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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르소나 3 리로드> 일본 정치와 함께 톺아보기

    < Back <페르소나 3 리로드> 일본 정치와 함께 톺아보기 18 GG Vol. 24. 6. 10. <페르소나 3>는 <페르소나 시리즈> 전체로 보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개발된 시리즈의 핵심 정체성을 확립한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여신전생 시리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던전RPG를 표방하는데, 던전 탐색에 악마 소환 및 합체를 결합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페르소나 시리즈>도 큰 틀에서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전 시절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진 않지만, 게임의 핵심 축은 여전히 던전과 전투이다. 그런데 <페르소나3>는 여기에 주인공과 다른 등장인물과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커뮤 시스템’을 추가했다.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얼마나 발전시켜 놓았는지에 따라 악마 개념을 대신한 페르소나의 성능에 더해 일부 스토리 라인에도 영향을 주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페르소나 3>에선 던전과 전투만큼이나 일상 파트에서의 스케쥴 관리가 중요해졌다. 방과 후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가 던전-전투의 성과를 좌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남는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우리가 현실에서도 늘 고민하는 문제이다. 실제로 게임 중에 ‘오늘은 무엇을 할까’하고 고민할 때에는 단지 선택지를 고르는 것임에도 묘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반면 던전과 그 안에서의 전투는 그게 아무리 현실적으로 묘사되더라도 결국 게임 속에 있다는 느낌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만일 게임이 오로지 ‘오늘은 무엇을 할까’만을 선택하는 것으로만 디자인 되어 있다고 하면, 던전RPG로서의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이 게임 고유의 요소인 던전-전투와 연계된다는 게 이 시스템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페르소나 3>는 이전의 시리즈에 비해 게임과 현실을 잇는 가교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후속작인 <페르소나 4> 역시 기본적으로는 같은 형식이지만 일상의 재현에 보다 무게를 둔 느낌이다. 덕분에 고교 시절 친구들과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대리 체험하는 비중이 커졌다. 즐겁고도 그리운 느낌이 게임 전반을 지배한다. 3편에서 ‘타르타로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일직선 구조의 던전도 <페르소나 4>에서는 캐릭터별 특징에 맞는 던전이 스테이지별로 따로 구현되었는데, 이런 구조는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의 캐릭터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섀도’와 싸울 수 있도록 해주는 ’페르소나’의 개념도 조금 달라졌는데, 3편에선 단순히 소질과 각성의 문제였다면 <페르소나 4>에선 부정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마주하면서 얻게 되는 ‘인격의 갑옷’이라는 개념이다. 이렇게 되면 각 등장 인물의 ‘부정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해진다. 동료 캐릭터의 서사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거다. <페르소나 5>는 3편과 4편을 합친 모양새다. 분위기는 4편의 아기자기함 보다는 3편의 염세에 가깝다. 그러나 등장인물 간의 관계나 각각의 캐릭터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선 4편을 연상하게 된다. 던전 역시 일직선 구조의 ‘메멘토스’와 캐릭터의 내면과 연계된 ‘팰리스’가 병존하고 있다. 3편과 비교해 다소 간략화 된 느낌이었던 전투 파트는 5편에선 오히려 더 복잡해졌고 변수 역시 많아졌다. 섀도를 설득해 페르소나로 흡수하는 시스템은 심지어 3편 이전으로의 회귀다. 이런 점에서 보면 <페르소나 5>는 시리즈 전체를 종합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관점을 스토리를 중심에 놓는 것으로 바꿔보면 더 흥미로운 대목이 드러난다. 사실 <페르소나 3>는 서사 구조만 놓고 보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류로 볼만하다. 주인공과 동료들이 모여있는 공간을 주기적으로 공격하는 대형 섀도, 그럴듯한 명분으로 싸움의 목적을 오인하게 하는 ‘흑막’, 주인공과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자신의 본래 목적 달성 여부를 고민하는 강적, 인류의 집단적 바람이 원인이 된 종말과 같은 요소들이 그렇다. 그런데 이는 시기적으로 보면 다소 식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코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된 시기는 1995년 말에서 1996년 초까지다. <페르소나 3>는 2006년에 출시되었다. 이 10년의 간극에도 불구 <페르소나 3>는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걸 스토리를 중심에 놓고 평가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작품의 성공은 버블붕괴로 인한 사회적 혼란 및 이와 맞물린 비관주의의 확산과 떼어 놓고 평할 수 없다. 1990년대의 일본은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부문에서 혼란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자민당이 스캔들과 비리 등으로 정권을 잃었다가 사회당과의 연정 등을 통해 간신히 되찾으면서 55년 체제가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경제적으로는 버블 붕괴로 인한 주요 금융회사의 도산이나 부동산 주가 폭락 등 자산시장의 경색이 문제가 되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옴진리교가 일으킨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한신 아와지 대지진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이 작품을 향한 절대적 지지에는 이 모든 사태가 빚어낸 혼란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페르소나 3>가 나온 2006년의 상황은 1990년대의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는 국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자민당을 부숴버리겠다”는 구호와 함께 등장해 비교적 안정적 정치 기반을 구축하면서 ‘개혁’ 담론을 주도했는데,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우정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를 이상화 해 밀어 붙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보면 2000년대 중반까지의 일본은 ‘버블붕괴’라는 폐허를 뒤로 하고 불안 속에서도 무언가를 새롭게 재건한다는 느낌으로 나름의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 시점에, 일상의 평화에 젖어 오히려 종말을 바라는 인류, 이대로 세상의 종말을 평화롭게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감수하더라도 종말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시선에 비유한다면 ‘돌아보는 시선’이다. 분명 어떤 점에서는 나름의 진정성이 있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 눈 앞에 닥친 자신의 문제라는 절박함은 상대적으로 희박한 것이다. 이게 <페르소나 3>의 서사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류로 느껴지는 이유다. <페르소나 3>에 투영된 것이 지나간 것에 대한 ‘돌아보는 시선’이라면, <페르소나 4>는 ‘자신의 발 밑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시선이 보는 세계는 지극히 개인화 되어 있다. 세계의 위기는 주인공이 잠시 살고 있는 이나바시라는 시골 마을에 국한된다. 본편에서 숙적은 주인공을 돌봐주는 삼촌의 직장 동료이다. 심지어 <페르소나 4> 최대의 반전은 주인공에게 최초의 시련을 부여하는 ‘흑막’이 기껏해야 동네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위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실제 게임을 해보면 바로 이 보잘 것 없는 설정들에 현재성이 실려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페르소나 4>는 2008년 7월에 출시됐는데 시기적으로 3편의 출시일과(2006년 7월)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즉, <페르소나 4>는 3편과 동시대성을 공유하며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페르소나 3>과 <페르소나 4>는 비유하자면 같은 화자의 다른 이야기인 셈이다. 여기서 화자는 버블 붕괴 여파가 어느 정도 수습된 시점을 현재로 삼고 있다. 현재 시점에 비관주의가 득세했던 과거를 모사하며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게 <페르소나 3>, 과거를 뒤로 하고 눈 앞의 이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게 <페르소나 4>다. 따라서 <페르소나 3>가 세계의 종말을 주인공의 자기 희생을 통해 막는 얘기일지라도, 그건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소중한 삶을 지키기 위한 제스처라는 해석을 피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런데, <페르소나 3>으로부터 꼭 10년이 지나 나온 <페르소나 5>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크게 바뀌게 된다. <페르소나 5>는 3편이나 4편처럼 현재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애쓴 티가 역력하다. 예를 들면 <페르소나 5>에서의 ‘페르소나’는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반역의 의지’를 내비치는 것으로서 각성한다. 주인공들은 마음의 괴도단을 구성해 유력한 개인들을 개심시키는 것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기득권에 의해 반격을 당하는 상황에 내몰리기 까지 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그에 굴하지 않는 것을 넘어, 세계가 왜곡된 원인인 세상의 질서 그 자체와 맞서는 데까지 전진한다. 이를 통해 확인하게 된 진실은 대중의 무세계성(worldlessness)에 기반한 욕망이 한데 모여 통제를 원하게 되었고, 그러한 의사를 대리하는 신을 자처하는 존재로부터 세계가 실제 통제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존재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성배의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주인공들은 이 거짓된 신에 맞서 또 다른 반역을 일으켜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 여기서 게임 제작진의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3편과 4편에 비하면 선동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페르소나 5>에서 반복되는, 이전에서 없었던 이러한 코드는 어디서 나온 걸까? <페르소나 4>이후의 현실엔 크게 세 가지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 2009년 자민당이 다시 한 번 정권을 잃고 민주당이 집권하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두 번째, 2011년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세 번째, 2012년 아베 신조가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해 다시 자민당 집권기가 열렸다. 아베 신조 정권은 1차 집권기(2006년)에 달성하지 못한 과제를 뒤늦게라도 확실하게 추진하겠다는 인상을 남기며 이런 저런 우파 지향의 의제를 밀어 붙였다. 그 결과 2015년에는 이른바 안보법제 논란으로 국회 주변에 12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이는 일본 사회 및 시민운동의 특성에 비추어 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로 당시 언론은 1960년 안보투쟁 이래의 55년만의 최대 규모 운동으로 이 사안을 다뤘다. 이것이 <페르소나 5> 발매 직전까지 있었던 일이다. 다들 반역을 외치는 <페르소나 5> 특유의 분위기가 현실의 어떤 부분을 반영한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또다시 변화되었다. 아베 신조의 장기 집권은 더 이상 없다. 현재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아베 신조와 같은 강압적이고 일극지향적인 이미지를 갖지는 않는다. 지지율은 저조하지만 원내에서의 정치적 기반은 탄탄한 편이다. 일본 사회의 우향우는 지속되고 있지만 안보법제 폐지 투쟁 때와 같은 격렬한 반대 운동은 없다. 밖의 상황은 심상찮지만 적어도 일본 내의 분위기를 보면 당분간은 이러한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다. 바로 그러한 때에, 과거 그러한 시기를 ‘돌아보는 시선’으로 기억한 <페르소나 3>가 <페르소나 3 리로드>로 되돌아왔다. <페르소나 3 리로드>는 <페르소나 3>를 거의 그대로 현대에 되풀이 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페르소나 5>의 혁명은 실패했고, 우리는 그 이전으로 뒷걸음질쳐 온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현 시대에 맞는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과거의 유산을 활용하려는 것인가? 확실한 것은 누구도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전히 새 작품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갖게 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Tags: 일본, 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

  • 콘솔게임 시장으로 진입하는 한국 게임산업을 바라보며

    < Back 콘솔게임 시장으로 진입하는 한국 게임산업을 바라보며 11 GG Vol. 23. 4. 10. 자주는 아니고 진지하지도 않지만 가끔 닌텐도 스위치 구매를 후회할 때가 있다. 최근 2년 넘게 스위치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오직 개인적인 게임 취향 탓이다. 무거운 테이스트에 충분한 핍진성을 통해 몰입감이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데, 밝은 테이스트에 캐주얼한 게임이 많은 닌텐도가 잘 맞지 않음을 너무 늦게 즉 스위치 구매 후에 깨달았다. 그래도 주기적으로 향후 출시 예정 타이틀을 둘러 보기는 한다. 콘솔은 어린 시절부터의 로망이었고(이 쓸데없는 개인사는 과거 칼럼인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의 도입부를 참조하면 좋다) 이왕 산 스위치이니 어떻게든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얼마 전 ‘베요네타 3’이 출시되어 실로 오랜만에 스위치를 켜보았다. 예정 신작 리스트를 볼 때마다 확인하는 부분은 한국어화가 되어 있는가이다. 영어여도 게임 진행을 할 수는 있는 정도의 어학 능력이 있긴 하나, 즉각적으로 독해가 가능한 모국어를 따라갈 수준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산 콘솔 게임이 적은 것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더 코마’가 스위치로 발매되었을 때 즐거웠던 기억은 오래 남아 있다. 한국 게임의 콘솔 점유율이 낮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 링크한 과거 칼럼에서 분석했던 바, 한국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로 인해서 당시 청소년이었던 게임 유저들이 거실의 권력을 가져가지 못했다. 대신 자기 권력이 작동하는 ‘방’에서 가능한 PC 게임이 가정 내 게임의 헤게모니를 가져갔다. 그 결과 약하지만 확실한 오프라인 소셜의 콘솔 게임보다 확고한 온라인 소셜의 PC 게임이 주류가 되었고,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이 지배적인 아케이드(PC방 포함) 게임의 전통은 역설적 오프라인 소셜 기능을 가진 모바일로 계승되었다. 이것이 모바일-콘솔 우선의 세계 여타 시장, 특히 북미 및 유럽 시장과 모바일-PC 우선의 한국 시장의 차이를 낳은 원인이며 과정이었다. (이제 저 과거의 글을 읽을 이유가 없어졌다!) 스위치 구매를 이따금 회의하는 가운데, 요즘은 PS5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와 같은 PS 독점의 트리플A 게임을 하고 싶기 때문인데, 스위치의 전례가 있다 보니 출시작과 출시 예정작을 면밀히 훑고 있다. 즐길 게임이 최소 두 자릿수는 있어야 저 돈이 아깝지 않을 테니까. 그러다 보면 괜히 살 마음 없는 엑스박스의 출시작 리스트도 보게 된다. 호기심엔 답이 없다. 이 지점에 오면 눈에 들어오는 경향성이 있다. 각 콘솔의 출시 예정작 중에서 한국산 게임들의 비중이 점차 늘어난다. NC소프트의 ‘쓰론 앤 리버티’,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퍼스트 디센던트’ 등에 넷마블이 유명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하는 ‘나혼자만 레벨업’ 등이 눈에 띈다. 여기에 네오위즈 작품인 ‘P의 거짓’, 위메이드의 ‘나이트크로우’, 개인적으로는 내 안의 변태를 깨우는 그래픽이라 위험작으로 분류한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 등등까지. 여기에 ‘크로스파이어: 시에라 스쿼드’와 같은 콘솔 기반의 VR 게임들까지 합하면 숫자와 무게감은 더욱 늘어난다. 전통적으로 콘솔 진출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게임사들이 대대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 2022년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유저의 이용률로 볼 때 17.9%에 불과하다. 이를 세계 전체 게임 시장으로 확장해보면 시장 규모 대비 1.7%다. 자본 규모로는 1조 원 가량에다 5% 정도 비중의 작은 시장이다. 한국이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세계 게임 시장의 7.6%를 차지하는 세계 4위 시장임에도, 혹은 감안하지 않아도 작다. 그나마 한국 콘솔 게임 시장은 최근 7년 동안 꾸준한 성장을 해오긴 했다. 2015년에 1.8% 비중에 불과했던 이 시장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라는 히트작이 발매된 2020년에는 6.4%까지 성장했다. 다만 바로 대형 히트작이 없었던 바로 다음 해에 5.5%로 떨어지긴 했지만,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서는 한국 게임사들의 출시 예정작이 출시되면 다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출처 :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하지만 게임 개발 현장과 전문가들의 지적은 콘솔 성장보다 PC와 모바일의 성장에 집중되어 있다. 일단 최고 파이인 모바일의 비중과 매출에서 성장세가 둔화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팬데믹 특수를 탔던 2020년에 잠시 성장세가 늘어났을 뿐이다.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시장이 성장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 더욱 눈에 띈다. 이런 상황은 PC 게임 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유명 IP의 신작이 출시되면 잠시 매출이 늘어나는 정도인데, 이건 시장이 이미 한계에 도달한 후라는 의미다. * 출처 :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이미 시장에서의 신호는 PC와 모바일에서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음이 관측되고 있다. 게임사 입장에서 당장 오늘 먹을 것은 있지만 내일, 다음 주, 다음 달, 내년의 먹거리가 불확실해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시장과 개발 현장이 성숙해지고 법적 예술의 지위도 확보된데다 노조들이 제 역할을 하려고 나서기 시작하면서, 인건비 상승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개발 비용 증가다. 그리하여 한국 게임사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과 NFT를 접목해서 환금성이 높은 게임을 만들어보는 시도가 있다. 하지만 이 시도는 기존의 과금유도 게임과 기본 구조가 같고, 한국 국내 시장에서는 게임사의 현금 환금을 금지하는 법안이 합헌이라는 판결까지 나와 갈 길이 애매하다. 메타버스 개념을 활용하는 방안도 시도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환경만 제대로 조성된다면 이용자가 곧 컨텐츠 창작자가 되어주기 때문에 컨텐츠 개발 소요가 많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반면 시장에 안착한 후에는 여타의 MMO 게임과의 차별성을 두는 부분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온라인 성범죄의 플랫폼이 되는 등 신종 범죄에 이용 당하는 부작용도 관찰된다. 게임 개발의 노하우를 다른 분야에 적용시켜 가상인간이나 버튜버를 만드는 수익 모델도 제시가 되었지만, 일단 이건 게임 분야가 아니니 논외로 하자. 이런 와중에 느리게나마 확실하게 성장 중인 국내 콘솔 시장과, 이미 확고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북미/유럽의 콘솔 시장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현재 한국의 게임 수출 대상국 1위는 압도적으로 중국인데, 이런 중국의 게임 시장 상황은 최근 몇 년 동안 좋지가 않다. 중국 게임사의 개발 역량이 양질의 측면에서 궤도에 오르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게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을 줄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솔 게임에 진출하는 것은 중국 시장 대신 북미/유럽 시장을 개척하는 2중의 개척이며, 필수불가결한 개척이 된다. 여기에 더해서 진출 정체 상태인 중국 시장에서조차 콘솔 게임은 성장 중이다. 2021년 대비 2022년의 중국 콘솔 시장의 매출은 17% 증가했다. 비록 불법인 그레이마켓 매출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혹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잠재 성장 예상은 더 높다. 그렇다면, 판호만 얻어낼 수 있다면, 이 성장하는 콘솔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모로 한국 게임사에게 콘솔이 다음 개척지가 될 이유들이다. * 출처 : 니코파트너스 그리고 배틀그라운드가 흥행했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게임 개발 현장에 준 메시지 중 하나는, 기존 MMO 게임처럼 온라인 퍼블리싱 판매가 아닌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에서의 판매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게임이 ESD에서 판매가 가능하다면, 그 ESD는 스팀일 수도 있고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일 수도 있고 닌텐도샵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배틀그라운드의 2017년 이후 대작과 인디 가릴 것 없이 많은 게임이 스팀을 비롯한 ESD를 통해 출시되었다. 스팀 기준으로 판매 및 접속 성적을 보면 ‘블레스’, ‘섀도우 아레나’ 같은 게임들은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지만, ‘스컬’, ‘플레비 퀘스트: 더 크루세이즈’, ‘영원회귀: 블랙서바이벌’ 등은 나쁘지 않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고 보면 스위치에서 할 게임이 없다고 징징대던 내가 닌텐도샵에서 ‘더 코마: 커팅 클래스’를 샀던 시기도 배틀그라운드 이후인 2019년이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의 콘솔 게임 시장 진출 시도는 약간의 절박함도 묻어 있다. 집 안에서는 더 이상의 산출이 어려운데, 바깥에서 희망의 씨앗을 보았기에, 그리로 가는 것이다. 당장의 먹거리는 있지만 통계 지표는 그 먹거리가 조만간 포화 상태가 될 것을 경고하고 있으니까. 이는 제국주의에 비유할 수도 있고 이민자에 비유할 수도 있다. 사실 비유의 측면에서는 두 가지 모두 같은 동인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의 시장 성장이 한계이니 외국으로 나간다는 제국의 동인과, 국내에서 원하는 성취나 생존을 이루기 어려우니 외국으로 나간다는 이민의 동인은 사실 포화 상태에서 추동력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 단지 서있는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뿐이다. 매출 통계 보고서를 받아든 현장의 경영자와 개발자는 절박한 이민자의 마인드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절박함은 보상 받을까? 앞서 스팀에 진출했다가 실패를 맛본 게임들의 예를 들었는데, 최근에는 ‘칼리스토 프로토콜’이 비평적으로 실망을 끌어내면서 사실상 실패의 성적을 거뒀다. 이후에 올 도전들이 이런 식이 되면 큰일난다. 이미 ‘P의 거짓’과 ‘퍼스트 디센던트’는 아류작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눈길을 받고 있다. 우리가 출시 예정작의 미래를 전망할 때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단어는 ‘완성도’다. 특히 콘솔이면 소위 ‘패키지 게임’이 우선 떠오르기에 차차 고쳐나갈 수 있는 온라인 기반 게임보다도 출시 직후의 완성도가 더욱 중요하다. 가장 흔히 그리고 가장 먼저 짚는 요건이고,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하나마나 한 말이다. 그러니 자칫 놓치기 쉬운 완성도의 중요 요소를 짚어 보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경영 분야에서 비유를 빌려온다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원리가 있다.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동명의 저서에서 제시한 비유적 개념이다. 렉서스는 세계화, 보편성의 아이콘이고 올리브나무는 전통성, 문화적 오리지널리티의 아이콘이다. 이 짝패는 또한 개방성과 폐쇄성, 수출과 내 수의 상반된 개념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리드먼은 반대의 두 가치 중 하나를 선택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국적 요소에 의해 만들어져 다양한 국가로 팔려나가는 렉서스만을 택해 개방 일변도, 세계화로 나아가기만 하면 큰 시장에서 거대한 성과를 얻어낼 수는 있어도 지구 반대편의 악재로 인한 도미노 현상에 얻어맞을 수가 있다. 때 되면 찾아오는 금융 위기가 가장 확실한 예시다. 이것을 문화 분야로 번역하면 ‘상품에 줏대와 무게감이 없어진다’. 반면 동네 올리브나무를 놓고 싸우는 분쟁은 지엽적이고 유치해 보이지만, 동시에 지역의 뿌리이기도 하다. 프리드먼은 국가를 최후의 올리브나무라고 규정한다. 가족, 지역, 민족, 종교 등은 ‘우리’를 규정하는 판단 준거다. 배타주의와 혐오를 낳기 쉽고 확장성은 0에 가깝지만, 이 또한 렉서스만큼이나 확고한 인간 욕망의 한 축이다. 다시 이를 문화 분야의 언어로 번역하면 ‘확고한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컨텐츠’가 된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의 1편, 도입부 컷신에서 흘러나왔던 전설적인 대사다. “Wow, What a Mansion!” 본래의 일본어 대사는 “대단한 저택이군” 정도의 문장이지만 허술한 영어 번역과 방만한 연기로 인해 저런 어처구니없는 감정선의 대사가 만들어졌다. 또는 드라마 ‘로스트’에서 한국 장면이랍시고 동남아 식생이나 60년대 간판을 등장시켰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제작진들이 렉서스를 제대로 타고 저쪽의 올리브나무에 도착하는 임무를 해내지 못한 경우다. * 1편의 왓어맨션은 밈이 되었지만 7편의 현지 재현도는 강력한 효과를 냈다. 반면 성공한 경우는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의 7편이다. 루이지애나 외딴 늪지에 위치한 베이커 저택의 음침함을 현실성 있게 표현해내기 위해, 제작사는 텍사스 출신의 작가를 기용하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를 따로 기용했다. 이는 해당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렉서스에 제대로 탑승한 시도였다. 반대의 경우는 드라마 ‘킹덤’이 있다. 일본도 중국도 아닌 조선의 복식과 정부 시스템이 등장하는 이 드라마에서 세계인의 관심을 끈 것은 의외로 복식, 특히 갓이었다. 생소하지만 멋져 보이는 ‘cool hats’에 대한 관심은 올리브나무가 렉서스를 타고 넘어가 전파에 성공한 경우다. 유사한 성과를 보인 게임으로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들 수도 있겠다. * 드라마 속 복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킨 드라마 ‘킹덤’. 이는 우리 동네 올리브나무를 설득력 있게 파는 방법에 대해 큰 힌트가 된다. 렉서스 개념과 올리브나무 개념은 서로 정반대의 원리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둘을 한 콘텐츠 안에서 구현하려고 한다면 둘의 지향점이 같아진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현실성 혹은 핍진성이다. 그리고 이 지향점의 끝은 몰입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완성도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향후의 콘솔 도전기에서 개인적인 기대작은 올리브나무를 제대로 분석해 딱 맞는 렉서스에 싣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펄어비스의 ‘도깨비’가 되겠다. 이 게임 역시 멀티 플랫폼으로 콘솔을 지원할 예정인데, 트레일러를 통해 본 예상 장점으로는 현대 한국적 환경을 훌륭히 녹여낸 배경이 있다. 한국적이라 하여 고궁이나 한복을 우선 내미는 구시대의 우를 범하지도 않고, 반대로 그런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지도 않으며, 전통과 현대가 맥락을 넘어 뒤섞여 있는 현실 한국의 특색을 그대로 녹여냈다. 딱히 이런 배경을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게임의 경우에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원리는 적용될 수 있다. ‘쓰론 앤 리버티’에서는 ‘기상이 전술에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현실감 있게 구현해내는지가 이 게임의 올리브나무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 명의 게이머로서, 아무쪼록 모든 출시 예정작들이 자신의 올리브나무를 잘 파악하길 바란다. 가능하면 닌텐도 스위치 버전으로 살 것 같지만, 어느 날의 내가 간이 커져서 PS5를 질렀을 수도 잇으니 장담은 못 한다. 다만 어느 버전이든 충분한 몰입감을 주는 핍진성 구축에 성공하였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게임 라이프가 PC와 모바일을 넘어 콘솔의 로망에 다시 가닿기를.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기자.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라고 확신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 커리어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애써 뺀 살이 다시 돌아온 것에 자신을 탓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돌고 도는 윤회의 쳇바퀴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 ​

  •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타임라인

    < Back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타임라인 14 GG Vol. 23. 10. 10. 게임 중독, 지겨운 단어 2019년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제72회 총회에서 국제질병분류(ICD)의 제11차 개정판이 발표했다. 대규모 개정이 28년만이었다. 28년 묵은 업데이트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질병 코드가 14000여 개에서 55000여 개로 대폭 늘었다. 이 개정에 게임이용장애가 질병 코드 6C51을 얻어 등재되면서 논의가 폭발했다. 게임에 대한 탄압, 중독 아니고 과몰입, 중독 아니고 이용장애, 게임은 문화, 게임은 산업, 물질 중독이 아닌 행위 중독, 이 모든 담론 속의 맥락이 제각각 근거가 있었다. 인류 사회 전체에서 어지러운 난상 토론이 일어났다. 그나마 최근에야 좀 정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수많은 단어와 개념들이 이리저리 얽힌다. 게임과 폭력, 두 단어가 만났을 때 일어났던 혼란은 게임과 중독, 두 단어가 만났을 때도 그대로 일어났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서 게임과 중독에 관한 글을 쓸 때 모든 식자들은 엘리트주의적 정서를 느낀다. 이 복잡한 맥락을 나는 잘 정리해서 이해했으니 알려주고 싶다! 실제로 이 글의 서두는 그렇게 쓰여졌고, 완성 후에 후회했다. 그런 정리는 이미 너무 많다. 현재에는 게임 중독, 혹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우리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각계의 입장 의료와 보건 영역에서는 예방과 치료를 위한 사회적 투자를 주문한다. 게임이용장애가 수면장애, 섭식장애와 같은 행위 중독이고, 인류사에서 이를 질병으로 규정한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적용과 관찰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새로운 중독 개념을 관찰하여 도입하는 과정이라는 인류사적 맥락에서 타당하다. 산업과 문화 영역에서는, 이 두 관점이 상호보완이 되다니 감개무량하지만, 우려에서 반대까지를 표현하고 있다. 예술 분야 혹은 산업 전반에 대한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관점이다. 훌륭한 아이디어라 해도 현실에 적용될 때는 다운그레이드/침강 현상이 일어났던 역사를 고려할 때 타당하다. 의료 논리와 업계 논리의 타당성이 충돌한다. 행정부 부처 별로도 의견이 충돌한다. 문화 계열은 반대, 보건 계열은 찬성이다. 1차적인 이유는 역시 예산이다. 돈을 받아 집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자신이 수행하는 임무의 중요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런 사업 임무는 제각각 중요할 것이다. 반면 이들에게 돈을 내어주는 입장인 기획재정부는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정치의 시간 이렇게 논리와 입장이 충돌할 때 정리하는 업무를 인간은 정치라고 부른다. 한국의 정치 또한 다른 모든 나라처럼 질병 코드 등재에 관련된 행정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 WHO에서 개정된 ICD를 반영하라는 ‘권고’를 한국 정부에 보낸다. 권고받은 정보를 한국 행정부처가 검토하여 한국의 질병분류인 KSD에 전체 혹은 일부를 반영한다. 이번의 경우, 새로 늘어난 것만 41000여 개 질병이니 검토 및 분류 작업은 오래 걸릴 것이고, 따라서 최소 2025년의 정기 개정 시기에 반영될 것이거나 그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 이 절차의 소관 부서는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통계청이다. 반영 이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수행하겠지만, ISD의 성격이 수많은 질병을 규정하고 코드화하여 모아놓은 통계 편람이기 때문에, 반영 업무 자체는 통계청이 주관해야 한다. 한국은 2019년 7월 23일에 통계청에 민관 협의체를 만들었다. WHO의 ISD 갱신 2개월 후이니 매우 빠른 편이다. 그런데 이 민관 협의체는 41000여 개 신규 질병 코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용장애, 대중적 용어로는 게임중독 질병 코드 하나만을 다루는 협의체다. 민간위원 14명과 정부위원 8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의료, 게임, 법조, 시민단체, 기타 전문가, 교육부, 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 통계청, 국가조정실, 복지부, 문화체육부의 인물이 모두 들어가 있다. 관련자는 물론 관리자 역할인 국가조정실까지 모두 모인 것이다. 이 22인이 연구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면, 국가통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등재 결정으로 이어진다. 민관협의체의 타임라인 민관협의체는 결정을 내릴 근거를 수집하기 위해 먼저 연구 용역을 3건 발주했다. 연구들은 2019년 12월부터 구체적 단계에 들어갔고, 2년 후에야 완성이 되었다. 이 3건의 연구를 토대로 회의가 연거푸 열렸는데, 2022년 1월 12일의 8차 회의에서 일이 벌어졌다. 올라온 연구 보고서 셋 중에서 하나의 신빙성과 정합성을 일부 민간위원이 문제 삼은 것이다. 해당 보고서는 게임이용장애의 역학조사가 방법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의 ‘게임이용장애 실태조가 기획’ 연구였다. 역학조사를 통해 계량화된 수치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연구 셋 중에서 유일하게 질병코드 도입 찬성측에 유리한 연구 결과였다. 아무튼 이 연구에서 문제점이 지적되자 후속 보완 연구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이후 민관협의체는 8개월 동안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을뿐더러 추가 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정권 교체기였기 때문에 생긴 지연이라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졌다. 정지해있던 민관협의체는 2022년 말에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이상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2월 21일, 통계청은 언론 보도에 대한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해당 보도는 사라진 것으로 보여 확인할 수 없지만, 민관협의체 회의에서 통계청 관계자가 ‘한국은 WHO 결정을 그대로 수용해야 해서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코드에 등재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민관협의체 무용론이 등장한 것이다. 통계청은 민관협의체의 결정은 효력이 있고 한국은 국내표준분류를 만들 때 국내 여건을 감안한다는 내용의 반박을 했지만, 해가 바뀐 4월 4일 국민일보는 여전히 민관협의체 무용론이 존재한다 는 보도를 했다. 8차 회의 이후 아직도 후속 보완 연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함께였다. 이에 대해서는 통계청과 국무조정실 양쪽에서 반박 보도자료를 내놨다. 후속 연구는 9차 회의에서 결정된 후 세부계획 수립 중에 있으며 2023년 4월 중에 착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같은 내용의 반박이 4월 24일 뉴스원의 기사 에 대해서도 나왔다. 즉, 2023년 10월 현재에는 아직 연구가 진행중일 것이다. 통계법 제22조 1항 그렇다면 민관협의체 무용론의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통계법이다. 통계법 제22조는 표준분류 조항이다. 1항에서는 이렇게 서술한다. “통계청장은 통계작성기관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통계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산업, 직업, 질병·사인(死因) 등에 관한 표준분류를 작성·고시하여야 한다.” 국제표준분류, 예를 들어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 사안에서는 WHO의 ICD가 기준이 된다는 의미를 ‘국제표준분류를 따라가라’ 의미로 보면 강제조항이 된다. 반면 ‘참고하라’는 의미로 보면 권고조항이 된다. 언론 보도에 나온 분위기를 보면 민관협의체와 그 주변 분위기는 강제조항 해석이 우세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강제조항 해석이 우세하고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라는 의미는 즉, 현재 민관협의체의 분위기는 질병 코드 등재에 부정적인 쪽으로 흐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분위기를 포착한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인 2023년 2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통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바로 해당 22조 1항을 고치는 내용이다. 국제표준분류가 기준이 아닌 참고가 되며,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국제표준분류의 반영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가 들어가는 개정안이다. 하지만 윤석열 행정부는 이 개정안에 대해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반대 입장이다. 한국의 통계 기준이 국제 기준과 지나치게 거리를 두게 되면 국가간의 통계 비교 문제가 생긴다는 우려, 즉 통계 기준의 갈라파고스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헌 의원의 통계법 개정안은 아직 계류 중이며, 21대 국회의 회기 막바지임을 고려하면 이대로 회기 종료가 되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고, 이와 별개로 국무조정실에서 4월 20일, 별도의 연구 용역이 나왔다. ‘게임산업 규제 개선 및 진흥 방안 연구’였는데, 여기에 게임 질병 코드 사안도 들어가 있었다. 통계청 산하 민관협의체에서 결론을 늦게 내고 있으니, 중앙부처 주도로 질병 코드 등재를 강행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 국무조정실은 곧바로 그런 의도가 아니며, 결정 주체는 통계청의 민관협의체라고 확언을 했다. 국무조정실의 이 발언은 두 가지 의미로 독해가 가능하다. 첫 번째, 민관협의체의 연구 용역과 별도의 계획은 없다. 즉, 민관협의체에게만 권한이 있다. 두 번째, 민관협의체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계획은 없다. 즉, 지지부진해져서 결론이 안 나오면 계획을 세우겠다. 두 번째 해석에는 약간의 비약이 들어가 있으므로 가능성은 낮다. 여기까지가 질병 코드 등재에 관한 타임라인이며, 타임라인은 4월 말로 끊겨 있다.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2023년 10월 현재, 한국은 아직 민관협의체가 발주한 추가 연구 용역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구도 이 사안에 가장 깊게 연관된 플레이어는 국회, 행정부, 산업계, 문화계, 의료계다. 이 중에서 의료 외에는 미지근하거나 방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질병 코드 등재에 대해 의료계는 찬성, 산업계와 문화계는 반대 입장이다. 행정부는 대체적으로 미지근하다.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부처 간의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이 이유로 보인다. 반면 정치권은 이 사안을 다루는 소수 국회의원들의 주도로 반대쪽으로 기울고 있다. 과방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관철시키며 게임 중독 용어를 게임 과몰입으로 대체했다. 통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상헌 의원은, 여당 국민의힘의 하태경 의원과 함께 게임계의 여론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 노력하는 주요 정치인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들의 활동을 언론이 보도하는 모습에서는 논조의 변화가 읽힌다.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어 소위원회에 상정이 되면, 이에 대해 국회 내 전문위원들이 검토보고서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이상헌 의원의 통계법 개정안 발의에 대한 보도에는 김일권 수석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 넣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인정할 경우 관련 규제와 낙인효과가 일으킬 악영향에 대해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법률 전문위원의 의견이 기사화에 포함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바, 언론사가 찬반 중 어느 쪽의 의견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WHO가 ISD를 전면 개정한 2019년에는 ‘게임 중독’이 용어로 사용되면서 게임에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생산되었다. 반면 2020년에는 게임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담론이 계속 유통되었고, 이런 여론이 조성되면서 2022년의 게임의 문화 예술 지위가 인정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 2023년의 게임 과몰입 용어를 사용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한국의 여론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언론의 태도 변화로 읽어낼 수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책은 여론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 사안을 다루는 통계청 민관협의체의 절차가 느린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찬반 의견이 강력히 부딪히는 가운데, 코드 등재를 하지 않으면서도 그 부작용 방지를 철저하고 확실하게 하기 위한 일처리를 하는 중이라서 느린 것일 수 있다. 혹은 행정부 내에 코드 등재를 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 싸우는 중이라서 느린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서술한 해석에는 약간의 비약과 희망이 들어가 있으며, 실제는 두 가지 해석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Tags: 게임중독, KCD-11, ICD-11,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기자.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라고 확신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 커리어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애써 뺀 살이 다시 돌아온 것에 자신을 탓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돌고 도는 윤회의 쳇바퀴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 ​

  •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 Back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04 GG Vol. 22. 2. 10. 필자는 약 반 년의 기간 동안 “그레이 게이머 연구”에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50대에서 70대를 망라하는 노인 게이머들의 게임 경험을 청취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60대 할머니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들었던 이야기였다. 평소 둔하고 무딘 손가락 때문에 애니팡 같은 쓰리매치 게임을 할 수 없었던 그 분은 펜슬이 달린 갤럭시 노트로 핸드폰을 바꾸면서 펜으로 꼭꼭 집어가며 원래는 할 수 없던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즐거워하셨다. 이 일화가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노년 게이머는 게임이 싫어서, 또는 게임의 재미를 몰라서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게임을 하는데 있어 자신의 신체에 잘 맞는 도구가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 주목하여 모두가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위해 게임 보조기기를 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번 지면에서는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게임 보조기기를 개발한 국립재활원의 보조기기 개발팀을 소개하고 프로젝트에 대해 나눈 대담을 소개할 예정이다. Q: 국립재활원과 보조기기 개발팀의 역할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일반 병원이 사고를 당한 환자들의 치료에 중점을 둔다면,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은 사고에서 장애를 가지게 된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보조기기는 필수이다. 그 중에서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은 보조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2020년부터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제적 가치 부문과 사회적 가치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개인이 부담하기에 지나치게 비싼 해외 보조기기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라면, 후자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수요를 공모를 통해 파악하여 수요자와 함께 개발하고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 노인·장애인과 함께 보조기기를 개발하는 국립재활원 열린제작실 전경 Q: 기존에도 재활을 위해 게임이 사용되는 사례가 있지 않았나? 그러한 “재활 게임”과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재활 게임은 재활 과정 자체를 좀 더 쉽게 거쳐갈 수 있게 고안된 기능성 게임이다. 재활을 위해서는 같은 동작을 수백 번씩 반복해야 한다. 이 과정을 좀 덜 지루하게 해낼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 재활 게임이다. 반면,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는 장애인들이 게임 플레이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즉 ‘레저’의 의미에서의 게임을 위해 보조기기를 개발하였다. * 보조장비를 만들기 위해 열린제작실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들. Q: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과 성과를 소개해달라.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는 2020년 말 뇌병변장애인(장애가 심한 뇌성마비)의 어머님 다섯 분이 “장애인도 게임할 수 있나요?” 라는 신청을 함께 해 주셔서 시작하였다. 그 이후 자조모임의 형태로 뇌병변장애인과 가족,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게임보조기기를 개발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회의, 워크숍과 사용성평가 등을 진행하면서 각 신청인에게 적합한 형태의 보조기기를 개발, 개조하였다. 특히 모임에서 집중하였던 것은 조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기존의 게임과 컨트롤러는 뇌병변장애인이 사용하기에 지나치게 복잡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적합한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데 집중하였다. 간단한 조작으로도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가진 독자적 컨트롤러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물론 개발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장애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호자나 활동지원사들이 그에 맞는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분들부터 게임 플레이에 익숙해져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의 성과를 취합한 결과 게임접근성 보조기기 12종(개발 10종, 개조 2종)을 개발하였고, 활용 매뉴얼 책자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다’를 발간하였다. 책자는 추후 pdf파일 형식으로 무료로 공개될 예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게임을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성취감을 얻고 간접경험을 얻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게임플레이가 장애인의 사회 복귀와 적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발견이자 수확이 아닐까. * 장애인의 기능수준을 고려하여 다양한 조이스틱을 떼었다 붙였다 하며 조작을 할 수 있는 게임 컨트롤러. 출처: 국립재활원 공식 유튜브 *게임 컨트롤러의 실물. Q: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게임 접근성에 보다 주의를 기울일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앞서 사업 성과에서 소개했듯, 장애인들에게 있어 게임은 성취감을 주고 간접경험을 제공받으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장애인이 한 명의 인격체로서,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 게임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크다. 게임을 하다 보면 컴퓨터를 해보고 싶고, 그러다 보면 직업 훈련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영어를 배우기를 원하는 등, 게임으로 쌓이기 시작한 성취의 감각은 연이어 쌓여나가 삶에 대한 의지로 형태가 변한다. 또한 게임 접근성의 문제는 노년 게이머 문제 와도 결부되어 있다. 지금의 젊은 게이머들 또한 나이가 들 것이다. 노화에 따른 반응속도의 저하와 시력 저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에 대비하여 게임을 조작하는 플레이어가 처한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상상하고 그것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낼 상상력과 기술이 지금부터라도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Q: 게임 접근성을 위해 국내 게임 개발사 및 퍼블리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해외 사례를 참고했다. 놀랍게도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장애 형태를 지닌 사람들도 각자에 맞는 게임 보조기기를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여가를 즐겨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맞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장애인 게임과 관련된 연구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Xbox Adaptive Controller (Xbox 접근성 컨트롤러)'와 ‘로지텍의 Adaptive gaming kit (어댑티브 게이밍 키트)’, ‘Nintendo의 Flex Controller’ 등의 연구 인프라와 그 결과물이 사회에 잘 자리 잡혀 있었다.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 주로 콘솔 게임이 연구 대상이 된 것 또한 이러한 해외의 상황,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장애인 게이밍에 대한 국내 게임 산업의 무관심과 맞닿아 있다. 플레이어의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고려한 해외 콘솔 게임과 다르게 (닌텐도 Wii의 경우, 영유아의 게임 플레이를 위한 접근성 설정을 지원한다) 국내 게임은 주로 PC게임과 스마트폰 게임으로 양분되어 있고, 어느 쪽도 이 게임들의 경험에 맞는 컨트롤러나 소프트웨어 차원의 접근성 지원은 전무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 또한 국내 게임에 대한 반응이 더욱 좋았던 만큼, 국내 게임 제작사와 퍼블리셔들은 먼저 장애인 게이머와 노년 게이머 또한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게임에 잘 맞는 인터페이스가 게임 플레이의 경험을 더욱 높여주는 만큼 보다 다양한 게이머들이 처한 조건을 상상하고 구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이후 후속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어떤 연구가 가능할 것인가? 이전 질문과 이어서, PC게임이나 스마트폰 게임에 이식할 장애인용 컨트롤러를 개발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내 게임과 연계하여 진행한다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더하여 이번에 진행된 프로젝트는 뇌병변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분류하는 장애의 기준은 15가지나 된다. 다른 장애유형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접근성과 컨트롤러 연구가 더 진행되어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이번에 진행되었던 게임보조기기들이 상용제품으로 나와, 사용자들이 쉽게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 보조기기연구개발팀은 게임보조기기 외에도 노인과 장애인의 여가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보조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다양한 그림도구를 휠체어에 부착하는 그림그리기 보조기기. * 입술로 움직이고 바람을 불면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입술마우스. 상용제품이 높은 가격으로 접근이 쉽지 않아 저비용 제작이 가능한 키트화에 성공했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일상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이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라면, 장애인들이 보다 즐겁고 편안하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여러 보조기기를 쓰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놓인 신체적 조건이 다르며,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모두가 일상을 위해 일정 정도 보조기기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지극히 모호한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게이머 또한 각자 다른 신체적 조건 아래 놓여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깊이 고려한 게임이 설계되고 시장에 나왔을 때,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진정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에서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 ​

  •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 Back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14 GG Vol. 23. 10. 10. 2023년 8월 11일, 검찰은 신림동에서 거리에서 서있던 20대 남자를 흉기로 공격하여 사망하게 하고 3명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젊은 남성을 공격하였다”라고 설명하며, 사건의 원인을 게임중독으로 지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각계에서 의견을 밝혔지만,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들을 기반으로 한 의견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이에 따라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는 게임과 범죄의 관계에 대한 계량적인 연구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리뷰해보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독자들이 계량연구에 익숙치 않은 것을 고려하여, 조금 평이하게 개인의 감정도 가득 담아서 리뷰를 하였으니, 이 점을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게임과 범죄의 연관성에 대한 시작: 게임과 폭력(aggression)과의 관계와 현실과의 괴리 게임이 범죄를 만들어낸다라는 주장은 생각보다 많이 만연해있다. 이러한 주장의 이론적 배경은 크게 두가지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첫번째는 GAM(General Aggression Model)이라고 부르는 이론이다 (Allen & Anderson, 2017). 이 이론은 Social Learning Theory (Bandura, 1977)에 근거하고 있는데, 어떤 행동을 습득하는 것은 직접적인 경험도 중요하지만 관련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이들 학자는 이 이론을 TV, 영화나 게임과 같은 매체에 적용하여 폭력적인 콘텐츠를 계속 접하면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두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이론은 둔감화 이론(desensitization theory)이다 (Griffiths & Shuckford, 1989). 이 이론은 반복적인 폭력적인 매체의 노출은 이용자가 폭력적인 행동 및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며, 이후 이용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원래 TV 콘텐츠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론이지만 게임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기초하여 게임과 폭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실험을 통해서 폭력적인 게임을 이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폭력적인 경향을 많이 보인다는 결과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게임이 폭력을 야기하며, 더 나아가 범죄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특히 게임과 폭력 간의 관계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들(Anderson이라던지…)은 위의 실험결과를 기초로 미국의 학교에서 총기난사사건에는 폭력적인 게임이 연관되어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Ferguson, 2008). 이러한 실험들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매우 크다. 1) 무엇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제한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하도 이상한 실험을 해대는 연구자들이 많아서(ex. 흑인들을 대상으로 몰래 진행한 매독실험, 감옥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루겠다고 실제로 사람을 가두고 폭력적인 행위를 조장한 스탠포드 감옥 실험 등), 요즘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임상시험 심사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직접적으로 하는 실험은 당연히도 승인이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들 실험에서는 폭력성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게임을 한 이후 설문을 진행하거나, 상대방에게 (듣기 괴로운) 백색소음을 얼마나 많이 들려주는지, 편지에서 빈칸에 어떤 단어를 채우는 지를 이용하였는데, 이러한 측정이 폭력성을 제대로 측정하는 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존재한다. 게다가 실험 프로세스 전반에 있어서 게임과 폭력간의 관계를 강력하게 믿는 사람들이 진행했던 실험에는 문제가 많았으며, 실험 프로세스에서 문제(ex. 대상 선택이라던가, 변인들에 대한 부적절한 통제 등)들을 개선한 후속 연구들 및 메타분석, 그리고 종단연구들에서는 게임과 폭력간에는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Ferguson, 2015). 특히 심리학 실험에 대한 문제들이 많이 제기되면서 최근에는 실험을 진행하기 전에 먼저 실험 설계를 공개하고, 이후에 공개된 실험설계와 일치하는 실험을 진행하는 형태로 실험연구를 진행하는 연구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게임과 폭력과 관련된 연구에서 이렇게 먼저 실험설계를 공개한 연구들과 공개하지 않은 연구들 간에 결과에 유의한 차이가 존재하였다 (Ferguson, 2020). 퍼거슨은 더 나아가 이러한 새로운 매체에 대한 “폭력”에 대한 우려가 역사적으로 반복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 시대에는 글쓰기에 대해 높은 우려가 존재하였으며, 소설, 만화, 음악, TV, 영화 등을 거쳐 이제 게임에 오게 되었는데, 이러한 우려에는 반복적인 패턴이 존재하며 학자들은 이러한 패턴을 모럴 패닉(Moral Panic)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Drotner, 1999; Ferguson, 2008) 2) . 아무튼 게임과 폭력간의 관계를 긍정하는 연구들은 과학적인 절차 측면에서도 문제를 많이 보이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그림 1>과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GAM 및 둔감화 이론에 기반한 실험연구의 결과대로라면 게임의 이용량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범죄가 증가해야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으로 전반적인 범죄율 뿐만 아니라 청소년 범죄율 모두 90년대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 그림 1 – 범죄율과 비디오 게임 판매량 추이(1998-2015). 출처: 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2021) Ferguson은 게임과 폭력간에 사실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게임과 범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첫번째로 학술연구를 발표한 사람이기도 하다. Ferguson (2008)은 무엇보다 폭력적인 게임과 연관관계가 높다고 주장한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에 대한 기존의 profile 연구들을 살펴보고 폭력적인 게임과 범죄간에 실제적인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Ferguson이 주목한 연구는 2002년에 미국 비밀경호국과 교육부가 공동 연구를 진행한 총기난사사건 범인들에 대한 프로파일 연구이다 (Secret Service, 2002). Ferguson은 이 연구결과에서 총기난사사건 범인들의 게임 이용률을 역산했는데, 이는 14%에 불과하여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총기난사사건의 범인들이 오히려 게임을 적게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위에 보인 그림 1을 첫번째로 학술논문에 제시하며 게임과 범죄간에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였다. 물론 Ferguson (2008)의 그림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짧은 기간의 그림이었지만, 양상은 비슷하게 나타났다. 게임은 범죄를 감소시키는가? 계량연구의 어려움 위 <그림 1>을 보면 “게임은 범죄를 감소시키는구나, 증명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 그림만으로는 사실 게임이 범죄를 감소시키는 지를 계량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이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 때문인데, 소위 “황새와 신생아 이야기”라는 우화로 유명하다 3) . 산업혁명이 한참 진행될 때, 네덜란드에서는 황새의 개체수가 증가하니 신생아 숫자가 증가하는 변화가 이루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산업화가 진행되며 도시에 인구가 몰리는 현상과, 도시에서 쉽게 음식을 구할 수 있게 된 황새들이 증가하는 것에 기인한 것이다. 즉, 황새와 신생아는 상관관계는 존재하지만,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버전으로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황새의 개체수가 감소하자, 신생아가 줄어든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아무튼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명료하게 계량적으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가지 관점에서 접근을 한다. 하나는 시계열 분석이다. 어떤 요인이 원인이었다면, 그 영향은 이 원인이 발생한 시점 이후에 만들어지며, 그 이전에 변화가 있다면 이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접근이다. 다른 하나는 패널 데이터분석이다. 패널데이터 분석은 다수의 대상이 여러 시점의 변화들을 다루는 분석 모형인데, 특정 요인에 대한 영향이 다수의 대상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면 이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접근이다. 마지막은 준실험설계(quasi-experiment)라는 방법인데, 현실에서도 실험과 같이 특정한 요인에 노출된 실험군과 노출되지 않은 대조군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들의 사전-사후 변화들을 비교하면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는 접근이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에 대한 흐름은 이 세가지 모두가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접근방법들이 존재함에도 게임과 범죄 간의 인과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게임업계 때문이다. 게임과 관련한 통계가 생각보다 부실하게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공개들을 꺼려하는 관행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엮어서 분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학자들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을 딛고 분석을 진행해 왔다. Ward (2011)의 연구: Video games and crime 게임과 범죄 간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첫번째로 계량적으로 접근한 사람은 텍사스 대학 알링턴 캠퍼스의 경제학자인 Micheal R. Ward이다. 이 분은 패널데이터 방식으로 접근을 하였는데, 사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패널데이터 분석을 하기 좋은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단일한 경제체제 아래에서 전혀 다른 정치적, 경제적 정책을 활용하는 50개 주를 보유하고 있고, 50개주의 차이를 패널데이터로 살펴보면 인과관계를 (조금 쉽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측면에서 미국의 주별 데이터는 큰 차이가 없었는지, Ward 교수는 미국의 400개가 넘는 카운티를 대상으로 1994년부터 2004년까지 패널 데이터 분석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카운티 별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범죄 간의 차이를 살펴보았는데, 카운티 레벨에서 게임 이용자 숫자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우니 그 대안으로 카운티 안에 존재하는 게임샵의 개수를 게임 이용자 통계의 대안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통제변수로서 카운티의 평균 소득, 실업률, 카운티 내 경찰관 수 및 인구와 영화간의 개수, 스포츠용품 샵도 포함시켜 분석을 진행하였다. 분석 측면에서는 범죄라는 것이 자주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포아송 패널 회귀 분석을 사용하였는데, 뭐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아무튼, 분석 결과, 살인과 강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범죄에서 게임샵 개수가 많을수록 범죄가 감소하는 것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강건성(robustness) 확인 과정에서도 명확하게 인과관계를 보임을 확인하였다. Cunningham et al. (2011) & Cunningham et al. (2016)의 연구 Ward 교수와 미국 베일러 대학의 Cunningham 교수, 그리고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의 Engelstätter 교수가 함께 공저한 이 연구는 준실험설계 방법을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가 주목한 것은 성인과 청소년들의 게임의 양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게임이 새롭게 출시되었을 때 새로운 게임에 집중하는 청소년들과 그렇지 않은 성인들은 (게임과 범죄 간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면) 게임 출시 이후 범죄율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접근을 진행하였다. 또한 기존 Ward(2011)의 연구에서는 게임 매출 전반을 활용하였는데, 이번 연구에서는 폭력적인 게임과 비폭력적인 게임의 매출을 VGChartz의 자료를 활용하여 분리하여 활용하였다. 또한, 게임이라는 것은 자체는 출시 시점의 판매량보다는 게임 플레이가 중요한데, 게임 플레이 시간의 분포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모형화하여 분석에 반영하였다. 이를 통해서 일반적인 게임은 범죄율에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폭력적인 게임은 범죄율을 감소시키는 게 기여한다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또한, 성인과 청소년 간의 비교를 통해 청소년에 있어서 게임이 범죄율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보이고, 이를 통해 게임과 범죄간, 특히 폭력적인 게임이 범죄율을 감소시키는 인과관계를 실증하였다. Markey et al. (2015): 게임과 범죄 간의 인과관계에 이론을 더하다. Markey는 미국 빌라노바 대학의 심리학과 뇌과학 학부 교수로서 심리학 관점에서 게임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하는 학자 중 한명이다. Markey 교수 연구팀은 시계열 관점에서 폭력적인 게임과, 일반적인 게임, 그리고 범죄 간의 인과관계를 시계열분석을 통해 분석하였으며, 분석 결과 게임은 현실의 폭력을 증가시키기보다는 감소시킨다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사실 이 연구에 실린 다음 그림 하나로 요약해볼 수 있다. GTA의 출시 및 이에 대한 이용자의 관심(구글 검색량)은 폭력적인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를 시계열분석의 복잡한 도구들을 활용하여 실증하였다. * 그림 2 – 폭력적인 게임(GTA) 출시와 폭력적인 범죄 간 변화율 비교(2003 – 2011)> 그러나 이 연구의 가치는 시계열분석을 통한 인과관계 증명보다는 도대체 왜 게임이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를 하는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을 시도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카타르시스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격한 게임을 하고 나면 내재된 공격성이 해소되어서 현실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 범죄에 관련한 연구에서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지루함”이라는 결과가 있는 만큼, 이 이론도 설명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이론을 제시한 학자들 조차도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Beerthuizen et al. (2017) : 네덜란드에서 GTA5의 출시와 청소년 범죄와의 관계 이 연구는 서두에서 청소년 범죄가 전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밝히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 중 하나가 게임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연구를 시작한다. 이에 따라 GTA 5의 출시효과를 모형화하여서 폭력적인 게임의 대명사인 GTA5가 네덜란드의 청소년 범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2012년부터 15년까지 일간 데이터를 활용하여 분석을 진행하였다. 분석 결과, GTA5의 출시는 청소년들의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를 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GTA5만 이러한 효과가 발생할 수 있으니 게임을 바꾸어서 “콜오브듀티:블랙옵스2”, “콜오브듀티: 고스트”에 대해서도 동일한 분석을 진행하였는데, 이들 게임도 모두 청소년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가 중요한 점 하나는 게임과 범죄간의 관계를 RAT(Routine Activity Theory)라는 범죄모형(Cohen & Felson, 1979)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후 연구들은 게임과 범죄간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이 이론들을 중심으로 이 현상을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RAT 이론은 범죄는 범죄동기를 가지고 있는 공격자가 효과적인 보호가 배제된 적절한 대상을 적절한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이에 따라 이러한 공격자가 동일한 시간과 공간 내에 존재하지 않도록 한다면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때 게임이 인기를 끌게 되면 범죄동기를 가지고 있는 공격자는 게임으로 인해 피해자를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기가 어렵게 되고 범죄가 감소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피해자 측면에서도 게임을 하느라 집에 계속 있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감소하고 이는 범죄율의 감소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RAT 이론을 활용하여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RAT 이론은 범죄자를 가두어서 범죄율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 즉 교도소의 운영을 지지하는 이론이지만 이렇게 게임과 범죄의 관계에서도 유효한 설명을 만들어내고 있다. McCaffree & Proctor (2018) : 이불 밖은 위험하다. 이 연구는 앞의 연구와 같이 RAT 이론에 주목하여,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통계를 만들어낸 뒤,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범죄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살펴보았다. 이렇게 연구들을 시간상으로 늘어놓으니 이 연구가 Beerthuizen et al. (2017)의 영향을 받은 듯 해보이지만, 보통 이러한 경제학 도구를 활용한 연구들이 출간되는 기간들이 1년이 넘어가기 때문에 거의 동시에 진행된 연구라고 봐도 무방해보인다. (게다가 RAT 이론이 게임과 범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해서는 Griffiths & Sutton (2013)과 같이 여러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미국의 50개주의 통계들을 잘 엮어서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물론, 자료의 한계로 인해 1997, 2001, 2003년 3개년의 자료를 바탕으로 패널을 분석하였다. 분석에 있어서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 비율 뿐만 아니라 빈곤층 비율, 실업률, 인구밀도 등 범죄에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는 주요한 요인도 함께 반영을 하였다. 분석 결과,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높은 주에서는 범죄율이 낮게 나타나는 추세들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모든 범죄율을 낮추어주는 것은 아니다. 절도, 무단침입, 살인 등에 있어서는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을수록 범죄율이 감소하였으나, 폭력범죄나 강간 등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이 없었다. 이를 통해, 집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범죄를 피하는 데 효과적이며, 이불 밖은 위험하다라는 오래된 격언이 의미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알려주는 좋은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Ferguson & Smith (2021) : 이번에는 전세계적으로 살펴볼까 기존의 연구들이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만 진행되었기 때문에 Ferguson과 Smith는 92개국의 통계를 기반으로 회귀분석을 통해 게임과 범죄 간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92개국 전반에 걸쳐서 살인과 자살과 같은 문제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소득수준이나 빈부격차와 같은 경제적인 지표이며, 게임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살인의 경우 빈부격차가 높을수록 살인 범죄가 많이 발생하며, 게임은 오히려 살인범죄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살의 경우, 소득수준이 핵심적인 유인이며 게임과 자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반대되는 결과의 연구도 존재하지만, 문제들이 좀 많다. 물론, 위의 방법들과 유사한 도구들을 활용하여 게임이 범죄를 높인다고 주장하는 연구들도 존재한다. Impink et al. (2015)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일간 자료를 바탕으로 청소년의 범죄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으며, 분석 결과 게임이 출시된 시점에서 청소년의 범죄가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게임의 출시가 범죄율의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문제는 이들이 통제변수를 단순히 게임등급별 게임 출시 여부로만 반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게임 출시 여부 이외 일반적인 범죄를 설명하는 통제변수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재윤(2017)은 패널 회귀분석을 통해 54개국의 청소년범죄, 살인, 성폭력, 강도, 폭행, 절도, 빈집털이 등에 1인당 게임소비금액을 반영하여 게임이 범죄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였다. 이 때 게임 이용량은 1인당 게임지출비용을 활용하였으며, 비디오게임과 PC/온라인 게임, 모바일게임 소비를 분리하여 효과를 측정하였다. 또한, 통제변수로는 1인당 GDP, 청소년 인구비율, 인터넷보급률, 경찰 인원 규모 등을 반영하였다. 분석 결과 1인당 PC/온라인 게임 소비나 모바일 게임 소비는 범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청소년 범죄를 낮추는 효과를 보였으나, 1인당 비디오게임 소비가 증가할수록 청소년 범죄나 성폭력, 강도, 폭행, 강력범죄가 증가하는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1인당 비디오 게임 소비금액은 해당 국가의 게임 이용량을 대표하는 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플랫폼별 차이가 범죄율에 미치는 영향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분리하여 분석을 하였는데, 이 부분에도 큰 우려가 존재한다. 그럼 저자는 리뷰만 하고 연구는 안하나? 물론… 이런 오해를 할 수가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학술출판이라는 개념을 (이미 아시겠지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연구결과를 짜잔하고 만들었다면, 이를 논문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좀 잘하는 사람은 1주일만에 다 끝낸다고 주장하지만, 생각보다 이 기간이 오래 걸린다. 뭐, 오래 걸린다고 해도 1년씩 걸리는 건 아니다. 보통 방학 기간에 해결하기 때문에 6개월 정도가 일반적인 기간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낸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는 기간이다. 학술지에 투고하고 의견을 반영하여 출판되는 데 짧으면 6개월, 길면 2년까지 걸리기도 한다. 저자의 경우 2014년에 만든 연구가 2020년에 실리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어흑). 우리 연구팀의 연구가 공교롭게도 리뷰를 작성하는 기간에 논문에 투고가 되며, 자동적으로 아직 심사가 안된 논문이 공개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래서 최근 저자의 생생한 연구는 다음에서 보실 수 있다.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4586747 우리 연구의 핵심은 준실험설계(quasi-experiment)이다. 특히 셧다운제로 인해 16세 미만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게임량이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16세 이상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낮게 나타났다. 이를 활용하여서 16세 미만은 실험군, 16세 이상은 대조군으로 잡아 게임 이용량의 감소가 학교폭력이나 청소년 비행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분석 결과, 사실 게임 이용량이 감소하였다고 학교 폭력이 감소하지는 않았다. 즉, 게임소비량과 학교폭력 간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기존 연구들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이다. 유사한 실험설계를 활용하여 게임과 여러가지 부정적인 효과에 대한 인과관계 규명을 준비하고 있는데, 늘 게임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쪽의 강력한 재정적 지원을 보며 아쉬워할 뿐이다. 아무튼, 저자도 리뷰 뿐만 아니라 연구 측면에서도 열심히 뛰고 있다. 1) 게임과 폭력간의 관계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Anderson vs Ferguson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많은 연구들이 존재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Bayesian님이 정리한 [게임과 심리학]의 관련 링크( https://ppss.kr/archives/5827)를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이 싸움의 전방에서 가장 열심히 싸운 퍼거슨 교수와 마키 교수는 “모럴 컴뱃”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이 책이 2021년에 나보라 박사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으니, 이 책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2) 슬픈 사실은 이렇게 학술적으로는 명확하게 게임과 폭력간의 관계가 부정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긍정하는 수많은 (잘못된) 연구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3) 서양에서는 아이는 황새가 물어다준다는 설화가 존재한다. 참고문헌 Allen, J. J., & Anderson, C. A. (2017). General aggression model. Th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media effects, 1-15. Bandura, A., & Walters, R. H. (1977). Social learning theory (Vol. 1): Englewood cliffs Prentice Hall. Beerthuizen, M. G., Weijters, G., & van der Laan, A. M. (2017). The release of Grand Theft Auto V and registered juvenile crime in the Netherlands. European journal of criminology, 14(6), 751-765. Cunningham, S., Engelstätter, B., & Ward, M. R. (2011). Understanding the effects of violent video games on violent crime. ZEW-Centre for European Economic Research Discussion Paper(11-042). Cunningham, S., Engelstätter, B., & Ward, M. R. (2016). Violent video games and violent crime. Southern Economic Journal, 82(4), 1247-1265. 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2021) Essential Facts about Games and Violence available at https://www.theesa.com/wp-content/uploads/2021/03/EFGamesandViolence.pdf Ferguson, C. J.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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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 Back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19 GG Vol. 24. 8. 10. 바야흐로 AI의 시대이다. 미래 기술로 인식되던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고, 그중에서도 게임은 기술적 도입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는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게임을 만드는 공정에서 AI 기술이 활용된다고 'AI 게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순 없을 것이다. AI 기술을 이용해서 게임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다양해지고 그로 인해서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질 때, 'AI 게임'의 시대가 열린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만들고자 하는 게임 기획자들이 있다. 특히,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최근 게임씬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렐루게임즈의 PD님들을 모셨는데요.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와 맡으신 게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가빈 PD: 안녕하세요. 저는 이가빈이라고 하고요. 게임 디자이너 출신으로, 지금은 '마법 소녀 그 긴 거' 담당 PD를 맡고 있습니다. 저희는 음성 인식을 통해서 유저들의 목소리를 게임의 데미지로 바꾸어 공방을 주고받는 형태의 게임을 만들었고요. 딥러닝을 본격적으로 사용해서 (게임 내) 판정이나 자연어 인풋, 에셋에도 딥러닝이 들어가게끔 만들었습니다. 한규선 PD: 저는 한규선이고요.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라는 게임 PD입니다. 저희 게임은 근미래의 탐정이 돼서 로봇 용의자들과 대화를 하는 게임이거든요. 그래서 사건 현장에 가서 증거들을 수집하고 그 증거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용의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때, GPT가 사용되어서 게이머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고, 무슨 말이든 로봇 용의자가 받아치면서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게임의 가장 큰 특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두 게임을 다 굉장히 재미있게 즐겼는데요. 플레이하면서 레퍼런스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먼저, <즈큥도큥> 같은 경우에는 옛날 플래시 게임 중에 <장미와 동백>이라는 게임이 떠올랐는데요. 혹시 이 게임을 아시나요? 이가빈 PD: 실제로 많이 참고했어요. 특히 그 게임의 대화나 컨셉에서 화족(근대 일본의 귀족 계급)이 나오잖아요? 화족이라고 하면 고고한 컨셉인데, 실제로 인물들은 상욕을 하고 뺨을 때리거든요. 그렇게 반전을 넣은 것을 보면서 컨셉에 반전을 주는 지점이라거나 B급 감성 같은 것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참고를 많이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실제로 참고를 하셨군요. 저는 <즈큥도큥>를 보면서 그 게임 생각이 많이 났거든요. 익숙한 컨셉이지만 이걸 더 직관적으로 살려낸 느낌이 들었어요. 한편으로, <스모킹 건>을 보면서는 게임이 아니라, <크라임씬> 생각이 많이 났거든요.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보면 <크라임씬>을 유저가 직접 하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사건의 전말' 같은 것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한규선 PD: 오! 맞아요. 저도 <크라임씬> 팬이었고, <대탈출>이나 그런 프로그램들을 다 좋아하거든요. 실제로 처음 기획할 때에는 사실 인간 용의자를 상정하고, <크라임씬> 같은 컨셉을 아예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GPT나 AI 기술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아서, 인공지능이 말을 잘 못했거든요. 그래서 용의자를 로봇으로 설정한 게 그런 한계를 어느 정도 커버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스토리를 풀어나가거나 게임의 컨셉을 지키는 입장에서 더 잘 표현되는 지점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처음에는 '왜 굳이 로봇 이야기일까?'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유저에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더라구요. <장미와 동백> 이경혁 편집장: 지금 두 게임 다 렐루게임즈 소속이고,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AI 기술을 중요하게 다루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더 사람들의 관심도 받고,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먼저, GPT를 쓰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용이 많이 나갈 것 같은데, 매출과 비교했을 때 효용이 있나요? 이가빈 PD: 사실 얼마를 벌어도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죠. (웃음) 서비스를 할 수록 비용이 나가거든요. 한규선 PD: 추리 게임 장르 같은 경우에는 장르적 특성도 있는 것 같고요. 만약에 다시 하라고 그러면 조금 더 대중적인 장르를 할 것 같아요. 사건의 전말이 공개됐을 때, 플레이어들은 다시 플레이할 만한 필요성을 많이 못 느끼거든요. 그래서 더 넓은 시장으로 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고, 그렇게 되면 조금 더 유의미한 매출이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매출과 관련된 질문을 드린 이유는, 오늘날 AI에 관련된 담론 때문인데요. 일각에서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게임에서 콘텐츠를 만들 때 AI가 적용되면 리소스적인 효율성이 나올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게임을 만드시는 입장에서 스토리를 AI가 만든다고 하면, 조금 더 경제적인 효율성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한규선 PD: 스토리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다 쓰고 있거든요. 이야기나 대사 같은 것들을 제작팀이 다 쓰고 있고, GPT나 AI에 맡기는 부분은 일부 리소스 정도이지,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려면 아직은 AI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제작팀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가빈 PD: 저희도 비슷해요. GPT나 LLM 같은 경우엔 인간 상식의 평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만약, 스토리를 라이트하게 쓰고자 한다면 쓸 수는 있는데, 극단으로 가는 자극적인 스토리나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부분, 혹은 강한 조미료를 뿌려야 하는 부분은 맡기기 힘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규선 PD: AI는 절대로 아스파탐을 못 떠올릴 거예요. 아마. (일동 웃음) 이경혁 편집장: 그렇군요. 오늘날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AI는 모든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실제로 작업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만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여쭤보았습니다. 한규선 PD: 그래도 보조도구로는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이가빈 PD: 맞아요. 도구로써는 정말 좋은 역할을 해줘요. 저희도 주문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거나, 스토리에서 메꿔야 할 빈 공간이 있을 땐 AI에 물어보고 참고도 합니다. 일단, 어딘가에 물어볼 곳이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 좋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좋아요. 이상한 답변을 주더라도 내가 물어볼 곳이 있고 진지하게 같이 고민을 해준다는 건 좋은 거죠. 이경혁 편집장: 약간 그런 느낌일까요? 옛날 수도승들이 벽하고 대화하는 느낌? 한규선 PD: 제가 느끼기에는 어떤 질문의 정수까지는 닿지 못하는데, 아는 것은 많은 친구 느낌이에요. 질문을 하면 아는 것이 많아서 뭐든 대답은 하는데, 정수에는 미치질 못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사실 AI가 제작 도구로써도 활용되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게임씬에 들어오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가령, <스모킹 건> 같은 경우에는 AI가 배우의 역할도 하지 않나요? 게임을 만드실 때, 거기 나오는 안드로이드에게 일종의 액팅 지도를 해야 하지 않나요? 한규선 PD: 실제로 액팅 지도가 들어가 있어요. 등장하는 캐릭터가 한 18개 정도 되는데, 그 캐릭터성을 다 다르게 표현하려 했거든요. 정보를 가지고 있는 형태는 유사할 수 있어도, 그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는 각자 다 다르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캐릭터마다 다 세팅을 하시는군요. 중간에 오타쿠 의사 로봇이 나올 때, 저는 연기 지도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기존의 게임 디렉터와 다르게, 약간 영화 감독 같은 작업이 되었겠는데요? 이런 작업은 기존의 게임 개발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장면들이잖아요. 한규선 PD: AI를 활용한 작업은 저희에게 익숙합니다. 저희는 2019년부터 이런 작업을 4년째 했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4년간 작업을 하시면서 AI를 활용한 작품 중에서 괜찮은 레퍼런스가 되었을 게임이 있었나요? 이가빈 PD: 내부에서 만든 게임이 주로 떠오르긴 하는데요. 사실 저희 <즈큥도큥>의 전신이 되는 게임 중에 <워케스트라>라는 게임이 있었어요. 이 게임은 음성으로 군대를 움직여서 전략 전투를 하는 게임이었는데요. 개발 테스트에서 음성으로 누굴 공격하라거나 어떤 스킬을 쓰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저는 주체적으로 말을 못 고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옵션을 제공하고 어떤 말을 해야할지 제공해야겠다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해서 만든 것이 <즈큥도큥>였어요. 한규선 PD: 저희도 이전에 프로토타이핑했던 <데몬>이라는 게임이 있었는데요. GPT가 악령이에요. 이 악령의 이름을 말하면 이기는 게임이거든요. 그래서 얘한테 정보를 숨겨놓고, 그걸 찾아서 성불시키는 게임이었는데, 뭐 개발 과정에서 처참하게 망했죠. (웃음) 이경혁 편집장: 저는 되게 재밌어 했을 것 같은데요? 한규선 PD: 저도 지금 만들면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시에 가빈 PD님이 테스트를 엄청 깊게 해주셨거든요. 그 과정에서 게임에 정보를 숨기는 것이 어렵구나 하는 점을 배우고, 그다음에 추리 게임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스모킹 건>에서도 그런 장면을 봤었던 것 같아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기사에 실을 수는 없겠지만. 한규선 PD: 와! 맞아요. 그거를 이런 식으로 알아차리실 줄은 몰랐는데... 저만 알고 있는 건데... 맞아요. 이경혁 편집장: 기사를 읽으시는 분들도 전신이 되는 게임의 컨셉이나 노하우가 어디에 담겨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으실 수 있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즈큥도큥>에 대해서도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렐루게임즈에서 여러 인터뷰가 있었지만, <즈큥도큥> PD님은 인터뷰에 거의 나오신 적이 없잖아요? 이가빈 PD: 네. 이번이 첫 인터뷰예요. 이경혁 편집장: 아시겠지만, 지금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다니󰡓, 왜 이런 걸 만들어서, 만든 사람 주소 알아야 된다 뭐 이런 글들이 나오고 있어요. (웃음) 그러면서 우스갯소리지만, 커뮤니티에서는 '이걸 만든 사람은 지금까지 대체 어떤 게임을 했기에 이런 걸 만들 수 있냐'는 궁금증도 올라오거든요. 그런데 저도 그건 궁금하더라구요. 한규선 PD: 저도 궁금하네요. (웃음) 이가빈 PD: 개발자는 어떤 게임을 해놨냐는 질문에 두 가지 분류의 답이 있을 수 있잖아요? 먼저 만들어 온 게임으로 치면, 저는 <테라>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테라> 콘솔로 넘어갔다가, 지금은 없어진 프로젝트인데 소울라이크 게임에서 전투를 담당하는 디자이너였어요. 그리고는 라는 AI 활용 퍼즐 게임에서 처음 AI를 만났죠. 그전까지는 던전 만들고, 전투 만들고, 칼과 방패를 들고 몬스터들과 싸우는 게임들의 콘텐츠 디자이너였어요. 플레이한 게임도 사실은 그것들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은데요. 소울라이크도 했었고, 시뮬레이션을 되게 좋아했었어요. 갓오브워나, 시티 빌더 류도 포함해서 경영 쪽이나 아니면 <용과 같이>도 재밌게 했었어요. 한규선 PD: 내면에 흑염룡이 있으셨군요. (웃음) 이가빈 PD: 그렇게 싱글 플레이를 위주로 했었고요. 딱히 그 안에서 '그런' 게임은 없었다. (일동 웃음) 상상하신 것처럼 집에 가서 뺨 때리고 그러지 않았어요. 저도 여러분과 같은 게임을 하면서 모두가 다 밟는 코스를 밟아왔어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웃음)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게임 제목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과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어떤 의도로 게임 제목을 정하셨나요? 이가빈 PD: 그게, 원래는 가명이었어요. 어떤 게임을 만들지 소개하는 게임 기획 단계에서 원래는 '최대한 읽기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정해야지' 하면서, 제가 생각했을 때 읽기 부끄러운 단어들을 이렇게 다 띄워놓은 건데, 출시할 때가 되니까 이름을 지을 시간이 없어서 (웃음) 바빠 죽겠는데 이름까지 처음부터 다시 정하려면 힘드니까. (그냥 냈어요) 한규선 PD: 최고의 선택이었다. (일동 웃음) 이경혁 편집장: 수치스러운 이름이라고 하셨는데, 게임 내용에서도 저는 참 이게 어렵더라고요. 방에 아무도 없어도 피드백을 주잖아요. 처음에는 뭣 모르고 시작했다가, 제 목소리라는 걸 깨닫고 그때의 수치감은... (웃음) 한규선 PD: 저도 디자이너지만, 디자이너로서 봤을 때 되게 혹독한 게임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보통은 그냥 자기 목소리 녹음을 해서 들어도 굉장히 어색한데 거기에 이펙트도 먹이고, 에코도 넣어서. 이가빈 PD: 원래 시작은 감정 모델로 음성을 보내서 데미지를 계산하는 통신 시간을 채우기 위함이었어요. 음성 데이터가 갔다 오는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유저에게 그 딜레이를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까 어떤 시스템이든 만들어야 했는데, 저희는 거기에서 유저의 메인 경험 안에 수치심이라는 걸 넣고자 했어요. 그리고 이 시간을 활용해서 수치심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이경혁 편집장: 멀티플레이를 제공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요? 이가빈 PD: 그렇죠. 멀티플레이랑 PVE가 근본적으로 다른 건 뭐냐면, '진심으로 이기고 싶은 상대이냐? 아니냐?'. 그러니까 유저의 몰입도 측면에서 조금 더 내가 많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냐? 없냐?를 결정짓는 부분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멀티를 딱 한 번 해보고 도저히 못 하겠어서 접었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이 길에서 만나서 바지를 누가 더 길게 내리는가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일동 웃음) 이가빈 PD: 그런데 그 시원함도 있죠. 일탈감? 해방감? 한규선 PD: 저희 팀 같은 경우에도 게임 출시하고 난 다음에 이제 쉴 수 있다고 했을 때, 다들 <즈큥도큥>를 한 번씩 키는 거예요. 그 해방감이 있죠. 이가빈 PD: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사실은 되게 별거 아니거든요. 이게 처음에 되게 창피하고 그렇지만, 사회적 체면을 내려놔야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점점 무뎌져 가는 부분들이 있어요. 저희는 그런 지점들을 고민하면서 게임을 만들었어요. 저희 팀원들의 경우에도 사실 매일 이걸 해야 하거든요. 처음에는 수치스럽다가, 지금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한규선 PD: 다만, 저는 그게 무서울 때가 있어요. (일동 웃음) 처음에는 옆에서 게임을 하면 막 킥킥대면서 그랬는데, 지금은 심각하게 주문을 외우는데도 다들 일상화되어 있어요. 이가빈 PD: 그렇죠. 결국 수치심엔 내성이 생겨요. 몇 번 하고 나면 무뎌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또 리스크이지 않나요? 게임이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지를 본다면 그 해방감과 상쾌함이 순식간에 끝나는 것도 문제잖아요. 이가빈 PD: 맞아요. 그러니까 계속 더 강한 수치심을 느끼게끔 개발하고 있어요. (일동 웃음) 그런데 저는 이 해방감이 짧아도 좋고, 언젠가 끝나도 좋으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드리고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스모킹 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시나리오가 거의 SF 형태인데 크레딧에 나오는 작가분들이 원래 SF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인가요? 한규선 PD: 아, 시나리오는 주로 제가 썼고요. 원래 SF를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 로봇이 살인범 이려면은 두 가지 경우밖에 없더라고요. 하나는 스스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살인을 한 경우든지, 아니면 사람의 조종이 있어야 하든지 두 경우이죠. 그런데 시나리오를 확장하려다보니, 아이디어가 점점 커졌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제가 흥미롭다고 느꼈던 점은 로봇 3원칙을 안 썼다는 점이었거든요. 보통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 클리셰인데도, 그걸 안 쓰신 이유가 있을까요? 한규선 PD: 저도 처음에 검토를 했었는데, 로봇 3원칙 자체가 특정 작품에서 나온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개념을 사용할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우리만의 방식으로 풀어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런 세계관을 구축하신 것도 대단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추리 게임을 좋아해서 더 관심이 가는데, 시즌제를 만드실 계획은 혹시 없으신가요? 한규선 PD: 시즌 2를 만들고는 싶어요. 시나리오도 어느 정도 생각해놓은 게 있거든요. 마지막 부분에 보면 회수하지 않은 떡밥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시즌 2를 언급해주셨는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AI를 활용한 게임이 종합적인 연출의 능력들도 필요하다 보니 다른 장르의 게임들에도 활용할 여지가 많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하셨나요? 한규선 PD: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처음 써봤거든요. 그런데 종합적으로 연출하고 상상력을 표현하는 일들이 너무 재밌는 작업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NPC라는 영역을 발견했죠. 그래서 나중에는 이런 기술과 시나리오를 조금 더 대중적인 장르에 접목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예를 들어 RPG라든지, 시나리오가 탄탄하게 있는 게임에다가 이런 기술을 도입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발더스게이트> 같은 게임에 자유 대화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군요. 한규선 PD: 네. 맞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그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대화를 통해서 거래를 한다든지 설득을 한다든지 이런 시스템이 메인인 어드벤처 게임도 만들어보고 싶고, 시즌 2를 만들어도 시즌 1에서 배웠던 노하우들을 확장시켜서 플러스 알파로 넣고 싶은 기술들이 많습니다. 특히, <스모킹 건>에서 말로 NPC를 제어하는 파트가 있거든요. 이후 작업에서는 이런 기능을 확대하면서 완전 새로운 게임성을 느끼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스모킹 건>의 시점이 1인칭이잖아요. 주인공 캐릭터를 아예 안 보여주는데, 1인칭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한규선 PD: 최근에 어떤 분이 리뷰 쓰신 내용에 공감이 갔는데, 플레이어가 직접 입력하는 게임 형식이기에 이 캐릭터를 규정하는 데 괴리감이 클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실제로 유저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어떤 사람은 굉장히 강압적으로 게임을 진행하고, 어떤 사람은 친절한 탐정이 되거든요. 이렇게 사람마다 플레이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제가 캐릭터를 규정해버리면 느낌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캐릭터를 규정하지 않은 거고요. 그리고 게임 내의 인터랙션 요소가 제4의 벽이라고 그러잖아요. 현실까지 이어지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모두 플레이어가 탐정이 되는 경험을 주고 싶었던 점들과 연결돼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두 게임 다 AI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공통점으로 플레이어마다 각기 다른 방식의 플레이를 보인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제작자의 입장에서 유저들의 데이터들을 보실 때, '이런 플레이는 생각도 못 했는데'라고 떠올린 적이 있으세요? 이가빈 PD: 저희 게임에선 똑같은 문장을 어떻게 연기하느냐에서 다른 플레이 모습들이 나오는데요. '향아치'라는 유튜버분께서 조선시대 양반들이,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창을 하듯이 말씀을 하시는데, 이렇게까지 다양한 컨셉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규선 PD: <스모킹 건>은 사건 해결을 위해 추리를 하는 내용들이 정해져 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사실 다 열려 있어요. 예를 들어, 저녁 식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게끔 되어 있죠. 그런데 저희가 이 게임을 처음 디자인했을 때, 그런 자유의 영역이 재미의 요소가 될 순 있어도 이걸로 5시간을 플레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추리 자체의 완성도라든지 이야기의 깊이가 없으면 이 게임을 끝까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저분들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니까 자유 대화하는 부분까지 충분히 즐기시더라구요. 특히, 게임에서 에코라는 친구가 말을 되게 잘하는데, 많은 분들이 이 친구와의 대화를 즐기시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추리의 영역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한편으로는 결말이 있어도 사건을 플레이어가 조립하는 과정은 각자 달랐던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기존의 게임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 고정된 메시지가 일단 나가고 플레이어마다 그 메시지를 다르게 해석했다고 한다면, <스모킹 건>은 고정된 메시지가 나가는 것이 아닌 지점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유저가 완전히 사건을 다르게 구축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규선 PD: 네. 예를 들어서 어떤 캐릭터가 어떤 일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해석하는 게 되게 다양하게 열려 있어요. 물론, 전체적인 사건의 전말은 기준점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 사이사이는 플레이어가 메꾸게끔 기획했는데 그걸 되게 즐기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이 상상을 하셔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오고, 그런 부분을 정식 스토리에 반영한 경우도 많아요. 이경혁 편집장: 요즘 AI를 활용하는 게임 개발 프로젝트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요. 혹시 PD님들은 렐루게임즈 외에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도 알고 계신가요? 이가빈 PD: 스팀에서만 찾아봐도 AI를 활용한 프로젝트들이 많아요. 사소하게는 에셋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죠. <도키도키(두근두근 AI 심문게임)> 같은 게임이나 <페이크북>도 그렇고, 저희도 (관련된 게임이 나오는 소식에 대해) 약간 촉각을 곤두세워보는 것 같아요. 특히, AI로 게임을 만들었다고 하면 궁금해져요. 저희는 AI 기술의 가능성도 알지만, 시행착오도 겪어봤잖아요. 그러다 보니, AI와 관련된 한계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어떤 돌파구를 찾았을지 이런 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것처럼 에셋에 도입하는 경우는 많지만, 한편으로 게임에 AI를 넣는 것과 게임을 AI로 만드는 것은 다르잖아요? 저는 렐루게임즈의 시도가 좋았던 지점이 게임의 규칙과 메커니즘에 AI를 넣었다는 점이거든요. 한규선 PD: 렐루게임즈의 규칙이랄까 대원칙이 하나 있는데, 게임의 코어에 딥러닝이 들어가지 않으면 저희는 프로젝트 승인 자체가 되질 않아요. 아이디어 단계에서 이 게임이 코어에 딥러닝 기술을 필요로 하느냐를 살펴보고, 거기에 게임적 재미를 어떻게 부여할지 살피게 됩니다. 만약 AI 기술과 관계없이 재미있는 게임 기획을 가져오면 승인이 안 날 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제안도 안 해요. 이가빈 PD: 저희는 만드는 중에도 계속 체크를 해요. 이게 진짜 딥러닝 없이 불가능한 게임인지. 이경혁 편집장: 그렇군요. 그런데 게임을 만들면서도 AI 기슬이 발달하잖아요? 그러면 <호라이즌 제로 던>의 엘리자베스 소벡 박사가 가이아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실 것 같은데, 변화하는 기술을 보며 어떤 기분이 드세요? 한규선 PD: 저희 게임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AI가) 말을 되게 못했어요. 예전에는 비용이나 속도 문제 때문에 GPT 3.5를 썼었는데, 그때 로봇은 말도 잘 못하고 약간 떨어지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GPT 4로 바꾸니까, 로봇이 초등학생이다가 갑자기 대학을 준비하는 애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 있었어요. 특히, 유튜버분들이 플레이하는 거 보면 옛날에는 조금 불안한 지점이 있었는데, 요즘은 저도 놀랄 정도로 말을 잘하고, 󰡒내 새끼, 잘한다󰡓 이렇게 될 때가 있거든요. (웃음) 앞으로는 더 발전할 거라고 봐요. 어떻게 보면 지금 자유대화가 가능한 NPC의 상용화 앞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하는데, 저는 앞으로 그렇게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이경혁 편집장: 맞죠. 대화형 인공지능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오류가 있는지의 여부를 중요하게 살펴보지만, 저는 오류가 있어도 괜찮은 영역이 놀이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모킹 건>의 시나리오를 보면 오류가 생기는 지점도 상정을 하시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반가웠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 AI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나오는 주제가 편향성이잖아요? 인간이 AI의 편향성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들도 나오고 있는데, 현업에서 AI를 다루시는 입장에서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가빈 PD: 저는 편향성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AI를 따라가더라도 어디까지 얼마나 따라갈 것인지에 대한 취사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오히려 그런 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AI 기술을 원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있어요. 한규선 PD: 저도 동감하는 지점이,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들은 오히려 쉽지만, 어슴푸레한 뭔가가 있다고 하면 오히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유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지점들은 연구할수록 더 확립될 거고요. 이가빈 PD: 조금 더 첨언하자면, 가끔은 AI를 따라가다 보면 역으로 발견할 수 있는 지점들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들을 모아서 어떤 아웃풋이 나왔는지 발견하다 보면 사람들이 어디서 재미를 느끼는지, 왜 이런 게임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한규선 PD: 저희 회사에서 만든 는 AI로 생성하는 퍼즐 게임이거든요. 여기서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스테이지들이 있고, 이것을 얼마나 생성하는지가 중요한 과제였어요. 이런 지점에서 '재미 자체를 학습하는 딥러닝'을 만드는 것이 회사의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지점들에선 게임 분야가 더 AI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이가빈 PD: 처음에 저는 게임에 AI 기술을 적용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모든 게임은 행동에 대한 피드백과 학습이 일어나고, 거기서 몰입이 생기면서 유저들이 즐기게끔 설계가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딥러닝을 도입하면 유저의 행동 자체도 모호해지고 피드백도 모호해지는 부분들이 나오게 되거든요. 예를 들어, 게임에서 자연어로 질문을 하면 이거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모호한 행동이에요. 그러면 피드백도 모호할 수밖에 없죠. 유저들도 행동을 하면서 이게 얼마나 스스로에게 유의미하고 보상이 될지 모르다 보니,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좌우하느냐가 AI 게임 개발의 핵심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한규선 PD: 그런 지점에서 오늘날 AI에 관한 기사도 많고, 관련 게임에 대한 이야기도 쏟아져 나오지만, 실제로 AI나 자연어 기술을 활용한 게임이 많이 나왔는지 묻는다면 아니거든요. 기술 발전에 비해서 게임 분야의 활용이 좀 더디거나 오히려 보수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렐루게임즈가 주목받는다고 한다면,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이유가 될 것도 같고요. 그래도 이렇게 일종의 거품이 생기는 지점들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다는 의미이니, 앞으로 AI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가 밝혀지면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두 게임 다 AI를 사용했지만, 기술을 활용한 방식이 다르고 게임성이 다르기 때문에 홍보 전략도 달라질 것 같은데요. 그런 지점에서 어떤 분들이 우리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한규선 PD: 일반적으로 추리 게임이라는 장르는 정해진 선택지를 따라서 진행하기 마련인데, <스모킹 건>은 그런 지점에서 새로운 방식의 플레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추리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즐거워하실 것 같고요. 그리고 수다 떨기 좋아하시는 분들? 시시콜콜한 대화를 즐거워하시는 분들도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과 로봇, AI 사회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나 고민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엔딩까지 재미있게 플레이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가빈 PD: <즈큥도큥>는 뭐랄까요. 햄버거집에 가서 주문 못하시는 분들? 부끄러움을 되게 많이 타시거나 그런 분들이 한번 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때는 저도 짜장면 집에 전화 못하고 되게 창피하고 그랬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한 번 하고 나면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붙일 수 있는 용기가 생겨요. 그런 것처럼 극단적인 체험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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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 this Lies of K?: “Lies of P” game discourse in the context of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s longing for a stand-alone game title

    < Back Is this Lies of K?: “Lies of P” game discourse in the context of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s longing for a stand-alone game title 19 GG Vol. 24. 8. 10. In Korean: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8237fbae-ebdd-45ba-b5e4-445769f3b0b9 “Suffice it to say I'm from the country of the morning, beyond the ocean. But I wouldn't be much of a tour guide. All I know about it is their weapons.” “Lies of P” (Neowiz, 2023) takes place in Krat, a fictional city inspired by the Belle Époque period in Europe. One of the game’s NPCs (non-player characters), Eugénie, is portrayed as an outsider from a distant country east of Krat. She claims to come from the so-called ‘country of the morning,’ with a visual character design that resembles East Asian ethnic groups. Perhaps this character’s story was inspired by the Joseon Dynasty, a kingdom that existed on the Korean peninsula from the 14th to 19th century, which was typified as the “Land of Morning Calm” in the West around the 18th century based on the loose translation of the country’s name in Chinese characters (朝鮮) . In “Lies of P,” Eugénie is described as an expert in weaponry who aids the players on their journey through Krat. Compared to the Belle Époque-inspired mechanical wonders of Krat, Eugénie’s ‘country of the morning’ is envisioned as a distant, warm place. I see that perhaps Eugénie's character reflects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s pseudo-expansionism, which seeks to venture into the distanced, admired and imagined realm of core console video games. Lies of P, the proud “AAA made in Korea” “Lies of P” was developed by Round8 Studio, a subsidiary of Neowiz Games, one of the leading game developers and publishers in South Korea. Unlike many South Korean games, which are often multiplayer-focused, “Lies of P” offers a single-player action-adventure experience and is classified as a ‘stand-alone’ game. It falls within the ‘soulslike’ genre, known for its high difficulty levels, resource-limited combat systems, and extensive exploration within the game environment—a term originally inspired by the Japanese “Dark Souls” franchise. Meanwhile,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 is dominated by free-to-play mobile games with the so-called ‘lineagelike’ genre, being criticised by Korean players for its extensive dependency on competitive multiplayer modes and toxic microtransaction schemes. The term originated from South Korean games like “Lineage M” and “Lineage 2M” . In this context, for Korean players, “Lies of P” stands out from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s norms of malpractice. Therefore, upon its release, the game was praised by local media as a worthy addition to the game industry, capable of “impressing” even “the soulslike fans” and earning its credibility as an “AAA made in Korea”. * Word cloud visualisation of “Lies of P” in South Korean domestic media coverages (Original source: Big Kinds big data analysis system. Translated by Solip Park.) To understand the rhetoric of “AAA made in Korea”, we must first consider the regional context and discourse surrounding the South Korean games. As of 2022, video games are one of the most popular forms of entertainment in the nation, with 74.4% of the South Korean population playing some form of games 1) . The country has dedicated laws to promote and develop its video game industry, such as the South Korean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 However, gaming is not yet fully acknowledged as a legitimate ‘cultural activity’ (e.g., leisure, entertainment, self-making) in South Korean society but rather as an offspring of a capitalistic ‘business’ (e.g., industry, revenue-seeking, profitability). Tension between Korean publishers and their aggressive game monetisation schemes and gamers being critical of these business practices is rising. Even some individual Korean game developers associate their occupational identity with being a ‘gamer first’ rather than being a game developer, expressing their critical view towards the industry’s business practices. For example, Choi Ji-Won, the director of “Lies of P”, remarked, “I would not have chosen this job if I had to consider realistic factors, like the profitability (of the game)” 2) . His statement reveals a tendency to define the occupational role of a game developer while being an active, legitimate member of the gamer community that seeks to promote games as cultural creations. At the same time, South Korea is struggling to compete with the Chinese game industry, which has recorded substantial growth in recent years and has outperformed South Korea in developing and servicing online multiplayer games. Considering these factors, it is unsurprising to see "Lies of P" portrayed by local media as a new alternative that could alter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 – an alternative that could save South Korean games’ future. This is evident in the word cloud visualisation of “Lies of P” (see picture above), which indicates that the game was frequently mentioned by local media with keywords such as ‘MMORPG’, ‘Multiple Access Role Playing Game’, and even ‘Lineage’, despite the game being prominently single-player based. “Lies of P” was portrayed as a pivotal game that could alter the norms of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 The game is console-based, which is unique on its own from Korea, and it managed to achieve commercial success with 1 million copies sold within the first month of its release. This is unprecedented in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 which has historically been predominantly PC and mobile-centric. It is also estimated that a significant portion of “Lies of P” revenue, up to 90%, comes from overseas markets outside Korea, which is also unheard of in mainstream South Korean games. It is therefore deemed as, to quote, “setting up a new pathway for the stagnant Korean game market” that is suffering from a post-COVID game economic downfall and a decrease in active PC and mobile gamers 3) . South Korean media also highlighted a lesser impact of post-COVID on the console gaming market. They thus praised the success of “Lies of P” as a significant milestone for the future of the Korean game industry towards the promising console market 4) . The media discourse then further moves on to the quality of game design in “Lies of P” and its resemblance to existing soulslike games and their in-game mechanics. In other words, they described how faithfully “Lies of P” follows soulslike design canons while highlighting the game’s better achievements in “optimisation” and “(visual) graphics” 5) . For example, the game is described as “a stunning technical achievement” for its “successful multi-platform optimisation, even when some world-class developers struggle to create a high-performance gaming experience on the PC operating system” 6) . Others reported that the game also received critical acclaim from overseas for its “neat combat system, unique world setting, and realistic visual graphics” 7) . “Fox Ranger” to “Lies of P” – the journey of Korean stand-alone game Looking closer at the local Korean media discourse surrounding “Lies of P,” I wondered if there have been any similar cases in the history of South Korean games. One similar case that comes to mind is “Fox Rangers”, released in 1992 by Korean game developer Soft Action. The game is regarded as the earliest PC-based package game made in Korea to reach the commercial market. Soft Action promoted their game by releasing “a playable demo through a PC network (i.e., dial-up internet), allowing players to experience the first in-game level” while emphasising the game's adaptation of “advanced (computer) technology” 8) . As such, despite being nearly three decades apart, the releases of “Fox Ranger” and “Lies of P” resemble each other in significant ways, such as playable demos and emphasis on technical achievements. In the early 1990s, during the release of “Fox Rangers,” South Korean media expressed concerns about heavy foreign dependency in the South Korean game market. The media portrayed the US and Japanese game industries as mainstream, stating that “more than 90% of the (Korean) electronic game market is dominated by Japanese and American products”. Japan was particularly highlighted as a role model for game design and development, where gaming was recognised as a legitimate cultural activity, unlike in Korea. They also elaborated on the early South Korean game software development with a tone of triumph, emphasising its potential significance for the nation’s future export-driven economy and advancing information era. Some praised Nam Sang-gyu, the developer of “Fox Ranger”, as the “man of arms of (our) computer industry” 9) . Nam also asserted in one of his interviews that “It is a shame that our land’s children, who cannot yet read Korean properly, are already immersed in games with Japanese Katakana letters”, and advocated for “finding our sovereignty with game software” as “more important than any other types of software” 10) . Thus, linguistic literacy in games (i.e., the ability to play games in the Korean language) was seen as a crucial indicator for distinguishing games as “ours” versus “theirs”. Fast forward to 2023, let’s examine the case “Lies of P”. The game features only English voice-over. Right at the start of gameplay, Sophia, a character in “Lies of P”, calls out to the player from the darkness, saying, “Can you hear me?” I see this illustrates how “Lies of P” aims to break into the global game value chain beyond domestic borders. Indeed, “Lies of P” successfully partnered with Microsoft and is now accessible via Xbox Game Pass, marking its long-awaited entry into the mainstream console platform market that multinational gaming corporations have long dominated. Finally, the game has achieved legitimacy in using the prefix ‘K-’ (akin to ‘K-pop’ or ‘K-drama’), an abbreviation of ‘Korea’ with cross-regional connotations. In the Korean context, ‘K-’ represents a nuanced term that is distinctly “Korean” yet transcends national borders, being “original enough and also embraced by foreigners” 11) . In essence, “Lies of P” is seen as a game that appeals not only to South Korean gamers but also to global gamers who appreciate the soulslike genre. Moreover, the game is recognised as meeting the expectations of South Korean gamers who have long sought high-quality gameplay besides toxic monetisation while also aspiring to become active actors in the global ‘mainstream’ gamer discourse. For instance, some of the reviews of “Lies of P” on South Korean game news platforms often begin with praise for the soulslike genre itself. Phrases such as “(Lies of P) provided a completely new experience, even though I had never played a soulslike game before” are followed by admiration for the genre itself, suggesting, “As someone new to the soulslike genre, I confidently recommend Lies of P as an entry-level game that anyone can enjoy” 12) . Consequently, these reviews position “Lies of P” as an ‘invitation’ that introduces unaware Korean gamers to the unexplored realm of the global console game market, symbolised by the soulslike genre. The desire for ‘real game’ The enthusiastic reaction to finally being ‘invited’ into the soulslike game genre highlights the inherent division players create between those ‘inside’ and ‘outside’ the realm of global console gaming. So where does this border lie? What makes Korean players feel good or accomplished about playing a soulslike game? To answer these questions, we need to delve deeper into the surrounding context. In their book “Real Games”, published in 2019, Mia Consalvo and Christopher A. Paul highlighted a social phenomenon within gamer and game developer communities where they actively distinguish casual social games, claiming they are not ‘real games’. Consalvo and Paul discussed what distinguishes ‘real games’ and identified factors that gamers use to determine a game's legitimacy. The first factor was the game’s pedigree, questioning whether its developers have a history of creating games recognised as legitimate among gamers. The second factor was the content of the game itself, specifically its mechanics and controls. For these gamers and game developers, mobile games that can be played easily with just a few finger taps appeared trivial compared to games requiring complex and sophisticated controls using traditional interfaces like keyboards, mouse, and console controllers. Following this notion, mobile games were often labelled as ‘not real games’. Such socially constructed imaginary frameworks of what legitimises ‘real’ gamers divided those who can play ‘real games’ from those who cannot. This explains why Korean gamers and those familiar with gaming with conventional interfaces generally show their appreciation for “Lies of P” 13) . Let’s now take a closer look at the case of “Lies of P” – is it a ‘real game’? In terms of pedigree, the game’s developer Neowiz is distant from being legitimate among the core gamers. Like most South Korean game developers and publishers, Neowiz have historically focused on online games that are deemed closer to ‘not real games’. Since the late 1990s,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 has predominantly centred around MMORPGs, to quote, “a market biased towards online games distinct from the global market of arcade and home video games”. Notably, a significant portion of Neowiz’s revenue comes from social casino online games such as “Gostop” (Neowiz, 2013), parallel to what is considered a ‘real game’. Therefore, Neowiz’s “Lies of P” is seen as a shed tear of repentance of a Korean online game company that once made games far from being ‘real games’ – and now seeks to break into the console gaming realm. Let’s also look at an excerpt from an IT news article, titled, “Korea is a gaming powerhouse – but why are Korean games excluded from GOTY (The Game Award for Game of the Year)?” 14) . The article exemplifies South Korean gamer discourse that is longing to be acknowledged as an active and legitimate core gamer from the West. The aim is to be legitimised from the outside in order to be legitimised back in the homeland – to have ‘gaming’ become acknowledged as a legitimate ‘cultural activity’ in Korean society. We can see this as they self-describe Korea as a gaming ‘powerhouse’ that has achieved success in the online mobile game business but lacks the ability to be awarded from a prestigious venue. Moreover, while applauding standalone games like “The Witcher” series and “The Legend of Zelda: Breath of the Wild”, they omit to mention Korean GOTY nominee online game “PUBG: Battlegrounds” (Krafton, 2017), seemingly distancing online games from the realm of ‘real games’. The media discourse further legitimises the soulslike genre and consequently underscores the value of playing the game “Lies of P”. The game is praised to be truly immersive, where not only do in-game characters power up, but players themselves can also learn and hone their skills – enhancing their ability to control further complex and sophisticated game mechanics. In contrast, mobile games that are easily playable with figuretips are disparaged for providing little to no immersion or learning outcomes to its players. It is as if the game experience must be meaningful to be legitimised. This leads to the glorification of the constructed fantasy of ‘true (real) gamers’, those who are physically and cognitively capable of learning and executing complex game control. South Korean gamer discourse has been inherently shaped by societal regulations and industrial logic for several decades. Games were initially viewed as addictive substances and harmful entertainment with negative health impacts. But simultaneously, they were also recognised as the nation’s most profitable products, anchoring the nation’s export-driven economy.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ggressively emphasised the economic value of video games to counter societal perceptions of their harmfulness and addictiveness. They criticised regulations as the ‘death of Korean games’ while arguing passively that ‘games are culture’. Despite being an “old and awkward slogan” 15) , I believe the message of ‘games as culture’ will still prompt further inquiries into the broader interpretations of ‘then what accounts as culture’ in Korea – and foster a critical understanding of games and gaming in this region. For example, we are now witnessing slow but steady analytical attempts to excavate and rediscover games as historical cultural heritage. So I see “Lies of P” is certainly unique within the South Korean game context that is worth to be further discussed. This would lead to even deeper inquiries to delve deeper into Korean gamers, industry actors, and scholars. And finally begin to critically inquire the core values that underpin the hegemony of ‘real’ versus ‘not real’ gamers in South Korean gamer discourse. 1) KOCCA. (2023). 2022 White Paper on Korean Games. P.6. https://www.kocca.kr/kocca/bbs/view/B0000146/2001838.do?searchCnd=&searchWrd=&cateTp1=&cateTp2=&useYn=&menuNo=204154&categorys=0&subcate=0&cateCode=&type=&instNo=0&questionTp=&ufSetting=&recovery=&option1=&option2=&year=&morePage=&qtp=&domainId=&sortCode=&pageIndex=1# 2) See: Game Chosun (News), [PS10]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855993&memberNo=12478036 (online news article, 30-November 2021). 3) KOCCA. (2023). Korean Gamer Status Report 2023. https://welcon.kocca.kr/cmm/fms/CrawlingFileDown.do?atchFileId=FILE_43e2b6fd-7f4b-46e5-97f4-5717804ae1b3&fileSn=1 4) See: Business Post (News),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30565 (online news article, 22-October 2023). 5) See: Thisisgames.com (News), https://m.thisisgame.com/webzine/nboard/16/?n=176290#:~:text=%EC%B4%9D%ED%8F%89%ED%95%98%EC%9E%90%EB%A9%B4%20%3CP%EC%9D%98%20%EA%B1%B0%EC%A7%93,%EC%9D%98%20%EA%B1%B0%EC%A7%93%3E%EC%9D%80%20%EA%B2%B8%EC%86%90%ED%95%A9%EB%8B%88%EB%8B%A4 . (game review, 14-September 2023) 6) See: Gameple (News), https://www.gamep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420 (game review, 19-October 2023). 7) See: Newsis (News),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20830_0001996358 (online news article, 31-August 2022). 8) Nam Young (2017). The Korean PC Game Industry in the 1990s: Challenge and Response of the PC Game Developers. 한국과학사학회지(Hanguk gwahaksa hakoeji) 9) See: Kyunghyang Shinmun (News), “新世代(신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3) SW의 승부사들 10) See: The Chosun Ilbo (News), "우리말로 게임 국산개발 활기” (newspaper article, 15-January 1993. Retreived from Naver News Library digital archieve). 11) Park (2022). Expanding and Contesting ‘K’ : An Analysis of K Discourse of Korean News Reports. Korean Journal of Journalism & Communication Studies, 66(4), 144-186, 10.20879/kjjcs.2022.66.4.005 12) Kukinews (News),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309260243 (online news article, 17-September 2023). 13) Mia Consalvo; Christopher A. Paul, "Facebook Games Were Evil," in Real Games: What's Legitimate and What's Not in Contemporary Videogames , MIT Press, 2019, pp.1-26. https://ieeexplore.ieee.org/document/8877565 [PS13] 14) See: Appstory (News), https://news.appstory.co.kr/report13261 (online news article, 15-May 2020). 15) Tae-seop Choi,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 게임에 대해 궁금하지만 게이머들은 답해줄 수 없는 것들, Hanibook, 2019, p.18.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Kim Gyuri A researcher studying at Sungkyunkwan University, Department of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with the focus on immersive gameplay prompt from pre-existing canon versus unexpected encounterments. She is a long-time player of Bungie’s and excited for reboo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The Coevolution of Arcade Games, Gamers, and Interfaces

    < Back The Coevolution of Arcade Games, Gamers, and Interfaces 10 GG Vol. 23. 2. 10. Arcade Machines as Retro Games The term “retro games” generally refers to old and classic games. With the recent resurgence of interest in retro games, the arcade games of the past can now be seen all the more frequently. Arcade games, met with immense popularity since their emergence in the 1970s, are treated more or less as forgotten media (at least in academia) despite their prominence as the first form of digital mainstream pop culture. The reason is likely due to the stereotype that arcade games are a mainstream culture, primarily targeted toward young children and teenagers. Arcade culture, which is consistently treated as youth culture and a subculture of the public, continues to receive widespread interest in terms of the destructive and antisocial impact it can leave on teenagers. However, from the perspective that arcade games were ‘absorbed by and replaced with digital video games since the 1990s,’ what little interest there is dissipates. Then, what exactly are these video games considered to have absorbed and replaced arcade games? Gonzalo Frasca defines video games as “including any forms of computer-based entertainment software, either textual or image-based, using any electronic platform such as personal computers or consoles and involving… [games] in a physical or networked environment.” If we go by Frasca’s definition, arcade games quite literally fit the description of video games. Then, what do we really mean by the arcade games that have been rendered extinct? In truth, arcade venues (or amusement arcades) are still thriving—just comprised of different components and conditions. Small, damp arcades became large-scale, and these spaces have become filled mainly by virtual reality games, rhythm action games, and hands-on games with imitative interfaces. The arcade games considered to be extinct are likely of a different kind compared to those at the current-day amusement arcade. As part of the arcade game generation, we have at least a handful of memories where we enjoyed arcade games. However, the memories brought up of such games are different for each individual. To one person, their memory of an arcade is made up of shooting games such as “Space Invaders” or “Galaga.” Another might recall claw machines where you grab plushies or prizes, while another might think of fighting games such as the “Street Fighter” and “Tekken” series or rhythm games such as “DDR” and “Pump It Up.” Otherwise, it may be a memory of using the coin-operated karaoke machine located in the corner of the arcade to relieve stress. These arcades are represented by one word but can mean many different physical spaces depending on each individual. What’s interesting is that the arcade games shown in media as retro games appear more frequently in the form of arcade cabinets as opposed to actual games. With this representation, rather than defining them as hailing from a specific genre or period, couldn’t we regard arcade games as a “form of game experience itself” that can be interacted with by using a unique interface, the joystick? *Inside the “Put your Hands Up” game arcade at Lotte World Tower. (Source: Eun-ki Jeon) The Misunderstanding about Game Interfaces What are the elements that make up a game? Geoff Howland (1998) distinguishes these factors as 1) ‘Graphics’ - the images that are displayed with any effects performed on them, and 2) ‘Sound’ - the music or sound effects that are played during the game; 3) ‘Interface’ - anything that the player has to use or have direct contact with in order to play the game; 4) ‘Gameplay’ - how fun and immersive a game is, and 5) Story - information learned by the player as the game progresses, such as the game’s backstory. Although it is one of the components of a game, the interface is oft neglected from discussion despite the fact that games interact with gamers in ways that require the body (usually the hands). If any game is not connected to the body using some sort of controller, the game is reduced to nothing more than a set of deactivated codes. We can consider the moment on screen made possible by controllers that achieve harmony with the body’s experience, allowing the sensibility and knowledge engraved within gamers to work together. As such, the interface that mediates the interaction between games and gamers goes beyond simply transmitting signals. In other words, the interface is hardware that allows gamers to feel the experiences provided by the game's software, and at the same time, serves as a “bodily extension" for gamers. Accordingly, changes in games have caused the interface to change continuously as well. However, there are some inaccurate beliefs about interfaces. In sum, James Newman (2007, p. 260) states that “[in] concentrating only on change, progress and technological advancement, it is tempting to overlook some of the constancies that a consideration of retrogaming reveals. Perhaps the most immediately obvious element that has remained largely unaltered is the videogame controller.” Thus, Newman claims that the gaming interface has not undergone much fundamental change since being attached to the old consoles of the 1980s—only tweaked to provide a slightly more comfortable grip and placement changes without much fundamental change otherwise, and only advancing for more accurate input. Below, using the joystick of arcade machines as an example, we’ll examine why his argument that the interface has not fundamentally changed is wrong, and why it may be false to claim the technological advancements were for the purpose of more accurate input to meet design demands. Social Reconstruction of Imported Technology It is easy to understand why the joystick interface has continuously been advanced when we examine what kinds of games they are currently used for. Currently, mice, keyboards, or directional pads are predominantly used as game interfaces, for combat games, shooting games, and etc., joysticks are the primary interface. Unlike input devices such as directional pads, which mainly use cross-shaped keys that are designed to register up-down-left-right, joysticks are used for 360° directional input, especially for diagonal input which would require simultaneous input of one of the up and down directional keys with one of the left and right directional keys. Thus, nearly every arcade game’s joystick—except for those of Korea—come equipped with square-shaped guides limiting the movement of the lever in order to facilitate diagonal input. However, only in Korea do we see a different sort of joystick being used. We can safely assume that the joystick equipped with a circular base, commonly referred to as the mu-gak lever (or, the Korean bat stick), is only used in Korea. This is because the technology that is the joystick was newly reconstructed after being imported from Japan and used in Korea due to Korea’s technological environment at the time. Presently, games have grown into one of the most popular industries, but arcade games were not an industry that were promoted by the government nor paved by large companies.3) Consequently, the small businesses in the Cheonggyecheon Electronics Shopping Center near the electronics industry led the charge in manufacturing, importing, and distributing arcade games. When these businesses imported arcade machines from Japan, they imported them separately as parts, not as final products, in order to reduce tariffs. Then, these parts were reassembled and the products were distributed around the Cheonggyecheon area. Around this time, products that could be produced domestically began being manufactured in South Korea. However, the issue lied in a lack of understanding by producers in the gaming parts market as to why each part was designed a particular way. Thus, the design for diagonal input was glossed over, and products with good up-down-left-right drive values were produced, reassembled, and distributed. Japan's joystick also used spring elasticity to return the stick to neutral position after command input, but in Korea, the spring was replaced with rubber because the production of springs with uniform elasticity required high technical skill and production cost. Gamers Adapting to the Reconstructed Joystick In this way, the joystick interface has changed not only under Korea’s political, economic, and technical environment, but also by the physical environment of the arcade. It’s true that as consumables, joysticks must be regularly managed and replaced. However, according to the owner of the now-closed-down green arcade in Daelim-dong, Seoul, very few business owners were aware of such practices in the early days of the arcade. “In the early days of the arcade, there was no concept of it being a specialty store. No one cared about the accuracy of [joystick] inputs. Think back to those days. All the owners did was sit in the room and give you change.” - Kyung-sik Yoon, Male, 68, owner of amusement arcade “Consumables have a long shelf life with business owners that offer games or parts makers and so on. But there was no maintenance done for these. When these consumables that aren’t very durable are used for years on end past their time, the looseness becomes severe. But that’s how Koreans learned to play games, so of course the area of command becomes broader. You couldn’t help but move your hands around all the time.” - Kyung-sik Yoon, Male, 68, owner of amusement arcade South Korean arcade regulars grew used to the loose joysticks that became loose due to the poor management. Unlike gamers of different countries who can control the input with just their fingers, Korean gamers have grown accustomed to manipulating joysticks by moving not only their wrists, but their whole arms. The joystick, a mechanical object, was transformed by gamers who adapted it as their own tool. Going further, it transformed gamers to utilize their own selves and make this apparatus conform to them . Gamers who had adapted to the changed interface also enjoyed playing games in different ways. Rather than use precise diagonal input, they enjoyed using the circular base to rotate the stick. And rather than use play that required quick reflexes using dynamic vision, they would quickly manipulate the loose joystick to engage in their own psychological warfare. We can even largely attribute the differences in play style, compared to players of different countries, to the joystick, especially when it comes to fighting games like Tekken. The Evolution of the Joystick In Korea, the joystick evolved not by how fine and accurate the input was reproduced within a game, but by how it related to the gamer that adapted to the joystick. “The lever has to be dumber in Korea. Why? Because you can’t use it if it’s too sensitive. If you move it little by little, you mess up the command. There has to be a margin of error so that it won’t register even if you move it a certain amount. If there isn’t, you can’t use the lever. Electronic equipment doesn’t lie. But the people who produce levers don’t think that way. They don’t think about the margin of error they should consider, and just keep making them sensitive. ” - Kyung-sik Yoon, Male, 68, owner of amusement arcade The circular base guide that was created in the context of Korea, and the joystick connected to the gamers who adapted to the looseness due to lack of maintenance, have continued to change into a form that requires less maintenance and has a certain margin of error. This is because a sensitive and accurate joystick would directly reproduce the mistakes made by these Korean gamers with dynamic hand movements in command inputs, which would render the joystick unusable. Thus, the joystick changed not in the direction of delivering more accurate input, but rather considering “how consistently dull it could remain.” In order to prevent bending or melding of the copper contact, a rubber part was added between the copper plates, and has been recently transformed to use a switch, along with a more durable silicon that returns the joystick to neutral using the elastic rubber. (See Figure 2, Figure 3, and Figure 4.) * Earliest joystick. (Source: Eun-ki Jeon) * Former joystick. (Source: Eun-ki Jeon) * Latest joystick. (Source: Eun-ki Jeon) That being said, we cannot fully regard the latest joystick as having improved and progressed linearly from the earliest joystick. The interface is also faced with the possibility of change due to ever-changing factors surrounding the game and the gamer, such as a switch from the physical location of the arcade to a gamer’s private space, and other factors. For example, early joysticks are still being produced faithfully to this day; while the price does play an important part, there exist people who prefer to stay away from the sounds made by switches. The demand for the original joysticks continues steadily as the number of gamers who wish to stay away from the noisy arcade and opt for the comfort of their homes increases. Suppose a culture where gamers develop a greater zeal and steadily manage their interfaces as a “bodily extension” becomes widespread. In that case, copper contact joysticks—which hold the advantage in that they make less noise—will become the main kind of joystick and create a new trend of change. As such, interfaces may evolve to accurately construct the ideals projected on the design, but that design can easily change based on coincidental chance. The modified interface also brings about transformation to one’s gameplay itself, and this change in gameplay can change the experience provided by the game, thus bringing about an effect that makes the game itself feel different. Therefore, the interface is not merely a simple input device nor a factor that does not bring any fundamental changes to the game, but rather is the very hardware that constitutes the game and simultaneously the “physicalized” mechanical object connected to the gamer. The interface does not evolve or progress according to the game’s design; it lies in the process of ever-changing co-evolution while interacting with the game, the gamer, and all environments tied to the self. 1) Frasca, G. (2008). Videogames of the Oppressed . Communication Books. Translated by Gyeom-sup Kim. 2) Howland, G. (1998). Game Desine: the Essence of Computer Games. Newman, J. (2008). Videogames (p. 14). Routledge. 3) Jo, D. W. (2019). An Early History of Digital Culture: East Asia-wide Translocal Practices of Copying of Electronic Entertainment Machine and Personal Computer. (98th ed., pp. 153-178). Korean Association For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Studies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ech-cultural researcher) Eunki Jeon He majored in cultural anthropology and cultural research, and is currently working as a researcher at the Cheonggyecheon Technology and Culture Research Institute and Hanyang University Global Multicultural Research Institute. (Translator) Esther Yum ​

  •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 Back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19 GG Vol. 24. 8. 10.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게임 사회> 전시가 보여주듯, 현재 예술 장 내에서는 ‘전시로서의 게임’이라는 새로운 실험들이 다양한 기획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활동은 전시장 벽에 설치된 지도(게임 맵)를 통해 기록된다. 전시 초기에 텅 비어있었던 지도는 게임의 참여자이자 전시의 또다른 생산자인 관객들의 경험들로 채워지고, 이후 회차를 플레이하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다시 영향을 주었다. GG에서는 이와 같은 기획을 꾸린 작가 상희와 성훈을 만나 ‘대화형 게임’이라는 전시의 기획의도와 진행과정, 의미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경혁 편집장 :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작가님들 본인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고요, 전시 제목과 전시의 의의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저는 상희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2023년에 만들었던 <원룸바벨>이라는 VR 작업을 계기로, 게임 형식을 차용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만들었습니다.. 게임의 디자인적 요소를 작업에서 활용할 때 제가 만들려는 이야기나 전하고 싶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가상의 내러티브를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게임같은 매체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에서도 그런 식으로 관객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성훈: 저는 성훈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상희님 작업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게임의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게임 속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수성에 특히 관심을 두고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상희: 본 전시의 제목은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이며,구요. 지금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고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거대한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이벤트를 저희가 ‘조우’라고 지칭하는데, 그 조우들의 결과가 (지도에) 계속해서 축적되고 기록되는 형식이어서 그걸 전시의 메인 이름으로 하게 됐어요. 전시를 준비할 때 기획자들과 논의하면서 ‘지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도에서 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나 이야기가 기록된다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전시회의 메인 제목이 되었고, 부제인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이 지도를 무대로 사용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대화형 게임의 이름입니다. 성훈 작가님과 저, 김지연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게임이고요. TRPG의 형식을 차용해서 만든 게임이라 디지털적인 요소가 부재한 ‘오프라인 보드게임’을 지향했습니다. 퍼포머와 대화를 하면서 플레이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전시에서 사용하는 게임의 이름인 거고, 이 전시 자체는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군요. 제가 첫 회차에 플레이어로 참여를 하고, 지금 두 번째 방문을 하면서 비교해 보니 흥미로웠던 게 지도의 변화였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이쪽(벽면)이 썰렁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상희: 맞아요. 그때만 해도 게임을 끝까지 가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경혁님과 일행분들이 바다로 처음으로 탈출하셨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결국 이 전시가 끝나고 가장 강렬하게 남는 건 이 지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요, 우선 이 게임의 배경이 일종의 재난 상황에 처한 지방 도시에서, 흰개미라는 인간 외적 존재와의 만남과 분투를 테마로 하고 있는데요. 게임의 장르적 특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배경 상황을 구성하셨던 맥락이 궁금합니다. 상희: 우선, 일단은 저희 둘 다 같은 부산 출신인데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 항상 관심이 가는 주제가 ‘고향'과 고향을 떠나와서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의 정서였어요. 제가 작업했던 <원룸바벨>도 서울 원룸에서 살고 있는 2-30대 청년들의 공간과 정서를 VR로 번안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들이 계속 주제로 선택되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성훈 작가가 게임의 배경으로 지방 소도시와 벌레라는 주제를 선택했던 맥락도 있었어요. 성훈: 얼마 전에도 러브버그나 빈대가 서울에 등장했다는 뉴스들이 막 나왔다가 사라진 일이 있었잖아요. 도시 공간에서 벌레들이 철저히 방역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도시’와 ‘벌레’가 서로 적대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에 흥미가 있었어요. 도시 공간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21세기 서울에서 이게 말이 되냐, 서울이 빈대가 나오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식의 반응들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빈대를 모두 무서워했죠. 관련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르포 기사가 있는데요. 그 기사의 핵심은 빈대가 쪽방촌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예전부터 항상 있었다는 점이에요. 빈대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도시 빈민의 공간에 항상 공존하고 있었는데 도시의 주요 거리에 출몰하면서 갑자기 조명을 받게 되었다는 얘기였어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도시와 벌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 게임에 나오는 벌레들은 (인간 플레이어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나요? 상희: 맞아요. 물론 게임 속에서는 기존의 문명을 완전히 파괴하고 소진시키며, 그 폐허 속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지만, 한편으로는 흰개미라는 종 자체가 공생을 추구하기에 자신들이 만든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공격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집이 그들의 집이기도 함을 받아들인다면, 살게 내버려 둡니다. 성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전개에 따라 흰개미는 어떤 플레이어들을 다른 존재로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 다름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의 판단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인간에게 이질적인 어떤 생물에게 우리가 보기에 인간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주기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호의를 표현해주기를 요구할 수는 없지요. 그들은 자기들만의 어떤 논리가 있고, 인간들은 그게 우리한테 호의적이냐 아니면 적대적이냐 이런 종류의 판단 기준들을 각자 제멋대로 갖고 있을 뿐인거고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계속하면서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선 일들이 다른 생물 종에 의해 일어날 때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반응할지 이런 것들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와 게임의 형식과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TRPG를 이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형식을 구상하셨는데요, 원래부터 TRPG를 플레이하신 경험이 있었나요? 상희: TRPG 자체는 작년 초쯤에 시작했어요. 저도 보드게임을 많이 하니까 그런 게임이 있다는 거는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발더스 게이트 3>을 길게 플레이하면서 DND(던전 앤 드래곤)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더스 게이트>가 특히 TRPG 시스템의 UI 구현이 잘 되어 있고, 저에게는 저희가 지금 즐기고 있는 RPG 같은 게임들이 어떤 역사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를 알게 된 게임이었어요. TRPG도 원래는 RPG라고 불리다가 디지털 RPG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앞에 T가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초창기의 게임들을 찾아보고 싶었고, ‘초기의 RPG'로서 어떤 근원적인 경험이 있을 것 같아서 그때 리서치 개념으로 TRPG 플레이를 시작했어요. TRPG 자체는 숙련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사실 진입하기가 되게 어려운 장르였어요. 처음에는 (TRPG 커뮤니티에) 가서 ‘저희 좀 시켜주십시오’ 했어요. 사실 이분들도 넓은 아량으로 해주시는 거거든요, 왜냐면 저희가 초보라서 못 하고 저희랑 하면 재미없기 때문인데(웃음). 다행히 저희가 갔던 커뮤니티는 소위 뉴비들을 끌어주는 분위기가 있었고. 커뮤니티 자체가 포용적인 분위기여서 좋다고 느껴졌어요. ‘대화’를 하는 게임이다 보니 그런 (포용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발더스 게이트> 이후로 TRPG 커뮤니티들에 굉장히 많은 유입이 있었죠. 그래서 그렇다면 원조는 뭘까 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하신 거네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출발이 된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였다면 ‘나레이터’의 존재도 꽤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다른 게임과 달리 <발더스 게이트>에서는 계속 나레이터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전시에서 나레이터 역할을 하시잖아요? 그 역할을 TRPG를 특별히 오래 해오신 게 아니라면 사실 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그걸 하면서 어떠셨어요? 상희: 저는 일단 제 자신이 부끄러움이 많은 타입이라서. 근데 사실 마스터가 부끄러움이 많으면 안 되고 뻔뻔해야 되고, 거의 <발더스 게이트>의 나레이터 같은 연극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해야 참여자들이 따라오고 몰입을 해요. 저희 전시에서 주요 타겟으로 삼고 전달 방식을 고민했던 관객들은 TRPG를 처음 해보거나 이러한 형식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미술 전시를 보러 오는 일반 관객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이런 류의 게임에 익숙하신 분들은 금방 잘 따라와 주실 테니까요. 이런 작업에 익숙치 않은 일반 관객분들과 함께 하려면 저희의 역량이 또 되게 중요했어요. 저희가 잘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시거든요. 그래서 테스팅 플레이를 하면서 많이 연습했고, 성훈 작가가 진짜 잘 하셔서 제가 이 분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 같은 경우는 대사를 말하고 뒤에서 묘사하는 방식의 관찰을 하는 편인데, 성훈 작가는 굉장히 캐릭터처럼 연기도 하고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플레이어로 참여했을 때 훨씬 경험이 좋았어요. 재밌고 잘 따라가게 되고, 저도 이런 식으로 배워서 시도해 보고. 성훈: 연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더 끌어내려고 하는 스타일의 마스터도 있어요. 그런 마스터 개개인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것도 TRPG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회 같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마스터를 고정으로 쭉 이어나가셨던 건가요? 상희: 저랑 (성훈 작가가) 번갈아서 마스터를 했어요. 중간중간 지도가 변화하는 과정도 메모로 업데이트 하고, 저희가 대개 플레이할 때 둘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되는지 서로 체크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 이 전시에 오시는 분들 중에 TRPG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분들은 이 문법 자체를 모르셨을 것 같아요. 상희: 네, TRPG에 관심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과연 TRPG라는 게 뭔지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건, 이게 ‘TRPG 전시’가 아니잖아요. TRPG를 차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걸 플레이하며 ‘대화형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 일반 관객들에게 경험되었을 때도 저는 이게 분명히 재밌는 형식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게 그래서 진짜 재밌을까, 사람들이 이걸 금방 캐치해서 따라올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컸었는데요. 생각보다 정말 다들 재밌게 하셨어요. 이런 대화라는 형식 자체가 정말 직관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디지털 게임은 항상 어떤 조작을 익혀야 하는 일종의 ‘배리어’가 느껴지는 형식이잖아요. 이번 전시는 같이 천천히 얘기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성격이다 보니 곧잘 잘 하셨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를 진행하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너무 제각각이었을 것 같은데요. 퍼포먼스를 같이 한 관객 중에 기억에 남는 관객이 좀 있으셨나요? 상희: 최근에 플레이하셔서 기억이 나는 분이 있는데요. 지금 보시는 지도에 있는 이 표시는 이전 회차 플레이어를 뜻하거든요. 이 사람이 마지막에 (플레이가) 끝나면 이런 마크를 남기면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여기에 이 사람의 유해와 같은 육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다음 회차 플레이어가 이걸 확인하면 저희가 알려 드려요. 이 사람은 지금 이런 상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신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저 이 사람 머리를 잘라갈게요’ 하시는 거예요(웃음). 실제 시체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시신(이라는 설정)이니까 사람들이 일단 그대로 두거나 건드리더라도 조심스럽게 하는데, 그분은 도시에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니까 잘라간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결정이 굉장히 재미있는 전개였어요. 그리고 성훈 작가가 이 전시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세계관을 구축했는데요, 게임 내 NPC들 중에 같이 데리고 도시를 나가거나 고립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는 NPC들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지도의 동쪽) 연립주택에 아이 NPC가 있는데, 이게 이 쪽(서쪽)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머무는 엄마의 아들이에요. 여기서 만나면 우리 아들을 구해 와달라고 부탁을 하거든요. 근데 아무도 저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아이를 데리고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거나, 돌아 가다가 게임 오버가 되기도 하구요. 그런데 언젠가 소방관으로 플레이하셨던 분이 그 아이 NPC와 같이 탈출했던 게 기억에 남았어요. 다들 저 아이는 못 나가겠다고 반 포기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구해주시더라고요. 그 아이를 구하려면 소지품 란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공룡 인형으로 가득 채워야 해서, 자기 물건과 장비를 다 버려야 되는데 그래도 그 패널티를 안고 가시는 게 좋았어요. 이경혁 편집장: 살다 보면 참 커뮤니케이션이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도 많잖아요. 전시에서 관객들과 서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난점들은 없으셨나요? 상희: 이 퍼포먼스에 오시는 분들 자체가 어느 정도 이 게임을 하고 싶어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보니까, 그래도 적극적으로 개입과 참여를 하려고 하시는 편이에요. 성훈: 어떤 분들의 경우 캐릭터가 독특하신 경우도 있었어요. 자체적인 캐릭터가 사람들과 만나기를 피하고 굉장히 과묵하다는 설정이었거든요. 이 세계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어떤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겪으면서 더 재미를 찾아갈 수 있는 구조인데, 그분은 '은신 플레이'처럼 게임 진행을 하셨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마스터로서 어떤 방식으로 재미를 제공을 해야 되는지, 그 분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도 이 전시에 참여해서 세 명이서 팀 플레이를 했었잖아요? 그때 약간 짜증 났던 건(웃음), 우리 멤버가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려고 (게임 내 상호작용을) 전부 피하는 거에요. 그때 저희가 한 명이 플레이를 하고 한 명이 조수고, 저는 ‘마음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구조였죠. 상호작용을 안 하려고 할 때마다 저는 ‘앉아봐’, ‘그 상자 제발 열어봐’ ‘말좀 걸어봐’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웃음). 근데 그걸 보면서 저는, 만약에 어떤 사람들이라면 전시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일종의 하이스코어 경쟁처럼 게임을 최단 시간으로 돌파하려고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경우는 다행히 안 겪으신 것 같아요. 상희: 네, 맞아요. 그리고 게임 관련 설명과 안내를 드릴 때, 이 게임이 승리라던가 패배라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참여자와 마스터 둘이 되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다들 게임 내에서 자기 캐릭터만의 얘기를 구축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아까 편집장님 팀의 멤버 분도, ‘살아나갈 것이다’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집념’이라는 캐릭터를 갖추신 거죠. *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에서 전시 참여자이자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채워나갔던 지도. 회차가 반복될수록 지도의 내용은 풍부해지고 이후 회차의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게임 기획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 거네요. 1시간 반의 플레이로는 사실 지도의 모든 영역을 다 볼 수는 없고, 플레이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사람들이 지도 안에서 절대 안 가는 어떤 영역이 생기게 될 텐데요. 기획자 입장에선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라 조바심이 나실 것 같기도 해요. 상희: 맞아요. 전시 처음에 지도가 많이 안 밝혀졌을 때는 끝까지 못 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오픈 월드 류의 게임을 할 때 그동안 가보지 못한 영역, 지도 상에서 안개 혹은 어둠으로 표현되는 영역을 빛으로 밝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여기 아무도 안 갔네요’, 하면서 가시기도 하고, 결국에는 그런 식으로 맵이 다 밝혀졌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결국 이 지도 데이터의 누적이라는 게, 그냥 지도에만 추가되는 게 아니라 다음 번 플레이에도 영향을 주는 형태인 것이고. 앞선 세계의 변화가 뒷 세계의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형태로 설계가 되는거네요. 상희: 맞아요. 예를 들어서 아까 말씀드린 퀘스트에서 아들을 구하게 되면 패스트푸드점의 엄마가 같이 도시를 떠나가게 되는데, 그 이후에 이곳에 온 사람은 이 엄마가 남기고 간 쪽지만 읽을 수 있는 거예요. ‘아이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혹시 못 보셨을까 봐 여기 쪽지를 두고 갑니다.' 이렇게요. 그리고 이 엄마의 아이가 원래는 강박이 있는 아이여서 재료별로 햄버거를 계속 분류하고 있었는데, (이후 회차에서는) 분류하던 흔적만 남아 있고 그걸 했던 사람이 누구였고 이걸 왜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혹시 관객 중에 2회차 플레이를 해본 분들은 좀 있으신가요? 상희: 있긴 있었지만 전부 테스트 플레이(참여자)였구요. 다만 저희가 한 이틀 정도는 오픈 세션이란 걸 열어서 아예 플레이를 공개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거든요. 그때 관람객 한 분이 두 회차를 연달아 보고 가셨어요. 두 번을 관람하니까, 이를테면 (첫 회차에) 어느 길이 무너졌는데, 그 다음 회차에 같은 길목에 도착한 사람은 그 무너진 길을 파헤쳐서 건너가야 되는 이런 연속된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걸 기록하는 것도 두 분이 굉장히 노고를 들이셨을 것 같은데요. 상희: 게임상의 큰 변화는 지도상의 기호로 계속 표시를 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책상에 지도를 붙인 판넬이 있어요., 지금까지의 정보를 기록하고 새로운 변화를 써놓는 (마스터 전용) 판넬입니다.. 거기에 기억해야 되는 정보들, 예를 들면 특정 물건 3개를 요구하는데 그 3개를 다 갖다 줘야 떠나는 어떤 NPC의 경우에,. 누가 무엇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업데이트해 놓고. 쪽지나 포스트잇 같은 걸로 표시하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보통은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 이렇게 손을 뗄 수가 있는데, 이거는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일종의 오브제가 아닌가 싶네요. 상희: 그렇죠. 작가도 자꾸 작업에 참여해야 되고, 전시기간에 계속 상주하게 되고요. 근데 그런 작업이 저한테는 계속 관객들과 참여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이 작품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런 점을 흥미롭게 짚어볼 것 같아요. ‘전시를 시작할 때와 전시를 닫고 나서 작가에게는 무엇이 변했을까’ 그게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아직 완전히 전시가 닫힌 것은 아니지만, 막바지에 달하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님 스스로가 자신을 성찰했을 때, 무엇이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상희: 일단 저에게 있어선 관객들과의 관계가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기존에 해온 작업들도 인터렉티브한 성격이 있다보니, 관객들이 와서 직접 플레이하셔야 하는 작업들이 많아요. 전시장에는 언제나 제가 있었어요. 제가 (프로그램) 개발을 했다 보니까, 갑자기 오류가 나면 고쳐드리거나 플레이 방식에 대해 안내를 드려야 하다보니 전시장에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분들이 전시를 끝내고 나서 감상을 나눠주는 걸 어려워하시는 편이에요. 전시장이란 공간 자체가 그런 걸 어렵게 만들다 보니 당연하긴 해요. (작가와 관객 사이의) 어떤 권위적인 분위기가 있고. 제가 궁금하다고 해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거죠. ‘어떠셨어요?’ 하면 ‘아, 재밌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이러고 바로 도망치듯 하시고(웃음). 그런게 항상 저도 아쉽고, 관객들도 당시 말을 못해서 아쉬우신 게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1시간 반 동안 계속 플레이를 하면서 (관객과) 단독적으로 관계를 맺잖아요. 그 안에서 생성되는 라포(rapport)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게임이 끝나고 나면 너무 자연스럽게 이게 어땠는지 감상을 남기시는 거예요. 어떤 게 재밌었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얘기를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여기 섹션(전시장 한 쪽의 공간)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 관객들끼리 소회를 공유하는 목적으로 만들어둔 거거든요. 이 공간의 모티브가 된 게, TRPG 하시는 분들이 게임이 끝나고 나면 그 게임이 어땠다고 합평회처럼 얘기를 하세요. 그런 문화가 매우 좋았어서 저희도 전시에 도입했어요. 관객분들이랑 더욱 깊게 관계 맺는 형식이다 보니 저에게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이 전시가, 메인 게임의 앞에 프리(pre-) 단계가 있고 포스트(post-)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프리 단계에서는 게임 참여자들에게 전날 설문을 한번 하시잖아요. 이렇게 전시 앞뒤로 프리 단계와 포스트 단계를 두고 보면, 작가 입장에서는 관객 개개인을 좀 더 보게 되지 않습니까? 어떤가요? 관객분들의 전시 관람 전과 관람 후의 변화 같은 것도 좀 느끼시는지요? 상희: 일단 관람 전에는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들의 플레이 성향을 알고 싶어서 설문을 조사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게임 내 어떤 캐릭터가 어울릴지를 골라드리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질문에 답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실제로 이 ‘고향’이라는 곳에 돌아와서 플레이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 사람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플레이를 하면서) 카타르시스가 되어서 다 풀리고, 후반부에는 또 같이 정리하면서 얘기하는 과정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은 사전 설문을 통해 캐릭터를 구성하고, 플레이 종료 후에는 각자의 개인적 경험과 소회를 집단적 궤적으로 모아 나간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떻게 보면 장르적으로는 굉장히 큰 도전을 하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이 전시의 게임이 TRPG를 베이스로 했지만, TRPG를 하려면 아까 말씀하셨듯 보통 TRPG 카페를 가잖아요. 실제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TRPG를 모티브로 했지만 이게 ‘퍼포먼스’로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특징이 있어야 된다라는 생각을 아마 하셨을 것 같은데. 무엇을 더 강조하려고 하셨을까요? 상희: 우선은 현실적인 완결성이 중요했어요.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만들다가도, 1시간 반의 러닝타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무조건 끝나야 되는 형식을 만들고자 했고요. 그리고 퍼포먼스 형식이니까 플레이함에 있어서 ‘룰’을 최소화하고자 했어요. 룰이 너무 많아서 생길 이해의 어려움을 줄였고, 룰에 대해서도 실제로 설명을 많이 안 드립니다. 참여자들이 행동을 하나씩 할 때마다 조금씩 알려드려요. 어떤 분께서 ‘저 이렇게 하고 싶어요’, 행동을 제안하시면 그것을 주사위를 굴려서 확인해 봅시다 라고 하면서, 점진적으로 계속 룰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그렇게 해도 다 알려드릴 수 있는 룰이어서. 원래 보드게임들은 룰 설명만 1시간 하고 난 뒤 플레이를 시작하는 느낌이잖아요. 이 전시에서는 그런 게 없이, 어떤 장벽 없이 관객들이 바로 플레이할 수 있는 그런 직관적인 플레이를 만들려고 신경을 썼습니다. 성훈: 저는 이 전시를 퍼포먼스 차원에서도 얘기해보고 싶은데요. 공연예술의 경우 똑같은 공연을 10번씩 보러 가는 문화도 있잖아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항상 매번 공연이 다 조금씩 다르다라는 얘기를 듣는데. 그런 것처럼 이 전시도 어떤 의미에서 ‘공연’이라고 할까요? 이 전시가 그 공연의 매번 다른 특성을 극대화한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매번 갈 때마다 실제 인간이 진행하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절대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고, 매번 지도가 바뀌어 나가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고, 스티커이기 때문에 뗄 수가 없잖아요. 그런 형식에서 퍼포먼스적 측면이 접목되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TRPG라는 것을 상징하는 게 일종의 ‘룰 북’이기도 하잖아요. 룰 북의 두께만 봐도 이걸 언제 읽나 고민이 되긴 하더라구요. 상희: 맞아요. 저희 게임도 일종의 가제본처럼 룰 북을 만든 게 있거든요.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이 정도 두께가 금방 나오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장벽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룰 북은 일단 가제로 만든 거고요, 저희가 좀더 정리해서 아예 보드게임으로 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 전시의 지도 형식 자체도 보드게임에서 착용을 했거든요. '레거시 보드게임'이라고 해서 한 번만 플레이하는 보드게임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마이 시티> 같은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별로 맵을 밟으면 그걸 스티커를 붙이면서 계속 변형시키는 형식이거든요. 많은 레거시 보드게임이 그런 일회적 형식을 따릅니다. 이 작업도 결국에 맵을 변형시켜서 똑같은 게임 플레이의 반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게 참여한 플레이어와 저희만 알 수 있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기도 해요. 이 맵을 보면 '아, 이때 내가 이렇게 해서 맵을 바꿨었지',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런 형식을 따와서 뭔가를 붙이면서 계속 흔적을 남기는 형태로 이 전시를 만들고 싶었는데요. 정말 보드게임을 출시하면 그런 레거시 보드게임의 형태로 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는 굳이 미술과 음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음악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요. 고정된 악보가 있고, 매번 연주마다 애드립과 카덴차가 나오는 거죠. 심지어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 이건 그냥 콘서트라고 불러야 되는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까 듣다가 생각난 질문인데요, 원래 (작가님이) 디지털 개발을 하셨었지요. 첫 작품도 디지털로 시작을 하셨는데, 언-디지털로 넘어온 작품을 택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아까 간단하게는 TRPG에 관심이 생겼다고 해주셨는데요.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보면, 같은 게임 제작 방법론이라고는 하지만 어딘가부터는 서로 완전히 다른 부분들도 있잖아요. 상희: 처음에 했던 디지털 작업들은 3D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고, 게임 엔진을 사용해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이걸 만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요새 대형 제작사에서 나오는 게임들을 보면, 그래픽이 나날이 발전되는 정도가 차원을 달리 하잖아요. 현실과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고 정교해지고, 엄청 많은 자본을 투여해서 만들어지는 형식이지요. 그런 그래픽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런 그래픽들이 공허하다는 감각도 있었어요. 거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더 있을 수 있을까 고민도 들었고요. 저희도 게임을 만들다 보면 어떤 그래픽적인 스펙타클에 게임을 조응하게끔 만들어야 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이 있기도 한데요. 그런데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의 형식은 아니었어요. 반면, TRPG라는 장르는 뭔가 그래픽적인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이야기를 만들면서 플레이하는 형식이라는 점이 재밌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전시를 담당했던 김지연 디자이너와 초기에 같이 작업을 하면서 플레이 테스팅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 작업에서 저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지도였기 때문에, 저는 초기엔 일종의 게임 월드처럼 지도를 자세한 형식으로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때 김지연 디자이너가 되게 중요한 지점을 짚어줬던 게, ‘지도는 오히려 훨씬 더 단순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요소가 많이 없어야 된다. 왜냐하면 TRPG를 플레이할 때 우리가 어떤 시각적인 게 많이 없어야 상상을 더 할 수 있고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김지연 디자이너가 시각화를 해줘서 만든 게 지금 개미굴 같은 이 지도의 형식이에요. 그래서 게임이 어떤 시각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외하더라도 참여자의 상상력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더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김지연 디자이너가 토크 때 ‘우리의 최고의 GPU는 인간의 뇌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결국에 저희가 상상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적인 부분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해서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작가님들이 이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뭘까를 생각해 봤는데요. 시간적인 제약도 있고, 공간적인 제약도 있죠. 제가 궁금해지는 건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전시도 공짜는 아니에요. 이 작업의 물리적 베이스, 다시 말해 소요 비용이나, 펀딩이나 후원이 어떻게 들어왔었는지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우선, 지금 이 공간은 <팩션>이라는 전시공간이고 이 전시는 여기서 열린 공모를 통해 지원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제일 큰 비용이 뭐였냐 하면 결국 ‘저희’였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저희의 몸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걸 때우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전시 공간은) 무조건 집에서 가까워야 되고, 자주 와서 이곳을 계속 보수할 수 있고, 공간을 관리하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여야 해서 이곳 삼선동에서 전시를 하기로 결정했구요. 비용 같은 경우에는 다 자비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원래 펀딩을 받으려고 했지만, 제가 다른 작업 펀딩을 받고 싶은 게 있어서 그걸 먼저 냈었고. 이 전시는 저희 생각으로는 기획이 대박이기 때문에 무엇을 내도 다 뽑힐 것이라 기대를 했지만(웃음) 제작비를 따오겠다 했는데 못 딴 거죠. 그래서 저희 돈으로 했는데 또 생각보다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지는 않았어요. 저희가 다 직접 만들고 한 게 있어서. 이경혁 편집장: 저는 당연히 이 전시도 다른 곳에서 펀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상희: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후속 지원을 고려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희의 기획이 이런 형식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께는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겠지만, 한편으로 펀딩을 해 주시는 분들이나 지원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에게는, 특히 TRPG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래픽이 없는데 대화로 게임을 한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지?’ 이렇게 난해하게 들리셨을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지금처럼 (전시를 통해) 결과가 완전히 다 나왔고 우리 기획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마련된 상태에서, 후속 지원을 요청하거나 이 전시를 완전히 대중적인 퍼블리시를 할 수 있는 포맷으로 지원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요. 지금은 미술 전시회 형식으로만 하고 있는데, 저희가 추후 하고 싶은 건 아예 ‘게임’으로 출시하는 것이에요. 일례로 여기 붙어 있는 지도도 보드게임 컴포넌트처럼 다 들어 있는 것이고. 이 보드게임 패키지를 사시면 플레이를 어디서든 직접 할 수 있게 되고 그때는 어떤 물리적인 제약도 거의 없어지는 거죠. 엄청 긴 세션을 하셔도 되는 것이고, 각자의 플레이 방식대로 맞춰서 게임하실 수 있게 될 거에요. 다른 한편으로는 기획이 맞는다면 지역에 가서 일종의 팝업으로 해볼 생각도 했었어요. 이 게임이 설치형이잖아요, 그리고 광주라든가 부산에서는 요새 그런 형식의 전시를 많이 하니까. 그렇게 팝업을 통해 지방에서 TRPG 하시는 분들과 협업해서, 계속해서 더 큰 지도를 설치하고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성훈: 전시에 와주셨던 큐레이터 중 한 분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이 게임이 한국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굉장히 지역적인 맥락을 가지고 오려고 하니까, 차라리 실제로 어떤 도시에 가서 그 도시의 랜드마크 등을 반영해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실제 매핑을 통해 굉장히 퍼블릭한 게임으로 만드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물리적 제약이 워낙 지금 크게 느껴지다 보니까 계속 이 게임의 물리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뭘까를 생각을 하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이 펀딩인 것 같네요. 제일 좋은 것은 지자체의 예산을 가져오는 것 같은데요(웃음). 혹시, 미술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상희: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 아무래도 완전히 모르는 이야기이다 보니 신선하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게임 디자인이라는 형식이나 게임 메카닉을 갖고 와서 기획한다는 것을 재밌어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이 전시가 또 주목을 받는 게, 결국에는 지금의 어떤 (예술 관련) 이론이나 담론이 게임과 연관되어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행위성 같은 개념들은 굉장히 게임적이거든요, 한편으로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당연한 얘기죠. 그런 것들이 미술적인 개념들과 이렇게 영합하면서 시너지가 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최근 들어 확실히 미술계에서 게임을 베이스로 작업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주변에 미술하는 분들이 게임 갖고 작업하시는 걸 보면 좀 어떠세요? 본인의 세대 근처에서, ‘게임’을 미술의 주요 소재로 쓰겠다라는 경향이 좀 있다고 느끼시는지요? 상희: 네, 그런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희는 PC통신이 당연한 시대였고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가 집에 있는 세대여서 디지털 게임을 많이 하기도 하고. 어떤 정서라든가 감성이 게임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세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기존에도 게임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어요. ‘게임을 사용한 작업이 예술의 형식이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 전에 작업했던 사람들은 게임 제작자라는 인식이 좀 강했는데 최근에 ‘아트 게임’이라는 용어도 나오면서, 이게 예술 작업으로 보이게 된 건 최근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 (전시가) 거의 마무리가 됐지 않습니까? 전시가 끝나고 나면 지도는 향후에 어떻게 될까요? 상희: 일단 전시가 끝나고 나면 이 지도 자체는 철거를 잘 해서 손상 없이 떼갈 예정이고요. 그 전에 확대 촬영이라고 해서 사진이나 그림을 스캐너에 넣는 것처럼 촬영하는 기법이 있는데, 그걸로 지도 자체의 아카이빙을 잘 하려고 해요. 그때 (경혁님이) 오셨을 때도 이 게임이 되게 오프라인한 경험인데, 이걸 어떻게 디지털로 남길 것이고 이후 사람들이 여기에 어떻게 접근해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나요. 저희도 그래서 이 지도를 웹에 아카이빙하거나 이후에 이 게임을 어떤 식으로 퍼블리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이즈를 보면 기존의 도록이나 영인본처럼 남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들어요. 마지막으로, 이 기획 이후에 후속작처럼 기획하고 싶은 게임의 형태는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상희: <언-리얼리스트의 유럽>이라고 11월에 작업하려는 작품이 있어요. 유가가 더 비싸지고 환경세 등이 부과되는 근미래에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설정이에요.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점점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제는 메타버스로 유럽 여행을 해야 되는 거죠. 그 여행을 실제로 VR 같은 기계, 실제 VR은 아니지만 VR이라 부르는 오락실 기계 같은 것에 앉아서 플레이하게 되는 형식의 게임인데요. 그래픽적 요소가 많이 없고 플레이어가 뭔가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참여하는 그런 형식의 게임을 상상하고 있어요. 이번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게 최소한의 그래픽을 가지고 (참여자들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어서 후속작에서도 그런 견지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

  •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 Back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03 GG Vol. 21. 12. 10. 김연자 말고, 니체의 ‘아모르 파티’ 수년 전,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 가 인터넷에서 크게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특유의 비트와 김연자의 보컬로 곡 자체도 훌륭하지만 가사도 그렇고 후렴의 막강한 뽕짝 비트가 절묘했다. 사실 일종의 유머로서 소비되기는 했지만, 트로트 답게 좀 쌉쌀한 맛도 있는 노래였다. * 막상 생각해보면 이 노래만큼 아모르 파티를 잘 설명한 것도 없는듯. 이미지 출처 - TV조선 유튜브 채널 그렇다면 바로 이 곡의 제목 ‘아모르 파티(Amor Fati)’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말 자체는 라틴어이고, 대충 들으면 어디서 나온 유명한 경구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이 단어의 출처는 저 멀리 프로이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로 간다. “신은 죽었다.” 는 패기 넘치는 한마디를 꺼냈던 이 철학자는 그 말마따나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고자 몇가지 화두를 세상에 던졌다. 물론 여기서 니체 이론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분량도 모자라거니와 애초에 필자도 관련 전공 또는 심도 있게 연구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더할 나위 없이 니체가 어울리는 어떤 게임을 위해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뿐이다. 니체가 제시한 개념 중 ‘아모르 파티’ 는 니체 사상에서 일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이다. 풀어 쓰자면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이란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는 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과는 정반대로,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고 결정하는 운명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흥하거나 망하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자신의 운명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그를 긍정하라는 것. 이처럼 니체의 사상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처럼, 현실의 삶에 대한 긍정을 추구하며, 인간 개인이 그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라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론이 바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라고 축약할 수 있다(미리 말했던 것처럼, 매우 간단하게 요약한 해석이다). 영원회귀란 파괴(실패, 좌절, 괴로움 등)와 생성(성공, 성취, 즐거움 등)의 동일한 과정을 무한 반복하여 마침내 긍정의 결론(내 운명-인생을 사랑-긍정하자)에 다다름으로서 마침내는 파괴의 과정 역시 긍정의 질(형식)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삶에 대한 긍정이란 이뤄낸 성과, 성공, 원초적인 즐거움과 쾌락 같은 너무나 당연한 긍정의 질을 말하는게 아니다. 삶에서 필연적으로 얻고 겪게 되는 좌절과 실패, 괴로움과 불쾌함까지도 긍정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이 과정이 바로 영원회귀이며, 그 결과 이르게 되는 것이 아모르 파티이고, 또는 이 둘은 서로의 원인이자 서로의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니체의 사상 전체를 상당히 짧고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큰 맥락은 같다. ‘영원회귀’ 라는 고통과 성취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마침내 얻어낸 결실은 그 모든 과정을 한순간에 긍정적인 여정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의지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자신의 운명의 결론을 긍정함으로서 그 과정도 값지고 긍정적인 질로 바꾸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생의 자세가 바로 ‘아모르 파티’ 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자, 그럼 이제 〈데스루프〉 라는 영원회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게임의 기본 모델 ‘영원회귀’ 가 데스루프에서 특별한 이유 〈데스루프〉 는 그 이름에서부터 죽음으로 되풀이되는 루프를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흔히 ‘루프물’ 이라고 하는 장르 또는 특성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선보여졌다. 수십년 전 TV에서 특선 영화로 보던 ‘사랑의 블랙홀’ 이나 최근으로 보면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는 더더욱 많이 사용된 요소이기도 하다. *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Demon’s Souls, 2020). 이쪽 게임 디자인에선 워낙 유명한 소울 시리즈. 당연하게도 이는 게임에서도 흔히 활용되는 소재였다. 아니 오히려, 죽음과 부활로서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논리는 플레이의 반복성을 부여해야만 하는 게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기본 논리다. 여기서 나아가 아주 직접적인 ‘영원회귀’ 적인 과정을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게임들은 많다. 오래 전부터 그 예시로 들어왔던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 을 위시한 ‘소울 시리즈’가 그 예다. 참고로 최근에는 한국에서 이름 자체가 ‘영원회귀’ 인 게임도 나왔다. * 이터널 리턴(Eternal Return, 2020). 여기는 이름부터 영원회귀다. 사실 게임 내용은 크게 상관… 없나? 그리고 사실은 ‘소울 시리즈’ 까지 가지 않더라도 게임은 근원적으로 그 구조에서 영원회귀를 기본 구조로 채택하고 있다. 계속해 같은 시도를 하며 죽으면서 경험을 쌓고 강해지고, 마침내 극복해내고 한 번의 성공을 만들어 냄으로서 그전까지의 실패가 모두 이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서 빛나게 되는 것. 그러나 〈데스루프〉 가 영원회귀 모델에서 독특한 점은 바로 플레이어의 성장 또는 변화를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플레이어의 스킬 향상이나 명시적인 게임 내 각종 스테이터스, 기능의 향상이 아닌, 정보의 취득으로 표현한다는 부분이다. 보통 이러한 죽음(실패)과 부활(재도전), 그리고 이를 통한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게임들은 그 성장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 내의 수치나 변화보다는 플레이어 자신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노골적인 예시인 〈다크 소울〉 시리즈의 경우 거듭되는 싸움을 통해 상대의 패턴을 파악하고, 나 자신의 로직, 나 자신의 조작이 가장 크게 성장에 관여한다. 물론 거기에 최적화된 도구를 다시 고르거나 필요한 만큼의 스테이터스를 향상시키고 돌아오는 등의 선택도 가능하지만, 플레이어 자신이 가장 큰 성장의 매개체라는 점은 〈다크 소울〉 이나 〈몬스터 헌터〉 같은 부류의 게임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 이 게임의 룰과 목표는 간단하다. 크게 세가지다. 1. 루프를 끊어라. 2. 하루 안에 8개의 타겟을 제거해라. 3.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방법을 찾아내라. 그러나 〈데스루프〉 는 이러한 노골적인 영원회귀의 방법론을 취하면서도 몇몇 부분에서 좀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갔다. 게임은 하루의 루프가 반복되며, 하루는 4개의 시간대와 4개의 장소로 구분되고, 각 시간대 별 장소마다 얻을 수 있는 단서가 다르게 고정된다. 즉, 시간이 지나면 얻을 수 없게 되는 정보가 생긴다. 때문에 죽거나 하루를 넘겨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놓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그만큼 다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고, 또 이것이 게임 내 퀘스트 로그의 변화로 직접 기록된다. 즉, 마치 탐정처럼 어떤 정보를 얻고 실마리에 접근하는 것이 성장이자 게임의 진척도를 상징한다. 플레이어의 자각이 바로 상승을 의미하며, 무력에 의한 극복이라기보다는 무수한 스무고개 끝에 정답을 찾아내는 식이므로 그 스무고개를 확인하기 위한 생성과 파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 가지런히 정돈된 정보가 계속 쌓이고 중첩되면, 이러한 '정답' 이 나온다. 무엇보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영원회귀 구조에서 다른 점은 바로 ‘죽음’ 을 보다 바른 성장을 위해 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게임에서 죽음이란 가급적 피해야만 하는, 어떤 심각한 패널티로서 존재한다. 어찌보면 징벌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데스루프의 죽음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또는 이미 지나친 부분을 다시 보기 위한 일종의 선택지로 기능한다. 마치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에서 주인공이 작전을 실행하다가 수틀리면 바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어 다시 하루를 시작하듯 말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이며 패널티였던 죽음이 하나의 선택지이자 상승의 원동력이 되면서, 즉 게임 자체를 직접적으로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면서 보다 ‘아모르 파티에 가까운 파괴와 재생성으로 한걸음 다가간다. 이는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이 얼마나 파괴적인가 하는 부분에서의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계획적이고 플레이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뜻한다. 예기치 못한 실패로 인해 맞이하는 죽음과 이를 잘근잘근 곱씹는 절치부심의 과정이 아닌, 거시적인 측면에서 세운 계획을 따라 하나하나 자신의 의도에 따라 스스로를 파괴하고 동시에 재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모두 계획대로야.” 또는 “이제는 이걸 하면 되겠군.” 하는 식으로, 플레이어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달라진다. * 죽이고 죽고 정보를 모으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선택과 확인의 연속.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통상적으로 부정적인 질을 지니며 실패의 상징인 ‘죽음’ 은 그 자체로 긍정의 질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게 바로 이 게임이 가장 니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원회귀와 아모르 파티의 기본은 행위자의 주체성, 그리고 결과에 대한 긍정과 확신을 통해 모든 과정마저 긍정해버리는 자세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 로직 그 자체다. 긍정의 끝이 아닌, 긍정의 순환을 만드는 끝 게임의 결론은 마치 이런 해석을 부추기기라도 하는듯 크게 두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어있다. 섬에 걸려있는 루프를 끝내고 수십년이 지난 세계로 나가거나, 아니면 루프를 유지하고 주인공과 줄리아나의 끝나지 않는 놀이를 계속하는 것. 여기서 대부분은 지금까지 목표로 해왔던 루프의 파괴를 선택하지만, 오히려 어떤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게 끝인가? 정말로 이걸로 모든 지금까지의 과정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 되었나? * 영원회귀적 관점을 떠나서도 너무나 훌륭한 게임이니 꼭. 그렇기 때문에 엔딩에 이르러서 이렇게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과 탄생이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줄리아나라는 존재 자체로 인해서 나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희가 된다면? 이런 가정은 지금까지 루프를 깨기 위해서 달려왔던 플레이어들에게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 선택은 어쩌면 궁극적으로 아모르 파티를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지금까지 반복한 루프가 영원히 반복되고 또 되풀이 되겠지만, 더 이상 고통과 결론을 위한 감내의 과정이 아닌 그 자체가 유희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 이 황야마저도, ‘내 행위의 결과’ 이기에 긍정할 수 있다면?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때문에 그동안의 역경을 모두 감내하고 오히려 루프 안에 갇히기를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몰락하는 자신을 긍정하는 아모르 파티의 정신에 부합하며, 이것이 오히려 진짜로 이 게임에 어울리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스루프〉 는 좋은 게임이지만, 그 과정에 비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들은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면 어떤가.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

  • 게임과 데이팅 세계

    < Back 게임과 데이팅 세계 16 GG Vol. 24. 2. 10. 욕망의 수치화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소개팅을 하다보면, 첫 만남 이후 관계 설정을 위한 만남의 횟수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소개팅 이후 가볍게 혹은 종종 계속해서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상대와 만나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소개팅은 ‘연애’를 목적으로 한 만남이고, 이 때문에 첫 만남에 애프터를 신청할 것인지, 그리고 애프터 이후 몇 번의 만남 뒤에 공식적으로(officially) 연인관계로 돌입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존재할 가능성이 의외로 높다. 이처럼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때 ‘굳이 정의하지 않고 넘어가도 될 만큼 서서히 스며드는 애정의 관계’라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소개팅의 법칙(!)도 마찬가지고, 의외로 친구 관계에서도, 더 나아가 아주 관습적이라 일컫는 결혼도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관계 혹은 감정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하면 연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어쩌면 반대, 즉 연애를 해야만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이성애)연애의 완결은 마치 결혼인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는 수많은 형태의 (굳이 게임적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선택지’의) 사랑이 존재한다. 1) 가족 간의 사랑 2) 친구 간의 사랑 3) 연애 파트너, 즉 섹슈얼한 대상으로서의 사랑 4) 상대방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랑(짝사랑으로 주로 표현되는) 등. 생각보다 사랑의 모양새는 다양하고, 우리는 이를 정확하게 정의내리지 않으면서도 모순적으로 상대적 기준을 통해 수치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 특히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형태는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눈여겨보고, 이것이 과연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욕망의 수치화가 높은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미디어 환경 내부에서 인간의 일상적 ‘플레이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사랑을 게임을 통해 인지했거나, 이미 게이미피케이션이 고도로 진화된 상황에서 현실의 사랑을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자. 그렇지 않은가. 이미 사적/감정적인 대상이 모두 미디어에서 재현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미 수치화한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 메신저에 응답하는가. 사귀는 사이에서 하루에 전화는 몇 통을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소셜 미디어 팔로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이다.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의 사적인 플레이 역사 : 사랑을 게임으로 배웠나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연구자 본인은 시스젠더 여성이고, 남성애자에 가깝다. 그러나 십대 때 본인이 접근할 수 있었던 다수의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게임 주체’가 생물학적 남성으로 고정되어있고, 이 남성이 다수의 여성을 공략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접했던 게임이 바로 ‘동급생’, ‘두근두근 메모리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게임들을 진행하면서 연애시뮬레이션 안에서의 ‘연애’의 전형을 배웠다. 예를 들어 첫인상에 상대방의 특성 1) 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것들이 그랬다. 특히 이러한 연애시뮬레이션은 ‘첫만남’-‘대화를 통해 친밀도를 높이고’,-‘공략대상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 능력치를 개발한 뒤’-‘퀘스트(이벤트)를 충족시켜’‘엔딩을 맞이하는’ 루트를 탔다. 물론 나는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두는 남성애자에 가까운데, 이 당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둔 연애시뮬레이션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열광했던 '프린세스메이커'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감정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90년대 연애시뮬레이션은 게임의 특성상 육성 시뮬레이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여성 게이머인 나에게 플레이는 관습적인 것에 가까웠고, 이를 통해 ‘목표’를 성취한다는 점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남성 주체 중심의 육성-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나의 게임 플레이 성향을 ‘관조’에 가깝게 만들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연애시뮬레이션이 개념적으로 정의하는 연애관계에 이입하기보다 사랑에 대해 ‘관조적’일뿐만 아니라 ‘제 3자’의 위치에서 ‘관음’할 수 있는 주체에 더욱 가까웠단 뜻이다. 그러다 오토메 게임 2) 이 발매되기 시작했다. 이는 육성-연애시뮬레이션에 열광하는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어느 정도 3) 욕망하고 원했던 게임 텍스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오토메 게임은 외적 4) 으로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을 게임 주체로 하는 여성향 게임으로, 이 중에 한명은 너의 타입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여성이) 남성들을 공략하는 텍스트 기반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미연시(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이성애 기반의 성별반전으로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기 등장하는 남성들은 매우 전형화된 카테고리로 나뉠 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이후 유통되는 많은 오토메 게임, BL(Boy’s Love) 게임, 혹은 텍스트 기반의 라이트 노벨성이 짙은 게임의 남성 공략 캐릭터를 정형화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후술할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2016)’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형화된 남성 캐릭터 선택지를 내어놓는다. 1) 연상의 로맨티스트(다정캐) 2) 모태솔로에 순수 연하(햇살캐) 3) 츤데레(광공캐) 4) 히든 캐릭터(사연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토메 게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후지쯔에서 제작하고 1998년 발매되었던 '판타스틱 포츈'이다. 이 게임은 놀랍게도 국내에서 정발되어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팬덤을 양산해냈다. 이 게임은 초반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이 3명이다. 육성 시뮬레이션이 여성 게이머들에게 매력적인 플레이 요소가 되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게임은 남성 캐릭터를 연애적으로 공략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메인 캐릭터를 육성해야하는 이중고(苦)를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 주인공 중 한명은 성별이 육성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중성인 존재 5) 가 섞여 있다는 것이 독특했다. 이처럼 연애+사랑의 루트를 타는 게임은 1) 캐릭터와 서사 2) 그리고 이 캐릭터와 서사에 접근하는 플레이 방식에 따라 진화하게 되는데, 이 당시에는 '판타스틱 포츈'처럼 미형의 남성을 공략하는 ‘여성’ 캐릭터, 그리고 이 캐릭터를 이 남성들이 원하는 이상향에 맞추어 ‘육성’해야 하는 플레이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캐릭터와 플레이 방식은 이 게임들이 타겟팅으로 삼았던 여성 주체들이 게임에 몰입할 때, 플레이 주체로서 주인공에 자신을 동일시하기 보다는 앞서 언급했던 ‘관조’적 성향의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여성 게이머들은 이 세명의 주인공들을 돌아가면서 플레이하고, 자신과 동일시한 캐릭터를 찾아냈을 수도 있지만(그러면서 자연스레 남성 캐릭터들을 유사남친의 대상으로 바라봤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다시 말해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으로 이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읽어내기만’했을 가능성 또한 존재 6) 한다. 특히 세 명의 주인공은 얼굴이 전부 드러나 있고, 그 캐릭터를 육성하면서 마치 케어링을 하는 제 3자적 인물로서 플레이어들이 그려지는 것은, 게이머가 그 서사 안이 아닌 밖으로 자신을 위치 지으며 이 게임을 플레이할 가능성이 더 높은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처럼 사랑은 하나의 게임에서도 단 하나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판타스틱 포츈'은 자식 같은 세 명의 메인 캐릭터, 그리고 그 대상 자체에 몰입하는 나, 동시에 그들을 짝을 지어주기 위한 제 3자(즉 관계성에 몰입하는)로서의 나 사이에서 연애와 사랑을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데이터화된다. : 디지털 로미오적 행태 여성향 게임이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은 여성게이머들이 대중적으로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시점과 맞물리는데, 그 시기가 바로 개인화된 미디어의 확산, 즉 휴대폰 플랫폼으로 게임이용이 확산되기 시작한 때다. 그 당시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임 중 하나가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다. 이 게임은 텍스트 노벨처럼 만들어진 전형적인 여성향 게임인데, 게임 타이틀에도 반영되어있듯 메신저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특성을 갖는다. 이 게임은 핸드폰으로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상황이나 메신저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는 방식이 실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일상적인 메시지 주고받기와 전화통화를 게임 어플리케이션 내에서 진행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어서, 이전까지 제 3자의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 방식의 이야기 진행이 아닌 강력한 자기 동일시 기제를 게임 안에 포함하고 있다. 이런 방식 자체는 나에게 데이팅 기술(Technology)에서 상대방이란 ‘기계’ 혹은 ‘게임 그 자체’일수 있겠구나를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앨피 본(Alfie Bown)이 자신의 저서인 <게임, 사랑, 정치>(2022/2023)에서 서술했듯 “연애 시뮬레이션에서는 실제 대상과 상상적 대상의 은유적 대체가 실제적이고 분명하게 구현(182)” 된다. 실제로 나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등장인물(상대방)들에게 무작위로(물론 시스템화되어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무작위는 아니지만)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받지 못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과의 채팅이 끝나고 나면 풀 보이스로 랜덤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모든 시간대마다 전화 내용이 다르다. 심지어 새벽에도 온다. 마치 구 남친의 ‘자니’와 같은 순간처럼). 이러한 일상적 대화의 기술은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게 만드는, 혹은 사랑이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보편적인 상황이다. 이것이 가상의 게임엔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기술이 감정을 확장하는(물론 이것이 사랑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을지라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마주한 것은 상대방이 아닌 기계였다. 만질 수 없어도, 바라보지 않아도, 무척이나 ‘생생한 ’기계. 실제로 이러한 감각은 현재 아이돌 팬덤들이 아이돌과의 메신저로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위버스나 버블 7) 서비스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게임의 상관관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우리가 욕망하는 사랑이 데이트 상대와의 눈맞춤인지, 아니면 친구와의 심도 깊고 즉흥적인 대화인지, 아니면 게임의 보상처럼 메시지 알림 소리를 울리는 버블의 인터페이스 그 자체인지 우리는 이제 알기 어렵다. “사랑과 욕망은 우리가 그것들을 경험하는 매체에 너무도 깊이 얽혀있다(Alfie Bown, 2022/2023, 225)”. 사랑은 수치화되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을지 모른다. 이것이 디지털 공간에 편재되었을 때, 게임은 빠르게 흡수해 텍스트로 옮겨냈고, 동시에 현실의 사랑은 이미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게임으로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어느 정도 관조적인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빠져있는 사랑. 8) 나는 이미 그렇게 습득한 사랑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나의 가상의 최애(feat. '플레이브' 남예준)를 위해, '풍화설월' 9) 의 주인공(feat. 금사슴반 클로드)들에게 이미 퍼붓고 있다. 이 때문에 의외로 현실세계의 연애와 사랑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참고문헌 Alfie Bown(2022). Dream Lovers: The gamification of Relationship. Pluto Press; London. 박종주역(2023). 게임, 사랑, 정치. 시대의창; 서울. 1) 이는 지금까지의 많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한데, 대부분 연애시뮬레이션에서 비주얼(즉, 캐릭터 디자인)은 그 캐릭터의 특성을 반영하여 제작되고 이 때문에 외모는 공략법과도 깊이 연관되어있다. 실제로 연애시뮬레이션의 완결성은 비주얼이 팔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여성향 게임에서의 비주얼은 대체적으로 남성향 게임과는 달리 특정 신체를 부각하기보다,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되어있다. 2) 乙女ゲーム 소녀의 게임. 3) 여기서 어느 정도, 라고 어중간하게 서술한 것은 기본적으로 당시 오토메 게임이 여성의 성적 욕망, 혹은 연애적 욕망에 대한 구체적 반영보다는 단순 성별반전에 가까웠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여성들의 모든 욕망을 단일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 외적이라고 굳이 덧붙인 것은 오토메 게임이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들을 주체로 하여 만들어진 게임이긴 하나,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주체의 성별은 실제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들 여성향이라고 말하는 장르의 콘텐츠를 실제로 이용하는 주체는 시스젠더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별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쓰인 여성향/남성향과 같은 용어들은 이미 관습적으로 굳어진 용어로 본문에서 사용될 뿐, 실제 이용 주체를 명명하는 것은 아니다. 5) 3명 중 한명인 실피스는 선택지 플레이에 따라 여성/남성으로 나뉘게 되므로, 초반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존재(중성)로 나온다. 이 때문에 오토메 게임이지만 BL 게임으로 서사를 진행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2차 창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6) 이것은 여성 게이머 주체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기보다 초반 여성들이 게임 텍스트를 접할 때 일어나는 남성 중심적 서사에 적응하기 위한 기제로서 관습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바라보는 여성 주체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가정되는데,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내재화된 카메라와 그 카메라 시선의 대상(여성) 사이에서 동일시할 주체를 찾지 못하고 관조적이거나 유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여성향 게임에서 ‘텍스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지보다는 텍스트가 제 3자의 입장에서 거리두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에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거리두기의 연애방식(연애 관계에서 자신을 배제하고 그 관계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은 현대의 여성들에게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좋아하는 연예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프라이빗 메신저 ‘구독’ 서비스. 물론 인터페이스 자체는 자신이 하는 텍스트 메시지와 연예인의 메시지 밖에 보이지 않지만, 진짜 대화를 나누는 것은 1:수많은 팬서비스 구독자다. 8) 사랑에 빠져든 나와 나를 배제한 사랑 모두를 뜻한다. 9) 닌텐도 게임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중 하나. 3개의 나라 3개의 반 중에 하나를 골라 육성하는 SRPG 게임이다. 메인 캐릭터를 남성과 여성 둘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으며, 각각의 학생을 지도하면서 교류할 수 있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

  •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 Back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06 GG Vol. 22. 6. 10. 역사가 매력적인 게임 소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시드 마이어의 〈문명〉,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의 〈토탈 워〉, 지금은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가 배급하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모두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빚을 진 게임이다. 코에이의 에리카와 요이치(가명 시부사와 코우)는 〈삼국지〉, 〈대항해시대〉, 〈신장의 야망〉 등 동서의 역사를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다. 동명의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대표되는 '대전략'(Grand Strategy) 부류의 게임들은 보다 넓은 시점에서 역사 속 국가들을 조망한다. 이런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주로 유라시아 대륙, 또는 아메리카까지 포함한 '전 지구' 위에서 한 국가를 선택하여 플레이한다. 플레이어는 그 나라를 경영하며 내정을 살피고 다른 국가들과 외교적, 군사적인 행동을 펼쳐나가며 특정한 목표를 이뤄나가게 된다. 2020년 출시된 〈크루세이더 킹즈 3〉는 대전략 장르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게임은 전략 시뮬레이션 전통의 국가 경영, 내정, 건설, 전쟁 등의 기능이 충실하게 반영된 가운데, 가문의 계보를 이어가는 재미도 준다. 플레이어가 선택한 가문의 '막장 드라마' 급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종영한 사극 〈태종 이방원〉의 캐치프레이즈에서 표현을 빌려오자면, 〈크루세이더 킹즈 3〉는 국(國)과 가(家)가 두루 담겨있는 게임이다. 이렇게 오늘날 〈크루세이더 킹즈 3〉의 스팀 평가는 '매우 긍정적', 메타크리틱 점수 91점을 기록하며 선전 중이다. 이번 글에서는 〈크루세이더 킹즈 3〉와 우리 현실 세계에서 발생 중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000여년 전 중세 봉건사회와 오늘날을 일 대 일로 비교하는 것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2022년에는 국가지도자의 2세끼리 결혼을 시키지 않으며, 만에 하나 결혼을 한다고 해서 동맹이 형성되지는 않으며, 지도자의 자리도 (북한이나 가봉 같은 나라들을 빼고는) 세습되지 않는다. 게임 전문지에서 일하는 기자로서 게임을 현실에 빗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필자 개인의 지정학에 대한 이해 또한 부박한 수준이다. 하지만 주로 논하려는 〈크루세이더 킹즈 3〉가 어떻게 국경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며, 뒤바뀌는지(국경을 ‘되찾기’ 위한 액션에 나서는지) 잘 풀어낸 게임이므로 조심스럽게 글을 써보려 한다. 두 개의 권역이 충돌할 때 전쟁은 시작된다 〈크루세이더 킹즈〉(이하 크킹) 시리즈에서는 역사적으로 아일랜드가 게임 학습의 ‘스타팅 포인트’로 제시된다. 〈크킹 3〉에서도 마찬가지. 플레이어는 랭커스터, 얼스터에서 활동하던 공작들을 복속시키고 아일랜드 왕국을 선포한다. 그 다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대치 중인 브리튼 섬으로 넘어가 접수가 완료되면, 플레이어는 브리튼 제국의 황제에 오르게 된다. 정복전쟁이 완료된 후에는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이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게임을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물리력으로 아일랜드 다른 지역 공작들을 자기 밑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전쟁에는 언제나 명분이 필요하며, 그 명분을 만들어나가는 활동이 〈크킹3〉 플레이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명분을 충족하기 위한 일차적인 조건으로는 ‘권역의 불일치’가 있다. 〈크킹3〉에는 규범 권역(de jure)과 실질 권역(de facto)이 있다. 규범 권역이란, 어떤 공작에게 이 지역부터 이 지역까지, 어떤 왕에겐 이 공국들을 아우른다는 일종의 관습적 권역이다. 신조어 ‘국룰’이 실제로 ‘국가의 룰’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통용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jure’를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러나 게임 속 유럽에서 국경은 칼로 딱 자르듯이 나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공작의 나라(공국)이 내 공국 영토를 침범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실제 지도 위에 그어진 지역을 실질 권역이라고 부른다.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이 일치하지 않을 때, 플레이어는 전쟁의 명분을 얻게 된다. 이 권역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사실상 〈크킹3〉의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왜 나의 봉토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인지, 왜 내 땅을 침범하고 있는지 같은 것들이 전쟁의 일차적인 명분이 된다. 해당 국가가 다른 종교를 채택했다면, ‘성전’을 벌일 수 있다. 중세 사회에서 성전이야말로 전쟁을 선포할 가장 좋은 구실이며, 바티칸의 교황은 틈만 나면 근동(Near East) 사회에 십자군을 보내려 든다. 게임의 권역들은 만고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게 되고, 이 변화는 플레이어의 유불리에 작용하게 된다. ‘이 규범 권역은 우리 왕국의 것’이라고 유럽 국가들 사이에 널리 인정받을 수 있고, 플레이어의 폭정으로 인해 봉토를 받은 공작들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결과적으로 규범 권역은 줄어든다. 그러나 게임을 하면서 규범 권역이 바뀌는 것을 보려면, 브리튼 왕국이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작령을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되려면 100여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제(諸) 세력들은 호시탐탐 플레이어가 빼앗아간 고토(古土)를 수복하려 들 것이다. 이때, 플레이어에게는 여러 옵션이 있다. 교황의 든든한 지지를 뒤에 업고 적들을 이단으로 꾀어내던가, 일부 프랑스 공작들을 자신의 말을 잘 듣도록 만들던가, 규범 권역으로 돌아가 집안 살림이나 잘 신경쓰거나, 공국이 감히 설칠 수 없도록 더 강력한 제국을 선포하거나… 그리고 〈크킹3〉가 어려운 까닭은 그 작전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후계자가 갑자기 죽어버리거나, 왕이 며느리로부터 대시를 받거나, 합스부르크에 시집보내려던 딸이 매독에 걸리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국’에 지나치게 신경쓴 나머지 ‘가’에 소홀하게 되면, 플레이어가 선택할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크킹3〉의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은, 실제 역사가 보여준 모습을 훌륭하게 게임으로 빚어냈다. 역사에서도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이 불일치할 때 전쟁은 벌어졌다.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은 마땅히 되찾아야 할 땅이었으나,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는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던 터전이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알라의 뜻을 받아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자신들이 이끌어야 하는 땅이라고 주장하며 성전을 선포한 조직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ISIS다. 전쟁은 어떻게 끝나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다. 이러고 싶지 않지만, 악마의 변호인이 되어보자는 심산으로 러시아의 입장에서 두 권역 이야기를 해보자. ―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규범 권역을 침범하고 있다. 우리는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치를 보장해주었으며, 오랜 기간 물적·인적 교류를 맺어왔다. 그런데 ‘키예프’ 루스 한 뿌리였던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어 금지 법안을 발의하는 등 우크라이나 내 인구 17%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을 박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실질 권역과 국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역내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제 기구에 가입하려 들고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탄압 선봉엔 ‘네오나치’ 세력들이 있으므로, 이들을 축출하기 위한 ‘일부 군사작전’을 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답변할 것이다. 물론 다음과 같이 쓴다고 해서 필자가 ‘천사의 변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규범, 실질 권역을 모두 침범하고 있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독립했으며, 별개의 주권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역내 평화를 위해 가지고 있던 핵탄두를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소련으로 보내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럽이고자 하는 욕망이 크고, (근시일 내 불가능하겠지만) 그를 위한 조약 기구에도 합류하고 싶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인은 차별받지 않고 공존하고 있으며 독립을 선포한 두 곳의 공화국 역시 모두 러시아의 공작에 의한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비롯한 전국에 포격과 비인도적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므로 방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양측이 서로 평행선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그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크킹3〉에서는 전쟁을 끝내는 4가지 조건이 있다. ― (a) 승전은 전쟁에서 상대를 압도한 것이 확인될 때 플레이어가 자신이 내건 명분이 맞다며 ‘요구압박’을 하고, 열세에 놓인 상대방이 이를 승인하면서 이루어진다. 게임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b-1) 무조건 평화는 상대방에게 지금까지의 전쟁을 ‘없었던 일로 하지 않을래’라고 묻는 것으로 개전의 명분에 따라서 다른 조건의 협상을 벌이게 된다. 주로 전쟁 중에 나라에 변고가 생겼을 때 사용하는 커맨드다. (b-2) 기독교 국가로 플레이하는 경우, 전쟁이 끝나기 전에 교황이 성전을 선포해도 전쟁은 없었던 일이 된다. (b)의 결과는, 개전 이전 상태(Status Quo Ante Bellum)다. (c) 패전은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상대방이 이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고, 플레이어는 그 사실을 무조건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플레이어는 잘못된 전쟁을 선포했음을 인정하는 배당금을 상대에게 보내야 하며 휘하의 신하들은 왕을 불신하게 된다. (b-2)를 빼고 보자면, (a), (b), (c)를 단순히 승무패로 나눌 수 있을 듯하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충돌의 결과 또한 승무패로 분류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러시아로부터 군대를 모두 물려내고 나토를 가입하고, 푸틴으로부터 배상금까지 얻어낸다면 (a), 러시아와 협상 테이블에서 어디까지가 ‘개전 이전 상태’인지를 합의한다면 (b), 나라의 운명을 러시아에게로 맡기기로 한다면 (c)가 될 것이다. 동맹은 동맹국의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의무이며, 〈크킹3〉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쟁 중인 동맹국에 파병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플레이어의 위신이 훼손될 수 있다. 게임에서 선전을 포고할 때 쓰이는 자원이 바로 위신이므로, 한동안 전쟁 명분을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 현실에서도 국제사회에서 동맹은 매우 중요한데, 벨라루스 또한 러시아와 함께 ‘군사작전’에 나섰다. 두 나라가 동맹을 맺고 있는지 주종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 듯하다. 반면에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동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무기를 보내고 경제제재를 가하지만, 직접적인 액션은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나토의 또다른 핵심 축인 독일은 패전 이후 처음으로 재무장을 선언했다. 새로운 국경을 만들겠다는 욕망은 게임에서나 〈크킹3〉으로 현대 사회의 국가 관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제국주의와 냉전이 세계지도에 한 일을 중세 배경 게임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플레이하고 싶다면 같은 개발사(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빅토리아〉를 찾으면 된다.) 아프리카의 ‘자로 잰 듯한’ 국경은 실제로 자로 잰 것이며, 이후 숱한 아프리카의 민족 분쟁이 그 줄긋기의 영향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숱한 민족분쟁에 관해서 〈르몽드 세계사〉는 “아프리카는 종족 자체가 사회를 구성하고 나아가 국가를 만들기도 한다 (중략) 중앙집권 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식 모델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한다. 태국의 라마 5세는 ‘국가의 지도’를 편찬해 국민성을 만들려고 했지만, 국가의 가장자리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가에 행정력이 전파되기 전까지 국가가 뭔지 관심이 없었다. 태국 정부는 냉전 시대에서야 산악지대를 넘나드는 공산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해 주민들을 명부에 등록했다. 국경은 산맥과 강줄기에 따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통치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러시아는 제국 때나 소련 때나 지금에나 부동항을 면한 흑해 연안의 도시들을 노리고 있다. 푸틴의 도박은 수많은 명분들로 포장되어있지만, 어찌 보면 본질은 러시아식 부동항 공략의 재현이다. 더 멀리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국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안에서 차르가 된 푸틴은 그렇게 러시아 바깥까지 제패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그런 장면은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보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고 다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부, 「르몽드 세계사」, 권지현 옮김, 휴머니스트, 2008 통차이 위니짜꾼 , 「지도에서 태어난 태국 – 국가의 지리체 역사」, 이상국 옮김, 진인진, 2019 CK3 Wiki, “Titles”, (2022-05-27) Steam, “Crusader Kings III”, (2022-05-27) Wikipedia, "Grand strategy wargame", (2022-05-27)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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