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공란으로 575개 검색됨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이도경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Read More 버튼 읽기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 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버튼 읽기 Beyond the K-Game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Back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10 GG Vol. 23. 2. 10. 밸브의 게임 ‘포탈 2’ 에는 특이하게도 코멘터리 모드가 있다. 이는 일종의 영화 DVD 에 들어있는 코멘터리 특전처럼, 개발자들이 어떻게 게임을 만들고 고쳐나갔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이 이 게임을 만든 과정은 마치 소설을 짓는 것과 같은 작성과 무수한 퇴고의 연속이다. ‘포탈 2’ 는 퍼즐을 중심으로 한 게임이고, 이들의 고민은 그렇다. 이 퍼즐을 어떻게 풀도록 설계했는가? 그 설계가 어떻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나? 보완하기 위해 어떤 변화를 주었나? 플레이어가 이 설계를 어떻게 이해하도록 할 것인가?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유도한 플레이에서 벗어나는가? 그 벗어난 플레이가 허용 가능한가, 아니면 게임의 핵심을 해치고 있는가? 이러한 수많은 고민이 뭉쳐 어떻게 최종 버전의 게임이 완성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 ‘포탈 2’ 코멘터리 모드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는 예시가 하나 있다. 이 퍼즐의 최초 버전은 플레이어의 시작 위치와 출구가 바로 보이는 탁 트인 형태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플레이어들은 퍼즐을 정상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출구 근처로 바로 포탈을 만들어 퍼즐을 ‘무시’ 했다. 그러자 개발자들은 시작 위치와 출구 사이에 큰 벽을 설치했다. 그러자 이제는 플레이어들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퍼즐을 제대로 풀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벽을 반쯤 투명한 유리벽으로 바꾸어 출구가 보이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가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비로소 플레이어들은 퍼즐을 제대로 풀면서 기획자의 의도대로 게임을 플레이해 나갔다. 이 과정 자체가 바로 게임의 UX 디자인에 대한 매우 적절한 설명이다. ‘포탈 2’ 의 제작사 밸브는 ‘하프 라이프’ 시절부터 이처럼 잘 유도된 플레이어 경험을 짜는 능력이 뛰어난 회사였다. 이와 함께 밸브의 게임 중 또다른 작품은 새로운 방식으로 특정 장르적 UX에 접근한다. 공포 게임이자 4인 협동 게임, ‘레프트 4 데드’다. 그때까지 공포 게임은 놀이공원의 다크라이드와 유사한 방식이 주류였다. 즉 주어진 동선, 레일이 있고, 이 동선을 따라가면서 발동하는 트리거들로 적이 등장하거나, 이벤트가 발생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레프트 4 데드’ 는 이런 다소 고전적인, 배치된 오브젝트나 동선 설계처럼 게임 내에 이미 구성되어 변하지 않는 고정 요소를 넘어서서 실시간으로 플레이를 측정하고 이에 따라 플레이 환경을 바꾸는 ‘감독 AI 시스템’ 을 도입했다. 이는 이전부터 있었던 적응형 난이도 시스템의 변형이지만, 공포 게임에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낳았다. * ‘레프트 4 데드’ 의 감독 AI는 당시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감독 시스템의 요지는 이렇다. 플레이어의 스테이터스, 잔탄량, 위치 등 여러 모니터링 정보를 통해 플레이어의 현재 스트레스를 가늠한다. 그렇게 측정된 스트레스치를 기반으로 더 많은 적을 등장시킬지, 적을 줄일지, 또는 치료제를 제공할지, 다음 아이템 드롭에서 총알을 제공할지 등을 판단한다. 이 때문에 플레이어가 겪는 현재의 경험은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게 적절한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타도록 조율된다. 이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감독 시스템 자체보다는, 이러한 실시간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한 난이도 조정 툴이 필요할 만큼 공포 게임의 UX는 다른 게임에 비해 독특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여러 게임의 테마 중에서 공포 게임은 그 경험을 설계하기에 가장 어려운 편에 속한다. 이름 자체는 공포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벌어지는 플레이란 플레이어가 공포를 최대한 회피하고, 또는 그 원인을 찾아내 공포를 해소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는 공포 게임이 다른 공포 콘텐츠(즉, 공포 영화 같은)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포 영화는 콘텐츠 수용자 입장에서 그저 관찰할 수 밖에 없는 일방적인 수용의 입장에 놓이게 되지만 공포 게임에서는 그 공포에 저항하고,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역할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암네시아’ 시리즈로 대표되는, 공포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제거할 수 없고 피해다녀야 하는 게임들도 그처럼 플레이어의 회피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훨씬 능동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서 공포 게임에서의 경험 설계는 더 나아가 어떻게 ‘공포’ 가 총합으로서 긍정적인 체험이 될 수 하는가 하는 고민도 담겨있다. 공포는 그 자체로는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이며 불쾌함을 유발하고, 우리가 공포 게임에서 느끼는 쾌락은 그 공포 이후에 이를 극복하고 다시 평정 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즉, 좋은 공포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그 UX는 항상 시련과 극복의 연쇄가 될 수 밖에 없다. 공포 게임은 이러한 시련의 과정을 설계하는 방법, 그리고 공포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 등에서 많은 고민과 발전의 과정이 있어왔다. 여기에 더불어 사람은 어떤 감각 요인, 또는 자극에 적응하고 둔감해진다는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즉 공포, 또는 공포를 직접 느끼기 바로 전 단계의 긴장은 항상 적정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 적정 범위는 변동성이 있으며 심지어 순간적으로 큰 폭의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다른 게임들에 비해 감정이 관여하는 바가 큰 경험이기에 특히나 그런 면이 부각된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칼리스토 프로토콜’ 과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 는 한명의 창조자에게서 출발한 공포 게임이지만 긴장감의 조절에서 서로 다른 방법론을 채택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은 굉장히 전통적인 방법의, 맵 곳곳에 수많은 트리거를 숨겨두는 방법과 적 AI 의 강화를 필두로 이 긴장감을 조율한다.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는 원작에 없던 감독 시스템을 고정된 트리거 들을 제외하면 매 플레이마다 다른 패턴으로 적이 등장한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개발자는 한 인터뷰에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을 ‘호러 엔지니어링’ 이라고 칭했다. 이는 비단 전투 뿐만 아니라 게임 전체의 흐름을 조절하는 요소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은 각 전투의 거리를 좁히고 밀도를 높여, 정해진 레일을 뚫고 가면서 일정 구간을 통과하면 저장하고 다시 일정 구간을 뚫고 가는 일종의 갱신을 하는 느낌의 플레이 구성이다. 하지만 ‘데스 스페이스 리메이크’ 는 리메이크를 통해 오픈월드의 느낌을 가져왔고, 때문에 하나의 레일을 따라 트리거를 배치하는 식으로는 플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여러 변수에 대처할 수 없기에 감독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직접 레일 위의 난이도 조건을 조절하느냐, 또는 감독 시스템을 활용하느냐는 그 결과물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말그대로 방법론의 차이이다. 예컨대 게임의 맵을 디자인하는데 있어 미리 정해진 맵을 제공할 것인지, 특정 패턴에 기반한 절차적 생성 기법을 활용할 것인지 하는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요한건 어떤 방법을 쓰느냐가 아닌 최종적으로 어떤 플레이어의 행동을 유도하고 의도했는지다. 아무리 감독 시스템을 활용한다 하더라도 그 최종 상태에 대한 기준이 잘못되었다면 제대로 된 행동 패턴을 유도하기 어렵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조절하기 위한 노력들도 살펴볼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대리인, 즉 게임 내 아바타와 실제 플레이어와의 거리감 조절이다. 이를 위한 도구 중 하나가 공포 게임의 UX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 구성 요소 중 하나인 UI 다. 두 게임의 공통 조상인 ‘데드 스페이스’ 를 포함해 이들 게임은 다이제틱 UI 를 사용한다. * 몰입감에 극도로 집중한 UI를 보여주는 ‘칼리스토 프로토콜’ 다이제틱 UI 와 논-다이제틱 UI 에 대한 가장 빠른 설명은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 로 가능하다. 이 게임에서는 하나의 게임으로 이 두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데, 트럭에 부착된 계기반으로 속도를 확인하면 다이제틱 UI, 그게 아니라 화면 구석에 고정된 네비게이션 창으로 속도를 확인하면 논-다이제틱 UI를 사용하는 것이다. 즉 논-다이제틱 UI 는 플레이어와 게임 속 세계 사이에 한겹의 필터가 있는 것과 같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과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 는 이 부분을 제거하고 캐릭터의 등에 달린 장비로 HP를, 총기에 달린 부품으로 잔탄량을 표시하고 인벤토리, 아이템 정보 등도 게임 내 홀로그램 같은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런 UI는 필수적인 부분 외의 정보량을 제한하며 현실감을 더 적게 저해하기에 소위 말하는 ‘몰입감’ 을 강조하게 된다. 어느 시점부터 다이제틱 UI 는 공포 게임의 기본 소양처럼 되었는데, 몰입 엔터테인먼트로서 공포 게임은 감정선을 플레이어가 자신이 조종하는 캐릭터가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차원(현실-게임 속)의 경계를 드러내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다이제틱 UI 를 위시한 여러 몰입 기믹을 사용하더라도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전투 음악 같은 음향효과가 그렇다. 이런 요소는 오히려 현실감을 위해서는 현장의 소리 외엔 없어야 하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런 음향효과들은 일종의 가이드로서 플레이어의 감정선과 고양감을 다가올 사건에 앞서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뒤에서 튀어나온 적에게 바로 공격당해 죽는다면,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전조없이 일방적으로 당한, 소위 ‘억까’ 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적이 등장하기 직전, 또는 등장 후 공격받기 전 특정한 음향이나 또는 전투음악 같은게 흘러나온다면 플레이어는 위협을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곧 위협이 다가온다는 걸 심리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이는 철저히 비현실적이고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종의 초현실적 요소이지만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에서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즉, 공포 게임은 일방적으로 플레이어를 겁주고 위협하는게 아니라 꽤나 정당하게 주고 받으며 플레이어와 놀아주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떤 수를 써볼까?” “음… 일단 한 번 죽게 만들까요?”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 Back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22 GG Vol. 25. 2. 10. ※ 스포일러가 간접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슬리퍼(Sleeper) [1]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놓지 않는 우로보로스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몸에 새겨진 꿈이란, '나'에게 얽매여 있는 내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여러 주체들의 염원이다. 신체와 사회라는 이중벽 모든 생명은 신체를 갖고 살아가는 한 여러 한계를 지닌다. 인간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비롯해 사회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제약을 지닌다.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일들도 결국 '나'를 제외한 세계에 연루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 미래에, 나의 신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이러한 상상은 사실 공상 과학 영화나 문학, 그리고 게임에서 자주 다루어져 왔다. 주로 인간의 신체를 영구적으로 개조하거나 안드로이드에 의식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단지 기술 발전에 대한 인류의 환상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신체에 내재한 사회적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새로운 신체를 획득하는 것에 대한 상상은 나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고,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어떤 조건들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즉 한정된 신체를 넘어선다는 것은 그저 강력한 힘이나 영생을 얻고자 하는 일만을 지시하진 않는다. 게임 개발사 점프 오버 디 에이지(Jump Over the Age)의 <시티즌 슬리퍼(Citizen Sleeper)>(2022)는 앞서 서술한 논의를 아우르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자신의 신체와 출신지를 떠나 눈(eye)이라는 도시에 이제 막 도착한 '슬리퍼'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슬리퍼는 인간의 의식과 로봇의 몸을 가진 존재다. 그런데 눈의 시민은 대다수가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슬리퍼는 철저히 외부인으로 취급된다. 그는 자유와 행복을 찾아 이곳으로 도망쳐 왔지만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내일'이라는 꿈을 간직한 채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슬리퍼라는 '주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TRPG(Tabletop Role-Playing Game) 기반의 내러티브적 설정을 활용한다. 즉 시스템의 불가변성과 플레이어의 자율성을 동시에 수용함으로써, 견고하고 거대한 사회에 맞서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게임의 시스템은 현대 사회에 내재한 이데올로기를 투사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신체와 사회로 쌓아 올려진 이중벽을 마주한 채 슬리퍼로서의 꿈을 지켜내야 한다. 시스템 사이를 떠도는 ‘나’ TRPG 시스템은 가상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동의 규칙을 갖는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 범위 안에서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 <시티즌 슬리퍼>의 주요 규칙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이클마다 무작위로 주사위가 부여되며, 그 값은 슬리퍼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슬리퍼의 몸 상태가 나쁘면 주사위의 개수가 줄어들고 행동 성공률이 낮아진다. 주사위는 돈을 벌고, 노동을 하고, 사람을 사귀는 등 행동하는 데에 쓰인다. 반복이 불가능하거나 연한이 정해진 행동이 있다. 주사위를 모두 소진하면 더 이상 행동을 수행할 수 없으며 사이클을 종료해야 한다. 방금 살펴본 것들은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으로 제한적이다. 또한 게임의 시스템은 내러티브 안에서 심리적인 제약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과거 노예 로봇이었던 슬리퍼는 눈에서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이는 에피소드 초반부터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매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여러 번 고민한다. 간혹 도와주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눈의 사회는 그들의 호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게다가 슬리퍼의 몸체는 의도적 구식화를 겪고 있다. 일정 기간 내에 제조사에서 판매하는 전용 영양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기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이로써 슬리퍼의 컨디션은 급격히 나빠지고 행동 성공률도 낮아지게 된다. 눈의 사회는 슬리퍼의 주체성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앞서 살펴본 두 요소는 슬리퍼의 행동에 제약을 준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이 모든 과정 사이에 자신의 관점을 투영함으로써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 우선 <시티즌 슬리퍼>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성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한눈에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정보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자신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바라보게 된다. 즉 플레이어의 내면이 캐릭터의 자아에 투사되는 것이다 [2] . 그리고 이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플레이어이자 캐릭터인 '나'를 통해 슬리퍼의 주체성으로 발현된다. 또한 눈이라는 낯선 사회로의 진입은 플레이어와 슬리퍼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 예측 불가능한 삶에 갑작스럽게 불시착한 그들은 서로 결속을 다진다. 그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에 즉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에피소드는 주로 등장인물 간의 대화로 진행되는데, 이때 플레이어는 슬리퍼의 태도와 행동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주어진 임무를 모두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초반에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 점차 적응하면서 진취적인 태도로 나서게 된다. 이처럼 <시티즌 슬리퍼>의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일정 부분 제약을 주지만,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거부와 순응, 저항의 강도, 가치의 추구 등에 대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슬리퍼로서의 꿈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삶의 주도권은 자꾸만 사회로 되돌아가려 한다. 슬리퍼라는 존재가 가진 근원적인 한계일까? 이곳에서는 '내일'을 맞이할 권리가 이상하리만치 멀게 느껴진다. 슬리퍼, 꿈의 의미 <시티즌 슬리퍼>는 개인이 대항할 수 없는 사회의 불가변성을 시스템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신체가 가진 제약도 결국 그로부터 비롯됨을 플레이어 스스로 인지해 나가도록 했다. 이 게임에서의 자율성은 슬리퍼의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넘어, 사회에 내재한 비판 거리를 취할 수 있는 권한으로 확장된다. 특히 에피소드마다 제공되는 시적인 글은 슬리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그 존재가 함축하는 의미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이 글의 마지막 장에서는 처음에 제시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인류가 한정된 신체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해 온 이유에 조금이나마 다가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발견한 '슬리퍼'와 '꿈'에 담긴 의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슬리퍼는 인간의 신체로부터 벗어난 존재다. 즉 과거에 지니고 있던 어떤 제약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슬리퍼는 신체와 사회라는 이중벽에 또다시 직면했다. 슬리퍼의 본체인 인간은 떠나온 곳 어딘가에 여전히 잠들어 있다. 즉 슬리퍼는 살아 움직이는 누군가의 꿈인 것이다. 또한 슬리퍼에게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데이터화되어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다. 이는 대체로 무더움, 차가움, 쓰라림, 딱딱함 등 '로봇의 몸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감각'에 대한 것들이다. 슬리퍼는 몸에 대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날 때마다 감각과 사고 사이에 지연을 느껴 혼란스러워한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몸에 대한 감각은 슬리퍼의 기억 안에 정보로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슬리퍼는 인간인가, 로봇인가? 사실 이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슬리퍼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눈의 사회,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플레이어에게는 이에 대항할 권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 또한 슬리퍼에 내재한 꿈으로 흡수되고야 말았다. 결국 한정된 신체로부터의 해방은 '나'를 규정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집단적 이념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즉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하고 지켜내기 위한 예사로운 투쟁이다. 사실 슬리퍼의 꿈은 정말 사소했다. 그는 단지 살고 싶었다. <시티즌 슬리퍼>의 결말은 그 꿈이 희망이었는가 절망이었는가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저 '내일을 꿈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메시지가 암시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슬리퍼는 모순된 존재다. 누군가의 이루어진 꿈이 다시 꾸는 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의 속성은 본래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희망과 절망, 현실과 이상, 기대와 좌절,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돌고 도는 것이 바로 꿈의 의미다.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은 이 궤도를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지 않아도 된다. [1] 이미지 출처: https://www.pointnthink.fr/en/interview-gareth-damian-martin-2/ [2] 이승제, 정의준, 김정애, “ 청소년 대상 TRPG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위한 콘텐츠 개발연구 -청소년의 정서적 외로움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 겨레어문학 제73집, 2024, p.61-6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박정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 전시, 비평, 워크숍을 한다. (비)과학에 관심을 두고 뉴미디어 아트와 비디오게임을 탐구한다. 최근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연구 <기이한 게임과 으스스한 게임>(2024,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전시 (2024, WWW SPACE), 워크숍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비평>(2024, 아트코리아랩 아트랩클럽), 전시•워크숍 (2024, 하자센터 미디어아트 작업장) 등이 있다.
-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 Back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03 GG Vol. 21. 12. 10. 김연자 말고, 니체의 ‘아모르 파티’ 수년 전,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 가 인터넷에서 크게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특유의 비트와 김연자의 보컬로 곡 자체도 훌륭하지만 가사도 그렇고 후렴의 막강한 뽕짝 비트가 절묘했다. 사실 일종의 유머로서 소비되기는 했지만, 트로트 답게 좀 쌉쌀한 맛도 있는 노래였다. * 막상 생각해보면 이 노래만큼 아모르 파티를 잘 설명한 것도 없는듯. 이미지 출처 - TV조선 유튜브 채널 그렇다면 바로 이 곡의 제목 ‘아모르 파티(Amor Fati)’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말 자체는 라틴어이고, 대충 들으면 어디서 나온 유명한 경구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이 단어의 출처는 저 멀리 프로이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로 간다. “신은 죽었다.” 는 패기 넘치는 한마디를 꺼냈던 이 철학자는 그 말마따나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고자 몇가지 화두를 세상에 던졌다. 물론 여기서 니체 이론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분량도 모자라거니와 애초에 필자도 관련 전공 또는 심도 있게 연구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더할 나위 없이 니체가 어울리는 어떤 게임을 위해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뿐이다. 니체가 제시한 개념 중 ‘아모르 파티’ 는 니체 사상에서 일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이다. 풀어 쓰자면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이란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는 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과는 정반대로,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고 결정하는 운명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흥하거나 망하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자신의 운명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그를 긍정하라는 것. 이처럼 니체의 사상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처럼, 현실의 삶에 대한 긍정을 추구하며, 인간 개인이 그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라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론이 바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라고 축약할 수 있다(미리 말했던 것처럼, 매우 간단하게 요약한 해석이다). 영원회귀란 파괴(실패, 좌절, 괴로움 등)와 생성(성공, 성취, 즐거움 등)의 동일한 과정을 무한 반복하여 마침내 긍정의 결론(내 운명-인생을 사랑-긍정하자)에 다다름으로서 마침내는 파괴의 과정 역시 긍정의 질(형식)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삶에 대한 긍정이란 이뤄낸 성과, 성공, 원초적인 즐거움과 쾌락 같은 너무나 당연한 긍정의 질을 말하는게 아니다. 삶에서 필연적으로 얻고 겪게 되는 좌절과 실패, 괴로움과 불쾌함까지도 긍정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이 과정이 바로 영원회귀이며, 그 결과 이르게 되는 것이 아모르 파티이고, 또는 이 둘은 서로의 원인이자 서로의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니체의 사상 전체를 상당히 짧고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큰 맥락은 같다. ‘영원회귀’ 라는 고통과 성취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마침내 얻어낸 결실은 그 모든 과정을 한순간에 긍정적인 여정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의지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자신의 운명의 결론을 긍정함으로서 그 과정도 값지고 긍정적인 질로 바꾸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생의 자세가 바로 ‘아모르 파티’ 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자, 그럼 이제 〈데스루프〉 라는 영원회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게임의 기본 모델 ‘영원회귀’ 가 데스루프에서 특별한 이유 〈데스루프〉 는 그 이름에서부터 죽음으로 되풀이되는 루프를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흔히 ‘루프물’ 이라고 하는 장르 또는 특성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선보여졌다. 수십년 전 TV에서 특선 영화로 보던 ‘사랑의 블랙홀’ 이나 최근으로 보면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는 더더욱 많이 사용된 요소이기도 하다. *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Demon’s Souls, 2020). 이쪽 게임 디자인에선 워낙 유명한 소울 시리즈. 당연하게도 이는 게임에서도 흔히 활용되는 소재였다. 아니 오히려, 죽음과 부활로서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논리는 플레이의 반복성을 부여해야만 하는 게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기본 논리다. 여기서 나아가 아주 직접적인 ‘영원회귀’ 적인 과정을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게임들은 많다. 오래 전부터 그 예시로 들어왔던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 을 위시한 ‘소울 시리즈’가 그 예다. 참고로 최근에는 한국에서 이름 자체가 ‘영원회귀’ 인 게임도 나왔다. * 이터널 리턴(Eternal Return, 2020). 여기는 이름부터 영원회귀다. 사실 게임 내용은 크게 상관… 없나? 그리고 사실은 ‘소울 시리즈’ 까지 가지 않더라도 게임은 근원적으로 그 구조에서 영원회귀를 기본 구조로 채택하고 있다. 계속해 같은 시도를 하며 죽으면서 경험을 쌓고 강해지고, 마침내 극복해내고 한 번의 성공을 만들어 냄으로서 그전까지의 실패가 모두 이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서 빛나게 되는 것. 그러나 〈데스루프〉 가 영원회귀 모델에서 독특한 점은 바로 플레이어의 성장 또는 변화를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플레이어의 스킬 향상이나 명시적인 게임 내 각종 스테이터스, 기능의 향상이 아닌, 정보의 취득으로 표현한다는 부분이다. 보통 이러한 죽음(실패)과 부활(재도전), 그리고 이를 통한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게임들은 그 성장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 내의 수치나 변화보다는 플레이어 자신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노골적인 예시인 〈다크 소울〉 시리즈의 경우 거듭되는 싸움을 통해 상대의 패턴을 파악하고, 나 자신의 로직, 나 자신의 조작이 가장 크게 성장에 관여한다. 물론 거기에 최적화된 도구를 다시 고르거나 필요한 만큼의 스테이터스를 향상시키고 돌아오는 등의 선택도 가능하지만, 플레이어 자신이 가장 큰 성장의 매개체라는 점은 〈다크 소울〉 이나 〈몬스터 헌터〉 같은 부류의 게임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 이 게임의 룰과 목표는 간단하다. 크게 세가지다. 1. 루프를 끊어라. 2. 하루 안에 8개의 타겟을 제거해라. 3.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방법을 찾아내라. 그러나 〈데스루프〉 는 이러한 노골적인 영원회귀의 방법론을 취하면서도 몇몇 부분에서 좀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갔다. 게임은 하루의 루프가 반복되며, 하루는 4개의 시간대와 4개의 장소로 구분되고, 각 시간대 별 장소마다 얻을 수 있는 단서가 다르게 고정된다. 즉, 시간이 지나면 얻을 수 없게 되는 정보가 생긴다. 때문에 죽거나 하루를 넘겨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놓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그만큼 다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고, 또 이것이 게임 내 퀘스트 로그의 변화로 직접 기록된다. 즉, 마치 탐정처럼 어떤 정보를 얻고 실마리에 접근하는 것이 성장이자 게임의 진척도를 상징한다. 플레이어의 자각이 바로 상승을 의미하며, 무력에 의한 극복이라기보다는 무수한 스무고개 끝에 정답을 찾아내는 식이므로 그 스무고개를 확인하기 위한 생성과 파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 가지런히 정돈된 정보가 계속 쌓이고 중첩되면, 이러한 '정답' 이 나온다. 무엇보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영원회귀 구조에서 다른 점은 바로 ‘죽음’ 을 보다 바른 성장을 위해 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게임에서 죽음이란 가급적 피해야만 하는, 어떤 심각한 패널티로서 존재한다. 어찌보면 징벌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데스루프의 죽음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또는 이미 지나친 부분을 다시 보기 위한 일종의 선택지로 기능한다. 마치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에서 주인공이 작전을 실행하다가 수틀리면 바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어 다시 하루를 시작하듯 말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이며 패널티였던 죽음이 하나의 선택지이자 상승의 원동력이 되면서, 즉 게임 자체를 직접적으로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면서 보다 ‘아모르 파티에 가까운 파괴와 재생성으로 한걸음 다가간다. 이는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이 얼마나 파괴적인가 하는 부분에서의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계획적이고 플레이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뜻한다. 예기치 못한 실패로 인해 맞이하는 죽음과 이를 잘근잘근 곱씹는 절치부심의 과정이 아닌, 거시적인 측면에서 세운 계획을 따라 하나하나 자신의 의도에 따라 스스로를 파괴하고 동시에 재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모두 계획대로야.” 또는 “이제는 이걸 하면 되겠군.” 하는 식으로, 플레이어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달라진다. * 죽이고 죽고 정보를 모으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선택과 확인의 연속.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통상적으로 부정적인 질을 지니며 실패의 상징인 ‘죽음’ 은 그 자체로 긍정의 질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게 바로 이 게임이 가장 니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원회귀와 아모르 파티의 기본은 행위자의 주체성, 그리고 결과에 대한 긍정과 확신을 통해 모든 과정마저 긍정해버리는 자세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 로직 그 자체다. 긍정의 끝이 아닌, 긍정의 순환을 만드는 끝 게임의 결론은 마치 이런 해석을 부추기기라도 하는듯 크게 두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어있다. 섬에 걸려있는 루프를 끝내고 수십년이 지난 세계로 나가거나, 아니면 루프를 유지하고 주인공과 줄리아나의 끝나지 않는 놀이를 계속하는 것. 여기서 대부분은 지금까지 목표로 해왔던 루프의 파괴를 선택하지만, 오히려 어떤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게 끝인가? 정말로 이걸로 모든 지금까지의 과정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 되었나? * 영원회귀적 관점을 떠나서도 너무나 훌륭한 게임이니 꼭. 그렇기 때문에 엔딩에 이르러서 이렇게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과 탄생이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줄리아나라는 존재 자체로 인해서 나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희가 된다면? 이런 가정은 지금까지 루프를 깨기 위해서 달려왔던 플레이어들에게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 선택은 어쩌면 궁극적으로 아모르 파티를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지금까지 반복한 루프가 영원히 반복되고 또 되풀이 되겠지만, 더 이상 고통과 결론을 위한 감내의 과정이 아닌 그 자체가 유희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 이 황야마저도, ‘내 행위의 결과’ 이기에 긍정할 수 있다면?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때문에 그동안의 역경을 모두 감내하고 오히려 루프 안에 갇히기를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몰락하는 자신을 긍정하는 아모르 파티의 정신에 부합하며, 이것이 오히려 진짜로 이 게임에 어울리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스루프〉 는 좋은 게임이지만, 그 과정에 비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들은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면 어떤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노우에 아키토, 井上明人
게임 연구자. 현재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국제 대학 GLOCOM 조교, 칸사이 대학 특임준교수등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게임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물음을 중심으로 하면서, 게임의 아카이브나, 게임을 응용한 사회적 과제의 해결에 관련되는 프로젝트 등에도 임하고 있다. 이노우에 아키토, 井上明人 이노우에 아키토, 井上明人 게임 연구자. 현재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국제 대학 GLOCOM 조교, 칸사이 대학 특임준교수등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게임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물음을 중심으로 하면서, 게임의 아카이브 나, 게임을 응용한 사회적 과제의 해결에 관련되는 프로젝트 등에도 임하고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꿈으로서의 '쿠소게' "패미컴을 통해 초능력을 개발한다"라는 테마로 개발된 게임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초능력 붐 속에서 초능력자로 알려졌던 키요타 마스아키(清田益章; 통칭, 에스퍼 키요타)씨가 감수한 〈마인드시커〉라는 작품이다. 플레이 과정에서 조언자 격으로 등장하는 키요타씨의 지시를 받아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핵심 컨셉은 "실제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였다.
- 일본의 보는 게임: 같은 듯 다른 일본의 상황들
일본의 ‘보는 게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는 게임은 확실히 기존의 하는 게임과는 구별되는 현상이지만 완전한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전에도 존재했다. 특히 가정용 콘솔과 함께 일본의 게임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임센터에서는 이러한 ‘보는 게임’은 흔하게 일어나는 광경이었다. < Back 일본의 보는 게임: 같은 듯 다른 일본의 상황들 03 GG Vol. 21. 12. 10. 1. ‘보는 게임’에 대한 기억 필자는 어릴 적부터 그다지 게임에 소질이 없었던 탓에 점프를 하여 성벽을 오르거나 호랑이를 탄 채 불타는 링을 뛰어넘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시도도 한 번 못 해본 채 늘 동일한 순간에서 몇 번이고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게이머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어린이는 자라서 주로 남들은 안 하는 게임만 ‘보는’ 어른이 되었다. 필자의 소위 ‘보는 게임’과 관련된 가장 오래되고 충격적인 경험은 전자오락실이 아니었다. 한번은 필자와 동생보다 몇 살 많았던 6학년짜리 엄마 친구 아들이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현란한 동작으로 버튼을 눌러 공격을 피하고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놀라운 속도로 결승선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한 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는 고수였다. 직접 하는 것만큼 긴장한 우리는 손에 땀을 쥔 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고수를 진심을 다해 응원했다. 두번째는 일본의 어느 복합 엔터테인먼트 체인점이었다. 최고 난이도의 곡을 북을 치는 속도, 절묘한 타이밍, 강약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플레이하던 고수는 퍼포먼스를 마치곤 구경하던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다른 게임기를 향해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나갔다. 이렇게 직접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고수의 플레이는 보는 것을 넘어 게임 자체를 예술 작품을 감상 하듯 바라보게 되었고 마치 스포츠 경기를 관람 하듯 프로게이머의 경기를 즐기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 게임 방송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직접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즐기는 ‘보는 게임’ 이 게임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보는 게임’은 타인의 플레이를 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실력도 키워 보겠다는 목적성을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해본 적 없는 (혹은 할 생각이 없는) 게임이라도 타인의 플레이를 보는 것으로 또 다른 재미를 느끼며 플레이어가 직접 하는 게임과는 별개로 ‘보는 게임’ 만의 즐거움과 의미를 가지게 된다. 1) 최근 몇 년 사이에 일본에서도 게임 방송 2) 이나 e스포츠와 같은 ‘보는 게임’이 디지털 네이티브 3)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방치형 플레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감상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났으며 여배우 혼다 츠바사나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대형 유튜버 히카킨 (HIKAKIN) 4) 이 게임 채널을 개설하기도 하였고,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방송을 주로 하는 샤루루(しゃるる) 와 같은 게임 전문 방송인도 등장하였다. 이에 따라 게임 방송을 위한 전용 스트리밍 플랫폼을 전문으로 제공하는 OPENREC.tv나 Dozle(도즈루) 5) 와 같은 회사들도 주목받고 있다. e스포츠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져 플레이어 커뮤니티가 주최하는 이벤트 및 대회가 늘어나게 되었고 일본의 유명 연예 프로덕션인 요시모토 흥업(吉本興業)에서 e스포츠 팀을 창설하는 등 이전과 달리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AbemaTV와 같은 케이블 방송 뿐 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에서도 e스포츠 전문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일본의 ‘보는 게임’은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있을까? 게임 방송과 e스포츠를 중심으로 일본의 새로운 ‘보는 게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용한 인터뷰는 2021년 9월부터 11월에 걸쳐 총 10명의 2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 사이의 일본인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반구조식 인터뷰를 통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그중 일부 내용을 번역하여 인용하였다. 2. 새로운 세대의 전유물? 평소 인터넷 방송을 자주 보는 것은 주로 10~20대로 이전부터 인기가 있었던 〈회전 초밥집 전 메뉴 시켜서 클리어하기〉와 같은 ‘한번 해보았다(〇〇やってみた)’ 형식의 방송과 함께 게임 방송의 인기가 급격하게 올라가게 되었다. 6) 이러한 영향인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 <코로코로믹스 (コロコロミック)>(小学館) 가 실시한 2019년 ‘관심 있는 직업 랭킹’에서 이전에는 순위에 들지 못했던 프로게이머와 게임 전문 방송인(주로 게임 유튜버)이 각각 2위, 3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7) 본인이 직접 플레이하지 않는 게임 관련 영상을 자주 찾아본다는 N은 ‘보는 게임’의 매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멋진 장면을 보거나 (드물기는 하지만) 게임 공략을 참고하려고 본다. 플레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개가 다양하기 때문에 재미있다… [중략]…전혀 다른 게임을 하는 친구들과도 좋아하는 게임 방송에 대한 정보는 공유할 수 있고 이야기하는 것도 즐겁다" (N, 20대, 남, 대학생). 평소 e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자주 본다는 Z는 ‘보는 게임’의 재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게임에 대한 공략법도 알 수 있고, 야구나 축구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며 보는 것과 같은 재미가 있다" (Z, 20대, 남, 아르바이트). N과 Z에게 있어서 ‘보는 게임’은 ‘하는 게임’과는 분명히 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을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이다. 게임은 하지 않지만 게임 방송을 자주 본다는 W는 집에서 주로 방송을 틀어 놓고 운동을 하면서 보거나 듣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 (본인의 최애 (推し))이 (게임을 하면서) 보이는 반응도 재미있고 (성우이기 때문에 ) 해설하는 목소리도 좋아서 굳이 프로게이머와 같은 고 스킬이나 화려한 테크닉이 없어도 매우 재미있다" (W, 20대, 여, 회사원). "아르바이트 하면서도 (게임 방송을) BGM처럼 들었다. 주로 집에서는 틀어놓고 보면서 공부하면서 들으면서…청소하면서 보면서…들으면서… [중략]…해본 적 없어도 (공략 방법 등이) 새롭고 그 자체만으로 게임은 즐길 수 있다" (H, 20대, 여, 대학생). H의 부모님은 게임을 하면서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고 쉽게 몰입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W와 H의 경우처럼 게임 방송과 같은 새로운 ‘보는 게임’에 익숙한 세대에게 ‘보는 게임’은 때때로 ‘라디오와 같은 듣는 게임’이기도 하며 때론 운동이나 청소 등과 같이 ‘다른 무엇인가를 동시에 하면서 하는 게임 (しながらゲー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 방송을 보는 것은 비단 젊은 세대 뿐만이 아니다. 일본 게임의 전성기를 ‘하는 게임’을 체험하면서 성장한 세대 중에도 게임 방송을 자주 보는 이들이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30대의 K와 M, 40대의 C가 이에 해당한다. 어렸을 적부터 다가시야 (駄菓子屋) 8) 나 제과점 앞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는 K와 M은 비슷한 ‘보는 게임’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K는 다양한 플랫폼의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C는 평소 타인과 경쟁할 필요도 없고 그냥 보면서 힐링이 되는 〈펭귄의 섬〉 과 같은 스마트폰 게임을 주로 하는데 동일한 맥락에서 게임 방송을 보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누구보다도 자주 게임 방송을 본다는 M은 이렇게 말한다. "많이는 보지만 단순히 송신되는 것을 그냥 그대로 받은 느낌? 이랄까…… 게임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보는 게임’으로서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M, 30대, 남, 서비스직). 3. ‘보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보는 게임’ 문화는 이전에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일까? 게임 문화를 주도해 왔으며 ‘하는 게임’에 익숙한 이들은 이처럼 게임 방송은 ‘보는 게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게임 방송이나 e스포츠와 같은 새롭게 등장한 ‘보는 게임’이 어떠한 재미가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특히 Y는 시간이 날 때마다 다양한 게임을 하지만 게임 방송은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게임을 하면 (게임 방송을 보는 것) 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동영상을 볼 시간에 역시 직접 플레이하는 편이 몇 배는 더 즐겁다" (Y, 30대, 남, 대학원생). Y는 ‘보는 게임’을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가 게임을 할 때 서로의 순서를 기다리며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훈수를 두면서 게임을 보던 광경이라고 설명한다. 즉 ‘보는 게임’ 에서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타인과 같은 플레이 경험과 공간,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게임은 플레이한다는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연결된 화면이나 채팅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거리가 존재하는 환경에서의 ‘보는 게임’은 게임을 완전히 체험하고 있다고 하기 어려우며 플레이의 경험 자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하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 진정한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어느 시기부터 ‘보는 게임’으로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며 I는 일본의 전자오락실인 게임 센터(ゲームセンター)에서의 ‘보는 게임’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게임 센터에서 양복을 입은 샐러리맨이 능숙하게 플레이하는 것을 주변의 모두가 연극을 관람하는 것처럼 구경했던 적이 있다 … [중략]… 신입생과 이야기할 때 처음 해본 게임이 스마트폰 게임이고 게임 센터도 별로 가본 적이 없다고 해서 세대 차이가 느껴져 충격을 받았다" (I, 30대, 남, 대학원생). 게임을 본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며 게임 방송이나 e스포츠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Y나 I가 경험한 것과 같은 ‘보는 게임’ 이 존재했다. 특히 닌텐도에서 1983년 발매한 〈패미컴(패밀리 컴퓨터: ファミリーコンピュータ)〉이 일본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게임은 가족과 함께,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여가로서 자리를 잡았고 아케이드 게임 역시 이전부터 특유의 직접 몸을 움직여 ‘하는 게임’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또한 아케이드 게임의 주된 플레이 공간인 게임 센터는 젊은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한국의 PC방과 같은 대표적인 게임 공간 (장소)으로 ‘보는 게임’이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9) *레트로 분위기의 게임 센터 〈쟈리가니(ザリガニ)〉(왼쪽) 와 〈제로(ゼロ)〉 (오른쪽). (2016-11-24일본, 오사카 촬영). 친구의 플레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보는 게임’이 이루어지는 장소. 대부분의 게임 센터들이 위치상으로도 그렇지만 게임 센터 외부에 설치된 게임기가 많아 행인이나 주위의 다른 플레이어들이 쉽게 플레이를 볼 수 있는 ‘보는 게임’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에 가깝다. 게임 센터에서 플레이하는 것은 이처럼 언제라도 ‘보는 게임’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누군가의 멋진 플레이를 보는 것은 게임 방송을 통해 타인의 플레이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대를 풍미한 게임의 고수 〈다카하시 명인(高橋名人)〉 10) 의 플레이를 보면서 박수를 보내며 열광하던 이들이 있었으며 격투 게임 대회에서는 친구들의 플레이를 구경하며 응원하는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이처럼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는 게임 플레이에 익숙한 게임 문화에서 새로운 ‘보는 게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반면 처음 접한 게임이 스마트폰 게임이며 보거나 듣는, 혹은 ‘무엇을 하면서 보는 게임’을 체험하며 성장한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보는 게임’은 TikTok이나 Instagram에 사진을 올리거나 ‘좋아요’와 같은 공감을 얻고 공감 하는 것과 동일한 함께 공유하는 경험일 수 있다. 게임 방송이 다루는 게임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격투 게임이나 슈팅 게임에서 높은 점수를 내거나 플레이어의 테크닉을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는 방송도 있지만 앞서 언급된 것처럼 프로게이머가 아니더라도 또는 특별한 스킬이 없어도 게임을 하면서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는 방송이나 80년대 혹은 90년대의 매니악한 레트로 게임 (retro game) 플레이를 하는 게임 방송이 많다. 물론 감상할 수 있는 게임 방송도 인기가 있다. 예를 들자면 〈게임 산책(ゲームさんぽ)〉 11) 채널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채널에서는 다양한 게임들을 소개하고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전형적인 ‘보는 게임’ 콘텐츠이다. 그러나 타인이 플레이하는 것을 게임 테마와 관련된 전문가인 초대 손님들이 보면서 코멘트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마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좌담회처럼 진행된다. 즉 ‘보는 게임을 보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보는 게임’을 재해석하고 평가하는 새로운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스스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게임 방송에서 대신 도전해 주고 있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것 만큼 그 내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고 멋진 플레이를 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는 N과 H와 같은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게임 방송은 동료나 친구 혹은 그 구역의 고수가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게임 플레이를 통해 친근함을 느끼고 마치 자신이 플레이 하는 것과 같이 동일시하기도 한다. 한편, 집에서 그리고 게임 센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했던 일본의 게임 문화를 주도해 온 30~40대의 세대들에게는 게임 방송을 ‘보는 게임’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4. ‘e스포츠는 뭐가 다르죠?’ 일본의 e스포츠 그렇다면 e스포츠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있을까?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e스포츠라는 용어가 알려지게 된 것은 2015년 〈사단법인 일본 e스포츠협회 (JeSPA)〉가 설립되면서부터이다. 2018년 문부과학성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e스포츠 대회 개최나 프로게이머 팀의 출범이 잇따르며, 스폰서계약을 체결하려는 기업들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공개된 KADOKAWA Game Linkage의 조사에서도 일본의 2019년 e스포츠 시장 규모가 이미 60억 엔을 넘어섰으며 코로나로 인한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의 e스포츠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본에서 e스포츠라는 용어가 정착하기 훨씬 전부터 각 게임 센터에서 개최하는 격투 게임 중심의 게임 대전 이벤트가 있었다. 하이스코어를 목적으로 하는 게이머 (고수) 12) 들이 존재했고 아케이드 게임의 전성기에 등장한 〈스트리트파이터II〉 13) 로 인해 플레이어가 서로 대전하는 게임 문화도 형성되게 되었다. 그러나 평소 디지털과 아날로그 할 것 없이 게임을 자주 한다는 T는 ‘보는 게임’으로의 e스포츠는 역시 익숙하지 않다며 e스포츠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e스포츠와 RTA(Real Time Attack)와 뭐가 다른가? 차이가 있다면 있겠지만 게임은 역시 하는 거다. 경기를 보는 것과 다르다. 보고 하고 보고 하고. 일본에서는 게임 콘텐츠도 PvP나 PvE나, Minecraft 등 서바이벌 적인 것 만이 인기있는 콘텐츠가 아니니까" (T, 30대, 남, 회사원).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e스포츠를 즐기는 인구는 증가하고 있으나 T의 이야기처럼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바둑이나 장기 대회에서는 흔한 광경이지만 e스포츠를 관람한다는 것은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또한 국제적인 e스포츠 대회에서 인기있는 종목들 중에는 일본에서는 그다지 인기 없는 장르의 게임도 많다. 한국에서는 이미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거액의 상금이 걸린 대규모 대회나 유명 기업들과 스폰서를 체결한 대회들이 개최되면서 프로게이머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일본의 경우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도 e스포츠라는 ‘보는 문화’는 친숙한 광경은 아니다. e스포츠는 일본에서 아직 ‘관람형’ 보다는 ‘하는’ 게임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가정용 콘솔 게임기가 많이 보급되어 상대적으로 PC게임이 주종목으로 채택되는 e스포츠의 시작이 늦어지게 되었지만 14) 2018년에는 기존의 e스포츠 3개 단체가 통합하여 〈일본 e스포츠 연합 (JeSU)〉이 발족하게 되었다. 15) 물론 일본에도 한국과 같은 e스포츠가 존재하지만,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와 연계한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일본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6) 한국에서는 〈스타크래프트〉와 PC방이 e스포츠의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일본에서는 중소도시의 현/구/시 도청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역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e스포츠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인프라가 준비되기도 전에 e스포츠의 지역 대회는 활성화되었다. 도쿄와 같은 대도시에 비해 인구감소 및 고령화에 따른 문제를 겪고 있는 중소도시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는데 e스포츠가 지역 활성화 뿐만 아니라 노년층의 건강 증진을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e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17) 와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지역 경제를 부흥하고자 하는 목적도 가진다. 대표인 사례로 이바라키(茨城県)현에서는 e스포츠를 통해 지역 세대 간 격차를 줄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고등학생을 위한 e스포츠 대회나 e스포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아카데미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에는 일본 최초의 47개의 도/부/현이 참가하는 이벤트〈도/부/현 대항e스포츠대회(全国都道府県対抗eスポーツ選手権2019IBARAKI)〉를 개최하였다. 또한 교토부(京都府)에서는 2019년 〈교토 e스포츠 서밋〉이 열렸고 2021년에는 지역 경제 부흥을 도모하는 〈KAMEOKA e-SPORTS PARTY〉를 가메오카 온천 지역에서 개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도/부/현 대항 e스포츠 대회(全国都道府県対抗eスポーツ選手権2019IBARAKI)〉의 앰배서더 Vtiber 이바라키 히요리 (茨ひより) (왼쪽) 18) 과 교토의 의 포스터 (오른쪽) 일본 e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교육 기관도 생겨나고 있다. 주로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프로게이머 양성 학교가 설립되었고 대학에서는 e스포츠를 커리큘럼에 넣은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19)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장수 인구가 많은 일본에서 노년층의 건강 관리를 위해서도 e스포츠가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액티브티협회〉에서는 ‘건강 게임 지도사’ 의 자격증 코스를 통한 교육 세미나와 노년층을 위한 e스포츠 이벤트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20) 이러한 e스포츠는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의 중소 도시에 e스포츠 시설과 팀이 생기면서 이웃 지역과의 대회 등을 개최하기 위한 시니어 e스포츠 팀도 나타나게 되었다. 21) * 평균 연령 65세 이상으로 구성된 시니어 e스포츠 팀 의 공식 홈페이지, https://matagi-snps.com/ (2021년 10월 06일 접속)(왼쪽) 과 건강 게임 지도사 양성 강좌 안내 전단지 (오른쪽) T가 언급한 것과 같이 일본에는 일반적인 e스포츠 대회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RTA in Japan〉과 〈AFTER 6 LEAGUE〉가 있다. 사단법인 RTA에서는 운영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RTA in Japan〉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1년에 2번에 걸쳐 『RTA in Japan Summer』와 『RTA in Japan Winter』를 개최하고 있으며 일단 특정 게임을 최단 시간으로 클리어해야 하므로 주로 〈천수의 사쿠나히메(天穂のサクナヒメ)〉나 〈별의 커비 64(星のカービィ64)〉,〈 슈퍼 마리오 64 DS(スーパーマリオ64DS)〉와 같은 게임이 다수 플레이 종목에 포함된다. 〈AFTER 6 LEAGUE〉는 대회 타이틀이 상징하는 것처럼 퇴근 후 (6시 이후) 플레이하는 회사원을 중심으로 하는 e스포츠 리그이며 뜨거운 반응을 얻어 2022년에 2번째 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의 경우는 〈리그 오브 레전드〉나 와 같은 주로 국제적인 e스포츠 대회의 종목인 게임을 중심으로 덴츠 ( Dentsu.Inc ) 등의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대회이다. * 〈AFTER 6 LEAGUE〉의 공식 홈페이지, https://a6l.jp/ (2021년 10월 06일 접속) 지금까지는 국제 e스포츠 대회에서 널리 알려진 프로 게임 팀이나 프로게이머는 드물다. 22) 일본 국내의 e스포츠 대회는 상금 역시 매우 적은 수준인데 이것은 대회의 상금 규정이 〈경품 표시법(景品表示法)〉과 〈도박 관련 형법(賭博罪)〉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3) 따라서 일본의 e스포츠 대회에서는 국제 대회와 같은 많은 상금을 걸 수도 비싼 입장료를 받아 수익을 낼 수도 없는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도/부/현을 중심으로 경기 시설이 설치되고, 2018년부터는 공인 프로게이머를 위한 프로라이선스가 제도화되었다. 이에 따라 상금에 대한 규정도 변경되어 대규모의 e스포츠 대회가 진행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됨에 따라 e스포츠 활성화의 가능성이 늘어나게 되었다. 24) 그러나 아직까지는 단발성 이벤트화 되어 있는 e스포츠 대회, 열악한 관람 문화, 전문적인 프로게이머의 부족으로 인해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 남아있는 과제는 많아 보인다. 5. ‘보는 게임’과 ‘~하면서 보는 게임’ 일본의 ‘보는 게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는 게임은 확실히 기존의 하는 게임과는 구별되는 현상이지만 완전한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전에도 존재했다. 특히 가정용 콘솔과 함께 일본의 게임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임센터에서는 이러한 ‘보는 게임’은 흔하게 일어나는 광경이었다. 둘째, 새로운 ‘보는 게임’인 게임 방송과 e스포츠의 수용에서는 세대 간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가정용 콘솔과 아케이드 게임 중심의 게임 문화에서 성장하여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플레이 경험이 익숙한 이들에게 물리적 환경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와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느끼기 어려운 새로운 ‘보는 게임’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며 e스포츠 경우도 그러하다. 물론 일본 e스포츠의 출발점은 이전의 격투 게임 대회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현재와는 달리 플레이어 간의 팬 교류 행사나 오락실 홍보 이벤트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확장된 방식의 ‘보는 게임’인 게임 방송이나 세계적인 e스포츠의 흐름과는 다른 전개를 보이게 된 e스포츠와 관련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타인의 플레이를 보는 것 자체가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수월하게 공유되지 못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셋째, 현재 일본에서 새로운 ‘보는 게임’을 경험할 수 있는 무대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전과 비교하여 이러한 ‘보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인터넷 환경과 인프라도 구축되었다. 따라서 타인의 플레이를 서로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서 공유하면서 동시에 ‘보면서 들으면서~하면서’ 즐기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기존의 게임문화와는 또 다른 게임문화가 형성되어 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세대에 따라 즐기는 게임의 장르나 플랫폼이 다르며 어디까지 ‘보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달라질 것이다. ‘보는 게임’ 이 의미 있는 것은 단순히 타인의 게임 플레이를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능동적으로 교류하고 확장시켜 다시 새로운 즐거움을 공유해 나가는 방식이며 이처럼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보는 게임’ 혹은 ‘~하는 게임 보는 게임’이 어떤 식으로 더욱더 변화될 것인지를 기대해본다. 1) 이경혁.『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 게이머, 게임을 말하다』. 로고폴리스. 2016. 2) 게임실황동화 (ゲーム実況動画) 혹은 줄여서 게임실황(ゲーム実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YouTube, Twitch 이외에도 니코니코 동화 (ニコニコ 動画) 사이트가 있다. 3) 디지털 디바이스로 가득한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성장한 이 세대에게 디지털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 방법을 제시한 마크 프렌스키 (2006)는 이들을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설명한다. Prensky, M. (2006). Don't bother me, Mom, I'm learning!: How computer and video games are preparing your kids for 21st century success and how you can help!. St. Paul: Paragon house. 4) 유튜브에서 게임 방송 콘텐츠가 인기를 얻게 되자 <히카킨 게임스>라는 채널을 개설하였다. PC 게임 뿐만 아니라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한다. 5) 유명 유튜버 Dozle(ドズル)를 중심으로 하는 회사로 주로 <마인크래프트> 관련 게임 방송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6) Cross Marketing.『YouTubeの利用実態に関する調査』.2020. https://qr.paps.jp/W9uDU(2021년 10월 06일 접속) 7) <코로코로믹스온라인 (コロコロミックオンライン)>의 홈페이지, https://corocoro.jp/82218/ (2021년 10월 6일 접속)) 8) 옛날 문방구 (문구점)와 비슷한 형태로 가게 앞에 몇 대의 게임기가 설치되어 있거나 과자와 어린이들의 장난감 등을 주로 판매한다. 9) 加藤裕康.『ゲームセンター文化論メディア社会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 新泉社. 2011. 카토(加藤)(2011)는 게임을 ‘보면서 즐기는 문화’를 형성해온 게임 센터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메타적인 게임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게임 센터는 일본 특유의 게임 문화와 맞물려 있을 뿐 만 아니라 게임을 하거나 보는 행위 이외에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 간의 교류가 형성되는 장소로 게임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10) 패미컴 붐과 함께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게이머이며 특기는 1초에 16회이상의 연타였고 그의 35주년을 기념하여 2021년 <타카하시명인 탄생 35주년기념 앱 ~게임은 1일 1시간!~ (高橋名人35周年記念アプリ〜ゲームは1日1時間!〜)> 이 앱으로 출시되기도 하였다. 11) Livedoor사의 이 채널은 ‘다양한 관점에서의 게임 방송’을 컨셉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21년 3월 20일 <모여라 동물의 숲> 편에서는 마을의 부엉이 박물관 설립을 테마로 설정했는데 국립미술관 큐레이터와 예술 전문가를 초대하여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게임 플레이 뿐 만 아니라 실제 게임 속 큐레이션 및 작품의 재현에 대해서 논의하기도 했다. 12) 게임의 최고 점수를 노리는 고수들을High Scorer (ハイスコアラー)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3) 1991년 등장한 이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전국 게임센터 대항 격투게임 대회 영상 등이 판매되기도 하였다. 14) 青山学院大学総合研究所研究ユニット「五輪eスポ」.『eスポーツ産業論』. 同友館. 2020. 15) 는 주로 e스포츠 대회의 보급, 프로라이선스의 발급 및 프로게이머의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2020년 8월말 현재 전국적으로 25개의 지부가 생겨났다, 공식 홈페이지, https://jesu.or.jp/ (2021년 10월 06일 접속) 16) 筧誠一郎 .『e スポーツ地方創生~日本における発展のかたち~』.白夜書房. 2019. 17) e스포츠를 전망이 밝은 비즈니스 분야로 꼽히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적합한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18) 공식 홈페이지, https://www.ibaraki-esports.com (2021년 10월 06일 접속) 19) 게이오 대학에서이라는 수업이 개설되었고 쿠마모토 산업대 중심으로 이 설립되었다. 20) 공식 홈페이지, http://www.jp-activity.jp (2021년 10월 06일 접속) 21) 아키타현(秋田県)에서 일본 최초의 시니어 e스포츠 프로 팀이 활동하고 있다. 팀명은 로 주로 포트나이트를 중심으로 플레이하는 팀이다. 22)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진 선수들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전문적인 프로게이머 선수가 부족하고 지금까지는 이렇다 할 전업 프로게이머 전문 육성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특히 겸업 선수들 중에는 게임 실력이 좋은 사람이 ‘어쩌다 보니 프로게이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는 경우도 있다. 23) 프로게이머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일반인’이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고 고액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간주되어 경품 관련 법률에 저촉되는 행위로 규정된다. 따라서 10만엔을 넘어가는 상금은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4) 그러나 일본 최초의 e스포츠 프로라이선스에는 국제 대회의 등록 종목인 <하스스톤>이나<리그 오브 레전드>,<스타크래프트 II>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리츠메이칸대학 기누가사 종합 연구 기구 전문 연구원) 신주형 주로 시리어스 게임과 시리어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리츠메이칸대학 게임 연구 센터 (RCGS)의 게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박수진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사이렌> 속 불쾌한 플레이 리플레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사이렌>의 내러티브는 더욱이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다. 이 게임의 내러티브 진행은 극도로 제한된 정보량으로 제공되는 내러티브 전개이다. 게이머는 일반적으로 주어진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 게임의 스토리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이렌>은 그저 스테이지가 시작하면 게이머에게 클리어 조건을 제시하고 방치한다. 버튼 읽기 [논문세미나]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본 논문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게임, 젠더 연구자인 로렌스 허프스(Laurence Herfs)가 일본 학술지 ‘Replaying Japan’에 2021년에 투고한 논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외부자의 시선(특히 서양)에서 일본 게임을 일본 학술지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버튼 읽기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의 '사랑' 사랑을 게임 속에 재현해보고자 처음 시도됐던 남성향 연애 게임은 사랑 그 자체보다도 점차 게이머의 즐거움을 유발할 수 있도록 ‘게임성’에 집중하고자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연애 게임의 진화된 모습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버튼 읽기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버튼 읽기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서바이버즈-라이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단순히 간단하고 쉬운 반복 플레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즐거움은 게이머가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장르가 10, 20년 후까지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표절, 모방 게임이 쏟아지고 있고, 게이머들은 이 행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무분별한 장르의 남용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버튼 읽기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황희
황희 황희 Read More 버튼 읽기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 Back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01 GG Vol. 21. 6. 10. 안녕하십니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입니다. 게임문화 웹진 ‘게임 제너레이션’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창간을 위해 애쓰신 관계자분들과 함께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게임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문화입니다. 특히 종합 예술로서 이야기와 캐릭터 디자인, 음악,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 작업이 필요하고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우리 이스포츠 선수들의 뛰어난 실력과 관객들의 열정을 바탕으로 이스포츠 최강국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과 한·중·일 이스포츠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게임 제너레이션’의 무궁한 발전과 함께 한국 게임문화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병찬
어릴 때부터 게임을 사랑해 온 14년차 변호사입니다. 비디오 게임이 가져다 줄 새로운 미래에 관심이 많습니다.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이병찬 이병찬 어릴 때부터 게임을 사랑해 온 14년차 변호사입니다. 비디오 게임이 가져다 줄 새로운 미래에 관심이 많습니다.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토요일 아침이면 신문을 펼쳐 TV 편성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특히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서 어떤 영화를 방영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 는데, 넷플릭스도 IPTV도 없던 시절이니, 시간도 돈도 없는 학생에게는 영화를 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편성표 옆에는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간단히 소개하며 별 5개 만점으로 나름의 평가를 달아두었는데, 별점이 높은 영화가 방영되는 날에는 종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 규모의 문화상품 -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
약간의 오해를 감수하고 말해보자면, 어느 순간부터 게임 시장은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는 트리플A 게임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 영화의 블록버스터 개념과도 차이를 보인다.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범주 속에 블록버스터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업영화가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중저예산의 로맨스, 코미디, 호러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영화들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 비상업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다만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 제작, 유통, 홍보되는 영화가 아닌 작은 규모의 상업영화일 뿐이다. 게임은 그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영화는 소수의 블록버스터를 ‘텐트폴 영화’라 부르며 그에 속하지 않는 다수의 저예산 상업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으로 구성된 시장을 지닌다. 게임도 몇몇 트리플A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스트레이〉(2022), 〈잇 테이크 투〉(2021)와 같은 인디게임들이 흥행을 기록하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2022)처럼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트리플A 게임이든 인디게임이든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비상업적 게임”이라는 어색한 어감의 단어조합은 극소수의 예술적 게임, 혹은 전시나 공공성을 위해 만들어진 몇몇 게임만이 속해 있을 뿐이다. < Back 규모의 문화상품 -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 10 GG Vol. 23. 2. 10. 약간의 오해를 감수하고 말해보자면, 어느 순간부터 게임 시장은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는 트리플A 게임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 영화의 블록버스터 개념과도 차이를 보인다.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범주 속에 블록버스터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업영화가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중저예산의 로맨스, 코미디, 호러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영화들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 비상업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다만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 제작, 유통, 홍보되는 영화가 아닌 작은 규모의 상업영화일 뿐이다. 게임은 그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영화는 소수의 블록버스터를 ‘텐트폴 영화’라 부르며 그에 속하지 않는 다수의 저예산 상업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으로 구성된 시장을 지닌다. 게임도 몇몇 트리플A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스트레이〉(2022), 〈잇 테이크 투〉(2021)와 같은 인디게임들이 흥행을 기록하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2022)처럼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트리플A 게임이든 인디게임이든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비상업적 게임”이라는 어색한 어감의 단어조합은 극소수의 예술적 게임, 혹은 전시나 공공성을 위해 만들어진 몇몇 게임만이 속해 있을 뿐이다. 이는 게임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의 차이일까? 혹은 게임시장과 영화시장이 구성된 방식의 차이인 것일까? 게임이 ‘블록버스터 게임’이라는 말 대신 ‘트리플A 게임’이란 용어를 새로이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운동이자 사회운동으로 전유되었던 영화와 달리 게임은 태생부터 상업적인 것이었기 때문일까?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질문들에 관한 나름의 답안지를, 블록버스터와 트리플A 게임이라는 개념을 비교해가며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트리플A 게임 이상으로 수익을 내는 모바일 게임이라든가 트리플A 게임이라 불러도 무방한 스케일을 지닌 온라인 게임처럼,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 사이에 속한 무수한 게임들이 있다. 하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이 글에서는 싱글 플레이 중심의 게임들을 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 〈죠스〉 포스터(왼쪽, 출처: IMDB)와 MCU 포스터(오른쪽, 출처: IMDB) 1.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의 태동 영화에서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는 단어는 2차대전 시기 제작된 전쟁 영화 〈봄바디어〉(1943)의 홍보문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본래 “한 블록을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이기에, 종전과 함께 잠시 자취를 감춘다. 1950년대 TV 보급에 맞서 〈쿼바디스〉(1951), 〈십계〉(1956), 〈벤허〉(1959) 등 스펙터클을 강조한 대규모 서사극이 등장하며 다시 등장한 이 용어는, 1975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가 대성공을 거두며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1970년대 당시의 블록버스터는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라기보단 다수의 상영관에서 상영되고 월드와이드 4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둔 영화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죠스〉와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1977)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1981, 1984, 1989), 〈E.T.〉(1982), 〈백 투 더 퓨처〉 3부작(1985, 1989, 1990), 〈타이타닉〉(1997) 등 다수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생산하며 1980~90년대에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는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동시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었음에도 실패한 영화들 또한 블록버스터를 홍보문구로 사용하며, 대규모 성공을 거둔 영화에서 점차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로 개념이 이동하게 된다. 〈트론: 새로운 시작〉(2010),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2012) 등 흥행에 실패한 블록버스터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대체로 영화를 구현하는 데 많은 자본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SF, 판타지, 전쟁, 슈퍼히어로 장르 등을 생산해낸다. 폭발, 대규모 전투 등이 포함된 액션 장면이 삽입될 수 있는 장르들이 주로 채택된다고 할 수 있다. 회수해야 할 금액이 큰 만큼 고어나 누드 등 선정적인 표현은 가급적 지양되며, 많은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물론 여러 반례(많은 관객이 해설을 요구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처럼 수위 높은 신체훼손을 묘사하는 영화)도 존재하지만, 문자 그대로 소수의 사례에 속한다. 블록버스터라는 용어의 가장 정확한 예시로는 아무래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꼽을 수밖에 없다. 묘사를 위해 대자본을 요구하는 장르적 특성, 대다수의 관객이 무리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수위, 지나치게 클리셰적이라 비판받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관객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선형적인 서사 등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 〈파이널 판타지 VII〉 플레이 장면 (출처: 스팀 상품페이지) 트리플A 게임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후반 몇몇 게임 개발사에서 사용하며 등장하였다. AAA라는 용어는 채권 신용등급의 용어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리플A 게임의 시초로 꼽히는 게임은 스퀘어 에닉스 〈파이널 판타지 VII〉(1997)다. 시리즈 최초의 3D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놀라운 수준의 그래픽,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음악 등이 도입되었다. 그 중 영화처럼 연출된 FMV(혹은 컷씬)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1998)가 발매 전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공개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던 것 등과 함께 떠올린다면 흥미로운 사례다. 트리플A 게임이 자신의 규모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비상호작용적인, 고쳐 말하자면 영화적인 장면들을 대거 투입하는 것은 지금의 트리플A 게임들과도 연결되는 특징이다. 이후 세가의 〈쉔무〉(1999) 등이 등장하였고, 〈둠〉(1993~)이나 〈툼레이더〉(1996~) 등 기존 히트작의 후속편이 트리플A 게임의 규모로 제작되며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슈퍼 마리오〉 (1985~)나 〈젤다의 전설〉 (1986~)처럼, 지금은 고전으로 자리잡은 시리즈의 후속편들 또한 마찬가지다. 블록버스터 영화와 달리 트리플A 게임의 장르는 비교적 다양하다. 이는 게임 매체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나 〈시드 마이어의 문명〉(1991~)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부터 〈배틀필드〉(2002~)나 〈콜 오브 듀티〉 (2003~) 등의 FPS 슈팅 게임, 〈심즈〉 (2000~)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철권〉 등의 대전격투 게임, 〈포르자〉(2005~)와 같은 레이싱 게임, 〈피파〉(1993~)와 〈위닝 일레븐〉(1995~) 등의 스포츠 게임 등 무수한 장르가 트리플A 게임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지금의 시점에서 트리플A 게임을 말할 때 주축이 되는 것은 오픈월드다.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2011)과 〈GTA V〉(2013)가 비슷한 시기 대성공을 거두며 오픈월드를 트리플A 게임의 대표적인 장르로 만들었다. 2022년 한 해 공개된 트리플A 게임인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와 〈엘든 링〉은 처음부터 오픈월드를 표방했으며, 액션 어드벤처에 가깝게 분류되는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도 전작에 이어 부분적으로 오픈월드의 방식을 차용해온다. 선형적인 내러티브의 게임이지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2020)의 경우엔 몇몇 구간을 소규모 오픈월드처럼 구성하기도 하였다. 2023년 발매 예정인 트리플A 게임 중 〈호그와트 레거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 〈스타필드〉 등 또한 오픈월드를 표방하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리플A 게임은 다양한 장르에서 제작되고 있으며 트리플A 게임=오픈월드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트리플A 게임이라는 용어가 연상시키는 장르가 오픈월드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하나 흥미로운 지점이라면, 트리플A 게임에서의 폭력 묘사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정반대의 방식을 택한다. 많은 트리플A 게임이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발매되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블록버스터 영화 대부분보다도 수위 높은 고어와 유혈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크래프톤의 트리플A 게임 〈칼리스토 프로토콜〉(2022)와 같은 최근의 사례만 놓고 보아도, 고어 묘사 자체를 일종의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영화와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작품 속 폭력에 개입하기 때문에, 플레이 영상만 봤을 때는 얼핏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위의 게임들도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기도 한다. 이를테면 〈호라이즌〉 시리즈(2017~)처럼 비교적 가벼운 수위의 게임들도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이다. ∗ 〈아바타〉 포스터 (출처: IMDB) 2. 영화와 게임의 플래그십으로서 두 개념 블록버스터와 트리플A 게임은 제작에 투여되는 자본의 크기만큼이나 기술을 선도하는 역할 또한 수행한다. 영화의 사례는 손쉽게 떠올려볼 수 있다. 〈트론〉(1982)이 처음 영화에 CGI를 도입한 이후 〈터미네이터 2〉(1992)의 T-1000과 〈쥬라기 공원〉(1993)의 공룡 등으로 이어지는 기술의 발전은 〈반지의 제왕〉 삼부작(2001~2003), 〈폴라 익스프레스〉(2004), 〈트랜스포머〉(2007) 등을 거치며 발전과 비판을 반복하여 받아왔다. 〈아바타〉(2009)는 그 정점에 있었으며, 속편 〈아바타: 물의 길〉(2022)은 그것을 다시금 증명하였다. 물론 〈아바타〉를 이야기할 때 3D를 빼놓을 수 없다. 〈아바타〉의 대성공은 3D 영화의 (일시적) 유행을 불러왔다. 물론 〈아바타〉 개봉 이전에도 3D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폴라 익스프레스〉도 3D로 개봉했었고, 〈아바타〉 직전에 개봉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008)와 〈블러디 발렌타인〉(2009)도 있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1952년 〈브와나 데블〉을 시작으로 1954년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까지 70여 편의 3D가 쏟아져 나왔던 시기도 있다. 〈아바타: 물의 길〉이 다시금 3D를 부흥시킬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블록버스터의 규모를 통해 가능해지는 기술의 도입은 어떤 기술적 유행을 만들어낸다. CGI의 발전이나 퍼포먼스 캡처처럼 유행을 넘어 상식이 된 기술의 경우들 또한 블록버스터가 지닌 규모를 통해 가능했다. 더 나아가 블록버스터에 투여된 자본과 기술은 시장의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일반관보다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3D 영화는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주도한 IMAX의 부흥이 특히 그러하다.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IMAX 화면비 장면을 삽입하는 것은 관례가 되었다. 이는 당연하게도 일반관보다 1.5배에서 2배 가까운 가격이 책정되는 IMAX 상영관으로 관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유인책이다. 물론 IMAX 상영관은 그 수가 적기 때문에 그것이 영화 한 편의 수익을 극적으로 바꿔 놓지는 못한다. 이는 IMAX를 포함해 돌비시네마, 4DX 등 여타 특별관도 마찬가지다. 다만 “IMAX 특별관 매진행렬!!”과 같은 홍보문구가 형성하는 시장장악력을 무시할 수 없다. 더불어 〈덩케르크〉(2016)나 〈놉〉(2022)의 경우처럼, 그것이 성공적이든 실패했든 종종 IMAX를 미학적 선택의 결과물로 내놓는 블록버스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포스터 (출처: 닌텐도 스토어) 트리플A 게임의 경우 조금 더 적극적인 유인책으로 활용된다. 트리플A 게임의 시초격인 〈파이널 판타지 VII〉은 5세대 콘솔 경쟁 속에서 플레이스테션을 완전히 자리잡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새로운 세대의 콘솔이 등장할 때마다 소위 레퍼런스 게임이라 불리는 고사양 게임들이 등장하여 기기성능을 뽐낸다. 2020년 플레이스테이션5의 런칭 타이틀로 출시된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2020) 같은 경우는 기기의 새로운 기능을 소개하는 레퍼런스 게임으로 기능했다. 〈라쳇 앤 클랭크: 리프트 어파트〉(2021)처럼 기기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사양을 활용하는 독점타이틀 또한 마찬가지다. 혹은 닌텐도 스위치의 런칭 타이틀이었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2017)이라든가 플레이스테이션5의 런칭 타이틀이자 기기 독점 타이틀인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2020)처럼, 기기의 판매를 유인하기 위해 기존 트리플A 게임 프랜차이즈의 후속작이나 리메이크를 독점 발매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트리플A 게임은 스스로의 규모를 감당하기 위해 첨단의 사양을 지닌 기기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기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트리플A 게임의 기술적 성취는 블록버스터의 것과 다소 방향성을 달리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바타〉의 3D나 〈인터스텔라〉(2014)의 IMAX는 작품의 내적인 성취를 위해 도입된 기술이지,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는 산업적 요구가 작품에 앞서 존재하지는 않는다. 물론 〈아바타〉 이후에 등장한 질 낮은 3D 블록버스터들과 마케팅을 위해 IMAX를 도입하는 영화들이 무수히 존재하지만, 산업적 유행에 휩쓸려 제작된 기획영화들을 선구자 격의 영화들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독점발매는 게임시장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영화시장에서도 종종 독점개봉작을 발견할 수 있지만, 이 작품들은 와이드릴리즈에 투여되는 비용부담을 절감하기 위한 중저예산 상업영화, 혹은 독립영화의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이는 게임 매체의 독특한 지위 때문이다. 다른 대중문화, 이를테면 문학, 만화, 음악, 영화와 같은 것들은 손 쉽게 복제가 가능하며 다양한 기기에 어렵지 않게 이식할 수 있다. 책처럼 문화상품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동기화된 경우도 있고, 스트리밍 플랫폼의 도입으로 음악과 영화는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게임은 하드웨어의 성능적인 부분을 요구한다. 특히나 고사양을 트리플A 게임의 경우가 그렇다. 비록 경험적 차원에서는 구별될지라도, 블록버스터 영화는 IMAX관에서 보든 넷플릭스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보든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다. 물론 엑스박스의 클라우드 게이밍처럼 빠른 인터넷 환경만 갖춰진다면 저사양의 기기에서도 트리플A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아직 음악과 영화의 스트리밍 시장만큼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사이버펑크 2077〉(2020) 발매 당시 많은 게이머가 PC사양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래픽카드를 구입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아직까지 트리플A 게임은 PC나 콘솔 등 ‘하드웨어’와 깊게 결부된 것으로 다뤄지고 있다. 때문에 블록버스터 영화가 3D나 IMAX의 플래그십으로 작동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다. 반면 트리플A 게임이 차세대 콘솔 혹은 최신의 그래픽카드를 시장에 도입하기 위한 플래그쉽으로 기능한다는 명제는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전자가 참이라 가정한다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CGI 기술의 도입을 위해 〈쥬라기 공원〉을 만들었다던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IMAX를 영화시장에 도입하기 위해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셈이 된다. 그들의 영화가 시장과 산업의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후적인 결과에 가깝다. 더불어 영화의 흥행은 영화의 개봉시점에서 1~2주 안에 결정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이버펑크 2077〉이 애니메이션 〈사이버펑크 엣지러너〉(2022)와 지속적인 업데이트에 힘입어 뒤늦은 성공을 거두었거나,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뉴비’를 끌어 모으는 여러 트리플A 게임의 사례와는 다르다. 물론 트리플A 게임 또한 발매 시점에 구매가 몰리게 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다. 영화업계에서 블록버스터에 대해 플래그십이라는 말 대신 ‘텐트폴 영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큰 흥행을 거둘 수 있는 프랜차이즈 영화, 화려한 멀티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를 대목 시즌에 개봉시켜 빠르게 큰 수입을 올리는, 블록버스터를 제작사와 배급사의 지지대처럼 활용하는 것은, 영화 한 편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수입의 대부분이 개봉 초기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 발매일로부터 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라 해도 플래그십의 기능을 수행한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하기 위해서 닌텐도 스위치가 필요하고,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가 불러온 논쟁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플래그십의 기능을 다 한 게임의 경우 다른 콘솔이나 PC를 통해 일종의 재발매를 거치기도 한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와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가 발매에 맞춰 전작을 PC로 발매한 것처럼 말이다. 트리플A 게임, 아니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간이 영화 콘텐츠에 비해 길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블록버스터가 단발적으로 수익을 내는 상품이라면, 트리플A 게임은 플랫폼(콘솔 같은 하드웨어부터 게임패스 같은 플랫폼 서비스까지를 포괄하는 의미에서)을 견인하는 장기적인 수입창출 상품이다. 이 지점에서 트리플A 게임이 굳이 ‘블록버스터 게임’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폭탄의 이름에서 따온 블록버스터라는 명칭은 단발적으로 많은 수익을 거두는, 문자 그대로 박스오피스의 폭탄 같은 존재를 말한다. 앞서 적은 것처럼, 게임시장은 영화시장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트리플A 게임은 단기적으로 폭발적인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플랫폼의 장기적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작동한다. ‘AAA’의 어원이 채권 신용등급에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트리플A 게임은 기기의 성능, 플랫폼의 지속가능성, 엔딩까지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시간적 비용 등을 모두 보장하고자 하는 단어처럼 다가온다. * 〈데스 스트랜딩〉 포스터 (출처: 에픽게임즈 스토어) 3. 영화적인 게임, 게임적인 영화, 각자의 재료가 되기까지 각각의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이나 역할은 다르지만, 블록버스터와 트리플A 게임은 제작방식과 작품 내부의 차원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 블록버스터에서 CGI와 모션 캡처의 발전은 그대로 트리플A 게임의 기술적 발전으로 연결되었다. 한 가지 부정적인 면모를 우선 짚고 넘어가자면, 블록버스터와 트리플A 게임 양측 모두에서 기술의 발달과 함께 크런치 모드에 관한 논란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트리플A 게임 개발사인 너티독은 〈언차티드 4: 해적왕과 최후의 보물〉(2016) 발매 당시 처음으로 회사 내 크런치 문제가 논란이 되었으며, 이는 스튜디오의 최근작인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 발매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지적되었다. 〈더 위쳐〉 시리즈(2007~)와 〈사이버펑크 2077〉의 CDPR과 〈GTA〉 시리즈(1997~)의 락스타게임즈 또한 같은 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업계에서의 크런치 모드 논란은 최근에서야 터져 나왔다. 2022년 한 해에만 3편의 영화와 3편의 드라마를 내놓은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그 대상이다. VFX를 맡았던 몇몇 이들이 작업 분량에 비해 적은 시간, 무수한 재작업 요구, 저임금 등의 상황을 폭로하며 크런치 모드가 비단 게임업계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렸다. 다만 크런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글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문제가 있음을 언급하는 정도에서 지나가고자 한다. 영화에서 모션 캡처는 〈토탈 리콜〉(1990)에서 처음 도입되었고,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1999)의 자자 빙크스와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골룸 캐릭터를 거쳐 〈아바타: 물의 길〉의 나비족까지 이어지고 있다. 21세기로 넘어오며 3D CGI 위주의 시장으로 변화한 게임업계 또한 모션 캡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비욘드: 투 소울즈〉(2013)이나 〈데스 스트랜딩〉(2019)처럼 모션 캡처를 통해 유명 영화배우가 게임에 대거 출연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혹은 〈레드 데드 리뎀션 2〉(2018)처럼 모션 캡처로 말의 움직임을 게임 내에 구현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CGI의 발전에 따라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와 같은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포토-리얼리즘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려 했다. 〈라푼젤〉(2010)의 옷감 표현이나 〈굿 다이노〉(2015)의 자연물 표현, 〈겨울왕국 2〉(2019)의 눈을 구현하던 물리엔진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역으로 포토-리얼리즘한 CGI 이미지가 과거 〈폴라 익스프레스〉나 〈베오울프〉(2007)가 그랬던 것처럼 불쾌한 골짜기를 자극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포토-리얼리즘이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의 영역으로 다루어지며 최근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들은 다른 방식의 이미지를 선보이곤 한다. 코믹스의 표현을 구현해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 포토-리얼리즘적 현실과 대비되는 세계를 비교적 단순한 선들로 표현한 〈소울〉(2020), 유화풍의 그림체를 가져온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2022) 같은 사례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사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다른 경우라 할 수 있겠지만, 똑같이 실사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는 게임에서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모습은 종종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킨다. 게임엔진이 그대로 영화에 사용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언리얼 엔진 4가 영화 및 영상업계 전반에서 사용되었고, 언리얼 엔진 5의 경우엔 〈매트릭스: 리저렉션〉(2021)과 콜라보한 데모 게임 〈매트릭스: 어웨이큰스〉(2021)를 9세대 콘솔로 공개하기도 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의 2차 매체 부가영상을 보면 게임엔진이 영화의 프리 비주얼 등에서 활용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해당 영상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VR 헤드마운트를 쓰고 게임처럼 구현된 CGI 세트장에 접속하여 디렉팅을 진행한다. 굳이 기술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트리플A 게임은 처음부터 영화와 모종의 친연성을 지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파이널 판타지 VII〉의 FMV씬과 〈스타크래프트〉의 시네마틱 트레일러처럼, 초기의 트리플A 게임은 자신들의 규모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화적으로 연출된 장면들을 넣어 두었다. 이러한 방식은 더욱 강화된 방식으로 이어진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1996~)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언차티드 4〉의 추격전은 QTE 방식의 조작을 택해 액션을 플레이하는 감각과 함께 관람한다는 감각을 함께 전달한다. 현재 실사 드라마로 방영중이기도 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13)는 영화적인 플롯과 장면연출로 호평 받음과 동시에, 같은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다. 지극히 게임적인 체험과 무수한 영화인이 출연하는 컷씬으로 양분된 〈데스 스트랜딩〉 같은 분열적인 사례도, 인터랙티브 드라마 장르를 채택하며 게이머의 여러 선택들로만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2018)처럼 영화와 게임의 경계선상에 있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FPS의 시점을 채택한 〈하드코어 헨리〉(2016), 여러 전쟁 게임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던 원테이크 영화 〈1917〉(2019), 인터랙티브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영화’로 분류되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2018) 등 게임적 요소라 불리는 것을 가져온 영화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관련한 논의는 필자의 이전 글 [영화와 게임의 스침]( http://www.critic-al.org/?p=5927)을 참고할 수 있다. *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 로고 애니메이션(https://www.youtube.com/watch?v=5qQssqOmBZw)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무수한 영화와 영화를 원작으로 삼은 무수한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최근 몇 년간 〈명탐정 피카츄〉(2019), 〈슈퍼 소닉〉(2020)과 〈슈퍼 소닉 2〉(2022), 〈모탈 컴뱃〉(2021),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2021) 〈언차티드〉(2022) 등을 내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언차티드〉인데,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의 첫 장편영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영화 본편 상영 전 등장하는 프로덕션의 로고 영상을 보면 〈호라이즌 제로 던〉의 에일로이, 〈갓 오브 워〉의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조엘과 앨리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기존 플레이스테이션 독점작의 실사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이 스튜디오는 현재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HBO와 손잡고 제작해 방영 중이며, 앞으로 〈고스트 오브 쓰시마〉, 〈그란 투리스모〉 등의 영화와 〈갓 오브 워〉, 〈호라이즌〉 등의 드라마를 제작할 예정이다. 하나의 IP가 여러 매체를 통해 소화되는 전략은 오랜 기간 보아왔던 것이지만, 트리플A 게임의 IP를 대거 보유한 퍼스트 파티가 직접 스튜디오를 차려 실사화를 진행하는 것은 첫 사례다.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실패한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과 〈언차티드〉, 〈슈퍼 소닉〉 등이 흥행에 성공하며 징크스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 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별개이겠지만 말이다. 트리플A 게임의 블록버스터 영화화, 블록버스터 영화의 트리플A 게임화는 IP의 소유권 위주로 재편된 지금의 미디어 생태계에서 당연한 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게이머와 관객들은 이러한 상황에 싫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미 플레이한, 관람한 이야기를 다른 매체로 이식할 뿐인 이 작품들에서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지금껏 이야기해온 영화와 게임의 친연성,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이 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곱씹으며 이 작품들을 다시 마주한다면 흥미로운 접점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1981~)에서 〈툼 레이더〉, 〈내셔널 트래져〉(2004), 〈언차티드〉로 이어지는 보물 사냥꾼의 계보를 그려본다든가, 〈소닉 더 헤지훅〉의 모션이 〈슈퍼 소닉〉에서 구현되는 방식에 관해 고민해보면서 말이다. 그러한 접점을 발견하는 것이 두 계열의 거대한 오락문화를 더욱 흥미롭고 다채로운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 Back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09 GG Vol. 22. 12. 10. 구독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하여 읽음’이다. 애초에 단어 자체에 購讀, 읽을 ‘독’자가 들어가는 상황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최근에 이 단어는 읽는다는 행위를 떠나 다른 쪽에 주안점을 찍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금의 구독은 개별 단위의 구매가 아닌, 정기적으로 일정 수량 이상의 상품 혹은 서비스를 결제하여 사용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단어의 출전에 가까웠던 신문과 잡지의 구독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지만, 확장된 의미의 구독은 신문, 잡지를 넘어선 온라인 미디어의 구독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신선식품이나 생필품의 정기배송까지도 묶어 부를 수 있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게임 또한 구독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플레이스테이션, XBOX같은 전통적인 콘솔 플랫폼 뿐 아니라 게임 구독 서비스는 애플 아케이드나 구글과 같은 스마트폰 기반의 범용 플랫폼에서도, 심지어 넷플릭스 같은 비게임 플랫폼에서도 출시하는 보편적인 흐름이 되었다. 디지털게임은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매체고, 구독과 같은 결제방식에서의 중대한 변화는 당연히 게임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변화는 함부로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결제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시작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1. 구독 방식은 일정한 지분을 가진 결제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유통사나 플랫폼 입장에서는 구독 서비스에 거는 희망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로 하여금 정기 번들링의 형태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게임을 제공한다는 슬로건 안에는 불확실한 매출 볼륨을 정기적이고 고정적인 형태로 바꿈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구독 서비스의 확대가 개별 소프트웨어 판매와 상충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특히 플랫폼 단위의 구독 서비스는 소비자의 결제를 플랫폼 단위에서 배타적으로 자사의 고정적 현금흐름으로 묶어낸다는 점에서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선택일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유통사가 제시하는 이득을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 정기결제를 통해 출시되는 더 많은 게임들을 폭넓게 만나볼 수 있는 방식은 특히 다양한 게임들을 이른바 ‘찍먹’하고자 하는 게이머 입장에선 갈수록 개별가격대가 만만치 않게 올라가는 개별구매에 비해 효율적일 수 있다. 다만 이는 개별 게이머들의 성향에 의해 크게 호오를 탈 수 있는데, 이를테면 게임 하나에 집중하는 스타일의 게이머들에게는 별다른 메리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이 호/오라는 두 개의 입장으로 갈리는 상황에서 개별 판매와 구독이 동시에 존재하는 플랫폼 스토어는 그래서 한편으로는 소비자에 대한 세부 분류를 강화하는 가격 마케팅의 일환으로 판매정책이 세밀해지는 효과를 얻는다. 그 결과가 소비자로 하여금 어떤 게임을 선택하기 쉽게 하고, 또 제작자로 하여금 어떤 게임을 더 많이 / 더 오래 만들도록 하는지를 떠나서라면, 구독 서비스의 도입과 보편화는 게임결제양식의 한 축으로 나름의 자리를 구축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 구독 서비스를 통해 게임제작자들은 기존보다 나은 개발환경을 얻게 될 것인가? 다만 제작자 입장에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더 무거워질 수 있다. 당장 구독 서비스는 현재 한국에서 게임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제방식인 부분유료결제 방식과 크게 상충하기 때문이다. 이미 게임 내에서 별도의 월정액 결제방식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플랫폼 단위의 ‘구독’은 정기결제라는 방식보다는 이용자로 하여금 게임 선택의 폭 자체를 키워버리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핵심이기에 방식만 같을 뿐 다른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된다. 게임을 선택한 뒤 그 게임에 정기결제를 넣는 방식은 일종의 매몰비용을 지속적으로 누적시키면서 이용자를 특정 타이틀에 고정시키는 효과를 낳지만, 정기결제가 먼저 이루어진 뒤에 서로 다른 게임제작사의 게임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은 정기결제로 만들어지는 이윤을 게임사가 아닌 플랫폼에 집중시킨다는 측면에서 부분유료결제와는 다른 효과를 낳는다. 적어도 부분유료결제로 운영되는 게임들이 구독 서비스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일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제작자의 입장은 단지 부분유료결제라는 기존의 방식 하나에만 영향을 주는 것으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앱스토어 등을 통해 타이틀 판매 단위로 플랫폼으로부터 수익을 정산받는 개별판매에서도 수익구조의 변화에 따라 개발사들의 제작방식 또한 달라질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카테고리 내에서 다운로드/스트리밍되는 횟수나 총 플레잉타임을 기준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라면 구독서비스에 들어가는 게임들의 경우에는 카테고리 내에서 최초 선택될 수 있는 게임규칙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적어도 이런 변화가 머지않아 여러 게임들에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할 것이다. 대규모 부분유료결제가 아니더라도 소소한 인앱결제가 도입된 게임들의 경우에는 구독 서비스 안에서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재검토도 이루어질 것이다. 이용자가 사실상 무료라고 여기고 접근한 게임 안에서 추가적인 결제를 요구하는 순간을 맞을 때, 그는 기존의 다른 방식 – 그것이 free-to-play이건, 개별판매 방식이건간에 – 에 비해 더 쉽게 지갑을 열 것인가, 아니면 빠르게 다른 게임으로 갈아탈 것인가? 이런 고민들 또한 머지않아 게임규칙 안에 녹아들 것이고, 그 결과 또한 금새 시장에 출력될 것이다. 3. 구독 서비스는 게임플랫폼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에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주문형 비디오 플랫폼으로 구독결제 방식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게임 구독 서비스에 도전한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흥미로운데, ‘구독’이라는 개념을 게임과 TV라는 매체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개념으로 이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좀 뭉뚱그려보자면,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과 게임을 선택해 플레이하는 것은 결국 정기결제를 통해 제공받는(큐레이션을 포함한) 범주 안에서 동일한 소비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그러나 통일된 의견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상물 시리즈나 영화 한 편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시청하는 경우와 게임 하나를 붙잡고 업적 100%를 찍는 일을 같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게임에 비해서는 서로 다른 콘텐츠라도 비슷한 시청시간으로 구성되는 영화, 드라마에 비해 게임은 소비시간 측면에서도 게임마다 큰 진폭을 보인다. 이런 차이는 정말 ‘구독’이라는 결제방식 안에서 하나로 불릴 수 있는 만큼의 차이일까? 만약 충분히 구독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이 다른 매체와 묶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때부터는 게임전용 플랫폼이라는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를테면 역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안에서 영상물 시리즈를 구독하거나 하는 일은 왜 또 불가능할 것인가? (한편으로는 컨트롤러라는 부가 인터페이스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게임플랫폼이 되려 범용성 측면에서도 나을 수도 있겠다.) 결국 여가시간의 활용이라는 공통의 시장을 두고 영상과 게임이라는 두 플랫폼이 격돌할 가능성이 앞선 가정으로부터 나오는 환경을 고려해볼 수 있게 된다. 방향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여가의 정치경제학’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부분유료결제라는, 한때는 뭐 이런게 있나 싶었던 결제방식이 보편화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방식의 도입은 모바일 디바이스와 같은 흐름을 타고 한편으로는 게임 대중화의 길을 트기도 했지만 동시에 pay-to-win이라는 지금까지도 많은 게이머들의 뒷목을 붙잡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음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경험해온 바 있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