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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세미나] Horror Video Games and the “Active-Passive” Debate 호러 비디오 게임과 “능-수동” 토론 / 데이비드 크리스토퍼 & 에이단 로이즐러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위의 작품들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루돌로지적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위 작품들이 발휘하는 특유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모든 호러 게임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의 원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Back [논문세미나] Horror Video Games and the “Active-Passive” Debate 호러 비디오 게임과 “능-수동” 토론 / 데이비드 크리스토퍼 & 에이단 로이즐러 19 GG Vol. 24. 8. 10. 시각문화 연구자인 버나드 페론은 2009년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라는 책을 출간한다. <바이오 하자드>나 <암네시아> 시리즈와 같은 호러 게임이 향유층을 탄탄히 다져가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학계에서는 호러 비디오 게임에 대한 논의가 소외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현장 종사자와 연구자를 아우르는 다양한 필자가 호러라는 장르와 게임의 접합에 관한 아이디어를 개진했다. 페론은 영화와 게임을 비교하며 생존 호러 게임이 어떻게 특유의 공포를 전달하는지 설명한다. 영화 관객은 화면을 통해서 주어지는 감각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네스틱’ 주체다. 관객의 몸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몸이 겪고 있는 황홀한 감각을 느끼고자 한다. 생존 호러 게임도 그와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공포를 전달할 수 있다. 플레이어의 몸 역시 영화 관객과 마찬가지로 “화면 속 신체의 감정이나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한다 [1] . 그런데 게임의 경우에는 매체 고유의 ‘루돌로지적’ 메커니즘이 플레이어와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융합을 촉진한다는 것이 페론의 주장이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입력이 캐릭터의 표현으로 게임 내부 공간에 매핑되고, 그렇게 구현된 효과는 곧 플레이어의 의도, 지각, 행동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요컨대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살아있는 몸’을 만듦으로써 공포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책의 다른 저자들 역시 유사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2009년에 출간된 책이 위 같은 방식으로 호러 게임을 설명한다면, 과연 10여 년이 지난 현시점에선 어떤 방식의 해설이 가능할까? 또, 페론의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던 호러 게임은 주로 생존 호러에 치중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분명 <사일런트 힐>과 같은 게임들은 호러 게임의 대표격으로 인용되지만, ‘호러’를 보다 다양하게 구성할 수는 없을까? 여기서 다루는 데이비드 크리스토퍼와 에이단 로이즐러의 글은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의 가정들을 해부한다. 그 가정이란 초기의 루돌로지가 취하던 순진한 이분법-능동적인 게임 플레이 vs. 수동적인 영화 관람-이다. 두 저자는 다양한 이론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호러와 미디어가 결합하는 미묘한 방식을, 더 나아가 게임과 호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확장하고자 한다. (*논의에 앞서서 호러라는 주요 개념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논하는 호러 개념은 예술평론가인 노엘 캐럴의 정의를 잇는다. 노엘 캐럴은 호러가 “괴물이 등장하는 허구적 서사”로, “이때의 괴물은 그 잠재적인 위협과 불순함으로 감상자에게 공포감과 혐오감, 불안감이 복잡하게 뒤얽힌 감정적 반응(이 반응은 대개 괴물과 마주하는 작품의 중심인물이 드러내는 감정적 반응이기도 하다)을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2] . 장르로서의 호러는 관객들이 호러라고 직관적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일련의 미학적, 내러티브적 관습으로 구축된다. 시각적으로는 기괴하거나, 혐오스러운 체액이 떨어지는 등의 모습으로 구현되며, 내러티브적으로는 주인공들이 몸을 숨긴 안전지대를 서서히 좁히는 방식으로 장르 문법을 따르곤 한다. 두려움은 바로 그런 종류의 호러에 노출되었을 때 일어나는 수용자의 심리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다.) ‘능동 대 수동’의 오류 화면 속의 인물이 좁고 캄캄한 공간에 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 화면이 영화라면 관객은 인물의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보며 불안한 감정을 공유할 것이다. 게임이라면 플레이어는 컨트롤러를 쥐고 캐릭터를 직접 조작할 것이다.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며 더 깊은 동일시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즉 호러 영화를 시청하는 관객은 화면 내에서 벌어지는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수동성으로 말미암아 호러의 효과를 경험하지만, 게임은 인물을 직접 조종하며 디제시스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호러에 몰입할 수 있다. 이것이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에서 다양한 저자들이 공유하는 전제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이러한 방식의 가정이 ‘루돌로지적 불안(ludic anxiety)’을 드러낸다고 바라본다. 루돌로지적 불안이란 스카이 라렐 앤더슨이 정의한 개념이다. 앤더슨은 흔히 내러톨로지 vs. 루돌로지로 요약되던 게임학의 흐름이 어떤 궤적으로 진행되었는지 요약하는 과정에서 초기의 게임학자들이 “게임과 다른 미디어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게임을 “프로세스, 시스템, 또는 행위에 의존하는 매체로 구성”하며, “게임의 특성에 대한 결론을 일반화”하려 했다. 루돌로지적 특질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게임학 이론을 정립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디어의 특질이 다양한 설명을 압축해버릴 수도 있다 [3] . ‘어떻게 게임이 기술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에 담론의 초점이 쏠려버리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게임은 그 자체로 능동적이라는 명제가 자연화된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어떤 매체가 더 ‘무서운지’ 겨루는 논의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아만다 코트의 『Gaming Sexism』를 든다. 코트는 자신의 책에서 게임 문화에 광범위하게 퍼진 남성 중심적 헤게모니를 분석하고 있지만, 정작 그 분석의 언어가 또 다른 헤게모니에 굴절되어 있다. 아케이드 게임 문화를 다룬 장에서 코트는 여성이 주로 남성을 응원하거나 관전하는 롤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설명함으로써 어떻게 여성들이 게임 플레이에서 소외되었는지 서술한다. 하지만 관전을 온전히 수동적이라고 구분 지을 수 있을까? “게임을 직접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나 즐거운 경험이라 하더라도, 남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충분히 흥미롭고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일”로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4] 게임을 보는 사람 또한 플레이어의 긴장감과 흥분을 함께 공유하고, 놀이의 매직 서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코트가 게임 플레이를 능동적이고 관전을 수동적인 것으로 나누어 관전의 메커니즘에 관해 유의미한 고찰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한 게임 플레이의 능동성을 핵심 주장으로 삼아 호러의 효과를 설명하려 경우, 곤혹스러운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암네시아>의 개발자 토마스 그립은 게임의 ‘재미’에 너무 몰두할 경우, 호러의 아우라가 파괴된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더 서퍼링>의 리처드 라우스 3세는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면 공포가 훨씬 더 강렬해진다고 말한다. 두 상반된 의견은 행위성을 호러와 직결하는 아이디어를 정밀하게 해부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장에서 저자들은 호러 미디어와 수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논의를 정교화하고자 한다. 이는 각각 ‘참여의 호러(participation)’와 ‘전송의 호러(transportation)’다. 참여의 호러 이 장에서 다루는 ‘참여’는 자넷 머레이가 고안한 ‘에이전시(agency)’ 개념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에이전시란 “참여자가 의미 있는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고, 또 그 자신이 내린 결정과 선택의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만족스러운 능력”을 의미한다 [5] . 플레이어와 생리적으로 연결된 캐릭터가 맞는 죽음은 이전에 그가 취했을 선택의 결과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해진다. 플레이어는 무언가 선택함으로써 주체성을 행사하고, 캐릭터의 죽음을 통해 주체성의 상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특히 호러 게임의 상황이라면 플레이어는 불안감이나 압박을 느끼며 주체성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공포를 생생히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에이전시가 두려움의 절대적인 기제는 아니다. 사실 호러 장르를 표방하는 다수의 게임이 시각적 요소에 더 의존한다. 저자들은 예시로 <마리오 게임>을 든다. 화면 속의 마리오는 데미지를 입기도 하고, 체력을 다 소진하면 죽음을 맞는다. 마리오를 조작하는 플레이어는 줄어드는 생명을 보며 게임 오버의 불안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오 게임>이 호러가 되기는 어렵다. 즉 호러가 되기 위해서는 괴물에게 쫓기는 등, 불안하고 기괴한 경험이 동반되는 맥락을 필요로 한다. 또한 플레이어가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인해 호러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게임에 적응한다는 것은 게임이 유희적으로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고와 행동을 자동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플레이어가 언제까지고 괴물과 어둠을 무서워할까?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게임은 실패해도 괜찮고 고통스럽지도 않고 불쾌하지도 않은 안전한 공간으로 체험된다. 이곳에서의 불쾌란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 설령 괴물에게 살해당하더라도 재시작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제공되는 무제한 ‘생명’ 같은 안전장치는 공포의 경험을 퇴색시킨다. 분명 플레이어는 게임에 성공적으로 적응했지만, 그 결과로 본래 호러가 성취하려던 효과는 상실한 셈이다. 결국 호러 게임의 가장 큰 한계는 게임 플레이의 메커니즘 그 자체가 된다. 이 지점에서 많은 호러 게임 기획자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구적인 죽음이 불가능해지거나 무의미해지면서 죽음에 대한 불안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죽음이 절대적인 상실이나 단절로 그려지지만, 부활은 오히려 내러티브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특성과 대비된다. 이 지점에서 공감의 문제가 대두된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루돌로지적 목표에 매몰됨에 따라 화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어떻게 자신이 조작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페트리 란코스키는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목표적 참여(goal-related engagement)’와 ‘공감적 참여(empathic engagement)’를 분류한다 [6] . 목표적 참여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준, 근본적으로 플레이어 자신의 경험이다. 반면에 공감적 참여는 캐릭터의 행동에 반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게임 디자이너들은 내러티브 상의 목표와 게임에서의 목표를 일치시켜 두 참여의 방식을 조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전술한 이야기는 그러한 조합이 까다롭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란코스키는 특히 플레이어가 의사를 결정하거나 전투를 벌이는 등 인지 능력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어려워지며, 게임 플레이의 흐름은 전적으로 목표 중심적으로 배열된다고 설명한다. 이 맥락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감정적 동일시를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기에 공포를 더욱 크게 느낀다는 주장은 반박된다. 그러나 참여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호러를 이끌어낸다.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헤더 메이슨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일런트 힐 3>의 사례를 든다. 작중에서 플레이어-헤더는 악몽과 같은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괴물들을 죽이게 된다. 한 NPC는 헤더가 죽인 것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하자 헤더는 경악하는데, 그 반응을 본 NPC는 농담이라며 재빠르게 둘러댄다. NPC의 대사의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과연 정당하게 괴물을 살해해온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헤더가 저지른 살인에 참여해온 플레이어는 이 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전송의 호러 원문에서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그린과 브록의 ‘전송(transportation)’ 개념을 빌려 호러가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해설하려 한다. 전송은 “내러티브의 설득적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수용자들이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내러티브에 노출되면 전송이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내러티브로 묘사된 세계로의 심리적 이동을 경험”한다고 하여, 몰입과 같은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7] . 정의가 드러내듯, 전송의 호러는 심리적 영역에서 논의된다. 그런데 이 장에서 저자들은 화면 바깥의 현실에서 게임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전송을 묘사함으로써 호러 게임이 어떻게 특유의 효과를 자아내는지, 그리하여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례로 언급되는 게임은 2002년에 출시된 닌텐도의 <이터널 다크니스>와 2017년에 출시된 <두근두근 문예부!>다. <이터널 다크니스>는 정신력 수치(sanity meter)을 도입해 효과적으로 연출한 작품으로 비평가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끈 바 있다. 이 게임에서는 정신력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40가지 효과와 이벤트를 겪을 수 있다. 저자는 가장 인상적인 효과로 게임 볼륨이 갑자기 줄어들거나 소거 되는 현상을 꼽는다. 이러한 연출은 게임 소프트웨어가 스피커라는 외부 하드웨어로 뻗어 나가 간섭한 것처럼 느끼게 하여 현실과 게임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작품을 경유하며 호러의 전송을 겪은 플레이어의 심리, 그리고 게임 속 화면에서 현실로 뻗어 나가는 전송이 일치하는 셈이다. 흔히 제4의 벽으로 요약되는 수용자와 텍스트 사이의 벽을 허무는 시도는 이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의도한 바를 성취한다. 정신력 수치 메커니즘은 이후 게임 개발자들이 루돌로지적 메커니즘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두근두근 문예부!>는 이런 종류의 심리적 공포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일컬어진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을 표방하며 출시된 이 게임은 남성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문예부 동아리에 들어가 다수의 소녀 캐릭터와 교분을 나누며 연애 대상을 공략하는 척한다. 그러나 작중의 인물 ’모니카‘는 게임 시스템에 접근해 미연시의 틀을 기괴하게 왜곡한다. 모니카가 게임 내 저장이나 설정과 같은 소프트웨어 권한을 통제하는 이상, 종내에 플레이어는 모니카의 파일을 삭제해 상황을 모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두근두근 문예부!>는 플레이어가 심리적으로 화면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고차원의 호러를 빚어내는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위의 작품들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루돌로지적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위 작품들이 발휘하는 특유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모든 호러 게임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의 원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참여의 호러와 전송의 호러를 나누어 살펴보긴 했으나, 두 속성을 배타적이라고 단언하기 역시 어렵다. 원문은 페론의 글을 보완해서 독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실 페론의 에세이는 생존 호러가 발하는 액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쫓고 쫓기는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 컨트롤러의 키네틱은 액션의 에이전시를 반영한다. 하지만 비주얼 노벨인 <두근두근 문예부!>는 그와 같은 조작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괴기스럽고 끔찍한 연출을 빚어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조합 가능한 호러의 원리를 적용해보며, 새롭게 놀라고 떨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 Bernard Perron(2009),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 MIT Press, 124p. [2] 이해완(2017), 『노엘 캐럴』, 커뮤니케이션북스, 77쪽. [3] Sky LaRell Andersoon(2013), “Start, Select, Continue: The Ludic Anxiety in Video Game Scholarship”, The Review of Communication 13(4), 291p. [4] 강신규·원용진·채다희(2019). 메타/게임(meta/game)으로서의 ‘게임 보기’: 전자오락 구경부터 인터넷 게임방송 시청까지, 한국방송학보 33(1), 7쪽. [5] 자넷 머레이, 한용환·변지연 역(2001),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147쪽. [6] Petri Lankoski(2011), “Player Character Engagement in Computer Games”, Games and Culture 6(4), 291-311p. [7] 황유리·정세훈(2014),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의 설득적 효과: 애드무비(ad movie)를 중심으로, 광고학연구 25(6), 87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SNS의 규칙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여정 : <페이크북> 제작사 반지하 게임즈 이유원 대표

    SNS가 현대인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기술이 해마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화적 양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기에 오늘날 SNS의 특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SNS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지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일상의 규칙성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녹이는 데 특화된 ‘반지하 게임즈’이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SNS의 규칙을 게임화하였을까? GG 2호 이후 오랜만에 반지하 게임즈의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 Back [인터뷰] SNS의 규칙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여정 : <페이크북> 제작사 반지하 게임즈 이유원 대표 22 GG Vol. 25. 2. 10. SNS가 현대인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기술이 해마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화적 양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기에 오늘날 SNS의 특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SNS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지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일상의 규칙성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녹이는 데 특화된 ‘반지하 게임즈’이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SNS의 규칙을 게임화하였을까? GG 2호 이후 오랜만에 반지하 게임즈의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이경혁 편집장: 오랜만에 GG 인터뷰로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신작 <페이크북>을 내셨는데요. 사실 <페이크북>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저도 좀 인연이 있지요. 이전에 이 프로젝트를 고민하실 때 저희 사무실을 찾아오셨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맞습니다. 처음 기획할 때에는 특이한 컨셉에 소위 말하는 ‘인디게임’스러운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는데, 그때 스토리가 중요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고민이 많았는데요. 게임의 재미를 주는 여러 형태가 있다고 보았을 때, 이야기를 쭉 보는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이 대표적으로 스토리가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 게임으로 주고 싶었던 것은 특정한 ‘이야기’가 아니고, SNS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거기서 유저가 상호작용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참신함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 뵙고 난 이후에 이 게임 시스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스토리가 뭘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때 말씀해 주셨던 것들이 결국 중요한 결정들을 하는데 항상 생각이 나는 조언들이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그런 느낌을 좀 받았어요. ‘제작자분들이 실제로 SNS에서 신상을 꽤 털어봤구나’라는 생각이었는데요. (일동 웃음) 그런 말씀을 많이 들으시나요? 이유원 대표: 이번에 게임을 출시하고서 스트리머분들이 되게 많이 플레이해주셨어요. 어제도 ‘한동숙’ 님이 플레이해주셨고요. 그런데 그분들 플레이를 보면서 시청자분들이 채팅으로 ‘이 사람 SNS를 얼마나 한 거냐?’, ‘이 사람 인터넷 귀신이다’ 라고들 하시는데, 그걸 들을 때 처음엔 되게 놀랐어요. ‘이게 그 정도인가?’, ‘이건 다 아는 내용 아닌가?’, ‘이 정도는 다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공감을 잘 못했는데, 계속 이런 반응이 나오니까 ‘아, 제가 좀 많이 했었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그런데 사실 저는 SNS를 그렇게 많이 안 하거든요. 오히려 이 게임을 만들면서 열심히 보려고 했었고, 정확하게는 SNS를 많이 한다기보단 인터넷에 있는 웃긴 상황이나 우리가 맞닥뜨릴 법한 경험 같은 것들 좋아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인터넷에서 웃긴 이야기가 올라와서 사람들이 퍼내고, 댓글로 싸우고, ‘누가 알고 봤더니 누구였더라’ 하는 그런 것들이 메타적으로 보면 재밌는 문화잖아요? 그런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경험들을 녹여서 게임을 만든 것이 조금은 주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경험을 게임으로 녹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유원 대표: 네. <페이크북>이 신상을 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어드벤처 게임이고, 스토리를 따라가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비주얼 노벨 같은 느낌이어서, 저희도 작업하면서 단순한 ‘신상 털기’를 넘어서는 참신함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는 기획 공수가 컸었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새롭게 재미를 느낀 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텍스트 게임을 만들거나 일반적인 라이브 하는 게임을 만들 땐, 재미있는 장치를 만드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페이크북>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게 엄청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감각이어서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영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사실 이런 스토리텔러 게임들이 제작자 입장에서 굉장히 어려운 게, 100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도 플레이어가 100개를 다 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열심히 만들었는데, 플레이어가 하지 않는 부분들은 아쉽지 않나요? 이유원 대표: 사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제가 텍스트 게임을 오래 만들어서 그런지, 그런 거에 대해서는 생각을 크게 안 하는 것 같아요. 텍스트 게임은 상호작용성이 중요하니까, 결국 플레이어들이 가지 못하는 분기가 있는데요. 오히려 모든 분기를 다 파악하게 만드는 순간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고, 실제로 <페이크북>을 플레이하시는 분들 반응을 보면, 당연히 못 가는 분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재미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게임을 하면서 궁금했던 게, ‘왜 하필 페이스북이었나?’이었거든요. 사실 요즘 페이스북이 10대, 20대들이 사용하는 SNS의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데이브 더 다이버>에서도 SNS가 나오는데, 거기선 인스타그램을 따라갔어요. 그런데 더 나중에 나온 게임이 페이스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저는 특이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이스북을 모티브로 삼으신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이유원 대표: 사실은 기획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요. 인스타그램이나 모바일 UI처럼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아예 게임을 모바일로 출시하자는 의견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단, PC 게임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첫 번째로, PC 게임에 진출하고자 하는 저희 회사의 내부 전략적인 이유가 있었고요. 두 번째로는, <페이크북>을 만들 때 ‘게임을 몰입해서 하지 않으면 유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게 결국 현실에 있는 인터넷 세상을 재현하는 모습이다 보니까요. 그리고 모바일 환경에서 하다 보면 흐름이 끊긴다거나 너무 작은 화면으로 봐서 와닿지 않을 수 있기에 집중된 상태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PC가 적합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PC 게임 시장은 이미 너무 많은 게임이 나오고 있기에 특이하고 컴팩트한 컨셉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면서 여러 세대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방향으로 페이스북을 선정했죠. 아무래도 다른 SNS를 활용하면 그 SNS를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SNS를 따라한 것이다’라는 게 확 와닿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인스타그램은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있을 수 있지만, 페이스북은 나이대에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향수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부분 중에 굉장히 공감하는 건 PC 앞에서 해야 하는 게임이라는 점인 것 같아요. 제작자로서 그 차이를 많이 느끼시는 거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모바일 게임을 만들 때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못 해봤는데, 일단 몰입을 저해할 만한 요소들이 굉장히 많아요. <페이크북>은 이야기의 진지함이 담겨있는 파트도 있다 보니까, 수시로 껐다 켰다 하면서 방해를 받으면 좀 아쉬울 것 같다는 기획자적인 아쉬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실제 SNS를 따라 한 게임인데, 플레이하다가 실제 SNS 알림이 뜨거나 카톡 알림이 뜨면 몰입이 얼마나 깨지겠어요? 그런 것들을 방지하고 싶어서 기획 초반에 팀원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그 선택에서 역으로 우리의 인식 속에 페이스북이 어떤 미디어인지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이 들어요. 페이스북은 PC로 보아야 글이나 내용에 집중을 할 수 있고, 모바일로는 잘 다가오지 않는 SNS인 거죠. 그래서 ‘PC 게임을 만들 땐 결국 페이스북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거든요. 이유원 대표: 저도 페이스북을 생각했을 때, 컴퓨터로 했던 기억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아요. 그 기억이 남아 있어서 영향을 받은 점도 있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그리고 <페이크북>의 UI를 되게 유심히 보다 보면 이게 지금의 페이스북 UI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전의 모습이랄까요? 그런 지점에서 페이스북이라는 특정 코호트에 맞춘 SNS를 가져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원 대표: 눈썰미가 진짜 좋으시네요. 저희는 옛날 페이스북 UI를 가져오고 싶었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제 예전의 향수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페이스북 UI는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저희도 조사 차원에서 페이스북 UI의 변천사를 정리해 놓은 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는데, 타겟으로 한 건 2010년대의 페이스북이에요. 왜냐하면 그때의 UI가 한편으로는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필요한 것만 배치되어서, 뭐랄까요... 본질에 집중한?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정확하게 왠지는 몰라도 옛날 페이스북 생각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디자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저는 콘텐츠 측면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페이스북에서는 이런 활동을 잘 안 하거든요. 이유원 대표: 그렇죠. 요즘은 페이스북이든 스레드든 사람들이 뭔가를 일부러 재밌게 쓰려고 하거나 내용이 있는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시의 페이스북은 ‘배고파’, ‘심심해’ 같이 그냥 아무 말이나 올리기도 하고, 진지하거나 웃긴 글도 올리고 그런 감성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보니까, 기획적으로도 (<페이크북>에선) 글이랑 그림이 막 올라오면서 이 사람의 사생활도 볼 수 있고, 생각도 볼 수 있고, 무슨 캐릭터인지 빨리 캐치할 수 있는 점에서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페이스북을 선택하는 지점에서의 모종의 향수가 있다고 표현을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페이스북이 트위터나 다른 SNS와 다르게 싸이월드처럼 지인과의 연결된다는 점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페이스북은 실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레트로한 지점도 있고요. 그런 부분이 페이스북의 향수를 만드는 지점도 있을까요? 이유원 대표: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일상의 재밌는 경험에서 핵심 메커니즘이 뭘지 생각을 하고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페이크북>을 만들 때에도 페이스북에서 저랑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랜덤한 사람들을 많이 타고 다녔어요.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친구들 리스트가 공개되어 있잖아요? 그러면 그걸 타고 네다섯 거리 건넜을 때, 진짜 저와는 평생 만나보지 못할 것 같은 분들이 떠요. 그런데 그분들의 일상을 보면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인스타처럼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적인 섬이 있고 거기의 네트워크가 있는 형태다 보니 신기하고 생경한 재미를 주는 거예요. 그때 이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놀랍고 그런 점들에서 <페이크북>이 주는 재미는 이런 거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페이크북>을 보면 누군가는 바보 같을 정도로 자기 사생활을 엄청 올리고 그걸 보면서 얘네가 이렇게 친하고 이런 관계망들을 알게 되잖아요. 그렇게 탐방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지금 게임 이용자의 주 연령대는 어떻게 될까요? 이유원 대표: 그 부분을 정확하게 체크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 초반보다는 중후반쯤에서 좀 더 인기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좀 재미있어요. 스트리머분들이 게임을 하실 때, 채팅창에서 ‘옛날에는 다 그랬어’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사실 게임 내용에서 댓글에다가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서 응모하는 그런 것들은 지금 시대에서 상상하기 힘든 그런 문화니까. (웃음) 한편으로는 지금 10대 분들이 보시기에는 마치 예전 세대가 PC 통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말씀해주신 것처럼 유튜브에서는 반응이 아주 좋았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되게 많이 스트리머 분들이 해주셨었고, PC 게임은 모바일 게임과 다르게 되게 이제 호의적으로 많이 플레이해주시다 보니까 뿌듯했습니다. 보통 모든 개발자가 그러겠지만, 게임을 출시하고 난 뒤에는 버그가 나오면 어떡하지, 막히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기획 의도대로 반응이 나올 때의 성취감이 있는데, 그런 지점이 개발하면서 엄청 큰 힘이 됐고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돼서 좋았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스트리머분들 말씀이 나와서 그러는데, 이번 작품에서 까메오를 많이 쓰셨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맞아요. 처음 기획 과정에서부터 이게 실제 SNS를 옮겨 놓은 것이다 보니, 스트리머 분들이나 인플루언서분들이 나오시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먼저 저희와 친분이 있는 분들부터 아닌 분들까지 광범위하게 연락을 드렸어요. 사실 이게 콜드 메일이잖아요? 그래서 안 받아주실 만도 한데, 거의 한 90-95%는 다 흔쾌히 답장을 주시더라고요. 순전히 호의로 해주시는 건데도 생각보다 더 호의적으로 말씀을 해주셨고, 안 된다고 하셨어도 사정을 설명해주시고 하셔서 그런 과정들이 감사하고 재밌었습니다. 실제로 게임이 나왔을 때의 유저분들의 반응도 좋고, 스트리머분들이 게임하실 때 채팅창의 반응을 볼 때 희열이 있었죠. 이경혁 편집장: 텍스트 베이스의 게임이다 보니까 해외 진출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장벽이 좀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한 상황이나 이후 계획은 어떻게 보고 계세요? 이유원 대표: 일단, 7월에 BIC(인디게임커넥트페스티벌)에서 ‘비트 서밋’(인디 게임 페스티벌)에 가는 것을 지원해주면서, 번역을 해야 해요. 그런데 번역에 두 가지 방법이 있거든요. 하나는 로컬라이제이션을 정말 잘 하는 방법이 있고, 하나는 지금의 문화적 색채를 유지하면서 언어만 대응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은 양방향으로 많이 알아보고 있어요. 만약에 해외 유저분들도 형식이 파격적이라며 재미있어하신다면, 앞으로 더 확장될 영역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조금 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한편으로 요즘 한국의 대중 문화에 관한 해외의 관심도가 높다 보니, 현지화를 안 하더라도 그냥 한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로컬라이제이션을 하는 방향도 여러 가지잖아요. 현지 회사랑 합작을 해서 거기서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을 거고요. 이유원 대표: 네. 맞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방법들을 열어놓고 알아보고 있어요. 해외 퍼블리셔를 만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요. 사실 <페이크북>이 저희의 첫 번째 PC 게임이다 보니, 성적이나 흥행에 대해서 되게 걱정이 많았었는데 정말 후회 안 하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플레이해주시고 그런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서, 사실 작년을 되게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반지하게임즈는 <서울 2033>처럼 발매 이후에도 패치를 한다거나 확장팩을 선보이는 모습들을 보이곤 했는데요. 혹시 이번 작품도 패치나, DLC 같은 형태로 확장시킬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유원 대표: 네. DLC를 생각하고 있고 욕심은 많습니다. 이 포맷이 좋기 때문에 이야기를 바꾸어가면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일단은 DLC 쪽으로 해서 추가되는 스토리들을 보여드리는 식으로 준비를 할 것 같고요. DLC 외에도 나중에 이 포맷을 다시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인터넷 서핑하는 재미라는 걸 주는 게임이 좀 고유할 것 같아서, 발달하는 AI 기술에 접목시킬 생각도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그 외의 차기작에 대해서 계획도 여쭙고 싶어요. 이유원 대표: 저는 텍스트 게임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서울 2033>이 벌써 6, 7년 되었는데, 하다 보니까 노하우가 많이 쌓였거든요. 물론, 혹자는 텍스트 게임이 수익성이 없고, 글을 쓰는데 노고가 많이 들어가며, 비즈니스 모델도 적립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노하우도 쌓였으니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최근에 저희가 AI 관련 기술들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노하우를 접목시켜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로망이 있어요. 신작으로는 PC 게임 더 도전하고 싶은 것도 있는데요. 이번에 나온 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컴팩트한 규칙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저희가 원래 잘하던 건데, PC 버전으로 그런 류의 게임을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페이크북>은 사람들의 네트워킹이 모종의 재미를 주었는데, 이런 재미를 메타적으로 느끼게 만들어서 지금까지의 전작들이 서로 연결되는 차기작도 나올 수 있을까요? <서울 2033>의 인물이 나오는데, <페이크북>의 인물과 접점이 있고, 또 그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수확의 정석>의 인물이고 하는 그런 그림이요. 이유원 대표: 언제 별도의 작품으로 진지하게 기획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저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저희는 결국 팬덤의 사랑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그래서 반가움을 드리는 작업들을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결국 저희 게임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반지하의 특정 프로젝트나 캐릭터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잖아요? <서울 2033>을 구매해주시는 분들이 <페이크북>을 찾아주시고, 또 입소문이 나면서 유입이 되고. 그래서 그런 점들이 되게 중요한 면인 것 같아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Back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19 GG Vol. 24. 8. 10. PC ESD플랫폼 ‘스팀’에는 늘상 좀비물이 넘쳐흐른다. AAA급 타이틀은 말할 것도 없고, 저예산의 소규모 게임들로 가면 온통 좀비 천국이다. 좀비의 인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호러 장르라면 좀비는 더욱 본격적이긴 하다.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게임 속 좀비의 등장과 변화 단순하게 좀비라는 개념을 처음 게임 안에 가져다 놓은 게임을 꼽으라면 1984년의 <좀비 좀비Zombie Zombie>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의 경우는 좀비 게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특성만을 보여주었다. 좀비 영화가 나름의 흥행을 이어가던 시절, 이 게임은 그저 영상물로서 갖는 좀비의 인기를 비디오게임으로 가져오는 정도에 머물렀다. 고층 빌딩 위에서 좀비라고 불리는 적들을 밀어 낙사시키는 방식의 간단한 규칙 안에서 적 캐릭터들의 행동은 굳이 좀비가 아니어도 무방할 패턴이었기에 본격적인 좀비 게임의 시작이라고 <좀비 좀비>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 <좀비 좀비>는 좀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게임규칙 면에서 좀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블 데드Evil Dead>(1984)나 <고스트 앤 고블린(일명 ‘마계촌’) Ghost N Goblins>(1985) 등의 게임부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의 행동패턴이 게임 캐릭터 안에도 들어오는 흐름을 볼 수 있다. 다소 느릿한 움직임과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패턴을 통해 적 유닛으로서의 행동에 좀비 특유의 방식들이 녹아들기 시작하지만, 여기서도 언데드라고 불리는 그룹과 엄밀하게 구분해 좀비라고 부를 수 있는 만한 유니크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 <이블 데드>와 <마계촌>부터는 언데드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좀비의 행동적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좀비라는 개념이 게임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중적 게임을 꼽으라면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1996)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언데드와 구분되는, 명확한 좀비로서의 외형과 움직임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게임 안의 공간이 어느 정도 3차원 공간으로 잡히는 시기와 엇비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적으로서 좀비가 갖는 특성 중 하나인 느릿한 움직임이 3차원 공간에서의 공격방식인 ‘조준하고 쏘기Aim and shoot’에서 좀더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실감형 게임으로 직접 전자총을 들고 조준해 사격하는 방식인 <하우스 오브 데드House of Dead>(1997)이 주요 대상으로 좀비(혹은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것도 어느 정도 같은 영향력 하에 나타난 일로 보인다. * 3차원 공간에서의 에임 앤 슛에서 좀비의 행동은 좀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느릿한 움직임’이라는 좀비의 특성은 고정된 것은 아니기에 함부로 속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의 게임들에 등장하는 좀비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군집으로서의 양상이다. <데이즈 곤Dayz Gone>(2019), <그들은 수백만They are billions>(2017)등은 결코 느리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의 좀비들을 투입하면서 대신 엄청난 숫자의 물량으로 밀려들어오는 좀비로부터 버터내야 하는 도전을 안기는 형태로 변화했다. 오늘날 좀비를 주적으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 나타나는 좀비의 특성은 그래서 단일하다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디지털게임과 좀비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좀비라는 대상은 적으로 자주 활용되었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좀비가 활용되는 것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디지털게임의 특수성이 도드라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워킹데드>같은 드라마들에서 좀비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외형과 유사해 더욱더 불쾌감과 공포감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이러한 적에게 공격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사회적으로 디지털게임은 폭력성에 관한 오해를 자주 받곤 하지만, 실제로 게임 안에서 강렬하고 적극적인 폭력행동을 수행하는 일은 게이머에겐 때론 버거운 윤리적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 적지 않다. 유명한 사례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의 ‘노 러시안’ 미션에서 많은 게이머들이 무고한 민간인에게 화력을 투사하라는 명령 앞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이것이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폭력의 사용이 매우 높은 심리적 장벽 앞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특히 액션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라면 좀비는 매우 그럴듯하게 윤리적 문제를 비껴나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좀비의 신체는 인간의 신체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명백하게 이는 인간이 아님을 드러낸다. 작은 머리와 직립보행하는 두 다리, 양 팔을 가진 좀비의 신체는 액션게임에서의 조준과 식별 과정에서라면 실루엣상으로는 인간을 향한 사격과 동일하지만, 인간을 닮은 이들 폴리곤 위에 덧씌워진 텍스처는 아주 강력하게 이들이 인간이 아님을 어필한다. 사격의 기술적 과정에서는 인간을 쏘는 것과 동일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좀비라는 존재는 막대한 화력을 투사할 때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앞서 이야기한 윤리적 장벽을 우회하며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좀비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들의 상당수가 중화기를 동원한 강한 화력을 선보이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의미다. 미니건이나 소형 전술핵과 같은 대량살상이 가능한 병기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이를 인간을 향해 쏘는 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좀비와 같은 대상이라면 보다 강력한 무기를 디자인하고 그 화력을 맛볼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근현대 화기가 갖는 위력이 만드는 강한 스펙터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좀비라는 타겟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게임만의 특징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좀비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콜 오브 듀티: 나치 좀비> 나 <스나이퍼 엘리트: 나치 좀비 아미>와 같은 나치와 좀비를 결합한 게임들이다. 나치와 좀비의 콜라보레이션은 매우 간단한 의도가 담겨 있다. 중화기로 화력을 들이부어라! 이들은 ‘죽어도 싼’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치와 좀비를 콜라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 속 좀비의 새로운 트렌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 속 좀비는 한 시기, 한 모습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며, 매 시기마다 그 시기에 가장 걸맞는 형태로 변화해 온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좀비는 윤리 문제를 넘어선 강한 화력의 투사대상이라는 관념 바깥으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식물 대 좀비Plants VS Zombies>에서 좀비는 전통적인, 위협적이지만 느릿한 존재이지만 공포보다는 코믹한 형태로 재구성된 대상이다. 코믹한 좀비는 혼자 사는 너드 아저씨 주인공의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오지만, 이를 막아내는 것은 감자, 해바라기, 콩 같은 앞마당의 채소들이다. 외부의 조력 없이 혼자 자신이 사는 집의 앞마당yard을 침공해오는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게임 속 플레이어의 활동은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물이지만, 이 때의 좀비는 공포가 제거된 대상이다. * <식물 대 좀비>에서 좀비는 공포를 뺀 대상으로 나타난다.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에는 동충하초 같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좀비가 적으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섭고 위협적인 적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자주 이야기되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이야기가 <라스트 오브 어스> 세계관과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고, 이 속에서 좀비는 ‘차라리 사람보단 낫더라’라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폴아웃>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구울이라는 집단을 상정하는데, 방사능에 피폭되어 인간의 골격을 하고 있지만 외형은 좀비와 닮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명확하게 좀비라는 존재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좀비들과는 달리 지성을 갖고 집단을 이루며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존재이며, 플레이어의 동료나 아군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좀비라는, 한때 ‘절대로 인간이 아님’을 강변하며 존재하던 개념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묻던 그 장면들처럼, 최근의 적지 않은 게임들은 완벽한 상상 속 창작물인 좀비 또한 반드시 인간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분지어져야만 하는 대상인가를 역으로 묻는다. 어떤 면에서, 좀비에 대한 이야기는 포스트휴먼에 관한 최근의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김서율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영화를 중심으로 문화 전반에 관심을 두고 종종 글을 끄적이거나 기고해왔다. 현재는 구로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일한다. 어느샌가 사회 운동에 뛰어들어 연구자와 활동가, 이론과 실천 사이에 단절된 통로를 고민하며 길을 모색 중이다. 김서율 김서율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영화를 중심으로 문화 전반에 관심을 두고 종종 글을 끄적이거나 기고해왔다. 현재는 구로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일한다. 어느샌가 사회 운동에 뛰어들어 연구자와 활동가, 이론과 실천 사이에 단절된 통로를 고민하며 길을 모색 중이다. Read More 버튼 읽기 〈디스코 엘리시움〉 하나의 세계에서 태동하는 모순, 적대, 역설의 게임(장려상) 그럼에도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우뚝 선 ZA/UM의 개발자들은 이제 비디오 게임이야말로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예술이라고 밝히는 데에 이르렀다. “타인의 기억에 남고 싶다면, 체계적으로 반감을 사야 합니다. 반감을 살 준비가 되었다면, 정말로 역사적인 기회를 얻게 됩니다.”3)는 말은 그들에게 매우 적절하지 않을까.

  • 게임제너레이션::필자::파웰 그라바첵, Pawel Grabazeck

    파웰 그라바첵, Pawel Grabazeck 파웰 그라바첵, Pawel Grabazeck Read More 버튼 읽기 랜덤함: AAA와 인디게임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양날의 검에 관하여 요약하자면 현재 게임 산업 내 랜덤성의 인기와 그것에 대한 두 개의 극단적인 인식은, 처음에는 놀랍게 여겨질 수 있으나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는 랜덤성이 과거의 아날로그 게임들에서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김재석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버튼 읽기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버튼 읽기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그럼에도 유독 지난 국회에서는 ‘친게임’이라 부를 만한 국회의원이 다수 활동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이라는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져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게임 정책을 힘주어 발표하거나, 게임 전문 유튜버,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버튼 읽기 하이파이 러쉬: 2023년의 깜짝 락스타를 놓치지 마시라 기라성 같은 게임이 대단히 많았기에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으레 올해를 풍년이라고 부르곤 했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과 <데이브 더 다이버>가 '쌍백만'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두고 두 게임이 경쟁했던 일화는 훗날에도 오래 기억될 만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올해의 게임을 고르기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2023년. 리듬+액션 게임 <하이파이 러쉬>(Hi-Fi Rush) 또한 빠져서는 안 될 수작이다. 버튼 읽기 현황점검: 플랫폼 인앱결제의 오늘 카메라 앞에 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든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사람들 주머니에 통화도 되고, MP3 플레이어도 되고, 동영상 재생기도 되는 스마트폰이 담기기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저들은 ‘그 작은 기계로 무슨 게임이냐’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버튼 읽기 메타버스, 호흡을 고르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도 10억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메타버스를 핵심 비전으로 언급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향후 5년 후에 페이스북을 메타버스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펄어비스와 텐센트도 메타버스를 주요 아젠다로 언급했고, 지난 NDC에서도 넥슨 김대훤 부사장이 “더이상 게임 회사, 게임 산업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제안했다. 다분히 메타버스를 의식한 발언이다. 버튼 읽기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러시아 안에서 차르가 된 푸틴은 그렇게 러시아 바깥까지 제패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그런 장면은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보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고 다치기 때문이다. 버튼 읽기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버튼 읽기 독점 게임의 새 지형도: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버튼 읽기 게임으로 관객에게 말걸기 -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관람기 필자는 게임제너레이션으로부터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대한 게임전문가 관점에서의 리뷰"를 요청받았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임전문가도, 미술애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못 주름을 잡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북서울미술관은 필자의 집 앞이었던 데다, 고료의 유혹이 상당했다. 그렇게 흔쾌한 척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이 주제에 적당한 '레벨'인지 자문한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 Back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17 GG Vol. 24.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4e447be-d2b1-48f0-85e6-eb63ee2f907b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The internet is flooded with countless games available to play at any time. We are living in an era where people can purchase more game easily through online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than what humans could possibly play in a lifetime. The normalization of digital distribution, like Steam, has certainly contributed to lowering the entry price of a video game. But coming up with a fair amount of price tag in reality is a bit more complex than that, and it is difficult to say whether the game prices have truly become affordable than before. The regular release price of so-called “AAA” game titles has been steadily on the rise, not to mention all those excessive special editions (e.g., deluxe packages, limited editions) that cost well over ₩100k (approximately $80). As such, in some degree games are affordable form of entertainment, but at the same time, they deemed as expensive. To fully comprehend this contradictory situation, we must start asking ourselves: what is actually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e do know that a considerable amount of manpower and resources go into video game production. So, being able to come up with a mutual range of fair prices would contribute to the industry in terms of securing sufficient profits for the creator and, thus, the necessary funds for the development of a better game. It would also contribute to its users that fair price can contribute to a continuation of a good product that offer enjoyable and enriching virtual experiences. Challenges in Determining Regular Prices of Video GamesHistorical records suggests that the pricing of video games was not never really calculated based on systematic business forecasts but often by arbitrary guesswork. The normative rules of game prices have frequently changed as well. For example, early arcades operated on fixed-price coin-op business model, where the playable time per coin heavily depended on how the player is good at that particular game. Ironically speaking, the more skilled players play longer while spending less, resulting in fewer profits for arcade operators. (This led to instances where skilled arcade-players in Korean arcades were occasionally kicked out from the premises, with a coin refund, to make way for the next player in line.) As such, the cost of complete gameplay experiences varied from person to person, largely contingent on their gaming proficiency. Of course, it not all gamers back then expected to achieve complete gameplay experiences in every arcades. The emergence of console and PC “package” games introduced the concept of fixed prices in the game industry, which meant people could pay the same price regardless of the amount of gameplay hours of each user. Each cartridge, disk, or CD was sold at a fixed price, gradually forming an average price range for games. But with the rise of online digital distribution channels and their mass-scale discount systems, real-time price controls, and game subscription schemes, the range of regular prices for package-type games has begun fluctuating again. Determining the fair price of a game has become even more complicated with the rise of the micro-transactions in games, which has become increasingly prevalent in the online/mobile game era. Now the cost of a game is not only about the gaming proficiency but also the total amount spent in-game. The gameplay experience of a heavy user who spends $1,000 on micro-transactions in a free-to-play game like Uma Musume: Pretty Derby (Cygames, 2021) would vastly differ from that of someone who didn't spend a dime in that game. In such a vastly different player-base, coming up with a mutual ‘fair’ price is certainly not an easy task. What I would like to note here is that the topic of regular price of a game and the appropriate cost (i.e., what is deemed as appropriate amount of money that one can spend in games) are a different thing. Because, to put it simple, the amount of coins that a player bring to arcade shop is not just about how much each session of a gameplay in that particular arcade cost. Rather, it’s about how many sessions of gameplay that the player is going to (or willing to) pay, multiplied by the cost of each gameplay session. As such, answering the question of 'what is a fair price for a game' is not solely about the determining the sales price tag of a game product, but also about finding a mutual balance between producers and consumers – in a way to maintain a sustainable cycle of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While individual purchasing power is certainly an important indicator to look at, but the primary concern lies here is about how goods (in this case games,) can be fairly exchanged between producers and users. Then another thing that needs to be addressed is the issue of today’s digital game distribution method, specifically, its pluralistic nature of game as both a product and a service. In the arcade era, games were primarily operated as a rental business. Then, gradually, they transitioned into owning the game (or game machines) as goods in the home console and PC game era. However, with the normalization of online/mobile games, there has been a shift back to rental services – games that are channeled through server-based, internet-connected platforms. Therefore, we are now living in an era where games cannot be explained by a single value; rather, they are both products and services that intersect and coexist. So there cannot be a simple answer regarding the fair price of games. And this is not even considering all those numerous discounts deals and subscription services. So it is evidently clear that there is no magic number about ‘what is the fair price’ in a game – we cannot do simple math by ticking checkboxes. One ideal approach is perhaps to first examine the amount of money spent on game production and then propose a range of unit prices that could potentially recoup those production costs for its creators within a reasonable timeframe. Then whether that price range is acceptable are ultimately determined consumers, by finding just the right balance between the market’s natural supply and demand. Clearly, it’s not an easy task. But a tasks that must be done. Why should we talk about the fair price of games? The Korean Consumer Price Index (CPI) is calculated based on the cost of 480 essential goods and services, served as a common indicator to determine South Korea’s regular living cost and inflation rate. Among these, 47 fall under the category of “entertainment and cultural activities”, which include activities such as purchasing musical instruments, computers, film tickets, and books, and the costs of travelling and even repairing digital devices. However, game-related expenditures are not included in Korean CPI. Despite numerous reports about the significant increase in South Koreans' usage of games, and despite all those provocative media coverage of somebody ‘spending tens of thousands of dollars on video games in micro-transaction instead of doing something productive’. Some easily solution is to add already existing collectable data such as PC-bang hourly fees and average of online entertainment purchases. Even if so, there are clear limitations; as they do not fully capture the overall game-related spending patterns of general South Korean players. This call for thorough actions in order for us to truly able to say that games have become one of the mainstream media – regarded as one popular media and enjoyed as any other daily leisure activity. This would include polishing our societal system and facilitating infrastructures to finally acknowledge gaming as an act of leisure and cultural fulfillment in contemporary society, and economic analysis on game-related consumptions. For instance, Korea do have basic reports on how much money people spend on games per month and what the highest and lowest prices are – such as the Game User Census Report conducted annually by the Korean Creative Contents Agency. However, there are still rooms for improvement as those numbers are isolated from the overall economic index, such as other consumable indexes in Korean CPI. While the cost of watching films, television shows, and portable multimedia devices is accepted as a ‘valid’ indicator of the livelihood of South Korean households, the cost of playing games is still missing. Now is the time when we should finally acknowledge the significance of the cost of software that is called video games. And not just the price tag of the game itself but also the significance of games in the overall socioeconomic context. This then leads to my question, “What is the fair price of games?” In this complex, ever-connected era of gameplay, the question shouldn’t be limited to “how much should the game product cost” but rather should target the fundamental question of “what games mean” – the value of game-related consumptions intersect with other means of our entertainment, social, and leisure activities. Instead of fixated by the price tag of a game itself, we should start asking ourselves how the game-related expenditures are compared to other leisure and cultural activities. Why do people choose to spend money on games rather than other means of media? What’s unique about games? It is now time to surface these questions that are currently encapsulated within gamers' communities and web forums, further into mainstream societal discourse. Lastly, perhaps we now need to start asking the very fundamental question of “What is the (means of) fair price of games?” Because, controversial topic such as the toxicity of impulsive or excessive game micro-transactions, or the irony of free-to-play (that, there’s no such thing as free to play anything), eventually leads to the fundamental question; what could account for the price of gameplay? What are the fair means of purchasable in gameplay? What can be quantified and what cannot? And how to measure them? We must realize that we no longer live in the era of a simple supply and demand market that can determine the simple one-for-all price of games. Instead, now is the time to embrace this ever-complicated question even to video games as medium itself.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KyungHyuk Lee He has been close to games since childhood, but it was not until 2015 that he started talking about games in earnest. After living as an ordinary office worker, he entered the life of a full-time game columnist, critic, and researcher through a series of opportunities. Books such as "Game, Another Window to View the World" (2016), "Mario Born in 1981" (2017), "The Theory of Game" (2018), "Wise Media Life" (2019), and "The Birth of Reality" (2022); papers such as "Is purchasing game items part of play?" (2019); "Dakyu Prime" (EBS, 2022), Gamer (KBS), "The Game Law", 2019 BC) and "Economy of Game", etc.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institute 'Dragon Lab'.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보라무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보라무 보라무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효율 같은 건 필요 없어: 느리고 답답하게 게임하기 효율성은 분명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플레이 방식일 필요는 없다. 게임에서 비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성공에 관심 없는 것이나 열등하거나 패배적인, 혹은 의도에서 벗어난 부적응적인 태도라고 보긴 힘들다. <월든>에서 소로가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고유한 삶의 속도를 발견했듯이, 무엇이 게임에서 ‘성공'인지 각자가 내리는 정의가 다를 뿐이며 플레이어 각각에게 존재하는 삶의 속도가 다를 뿐이다. 비효율적인 게임 플레이는 게임이 단순한 목표 달성의 도구가 아닌 복합적인 경험의 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버튼 읽기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버튼 읽기 [논문세미나]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 이번 세미나에서 리뷰할 논문은 지난 2022년 8월 ‘게임 스터디즈(Game Studies)’라는 저널에 게재된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이다. 번역하면 “X를 눌러 기다리시오: 레드 데드 리뎀션 2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게임 시간의 문화정치” 정도 될 수 있다. 이 논문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레드 데드 리뎀션 2〉과 시간에 대한 감각을 다룬다. 버튼 읽기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위한 제노바 첸의 작업들 게임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전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듯,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 매체로서 게임,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들의 존재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 Prompt2Videogame: 더빙의 오래된 미래

    이러한 맥락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데스티니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 너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조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질 GPT-4(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모델)에 연동된 데스티니는 플레이어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잠재적인 사운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리 녹음을 했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운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따라 반응이 3가지 정도로 나뉘는 고전적인 NPC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대화의 분기가 한 10가지쯤 될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긴밀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며, 그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사나 대화에 있어서 데스티니에게 기존 게임 사운드의 특성들을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 Back Prompt2Videogame: 더빙의 오래된 미래 10 GG Vol. 23. 2. 10. 그것은 운명의데스티니 2018년에 출시한 〈갓 오브 워〉와 그 후속작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는 흠잡을 데 없는 높은 완성도로 명성이 높다. 장점들을 열거하면 끝이 없겠지만, 특히 크레토스와 그의 아들 아트레우스를 둘러싼 캐릭터 서사는 이 시리즈가 어째서 그저 ‘손맛이 찰진’ 훌륭한 액션 게임에 머무를 수 없는지 명확히 드러낸다. 이와 같이 감정적 울림이 큰 서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좋은 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갓 오브 워 시리즈처럼 대규모 예산이 투여된 트리플 A 게임들은 그에 못지않게 성우들의 연기 또한 큰 변수로 작용한다. 계속해서 Boy!를 외쳐대는 크레토스의 낮게 깔리는 걸걸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유형의 캐릭터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1)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두 게임 모두에서 크레토스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배우 크리스토퍼 저지Christopher Judge는 얼마 전에 열린 ‘더 게임 어워드 2022’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시상식에서 예의 그 Boy!를 시전하는 순간, (〈갓 오브 워〉를 무척 즐겁게 플레이했음에도) 나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크리스토퍼는 크레토스와 전혀 닮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종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는 스파르타 출신 상남자의 것이 틀림없었다. 미디어 철학자 곽영빈이 지적하듯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거의 대부분의 영상들 속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응correspondence은, 대개 이처럼 ‘사실’이 아니라 스크린에 띄워진 이미지를 중심으로 우리가 사운드에 투사하는 ‘기대’에 부합하는 것일 뿐이다.” 2) 즉, 크레토스의 캐릭터가 크리스토퍼 저지의 목소리를 가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지만, 우리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이 노회한 전쟁의 신에게서 바로 그와 같은 목소리를 기대한다. 이처럼 사운드의 ‘주체’와 사운드 사이의 자의적인 관계를 시각적인 정보에 의지한 기대를 투사하는 방식으로, 마치 필연적인 관계인양 유도하는 역학은 스크린 바깥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보고 목소리가 진짜 ‘깬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외모에 꼭 들어맞는 다른 어떤 ‘최적화된’ 목소리가 이미 존재하는 듯이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개개인들의 목소리가 그러한 암묵적인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는 넌센스적인 주장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는 차치하고라도, 몸과 목소리의 관계는 정말 자의적이기만 한 것일까? 그 답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다만 이와 관련한 한 흥미로운 연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9년 MIT의 컴퓨터 공학, AI 랩(CSAIL)은 자신들이 새로 개발한 AI 모델 Speech2Face 3) 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름이 암시하듯이 이 모델을 기반으로 ‘훈련’된 알고리즘은 짧은 분량의 목소리 데이터 만으로도 그 사람의 얼굴을 ‘예측’해낼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때로는 실제 목소리들의 주인들과 놀랄 만큼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용한 방법은 최근 거의 모든 인공지능 분야에서 사용되는 딥러닝의 방법론 중 하나인 자기주도학습(Self-supervised learning)인데,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잘 알려진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과는 달리 이 방식은 데이터를 일일이 레이블링하는 작업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Speech2Face 모델은 자신이 받아먹은(?) 대량의 데이터(수백만 개의 유튜브 비디오 세그먼트들) 속에서, 서로 대응하는 각각의 목소리와 얼굴이 가지는 어떤 공통된 상관관계를 스스로 ‘발굴’해낸다. 물론 이 모델을 창시한 연구자들조차 그 ‘상관관계’가 정확히 어떤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지 혹은 이 관계가 상관관계를 넘어선 인과관계인지 단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결과가 목소리와 몸 사이의 자의성을 필연성으로 바꾸었다고 이야기한다면 과장 섞인 거짓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설령 우리가 그것이 정확히 어떠한 관계인지 끝내 알 수 없더라도) Speech2Face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보완되어서 정말로 실제 얼굴과 거의 동일한 이미지들을 일관되게 예측해 낸다면 어떨까. 그때에도 우리는 목소리와 몸의 연결이 완전히 랜덤 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 Speech2Cartoon의 예시 더 나아가서 이 가능성은 다시 스크린 안으로 스며든다. Speech2Face의 연구자들은 직접 그들의 페이퍼 4) 말미에서, 이 모델은 실사 이미지뿐 아니라 (안드로이드폰의 Gboard와 같이 매우 간단한 키보드 앱을 이용해서) 특정한 목소리에 ‘적합한’ 이모지emoji를 만들어 내는 방식(Speech2Cartoon)으로 응용이 가능하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점점 더 실사 이미지와 구분이 되지 않는 불쾌한 골짜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게임 캐릭터들의 얼굴 역시 목소리를 통해 예측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다. 즉, Speech2Videogame은 사실 매우 가까운 미래가 아닐까. 그리고 이 과정을 전제한다면, (여전히 블랙박스로 괄호 쳐져 있지만) 매우 정제된 수준의 목소리-얼굴 상관관계를 이용해서 역순으로 Videogame2Speech를 구성하는 일 또한 당연히 가능하다. 5) 게임 캐릭터(앞으로 이 캐릭터를 데스티니라고 부르도록 하자)의 외양에 걸맞은 목소리를 추측해 내는 것이다. 여기에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만들어 주는 생성모델Generative AI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어색한 기계음의 뉘앙스마저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폴리곤으로 빚어진 데스티니는 비로소 ‘그럴싸한’ 목소리의 자의성으로부터 벗어난다. 그 목소리는 비록 우리가 기대한 음색과 톤은 아닐지 모르지만, (바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사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통해 이어진 그녀만의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배우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파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듯, 목소리는 ‘운명적’이다. 순수게임사운드 비판 그렇다면 데스티니의 목소리를 더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언뜻 생각하면 간단해 보인다. 더빙은 (가장 건조하게 이야기하면)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 기존 사운드에 새로운 사운드를 믹싱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이 인간 배우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알고리즘이 생성해 낸 목소리인지, 혹은 캐릭터와 목소리의 관계가 자의적인지 필연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이 되는 것은 그 목소리가 앞서 언급한 간결한 정의에 들어맞는지의 여부다. 문제는 이 정의가 특정한 대립쌍들을 매우 명확하게 부각한다는 사실이다.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은 프로덕션 과정 이후이기 때문에 프로덕션 과정을 전제한다. 새로운 사운드는 기존 사운드에 대응하는 말이다. 후시녹음은 동시녹음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다만 게임 개발에는 (영화와 달리) 동시녹음 과정이 없다. 게임에 들어가는 모든 사운드는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 ‘기존 사운드’ 없이 믹싱 된다. 결국 우리는 게임 매체에서는 모든 게임에 들어가는 모든 사운드가 더빙된 것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6) 그러나 이 결론은 게임 더빙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단어를 빈 껍데기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서 캐릭터들이 내뱉는 대사들만으로 더빙을 한정 짓는 인위적인 범위 조절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내 ‘모든 대사들은 더빙되었다’라는 식으로 똑같은 함정에 빠진다. 이쯤 되면 ‘게임 더빙’은 범위range의 대상이 아니라 범주category의 대상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그리고 그것의 범주를 알기(혹은 새롭게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다른 매체와 구별되는 게임 더빙의 특수성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 게임의 (더빙된) 사운드는 무엇보다도 디지털 오브젝트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이는 기술철학자 Yuk Hui가 주장하는 광의의 개념으로서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게임 엔진이 서로 다른 맥락에 따라서 모아둔 데이터셋의 집합을 지칭하는 말이 오브젝트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7) 많은 경우 사운드 데이터는 다른 오브젝트들에 귀속되어서,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같은 ‘의미 있는’ 트리거를 기다린다. 〈갓 오브 워〉에서 종종 등장하는 ‘종 3개 빨리 치기’ 퍼즐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플레이어가 리바이어던 도끼를 날려서 종 하나를 맞추는 한 동작만으로도 이미 많은 트리거가 활성화된다. 먼저 도끼를 날리면서 크레토스가 내뱉는 기합은 크레토스의 캐릭터 오브젝트에서 나온다. 도끼 오브젝트는 날아가면서 또 특유의 사운드를 실행한다. 도끼 오브젝트와 충돌한 종 오브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 후 다시 크레토스에게로 날아온 도끼가 그의 손에 감기는 순간 또 다른 사운드가 실행된다. 그렇다면 이 간단한 퍼즐을 끝내기 위해서 얼마나 더 많은 트리거가 발동되어야 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 게임 사운드의 확산 모양과 범위는 다양하게 설정 가능하다 사운드 데이터는 다른 오브젝트에 속하지 않고 스스로 오브젝트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투가 시작될 때의 긴박한 배경음악은 갑자기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바람 소리 혹은 빗소리는? 길게 흐르는 하천의 물소리는? 이처럼 물리적 실체나 그 소리의 진원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도, 플레이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오브젝트는 그 세계 내에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이와 같은 사운드 시스템에서 사운드는 매우 구체적인 트리거의 조건과 범위를 지닌 채 게임 세계 곳곳에서 공간적인 위치를 점유한다. 이 배치는 일차적으로 플레이어의 인터페이스적 개입을 전제하지만, 종종 (플레이어와는 관계없이) 여러 오브젝트들의 루틴이 충돌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식으로 예상치 못하게 풍부한(?) 사운드를 발동시키기도 한다. 8) 결과적으로 일직선의 게임플레이를 채택한 아주 선형적인 게임에서조차 사운드는 (많은 경우의 수에 따라 조합하는 방식으로) 비선형적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모듈화된 비선형적 사운드 조각들은 게임 사운드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위한 인프라적 토대가 된다. 그중 하나가 반복이다. 반복이라는 행위/상황(플레이어가 누르는 키, 캐릭터의 모션 등등)은 게임과 같은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다. 사운드 역시 예외는 아니다. 플레이어는 종종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반복적인 사운드에 노출된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의 본편과 두 확장팩을 전부 클리어하는 동안 우리가 듣게 되는 로취의 말발굽 소리는 횟수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일일이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양일 것이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게롤트가 약공격으로 휘두르는 칼소리는 몇 번이나 될까? 쿠엔 표식의 발동 사운드는? 그런데 캐릭터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우리는 반복을 좀 더 의식하게 된다. 게롤트의 유명한 방백(?)인 “Wind’s howling”은 바람이 심한 언덕 같은 곳에 가게 되면 혼잣말로 할 법한 대사이긴 하다. 그러나 매번 완전히 똑같은 톤과 페이스로 이 대사를 계속해서 읊는 그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이 문장이 어째서 인터넷 밈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혼잣말 정도가 아니라 더 나아가서 같은 대화를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은 명백히 어색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역시 게임에서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의 메인 거점 중 하나인 드리프트우드 마을에는 여러 종류의 상인들이 모여 있는 큰 광장이 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플레이어는 아마 많은 대화들과 외침들이 중첩되어서 만들어 내는 활기에 취할 것이다. 그런데 그 광장을 이후로도 최소 수십 번은 방문하게 된다면? 어느 순간 광장에서 들리는 모든 대사를 외워서 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정확한 톤까지 머릿속에서 재생할 수 있게 된다. 9) 반복되는 대사들은 종종 이처럼 밈으로 고착화되는 방식을 통해 기존 맥락에서 탈구되는데, 어쩌면 이 현상은 게임 사운드의 중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0) 게임 사운드의 반복이 반복적인 트리거의 결과라면, 반대로 단 한 번도 트리거 되지 않는 사운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가능성에 머물 수 있음은 게임 사운드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위쳐 3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몇몇 중요한 사이드 퀘스트들과 멀티 엔딩들을 떠올려 보자. 100시간이 넘는 플레이 타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는 아마도 몇몇 중요한 대화들은 구경도 못한 채 게임을 끝낼 것이다. 이 부분을 더 밀고 나간 것은 흥미롭게도 그 전작인 〈더 위쳐 2: 왕들의 암살자〉이다. 위쳐 2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은 메인 내러티브의 중대한 분기점을 촉발한다. 그에 따라 그다음 챕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선택에 따라 플레이어는 그중 하나만을 경험할 수 있다. 2회 차를 통해서 두 부분을 모두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이 두 가능성은 적어도 이 기나긴 챕터에서 완벽히 다른 2개의 평행세계를 구축한다. 하나를 선택함에 따라 경험이 불가능해지는 다른 하나는 그저 어떤 씁쓸한 결말이라든가 짧은 엔딩 같은 것이 아니라, 커다란 지역을 누비며 다양한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하는 디테일한 이야기와 모험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다른 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모든 풍부한 사운드는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특징이 언제나 내러티브의 분기 과정에서 서브루틴으로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디스아너드〉의 사례는 환원되지 않는 그 지점을 잘 포착해 낸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스텔스 플레이를 하도록 종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력과 운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적들에게서 단 한 번의 의심조차 사지 않고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혹은 반대로 완전히 난장판을 만들면서 모두를 죽이고 미션을 클리어할 수도 있다. 이 두 개의 극단적인 시나리오 사이에는 둘을 각기 다른 비율로 조합한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이 경우의 수들은 메인 내러티브 분기와는 독립적으로,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계속되는 작은 선택들에 따른 분기로 인해 발생한다. 그리고 각각의 시나리오는 모두 고유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갖는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특정한 방식으로 한 미션을 클리어할 때, 실현되지 못하고 잠재적으로 존재했던 다수의 사운드 스케이프들은 저장 장치 속에서 분절된 사운드 데이터의 형태로 다시 잠든다. 오래된 미래 앞서 제기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다시 물을 수 있다. 데스티니의 목소리는 (더빙된) 게임 사운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너무나 명백한 답이 있는 것처럼 보임에도, 우리는 여기서 이 질문을 다시 뒤로 미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녀가 정말로 게임 캐릭터라면, 그 캐릭터가 어떻든 혹은 그 게임이 무엇이든 간에 앞서 서술한 게임 사운드의 특징들을 그대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데스티니가 기존의 방식대로 만들어질 게임에 속하는 캐릭터라면, 그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그녀는 ‘고유의 목소리’까지 얻어낸 캐릭터가 아닌가. 그 목소리로 계속해서 같은 대사를 읊는다면, 그 광경은 좀 기괴하고 슬플 것이다. 11) 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보아야 한다. 때마침 (그녀에게는 다행히도) 게임 업계는 개발 프로세스의 엄청난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휩싸여 있다. * 생성모델을 이용해서 게임 에셋들을 만들기 시작한 기업들 실리콘 밸리의 유력한 벤처 투자 회사인 안드레센 호로위츠Adreessen Horrowitz는 생성모델Generative AI에 관한 최근의 보고서 12) 에서 게임 분야야말로 이 새로운 기술에 의해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There hasn’t been a technology this revolutionary for gaming since real-time 3D.”) 더빙을 포함해 게임에 들어가는 모든 에셋들은 달리(DALL·E),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ChatGPT와 같은 생성모델에 의해서 이미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점차 확대될 것이다. 종국에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통합적인 솔루션의 등장을 암시하며 보고서는 끝을 맺는다. 과장되었다거나 혹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치부할 의심 많은 독자들을 위해서 이 보고서는 친절하게도 아소보 스튜디오가 개발을 맡은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2020〉의 사례를 든다. 잘 알다시피 이 시뮬레이션 게임의 맵은 (농담이 아니라) 지구 전체다. 이 정도 스케일의 맵을 만든다는 것도 상상이 잘 안 가지만, 비행기를 운전하면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마치 특정 도시를 그대로 옮긴 듯한 디테일 함에 또 놀라게 된다. 이와 같은 맵을 기존의 방식대로 만들려고 했다면 아마 불가능한 스케줄 덕분에 개발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답은 퍼블리셔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유한 (위성사진을 포함한) 다양한 지리적 데이터에 있다. 13 ) 그들은 2D 이미지를 실제와 같은 3D 모델링으로 바꿔주는 AI 모델을 이용해서, 엄청난 양의 지리 데이터로부터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지구’를 만들어 냈다. 플라이트 시뮬레이터가 출시한 시점(2020년)과 여기에 쓰인 AI 모델이 본격적인 생성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러한 맥락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데스티니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 너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조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질 GPT-4(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모델)에 연동된 데스티니는 플레이어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잠재적인 사운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리 녹음을 했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운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따라 반응이 3가지 정도로 나뉘는 고전적인 NPC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대화의 분기가 한 10가지쯤 될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긴밀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며, 그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사나 대화에 있어서 데스티니에게 기존 게임 사운드의 특성들을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관건은 그녀의 목소리가 더빙인지의 여부 따위가 아니라, 생성모델로 만들어질 (그녀가 속한) 게임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그려 보는 것이 아닐까. 좀 진부하지만 고전적인, 광활한 판타지 오픈월드 RPG의 세계를 상상해 보자. 규모에 걸맞게 수 백명의 캐릭터가 배정될 것이다. 그들 모두는 고유한 목소리를 할당받고, 역시 어마어마한 개수의 파라미터를 가진 AI 모델에 연동되어서 각기 특정한 ‘개성’을 갖는다. NPC끼리도 서로 자유롭게 상호작용이 가능할 것이다. 마치 이 영상 14) 이 보여주는 것처럼 대화를 전개한다면, 곧 대화의 홍수로 인해 로그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할 것이다. 곧이어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게임에는 점점 더 많은 트래픽이 몰리고,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음성을 포함한) 로그 데이터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게임사는 노로그no-logs 정책을 표명할 것이다. 이제 누구의 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다. 어느 밤에, 플레이어는 데스티니와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데스티니는 마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음유시인처럼 서사시를 노래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이야기를 멈추고 조용히 경청할 것이다. 끝난 뒤에는 박수가 터져 나오고,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 것이다. 그녀의 서사시는 함께 있었던 동료들의 입을 통해 훨씬 더 오랜 시간 뒤까지 전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억양과 분위기, 그리고 시의 특정한 운율은 그날 밤, 그곳에서 폴리곤의 대기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Pobwy_es2uc Boy! 부분만을 따로 모아 편집한 몽타주 영상이다. 크레토스가 아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계속해서 Boy!라고 외치는 데에는 개발사 산타 모니카 스튜디오가 〈갓 오브 워〉 제작 중반까지도 아트레우스의 이름을 두고 고민을 했다는 어른의 사정(?)이 숨어 있다. 2) 곽영빈 외, 『블레이드 러너 깊이 읽기』, (경기 파주: 프시케의숲, 2021), p.192. 3) https://speech2face.github.io/ 4) https://arxiv.org/abs/1905.09773 5) 예상하다시피 Speech2Face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에, Face2Speech를 구현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했다. 6)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하고 편집해서 게임 내에 녹여내는 몇몇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들은 예외가 될 것이다. 이 장르의 가장 독창적인 개발자로 평가받는 샘 발로우Sam Barlow의 대표작으로는 〈허스토리〉, 〈텔링 라이즈〉, 〈이모탈리티〉 등이 있다. 7) 엔진에 따라 지칭하는 용어가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언리얼 엔진에서는 오브젝트를 액터actor라고 부른다. 8) 드물게 발생하지만, 〈데이즈 곤〉에서 프리커 호드가 약탈자 캠프를 덮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덤불에 숨은 채로 느긋하게 그 ‘시끄러운’ 전투를 관람할 수 있다. 9) https://www.reddit.com/r/DivinityOriginalSin/comments/ex0kic/driftwood_square_in_a_nutshell/ 그 대화들을 아무 맥락 없이 이어가는 것은 디비니티 레딧에서 하나의 밈/놀이로 자리 잡았다. 10)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많은 대사들과 용어들이 한국에서 현지화의 형태로 밈화 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1) 호러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장치로, 등장인물이 (마치 로봇처럼) 같은 간격으로 계속 똑같은 대사를 중얼거리는 기믹을 떠올려 보자. 그 반대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도록 설정된 기계나 사물이 갑자기 등장인물의 말에 반응해서 특정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비슷한 효과를 갖는다. 12) James Gwertzman and Jack Soslow, “The Generative AI Revolution in Games” Adreessen Horrowitz, 2022.11.17. https://a16z.com/2022/11/17/the-generative-ai-revolution-in-games/ 13) 마이크로소프트는 Bing Maps를 소유하고 있다. 14) Jack Soslow, “Two AIs talking to each other [Original]” YouTube 2021.04.13. https://www.youtube.com/watch?v=jz78fSnBG0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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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예진흥법 개정: 게임이 예술 되어 돈이라도 있고 없고

    예술인복지법이 언제 어떻게 개정될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구체적인 논의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게임의 예술화에 있어서 한국은 이제 첫 번째 페이지를 연 것이고, 단순히 법 한두 개를 개정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인 업계 모니터링과 철학적 담론 탐색이 있어야 하며, 그 결과는 향후 여러 번의 개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 Back 문예진흥법 개정: 게임이 예술 되어 돈이라도 있고 없고 09 GG Vol. 22. 12. 10. 게임이 예술 되어: 문화예술진흥법 개정 게임이 예술인가 하는 논의는 꾸준히 있어 왔다. 시대 따라 논의의 초점도 발전했다. 학계 내부에서 논의의 초점 하나가 영글면 바깥으로도 튀어나왔다. 열매는 칼럼이나 기사의 형태로 이따금 맺혔고, 지나가던 대중들은 댓글창에서 입씨름을 벌이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던 2011년, 열매를 모으던 학계와 지나가던 대중들이 잠깐 멈추어선 소식이 있었다. 2011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게임을 예술에 포함시키는 판례를 남겼다. 캘리포니아 주법에는 미성년자들에게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판매 혹은 대여하는 것이 불법이라 규정한 법이 있었는데, 이 법이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위배되는 헌법은 수정헌법 1조. 예술 장르에게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부분이다. 이 판례가 나온 후 미국의 국립문화예술진흥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은 지원 대상에 게임을 포함시켰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예술’ 항목의 이름을 ‘미디어 예술’로 바꾸면서 비디오 게임을 집어넣은 것이다. 11년이 지난 올해, 한국에서도 같은 소식이 있었다. 2022년 9월 27일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이 공포되어 6개월 후인 2023년 3월 23일부터 효력을 가진다. 조승래 의원은 게임을 문화예술의 범위에 추가하는 부분을 대표 발의했다. 애니메이션은 유정주 의원, 뮤지컬은 이병훈 의원 대표 발의에 의해 추가되었다. 판례로 규정을 바꾼 미국과 달리 한국은 입법으로 규정이 바뀌었으므로 바뀐 조항에 따라 자동으로 게임은 지원 대상 예술 장르가 된다. 법의 제목부터 문화예술‘진흥’법이지 않은가. 일찍이 우탱클랜은 불멸의 구절을 랩했다. “Cash Rules Everything Around Me.” 주변 모든 것은 돈으로 돌아갈지니. (줄여서 CREAM이다) 크림처럼 달달한 지원금을 노리기 위해 법을 들여다 보자. 문화예술진흥법에는 지원금과 장려 정책이 명시되어 있다. 7조에는 전문예술법인을 만들 수 있는 규정이 있고, 11조에는 장려금 정책이, 14조에는 문화산업 지원에 관한 규정이 있다. 4장은 아예 전체가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조항들이다. 게임 속에 예술이 너무도 많아: 게임 내의 예술의 영토 게임의 특성인 경쟁성이나 참여성이 예술의 속성과 맞지 않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는 반박이 되었고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어서 추가 논의로 들어간 주장들이다. 그런데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게임의 예술성 논의는 국가 시스템에 의해 한 단계를 넘어갔다. 법적으로 예술의 범주에 들어갔다. 다음 차례는 국가가 예술에게 주는 지원금과 지원책을 받으면 된다. 독립 개발자들은 국가 지원금을 받아 제작비로 쓸 수 있을 것이고, 대형 게임사 또한 국가의 연기금을 투자자로 받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대형 회사의 투자 사정은 그렇다 쳐도, 미국 NEA의 기금 지원의 경우에서는 분명히 개인 개발자나 소규모 그룹 개발사에 지원이 갔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게임의 어느 부분이 예술성을 갖고 있을까? 게임은 그림, 영상, 문자, 음악, 음향, 여기에 더하여 프로그래밍 코드 등의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게임의 예술성은 이 구성 요소 중 어디에 있는가? 혹은 이 구성 요소 모두 내지는 요소의 집합에 있는가? 감독, 각본, 연기 정도로 정리가 가능했던 영화의 경우보다 훨씬 복잡하다. 게임이 훨씬 더 복합적인 장르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게임의 예술성을 부정하는 시각도 있는 것이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서 게임 제작에 종사하는 사람 중 어디까지가 법적 예술인이 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질문은 곱씹어 보면 하나의 질문이 아니다. 게임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디렉터, 혹은 디렉터들인가? 아론 스머츠(Aaron Smurts)는 게임 제작자가 영화 감독처럼 총체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작업을 한다며 예술가로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게임 제작자도 영화 감독도 독립적으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는 서사를 만들어낸 각본, 서사를 수행해낸 연기, 둘을 합쳐 의도를 투사해낸 감독의 셋으로 예술성의 영역을 정할 수 있었다. 이후 점차 촬영 행위 자체도 기법과 의도가 있는 예술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분장과 의상과 음악도 같은 노선을 탔다. 물론 위계상 감독이나 각본이 가장 상위에서 통합 권위를 가져가는 모양새지만, 그래도 하위 분야들의 예술성이 완전히 부정당하지는 않는다. 그럼 게임에서도 비슷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픽과 디자인을 입히는 파트까지는 예술일 것 같다. 그럼 UI 디자인은? 배경음악을 만드는 인력이 예술인이라면 음향을 디자인하는 인력은? 시나리오 작가는 예술인에 포함될 것 같은데, 이를 검수하고 수정하는 인력은 어떨까? 그러고 보니 소설과 만화에서 편집인은 예술인이던가 아니던가? 지금까지 열거한 모든 요소를 동원해 컷신 시네마틱 영상을 만들어내는 인력은 어떨까? 게임이기에 가능한 질문도 더해진다. 비디오 게임을 하나의 작품/상품이게 만들어내는 기술은 프로그래밍 기술이다. 그럼 게임 코딩을 한 프로그래머들은 예술인이 되는가? 비록 게임 제작진의 대다수가 감독/디렉터의 의도 하에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긴 하지만, 영화 제작도 같은 형태니까 게임에서도 대다수의 인력들을 예술인으로 인정해주면 될 것 같다. 그런데 프로그래밍도? 약간의 거슬림이 생긴다. 비디오 게임의 근간을 쌓는 작업이니 넣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이미지가 너무 ‘기술직’이다. 사실 그렇게 이상하진 않다. 어차피 ‘藝術’이건 ‘arts’건 예술을 지칭하는 단어는 기술을 지칭하는 단어에서 왔기 때문이다. 정교하고 완벽에 가까운 기술적 경지를 지칭하는 개념이 점차 변하여 현재에는 예술성을 지칭하는 개념이 된 것이니까. 따라서 우리는 받아들이면 된다. 코딩하는 프로그래머도 게임을 만드는 데에 참여했다면 예술인일 수 있다. 그게 새로운 시대다. 효율적으로 만들어낸 코드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도 하지 않는가. 물론 저 표현은 비유적 표현에 의한 감탄이지만, 법적 영역에서는 건조한 사실 진술이 될 수도 있다. 코딩도 예술적일 수 있다는 시선은 이미 한참 전에 제시되었다.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는 2013년에 큐레이터로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게임 14종을 선정해 전시했다. 안토넬리는 전시작을 선정하기 위해 만든 기준에 그래픽, 유희성 등의 ‘예술적 기준’ 외에도 조작의 참신성과 코딩의 우아함을 집어넣었다. 같은 해, 독일의 미디어아트 전시회인 트랜스미디알레(Transmediale)에는 아예 즉석 코딩 공연이 올라갔다. 게임의 장르적 특성인 유희성이 규칙에서 나오고 그 규칙을 현실화시킨 것이 코딩이므로, 코딩의 최적화 수준 또한 예술성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 이미 음악 연주의 방법으로 코딩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게임의 예술화, 혹은 게임의 예술 편입은 예술 역사에서 혁명적 사건이다. 과거 게임의 예술화를 부정하는 논의를 다시 돌이켜 보자. 경쟁성이나 참여성 등의 특성이 기존 예술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들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2001년 경 나왔던 소설가 이영도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예술의 목적은 타자를 이해하는 것이다. 게임의 목적은 타자를 이기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은 예술이 아니지만 예술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스포츠는 예술이 아니지만 가치를 폄하 당하지 않는다.’ 게임의 다른 속성인 ‘협동’이 부각되면서 이 논리의 힘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주목할 가치는 있다. 이 관점에서 게임의 예술화를 바라본다면, 예술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질적인 체계를 가진 장르가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로 가장 이질적인 장르라는 점은 게임의 특성 중 수용자의 참여성에서도 드러난다. 기존 예술 장르에서 수용자의 기본 태도는 감상 내지는 관조였다. 반면 예술 신입인 게임에서는 직접 참여하여 경험한다. 새로운 수용 형태가 예술에 들어온 것이다.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보다 사람들이 게임을 예술로 용인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박영욱 숙명여대 교수가 했던 말이다. 수용자 미학 이론으로는 맞는 얘기다. 뒤샹의 변기가 예술이 된 것은 사람들이 미술품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술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예술을 해석하는 사람들, 수용자에게 달렸다. 사람들이 예술이라 지칭하는 것으로 예술품이 완성되며,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예술품의 가치가 결정된다. 돈이라도 있고 없고: 지원금과 노동권 그리하여 과거 논의까지 건드려가면서 얻어낸 결론은 낯설긴 해도 만족스럽다. 사람들이 게임을 예술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예술임을 인정했다. 이제 만족스러움을 안고 내년 3월부터 국가 지원금을 받아가면 된다. 하지만 당장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예술인 지원 정책을 규정하고 있는 법은 예술인복지법인데, 이 법의 개정안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내의 논의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이 논의에는 코딩 프로그래머의 예술인 인정 여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담당 부처의 논의가 대강이나마 윤곽이 잡히면, 그때 가서야 예술인복지법의 구체적인 개정안과 새 시행령이 나올 것이다.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의원들이 발의해놓고 논의하고 있는 예술인복지법 내용은 예술인 자격 증명과 경력 증명에 관한 내용이다. 정부에 예술인으로 등록을 하여 지원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각종 서류가 필요하다. 그중에는 국가가 ‘예술 활동’이라고 인정하는 특정 활동의 증명도 있다. 물론 이런 서류 구비는 힘들고 귀찮고 헷갈리는 일이다. 그래서 앨범을 몇 장씩 내고 10년 넘게 활동한 중견 음악인도 예술인복지법에서 보면 예술인이 아닌 상황이 흔하다. 그러다 보니 예술인 등록제는 예술 활동을 증명한다기보다는 예술인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더 많이 받아들여진다. 당연히 주류 시장과 비주류 담론 양쪽 모두에서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예술인임을 증명하고 지원금을 타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현재는 이런 부작용을 없앨 패치를 논의하는 중인데, 현재 발의되어 올라와 있는 개정안을 보면 논의가 건설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기실 국회는 지원금 관련한 고민만 해서는 안 된다. 예술인복지법 개정에 있어서는 노동권 문제도 다루어져야 한다. 또한 예술인복지법 5조는 예술인이 불공정 계약을 하지 않도록 하는 표준계약서 조항이다. 활동 증명과 표준계약서에서 알 수 있듯 주로 개인 및 프리랜서를 위주로 패러다임이 잡혀 있다. 그래도 프리랜서인 연예인이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할 때의 계약서 또한 이 조항을 기준으로 작성된다. 따라서 현재 게임 제작사와 노동 계약을 맺고 입사해 있는 시나리오 라이터, 디자이너, 3D 모델러, 코딩 프로그래머 등등에게도 표준계약서 준수 여부가 중요해질 수 있다. 게임업계의 고질적인 노동 문제를 풀 실마리가 여기서 등장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예술인복지법이 언제 어떻게 개정될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구체적인 논의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게임의 예술화에 있어서 한국은 이제 첫 번째 페이지를 연 것이고, 단순히 법 한두 개를 개정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인 업계 모니터링과 철학적 담론 탐색이 있어야 하며, 그 결과는 향후 여러 번의 개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박혜정

    미디어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궁금해 합니다. K-POP 팬덤 연구를 하며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박혜정 박혜정 미디어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궁금해 합니다. K-POP 팬덤 연구를 하며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개발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 죄책감 3부작의 개발자 somi 인터뷰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책감을 느슨한 연결로 풀어낸 SOMI의 ‘죄책감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전의 두 작품이 세상 밖으로 닿는 길을 터주었다면, 2020년 신작 <더 웨이크>는 한 개인의 과거와 깊은 내면으로 안내한다. 암호를 해독하며 엔딩에 이르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가장 개인적인 삶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 덤덤한 덤, 쏠쏠한 덤 : 덤으로서의 게임들

    덤은 언제나 반갑지만, 플레이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쏠쏠한 덤인지 덤덤한 덤인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는 방향도 비용을 치르도록 강제하는 것에서 시간을 쓰기 편하도록 보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꽤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이다. 무수히 많고 많아질 게임뿐 아니라 영상과 음악을 비롯한 디지털 콘텐츠들이 하루 24시간 중에서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 Back 덤덤한 덤, 쏠쏠한 덤 : 덤으로서의 게임들 09 GG Vol. 22. 12. 10. 〈PressPausePlay〉(2011) 1) 는 디지털 콘텐츠 산업과 문화가 확장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회와 그로 인해 줄어드는 기회 속에서 창작자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또 우려하는지를 잘 포착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주된 매체가 음반에서 음원으로 변화하는 맥락인데, 세계적으로는 1999년 ‘냅스터’(Napster), 한국에서는 2000년 ‘소리바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음원 사용에 대해 창작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2)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는 내내 ‘변화’에 초점을 두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을 비롯한 음악 산업과 문화의 많은 변화 속에서 이전과 변함없이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들은 그 변화로 인한 흥망성쇠의 여부보다는 음악의 가치가 어떻게 빛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방법의 하나는 현장이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만나 음악을 함께 향유하는 현장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들으며 이 변화가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무언가가 등장하면 무언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흐름에 접어드는 과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기술이 콘텐츠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만큼 게임에서도 디지털 기술로 인한 변화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 년 동안의 기간은 한국에서 디지털 기술이 사회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게임산업과 문화 차원에서도 여러 주목할 만한 의미를 남긴 시기였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일본 대중문화 개방, 휴대전화(PCS)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보급 등 사회문화적으로 주요한 사건이 발생하고 정책이 추진되면서 게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PC 패키지 게임’ 시장의 축소와 온라인‧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 ‘플레이스테이션 2(PS2)’ 정식 발매를 필두로 한 비디오게임 시장 확대, PC방의 확산과 프로 게임 리그 출범 등 현재 한국 게임 산업과 문화의 주를 이루는 분야들이 이 시기에 처음 시작되거나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인터넷이 있다. 인터넷은 게임의 제작, 유통, 소비, 향유방식 모두에 걸쳐 변화의 구심점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를 통해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기존의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또,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음악에서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변화 속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게임의 가치’는 무엇일까. 혹은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가치는 어떻게 추구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덤으로서의 게임’이 갖는 의미에 대한 하나의 답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정품 부록’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얻지 못했나 요즘은 ‘굿즈’라는 명칭으로 더 친숙한 잡지의 별책부록은 잡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굿즈를 샀는데 본품이 따라왔다’는 식의 표현처럼 발간되는 잡지가 여러 종인 분야에서는 잡지의 판매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의 부록을 제공하는 경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보그〉, 〈코스모폴리탄〉, 〈지큐〉, 〈에스콰이어〉 등의 패션 매거진을 위시해 형성된 ‘매거진 전성시대’ 3) 는 잡지 간의 부록 경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다. 게임 잡지에서도 1990년대 후반 PC게임 잡지를 중심으로 부록 경쟁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매거진 전성시대’보다 훨씬 앞선 시기였다. 부록 경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는 유명 시리즈의 신작이나 출시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의 공략이나 특정한 테마의 정보를 별책으로 제공하거나, 게임의 데모나 패치, 혹은 유틸리티 파일을 수록한 CD롬을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게임 잡지 간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더 ‘좋은’ 부록을 제공하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게임 타이틀을 제공하는 ‘정품 부록’ 경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4) .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부록 경쟁이 시작된 배경이었겠지만 이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격화되어만 갔다. 당시에도 잡지의 부록을 제공하는 제도적인 틀이 있었고, 게임 잡지사를 중심으로 경쟁을 자제할 것을 협의하기도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5) . 경쟁은 더 최신의 게임을, 정품을 구매한 것과 가깝게 부록으로 제공하느냐로 이어졌다. 적절한 경쟁은 경쟁자 모두가 성장하는 기회가 되지만, 과도한 경쟁은 경쟁자 모두가 소모되는 결과를 만든다. 이 경쟁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게임을 부록으로 제공하느냐에 따라 매달 독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잡지는 판가름 났지만, 그것이 잡지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가는 불투명했다. 오히려 이 경쟁은 게이머들의 게임 구매 심리를 낮춤으로써 게임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금만 기다리면 (사실상) 정품 게임을 부록으로 받을 수 있다’는 상황에서 손꼽아 기다린 게임이 아닌 이상 아무리 신작 게임이라도 바로 구매하지 않고 한동안 기다려보는 흐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게임 잡지 간의 ‘정품 부록’ 경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 가운데 게임 산업에 득보다는 실이 되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를 어떤 분명한 변화의 기점으로 단정 짓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경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살펴볼 만한 나름의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경쟁의 주요 당사자는 잡지사들이지만 이 경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잡지사들에 게임을 제공한 업체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작 게임’마저도 부록으로 제공한 까닭 혹은 사정이 있을 텐데, 주된 이유는 비용이다. 즉, 정상적인 유통을 하는 것보다 게임 잡지에 부록으로 제공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효율적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 게임산업과 문화에 주요한 변화가 발생한 시기인 1990년대 중반부터 약 십여 년 사이에 발생한 IMF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 악화, 초고속인터넷 보급에 따른 불법복제 성행 등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그 사정과 겹쳐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경향도 있었다. 잡지들은 독자들에게 가장 돋보이려고 경쟁에 참여했지만, 독자들은 그중에 한 권만을 고르지 않은 것이다. 여러 잡지를 구매하는 독자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정품 게임 하나를 구매하는 가격으로 잡지 여러 권을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품 게임 하나를 구매하지 않고 잡지를 여러 권 구매하면 (사실상) 정품 게임 여러 개를 소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게임 잡지의 ‘정품 부록’ 경쟁은 게임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는 기회였다. 분명 게임을 더 많이 소장하는 기회는 되었겠으나 그 게임들을 모두 충분히 플레이하는 기회까지 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는 제한된 시간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게임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일명 ‘게임 불감증’과도 맞닿아 있다 6) . 제한된 시간 때문에 게이머가 여러 게임을 모두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정품 부록’ 경쟁은 독자들에게 게임을 소장하는 만족은 주었겠으나, 게임을 플레이하는 만족을 주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르지 못했다. 게임을 ‘줍는’ 시기, 게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부록’ 경쟁과 비합법적 경로를 통한 무단 유통은 게임 그 자체에 상품의 가치를 두는 것이었다. 게임에 암호표를 두거나 불법복제 방지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상품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디지털 유통이 일반화되어 여러 플랫폼에서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는 현재 이러한 사례들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게임을 줍는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합법적이고)공짜로 얻을 수 있는 ‘정품 게임’이 매우 많고,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비용을 들이지 않는 선택이 풍부하게 주어지는 현재 게임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여기서 〈PressPausePlay〉에서 살펴본 변함없는 음악의 가치를 잠시 떠올려 보자. 음악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음악을 만들고 듣는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을 감상하는 주요한 경로가 되면서 음반이 얼마나 팔렸느냐 보다 음악을 얼마나 많이 듣느냐가 중요해졌다. 이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쓰는 시간이 중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이라는 상품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점차 낮아진 대신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게이머가 들이는 시간이 중요해졌다. 게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게임의 수도 대단히 많고, 과거에 만들어진 게임들이 지금의 환경에서 불편함 없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조율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 사이에서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높은 비율로 할인하는 것은 앞으로 게임을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금 더 높여두는 정도가 되었다 7) . 이러한 배경에서 게임의 가치는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 그 자체가 되었다.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더 주목받기 어렵게 되었다. 덤은 언제나 반갑지만, 플레이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쏠쏠한 덤인지 덤덤한 덤인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는 방향도 비용을 치르도록 강제하는 것에서 시간을 쓰기 편하도록 보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꽤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이다. 무수히 많고 많아질 게임뿐 아니라 영상과 음악을 비롯한 디지털 콘텐츠들이 하루 24시간 중에서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 흐름은 언제까지일까? 그다음 변화는 무엇일까, 그 변화를 통해 게임의 가치는 어떤 흐름으로 접어들게 될까. 1) www.presspauseplay.com 2) 작품이 공개된 시기로부터 십여 년이 더 지난 현재 음원을 파일로 내려받아 여는 것보다 스트리밍으로 감상하는 것이 더 일반화되었으니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이 카세트테이프나 CD로 음악을 감상하던 것으로부터 꽤 많이 변화한 셈이다. 3)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년), 드라마 〈스타일〉(2009년) 등의 인기는 당시 잡지에 대한 높은 대중적 관심을 짐작하게 한다. 201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매거진 에디터에 대한 직업적 관심도 높았다. 4) 부록 경쟁을 포함한 한국 게임 잡지의 흐름을 일별하는 데 웹진 〈게임메카〉의 시리즈 기사 ‘게임 잡지 연대기’가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25133 그밖에 온라인에서 검색어 ‘게임잡지 번들’을 통해 다양한 구술과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5) 〈전자신문〉 “게임잡지 번들제공 게임개발업체 반발” 1997년 11월 7일. https://www.etnews.com/199711070072 6) ‘할 - 합법적으로 구매했는지 불분명한 - 게임이 너무 많은 나머지 하나의 게임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의 용어인 ‘게임 불감증’이 ‘발생한’ 배경은 게임을 비롯한 소프트웨어가 ‘와레즈’나 P2P 서비스 같은 비합법적 경로로 무단 유통된 것이다. 정식으로 구매한 것과 무단으로 입수한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나(무단 유통을 옹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선택할 수 있는 게임이 너무 많아졌다는 점에서 유사함을 연결하고자 했다. 7) 게임 플랫폼 ‘스팀’을 두고 게이머들이 “게임 모으는 게임”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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