성만큼의 실제적인 시스템을 구현하는 건 현실의 물리법칙에 점근하는 수준의 정교함이 요구되는 일이기에, 게임들은 재현의 한계에 도전하는 대신 플레이에 적합한 방식으로 추상화되고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상호작용에 제한을 두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제약으로서 룰’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시화되면서, 게임 이미지는 그림과 액자의 관계와 같은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이 미디어의 존재를 수시로 각성시키기 때문에 시각적 리얼리즘이 그리는 환영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게 한다. 영화와 같은 스펙타클함을 추구하는 게임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숨기고 심리스 스타일을 사용하면서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온전히 몰입하기를 바라지만, 비현실적인 규칙의 존재가 인공적인 시스템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유저 인터페이스(하드웨어 인터페이스도 물론이고)에 의해 플레이어는 허구 세계와 늘 일정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비디오 게임은 연극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내부 세계의 환영은 투명하게 노출된다기보다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극적인 연상을 통해 상상된다. 초기 비디오 게임 그래픽의 투박함은 기술적 한계에 의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추상적인 기호로서 이해되어 그 비현실성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6) 점 두 개와 선 하나로 사람의 얼굴을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재현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의미가 제시될 수 있다면 환영은 만들어진다. *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2019). 여타 리마스터·리메이크 작품과 다르게 〈꿈꾸는 섬〉의 리메이크된 그래픽은 플라스틱 미니어처처럼 그려진다. 닌텐도는 여전히 추상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비디오 게임의 몰입 환경에 대해 고규흔(2004)은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아무런 계기판 없이 하늘을 날고 있는 행글라이더의 라이더가 자신이 대기 안에 존재함으로써 온몸으로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경험하고 상황을 판단하여 기체를 조종한다면, 계기판 앞에 앉은 파일럿은 자신의 대기에 존재하면서도 환경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의 패턴으로 나누고 객관화시킨다. 풍속과 고도, 현재의 운항 속도, 시야 거리 등등의 수치화된 정보를 기준으로, 행글라이더의 기수와는 달리 현 상황에 대해 객관적 방식으로 각성하는 것이다.” 그는 “고전적 리얼리즘에서의 관객”이 행글라이더의 기수라면, 게임 플레이어는 환영과 동화되지 않는 파일럿의 태도와 같다고 한다. 자각몽으로서 게임 *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Don’t Look Back〉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판의 미로〉의 주인공 오필리아에게는 다른 불행한 인물들과 달리 따로 판타지 세계가 주어진다. 오필리아는 요정에 이끌려 목신 판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과제를 수행한다. 이와 유사한 알레고리를 가진 게임 〈Don’t Look Back〉에서는 그림과 같은 장면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불행해 보이는 그에게도 역시 판타지 세계로서 지옥이 주어진다. 우리는 그를 조종하여 장애물을 통과하고 괴물들을 격파하며 거침없이 나아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까지 물리친 후에 그는 아내의 영혼과 만난다. 이제 ‘규칙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이동하여 다시 이승으로 올라오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 결과가 〈판의 미로〉에서는 사실관계가 모호하게 그려지지만 여기서는 보다 명확하다. 남자가 처음 떠난 자리로 돌아올 때, 이 과정을 함께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게임적 존재’들은 그대로 소멸한다.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아에게 혼란스러운 현실과 대조적으로 판타지 세계에선 절대적인 규칙이 제시되고, 이에 따라 고난을 극복한다. 이 짧은 게임 안에서도 플레이어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상상하는 남자로서 게임을 하고, 목적을 달성하곤 합당한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 두 작품이 판타지를 체현하는 방식은 게임 플레이와 맞닿아있다. 이들이 진행하는 게임은 규칙을 두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긴장 속에서 문제를 극복하는 놀이이면서, 공상만이 아닌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으로 제시되는 공간이다. 상상된 시스템 속에서 꿈을 꾸고 있지만 일상적 현실을 자각한 채로 정교하게 욕망을 만족시킨다.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로서, 게임은 일방적으로 재생되는 꿈도, 잠깐 빠져드는 백일몽도 아닌 자각몽으로 경험된다. 1) 다만 그 자동화의 대상이 기존 액션 RPG 장르에서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자동 사냥’을 제공하는 RPG 게임들은 게임 커뮤니티 등지로부터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 Soler-Adillon(2019)이 지적한 바대로 시스템의 자기조직화가 행위자의 인지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Importantly, they do so while responding to this sense-making process itself. However ... it is problematic to associate self-organization to processes in which the agents generating the phenomenon are aware of it” (Soler-Adillon, 2019) 3) 다만 게임이 기존 내러티브 구조를 따르는 대신 “더 큰 내러티브 경제에 기여”하는 매체라는 관점도 있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2004)는 〈스타워즈〉 시리즈와 1983년 아타리에서 출시한, 영화의 한 장면을 시뮬레이팅하는 동명의 비디오 게임이 영화에서처럼 전체적인 플롯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주장을 두고, 게임을 하며 환경적 세부 사항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미디어와 결합하여 더 큰 단위에서 풍부한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의 주류 온라인 게임에도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4) 워게임 디자이너 제임스 더니건(James F. Dunnigan, 2000)은 이를 컴퓨터 게임의 경험을 축소시키는 ‘블랙박스 신드롬’(Black box syndrome)이라 불렀다. 그는 내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워게임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했다. 5) 일례로 1994년 출시된 〈둠 2 : 헬 온 어스〉의 한 숨겨진 구역은 출시 후 24년이 지난 2018년까지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유튜버 Zero Master가 특수한 방법을 써서 정상적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이에 게임 개발자 존 로메로(John Romero)가 직접 트위터에 축하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다. romero. (2018,09,01). CONGRATS, Zero Master! Finally, after 24 years! "To win the game you must get 100% on level 15 by John Romero." Great trick getting to that secret! 6) 이런 점에서 현대 인디 게임에서 흔히 표방하는 로우폴리곤이나 픽셀 그래픽이 활용된 레트로 스타일은 단지 노스탤지어만이 아닌 게임적 이미지의 물성에 관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Hocking, C. (2009). “Ludonarrative dissonance in Bioshock: The problem of what the game is about.” In D. Davidson (Ed.), Well played 1.0: Video games, value and meaning. ETCPress. Aarseth, Espen (2014) “Ludology,” in The Routledge Companion to Video Game Studies edited by Mark J.P. Wolf and Bernard Perron. 박인성 (2020). “2010년대 비디오 게임에서 나타나는 서사와 플레이의 결합 방식 연구 - AAA급 게임의 심리스(Seamless)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21(1), 83-111. Juul, Jesper (2001). “Games telling stories? - A brief note on games and narratives.” Game Studies, Vol. 1 Issue 1, July 2001. Eric Zimmerman, Katie Salen (2003). “Rules of Play.” MIT Press Soler-Adillon, Joan (2019). “The Open, the Closed and the Emergent: Theorizing Emergence for Videogame Studies.” Game Studies, Volume 19, issue 2 Jenkins, Henry (2004). “Game design as narrative architecture.”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d. Noah Wardrip-Fruin & Pat Harrigan. Cambridge, Ma.: The MIT Press. Aarseth, Espen (2004). “Genre trouble: narrativism and the art of simulation.”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d. Noah Wardrip-Fruin & Pat Harrigan. Cambridge: The MIT Press. Huizinga, J. (1949).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이종인 (역) (2010). 〈호모 루덴스〉. 일산: 연암서가 Juul, Jesper (2005). “Half-Real: Video Games between Real Rules and Fictional Worlds.” MIT Press. James F. Dunnigan, “Wargames Handbook: How to Play and Design Commercial and Professional Wargames.” 3d ed. (San Jose: Writers Club Press, 2000) Welsh, Timothy (2020). “(Re)Mastering Dark Souls.” Game Studies, Volume 20, Issue 4 Martin, Paul (2011). “The Pastoral and the Sublime in Elder Scrolls IV: Oblivion.” Game Studies, Volume 11, issue 3 Vella, Daniel. (2015).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Volume 15, Issue 1 고규흔 (2004). 비디오 게임에 대한 스펙터클적 관점에서 계약의 관점으로 이동. 한국게임학회 논문지,4(3),29-42.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학생) 김도근 디지털 미디어와 같이 자란 세대로 특히 디지털 게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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