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공란으로 575개 검색됨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 Back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01 GG Vol. 21. 6. 10. 미술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에 관해서는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아주 짧게 정리하자면 원근법은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에 재현할 때 필요한 방법으로, 입체인 3차원 세계를 실제로는 입체가 아닌 2차원 평면 위에 재현하면서 마치 입체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이기도 하다. 화면 안에 적용된 원근법은 화면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드(grid)로 분할한다. 그리고 이 그리드를 기반으로 대상의 크기나 비율, 선명도, 색상, 명암의 방향 같은 요소들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원근법은 무엇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관객의 눈은 어디에 어떻게 참여할지 같은 질문들, 더 나아가 화면의 전체적인 풍경을 결정하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원근법은 단순히 멀리 있는 것은 작고 흐리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고 선명하게 그린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화면 안의 모든 것이 배치되는 규칙, 어떤 것이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를 결정하는 화면 구성의 내적 논리의 설계 방법론이다. 우리의 눈과 뇌는 화면이 제공하는 원근법에 의거하여 화면 내부를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인식하고 그 내부의 공간감에 우리의 신체를 동기화한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입체감을 가지지 않는 평면 매체에서 원근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 회화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원근법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은 언제나 기묘하거나 이상하거나 놀라운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렇다면 모니터라는 평면을 사용하는 게임에서는 어떨까? 게임 내 원근법과 캐릭터의 이동, 크기, 비율 문제는 우리의 플레이 경험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MMORPG 게임의 경우 몬스터가 아닌 이상 혹은 몬스터조차도 배경 세계의 원근법에 착실히 순종한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게임이 설정한 휴먼 스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며 캐릭터를 제외한 인게임 요소들, 예컨대 건축물, 아이템, 탈 것, 펫, 배경 같은 것들도 캐릭터의 크기에 맞추어 하나의 완결되고 고정된 원근법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한다. 반면 1인칭 FPS 게임에서는 이 원근법이 더욱 강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서든어택이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들에서는 주로 화면 정 가운데에 십자 모양이나 원, 탄젠트형의 에임(aim)이라고 부르는 조준점이 있다. 이 에임에 맞추어 1인칭 플레이어의 무기를 든 손이 정렬되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1점 투시 원근법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화면 중앙에 소실점(vanishing point) 하나가 놓이는 1점 투시 원근법의 제1규칙, 가장 중요한 것을 소실점에 놓는다는 규칙은 회화에서 수차례 변용되었고, (프레임이라는 천성 때문에 회화에서보다는 그 정도가 약하지만)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관객의 시선이 쏠리는 곳에 무엇을 둘지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 어느 쪽이든 이런 게임들이 상정하는 게임 내 원근법은 우리의 실재와 최대한 유사하게 조성한다는 하나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게임들의 카메라가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 시야로 날뛸 수 있느냐에 상관없이, X축과 Y축은 고정되어 있다. 아주 잠시 이색적인 뷰로 한 장면을 비춘다고 하여도 플레이의 기본 전제는 변하지 않는 X축과 Y축이다. 그러나 AOS 게임의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도타나 카오스(CHAOS),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같은 게임들이 포함되는 AOS 게임의 경우 축약되고 매우 인위적으로 가공된 세계를 배경으로 사용하며 이미 우리의 실재로부터 벗어나 있는 원근법, 그러므로 쉽게 도식화하기가 곤란한 형태의 원근법이 화면을 구성한다. 내가 가장 많이 플레이 해 본 리그 오브 레전드를 두고 논의를 좁혀 보자. 일반적으로 2차원 평면을 사선으로 기울인 쿼터 뷰(Quater View)를 사용하는 2.5차원 게임에서 X축과 Y축은 마름모 모양의 면을 구축하고 그 위에 캐릭터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쿠키런 킹덤과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맵을 비교해 보면 전자의 맵은 다이아몬드형, 후자의 맵은 정사각형으로 보기에 약간 다르지만 쿼터 뷰 게임이 설정하는 X축과 Y축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그림 1). (그림 1) 쿠키런 킹덤과 리그 오브 레전드의 소환사의 협곡 지도 (출처: 좌-쿠키런 킹덤 공식 유투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VUIy7RaHcL4, 우-리그오브레전드 나무위키 https://namu.wiki/w/소환사의%20협곡)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특히 더 흥미로운 것은 이 Y축이 Y축이 아니라 X축으로 인식된다는 점에 있다. 퀸의 ‘후방지원’이나 자야의 ‘저항의 비상’ 같은 특정 챔피언의 특정 스킬은 X축 면에서 도약하며 (미니)맵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인게임 Y축을 가시화한다. 아예 Y축의 패러미터를 벗어났다가 돌아오는 형식의 스킬을 사용하는 갈리오나 판테온 같은 챔피언들도 있다. 아주 얕은 수준이지만 렉사이 같은 챔피언은 X축 평면 아래, 즉 -Y축의 공간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리그 오브 레전드가 플레이어의 시점을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2.5차원 쿼터 뷰로 설정하면서, 앞서 언급한 챔피언들이 스킬 사용으로 지면을 도약하면서 인 게임 원근법을 떠받치는 X축과 Y축이, 그리고 숨겨져 있던 Z축이 등장하며 서로 뒤엉키게된다. (좌, 그림 2) 쿼터 뷰 게임이 상정하는 공간의 구성 원리 (우, 그림 3)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이 상정하는 공간의 구성 원리 챔피언이 지면을 도약하면 지면 위에서 이동 시 Y축이 자연스럽게 Z축으로 변하고, 챔피언이 도약하는 방향은 Y축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챔피언은 X축의 연장된 면 위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데,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X축의 방향이 달라지고, 여러 개의 방향이 이어지면서 X축은 (그림 2의 Y축이었던) Z축까지 가 닿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원근법에 상관없이, 각 라인은 미니맵에서 보여지는 순서대로 탑-미드-바텀이다.) 즉, 리그 오브 레전드의 원근법은 고정된 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게임의 원근법은 캐릭터의 이동과 도약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축들을 뒤섞는다. 플레이어는 평균 20분의 플레이 타임 안에서 끊임없이 재배치되는 유동적인 축들에 놀랍도록 매끄럽고 빠르게 적응하는데, 이는 이전의 초지일관(初志一貫)적 시각성과는 물론 다른 양상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하나의 세계가 제공하는 원근법이 이것에서 저것으로, 다시 저것에서 이것으로 전환되는 유동적인 원근법으로 구성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우리의 변화된 시각성이기도 하다. 이에 덧붙여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스킨이나 캐릭터의 크기가 스킬의 적중 여부를 좌우하기도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챔피언 스킨 때문에 게임 내에서 챔피언의 크기와 부피, 모양, 그리고 스킬의 크기와 부피가 달라지면 조준의 방법도 미세하게 바뀌게 된다. 최근 추가된 서리불꽃 건틀릿(Frostfire Gauntlet) 같은 아이템에는 챔피언 크기를 키우는 옵션이 달려 있다. 인터넷에서 롤 챔피언 크기라고 검색하면 이 옵션이 도대체 왜 있는 거냐는 플레이어들의 의문과 위엄을 위하여, 재미를 위하여, 논타킷 공격을 대신 맞아 아군 보호, 사거리 증가 등의 답변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는 자신의 기존 캐릭터에 맞추어져 있던 원근법의 축 변화와 그로 인해 재구성된 시각성에 기반하는 공간감에 시시각각 적응하고야 만다.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시각성이 기존과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이 글의 주장을 보완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번 캐릭터의 비율, 스케일, 거리감, 공간감 등 원근법에 관여된 여러 문제들이 관건에 오르게 된다.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라면 한 번쯤 “이걸 맞는다고?” 혹은 “이걸 안 맞는다고?” 같은 말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떨 때는 내 캐릭터에 스킬이 닿지 않았는데도 맞았다는 판정, 닿았는데도 맞지 않았다는 판정이 의아하기도 하다. 이처럼 이해되지 않는 판정의 순간은 오히려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 형성하는 공간감, 하나의 원근법에서 다른 원근법으로 교체되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변화할 시각성에 관하여 고민하기에 더 없이 적절한 출발점이다. 모니터 평면 안의 크기와 비율, 스케일과 동기화되어 있던 우리 신체의 공간감이 끊기고 기존 원근법의 축이 변화하는 지점, 플레이 시간 내내 계속해서 눈의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 게임 원근법의 변화무쌍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현한다.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1] 물론 입체 매체, 예를 들자면 조각에서도 원근법은 중요한 문제다. 휴먼 스케일을 벗어나는 고대 그리스 조각들은 사람의 실제 몸과 비교하자면 머리가 훨씬 더 크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조각을 주로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기 때문인데, 실제 사람의 비율대로 제작하면 멀리 있는 머리가 더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원근법은 크기와 비율의 문제에 관여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김얼터 리얼리티, 리얼리즘, 픽션, 그리고 매체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시험에 들게 만들거나 시험하는 사물을 좋아한다. 미술 전시와 전시에 관여하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으로 일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재민
2013년부터 만화/웹툰 리뷰 팟캐스트 ‘웹투니스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7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공모전, 2019년 콘텐츠진흥원 만화평론공모전 기성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2019년부터 웹진 ‘웹툰인사이트’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만화를 읽고, 글을 쓰고, 만화를 중심으로 이뤄진 시장 저변의 많은 것들을 찾아보는 일을 합니다. 소설 <룬의 아이들>과 스타리그, LCK, 그리고 수많은 웹툰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재민 이재민 2013년부터 만화/웹툰 리뷰 팟캐스트 ‘웹투니스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7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공모전, 2019년 콘텐츠진흥원 만화평론공모전 기성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2019년부터 웹진 ‘웹툰인사이트’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만화를 읽고, 글을 쓰고, 만화를 중심으로 이뤄진 시장 저변의 많은 것들을 찾아보는 일을 합니다. 소설 <룬의 아이들>과 스타리그, LCK, 그리고 수많은 웹툰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즐기는 사람들을 지켜라 - 만화는 어떻게 멸시와 비하를 딛고 일어섰는가 1972년 6월 29일 동아일보에선 “불량만화 화형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불량만화는 사회악의 근원이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한국아동도서보급협회’는 서울 남산 야외음악당(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위치한 자리다!)에서 ‘어린이 악서 추방대회’를 열고 만화책을 모아 불태웠다. 이 단체는 만화를 두고 ‘유소년의 정서발달을 해친다’,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주류의 시선에서, 당시 만화는 ‘악서’였던 셈이다.
- [인터뷰] 게임연구학회의 새로운 도전, DiGRA-K 윤태진 학회장
024년 3월, 세계 최대 게임 연구 단체인 '디그라(DiGRA;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의 한국지회(디그라 한국학회)가 설립되었다. 디그라 한국학회는 영미권과 유럽, 남미 등에 이어 18번째로 설립된 지회로서, 게임 연구의 학제적 접근과 현장과의 연결성을 지향하고 후속세대 지원, 국제교류 및 협력연구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과를 뛰어넘는 학술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국내 게임 연구 분야에 있어, 다양한 업계 현장과 학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Back [인터뷰] 게임연구학회의 새로운 도전, DiGRA-K 윤태진 학회장 21 GG Vol. 24. 12. 10. 2024년 3월, 세계 최대 게임 연구 단체인 '디그라(DiGRA;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의 한국지회(디그라 한국학회)가 설립되었다. 디그라 한국학회는 영미권과 유럽, 남미 등에 이어 18번째로 설립된 지회로서, 게임 연구의 학제적 접근과 현장과의 연결성을 지향하고 후속세대 지원, 국제교류 및 협력연구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과를 뛰어넘는 학술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국내 게임 연구 분야에 있어, 다양한 업계 현장과 학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호 GG에서는 디그라 한국학회(이하 디그라-K)의 초대 회장인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를 만나 디그라 한국학회의 지향성과 중점 사업 및 한국의 게임문화에 대한 진단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신규 편집위원: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비평지를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뷰이기도 하기에, 오늘 인터뷰에서는 게임 관련 학계의 흐름과 함께 게임 문화나 산업에 대한 연구나 비평으로서 학회가 하는 시도들을 말씀해 주시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회장님께서 디그라-K에 초대 학회장으로 출마하실 당시 취임 맥락과 포부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사담이 될 수도 있지만 편히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제가 귀차니스트라 조직의 요직 일을 하기 어려워하다 보니 나서서 회장을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게임 학회의 경우 사실은 아주 성격이 다른 상황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기존 학회와 달리 게임계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상황이라, 학회를 통해 조그마한 오두막이라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마침 주위에 도와주는 분들이 나이와 경력 상으로 주니어였기 때문에 내가 조금만 시작해놓으면 이분들이 굉장히 잘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겸손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땅만 조금 파면 될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학회를 시작했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그렇다면 게임 관련하여 다른 여러 공동체의 유형이 있었을 텐데 왜 학회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하구요.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학회를 만든다고 했을 때, 다른 국가에 여러 개의 지회가 있는 학회를 선택하여 한국에 지부를 만들기로 결정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한데, 제가 위와 같은 막연한 고민을 하던 차에 디그라 학회 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습니다. 일단 한국은 문화, 경제, 산업, 정치 분야를 막론하고 게임 분야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앞서 나가는 나라이기도 한데요. 디그라 학회가 16개 나라에 지회를 가졌지만 한국 지회는 없는 상황이었고 한국 학자가 디그라 학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보니 헤드쿼터 입장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게임과 관련한 학술영역 개척을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지회 제안과 함께 수년 내로 한국에서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오퍼가 있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학회를 설립하게 됐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기존에 국내에 있는 다른 여러 게임 관련 학회들이 있고, 최근에 생긴 곳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존의 학회들과 비교했을 때 디그라 학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우선 기존의 학회들은 몇 번 참여 경험이 있었지만 학문적인 입장이나 백그라운드가 제가 추구하는 바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연구 주제들이나 학회 진행 스타일 등이 낯설다 보니 내가 거기서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게 게임 연구 커뮤니티를 만들자라는 마음을 먹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이기도 해요. 컴퓨터나 정책 분야와 관련된 게임학회 같은 경우는 제가 만들자 하는 학회와 성격이 다르고 굉장히 특수한 분야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구요. 물론 그런 곳에서 일을 맡고 계신 선생님들과는 오히려 학회 설립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었고, 학회 조직에 고문 등으로 모시기도 하면서 진행을 했습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사실 저 또한 기존의 게임학회들이 경영 쪽이나 공학 쪽 베이스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낯설었는데, 한편으로 그런 학회들이 일종의 모학회 같다는 느낌은 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디그라-K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면, 디그라-K 역시 여러 분야의 이사진들이 있지만 밖에서 보면 신문방송학이나 문화연구로 치우쳐 있지 않냐고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학회의 성향 문제는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많이 해요. 오히려 설립 당시에 내가 특정한 방향을 정한다고 해서 그렇게 가지 않더라구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디그라-K 학회를 시작할 때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두 가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법과 정책, 공학에 포커스를 맞춘 게임 학회가 있듯이 게임 문화에 포커스를 맞춘 좁고 깊은 학회를 만들면 색깔이 분명하고 추진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동시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디그라 지회로서 세계 게임 학술대회 조직과 더불어 업계 사람들과 교류하며 현실 필드와의 관련성을 갖는 학회를 원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게임 문화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어요. 학회 운영에 있어 특별한 개성을 갖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더 제너럴리스트로 가는 게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제가 논문 지도할 때 ‘깔때기’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깔때기 윗부분처럼 처음에 관심을 넓게 갖되 점점 좁혀 들어가며 자기만의 특별함을 가져야 된다고 얘기하거든요. 저는 우리 학회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회가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포괄할 수 있는 분야가 넓어야 하고 게임 프로그래밍이나 디자인, 개발과 마케팅 관련 관계자들도 들어올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모든 걸 다루는 학회를 지향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학회에서 우리가 좀더 강점을 갖고 있거나 더 하고 싶은 부분에 무게가 실리는 건 불가피하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이 상태에서 학회를 운영하다 보면 성격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그런데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유도를 높여놓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사실 저도 최근엔 학회들이 누가 회장이 되든 변하지 않고 대부분 비슷하게 간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를테면 윗부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크게 담아놓고 깔때기를 모으는 방향이 각자 다른 분들이 회장을 하신다면, 그때그때 어떤 회장이 하느냐에 따라 보편성과 구체성을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학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하신 바에 동의하구요. 그럼 어쨌든 여러 모순적인 포지션을 유지하고 계시다고는 했지만 지금 디그라-K가 지난 3월 발족 후 조금씩 사업을 해나가고 있잖아요. 현재 학회에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으며, 그중에 특히 애정이 가거나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를 여쭤봐도 될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학회를 시작할 때부터 저는 그냥 터만 잘 파놓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터를 파는데 있어 몇 가지 강조점이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두 개는 학문 후속세대와의 연결과 국제적인 학술 교류입니다. 그 다음엔 학회와 현장과의 연결성을 잊지 말고 계속 필드로부터 정보를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걸 기본적인 자세로 지향하고자 했어요. 우선 우리가 디그라 세계학회의 지회라는 성격이 있다보니 국제적인 교류는 계속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학계의 문제이기도 한데, 학회에서 많은 비용을 대어 해외 학자를 데려오고 언론 보도에 크게 소식을 내는 것이 국제 교류로 오도되는 경향이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게임 쪽도 그렇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국제교류를 일상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한국에 자비로 관광오는 사람도 많고, 제가 있는 대학의 경우 자비로 와서 연구를 하는데 소속만 빌려달라는 해외 학생들도 대단히 많아요. 그런 분들을 되도록이면 다 받고 싶고, 그들이 한국에 오면 혼자 연구만 하다 가는 게 아니라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디그라-K에서 진행했던 두 건의 국제 발표 또한 이런 취지에서 개최한 행사였어요. 학생들이나 업계 관련자, 연구자들이 뭔가 외국의 누군가가 와서 영어로 발표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니고 매우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했으면 좋겠다는 게 하나가 있구요. 그 다음 학문 후속세대 얘기는 당연히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후속세대 양성에 욕심을 갖지요. 그런데 강조하고 싶은 건 게임 연구 분야는 독립된 학제라 보기 어렵다 보니 연구자들이 대부분 이탈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사회학이나 심리학에서 게임을 연구하던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 취업이나 연구비를 위해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를 하는 식으로 바뀐다는 거죠. 이런 걸 피하기 위해서는 게임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을 위해 자리를 만들거나 지원하고 북돋아줘서 누군가가 그들의 작업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말씀을 들으니 국제교류와 후속세대 양성 모두 거창한 형태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야 되는 일로 연결하신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게임 쪽은 후속세대 뿐 아니라 기성 연구자 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부터 게임을 다루던 미디어 연구자들 중 지금 게임 분야에 남아계신 분이 아마 회장님밖에 안 계실 거예요. 신진연구자든 기성연구자든 게임 연구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회장님은 어떠신가요? 회장님은 대중문화 전반, 특히 TV쪽을 많이 하시다가 게임 분야로 관심을 구체화시켜 현재까지 계속 하고 계시는데요. 스스로를 어떤 연구자로 정체화하시나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스스로를 대중문화 연구자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의 100분의 1만큼도 웹툰을 안 보는 사람이지만 웹툰 갖고도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잘 나가는 걸그룹 멤버의 얼굴과 이름 매치도 못하지만 케이팝에 대해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게임 전문 연구자라는 생각은 사실은 안 해요. 연구의 비중으로 보자면 제 연구는 2010년까지는 게임 연구의 비중이 컸고 그 이후에는 한류 연구를 오래 했고, 2017-18년부터 다시 게임 연구를 많이 한 셈입니다. 이제 은퇴가 얼마 안 남았다 보니 제 연구나 교육 생활 중 마지막 10년 정도는 게임 문화 연구를 주 전공으로 삼는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진짜 ‘게임 연구자’는 우리 후속 연구자들이 그 역할을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그런 말씀을 들으니 진짜 게임 연구를 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라는 의문점이 듭니다. 이건 GG를 보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슈일 수도 있는데, 사실 저도 대학의 게임 강의 등에서 ‘내가 너희보다 잘 하는 게임이 있다’고 해야 제 말을 좀 더 잘 들어줄 것 같다고 느끼곤 합니다. 게임이란 분야가 누구나 ‘자기가 잘하는 게임에 대해서는 자기가 제일 잘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강하다 보니, 게임 연구자들에 대해 게임 플레이어들이 던지는 좋지 않은 시선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들에게 이를테면 회장님이 플레이어에게 연구자로서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으실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솔직히 굉장히 흔하고 보편적인 질문인데, 저는 그런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게임 연구자들의 교과서적인 답은 ‘게임 좋아하고 잘 한다고 좋은 학자는 아니다’, ‘내가 게임은 못 해도 학자로서 훈련과 트레이닝은 많이 받았다’ 이런 게 교과서적인 답일텐데. 저는 그걸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유처럼 얘기하는 건, 저는 제가 일종의 우리나라 70년대 텔레비전 연구자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80년대 대학을 다닐 때, 당시 텔레비전에 관해 가르치던 강사들은 산업이나 제작과정을 잘 모르거나 실제로 TV프로그램을 많이 보지 않는데 우리한테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기에 동료 교수나 지식인들에게도 비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강의가 아주 무의미했냐면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분들의 가장 큰 업적은 ‘텔레비전 드라마도 독립적인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준 것이고, 그런 신념 하에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고 그들이 조금 더 발전시킨 논문과 책을 쓰게 한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젠킨스가 얘기한 대로 결국 팬들이 공부를 하는 것이 대중문화 연구에 옳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학자가 팬이 되는 것보다 팬이 학자가 되는 게 더 정확한 학문의 발전 방향인 것이죠. 근데 이제 그러기에는 저는 늦었다고 생각하고요. 따라서 저는 그런 질문이 나온다면, ‘당신들이 훨씬 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 나는 당신들한테 길을 만들어 주겠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학회를 일종의 오두막처럼 만들고 그분들이 어떤 주인이 되는 때가 오면 훨씬 학술적으로도 성숙된 커뮤니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해외에서도 조금 나이가 있고 학문에 익숙한 학자와, 젊지만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만나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점에 있어 회장님께서 지도교수로서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들과 교류하고 코워킹을 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 학생들과의 만남이나 마주침이 학문적으로 회장님한테도 역으로 자극이 좀 되셨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그럼요.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학생들에게 훨씬 실질적으로 많이 배웁니다. 학생들의 페이퍼를 내가 평가자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재미가 없는데 실은 제가 요즘 공부하는 것의 한 70%는 학생들 논문 읽으면서 배우는 것 같거든요. 학생들의 페이퍼를 보다가 재밌는 거 있으면 조금 더 찾아보고 이런 식으로 배우기 때문에 게임 연구도 사실은 저는 그런 식으로 해온 것 같아요. 강신규 편집위원: 비슷한 질문일 수 있겠는데요, 그렇다면 게임 연구가 게임 플레이어들한테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디그라-K 학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업계 및 연구자와의 교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플레이어와의 교류 또한 매우 중요한 최종 도달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게임 연구자가 플레이어들에게는 어떻게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지금 질문을 듣자마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영화 팬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아마 게임 평론가보다 영화 평론가가 훨씬 많겠지만, 조금 좁혀서 ‘시네필’들을 얘기한다면 그 많던 시네필들 중 일부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된 사람도 있고 유학 가서 학자가 된 사람도 있죠. 만약 우리나라의 영화학이 당시 굉장히 풍성했더라면 그런 사람들을 굉장히 잘 소화할 수 있었을 거에요. 계속 인터랙션이나 학습이나 교류를 통해 보람을 주면서 영화에 대한 그들의 에너지를 결국 학계건 업계건 연결을 시켰을 겁니다. 저는 우리나라 게임 평론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성격과 규모는 좀 다르겠지만 게임과 관련해 그런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GG의 게임 평론 공모전도 훌륭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자리를 만들고 교류하는 일을 학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많이 알거나 막연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게임에 대한 다른 시각이나 개념, 타국의 게임 현황을 배우면서 게임에 대한 애정이나 에너지가 더 커지면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차츰 쌓여서 게임 업계나 학계에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한편으로 저는 그간 대중문화나 영화를 연구하던 사람들이 게임 쪽을 자연스럽게 연구하고 비평하는 게 장르의 저변을 넓히고 경계가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 게임만의 고유한 무엇이 남아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듭니다. 디그라-K의 지향점을 말씀해 주시기도 했지만 게임과 관련한 (고유한) 이론과 방법론이 없는 상황에서 게임이 어떻게 나아가야 될 것인가를 저희가 굉장히 오래 논의했었죠. 대중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상으로서 게임을 한 번쯤 이야기할 수 있다는 분위기인데, 한편으로 그게 약간 공허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혹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신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그 부분은 저와 좀 생각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데, 저는 게임이 독립된 학문적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독립적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 독립된 이론과 방법론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반대합니다. 질적 연구방법론을 예시로 들면, 분과별로 질방이 각자 있지만 주제와 소재만 바뀌고 내용이 크게 차이가 없죠. 분과적인 것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각자 방법론적 노력을 하는거라고 생각하고 이론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학회를 만든 것도 형식적이거나 제도적인 문제를 고려한 것이지 그 안의 내용물이 사회학회나 언론학회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구요. 저는 오히려 우리 학회도 많은 사람들이 ‘잠깐 와보는 곳’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아마추어 평론가나 업계에서 열심히 뛰는 현장 인력들도 학회에 한 번쯤 와서 기여도 잠깐 하고 그러다 재미없으면 가고 하는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숏폼, 메타버스, VR, AR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재 게임의 경계도 굉장히 애매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땐, 그럼 빨리 게임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만들어 제도화시켜서 뿌리를 내리자는 의견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게임의 영역과 경계를 아주 흐릿한 채로 오히려 넓혀서 다양한 주제를 게임 연구에서 할 수 있고 또 게임 연구에서 그런 쪽에 기여도 할 수 있게 만들자는 의견이 있을 텐데요. 저는 그 둘 중에 압도적으로 후자로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강신규 편집위원: 학회의 방향과 관련된 질문을 좀더 드려보자면, 게임 산업이나 문화에 대해 학회가 실천적으로 참여나 개입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혹시 생각하고 계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게임 관련 규제 개선이나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과 관련된 부분이라던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두 가지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저는 학회가 그런 의제를 적극적으로 전면에 내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고 있어요. 왜냐면 학회가 지향하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 곳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화를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던지,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을 어떻게 해야 된다던지에 대해 학회 이름을 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건 대전제로 하는 얘기구요. 그렇지만 둘째로 개별적인 사안에서는 사실 기민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내년 초에 세미나 하나를 계획 중이에요. 외국 사례를 참조해 이게 정말 법령화가 되고 있는지,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그동안과는 좀 다른 시각에서 세미나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추진 중에 있습니다. 즉 학회의 방향이 이를테면 산업 친화적이거나 정책 지향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하며 이건 저는 굉장히 분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지 산업이나 정치, 국제관계 등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특정 이슈가 있다면, 이와 관련한 자리를 학회가 기민하게 만들어서 전문가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강신규 편집위원: 오늘 회장님이 학회와 관련하여 말씀해 주신 부분들, 여기저기 있는 사람들이 그런 부분들을 알고 학회에 와서 편히 들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인터뷰가 GG에 실린다고 하니, 질문과 무관하게 한 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우선 이 글의 독자가 대학원생 등의 연구자가 아니라 그냥 게임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평론가나 게이머일 가능성이나 비율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체감상 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게임 관련 조직이 생기거나 책이 출판되고 행사가 만들어질 때 일종의 ‘정치적 판단’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우려가 들어요. 정치적 판단이라 함은, 진보와 보수의 얘기가 아니라, ‘이거는 업계가 돈 벌려고 하는 일이야’, ‘저 사람은 페미니스트니깐 이거는 개판일 거야’ ‘이거는 누가 특정한 의도로 뭘 해보려고 만든거야’ 등의 어떤 냉소적인 반응의 문화랄까요? GG의 비평 콘테스트에 나온 글에 대해서도 저 글은 잘못 알고 쓴 글이라는 방식의 비방도 많았구요. 이런 걸 보면 텔레비전이나 케이팝 등 다양한 여러 대중문화 영역 중에 게임 쪽이 어떻게 보면 가장 긍정적 리액션이 적은 곳 같고, 무언가를 지지하거나 기여하는 발전지향적 태도를 제일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 게임 판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고, 그런 문화가 사라지는 건 어려워도 어떻게 완화될 수 있을까를 고민을 많이 하는데 사실 방법은 없거든요. 어떤 캠페인을 벌여서 될 것도 아니고 한편으로 이런 태도가 전세계적 트렌드이기도 하기에 어렵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얘기는 해보고 싶어요.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일 욕하고 냉소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조금은 긍정적으로, ‘게임을 사랑하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떤 특정 게임사가 분명히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도 많겠지만, 사실 게임 산업이 망하지 않고 잘 되어야 하는 거니까요. 저는 산업이나 정책, 경영에 참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게임 판이 쇠락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생각을 하고, 이 부분은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에 어떤 연구결과물이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냉소적으로 ‘교수들이 또 대학원생 시켜서 아무거나 쓰고 책이나 낸다’는 식의 반응이 많은데요. 거기서도 본인들이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것이나 자극이 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찾아 좀더 긍정적인 리액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강신규 편집위원: 저희가 오늘 굉장히 많은 것을 여쭤봤고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편집장님께서 꼭 질문을 해달라고 하셔서 넣은 것입니다만 학회장으로서 ‘최애 게임’이 무엇이신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우선 저는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온라인에서 싸우거나 협력하는 등 모르는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 게임은 못하겠더라구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잘 못하는 걸 들키기 싫은 본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그러다 보니 네트워크가 없는 콘솔 게임이나, 혼자 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 위주로 하게 되네요. 그리고 저는 게임을 다른 일을 하다가 기분 전환용으로 잠깐 하는 것이기에 빨리 끝날 수 있는 아케이드류가 많아요. 보통은 간단한 크로스워드 퍼즐이나 3매치 류의 게임을 많이 해요. 참고로 제 게임 역사에서 제일 오래 했던 게임은 유학 초기에 했던 <동키콩>입니다. 유학 가서 말도 안 통하고 심심하고 해서 그거를 맨날 하다보니 잘하게 돼서 오락실에 제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기도 했어요. 집에 아이가 좀 크고 나서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위닝>도 많이 했구요. 최근엔 <대항해시대>나 <우마무스메> 등이 워낙 많이들 하니까 의무감에서 했었는데 <대항해시대>는 좀 재밌게 했었네요. 원하는 장르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말이 많으면 맛이나 보자는 마음에 플레이하는 게임도 꽤 많은 편이에요. 이상입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Back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03 GG Vol. 21. 12. 10.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실제적인 태동을 짚어야 한다면, 인터넷 방송의 역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 방송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음악 라디오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 당시 영상 압축과 인터넷 환경은 영상을 촬영하고 재생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다가 2005년 유튜브, 아프리카TV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w플레이어나 다음팟TV 같은 사이트가 생기면서 영상 재생/공유 사이트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현 시점에서 대세라 할 수 있는 라이브 스트리밍이 등장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이런 영상 재생/공유 사이트가 활성화되면서 '보는 게임' 문화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윤현정의 논문 『MCN 게이밍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연구』 및 논문에서 인용한 Smith, T. 외의 논문 『Live-streaming changes the (video) game』를 참조하자면 게임 영상 콘텐츠는 경쟁이 존재하는 ‘e-스포츠’ 유형과 빠른 정복을 도전하는 '스피드 러닝', 그리고 스트리머가 게임 플레이에 서사적 코멘터리를 덧붙이는 'Let's play'로 분류할 수 있다. (p.28) 이 중에서 주목할 분류는 'Let's Play'로 지칭되는, 게임 플레이에 서사적 코멘터리를 붙이는 실황 플레이 영상이다. 현재 '보는 게임' 영상 중에서 유저 창작이 활발한 영상도 실황 플레이 영상이다. 'e-스포츠'와 '스피드 러닝'은 특수한 기술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기에 문턱이 높지만, 실황 플레이 영상은 비교적 문턱이 낮기 때문이다. 왜 실황 플레이 영상이 '보는 게임' 문화에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초창기 영상 사이트에서 실황 플레이 영상은, 실용적인 용도가 강했다. 그 이유를 찾으려면 게임 공략에 있어서 영상의 힘이 강력하며, 게임 커뮤니티 문화랑 밀접하게 발전해왔다는 점을 지적해야 되겠다. 실황 플레이 영상이 대두되기 전, 게임 공략은 글과 스크린 샷으로 설명하는 게 대다수였다. 영어 위키피디아 'Video game walkthrough' 항목에 따르면,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플레이어를 위한 게임 공략은 핫라인 통화를 통한 1대 1 전화 상담이나 텍스트 공유가 대다수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꽤 오랫동안 게임 캡처, 특히 영상 캡처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특수 기기를 통해 게임 회사가 만든 공식 공략 영상이나 게임 언론 같은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게임 유저들은 제임스 롤프가 AVGN 33화 '닌텐도 파워' 편에서 회고했듯이 카메라를 플래시 쓰지 않고 위치도 TV에 맞춰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서 화면을 촬영해야 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을 디지털 스캔하고 인터넷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다수 게임 유저들은 전문가들이 만든 공식 공략집이나 잡지를 통해서만 게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그나마 1996년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라는 〈퀘이크〉 리플레이 영상을 통해 머시니마 개념이 등장하면서 유저들끼리 게임 영상을 공유한다는 문화가 등장했지만, 이 역시 게임 내 리플레이 파일을 등록해 재생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런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지만 PC 게임은 물론이거니와 콘솔 게임에서 게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 파일로 유저들끼리 공유되는 공략 영상은 2005년 Something Awful라는 북미권 인터넷 코미디 포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PC를 활용한 비디오 캡처 난이도가 대폭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기점으로 고전 게임을 중심으로 비디오 영상이 제작되었다. 최초의 유저 게임 공략 영상 역시 같은 포럼에서 마이클 "슬로비프" 소이어가 제작한, 〈The Immortal〉이라는 1990년 DOS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니코니코 동화라는 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hacci 같은 초기 스트리머가 등장해 실황 플레이 영상을 올리면서, '보는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이런 '보는 게임' 문화 및 실황 플레이 영상이 폭발적으로 확장된 계기는, 2014년 PS4 셰어 버튼으로 시작한 콘솔 자체 공유 기능을 통해서였다. PS4 이전까지는 콘솔 게임은 기본적으로 영상 공유를 하기 쉽지 않았다. 콘솔 자체 캡처를 지원하지 않아서 캡처 보드를 필수로 했기 때문이다. PS4 셰어 버튼은 이런 캡처 보드 없이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플레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XBOX와 닌텐도 스위치 역시 셰어 버튼 기능을 도입하면서 8세대 콘솔은 '보는 게임'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 실황 플레이 영상이 발전하면서, 영상의 경향도 조금씩 달라져 갔다. 초기 실황 플레이 영상은 공략이라는 개념에 충실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목소리가 없거나 플레이어 '목소리'가 게임의 상황을 반영해 코멘트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게임 플레이 영상 역시 편집이 많이 개입해, 실수나 늘어지는 분량을 잘라내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화면에 뜬 실시간 채팅방도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스트리머와 시청자 간의 소통은 댓글 란에서 사후적으로 이뤄지고, 밈보다는 영상 자체를 얘기하는 경향이 컸다. 그러다가 스트리밍 환경이 개선되자, 실시간으로 진행하면서 채팅으로 소통하는 부류의 실황 플레이 영상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런 실황을 진행하는 스트리머는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플레이어가 겪는 고충이나 유머를 즐기는 버라이어티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시에 사후적인 게임 플레이가 아닌, 실시간 방송과 채팅을 통해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 게임 플레이하는 경향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된 '보는 게임' 현상에 따르는 실황 플레이 영상과 팬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실황 플레이 영상의 특성은, 스트리머라는 대리자를 통해 간접 체험이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기본적으로 실황 플레이 영상은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는 영상을 시청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게임 플레이를 하는 것은 스트리머기에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경험은 간접 경험이 된다. 그 점에서 스트리머의 존재는 매개체에 가깝다. 서사 역시 직접 경험보다는, 관람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런 변모 때문에 게임에 대한 접근성 문턱 역시 낮춰지게 되었다. 또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의 개성이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같은 게임이더라도, 스트리머의 성향에 따라 영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게임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 때문에 게임을 보는 부류도 있을 정도다. 스트리머의 방송 스타일은 개별차가 있긴 하지만, 게임 내용에 대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경향이 크다. 그렇기에 '보는 게임' 현상을 따라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 스트리머는, 다양한 게임을 다루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인기를 얻는 게임은 어떤 부류일까? 스트리머의 트위치 방송 관련해 통계를 내는 사이트인 트위치 트래커에서 시청자 선호에 기반한 게임 인기 순위를 보면 https://twitchtracker.com/statistics/games ) 2021년 11월 기준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GTA 5〉, 〈카운터 스트라이크〉, 〈콜 오브 듀티〉, 〈에이펙스 레전드〉, 〈발로란트〉,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가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인기 순위 절반 정도는 메타데이터가 없는 미등록 상태이기에, 순위권에 들었다는 뜻은 고정 시청자를 확보했다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이 중 주목해야할 게임은 〈GTA 5〉와 〈마인크래프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일 것이다. 이 두 게임은 언급한 게임들과 달리 E-스포츠라는 틀에 속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GTA 5〉와 〈마인크래프트〉는 오픈 월드 게임 장르이며, 플레이어의 창발적인 플레이가 방송의 주목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게임은 오픈 월드 게임이 아니라, 살인마와 생존자 간의 대결을 다루는 호러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하지만 다른 멀티플레이 게임과 달리, E-스포츠형으로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 아닌, 생존 및 협력 플레이가 중심이 되고 있다. 사실 이 게임은 발매 초창기인 2016년에는 평단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으며 게임 시스템이나 밸런스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다. 전문가 평점 분포도를 보여주는 메타크리틱 및 오픈크리틱에서도 6-70대의 평균적인 평가를 받았다.〈GTA 5〉나 〈마인크래프트〉처럼 평단과 게임 유저에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게임이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발매 이후 트위치 평균 그래프 (2011.11 기준, https://twitchtracker.com/games/491487 ) 하지만 발매 후 5년이 지난 2021년 11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순위권에서 사라지지 않고 트위치 게임 채널 내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렇다면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어떻게 해서 스테디셀러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우선 공략이나 분석을 제외한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실황 플레이 영상은 긴박한 생존 대결보다는 생존/협력 플레이 도중 일어나는 유머러스한 촌극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런 영상들은 자막이나 채팅을 활용해 코믹한 예능 분위기를 강조하고, 공포 게임와 거리가 먼 썸네일로 시청자를 유도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국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팬덤에서 공유되고 있는 은어 및 별명은, 해당 게임의 팬덤이 어떻게 실황 플레이 영상을 소비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은어와 별명은 게임 내 상황과 캐릭터를 희화화 하는 용도로 인터넷 유행과 결합해 쓰이고 있다. 이런 희화화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를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와 시청자들이 게임을 예능처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의 이런 경향은, 게임 서사의 간접 체험 및 경험 공유이라는 지점에서 생각할 만한 여지를 남긴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의 공식적인 장르는 생존 호러다. 게임 제작자의 의도와 게임 향유층의 방향이 다소 상충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충되는 상황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게임 플레이 나아가 서사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전반적인 실황 플레이 영상 트렌드를 분석해보면,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에서 호러 게임이 인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퓨디파이 같은 유명 유튜버들이 인기를 얻은 계기 역시,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 같은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통해서였다. 또한 슈퍼매시브 게임의 PS4 〈언틸 던〉 같은 경우엔, 8세대 콘솔 초창기에 시네마틱 어드벤처 게임과 호러 장르의 조합으로 실황계에서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런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 대다수는 게임의 질과 상관없이 스트리머가 얼마나 게임에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크다. 호러 게임 하는 스트리머 대다수는 과장되게 놀라거나 반대로 무덤덤하게 딴죽을 거는 경향을 보이며, 시청자 반응 역시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사례처럼) '축제'처럼 즐기는 쪽에 가깝다. 깜짝 놀라는 장면에서 놀라는 코멘트조차 진심으로 두려워하기 보다는, '정말 놀랐다'는 식으로 공유에 가깝게 표출된다. 왜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축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호러 영상물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관에 가서 호러 영화를 보게 되면, 주변에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무서워하게 되는게 아니구나'하는 공감대를 느끼고 동조하게 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두려움을 공유하면서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동조화를 파악해 관객과 상영 공간 자체를 '축제'화한 시도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195~60년대 미국 저예산 호러 영화 제작자로 유명했던 윌리엄 캐슬이 있다. 당시 미국은 심야 영화와 드라이브인 시어터를 통해,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체험하는 새로운 유형의 관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캐슬은 이런 관객들을 보면서, 어떤 감정의 동조화와 유희적인 성향이 있다는 걸 간파했다. 캐슬은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관에 장치를 도입해 유원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주력했는데, 그 점에서 심야 영화와 드라이브인 시어터로 대표되는 컬트 영화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실황 플레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만들어내는 반응과 캐슬이 추구했던 '유원지' 연출, 나아가 컬트 영화 문화랑 완전히 같다고는 보기 힘들다. 윌리엄 캐슬이 만든 영화는 유원지 구성 요소를 차용해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쪽에 가까웠고, 실황 플레이는 스트리머가 제시하는 플레이 영상을 통한 간접 체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체험과 유희화를 공유하고 만끽할 느슨한 '공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컬트 영화에겐 심야 상영이나 자동차 영화관 같은 공간이 있다면, 게임 실황 플레이 영상엔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채팅창이나 영상 댓글란이 있다. 물론 스트리머들에겐 좀 더 진지한 팬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이런 채팅창이나 댓글란은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하기에, 유동적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지점에서는 컬트 영화보다도 더욱 거리낌없는 구석도 있는데 이런 채팅창이나 댓글란은 기본적으로 '익명'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명 스트리머들의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는 서사의 간접 체험과 경험 공유를 통해 만들어지는 컬트 내지는 고유한 문화가 형성되는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전 격투 게임을 주로 하는 케인이라는 스트리머 팬들이 쓰는 밈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스트리머가 자주 쓰는 말이나 인터넷 유행어를 접목시켜 커뮤니티만의 고유한 하위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하위 문화는 위키백과나 케인 관련 커뮤니티에서 유통되어, 케인 팬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한다. 또한 '보는 게임' 문화가 게임 문화의 문턱을 영화 감상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추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는 게임' 문화 도래 이전 게임 문화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한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었고, 그 전제가 어느 정도 문턱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보는 게임' 문화, 정확히는 실황 플레이 영상은 이런 문턱을 낮추고 영상으로 제시되는 간접 체험만으로도 게임 요소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보는 게임'과 실황 플레이 영상을 다룬 정서현과 박주현의 논문 『1인 미디어 게임방송 이용 동기 및 이용 특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인터넷 게임방송 이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에서도 실황 플레이를 보게 되는 계기로 게임 정보 획득, 대리만족, 단발적 재미 추구를 언급했다고 밝히고 있다. (p.23) 게임 정보 획득과 대리만족을 거치고 난 뒤, 채팅방에 있는 다른 시청자들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경험 공유를 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보자면 '보는 게임' 시대에서 게임 서사는 직접 경험을 넘어서 간접 경험을 기반으로 소통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사를 체험하지만 체험에서 머물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게임 서사가 의도하는 방향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서사가 유도하는 반응과 반대의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체험을 공유하고 밈이나 유머로 승화하면서 즐기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서사의 원래 의도에서 이탈함과 동시에 발생하는 희화화와 축제적인 상황은 컬트 영화의 반응과 유사한데, 이런 유사성이 발생한 이유로는 느슨한 관람 공동체로써 공유할 만한 '공간'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컬트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모이는 관객과 특정 스트리머의 실황 플레이를 보기 위해 채팅방 및 댓글에 모이는 시청자는 느슨한 공동체적인 공간 속에서 경험, 나아가 유희와 코드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보는 게임' 문화의 대두는 현 시점에서 비디오 게임의 소비 양태의 다양화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본 글은 그 중에서도 플레이나 서사를 즐기는 방식이 간접 경험에 기반하며, '댓글'이나 '채팅방'을 통해 같이 경험을 공유하고 축제화 된다는 지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런 현상은 컬트 영화 상영이나 심야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현상과 유사하면서도, 동시에 고유한 차별점을 두고 있다. 향후 '보는 게임' 문화와 서사 체험, 경험 공유 비평 및 연구에 있어서 시청자/수용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조 문헌 및 사이트 Video game walkthrough – Wikipedia 중 History 단락, https://en.wikipedia.org/wiki/Video_game_walkthrough AVGN 33화 '닌텐도 파워' 이경혁, 『보는 게임과 Z세대』, http://kofice.or.kr/b20industry/b20_industry_03_view.asp?seq=8042&page=1 (2021) 윤현정, 'MCN 게이밍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연구' 및 Smith, T. 외의 논문 'Live-streaming changes the (video) game' (2016) 정서현과 박주현, 『1인 미디어 게임방송 이용 동기 및 이용 특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인터넷 게임방송 이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2019) https://twitchtracker.com/statistics/game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통로’를 지나 풀 다이브(full-dive)
필자는 지난 호에서도 큐레이터 동료가 언급한 바 있는 전시, 《MODS》(2021, 합정지구, 서울)에서 장진승 작가와 프로젝트 ‘SYNC’를 진행했었다.1) 전시를 위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서로 관심이 있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동시대 시뮬레이션 비디오게임 플레이어의 자율성, 몰입도로 초점이 맞춰졌다. < Back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통로’를 지나 풀 다이브(full-dive) 05 GG Vol. 22. 4. 10. [이미지1] 《MODS》 (사진:박승만) 시작하기 필자는 지난 호에서도 큐레이터 동료가 언급한 바 있는 전시, 《MODS》(2021, 합정지구, 서울)에서 장진승 작가와 프로젝트 ‘SYNC’를 진행했었다. 1) 전시를 위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서로 관심이 있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동시대 시뮬레이션 비디오게임 플레이어의 자율성, 몰입도로 초점이 맞춰졌다. [이미지2] 사이버펑크2077 SYNC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그 때는 2020년 12월로, CDPR의 〈사이버펑크2077〉이 엄청난 기대와 함께 출시될 무렵이었다. 출시까지의 8년은 기대감을 집중시켰고 발매와 동시에 갖은 논란들을 가져왔다. 그 중 출시 전까지 수년간 “오픈월드”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놓은 개발사의 언론 마케팅이 여러 커뮤니티에서 스토리나 플레이의 면면을 파헤침 당하며 다양한 공방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이버펑크’라는 이제는 대중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문화코드에 대한 기대함 또한 빼놓을 수 없었는데, 많은 영화나 게임에서 이미 너무 많이 그려진 적이 있는 이 세계를 얼마나 더 새롭고 황홀한 그래픽과 아트웤으로 완성할 것인지가 게임을 기다리는 게이머들의 또 다른 설렘이기도 했다. 게임이 출시되고 거세게 일었던 일련의 이슈들을 들여다보며 필자는 게이머들에게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하면 이제 이동의 자유는 기본이고, 물리적, 감각적으로 젖어 들어갈 수 있는 환경과 함께 무궁무진한 상호작용이 보장되어 있어야하며, 플레이어의 창발적 플레이 또한 시도해 볼 수 있는 그런 방대한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슷하게 의미가 부여된 ‘이머시브 심(Immersive Simulation)’과 같은 게임 장르가 이미 호명되어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RPG에 기대하는 바가 확장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2 ) 접속과 동시에 게임의 가상세계로 몰입이 가능하며, 피부 가까이에서 그것을 느끼고, 시스템 안에서 적극적인 수행자로서 개인의 마음과 자유에도 또한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접속-되기 [이미지3] 〈존 말코비치되기〉 포스터 “Ever want to be someone else? Now you can.” - 영화 〈존 말코비치되기(Being John Malkovich)〉 (1999) 게임으로의 ‘접속’이라는 건 마치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속 ‘통로’로 물리적 비유가 가능하다. 영화의 주인공 크레이그 슈와츠(Craig Schwartz: 존 쿠삭 분)는 어느 날 다니고 있는 회사의 ‘딥 스토리지Deep storage’에서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15분간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몸으로 감각하며, 온전히 그의 삶을 가상체험 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한다. 생계를 위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동시에 무명의 마리오네뜨 인형술사였던 크레이그는 그 통로를 통해 말코비치의 주체가 된다면 우울한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 꿈을 이루고 짝사랑하는 맥신(Maxine: 케서린 키너 분)의 마음 또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말코비치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고 원하던 바를 이룬다. 말코비치의 머리에 들어간 또 다른 사람인 그의 아내 라티(Lotte Schwartz: 카메론 디아즈 분)는 그 통로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생의 사랑을 이루게 된다. 이 영화에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 알 수 없었던 것들을 타인되어 극복하게 되고, 성취하게 된다. 이 타인의 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영화적 설정은 ‘자아와 타인이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존재하는가, 경험을 한 육체와 경험을 기억하는 의식 중에 자아를 구성하는데 더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이며 아득한 질문을 상기시키면서도 동시에 어쩌면 언제나 인간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는 상상을 별스럽지 않게 항상 하고 있지 않은가, 항상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통로’로 풀 다이브(full-dive) [이미지4] 장진승,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2021 스틸컷 장진승 작가의 13분 25초 길이의 영상작업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은 등장인물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에서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감각이 없었던 상태에서 점차 들리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등장인물 ‘나’는 본인의 감각을 의심하면서도 그 곳이 어딘지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리는 말소리와 빗소리에 집중한다. 사실 그는 디지털 게임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인데, 첫 장면에서는 본인이 현실에 존재하는지 가상에 존재하는지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다가 빠르게 청각과 시각의 감각을 획득하면서 본인이 있는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래픽으로 구성된 특정한 세계의 안에서 그의 본질과 존재하고 있는 위치를 알아내고, 주어진 세계 밖을 넘어가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화면은 1인칭과 3인칭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그와 밀착하기도 했다가 멀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화면의 변화가 몰입을 위한 최적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접속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5,6] 장진승,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2021 스틸컷 스스로 존재하는 곳에 대한 지각적 신념을 갖게 된 영상 속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예측가능하다고 하면서 현재 그가 존재하는 가상현실이 아닌 다른 특정 시공간으로 자신을 ‘전송’하고자 한다. 영상의 말미에는 실험실 같은 곳 유리창 너머에서 다른 차원에 존재할 ‘그’와 같은 인물을 만들고 있는 또 다른 ‘나’들이 등장하며 끝난다. 마치 ‘통로’에서 빠져나와 나로 돌아온 것 같달까. 작품의 제목이 주지하듯 작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인지하게 되는 ‘나’의 경험을 ‘망상 현실’로 규정하고자 했다. ‘망상’은 ‘현실’을 전제하지 않는, 그래서 양립불가능한 개념이지만, 유효한 것으로 병존시켜놓음으로써 “이 불안한 동시에 유연하기도 한 자기 파열의 내적 구조만이 서로 다른 차원에 놓인 세계들에 자유로이 동기화 할 수 있는 ‘의식 연동’의 가능성을 내재할 지도 모른다” 3) 는 명제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수잔 손탁(Susan Sontag, 1933-2004)은 역사적으로 ‘기예’들이 예술로 승격화 되었던 첫 번째 ‘신화적 예술’의 탄생 이후 예술은 보다 복잡하고 비극적인 것이 되었다고 언술한 바 있는데, 이를테면 단순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긍정하는 의식에서 머무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예술은 (단순한) 의식의 표현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생겨난 의식의 해독제(antidote)”인 셈이다. 4) 가상현실에서 만들어진 가상인간이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들이 종종 눈에 띄는 요즘, 가상현실로의 풀 다이브는 가능한 것인가라는 이 글을 시작하는 질문은 꽤나 주관적인 답안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고 그것에 일루젼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쫓는 것은 시각예술에 있어서 기실 늘 중요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해에 이어 장진승 작가와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다양한 분과에서 더 매끈하게 열려가고 있는 ‘통로’에 관하여, 그 현상에 관하여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 패치 후 또 다른 궤적을 그려볼 예정이다. 1) 큐레이터-게이머 동인 모즈(Mods)의 전시 《MODS》 관련 지난 아티클,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2&match=id:65, 김세인,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GG vol.3. 2) 유명 유투버나 위키, 개발자들이 정리한 바로는 ‘몰입가능한 거대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제시된 시스템과 규칙을 활용하여 창발적 플레이가 가능한 물리엔진과 인공지능’을 갖춘 ‘선택과 결과에 방점이 찍힌 비선형적 디자인(을 지향하는 형식)’의 게임을 말한다. [Immersive Sim]https://www.giantbomb.com/immersive-sim/3015-5700/ [The Comeback of the Immersive Sim] ]https://www.youtube.com/watch?v=kbyTOAlhRHk 3) 작가노트 참고. 4) 수잔 손택, 「침묵의 미학」,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 pp.11-16 참고.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 멤버) 구윤지 유미주의자이지만 항상 카니발적 그로테스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이쿤류의 게임들을 좋아해서 척추가 망가졌다. 게임이든 뭐든 궁금한건 못 참아서 빠르게 엔딩을 보고 자주 새로 시작한다.
- [논문세미나] “Sexuality does not belong to the game” - Discourses in Overwatch Community and the Privilege of Belonging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AA급 게임 〈오버워치(OVERWATCH)〉. 〈오버워치〉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내 다양한 논쟁이 오갔던 201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오버워치〉에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왔고 이를 통해 드러난 현상과 논의들이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기를 풍미한 〈오버워치〉는 작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해 후속작인 〈오버워치 2(OVERWATCH 2)〉로 재탄생했다. 이 글은 Triple A!라는 주제를 맞아,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한 AAA급 게임 〈오버워치〉에 관한 한 논문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오버워치 속 ‘퀴어’를 다룬 논문이다. < Back [논문세미나] “Sexuality does not belong to the game” - Discourses in Overwatch Community and the Privilege of Belonging 10 GG Vol. 23. 2. 10. - 게임제너레이션은 새 연재로 '논문세미나'를 오픈합니다. 디지털게임을 다룬 국내외의 주요한 논문들을 간략하게 정리, 소개함으로써 디지털게임 연구의 결과들이 대중적으로 손쉽게 유통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새 연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1. 들어가며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AA급 게임 〈오버워치(OVERWATCH)〉. 〈오버워치〉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내 다양한 논쟁이 오갔던 201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오버워치〉에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왔고 이를 통해 드러난 현상과 논의들이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기를 풍미한 〈오버워치〉는 작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해 후속작인 〈오버워치 2(OVERWATCH 2)〉로 재탄생했다. 이 글은 Triple A!라는 주제를 맞아,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한 AAA급 게임 〈오버워치〉에 관한 한 논문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오버워치 속 ‘퀴어’를 다룬 논문이다. 트랜스미디어, 팬덤, e스포츠 등 게임문화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타냐 발리살로(Tanja Välisalo)와 마리아 루오살라이넨(Maria Ruotsalaine)은 오버워치 관련 글을 이미 몇 차례 내놓은 적 있는 연구자들이다. 두 연구자는 이번 텍스트로 〈오버워치〉 속 퀴어 캐릭터들을 둘러싼 커뮤니티 의견들을 분석하고, 소속·비소속의 구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오버워치〉 연구자들이 분류한 데이터들을 따라가며, 퀴어 캐릭터들을 둘러싼 커뮤니티 의견이 어떻게 나뉘고 현실 정치와 이어지는지 살피고자 한다. 그 후 소수자 표현이나 한국적 맥락에 대한 고민을 나눌 생각이다. 덧붙여서 이 논문은 2022년에 등록되었지만, 2016년에서 2020년까지의 데이터를 토대로 하므로 현재에 맞지 않는 상황이 보일 수 있다. 그 점을 고려하면서 봐주길 바란다. 2. 커뮤니티에 소속된다는 것 〈오버워치〉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Blizzard Entertainment)가 2016년에 런칭한 팀 기반 FPS 게임이다. 〈오버워치〉는 슈팅 게임이라는 본질 외에도 각각의 캐릭터에게 서사가 부여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오버워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캐릭터들의 설정을 풀어내는데, 2016년에는 트레이서, 2019년에는 솔저: 76가 퀴어라는 사실이 공개돼 화제가 됐었다. 캐릭터들을 향한 플레이어들의 입장은 둘로 나뉘었다. 게임과 섹슈얼리티의 연결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과 게임을 통해 드러난 다양성을 기쁘게 생각하는 입장이 그것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입장 차이에서 발생한 토론을 살피며 소속·비소속 장소로써의 〈오버워치〉 트랜스미디어 세계를 분석한다. 어딘가에 소속될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협상과 투쟁이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소속감이 정체성이라는 개념과 유사하게 이해될수록 더욱 그렇다. 그럼 '소속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연구자들은 '(소속감이)애착 욕구 및 개인이나 그룹이 소속되길 바라는 방식을 포착하게 만든다'는 프로빈(Probyn, 1996)의 말을 인용해 이를 설명한다. 정서적인 영역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소속감'은 끊임없이 변화하거나 경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북미 게임 커뮤니티의 권력은 여전히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커뮤니티에 소속되기 용이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유저들은 커뮤니티에 소속되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 '게이머의 싸움'은 보통 게이머 대 게임 회사·개발자의 대립을 연상시키지만, 사실 이 대립은 커뮤니티 내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3. 게임문화 속 LGBTQ 게임문화 속 LGBTQ는 그동안 다양한 층위에서 혐오를 접해왔다. 이를테면 게임의 LGBTQ 캐릭터 자체는 〈오버워치〉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게임 세계 안에서 퀴어 캐릭터의 존재는 대체로 한 명이었고, 그마저도 이성애자 캐릭터들에 의해 온갖 혐오적인 태도와 마주해야 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WoW〉 운영 도중 LGBTQ와 관련해 비판받은 과거가 존재한다. 2006년에 있었던 이 일은 블리자드가 퀴어 친화적인 한 WoW 길드의 홍보를 금지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블리자드는 차별적 괴롭힘이 조장될 수 있는 상황을 막은 거라 발표했지만, 플레이어들의 반발에 의해 이 규정을 곧 철회하였다. 이런 과거들이 있었지만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퀴어 콘텐츠도 게임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퀴어 친화적으로 입장을 바꾸었고 여러 게임사에서 다양한 모습의 성소수자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의 주인공 엘리를 포함해,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발로란트(VALORANT)〉 등, AAA급 게임에서 퀴어 캐릭터를 찾는 일은 이제 그리 어렵지 않아졌다. 〈언더테일(Undertale)〉도 이 사례에 들어가는 게임 중 하나다. 논 바이너리(non-binary) 젠더인 주인공이 등장하고 성 중립적 대명사(they/them)를 사용하며 퀴어 스토리라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이 있더라도 〈언더테일〉이 LGBTQ 게임으로 소개될 수 있느냐는 다른 영역의 이야기다. 연구자들은 〈언더테일〉이 메커니즘 측면에서 게이머들의 향수를 자극했고, 그로 인해 '게이머들의 게임'으로 정의되었다는 루버그(Ruberg, 2018)의 말을 옮긴다. 루버그(Ruberg, 2018)는 〈언더테일〉의 이런 인기가 퀴어 요소를 삭제하고 게임적 부분에만 초점 맞추는, 일종의 스트레이트워싱(straightwashing)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하였다. 이처럼 게임문화 속 퀴어는 여러 사건 및 논의와 함께 해왔다. 연구자들은 ‘정치적 담론과 대중문화 토론은 새로운 형태의 시민권이며, 이것이 대중문화 텍스트에 참여하게끔 강조한다’는 샌드보스(Sandvoss, 2014)의 말을 인용한다. 거기에 플레이어 커뮤니티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소속을 둘러싼 투쟁으로 인해 정치화되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이 안에서 투쟁의 수단이자 중심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4. 〈오버워치〉 속 데이터들 연구자들은 2019년에 진행했던 연구로 캐릭터들의 성적지향이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오버워치〉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고 소속되는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 이번 연구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오버워치 공식 포럼과 레딧(Reddit)에서 정보를 수집하였다. 수집된 데이터는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는 트레이서다. 〈오버워치〉의 상징과도 같은 트레이서는 2016년에 퀴어 캐릭터라는 정보가 공개됐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오버워치〉의 설정들은 게임이 아닌 트랜스미디어로 전달된다. 그래서 트레이서의 퀴어 설정도 단편 만화 '성찰(Reflections)'에서 밝혀지게 되었다. 이후 수석 작가인 마이클 추(Michael Chu)도 트위터로 그녀가 레즈비언임을 공식 인정했다. 이렇듯 오버워치의 첫 퀴어 영웅인 트레이서에 관한 것이 첫 번째 주요 데이터다. 두 번째 는 솔저: 76이다. 2019년에는 솔저: 76도 퀴어 캐릭터라고 드러났다. 그가 게이라는 사실은 트레이서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나타났다. 빈센트라는 이전 애인이 언급되는 단편소설, '바스테트(Bastet)'와 마이클 추의 트윗으로 퀴어라는 게 확정된 것이다. 레즈비언인 트레이서에 이어, 게이인 솔저: 76에 대한 토론이 두 번째 주요 데이터다. 마지막 세 번째 주인공은 시메트라다. 시메트라는 퀴어 캐릭터가 아님에도 게이 아이콘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시메트라의 이런 ‘게이 아이콘화’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구성됐기 때문에 특이점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플레이어들의 성적지향과 시메트라가 어떻게 관계되는지 해석을 시도한다. 연구자들은 수집된 자료를 수사적-수행적 담론 분석(rhetoric-performative discourse analysis)을 통해 살핀다. 이 분석법은 원래 포퓰리즘 및 정치 연구를 위해 개발됐지만, 이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담론 사이의 관계와 역학, 구성을 살피기 위해 사용한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포럼 내 토론을 분석하며, 이를 소비자 담론, 진정성 담론, 작가 담론, LGBTQ 재현 담론, 저항 담론, 총 다섯 가지 범주로 설정한다. 이 범주들은 주요 데이터인 트레이서, 솔저: 76, 시메트라와 함께 설명된다. 5. 〈오버워치〉 데이터 분석 1) 소비자 담론 소비자 담론은 퀴어 캐릭터가 게임에 드러나게 된 전말을 추측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퀴어 설정에 불만을 가진 유저들은 블리자드가 관련 플레이어들을 달래고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 한 것이며, 게임사는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의견에서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다른 두 그룹, 게임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유저들과 설정에 더 관심 두는 유저들 간 계층구조가 형성된다. 특히 전자는 이상적인 커뮤니티 구성원의 범주를 설정하는 축이 된다. 이들의 불만은 '팬덤'이라는 용어에 관해서도 찾을 수 있었다. 〈오버워치〉 커뮤니티의 '팬', '팬덤'은 특정 담론 맥락에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데, 팬덤이 캐릭터들의 뒷이야기만 상상할 뿐, 게임은 하지 않는다는 게 그 근거다. 누군가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퀴어 캐릭터 공개가 마케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퀴어 캐릭터가 미디어에서의 화제성이나 신규 플레이어 확보를 위한 도구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내러티브 콘텐츠가 다른 게임 콘텐츠들보다 열등한 것으로 판단하고 계층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퀴어 콘텐츠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데 일조한다. 2) 작가 담론 게임은 다인원 작업물이기 때문에 저작자 개념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가 담론은 영화가 감독을 내세우듯 〈오버워치〉의 수석 작가 마이클 추를 주로 앞세운다. 마이클 추는 게임을 예술작품으로 접근하는 작가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작가 담론은 퀴어 설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 담론은 게임에 대한 권한이 디자이너, 개발자, 작가에게 있으므로 플레이어가 불평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검열과도 연결되어, 게임에 변경을 요구하는 의견들을 ‘비난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포럼의 한 유저는 '퀴어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팬 픽션을 쓰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연구자들은 ‘주류 콘텐츠에서 LGBTQ를 배제하던 일이 역전된 것’이라 분석한다. 하지만 작가 담론 측이 이러한 의견을 내놓는 건 LGBTQ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작가 담론 측은 퀴어 캐릭터에 대한 찬반 의견을 표명하기보다 도리어 토론 자체가 끝나길 바란다. 더 이상의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의 태도는 작가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작가 담론은 〈오버워치〉 커뮤니티 소속 권한을 작가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이 권한은 〈오버워치〉의 흐름을 반대하는 토론에 한해, 작가 담론 지지자에게도 주어지게 된다. 3) 진정성 담론 대중문화와 그 수용을 다룰 때 되풀이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진정성이다. 〈오버워치〉 퀴어 캐릭터들 또한 '진정성'을 가리기 위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여기에는 〈오버워치〉 세계관과 이미 알려져 있던 캐릭터에 대한 사실이 근거로 활용된다. 솔저: 76의 경우, 그의 다른 설정은 공개되지 않고 오직 성소수자라는 사실만 밝혀진 것에 불만을 내비치는 유저가 상당했다. 이들은 대체로 이성애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의 솔저: 76가 동성애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후술할 트레이서의 데이터와 조금 다른 이 반응은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가 다르게 판단되는 지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솔저: 76의 퀴어 설정이 타 캐릭터 스토리에서 공개된 것에 의문을 제기한 유저도 있었다. 솔저: 76에 집중된 콘텐츠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성이 덜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일부는 솔저: 76의 퀴어 설정을 부정하며 스트레이트워싱하기도 했다. 솔저의 사례만 언급됐지만 진정성에 대한 이 의심은 트레이서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렇듯 진정성 담론은 캐릭터나 스토리 상의 타당성을 비판하고 〈오버워치〉 전체 맥락과 연관 지어 평가한다. 그 탓에 진정성 담론은 세계관이나 설정 등, 텍스트와 관계된 것들이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담론이 진정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건 자신이 〈오버워치〉를 가장 잘 안다고 주장하는 커뮤니티 유저들이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품질 컨트롤러"처럼 위치 지어진다고 말한다. 4) LGBTQ 재현 담론 LGBTQ 재현은 이 연구에서 분석된 모든 논의 안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 단락의 첫 사례로, 트레이서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한 성소수자 유저의 글을 가져온다. 이 유저는 트레이서 같은 캐릭터들이 공감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역설한다. 연구자들은 해당 사례를 들어, 퀴어 캐릭터가 소수자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한다. 언뜻 소비자 담론과 유사해 보이는 이 담론은 게임이 사회적 기능을 가진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따라서 퀴어 캐릭터의 존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데, 몇몇 성소수자 유저는 '공격적이거나 혐오적인 태도를 조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LGBTQ 재현에 항의한 이들은 캐릭터들의 섹슈얼리티가 드러났다는 데 초점을 맞춰 비난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트레이서와 그 애인의 키스였다. 항의 측은 이성애를 중립적이며 비성애적인 것으로, 동성애는 '너무' 성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게다가 (동성)섹슈얼리티를 제하는 것이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 한 마디로 섹슈얼리티가 게임에 속하지 않길 바란 것이다. 이에 연구자들은 ‘캐릭터들의 섹슈얼리티와 그 의미를 부정하는 건 또 다른 형태의 스트레이트워싱’이라는 루버그(Ruberg, 2018)의 말을 인용한다. 이렇듯 게임과 섹슈얼리티의 연결을 불만스러워 하는 유저도 상당했지만, 이보다 많았던 건 '무관심' 측이었다. 한 유저는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 트레이서의 애인이 왜 그렇게 관심받는지 모르겠다'고 밝힌다. 이것은 대중문화에 깊이 빠진 사람이 미성숙하고 불안정하다고 여기는 고정관념의 반영이다. 캐릭터에 관심 갖는 플레이어는 순수하게 게임만 즐기는 이들에 비해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 LGBTQ 담론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의견은 '현실의 문제를 게임에서까지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섹슈얼리티 문제는 동성애를 정치적인 주제로 보는 시선이 많기 때문에 게임에서 논하기 예민한 부분이 있다. 그 탓에 트레이서의 성적지향이 공개됐을 때, 그를 반기는 사람들을 일컬어 리버럴, 사회 정의 전사(social justice warriors), 눈송이(snowflakes)라고 칭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민감하고 미성숙한 사람을 뜻하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공격하기 위해 쓰는 이 용어들은 게이머게이트(Gamergate) 당시 확산됐다. 트레이서의 설정 공개와 게이머게이트는 사실상 다른 맥락이지만, 해당 용어는 〈오버워치〉 커뮤니티에까지 계승되었다. 5) 저항 담론 솔저: 76과 트레이서는 작가에 의해 퀴어로 설정됐다. 반면 시메트라는 퀴어 설정이 없음에도 ‘게이 아이콘’으로 환영받는다. 시메트라가 ‘게이 아이콘’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첫째로 그녀의 조작성이 큰 이유를 차지했다. 시메트라는 전통적인 FPS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았고, 이것이 ‘게이머 자본’을 획득하지 못한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퀴어 게임 메커니즘’이라 칭한 엔글(Engle, 2017)의 말을 가져오며, 시메트라가 대안적 존재이므로 퀴어에 친숙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물론 시메트라가 플레이 메커니즘만으로 퀴어에 친숙해질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시메트라가 게이 아이콘으로 불리는 데에는 게임적 특성 말고도 다른 이유가 함께한다. 그에 앞서, 시메트라가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설명해두어야겠다. 이를 설명한 이유는 시메트라가 약자라는 사실에 마음이 간다고 밝힌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왕’으로 불리는 시메트라의 당당한 모습에서 마돈나(Madonna)나 주디 갈런드(Judy Garland) 같은 게이 아이콘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저항 담론은 소비자 담론과 반대된다. 소비자 담론은 플레이어가 다양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고객으로 위치 지어지지만, 저항 담론의 시메트라 플레이어는 커뮤니티 바깥쪽에 자리 잡는다. 하지만 개발자의 의도와는 다르다며 시메트라의 게이 아이콘화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트레이서와 솔저: 76의 퀴어 설정을 지지했던 작가 담론이 비공식 퀴어 독해를 반대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이 반대는 퀴어 관련 게시글과 공간을 규제하며 이루어진다. 이렇듯 시메트라 플레이는 소속을 위한 투쟁이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시메트라를 플레이하고 게이 아이콘이라 칭하는 건 게임 문화 내 이성애적 남성성에 저항하는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5. 〈오버워치〉 커뮤니티를 넘어 소속감은 각 그룹의 플레이어 및 게임 제작자, 사회와의 상호작용, 생산과 소비 사이의 역학에서 구성된다. 그를 추적한 이 연구는 퀴어 영웅의 도입을 둘러싼 논의와 권리를 정의한다. 연구자들은 〈오버워치〉 커뮤니티 내 개개인의 소속이 다양한 문화권과 투쟁에 연결된 점에서 착안해,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도 연결 짓는다. 캐릭터들은 〈오버워치〉를 이해하도록 돕는 동시에 논쟁의 연결점이 된다. 그러나 스트레이트워싱 사례 등, 〈오버워치〉 트랜스미디어 표현의 한계는 존재한다. 연구자들은 게임문화의 포용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트랜스미디어 내러티브에 섹슈얼리티, 젠더, 민족성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소수자 집단을 위해 커뮤니티 의견에 귀 기울일 것을 제언한다. 6. 나가며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게일 루빈(Gayle Rubin)은 그의 저작 〈일탈〉에서 미국의 성 정치 역사를 풀어낸다. 루빈(2011)에 따르면, 2차대전 이후인 1950년대 미국 사회는 ‘성범죄자’와 ‘동성애자’에 대한 불안이 집중된 시기라고 한다. ‘성범죄자’라는 용어는 강간범, 더 나아가 아동 성추행범을 의미하게 만들었고 이는 곧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Rubin, 2011). 서술한 사례 속 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퀴어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100년의 세월도 채 흐르지 않았다. 이후 동성애자 탄압의 역사는 몇십 년간 이어졌다. 루빈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풀어낸 뒤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법적 형태, 사회적 관습, 이데올로기에 흔적을 남긴 싸움과 투쟁의 잔여물은 목전의 갈등이 사라지고 난 먼 훗날에도 섹슈얼리티를 체득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가 성 정치의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사실을 이런 모든 신호가 말해주고 있다.”(Rubin, 2011, 293p) 사실 루빈의 글은 미국 성 정치 역사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게임과는 접점이 없어 보이는, 갑작스럽고 거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도 발제자가 이 글을 〈오버워치〉 논문 끝에 연결한 이유는 역사 서술 뒤에 이어지는 루빈의 말 때문이었다. 루빈은 섹슈얼리티가 먼 미래에까지 끼칠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사실 이 말 자체는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의 퀴어 탄압 역사를 살피고 지금의 게임문화를 살피면 그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과연 이 역사가 게임 문화 내 섹슈얼리티 문제에 단 하나의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초기 디지털 스페이스는 인종, 젠더,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희망적 공간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오버워치〉를 통해 보여주었듯, 오늘날 게임 커뮤니티는 다양한 문화와 투쟁으로 소속·비소속의 여부가 얽히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루빈의 논의를 끌고 와서 한국 게임 문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진다. 연구자들이 〈오버워치〉 커뮤니티 내 소속을 분석하고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 지은 것처럼, 우리도 이를 한국적 맥락과 함께 보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과거 성소수자의 미디어 표현이 중요했던 이유는 미디어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었던 게 크다(Gross, 2001: Shaw, 2014 재인용). 그랬던 미디어는 이제 소수자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거기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수용과 경계가 뒤엉키기 때문에 재현의 문제가 더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면 여기서 앞으로의 AAA 게임에 대해서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영향력 있는 AAA 게임 스튜디오들이 LGBTQ 표현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Makuch, 2015: Ruberg, 재인용 2018) 그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게임은 여전히 남성성 중심으로 돌아간다. 캐릭터가 미디어 표현의 책임을 플레이어에게 전가하거나 다양성이 미적 다원주의로 환원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Shaw, 2014). 이런 상황 속에서 AAA 게임은 어떻게 다양성을 표현해나갈 것인가? 플레이어들의 소속·비소속은 어떤 식으로 변화할 것인가?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을 지게 된 AAA 게임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듯하다. 참고문헌 Ruberg, B. (2018). Straightwashing Undertale: Video games and the limits of LGBTQ representation. Journal of Transformative Works and Cultures, 28. Rubin, G. (2011) Deviations: A Gayle Rubin Reader. 임옥희·조혜영·신혜수·허윤 (역) (2015). 〈일탈: 게일 루빈 선집〉. 서울: 현실문화. Shaw, A. (2015). Gaming at the Edge: Sexuality and Gender at the Margins of Gamer Culture. Minnesota University Pres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융합예술과 문화연구를 공부했습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 [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 Back [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20 GG Vol. 24. 10. 10.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전술한 과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엄연히 다르게 작동한다. 현실과 다른 인지 체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상의 객체와 플레이어 사이에 생성되는 보이지 않는 관계망은 현존감(presence)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는 어느새 스크린 밖으로 나와 현실 위에 포개진다. 마인크래프트의 겉시늉은,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장식용 선물 상자와 같다. 그저 작고 가볍게 포장된 이미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솜 없는 침대 현실 세계는 매끈한 표면의 사물로 가득하다. 그러나 마인크래프트 속 세상은 모두 블록 형태로 모서리를 갖고 있다. 입체의 면으로만 이루어진 객체들은 간신히 식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비)현실적으로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부분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을 인지할 때 그다지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 속 사물은 물리적인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모든 사물은 형상과 관념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물은 겉을 이루는 외형보다 관념으로서 존재하는 순간이 더 많은 듯하다. 그렇기에 마인크래프트의 단순한 묘사는 대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인지함에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상상력이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채워 넣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인크래프트의 블록 세상에 들어서면, 우리의 인지는 저절로 전이된다. 누구도 네모난 고양이에 대해 이의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전이는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이다 [1] . 우리가 기존에 알던 것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부분이 맞닿은 상태로 변형되어 또 다른 형상을 갖게 되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변형이 되어도 원형을 상기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인지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이다. 마인크래프트 속 세상을 거닐면, 기억 저편에 담긴 현실 세계의 이미지가 무수한 형태로 분절되어 떠오른다. 그리고 확장된 인지 체계 위에 포개진다. 무엇이 원본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일은 무의미해 진다. 사실 인지의 전이는 마인크래프트에만 해당된다기 보다 비디오게임 전반에서 일어난다. 상하좌우로만 이동하는 납작한 이차원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이차원의 세계는 우리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곳이다. 그러나 비디오게임 안에서는 이러한 제약이 문제 되지 않는다. 또한 이차원 게임에서는 마인크래프트보다 고도로 압축된 형상의 객체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두 개의 네모난 픽셀만 보고도 인간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렇듯 비디오게임 내부에서는 고도로 압축된 묘사가 추상적인 레벨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다. 인지의 전이는 우리가 가진 고정된 관념과 사고, 그리고 이미지로부터 해방을 선사하며 확장된 감각의 세계를 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젖지 않는 비에 추위를 느끼고, 온기 없는 벽난로에서 몸을 녹이고, 솜 없는 침대에서 푹신함을 느낄 수 있다. * 마인크래프트의 침대 [2] 네모난 고양이의 골골송 [3] 비디오게임 속 객체들은 명백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현존감을 기반으로 게임 속 가상의 객체들과 지각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비디오게임에서의 현존감은 말 그대로 현실을 넘어 게임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험은 가상 환경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감각하는 심리적인 공간에 가깝다 [4] .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데이터로 이루어진 가상의 우주로, 현실과 동일한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존감은 비디오게임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현실감 외에도, 플레이어와 가상의 객체 사이에 생성되는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다. [5] 마인크래프트의 싱글 플레이 모드는 온 우주를 플레이어 혼자 쓴다. 플레이어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는 모두 NPC(Non Player Character)다. 이러한 점이 플레이어에게 자유로움과 안락함을 주기도 하지만,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다양한 생물, (비)공격적인 몹(mob), 마을 주민은 매우 단순한 행동으로 프로그래밍된 NPC이긴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 마인크래프트의 고양이 [6] 플레이어는 여러 동물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신뢰를 쌓으면 반려동물처럼 함께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의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 플레이어가 바다에서 생선을 낚아 고양이에게 지속적으로 가져다주면 점차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모난 상자에 다리와 꼬리가 달린 투박한 고양이는 야옹 소리를 내며 사뿐하게 걷고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긴 채집 끝에 집으로 돌아가 고양이를 마주하면, 보드라운 반려묘의 감촉이 떠오르며 골골송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렇듯 마인크래프트 속 가상의 생명체와 플레이어 사이에 오가는 상호작용은 단순하고 때로는 단방향적이기도 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관계망을 피워내기도 한다. 홀로 숲이나 동굴에 들어가 재료를 채집하고, 외딴곳에 집을 짓고 살아갈 때는 알지 못했던 플레이어의 생기를 감지할 수 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온종일 낚시만 해야 했던 고양이와 ‘나(플레이어)’ 사이의 결속은 사회적인 풍부함(Social Richness) [7] 으로 이어지는 현존감을 발생시키며 물리적 실체의 필요성을 허문다. 그들은 어떤 생물의 외피를 두르고 단순하게 움직이는 상자처럼 보일 수 있으나, 플레이어를 움직이게 하고 때로는 죽게 만드는 크고 작은 동기가 된다. 즉 가상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은 이들이 관장한다. 내재적인 모서리 게임은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로 구성된 하나의 무리다. 즉 게임은 시스템적이다. 여기에서 시스템은 광범위한 의미를 담아낸다. 우선 게임의 시스템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가지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가지는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갈래로 뻗어 있다. 게임의 시스템은 구조적인 요소와 감각적인 요소를 포괄한다. 따라서 이를 텍스트로서 정의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상호작용적인 관계 안에서 복합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8] . 이는 게임의 시스템에 대한 모호한 정의를 하나로 묶어 냄과 동시에 여러 가지 경우를 포함한다. 비디오게임의 시스템은 무수하게 얽힌 관계망을 기반으로 하나의 복합체를 이루며 내부에서 외부로 점차 뻗어 나간다 [9] . 이렇게 시스템은 또 다시 현실 위에 포개지고 또 다른 우주를 이루게 된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크리퍼(Creeper)는 이름처럼 몰래 다가와 자폭하며 일대를 박살 내는 몹이다. 크리퍼는 일정 조도 이하로 내려가면 어디서든 생성된다. 특히 지하 동굴이나 깊은 숲, 비 오는 날에 자주 출몰한다. 크리퍼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폭발할 듯 빛을 내며 경고한다. 그리고 삽시간에 터져 버린다. 물론 크리퍼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아도 스스로 폭발하기도 한다. 즉 크리퍼의 행보는 예측할 수 없다. 소리 없이 다가와 일상의 한 부분을 통째로 날려버리고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10] 그러나 크리퍼는 사실 현실 도처에 존재한다. 위기는 언제나 소리 없이, 예측 불가능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드러난 거친 모서리를 흉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서리를 내재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모서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둘 이상의 면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본 채로 맞닿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또한 무수한 존재자들의 각으로 이루어진 모서리의 세계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느 한 부분이 맞닿은 채로 커다란 시스템을 이룬다. 이처럼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는 내재적인 현실의 모서리를 보는 눈과, 이를 매만질 수 있는 손으로 확장된다. 마인크래프트의 네모난 블록, 그리고 이를 감싸고 있는 외피는 이미지 너머로 연결되는 또 다른 차원의 경로를 연다. 다시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장식용 선물 상자를 떠올려 보자. 이는 분명 선물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 선물로 기능할 수 없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이 작고 가벼운 상자에 담을 수 없는 따뜻한 온기와 안락한 공간을 떠올리고 감각할 수 있다. 온 세상의 모서리와 외피를 매만지며, 지난 겨울 공원에서 우연히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늦더위를 달래 본다. * 지난 겨울의 공원 [1]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겸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p.18. [2] 이미지 출처: https://minecraft.fandom.com/wiki/Bed [3] 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를 노래하는 것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4] 김영욱, “VR 영상 콘텐츠의 현황과 프레즌스(presence) 향상을 위한 과제”, 문화영토연구 Vol. 4 No.2, 2023, pp14-17. [5]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pp.107-109. [6] 이미지 출처: https://www.digitaltrends.com/gaming/how-to-tame-cat-minecraft/ [7]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pp.111-112. [8] 케이티 세일런, 에릭 짐머만, “게임디자인원론Ⅰ”, 권용만, 윤형섭 역, 지코사이언스, 2010, p.113. [9] 위의 책, pp.117-118. [10] 이미지 출처: https://modbay.org/mods/1756-creeper-spores.html 참고문헌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겸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김영욱, “VR 영상 콘텐츠의 현황과 프레즌스(presence) 향상을 위한 과제”, 문화영토연구 Vol. 4 No.2, 2023.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케이티 세일런, 에릭 짐머만, “게임디자인원론Ⅰ”, 권용만, 윤형섭 역, 지코사이언스, 20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박정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 전시, 비평, 워크숍을 한다. (비)과학에 관심을 두고 뉴미디어 아트와 비디오게임을 탐구한다. 최근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연구 <기이한 게임과 으스스한 게임>(2024,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전시 (2024, WWW SPACE), 워크숍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비평>(2024, 아트코리아랩 아트랩클럽), 전시•워크숍 (2024, 하자센터 미디어아트 작업장) 등이 있다.
- [인터뷰] e스포츠의 현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라이엇게임즈 함영승 PD
그런데 따지고 보면 뭔가 이상하다. ‘현장 중계를 가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아쉽다는 의미인데, 게임의 배경은 이미 온라인 세계가 아니던가? 그러면 e스포츠에서 현장감은 무엇을 의미할까?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소환사의 협곡’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인데, 대체 팬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현장감을 느끼는 것일까?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이야기하는 현장감과 e스포츠의 현장감은 그 성질이 다를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이번 호에서는 MBC에서 전통 스포츠를 중계하다가 지금은 LCK 중계를 하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함영승 PD를 만나고 왔다. < Back [인터뷰] e스포츠의 현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라이엇게임즈 함영승 PD 08 GG Vol. 22. 10. 10. 직관의 묘미. 전통적인 스포츠에서는 이를 현장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오늘날에는 통신 기술이 발달해서 누구나 집에서도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수 있지만, 현장이 아니고서는 경기장의 열기와 습도, 환호와 희열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실제로 야구나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경기장을 가보고 팬이 되었다는 사례도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e스포츠에서도 코로나 19로 현장 중계를 할 수 없었던 기간에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뭔가 이상하다. ‘현장 중계를 가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아쉽다는 의미인데, 게임의 배경은 이미 온라인 세계가 아니던가? 그러면 e스포츠에서 현장감은 무엇을 의미할까?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소환사의 협곡’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인데, 대체 팬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현장감을 느끼는 것일까?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이야기하는 현장감과 e스포츠의 현장감은 그 성질이 다를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이번 호에서는 MBC에서 전통 스포츠를 중계하다가 지금은 LCK 중계를 하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함영승 PD를 만나고 왔다. 편집장: 먼저 간단한 소개와 짧게나마 걸어오신 행보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함영승 PD: 네. 저는 라이엇 게임즈에서 방송 총괄을 맡고있는 함영승이라고 합니다. 4년 반 전에는 MBC에 있었고, 스포츠국에서 다양한 종목의 중계와 콘텐츠를 제작했었습니다. 편집장: MBC 스포츠국에 계셨으면 다양한 종목들을 다루셨을 것 같은데, 스포츠 PD 시절에 중계하셨던 것 중에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함영승 PD: 인천 아시안게임 농구 제작을 담당했었는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으로 남자 농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평창 올림픽도 기억에 남고요.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비인기 종목인 모터스포츠 중계를 했던 경험도 기억이 많이 납니다. 일반 시청자분들이 잘 모르는 종목이다보니 스토리 라인을 살려주고 싶어서 다큐, 예능과 같은 사이드 콘텐츠도 만들고 기술적으로도 국내 최초로 차량 내부에 설치한 카메라를 생중계로 보여주며 다양한 재미를 드리고자 노력했었어요. 편집장: 스포츠 PD를 하다가 게임 쪽으로 넘어오셨는데, e스포츠를 중계하시면서 ‘기존의 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좀 더 특별하다.’ 이런 점이 있으신가요? 함영승 PD: 일단 (e스포츠는) 한국에 있는 그 어떤 방송보다도 실시간 피드백이 매서운 그런 장르입니다. 이 지점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시청자들이 원하는 어떤 부분을 놓쳤구나’라는 것을 아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죠. 다만, 그 노력이 즉각적으로 반영돼서 고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것도 꽤 있어요. 예를 들어서 한 번 만든 타이틀이 너무 별로라는 평을 받아도, 그 타이틀을 다시 찍을 수는 없는 거죠. 선수단과의 약속이 있으니까요. 저희는 1년에 타이틀 찍는 날이 딱 정해져 있는 수준이에요. 그래서 처음에 만들었던 방향성이 틀렸다는 거를 깨달아도, 적어도 한 시즌은 지나야하는 아쉬움이 있을 때가 있고요. 마찬가지로 그래픽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되게 많은 비판을 받았어요. 예를 들면 “보라색투성이다”는 비판이 있었죠. '잘못됐다면 다음 시즌에라도 보강하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바로 고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즉각적으로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고요. 그런 부분이 기존 스포츠 방송 대비 차이점으로 와닿았었습니다. 편집장: 그런데 야구도 보면 시청자 문자 참여가 있지 않나요? 야구 중계하실 때 받으셨던 피드백과는 차이가 있나요? 함영승 PD: 제가 주말에 MBC에서 메이저리그를 정규 방송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가 언제였냐면, 류현진뿐만 아니라 추신수, 박병호, 김현수, 오승환, 강정호 이렇게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대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해였어요. 당시에는 그 선수들을 동시에 중계했거든요. 왜냐하면 시청자분들 중에서 1회부터 9회까지 즐기는 코어(core)한 야구 팬들도 계시지만, 한국 선수 플레이만 보고 싶은 팬들도 물론 계시거든요. 하지만 채널 숫자의 한계상 모든 한국 선수의 플레이를 동시에 보여드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실험적으로 모든 한국선수들이 뛰고 있는 경기의 피드를 다 받아서 마치 올림픽 중계처럼 우리 선수가 타석에 서거나 투구를 할 때 마다 옮겨가며 중계를 했습니다. 심지어 그때 박병호 선수가 마이너리그에 내려갔었거든요. 그래서 마이너리그 피드를 인터넷으로 따가지고 그것까지도 보여줬어요. 실시간으로. 그러면서 그때 어떤 걸 동시에 했냐면, 그 당시에 MBC에서 유행했던 프로 중의 하나가 마리텔이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실시간 댓글 서비스까지 같이 넣은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이런 반응이 보이죠. 근데 그때는(전통 스포츠에서는) 보통 응원이 많아요. 선수에 포커스가 되어있죠. 그런 응원이 있는데, 여기는 응원 못지않게 다른 피드백도 많거든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큰 특징 중 하나인데, 야구나 축구, 농구는 그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는 기업이 만들어낸 종목이라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버그가 있다고 해보죠. 또는 버그가 아니어도 어떤 챔피언이 OP(Overpowered)이면 라이엇을 욕하게 되죠. 그런데 저희는 단순히 방송 생산자가 아니라, 라이엇의 구성원이다 보니까. 일단 게임 욕을 해도, 라코(라이엇 코리아)가 욕을 먹고, 방송하다 심판 판정에 이슈가 생겨도 라코가 욕을 먹고, 저희가 잘못을 해도 당연히 라코가 욕을 먹고, 그 모든 게 하나가 되어서 돌아오다 보니까 그런 지점들이 복합적으로 와 닿는 게 있습니다. 다만, 그래서 더 능동적으로 고민하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물론 시청자분들께 실망감을 드리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편 방송국처럼 거대한 인프라를 갖고 있는 방송사들도 개국하고 몇 년 간은 크고 작은 방송 사고가 꽤 있었지만 현재 자리를 잡았듯이 저희도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내부적으로도 꾸준히 인력 및 인프라를 늘려가며 성장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질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장: e스포츠의 현장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데, 여기는 이제 스타디움이 있는 공간이지만 경기는 온라인상에서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현장을 중계하는 PD님의 입장에서 e스포츠의 현장 무대를 다른 스포츠의 현장과 비교한다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요? 함영승 PD: 일단 같은 점은 관객분들이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흥분감이 있어요. 열기나 이런 특유의 현장감이 분명히 존재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경기가 펼쳐지는 무대 자체는 온라인상에 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실존하는 선수들은 눈앞에 있잖아요. 그리고 저희 경기장이 부스가 아니라 오픈 무대잖아요. 그래서 선수들의 육성이 막 들려요. 막 ‘빨리 어디 가자’, ‘뭐 하자’ 이런 다급한 목소리도 들리기 때문에 현장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차이점은, 어떻게 보면 e스포츠의 되게 큰 특징인데, 캐스터, 해설가의 육성이 현장에 울려 퍼진다는 거죠. 야구장이나 축구장 가보시면 팬들의 웅성거림과 응원 소리, 응원가 이런 것들이 가득한 게 현장감을 주죠. 대신 거기에는 캐스터, 해설가가 없어요. 소거돼 있어요. 그거(해설가의 목소리)는 오직 방송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죠. 그러니까 기존 스포츠는 굉장히 오프라인적 이벤트이지만, 완성체로 만들어지는 것은 온라인인 거예요. 반대로 e스포츠 현장에서는, 경기 자체는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어쨌든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크게 보이고 거기에 캐스터, 해설가의 보이스까지 더해져요. 그래서 현장 관람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e스포츠가 더 박진감 넘치게 느낄 수도 있어요. 그리고 현장감을 더 가미시켜주기 위한 장치들로 저희 같은 경우는 원소용을 잡으면 해당 원소의 조명으로 바뀐다거나, 바론을 잡으면 바론 조명으로 바뀐다거나 이런 방법들을 쓰고 있거든요. 결과적으로 저는 캐스터와 해설가가 e스포츠 현장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제 개인적 견해로는 중계진분들은 장내 흥을 띄우는 역할까지 해오셨다고 봅니다. 축구나 야구, 농구 어느 종목과 비교해도 우리 중계진처럼 높은 텐션을 유지하며 중계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솔로킬, 한타 순간순간마다 역전 홈런 수준의 텐션을 뿜어내시거든요. 장내 분위기를 고조시켜야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역할까지 같이 하고 계신 거라고 봅니다. 편집장: e스포츠가 가지는 현장감의 특징으로 캐스터와 해설가의 목소리를 언급해주셨는데요. 그러면 이런 상상이 듭니다. 선수가 굳이 무대에 서지 않고, 캐스팅만 하면 어떨까요? 관객들이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함영승 PD: 일단 먼저 말씀드릴 것은, 이미 그런 문화가 저희 안에서는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시겠지만 CGV 상영이 그런 건데요. 이번 결승 같은 경우에는 전국 CGV 상영관에서 예매율이 90% 이상 되어서, 거의 한 8천 명이 결승을 CGV에서 보셨어요. 편집장: 저도 그 현장을 보고 싶어서 갔는데 너무 놀랐어요. 함영승 PD: 진짜 생각보다 엄청 많은 분들이 그렇게 즐겨주고 계세요. (CGV에서) 선수는 없었어요. 선수는 없지만, 대형 스크린이 주는 느낌, 사운드, 어떤 장면이 나왔을 때 함께 환호할 수 있는 유대감 이런 것들을 이미 즐기고 계신 것 같아요. 뷰잉 파티(viewing party)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는 다른 종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플레이오프 기간에는 경기장 안에 못 들어가신 팬들도 꽤 많았어요. 근데 매진이 됐는데도 여기에(롤파크) 오세요. 롤파크라는 공간이 그런 문화를 제공하는 거죠. LoL을 좋아하고 LCK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만들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표를 못 구해서도 오신 거예요. 함성이 안에서 막 새어 나오죠. 그때 저희가 롤파크 입장공간 쪽에도 경기를 틀어놓거든요. 그날 상당히 많은 분이 경기장 바깥 공간에 함께 모여 보시면서 응원을 하시는 모습에서 놀랐습니다. 편집장: 그런 지점들은 직관 스포츠와 방송 콘텐츠 사이의 새로운 점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데요. 스포츠펍에서 프리미어리그를 다 같이 본다던가 그런 것과 유사한 걸까요? 함영승 PD: 월드컵 거리 응원이랑 동일한 거긴 합니다. 같이 보는 게 더 재밌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LoL이 더 잘 성장하면, ‘언젠가는 롤드컵 결승으로도 광화문 거리 응원이 가능한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LCS 결승 중계 현장을 갔다가 되게 인상적이었던 게, 결승을 미식 축구장에서 했어요. 휴스턴에 있는 대형 미식 축구장 NRG 스타디움에서 했는데, 경기장이 개폐식 돔이라서 닫고 반으로 가르더라구요. 반을 갈라서 한쪽에서는 저희가 이번에 강릉에서 했던 일종의 팬페스타(Fan Festa) 같은 걸 하는 거예요. 안에 스폰서존도 만들고 각종 이벤트도 하고 그러는데, 개폐식 돔이고 반을 막으니 얼마나 깜깜하겠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문화를 향유하는 거죠. 아시다시피 LoL을 만들어서 서비스하고, e스포츠를 하고, 아케인을 만들고 하는 이 모든 행위가, ‘게임으로 오프라인에서도 유저분들께 유의미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 현장에 갔을 때 강하게 느껴졌어요. 거기 오신 분들은 어떤 팀을 응원하고 거기에서 다양한 즐길 거리들을 체험하면서 더 깊이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문화에 대한 동질감, 연대감 이런 걸 갖고 돌아가시는 거죠. 그래서 저희도 이번에 ‘1박 2일간 팬페스타의 형태로 행사를 진행해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고요. 물론, 기획을 하면서는 팬페스타 담당자 두 분이 ‘우리 둘만 손잡고 이 넓은 경기장에 서 있는 거 아닐까’하는 악몽을 꾸실 정도로 압박감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거의 7천 명 정도의 관객분들이 오셨어요. 이런 문화 행사, 축제 현장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 저희에게도 큰 의미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접점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온라인 콘텐츠임에도 현장을 통해 유대감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편집장: 사실 e스포츠라고 표현은 하지만, 결승전은 일종의 피날레로서 반드시 오프라인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문화가 있죠. 그건 말씀하신 것처럼 몇만 명에 달하는 팬들이 와서 함께 함성을 지르고, 열광하면서 만들어지는 동질감과 유대감 때문일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아무리 온라인 시대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온라인이 미처 채우지 못하는 뭔가가 있지 않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러면 e스포츠의 현장감을 이야기할 때, 말씀해주신 부분들이 첫 번째는 아나운서의 캐스팅이었고, 두 번째는 오프라인에서 팬들이 가지는 유대감이라고 한다면 다른 요인은 없을까요? 함영승 PD: 선수들과의 상호작용이요. 저희가 공교롭게도 코로나가 터지면서 온라인 중계를 좀 했었어요. 그런데 온라인 중계를 진행하는 동안에 오프라인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게 비단 저희나 팬분들만은 아니었어요. 선수들도 느꼈어요. 선수들도 ‘롤파크 와서 경기하고 싶다.’, ‘관중들이 있는 곳에서 게임하고 싶다.’, ‘관중들의 그 열기를 느끼고 싶다.’ 선수들도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런 게 뭐 때문이냐면, 관객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멋진 플레이가 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환호성이 확 터지잖아요. 그런 걸 선수들도 느끼는 거예요. 그 울림이 느껴지는 거죠. 그때 선수들도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거예요. 특히 발로란트 같은 FPS 장르는 그런 지점에서 매력이 있는 게, 라운드가 명확하잖아요? 그러면 킬을 냈을 때 바로 함성이 빵빵 터져요.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그럴 때 선수들의 액션도 다른 게임에 비해 되게 크더라고요. 그런 것이 현장에 챈트(chant)를 유도해요. 편집장: 그러니까 선수의 플레이가 관객의 챈트 같은 새로운 인터렉션을 만들고, 거기에 또 선수가 반응을 하는. 그게 현장성이네요. 그것도 굉장히 핵심적인 지점이군요. 함영승 PD: 네.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 들어왔을 때 관객의 함성이 주는 웅장함, 그건 저도 많이 느껴봤어요. 저는 팬으로서도 많은 경기장을 다녀봤는데요. 텅 빈 데 가면 선수의 목소리가 다 들려요. 그런데 선수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도 긴장감이 별로 없어요. 반면에 관중이 꽉 들어찬 데서 울려 퍼지는 함성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있거든요. 그게 스포츠를 보는 재미를 한껏 배가시켜주는 거죠. 그러니까 그냥 선수들과 관중이 함께 한다는 것이 아니라, 관중들과 선수의 상호작용이 현장감을 만드는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에 팬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서 “하나, 둘, 셋, OO 파이팅!” 이게 그리운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어떻게 했냐면, 경기 시작 전에 직원들이랑 관계사, 외주사 직원까지 롤파크에 다 모여서 오디오 녹음을 한 적이 있어요. “하나, 둘, 셋, OO 파이팅!”, “하나, 둘, 셋, OO 파이팅!”. 그리고 결승전 앞두고 그걸 틀어본 적이 있었어요. 팬들이 오글거린다고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중에는 ‘저거 그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결국은 많은 관객들이 주는 전율 같은 걸 느끼고 싶은 거고, 내가 좋아하는 이 문화에 대한 연대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선수들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앞에 와서 인사를 하고, 끝나고 나서 팬 미팅을 하고 이런 접점이 있죠. 마치 아이돌 팬 미팅이랑 비슷한 형태의 문화가 있거든요. 전통 스포츠는 경기 끝나고 선수들 퇴장 동선에 서 있다가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는 경우는 있지만 매 경기 직후에 팬 미팅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제가 보기에 e스포츠만의 독특한 문화 같아요. 편집장: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 지점에서는 특히나 퍼즈(pause) 걸린 상황도 핵심적일 것 같네요. 다른 스포츠의 경우에는 오류가 나거나 우천 취소가 나거나 했을 때, 그냥 대기 상태로 오히려 현장감이 식는 분위기인데, LCK 중계에서 퍼즈는 본격적으로 캐스터와 팬들이 소통하고 상호작용이 가시화되는 게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함영승 PD: 일단 퍼즈 상황이 없어야 하는데 이번 시즌 게임 이슈 등으로 특히 자주 발생해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퍼즈 시 상호작용 같은 경우는 중계진 분들의 노고가 담겨있는데 아무래도 실시간으로 시청자 반응을 모니터링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좀 더 시청자들이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을 할 수 있죠. 그리고 성캐(성승헌 캐스터)님이나 해설자분들도 ‘어떻게 보면 부정적일 수 있는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세요. 이런 지점이 캐스터님이나 해설자분들께 부담이 되기도 하죠. 그래도 실시간 댓글 반응을 알 수 있고, 많은 분들이 노력해주시는 덕분에 그 시간을 치어플(응원 메시지)이나 영상 등으로 소통하면서 대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편집장: 현장성이라는 게 참 정의하기는 어려운데,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힌트가 곳곳에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러면 결론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e스포츠를 현장에서 만드시는 입장에서, 관객이 꽉 차고 시끌벅적했던 경기가 끝나고 빈 경기장을 보시면 집에 가기 전에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함영승 PD: 코로나 시기에 선수들도 숙소, 관중들은 무관중 저희만 이 현장을 지켰어요. 그러면 그 텅 빈 경기장에서 주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때는 저희가 항상 출퇴근할 때마다 약간 우울한 마음을 살짝 갖고 있었거든요. 이 텅 빈 극장을 지키는 관리인 같은 느낌이었어요. 경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딱 그런 느낌이에요. 연극 공연이 끝난 뒤에 텅 빈 무대를 보는 느낌. 그러니까 관중들이 오시면, 극장에 손님들이 와서 영화 보기 전에 팝콘 사고 기다리면서 설레는 그런 현장. 그거를 보면 그 에너지가 여기 있는 제작진들한테도 느껴지고, 선수들한테도 전달되는 것 같아요.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은 팬 미팅이 있고, 웅성웅성하지만, 그분들 다 떠나고 나면 3층 롤파크는 무섭습니다. (웃음) 상당히 어둡고 그 생명력이 싹 빠져나간 공간이 돼서 그런 느낌을 받아요. *시즌이 끝나서 텅 빈 롤파크. 함영승 PD의 말처럼 어둡고 외로운 느낌이 든다. 편집장: 그러면 마지막으로 아주 선택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 PD님은 방송 제작자이신가요? e스포츠 운영자이신가요? 방송 제작과 현장성이라는 두 영역 모두 걸쳐 있으신 것 같은데요. 함영승 PD: 저는 하는 역할이 그래도 아직은 방송 제작자에 가깝죠. 편집장: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감상들을 굉장히 많이 이야기해주셨잖아요? 스포츠 중계 때랑은 좀 다른 현장성인 거죠. 함영승 PD: 그게 어떻게 보면 제가 이쪽으로 옮기게 된 가장 큰 계기이기도 한데요. 저희가 경기장을 갖고 있는 거잖아요. 그 차이가 큰 겁니다. 그러니까 경기장을 갖고,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면서 방송을 하고 있는 거죠. 기존에는 전국에 있는 모든 경기장에 중계차를 갖다 대고 중계를 해도, 저희 경기장이 아니었어요. 그저 차려져 있는 경기장에 카메라를 대고 담아오는 거예요. 근데 여기는 밥상 자체를 차려야 해요. 그리고 차린 것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게끔 고민하고, 이를 위해서 이벤트 팀이나 리그 운영이나 사업팀 모두의 행위들이 종합되어서 현장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KBO이자, 스포츠방송 제작사이자, 잠실 야구장이에요. 이 3개가 결합되어 있는 구조인 거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제가 이쪽으로 옮기게 된 것이에요. 편집장: 현장에서 고민하는 방송 제작자의 길을 걷고 계시는군요.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이번 논문 세미나는 하나의 사진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11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찍힌 이 사진에서 오바마를 비롯한 현장의 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회의를 하면서 띄워둔 자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심각한 문제 발언을 했던 걸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사실 빈 라덴 급습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지켜보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 Back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18 GG Vol. 24. 6. 10. 들어가며 이번 논문 세미나는 하나의 사진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11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찍힌 이 사진에서 오바마를 비롯한 현장의 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회의를 하면서 띄워둔 자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심각한 문제 발언을 했던 걸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사실 빈 라덴 급습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지켜보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이 사진이 보여주는 건 두 가지다. 첫째, 이제는 그 어떤 전투(또는 전쟁)든 원격으로 지켜보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지금 내 눈앞에서 전투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는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있다. 이제 전투는 우리 눈에 굳이 보이지 않아도 될 만큼 빨라지고, 또 효율적이 되었다. 그리고 일찍이 이에 관한 것을 이론화한 인물이 프랑스의 정치 이론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다. 오늘 보게 될 데이비드 웨딩턴(David I. Waddington)의 논문은 비릴리오의 <속도와 정치(Vitesse et Politique)> 및 <소멸의 미학(Esthetique de la disparition)>을 통해 실시간 전략 게임(Real-time strategy, 이하 RTS 게임)을 살핀다. 교육철학 연구자인 웨딩턴은 비릴리오의 이론을 RTS 게임과 아울러 보고, 해당 게임이 가진 교육적 가능성을 발굴해 내고자 한다.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 비릴리오(Virilio, 2004)는 <속도와 정치>에서 정치 및 전쟁을 ‘속도’에 연관 지어 바라보았다. 그는 해당 저작을 통해 속도는 곧 시간과 같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런 비릴리오의 사유는 고대부터 190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비릴리오 연구자인 존 아미티지(John Armitage)는 그의 사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본디 도시는 요새화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인 공간이자 토대였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요새화된 도시는 점차 사라졌고, 비릴리오는 이 같은 변화에 집중했다. 그 안에서 비릴리오가 주요하게 보고자 한 것은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된 이유였다. 아미티지(Armitage, 2003)는 비릴리오가 쉽게 운반할 수 있고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설명한다. 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 건 운반 시간을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며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했다는 건 이전보다 더욱 빠른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릴리오가 정치와 전쟁을 속도와 연결 지어 보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그래서 비릴리오가 볼 때 전쟁은 속도의 문제이며, 속도는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즉 군사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속도에 관한 요소들이 나타나면서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게 비릴리오의 주장이다. 이런 비릴리오의 의견은 맑스와는 대조적이다. “맑스가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을 쓴 곳에서 비릴리오는 군사적 역사 개념”(Armitage, 2003, 10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문의 연구자인 웨딩턴도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을 몇 가지 핵심 요소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에른스트 윙거(Ernst Jünger)에게서 따온 ‘총동원’이라는 용어다. 총동원은 전시 상황/비전시 상황을 가리지 않고 사회에서 활용되는 것들을 함축한 말이다. 이것은 경찰의 군사화, 신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감시의 증가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두 번째는 ‘병참’이다. 병참은 비전시 상황에도 사회의 에너지를 군대에 모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병참은 총동원이 보이는 형태들과 연결되며, 세 번째 요소인 ‘공간의 붕괴’로도 통한다. 과거에는 좋은 지형(공간)을 선점하고, 그 지형을 감시와 위협에 활용하는 것이 전쟁에서 유리해지는 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그 성격이 바뀌었다. 컴퓨터와 드론, 미사일, 핵무기가 공간의 의미를 잃게 만든 것이다. 이제 공간을 선점하는 것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전쟁을 벌이던 공간은 붕괴하였으며, 유리함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활용해야만 한다. 네 번째 요소는 ‘사라짐’이다. 그동안 전쟁의 이미지는 탱크, 전투기 등으로 대표되었지만, 오늘날의 전쟁에서 탱크와 전투기는 이전만큼 보이지 않는다. 사실 탱크와 전투기의 사라짐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일련의 단계가 존재한다. 지금은 위장하기 용이한 색과 무늬를 띠고 있으나, 이전의 군복은 눈에 띄는 밝은 색상이었다. 이런 군복은 점점 사라져,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럼, 거기서 끝일까? 아니다. 위장된 군복을 입은 군인은 탱크와 전투기 속으로 사라졌다. 맨몸으로 치고받으며 행해지던 전투는 차체와 기체를 이용하여 행해졌다. 그리고 이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된’ 전쟁은 최종적으로 사회 구조에서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전쟁은 일상 어디서든 함께하고 있다. 이렇게 비릴리오의 이론을 정리한 웨딩턴은 그러한 관점을 토대로 RTS 게임을 바라본다. 그는 총동원, 병참, 공간의 붕괴를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장소 중 하나로 게임, 그중에서도 RTS 게임을 지목한다. 속도: 게임의 이름 이 연구는 RTS 게임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웨딩턴은 FPS 게임과 MMORPG 게임 또한 비릴리오의 이론에 적합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웨딩턴이 RTS 게임만을 본 건, 해당 게임이 총동원과 병참, 공간의 붕괴, 시간이 중요해진 전쟁을 제대로 이미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딩턴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예로 들어 RTS 게임의 작업 단계를 설명한다. 첫 번째는 자원 채집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자원이라면 광물과 가스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실시간 전투 여부에 상관없이 꾸준히 축적해야 하는 것이다. 자원을 채집하기 위해서는 유닛의 쓰임새를 구분할 줄 알고, 자원 채집 장소를 탐색하는 등 여러 관리가 필요하다. 이 자원채집은 ‘총동원’에 해당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총동원이 떠오르는 작업이 있다면 ‘병참’에 걸맞은 작업도 있기 마련이다. 바로 건물 건설과 군사 유닛 생성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유닛을 생성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건물을 건설해야만 한다. 건물은 곧 강력한 유닛 생성과 연관되며, 이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승리를 위한 밑 작업인 건물 건설과 유닛 생성은 총동원 격인 자원채집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병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공간의 붕괴’로 대표되는 건 본거지를 방어하면서 적군을 제거하고, 적의 기지까지 파괴하는 행위이다. 특히나 강력한 군사 유닛은 혼자서도 밝혀지지 않은 맵을 탐험하고 적 기지를 감시하며, 원거리 급습을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게 한다. 테란의 유닛인 고스트로 적 기지를 조사하고 핵탄두를 떨어트리는 게 이에 해당할 것이다.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그 의미처럼 RTS 게임은 속도가 중요한 환경에서 펼쳐진다. 일꾼 유닛과 군사 유닛을 신속하게 배치하고 생산과 탐사를 효율적으로 할수록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플레이어는 재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속도에 따라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웨딩턴은 RTS 게임이 시간을 활용한 전쟁 게임이라고 본다. 학습과 RTS 게임: 긍정적인 관점 앞서 이야기했듯이 웨딩턴은 교육학 연구자이다. 그래서인지 웨딩턴은 이번 장에서 비릴리오의 개념을 잠시 내려두고, 다른 연구를 인용하며 RTS 게임이 가지는 학습 효과를 살핀다. 먼저 웨딩턴이 인용한 지(Gee, 2003)의 글은 RTS 게임을 하면서 느낀 압박감을 서술하고 있다. 지는 RTS 게임에 미숙하여, 게임이 요구하는 것보다 느린 속도를 가진 플레이어였다. 이런 지는 <라이즈 오브 네이션스(Rise of Nations)>를 통해 게임을 학습하는 방식에 대해 풀어낸다. 이를테면 지는 게임 내 일시 정지 버튼에 관심을 보였다. 일시 정지 버튼은 빠르게 진행되는 게임을 잠시 멈추게 하여, 플레이어가 화면 내 기능들을 살피고 전략을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해당 게임에는 조작 숙달을 돕는 각종 테스트가 존재했다. 지는 그를 통해 일종의 단련을 할 수 있었다. 일시 정지와 테스트로 나타나는 시스템의 배려는 게이머가 언제든 전투에 참여할 수 있게 대비시켜 준다. 웨딩턴이 지의 이야기를 끌어온 건 느린 속도의 게이머가 ‘실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위해서다. 그러면 웨딩턴이 이 주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 후에 인용된 블레어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블레어(Blair, 2013)는 <스타크래프트 2(StarCraft 2)>를 비롯한 RTS 게임의 플레이어 주도적인 통제 환경이 실생활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사실 여기에는 다양한 반박이 가능하다. 한 분야에서 획득한 전문성을 곧장 다른 영역에 적용하기 어렵다는(Thorndike & Woodsworth, 1901) 의견을 이 반박에 포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웨딩턴은 그를 인지하면서도, 블레어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에 더 주목하였다. 학습에 활용될 수 있는 RTS 게임의 가능성을 보려고 한 것이다. 학습 속도: RTS 게임과 경험의 아치 지와 블레어 두 사람은 RTS 게임에서 획득할 수 있는 학습 효과를 서술하였다. 지의 경우에는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어를 그 안으로 이끌 수 있을지 말하고, 블레어는 게임으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해 얘기한다. 이에 웨딩턴은 그들의 주장에서 도출해 낸 생각을 밝힌다. 하나는 게임을 속도와 효율성을 단련하는 훈련으로 본 자신과 저들의 이야기가 일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에서 학습되는 요소가 눈에 띄는 만큼, 그 안의 문제성도 관심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웨딩턴은 특히 후자를 유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임을 통한 학습이 가지는 문제점은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훈련 시킨다는 데에 있다. 이 사고방식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활용 가능한 것으로만 보는 시선(Heidegger, 1977: Ellul, 1964: Dreyfus, 2002: Borgmann, 1984, 1992 재인용)을 의미한다. 이런 부분에서 웨딩턴이 전유하는 속도 개념은 RTS 게임을 비롯하여 여타 게임으로 학습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게임 경험은 우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성장했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선이 무미건조해지지는 않겠는가? 교육학자인 듀이(Dewey, 1938)는 “모든 경험은 이전에 있었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흡수하는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이후에 오는 경험의 질을 수정”(12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모든 경험은 아치’와 같다는 시를 인용하여, 경험에 차별을 둘 근거는 없다고도 이야기했다. 이번 장 제목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 듀이의 글은 RTS 게임 경험과 학습에 대한 웨딩턴의 생각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듯하다. 주요 이의 제기 경험을 아치에 빗댄 듀이의 글은 사실 게임 내 폭력적인 경험이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웨딩턴은 게임에서 행해지는 폭력적인 행위가 단순 놀이로만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시카트(Sicart, 2009)의 주장은 게임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주류 의견에 반대된다. 시카트는 플레이어가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을 따르므로 그러한 행동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때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은 몬스터를 죽이고 골드를 얻는 것과 같은 행위를 뜻한다. 이런 시카트는 플레이어 개인의 가치와 판단 능력이 게임 시스템과 결합하여 새로운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시카트의 주장은 <맨헌트(Manhunt)> 분석을 통해 심화한다. <맨헌트>는 사람을 쇠지레로 때려죽이거나 비닐봉지로 목 졸라 죽이는 등 실제 살인이 연상되는 잔인함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맨헌트>는 내용상 무조건 살인을 저질러야만 하는데, 시카트는 이렇게 강제된 상황이 오히려 윤리에 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다고 설명한다. 웨딩턴은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런 반성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지만, 시카트의 지적 자체는 옳다고 말한다.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벌이는 행동과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는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딩턴은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RTS 게임에서 속도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가상의 폭력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보다, 가상의 속도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예를 들면 <맨헌트>에서 가상의 살인을 저질러도 현실의 내가 살인자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게임 도중 재빠른 판단을 내리는 이는 이후에도 판단력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한 마디로 게임을 하면서 나타난 속도는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둘째, RTS 게이머는 플레이 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속도와 효율을 꼽는다.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가 자신의 속도를 높이는 것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는 연구 결과(Kow and Young, 2013: Yan, Huang, & Cheung, 2015 재인용)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만큼 속도는 RTS 게임 한 판 한 판을 책임지는 필수 요소다. 웨딩턴의 서술 흐름이 시카트에서 속도 개념으로 흐르게 된 것은 게임과 속도에 관련된 담론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반영된 게 크다. 웨딩턴이 보는 RTS 게임은 모든 것을 자원으로 보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효율성에 관해 학습할 수 있는 장소다. 또한 전쟁이 일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 전쟁 체험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을 속도와 연결해 바라보는 시도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웨딩턴은 게임이 실제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처럼 속도에 관한 것도 주시해 보기를 제언한다. 나가며 웨딩턴이 속도 개념을 이용해 궁극적으로 역설하고자 한 건 게임을 통해 효율적인 학습, 내지는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웨딩턴의 주장은 자칫 효율 중심적인 사고로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는 웨딩턴 그 자신 또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비릴리오의 속도 이론은 웨딩턴이 전개한 것과는 달리, 비판적인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물론 비릴리오가 기술의 긍정적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글에 기술에 대한 경계가 서려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웨딩턴의 주장은 교육학 연구자라는 그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지만, 비릴리오의 속도가 왜곡되게 이해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움이 남는다. 그래도 웨딩턴의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해 보자면, 효율성이 게임의 인상에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낙관적인 생각도 든다. 게임을 통해 학습 효과를 증진시키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상당한 이점이다. 즉 그동안 지배적이었던 폭력성이나 중독에 관한 담론을 탈피할 가능성도 생긴다는 소리다. 그러나 몇 가지 질문도 함께 남는다. 게임은 오직 효율성을 입증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게임에서 효율성과 학습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근 게임을 이용한 교육이 조명받기 시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 이는 앞으로의 게임과 우리의 인식에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Armitage, J. (2003). 폴 비릴리오의 정치 이론-<속도와 정치>를 중심으로 (서문), <속도와 정치> (7-42쪽). 이재원 (역)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Blair, M. (2013). Real-time strategy video games; a new ‘drosophila’ for the cognitive sciences. [Online video]. Retrieved from https://www.sfu.ca/cognitive-science/defining-cognitive-scienceseries/dcs-archive/2013/spring/blair-rts-games-expertise.html (현재 이용 불가) Borgmann, A. (1984). Technology and the character of contemporary life. Illinoi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Dewey, J. (1938). Experience and education, Free Press. Gee, J. P. (2003a). What video games have to teach us about learning and literacy. London: Palgrave-MacMillan. Gee, J. P. (2003b). Learning about learning from a video game: Rise of nations. Wisconsin: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Sicart, M. (2009). The ethics of computer games. Massachusetts: MIT Press. Thorndike, E. L., & Woodsworth, R. S. (1901). The influence of improvement in one mental function upon the efficiency of other functions. Psychological Review, 8(6), 247-261. Virilio, P. (1977). Vitesse et Politique. 이재원 (역) (2004). <속도와 정치>.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Yan, E. Q., Huang, J., & Cheung, G. K. (2015). Masters of control: Behavioral patterns of simultaneous unit group manipulation in StarCraft 2. Paper presented at the Proceedings of the ACM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Seoul. Tags: 비릴리오, 가속, 속도의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융합예술과 문화연구를 공부했습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 [공모전]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게임 세계의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은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무료 플래시 게임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디오 게임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커비와 똑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플래시 게임에 빠져 있었다. 정식 게임판의 커비보다 이 안광 없는 가짜 “커비”와 먼저 면을 익혔다. 그때의 기준으로도 비춰봐도 결코 흥미진진한 게임은 아니었다. < Back [공모전]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13 GG Vol. 23. 8. 10. 1. 게임 세계의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은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무료 플래시 게임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디오 게임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커비와 똑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플래시 게임에 빠져 있었다. 정식 게임판의 커비보다 이 안광 없는 가짜 “커비”와 먼저 면을 익혔다. 그때의 기준으로도 비춰봐도 결코 흥미진진한 게임은 아니었다. 이 “커비”도 정식 게임판의 커비처럼 적을 빨아들이거나 뱉으면서 납작한 2차원 세계를 전진해나갔다. 숨을 참으면 둥둥 뜰 줄도 알았다. 다만 이 “커비” 게임의 어떠한 장애물도 시간을 바쳐 극복할 가치가 없었다. 몬스터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의무라도 지키듯이 듬성듬성 떨어져 돌아다니며 내외했다. 모아봐야 아무런 효능이 없는 별들이 잘도 모였다. 탈출해야 하는 구덩이는 얕았고, 점프해 올라타야 하는 발판은 낮았다. 분량은 짧았다. 조물주는 이 세계를 완성하지 않고서 소피를 보러 떠난 것 같았다. 그렇게 떠나버리고서, 무언가를 미완으로 남겨두고 떠나왔다는 사실조차 영영 잊어버린 것이다. 십분 이상 잡고 있을 가치가 없는 조잡하고 공허한 게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매혹되었다. "커비"는 무성의하게 마지막 발판에 도착해 승리의 깃발을 올린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면, 발판이 사라지고 발판 없는 바다가 이어졌다. "커비"는 이 바다 위로 날아갈 수 있었다. 키만 주의해서 누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날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콜럼버스라고 상상하는 어린이 제국주의자는 이 바다에 매혹되었다. 언젠가 그 넓디넓은 바다를 횡단하고, 인내하는 자들을 위하여 마련된 히든 스테이지를 발견하리라 믿었다. 그렇게 수 시간 동안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키를 눌렀다. 숨을 참으며 둥둥 떠다니는 커비를 지켜보았다. 영원에 육박하는 시간이 더 지났다. 영원은 그 채도 높은 평면의 바다, 수면에 닿으면 바로 숨이 넘어가는 지옥의 바다, 파도 한 번 치지 않는 적막의 바다가 무한히 반복되는 병풍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해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사실을 이해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분통을 터뜨렸고, 사기극에 휘말렸다고 믿었으며, 땅이 꺼지는 허무로 괴로워했다.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의 실존이란 무엇인지 자문하고 또 자문하고, 시대의 진리가 될 답변을 거의 얻을 뻔했다... 2. 게임 세계의 종점, 그것은 사실 신대륙일 필요도 없었다. 최소한 세계 끝자락의 상어라도, 상어의 지느러미라도, 이마를 찧어야 하는 벽이라도 발견하면 족했다. 더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 전진의 여지는 필연적인 근거를 갖고 생성된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제는 추억이 된 커비 플래시 게임을 제작한 익명의 인물은 진행을 가로막는 벽이나 끝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러나 아바타의 공간적 이동의 여지를 마련한 게임에 있어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출발선에서 시작해 결승선에 달하는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제작자의 의도와 게임 장르의 오락적 규약의 다발들 사이의 교류를 통해서 그려지는 필연적 배치에 의한 것이다. 플레이어는 이 필연적 배치 안에서 자신이 예상치 못한 무언가와 조우를 강제당하기를 원한다. 정확히는 예상한 범위 내에서 예상치 못한 조우를 강제당하기를 원한다. 스테이지로 나뉜 플랫포머 게임에서, 그 최후의 대단원이 되어 줄 조우는 마지막 스테이지에 일어날 것으로 흔히 기대된다. 측면의 얼굴만 보여주는 수줍음 많은 플레이어의 아바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한다. 하나의 스테이지는 다른 스테이지로 향하기 위해 돌파해야 하는 이차원적 통로면서, 그 돌파를 방해하는 물리적 저항이기도 하다. 공중에 떠 있는 발판은 점프를 지시한다. 밧줄은 위로 올라가기를 지시한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발판은 타이밍에 맞는 점프를 지시한다. 구덩이 속 뾰족뾰족한 가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점프를 지시한다. 스테이지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플레이어가 아바타를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지시하는 추상들의 구문이기도 하다. 게임의 공간적 끝, 게임의 마지막 행위, 게임의 마지막 무대(stage)를 보고자 하는 소망은 그러므로 중첩되고, 혼재되며, 나뉘어 떨어지지 않는다. 플랫포머 게임에서 최후의 공간, 최후의 조우에 대한 소망은 더불어 충족된다. 가령 <슈퍼 마리오Super Mario> 시리즈는 쿠파와 같은 강대한 보스와 대결하고 납치된 피치 공주를 구조하는 스테이지를 항상 대단원의 스테이지로 삼는 전통을 갖고 있다. 반면 <슈퍼 마리오> 의 안티테제이고자 하는 게임 <브레이드Braid>는 플레이어가 마지막 스테이지에 이르러서야 여태까지의 여정과 전진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무대를 배치한다. 주인공이 공주를 구하고자 달려온 게 아니라, 그 주인공으로부터 달아나는 공주를 쫓고 있었다는 진실 말이다. 스테이지 게임 저변에 깔린, 명쾌하고 명료하며 직선적인 이야기는 한편으로 스테이지 간의 근원적인 단절을 숨기고, 좌우로 길게 봉합된 스테이지의 연쇄를 통과하며 전진하고 있단 환상을 유지한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의 변용인 게임 <돈룩백Don’t Look Back>은 공간적 연속성이란 환상을 선형의 이야기가 지탱하는 구조를 잘 보여준다. 말 없고 추상적인 픽셀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케르베로스와 하데스를 상대하고, 붉은 용암을 뛰어넘으며, 에우리디케의 혼을 만나 함께 무사히 지하 세계를 빠져나온다. 그러나 주인공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대안적이고 희망적인 결말이 아니라, 묘지를 떠난 적조차 없는 자기 자신의 뒷모습을 마주한다. 스테이지 구조의 수미상관은 이 아바타가 전진하는 게 아니라, 죽은 자가 구원되지 않고 단지 썩어갈 뿐이란 사실로부터 달아나고 있었음을 표명한다. 묘지를 애초에 떠난 적조차 없다는 진실은 스테이지 게임의 불안정한 틈새를 벌려 보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며 플레이어는 이전 스테이지와 이후 스테이지를 지나친다. 그 통로의 연속성은 시간적 선후 관계와 공간적 연결을 혼동하는 결과물로서만 담보될 수 있다. 이 연속성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혹은 순식간에 믿음직스럽지 못해질 수 있는지를 전진과 회귀의 구조를 통해 <돈룩백>은 보여준다. <돈룩백> 시작 화면 플랫 포머 게임들은 이처럼 이차원적인 움직임으로서의 전진에 대한 비평을 게임 내적인 논리에서 마련한다. 그 비평은 특히 게임이 제공하는 최후의 조우와 최후의 공간을 중첩하는 방식에 따라서 특유의 완결된 형식미를 갖춘다. 그러므로 가짜 커비 게임에서, 게임의 끝을 아직 마주하지 않았다는 감각이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했고, 그 끝이 한참 전부터 반복 재생되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형식미가 부재하며 의미화되지 않는 전진과 그 전진의 최종 국면이란 게임 세계에서 용납될 수 없어 보였다. 3. 게임 세계의 종점으로 향하는 선로가 증식한다. 무료 플래시 게임을 섭렵한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좋은 사양의 콘솔 기기, 게임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공간, 대형 제작사의 게임을 구매할 돈 등을 통해 얻은 접근성으로, 나는 소위 "오픈 월드Open-World" 게임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종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망은 "오픈 월드" 게임의 진화로 인해 더욱 복잡다단하게 변화한다. “자유롭게 배회하는Free-Roaming”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오픈 월드”는 형식미가 부재하며 의미화되지 않는 무한한 전진을 장려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오픈 월드”는 게임의 3차원적인 종점에 해당하는 경계 지대를 필연적으로 탐색할 필요는 없도록 공간을 구조화한다. 우선, “오픈 월드"는 게임 디자인 차원에서 엄밀히 정의된 개념이기보다는 사용자들이 특정 게임 경험을 유형화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임을 밝혀야겠다. 게임 기술의 발전과 컴퓨터 사양에 크게 의존하는 ”오픈 월드“는 게임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서 상대적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어떤 오픈 월드는 거짓 오픈 월드고, 어떤 오픈 월드는 진정한 오픈 월드란 식의 판정을 벌이는 토론은 포럼에서 아주 흔히 보이고, 이는 오픈 월드가 게임을 분류하는 항목인 동시에 가치의 척도로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사용자들은 근 10년 이내에 발매된 동시대의 오픈 월드 게임을 말하며 함께 GTA, 젤다의 전설, 위쳐 3,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 폴아웃 3 이후의 폴아웃 시리즈 등을 떠올린다. 내러티브를 가진 ”오픈 월드“로서 잘 알려진 이 대형 게임들에 대한 대체적 진술로서 ”오픈 월드“를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사용자들은 이동 제약의 제거를 기대하고, 이동 제약의 제거를 실감할 수 있도록, 오픈 월드 게임은 제작 단계에서 복수의 진로, 단 하나의 선택지가 아닌 선택지의 다발을 염두에 두게 된다. 오픈 월드 게임은 더불어 영영 멀어지는 지평선이 있는 광대한 풍경으로 플레이어를 초대한다. 1인칭 카메라를 통해 플레이어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로 화하며, 3인칭 카메라의 경우, 지평선 앞에 자리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아바타의 뒷모습을 비춘다. 이 카메라는 360도로 돌아갈 수 있는 경우가 잦지만, 원근법상 현실적인 축적과 눈높이를 갖고서 게임 세계에 떨어진 플레이어의 아바타를 비춰야 한다. 플레이어는 지도를 켜거나 미니맵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실시간 위치를 식별한다. 또한, “오픈 월드”는 게임 스테이지(stage)에 의한 분단과 로딩을 최대한 제거하고자 한다. 그리고 변형의 가능성으로부터 닫혀 있는 방해물이었던 오브젝트(object)는 되도록 플레이어의 조작을 통해 이동 혹은 변형 가능한 원자재로서 나타나야 한다. 더불어 게임의 내러티브와 여러 가지 목표들은 플레이어가 직선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저마다의 진로를 개발해내고, 방사선과 같이 뻗쳐 나가는 확산적인 배회를 장려한다. <위쳐 3>의 전체 맵 스테이지 게임의 형식미는 방해물을 뛰어넘으면서 돌파해 가야 하는 진로이자 그 진로에 대한 저항력으로서 공간을 추상화한다. 그러므로 더는 전진할 수 없는 최후의 공간은 여정의 결말이 펼쳐지는 대단원의 무대와 동일시된다. 반면 “오픈 월드”에서, 맵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지역은 끝자락이라는 이유만으로 최후의 조우가 벌어지는 공간적 배경으로 배치될 필연성을 갖지는 않는다. 경향적으로 “오픈 월드”의 주요 이벤트는 전체 지도의 중심부에 밀집되어 있다. 게임의 여러 사건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지점을 표시하는 지도의 마크가 얼마나 밀집되어 있는지를 통해 우리는 그 경향성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중심부는 플레이어가 게임의 중반 즈음에 진입하고, 그 이후 가장 자주 드나들게 되는 곳이며, 사방으로 “열려 있다”는 점에서 “오픈 월드”의 공간적 한계에서 오는 이질감을 가장 옅게 느끼는 장소이다. <위처 3>의 “노비그라드”나 <폴아웃 4>의 “다이아몬드 시티”에서 그러하듯이, 중심부는 자주 동시대인의 지리적 현실성에 대한 감각에 반응하여 상공업이 활발한 도시, 문명의 중심부, 서로에게 이방인인 자들이 모이고 자본이 축적되는 메트로폴리스로 나타난다. 사건과 갈등과 정치가 중심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수많은 사연을 지닌 NPC들을 마주친다. 축적해놓은 재물과 귀중품을 팔 상가를 찾을 수도 있다. 중심부는 게임의 엔딩을 보고자 하는 플레이어는 한 번은 반드시 발을 디뎌야 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갖는 게임이 무한히 확장되며 무한한 자유를 갖고서 배회하고, 무한히 다양한 사건과 조우할 수 있는 공간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하기는 불가능하다. “자유로운 배회”도 복수의 다발을 가진 플레이어의 진로도 지향될지언정 결국에는 제한될 운명이다. 지도의 어느 경계에 이르러 플레이어는 한 발자국도 더 뻗어 나아갈 수 없는 종막에 도달한다. 경계 너머는 로딩되지 않는다. 경계 너머가 애당초 만들어진 바 없으며, 그러므로 두 영역을 나누는 경계조차 애초에 존재한 바 없기 때문이다. 경계 대신 항시 존재해왔던 건 벽이다.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영상 작업 <평행 1~4> 연작이 우스꽝스럽고 집요한 충돌을 통해 보여주듯이, 그래픽은 플레이어가 렌더링의 끝을 표지하는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게 아니라, 산맥, 강줄기, 절벽과 같은 자연적 지형지물에 의해 진행이 불가하다고 주장하고, 그 주장만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일은 실패하고 만다. 파로키의 <평행> 연작만을 보면 오픈 월드에 있어 경계 너머란 현실성을 자처하는 게임 세계의 가상성과 허위를 폭로하는 시각적 신기루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신기루는 그 착시의 효과가 존속되어야만 하는 신기루다. 오픈 월드가 자청하는 현실주의의 설득력이 지탱되기 위하여 공간은 단절되어서는 안 되고 계속해서 연장되어야 한다. 이곳이 곧 끝이지만, 게임 내적으로 이곳이 곧 끝이라고 선언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설. 경계 부근은 열린 세계의 닫힌 지역이라는 점에서 오픈 월드의 모순이 격화되는 장소다. 그리고 그 모순을 요철 없이 매끄럽게 만들기 위하여, 게임은 시각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다양한 전략을 활용한다. 오픈 월드 게임은 활발하게 변방, 오지, 무인지대에 대한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 자주 변방은 천연자원의 제공처로서 나타난다. 오픈 월드 맵의 주변부는 상대적으로 NPC의 인적이 드물며, 사건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황무지, 야생지, 원시림인 경우가 잦다. 자연물은 투명한 벽을 가리는 시각적인 눈속임의 기능으로만 머물지는 않는다. 오픈 월드의 경계지에 도달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하여 게임은 진귀한 광물 자원과 희귀한 동물 가죽을 찾는 등의 보상을 준비해둔다. 손상되지 않은 천연자원을 제공하는 변방을 그리는 가장 대표적인 게임 공간으로서,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북서쪽 산맥 부근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로키 산맥을 본뜬 이 산맥은 되짚어 돌아갈 수 없는 서부 개척 시대와의 단절을 가파르게 물리적으로 표시하며 경외감을 일으킨다. 두꺼운 옷을 인벤토리에 챙기지 않으면 동상을 입게 되는 이 산맥 부근은 희귀한 알비노 물소와 백마가 서성거리며, 가죽이 손상되지 않아 가치가 높은 야생 동물들이 뛰노는 곳이기도 하다. 아트 디렉터 아론 갈버트는 한 인터뷰에서 램브란트와 같은 목가 화가에 덧붙여서 알버트 비어슈타트Albert Bierstadt와 같은 19세기 미국 풍경 화가로부터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영감을 받았음을 밝힌다.1) 램브란트만큼 잘 알려져 있진 않은 알버트 비어슈타트는 미국의 자연을 발명하고자 하는 국가주의적 수요에 발맞춰서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서부의 야생지를 그리며 명성을 얻은 자연주의 화가다. 그에 대한 당대의 논평 하나는 그의 풍경화를 “숭고한 자연의 형태와 무례한 야만인의 삶”을 담아낸 “순수히 미국의 풍경”이었노라고 상찬한다. 변방이 만들어진 제국의 자연으로서, 제국의 문명이 결국에 극복하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서 재현되거나 혹은 해석되어 온 역사는 길고 강고하다. 그것은 변방을 변방으로 여기지 않으며 살아온 선주민의 역사를 망각하는 방식으로 강고해져 왔다. 자연에 대한 사실주의적 재현으로서 널리 알려진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풍경과 알버트 비어슈타트의 연결 고리는 형식 없는 자연이란 언제나 이미 형식으로서 현현함을 한 번 더 상기시킨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목가적 풍경과 대조적으로, <사이버펑크 2077> 세계의 최남단 변방은 동시대의 갱신된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를 반영하듯이 메트로폴리스가 토해낸 폐기물이 마천루만큼 드높게 쌓여가는 매립지로 상상된다. 최북단 변방은 가동을 멈춘 유정으로, 주인공의 인격에 빌붙어 사는 전직 로커이자 테러리스트 귀신인 조니의 시체가 유기된 곳이다. 실상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 없는 논평일 때가 잦은 사이버 펑크 세계관에서, 변방은 중심부 도시의 폐기물이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부표로서 매여 있는 토성의 고리이며, 과거의 산업 폐기물과 과거의 저항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폐기되는 곳이다. 또한 모두의 발길이 닿지는 않는 맵의 주변부는 그 게임의 서사적 필연성 외부를 맴도는 존재들을 끌어들여 플레이어를 위한 의외의 조우를 성기게 마련한다. <위쳐 3>은 <레드 데드 리뎀션 2>와 달리 비옥한 자연이 아니라 전란으로 황폐해진 늪지대 벨렌을 의미심장한 변방으로서 제시한다. <위쳐 3>의 세계는 중세에서 르네상스에 걸쳐있는 유럽 생활사와 민속 신앙 속 이물들이 동위에서 뒤얽힌 세계다. “노맨즈랜드”라는 별칭을 가진 벨렌은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 전의 게롤트가 초중반에 머물며 능력치를 올린 뒤 떠나는 출발점과 같은 장소다. 탈영병을 린치하는 것이 이 동네 오락의 전부고, 돼지와 사람이 뒤엉켜 자는 오두막 몇 개가 비스듬하게 기대선 게 마을의 전부다. 흙길은 가축 오물과 노상 방뇨한 오줌이 끊기지를 않는 장마 속에서 고여 매일 뻘과 다름없는 상태다. NPC에게 말을 걸어도 욕설을 하거나 가래침을 뱉을 뿐이다. 주인공 게롤트는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며 중세 대학 도시, 부농들의 과수원과 농장, 르네상스 극단과 범죄 조직이 들끓는 대도시와 같은 흥미진진한 공간들을 통과한다. 그 과정에서 불쾌한 사람들과 불쾌한 공기만 넘치는 벨렌은 돌아갈 이유가 크게 없는 장소이자 변경지대가 된다. 푼돈을 받고서 역사보다 오래되고, 미신적으로 숭배받는 괴물들을 처단하고 다니는 걸 업 삼은 게롤트는 빈곤한 밭과 아이에 매여 돼지와 엉켜 잘 도리뿐인 NPC와 달리 자유로운 이동의 특권을 가지고, 괴수의 미신적인 힘을 조소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의 압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무적의 게롤트도 상대하지 못하는 여성 괴물들이 벨렌의 가장 가난한 경계 지대에서, 늪 지대의 가장 깊은 곳에서 군림한다. 운명의 여신처럼 세 자매인 그들을 게롤트는 스토리 상으로도 퀘스트로도 결코 완전히 죽이거나 이기지는 못한다. 거듭해서 성장하며 거듭해서 정복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특권이 닿는 영토 너머에서 그들은 존재한다. 게롤트는 잊혀진 세 자매의 영토로 돌아와서 그가 비웃던 미신적인 힘에 사로잡히기를 자처한 것처럼 죽은 자의 유품을 구한다.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무익한 싸움을 하고서 덫에 걸린 개처럼 무명의 죽음을 맞는다. 벨렌은 최악의 결말, 최악의 상실을 할당받은 변방, 중세인들 사이에서 근대인과 같이 자유롭고 합리적인 남성 주체이고자 했던 게롤트의 의외의 악몽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변방은 자주 지배적인 현실주의를 반영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현실주의와의 분절을 도리어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데스스트랜딩>의 타르 강을 떠올려 보자. <데스스트랜딩> 세계에서는 죽은 자가 “BT”로 불리는 반물질 유령으로 변모하기 때문에 시체가 시한장치가 달린 핵탄두와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살육은 편리한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비살상으로 주어지지만, 어쩌다 사람을 죽이게 되면 언제나 트럭에 시체를 켜켜이 쌓는 동작을 진행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폐기하기 위해 달려 가야 한다. 소각로로, 혹은 타르로 가득한 호수와 강으로. <데스스트랜딩> 최북단 변방은 시체를 한 구 한 구 다시 옮겨서 소각해야 하는 소각로보다 편리하게 수장시킬 수 있는 폐기처다. 플레이어는 거대한 타르 강에 시체를 밀어 넣기 위하여 그곳을 찾게 된다. 그 강은 투명한 벽과 달리, 그 무엇도 가라앉은 뒤로 떠오를 수 없고 다가서는 무엇이든 먹어치우고자 하는, 입이 달린 경계로서 숨 쉰다. 시체는 느릿느릿하게 타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 경계는 벽이라기보다는 현세에 현신한 테티스 강과 같다. 강은 그러나 탐욕스럽거나 두렵기보다는 모든 더러운 육체와 녹슨 폐기물(두 가지는 다르지 않아 보인다)을 삼킬 수 있는 자애로운 구순으로서 상호작용한다. 오픈 월드의 변방은 공간의 차등화와 분절화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논평인 동시에, 현실주의에 반하는 새로운 지리학을 체현하는 픽션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다. 오픈 월드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고 하는 변방은 도리어 서사적 필연성과의 느슨한 관계 속에서 그 “열린 세계”의 정체성을 축약해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1 )Gies, Arthur. “The Painted World of Red Dead Redemption 2.” Polygon, 26 Oct. 2018, www.polygon.com/red-dead-redemption/2018/10/26/18024982/red-dead-redemption-2-art-inspiration-landscape-painting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 Back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19 GG Vol. 24. 8. 10.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게임 사회> 전시가 보여주듯, 현재 예술 장 내에서는 ‘전시로서의 게임’이라는 새로운 실험들이 다양한 기획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활동은 전시장 벽에 설치된 지도(게임 맵)를 통해 기록된다. 전시 초기에 텅 비어있었던 지도는 게임의 참여자이자 전시의 또다른 생산자인 관객들의 경험들로 채워지고, 이후 회차를 플레이하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다시 영향을 주었다. GG에서는 이와 같은 기획을 꾸린 작가 상희와 성훈을 만나 ‘대화형 게임’이라는 전시의 기획의도와 진행과정, 의미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경혁 편집장 :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작가님들 본인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고요, 전시 제목과 전시의 의의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저는 상희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2023년에 만들었던 <원룸바벨>이라는 VR 작업을 계기로, 게임 형식을 차용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만들었습니다.. 게임의 디자인적 요소를 작업에서 활용할 때 제가 만들려는 이야기나 전하고 싶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가상의 내러티브를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게임같은 매체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에서도 그런 식으로 관객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성훈: 저는 성훈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상희님 작업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게임의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게임 속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수성에 특히 관심을 두고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상희: 본 전시의 제목은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이며,구요. 지금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고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거대한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이벤트를 저희가 ‘조우’라고 지칭하는데, 그 조우들의 결과가 (지도에) 계속해서 축적되고 기록되는 형식이어서 그걸 전시의 메인 이름으로 하게 됐어요. 전시를 준비할 때 기획자들과 논의하면서 ‘지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도에서 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나 이야기가 기록된다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전시회의 메인 제목이 되었고, 부제인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이 지도를 무대로 사용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대화형 게임의 이름입니다. 성훈 작가님과 저, 김지연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게임이고요. TRPG의 형식을 차용해서 만든 게임이라 디지털적인 요소가 부재한 ‘오프라인 보드게임’을 지향했습니다. 퍼포머와 대화를 하면서 플레이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전시에서 사용하는 게임의 이름인 거고, 이 전시 자체는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군요. 제가 첫 회차에 플레이어로 참여를 하고, 지금 두 번째 방문을 하면서 비교해 보니 흥미로웠던 게 지도의 변화였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이쪽(벽면)이 썰렁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상희: 맞아요. 그때만 해도 게임을 끝까지 가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경혁님과 일행분들이 바다로 처음으로 탈출하셨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결국 이 전시가 끝나고 가장 강렬하게 남는 건 이 지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요, 우선 이 게임의 배경이 일종의 재난 상황에 처한 지방 도시에서, 흰개미라는 인간 외적 존재와의 만남과 분투를 테마로 하고 있는데요. 게임의 장르적 특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배경 상황을 구성하셨던 맥락이 궁금합니다. 상희: 우선, 일단은 저희 둘 다 같은 부산 출신인데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 항상 관심이 가는 주제가 ‘고향'과 고향을 떠나와서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의 정서였어요. 제가 작업했던 <원룸바벨>도 서울 원룸에서 살고 있는 2-30대 청년들의 공간과 정서를 VR로 번안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들이 계속 주제로 선택되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성훈 작가가 게임의 배경으로 지방 소도시와 벌레라는 주제를 선택했던 맥락도 있었어요. 성훈: 얼마 전에도 러브버그나 빈대가 서울에 등장했다는 뉴스들이 막 나왔다가 사라진 일이 있었잖아요. 도시 공간에서 벌레들이 철저히 방역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도시’와 ‘벌레’가 서로 적대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에 흥미가 있었어요. 도시 공간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21세기 서울에서 이게 말이 되냐, 서울이 빈대가 나오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식의 반응들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빈대를 모두 무서워했죠. 관련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르포 기사가 있는데요. 그 기사의 핵심은 빈대가 쪽방촌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예전부터 항상 있었다는 점이에요. 빈대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도시 빈민의 공간에 항상 공존하고 있었는데 도시의 주요 거리에 출몰하면서 갑자기 조명을 받게 되었다는 얘기였어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도시와 벌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 게임에 나오는 벌레들은 (인간 플레이어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나요? 상희: 맞아요. 물론 게임 속에서는 기존의 문명을 완전히 파괴하고 소진시키며, 그 폐허 속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지만, 한편으로는 흰개미라는 종 자체가 공생을 추구하기에 자신들이 만든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공격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집이 그들의 집이기도 함을 받아들인다면, 살게 내버려 둡니다. 성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전개에 따라 흰개미는 어떤 플레이어들을 다른 존재로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 다름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의 판단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인간에게 이질적인 어떤 생물에게 우리가 보기에 인간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주기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호의를 표현해주기를 요구할 수는 없지요. 그들은 자기들만의 어떤 논리가 있고, 인간들은 그게 우리한테 호의적이냐 아니면 적대적이냐 이런 종류의 판단 기준들을 각자 제멋대로 갖고 있을 뿐인거고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계속하면서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선 일들이 다른 생물 종에 의해 일어날 때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반응할지 이런 것들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와 게임의 형식과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TRPG를 이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형식을 구상하셨는데요, 원래부터 TRPG를 플레이하신 경험이 있었나요? 상희: TRPG 자체는 작년 초쯤에 시작했어요. 저도 보드게임을 많이 하니까 그런 게임이 있다는 거는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발더스 게이트 3>을 길게 플레이하면서 DND(던전 앤 드래곤)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더스 게이트>가 특히 TRPG 시스템의 UI 구현이 잘 되어 있고, 저에게는 저희가 지금 즐기고 있는 RPG 같은 게임들이 어떤 역사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를 알게 된 게임이었어요. TRPG도 원래는 RPG라고 불리다가 디지털 RPG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앞에 T가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초창기의 게임들을 찾아보고 싶었고, ‘초기의 RPG'로서 어떤 근원적인 경험이 있을 것 같아서 그때 리서치 개념으로 TRPG 플레이를 시작했어요. TRPG 자체는 숙련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사실 진입하기가 되게 어려운 장르였어요. 처음에는 (TRPG 커뮤니티에) 가서 ‘저희 좀 시켜주십시오’ 했어요. 사실 이분들도 넓은 아량으로 해주시는 거거든요, 왜냐면 저희가 초보라서 못 하고 저희랑 하면 재미없기 때문인데(웃음). 다행히 저희가 갔던 커뮤니티는 소위 뉴비들을 끌어주는 분위기가 있었고. 커뮤니티 자체가 포용적인 분위기여서 좋다고 느껴졌어요. ‘대화’를 하는 게임이다 보니 그런 (포용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발더스 게이트> 이후로 TRPG 커뮤니티들에 굉장히 많은 유입이 있었죠. 그래서 그렇다면 원조는 뭘까 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하신 거네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출발이 된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였다면 ‘나레이터’의 존재도 꽤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다른 게임과 달리 <발더스 게이트>에서는 계속 나레이터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전시에서 나레이터 역할을 하시잖아요? 그 역할을 TRPG를 특별히 오래 해오신 게 아니라면 사실 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그걸 하면서 어떠셨어요? 상희: 저는 일단 제 자신이 부끄러움이 많은 타입이라서. 근데 사실 마스터가 부끄러움이 많으면 안 되고 뻔뻔해야 되고, 거의 <발더스 게이트>의 나레이터 같은 연극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해야 참여자들이 따라오고 몰입을 해요. 저희 전시에서 주요 타겟으로 삼고 전달 방식을 고민했던 관객들은 TRPG를 처음 해보거나 이러한 형식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미술 전시를 보러 오는 일반 관객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이런 류의 게임에 익숙하신 분들은 금방 잘 따라와 주실 테니까요. 이런 작업에 익숙치 않은 일반 관객분들과 함께 하려면 저희의 역량이 또 되게 중요했어요. 저희가 잘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시거든요. 그래서 테스팅 플레이를 하면서 많이 연습했고, 성훈 작가가 진짜 잘 하셔서 제가 이 분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 같은 경우는 대사를 말하고 뒤에서 묘사하는 방식의 관찰을 하는 편인데, 성훈 작가는 굉장히 캐릭터처럼 연기도 하고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플레이어로 참여했을 때 훨씬 경험이 좋았어요. 재밌고 잘 따라가게 되고, 저도 이런 식으로 배워서 시도해 보고. 성훈: 연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더 끌어내려고 하는 스타일의 마스터도 있어요. 그런 마스터 개개인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것도 TRPG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회 같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마스터를 고정으로 쭉 이어나가셨던 건가요? 상희: 저랑 (성훈 작가가) 번갈아서 마스터를 했어요. 중간중간 지도가 변화하는 과정도 메모로 업데이트 하고, 저희가 대개 플레이할 때 둘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되는지 서로 체크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 이 전시에 오시는 분들 중에 TRPG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분들은 이 문법 자체를 모르셨을 것 같아요. 상희: 네, TRPG에 관심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과연 TRPG라는 게 뭔지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건, 이게 ‘TRPG 전시’가 아니잖아요. TRPG를 차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걸 플레이하며 ‘대화형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 일반 관객들에게 경험되었을 때도 저는 이게 분명히 재밌는 형식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게 그래서 진짜 재밌을까, 사람들이 이걸 금방 캐치해서 따라올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컸었는데요. 생각보다 정말 다들 재밌게 하셨어요. 이런 대화라는 형식 자체가 정말 직관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디지털 게임은 항상 어떤 조작을 익혀야 하는 일종의 ‘배리어’가 느껴지는 형식이잖아요. 이번 전시는 같이 천천히 얘기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성격이다 보니 곧잘 잘 하셨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를 진행하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너무 제각각이었을 것 같은데요. 퍼포먼스를 같이 한 관객 중에 기억에 남는 관객이 좀 있으셨나요? 상희: 최근에 플레이하셔서 기억이 나는 분이 있는데요. 지금 보시는 지도에 있는 이 표시는 이전 회차 플레이어를 뜻하거든요. 이 사람이 마지막에 (플레이가) 끝나면 이런 마크를 남기면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여기에 이 사람의 유해와 같은 육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다음 회차 플레이어가 이걸 확인하면 저희가 알려 드려요. 이 사람은 지금 이런 상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신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저 이 사람 머리를 잘라갈게요’ 하시는 거예요(웃음). 실제 시체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시신(이라는 설정)이니까 사람들이 일단 그대로 두거나 건드리더라도 조심스럽게 하는데, 그분은 도시에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니까 잘라간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결정이 굉장히 재미있는 전개였어요. 그리고 성훈 작가가 이 전시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세계관을 구축했는데요, 게임 내 NPC들 중에 같이 데리고 도시를 나가거나 고립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는 NPC들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지도의 동쪽) 연립주택에 아이 NPC가 있는데, 이게 이 쪽(서쪽)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머무는 엄마의 아들이에요. 여기서 만나면 우리 아들을 구해 와달라고 부탁을 하거든요. 근데 아무도 저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아이를 데리고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거나, 돌아 가다가 게임 오버가 되기도 하구요. 그런데 언젠가 소방관으로 플레이하셨던 분이 그 아이 NPC와 같이 탈출했던 게 기억에 남았어요. 다들 저 아이는 못 나가겠다고 반 포기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구해주시더라고요. 그 아이를 구하려면 소지품 란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공룡 인형으로 가득 채워야 해서, 자기 물건과 장비를 다 버려야 되는데 그래도 그 패널티를 안고 가시는 게 좋았어요. 이경혁 편집장: 살다 보면 참 커뮤니케이션이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도 많잖아요. 전시에서 관객들과 서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난점들은 없으셨나요? 상희: 이 퍼포먼스에 오시는 분들 자체가 어느 정도 이 게임을 하고 싶어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보니까, 그래도 적극적으로 개입과 참여를 하려고 하시는 편이에요. 성훈: 어떤 분들의 경우 캐릭터가 독특하신 경우도 있었어요. 자체적인 캐릭터가 사람들과 만나기를 피하고 굉장히 과묵하다는 설정이었거든요. 이 세계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어떤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겪으면서 더 재미를 찾아갈 수 있는 구조인데, 그분은 '은신 플레이'처럼 게임 진행을 하셨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마스터로서 어떤 방식으로 재미를 제공을 해야 되는지, 그 분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도 이 전시에 참여해서 세 명이서 팀 플레이를 했었잖아요? 그때 약간 짜증 났던 건(웃음), 우리 멤버가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려고 (게임 내 상호작용을) 전부 피하는 거에요. 그때 저희가 한 명이 플레이를 하고 한 명이 조수고, 저는 ‘마음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구조였죠. 상호작용을 안 하려고 할 때마다 저는 ‘앉아봐’, ‘그 상자 제발 열어봐’ ‘말좀 걸어봐’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웃음). 근데 그걸 보면서 저는, 만약에 어떤 사람들이라면 전시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일종의 하이스코어 경쟁처럼 게임을 최단 시간으로 돌파하려고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경우는 다행히 안 겪으신 것 같아요. 상희: 네, 맞아요. 그리고 게임 관련 설명과 안내를 드릴 때, 이 게임이 승리라던가 패배라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참여자와 마스터 둘이 되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다들 게임 내에서 자기 캐릭터만의 얘기를 구축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아까 편집장님 팀의 멤버 분도, ‘살아나갈 것이다’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집념’이라는 캐릭터를 갖추신 거죠. *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에서 전시 참여자이자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채워나갔던 지도. 회차가 반복될수록 지도의 내용은 풍부해지고 이후 회차의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게임 기획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 거네요. 1시간 반의 플레이로는 사실 지도의 모든 영역을 다 볼 수는 없고, 플레이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사람들이 지도 안에서 절대 안 가는 어떤 영역이 생기게 될 텐데요. 기획자 입장에선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라 조바심이 나실 것 같기도 해요. 상희: 맞아요. 전시 처음에 지도가 많이 안 밝혀졌을 때는 끝까지 못 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오픈 월드 류의 게임을 할 때 그동안 가보지 못한 영역, 지도 상에서 안개 혹은 어둠으로 표현되는 영역을 빛으로 밝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여기 아무도 안 갔네요’, 하면서 가시기도 하고, 결국에는 그런 식으로 맵이 다 밝혀졌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결국 이 지도 데이터의 누적이라는 게, 그냥 지도에만 추가되는 게 아니라 다음 번 플레이에도 영향을 주는 형태인 것이고. 앞선 세계의 변화가 뒷 세계의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형태로 설계가 되는거네요. 상희: 맞아요. 예를 들어서 아까 말씀드린 퀘스트에서 아들을 구하게 되면 패스트푸드점의 엄마가 같이 도시를 떠나가게 되는데, 그 이후에 이곳에 온 사람은 이 엄마가 남기고 간 쪽지만 읽을 수 있는 거예요. ‘아이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혹시 못 보셨을까 봐 여기 쪽지를 두고 갑니다.' 이렇게요. 그리고 이 엄마의 아이가 원래는 강박이 있는 아이여서 재료별로 햄버거를 계속 분류하고 있었는데, (이후 회차에서는) 분류하던 흔적만 남아 있고 그걸 했던 사람이 누구였고 이걸 왜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혹시 관객 중에 2회차 플레이를 해본 분들은 좀 있으신가요? 상희: 있긴 있었지만 전부 테스트 플레이(참여자)였구요. 다만 저희가 한 이틀 정도는 오픈 세션이란 걸 열어서 아예 플레이를 공개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거든요. 그때 관람객 한 분이 두 회차를 연달아 보고 가셨어요. 두 번을 관람하니까, 이를테면 (첫 회차에) 어느 길이 무너졌는데, 그 다음 회차에 같은 길목에 도착한 사람은 그 무너진 길을 파헤쳐서 건너가야 되는 이런 연속된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걸 기록하는 것도 두 분이 굉장히 노고를 들이셨을 것 같은데요. 상희: 게임상의 큰 변화는 지도상의 기호로 계속 표시를 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책상에 지도를 붙인 판넬이 있어요., 지금까지의 정보를 기록하고 새로운 변화를 써놓는 (마스터 전용) 판넬입니다.. 거기에 기억해야 되는 정보들, 예를 들면 특정 물건 3개를 요구하는데 그 3개를 다 갖다 줘야 떠나는 어떤 NPC의 경우에,. 누가 무엇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업데이트해 놓고. 쪽지나 포스트잇 같은 걸로 표시하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보통은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 이렇게 손을 뗄 수가 있는데, 이거는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일종의 오브제가 아닌가 싶네요. 상희: 그렇죠. 작가도 자꾸 작업에 참여해야 되고, 전시기간에 계속 상주하게 되고요. 근데 그런 작업이 저한테는 계속 관객들과 참여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이 작품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런 점을 흥미롭게 짚어볼 것 같아요. ‘전시를 시작할 때와 전시를 닫고 나서 작가에게는 무엇이 변했을까’ 그게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아직 완전히 전시가 닫힌 것은 아니지만, 막바지에 달하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님 스스로가 자신을 성찰했을 때, 무엇이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상희: 일단 저에게 있어선 관객들과의 관계가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기존에 해온 작업들도 인터렉티브한 성격이 있다보니, 관객들이 와서 직접 플레이하셔야 하는 작업들이 많아요. 전시장에는 언제나 제가 있었어요. 제가 (프로그램) 개발을 했다 보니까, 갑자기 오류가 나면 고쳐드리거나 플레이 방식에 대해 안내를 드려야 하다보니 전시장에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분들이 전시를 끝내고 나서 감상을 나눠주는 걸 어려워하시는 편이에요. 전시장이란 공간 자체가 그런 걸 어렵게 만들다 보니 당연하긴 해요. (작가와 관객 사이의) 어떤 권위적인 분위기가 있고. 제가 궁금하다고 해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거죠. ‘어떠셨어요?’ 하면 ‘아, 재밌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이러고 바로 도망치듯 하시고(웃음). 그런게 항상 저도 아쉽고, 관객들도 당시 말을 못해서 아쉬우신 게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1시간 반 동안 계속 플레이를 하면서 (관객과) 단독적으로 관계를 맺잖아요. 그 안에서 생성되는 라포(rapport)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게임이 끝나고 나면 너무 자연스럽게 이게 어땠는지 감상을 남기시는 거예요. 어떤 게 재밌었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얘기를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여기 섹션(전시장 한 쪽의 공간)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 관객들끼리 소회를 공유하는 목적으로 만들어둔 거거든요. 이 공간의 모티브가 된 게, TRPG 하시는 분들이 게임이 끝나고 나면 그 게임이 어땠다고 합평회처럼 얘기를 하세요. 그런 문화가 매우 좋았어서 저희도 전시에 도입했어요. 관객분들이랑 더욱 깊게 관계 맺는 형식이다 보니 저에게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이 전시가, 메인 게임의 앞에 프리(pre-) 단계가 있고 포스트(post-)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프리 단계에서는 게임 참여자들에게 전날 설문을 한번 하시잖아요. 이렇게 전시 앞뒤로 프리 단계와 포스트 단계를 두고 보면, 작가 입장에서는 관객 개개인을 좀 더 보게 되지 않습니까? 어떤가요? 관객분들의 전시 관람 전과 관람 후의 변화 같은 것도 좀 느끼시는지요? 상희: 일단 관람 전에는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들의 플레이 성향을 알고 싶어서 설문을 조사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게임 내 어떤 캐릭터가 어울릴지를 골라드리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질문에 답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실제로 이 ‘고향’이라는 곳에 돌아와서 플레이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 사람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플레이를 하면서) 카타르시스가 되어서 다 풀리고, 후반부에는 또 같이 정리하면서 얘기하는 과정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은 사전 설문을 통해 캐릭터를 구성하고, 플레이 종료 후에는 각자의 개인적 경험과 소회를 집단적 궤적으로 모아 나간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떻게 보면 장르적으로는 굉장히 큰 도전을 하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이 전시의 게임이 TRPG를 베이스로 했지만, TRPG를 하려면 아까 말씀하셨듯 보통 TRPG 카페를 가잖아요. 실제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TRPG를 모티브로 했지만 이게 ‘퍼포먼스’로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특징이 있어야 된다라는 생각을 아마 하셨을 것 같은데. 무엇을 더 강조하려고 하셨을까요? 상희: 우선은 현실적인 완결성이 중요했어요.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만들다가도, 1시간 반의 러닝타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무조건 끝나야 되는 형식을 만들고자 했고요. 그리고 퍼포먼스 형식이니까 플레이함에 있어서 ‘룰’을 최소화하고자 했어요. 룰이 너무 많아서 생길 이해의 어려움을 줄였고, 룰에 대해서도 실제로 설명을 많이 안 드립니다. 참여자들이 행동을 하나씩 할 때마다 조금씩 알려드려요. 어떤 분께서 ‘저 이렇게 하고 싶어요’, 행동을 제안하시면 그것을 주사위를 굴려서 확인해 봅시다 라고 하면서, 점진적으로 계속 룰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그렇게 해도 다 알려드릴 수 있는 룰이어서. 원래 보드게임들은 룰 설명만 1시간 하고 난 뒤 플레이를 시작하는 느낌이잖아요. 이 전시에서는 그런 게 없이, 어떤 장벽 없이 관객들이 바로 플레이할 수 있는 그런 직관적인 플레이를 만들려고 신경을 썼습니다. 성훈: 저는 이 전시를 퍼포먼스 차원에서도 얘기해보고 싶은데요. 공연예술의 경우 똑같은 공연을 10번씩 보러 가는 문화도 있잖아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항상 매번 공연이 다 조금씩 다르다라는 얘기를 듣는데. 그런 것처럼 이 전시도 어떤 의미에서 ‘공연’이라고 할까요? 이 전시가 그 공연의 매번 다른 특성을 극대화한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매번 갈 때마다 실제 인간이 진행하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절대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고, 매번 지도가 바뀌어 나가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고, 스티커이기 때문에 뗄 수가 없잖아요. 그런 형식에서 퍼포먼스적 측면이 접목되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TRPG라는 것을 상징하는 게 일종의 ‘룰 북’이기도 하잖아요. 룰 북의 두께만 봐도 이걸 언제 읽나 고민이 되긴 하더라구요. 상희: 맞아요. 저희 게임도 일종의 가제본처럼 룰 북을 만든 게 있거든요.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이 정도 두께가 금방 나오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장벽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룰 북은 일단 가제로 만든 거고요, 저희가 좀더 정리해서 아예 보드게임으로 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 전시의 지도 형식 자체도 보드게임에서 착용을 했거든요. '레거시 보드게임'이라고 해서 한 번만 플레이하는 보드게임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마이 시티> 같은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별로 맵을 밟으면 그걸 스티커를 붙이면서 계속 변형시키는 형식이거든요. 많은 레거시 보드게임이 그런 일회적 형식을 따릅니다. 이 작업도 결국에 맵을 변형시켜서 똑같은 게임 플레이의 반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게 참여한 플레이어와 저희만 알 수 있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기도 해요. 이 맵을 보면 '아, 이때 내가 이렇게 해서 맵을 바꿨었지',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런 형식을 따와서 뭔가를 붙이면서 계속 흔적을 남기는 형태로 이 전시를 만들고 싶었는데요. 정말 보드게임을 출시하면 그런 레거시 보드게임의 형태로 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는 굳이 미술과 음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음악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요. 고정된 악보가 있고, 매번 연주마다 애드립과 카덴차가 나오는 거죠. 심지어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 이건 그냥 콘서트라고 불러야 되는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까 듣다가 생각난 질문인데요, 원래 (작가님이) 디지털 개발을 하셨었지요. 첫 작품도 디지털로 시작을 하셨는데, 언-디지털로 넘어온 작품을 택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아까 간단하게는 TRPG에 관심이 생겼다고 해주셨는데요.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보면, 같은 게임 제작 방법론이라고는 하지만 어딘가부터는 서로 완전히 다른 부분들도 있잖아요. 상희: 처음에 했던 디지털 작업들은 3D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고, 게임 엔진을 사용해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이걸 만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요새 대형 제작사에서 나오는 게임들을 보면, 그래픽이 나날이 발전되는 정도가 차원을 달리 하잖아요. 현실과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고 정교해지고, 엄청 많은 자본을 투여해서 만들어지는 형식이지요. 그런 그래픽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런 그래픽들이 공허하다는 감각도 있었어요. 거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더 있을 수 있을까 고민도 들었고요. 저희도 게임을 만들다 보면 어떤 그래픽적인 스펙타클에 게임을 조응하게끔 만들어야 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이 있기도 한데요. 그런데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의 형식은 아니었어요. 반면, TRPG라는 장르는 뭔가 그래픽적인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이야기를 만들면서 플레이하는 형식이라는 점이 재밌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전시를 담당했던 김지연 디자이너와 초기에 같이 작업을 하면서 플레이 테스팅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 작업에서 저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지도였기 때문에, 저는 초기엔 일종의 게임 월드처럼 지도를 자세한 형식으로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때 김지연 디자이너가 되게 중요한 지점을 짚어줬던 게, ‘지도는 오히려 훨씬 더 단순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요소가 많이 없어야 된다. 왜냐하면 TRPG를 플레이할 때 우리가 어떤 시각적인 게 많이 없어야 상상을 더 할 수 있고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김지연 디자이너가 시각화를 해줘서 만든 게 지금 개미굴 같은 이 지도의 형식이에요. 그래서 게임이 어떤 시각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외하더라도 참여자의 상상력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더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김지연 디자이너가 토크 때 ‘우리의 최고의 GPU는 인간의 뇌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결국에 저희가 상상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적인 부분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해서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작가님들이 이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뭘까를 생각해 봤는데요. 시간적인 제약도 있고, 공간적인 제약도 있죠. 제가 궁금해지는 건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전시도 공짜는 아니에요. 이 작업의 물리적 베이스, 다시 말해 소요 비용이나, 펀딩이나 후원이 어떻게 들어왔었는지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우선, 지금 이 공간은 <팩션>이라는 전시공간이고 이 전시는 여기서 열린 공모를 통해 지원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제일 큰 비용이 뭐였냐 하면 결국 ‘저희’였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저희의 몸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걸 때우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전시 공간은) 무조건 집에서 가까워야 되고, 자주 와서 이곳을 계속 보수할 수 있고, 공간을 관리하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여야 해서 이곳 삼선동에서 전시를 하기로 결정했구요. 비용 같은 경우에는 다 자비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원래 펀딩을 받으려고 했지만, 제가 다른 작업 펀딩을 받고 싶은 게 있어서 그걸 먼저 냈었고. 이 전시는 저희 생각으로는 기획이 대박이기 때문에 무엇을 내도 다 뽑힐 것이라 기대를 했지만(웃음) 제작비를 따오겠다 했는데 못 딴 거죠. 그래서 저희 돈으로 했는데 또 생각보다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지는 않았어요. 저희가 다 직접 만들고 한 게 있어서. 이경혁 편집장: 저는 당연히 이 전시도 다른 곳에서 펀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상희: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후속 지원을 고려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희의 기획이 이런 형식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께는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겠지만, 한편으로 펀딩을 해 주시는 분들이나 지원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에게는, 특히 TRPG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래픽이 없는데 대화로 게임을 한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지?’ 이렇게 난해하게 들리셨을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지금처럼 (전시를 통해) 결과가 완전히 다 나왔고 우리 기획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마련된 상태에서, 후속 지원을 요청하거나 이 전시를 완전히 대중적인 퍼블리시를 할 수 있는 포맷으로 지원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요. 지금은 미술 전시회 형식으로만 하고 있는데, 저희가 추후 하고 싶은 건 아예 ‘게임’으로 출시하는 것이에요. 일례로 여기 붙어 있는 지도도 보드게임 컴포넌트처럼 다 들어 있는 것이고. 이 보드게임 패키지를 사시면 플레이를 어디서든 직접 할 수 있게 되고 그때는 어떤 물리적인 제약도 거의 없어지는 거죠. 엄청 긴 세션을 하셔도 되는 것이고, 각자의 플레이 방식대로 맞춰서 게임하실 수 있게 될 거에요. 다른 한편으로는 기획이 맞는다면 지역에 가서 일종의 팝업으로 해볼 생각도 했었어요. 이 게임이 설치형이잖아요, 그리고 광주라든가 부산에서는 요새 그런 형식의 전시를 많이 하니까. 그렇게 팝업을 통해 지방에서 TRPG 하시는 분들과 협업해서, 계속해서 더 큰 지도를 설치하고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성훈: 전시에 와주셨던 큐레이터 중 한 분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이 게임이 한국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굉장히 지역적인 맥락을 가지고 오려고 하니까, 차라리 실제로 어떤 도시에 가서 그 도시의 랜드마크 등을 반영해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실제 매핑을 통해 굉장히 퍼블릭한 게임으로 만드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물리적 제약이 워낙 지금 크게 느껴지다 보니까 계속 이 게임의 물리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뭘까를 생각을 하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이 펀딩인 것 같네요. 제일 좋은 것은 지자체의 예산을 가져오는 것 같은데요(웃음). 혹시, 미술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상희: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 아무래도 완전히 모르는 이야기이다 보니 신선하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게임 디자인이라는 형식이나 게임 메카닉을 갖고 와서 기획한다는 것을 재밌어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이 전시가 또 주목을 받는 게, 결국에는 지금의 어떤 (예술 관련) 이론이나 담론이 게임과 연관되어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행위성 같은 개념들은 굉장히 게임적이거든요, 한편으로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당연한 얘기죠. 그런 것들이 미술적인 개념들과 이렇게 영합하면서 시너지가 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최근 들어 확실히 미술계에서 게임을 베이스로 작업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주변에 미술하는 분들이 게임 갖고 작업하시는 걸 보면 좀 어떠세요? 본인의 세대 근처에서, ‘게임’을 미술의 주요 소재로 쓰겠다라는 경향이 좀 있다고 느끼시는지요? 상희: 네, 그런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희는 PC통신이 당연한 시대였고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가 집에 있는 세대여서 디지털 게임을 많이 하기도 하고. 어떤 정서라든가 감성이 게임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세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기존에도 게임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어요. ‘게임을 사용한 작업이 예술의 형식이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 전에 작업했던 사람들은 게임 제작자라는 인식이 좀 강했는데 최근에 ‘아트 게임’이라는 용어도 나오면서, 이게 예술 작업으로 보이게 된 건 최근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 (전시가) 거의 마무리가 됐지 않습니까? 전시가 끝나고 나면 지도는 향후에 어떻게 될까요? 상희: 일단 전시가 끝나고 나면 이 지도 자체는 철거를 잘 해서 손상 없이 떼갈 예정이고요. 그 전에 확대 촬영이라고 해서 사진이나 그림을 스캐너에 넣는 것처럼 촬영하는 기법이 있는데, 그걸로 지도 자체의 아카이빙을 잘 하려고 해요. 그때 (경혁님이) 오셨을 때도 이 게임이 되게 오프라인한 경험인데, 이걸 어떻게 디지털로 남길 것이고 이후 사람들이 여기에 어떻게 접근해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나요. 저희도 그래서 이 지도를 웹에 아카이빙하거나 이후에 이 게임을 어떤 식으로 퍼블리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이즈를 보면 기존의 도록이나 영인본처럼 남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들어요. 마지막으로, 이 기획 이후에 후속작처럼 기획하고 싶은 게임의 형태는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상희: <언-리얼리스트의 유럽>이라고 11월에 작업하려는 작품이 있어요. 유가가 더 비싸지고 환경세 등이 부과되는 근미래에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설정이에요.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점점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제는 메타버스로 유럽 여행을 해야 되는 거죠. 그 여행을 실제로 VR 같은 기계, 실제 VR은 아니지만 VR이라 부르는 오락실 기계 같은 것에 앉아서 플레이하게 되는 형식의 게임인데요. 그래픽적 요소가 많이 없고 플레이어가 뭔가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참여하는 그런 형식의 게임을 상상하고 있어요. 이번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게 최소한의 그래픽을 가지고 (참여자들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어서 후속작에서도 그런 견지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Cortney Blamey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Read More 버튼 읽기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