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공란으로 575개 검색됨
- 온라인게임, 멀티플레이, 그리고 경쟁
한때는 ‘온라인 게임’이 곧 새로운 미래가 될 거라 믿던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이벤트까지 거친 후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부분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을 수용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중심인 느낌이다. < Back 온라인게임, 멀티플레이, 그리고 경쟁 08 GG Vol. 22. 10. 10. 한때는 ‘온라인 게임’이 곧 새로운 미래가 될 거라 믿던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이벤트까지 거친 후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부분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을 수용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중심인 느낌이다. 우리는 온라인에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첫째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감각이다. ‘경쟁’을 유도하는 게임 시스템이라면 인간을 상대로 하는 편이 가장 재미있다. AI와 경쟁하는 것은 아무래도 흥미가 떨어진다. 가정용 게임기가 ‘2인용’ 컨트롤러를 동반해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온라인을 활용한 FPS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등도 이러한 맥락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경쟁’만이 이런 감각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협력해 공통의 과제를 달성하는 것 또한 게임을 ‘함께’하는 일의 묘미다. 온라인을 활용한 게임 자체는 PC통신 시대에 이미 등장했는데, 이른바 MUD(Multi User Dungeon) 게임이 그것이다. 오늘날에는 전세계 이용자들과 함께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MMORPG들이 이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 사람이 공통의 과제를 해결한다는 사실 자체가 만들어내는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게 우리가 온라인 게임에 거는 두 번째 기대, 일상과는 분리된 또다른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공통 과제를 달성하려면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협력을 할 수 없는 상대와는 필연적으로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교류하고 협상하며 손을 잡았다가 다시 놓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하나의 ‘사회’가 성립되고 작동하는 과정이 게임 내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게임 사회가 현실 사회와 분리돼있으므로, 이 안에서의 ‘나’ 역시 현실 사회와 분리돼있다. 따라서 ‘나’는 게임 안의 ‘아바타’에 대안적 자기상을 투영한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현실 사회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게임 내 사회를 대한다. 따라서 게임과 현실은 형식상 분리돼있으나 내용적으로는 유사성을 가진다. 혹시 그렇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나’는 게임 내에서 ‘대안적 나’로 존재하기 위해 게임 내 법칙이 어느 정도 현실을 따르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실의 나’는 게임 시스템과 상호 교류하며 긴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게임 내 세상이 현실처럼 부조리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게임 내의 현실 모사가 마치 ‘성경공부’ 같을 필요까지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의 부조리는 게임 시스템에 어느 정도 실감이 날 만큼만 반영되어야 한다. 이용자가 감당할 수 없는 부조리조차 현실과의 유사성이라는 명목으로 게임에 재현되면 ‘대안적 나’를 게임 내에서 추구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게임의 이용자인 우리는 현실의 무엇에 대한 재현까지 용납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방식을 보면 이게 드러난다. 초창기 MMORPG의 설계자들은 게임 내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종합격투기 링처럼 여겨지기 보다는 대안적 사회로서 소비되기를 바랐다. 울티마 온라인이나 에버퀘스트와 같은 사례를 보면 그렇다. 초기 울티마 온라인의 경우 최대 7개의 부문 스킬에 대해서만 ‘그랜드 마스터’ 자격을 가질 수 있었다. ‘채광’, ‘낚시’, ‘벌목’과 같은 생산 기술부터 ‘검술’, ‘궁술’ 등의 전투 기술에 이르기까지, 전체 스킬의 종류는 50가지에 달한다. 이용자 입장에선 이 중 자기 캐릭터 컨셉에 맞는 스킬 7개 스킬만을 선택해야 하는 거다. 레벨을 올리면 ‘아바타’를 한도 끝도 없이 강화할 수 있는 현대 게임 디자인과는 다른 형태다.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장려하고 레벨 올리고 사냥하는 것 외의 활동을 유도하는 것인데, 이용자는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하게 된다. 과거 MMORPG 이용자들이 자기 경험담을 연재의 형식으로 올린 글이 인기를 얻었던 것도 이런 특성이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초창기 MMORPG의 형태는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경쟁 위주, 즉 자기 캐릭터를 강화하고 여기에 맞춘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울티마 온라인류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용자의 시스템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기대’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노력’에 상응한 ‘보상’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력’의 결과가 수치화 되어 정확히 측정되어야 한다. 즉, 온라인 게임 일부의 이러한 변화는 ‘현실의 자신’이 사회에 바라는 법칙이 게임 시스템 내에서도 작동하기를 바란 결과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의 반영이 ‘게임의 재미’에 미친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오늘날 게임을 대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태도는 ‘노력’과 ‘보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 느껴질 때가 많다. 어느 시점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보상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알아 내야 남보다 빨리 ‘강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효율성’의 추구가 ‘재미’의 대부분을 뒤덮어버린 듯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최강 종족’에 관련한 밈은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테란, 프로토스, 저그 중 최강의 종족은 무엇인가 하는 논쟁은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게 뭐든 제4의 종족, Korean이 최강이라는 결론에 이견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스스로 ‘민속놀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 내 스타크래프트 이용자 숫자가 많았던 때문이다. ‘고수’가 등장할 확률은 어느 나라든 낮지만 모수가 크면 절대적 숫자는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사회 전반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큰 한국 사회의 현실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가능하지 않을까? 개발자가 유도한대로 정해진 시스템에 맞춰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규칙의 허점을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면서 경쟁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에 한국인들이 특히 익숙했던 것 아니냐는 추론이다. 우리는 이미 스타크래프트 뿐만이 아닌 뉴스에서도 법제도를 교묘하게 악용한 사기꾼의 사례나 입시 제도를 둘러싼 논란 등에서 비슷한 예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공적인 틀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한국이 각자도생의 ‘저신뢰 사회’라는 사실은 OECD의 설문조사나 해외 연구기관의 통계, 프랜시스 후쿠야마라는 학자의 주장 등을 통해 상당 부분 뒷받침 되고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발표한 ‘2019 레가툼 번영지수’를 보면 한국은 사회자본 부문에서 전체 167개국 중 142위를 기록했다.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이런 근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나마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게임 장르에선 이러한 각자도생의 본능이 ‘재미’를 크게 훼손하지는 않을 수 있다. 정신적 피로를 안기는 ‘채팅’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앞서 짚었듯 우리가 온라인 게임에 거는 기대가 현실의 부조리까지 전부 재현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용자가 거의 모든 게임을 대하면서 나타나는 ‘효율성 추구’는 ‘경쟁’이 중심이 되지 않는 게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재미의 폭을 제한하는 결과가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는 ‘효율성 추구’가 게임과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스펙 쌓기로 피곤한데 게임에서까지 그래야 하는가? 문제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뭘 만들어도 여기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각자도생의 현실 사회도 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이리 저리 조율돼 반영된 결과이다. 바로 그 사람들을 가상현실이라는 다른 시스템 안에 넣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다면, 경쟁을 위해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반대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게임일까? 앞서 언급한대로 ‘대안적 나’를 추구할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게임이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게임의 형식은 어떻게 가능할까? 오늘날 이 모델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게 ‘온라인 없는 오픈월드’이다. ‘오픈월드’의 핵심은 그것 자체가 현실과 분리된 또 다른 현실세계의 정밀한 모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오픈월드’라면 그 안에서 다른 외부의 개입 없이도 이용자가 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최대한도로 구현하기 위해 유명 오픈월드 게임들은 사실적 그래픽으로 넓은 세계를 묘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이런 것들은 외적 표현에 불과하다. 문제는 내용이다. 온라인 게임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매일 새로운 사건과 드라마가 창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가 없는 오프라인 오픈월드는 어떻게 ‘사회’일 수 있는가? 수많은 ‘퀘스트’가 등장하는 식의 구성이 ‘오픈월드’의 필수가 된 건 이런 이유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출력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를 인공지능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튜링 머신의 아이디어와 유사한 결론이다. 이용자가 예측할 수 없고 언제나 새롭게 느낄 만큼의 수많은 사건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대안적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이게 ‘오픈월드’의 한계를 규정짓는 요소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퀘스트’는 어디까지나 ‘퀘스트’일 뿐이다. 게임 내 사건이 더 이상 ‘사건’일 수 없다면, ‘오픈월드’가 ‘현실 사회’의 모사처럼 보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점에서 역사적 인물, 사건 등 배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또 하나의 타개책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어쌔신 크리드 오딧세이’에서 우리는 결코 요구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질문’의 방식으로 돌려 표현하는 소크라테스에게 ‘퀘스트’를 수주하면서 현실의 역사에 속해있다는 감각을 갖게 되고, 이것이 게임 내에서 ’사회’의 존재를 체감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굳이 그 시대의 최강자가 되기 위한 최단 경로를 밟는 것에 몰두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어떤 인물이 되어 보면 되는 것이다. 물론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이런 저런 설정은 완전한 역사적 인물로의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쌔신 크리드’가 그리는 세계에 완전히 녹아들기 위해서는 역사와 현실을 넘나드는 초현실적 액자 구성을 받아들여야 하고 외계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고대인들의 사회를 둘러싼 갖가지 설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어쌔신 크리드’는 이상적인 ‘오픈월드’를 구현하는데 전적인 노력을 쏟은 게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 것으로 ‘오픈월드’의 ‘구멍’을 메꾸는 시도는 ‘효율성 추구’의 함정으로부터 게임을 구원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아예 이 대목에만 집중한 게임도 있다. ‘대항해시대’를 비롯해 역사 시뮬레이션 시리즈로 유명한 코에이의 ‘태합입지전’ 시리즈는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 사례로 들 수 있다. 18년만에 리마스터 된 5편의 경우 장엄한 자연 환경의 묘사나 월드맵의 끝없는 물음표 같은 것은 없다. 이 게임은 철저하게 그림과 숫자로만 이뤄져있다. 그럼에도 게이머는 일본 전국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이 되어 주체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죽기 전에 아케치 미쓰히데를 제거한다든가, 그 전에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꾀하는 등의 대안역사적 시도를 해볼 수 있는데, 아예 이런 정치적 문제와는 관계가 없는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미니게임으로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상징화 해 대체한 시도는 따로 주제를 잡아 다뤄볼만한 기법이다. 이제 다시 애초의 문제의식으로 돌아와보자. ‘역사’를 설정으로 삼는 ‘오픈월드’를 통해 가상 사회와 현실의 접점을 만들고 그 안에서 대안적 시도를 허용하는 게임 디자인이 가능하다면, ‘현재’나 ‘미래’를 근거로 한 것도 동일한 효과를 거두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한 ‘오픈월드’ 게임의 존재는 이 가능성을 시사한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서, 혹은 각자도생의 현실에서 정말로 이용자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를 묻고, 모두에게 득이 되는 선택을 스스로 고안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그게 ‘게임적 재미’로서 의미를 갖게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이들이 그러한 과업에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다면, 게임은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온라인 게임’의 어떤 이상이 기계적 효율성 추구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프라인’에서도 의미를 갖게 되는 가장 직선적이면서 또한 가장 어려운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Anonymous
Anonymous Anonymous Read More 버튼 읽기 북한 게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지적 재산권, 소액결제, 그리고 검열을 중심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게임 산업보다는 자급자족식 민족주의와 주체사상 이데올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 보급이 증가하고(Yoon, 2020) 여가활동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Evans, 2018), 북한 도시 중상류층의 일상적인 여가로서 게임이 떠오르고 있다.
- : 공포의 세계에서 배회한다는 것
선형적 서사에 있어 반복은 매혹의 대상이 아니다. 그 세계에서 무한한 반복이란 오직 탈출해야 할 환경에 불과하다. 이야기들은 그 사실을 붙잡고는 ‘사실 진짜 생은 반복의 바깥에 있어’라고 끝없이 주장한다. <팜 스프링스>가 흥미로웠던 것은 두 주인공이 일시적으로나마 반복에 매혹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탈출의 의지가 발생하고, 두 사람은 또다시 ‘진짜 삶’과 마주하기 위해 바깥으로 탈출한다. < Back : 공포의 세계에서 배회한다는 것 15 GG Vol. 23. 12. 10. "에너지 상자에 갇힌 거예요. 3.2초 만에 상자에서 탈출하면 타임 루프에서 나갈 수 있어요." (...) "현실 세계로 뭐하러 돌아가요? 죽음과 가난과 괴로움 가득한 세상인데. 그나마 여기에선 함께할 수 있잖아요." (...) "여긴 진짜가 아니에요. 여기서 하는 모든 건 의미가 없다고요." <팜 스프링스>(맥스 바바코우, 2020) 선형적 서사에 있어 반복은 매혹의 대상이 아니다. 그 세계에서 무한한 반복이란 오직 탈출해야 할 환경에 불과하다. 이야기들은 그 사실을 붙잡고는 ‘사실 진짜 생은 반복의 바깥에 있어’라고 끝없이 주장한다. <팜 스프링스>가 흥미로웠던 것은 두 주인공이 일시적으로나마 반복에 매혹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탈출의 의지가 발생하고, 두 사람은 또다시 ‘진짜 삶’과 마주하기 위해 바깥으로 탈출한다. 이러한 사실은 명백히 운명적이다. 말하자면 선형 서사는 언젠가 종말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한한 반복은 불가능하다.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해봐야 작품 외적인 활동, 관람자가 다시 읽기 혹은 되감기-다시 재생을 시도할 때 정도다. 로라 멀비는 영화에서의 이러한 지향이 영화의 운명임을 논한 적이 있다. 장 뤽 고다르의 1963년 작 <작은 병정>에 나온 대사(“영화는 1초에 24번의 진실이다.”)를 뒤집은 제목의 저서 『1초에 24번의 죽음』에서, 멀비는 서사 영화는 암전이라는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간다고 저술한다. “서사의 정지, 비유기체적인 형태로 돌아가는 비유로서의 죽음은 마치 스틸 프레임과 죽음의 결합이 이야기의 죽음으로 용해되는 것처럼 (...) 영화로 확장된다.”(『1초에 24번의 죽음』, 로라 멀비, 현실문화, 2007) 필름이 모두 돌아가면 그곳에 도사리는 것은 아무것도 투사되지 않는 검은 장막이다. 여기에 도사리는 것은 죽음의 이미지뿐이다. 이때 매체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지하는 서사 역시 죽음과 마주한다. 아니 오히려, 이것은 서사를 다루기 때문에 그 활동이 정지한다 봐도 무관하다. 서사는 시작하는 곳과 멈춰 서는 곳을 결정하는 지시로서의 제약이다. 더 이상 세계가 변혁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서사의 운동은 끝난다. 그것이 행복한 결말이든 불행한 결말이든 그것은 서사의 죽음이나 다름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논의를 그대로 비디오 게임에 적용할 수 없다. 게임은 반복의 매혹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초기의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 ‘결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한히 루프 하는 게임들(이를테면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목표는 그 안에서 무한히 생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비디오 게임에서의 ‘끝’은 ‘죽음’과 현상적으로 연결되었다. 이것은 지시적 죽음이 아니라 진짜 의미에서의, 세계 내부에서의 죽음을 뜻한다. GAME OVER는 멀비가 지정한 의미에서 암전-죽음과 연결된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이 지시된 ‘끝’을 담지하면서부터 상황은 변모한다. 여기서 끝은 두 단위로 분화된다. 하나는 GAME OVER로 표상되는 죽음의 끝=암전, 그리고 또 하나는 CLEAR로 표상되는 완결화된 끝이다. 때로 (특히 고전적 아케이드 게임들은) CLEAR를 GAME OVER라는 기표로 표기하긴 하지만, 그 누구도 양자를 동일한 결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때 CLEAR가 GAME OVER와 대비되는 존재라고 한다면 이것은 명백히 암전에 대비되는 존재로서 ‘표백’에 위치한다. (‘깨끗이 한다’는 의미의 CLEAR와 표백은 마치 운명 된 짝처럼 들어맞기까지 한다.) 표백의 결말은 엄밀히 말해 서사와 등치되지 않으며, 정확히는 게임이 추구하는 목표(objective)와 결부한다. 하지만 서사는 목표를 지시하기 가장 적합한 형식이다. 이를테면 캡콤의 <파이널 파이트>는 범죄조직 매드 기어가 시장의 딸을 납치했다는 컷씬으로부터 시작되고, 인질이었던 제시카가 연인 코디와 함께 떠나는 컷씬으로 종결된다. <파이널 파이트>를 플레이하는 동안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인질 제시카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매드 기어의 야욕을 꺾는다면 게임이 전제하는 목표를 해결했다는 사실과 함께 목표와 연결되는 서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 인지는 정확히 이 게임이 여기서 ‘끝’났다는 사실을 이해시킨다. 여기서 더는 새로운 것이 없다. 물론 플레이어에 따라서는 다른 캐릭터를 사용하거나 혹은 조금 색다른 플레이 방식을 시험해 보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와 함께 해보기 위해 반복해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플레이어에게 한 번 표백의 결말(=CLEAR)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 이 사실은 코디가 제시카와 함께 돌아가는 장면을 본 그때에 명백해진 것이다. 브라이언 업튼은 게임의 플레이어를 세 가지 분류(목표 중심적 플레이, 일관 중심적 플레이, 종결 중심적 플레이)로 나눈다. 이때 종결 중심적 플레이를 ‘서사주의적 의제’로 분류하며 이들의 목표란 ‘향후의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에 이르는’ 것이라 말한다. (『플레이의 미학』, 브라이언 업튼, 에이콘, 2019) 비디오 게임이 고도화되고 다수의 서사적 매개를 담지하게 되면서 일관 중심적 플레이는 대체로 표백의 결말(=CLEAR)을 향한 목표의식과 등치되었다. 이것은 표층적 단위에서의 하나의 끝, 더 플레이한다고 해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표백’적 목표 지정이다. 물론 한 번의 CLEAR로 서사의 진위를 모두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고, 촘촘한 변곡점들 탓에 다른 방향의 서사를 즐기기 위해 루프를 감행하는 경우도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 모두 완전히 표백시키기 위한 반복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서사가 있는 비디오 게임 플레이를 암전과 표백이라는 관점에 놓고 정리한다면, 플레이어가 상정하는 완전한 표백을 위해 수없는 암전을 거쳐 가는 구조가 된다. 이때 암전은 부정적이며 불완전한 결말로서의 장애가 된다. 좀 더 명백히 하자면 표백은 매혹하지만, 암전은 매혹하지 않는다. 설령 몇 번의 루프를 더 반복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그가 원하는 것은 추가적인 표백일 뿐 추가적인 암전은 아니다. 이러한 게임 언어에서 암전을 향하는 충동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로그라이크 : 암전 충동과 표백 충동의 충돌 지점 다만 로그라이크(혹은 로그라이트)는 이 두 개의 충동이 다른 상관관계를 보인다. 이 장르는 절차적 생성, 캐릭터의 영구적 죽음이라는 두 기조를 통해 수많은 플레이를 생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매회의 플레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장애와 다뤄야 하는 기술이 일정량 상이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한 번의 암전을 경험한 뒤, 다시 게임의 내부에 들어가면 직전의 암전과 차이 있는 경험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학습한 지식은 의미 있게 작동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것들로는 돌파하기 난해한 국면이나 상황과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한 번의 표백에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로그라이크는 자신이 무한히 다른 가면을 쓸 수 있다는 사실로 플레이어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로그라이크에서의 모든 플레이는 업튼이 규정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뛰어드는 ‘눈먼 점프’와 같으며, 플레이어들은 ‘눈먼 점프’의 연속이기 때문에 즐긴다. 따라서 로그라이크는 암전의 충동을 가지는 장르다. 이 장르가 매혹의 무기로 휘두르는 무한성이란 캐릭터가 죽음을 맛봐야 작동시킬 수 있다. 플레이어는 로그라이크의 적극적 참여자가 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죽음을 스스로 즐겨야만 한다. 캐릭터의 영구적 죽음이라는 고통을 감내하며 획득해 낸 지식을 시험하기 위해, 또다시 ‘죽을 수도 있는’ 세계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특히나 이러한 암전의 지식을 수치화시키는 로그라이트는 더욱더 죽음에 능동성을 준다. 플레이어에게는 임시적 강화와 영구적 강화라는 두 개의 트랙이 존재한다. 한 번의 플레이에서 경험한 임시적 강화는 죽음과 함께 모조리 사라지지만, 그 플레이의 결과물은 영구적 강화의 재료가 된다. 이때 영구적 강화의 재료를 획득하는 방법은 캐릭터가 ‘죽는 것’이다. (혹은 게임에 따라서는 지정된 시간 동안 무사히 생존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형식의 대표 격인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를 떠올려 보자. 이 게임은 지정된 시간 동안 살아남더라도 결국 사신 형태의 캐릭터가 나타나 캐릭터를 죽여버리고, GAME OVER의 결말을 남긴다. 이후 등장한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의 유사 게임들은 대체로 이런 경우의 죽는 결말을 제거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로그라이크는 언제 ‘표백’되는가? 그저 암전의 충동으로 가득 찬 게임이라면 플레이어가 이 루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한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로그라이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로그>에도 공식적으로는 엔딩이 존재한다. 지하 22층 이하의 층에서 “Amulet of Yendor”를 습득한 뒤 다시 지상층으로 올라오면 화면에 성공을 축하하는 텍스트가 출력된다. 게임이 표백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다시금 지하 던전에 내려가겠다 마음먹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구조의 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플레이어가 <로그>에서 ‘표백의 결말’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변화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는 이 표백의 경험이 게임의 종료 시점일 수 있다. 한편, 그러한 플레이어에게는 이전까지 경험했던 암전은 매혹의 대상임과 동시에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암전의 충동을 느끼는 플레이어에게도 그 충동을 유지하기 위한 장기적인 동력이 필요했을 수 있다. 표백의 충동은 이러한 장기적인 동력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그러한 플레이어들은 표백의 충동을 해결한 뒤에도 암전의 충동을 느끼며 다시 뛰어들 수 있다. 로그라이크 내부에서 표백과 암전은 서로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하나의 충동이 다른 충동을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두 충동은 생생한 형태로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로그라이크와 서사의 문제 따라서 로그라이크에는 두 개의 결말 충동(암전과 표백)이 충돌하는 장르다. 플레이어들은 경험과 지식의 양을 늘리기 위해, 또한 그렇게 습득한 경험과 지식을 다시 활용하기 위해 끝없는 죽음(=암전)을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완결(=표백)에 이르기 위한 과정과도 같다. 이때, 앞서 말했듯이 표백을 지향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서사주의적 의제’에 해당한다. <로그>의 케이스도 게임이 제공하는 서사적 완결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암전 충동이 끝없이 들끓는 로그라이크에서 서사를 선형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로그라이크는 순환의 바깥으로 나가기를 일정량 거부시키는 장르이지 않은가. 로그라이크에서의 체험은 결코 선형적인 감각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시작된 뒤, 끝이 나기 전까지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아간다. 결국 이것을 하나의 거대한 완결 서사로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순환 그 자체를 선형적 서사의 내부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암전의 보상물로서 표백으로의 진행을 꾸준히 제공하는 <하데스>일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표백에의 충동은 보상으로만 존재하기에 암전의 충동을 건드리는 일은 없다. 따라서 양자는 서로를 위배하지 않은 채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는 이나 <서울 2033>처럼 암전에의 도전이 서사 형식의 텍스트로 진행되는 방식이 있다. 이들은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매번의 플레이에서 던지는 장애물과 도전을 서술의 방식으로 치환한다. 상황이 텍스트로 주어지고, 플레이어는 자신에게 부여된 선택지를 탐색하고 결정함으로 그 결과를 확인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하나의 선형적 서사를 완전히 이룰 수 있는지는 의문이 따른다. 모든 파편화된 상황들은 그저 단기적인 판단능력을 요하는 인카운터에 지나지 않는다. 개별의 상황 내에서는 특정한 인과가 발생하지만, 상황과 상황 사이에서의 인과는 작동하지 않는다. 선형 서사라는 것은 거시적 관점에서의 구조화된 모델을 뜻한다. 게임을 플레이한 뒤 서사를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의 플레이 경험 내에서 하나의 서사 모델로 응축할 수 있는 경험들을 선별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별의 경험들은 그것이 선형적으로 나열될 수 있는 일종의 연결점(nod)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고전적 의미에서의 플롯이 된다. 이나 <서울 2033> 등의 파편화된 텍스트들은 하나의 모델로 응축되지 않을뿐더러, 동일한 이벤트가 반복되면 서사적 가치도 상실한다.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담지하는 서술된 내용이 아니라 개별의 선택지가 가져다주는 혜택 혹은 페널티다. 물론 이 작품들에 있어서 이런 구성이 특별히 문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로그라이크의 순환 구조 내 장애물들을 의도해서 텍스트 적 형식으로 치환해 놓은 것뿐, 하나의 거시적이고 강렬히 직조된 드라마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로그라이크의 양립되는 결말 충동을 기반으로, 경험 내부에 고전적 서사를 집어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증명할 뿐이다. 또 다른 예시로서는 비주얼 노벨 로그라이크를 표방하는 <노베나 디아볼로스>가 있다. 악마에 의해 단절된 마을에 고립된 주인공은 다섯 명의 여성 중에서 누가 악마인지를 밝혀낸 뒤, 인간인 캐릭터와 함께 마을을 빠져나와야 한다. 매 플레이마다 누가 인간 캐릭터인지 무작위로 설정되며, 그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 현장 기록 역시 무작위로 배치된다. 이는 표백 충동의 내부에 변수를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도전이지만, 한 번의 플레이를 끝낸 뒤에는 서사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건이 표백화되어 버린다는 약점이 있다. 이를테면 마을로 진입하는 장면, 각 인물과 조우하는 장면, 악마에게서 현 상황을 설명받는 장면 들은 두 번 이상 조우할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요소들이다. 결국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은 ‘특정 인물이 인간일 때 서사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국한되며 이는 명백히 암전 충동을 배제한다. 따라서 게임은 플레이어의 표백 충동을 돕기 위해 거시 서사만을 확인시키는 ‘엔딩 모드’를 탑재해 이러한 충동을 제어한다. 하지만 그 순간 <노베나 디아볼로스>는 로그라이크가 가지는 양립된 충동 개념에서 크게 벗어난다. ‘공포의 세계’에서 배회한다는 것 폴란드의 pantastaz가 제작한 는 2020년에 얼리 억세스를 시작해, 2023년 10월에 정식 출시 되었다. 일본의 공포 만화가 이토 준지의 아트와 러브크래프티안적 세계관, 20세기 후반 일본의 도시 전설적 서사를 규합해 2-bit 레트로 스타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축한 본 게임은 그 분위기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스팀의 소개 페이지에는 ‘괴물과의 턴제 전투, 가차 없는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지옥 같은 로그라이트 RPG’라고 소개된 만큼 본 작품의 장르를 로그라이트로 규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말하자면 역시 표백과 암전의 두 충동 사이에서 진동하는 게임이라는 의미다. 2023년 11월 기준 게임의 평가는 7,599개의 평가를 통해 매우 긍정적으로 표시되고 있지만, 평가의 면면을 살펴보면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정적 평가를 남기고 이탈한 플레이어들을 꽤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UI의 불친절함이나 지나치게 부적절한 난이도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게임이 예상과는 다르다는 지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게임이 제공하는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편린적이라 하나로 응축되지 않는다는 평가들은 매우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의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테이블 탑 보드게임 <아컴 호러>의 디지털 스탠드 얼론 버전에 가깝다. 이를테면 행동에 따른 강제 이벤트, 능력치를 기반으로 하는 성공과 실패의 체크, 한 번의 게임 플레이에 배정되는 초월적 신의 존재, 캐릭터의 자원으로 양분되는 체력과 이성의 존재가 그러하다. 하지만 사실상 로그라이트 장르로서의 진행 양상은 큰 틀에서 을 연상시킨다. 플레이어는 랜덤하게 배정되는 5개의 ‘미스터리’를 돌파하여 마을 등대를 열 열쇠를 모아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등대에 들어가 사악한 존재의 부활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이 최종적으로 엔딩을 보기 위해 총 8개의 ‘섹터’를 진행해야 하는 것과 5개의 ‘미스터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게임 진행의 절차성에서 연결된다. 개별의 미스테리(=섹터)에서는 진행을 위해 맵이 제공되며, 플레이어는 맵에서 자신의 다음 이동 경로를 눌러 행동을 수행한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장소(=상점 등)에서 필요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장소를 탐색해 벌어지는 이벤트를 해치우고 미스터리의 마무리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무엇을 하든 사악한 존재의 부활을 알리는 ‘파멸’ 게이지가 상승하며 이 게이지가 100%가 된다면 게임은 실패한다. (이는 의 추격과 유사한 메커니즘이다.)다만 의 섹터와 의 미스터리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섹터는 아무것도 제약하지 않는 공간이다. 물론 해당 공간에 대한 기초적인 규정은 존재하며, 그 규정을 통해 등장하는 이벤트의 속성이 달라지긴 하지만 각 섹터 간의 개념적 차이는 없다. 섹터는 플레이어가 활약할 수 있는 ‘너른 공간’이며, 그 공간을 한 번 거쳐 갔다고 해서 무엇인가 ‘표백’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의 미스터리는 명백히 서사적인 개념이다. 미스터리는 도입의 서사, 진행을 위해 거쳐야 하는 장소들의 순서, 그리고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몇 가지 엔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미스터리는 공간화된 개념이 아니다. 전적으로 선형적 서사의 개념이며 이는 곧 ‘표백’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동일한 미스터리라고 해도 반복해서 도전할 때의 양상은 달라진다. 미스터리를 진행하기 위해 선택하는 ‘탐색’ 행동은 무작위적인 사건들을 가지고 오며, 이나 <서울 2033>과 마찬가지로 선택과 판정을 통해 결과가 도출된다. 하지만 앞서 이 두 게임의 형식을 통해 이야기한 바 이러한 인카운터 이벤트들은 하나의 노드로 연결되는 선형적 경험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미스터리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는 인트로와 엔딩의 늘어선 노드의 배열에 들어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여기서 미스터리를 하나의 응축된 서사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작위 인카운터들은 모두 탈각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미스터리는 어디까지나 표백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미스터리는 통상 2~4개의 엔딩을 가지고 있으며 대체로는 A 엔딩이 가장 이상적인(그러나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되지는 않는) 결말이다. 플레이어가 한 번 A 엔딩으로의 길을(혹은 플레이어에 따라 해당 미스터리의 모든 엔딩을) 확인한다면, 해당 미스터리를 통섭하는 선형적 서사를 향한 욕망을 잃어버리고 만다. 즉 그 시점에서, 미스터리는 이미 ‘표백’되어 버린 셈이다. 플레이어가 이미 특정한 엔딩을 향하는 방법을 완전히 체득하고 나면 더 이상 이 미스터리는 매혹의 힘을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는 미스터리가 기초적으로 품고 있는 서사적 개념 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작위적 인카운터가 더 중요해진다. 그렇다, 오히려 암전의 충동이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 를 플레이할 수록, 무엇인가 잃어버리는 감각과 마주한다. 강력한 아트의 힘과 모호함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미스터리들의 내용이 존재하지만, 게임의 플레이가 반복을 이룰 때마다 매혹의 힘을 점차 잃어만 간다. 그런데 애초에 본래의 미스터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본질이 감추어져 있는 일종의 퍼즐이며 그 매혹은 진위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나온다. 미스터리는 가장 강력히 표백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이며 따라서 표백에 의해 가장 빠르게 힘을 잃어버린다. 미스터리야말로 구조화된 서사의 형태를 가장 강력히 요구하는 포맷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한히 미스터리에 붙잡혀 있을 수 없다. 무한히 마주쳐야 하는 암전의 충동 앞에서 미스터리는 쉽사리 힘을 잃는다. 는 스스로가 가진 메커니즘으로 인해 가장 강력한 매혹의 힘을 퇴진시켜 버리고 마는 기이한 게임이다. 물론 공포의 매혹과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불안을 하나로 규합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실험이다. 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다는 불안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 전제되었을 때 더 강력히 기능한다. 에 무엇인가 부재한 게 있다면 바로 그 희망인지도 모른다. 미스터리들이 너무나 빠르게 표백되어 버린 세계에서 하염없이 헤매는 것은 오히려 불안하지 않다. 어쩌면 그 세계에 영원히 반복하길 바랐던 기대의 작용이, 오히려 이 ‘공포의 세계’로부터 쉽사리 빠져나오게 만든 것은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 Back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10 GG Vol. 23. 2. 10. 〈프린세스메이커〉라는 게임을 아는가? PC용 게임으로 시작하여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이 게임은 1991년 최초로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해낸 게임이다. 이 새로운 장르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귀엽고 밝은 ‘소녀’다. 게임을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의 딸을 다양한 방식으로 육성시킬 수 있다. 물론 딸이 ‘프린세스’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이 시작되면 우리는 우리가 짜놓은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밝게 웃어주는 딸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아마도 이후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가 연이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게임 플레이를 통해 발생하는 딸과의 다양한 정서적 감응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이머들은 플레이를 통해 딸과 대화를 나누기도, 바캉스를 즐기기도 하며 8년동안 자라나는 딸에게 애정, 슬픔 혹은 (내가 원하는 엔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 등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감정의 발생은 게임의 이야기 진행 방식이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게이머에게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게이머는 적어도 마우스를 클릭하는 등의 아주 작은 행동을 통해, 게임의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는 우리가 행위하고 조작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나 ‘친밀감’과 같은 정서적 교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그러나 나는 이 게임이 재밌으면서도 어딘가 불편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게임 안으로 들어간 게이머인 ‘나’는 내가 사회적으로 주체화한 성별과는 무관하게 딸이 ‘아버지’라 부르는 걸 묵과해야했던 경험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린세스메이커〉는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딸을 키우는’ 게임이다. 내러티브상으로는 여성 게이머를 고려하지 않은 ‘남성적’ 게임이었다는 의미이다. 여성 게이머는 게임 밖에서는 여성이지만 게임 안에서는 ‘딸을 잘 키워 왕자를 만나도록 애쓰는 아버지’로 남아야 하는 것이〈프린세스메이커〉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의 역설이다. 심지어 〈프린세스메이커〉의 엔딩 중 하나엔 그 딸이 아버지와 결혼을 원해 아내가 되기도 한다. 아니 내 딸이 나(시스젠더 여성+남성애자)와 결혼을 원하다니. 이 얼마나 이성애-전복적인 상황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프린세스메이커〉를 통해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접했던 많은 여성들이 이미 이 당시 탈이성애를 경험하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 딸이 자라면서 다양한 경험을 시도하는 것(다이어트를 하거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풍류환을 먹고 가슴이 커진다던가 하는)이 나 자신을 대상화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이 시리즈가 묘하게 불편해졌다. 그렇게 10대가 가고 20대에 접어든 나는 2007년 우리나라의 몇몇 아마추어 여성 게이머가 〈프린세스메이커〉의 성역할을 전도시킨 일종의 패러디 게임 〈어이쿠 왕자님∼호감가는 모양새〉 (이후 〈어이쿠 왕자님〉)를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블로그를 통해 접했다. 이 게임은 딸이 아닌 아들을 키우는 형식이고, 게임 속 주체를 아버지/어머니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이쿠 왕자님〉은 단순히 〈프린세스메이커〉 패러디로서의 특성만 갖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인디문화의 속성을 공유하는 게임인 동시에 남성 동성애물을 표방한다는 의미의 동인(同人)게임 1) 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이 게임이 PC 게임으로 발매되고 드라마시디까지 제작되는 걸 보면서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을 찾기 시작해 논문을 썼다. 그게 무려 15년 전이다. 그런 〈어이쿠 왕자님〉이 2023년 크라우드펀딩으로 다시 돌아왔다. 심지어 펀딩율 1200%를 달성하고, 오디오 드라마까지 풀로 착장한 채. 〈어이쿠 왕자님〉은 단순한 인디/BL 게임으로 호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어이쿠 왕자님〉과 〈프린세스메이커〉의 첫 번째 차이점은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의 커다란 틀로써 작용하고 있었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변용하여 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 게이머의 젠더 트러블 요소로 작용했던 '아버지 되기'에서 선택적 사항을 더한 것으로 '아버지 혹은 어머니'되기를 통해 여성 게이머로서 느낄 수 있었던 젠더 트러블적 요소를 제거하여 여성 게이머의 주체성을 부각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어이쿠 왕자님〉은 〈프린세스메이커〉가 가진 남성적 요소들을 제거하여 원작과는 다른 의미를 게이머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남성적 요소들이란 남성 게이머가 〈프린세스메이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요소, 즉 여성을 보는 대상으로 하며 남성의 시각을 주체로 하여 얻는 쾌락적 요소를 말한다. 〈어이쿠 왕자님〉은 〈프린세스메이커〉를 〈프린세스메이커〉로 전복시킴으로써 여성 게이머들에게 보는 대상을 남성으로 치환시키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원작이 가진 의미를 완전히 전복한 것으로 남성을 위한 게임에서 여성을 위한 게임으로 의미화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린세스메이커〉와 〈어이쿠 왕자님〉이 지닌 가장 큰 차이점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차이점을 복합적으로 변용하여 이성애적인 젠더체계의 틀을 벗어나 남성 성장서사를 남성 동성성애 서사로 패러디 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이쿠 왕자님〉은 부성애와 모성애가 선택적으로 존재하는 게임적 장치와 더불어 남성동성성애의 서사로 패러디함으로써 당시 소수였던 여성 게이머들뿐만 아니라 이를 플레이하는 게이머 모두에게 원본과 원본을 넘어서는 패러디의 의미를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게 했다. 인디게임이 일반적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 주류문화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난 게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어이쿠 왕자님〉 인디게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인디게임의 생성 동기와 존립 근거가 새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면 〈어이쿠 왕자님〉이 가지고 있는 새로움-창조성은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인 기회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그 구조내의 행위자와의 충돌, 그리고 그러한 충돌 과정에서 정체성을 생성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의 변화와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면서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적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쿠 왕자님〉을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은 기존의 사이버 공간에서 이미 원본을 동성성애화하여 패러디한 2차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던 세대였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기존의 텍스트 부분 및 내용이나 형식을 변형하고 확대하며 생략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콘텐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데 익숙했던 것이다. 특히 게임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생산이 제한된 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의 지속적인 생산경험을 통해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이 게임 유통과 생산 과정에 진입이 가능하다는 생산자적 자율성과 창조성을 획득하여 〈어이쿠 왕자님〉이라는 게임을 생산해낸 것이다. '인디 집단'자체가 수년간 축적해둔 일상적 생산적 주체의 경험은 고착화된 구조나, 단계가 아닌 잠재적으로 단순한 수용자, 게이머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진화를 통한 창조적 생산자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특히 게임이라는 매체는 실제와 허구 사이의 경계가 붕괴되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게임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새롭게 자기표현을 찾는 능동적 생산자를 관객으로부터 유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몰입하고 플레이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실제 본인의 성별과 상관없이 스스로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만들고, 억제된 욕구 표현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만들며 주체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젠더를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생물학적 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성들은 앞서 논의한 다양하고 새로운 주체를 경험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어이쿠 왕자님〉에는 풍자와 익살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게임의 배경은 시공간이 모호한 중세 판타지 풍의 바이케 왕국이다. 바이케 왕국을 거꾸로 읽으면 게이바다. 또한 바이케 왕국에 내려오는 전통춤으로는 바닥에 꽂힌 길다란 봉 주위를 돌며 추는 매우 관능적인 춤이라 할 수 있는 'bar dance'(봉춤)이 있으며, 정기적으로 국가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현재 왕위는 노므헨 국왕이 갖고 있으며, 왕족 '맨슨(이명박)'이 등장하여 해저도로를 건설하자고 굳건히 이야기 하는 이벤트는 당대의 정치상황을 절묘하게 패러디 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어이쿠 왕자님〉의 패러디 요소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존의 패러디의 의미를 더욱 확장시킨다. 패러디의 성립조건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전복과 치환, 다른 의미 담기를 통해서 단순하게 익살과 풍자의 모방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어이쿠 왕자님〉은 기존 텍스트의 담론적 권위나 지위에 의존하여 기존 텍스트의 의미체계와는 전혀 다른 의미체계를 지니는 새로운 텍스트를 생산한다. 패러디 기법인 '낯설게 하기'는 기존 텍스트의 병치, 재구성, 해체를 이용한 담론효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이는 보이는 대상에서의 보는 주체로의 여성, 이성애중심의 젠더체계의 전복이라는 이중적 패러디를 생산하면서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이중적 패러디는 모방의 한 형식이지만 동시에 패러디된 작품을 희생시키지 않는 다는 점에서, 그리고 '차이'의 창조성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유희적이고 해체적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이라도 말할 수 있다.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1) 현재는 동인이라는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고, BL(Boys’ Love)이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인은 사실 일본에서 수입되어 처음에 ‘동인지’라는 소수의 문인들이 창작 활동을 위해 만든 문예잡지에서 유래되었다. 그 이후 한국에서 동인은 아마추어라는 뜻을 강하게 내포하게 되었고, 주류 콘텐츠가 될 수 없었던 남성동성애서사 또한 동인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잡게 되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인터뷰] 구독 서비스가 게임에 가져올 변화: 스튜디오 사이 유재현 대표
넷플릭스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에 기꺼이 구독료를 내고 영상물을 시청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넷플릭스와 같은 게임 구독 서비스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게임 구매와 다운로드 형식이 ‘구독 서비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은 글로벌 게임 업체인 소니와 닌텐도였다. 지금은 애플까지 합세해 게임 구독 서비스를 둘러싼 플랫폼 경쟁이 점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게임 구독 서비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게임 구독 서비스가 기존의 게임 구매나 다운로드 형식을 대체하게 된다면, 이러한 유통 방식의 변화는 게임 텍스트에 어떤 영향을 줄까? < Back [인터뷰] 구독 서비스가 게임에 가져올 변화: 스튜디오 사이 유재현 대표 09 GG Vol. 22. 12. 10. 넷플릭스의 성공은 미디어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넷플릭스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에 기꺼이 구독료를 내고 영상물을 시청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넷플릭스와 같은 게임 구독 서비스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게임 구매와 다운로드 형식이 ‘구독 서비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은 글로벌 게임 업체인 소니와 닌텐도였다. 지금은 애플까지 합세해 게임 구독 서비스를 둘러싼 플랫폼 경쟁이 점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게임 구독 서비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게임 구독 서비스가 기존의 게임 구매나 다운로드 형식을 대체하게 된다면, 이러한 유통 방식의 변화는 게임 텍스트에 어떤 영향을 줄까? 구독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임 개발자는 게이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게 될까? 혹시 구독 서비스는 게임 개발자에게 또 다른 고민을 얹어주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게임 구독 서비스는 비단 산업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생산자(개발자)와 수용자(게이머) 모두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질문들을 품고 편집장은 게이머이자 1인 개발자인 스튜디오 ‘사이’의 유재현 대표를 만나고 왔다. 편집장: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걸어오신 행보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유재현 대표: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사이’(Studio Sai)의 유재현입니다. 저는 VFX 아티스트와 테크니컬 아티스트(Technical Artist)로 디즈니, 라이엇, 댓게임컴퍼니, 그리고 애플 등에서 일하다 현재 스튜디오 사이를 창립했습니다. 현재는 1인 개발자로 ‘이터나이츠(Eternights)’를 만들어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편집장: 게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여쭤보겠습니다. ‘이터나이츠’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 게임을 독자분들께 한두 마디로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유재현 대표: 예. 간단히 말하자면, 데이팅 액션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집장: 데이팅 액션 게임이요? 유재현 대표: (하하) 다들 데이팅 액션이라 하면 그렇게 반응하시더라고요. 근데 말 그대로 정말 데이팅 액션 게임이고요. 조금 더 설명해드리자면, 10대 청소년들이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살아남으면서 데이팅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살아가는 소년 성장물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스튜디오 ‘사이’에서 개발중인 데이팅 액션 게임 ‘이터나이츠(Eternights)’ 편집장: 방금 말씀해주신 게임인 이터나이츠는 어떤 플랫폼에서 출시를 생각하고 계실까요? 1인 제작자 입장에서는 어떤 플랫폼에 어떤 방식으로 유통시킬 것인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유재현 대표: 이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신경 쓸 게 많아지기는 했어요. 플랫폼마다 버튼 레이아웃이 달라지기도 해서 그런 걸 신경 써야 하기도 하고요. ‘이터나이츠’는 작년 말쯤에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콘솔 독점작이 됐어요. 콘솔로는 플레이스테이션만 나갈 예정이고요. 그리고 PC로는 스팀(Steam)하고 에픽 스토어(Epic Games Store) 이렇게 두 군데에 출시하게 될 예정입니다. 편집장: 사실 1인 개발자로서 게임을 제작하고 출시하는 입장에서 이전하고 많이 다른 게 있다면 구독 서비스잖아요. 예전에는 게임을 출시할 때, 게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온라인 마켓인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로 올리거나, 프리 투 플레이(Free To Play)를 하게 하되, 인앱(In-App) 결제를 통해 수익을 낸다가 있었는데 구독이라는 개념은 너무 다르잖아요. 구독 서비스를 통해서 이터나이츠를 출시하게 된다면, 게임 내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유재현 대표: ‘구독 서비스로 출시해 보겠냐’는 제안이 오면 엄청 좋을 것 같기는 해요. 근데 걱정이 들기도 하겠죠. 지금 만들어 놓은 이 게임의 경우는 보통 돈을 지불하고, 그만큼의 시간을 들이겠다고 어느 정도 결정한 사람들이 시작하게 되잖아요. 그 플레이어들이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페이스가 있을 테고. 게임의 호흡도, 예를 들어서 지금 저희 게임은 신나는 액션이 처음 등장하는 타이밍이 게임 플레이하고 7~8분 후 정도예요. 이런 식으로 게임 유저들을 세계관 안으로 좀 더 끌어들인 다음 액션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했는데, 구독 서비스로 출시된다고 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첫 액션까지 그렇게 기다리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아마 2, 3분? 그것도 루즈할 것 같아요. 심지어는 한, 45초 안에 뭔가를 보여 주는 식의 인터랙션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구독 서비스를 하면, 지원되는 게임이 많으니까 여러 가지 선택지가 열리잖아요. 이 게임 잠깐 하고, 다른 게임 할 수도 있는 거고. ‘찍먹’이라고 하죠? ‘찍먹’ 해도 돌아올 만큼의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호불호의 영역이고요. 그러니까 대중들이 짧은 시간 안에 게임을 오래 플레이할 수 있도록, 그런 장치들에 신경 쓰는 세세한 디자인이 가장 필요하겠다. 아마 그런 쪽의 고민이 가장 많이 들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럼 기존의 게임이 플레이스테이션 플러스 같은 구독 서비스로 출시되면 게임 콘텐츠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유재현 대표: 그건 잘 모르겠어요. 방금 전에는 인스톨하지 않은 상태로 구독 서비스로만 플레이하는 게임의 경우를 말씀드린 거거든요. 근데 인스톨이 전제된 구독이라고 해도 좀 신경 쓰이긴 하겠어요. 구독 서비스라고 하면 아무래도 플레이 초반에 들어가는 큰 액션들에 확실히 신경 쓰고, 앞부분을 좀 더 타이트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리얼 타임으로 플레이어가 빠르게 해야 하는 것들을 많이 추가하고, 플레이어를 붙잡아 둘 수 있게 즉각적인 리워드를 준다거나. 어떻게 보면 선정적인 부분이나 잔인한 부분 같은 게 많아지지 않을까, 하고 좀 조심스럽게 예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네마틱한 비주얼 요소들이 분명 초반부에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편집장: 한편으로는, 게임이 갖고 있는 특수성 중 하나로 상호적인 교류가 있잖아요. 이것들이 구독 서비스에서는 조금 다르게 나타날까요? 유재현 대표: 저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메카닉적인 부분이 달라지는 만큼 게임을 어필하는 방식이 기존과는 달라져야 하는 것 같거든요. 좀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제가 그런 상황에 놓여서 게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면 리액션 측면을 풀어야 하는 과제처럼 받아들일 것 같아요. 편집장: 게임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그런 결제 서비스에 영향을 받는 게 굉장히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게임이 원래 보여 주고자 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그걸 수정해야 하니까요. 결제, 구독이라는 게 애초에 게임 텍스트 외부 원인이기도 하고요. 만약 구독 서비스 때문에 게임을 수정해야 한다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크실 것 같습니다. 유재현 대표: 아쉬움보다도, 어떻게 보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따라가야 하는, 배워야 하는 흐름 같기도 해요. 꼭 게임에서의 구독 서비스 때문이 아니고 모든 매체나 모든 콘텐츠가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아요. 한두 장 넘기고 더 읽을지, 안 읽을지 결정할 수 있는 독서 플랫폼이 있는 것처럼? 게임 플레이어가 게임 도중에 리턴 하는 건 정말 자기 마음이잖아요. 결국 유저를 사로잡는 건 제작자의 역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까 일종의 ‘훅’을 초반에 잘 넣는 게 필요한 것 같고요. 플랫폼 변하는 만큼 저도 이것저것 배워 나가야겠죠. 편집장: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런 변화가 게임만의 변화가 아니기는 해요. 텍스트 디자인의 요소가 포함되는 영역에서 이런 변화가 많이 발견되는 것 같고요. 그런데 말씀 듣다 보니까, 제작자 말고 게이머로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좀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게임의 경우는 제작자가 가상공간을 만든다는 인식이 강하기도 하고, 현실과는 독립적인 ‘만들어진 세계’로 오랫동안 생각되어 왔잖아요. 그런데 부분 유료 결제나 구독 서비스가 등장하게 되면서 게임이 완전히 독립적인 세계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용자들도 그런 부분에 대한 반감이 큰 상황이고요. 구독 서비스를 사용해 보셨나요? 유재현 대표: 저는 구독 서비스를 써 본 적이 없어요. 애플만 잠깐 써 봤고, 아직까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구매해서 플레이하는 게 익숙한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럼 또 궁금해지네요. 구독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아시는데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 이유가 있을까요? 유재현 대표: 저는 약간, 게임을 소유하는 게 좋아요. 확실히. 피지컬이든, 디지털이든. 얼마 전에 한국 들어갔을 때에도 게임 타이틀을 한 70개 사 왔어요. 그동안 사고 싶었던 것들이에요. 단순히 ‘게임 산업이 잘 되어야 한다’ 이런 의견 때문이 아니라 정말 개인적으로 갖고 싶어서요. 재미있어 보이면 가지고 싶어요. 물론 플레이 하면서 리턴 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아무튼 저는 마음에 들면 피지컬로 가지고 싶고, 좋아하는 게임은 소유하고 싶고 그래요. 편집장: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경우도, 이번에 플레이스테이션 5를 출시하면서 디지털 에디션을 따로 만들었잖아요.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스팀 이후에 ESD 플랫폼이 보편화되고 나서는 ‘소유’의 개념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온라인에서, 디지털 계정에 게임 플레이 권한을 가지는 걸 소유로 보기도 하고요. 두 가지 소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재현 대표: 저는 온라인 소유도 소유라고 봐요. 디지털도 많이 소유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구독은 뭔가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구독이라는 게, 내가 확실한 개런티를 가지는 게 아니기도 하고, 좋아하는 게임이 언제든지 구독 클러스터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마치 제가 좋아하는 물건을 항상 누군가에게 맡겨 놓은 상태? 그 느낌이 싫은 것 같아요. 편집장: 말씀하신 걸 생각해 보면 구글, 애플과 플레이스테이션 앱의 차이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라이트하고 캐주얼한 게임이냐, 아니냐의 문제? 애플 아케이드는 하이퍼 캐주얼에 가까운 게임들로 구성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게임들은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좀 떨어지지 않을까요? 유재현 대표: 저는 갖고 싶다는 감정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경험이나, 경험의 무게랑 관련된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그 무게가 스토리의 유무로 많이 갈리는 것 같고요. 게임을 플레이하고, 게임 스토리에 정말 공감하면서 그 게임 안에 살아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러면 되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되겠죠. 아무래도 저는 게임이 얼마나 라이트하든 게임하면서 유의미한 감정적 울림 같은 걸 느끼면 피지컬 카피라도 갖고 싶거든요. 물론 사람마다 너무 다르겠지만. 아무튼 게임은 상품이고, 그러다 보니까 입소문에 의해서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주변에 영업하게 되는 가장 큰 동기 중에 하나가, 게임 플레이하면서 느끼는 감정적인 흔들림인 것 같아요. 그걸 만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툴 중 하나가 스토리라고 생각해서 그쪽에 집중하게 되고요. 이런 요소들이 있다면 저는 기꺼이 피지컬 카피라도 살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럼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북미에서 개발을 하고 계시다 보니 주변에 다른 개발자들도 있으시잖아요. 그분들과도 구독 같은, 어떤 유통 플랫폼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시나요? 유재현 대표: 하긴 해요. 그런데 자기가 포커스 하는 시장이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금 게임 시장이 크고, 플레이어 풀이 엄청 크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들 자기 취향에 맞는, 자기 스타일의 게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 같아요. 다들 자기 취향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나 같은 사람이 많겠지, 내가 좋아할 만한 게임을 만들면 이 정도 되는 플레이어들 중에서 이걸 할 만한 사람이 어느 정도 확보되기는 하겠지’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편집장: 제작자로서, 혹은 이용자로서 느끼시는 한국과 북미의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한국형 MMORPG라고 부르는 게임들, K-게임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잖아요. 페이 투 윈(Pay to Win)이 강한 게임들. 북미에서는 이런 게임들이 대세가 된다거나, 그런 분위기라는 게 있을까요? 유재현 대표: 아무래도 여기는 좀 더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의 경우는 유저들이 불만이 쌓이거나, 하면 이슈가 되잖아요. 커뮤니티에서 많이 회자되는 메인 이슈랄 게 있고. 그런데 여기는 ‘아, 저쪽에서 저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으로 보고 넘기는 분위기예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없어요. 사람이 많아서일 수도 있는데, 확실히 다양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편집장: 한국은 페이 투 윈이 주류가 되다 보니까 게임 관련 이슈가 더 크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북미는 풀이 다양해서 독점적인 모델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듣다 보니 생각하게 되는데, 북미가 그런 상황이라면 구독이라는 서비스가 새로 생기더라도 확실히 한국이랑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겠네요. 애플 아케이드 같은 건 어때요? 북미에서는 많이 결제하나요? 유재현 대표: 많이는 아닌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3개월 구독하고 끊었는데, 구독한 이유도 독점작 때문이었어요. 독점작이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편집장: 그러면 제작자 입장에서 구독 서비스가 충분히 어드벤티지가 있는 시장 플랫폼이라고 보시나요? 어떨까요? 유재현 대표: 주변 개발자 스튜디오들 보면, 구독 서비스로 게임을 서비스하게 되면 일종의 미니멈 개런티를 받는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미니멈 개런티를 받고 게임을 팔게 되는 거잖아요. 그걸 받고, 플레이 시간이 3만 시간 이상 축적되면 다른 방식의 개런티를 받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되면 아까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던 ‘초반에 플레이어 사로잡기’, 이건 첫 번째 관문이겠죠.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느냐, 얼마나 오래 플레이하느냐에 따라서 게임의 가치가 정해지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구독 서비스에 좀 회의적인 편이에요. 구독 서비스를 통해서 게임을 출시한다고 하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내가 만들고 싶은 방식의 인터랙션이나 호흡에 신경 쓰는 것보다도 플랫폼 성향에 맞춰서 자극적인 게임을 디자인하는 게 중요해지는 것 같거든요. 제작자들도 다 먹고 살려고, 정말 죽기 살기로 게임을 만드는 건데 게임 가치가 그런 식으로 정해지게 되면 아무래도 이전에 느꼈던 감성적인 게임을 재구현하거나 창조하고 싶다기보다는 스킬, 비주얼, 이런 자극적인 디자인을 우선시하게 되겠죠. 편집장: 지적하신 문제는 획일화에 관련된 것 같아요. 결국 구독 시장 안에 들어가서 다른 콘텐츠와 시간 점유 경쟁을 벌일 때 유리한 게임이 구독 서비스 내에서는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유재현 대표: 예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런데 저는 좀 다른 고민도 있어요. 구독 서비스 게임들은, 아무래도 유저 입장에서는 한 달에 정액을 내기 때문에 게임을 굳이 오래 할 필요가 없다고 인식되기 쉽잖아요. 그러면 너무 라이트한 게임들만 남게 되지 않을까? 아까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는 게임들은 최소 플레이 타임을 할애해야 하고요. 이런 게임들은 초반에 확 끌어당기는 요소들을 보여 주지 못하면 끝까지 플레이하기 힘든 게 사실인데, 앞부분이 잔잔해야 절정 부분의 임팩트가 큰 게임들은 구독 서비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유재현 대표: 힘들죠. 사전 정보가 없으면 진짜 힘들죠. 이 게임 끝까지 하면 분명히 가치가 있다는 걸 아니까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정보가 없으면 비주얼로 정말 휘어 감든지, 아니면 메카닉이나 스토리로 휘어 감든지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웹소설이나 웹툰이 딱 비슷한 예시인 것 같은데, 한 화만에 구독자를 휘어잡는 게 필요하니까요. 그 정도의 자극적인 시작 부분이 게임에서도 필요할 것 같긴 해요. 편집장: 어떻게 보면 구독 결제의 대표적 사례로 웹소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제목에서 다 보여 주고요. ‘만렙 전사가 이세계로 가다!’ 이런 식으로요. 게임에서도 네이밍이 그렇게 중요해질까요? 유재현 대표: 비슷한 현상은 충분히 있을 것 같아요. 제목뿐만 아니라 타이틀 이미지도 그렇고, 마치 유튜브나 스팀에서 타이틀 이미지, 썸네일 구경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사람들이 써 놓은 디스크립션의 첫 부분을 많이 보게 되니까, 딱 라이트 노벨 제목처럼 정보가 많이 압축된 홍보가 필요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편집장: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라이트한 게임들이 구독 서비스와 잘 어울리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구독 서비스가 헤비 게이머를 위한 서비스가 아닐 수도 있겠어요. 유재현 대표: 맞아요. 또 좀 헤비 게임을 즐기는 분들은 플랫폼별로 카피를 갖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엑스박스용, 플러스용, 스위치용, 이런 식으로. 필연적으로 스토리가 길어지는 게임들은 애플 아케이드 같은 구독 서비스랑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거랑 반대로 좋은 예가 있는 게, itch.io ( https://itch.io/)라는 플랫폼이 있거든요.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해 볼 수 있는데, 정말 훌륭한 내러티브 구성으로 15분 남짓이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들이 몇 개 있었어요. 그런 게임들은 구독 서비스랑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런 게임만 묶어 놓은 구독 서비스가 있다면 무조건 할 것 같아요. 편집장: 말씀하신 것처럼 구독 서비스를 통해서 게임을 제공하게 되면 사람들의 주목도를 끌기 위해서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지겠죠. 마케팅 부서나, 퍼블리싱이나, 이런 일을 함께해 줄 담당자가 없는 1인 개발자에게는 수익 측면의 고민이나 부담도 생길 것 같아요. 노동 강도와 수익이 정비례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유재현 대표: 아직은 조금 판단하기 힘든 것 같아요. 확실히 툴은 더 좋아지고 있고, 이전에 비하면 게임 개발도 훨씬 수월해지고 있거든요. 물론 잘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에 스킬을 계속 쌓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개발 자체가 수월해진 게 크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마케팅 같은 것들은 힘들기야 하겠지만, 한 번 하면 또 익숙해질 거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편집장: 그렇군요.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하태현 문화와 역사, 종교와 게임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게임을 즐깁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궁리하며 살고 있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이민주 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버튼 읽기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게이밍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이현재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게이밍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게임에서 고통과 피로는 어떻게 사회적 재현이 되어왔는가?: 게임의 스트레스 재현과 스토리지의 관계에 대한 간략한 역사 고통과 피로로서 게임에서 재현한 스트레스는 UI를 통한 연장된 체현을 넘어 시뮬레이션으로 적극 활용된다. 이는 무엇보다 시뮬레이션으로서 높은 품질의 몰입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게임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어떤 세계로 그 시뮬레이션을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버튼 읽기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버튼 읽기 [공모전]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게임 관계자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게임에서 레벨 디자인은 게임이 담고자 하는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저가 어떻게 게임을 경험하고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세계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수많은 논쟁과 악습을 생산했음에도 <리니지2>(엔씨소프트, 2003~)의 레벨 디자인을 비난할 방법은 많지 않다. 물론 일부 플레이어로부터 <리지니2>의 레벨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게임업계의 악습으로 고착된 사행성 기반의 ‘착취적 BM’이 자라나는 초석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되려 엔씨소프트가 지난 10년간 ‘BM 연구’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에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지적에 가깝다. 그만큼 레벨 디자인은 게임 콘텐츠의 성패를 넘어, 게임 자체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임윤혁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해서 현실을 그렇게 사는지, 현실이 그래서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구)이과생, (구)경제학도, (현)게임기획자. 즐기며 때떄로 배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임윤혁 임윤혁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해서 현실을 그렇게 사는지, 현실이 그래서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구)이과생, (구)경제학도, (현)게임기획자. 즐기며 때떄로 배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제일 더운 7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과,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회차를 맞이한,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 Alan Wake 2 – The brilliant sequel to a cult classic
Before we delve a bit deeper into the Dark Place that has Alan trapped, I shall talk more about the developers of the Alan Wake series, Remedy Entertainment (henceforth Remedy), and their impact on Finnish games industry. < Back Alan Wake 2 – The brilliant sequel to a cult classic 15 GG Vol. 23. 12. 10. ***You can se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6aa6690-bf8c-4d72-ab97-33b03e4db055 Alan Wake 2 . The long-awaited sequel to the 2010 game that follows the protagonist of the same name, Alan Wake , who is a bestselling crime fiction author. The first game takes place in a fictional city of Bright Falls in the northwestern United States of America. Alan suffers from the infamous writer’s block and decides to travel for a vacation to Bright Falls with his wife Alice. They end up residing in a cabin on an island in the middle of a lake. However, after a nightmarish evening and a fight with his wife, Alan wakes up in a car he does not remember driving off road, or how he got there. The locals tell Alan that there has not been cabin in the lake for decades, and this marks the beginning of the spiralling story where Alan tries desperately to find his wife. Things get complicated when hallucinations and events of a book he does not remember writing start to come to life around him. Alan Wake 2 continues the story of the writer who has been trapped in an alternative dimension for over a decade navigating a warped version of New York City. He attempts to escape back to reality by writing a story involving an FBI agent Saga Anderson, the second protagonist of the game. Saga’s story takes place in the very same Bright Falls. Things turn to worse when different versions of Alan work against him and it is up to the writer to destroy them before they inflict too much damage and terror in the real world. Both games belong to the genres of third-person shooter and survival horror, somewhere between Resident Evil series and Silent Hill series in its tempo and pacing with action scenes. Before we delve a bit deeper into the Dark Place that has Alan trapped, I shall talk more about the developers of the Alan Wake series, Remedy Entertainment (henceforth Remedy ), and their impact on Finnish games industry. Remedy Entertainment – from Death Rally to first Alan Wake Remedy is a Finnish powerhouse with multiple massively popular game franchises and releases. With first game published all the way back in 1996, Death Rally , Remedy has been very well-known developer in Finland and globally. What really helped Remedy to become so powerful could be attributed to luck to some degree, but even more should be attributed to their ambition to push not only the gaming as experience but themselves with design decisions. The lucky part? Death Rally was published by Apogee (later 3D realms ) who also published Duke Nukem 3D around the same time. The popularity of Duke Nukem 3D helped Remedy to be part of a big publisher to ensure the future of the company. Death Rally managed to sell over 100 000 copies in the late 1990s, and that was more than enough to pave way for the next chapter for Remedy , Max Payne . Max Payne was released in 2001 and was the first massive international success for a Finnish game development team and truly started the shift of working on games from being “just for the nerds” to “a career to be taken seriously”. Max Payne is most known for its film noir style of storytelling and setting, but even more Max Payne is known for its “Bullet Time” mechanic where player can slow time and aim faster than their opponents. In 2002, Remedy sold the rights to the game series to Take-Two Interactive for ten million dollars, while Rockstar Games would publish the sequel The Fall of Max Payne in 2003. The games have sold reportedly over eight million copies, further ensuring the legacy of Remedy and Max Payne as the important events in Finnish game industry. With the tonal change and de-stigmatization regarding video games, more opportunities started to rise for those interested in studying and making games. There have been video games as topic for courses and classes in higher education institutes (HEI) in Finland ever since 2003 with multiple HEIs offering degree programmes focusing on video games at all levels from Bachelor’s to Master’s and all the way to doctorate degrees. The success story of Remedy is not the only catalyst for video games and gaming becoming so permeated in everyday life in Finland, but it is the first one to gather sizeable international attention. The history of video game industry in Finland goes back to the 1980s when hobbyism towards programming and the rising popularity of game consoles, and later in the 1990s Personal Computers (PC), gave birth to the “demoscene” (computer art subculture) that is still active. Programmers turned their hobbyism and experiences partaking in demoscene into a business. The very first development groups that started from demoscene with successful games are Bloodhouse (known for their Stardust and Super Stardust games) and Terramarque , who fused later to Housemarque . Housemarque is still going strong as their latest game, Returnal (2021), has been a commercial success. Further success stories from game companies, such as Remedy and Housemarque , have ensured that game industry, education, hobbyism, demoscene and gaming as career are still surging onwards with no end in sight. After Max Payne , Remedy spent time to develop new game ideas and after two years in 2005 Alan Wake was born. Microsoft Game Studios was chosen as the collaborator. The game was finally published in 2010 for Xbox 360, and somewhat later in 2012 for Windows PCs. Alan Wake did not sell as many copies initially as expected, but the game has since sold over four million copies and has become a cult classic in survival horror genre. In many ways Alan Wake was intended to be the opposite of Max Payne as Remedy wanted Alan’s story to focus more on the narrative and atmosphere than action. Not only that, but Max Payne was a cop which is suitable career for action, whereas Alan as an author is rather atypical choice. Further, the first Alan Wake is structured like a television program with episodic storytelling and progression. Remedy has said that they felt Alan Wake to be first season with the downloadable content to work as a bridge to what lies beyond the conclusion of the game. After Alan Wake – from 2010 to 2023 In retrospective it might be easy to say that Alan Wake was impactful enough to warrant a sequel soon after its release in 2010, but metrics that mattered to the publisher, namely sales, weren’t enough to justify a direct sequel at the time. Further, Microsoft reportedly wanted a new intellectual property (IP) focusing on interactive storytelling. So, back to the drawing board for Remedy to start the process from the scratch. In 2013 Remedy announced Quantum Break to be released in 2015 but was delayed avoiding competition with exclusive games set to be released for the Xbox One only. Quantum Break shifted the focus from dark and harsh environment to a cleaner science fiction where events take place in the 2010s. Quantum Break is about a time travel experiment gone wrong bringing a growing fracture in time while an existence threatening the end of the world looms around. The protagonist must use their time control abilities to prevent that. As is the case with previous games from Remedy , the game is also third-person shooter with further focus on action than Alan Wake . Remedy advertised Quantum Break as an “entertainment experience” and “transmedia action-shooter video game and television hybrid”. This means that Quantum Break incorporates a live action television show to be watched at certain points during the game play, called “junction points” in-game. The television show reflects the choices player makes and sets the stage for the next episode in the game. The gambit of doing two side-by-side productions for the same entertainment artefact paid off as the game received positive reception with its story, gameplay, visuals, and the performances of actors being praised. However, the inclusion of television show to be so closely interacting with the game was something that garnered rather mixed opinions. But that is the price to pay when you truly push the creative boundaries which Remedy is known for. Quantum Break was the best-selling new IP published by Microsoft during Xbox One console generation until it was eventually broken two years later by Sea of Thieves . After Quantum Break , Remedy separated from Microsoft and had their initial public offering (or stock launch) in 2017. The publishing rights to Quantum Break are still owned by Microsoft , but Remedy acquired the publishing rights to Alan Wake from Microsoft in 2019. The first new IP after this decade long partnership with Microsoft was a project called P7. At the same time Remedy announced that they were developing a story mode to the sequel of Crossfire by Smilegate . This shift in company practice from a partnership deal to a publicly owned company meant that project P7 needed to be developed more efficiently and in shorter amount of time to prevent the delays and inflation of the development costs. Alan Wake took seven years to publish and Quantum Break five years. Remedy managed yet another success story by completing the project P7 in three years. This project has become known as Control (2019). Control shifts the focus again, but this time the shift happens in how the game world reacts around the player rather than tonal change in story telling. Control focuses on the protagonist, Jesse Faden, exploring the paranormal headquarters of a secret U.S. government agency Federal Bureau of Control (FBC), called the Oldest House. Jesse is the new Director of the Bureau and must utilize various abilities and interact with the environment to defeat enemy only known as the Hiss that has invaded and corrupted reality. FBC studies Altered World Events and collects Objects of Power from these events inside the Oldest House, which itself is an Object of Power. The Game starts with Jesse arriving to the headquarters to seek answers related to her brother after a prior event in their youth that led to the brother being kidnapped and an Object of Power claimed by the FBC. It is up to Jesse to prevent the spread of the Hiss outside the Oldest House, understand what Hiss’ aims are and where her brother is. The town where she lived with her brother was called Ordinary. Control , like so many previous titles before by Remedy , was met with a commercial and critical success with its storytelling, world building, audiovisual presentation and the characters being praised. Even though Control has its contained story, literally in more than one way, its world is shared by a certain writer trapped in their own Dark Place, after all. The plunder of CrossfireX Before the massive success of Alan Wake 2 gets the spotlight it much deserves, there is one very, very important lesson Remedy had to learn from. That is the development of the story mode to the CrossfireX (2022) that Remedy worked on since 2016 as another project alongside Control . Short story short, Remedy missed the mark with the story mode massively even after that long time in development with reviews reporting bad pacing and tempo and shallow characters. Essentially many other game development studios could have done the same as Remedy did. The “mark of Remedy” was not in the story. What did Remedy learn from this? I strongly believe it is about playing to your strengths as studio and keeping your identity, rather than trying to play into others’ hand. However, the silver lining is that CrossfireX was shut down after mere sixteen months in May 2023 after its release in February 2022. The game is dubbed to be a massive misfire with awful controls, bland story mode, and very cliche multiplayer experience that didn’t reach its target audience in the Western markets. In the West, the first-person shooter genre is dominated by Call of Duty , Halo , Overwatch , and Battlefield , and it would have required more than an amazing story by Remedy to get a sizeable enough market share. Bringing it all together for Alan Wake, again After this both short and lengthy history of Remedy ’s past games, it is time to return to one version of our reality in this current time. The sequel to Alan Wake and why everything written above matters. Much like Bethesda has its imprinted style, so has Remedy . In Alan Wake 2 , Remedy successfully incorporates lessons learned from their previous games with continued passion to push the boundaries of what games are and how they are experienced. The Remedy style of episodic gameplay is present, and so are intersecting timelines and character stories. Furthermore, the player has the freedom to choose the order they engage in the stories being told, and the exploration of the perceived reality being shifted when one is going through their Dark Time. Alan Wake 2 continues the story of the author who has been trapped in the Dark Place for thirteen years. Alan feels that the only way for him to escape back to the real world is to write a horror story that takes place in Bright Falls where the events of the first game took place. The game combines survival horror and crime investigation game play styles with Remedy -esque focus on detail and storytelling through atmosphere that is always uneasy . One of the ways Remedy is pushing the medium of episodic presentation of games further is the given freedom in which order players want to complete the stories being told. The initial start and the eventual end are using forced perspective of Saga Anderson and Alan, respectively. These two separate stories will become intertwined with each other increasingly as the game progresses over its roughly twenty-hour duration. The success of Alan Wake is yet another feather in their cap, as Remedy truly shows through Alan Wake 2 that they have learned their lessons and are building upon their strengths. It is joyful to see the passion to provide entertainment experience through quality game play and storytelling in Alan Wake 2 , while the developers are experimenting with various puzzles and honing certain experiences to build upon for future games. 2023 has been a massively successful year for gamers with numerous amazing games released which each would have won numerous awards in any other year. Alan Wake 2 being released late in 2023 and still it managed to be nominated in eight categories for the 2023 Game Awards ceremony and won the Critics’ Choice Award at the Golden Joystick Awards 2023 earlier this year. The only game to rival Alan Wake 2 in this behemoth of a gaming year is Baldur’s Gate 3 in the number of nominated categories. Remedy went all out on Alan Wake 2 and that shows, and it is very delightful to see. Remedy is brining high quality survival horror to the front pages and setting the trend of their future with this sequel. This will bode only good news for Remedy and the Finnish game industry because the continued success of Remedy in the post-covid era shows that with proper development environment and direction of resources amazing things happen. In a world filled with scummy monetization practices, Remedy shows that when passion and love for games is given time and space to flourish, the success is nothing but guaranteed. Remedy is one of the flagship companies turning the ship from live services to complete packages and complete entertainment experiences. A feature-complete game is more wanted and treasured by the players than a shiny skin of a horse for more than half the price of a sixty-dollar, or nowadays seventy-dollar, game. The Future , The Present and The Past - Remedy Connected Universe Finally, or another beginning. What complicates the storytelling of Remedy games is the confirmation of Remedy Connected Universe becoming canon in Control ’s second expansion called “ AWE ” that features our dear writer, Alan Wake and the Dark Presence. However, in the base game of Control , players can find documents that FBC has been made aware of what is going on with and around Alan Wake. The creative director of Remedy , Sam Lake, made it clear that Control and Alan Wake games share the universe and Control: AWE was merely the first crossover. Sam Lake has mentioned earlier that they have at Remedy had the idea of connected universe for multiple years and through Control and Alan Wake they can finally utilize that aspect. Alan Wake 2 fully embraces this connection with FBC and what happens in the Bright Falls. Safe to say that Saga Anderson’s career as FBI agent gathers certain attention further pulling these universes together as she works to investigate and solve the murders in Bright Falls. Further connections between these worlds are in place and two of them are present in the spin-off Alan Wake’s American Nightmare . Namely, the town called Ordinary (see above about Jesse’s past) and another character that is quite head-scratching to deal with. Oh, and not to forget about Ahti, the FBC’s janitor having good times in Bright Falls. Remedy has confirmed to be working on the sequel to Control , and it can be assumed it further combines the workings FBC and Jesse to the ones of Saga and Alan. How? Who knows currently, but right now you can immerse yourself to Alan Wake and Saga Anderson in a fantastic survival horror game that does not let you go from its grasp. Be ready, be prepared, and don’t burn your light too fast. One of the best horror games in years is here and its a testament to Remedy ’s learned lessons and utilizing their own strengths to new height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ostdoctoral Researcher) Henry Korkeila PhD, MSc, is postdoctoral researcher whose recent work has focused on the avatarization of our analog cultures as they inevitably turn into digital cultures. Special focus has been on avatars themselves, usage of avatars in their different contexts including multiple online video game genres. He has approached avatars through the types of capital, or resources, they have. His recent works in progress continue to explore the cultures of MMOs, and game accessibility and inclusivity at large.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임태훈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문학사의 접점, SF 문화와 사운드스케이프 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기계비평들』,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가 있고, 대표 저서로 『검색되지 않을 자유』, 『우애의 미디올로지』 등이 있다. 임태훈 임태훈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문학사의 접점, SF 문화와 사운드스케이프 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기계비평들』,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가 있고, 대표 저서로 『검 색되지 않을 자유』, 『우애의 미디올로지』 등이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게임기의 라디오 되기, 라디오의 게임기 되기: 이노 겐지의 「리얼 사운드- 바람의 리그렛」(1997)에서 생각할 것들 비디오 게임에서 소리의 영역은 어떤 역사에 맞닿아 있을까? 영화가 문학과 회화, 연극, 음악 등의 온갖 예술사를 흡수하며 갱신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처럼,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도 직계와 방계를 넘나드는 여러 갈래의 영향 관계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게임의 소리는 어떤 가능성의 영역이었을까?
- 논모던 워페어nonmodern warfare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개자의 증식이 전쟁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의 일상적인 세계는 때때로 전쟁보다도 불투명하다. 물류와 인프라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 팽배하지만, 역설적으로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는 (아이패드처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 아래서 가시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팬데믹을 거쳐 급격한 기후 변동까지, 2020년대의 우리는 마치 이 모든 비인간 행위자들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세상에 등장하기라도 한 듯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 Back 논모던 워페어nonmodern warfare 09 GG Vol. 22. 12. 10. 더 이상 편한 날은 없다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콜 오브 듀티〉 만큼 널리 알려진 게임 프랜차이즈도 드물 것이다. 특히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게임 플레이의 일신(一新)과 엄청난 상업적인 성공,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사회/정치적인 논란들이 합쳐져서 그야말로 블록버스터 게임의 어떤 ‘범례’로 자리매김했다. 영화에서 폭발을 떠올리면 반자동적으로 마이클 베이가 연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전 FPS 게임을 이야기할 때 모던 워페어를 떠올리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논의들이 있어 왔고, 그중 대부분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범주들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런데 이미 나왔던 이야기들을 비슷하게 반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 외에도 이 카테고리들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022년의 시공간은 모던 워페어 시리즈가 발매되었던 2007-2011년과는 완전히 다르며, 심지어 첫 번째 리부트가 등장한 2019년과도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1) 흔히 ‘클래식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고 이야기하지만, 이 문장에서 생략된 전제는 시대가 변할 때마다 새롭게 (혹은 다시금) 부각되는 관점에 맞춰서 의미망을 성공적으로 업데이트한 작품들만이 클래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으로 ‘왜곡’된 2022년의 렌즈로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바라볼 때, 우리는 기존의 의미망들이 잘 작동하지 않음을 목도한다. 예를 들어,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개발한 인피니티 워드가 속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2022년 3분기 매출 2) 발표에 따르면 회사 총매출의 52%가 모바일 게임들에서 발생한다. 그중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작품은 모던 워페어의 스펙터클한 느낌과는 거의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캔디 크러쉬 사가〉다. 2021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매출 을 기록한 탑 3 게임은 전부 모바일 게임들이며, 리스트 어디에도 콜 오브 듀티와 같은 전통적인 블록버스터나 다른 트리플 A 게임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액티비전의 챔피언 〈캔디 크러쉬 사가〉만이 당당히 7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 3) ‘블록버스터’ 라는 단어가 아주 큰 상업적인 성공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계속해서 시장에 쏟아지는 압도적인 연출과 그래픽을 내세운 (모던 워페어 리부트를 포함한) ‘소위’ 대작들은 다른 어떤 게임보다도 더 ‘블록버스터’스러운 외양을 자랑하지만 정작 온전한 의미로서 블록버스터라고 명명되기에는 애매한, 이런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다. * 깜찍한 ‘블록버스터’ 〈캔디 크러쉬 사가〉 게임 플레이의 일신 또한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규정하는 한 축으로 여겨져 왔다.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는 이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게임 플레이의 포석을 깔았다는 점에서 특히 더 중요한데, 〈하프라이프〉의 오프닝 트램 시퀀스를 센세이셔널하게 비틀어 버린(“repurposing the techniques popularized by Half-Life’s tram to march you through a city being torn apart, and ultimately, to your own execution.”) 4) 프롤로그의 ‘쿠테타The Coup’ 미션부터 마치 드론 조종사가 된 것 같은 섬뜩한 기시감을 전달해 주는 그 유명한 AC-130 건쉽 미션인 ‘하늘의 저승사자Death From Above’, 수많은 적 탱크들과 보병들이 코 앞에서 지나가는 걸 낮은 포복자세로 숨 죽인 채 기다려야 하는 ‘위장 완료All Ghillied Up’ 미션까지, 타이트한 연출로 제어되는 스펙터클이 게임 플레이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매우 ‘쫄깃한’ 싱글 플레이 경험을 선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던 워페어 1이 발매되었던 2007년은 보통 해가 아니었다. 7세대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3와 엑스박스 360, 그리고 닌텐도 Wii가 바로 그 전 해에 출시가 된 상황이었고, 업그레이드된 하드웨어에 발맞춰서 무시무시한 타이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슈퍼 마리오 갤럭시〉, 〈포탈 1〉, 〈갓 오브 워 2〉, 〈팀 포트리스 2〉, 〈바이오쇼크〉, 〈매스 이펙트 1〉, 〈메트로이드 3 커럽션〉, 〈헤일로 3〉, 〈언차티드: 엘도라도의 보물〉, 〈크라이시스〉 등등. 그 외에도 거대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알린 〈위쳐 1〉과 〈어새씬 크리드〉가 발매되었다. 즉, 모던 워페어가 게임플레이의 혁신을 이유로 명함을 내밀기에는 좀 뻘쭘한 그림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7년에 출시한 ‘인디’ FPS 게임 〈스토커 섀도우 오브 체르노빌〉과 비교해봐도, 마치 오래된 롤러코스터를 연속으로 타는 것과 같은 모던 워페어의 계산된 스펙터클은 어느 순간 지겨움과 상호 교차가 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물론 멀티 플레이를 빼놓고 모던 워페어의 게임 플레이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실제로 캐릭터 퍽과 킬스트릭 시스템은 기존 모던 워페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할 뿐 아니라 다른 많은 멀티플레이 게임들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킬스트릭을 통해서 앞서 언급한 AC-130 건쉽을 일종의 공중지원 보너스로 끌어옴으로써 특정한 싱글 플레이 미션의 충격 효과를 멀티플레이에서의 반복으로 소진시키는 탁월함(?)을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참신한 시스템으로 인더스트리를 선도하던 모습은 ‘그땐 그랬지’의 느낌처럼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어 가는 중이다. 모던 워페어 1 리부트의 멀티 플레이 버전으로 2020년 출시한 〈콜 오브 듀티: 워존 퍼시픽〉은 (올해 출시된 워존 2.0과 마찬가지로) 〈배틀그라운드〉와 〈포트나이트〉가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배틀로얄 모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혁신의 아이콘이기보다는 노련한 후발 주자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싶어 하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이처럼 기존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담론을 지탱하던 두 개의 커다란 범주들(게임 플레이의 혁신, 굉장한 상업적인 성공)은 점점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톤에 가까워지고 있다. 반면 사회/정치적인 논란들을 둘러싼 이야기는 좀 더 미묘한 방향으로 선회한다. 엿같은 날들 S.S.D.D.(Same Shit, Different Day) 사실 모던 워페어 시리즈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적과 아군이 비교적 명확하고 (영화와 게임 제작자들에게 나치가 얼마나 소중한(?) 빌런인지 생각해 보자) 어느 정도 역사적 평가가 마무리된 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현대전modern warfare은 여전히 ‘전장의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아무리 가상의 국가와 인물, 심지어는 가상의 타임라인을 설정한다고 해도 ‘중동’, ‘러시아’, ‘대량살상 무기’, ‘테러리즘’, ‘블랙 옵스’, ‘극단적 국수주의자’ 등과 같이 민감하고 복잡다단한 역사적인 레이어들이 누적된 키워드는 게임 바깥의 현실과 긴밀하게 연동됨으로써 게임의 유틸리티적인 측면(무해한 오락으로서의 소프트웨어)이 애써 무시하고 싶었던 정치적 텍스트로서의 측면을 급부상시킨다. 더욱이 모던 워페어 시리즈가 연이어서 발매되던 2007년과 2011년 사이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끝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5) 그 와중에 현대전으로의 전환을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했던 퍼블리셔 액티비전 6) 과는 달리 개발사 인피니티 워드는 미국 해병대USMC의 자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은 물론, 논란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문제적인 미션들도 서슴없이 도입하는 등 매우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특히 1편의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미션과 2편의 ‘러시아어 사용금지No Russian’ 미션은 지금도 종종 회자될 정도로 악명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이 선명한 정치적인 논란은 블록버스터적인 연출과의 기이한 콜라보를 통해서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대작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종종 보이던) 일종의 ‘맛있는 불량식품’을 만들기 위한 완벽한 레시피로 거듭날 수 있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꽤 훌륭한(?) 길티 플레져 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부분에 더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서 이 게임을 둘러싼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맛있는’에 집중하는 (모던 워페어를 포함한)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광적인 팬들이 존재한다. 그 반대편에는 ‘불량식품’에 치를 떠는 (아마도 게임 그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과 모던 워페어의 정치적 스탠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을) 비판자들이 소리 높인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불량식품’이 가지는, 그 약간의 죄책감이 얹힌 맛을 제대로 음미할 줄 아는 계몽된 냉소주의자들이 조용히 게임을 플레이한다. 폴리곤의 〈 How Call of Duty turned war into a circus 〉 7) 영상은 계몽된 냉소주의자인 화자의 입장에서 나머지 두 팩션을 가로지르는 재치 있는 영상으로 세 가지 다른 입장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을만한 지점인데, 바로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내러티브는 바보 같다는 점이다. 이 공통의 감각(?)은 모던 워페어를 둘러싼 담론의 장을 (단발적인) 논란으로 가득 차게 만듦과 동시에 도식적인 구도를 강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논의의 지루한 공회전을 유지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을 조성한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를 통해 이야기해보자. 이전 글 8) 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거의 모든 비디오 게임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루도내러티브 부조화가 작용한다. 이에 따라 게임 플레이를 통한 경험과 게임의 공식적인 내러티브는 마치 한 컵에 담긴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하나가 되지는 못한 채, 일종의 느슨한 동기화로 연결된다. 때로는 특정한 사건(괴랄한 게임/과금 디자인 혹은 모딩과 같은 유저의 초월적인 개입)으로 인해서 마치 예전 아이튠즈처럼 아예 동기화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에 이르기도 한다. 즉, 동기화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반(半) 연결적인 투 트랙의 구조는 게임의 분열적인 수용을 가속화한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멀티플레이를 이미 수천 시간 이상 뛰었으며, 아마 지금도 리부트의 멀티플레이인 워존에서 구르고 있을 ‘찐팬’들에게 바보 같은 내러티브라는 조롱은 통하지 않는다. 킬스트릭을 달성하면 주어지는 AC-130 건쉽 폭격의 등장을 내러티브적으로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모던 워페어의 스토리는 이미 “장르적인 정당성”을 획득한다. 비판자들에게 모던 워페어의 황당무계한 내러티브는 영미 제국주의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프로파간다 텍스트다. 대부분은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단 한 번도 플레이해보지 않았을 것이며, 그중 소수는 약간의 싱글 플레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신념을 재확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멀티 플레이에 수백 시간 아니 수 시간도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계몽된 냉소주의자들은 양쪽의 의견을 모두 공감할 뿐 아니라, 그 간극이 주는 ‘불량식품’의 맛을 은근히 즐기고 있을 것이다. 관건이 되는 것은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모던 워페어가 출시할 때마다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비슷한 비판들이 다시 도래하며, 또다시 비슷한 반론이 재등장한다. 비슷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러거나 말거나 ‘찐팬’들은 바로 이전 모던 워페어와 아주 유사하지만 약간 다른 멀티플레이에 다시 수천 시간을 퍼붓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일련의 행위들을 축제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축제는 반복된다. 그런데 기존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마이클 베이스러운’ 9) 내러티브가 더 이상 의례 그렇듯이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면, 그때도 우리는 이 축제를 지속할 수 있을까. 가령 자국 내의 ‘극단적 국수주의자’ 반군들이 미국과 인근 유럽 국가들을 침략해서 전쟁이 벌어지자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평화 회담장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대통령을 국수주의자 무리의 리더가 납치하는 이야기와, 본인부터가 ‘극단적 국수주의자’인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인근 유럽 국가의 침공을 명령하는 이야기 중 어느 쪽이 더 황당무계하고 초현실적인가. 둘 다 만만치 않지만 나는 후자에 손을 들어주겠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는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가리킨다.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에게 행한 전쟁 범죄 10) 가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중인데, 그에 따라 러시아군을 굉장히 악랄하게 묘사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모던 워페어 1 리부트가 사실 알고 보니 그들을 미화(?)했던 거라는 블랙 코미디스러운 재평가를 받는 지경에 이른다. * 러시아 대통령마저 납치하는 상남자 마카로프. 하지만 게임 바깥의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의 ‘쿠테타The Coup’ 미션에서 유저들은 이 게임의 메인 빌런 중 하나인 알 아사드가 생중계되는 카메라를 앞에 두고, 자신들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을 중동 ‘어느’ 국가의 대통령의 시점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몇 년 뒤 세계는 아이에스Islamic State가 포로들을 ‘참수’하는 영상들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퍼뜨리는 것을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또다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1) 그뿐 아니라 마치 ‘아랍의 봄’의 뒤집힌 악몽과도 같이 아이에스는 스마트폰이라는 물리적 네트워크 노드 기반 위에서 소셜 미디어와 다크 웹을 통한 매우 공격적인 ‘모집’ 과정을 전개했다. 그 결과는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유럽 전역과 동남아시아에 걸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테러들이다. 201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이미 ‘중동을 너무 선정적으로 묘사했다’, ‘스테레오 타입들의 캐릭터로만 채워져 있다’는 식의 관습적인 모던 워페어 비판들은 길을 잃어버린다. 어느 순간 현실은 거의 스너프 필름에 가까워지고, 중동의 ‘새로운 전사’들은 네트워크로 연계된 새로운 양태의 테러를 직접 시연함으로써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들에서 아득히 멀어진다. 먼지에서 먼지로 Dust to Dust 모던 워페어 시리즈가 배태한 그 수많은 논란들은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당시의 세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음을 알려 주는 일종의 지표가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기존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할 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어떤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만큼 지금의 세계가 더 많이 불안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모던 워페어는 이제 평화로운 시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당시에는 나름 센세이셔널했던) 추억의 펑크록 앨범 같은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인가. 나는 아직 그렇게 단정 짓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게임 시리즈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현재의 급격한 불안정성을 예비하는 단초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전이 이전 시기의 전쟁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은 바로 물류, 장비, 인프라, 기술, 국경, 평화협정 등을 포함한 수많은 비인간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전쟁은 인간들의 결정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좌지우지된다. 하지만 사소해 보이는 기술 하나가 전쟁의 향방을 결정하거나, 혹은 아예 전쟁 자체를 예방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때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 중국군은 위협용으로 대만의 군기지 근처에 미사일 3개를 연달아 발사했다. 첫 번째 미사일은 예정된 목적지에 떨어졌지만, 나머지 2개의 행방이 묘연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날아가는 도중 그 2개 미사일 내에 GPS 신호가 끊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미국이 개발하고 관리해 온 시스템이다. 즉, 미군은 중국군이 GPS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단기적으로는 중국군이 물러남으로써 전쟁 위기를 해소하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이를 갈고 자체적인 항법 시스템을 개발해서 위성을 쏘아 올리도록 만들었다. 12) 이렇듯 스마트폰의 여러 앱들을 통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GPS 같은 기술조차 전쟁 상황에서는 그 파급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 역시 이러한 자의식이 느껴지는 레벨 디자인을 선보인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던 ‘하늘의 저승사자Death From Above’ 미션은 (3편의 ‘철의 여인Iron Lady’ 미션도 마찬가지로) 유저들을 AC-130 건쉽 조종사의 모니터링 스크린 앞으로 데려다 놓는데, 이때 유저들이 경험하는 것은 사실 무인 드론 조종사의 포지션에 더 가깝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제로 굉음을 내는 건쉽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방 안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지상의 풍경은 무인 드론 조종사의 모니터 화면과 놀랄 만큼 유사한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오버랩은 이 미션의 꽤 노골적인 (소격 효과를 노리는) 의도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미션을 수행하는 건쉽 오퍼레이터들의 건조한 대화 중 간간이 들리는 즐거운 환호성과 농담보다도 유저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건쉽/드론을 조종하는 감각이다. 한껏 당긴 망원 렌즈 덕에 원근감이 제거된 평평한 화면 위로 작게 꼬물거리는 ‘타겟’들은 마치 치워 버려야 할 ‘벌레’처럼 제시되며, 그들을 ‘처리’하는 과정은 실제 벌레를 잡는 일보다도 훨씬 간단하다. 즉, 수백 명을 학살하는 행위는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적인 ‘클릭질’의 영역으로 전환한다. 이는 또다시 무인 드론 조종사의 실제 경험과 겹쳐지면서, 초점을 유저/조종사와 같은 인간적 주체에서 건쉽/드론 - 적외선 카메라 - 모니터/스크린 - 마우스/조이스틱으로 이어지는 (라투르의 표현을 빌자면)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바로 이 비인간 행위자들의 네트워크가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학살자’로서의 유저/드론 조종사를 역으로 ‘주조해’ 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모던 워페어modern warfare가 어째서 ‘근대적이지 않은지nonmodern’ 이해할 수 있다. * ‘하늘의 저승사자Death From Above’ 미션의 스크린(왼쪽)과 실제 무인 드론의 스크린(오른쪽)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개자의 증식이 전쟁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의 일상적인 세계는 때때로 전쟁보다도 불투명하다. 물류와 인프라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 팽배하지만, 역설적으로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는 (아이패드처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 아래서 가시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팬데믹을 거쳐 급격한 기후 변동까지, 2020년대의 우리는 마치 이 모든 비인간 행위자들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세상에 등장하기라도 한 듯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기서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과장된 스펙터클과 거친 매너로 우리의 등을 떠밀면서 그들(비인간 존재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였으며, 우리 역시 그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새롭게 거듭났었다는 진실을 상기시킨다. 그리하여 위태로운precarious 현재란 다른 무엇도 아닌 그들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역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 누군가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며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냐고. 프라이스 대위라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네가 알던 그 세계는 끝났어. 그런데 그걸 다시 되찾을 수 있다면 너는 어디까지 갈 수 있지? Your world as you knew it is gone. How far would you go to bring it back?” 1) 얼마 전에 발매한 모던 워페어 2 리부트 역시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일종의 타임캡슐적인 성격을 지닌다. 2) Evgeny Obedkov, “Diablo Immortal and Candy Crush were biggest contributors to Activision Blizzard’s mobile growth in Q3” Game World Observer, 2022.11.10. https://gameworldobserver.com/2022/11/10/diablo-immortal-candy-crush-saga-mobile-revenue-activision-blizzard 3) David Curry, “Top Grossing Games (2022)” Business of Apps, 2022.10.27. https://www.businessofapps.com/data/top-grossing-games/ 4) Amr Al-Aaser, “Shock and Awe: The Political Influence of Modern Warfare” Paste Magazine, 2016.11.02. https://www.pastemagazine.com/games/call-of-duty/shock-and-awe-the-political-influence-of-modern-wa/ 5) 미국은 결국 2011년 12월에 이라크 전쟁의 종결을 공식 선언했다. 모던 워페어 3가 출시한 지 한 달 뒤의 일이다. 6) 액티비전이 콜 오브 듀티 4가 모던 워페어로 출시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굳이 황금알을 잘 낳고 있는 거위(2차 세계대전 배경의 콜 오브 듀티 1,2,3)의 배를 가르고, 논란이 클 것이 뻔한 현대전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비즈니스적으로 큰 리스크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바비 코틱은 개발사 인피니티 워드에게 전권을 위임한 상태였고, 개발사는 그대로 밀어붙여서 모던 워페어를 출시한다. 7) Patrick Gill, “How Call of Duty turned war into a circus” Polygon, 2022.05.06. https://www.youtube.com/watch?v=JIEB5DKzJLM 8) 웜뱃,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 게임제너레이션, 2022.08.08.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43 9) 공교롭게도 모던 워페어 2에는 마이클 베이가 감독한 〈더 록〉의 샤워실 총격신을 그대로 옮긴 듯이 오마주한 챕터가 있다. 10) DW Documentary, “War crimes in Ukraine | DW Documentary” DW Documentary 2022.11.27. https://www.youtube.com/watch?v=ONWW02pNvFk 11)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메인스트림 앱들은 재빠르게 대응했지만, 이내 IS는 텔레그램과 Surespot 같이 소셜 미디어의 기능이 혼합된 메시지 앱으로 이동했다. 12) Minnie Chan, “'Unforgettable humiliation' led to development of GPS equivalent” South China Morning Post, 2009.11.13. https://www.scmp.com/article/698161/unforgettable-humiliation-led-development-gps-equivalent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구윤지
유미주의자이지만 항상 카니발적 그로테스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이쿤류의 게임들을 좋아해서 척추가 망가졌다. 게임이든 뭐든 궁금한건 못 참아서 빠르게 엔딩을 보고 자주 새로 시작한다. 구윤지 구윤지 유미주의자이지만 항상 카니발적 그로테스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이쿤류의 게임들을 좋아해서 척추가 망가졌다. 게임이든 뭐든 궁금한건 못 참아서 빠르게 엔딩을 보고 자주 새로 시작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통로’를 지나 풀 다이브(full-dive) 필자는 지난 호에서도 큐레이터 동료가 언급한 바 있는 전시, 《MODS》(2021, 합정지구, 서울)에서 장진승 작가와 프로젝트 ‘SYNC’를 진행했었다.1) 전시를 위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서로 관심이 있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동시대 시뮬레이션 비디오게임 플레이어의 자율성, 몰입도로 초점이 맞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