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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미국에는 100일간의 여름(100 days of summer)라는 개념이 있다. 5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그리고 여름의 끝은 9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대략 이 기간이 100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 Back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01 GG Vol. 21. 6. 10.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한국에는 입하라는 날이 있기 때문에 이 날이 공식적으로 여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절기상 여름 말고 사람들은 누구나 본인의 문화적 배경이나 취향에 따라서 서로 다른 날을 여름의 시작으로 생각할 것이다. 미국에는 100 일간의 여름 (100 days of summer) 라는 개념이 있다 . 5 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 그리고 여름의 끝은 9 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 대략 이 기간이 100 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 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 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 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 매년 E3 가 열리던 6 월은 게이머들에게 올해 대작들은 뭐가 나오는지 볼 수 있고 더운 여름 집 안에 혹은 사무실에서 ‘돌릴’ 게임이 뭔지 생각해 보는 시기였다 . 화려한 부스들이 가득한 E3 의 행사장에 가지 못하면 무척 아쉽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 역사적으로 봐도 E3 는 ‘산업종사자들을 위한 행사’였던 기간도 꽤 길다 . 일반적인 게이머들은 행사장에 들어갈 수 없었을 때도 많았다는 이야기 . 하지만 E3 는 언제나 일반 게이머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 대형 게임사들이 발표하는 뉴스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북미의 게이머들에게 E3 는 ‘게임의 여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코로나는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 게임의 여름도 . 하지만 2020 년에는 게임의 여름이 없었다 . 코로나가 여름이란 존재를 삭제해버렸다 . E3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오프라인 이벤트들이 취소됐다 . 미국 내에서 2020 년에 가장 크게 유행을 탔던 말을 하나 꼽자면 ‘취소’ (cancel) 였을 정도 . 취소를 망설이면서 시간을 끄는 행사들은 온라인에서 ‘책임감없이 행동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 E3 의 오프라인 이벤트 취소는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 E3는 아주 전형적인 공룡이었다 . 기업은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재택 근무로 전환해야 하며 이런 유연성이 바로 기업의 경쟁력이라는인식에 기초해 볼 때 E3 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직된 회사였다 . 온라인 이벤트로 재빠르게 전향해서 브랜드를 살릴 기회가 없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이벤트를 취소한 뒤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 온라인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할 능력이 없었다 . 게임의 여름은 신호탄 없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진공상태가 된 이 자리를 누가 채울까 하냐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 온라인 이벤트로 E3 에 모일 시선을 잡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 자리를 치고 들어가서 가장 눈 길을 끈 것은 제프 킬리였다 . 진공상태를 채우려던 제프 킬리 제프 킬리는 캐나다 출신의 게임 저널리스트이자 게임 행사의 사회자이며 프로듀서다 .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E3 의 메인 행사들을 진행했었다 . 게임계 최대의 이벤트마다 호스트로서 함께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거대했다 . 본인이 주관하고 프로듀싱하는 ‘아카데미 스타일’의 게임 시상식인 The Game Awards(TGA) 를 시작한 2014 년 경부터 그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 보통 매체에서 선정을 하고 리스트만을 발표하던 기존의 게임 시상식과는 달리 TGA 는 화려한 쇼를 동반했고 그 중심에는 호스트인 제프 킬리가 있었다 . TGA 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GOTY 를 정할 때 메이저로 거론되는 행사에 꼽힐 정도로 급성장을 했다 . 그렇게 본인 자신의 브랜드가 그 어떤 게임계의 인사보다 커져감을 느낀 그는 사실 2020 년에 본인의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오랫동안 해오던 E3 호스트 역할을 고사했다 . 본인이 떠남으로서 무게감이 떨어진 E3 를 대체할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인들의 예상이었다 . 타이밍 또한 절묘했는데 그 동안 영향력이 꾸준히 하락해 온 E3 는 2020 년에 치명타를 맞을 것으로 보였다 . 제프 킬리 외에도 행사장의 디자인을 책임지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하기로 했던 에이전시 iam8bit 또한 e3 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히면서 행사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 그런데 코로나는 이런 계획에 도움도 아니고 타격도 아닌 이상한 상황을 만들었다 . E3 가 없어진 진공상태를 만들었지만 제프 킬리 조차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 완벽히 대비됐을리가 없다 . 그는 업계인들에게 Summer Game Fest(SGF) 라는 행사를 조직할 것이며 원하는 게임제작사나 퍼블리셔들은 누구나 무료로 참여가능하다고 덱을 만들어 돌리기 시작했다 . 딱 봐도 허술한 느낌이 들었지만 급하게 만들어진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는 반응도 있었다 . 급조된 100% 온라인 이벤트긴 했지만 제프 킬리 개인의 브랜드를 통해 꽤 많은 게임사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 E3 가 없어진 공간은 누구도 제대로 채우진 못했지만 그나마 제프 킬리가 앞서가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 승부의 해 2021 년 2021년에는 자연스럽게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 2020 년을 통채로 날려버린 E3 측은 이번에야 말로 100% 온라인 이벤트를 진행하겠다고 하면서 2 월부터 계획을 발표해나갔다 . 버추얼 부스와 온라인 컨퍼런스를 혼합한 형식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 공식적으로 게임의 여름이 돌아왔음을 알린 것이다 . 지난해 SGF 는 물론 TGA 까지 100% 온라인 이벤트로 진행하면서 경험을 쌓은 제프 킬리는 2021 년을 E3 타도 원년의 해로 정한 것같이 매우 공격적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 E3 의 개최날짜가 발표되자 거의 비슷한 시기를 골라서 SGF 를 개최했다 . 정면승부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 행사가 조금씩 가까워 오자 양측은 게임의 여름을 준비하는 퍼블리셔들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 닌텐도 , 마이크로소프트 , 유비소프트 , 소니와 같은 초대형 퍼블리셔들이 어떤 행사에 참가하는지가 이벤트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 주목도가 높은 이벤트에 마케팅 예산을 쏟아부어 자신의 게임을 알려야 하는 중소 퍼블리셔들은 치열한 눈치게임에 들어갔다 . 게임의 여름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SGF 일지 E3 일지에 많은 이목이 쏠렸다 . E3와 SGF 누가 이겼을까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승부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 E3 는 전통의 강자답게 많은 퍼블리셔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 닌텐도 , 유비소프트 , 스퀘어 에닉스 , 엑스박스와 베데스다 등이 E3 의 브랜딩 아래 자신들의 행사를 진행했다 . 하지만 E3 의 버추얼 부스 및 행사의 진행은 최악이라는 평을 면하지 못했다 . 특히나 시스템 오작동으로 버추얼 부스를 운영해야 하는 벤더들이 접속조차 하지 못하는 사고가 기사화 되기도 했다 . 코타쿠가 쓴 ‘ E3 는 매우 실망스럽다’는 직설에 가까운 기사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 SGF가 완승이냐고 하면 그렇게 말하긴 힘들다 . 많은 퍼블리셔들이 SGF 의 브랜드 아래서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 하지만 최소한 제프 킬리는 현재 게임계에서 가장 많이 기대를 받는 게임 엘든링을 본인의 행사를 통해서 공개하면서 이른바 ‘대세감’을 보여줬다 . 최소한 SGF 가 E3 와 ‘맞짱’을 뜰만하다는 인식을 심는데 성공했다 . 물론 엘든링을 제외하면 쇼 자체는 AAA 급 타이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실망스럽단 의견도 많았다 . 게임쇼의 미래 사실 그렇다면 SGF 와 E3 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 미국에서 격돌을 한 두개의 행사는 게임쇼의 미래를 가늠하게 한다 . 100%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이벤트는 과연 우리에게 게임쇼라는 것이 필요한가 되묻게 한다 . 일주일 동안 벌어진 게임계의 축제는 E3 나 SGF 라는 ‘행사의 브랜드 네임’보다는 거대한 게임을 보유하고 언제 어떻게 이를 공개할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퍼블리셔들에게 좌우됐다 .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동시시청자수를 기록한 것은 닌텐도의 이벤트였다 . 엘든링이 나온 SGF 를 아주 근소한 차이로 제쳤다 .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후속편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 닌텐도의 행사 자체는 닌텐도의 중역들이 어설픈 스피치를 하는 최악의 것이었지만 IP 의 힘으로 310 만명이 넘는 시청자를 끌어모은 것이다 . 그렇다면 닌텐도의 발표가 E3 라는 브랜딩 아래 이뤄지지 않았다면 과연 주목도가 떨어졌을까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따라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 과연 게임쇼라는 커다란 우산을 필요할까 ? 퍼블리셔들이 그 우산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 이것에 대한 답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PAX 웨스트 때 다시 한 번 떠오를 것이다 . 코로나는 모든 것을 바꿨지만 가장 크게 바꾼 것은 게임쇼라는 개념 자체일지도 모른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editor's view]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심 어스>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특정 생물군을 지능을 가진 사회적 군집체로 진화시킬 수 있는데, 이들이 기술발전만 급격하게 이루고 철학과 윤리 발전이 늦어지면 결국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에서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 Back [editor's view]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14 GG Vol. 23. 10. 10.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입니다. 90년대 초반, PC통신이 미래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시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직접민주주의가 기술을 딛고 마침내 가능해졌다는 장밋빛 환상, 영화 <접속>으로 대표되는, 선의를 가진 익명의 사람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도래. 당시의 희망을 함께 나눴던 저로서도 오늘날 구축된 사이버상의 커뮤니케이션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부정적인 측면들을 품고 있습니다. 몇몇 미디어들은 특히 게임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좀더 문제적으로 바라봅니다. 멀티플레이 게임이 제시하는 상황 자체가 공격적이고, 그렇기에 커뮤니케이션 또한 더욱 공격적이라고요. 그러나 저는 이 주장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멀티플레이 게임과 채팅은 사실상 같은 기술적 뿌리를 가지고 있고, 역으로 채팅과 댓글이 있는 모든 곳은 공격적입니다. (GG가 댓글 기능을 구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14호에서 우리는 인게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로 대주제를 설명하고자 했지만, 이 용어는 다소 부적절합니다. 채팅, 이모티콘, 감정표현, 보이스챗은 규칙에 의한 상호작용인 디지털게임에서 규칙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하게 규칙 하에 이루어지는 게임에 영향을 주고, 게임의 승패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인도 아니고 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 애매함은 때로는 가상의 공간에서 벌이는 매직 서클 안에서의 게임이라는 개념을 현실과 강하게 연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문제적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게임이라기보다 오늘날의 랜덤 매칭 멀티플레이가 만드는 익명성에서 기인합니다. 우리는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가져야 할 에티켓을 만드는 일에서 그만 시기를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요? 기술발전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이 기술에 의해 제시된다고는 하지만, 단지 기술만으로 우리의 미래는 아름답게 채색되기 어렵습니다. <심 어스>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특정 생물군을 지능을 가진 사회적 군집체로 진화시킬 수 있는데, 이들이 기술발전만 급격하게 이루고 철학과 윤리 발전이 늦어지면 결국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에서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게임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호도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2022년 11월 중순, 랩시드(西山居SEED实验室, 시산쥐SEED실험실)에서 인큐베이팅한 중국산 공익게임 <바이페즈>가 정식 출시됨으로써, 국내 최초 게임 형식으로 양극성 장애[역주: 조울증]를 다룬 게임이 됐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인 양극성 장애는 전 세계에 약 6천만 명의 환자가 있다. < Back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13 GG Vol. 23. 8. 10. 2022년 11월 중순, 랩시드(西山居SEED实验室, 시산쥐SEED실험실)에서 인큐베이팅한 중국산 공익게임 <바이페즈>가 정식 출시됨으로써, 국내 최초 게임 형식으로 양극성 장애[역주: 조울증]를 다룬 게임이 됐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인 양극성 장애는 전 세계에 약 6천만 명의 환자가 있다. <바이페즈>는 수평 액션의 2D 플랫폼 점프게임이다. 게임이 처음 시작되면 다양한 액션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가 백색 피에로를 컨트롤해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한 블록과 기호 사이를 점프할 수 있도록 한다. 레벨을 통과하려면 플레이어는 태양과 유사한 백색의 기하도형을 터치해야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 메커니즘은 1990년대 ‘소패왕 학습기(小霸王学习机)’[역주: 1980년대 말, 재미 화인기업가가 창립한 소패왕문화발전유한공사(小霸王文化发展有限公司)에서 만든 컴퓨터 학습도구] 카세트(팩)에서 볼 수 있었던 < 콘트라(魂斗罗)> 나 < 모험섬(冒险岛)> , < 슈퍼마리오> 등 평범한 오락게임을 연상시키지만, <바이페즈>의 플레이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구체적인 인지를 통해 양극성 장애의 기본 증상인 조증 위주의 조울증을 번갈아가며 경험할 수 있다. 필자 역시 게임을 하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울증 환자였던 필자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다양한 치료를 받은 후에야 서서히 정신 상태가 개선된 경험을 한 바 있다. 정신장애 : 게임의 신체화 게임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양극성 장애의 게임 체험은 ‘스크린 안쪽에 표시되는 가상의 신체를 가진 캐릭터’와 ‘스크린 바깥에 구성된 물리적 신체를 가진 플레이어' 1) 사이의 관계 간극을 인위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게임의 말단 설계에서 실현된다.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두 가지 ‘나’ 사이엔 ‘은폐된 비대칭성’이 존재하며, 게임 플레이의 메커니즘은 일시적이나마 이 둘의 동일화와 주체 전환시 발생하는 현기증의 인지를 온 힘을 다 해 완성하고자 한다. 나아가 플레이어의 실제 공간과 게임의 3D 공간이 스크린 공간(screen space)에 겹쳐지면서 게임의 시점이 분산되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주체성을 의식하지 않은 채 복수의 캐릭터들의 미션 시점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현대 정신병리학 이론에 따르면 게임은 본질적으로 정신분열증 증상으로 플레이어가 여러 인칭과 시각, 주체 사이를 반복적으로 넘나들고, 상징화된 게임세계는 진정한 깊이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스스로 깊이 있는 체험을 복구해야만 한다. 게임이 만드는 신체화(somatization)는 자기 인지의 보완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보류된다. 게임은 시뮬레이션의 투사라는 측면에서 이미 주체를 분열시키는 구조이지만, 게임에서 조울증 환자의 감정을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면식이론(acquaintance theory)’ 상의 ‘타자 마음의 문제(Problem of other minds)’를 더더욱 복잡하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타자 마음의 문제’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을 경험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에 있다. 통속심리학에서는 두 유형의 방법론을 선호하는데, 추리추측을 통한 이론론(the theory theory)과 자신이 상대방의 시야에 있다고 가정하는 가장론(the simulation theory) 2) 이 그것이다. 스포츠 게임의 시뮬레이션(룰 기반, 세계 기반, 액션 기반 등)은 가장론의 방법론에 보다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가장론은 자신과 상대가 사용하는 사적인 감각이 정상적이고, 같은 언어에 의해 서로 통하고 표현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신장애환자의 문제가 있다. 질환을 갖는 시기 동안 개인의 사적 감정은 분열되고 가변적이며,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인해 표현력이 쇠퇴하거나 심지어 사라지는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일상생활에서도 신체의 증상화 징후가 형성된다. 즉, 장애의 문제가 심리적인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신체적인 증상으로 대체되며, 정신적 수준의 피해와 고통이 억제되어 신체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증상은 낙인찍기의 심리화(psychologization)가 이뤄지는 사회환경에서 더 가혹하게 나타나고,신체 경험의 궤적도 더욱 강하게 형성된다. 3) 이렇게 하면 환자는 심리적 증상의 생리학적인 성분을 더 많이 인정하고, 심리적인 영향은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장론의 인지적인 기초는 정신장애 환자가 타자 마음을 증명하는 것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정상인은 환자의 경험이나 감정을 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장애를 소재로 한 여러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 시청각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이론론의 방식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타운 오브 라이트(The Town of Light)>에서 플레이어는 정신분열증 환자 르네(Renèe)의 안내를 받아 정신병원을 돌아다니며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고, 환각을 경험하며, 마지막에는 그녀와 함께 전두엽 절제술의 과정에 의해 각종 고통을 직접 맞닥뜨리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때로 게임은 상호작용을 통해 시청각적 감각을 강화하기도 한다. 게임 <에디스 핀치의 유산(What Remains of Edith Finch)> 속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루이스 핀치(Lewis Finch)는 해리 장애를 앓고 있는데, 편지를 읽을 때 플레이어는 루이스의 정신 상태를 모방함으로써 미로를 걷고 생선을 자르는 이중적인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 <아웃 오브 핸즈(Out of Hands)>에선 정서 장애를 겪는 ‘나’의 육체가 무수히 많은 손들이 그러모은 모조품이 되어버리고,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카드 게임은 다양한 부정적 정서와의 싸움이 된다. 하지만 <바이페즈>의 게임 설계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감정적인 독백을 통해 내러티브의 존재 가능성을 돌이켜 본다. 이 게임의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은 내러티브보다는 구조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게임 데모 시연 당일에도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처음에 게임 메커니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이페즈>는 조울증 환자의 신체화된 증상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해 보다 가장론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스포츠 게임의 현실 세계 모방에 매우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고작 하나의 모방은 시청각적 경험에 기반하고, 다른 한 가지는 정신적인 감정에 기반한다. 이 두 모방은 시점이 동일하지 않은데, 마츠모토 켄타로은 이것이 1인칭 시각과 3인칭 햅틱을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바이페즈>에서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은 조울증 환자의 1인칭 시점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색상과 기호 블록 사이를 오가는 조작된 하얀 피에로의 햅틱은 3인칭이기 때문에, 결국 플레이어는 둘 간의 조율되지 않은 지각의 부조화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 플레이어는 분열 속에서 둘 사이의 지각 부조화를 고칠 수 없고, 그 분열 속에서 정신 부조화의 세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이것은 일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더욱 고통스러운 신체화 게임 경험을 갖게 한다. 빨간색과 검정색의 교차 : 시각의 신체화 스포츠 게임이나 피지컬 게임이 아닌 게임의 경우, 신체화는 표현하기 어렵고 통증 연상을 통해서만 시청각적인 감각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하지만, 시청각 감각은 하나의 실험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정신장애를 겪는 환자의 눈에 비친 세상이 두 차례에 걸쳐 전환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의 <절규>가 그 예시다. 이 작품은 불안장애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눈으로 바라본 왜곡된 세계만이 아니라, 불안장애 환자 자신의 모습도 담고 있다. 그 스스로 심각한 불안장애를 겪었던 뭉크는 모더니즘 하에서 소외된 이의 감정에 대한 공감대를 느끼기 위해 독립적이고 빙빙 도는 색채의 상호작용을 그렸다. <절규>에서 감상자는 타인의 눈에 비친 절규만이 아니라, 그림 속 인물의 절규에 영향을 받은 주변세계, 즉 1인칭 시점이 3인칭 시점으로 재조명되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정신장애인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심미적 주체로서 자아는 자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동시에 ‘정상인’의 체험에 의해 비교하면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또, 만약 게임이 정신장애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대로 재현한다면, 이와 같은 핍진성은 ‘정상인’의 체내에 잠복하고 있는 정신장애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바이페즈>는 반드시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페즈>에서 컨트롤하는 하얀색 피에로는 고도로 기하화(geometrization)된 캐릭터다. 플레이어는 이어지는 퍼즐 해석 속에서 그것이 양극성 장애를 앓는 ‘열여섯 여름의 그녀’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어렵고, 오직 시청자의 관점에서만 캐릭터를 컨트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적 세계는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의 눈에 보이는 1인칭 시점으로, 캐릭터가 바운스할 때마다 스크린이 빨간색과 검정색으로 색깔들이 점프한다. 바운스는 게임 플레이를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수행해야 하는 동작이기 때문에 플레이어 눈의 게임 인터페이스는 빨간색과 검정색 전환이 수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인터레이스된다. 이 때문에 광과민성 간질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광과민성 간질의 신체화 증상은 조증 발작시의 증상과 일부 유사하며, 이는 양극성 증상 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게임을 시작하는 화면에는 “양극성 장애가 있는 분은 게임 플레이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게임은 광과민증이 있는 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명시적 알림 메시지가 뜬다. 이 알림은 사실상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울증 환자는 관찰의 대상이 되고, 그들/우리는 구경꾼들의 눈에 비친 세계가 진정으로 그들이 느끼는 그대로 인지 아닌지 느낄 수가 없다. 게임 속 여기저기에서 강렬한 생산 전환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장면에서 더욱 그렇다. 붉은색 백야와 검정색의 밤이 과도기적인 전환 없이 나타나고, 시각 체험에 있어서도 심각한 불연속성(discontinuity)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잠은 사람들로 하여금 낮과 밤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양극성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수면만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각성 요법과 같은 어떤 의학 치료방식들은 수면 박탈이라는 방식을 통해 정서와 인지능력의 즉각적인 보상을 촉진하도록 설계됐다. 물론 수면 보상을 시행한 이후 재발 확률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4) 게임에서 하얀 피에로가 하는 하는 일은 빨간색 블록과 검정색 블록을 끊임없이 돌리면서 게임으로부터 탈출하거나 통과하는 것이다. 이는 치료의 한 형태이기도 한데, 수면 박탈, 리튬, 빛을 결합한 3중 생체시계 치료법(필자도 경험한 바 있음)이 게임에서 모두 표현되어 있다. 검정색은 수면 박탈, 리튬은 약물 복용, 빨간색은 빛을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얀 피에로는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는데, 이는 수면을 박탈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빛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게임을 통과하기 위해 태양을 터치할 수 있는지 여부는 덜 중요해진다. 이 1인칭 시점은 게임의 3인칭 햅틱에 의해 끊임없이 상기되고 강화되어, 플레이어의 시야는 빨간색과 검정색의 시차적 변화, 바운스하는 동작의 시각적인 동선, 그리고 접점을 오가는 단조로운 경험이라는 3중 간섭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3중 간섭 하에서 하얀 피에로는 더 이상 조울증의 화신이 아니며, 대신 실시간 화면(screen of real time)에서 역동적인 빛의 한 지점이 된다. 5)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화면의 위계와 의학적인 관찰을 통해 새로운 시간적 감각을 얻게 된다. 이 때 전자(화면의 위계)는 레이더 추적 방식의 체험인데,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 것은 광선총(lightgun)을 사용해 광점을 추적하는 과정이 된다. 후자는 한계 뇌파의 동적인 궤적이 된다. 이와 동시에 체크포인트의 ‘왕복’과 ‘순환’에는 뇌파도계(encephalofluctuograph)와 유사한 구조가 대량으로 등장한다. 뇌전도나 뇌파도계는 모두 ‘정상인’이 정신이상자를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보이는 시각성은 더더욱 ‘과학적으로 관찰된’ 타자의 시야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조울증 환자는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광점으로 소외된 채 남루하게 배치되어 탈출하는 것이 점점 더 험난해진다. 컨트롤의 불균형 : 감정의 신체화 “악의 문학적 표현양식" 6) 인 반복은 지옥 신화에서 연이어 묘사된 고통의 영구 형벌로 존재하며, 지옥은 언-오르트(Un-Ort)가 된 순환 공간이다. 또한 지옥 속의 개체는 신체화된 형벌의 대상이 된다.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Huis clos)>에서 실존주의적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무한한 것(ad infinitum)의 모방으로 단조로움과 반복을 가져와, 그 속의 주체를 끊임없이(마치 업보를 태우는 불처럼) 불 태워버리는 느낌을 만든다. [역주: 원문의 业火(업화)는 불교 용어로, 죄인을 태우는 지옥불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불타는 감각은 플레이어의 자의식을 괴롭히는 조증과 매우 유사하다. <바이페즈>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데, 이 과정에서 3인칭 햅틱이 더해져 플레이어는 과잉 시각화(overvisual)의 평면에 현혹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를 강렬한 양극성 정서(특히, 조증 정서)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 속의 여러 반복 행동들이다. 이 게임의 메커니즘은 루트를 끝내는 것, 플레이 경험, 시야의 확산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감정의 신체화를 악화시키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루트를 끝내는 과정에서 게임 프로세스엔 반복적인 작업들이 많이 나타난다.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에 따르면 이는 “양극성 장애가 재발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것인데 (…) 이는 바로 외출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빙빙 돌기만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세 번째 스테이지가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레벨을 완료하기 위해 메커니즘을 지렛대로 삼기 위해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반복해야 한다. 여섯번째 스테이지 이러한 경험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얀 피에로는 촉발된 기관 여러 차례 중복해 통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전략 가이드를 참고한다는 전제 하에), 어떤 특수 장면에서는 능동적으로 추락해 게임 인터페이스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빨간색과 검정색 두 가지 색상으로 만들어진 파손된 통관 루트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중복(too repetitive) 메커니즘은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의 인내심을 낭비하고, 게임의 플레이가능성을 계속 희생시켜, 1인칭 시각성의 자극으로 불안과 무료함을 이중적으로 체험하는 걸 강화한다. 게임 체험에서 이러한 느낌은 더욱 확대된다. 스마트폰 컨트롤 인터페이스에서 이 게임의 조이스틱(摇杆) 체험성은 매우 엉망이다. 손이 시야를 일부 가리게 되어 터치 오류가 날 확률이 매우 높고, 이는 하얀 피에로가 스마트폰에서의 점프 컨트롤이 데스크탑에서보다 더 어렵도록 만든다. 이는 또한 캐릭터가 추락해 죽을 확률도 크게 높인다. 만약 기관을 반복해 오고가는 게 수평적인 불안의 체험이라면, 죽음이 거듭된 뒤 게임을 재개하는 것은 수직적인 불안 경험이 된다. 종횡으로 교차해 만들어진 불안의 장력은 끊임없이 플레이어의 시각과 청각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플레이어가 자신의 손가락 컨트롤에 대해 짜증을 느끼게 만든다. 게임 인터페이스는 색깔 블록 말고도 메커니즘이 작동할 때 움직임의 궤적을 바꾸는 대량의 선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선들은 신체 바깥에 있는 기호의 표본을 만드는데, 이는 하얀 피에로의 빨강-검정 색상 전환과 메커니즘이 촉발하는 컨트롤과 관련되어 글자들의 춤(written dance)을 만든다. 순수하게 물리적인 특성, 즉 비생명의 객체가 생명의 활력(élan vital)을 갖추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그런 다음 “업무 중 지령이 암시하는 억압의 정도에 따라 점차적으로 약화”된다. 7) 시청각적인 경험이든 컨트롤의 감각이든, 모두 게임의 신체화를 통해 정신장애의 신체화를 모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페즈> 플레이어의 지각은 여러 인칭들에 의해 분열되고, 동시에 투시체험은 여러 각도로 분리된다. 그래픽이 중첩되는 방식(즉, 4인칭 단수 시점) 8) 을 통해 각기 다른 카메라의 시선이 마치 뒤샹의 <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역주: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과 같은 어지러움에 도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하이퍼 시각화된 평면은 스크린 공간에 투사되어, 응시의 단일한 초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지조화가 이뤄진 ‘정상인’은 게임 도중 초점이 인터페이스의 도처를 조급하게 돌아다니게 되고, 이미 신체화된 양극성 정서장애 환자는 게임을 더욱 어려워 하게 된다. 내러티브 독해 : 결말의 신체화 게임 체험 말고도 <바이페즈>의 숨겨진 결말은 또 다른 의미로 신체화된 독해의 가능성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곧 전두엽이 절제된 미래이다. 게임 속에서 빨간색-검정색이 교차하는 것은 단순히 양극성의, 낮/밤이 교착된 이미지가 아니다. 게임의 다섯번째 스테이지 <미궁>에선 빨간색-검정색이 직접적으로 접점을 이루는 교착점의 조합이 바로 의약품인데, 이는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 언급된 바 있는 리튬이다. 바꿔 말해, 또 다른 의미에서 플레이어는 스테이지를 통과하도록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캐릭터에 의해 컨트롤당하고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는 약을 복용하는 캐릭터가 가져다주는 보다 평평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두 개의 색깔만으로 이뤄져 있고, 구체성이 없으며, 도처에 함정과 추락으로 가득 찬 평평한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환각제(LSD)를 복용한 후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는 <인식의 문>에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 바로 다양한 색깔들이 뒤엉킨 평면적인 세계를 체험한 것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게임이 말하고 있듯, 약물 치료는 사실 단지 정신질환을 일시적으로 보류할 뿐, 진정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9) 오랫동안 비판받아온 완치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바로 전두엽 절제술이다. “의사들은 가벼운 우울증과 불안증부터 조현병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했다. 한마디로 그 당시 의료 전문가들은 전두엽 절제술을 ‘영혼을 위한 수술’이라고 여겼고, 가벼운 우울증부터 심각한 정신분열증까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라도 추락할 수 있는 하얀 피에로(양극성 장애 환자)는 당연히 비정상적이다. 전두엽 절제술 이후 환자는 다시는 양극성 장애를 앓지 않지만, 완전히 순종적인 좀비가 되어버린다. 이 역시 ‘완치’의 결과일 수 있다. 많은 영화 및 TV프로그램들에서, 정신질환자의 경험을 심도 깊게 보여주는 작품일수록 결말은 점점 더 전두엽 절제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1971), <판의 미로(Pan's Labyrinth)>(2006), <서커 펀치(Sucker Punch)>(2011), <니하오, 미친놈(你好,疯子)>(2016) 등 모든 영화들이 그렇다. <바이페즈>에 대한 또 다른, 좀 더 자기 구속적인(self-imposed) 해석도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하얀 피에로의 치유를 돕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 하얀 피에로는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미래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얀 피에로는 이 운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데, 플레이어가 줄곧 피에로를 컨트롤하고 있고, 태양을 향해 그녀를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색과 검정색이 중첩된 흰색은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테이블의 흰색 전등을 상징한다.) 피에로는 (철창 안에 갇힌 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자신이 완치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미로에 갇힌 채) 적극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며, 심지어 (반복에 갇힌 채로) 다시 또 다시 이뤄지는 치료에 계속해서 협조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사회 또는 가족)는 결코 믿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컨트롤하며 태양을 향해 컨트롤한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피에로는 아홉번째 스테이지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타나는 영상은 피에로가 플레이어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2차원 이미지였던 피에로는 3차원의 주체적 사람이 되고는 “고생했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발병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아홉번째 스테이지의 숨겨진 결말은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해 태양이 없는 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해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따라서 태양 뒤에 치유의 문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피에로가 전두엽 절제술을 받지 않고도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가능한데, 플레이어는 그 대가로 게임에 대한 길고 지루한 해설을 볼 수 없고, 하얀 피에로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병철은 정신질환의 치유가 본질적으로 일종의 살해라고 여긴다. 그것은 인간성을 죽이며, 그것을 통해 고도로 자기 훈련된 의식의 산업으로 되돌려 놓는다. 여기서 ‘정상인’으로서 우리는 ‘우애로운 빅브라더’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빅브라더)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자기 착취와 자기 계몽(Selbstauslechtung)을 통해 더더욱 원자화되도록 교도한다. “더 높은 생산성을 창출하기 위해 감정의 자본주의(Kapitalismus der Emotion)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das Andere der Arbeit)인 게임을 배우게 됐다. 감정 자본주의는 일상과 일터를 모두 게임화(Gamifizierung)한다." 11) 어떤 면에서 <바이페즈> 역시 게임화의 산물인데, 게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신체화된(소외된) 자아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죽고 또 부활하는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은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모바일 체험이 엉망인 상황에서 그것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인상을 더욱 배가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소외의 경험은 플레이어를 감정 자본주의의 함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러한 경험들은 자기계발의 방식으로 게임을 완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하는 게임 인터페이스를 비플레이어와 비캐릭터의 4인칭 관점에서 본다면,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이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보여준 엇갈린 톱니바퀴가 다시 우리 앞에 떠오른다. 훈육 사회에서 집중 교정된(konzertierte Orthopädie) 화면들이 꼭 양극성 정신장애 환자의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강한 조급증(emotionszustand)의 정서 상태는 양극성 장애 환자의 체험이 아니라, 개체로서의 존재의 흔적이다. 필자 주 1 ) 마츠모토 켄타로(松本健太郎), 「스포츠 게임의 구성 : 현실의 무엇을 모방하는가?」, 덩지안(邓剑) 번역, 천즈난(陈梓楠) 교정, 『게임 왕국의 보물을 탐험하다(探寻游戏王国里的宝藏)』, 상하이서점출판사(上海书店出版社), 2020. 12. 2 ) 이론론은 마음과 행동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이론들을 바탕으로 타인의 심리를 추측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내가 내 몸의 일부를 긁는 행위는 그 부분에 가려움을 느낀다는 신호라고 보면, 타인이 자신의 다리를 긁는 것이 다리가 가려운 상태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우리의 추리(reasoning)를 통해 이뤄진다. 가장론은 상대방의 위치(place)와 관점(perspective)에서 자신을 상상함으로써 행동을 예측하고, 가설을 세워 이를 테스트하는 등의 방식으로 행동을 해석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론론과 가장론은 모두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다양한 구체적 주장을 포함하는 큰 부류의 이론틀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즈후(知乎)에 게시된 이 내용을 참고하라. 3 ) Karen Hanson. Social Origins of Distress and Disease: Depression, Neurasthenia, and Pain in Modern China by Arthur Kleinman. New Series, Vol. 1, No. 3, Obstetrics in the United States: Woman, Physician, and Society (Sep., 1987), pp. 343-345 4 ) Linda Geddes. Staying awake: the surprisingly effective way to treat depression. https://mosaicscience.com/story/staying-awake-surprisingly-effective-way-treat-depression/ 5 )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新媒体的语言)』, 구이저우인민출판사(贵州人民出版社), 2020. 6 ) 피터 앙드레 알터, 『악의 미학적 여정: 낭만적 읽기(恶的美学历程:一种浪漫主义解读)』, 닝잉(宁瑛)·왕더펑(王德峰)·종창성(钟长盛) 번역, 중앙편역출판사(中央编译出版社), 2014. 7 ) 클라우스 피아스, 『비디오 게임의 세계(电子游戏世界)』, 숑슈어(熊硕) 번역, 푸단대학출판사(复旦大学出版社), 2021. 8 ) 황원다(黄文达), 「제4인칭 단수: 영화 이미지의 자율성에 대하여(第四人称单数——论电影影像的自主性)」, 베이징전영학원학보(北京电影学院学报), 2010. 9 ) 올더스 헉슬리, 『지각의 문(众妙之门)』, 천창두어(陈苍多) 번역, 베이징옌산출판사(北京燕山出版社), 2016. 10 ) John Kuroski, 「The Twisted History Of The Widely Misunderstood Lobotomy」 https://allthatsinteresting.com/lobotomy-walter-freeman 11) 한병철,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문학과지성사, 2015. 필자가 참고한 중국어 번역본은 『精神政治学』, 관위홍(关玉红) 번역, 중신출판사(中信出版社), 201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단위안, 但愿 쓰촨사범대학(四川师范大学) 문학원 문예미학 박사.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강신규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오락실 시대의 대표주자 대전격투 게임, 어떻게 변해왔나 200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에 초점을 맞춰, 사반세기 동안 대전격투게임과 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주요 변화 양상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적 맥락, 산업 구조, 기술 변화, 문화 수용 등의 차원을 고려한다. 버튼 읽기 보이는 신체, 보이지 않는 신체 게임과 신체는 불가분의 관계다. 현실세계 외부에 컴퓨터 기술로 별도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게끔 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라면, 플레이어의 신체는 게임 플레이를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 이 때 신체는 가상세계에의 개입을 위해 게임 밖에서 플레이어의 생각과 의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버튼 읽기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버튼 읽기 MMORPG 레이드와 확률에 대응하는 플레이어 게임은 ‘불확실성’의 매체다. 보통 게임에서 불확실성은 두 차원으로 작동하는데, 하나가 게임의 결과와 관련된다면, 다른 하나는 게임 시스템에 의해 제공되는 특정 기회의 작동과 관련된다. 고도의 플레이 스킬을 요구하는 게임이든 운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게임이든, 플레이어가 그에 참여해 플레이한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실제 플레이를 끝내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버튼 읽기 애증의 가 2023년에 보여준 가능성 <와우>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열성 플레이어들도 나이를 먹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의 유입보다 기존 플레이어의 여전한 참여가 <와우>를 유지시키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와우>가 기존 플레이어들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버튼 읽기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게임이나 플레이어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 시스템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버튼 읽기 B급 게임이란 무엇인가 게임과 B급이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기에, 둘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한 것은, 게임에서 ‘B급’이라 불리는 것들 역시 (그렇지 않은 것들 못지않게)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게임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게임과 B급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감이 있다. 이 글에서는 앞서 말한 연결지점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지점을 중심으로 게임+B급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다. B급 정서나 코드가 게임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그것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핌으로써, 게임에서의 B급, B급 게임, B급 게임문화 등이 게임문화 전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한다. 버튼 읽기 모두를 위한 게임을 향하여: 게임 접근성 문제 게임 접근성을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관련 제도와 사업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공공과 민간의 노력이 동시에 요청된다. 게임 접근성이 사회권 차원에서 제기되는 공공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공공이 먼저 관련 연구와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우리 사회의 게임 소외계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고, 그들이 게임에 접근할 시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이용행태를 보이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버튼 읽기 한국 게임비평의 궤적과 방향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는 1981년 영국에서 발간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Computer & Video Games: CVG)>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으로만 발행되다, 2015년에는 온라인사이트까지 폐쇄하고, (www.gamesradar.com )로 리디렉션됐다. Gamesradar+는 여전히 기대작이나 신작 리뷰, 업계동향뿐 아니라 알찬 내용의 작품비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 게임잡지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PC 보급시기와 맞물려 닌텐도(Nintendo)의 ‘패미콤(Famicom)’을 국산화한 ‘현대 컴보이’가 소개됐다. 이후 세가(Sega)의 16비트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를 삼성전자가 국내버전으로 바꾼 ‘수퍼 겜보이’가 발매되고,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 급증이 게임전문잡지의 탄생을 추동했다. 버튼 읽기 현질의 탄생, 새로운 플레이의 탄생: 〈현질의 탄생〉 서평 지금의 게임 플레이가 더 이상 게임의 시공간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임 텍스트-플레이어 간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납금 플레이 개념이 갖는 타당성과 확장성은 크다. 실제 산업자본의 욕망 하에서 비자율적으로 혹은 다분히 교섭적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는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전혀 즐겁지 않다면 게임을 지속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지속하는 플레이어들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적 당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질에 기인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어떤 플레이가 그냥 별일 아닌 것이라 해버리면, 그 말은 게임이 그 이상의 의미있는 경험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버튼 읽기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2023년 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를 발행했다. 백서는 연 1회 발행되며,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수출입,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e스포츠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이나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 타이쿤,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하다

    <돈스타브>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농사의 중요성을 알고있을 것이다. 당장의 굶어 죽을 위기에서 안정적인 식량 보급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밥을 찾아 헤매는 일은 너무나도 고달프다. 따라서, 수렵과 채집을 하던 게이머들은 어느 순간부터 터를 잡고 작물들을 키워나간다. 더 ‘효율적’으로 작물을 수집하기 위함이다. < Back 타이쿤,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하다 18 GG Vol. 24. 6. 10. 1. 효율을 위한 공간 <돈스타브>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농사의 중요성을 알고있을 것이다. 당장의 굶어 죽을 위기에서 안정적인 식량 보급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밥을 찾아 헤매는 일은 너무나도 고달프다. 따라서, 수렵과 채집을 하던 게이머들은 어느 순간부터 터를 잡고 작물들을 키워나간다. 더 ‘효율적’으로 작물을 수집하기 위함이다. <돈스타브>에서 농장은 곧 ‘효율을 위한 공간’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들은 농사를 하기 위한 땅을 선점하고 생존에 유리한 작물을 선택하여 공간에 배치한다. 이 모든 활동들은 ‘효율’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겨냥하는데, 이때 효율이란 더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수확량을 거둬들이는 시스템을 뜻한다. 즉, 시간 대비 최대의 수확량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돈스타브>의 농사는 아주 세심하게 이루어진다. 과연 무엇이 더 효율적일지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땅, 작물, 배치를 선택하는 것이다. * <돈스타브> 농장 사례. 출처: https://www.fanatical.com/ko/game/dont-starve-together <마인크래프트>에서 ‘효율을 위한 공간’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여기에는 농장 뿐만이 아니라, 동물들을 모아 기르는 목장, 나아가 아이템을 자동으로 수집하게 해주는 공장들도 있다. 자동으로 수집되는 물품들 역시 매우 다양한데, 단순 작물부터 광물 경험치까지 게임 속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자동화의 대상이 된다. 한편 <마인크래프트>에서 ‘효율을 위한 공간’은 <돈스타브>의 것과 성격상의 차이를 지닌다. 이는 수확물에 대한 즉각적인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 긴박한 생존 게임이 아닌 <마인크래프트>에서 효율화 과정은 본격적인 놀이의 과정으로 편입된다. * <마인크래프트> 농장 사례. 출처: https://youtu.be/kf8yXlobhOQ?si=4QZ_wF0Ddjf0UgmV 앞서 필자는 효율이 ‘들인 노력 대비 얻은 결과의 비율’임을 밝혔다. 농장, 목장, 공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더 많은 수확량을 거둬들이기 위함이다. 이들은 플레이어의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효율화 과정이 본격적인 놀이의 일부로 편입될 경우 ‘효율’은 매우 역설적인 양태를 띤다. 주목해 볼 점은 <마인크래프트>에서의 몇몇 효율화 작업이 결코 ‘효율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들이 만드는 자동화 장치가 매우 많은 생산량을 산출해내는 것은 맞지만, 동시에 이를 만드는 일은 너무나도 큰 노력을 요구한다. 자동화 기계를 만드는 시간에 그냥 수렵·채집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수준이다. 예를 들어 밀을 자동으로 수확하는 농장을 만드는 일은 ‘광물 캐기, 몬스터 잡기’ 등의 부가적인 절차를 요구하는데, 이는 밀을 그냥 키워내는 것보다 몇 배는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여기에 드는 효율화 과정을 포함한다면 농장/목장/공장을 만드는 것은 결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일이 아니다. [1] 필자의 경우 <마인크래프트> 야생에서 자동화된 농장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솜씨가 서툴러서 인지 회로를 짜고 재료를 모으는데 한 평생이 결렸고, 모으고 나서는 정작 작동 방식을 구경하다 게임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그 이후에도 작동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 만들고 서버를 버리는 일들이 몇 번 더 반복되기도 하였다. 정작 생산물을 얻는 것보다도 ‘효율적인/효율적일’ 구조를 짜고 만들어 보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다. <마인크래프트>의 사례가 알려주는 것은 효율을 구상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마냥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값어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만들어보는 과정 자체가, ‘효율적인/효율적일’ 시스템을 구상하고 실현하는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2. 타이쿤에서의 ‘기업가 정신’ 이때의 즐거움을 정확히 포착해낸 장르가 바로 ‘타이쿤’이다. ‘타이쿤(Tycoon)’은 에도시대의 쇼군을 의미하는 대군(大君; Taikun)을 철자만 바꾸어 영어 식으로 표현해 놓은 것인데, 게임 문화에서는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를 뜻한다. 어원을 통해 짐작 해보자면, 마치 쇼군(대군)과 같은 위치에서 특정 대상을 사업/경영해 보는 시뮬레이션 게임들이겠다. 구상과 운영에 특화된 이 장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효율’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주어진 시간, 땅, 돈, 인력 안에서 더 좋은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방법을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효율에 대한 추구는 시간이나 자원적 제한을 걸어 두어두는 등 게임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의도되기도 하며, 의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게임 안에서의 플레이 과정은 효율과 딱히 멀어지지 않는다. 플레이어들이 끊임없이 더 좋은, 더 참신한 방식을 고안해 내기 때문이다. 타이쿤은 무엇이 가장 ‘효율적’일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장르이다. 보다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슈의 라면집>과 같은 타임어택 타이쿤에서 플레이어들은 당장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적의 방식을 찾아 나선다.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더 높은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도전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더 효율적인 전략과 더 좋은 피지컬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 <롤러코스터 타이쿤>과 같이 높은 자유도를 지닌 게임에서 효율에 대한 추구는 보다 창조적인 과정으로 거듭난다. 여기에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구조를 고민해보며 그를 통해 무엇이 가장 많은 산출물들을 만들어 낼지를 찾아나선다. 이때 타이쿤 게임은 본격적으로 ‘효율적인/효율적일’ 시스템을 구상하는 실험실이 된다. *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의 실험 사례. 출처: https://youtu.be/h0kTdVw8nxo?si=F4196cZ6cs4dICX8 사실, 타이쿤과 같은 효율의 놀이화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만은 없다. 더 많은 축적과 더 높은 수익을 갈구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마치 신자유주의 서사 안에서의 기업가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즉, 효율에 골몰하는 게이머들이 마치 생산과 축적에 도취된 현대의 경영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다이어-웨더포드와 드퓨터(Dyer-Witheford & De Peuter, 2009/2015)의 연장선상에서 타이쿤이 신자유주의적 주체성을 기르는 기계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가능할 것이다. 3. 타이쿤,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하다 다만, 이 글은 타이쿤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것이 지니는 가능성에 대하여 주목해보고자 한다. 첫 단락에서 살펴보았듯이, 효율이 놀이가 되는 순간 그 중심에는 ‘구상의 과정’이 있다. 플레이어들은 무엇을 어떻게 위치시켰을 때 더 효율적일지를 생각하고 실험하며 최적의 방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러한 ‘효율적인/효율적일’것을 찾는 구상의 과정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됨으로써 놀이화 된다. 이때의 효율에는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존재한다. 본래 효율이 적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많은 산출물들을 얻는 비율이라면, 효율적인 구조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서버를 떠나거나 만들어 놓은 것을 부수는 식으로 시스템들을 구상하다 세계를 떠난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수준에서 게임을 그만두는 것이다. 이는 효율의 놀이가 실제 생산된 결과물에 다소 무관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즐거움이 생산보다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결과를 얻고자 하는 타이쿤 플레이어들을 보며 그것이 너무나도 신자유주의적이라 비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실제 생산 활동과 빗대어서만 타이쿤을 생각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 시각에서 놀이를 사유하는 것이다. 타이쿤으로 대표되는 효율에 대한 놀이는 마냥 생산에 도취되는 것이기 보다는 효율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에 가깝다.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실제 생산량에 무관심하며 그저 이후 벌어들이게 될 생산량을 기대하는 수준에서 멈추기도 한다. 여기서 효율의 또 다른 의미를 가져와보자. 효율은 시간 대비 벌어들이는 생산량의 비율이다. 따라서 효율적이라 함은 그 시간을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율에 대한 추구는 곧 해야할 일이 없는 시간을 만들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 이기도 하다. 타이쿤에서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탑을 쌓아나가는 것만 같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그저 안주하기 보다는 더 좋은, 더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할 방법을 구상한다. 때문에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는 마치 잘 만들어진 수식처럼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타이쿤의 묘미는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해보고 나름대로 만들어보는 것은 아닐까? 생산과 축적을 끌어안기보다는 사람들이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삶을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타이쿤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Dyer-Witheford, N., & De Peuter, G. (2009). Games of empire: Global capitalism and videogames. 남청수 (역) (2015). <제국의 게임>. 서울: 갈무리. [1] 물론 이는 개인의 플레이스타일에 따라 차이가 있다. 만약, 플레이어가 한 야생에서 막대한 시간을 생활한다면 100시간을 들인 기계도 장기적으론 효율적일 수 있겠다. 다만, 이 글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이 효율적인 시스템(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기에 그와 같은 가능성은 생략하였다. Tags: 굶지마, 시뮬레이션, 타이쿤, 대량생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 < Back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14 GG Vol. 23. 10. 10.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 So, how do players communicate in games? Not only how, but what do players communicate while playing? Games have encouraged socialisation through various communication channels, both inside and outside of the game world, as a way to organise, chat and, more often than not - to troll. The breadth of research into communicating in games parallels understanding and unpacking the age-old phrase of “toxicity”. Both authors of this article have studied different gaming communities ( Overwatch, DOTA2, World of Warcraft, Lost Ark, and MtG Arena ), to look at how and what they communicate. Text Chat and Talking Back The best place to start is text chat, the longest-standing way to communicate in games. A channel for conversation and information in MMORPGs like World of Warcraft , where players can recruit, sell, chat, and more. Historically, it was the only way to communicate in games, until the introduction of voice chat, and since that point, it is regarded as a more restrictive way to chat in games. 1) Text chat evolved in response to this. Players generated and built their own game-specific lexicon and abbreviations to make using text chat efficient once more for instantaneous conversations. A simple example of this can be found in League of Legends (Riot Games, 2009). When players load into their team screens, they typically head to the text chat to claim a “lane”, typing “mid”, “bot”, or “top” for top, middle, and bottom lane. A quick way to allocate yourself to a particular lane. A similar example of text chat being used to convey a message efficiently is in MMORPGs like Lost Ark when a world boss appears (a large enemy that appears on a particular schedule and needs multiple players to take down). In this case, a player might type that the world boss is “up” and what channel to join to fight it. Text chat can scale, from the micro to the macro, from one-to-one up to the entire server’s worth of players. This reach comes with consequences. Hate speech can be easily spread via text chat. Whether it is racist, sexist, or homophobic slurs, aimed at no one or everyone, they are regularly spotted in text chat. This problem has become so pervasive that many game companies have automated filters to block out hateful terms. The issue arises further when players get creative in how they write these words. Devin Connors, a community manager at Psyonix, discussed Rocket League’s language ban and chat filter system at GDC 2018 (Image 1). 2) The team initially had a list of 20 bannable words, which has since grown exponentially to include misspelling variants and swears or slurs found in other languages. * Image 1 - Devin Connors presenting the Rocket League Language Ban system at GDC 2018 (author screenshot) Blizzard manages poor sportsmanship displayed in text chat in a more tongue-in-cheek approach. When players type “GG EZ” at the end of a match in Overwatch , insinuating that the game was no challenge to beat the oppositional team, the acronym is swiftly corrected into one of many silly phrases (e.g. “ It's past my bedtime. Please don't tell my mommy.” Or “Gee whiz! That was fun. Good playing!”) . This is done as a way to de-escalate a micro-moment of toxicity without having to bring in the threat of a ban for behaving in poor taste. However, even seeing GG EZ replaced with messages like these, players will be aware of what was initially written, regardless of the appropriate veneer that was placed over it. Obviously, this type of behaviour is low on the threshold of toxicity compared to what the Rocket League team has to filter out, but is equally present in Overwatch matches. This all solely focuses on the use of just text in text chat, ignoring the considerable use of emoticons, emojis, and stickers that we use to communicate in our day-to-day texting, let alone during gameplay. Emotes and emoticons have been a staple of more complex communication systems in games, but they have become common as the sole method of inter-player communication in popular online card games like Legends of Runeterra (Riot Games, 2020), Magic: The Gathering Arena (Wizards of the Coast, 2018), and Marvel Snap (Nuverse, 2022). While Magic has text-based emotes, players are more likely to use any of the numerous animated stickers available in each of these games (Image 2). * Image 2 - A Collection of Emotes from Magic: The Gathering Arena - Authors’ Screenshot While it might first appear that limiting communication to a reasonably small set of phrases and animated images would limit player toxicity, this is not the case. Players are actually able to do quite a lot with very little - often going beyond what the intended function of these emotes might be. In Magic for example, one way to greet an opposing player at the start of a match is with an emote that depicts one of the game’s characters, Gisa, waving at you using the hand of a zombie (Image 3). While this purpose is a quirkier, possibly more fun alternative to the standard ‘hello’ emote, this emote can have other, more sinister uses. * Image 3 - Gisa Waves in Magic: The Gathering Arena - Author’s Screenshot Imagine a common scenario in a game of Magic : two players have been filling the board with creatures over several minutes, incrementally trying to beat the other. The game is a close one, with each player seeking to get just enough of an advantage with each new card played on the field. But then one of the players drops what is known as a ‘board wipe’ - a card that removes a massive number of cards from the battlefield that a player has spent an entire game establishing. And then the player who destroyed the board uses the Gisa emote, not to say hello, but to say “Goodbye to all your cards, and goodbye to all your fun.” This is but one way that players use these emotes. The important thing to take away from this example is that players develop their own use cases and interpretations of these emotes over time, and not all of them are positive and friendly, even if designers intend them to be. Some players will find a way to use them to troll players and these uses can pick up steam throughout a game community. It isn’t just the players acting alone here, however. One final point on these emotes is that they are often riffs on popular memes. For example, one Magic emote depicts the character Saheeli eating from a bowl of popcorn, inspired by the gif of Michael Jackson eating popcorn in a movie theater and other related images of popcorn ingestion (Image 4). * Image 4 - Saheeli the Emote and Michael Jackson Enjoying Popcorn. 3) The memes these emotes are inspired from often have the purpose of poking fun at something - particular rules and use cases that are often meant to turn a situation into a joke. The popcorn-eating Michael Jackson is often used when reading a lot of gossip in a forum thread, or when observing a social disaster or drama, for example. Emotes based on these meme formats come preloaded with meaning, not often positive, with only a player’s opponent as the possible audience for the message that the emote sends when it is used. While basing emotes off of memes creates a shared language between players that makes them more easily readable as artifacts of in-game communication, they also skew towards antagonism because of the way memes make a joke out of most situations. As often as the silliness of these emotes might defuse hostile or negative feelings during play, they are just as likely to produce them because of how they are used and their established associations. This is not an argument for or against emotes one way or another, but is instead meant to highlight that the culture of communication that games are nested within affects even the most limited forms of interplayer communication used in online games. Pinging to Point and Pout Sometimes, words and images just don’t cut it for conveying messages quickly during gameplay. Typically found in MOBAs like League of Legends or DOTA 2, “pinging” is where a player clicks on a map area, item, or character, and it lights up to notify other players. These pings can be signified with an exclamation point or question mark to draw the eye to the area. 4) These quick signifiers can be used for strategising, planning a route as a team, pointing out important items for teammates to collect, or as a warning system to avoid certain areas. 5) . An anecdotal example of the layers involved in pinging comes from one author’s experience playing DOTA 2 for the first time not with the AI but real fellow players. While playing one of their first matches, they noticed that another player was pinging the area around them. Only because someone familiar with the game was supervising was it made evident that this other player was trying to get their attention, flagging that they were making an incorrect choice, or they were in the wrong spot for that moment in play. More can be said about the lack of a tutorial preparing a new player for all the nuanced ways that players might communicate with you during a match, but that is down to community-constructed modes of communication, which is hard to cover within a game’s onboarding tutorial. Aggressive pinging, where a player will spam click the ping button, is often a signifier of frustration 6) for whatever another player is doing. It can also be a way to distract a player if a fellow teammate has opted to throw away the game and bother their teammates instead. A New Player in Voice Chat Moderation Voice chat is still a staple feature in many online games from first-person shooters, to multiplayer survival games, to large-scale group play in numerous MMORPGs. Voice communication affords players more opportunities for complex sequences of expression, which are often necessary for fast-paced online play. The catch is that the use of voice often produces in-game environments where players are able to say whatever they want to teammates and random players, which includes a substantial amount of toxicity 7) . Voice chat brought a more real-time way to communicate in games; a technological revolution in how players could coordinate and socialise. However, in doing so, voice chat removed a level of anonymity to players, exposing their identity (race, gender, sexuality) through what Kishonna Gray calls “linguistic profiling” 8) . Players are very quickly reminded of these intersections of their identities through hateful terms and treatment from other players in response to using their voice in voice chat. Compared to moderating text chat voice has been a difficult facet of online play to manage 9) , no doubt due to the amount of voice chat happening in games and the speed at which it occurs. It is no secret that players have requested some kind of integrated voice chat moderation, with some doing so since 2017 10) . Even though the moderating voice is a lofty task, one company, Modulate, is at the forefront of this endeavor. Modulate are the creators of ToxMod, a voice moderation technology designed to help game companies identify, triage, and proactively manage instances of toxicity that happen in the voice communications of their games. This past August, Modulate partnered with Activision to implement ToxMod in the upcoming Call of Duty: Modern Warfare III (Activision, 2023). In a conversation with Modulate COO Terry Chen, he expressed the importance of keeping in-game communication healthy: “Our overall intent is not only to protect people that are suffering from this marginalization, but also to make gaming and its spaces more fun. I think fun is at the forefront of what we do. [...] Voice chat, which has become more critically important in esports, especially for games like Valorant, where you need [voice chat] for a tactical advantage against the enemy opponents, there’s just this level of toxicity that makes it impossible to enjoy the game that you’re trying to love, and also improve.” To accomplish these goals, ToxMod uses machine learning technology to detect and rate toxicity, but ToxMod does not ban and punish users on its own. Instead, Terry views ToxMod as “a collaborator, kind of an additional player in the game that can listen and help out if necessary.” This is because the toxicity that ToxMod detects is flagged for moderators who have the job of making the final decision on what actions need to be taken against players, so ToxMod operates in partnership with developers and moderators to address the issue of toxic communication. To close this article, I asked Terry, as someone who is on the front lines of addressing toxicity, what more could be done by companies and players alike to work towards a solution? We’ve seen how toxicity is common across each of the in-game communication mechanisms we’ve explored, so what are we to do that isn’t being done? Terry offered two important solutions: 1) Listening to players from across a game’s player base rather than focusing on the needs of the most skilled or highest profile players as there is valuable feedback from more than the pros. In fact, most players are not playing at the highest skill levels and can provide a lot of valuable information about what is happening throughout the most densely populated segment or rank of a game. 2) To think about detecting and rewarding positivity. According to Terry, “The truest action would be implementing tools, whether it’s Modulate ToxMod, whether it’s something developed internally to detect bad behavior, but also reward positive behavior.” As players, developers, and researchers we find ourselves so confronted with the negative aspects of in-game communication that we take our eyes off the players who are setting good examples - and more work should go into refining and implementing systems that encourage more positive interaction - not just mechanically, but in the ways we communicate with one another in-game. On the other side of the avatar, we are real people after all. As we can see, there are two important facets to consider when discussing communication and social systems in games. The first is how to moderate them. It is a trepidatious task that requires people power, tech power, and clear guidelines to enact any form of governance in a social space. When introducing a competitive angle to gameplay (whether as an aspiring pro player or as a player who simply enjoys competing in the game space) - the stakes go up, and so there is more on the line for players to care about. In the same space, we have players who are just there for the vibes. To play with their friends, regardless of the outcome (though they would like to win). The second facet is “trolling” and toxicity via all these different modes of communication. Players will find ways to get creative with any system, to subvert it to their own wishes and enact toxicity however they see fit. Ultimately though, it goes back to the very start of this article; that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t is not the sole aim of most players to go online and be toxic, but rather to join into the collective and have a good time with others who enjoy the same play space. Turning to the future of communication in games, voice chat has more recently become somewhat fragmented with the success of Discord. Many players have shifted their voice communication from the dedicated game servers to their own personal, curated community Discord servers, where they hang out as a collective with friends instead of strangers in a game lobby. Though some game-specific Discord servers exist, they are less for communicating during play and more for marketing and building a community around the game. Virtual reality could yet revolutionise how players embody communication during play, though right now they are awkward half-bodied avatars with nausea-inducing equipment for some. There is potential on the horizon, and yet one thing is for certain -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to subvert social spaces. *For more on modulate you can visit their website, https://www.modulate.ai/ . 1) 2) Wadley, G., Carter, M., & Gibbs, M. (2015). Voice in Virtual Worlds: The Design, Use, and Influence of Voice Chat in Online Play. Human–Computer Interaction, 30(3–4), 336–365. https://doi.org/10.1080/07370024.2014.987346 3) Saheeli image from draftsim.com. https://draftsim.com/mtg-arena-emotes/ (accessed September 24th, 2023). Michael Jackson image from knowyourmeme.com. https://knowyourmeme.com/memes/popcorn-gifs . 4) Leavitt, Alex, Brian C. Keegan, and Joshua Clark. ‘Ping to Win? Non-Verbal Communication and Team Performance in Competitive Online Multiplayer Games’. In Proceedings of the 2016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4337–50. CHI ’16. New York, NY, USA: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2016. https://doi.org/10.1145/2858036.2858132 5) Wuertz, Jason, Scott Bateman, and Anthony Tang. ‘Why Players Use Pings and Annotations in Dota 2’. In Proceedings of the 2017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1978–2018. CHI ’17. New York, NY, USA: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2017. https://doi.org/10.1145/3025453.3025967 . 6) ibid. 7) Reid, Elizabeth, Regan L. Mandryk, Nicole A. Beres, Madison Klarkowski, and Julian Frommel. “‘Bad Vibrations’: Sensing Toxicity From In-Game Audio Features.” IEEE Transactions on Games 14, no 4 (2022): 558-568. 8) Gray, K. L. (2014). Chapter 3 - Deviant Acts: Racism and Sexism in Virtual Gaming Communities. In K. L. Gray (Ed.), Race, Gender, and Deviance in Xbox Live (pp. 35–46). Anderson Publishing, Ltd. https://doi.org/10.1016/B978-0-323-29649-6.00003-0 9) Märtens, Marcus, Siqi Shen, Alexandru Iosup and Fernando Kuipers. “Toxicity Detection in Multiplayer Online Games.” Proceedings of the 2015 International Workshop on Network and System Support for Games (NetGames). 03-04 December, 2015, Zagreb, Croatia, 1-6. 10) Blamey, Courtney. ‘One Tricks, Hero Picks, and Player Politics: Highlighting the Casual-Competitive Divide in the Overwatch Forums’. In Modes of Esports Engagement in Overwatch, edited by Maria Ruotsalainen, Maria Törhönen, and Veli-Matti Karhulahti, 31–47.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22. https://doi.org/10.1007/978-3-030-82767-0_3 . Tags: ping, voicechat, MTG, emote, toxicity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 Back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19 GG Vol. 24. 8. 10.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디지털게임에 이르면 호러는 한층 더 강력해집니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공포의 현장 한가운데에 밀어넣기 때문에 많은 경우 게임에서의 공포는 관조가 아닌 개입과 참여를 통해 전달됩니다. 무서운 것을 보는 것과, 직접 무서운 일을 일으키거나 맞닥뜨리는 것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역대급 폭염이 덮친 2024년 8월 GG의 탐색은 호러를 향합니다. 후발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은 공포라는 감정을 자신이 매우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많은 기존 매체들의 문법을 학습해 왔고, 게임 특유의 호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적지 않은 수로 쏟아지는 공포 게임들이 이 실험과정의 활발함을 보여주는 단서들일 것입니다. 한켠에서는 무서워서 공포 게임을 손도 못 대는(저를 포함합니다) 사람부터, 호러 게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상 붙잡고 있는 마니아까지의 다양함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게임에서의 호러가 어떤 의미인지를 폭염 속에서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이번 19호를 기점으로 GG는 만 3년을 채웠습니다. 게임에 관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끊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 디지털게임을 무겁게 이야기하는 일은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GG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걸어온 길보다 더 머나먼 앞날의 길에도 독자분들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는 9월 초까지 진행되는 게임비평공모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 박정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 전시, 비평, 워크숍을 한다. (비)과학에 관심을 두고 뉴미디어 아트와 비디오게임을 탐구한다. 최근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연구 <기이한 게임과 으스스한 게임>(2024,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전시 (2024, WWW SPACE), 워크숍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비평>(2024, 아트코리아랩 아트랩클럽), 전시•워크숍 (2024, 하자센터 미디어아트 작업장) 등이 있다. 박정서 박정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 전시, 비평, 워크숍을 한다. (비)과학에 관심을 두고 뉴미디어 아트와 비디오게임을 탐구한다. 최근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연구 <기이한 게임과 으스스한 게임>(2024,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전시 (2024, WWW SPACE), 워크숍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비평>(2024, 아트코리아랩 아트랩클럽), 전시•워크숍 (2024, 하자센터 미디어아트 작업장) 등이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버튼 읽기 [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21세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산업 규모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그 이전의 역사, 그러니까 ‘8비트 게임 시대’를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중국 게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이 글은 중국의 8비트 게임 시대를 조망하고 그 역사가 지닌 함의를 논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초기 게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 Back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02 GG Vol. 21. 8. 10. - 편집자 주: 이 글은 중국의 게임연구자 Jian Deng이 투고해온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이 너무 길어 번역은 핵심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축약하였습니다. 원문이 필요하신 경우 별도로 게재한 아티클을 참고해 주십시오.- 원문링크: 21세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산업 규모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그 이전의 역사, 그러니까 ‘8비트 게임 시대’를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중국 게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이 글은 중국의 8비트 게임 시대를 조망하고 그 역사가 지닌 함의를 논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초기 게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두 다리로 걷기”: 패미클론과 학습용 컴퓨터 1980년에 행정부의 지도 하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던 중국이 처음으로 게임 콘솔을 개발한 것은 1981년 말의 일이었다. 베이징의 제1경공업연구소(北京第一轻工业研究所)에서 개발한 YQ-1은 〈퐁〉의 여러 버전이 내장된 콘솔로서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eneral Instruments)의 AY-3-8500칩을 사용했다. 이 콘솔이 1982년 소량 출시되기 시작한 이래, 항저우나 우시, 상하이, 내몽골, 광저우 등 타 지방의 공장들에서도 유사한 콘솔장치들이 조립/생산되기 시작한다. * 1980년대 중국에서 생산되었던 YQ-1 콘솔의 모습(왼쪽), AY-3-8500칩(오른쪽) 1984년에는 2세대 콘솔이 중국 시장에 진입한다. 1985년까지 게임 콘솔은 외국에 거주하는 친척들이 주는 귀하고 비싼 선물이었는데(1986년 기준으로 1000위안 수준), 이러한 상황은 1987년 패미콤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가격이 비싼데다 중국의 PAL-D 텔레비전과 연결도 쉽지 않았던 패미콤이었지만, 중국 내수 시장에 “패미(콤)클론(이하 패미클론)”의 생산 기반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중국의 텔레비전에서도 패미콤이 작동할 수 있도록 개조된 패미클론들이 홍콩으로부터 수입되었지만, 이내 홍콩과 대만의 제조사들이 중국 본토에서 직접 콘솔을 복제/개조하기 시작한다. 중국의 국가적 개혁 및 개방을 통해 중국 남부에 거대한 규모의 저렴한 노동력이 이용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개 수십명 정도 규모의 이 공장들은 연간 수십만에서 백만대 규모의 콘솔을 생산하면서 중국 전역에 기술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중국 본토의 기업들이 게임산업에 진입하게 되는 계기도 제공했다: 1987년 초반 선전과 주하이, 닝보 등 중국의 남부 해안가 도시들이 일본산 게임 콘솔 조립 산업을 주도하면서 난천(兰天), 왕중왕(王中王), 천마(天马), 소패왕(小霸王) 등의 패미클론들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당시 중국에는 7백개가 넘는 인기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가 존재했다. (Pan A2)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시기에 중국 남부 해안 지역의 콘솔 생산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1989년 6-700 위안이었던 게임 콘솔의 가격은 1992년에 100위안 정도로 떨어졌다(Sun 79). 가격이 낮아지면서 평균적인 임금 수준의 노동자 가정에서도 게임용 콘솔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집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1993년에는 텐진의 뉴스타 일렉트로닉스(Tianjin Newstar Electronics Co., Ltd.)가 SUN 워크스테이션 시스템과 통합 회로 설계 소프트웨어(그리고 SM-T 생산라인까지)를 갖추고 중국 최초의 16비트 게임 콘솔 “소교수(小敎授)”의 개발에 성공한다. 이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성취로서, 중국은 당시 독립적으로 16비트 게임 콘솔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소수의 국가들 중 하나가 된다. 중국 게임 콘솔 역사의 또 다른 흐름으로는 ‘학습기(学习机)’라 불리는 학습용 컴퓨터가 있다. 전지구적으로 게임의 산업적 발전이 활발하던 1980년대에 중국이 주목했던 것은 학습용 컴퓨터였는데, 그 이유는 컴퓨터를 통해 놀이를 훈련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오랜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콘솔 같은 명백한 오락장치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학습용 컴퓨터’라는 위장으로 부모들의 염려를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 재개된 대학입시 제도 또한 관련성이 있는데, 대학 입시를 통해 사회 계층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중국 사회에서 지식에 대한 존중과 자신감이 상승했고, 이것이 학습용 컴퓨터의 필요성에 중국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학습용 컴퓨터가 현대적 지식 매체로서 상상적으로 구축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와 같은 맥락이 존재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학습용 컴퓨터의 생산과 대중화 아래에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현대화가 은폐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학습용 컴퓨터를 통해 적당한 가격의 컴퓨터를 보급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주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수준을 맞추고자 했다. 학습용 컴퓨터의 역사적 흐름은 덩샤오핑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재집권한 뒤 교육과 과학 그리고 기술의 현대화를 주요 국가적 목표로 삼았던 덩샤오핑은 1984년부터 컴퓨터의 대중화를 직접적으로 챙기기 시작한다. “아동을 위해 컴퓨터의 대중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에 따라 중국 사회가 컴퓨터 교육을 중시하게 되고 전국의 초중등 교육기관이 재빠르게 컴퓨터 장비를 구매하기 시작한다. 1986년에는 컴퓨터의 대중화와 교육의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과학 기술 위원회, 국가 교육위원회, 전자산업부가 “중화학습기(中华学习机)” 개발에 합의하는 등 사회적/국가적으로 의지가 충만한데다 관련 부처의 지원이 뒤따르면서 학습용 컴퓨터는 이내 중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어 간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열성적으로 학습용 컴퓨터의 생산과 보급에 나섰음에도, 시장 경제적인 문제가 그 발목을 잡는다. 학습용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지닌 한계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개혁과 개방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적 의지와 시장 원칙 간 내재하던 모순이었다. 그 목적이 본래 (특히 젊은이들이) 국가의 근대화에 조력할 수 있게 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학습용 컴퓨터의 게임 기능은 우선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여러 가정들이 컴퓨터를 구매하도록 이끈 그 시장 경제적 동기는 바로 게임 기능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점진적으로 상대적으로 (기능이) 통일되어있던 학습용 컴퓨터로부터 보다 다기능적인 시스템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동은 기술적 발전이나 국가 소유로부터 사적 생산 및 판매로의 이동이라는 조직적인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1990년대 중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경제적 개혁의 심화에 따른 시장 중심적 권력 관계의 변동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가 점차 시장의 압력에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민간 영역에서 운영되던 학습용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불확실한 시장의 수요 및 다양성에 맞출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학습용 컴퓨터를 다기능 멀티미디어 제품으로 전환시키고, 게임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에 제품의 디자인 및 마케팅의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장 지향적 조치를 통해 학습용 컴퓨터들은 지배적인 정치적/사회적 권력이 부여했던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국가적 서사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난 학습용 컴퓨터들은 사실상 시장의 권위와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들을 긍정하는 게임장치로 변모해갔다. * CEC-1 학습용 컴퓨터, Subor SB-486D PC 학습용 컴퓨터 “문화 침략”: 게임 콘솔에서 중국의 8비트 게임소프트웨어까지 이처럼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중국의 게임산업이지만, 그 상업적 성공을 이끈 것은 1990년대 전세계를 주름 잡던 세가, 닌텐도, PC엔진 등의 일본산 게임 하드웨어의 복제품들이었다. 한편 복제품이 글로벌 게임 소프트웨어 어셈블리 언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생산 표준을 따라해야 했다. 즉 중국이 세계 콘솔 시장 경쟁에 참여하려면 일본의 게임 아키텍처와 로지스틱을 기반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1993년 전력산업 정보센터(电力工业信息中心)와 무장 경찰 과학기술 정보센터(武警科技信息中心站)는 QZM이라는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였는데, 이 시스템은 PC와 패미콤 간 커뮤니케이션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286 또는 386 마이크로 컴퓨터를 개발 플랫폼을 활용해서 닌텐도용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컴파일할 수 있었다. 이 소프트웨어는 즉각적으로 패미콤에 전송되어 실행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소스프로그램이 컴퓨터에서 변환 및 디버그 되었고 성공적으로 작업이 수행될 수 있었다(Pan A2). 이 상황은 개발 패러독스로 이어졌다. 개혁 개방에 따른 사회/경제적 발전과 함께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던 중국이 발전의 딜레마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구축되어있는 세계 시장 질서를 받아들이고 일본 게임산업의 중국 지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주성을 더 중시할 것인가? 이 패러독스는 또한 중국의 게임산업에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를 강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 업체들이 일본신 게임장치의 복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시장 자주성을 지니게 된다 할지라도, 8비트 콘솔 제작에 있어 핵심적인 CPU는 여전히 해외에서 들여와야 했던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20세기 말에 이르러 중국의 게임산업은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특히 PC용 게임 소프트의 개발로 이동해간다. 사실 중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은 중국이 국가적으로 하드웨어 제조산업을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시점에 시작되었다. 1982년 ISCAS(중국과학원 반도체연구소)가 로켓런처 게임칩을 생산했던 바로 그 해에 북경 과학위원회(北京科委)는 10개 대학과 연구기관을 모아 콘솔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해외 전문가의 지도 하에서 중국은 1983년 초 중국적 특성을 가진 게임 프로그램 〈손오공(孙悟空)〉과 〈칠교판(七巧板)〉등을 개발하여 국제적인 게임기업들에 판매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프로젝트들은 변동하는 외부 환경과 맞물려 사라져간다. 대신 1980년대 후반 들어 불분명한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있었던 소규모 기업들 - 얀샨소프트웨어(烟山软件), 파이오니어 카툰(先锋卡通) 등 - 이 8비트 게임의 해킹과 불법복제 사업에 뛰어든다. 이들의 성공은 경제적 생존이 최우선 되는 입장에서 게임 하드웨어 시장이 추구하던 모방 전략을 따른 결과였고, 이는 다시 말해 중국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의 번성이 일본의 8비트 게임 불법복제로 뒷받침된 것임을 의미한다. 1990년대에 들어와 게임의 내러티브가 보다 복잡해지면서 중국의 게임개발사들은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카게의 전설(The Legend of Kage)〉는 공주를 구하는 닌자의 이야기인데, 그 속에 일본의 닌자 문화를 표현하는 다양한 시청각적 상징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민족주의적인 중국에 있어 이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게임은 중국 시장에 넘쳐나고 있던 수많은 일본 게임들 중 하나일 뿐이었고, 이러한 상황이 1990년대의 중국 게이머들이 게임의 문화적 식민화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내에 새로운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 고유의 특성을 지닌 게임에 대한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은 플레이어들의 문화적 각성은 중국 IT 산업의 빠른 성장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새로운 IT 인력들의 다수는 게임 산업에 열광적이었는데, 그들은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기반 운영에 있어 가장 낮은 수준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운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Wei 75). 비록 그들이 문화 지식인으로 성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그들은 엔지니어였다),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불안 아래서 중국의 문학과 예술작품에 실린 “대도(载道/도를 떠받든다)의 전통”을 과감하게 차용한다. 그들이 시도한 것은 정치적 도덕 교육에 기반한 보수적인 게임문화의 구축이었고, 이는 1990년대 중국 게임에 팽배했던 독특한 애국주의 기반의 정서를 형성했다. 1994년 10월 골든디스크 일렉트로닉(金盘公司)은 중국의 첫 PC게임 〈신응돌격대(The Magic Eagle)〉을 출시한다. 1998년에 이르면 15개 개발사들이 55편의 PC용 게임을 출시하는데, 이 게임들은 중국의 PC게임 첫세대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푸저우 웨이싱 컴퓨터 사이언스 & 테크놀로지(外星科技)는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중국 게임산업계에서 이 회사는 중국의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부터 이 회사가 생산하고 출시한 270편 이상의 8비트 게임들은 중국 8비트 게임에 있어 핵심이었다. 이 회사를 필두로 1990년대 중국 본토에서는 열군데가 넘는 업체들이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업체들은 무허가로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를 번역하고, 이식하고, 백포트하고, 해킹해서 유통시켰는데, 중국 8비트 게임 시장의 번성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표] 업체별 게임 소프트웨어 출시 현황 이 부분이 바로 8비트 게임 개발 과정의 중국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PC엔진의 출시 이래 세계는 16비트 게임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차세대 콘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의 중국에는 여전히 구식 8비트 게임을 겨냥한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는 중국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과 연관이 있다. 중국의 게임업체들 또한 세계 시장을 열심히 따라잡고자 노력하던 무렵, 뤄양시에서 “2.29” 살인 및 시체 방화사건이 벌어졌다. 허난성 뤄양시에 거주하던 3명의 6학년생들이 게임방 주인에게 살해된 후 벌판에서 불태워졌던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국가적 분노가 일어나면서 정부의 엄격한 게임 통제로 이어진다. 2000년 6월 12일 각 부처가 합동으로 “내수 시장을 대상으로 게임 장치와 그 구성요소들의 생산과 판매”를 완전히 정지하는 전자오락실 특별 관리 계획을 공포하였고, 그에 따라 중국 게임 하드웨어의 개발이 정체되기 시작한다. 그 영향으로 중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제조업체들은 대거 PC용 게임 생산에만 집중하게 된다(이 시기는 한국산 온라인게임의 영향으로 주로 온라인게임이 개발됨).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콘솔용 게임 소프트웨어에 천착하던 게임 업체들은 시장 내에 존속하는 8비트 게임 콘솔용 소프트웨어만 개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은 차세대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시장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다시 말해, 게임 콘솔 금지 정책은 중국 콘솔 게임의 발전을 억제했고, 그에 따라 8비트 게임 중심성이 비정상적으로 존속되었던 것이다. 관점에 따른 중국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분류 중국의 8비트 게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여기서는 생산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정리해보았다: 1. 일본 게임을 해킹한 게임: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은 중국인들이 8비트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역사적 계기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얀샨 소프트웨어가 남코의 〈배틀시티(Battle City)〉와 코나미의 〈콘트라(Contra)〉를 해킹해서 만든 〈얀샨탱크(얀샨 Tank)〉와 〈슈퍼콘트라 II(Super Contra II)〉가 있다. 얀샨 소프트웨어는 이전에 푸저우의 제16중학교 운영하던 기업이었는데, 그래서 “푸저우 제16중학교(福州16中)”이라는 단어와 "얀샨"(烟山)이라는 단어가 게임 중에 나타난다(이미지 참조). 중국 게임산업상 최초의 인-게임 광고라 할 수 있다. * 〈얀샨 탱크〉 내 인-게임 광고 2. 일본 게임의 번역판: 여기에는 주로 1990년대에 웨이싱(Waixing)에서 출시했던 무단 번역게임들이 해당한다. 이 회사가 무단으로 번역한 일본 게임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시리즈,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등이 있다. 지식재산권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무단 번역 게임들은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중국 게임의 역사 내 그들의 위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해적판 8비트 게임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비용과 기술의 한계로 인해 게임 플레이 가이드 같은 것들은 대개 번역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드래곤 퀘스트〉 같은 복잡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JRPG 게임들이 중국에서 별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웨이싱을 비롯한 중국의 8비트 게임회사들의 번역 시도는 중국의 젊은 플레이어들이 동아시아 하위문화의 젊고 생생한 상상을 저렴한 가격으로 누릴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는 주류 정치적 서사에 묶여있던 젊은이들의 사고를 해방시킬 수 있는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다. 3. 이식된 게임: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은 보다 고성능 플랫폼의 게임들을 패미클론 플랫폼으로 각색하여 이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여러 인기 걸작들을 패미클론 콘솔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 포켓몬은 가장 중요한 이식 대상이었는데, 웨이싱의 포켓몬 시리즈, 난징 테크놀로지(南晶科技)의 젬 시리즈(Gem series), 쉔젠 진코타 테크놀로지(晶科泰, 이하 진코타)와 헹거 테크놀로지(恒格电子, 이하 헹거)의 포켓몬 시리즈, 마스 프로덕션(火星科技, 이하 마스)의 포켓 엘프 시리즈 등이 있다.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이 중국 고전 PC게임 또한 이식해왔다는 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난징 테크놀로지의 〈신월검흔(新月剑痕)〉 와 진코타의 〈헌원검(轩辕剑)〉 등은 대만 게임으로부터 이식된 것이다. * 난징 테크놀로지의 〈헌원검〉 4. 그림을 바꾼 게임(换皮游戏): 대개 JRPG 게임을 중국적으로 보이도록 시청각적인 요소들, 예컨대 스토리, 장면, 오프닝 등의 게임 내 시네마틱, 캐릭터 디자인, 장비 액세서리 등에 중국적 요소를 덧입히는 것이다. 즉 원본이 되는 일본 게임(주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게임플레이와 구조에 기반하되, 원본의 스토리를 중국의 것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난징 테크놀로지의 〈헌원검〉 시리즈는 명시적으로 대만의 소프트스타 엔터네인먼트(大宇公司)의 고전 CRPG 〈헌원검〉를 이식한 것이었지만, 〈드래곤 퀘스트〉의 게임 시스템(인터페이스, 레이아웃, 시스템 아키텍처 등)을 도입하여 중국의 스토리를 담았다. 5. 오리지널 게임: 중국에도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이 있다. 비록 이 게임들이 중국의 8비트 게임을 완전히 혁신적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기존의 게임플레이를 활용해서 중국적인 테마를 지닌 게임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드래곤 퀘스트〉의 구조에 기반해서 중국적 스토리와 시청각적 요소들을 입힌 4번의 경우와 달리, 이 오리지널 게임들은 다양한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중국의 문화적 특성을 지닌 8비트 게임의 개발을 추구했다. 중국의 게임산업의 발전이 아직 미진하던 1990년대의 그와 같은 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 일본과 미국의 게임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전세계가 “일본-미국 중심주의”의 게임 역사에 빠져 있었고, 그에 따라 각 국의 게임 역사가 그 자신과 괴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표현하는 8비트 게임의 개발은 “게임 제국”의 변방에 놓인 중국이 반드시 다뤄야 하는 문제였다. 많은 일본의 고전게임들이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활용해온 가운데 종종 무의식적인 변형과 왜곡이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는 삼국의 “도시’ 개념을 일본 전국시대의 “일본식 성”의 개념으로 변형시켰다. 중국의 입장에서 이는 중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명백히 잘못된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리지널 8비트 게임은 중국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중국인 고유의 관점을 통해 조망하면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고도의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을 주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역사적 테마를 가진 게임: 주로 1990년대에 등장해서 대개 중국 근대의 역사를 다룬다. 대표작으로 〈임칙서의 금연(Lin Zexu's Smoking Ban, 林则徐禁烟)〉, 〈지도전(Tunnel Warfare, 地道战)〉 등이 있다. 대부분 롤플레잉 게임플레이를 채택하고 스토리상 근대 중국이 직면했던 “노예화와 멸종”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아바타를 통해 플레이어들을 국가의 운명과 연결시키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는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를 강조한다. 이러한 게임들의 내러티브 콘텐츠는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던 중국의 게임산업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2. 전기(biography) 게임: 중국의 역사나 소설의 인물을 주요 캐릭터로 삼아 그 캐릭터의 영웅적인 행실을 다룬다. 대개 전통적인 중국 문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았으며 권선징악, 의협심, 국가에 대한 충성 같은 주류적 가치를 표현한다. * 웨이싱의 〈포청천(Bao Qingtian, 包青天)〉, 난징 테크놀로지의 〈곽원갑(Huo Yuanjia, 霍元甲)〉과 〈황비홍(Huang Feihong, 黄飞鸿)〉, 마스의 〈악비전(Yue Fei Biography, 岳飞传)〉 (왼쪽 위부터) 3. 각색된 게임: 중국의 8비트 게임에 있어 메인이 되는 유형으로, 고전 걸작, 무협 소설, 유명 영화와 TV 드라마, 고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외국의 동화 등을 각색한 게임들이 있다. 4. 고전 소설을 각색한 게임: 서유기, 수호지, 삼국연의, 홍루몽, 수당연의, 삼협오의, 경화연 등의 고전 소설을 각색한 게임들 * 웨이싱의 〈서천취경 2(The Journey to the West 2, 西天取经2)〉, 〈수호전(Water Margin, 水浒传)〉, 〈삼협오의: 어묘전기(Three Heroes and Five Righteousness: Legend of the Imperial Cat, 三侠五义:御猫传奇)〉, 난징 테크놀로지의 〈홍루몽(Dream of Red Mansions, 红楼梦)〉, 〈수당연의(Sui and Tang Dynasties, 隋唐演义)〉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로) 1) 무협소설을 각색한 게임: 김용이나 구용 같은 작가의 무협소설을 각색한 게임들이다. 중국 게임의 역사에 있어 8비트 무협 게임은 문화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드래곤 퀘스트〉 같은 해외 게임들에 기반한 상상이 넘쳐나는 가운데, 무협 게임만이 유일하게 중국의 전통적 문학 및 예술적 사고가 “보장된 영토”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의 청소년 하위문화가 부상하는 가운데서, 이 게임들은 전통적 문학작품과 예술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나마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자 수많은 중국인 플레이어들이 수천년 간 내려온 고유의 대중 문학 및 예술적 사고에 노출시켜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무협 게임들은 중국 게임의 문학적/예술적 특별성을 반영한 것으로, 이는 “의협심”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 같은 중국 전통의 이데올로기적 자원들이 게임 영역에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 웨이싱의 〈초류향(Chu Liuxiang Legend, 香帅传奇之血海飘零)〉과 〈의천도룡기(Massacre Dragon Knife, 屠龙刀)〉, 난징 테크놀로지의 〈천룡팔부(The Demi-Gods and Semi-Devils, 天龙八部)〉와 〈절대쌍교(Handsome Siblings, 绝代双骄)〉, 진코타의 〈초류향신전(New Biography of Chu Liuxiang, 楚留香新传)〉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로) 2) 영화와 드라마를 각색한 게임: 당대의 유명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각색한 게임들. 그러나 이 게임들은 원본 작품의 이름이나 컨셉만을 차용했을 뿐, 게임의 플롯은 완전히 다른 경우도 많았다. * 웨이싱의 〈대화서유(A Chinese Odyssey, 大话西游), 난징 테크놀로지의 〈무림외전(My Own Swordsman, 武林外传)〉, 마스의 〈타이타닉(Titanic)〉 (위에서부터 차례로) 3) 고전 신화와 설화를 각색한 게임: 일본이나 유럽 또는 미국의 마법 문화와는 완전히 상이한 고대 중국의 신이나 귀신에 대한 전설과 초자연적인 상상을 활용함으로써 중국 8비트 게임의 문화적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 웨이싱의 〈봉신방격투(Fighting!The Legend of Deification, 封神榜格斗)〉와 〈천왕항마전(King Defeat Devil, 天王降魔传)〉, 난징 테크놀로지의 〈나타전기(The Legend of Nezha, 哪吒传奇)〉과 〈마도겁(Devil way, 魔道劫)〉 (위에서부터 차례로) 4) 외국 동화를 각색한 게임: 외국의 고전 동화를 활용한 게임들로, 이를 통해 해외의 동화들이 중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알려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게임들이 원본에 완전히 충실했다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 플레이가 원본인 고전 작품에 대한 경험이라기 보다는 그저 신나게 플레이한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중국의 8비트 게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상 살펴본 중국의 8비트 게임의 역사는 중국 게임의 역사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지녔으며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지적재산권을 지닌 내수용 8비트 게임의 생산과 판매는 1990년대 초반 웨이싱을 매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실 내수용 8비트 게임은 적절하지 못한 시기에 등장한 것이었다. 당시 국가적 차언에서 컴퓨터 및 인터넷 기술의 발전에 매진하던 가운데 게임을 사랑하는 수많은 컴퓨터 인력들이 게임 소프트웨어 제작업계에 진입하면서 중국의 PC게임이 발전했다. 중국의 주류 게임사가 콘솔 게임의 역사로부터 컴퓨터 게임(온라인 게임도 포함)의 역사로 빠르게 바뀌어간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제조업계가 우세했었지만 PC게임 부문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8비트 게임은 비가시적인 형태로 “보이지 않게 발전”할 수 있었을 뿐으로, 그에 따라 중국 게임의 역사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2000년도에 있었던 콘솔 금지 정책은 8비트 게임에 있어 유리한 면이 있었는데, 중국 정부가 16비트 게임 콘솔을 비롯한 차세대 고성능 게임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 - 그리고 그에 따라 차세대 콘솔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 - 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8비트 게임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중국에서는 글로벌한 경향과는 달리 8비트 게임 중심성이 지속되었다. 비록 중국의 게임 제조업체들이 다양한 8비트 게임을 개발했음에도, 실질적으로 세계 게임 산업 및 중국의 8비트 게임 산업을 혁신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게임플레이의 혁신이 게임 혁신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라면,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 - 앞서 언급했던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 포함 - 은 그저 일본의 8비트 게임의 디자인을 모방했을 뿐이며, 중국적인 특성을 지닌 오리지널한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시 말해 오리지널리티의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의 8비트 게임은 실패라 할 수 있다. 일본 게임의 질 낮은 복제에 가까운 이 게임들은 혁신적인 가치를 지닌 문학이나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수익을 위해 산업적으로 생산된 하급품에 가까웠고, 그에 따라 8비트 게임들은 중국의 플레이어들로부터 언제나 비판과 조롱을 받곤 한다. 그러한 8비트 게임일지라도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나름의 장점과 의미가 없지 않다. 다양한 오리엔탈리즘적 담론들로 가득한 게임 영역에서 중국의 이미지는 자주 왜곡되곤 했는데, 예를 들어 에는 외국 게임 개발자들의 중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상상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국가적 이미지를 저해하고 그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8비트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이 상대적으로 “리얼”한 중국을 중국의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국의 8비트 게임들은 치명적인 흠결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의 플레이가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데다 심지어는 버그로 가득해서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온전하게 경험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8비트 게임의 시장 매출은 실질적으로 형편없었으며, 그 게임들이 중국 게임산업의 발전을 주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그 기저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고 8비트 게임의 텍스트와 그 생산 과정 및 사회적 텍스트 간의 상호작용을 논의하면서, 중국의 8비트 게임 역사를 오늘날 중국에 대한 하나의 증상이나 은유로서 취하여 그 역사적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8비트 게임은 1990년대 중국 십대들의 사고방식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했다. 1949년 중국 인민공화국이 건립된 이래, 문학과 예술에 대해 사회주의적 관점이 주도해온 환경 아래서 만화나 예술 영화 등 중국의 아이들을 위한 문화상품들은 혁명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육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러한 문화상품들이 십대들이 좋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청소년 문화의 영역 내 엄격한 사회주의 교육 및 이데올로기 체계의 연장일 뿐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일본의 8비트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여러 청소년 하위문화 상품들이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중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1990년대에 이르러 엄청난 규모를 형성하게 되면서, 기존의 엄격한 문화적 상황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일본 문화 상품의 분방한 문화적 상상력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일본의 청소년 하위문화가 당국이 엄격하게 통제하는 주류 문화와 첨예하게 충돌하게 되었고, 점진적으로 우세를 점하게 된다. 이른바 중국 십대 청소년들의 “마음의 해방”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8비트 게임 생산은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진행되었다. 중국의 게임 제조업체들은 중국의 이야기들을 8비트 게임 기술과 결합시키고자 했고, 8비트 게임이 중국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해방시키고 있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중국의 문화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관심이 강화되는 것도 원했다. 그러나 이는 한정된 기술력으로 온전하게 실현될 수 없었고, 플레이어를 유인할 수 있는 혁신에도 실패하면서 8비트 게임은 시장에서 밀려났다. 즉 이 8비트 게임들은 콘텐츠 내에 중국적인 것을 담는 것에 지나치게 치중하다가 게임플레이의 재미 그 자체를 경시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8비트 게임의 상징적 가치가 언제나 그 사용 가치를 넘어섰던 것이다.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의 매출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은 여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향후 8비트 게임의 발전을 도모하고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중국적인 분위기가 확실히 담겨있는 8비트 게임을 계속해서 개발하되 혁신적인 8비트 게임 플레이의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할 때 중국 내 버려진 시장 부문인 8비트 게임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참고문헌 中国音数协游戏工委(GPC),中国游戏产业研究院.2020年中国游戏产业报告[R/OL].(2020-12-18)[2021-09-03]. https://pan.baidu.com/s/1RbLCh5fKLCyTfFcZeFPHvA?_at_=1618218156065 . 中国文化部等,关于开展电子游戏经营场所专项治理的意见[R/OL].(2000-06-12)[2021-09-03] http://www.gov.cn/gongbao/content/2000/content_60240.htm Pan, Song 潘松. “Zhongguo dianshi youxiye fazhan gaikuang” 中国电视游戏业发展概况 [Report on Development of Chinese Video Game Industry]. Diannao bao 电脑报27 August 1993: A02. Print. Wu, Zhensheng, et al乌振声等. “Zhonghua xuexiji yuanli he yingyong(1)” 中华学习机原理和应用(1) [China Learning computer’s Principles and Applications]. Wuxiandian 无线电1(1988):5.Print. Zhu, Zhangying朱章英. “Mantan dianshi youxiji” 漫谈电视游戏机 [The Talk About the Video Games]. Jiayong dianqi家用电器4(1986):24.Print.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학자) 덩 젠 , 邓剑 쑤저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 Back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04 GG Vol. 22. 2. 10.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나아가 우르과이 출신 게임 개발자로서 그는 상업적인 게임과 실험적인 게임들을 넘나들면서 독창적인 게임들을 개발하기도 했다.『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이라는 학위논문을 쓰기도 한 그의 관심은 게임을 통해 억압과 폭력, 차별, 전쟁과 같은 사회의 현실 문제와 씨름하는 게임들을 만들어 왔다. 프라스카가 제안하고 실천한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s’, ‘뉴스게이밍 newsgaming’, ‘교육적 게임 educational games’, ‘다큐게이밍 docugaming’ 같은 프로젝트들은 상업적 성공을 향한 오락 일변도의 주류 게임을 넘어 게임의 사회적 효용성과 실천적 잠재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들이다. 물론 게임이 교육과 사회적 인식이라는 목적을 강조하다 보면 재미라는 게임의 핵심 요인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날이 다양해져온 게임의 장르와 콘텐츠, 그리고 게임 테크놀로지와 게이밍 환경의 꾸준한 진화 속에서 프라스카의 제안과 실험은 일정한 시의성을 갖는다. 우리는 누구나 게임을 만들고 누구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의 민주화’에 값하는 ‘놀이 정보계’(ludic infosphere)의 도래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게임생태계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면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토론하고, 나아가 사회 인식과 공감의 상승을 시도하는 프라스카의 꿈은 ‘몽상’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전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게임들만이 주로 기억되고 이야기되는 현실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의미 있는 문제작들이 발표되고 있기도 하다. ‘재미’와 ‘인식’의 균형을 향해 아직 나아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시리어스 게임’, ‘임팩트 게임’의 초기 제안자라 할 만한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정치적 에듀테인먼트와 시사 게임 프로젝트 프라스카의 게임 철학은 “비디오게임이 반드시 오락적일 필요는 없다”는 다분히 논쟁적인 선언에서 잘 나타난다. 사실 이러한 진술은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다. 프라스카 역시 게임의 오락성과 재미를 중시하고 그가 만든 게임들 역시 재미적 요소를 강화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렇기에 그의 게임인 는 1천 300만 카피를 팔 수 있었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은 세계적인 독일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이며 실천가였던 브레히트(B. Brecht)와 그를 계승한 실험적 연출가 보알(Augusto Boal)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재미라는 것이 주류 대중문화와 오락산업의 관행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미와 오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굳이 시끌벅적한 스펙터클 속에 순간적 쾌감이 아닌 주변 현실을 돌아보고 인식하는 가운데서도 재미와 오락을 찾을 수 있음을 모색하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말하는 ‘배움의 재미’ 혹은 ‘깨달음의 재미’는 프라스카에게도 이론적ㆍ실천적 화두였던 셈이다. 프라스카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은 원래 비오락적인 용도로 탄생했다. 군사훈련을 위해 도입된 각종 시뮬레이터들이나 명시적으로 교육적 목표를 표방하는 게임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오래전부터 ‘디지털 에듀테인먼트’(Digital Edutainment)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교육용 게임들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에듀테인먼트’는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를 결합해서 만든 신조어로서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유발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이나 수단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 바 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가능해진 학습자의 능동적 상호작용과 참여 가능성은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까지 여겨졌다. 곤잘로 프라스카 역시 학습 플랫폼으로서 디지털 미디어가 갖는 요소들을 인정하며 이러한 장점들을 비디오게임의 사회적 기능전환에 유용한 장치로 활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대체로 오늘날에도- 비디오게임의 교육적 활용이 순전히 수학이나 과학, 어학 교육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프라스카의 관심은 유저들이 상호 토론과 공감을 통해 비판적 사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비디오게임의 디자인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비디오게임의 모델은 다음과 같은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의 구상에 기반한 게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3의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더욱 복잡한 사회적 비평을 계발하기 위한 하나의 도전으로서 시뮬레이션의 문화적 파급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이 모든 시뮬레이션들을 일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는 있다. 이는 모델 고유의 가정들에 대한 플레이어의 도전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시뮬레이션의 발전을 그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은 시뮬레이션을 의식-상승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기서 시뮬레이션은 비디오게임으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말처럼 그의 실험이 이루어지던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게임들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혐의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괴물이나 몬스터, 트롤들 일색이거나 인간이 등장하더라도 일상인들과 거리가 먼 캐릭터라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심시티〉나 〈심즈〉 등 현실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들의 등장하고 멜로, 역사물, 갱스터 등의 장르들로 게임의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지면서 상황이 많이 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현실을 재현하는 게임들 다수는 현실의 문제나 모순들을 회피하고 ‘디즈니랜드 같은 방식’으로 삶을 이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프라스카가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게임 연구자들에 의해 게임에 대한 무비판적 동일시를 의미하는 ‘에이전시’(agency)와 ‘몰입’(immersion)이 게임의 바람직한 효과들로 당연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주체가 게임 규칙과 그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환경의 창조야말로 게임 개발자의의 미덕이라고 보는 사이 인종/젠더/민족(국민)/종교 등의 차별 의제들은 살며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주류 게임들이 상업적 성공에 꽂혀 현실의 억압과 차별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미지 재현과 플레잉 규칙을 통해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고착화하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게임의 판타지적 설정이 아니라 게임 대상들과 게임 규칙에 담긴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무감각 혹은 그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다. 우리는 비디오게임의 플레이가 연극이나 영화의 감상과 분명 다른 경험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와 비디오게임 캐릭터 사이의 거리는 다른 예술의 수용자-캐릭터 사이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 프라스카의 지적처럼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라라 크로프트가 혹 신장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마리오가 편집증 증세를 지닌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이들 캐릭터나 게임상의 괴물들은 모두 수단이고 커서일 뿐이다. 게임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평면적 캐릭터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왜 그 캐릭터가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까”가 아니라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슈퍼맨, 스파이더맨, 제임스 본드 등의 영웅이고 싶지만 게임의 경우 그런 욕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게임에서 우리가 바로 그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게임에서 마리오는 영웅이 아니다. 내가 바로 영웅이고 마리오는 하나의 커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에게 자유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게임의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행위를 위한 커서가 되고 플레이어는 스스로를 게임의 영웅 혹은 신으로 자각한다. 게임의 자유도와 상호작용성에 따른 게임의 몰입은 게임 이면의 규칙에 묻어나는 차별과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자연화’(neutralization)하기 쉽게 만든다. 프라스카는 주류 컴퓨터게임들의 이러한 한계들을 비판하면서 플레이어에게 자신이 당면한 현실을 탐색하게끔 허용하는 캐릭터 중심의 비디오게임, 더 나아가 게임의 행동 규칙을 플레이어 스스로 변경할 수 있는 컴퓨터게임을 구상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아우구스또 보알이 연극을 통해 실험했던 것을 컴퓨터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관건은 “재미 경험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이데올로기적 이슈들과 사회적 갈등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강화하는 비디오게임”의 개발이다. 이러한 인식은 〈9ㆍ12〉나 〈마드리드 Madrid〉와 같은 프라스카 본인의 게임의 개발로도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작업에서 더 중요한 것은 게임 창작이 어려운 이들이 기존의 게임들을 비판적으로 ‘재매개’하여 자기 이야기를 만들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끈 고전 게임들을 활용할 경우 유저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참여와 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야 게임 창작 도구나 제작 엔진의 수준이나 직관성이 크게 향상되고 ‘로블록스’나 ‘디토랜드’ 등과 같은 양질의 플랫폼이 발표되어 프라스카의 실험 제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 프라스카의 실험은 일종의 게임 모드(mod)에 대한 제안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수준도 비약적으로 향상되기도 했다. 문제는 플레이어-주체들의 의지와 인식에 달린 셈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게임들이 드문드문 인디 게임씬에서 발표되는 중이다. 게임 유저의 게임 모딩이나 창작의 환경이 지금보다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 〈심즈〉를 이용하여 프라스카가 상상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 프라스카의 ‘억압받는자들의 비디오게임’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억압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보알의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이 그랬듯이 프라스카의 게임은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차별과 억압들에 대해 ‘쟁점들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알의 연극 실험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으로서 비판적 사유와 논쟁을 위한 포럼(forum)의 역할만으로도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모든 게임들은 늘 제한적이고 이념적으로 편향적일 수 있다. 그리고 게임들은 개발자들도 예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플레이될 수도 있다. 프라스카는 문학이나 영화 못지않게 게임들도 훌륭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세리 터클의 주장에 동의한다. 터클에 따르면 게임과 시뮬레이션들에 있어 “시뮬레이션의 기저에 깔린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이해는 정치권력의 핵심 요소이다. 시뮬레이션들에 강요된 왜곡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더욱 직접적인 경제적ㆍ정치적 피드백과 새로운 종류의 재현, 더욱 많은 정보의 채널들을 요구할 만한 위치에 있다.” 프라스카는 이 정도로 게임 사용자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대안적인 게임 창작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개발자들이 한데 힘을 모으고 실천적인 사례들을 창안하고 확산시켜 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처럼 프라스카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은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보알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연극’ 이념과 테크닉들을 비디오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관객-배우’가 직접 경험한 억압적 상황을 무대에서 소개하고 그에 대해 배우와 동료 관객들이 참여하여 대안적 해결책들을 연기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의 게임들을 디자인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기존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가정들에 도전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당시로서는 주류 게임을 이용하여 그 게임의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게임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최근에야 소극적이나마 플레이어들 스스로 개작한 모드 게임들을 공유하고 플레이하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로블록스〉를 통해 게임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직접 구매하여 플레이하며 동료 플레이어들 상호 간에 소통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프라스카는 대략 20여년 전의 기술적 조건과 환경 속에서 난해해 보이는 실험들을 제안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그의 작업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 프라스카의 첫 실험은 게임 역사상 매우 성공했고 중요한 게임이었던 윌 라이트(Will Wright)의 〈심즈〉를 기능전환하는 것이었다. 〈심시티〉의 개발자이기도 한 윌 라이트는 〈심즈〉에서 일상의 삶과 생활을 시뮬레이트함으로써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심(Sim)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를 만들어 삶을 살며 주변을 관찰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원래 윌라이트는 이 게임의 아이디어를 버클리 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의 책『패턴 랭귀지』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이것은 건축이 인간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256가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 책이라고 한다. 윌 라이트는 비디오게임을 통해 이러한 다양한 패턴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을 만든 것이다. 〈심즈〉에서 우리는 인간관계나 가족관계, 혹은 인간관계가 어떻게 상호반응하는지를 추체험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스스로 디자인한 ‘심’들을 통해 인생을 계획하고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나간다.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보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동일시에 가까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심즈〉인 것이다. 플레이어가 ‘스킨 Skin’ 기능을 통해 직접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 벽지나 바닥재 등의 재료들로 집을 꾸미고 가족의 삶을 설계하는 일은 현실에 대한 시뮬레이션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중 단연 즐거운 것은 각종 게임 정보, 각 플레이어들의 캐릭터들과 심들의 삶 등에 대해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유저 커뮤니티가 있어 게임을 사회적 활동으로 승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커뮤니티 기능은 게임에 쉽게 싫증나지 않게 해주고 인간사의 여러 우발적인 사건들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회사가 계속해서 확장 팩을 내놓으면서 게임 세계와 행동 영역을 확장해나간 것도 게임의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 프라스카가 〈심즈〉를 시뮬레이션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의 게임 변형, 즉 ‘모드’(mod, modification)의 자유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플레이 영상이나 그 경험물들을 게임의 일부로 수용하고 그것들을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별로 신선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심즈〉의 발표 당시 이는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프라스카는 〈심즈〉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기능에 주목한다. 그는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영웅이나 스타, 혹은 자신들처럼 보이도록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아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를 구상한다. 물론 프라스카의 출발점은 원작 〈심즈〉의 규칙과 메커닉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이다. 이 게임은 가족의 삶과 인간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게임 산업에서 분명한 약진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소비주의적 원리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플레이어들의 소유가 늘면 늘수록 친구가 늘어나는 식의 규칙을 내장하고 있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이 게임은 도시 근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뮬레이트하면서 전형적인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백인중상층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플레이어들에게 캐릭터들의 겉모습만을 바꿀 수 있는 자유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게임 개발자의 설정이나 규칙, 이미지 재현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어찌해볼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프라스카가 게임 규칙의 전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심즈〉가 비판적 사유의 촉진을 위한 실험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게임 규칙들이 플레이어들의 다양한 접근을 허락하도록 충분히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캐릭터의 겉모습을 바꾸는 식의 변화가 아니라 시뮬레이션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도전과 변형을 허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자질구레한 규칙들을 변형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것을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중에 발매된 〈심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특히 캐릭터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에는 게임 혹은 게임을 만든 개발자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 마련이므로, 이러한 규칙에 대한 변경을 실험하도록 하는 것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의 목적이다. 우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외양 skins’ 다운로드 기능에 추가로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 디자인과 이에 대한 플레이어 상호 공유 시스템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기존의 심즈는 6가지의 행동 스타일 혹은 인물 성향에 따라서만 게임을 진행하도록 제한함으로써 게임의 현실감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동료 플레이어들이 어떤 플레이어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을 비판하고 이에 대해 그들 각각의 대안들을 디자인할 수 있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플레이어들 서로 서로에게 더욱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의 개선을 요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디자인 툴’을 제공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보알의 연극 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이다. 즉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해 해답이 될 만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훌륭한 논쟁과 토론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심즈〉에 대한 기능전환이 비디오게임 자체의 위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최대의 가능성들을 현실화하기 위해 기존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보다 더 많은 변형의 자유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프라스카가 아그네스(Agnes)라는 가상의 소녀를 통해 소개하는 사례를 통해 그의 생각을 구체화해보자. 아그네스 Agnes는 지금 한 동안 〈심즈〉를 플레이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이 게임의 규칙과 기본 메커니즘을 알고 있고 그것을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족 관계가 보다 현실적이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 교환 Character Exchange’ 사이트로 가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검색한다. 그녀는 흥미 있어 보이는 한 캐릭터를 발견한다. 이것은 ‘데이브의 알콜 중독 어머니 버전 0.9 Dave's Alcholic Mother version 0.9’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데 그 게임을 설계한 플레이어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어머니는 많은 시간을 일로 보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너무 피곤하다. 여전히 그녀는 저녁을 조리할 것이고 약간의 청소도 할 것이다. 그녀의 가혹한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어머니는 많은 양의 위스키를 마신다. 그녀는 아이들과 애완동물 때문에 매우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폭력적이 될 수도 있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를 시험해볼 생각을 하고 그녀가 이전에 플레이해왔던 집 안으로 그 캐릭터를 다운로드한다. 이 가정은 부부와 세 아이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운로드 이후 어머니는 ‘데이브의 알콜중독 어머니 버전 0.9’로 대체된다. 이 캐릭터는 흥미롭다. 한동안 그 캐릭터를 가지고 플레이하고 난 후 아그네스는 그 캐릭터가 어느 정도의 피로에 도달하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마시면 마실수록 가족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가 꽤 잘 묘사되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녀가 동의할 수 없는 디테일들이 있음을 느낀다. 이를테면 이 캐릭터의 배경은 낮은 교육 수준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덧붙여 이 캐릭터의 직업은 형편없다. 그리고 일들을 더 나쁘게 만들기 위해 ‘알콜 중독 어머니’는 거실의 작은 바에서 계속해서 퍼마신다. 아그네스의 생각에 알콜 중독에 걸린 사람은 빈약한 교육을 받았고 형편없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아그네스는 일반적으로 알콜 중독자는 집 주위에 술병을 감추지 공개적으로 마시려 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캐릭터 교환’ 사이트로 가서 다른 알콜 중독 어머니를 찾아본다. 그녀는 유망해 보이는 ‘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2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를 발견한다. 그것을 실험한 후 그녀는 이 캐릭터의 행동이 그녀가 그것에 대해 가졌던 생각보다 훨씬 더 적합함을 깨닫는다. 그녀는 엄마가 감리교도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이 버전의 디자이너가 고집한 이유에 매료된다. 그 사실은 엄마의 알콜 중독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캐릭터 디자이너의 웹 페이지를 체크하고, 이 캐릭터가 감리교도였던 어떤 실제 인물의 실제 이야기에 근거해서 만들어 진 것임을 말해주는 짧은 내러티브를 발견한다. 아그네스는 이 스토리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알콜 중독의 행동 부분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에게 감리교도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의 코드를 변경하기 위해 ‘에디터 editor’ 기능을 이용하고 종교와 관련된 언급들을 삭제한다. 그녀는 또한 몇몇 작은 디테일들을 추가한다. 가령 엄마가 어떤 브랜드의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런 후 그녀는 그것을 ‘아그네스의 알콜 중독 어머니 1.0-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0에 의거함 Agnes' Alcholic Mother 1.o-Based on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탑재하고, 주요 행동 규칙에 대한 짧은 설명을 덧붙인다. 몇 주 후 아그네스는 알콜 중독 어머니의 플레이에 약간 싫증을 느끼고 그녀에게 약간 더 많은 개성을 부여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가 생태론자 ecologist가 되면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그네스는 ‘피터의 급진 그린피스 활동가 버전 9.1 Peter's Radical Greenpeace activist version 9.1’을 다운로드한다. 그녀는 자신의 알콜 중독 어머니에 약간의 부수적인 변형들과 더불어 피터 버전의 코드를 편집하고 그것을 카피하고 짜깁기한다. 이제 어머니는 식물들을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고 술에 취했을 때도 고양이를 차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여러 차례 변형을 거친 후 아그네스는 스스로 설계한 게임을 사이트에 탑재한다. 이 게임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비평과 토론이 이어지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변형하여 새로운 게임을 제작하고 탑재한다. 다른 플레이어도 아그네스나 다른 동료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변형 작업을 반복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게임에 대해 크고 작은 규칙들을 변경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과정은 보알의 ‘포럼연극’(forum theatre)처럼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한 참여자들 각자의 생각들을 피력하는 가운데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공감과 협력의 과정이다. 이는 전설적인 비디오게임 〈스페이스 워〉의 완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품을 팔던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과 그의 MIT 동료 해커들을 떠올리게 한다. 플레이어들은 크고 작은 정치적ㆍ사회적 억압들을 반영한 새로운 게임들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게임에 비판적인 자기 의견을 반영하여 규칙이나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군가의 게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태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업그레이드 버전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문제적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나 합의 도출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각자의 생각들을 담아 스스로 만들고 보탠 게임들로 어떤 문제들을 공유하고 업그레이드하면서 서로의 생각들을 발전시켜 나가며 인식의 확장과 상승을 경험하는 것이 프라스카의 구상이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이러한 창작 플랫폼을 ‘메타 시뮬레이션’(meta-sim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참여와 소통을 도와주는 게임 창작 시스템을 가리킨다. 하지만 사실은 ‘너 자신의 행동을 디자인해라’라는 기능이 윌라이트의 〈심즈〉 원작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다만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는 것만 허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심즈〉에서는 플레이어들의 행동 폭 역시 무척 제한적인데, 그들 캐릭터는 ‘단정’, ‘사교적’, ‘활동적’, ‘쾌활’, ‘섬세한’이라는 주어진 성격 안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복잡한 결들과 인간관계의 다층적 갈등들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프라스카가 보기에도 〈심즈〉는 다른 게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자유도에도 불구하고 규칙의 제한에 갇혀 있는 게임이고, 부자가 더 많은 친구를 갖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어 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개발자가 마련해둔 규칙과 행동 패턴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에 딴지를 걸 수 없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심즈〉에 캐릭터의 부분적인 변경 이외에 게임 규칙 혹은 행동 규칙의 변경의 자유를 플레이어에게 허용하게 될 때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다. ‘PMO’ 프로젝트: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의 또 하나의 사례로 프라스카는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기’(Play my Oppression, PMO)를 제안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보알의 연극 테크닉인 ‘이미지 연극’(Image Theatre)에 바탕을 둔 실험이다. 이미지 연극에서 ‘관객-배우’들은 본인들의 억압적 상황이나 차별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몸 혹은 간단한 소품들을 ‘빚고’ ‘조각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해 볼 것을 요청받는다. 이 실험에서 ‘관객-배우’들은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몸만을 이용하여 어떤 ‘이미지’를 조각해내야 한다. 어떤 이상적인 이미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이미지를 수정하는 ‘이미지 연극’의 작업은 ‘몸으로 하는 포럼연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극의 목표는 우리의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행위와 몸짓들을 통해 억압과 차별이 재생산되고 있고 가장 기본적인 육체적 수준에서 우리의 편향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왔음을 반성하는 것이다. 다른 인종, 종교, 젠더, 국적 등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은 몸을 통해 드러난다. 그런데 보알의 ‘이미지 연극’을 통해 참여자들은 뿌리 깊은 차별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사회구조와 제도 및 권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몸을 통해 체험하고 사유한다. 프라스카는 보알의 실험을 통해 처음 한 사람이 몸을 통해 제시한 자신의 ‘억압 이미지’에 대해 참여자들이 서로 그 이미지를 수정하며 일종의 ‘대안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쳐 상호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참여자들 스스로 차별과 억압에 대한 인식의 개선을 이루어나가는 점에 주목한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PMO’ 비디오게임은 몸이 아니라 마우스와 자판, 조이스틱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그는 연극에서의 몸이 아니더라도 비디오게임의 특별한 기능을 활용하면 보알의 퍼포먼스와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다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물론 ‘포토앨범’ 기능이 게임 규칙의 설계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고 플레이어 자신의 선형적인 내레이션의 창작만 허용한다. 이 기능을 이용하여 플레이어는 게임 플레이의 다양한 순간을 담은 스냅 사진들을 활용하여 그것에 설명을 달고 자기만의 ‘가족앨범’을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스스로 재구성한 이 앨범은 인터넷에 마련된 사이트에 올릴 수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공유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기능을 자기만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심즈〉를 플레이하는 주된 이유는 그래픽 이미지를 통해 게임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주요한 장면을 캡쳐하고 거기에 주석을 붙임으로써 자기만의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가 소개한 포토 앨범 중에는 폭력 남편과 살던 여성의 동생이 올린 글이 있었다. 인터넷 심즈 사이트에 올라온 이 콘텐츠에는 언니와 동생의 관계, 언니가 폭력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경위, 남편이 더욱 폭력적으로 되어가면서 파경에 이르게 된 사연 등을 실감나게 보고하고 있다. 물론 허구적일 수도 있는 이 스토리는 무척 현실감이 있는 것이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활발한 토론의 계기를 제공했다. 윌 라이트는 게임의 토론 유발과 공감대 형성 과정에 주목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스토리텔링 구성 기능을 강화하기도 한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가 생각하는 프로젝트의 이행을 위해서는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이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만화나 영화 같은 정적인 내러티브 시퀀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즉 게임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즈〉의 원래 ‘포토앨범’ 기능에서 플레이어는 어떤 ‘완결적’ 사건을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즉 그가 작성한 스토리는 고정된 것이고 닫힌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에 의한 이야기 변경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스토리를 경험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에 대해 댓글만 올릴 뿐 상황 자체의 변경을 통한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폭력남편’ 이야기를 올린 플레이어의 진짜 의도가 또 다른(‘대안적인’) 게임의 창조였다는 가정하에서 일종의 기능전환을 시도한다. 만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다른 행동 모델들을 실험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인간 관계들과 물질적 상황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상호토론을 통해 인간과 현실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자신들이 직면해 있는 억압적 현실에 대한 반성과 사회적 인식의 강화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 프라스카의 기대이다.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즉 ‘PMO’의 실행을 위해서는 우선 한 참여자가 직접 겪거나 경험한 개인적 문제와 고민을 모델화한 게임을 창조할 수 있다. 이후 다른 참여자들은 그것을 플레이해보고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떤 플레이어들은 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개인적 입장을 반영한 새로운 버전의 게임을 창조할 수도 있다. 이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플레이와 토론, 수정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사회ㆍ정치적 대화의 차원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다. 물론 플레이어들 스스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참여를 위한 다양한 툴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고, 그리고 비교적 쉽게 게임을 변경하거나 디자인할 수 있는 방편들이 주어지고 있다. 프라스카 역시 앞으로 컴퓨터게임이 더욱 대중화될수록 ‘시뮬레이션의 처리능력'(simulation literacy) 역시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로 오늘날의 시뮬레이션 창작 환경은 프라스카의 기대와 상상 그 이상으로 진화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곤잘로 프라스카가 제시한 사례를 통해 ‘PMO’의 과정을 구체화해보자. 프라스카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부모나 주변에 ‘커밍아웃’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터(Peter)라는 주인공을 가정하여 샘플 시나리오를 짠다. 일단 게임 커뮤니티에서 피터의 시나리오가 승인되고 나면 그는 이 문제를 토론하려고 하는 방에 게임을 만들어 놓는다. 프라스카는 이를 ‘옵 게임’(op-games, oppressive games), 즉 억압을 시뮬레이션 해놓은 게임으로 부른다. 이 게임에는 피터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복할 필요가 있는 특수한 문제들이 재현되어 있다. ‘옵-게임들’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보알의 연극처럼 성소수자 피터가 겪을 수 있을 문제들을 시뮬레이션으로 만드는 것이다. 피터의 경우에도 부모에게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을 밝히는 데 있어서 겪는 어려움들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고전 게임의 레벨 디자인처럼 말이다. 여기서 피터는 자신이 대결해야 할 세 가지 과제, 혹은 꼭 극복해야 할 세 개의 난제를 비디오게임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각각의 게임에 〈모욕〉, 〈나는 누구인가?〉, 〈사회〉라는 제목을 달아주었다. 〈모욕〉은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하는 주인공 피터가 주변 사람들, 특히 학교 친구들에게 어떻게 집단 따돌림과 구타를 당하는지를 보여준다. 피터는 우선 이 문제의 시뮬레이션에 적당한 고전 비디오게임을 선택한다. 피터는 손수 제작한 그래픽을 업로드하거나 이전에 누군가 제작해놓은 것을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의 기능 향상을 위해 몇몇 기능들을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단 고전 게임들에 기반하여 다양한 모드들을 창조해보고 그중 피터의 사건을 재현하는 데 유용한 것들을 선별하여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다양한 가능성들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고 보다 숙련된 플레이어들에게는 피터의 버전을 더욱 정교하게 개선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프라스카의 피터는 다음과 같은 일러스트로서 자신의 첫 번째 게임을 표현한다. 이 일러스트에서 알 수 있듯이 피터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게임 모딩의 템플릿으로 선택했는데 외계인의 우주선 그래픽을 자신을 괴롭히는 동료 학생들의 모습으로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원작 게임에서와는 달리 피터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총을 발사할 수 없다. 피터가 지금 겪고 있는 곤란은 동료학생들의 집단 이지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처럼 행동을 통해 사태를 해결해버린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 게임을 즐기면 그만일 뿐 그 이상의 토론과 작업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는 이 시뮬레이션에 첨부해 놓은 ‘디자인 노트’에 이러한 사정을 밝혀 놓았고, 이 문제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은 집단 토론과 참여를 통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몇몇 플레이어들은 피터의 게임을 수정하여 다른 버전의 게임을 디자인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음 그림은 플레이어들이 제안한 또 다른 해결책을 보여주는 게임 그래픽들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이 주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할 수 있는 예술작품(가령 노래나 시)을 창조하고 반 아이들과 이를 공유함으로써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다보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또 다른 플레이어는 귀를 막고 있는 캐릭터를 통해 주변 학생들의 모욕스러운 공격들을 무시해버리라고 제안한다. 피터의 게임들에 대한 이러한 변형은 무척 간단한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변형이 가능하다. 플레이어들은 ‘다중 선택’(multiple-choice) 매뉴얼을 활용함으로써 원작 게임의 모든 그래픽을 변경할 수 있고 자신의 사진이나 UCC 그래픽들을 업로드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탑재된 게임들을 매개로 오고 가는 다양한 의견들은 개인적 수준의 소박한 해결책부터 동성애나 소수자, 왕따 문제 등에 대한 사회ㆍ정치적 구조 분석과 원인 진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프라스카는 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사회적 인식이 상승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게임의 다음 모형은 대전게임의 고전 〈스트리트 파이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피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여 게임을 디자인해 놓았다. 그는 거울에 반사된 자기를 볼 때마다 ‘괴물’을 본다. 내면의 성적 성향과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적 시선이 충돌하는 가운데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 기괴한 ‘괴물’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디자인 노트’에 피터는 이러한 일이 가끔 일어나는 일이며 그때마다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라는 분열적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 게임에서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 두 정체성’이 계속해서 치고 박는 싸움을 벌이는 일이 전부다. 여기서도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피터의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쟁점이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게임들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답보다는 좋은 대화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법이니 말이다. 마지막 게임인 〈사회〉의 실물 모형은 〈테트리스〉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소년과 소년, 소녀와 소녀 커플을 짝지을 수 있다. 만일 플레이어가 소녀-소년 커플로 짝을 지우면 그 커플은 계속 재생산되거나 복제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도 어떤 커플이 가장 이상적인 커플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 대해서는 플레이어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역시 게임의 목표는 엔딩을 맛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게임들은 모두 ‘열린 게임’이고 이는 참여자들의 토론과 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는 성적 취향이라는 것이 지니는 다양한 사회적 의미들을 토론할 것이고, 모든 커플의 차이는 그저 차이에 불과한 것일 뿐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정상가족’이라는 사회의 통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세 게임이 모두 온라인에 탑재되고 난 후 모든 참여자들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운데 다양한 참여를 할 수 있다. 그저 게임만 플레이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의 게임 소감부터 피터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결책들을 댓글의 형태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 어떤 참여자들은 피터의 세 게임들에 자극을 받아 게임을 모딩함으로써 수정된 버전의 게임을 탑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그림은 〈팩맨〉에 기반하여 다른 플레이어(일명 ‘캐시’)가 디자인한 대안적 게임이다. 물론 ‘포럼’은 피터의 게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이 토론의 대상으로 추가되면서 더욱 많은 크고 작은 토론들이 가능할 것이다. 캐시(Cathy)라는 여성은 〈사이먼이 말하기를〉이라는 게임을 이용하여 몬스터 게임을 디자인한다. 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1등 따라하기〉 놀이처럼 말이다. 플레이어가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그 이미지는 서서히 변할 것이다. 캐시는 예전에 피터와 동일한 경험을 했었고 스스로 감내하고 맞서야 했던 수많은 차별적 상황들을 게임에 담아놓았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난 후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를 자기 게임의 테마로 삼았다고 보고한다. 결국 게임의 플레이와 토론 과정을 통해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대의 방안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개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코로나 19의 상황을 거치며 우리의 삶이 무척이나 각박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중의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종, 젠더, 민족, 종교, 장애 등의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는 소수자들이 그들이다.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은 이른바 정상과 비정상을 갈라치며 사적인 이익을 얻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는 억압과 차별의 철폐를 향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최근의 경우처럼 퇴행적인 ‘갈라치기’의 흐름이 강고한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우리 사회도 결국에는 동료 시민들과 ‘같이 살며 같이 즐기는’ 공환(共歡, conviviality)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래는 그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아무개’들의 협력은 억압과 차별 없는 미래의 필요조건일 것이다. 게임에 앞서 문학과 연극, 영화, 만화 등은 소수자들의 고난과 상처를 감싸 안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강력한 ‘상호작용’의 매체인 게임은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를 공감과 인식의 장으로 초대하며 연대의 매개자가 되어줄 것인가? 아직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도 그랬던 것처럼 게임 역시 다양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주제로 즐기며 배우는 기회들을 보다 많이 제공할 것이다. 이미 의미 있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보알의 연극에 영감을 받은 곤잘로 프라스카는 비디오게임 역시 억압적 현실을 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보알의 연극 테크닉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연기자가 되게 함으로써 개인적ㆍ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과 해결책들을 표현하게 한다. 물론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이상적 결론’이 아니다. 프라스카의 목표는 주류 비디오게임들의 당연시되는 규범들을 해체하고 게임을 사회적 의제(agenda)에 대한 토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들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사태들을 게임에 담아내고 그 게임을 같이 플레이하며 토론하고 숙의하며 저마다의 대안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라스카의 게임 프로젝트는 구체적 실천의 필수적 전 단계인 반성과 인식의 과정을 의미한다. 개인적ㆍ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타자에 대한 공감과 현실 인식의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직 대세는 아니지만 게임은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주류 게임산업이 주도하는 현실에서 프라스카의 비전들은 ‘몽상’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게임 창작 환경, 게임의 플레이를 넘어 ‘보기’와 ‘만들기’로 확장되고 있는 ‘게임하기’의 실천들은 게임의 다양성 환경 구축에 유리한 기회를 조성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주류 게임과 ‘다른’ 게임들에 대한 수요도 있다. 필요한 것은 게임 사용자들의 의지이며 전환적 사고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게임의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과 향유를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김겸섭 독일공연예술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공연예술과 문화연구 관련 공부와 함께 공연 및 축제 연출과 기획일을 하였다. 이후 공연학 공부를 확장하려는 욕심으로 디지털게임 연구를 시작하였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컴퓨터게임의 윤리』를 번역하였고 『모두를 위한 놀이 디지털게임의 재발견』,『노동사회에서 구상하는 놀이의 윤리』를 썼다. 지금은 독일공연예술과 문화콘텐츠 관련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 아스카 메이어

    핀란드 탐페레 대학교(Tampere University)의 게임연구소(Game Research Lab)와 핀란드 CoE(Centre of Excellence in Game Culture Studies)의 박사과정 연구원이다. 디지털 게임과 기술에서의 신체 인식, 아포칼립스 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아스카 메이어 아스카 메이어 핀란드 탐페레 대학교(Tampere University)의 게임연구소(Game Research Lab)와 핀란드 CoE(Centre of Excellence in Game Culture Studies)의 박사과정 연구원이다. 디지털 게임과 기술에서의 신체 인식, 아포칼립스 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떨리는 몸으로 플레이하기: 기대, 탐험, 그리고 인식 텅 비어있는 것 같은 어두운 복도를 걸어간다. 내 발소리와 금속 파이프에서 들려오는 끼익거리는 소리만이 이 고요함을 깨뜨린다. 손전등이 비추는 곳 너머의 어둠 속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어 두려움이 엄습한다. 다음 방에 들어서자, 무거운 숨소리가 들려오고, 훼손된 사람의 신체가 불빛에 드러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그 모습에 나는 속이 메슥거린다.

  • ‘공포’와 ‘놀이’로서의 비장소 : <8번 출구>를 포착하기

    현대의 공포는 흐른다. 곧, 어디서든 틈입한다. 일찍이 공포라는 키워드 하에 내포되어 온 스테레오 타입화된 형상들―가령 괴물, 귀신, 살인마, 악마 등―만으로 이 정서의 출처는 설명되지 않는다. 해당 공포는 좀 더 내밀한, 혹은 하이퍼객체와 같은 유동성을 발휘하기에 우리는 이 공포를 ‘앎’의 영역으로 안배하기에 항상 실패한다. < Back ‘공포’와 ‘놀이’로서의 비장소 : <8번 출구>를 포착하기 19 GG Vol. 24. 8. 10. 1. 유동하는 공포의 교집합은‘어디’인가 현대의 공포는 흐른다. 곧, 어디서든 틈입한다. 일찍이 공포라는 키워드 하에 내포되어 온 스테레오 타입화된 형상들―가령 괴물, 귀신, 살인마, 악마 등―만으로 이 정서의 출처는 설명되지 않는다. 해당 공포는 좀 더 내밀한, 혹은 하이퍼객체 [1] 와 같은 유동성을 발휘하기에 우리는 이 공포를 ‘앎’의 영역으로 안배하기에 항상 실패한다. 바우만은 인간이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이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유동하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라고 토로한다 [2] . 그리고 “공포에서 벗어나, 공포의 온상인 무지에서 해방된 세계”로 나아가야 했을 근대(이성)의 희망이 단지 “길고 긴 우회로에 불과했음”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유동적 근대의 환경이 인간의 일생 전체를 다각적인 공포 속에 몰아넣게 되었음을 설파한다 [3] . 우리는 나날이 불어나는 ‘불확실한’ 공포를 동반자 삼아 ‘불확실한’ 삶을 영위하는 유목민이 되어서는, 이 유동하는 공포를 ‘명명하는(내지는 개념화하는)’ 일로부터도 한계를 느껴왔다. 다만 유동성으로 말미암아 ‘미지의 것’으로 한계 지었던 공포에 대하여, 그 윤곽을 포착할 수 있는 주요한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공간 [4] ’에 다름없지 않을까. 공간 자체가 공포의 대상으로 집약될 때, 우리에게는 식별 불가능했던 공포를 잠시나마 직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공간은 직접 경험과 추상적 사고라는 양극단을 가진 연속체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인식가능하기 때문이다 [5] . 그리고 현대인으로서 공간에 대한 공포란 어쩌면 시간에 대한 공포보다 ‘몰입’을 해내게 되는 공포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푸코의 진단―오늘날의 불안은 확실히 시간보다는 공간에 훨씬 더 근본적으로 관련된다고 믿는다―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이다 [6] . 실제로 우리는 육박하는 시간의 흐름보다 ‘지금-여기’의 내가 머물고 있거나 머물렀던 곳의 으스스함에 대해, 더 나아가 그곳에서의 ‘나’의 존재에 대해 더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상대성이나 추상성이 강한 시간의 공포와 달리, 객관적 지표로서의 구획을 실마리로 지닌 공간의 공포는 인간(들)에게 있어 크고 작은 교집합을 이루게 될 가능성을 둔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현재 유동하던 공간의 공포가 과연 어떤 공동의 지점을 발생시키고 있는가, 즉 ‘어디에서’ 고이고 있는가에 대한 탐색이 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어디에서’의 문제는 서브 컬처계에서, 특히나 게임의 영역에서 창발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8번 출구>는 바로 이 ‘어디’에 대한 확증의 재현에 다름 없다. 이를테면 소위 ‘유동하는 공포’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흘러들어와 있었고, 이를 포착한 사람들에 의해 그 공포가 어떤 식으로 ‘고임’을 이루며 특정 공간으로서 구축되거나 변용되고 있는지. <8번 출구>는 호러 게임 특유의 점프 스케어를 연발하지 않으면서도, 이런 공간 자체에 압축된 공포만으로 플레이어들을 압도하는 식이다. 사실 게임 자체의 구성은 단순하다. 끝없이 펼쳐진 지하도에서, ‘8번 출구’에 도달할 때까지 소위 ‘이상 현상’이라 불리는 지점을 찾아 탈출에 성공하면 된다. 길게는 60분, 짧게는 2분 남짓으로까지 클리어가 가능하며 특유의 무한 반복 구조로 인해 형식만 놓고 본다면 플레이어 입장에서 다소 ‘심심한’ 게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가 이 게임(의 정체성인 공간)을 두려워하고, 플레이하고, 급기야는 그에 매혹된다. 어디선가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논)픽션의 ‘어디’에 대해. 우리는 어째서 집단적인 공포와 몰입을 이루게 되는 것일까. 2.‘비장소’라는 호러 : ‘인간(성) 없음’의 장 <8번 출구>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지하도이다. 지하도는 일반적으로 ‘북적이는 익명의 사람들’이 ‘스치듯’ 교차하고 통행하는 곳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오제에 따르면 이러한 공간은 정체성의 장소, 관계의 장소, 역사의 장소로서의 특질을 갖는 ‘인간적(인류학적) 장소’와 다른, ‘비장소(non-place)’로서 구분되는 곳이다. 장소가 정체성과 관련되며 관계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서 규정될 수 있다면, 정체성과 관련되지 않고 관계적이지 않으며 역사적인 것으로 정의될 수 없는 공간은 비장소가 되는 셈이다 [7] . 지하도를 비롯하여 공항, 고속도로, 대형 쇼핑몰,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이 이러한 비장소로서 지목될 수 있다. 오제는 사람보다 텍스트나 이미지에 의한 매개가 중심이 되는 이러한 비장소의 요소―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해당 장소를 단지 스쳐지나가는 곳으로 인식하게 만드는―의 작용이 해당 공간에서 요구하는 ‘승객’이나 ‘소비자’, ‘운전자’와 같이 익명의 다수에 의해 공유되는 단일한 정체성을 생성해 냄을 거론한다 [8] . 그리고 이러한 비장소와 이용자들의 일시적인 ‘계약 관계’를 통해 비장소 안에서의 ‘나’의 존재는 ‘행인’과 같은 다소 안정적인 익명성으로서 포섭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8번 출구>에서는 이러한 비장소가 ‘호러’가 된다. 그 이유를 꼽자면, 이때의 ‘비장소’에는 플레이어인 ‘나’를 제외한 최소한의 ‘인간(성)’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장소’ 자체가 ‘인간-인간’ 간의 직접 경험이나 교류에 대한 느슨함을 전제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체험해온 비장소는 ‘대중’ 자체가 경유하는(해야만 하는) 공간으로서 인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비장소는 누구나 그곳을 지나칠 수 있다는 ‘공적 공간’의 지위로서 건설되고 이해된다. 비장소에서 인간은 ‘동존하며 교차하기’라는 공공의 역할을 암묵적으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공동으로 수행함으로써 비로소 해당 공간에서 ‘이용자’라는 역할을 획득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비장소에 단독자로서 남게 되었을 때, 공적인 행보에 능숙했던 우리는 이 공간에서의 갑작스러운 사적 행보에 불안을 느낀다. 인간(성)들 사이에서의 익명성이라는 ‘보호막’은 사라지고, 어느새 끊임없이 증식하는 공간과 불명료한 ‘나’만이 대면하게 된다. 이때의 ‘나’는 ‘익명’으로서의 ‘나’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장소의 바깥에서의 ‘나’의 정체성도 아닌 ‘모름’이라는 공포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 ‘나’가 된다. 물론 지하도의 복도를 돌 때마다 우리는 ‘중년 남성’의 형상을 띤 NPC의 출현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인간성이 결여된, 움직이는 메트로놈과 다를 바 없다. 그는 해당 공간 내 플레이어(나)의 탈출 욕구나 공포에는 관심이 없다. 게임 내 ‘루프’의 루즈함을 덜기 위한 오브젝트로서, ‘중년 남성’은 인간의 편이 아닌 ‘공간의 일부’로서 기능함에 가깝다. 실제 비장소에서 ‘나’에게 가해지는 위해는 인간(성)에 의해 구호받을 수 있지만, <8번 출구>의 지하도에는 그럴 만한 인간된 타자가 없다. 붉은색 물이 밀려오고, 액자에 귀신이 생기고, 안내판이 뒤집히는 등 예측 불허한 ‘이상 현상’만이 랜덤으로 ‘나’를 덮친다. 어쩌면 <8번 출구>는 익명성에 묻히는 순간 동반되는 비장소성으로부터의 고독, 곧 익명성에 지나치게 안주할 경우 언젠가 어떤 인간(성)으로부터도 구호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여과 없이 재현해 낸 ‘있을 법한’ 평행 공간의 현현일지도 모른다. 3. ‘리미널 스페이스’라는 밈 : ‘영속적인 현재’에서의 놀이 이처럼 <8번 출구>를 비롯한 ‘호러’된 비장소의 재현 시도들은 해당 게임이 출시된 2023년 이전부터, 북미 커뮤니티 레딧(Reddit)이나 트위터와 같은 웹 공간에서 굵직하게 출몰해 왔으며, 현재까지도 그에 대한 대중들의 ‘몰입’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8번 출구> 자체의 모티브이면서 ‘호러화된 비장소’가 밈(meme)이 된 형태를 총칭해 온 개념이 바로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이다. 리미널 스페이스는 1909년부터 ‘리미널리티(liminality)’라는 학술적 개념을 중심으로 존재해 왔으며, 건축이나 미술 등의 분야에서 차용되다가, 이후 2010년을 전후로 하여 웹공간을 순환하는 ‘인터넷 밈’의 일환으로 점층적으로 대중들 사이에서 출몰한 바가 있다. 이때 ‘리미널’은 ‘문간방(threshold)’ 또는 ‘경계’를 나타내는 라틴어 ‘리멘(Limen)’을 어원으로 두고 있으며 [9] , 인류학자 아놀드 판 헤네프(Arnold van Gennep)가 제시한 ‘통과의례 [10] ’의 3단계 구분―①분리(separation) ②전이(transition) ③재통합(re-aggregation) [11] ―의 중간단계인 ‘전이’의 단계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문화 인류학자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이러한 일상적인 문화•사회의 상태와, 어떤 상태를 형성하고 시간을 경과시키며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구조적인 지위를 정해가는 과정 사이의 ‘문턱에 있음(리미널리티)’의 상태를 보다 발전시켜 문화적 변화의 전반적인 국면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확장시키기도 했다 [12] . 그리고 이런 ‘문턱됨’에서 비롯된 ‘리미널 스페이스’란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13] , 하나의 장소 또는 다른 장소도 아닌, 하나의 분야 또는 다른 분야도 아닌, 그들 사이에서(in-between)의 제3의 공간(thirdspace)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뜻으로 정의될 수 있다 [14] . '밈'으로서 대두된 리미널 스페이스에는 ‘문턱에 있음’ 상태의 비장소를 출처 삼은 이미지들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동반된 감각은 대개 ‘공포’로, 이때의 ‘리미널 스페이스’는 <8번 출구>의 지하도와 같이 친숙한 공간으로 보이지만 어쩐지 낯선 위화감과 두려움을 지닌다. 대부분 인적이 없고 시간대가 불명한 이미지의 정보값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텅 빈 건물 복도, 호텔 로비, 끝없이 이어지는 새벽의 어느 국도, 영업이 끝난 쇼핑몰의 내부 등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15] . 그러나 유튜브 스트리머들의 <8번 출구> 플레이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해당 공간을 과연 ‘공포’의 대상으로만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가 필요하다. 판 헤네프는 일찍이 이러한 ‘문턱된’ 상태가 적용된 시간을 ‘실험’과 ‘유희’가 넘쳐 흐르는 ‘미술적인 시간’으로 파악하면서, 현실 사회의 구조적인 여러 활동들을 ‘직설법’이라 한다면 사회 문화적인 과정에 있어서의 ‘리미널리티’란 마치 ‘가정법’과도 비슷하여 현실적이고 직설법적인 구조에 반격을 가하는, 일종의 사고•언어•상징•메타포에 대한 ‘놀이적인 창조’의 가능성을 담지하는 ‘가정법적인 시간•공간’이 될 수 있음을 긍정하기도 한 바가 있다 [16] . 그리고 이의 연장선상으로서 우리는 ‘밈’된 리미널 스페이스의 이면에도, 일종의 ‘놀이’로서 대중을 견인하는 측면이 존재함을 추측해 볼 수 있다. <8번 출구>에 대두되는 리미널 스페이스(내지는 비장소)의 경우, 표면적으로 그것은 게임이라는 형식상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가능한 공포에서 오는 유희를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그 심층에는 ‘영속된 현재’에 대한 놀이의 감각을 즐기는 플레이어의 정서가 개입되어 있기도 하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현재성’의 지배는 본디 비장소의 특질로, 리미널 스페이스는 이때의 ‘현재성’을 영구히 늘어뜨리는 마력을 지닌다. 결정적으로 이와 같은 요소는 불분명한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문턱된 상태’를 이미지나 게임과 같은 매체로서 창조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경유할 뿐인 비장소의 현재성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며, 그에 따른 자극에도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로제 카이와에 따르면 규칙과 놀이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놀이의 원천에는 근본적인 자유―쉬고 싶은 욕구이며 아울러 기분전환 및 변덕스러움의 욕구―가 있으며, 이런 자유는 놀이의 필수 불가결한 원동력이 된다 [17] . 곧, <8번 출구> 역시 해당 공간 내에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규칙(e.g.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가세요.”)이 존재하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진입하는 리미널 공간 특유의 ‘영속된 현재’에는 공포만으로 포섭하기 어려운 ‘놀이’의 욕망, 그로 인한 자유로의 (불)가능성이 혼융되어 있다. 4. 공간은 행위자가 된다 공간은 힘이 세다. 개중 비장소는 유동하는 공포의 교차점이자, 몰입할 수 있는 놀이로서의 가능성이 결집된 곳으로, 이를 활용한 ‘리미널 스페이스’라는 밈이 게임의 세계에서 각광 받고 있는 것 또한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이 불안과 매혹의 비장소는 게임 내에서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횡단하며 대중들을 끌어들이고, 마침내 ‘인간-공간’의 지위 설정에 대한 역전까지를 가능케 한다. 기존 체계에의 인간이 언제나 공간을 생성하고 존립하게 하는 존재였다면, 비장소성을 담지한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오히려 역동적으로 행위하는 쪽은 공간인 셈이다. 이를테면 <8번 출구>의 경우 인간(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수행성이 오직 앞뒤로 걷거나 달리는 일에 그쳤다면, ‘지하도’라는 비장소는 그 자체로 각종 ‘이상현상’을 일으키며 인간보다 더욱 스펙터클한 움직임과 변화를 보여주는 식이다. 이 공간은 더 이상 우리에게 익숙하던 객체가 아니며 거꾸로 우리를 응시하고 새로운 관계 속으로 던져버린다 [18] . 그 안에서 인간은 공포로서 압도당하는 한편, 놀이로서 유희하는 복합적인 감각을 지닌다. 이때의 감각에는 비장소성에서 기인한, 근대적 개인들의 내밀한 신경증 같은 것이 동반되어 있다. 결국 게임 내 리미널한 비장소에 대한 ‘공포’와 ‘몰입’의 요인 탐색에 착수하는 일로부터. 우리는 게임의 사회학이 아닌, 게임을 시발점으로 둔 사회학의 단초까지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게임은 인간의 복합적인 내면이 투영된 공간, 곧 ‘어디’의 가능태를 탄력적으로 선취하는 사회적 기술로서 긍정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1] 티모시 모튼이 주장한 개념. 시공간에 너무나 거대하게 (hyper-) 퍼져 있어서 인간의 인식을 벗어나는 객체(-object)로, 모튼은 이 하이퍼객체의 특성을 점성(viscosity), 용해성(molten-ness), 비국지성(non-locality), 초차원성(phased-ness), 간객관성(interobjectivity)의 다섯 가지로 명명한다. [2] 지그문트 바우만, 함규진 옮김, 『유동하는 공포』, 산책자, 2009, 11쪽. [3] 위의 책, 12-16쪽 참조. [4] 본고에서는 장소와 공간에 대한 논의에 대하여, 양자 모두 어떠한 물리적 지점이나 위치에 인간의 삶과 실천 행위가 누적되며 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곳으로서의 위상을 지님을 전제한다. 다만, 정적이고 안정적이면서 지역성에 기초하여 생활세계에 부착되는 대상으로 장소를 이해하는 논의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추상적이면서 그 자체의 유동성과 역동성을 강조하는 것을 공간에 관한 논의의 특징으로 구분해 둔다. (정헌목, 「전통적인 장소의 변화와 '비장소(non-place)'의 등장」, 『비교문화연구』 제19집 제1호, 서울대학교 비교문학연구소, 2013, 116쪽 참조.) [5] 에드워드 렐프, 김덕현, 김현주, 심승희 옮김, 『장소와 장소상실』, 논형, 2005, 39쪽. [6] 미셸 푸코, 이상길 옮김,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2023, 48쪽. [7] 마르크 오제, 이상길, 이윤영 옮김, 『비장소』, 아카넷, 2017, 97쪽. [8] 정헌목, 앞의 글, 119쪽. [9] 조대원, 임종엽, 「리미널 스페이스의 특성과 건축적 응용 및 재현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계획계 제23권 제1호, 대한건축학회, 2003, 279쪽. [10] 빅터 터너, 이기우, 김익두 옮김, 『제의에서 연극으로』, 현대미학사, 1996, 208쪽 참조. 이 ‘통과의례’는 모든 문화 유형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어떤 사회 문화적인 상태나 지위에서 다른 상태나 지위로 옮겨갈 때, 이를테면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처녀에서 기혼녀로, 아이에서 부모로, 유령에서 조상의 영혼으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평화에서 전쟁으로, 또는 그 반대로, 곤궁에서 부유로,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갈 때, 그 지표나 매개”로서 이것은 나타나고 있다. [11] 위의 책, 209쪽 참조. 판 헤네프는 통과의례의 3단계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① (일상 사회생활로부터의) 분리(separation). ② (문지방을 뜻하는) 주변 혹은 전이역(轉移域, transition): 이때 제의의 당사자는 제의 이전의 생활양식과 이후 생활양식의 ‘중간상태’에 빠진다. ③ 재통합(re-aggregation): 이때 다시 제의적인 과정을 통해 세속적인 집단으로 되돌아오는데, 의례의 당사자는 제의 참가 이전보다 더 높은 상태로 이행하며, 의식이 변하고, 이전과는 달라진 사회적 존재가 된다. [12] 위의 책, 207-208쪽. [13] 조경진, 한소영, 「역공간(Liminal Space) 개념으로 해석한 현대도시 공공공간의 혼성적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39권 4호, 한국조경학회, 2011, 53쪽. [14] 조대원, 임종엽, 앞의 글, 280쪽. [15] 정지돈, 『스페이스 (논)픽션』, 마티, 2022, 39쪽. [16] 빅터 터너, 앞의 책, 208쪽. [17] 로제 카이와, 이상률 옮김, 『놀이와 인간』, 문예출판사, 1996, 57쪽. [18] 신지연, 이승빈, 김영대, 『이제 공간에 주의하십시오』, 영남대학교출반부, 2023, 28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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