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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타임과 숨고르기
숨고르기가 중요한 이유는 지속에 있다. 게임은 승패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이겼을 때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 충분하다면 지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다.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면 패배는 게임을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며,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이길 수 있느냐를 가장 염두에 두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동안 지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으로 고를 수 있다. 숨고르기는 게임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 Back 쿨타임과 숨고르기 21 GG Vol. 24. 12. 10. 자투리 시간은 과연 남는 시간일까 ‘자투리 시간’이 사회적 화두였던 적이 있다. “일과(日課) 사이에 잠깐씩 남는 시간”이라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특정할 수 없는 시간이 때론 무언가를 더 이룰 수 있는 기회로, 때론 어떻게 보낼 것인지 모색해야 하는 과제로 여겨졌다. 자투리 시간을 언급한 신문기사를 통해서도 시기에 따라 다른 맥락으로 읽혔음을 파악할 수 있다. 1983년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자오락실이 성행하고 있음을 다룬 기사에서는 대학생들이 남는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소개한다. 십여 년 뒤인 1994년도에는 점심시간을 취미나 자기계발을 위해 사용하는 젊은 회사원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이들은 점심시간을 “직장상사를 ‘모시고’ 식사하면서 잡담을 나누는 ‘한가한 시간’이 아니라, 바쁜 생활 중에도 자신을 계발하고 취미를 살리는 ‘황금의 자투리시간’으로 여긴다고 소개한다. 그로부터 10년 사이 자투리 시간은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성격이 되었다. “(입시를 위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한자와 영단어를 외우는 것이 쌓이면 학습량이 제법 될 것”이라는 칼럼은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 해야 성취를 이룰 수 있을 정도로 경쟁적인 분위기를 시사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과 성찰 없이 일단 더 나은 삶을 살려면 남들보다 노력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사회에서 강렬히 자리했던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혹은 강요)는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압박했던 셈이다(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근거로 게임 셧다운제를 추진하면서 청소년의 심야 학습에 대한 보호에 대한 반론에는 딱히 응답하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모두가 자투리 시간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마지막 퍼즐로 여겼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휴대전화로 자투리 시간에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지그시 ‘염려’하는 기사도 있다. 무선 인터넷과 스마트 디바이스가 대중화되면서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 방법의 선택지가 늘었다. 장소에 관계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자투리 시간의 경계도 불분명해졌다. 순서를 두고 차례차례 진행되던 일들이 여러 갈래에서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잠깐씩 남는 시간’이라는 것이 불분명해지면서 남는 시간에 하던 일이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무엇을 할지 떠올리는 것 대신 무엇을 먼저 할지 선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5년에 ‘스낵 컬쳐’라는 이름으로 짧은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는 개인의 자투리 시간을 점유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자투리 시간은 개인이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게 된 걸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2024년도 기사들은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현금처럼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모으는 ‘앱테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스마트 미디어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숏폼 시청 대신 책을 읽는 등 일부러 자극적인 콘텐츠와 거리를 두는 ‘도파민 디톡스’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소개한다. 자투리 시간을 ‘남김 없이’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환경 속에서 개인들이 일상의 균형과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쿨타임, 시간과 시간 사이에 놓인, 선택해야 하는 게임 플레이 중 행동과 다음 행동 사이의 시간인 쿨타임은 자투리 시간과 두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첫째, 시간과 시간 사이에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자투리 시간이 하루의 어떤 과업과 그다음 과업 사이에 있는 시간이라면 쿨타임은 게임 중의 어떤 행동과 그다음 행동 사이에 있는 시간이다. 분량은 각기 다르지만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주에 제약이 따른다. 둘째,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스스로 선택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투리 시간의 맥락이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달라졌음에도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꾸준히 당사자의 몫이었다. 쿨타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의 성격이나 설정된 조건에 따라 상황은 다르지만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는 게이머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쿨타임은 어떻게 보내야할까? 게이머의 선택인 만큼 정답은 없지만 쿨타임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따져 보는 것이 이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쿨타임을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전략적인 요소로 여겨 쿨타임에 과연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하는 반문에 대한 나름의 답도 될 것이다. 먼저 살펴볼 것은 쿨타임은 왜 (하필) ‘쿨’타임이냐는 것이다. ‘핫’(hot)과 ‘콜드’(cold) 사이를 뜻하는 ‘쿨’(cool)은 유무형의 멋짐을 표현하는 문화적 맥락의 의미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쿨타임이 ‘쿨다운’(cooldown)을 차용한 표현임을 고려하면 쿨타임의 ‘쿨’은 차갑고 서늘하며 침착하다는 사전적 의미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특정한 기술이나 아이템만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거나 캐릭터 능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등 쿨타임이 게임에서 플레이가 과잉 또는 과열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과도 부합한다는 점에서 쿨의 사전적 의미와도 연결된다.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쿨타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균형과 침착함이라면, ‘쿨’말고 다른 표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핫과 콜드 사이에는 ‘웜’(warm)도 있고, 중간 혹은 완화한다는 의미의 ‘모더레이트’(moderate)나 균형 잡힌이라는 의미의 ‘밸런스트’(balanced)도 있다. 차분함을 뜻하는 ‘논살란트’(Nonchalant)나 냉정함을 뜻하는 ‘상프루아’(Sangfroid)는 왠지 어감도 좋다. 그런데 이 단어들에 ‘타임’을 붙이면 나름대로 약어를 만들어 입맛을 살려봐도 여전히 ‘쿨’만 못하다. 이렇게 느끼는 건 ‘쿨’이 게임 말고도 일상적으로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 맥락도 있긴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쿨타임이라 부를 수 있느냐다. ‘로딩’도 쿨타임이라 할 수 있을까?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장소나 레벨이 전환될 때, 목표 달성을 실패해 체크/세이브 포인트로 다시 돌아가거나, 리스폰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쿨타임에 해당할까? 로딩은 게임 플레이 자체가 유보되는 반면 쿨타임은 특정 행위만 제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이로 인해 로딩은 게임 전략의 일부로 활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쿨타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쿨타임의 초점을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는 순간, 즉 쿨타임이 종료되는 시점인 ‘쿨하게 다운된 상태’에 두는 것이다. 그런데 초점을 쿨하게 ‘다운되어가는’ 과정으로 옮기면 로딩도 쿨타임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피파〉 시리즈의 로딩 또는 대기 화면에서 플레이 연습을 할 수 있다거나, 레이싱, 대전 액션 게임 등에서 스테이지 종료 후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여준다거나, 로딩 화면에서 게임에 대한 각종 정보나 팁을 제공하는 것은 게임 전략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도, 이어질 다음 플레이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쿨타임의 기능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로딩은 게임이 다음 단계를 연산하는 과정이지만 이 시간동안 게이머는 특정한 동작을 연습하거나 미리 조작해보면서 워밍업을 하거나, 앞서 잘한 혹은 잘하지 못한 플레이를 되새기거나 복기하고, 게임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면서 이제 이어질 플레이를 어떻게 할지 구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a tempo, 자기만의 페이스로 이처럼 균형과 침착함을 추구하는 쿨타임의 범위를 로딩까지 포함한다면 쿨타임을 게임 플레이 중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숨고르기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될 수 있다. 앞서 사용한 스킬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유닛 생산이 마무리되어서 추가 생산을 지시할 수 있을 때까지 ‘벼르는’ 것도 숨고르기가 될 수 있다. 앞서 플레이한 내용을 만족스러워하거나 불만족스러워하며 어떤 부분을 잘 했거나 그렇지 않았는지 복기하는 것도 숨고르기가 될 수 있다. 게임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로딩에 걸리는 시간동안 가만히 있는 것도 (물론) 숨고르기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행위들이 게임 플레이와 플레이 사이를 잇기 때문이다. 승리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쿨타임에 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가 ‘이기려면 해야만 하는 행위’로 좁혀지겠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다면 쿨타임에 무엇을 할 것인지는 ‘자기만의 페이스’(my own pace)에 따라 게이머 스스로 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숨고르기가 중요한 이유는 지속에 있다. 게임은 승패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이겼을 때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 충분하다면 지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다.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면 패배는 게임을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며,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이길 수 있느냐를 가장 염두에 두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동안 지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으로 고를 수 있다. 숨고르기는 게임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다시, 쿨타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무엇을 선택하든 자기만의 페이스에 따라 게이머 스스로 정하면 된다. 게임에서 쿨타임이 마련된 것은 게임 디자인적인 배경 때문이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게이머에게 달렸다. 게임의 쿨타임은 해당 게임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오래) 플레이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게이머가 플레이하는 게임은 그 게임말고도 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쿨타임을 두고 치킨을 먹는 것은 치킨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인 것처럼 게임에서의 쿨타임도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일 필요가 있다. 하여 나는 쿨타임에 숨고르기 말고도 ‘관조’도 함께이길 바란다. 게임을 하고 있음을, 할 게임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더해진다면 지금 하고 있는 게임과 앞으로 하게 될 게임이 더 큰 기대와 재미를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투리 시간에 부러 밖으로 나가 볕을 쬐고 산책하는 것이 일상을 더 윤택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PD-자문위원의 코멘터리 대담
지난 10월 10일, EBS에서 만든 게임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참조: https://youtu.be/5LWXpmdV_BU) 일반적인 게임 다큐멘터리처럼 게임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게임의 본질과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트렌디한 연출에서부터 방송 직후 유튜브에 즉시 공개한 것까지, 제작과정과 유통과정 모두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공개된 유튜브의 댓글에는 ‘제작자가 게임에 진심’이라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 Back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PD-자문위원의 코멘터리 대담 09 GG Vol. 22. 12. 10. 지난 10월 10일, EBS에서 만든 게임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참조: https://youtu.be/5LWXpmdV_BU ) 일반적인 게임 다큐멘터리처럼 게임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게임의 본질과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트렌디한 연출에서부터 방송 직후 유튜브에 즉시 공개한 것까지, 제작과정과 유통과정 모두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공개된 유튜브의 댓글에는 ‘제작자가 게임에 진심’이라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그러나 기존의 게임 다큐멘터리와 궤를 달리한다는 것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뒤따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은 어땠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며, 어떠한 관점으로 게임을 보고자 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이번 호에서는 박진우 PD와 자문위원 이경혁 편집장의 대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Q. 마침 다큐멘터리의 PD와 자문위원을 모시게 되었는데요. 이 다큐멘터리에 관한 논의를 처음 시작하신 것은 언제인가요? 이경혁 자문위원: 제가 기억하는 첫 만남은 한예종에서 열었던 크리티컬 플레이어 행사였어요. ‘게임 비평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주제의 행사에서 제가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끝나고 찾아오신 거예요. 게임 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그때 앉은 자리에서 2시간을 더 이야기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굉장히 반가웠던 것이 ‘이제는 게임을 하던 세대가 제작자의 위치로 가는 순간이구나’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다큐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웠어요. 그래서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그다음에는 서로 바빠서 잊고 있었어요. (웃음) 박진우 PD: 그렇죠. 서로 바빴죠. 이경혁 자문위원: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났는데 다시 또 연락이 와서 예산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다큐의 시작이라고 하면 5년 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다큐멘터리가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한 것은 3년 정도이지만, PD님은 예전부터 이 주제를 다루고 싶어하셨으니까, 마치 배추를 절이는 데 2년, 양념에서 묻히는 데 3년 같이 5년을 고민하셨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진우 PD: 맞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었고, 대학 졸업할 때도 졸업 논문을 게임에 관해 썼거든요. 그러다 보니 뭔가 나름대로 파보고 이것저것 읽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관심이 생겼고, 이차적으로는 이러한 작업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PD가 된 다음에도 ‘내가 어떤 프로그램을 할 것이냐’라고 했을 때 게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 과정에서 편집장님이 말씀하셨던 한예종 행사에 갔는데,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필드가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위안과 용기를 얻었어요. ‘이 정도의 콘텐츠가 있으면 다큐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사실 아이템만 가지고는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거든요. 그게 2018년 겨울이었어요. Q. 5년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은데, 그 과정에서 생각이 변하거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진우 PD: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조바심이 있었어요.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게임에 관한 감각을 잃어버리기 전에 게임 다큐멘터리를 두 개는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한 3, 4년 정도 제작했는데, 1년, 1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제 어릴 적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제가 게임을 엄청 좋아하고, 가장 열성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그 시절과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서 더 빨리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게임의 주 소비층을 2030이라고 봤을 때, 이 문화에서 제가 조금씩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좋아하면 예전에는 100% 다 알았는데, 조금씩 모르는 것들이 생기면서 이걸 완전히 놓치기 전에 만들어야겠다고 서둘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나왔던 다큐도 어떻게 생각해 보면 2년 후에 저라면 이런 방식과 이런 드립을 넣는 형태로 만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드립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는 인터넷 상의 반응을 보면서 굉장히 ‘성공했구나’라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있었어요. 박진우 PD: 어떤 씁쓸함이었을까요? 이경혁 자문위원: 유튜브에 댓글이 달리는 데, 이런 댓글인 거죠. ‘이 다큐가 훌륭한 이유는 밈을 잘 쓴 것이다, 이말년이 나왔다, 전용준이 나왔다.’ 그러나 이 다큐의 의미가 그거 하나는 아닌 거죠. 밈이 잘 사용된 것은 맞지만, 한편으로는 이 다큐의 핵심은 결국 게임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인데, 이것이 주목받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어요. 박진우 PD: 그렇죠. 그 부분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에 선생님과 함께 다큐 기획을 할 때도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고, 방송 나간 결과물을 보면서도 어렵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말씀하신 타겟에 관한 문제예요. 시청자들의 게임 이해가 각기 다르고, 어떤 것을 원하는가 했을 때, 이런 부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물론 다큐의 본질이 별로였으면, 밈에 대한 반응도 안 나왔겠죠. 그렇지만 저희가 2년 반 동안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찍어놓은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리서치를 굉장히 길게 했어요. 그런 지점에서 오는 아쉬움이죠. 박진우 PD: 사실 내용적인 부분에 있어서 반응이 많이 나왔던 것은 3부였거든요. 전체 기획의 측면에서 봤을 때, 1부가 기본적인 내용이라면 2부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고, 3부가 일종의 심화편으로, 시청자들이 다큐프라임이나 다큐멘터리에 기대하는 정보량과 깊이는 3부의 온도였을 것 같아요. 다만, 제작과정에서 너무 심층적인 논의들은 의도적으로 많이 뺐어요. 핵심적인 내용만 남기고 많이 덜어내고자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보면 게임을 해왔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나 공중파 다큐멘터리라는 미디어는 일종의 공인 효과를 만들잖아요? 저희는 그런 지점에 더 초점을 맞추고자 했어요. 다들 느끼고 있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걸 언어화해서 공유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으로 담론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잖으니까요. 그렇게 족적을 남김으로써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급적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밈이나 인터넷 문화를 많이 가져온 것도 이런 맥락이에요. 재밌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테니까요. *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시청자 반응. 이경혁 자문위원: 그래서 그런 후속 효과도 굉장했죠. 계속 커뮤니티에 돌았고, 소위 말하는 ‘짤’로 ‘EBS가 이런 것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웃음)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게임을 하나의 매체로서 다루는 시금석’이라는 방향성은 확실히 기존 문법이랑 다른 지향점을 가지게 했는데요. 저희가 시작할 때부터 배제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했거든요. 처음에 저희가 기존 다큐들이 무엇을 다루었는지 쭉 훑었어요. 그러면서 게임 산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고 방향을 정했었죠. 다른 이야기지만, 어려움이라고 했을 때는 그런 것도 있을 것 같네요. 이전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들을 보니까 미국의 경우에는 비디오 게임 연구의 장이라는 것이 이미 있는 거죠. 거기서 자신들이 쌓아놓은 역사들이 있고, 대학의 전공도 있으며, 전문가들이 있어요. 그러면 다큐 제작진들이 누군가를 컨택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전문가가 없으니까 어려웠죠. 박진우 PD: 맞아요. 그게 되게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였습니다. 자료도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고 리서치에 동원될 수 있는 인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Q. 그러면 자료나 전문가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가 다큐의 방향성을 바꾸셨던 지점도 있을까요? 이경혁 자문위원: 저는 기억나는 게, 초기에 기획했던 콘텐츠 중에는 백인의 인터뷰가 있었어요. 게임계의 100명을 선정해서 가장 좋았던 게임에 대한 인터뷰를 모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했었죠. 박진우 PD: 저는 여전히 그 기획이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중에라도 해보고 싶은데, 당시에 캔슬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 정도가 있었어요. 하나는 여태까지 나왔던 게임 중에서 최고의 걸작을 꼽는다고 하면, 걸작이라는 말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정해진 답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배제하기가 너무 쉬운 거예요. 결국, 작품론적 관점으로 질문이 흐르게 되죠. 저희 내부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때도 기껏해야 와우(WoW) 정도?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 두 가지 매체의 게임을 포기하게 되니까 세팅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하나 있었고요. 두 번째로 다큐를 기획할 때는 판데믹 시국이었기 때문에, 해외로 못 나갔었거든요. 그래서 해외의 게임 관련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는 요인이 작용했어요. 물론 이 기획 과정에서 프린세스 메이커의 아카이 타카미씨를 만날 수 있게 되어 이번 다큐에 나오시긴 했지만요. Q. 두 분은 그 5년 사이에 어느 정도로 만나신 건가요? 박진우 PD: 처음에 만나 뵙고 그 이후로는 저도 이제 다른 프로그램 한참 제작을 하다가, 다큐프라임 기획안 공모가 떠서 올해는 게임을 본격적으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정리를 하다 보니 한계가 있는 거예요. 이전에 정리해놓은 자료들 중에서는 유실된 것도 있고, 그 사이 지형이 많이 바뀌면서, 전문가 선생님의 도움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경혁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나와주셨어요. 이경혁 자문위원: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장소가 그렇게 멀지 않아서요. (웃음) 동네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했어요. 우연찮게 작가분도 근처에 사셔서, 초창기에는 거의 하루종일 이야기를 하는 모임들을 꽤 자주 가졌던 것 같아요. 어떤 결론이 나기보다는 탐색을 엄청 많이 했었죠. 박진우 PD: 그래도 꽤 많은 가능성들을 펼쳐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렸어요. 그러다가 기획을 다듬어서 지금의 1, 2, 3부 형식을 잡기까지 한 1년 걸렸던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제작이라는 과정이 그런 것 같아요. 완성된 작품은 150분이지만, 할 이야기는 정말 많은데 제한된 150분 안에 무엇을 넣어야 우리의 목표에 들어갈 것인가 하고 훨씬 많은 시간을 고민했죠. 이런 식으로 걸러내는 과정들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박진우 PD: 맞아요. 전체 50분짜리 다큐멘터리에서 내러티브가 전개되는데 필수 불가결하게 쓰이는 시간들이 있어요. 거기서 시간을 더 줄이면 몰입이 안 되거나, 캐릭터가 설명이 안 되거나, 상황이 인지가 안 되거나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구조 자체가 무너지는 거고, 구조가 무너지면 알맹이들은 더 머릿속에 안 들어오는 거죠. 게다가 내용적인 면에서도 깊게 다루거나 더 들어가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거든요. 그래서 진짜 핵심만 남기고 버리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이경혁 자문위원: 결국은 다 필요없고 재밌게 보면 좋겠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남겨줄게! 같은 식으로 만들어지죠. (웃음) 박진우 PD: (웃음) 맞아요. 정확하게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욕심으로는 약간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1부에서는 다큐 중에서 규칙이나 상호작용을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싶었었어요. 그치만 사실 동영상은 일방향 콘텐츠니까 상호작용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나마 최대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느낌이라도 줄 수 있게 중간중간 퀴즈나 퀘스트 같은 것들을 넣으려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짜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죠. 추가적으로 그런 어려움도 있었네요. 인터뷰이들을 어렵게 모셨는데, 제한된 시간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담기가 어렵잖아요. 50분 다큐에 한 두 세문장 정도 나오실 수 있는데, 저희가 조사를 할 때에는 평균적으로 3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거든요. 진짜 좋은 말씀이 많았는데, 그걸 다 못 담아내서 너무 아쉬워요. 다만, 저희가 그래도 최대한 모든 분들의 인터뷰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작업에서 낭비가 거의 없었거든요. 인터뷰 등을 나갔던 모든 자료들을 다 썼고, 한두 컷이라도 담으려 했죠. 근데 딱 한 분 전반적인 톤과 약간 달라서 못 쓴 분이 있었어요. 방송 나가기 직전까지 어떻게든 녹여내려 고민했는데, 안 돼서 방송 전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세 부가 사실 각기 다른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니까 에피소드 별 비하인드도 다를 것 같은데요. 이경혁 자문위원: 맞아요. 저도 궁금했던 것이, 1부에서 인트로가 충격적이었잖아요? (웃음) 사람들이 말로만 하던 ‘고인의 생전 최고의 플레이를 보시겠습니다’를 직접 그려내니까. 그런데 해당 장면을 촬영하는 배우들은 자기가 뭘 찍는지 아나요? 예를 들어 목사님은 이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시는 걸까? 그런 점에서 저는 PD님이 어떻게 디렉팅을 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박진우 PD: 저희가 앞부분 대본을 드리고, 감추는 것은 없었어요.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를 했는데, 다만 밈에서 출발했던 것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신 분들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어르신 출연자들도 있고 했었으니까. 한 30대 중후반쯤 되시는 남자 배우 분만 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디렉팅은 그런 거죠. ‘상상도 못했던 걸 봤다고 생각하고 놀래 달라’ 이경혁 자문위원: 아무래도 다 알고 연기하시긴 어렵겠죠. 아, 그 ‘전용준 게임’은 따로 외주 제작한 건가요? 박진우 PD: 네 맞아요. 따로 게임 개발하시는 분을 컨택해서 제작을 했죠. 저희 나름 그 게임 진짜 신경 많이 썼습니다. (웃음) 다큐멘터리가 그냥 한 편의 다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체험을 할 수 있는 다큐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의 확장선이었던 거죠. 영상이라는 일방향적인 매체의 한계를 벗어나보고 싶었고, 그 안에는 나름 많은 비밀과 다큐에서 나왔던 내용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장치들 등을 세밀하게 조정을 하고자 했습니다. 진짜 공을 많이 들였죠. * 다큐프라임의 ‘게임의 신’ 게임 출시 공지. 전용준 게임은 http://www.ebsgodofgame.com에서 바로 접속할 수 있다. 이경혁 자문위원: 이게 진짜 이스터에그가 많더라고요. 박진우 PD: 네. 그런 비밀을 감춰놓음으로써, '게임이 재미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직접 느껴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거든요. 처음에 화면을 켜면 튜토리얼이 짧게 한 장으로 나오는데, 진짜 미니멀하게만 짜놨고, 어떻게 해야 고득점을 하는지, 고득점을 받으면 어떻게 집계가 돼서 뭘 하는지 이런 규칙은 일부러 다 감춰놨어요. 그걸 찾아내는 게 일종의 재미를 발생시킨다고 봤기 때문이죠. 이경혁 자문위원: 나도 그 의도를 보고 그게 게시판이 좀 올라오길 바랐어요. ‘이 게임 고득점 뽑는 법’ 뭐 그런 걸로요. 이런 게 어디에 글이 올라와야 재밌는 거니까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사람들이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아직도 액티브 되어 있죠? 박진우 PD: 네. 한 3년 정도 서버비를 내놨습니다. 제 사비로... (웃음) 그리고 이야기 나온 김에 3부 마지막에 가상의 미술관도 실제로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공들인 것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이 안 보셨더라고요. 이경혁 자문위원: 그것도 3년치 서버비를 넣어뒀나요? 사비로? 박진우 PD: 네 (웃음) (가상 미술관은 https://www.ebsgamedocu.co.kr 주소로 접속할 수 있다) 이경혁 자문위원: 그리고 1부에서는 ‘바람의 나라’가 메인이 되고, 송재경씨가 거울에 나오잖아요? 세 게임 중에서 맨 처음으로 바람의 나라를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박진우 PD: 음. 아무래도 제 유년 시절의 일부분을 책임졌던 게임에 대한 리스펙이 크죠. 이경혁 자문위원: 그래서 저는 바람의 나라 세대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바람의 나라와 송재경씨가 가지는 의미가 또 특별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지점에서 또 중요한 것이 거울에 관한 지점일 것 같은데요. 거울은 왜 쓰셨나요? 박진우 PD: 우선은 인터뷰 공간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어요. 인터뷰 샷이라는 게 사실 다양하게 보이지만, 한국에서 전문가들이 나온다고 했을 때 한정적이거든요. 사무실 혹은 집무실, 교수님 방 이런 공간이 가지고 있는 넓이나 장면이 너무 뻔하고, 각도도 제한적이어서 어쨌거나 좀 다르게 구성하고 싶다는 게 출발이었어요. 다만 저희가 전문가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 뵙고 촬영을 하는 형태니까, 인터뷰 샷에 통일감을 줄 수 있는 공통의 오브제가 하나 있어야 되겠다 싶었고요. 그게 게임에 대한 무언가면 더욱 좋겠죠. 다만 뻔하게 콘솔 패드나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등을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고민을 하다가 떠올린 게, 게임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거울이었어요. 거울이 우리를 비추듯, 게임이 우리 자신을 반영하기도 하고, 거울에 우리를 투영하기도 하고... 일상에 함께하면서도 저 너머의 현실과 꼭 닮았지만 완전히 현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무언가. 그런게 게임이라고 봤기 때문에 거울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사각의 프레임이라는게 시각적으로 활용하기도 좋았고요. 자막을 넣는다거나, 거울에 비친 인물에 게임의 일부를 합성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쓰기에 좋았죠. 아울러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사각 프레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경혁 선생님이 쓰신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라는 책의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네요. 매체로서 게임을 바라본다는 차원에서 더더욱 그렇네요. 이경혁 자문위원: 무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2부의 세팅이 또 굉장히 재밌잖아요. 제가 볼 때에는 온스테이지 공간의 느낌이 들던데, 어떤 기획이었나요? 박진우 PD: 온스테이지와 같은 공간이냐고 물어보시면, 완전히 같은 공간은 아니고요. 요새 호리존트(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음새 없이 만들어 놓은 세트 벽면)에 조명을 넣는 방식으로 공간을 채우는 영상들이 되게 많아요. 아마 처음에는 공중파의 세트 규모를 소규모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따라가기는 힘들어서 차용한 방법일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이제는 오히려 역으로 공중파에 영향을 많이 미치죠. 왜냐하면 그것들이 일종의 공통감이라는 걸 만들어내거든요. 예를 들면 90년대 영상들을 보면, 편집의 호흡이나 샷의 크기 이런 것들이 미묘하게 지금 되게 다르거든요. 이런 감각이 결국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통감에 기반을 둔다고 하면, 유튜브 콘텐츠에서 나오는 배경들이 지금 공통감의 영역에 올라섰고, 그런 지점에서 온스테이지 같은 느낌을 좀 받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온스테이지의 팬입니다. 제가 예전에 뮤직박스라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거기에 음악 공연을 보여주는 구성이 있었거든요. 당시에 온스테이지를 많이 참고했고 훈련된 면들이 있지요. 이번 다큐에서는 최대한 심플하게 가면서도, 인상적인 비주얼을 만들고자 했고요. 거기도 이제 보면 사람들을 상징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가령, 집이라든지 음표라든지 이런 것들을 넣기로 했었어요. 사실 그 거울도 되게 비싼 겁니다. (웃음) 거의 한 100만 원 되는 거울인데, 인터뷰를 위해서 샀어요. 사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다 말렸었고, 제가 귀가 얇은 편이라 웬만하면 사람들이 말리면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해야 한다고 우겨서 넣었어요. (웃음) 그래도 결과물을 보고 다들 만족해서 다행이에요. 이경혁 자문위원: 저는 2부 마지막에 4명 부감 잡는 장면에서 무대 세팅에 놀라움을 느꼈는데요. 아마 저만 그렇게 느끼진 않았을 것 같아요. * 위에서 찍었을 때, Game을 나타낸 무대효과. 이경혁 자문위원: 3부서는 예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은 결론을 명확하게 내리지는 않잖아요. 결론을 강하게 가져가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까요? 박진우 PD: 부담이 없었다고 하면 사실이 아니겠죠. 근데 그게 결론을 굳이 내리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물론, 강하게 이야기 해볼 수는 있었겠죠. 예를 들어, 다큐에 나왔던 표현을 좀 빌리자면 “게임의 상호작용이 예술이다”,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보면서 반대 의사를 가지신 분들의 말씀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저는 이 주제가 논리적으로 설득할 게 아니라, 그냥 다름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분들이 자연스럽게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의 단초들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우리 다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을 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면에서는 이루려고 했던 소기의 성과들을 조금 이뤘던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또 절묘하게도 화두를 던지는 엔딩이 더 의미가 있었던 모종의 시대적 배경이 있었잖아요? 사실 우리가 논의할 때만 해도 그런 이야기가 없었죠? 박진우 PD: 맞아요. 9월 7일에 ‘문화예술’의 범위에 게임을 추가하는 내용의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죠. 8월 초부터 뉴스에 ‘이번에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고 나왔던 것 같은데, 그걸 처음에 봤을 때는 약간 식은 땀이 흘렀죠. (웃음) 지금은 게임이 최소한 법적으로는 예술의 영역 바깥에 있다는 걸 가정하고 이미 다 만들어 놨는데, 갑자기 그 안에 들어온다니요. 반갑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몇 년을 고민한 걸 엎을 수도 없고, 이거를 모른 체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래서 어떡할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오히려 좋은 거예요. 이런 상황을 살리자. 그게 3부에서 다루는 ‘게임과 예술의 관계’라는 게 먼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마주하고 있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질문이라는 게 확 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방송 말미에 자막으로 덧붙였습니다. 박진우 PD: 때가 다행히 잘 맞았죠. 그것도 방송 나가기 직전까지 몰랐던 게 국회 본회의에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그다음에 행정상의 절차라고 보통 얘기를 하는데, 그 이후에 행정부로 이관하고 공포하는 그 두 가지 단계가 남아 있더라고요. 물론 거기서 파기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한데, 그래도 확정이 되어야지 법적으로 효력을 갖는 거니까. 근데 그게 방송 3일 전인가 막 이랬거든요. 그래서 일단 다 써놓고 처리가 되었는지 계속 새로고침하고 그런 초조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Q. 마지막으로 이후에 하시고 싶은 작업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박진우 PD: 기획하고 있는 여러 가지 아이템 중 하나는 인디 게임 제작기거든요. 한 케이스로 쭉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여러 케이스를 같이 엮어서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이외에도 게임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더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자문위원: 이번 다큐를 책으로 만들거나 하는 후속 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진우 PD: 사실 지금의 3부작만으로는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아카데믹한 작업들이 진행된 경우가 조금 더 책으로 발간하기 적합할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게임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더 탐닉하고 싶어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게임 다큐를 하다 보면, 작업물들이 충분히 쌓인다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소망이 있습니다. 결국 게임 다큐로 좀 더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손민정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버튼 읽기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인벤토리 시스템은 어떻게 효율을 재미로 연결시켰는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꽉찬 인벤토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23년 대흥행을 이루었던 <발더스게이트3>에서는 아이템의 무게가 발목을 붙잡는다. 일반적으로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어떤 아이템이 좋은 아이템이고, 어떤 아이템이 ‘잡템’인지 알 수 없어서 보부상처럼 모든 아이템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면 아이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을 들고 다닐 것이고 무엇을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는 ‘발더스게이트 인벤토리 관리 꿀팁’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 Back 인벤토리 시스템은 어떻게 효율을 재미로 연결시켰는가? 18 GG Vol. 24. 6. 10.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꽉찬 인벤토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23년 대흥행을 이루었던 <발더스게이트3>에서는 아이템의 무게가 발목을 붙잡는다. 일반적으로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어떤 아이템이 좋은 아이템이고, 어떤 아이템이 ‘잡템’인지 알 수 없어서 보부상처럼 모든 아이템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면 아이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을 들고 다닐 것이고 무엇을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는 ‘발더스게이트 인벤토리 관리 꿀팁’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한편, <마비노기>나 <디아블로2>에서는 아이템의 부피가 플레이어의 고민을 유발한다. 성능이 좋지만 부피가 큰 아이템이 떨어졌을 때, 플레이어는 가치가 낮은 아이템을 순차적으로 버리면서 인벤토리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애쓴다. 그리고 버린 아이템보다 얻은 아이템의 가치가 월등히 높다는 확신이 들면, 득템의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 각각 무게와 부피로 제한을 두는 <발더스게이트 3>와 <디아블로2>의 인벤토리 시스템 그런데 사실 정말로 효율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하려면, 인벤토리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된다. 게임사가 인벤토리를 디자인할 때, 무게나 개수, 부피의 제한을 두지 않으면 게이머들은 더 빠르게 사냥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획득하자마자 강해지는 방식을 사용하면 더 직관적이고 더 빠른 플레이가 가능하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 게임들도 다수 존재한다. 가령, <하데스>와 같은 로그라이크의 경우에는 인벤토리 창이 따로 없고, 자신이 획득한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창만 제공한다. 그렇다면 게임사는 왜 인벤토리에 제한을 두어서 게이머들을 괴롭히는 것일까? 인벤토리 시스템은 게이머들에게 스트레스만 안겨주는 개념인가? 효율성을 고민하며 아이템을 먹게 만드는 비효율적 시스템은 누굴 위한 것인가? 이러한 지점에서 인벤토리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재미가 무엇인지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질문을 던져보자. 인벤토리의 한계는 리얼리티의 재현인가? 인벤토리 시스템은 디지털 게임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전통이다. 초창기 게임 역사에서 자주 이름을 <던전앤드레곤> 시리즈와 <로그>, <울티마> 시리즈는 텍스트로 플레이어가 획득한 아이템을 보여주며 해당 아이템을 활용하여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중에서도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가 확립한 초창기 CRPG의 인벤토리 시스템은 이후 게임 계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벤토리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획득한 아이템을 텍스트로 읽으며 상상해야 했기에 직관적이지 못했다. 이에 <던전 마스터>는 선형적인 텍스트 인벤토리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결국 오늘날까지도 활용되는 그리드 인벤토리나 퀵바 등의 형식을 도입할 수 있었다. 아이템을 넣을 수 있는 칸을 제공하고, 거기에 아이템의 아이콘을 넣거나 빼는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은 캐릭터와 세계의 분리감을 줄이고, 게임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의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이 만들어낸 토대 위에서 직관성과 상호작용성, 편의성 등을 고려하며 인벤토리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 텍스트로 구현되는 <로그>의 인벤토리 시스템과 <던전 마스터>의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 이러한 맥락에서 인벤토리 시스템의 발달 과정을 리얼리티의 재현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이 게임 세계와 플레이어의 간극을 좁혔던 것처럼, 기술 발달로 인해 더욱 현실적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었고 앞으로도 더욱 현실성 높은 게임 구현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물론, 이러한 예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게임임에도 총기의 기능 고장을 구현해서 군필자들에게 PTSD를 불러오는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의 경우에는 인벤토리 시스템도 최대한 현실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게임들은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인벤토리의 물리적, 현실적 한계들을 무시한다.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의 경우에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게임에 도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성이 게임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성을 기준으로 인벤토리 시스템의 발달 과정을 선형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재미이다. 획득하는 즐거움 그렇다면 게임의 즐거움이라는 차원에서 인벤토리 시스템을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게임에서 아이템을 획득할 때, 우리는 어떤 재미를 느끼는가? 내 캐릭터가 강해졌다는 느낌, 앞으로 해당 아이템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게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자유. 이러한 재미들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단순히 게임 내 시스템에서 대미지의 수치만 올라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가시적으로 내가 얻은 아이템의 가치를 보여줄 때, 이러한 재미는 배가된다. <던전 마스터>가 <로그>의 텍스트 아이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보고 그 가치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아이템을 다자인하고 기능을 가시화해왔다. 그러나 아이템 획득의 기쁨은 늘 일시적이다. 캐릭터 성장에 따른 상황이 함께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직선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아케이드 게임이나 로그 라이크의 경우에는 이런 재미가 반감될 가능성이 비교적 적다. <메탈슬러그> 시리즈를 할 때, 핸드건을 쓰다가 헤비머신건을 먹거나, 헤비머신건을 쓰다가 로켓 런처를 먹으면 성장의 기쁨이 느껴지고, 죽거나 탄환이 떨어지면 다시 아이템 획득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RPG의 경우에는 자신이 강해진 만큼 대적자도 강해지거나, 해당 아이템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아이템 획득이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이 무한히 확장될 수 없기에, 아이템 획득의 재미는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점이 고민이었을 것이다. 특히, 초창기 CRPG의 경우에는 게임에 넣을 수 있는 데이터 양에 제한이 있었다. 이에 현실성보다는 현실적 이유로 게임 세상을 넓게 구축할 수 없었고, ‘득템의 기쁨’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련했다. 가령,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는 아이템의 특성을 다양하게 만들고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의 한계를 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고, 효율을 좇게 만들었다. 최적화하는 즐거움 일상의 노동 과정에서 늘 효율을 좇아야 하는 오늘날, 게이머는 게임에서까지 효율을 추구해야 하는가? 효율을 좇는 것이 어떻게 재미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이때 흥미로운 참고점이 있다. 바로 레고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에 레고를 조립하며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완성품을 팔지 않고 조립 전 모습을 판매하는 레고라는 상품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상품이다. 물론, 레고의 조립이 꼭 완성품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과정에서 창의력이 발휘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10,000 피스 퍼즐은 어떠한가? 어떠한 창의력도 발동될 수 없게끔 모든 피스의 위치에 정답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퍼즐을 맞추며 재미를 느끼는 것일까? 극도로 비효율적인 상품이 팔리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게이머들이 인벤토리 시스템에서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자신의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재미, 즉 최적화하는 재미이다. 게이머들은 현재 많은 게임들이 활용하고 있는 인벤토리 시스템에서 아이템을 어떻게 정리하고 활용할지에 관한 재미를 발굴했다. 앞서 언급했던 아이템 선택의 사례, 버린 아이템보다 획득한 아이템의 가치가 높다는 확신에서 오는 즐거움 역시 이러한 재미의 일환이다. 이 과정은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최적화된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선사한다. 덱빌딩 게임은 이런 재미를 극대화한 장르이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시간보다 덱을 구성하고 최적화시키는 시간이 길지만, 플레이어들은 고민 끝에 자신이 의도한 결괏값이 나왔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자동사냥 게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플레이 자체의 시간은 거의 없지만, 게임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정리하고 활용하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즐거움이 된다. 자동사냥 게임이 무슨 게임이냐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직장에서 자동사냥을 돌려놓고 퇴근길에 체크하는 과정에서 소유하는 즐거움과 최적화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효율을 좇게 만드는 비효율적 게임 시스템은 게이머에게 불편함만을 주지 않는다. 게이머는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재미를 찾고, 유희하고 있다. 참고문헌 CRPG Book Project. URL: https://crpgbook.wordpress.com/ Bateman, C. & Zagal, J. P. (2017). Game Design Lineages: Minecraft’s Inventory. MuBmann, M., Truman, S., Mammen, S. (2021). Game-Ready Inventory Systems for Virtual Reality. Tags: 인벤토리, 롤플레잉, 아이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 Back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2 GG Vol. 25. 2. 10. 닌텐도 뮤지엄 개괄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 (위) 우지 오구라 공장과 (아래) 닌텐도 뮤지엄의 모습 비교 미야모토 시게루에 따르면 닌텐도 뮤지엄은 그동안 닌텐도가 모아놓은 것들을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사 안팎의 사람들과 닌텐도에 대하여 소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889년 화투 상점으로 시작한 닌텐도가 오늘날 비디오 게임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여, ‘닌텐도’가 무엇이고 어떠한 방향성을 추구해왔는지, 또 어떠한 모습을 향해 갈지를 보여주는 것이 곧 박물관 설립의 의미일 테다. 입장 방법 닌텐도 뮤지엄에 가는 길은 마냥 쉽지만은 않다. 박물관은 사전 예약제(추첨제)로 운영되며, 입장을 원하는 사람들은 방문 희망일 3개월 전에 공식 홈페이지( https://museum-tickets.nintendo.com/en)에서 추첨을 넣거나, 취소표를 구매해야 한다. 모든 절차에는 무료로 생성할 수 있는 닌텐도 계정이 필요하다. 입장에 필요한 사전 정보는 다음과 같다. 입장료: 성인 3,300엔, 고등학생/중학생 2,200엔, 초등학생 1,100엔, 미취학 아동 무료 운영 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휴관일: 매주 화요일, 연말연시 주소: 교토부 우지시 오구라초 카구라다 56번지 교통: ● ・긴테츠 교토선 "오구라역" 동쪽 출구에서 도보 5분 ● ・JR 나라선 "JR 오구라역" 북쪽 출구에서 도보 8분 ● ・JR 나라선 "우지역" 북쪽 출구에서 도보 22분 관람객들은 방문 희망일 기준 세 달 이전에 응모를 진행해야 한다. 만약 2025년 4월에 방문을 원한다면 2025년 1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응모를 넣어야 하며, 2025년 2월부터는 5월 분에 응모 가능하다. 각 날짜에는 10시부터 16시까지 총 13개 타임이 열리고, 관람 희망자들은 최대 3개까지 원하는 날짜/시간을 선택하여 신청할 수 있다. 응모에 대한 추첨 결과는 다음 달 1일 오후에 발표된다. 필자의 경우 18시 30분 경 닌텐도 뮤지엄 측으로부터 당첨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당선 및 당락 결과는 개별적으로 발송된 메일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으며, 이는 또한 닌텐도 뮤지엄 홈페이지에서도 가능하다. 당첨되었을 경우 홈페이지를 통하여 결제를 완료해야 티켓을 확정지을 수 있다. 결제를 완료하고 약간의 절차를 따르면 다음과 같은 QR코드를 얻을 수 있다. 해당 코드는 박물관 입장시 필요하며, 이후 관람객들은 표를 실물 카드로 교환하게 된다. 카드에는 8비트 그래픽 마리오 이미지 또는 본인의 Mii를 넣을 수 있다. 모두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진행 가능하다. * 닌텐도 뮤지엄 QR코드 및 실물 카드 박물관 구성 박물관은 크게 세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뮤지엄, 그 옆의 기념품점, 마지막으로 체험과 간단한 요깃 거리를 할 수 있는 카페 및 워크숍 구역이다. 지도상 나누어져 있지만, 뮤지엄과 기념품점 구역은 바로 옆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쉽게 오갈 수 있다. 뮤지엄과 기념품점 중앙에 표시되어 있는 것이 본관의 중앙 입구이다. * 닌텐도 뮤지엄 조감도 건물의 중앙 입구에 들어가면, 관람객들은 우측에서 안내 데스크를 마주할 수 있다. 여기에서 워크숍 예약을 진행할 수 있는데, 모두 한정된 인원을 시간 단위로 받는다. 신청할 수 있는 워크숍으로는 (1) 만들기 (2) 플레이 두 가지가 있다. 모두는 닌텐도 뮤지엄의 상징인 ‘화투’와 관련된 것으로, 화투 세트를 만들어 보거나 주어진 판에서 화투를 플레이해볼 수 있다. 만들기는 2,000엔(한화로 약 20,000원)으로 약 1시간이 소요되며, 플레이는 500엔(한화로 약 5,000원)으로 약 30분이 소요된다. 플레이의 경우 이미지 인식 및 프로젝션 기술이 사용되어 초보자 역시 쉽게 화투를 접할 수 있다. * 닌텐도 뮤지엄 내부 투시도 뮤지엄 동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2층의 전시 구역과 1층의 체험 구역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관람객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데, 그곳에 대부분의 전시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후 다른 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는 체험 구역이 나타난다. 전시 구성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시’라 부를 법한 것들은 대부분 2층의 전시 구역에서 볼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리면 전시 공간의 중앙부로 나오게 된다. *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 구역. 표시된 구역은 관람 시작 부분이다. 중앙부를 중심으로 10개의 곡면 전시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각 장은 한 가지 종류의 콘솔을 다루고 있다. 자세히 다루고 있는 콘솔로는 패밀리컴퓨터/NES, 슈퍼패미컴/SNES, 닌텐도64, 게임보이, 게임보이 어드밴스, 게임큐브, 닌텐도 Wii, 닌텐도 DS, 닌텐도 2DS/3DS, 닌텐도 스위치가 있으며, 그 외에도 별도의 공간을 통해 기기별/주제별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 게임앤워치를 위한 공간 역시 작게 만들어져 있다. * 닌텐도 뮤지엄 건축 모형. 간단하게나마 내부 공간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콘솔을 다루는 각 전시장은 동일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모두는 하드웨어를 배치해놓은 직사각형의 전시장을 거대한 곡면의 전시장이 감싸는 형태이다. 곡면의 전시장 위쪽에는 콘솔에 걸맞는 대형 컨트롤러가 있다. 내부에는 지역별 콘솔 판매 비율, 게임 플레이 영상, 소프트웨어 패키지, 주변기기가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바뀌는 패키지의 변화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전시장 전면부 전시장의 후면부에는 앞서 이야기되지 못한 각 콘솔의 특징과 의미가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광고 영상이나 특징적인 기기, 주변기기, 타이틀이 의미 단위로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매뉴얼, 인포그래픽, 패키지가 다양하게 등장하며, 그에 따라 동일한 규격의 전면부와는 달리 보다 자유로운 구성을 보인다. 후면부에는 세 가지의 동일한 표지가 등장한다. 첫째는 금색 원 테두리로 해당 콘솔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시리즈를 의미하고(ex: 젤다의 전설 - 패밀리컴퓨터 디스크시스템), 둘째는 은색 원 테두리로 해당 콘솔에서 나타난 의미 있는 변화/도전을 나타내며(ex: 게임큐브 - 게임보이 어드밴스와 연결), 마지막으로 금색 별 모양의 테두리는 해당 콘솔에서 이루어진 세계 최초의 시도를 뜻한다(ex: 닌텐도64 - 컨트롤 스틱). * 전시장 후면부 이 외에도 전시 구역에는 각종 프로토타입 등 다양한 볼거리가 남아 있다. 특히 닌텐도의 시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가 테마별로 잘 정리되어 있는데, 화투 회사로부터 닌텐도가 확장되어가는 과정, ‘3D’나 ‘운동’이 닌텐도에서 어떻게 다루어져왔는지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시리즈별로도 전시 되어있어 각 시리즈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 이를테면 ‘마리오’ 시리즈엔 어떤 게임들이나 캐릭터들이 있는지 - 살펴볼 수 있다. 2층 전시구역의 관람을 마치고 내려가면 체험구역에 들어갈 수 있다. 체험구역의 중앙부는 전시 공간이기도 한데, 여기서 관람객들은 ‘컨트롤러의 비교’, ‘라이트닝건’, ‘아이디어의 연속성’ 등의 테마 전시를 볼 수 있다. 각종 카드 게임 팩들 역시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관람객들은 총 8가지 종류의 놀이를 체험해볼 수 있다. 모든 관람객들에게는 체험에 쓸 수 있는 10개의 코인이 티켓을 통해 지급된다. 관람객들은 이 코인을 사용하여 체험에 참여할 수 있다. 각각의 체험 마다 드는 코인의 개수가 다르니 체험 동선을 잘 짜는 것이 필수적이다. 체험 전시 목록과 소모 코인은 아래의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체험형 전시 목록 필자의 경우 총 5개(Zapper & Scope SP, Ultra Hand SP, Love Tester SP, Nintendo Classics, Big Controller)를 체험했다. 기대 이상이었던 것은 러브 테스터(Love Tester SP)였다. 1969년 출시된 휴대용 콘솔을 크게 만들어놓은 이 체험형 전시는 러브 테스터가 무엇인지를 간단하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체험이 마무리되면 스크린쪽에서 사진이 자동으로 촬영된다. 이는 닌텐도 뮤지엄 개인 페이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 닌텐도 뮤지엄 개인 페이지. 체험한 활동의 결과와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1층의 체험구역까지 관람을 마치면 퇴장 구역을 통해 전시 동을 나가게 된다. 관람객들은 긴 통로를 따라 걷게 되는데, 벽면에는 그동안 출시된 닌텐도의 제품들이 역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즉, 닌텐도 스위치로부터 시작하여 화투로 끝이 난다. 통로 끝에는 닌텐도 뮤지엄에서 제일 오래된 화투 수납함(Nintendo Storage Shelf for Hanafuda Label)이 배치되어 있다. 전시 총평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는 관람자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일반적인 박물관들이 서문이나 설명을 통하여 의미를 전달한다면, 닌텐도 뮤지엄에서는 줄글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각 구역에는 간단한 키워드 정도만 쓰여져 있었으며, 전시품과 기호들 만이 배치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정해진 관람 동선이 없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의 전시 공간은 한두 개의 동선을 바탕으로 설계되지만,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 공간은 중앙에서 출발해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그 결과, 보다 자유로운 방식의 관람이 가능했는데, 관람 당시도 사람들이 관심사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행동하게 하는 전시 방식은 정말 닌텐도스럽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보는 제공하되 독해 방식을 특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롭게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닌텐도가 그동안 추구해온 방향성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전시 방식에서부터 닌텐도스러움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앞서 미야모토 시게루가 이야기한 목표 역시 상당수 달성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게임 아카이빙과 닌텐도 뮤지엄 닌텐도 뮤지엄은 ‘닌텐도’에 대한 박물관으로, 게임 자체에 대한 박물관이라 보긴 어렵다. 닌텐도 뮤지엄이 전시하는 것은 닌텐도의 족적이고,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닌텐도의 가치와 철학이다. 그러나 닌텐도라는 기업이 게임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게임에 대한 전시를 논하는 데에 있어 닌텐도 뮤지엄은 좋은 사례가 되어준다. 그렇다면 게임을 전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아카이빙’이 어떤 것인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게임 아카이빙이란 게임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 보존, 분류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이는 게임을 단순히 보관하는 것을 넘어, 게임이 가진 문화적, 역사적, 학문적 가치를 보존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자료를 관리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게임기나 게임팩을 모으는 것만이 게임 아카이빙이 아니며, 게임을 모으고 전시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방식이나 내용이 게임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중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적절한 아카이빙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카이빙의 핵심은 보존과 선별인데, 역사적 가치와 연구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원형에 가깝게 자료를 보존해야 하며, 결코 모든 자료를 모을 수 없기에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적절히 수집해야 한다. 비디오 게임의 경우 보존 작업이 특히 문제가 된다. 게임이나 게임기의 물리적인 외형 뿐만 아니라 장치의 작동 기능, 소프트웨어 역시 보존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형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온전히 유지해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특정 하드웨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수반되기도 한다. 더불어, 비디오 게임의 물질적 특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게임을 보존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물성이 없는 대상을 어떻게 수집하고 보존할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에 착안하여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기술이나 에뮬레이터(Emulator) 등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들 역시 게임의 원형이나 사용자 경험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수집을 넘어 전시를 진행하는 데 있어 사인은 더욱 복잡해진다. 게임은 ‘플레이’를 핵심으로 삼는 상호작용 매체이기 때문에, 단순히 누군가의 플레이 화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게임을 ‘전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행위성을 전시하는 것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관람객이 전시품을 만지고 체험하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상의 원본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대개 한 번에 한두 명만 수용 가능한 비디오 게임의 특성상 플레이의 전 과정에 관람객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닌텐도 뮤지엄에서 제시한 해답은 게임의 플레이를 나머지 것들과 분리시켜 전시하는 것이었다. 닌텐도 뮤지엄의 전시는 크게 전시와 체험이라는 두 가지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먼저 2층에는 게임기, 게임팩, 광고물, 매뉴얼 등이 의미 단위로 전시되어 있었고, 1층에는 게임과 게임기의 기능 및 특징을 강조한 체험 거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플레이에 관한 부분은 원본을 그대로 보이기보다는 게임과 게임기의 기능 및 특징을 강조한 형태의 체험장을 새롭게 구성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관람객들이 게임 또는 게임기기가 어떠한 행위성을 지니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전시 방식은 원본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하면서도 관람객들에게 플레이 경험을 전달하는 데 유용하고, 또 원본을 잘 보존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다만 닌텐도 뮤지엄의 방식에 역시 한계는 존재한다. 닌텐도 뮤지엄의 체험관은 원본의 플레이 경험을 그대로 제공해주기 어려우며, 더욱이 플레이 타임이 긴 경우나 MMO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개입하는 플레이 경험은 충분히 전달하기 힘들다. 따라서, 게임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 방식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게임 아카이빙과 게임을 다루는 전시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자료 강승진 (2024, 9, 25). [인터뷰] 닌텐도의 살아있는 역사, '미야모토 시게루'를 만나다. <인벤>. URL: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99543 (2025, 1, 3 열람) 닌텐도 뮤지엄 공식 홈페이지 ( https://museum.nintendo.com/en/index.html ) Nintendo Museum Direct ( https://youtu.be/JApUMBscKOc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본토템>과 AI 애셋 시대로서의 2023년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는 대략 60년 정도 되는 디지털 게임의 짧은 역사 내에서도 꽤 큰 지분을 차지할 만큼 ‘근본 있는’ 장르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참신한 게임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올해 출시한 본토템 역시 기존 장르의 문법을 더 유저 친화적으로 유려하게 다듬을지언정 이 ‘오래된’ 장르를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시키는 식의 혁신추구형(?) 게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 Back <본토템>과 AI 애셋 시대로서의 2023년 15 GG Vol. 23. 12. 10. 0 2023년은 전 세계의 게이머들에게 충만했던 해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이제 게임 회사들은 예전처럼 끈질긴 집념으로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단기 이익을 위해 계속해서 더 놀라운 착취적인 비지니스 모델을 고안할 뿐이라는 근래의 냉소주의를 정면으로 반박이라도 하듯이, 준수한 게임들이 줄을 이어 출시했다. 특히 고전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를 즐겁게 플레이했으며 라리안 스튜디오가 만든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 시리즈의 열광적인 팬이기도 한 사람으로서, <발더스 게이트 3>의 대대적인 성공은 당연한 결과처럼 느껴지면서도 (crpg장르의 인지도를 고려할 때) 여전히 잘 믿기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서 다룰 게임은 <발더스 게이트 3>나 고티GOTY 후보에 오를 만한 여타의 대작들이 아니다. 나는 두 명의 형제가 주축이 되어서 개발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 <스테이시스: 본 토템>(이하 본토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명작들이 숨 가쁘게 쏟아지는 이 시점에 굳이 이름도 생소한 인디 게임을 조명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홍대병은 차치하고라도) 이 게임은 뒤틀린 2023년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과 무서울 정도로 미세하게 공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토템은 연말 행사들에서 벌어지는 소위 ‘갓겜’ 경쟁과는 별개로 GOTY라는 타이틀에 가장 걸맞은 작품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는 대략 60년 정도 되는 디지털 게임의 짧은 역사 내에서도 꽤 큰 지분을 차지할 만큼 ‘근본 있는’ 장르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참신한 게임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올해 출시한 본토템 역시 기존 장르의 문법을 더 유저 친화적으로 유려하게 다듬을지언정 이 ‘오래된’ 장르를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시키는 식의 혁신추구형(?) 게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고전 포인트 앤 클릭 게임들의 악명 높았던 픽셀 헌팅 1) 까지는 아니더라도 본토템은 여전히 많은 횟수의 헛된 클릭질을 요구한다. 퍼즐은 대부분 논리적이지만 종종 뜻밖의 조합을 통해서 해결되며, 유비소프트의 게임들처럼 친절하게 플레이어들의 손을 잡아 주지도 않는다. 따라서 진행이 막혔다는 느낌이 들면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아이템들을 하나씩 클릭해 보거나 나의 캐릭터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다시 한번 클릭해 보는 것이 이 바닥의 일상이다. 그럼 다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도대체 이토록 고루한 장르의 최신작이 올해의 게임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1 본토템은 세 명의 캐릭터가 같은 시간대에서 각기 다른 공간을 탐험하는 (가끔 서로 만나기도 하는) 일종의 병렬적인 진행 방식을 채택한다. 플레이어는 언제든 세 캐릭터 사이를 옮겨 다닐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구조 자체보다도 캐릭터들이 아이템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장르의 특성상 아이템을 분해하거나 재조립하는 과정은 퍼즐을 풀기 위한 핵심적인 고리이다. 그리고 이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아이템이 최대한 간단하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 만약 논다이어제틱(nondiegetic) UI 2) 에 크게 의존하는 게임이라면 특정한 캐릭터의 인벤토리 창에서 다른 캐릭터의 인벤토리 창으로 아이템을 드래그해서 옮기는 식으로 은근슬쩍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본토템에서 아이템을 전달하는 모습은 언뜻 봐서는 그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템을 마우스 커서로 집어다가 보내고 싶은 캐릭터의 프로필 위에 떨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이러한 마법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가 그 세계 내에 존재하는 기술인 QSD(Quantum Storage Device) 덕분이라는 지점을 (예를 들면, 캐릭터들의 대화를 통해서) 명확히 짚는다. 즉, 내가 아무런 딜레이 없이 어느 아이템을 완전히 다른 공간에 있는 캐릭터에게 보낼 수 있는 근거는 그저 게임의 인터페이스적 편의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 세계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방법이라는 월드 빌딩의 맥락에 있다. 이렇듯 본토템의 다이어제틱 UI는 (매우 논다이제틱하게 느껴지는) 게임 아이템의 공유 기능을 세계 내에서 내러티브적으로 정당화한다. 이와 같은 전면화의 효과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확장하는 세계다. 특히 아이템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능력이 서로 다른 캐릭터들에게 각각 할당되며, 어떠한 아이템이 퍼즐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양자 전송 물류(?)의 기반 위에서야 비로소 각 캐릭터의 플롯은 서로 맞물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 플레이의 ‘최종 심급’에는 공급망이 자리잡는다. 놀랍지 않게도 이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보다 몇백 년은 과거인 2023년의 지구를 돌이켜 봐도 공급망은 여전히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다. 오히려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2010년대에는 공급망이 중요하지 않았나? 혹은 2024년에는 갑자기 공급망 이슈가 사라지게 될까? 말하자면 어째서 2023년인가? 공급망과 같은 방대한 개념이 2023년이라는 특정한 연도와 겹치는 교집합은 예측 가능성의 붕괴로 인한 불확실성의 폭발과 그로 인한 공급망의 대전환기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세계화 시대의 물류는 예측 가능한 흐름이라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최적화다. 공급망이 국경을 넘어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엮인 상황에서 특정한 지점의 병목 현상은 예상치 못하게 큰 파급 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턴시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양자 전송 물류의 위엄 따라서 팬데믹이나 국가 간의 전쟁과 같은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이벤트들은 이러한 공급망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끊어낸다. 모두가 알다시피 2023년은 바로 그와 같은 거대한 사건들이 일어난 직후의 세계다. 팬데믹은 올해 초에야 비로소 종식됐으며,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거의 2년 가까이 늘어지고 있다.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듯이 가자 지구에서의 끔찍한 전쟁이 더해졌다. 많은 전문가들은 세계화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리쇼어링reshoring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코노미스트의 다음과 같은 데이터 3) 가 환기하는 것처럼 탈세계화라는 강력한 지정학적 유인마저 이미 세계화의 논리에 따라 배치된 공급망을 쉽게 재편하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관건은 앞으로 그것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와는 독립적으로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공급망 자체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모든 (반)세계화로의 ‘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에야 이 특정한 자의식은 다시 수면 아래로 잠길 것이다. 본토템의 게임 플레이가 촉발하는 수행적인 반복이 공급망의 내면화로 다시 이어지는 흐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확히 2023년과 오버랩된다. 플레이어는 평소에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QSD’ 공급망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서 게임을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더 이상 퍼즐이 쉬이 풀리지 않을 때, 비로소 아이템들을 ‘무의미하게’ 옮겨 보는 절박한 시도를 통해서 역으로 공급망 자체를 인식하게 된다. 즉, 사후적으로 게임의 시스템적인 근간을 재인식한다. 어쩌면 2023년은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절박한 시스템 재인식의 계기를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언제든 다시 도래할지 모를 긴 망각의 시간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2 고전 crpg와 어드벤쳐 게임에 대한 디테일한 리뷰로 명성이 높은 유튜브 채널 MandaloreGaming은 지난 9월 15일 본토템에 관한 리뷰 영상 4) 을 업로드한다. 게임이 출시된 지 석 달이 훌쩍 넘은 시점에 등장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리뷰에 별달리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다. 다른 여러 게임 웹진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어드벤쳐 게임 매니아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이 게임을 매우 높이 평가하며 “난 이 게임을 사랑한다'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필자는 다른 리뷰어의 권위를 빌려서까지 본토템이 훌륭하다는 것을 강변하고 싶나’라는 생각에 긴가민가할 것이다. 그런데 문장은 계속된다. 그는 바로 이어서 “which is why the cheap AI stuff pains me so.”(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사용된 싸구려 AI 에셋들이 날 고통스럽게 한다)라고 말한다. 즉, 이 게임에는 미드저니와 같은 생성모델이 만들어 낸 에셋이 다수 사용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게임 출시 후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그가 유일했다. 그리고 리뷰 영상이 올라간 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본토템의 개발자는 X(전 트위터)를 통해서 직접 Mandalore에게 게임 내의 AI 에셋들이 전부 ‘맞춤 제작한’ 에셋들로 교체되었음을 알렸다. 5) 이 일련의 사태에는 의문스러운 지점들이 많다. 이를테면 많은 수의 전문 리뷰어들과 하드코어 어드벤쳐 게임 매니아들이 같은 게임을 플레이했음에도, 어째서 석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저품질의 AI 에셋이 쓰였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또한 개발사는 (마치 이러한 반응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떻게 하루도 지나기 전에 그 모든 에셋들을 교체할 수 있었을까? 결국 그렇게 교체할 예정이었으면 굳이 그러한 ‘날림’ AI 에셋을 써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생성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디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던 레딧의 글 6) 을 통해서 우리는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이 글이 특히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글쓴이의 의견보다도 그가 공개한 밸브 사의 답변을 통해 스팀이라는 글로벌 플랫폼이 AI 에셋에 취하는 입장을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7) 밸브의 스탠스는 신중하고 유보적이다. 앞선 레딧 글에 대한 파장으로 밸브와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유로게이머의 기사 8) 에 따르면, 밸브는 생성모델이 한창 발전 중인 테크놀로지며 그 과정에서 혁신적인 무언가가 나오리라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성 모델을 훈련하기 위해 데이터로 활용된 과거 작품들의 저작권과 소유권 문제 9) , 그리고 생성모델이 만들어 낸 결과물의 저작권 문제 10) 로 인해서 AI 에셋이 포함된 게임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생성모델이 ‘상상한’ 새로운 넌센스 언어 이러한 맥락을 바탕으로 우리는 본토템의 출시에 관해 몇 가지를 유추해 낼 수 있다. 하나는 법적인 문제로 민감해진 밸브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본토템은 출시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11) 이는 그들이 사용한 생성모델의 에셋들이 주로 게임 속에서 줍게 되는 PDA 기기 스크린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AI 에셋이 게임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게임 플레이 과정 뒤로 숨겨져 있는 것이다. 심리적인 작용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개별적인 이미지만을 본다면 그 어설픔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지만 정성스럽게 구현된 세계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로 마주한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가능성이 클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에셋을 잡아내야만 하는 동기가 확실했던 플랫폼의 감시망을 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어째서 출시 이후에도 한동안 아무도 이를 알아채지 못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수 제작한 에셋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 역시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화제가 되었던 레딧의 글과 그에 기반한 유로게이머, 테크크런치의 기사로 인해 밸브의 입장이 확고하게 드러나게 된 것은 본토템 출시 이후 한 달 뒤의 일이다. 이미 출시한 게임이 다시 내려가는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에셋 교체 작업은 곧바로 진행되어야 했다. 혹은 스팀에 거절당한 레딧 글쓴이의 경우처럼 개발 일정에 쫓겨서 일단 생성모델로 대충 만든 에셋을 끼워서 먼저 출시를 한 다음에 교체하자는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벌어질 일이 아닌가? 특정한 게임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논할 필요가 있을까? 내 대답은 ‘그럴 필요가 있다’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와 흡사한 양태의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밸브의 확고한 입장과 조만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생성모델 관련 저작권과 소유권 문제를 고려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일체의 분쟁과 잡음을 피하고자 스팀의 가이드라인대로 AI 에셋 없이 게임을 개발하는 가능성이다. 이 방향은 이미 몇십 년을 걸어온 익숙한 길이라 많은 개발사들이 따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신 버전의 생성 모델 12) 을 사용하는 동시에 마감까지 완벽하게 함으로써 AI 에셋을 포함했다는 사실 자체를 최대한 숨길 가능성이다. 생성모델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 가능성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더 힘들 것이다. 문제는 게임을 보고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이 두 시나리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은 (만약 그러한 차이가 실제로 있다면) 그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 낼 정도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가청 주파수 내의 소리만 녹음한 음원과 가청 주파수를 넘어선 소리까지도 전부 포함한 음원의 차이가 인간에게는 무의미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결국 어느 시나리오로 가든 본토템의 출시와 같은 일들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그러므로 본토템의 출시와 관련한 이야기는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투입되기 시작한 생성모델의 에셋들이 게임 출시와 함께 전환기 특유의 그 어설픈 마감을 노출하는 2023년 고유의 사건으로 기억될 확률이 높다. 마치 인류세Anthropocene의 시작을 플루토늄 원소의 전방위적 확산이라는 특정한 물질적인 조건으로 정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AI 게임 개발 시대의 시작은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아이러니한 해프닝인 것이다. 그리고 이미 1년 전보다 극적으로 향상된 생성모델이 ‘생성’하는 에셋들을 품에 안은 앞으로의 게임들은 퍼블리셔인 플랫폼들의 감시망과 해결되지 않는 법적인 애매함 속에서 더 감쪽같은 모습을 뽐내며 등장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간의 눈으로 AI 에셋을 구별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을 지금 막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1) https://tvtropes.org/pmwiki/pmwiki.php/Main/PixelHunt 2) 다이어제틱 UI와 논다이어제틱 UI의 결정적인 차이는 특정한 게임의 세계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느냐의 여부다. 예를 들어, 미니맵은 대표적인 논다이어제틱 UI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를 제외하고는 게임 세계의 그 누구도 미니맵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3) The Economist Staff, “Don’t be fooled by America’s “new” supply chains” The Economist 2023.11.14. https://www.economist.com/graphic-detail/2023/11/14/dont-be-fooled-by-americas-new-supply-chains 4) MandaloreGaming, “STASIS: BONE TOTEM Review” YouTube 2023.09.15. https://www.youtube.com/watch?v=l1dyox71Y7o&t=451s 5) Mandalore, X(formerly Twitter) 2023.09.15. https://twitter.com/Lord_Mandalore/status/1702709191498932242 6) potterharry97, “Valve is not willing to publish games with AI generated content anymore” Reddit 2023.06.06. https://www.reddit.com/r/aigamedev/comments/142j3yt/valve_is_not_willing_to_publish_games_with_ai/ 7) 다른 모든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스팀 역시 앱(게임) 출시 이전에 스크리닝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이 언제나 명백하고 투명하지는 않으며, 규정 및 지침에도 생성모델에 관한 내용은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다만 생성모델이 ‘생성’한 에셋의 경우, 게시할 수 없는 콘텐츠의 5번 항목인 “소유권이 없거나 적절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콘텐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https://partner.steamgames.com/doc/gettingstarted/onboarding?l=koreana 8) Victoria Kennedy, “Valve says AI-generated content policy goal is "not to discourage the use of it on Steam"” Eurogamer 2023.07.03. https://www.eurogamer.net/valve-says-ai-generated-content-policy-goal-is-not-to-discourage-the-use-of-it-on-steam 9) Kyle Wiggers, “The copyright issues around generative AI aren’t going away anytime soon” TechCrunch 2023.09.22. https://techcrunch.com/2023/09/21/the-copyright-issues-around-generative-ai-arent-going-away-anytime-soon/ 10) Blake Brittai, “AI-generated art cannot receive copyrights, US court says” Reuters 2023.08.22. https://www.reuters.com/legal/ai-generated-art-cannot-receive-copyrights-us-court-says-2023-08-21/ 11) 각주 7에 등장하는 레딧 글쓴이는 6월 6일에 올린 포스트에서 한 달 전에 자신이 제출한 게임이 스팀의 스크리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썼다. 바꿔 말하면 적어도 5월 초부터 밸브는 생성모델이 연루된 에셋을 검열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본토템은 5월 31일에 출시했다. 12) 이미 최신 버전의 생성모델들은 기존의 문제점으로 자주 언급되었던 사람의 손가락 같은 부분을 말끔히 재현해 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공모전수상작]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2022년 만우절 주간, 레딧의 거대한 땅따먹기 픽셀아트 프로젝트인 r/place에서 <레인 월드 (Rain World, 2017)>와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 2019)>의 서브 레딧끼리 자그마한 동맹을 맺었다. ‘아우터 와일즈 원정대’의 로고를 중앙에 두고 양 게임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슬러그캣과 화로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예쁘게 공유된 캔버스를 보고 있자면, 임시적이거나 느슨하게 맺어졌을 몇몇 r/place 동맹들에 비해 두 게임 간의 연합이 제법 어울리게 느껴졌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만큼? < Back [공모전수상작]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20 GG Vol. 24. 10. 10. “난 신의 마음속에 있어. 하지만 여기가 거기란 걸 어떻게 알지?” - 듀나, 「두 번째 유모 [1] 」 들어가며 2022년 만우절 주간, 레딧의 거대한 땅따먹기 픽셀아트 프로젝트인 r/place에서 <레인 월드 (Rain World, 2017)>와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 2019)>의 서브 레딧끼리 자그마한 동맹을 맺었다. ‘아우터 와일즈 원정대’의 로고를 중앙에 두고 양 게임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슬러그캣과 화로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예쁘게 공유된 캔버스를 보고 있자면, 임시적이거나 느슨하게 맺어졌을 몇몇 r/place 동맹들에 비해 두 게임 간의 연합이 제법 어울리게 느껴졌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만큼?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범박하게 2D 플랫포머와 3D 어드벤처라 둘 수 있을 만한 형식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끼리는 엮을만한 공통점이 은근히 많았다. 이를 대표적으로는 양쪽에서 플레이어들이 주되게 맞닥뜨리고 불평하는 곤란들로 가장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겠다. 간략한 튜토리얼을 제외하면 곧장 광막한 세계에 내던져 놓고 알아서들 돌아다니라는 불친절함. 초반에 명시되지 않아 잔뜩 헤매게 하고 시행착오 이후에서야 간신히 손에 잡히는 최종목표. 콧물 방울처럼 미끄러지는 슬러그캣과 술에 취한 듯 갈팡질팡하는 화로인 우주선 같이 초심자의 손에 영 익지 않는 조작감. 호전적인 포식자부터 불안정한 땅바닥까지 무참하게 들이닥치는 장애물. 그렇게 종종 부당하게 정도로 엄습하는 죽음 및 자연이라는 형태로 가차 없이 밀어붙여지는 시간제한. 읽기에 친숙하지 않다면 알아먹기 힘들거나 때론 철학적 뜬구름 잡는 듯 느껴지는 ‘고대인’ 관련 로어. 그리고 기타 등등. 달리 말하자면, 이 둘은 여러 겹에서 플레이어에게 불능한 감각을 가져다주는 게임들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면에서 두 작품에 무언가 플레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모의·제어·정보라는 세 주제어로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어떻게 불능감을 활용하는지를 짚어보며, 무심한 세계의 작동법을 익히고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양 게임만의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2] 모의 가끔가다 보면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통상적인 비디오 ‘게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생태계와 자그마한 태양계를 작동시키는 ‘시뮬레이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두 게임은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을 일대일로 복사한다기보다는 이를 바탕으로 상상된 허구적인 세계를 꽤나 그럴싸하게 말이 되는 법칙들로 모의하는 편이다. 이들 세계는 공교롭거나 당연하게도 SF적인 아이디어를 중추 삼아 만들어졌는데, 〈레인 월드〉는 ‘반복자’라고 불리는 거대한 슈퍼컴퓨터 구조물들이 한때 고대인들이 거주했던 지상으로 냉각 용수를 십몇 분마다 한 번씩 폭우처럼 쏟아붓는 세계에서 발생한 생태계를, 〈아우터 와일즈〉는 모종의 이유로 22분 만에 폭발하는 항성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행성이 공전하는 직경 20km짜리의 태양계를 모의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세계가 크고 작은 단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뀌는 중이며, 그 운동과 변화 모두가 엄밀히 지정된 경로를 따르지 않는 대신 특정 절차에 맞춰 세세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 내 지역의 구조나 행성의 궤도라던가 중요한 NPC나 아이템의 위치 등은 전반적으로 고정되어 있으나, 특정 지역에서 도마뱀이나 지네 같은 생명체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다거나 특정 행성에서 바다 어디에 떠 있는 섬들이 언제 토네이도에 휘말리는지 등은 분명히 정해져 있지 않기에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두 게임이 유난하게 ‘현실적’이거나 ‘진짜 같게’ 느껴진다면, 이 허구적인 세계가 현실을 (임의적인 오류의 가능성까지) 모의해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일 테다. 이때 두 게임이 각 세계에서 주되게 모의하는 것이란 다름 아니라 현실과 제법 가깝게 작동하는 일련의 법칙들이다. 〈아우터 와일즈〉에서 이는 주로 물리법칙으로, 화로인(의 우주선)은 작중의 무자비한 중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라 비행 중에 조금만 조종이 엇나가더라도 가까운 중력장에 휩쓸려 치명적인 충돌 사고를 일으키기가 일쑤다. 한편 〈레인 월드〉의 경우에는 (역시 무자비한 중력이 있다만) 수많은 생명체가 슬러그캣뿐만 아니라 서로끼리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가 유기적으로 구현되어 있어, 플레이어는 이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 포식-피식 관계의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물론, 두 게임은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Microsoft Flight Simulator, 1982~)〉가 추구해 온 것만큼) 현실상의 법칙을 최대한 정밀하게 재현하기보다는 작중 세계에서 그럴싸하게 말이 될 정도까지만 이를 구현한다. 엄밀하지는 않아도 ‘핍진’할 모의를 통해, 플레이어는 생태계의 구조와 태양계의 법칙을 모의하는 세계를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금만 숙달하면 그 구조와 법칙 또한 얼마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비디오 게임이 “실재하거나 상상된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과정을 모의하는 복잡한 규칙” [3] 에 부합한다는 보고스트의 논의를 염두에 두면) 두 게임에서 물리법칙과 생태구조와 같은 “현실의 부분을 게임이 재현할 때, 의미 있는 특정 부분을 단지 포착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구조를 ‘모의’해서 해당 체계의 작동 방식, 즉 그것의 원리를 게임이 보여주는” [4] 셈이다. 여기서, 나는 두 게임이 생태계와 태양계의 법칙을 참조해 전반적으로는 정교하게 작동하는 세계를 보이는 와중에도 언제나 임의적인 돌발상황이 발생할 여지를 열어두기로 선택했다는 점에 집중하고 싶다. 그 덕에 플레이어는 두 게임의 세계와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모의된 세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이곳들이 굳이 플레이어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제작자들 또한 이를 어느 정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듯, 〈레인 월드〉의 사망 화면은 종종 슬러크캣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버린 이후에도 곧장 메인 메뉴로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평소처럼 행동하는 생명체들을 지켜볼 수 있게 해주며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태양계로부터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행성들이 항성을 맴돌다가 초신성 폭발에 덮쳐지는 모습을 (화로인 또한 거기에 휘말려 죽기 전까지는)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가 있다. 종종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동에만 반응하는 여러 비디오 게임 세계와 달리, 이러한 세계는 그런 플레이어를 상관하지 않거나 플레이어에게 상대적으로 무심한 채 모의된 법칙으로 운동하고 변화하는 셈이다. 이때, 플레이어에 대한 세계의 상대적인 무관심함은 종종 물리법칙과 생태구조에서 (우주선이 모래 기둥에 휩쓸린다거나 생물들의 난투극 한복판에 진입한다거나 등) 우연히 발생하는 사고와 허망한 죽음으로 이어지며 플레이어의 불능감을 키워주기도 한다. 즉 이들 세계는 플레이어가 굳이 방문해 상호작용하지 않더라도 늘 자기들만의 모의된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며, 낙오된 슬러그캣이든 출항하는 화로인이든 간에 오로지 플레이어의 행위에 맞춰 움직이기 위해서만 제작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플레이어 없이도 복잡한 자동장치처럼 알아서들 모의되는, 어찌 보자면 “세계로부터 인간을 뺀 (...) 우리-없는-세계” [5] 에 가깝게 작동하는 두 게임의 세계는 플레이어를 행위자이기보다는 차라리 관측자의 위치로 빼둔다. 그렇기에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세계를 방문하는 플레이어들이 종종 크나큰 불능감을 느끼는 이유는 (흔히 코스믹 호러의 이해·사유 불가함을 설명할 때 강조되는) 세계의 광대한 규모보다도, 특유의 모의 방식에서 자연스레 감지할 수 있을 세계의 무관심함 때문일 테다. 이곳들은 잘해봤자 미니어처 크기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모의된 법칙과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무심한 세계에서 종종 공포와 경이를, 혹은 양쪽 감정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압도되는 감각을 느낀다. 이렇게 무심하게 모의된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불능감을 가치 있는 플레이의 일부로 활용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제어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앞서 언급했듯 게임 초반부터 플레이어를 아무 목적 없이 야생에 거의 내버려두다시피 한다는 점이다.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화로인의 행성에서 비행 연습이라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만, 〈레인 월드〉에서는 슬러그캣의 기초적인 조작법마저도 아주 간략히 알려줄 뿐이다). 초반에 분명한 최종목표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게임은 세계 한복판에 던져진 플레이어에게 제어에 대한 불능감 또한 강력하게 만들어 낸다. 이때 제어의 불능감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플레이어가 위험천만한 세계를 뚫고 가게 한다는 점에서 특히 직격으로 작용할 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장 큰 재미는 플레이어가 슬러그캣 혹은 화로인으로서 자신의 조작법을 익힐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이 생태계와 태양계의 작동법 또한 알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조작법에 숙달해 가는 플레이어의 능력 및 심리가 불능(감)에서 차차 전능(감)으로 이동하며, 무심하게 모의된 이 세계에서 차차 숙련된 제어력을 얻어가는 분투의 경험이 두 게임을 진행하는 핵심적인 동기가 되는 셈이다. 전능한 제어의 재미란 우선 플레이어가 슬러크캣과 화로인(의 우주선)을 더욱 능숙하게 다루며 살아남는 데에서 일어나는데, 이러한 특성은 당연하게도 다른 게임에서 얼마든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는 플레이어가 조작과 생존에 숙련되어 가는 과정을 레벨 업이나 스킬 해금과 같이 전면적으로 수량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띤다. 슬러그캣이 공중제비를 날렵하게 돌고 화로인이 우주선을 안전하고 부드럽게 착륙할 수 있더라도, 여전히 다양한 생물에게 한 방에 잡아먹히고 큰 충격을 받으면 한 방에 골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게임적인 의미에서 ‘업그레이드’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레인 월드〉에서 식량을 든든히 채우고 피난처에서 휴식하면 다른 지역으로 입장하는 통행권으로 사용되는 ‘카르마’가 하나씩 올라가는 정도일까). 도리어, 주된 업그레이드는 캐릭터가 아닌 플레이어의 조작 기술과 쉽사리 수량화되지 않을 자기효능에서 일어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자격증 취득 등이 요구되지 않는) 다양한 잔기술을 익혀나갈 때 종종 그리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모의적인 성질은 생태계의 구조와 태양계의 법칙을 모의하는 것을 바탕삼아 제어의 영역에서도 그러한 세계에서의 특정한 조작법 및 생존법을 모의하면서도 배가된다. 세계에서 움직이는 방법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자연스레 이 세계 자체에 익숙해지는 과정으로 이어져, 처음에는 위협적이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여러 생물과 행성은 최소한 친숙하고 때로는 감탄해 볼 만한 무언가가 되어가며 플레이어의 불능감을 차차 긍정적인 전능감으로 바꿔나간다. 모의된 세계 및 제어에 대한 플레이어의 불능(감)이 어떻게 조절되는지의 문제는 물론 게임의 행위성과 분투에 대한 응우옌의 논의를 주요하게 참조했다. 이를테면 현실상의 물리법칙과 생태구조를 그럴싸하게 말이 되도록 조형하면서도 임의적인 돌발상황 또한 종종 발생하도록 모의된 세계란 “능력과 장애물의 조합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기 행위성의 특정 부분에 (…) 집중하도록 압력을 가한” [6] 설계이며, 무심한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무능력함을 유려하고 정확하게 묘사한 그림이자, 실천적 무능력으로 된 공포물” [7] 로서의 이들 게임에서 발생하는 ‘불화’를 제어의 숙달을 통해 차차 ‘합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 곧 플레이어가 불능(감)에서 전능(감)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우리가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에서 슬러그캣과 화로인(의 우주선)을 조종하며 겪는 경험이란, 모의된 세계의 외관을 띤 채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유동적이고 유기적으로 제한하는 규칙들로 이뤄진 정교한 세계에서 최대한의 제어력을 얻어나가려는 분투다. 그 무엇에도 익숙하지 않던 초반에는 그저 죽지만 않고 하나의 루프를 살아남거나 이동에라도 능숙해지는 게 최우선의 임시 목표였지만, 플레이어가 제어에 숙달하고 자율성이나 행위성을 얻어가며 전능해지는 과정에서 목표는 이 놀라운 세계 자체에 대한 탐구로 비약한다. 불능(감)에서 출발해 전능(감)에 도착하는 두 게임의 분투적인 특성은 이러한 기계장치의 우주를 플레이어가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지를 증명해 나가는 하나의 시험대가 된다. 이야기를 조금 미루고 있었지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크고 작은 시험을 거쳐 제어와 더불어 세계를 익혀나가기 시작한 플레이어에게 보상하는 특별한 방식이 빛나는 것도 이 덕일 테다. 정보 그러니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에 ‘서사’가 있다면 이는 어떠한 이야기일까? 여담을 먼저 말하자면, 두 게임의 여러 기묘한 점 중 하나는 결말을 보는 최적화된 방법이 플레이어가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최초의 상태에서도 얼마든 실행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고 조작법을 최소한으로 익히고 공략을 참조한다면) 당신은 두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특정 경로를 따라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십몇 분 만에 또 〈레인 월드〉에서는 몇십 분 만에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세계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고 불능할 뿐인 초반의 플레이어는 최적화된 경로는커녕 그를 따라 닿는 최종목표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 대신에, 두 게임에서는 앞서 설명했듯 불능했던 플레이어가 차차 전능한 행위성을 획득하는 분투의 여정 그 자체가 나름의 이야기가 된다. 더불어, 플레이어가 얻어가는 제어력에 이 세계에 대한 각종 정보를 보상하는 게임의 메커니즘은 세계의 조작법 및 작동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깔린 ‘서사’까지도 서서히 밝혀나가며 이 세계에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세계에 대한 정보는 사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친절한 〈아우터 와일즈〉에는 어느 정도 주어진 채 시작한다. 플레이어에게는 조종하는 화로인은 아주 오래전에 이 태양계에 거주했다가 멸종한 고대 종족인 노마이의 언어를 옮기는 새 번역기를 가지고 각종 행성의 유적지를 탐사하는 것이 일단의 목표로 제시되며, 여기에 태양이 왜 22분 만에 폭발하며 자신이 어쩌다가 이 타임 루프에 빠졌는지를 밝혀야 하는지도 우선의 목표로 추가된다. 〈아우터 와일즈〉의 행성 곳곳에 유기적으로 깔린 퍼즐들은 해결될 때마다 플레이어에게 노마이 언어로 쓰인 자그마한 정보 덩어리들을 보상한다. 진입할 수 없던 곳에 접근하는 방법부터 이 자그마한 태양계의 숨겨진 여러 비밀까지 다양하게 밝혀지는 정보들은 훌륭하게 도식화된 항해 일지에서 긴밀한 연결망을 만들어 나가며, 이는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임시·단기 목표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면서도 종래에는 하나의 거대한 지도처럼 합쳐지며 최종목표에 대한 청사진이 된다. 이러한 정보들의 체계야말로 〈아우터 와일즈〉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구성하는 요소로, 분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은 이 태양계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과도 중첩된다. 달리 말하자면, 〈아우터 와일즈〉에는 선형적인 내러티브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몇 개의 ‘서사’들의 중첩되어 있다. 낯선 세계를 이해해 나가려는 플레이어의 분투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인 만큼, 그저 배경이나 환경인 줄로만 알았던 세계가 얼기설기 얽힌 정보의 총합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 또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곧 〈아우터 와일즈〉에서 플레이어가 겪는 업그레이드란 특정한 수치들이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 쌓여가는 형태로 이뤄지는 셈이다. 세계에 대한 제어권을 얻어가면서 정보를 얻고, 해당 정보를 짜맞춰 다음 목표를 설정하며 최종장에 다가가는 일련의 과정이 〈아우터 와일즈〉를 진행하는 핵심적인 설계라면, 〈레인 월드〉에서 이는 훨씬 간접적이고 느슨하게 제시되는 편이다. 이 세계 곳곳에 흩어진 진주알에는 반복자와 고대인의 기록과 역사가 적혀 있으며, 반복자들이 이 정보에 대해 표하는 반응까지 더하면 작중의 생태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기 전까지 이 세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상이 이뤄진다. 무엇보다도 〈레인 월드〉를 정석적으로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실제로 두 반복자에 방문해 그들의 말을 듣는 단계를 거쳐야 하기도 말이다. 이러한 정보는 〈아우터 와일즈〉에 비해 게임의 최종목표를 달성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에 아주 필수적이지는 않은 편이지만, 어느새 작중의 온갖 생명체에 빠삭해지고 전능하게 생존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로어’의 형태로 다가온다. 낙오된 슬러그캣이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를 구석구석 누비며 세계의 과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거대한 구조물인 줄로만 알았던 반복자들 또한 이 생태계와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도 그들의 ‘서사’ 또한 플레이어에게 넌지시 전달된다. 이렇게 〈레인 월드〉의 세계를 차차 알아가는 과정에는 단순한 조작 및 생존 방법과 생태계의 여러 특성을 익히는 것 이외에도 파편 난 과거의 서사를 수집하는 과정이 추가되며, 이는 〈아우터 와일즈〉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에게 수량화된 업그레이드와는 조금 다르게 세계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게 하는 과정에서 전능감을 부여한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오래된 폐허를 돌아다니며 잊힌 역사를 수집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두 게임은 이 세계의 뒷이야기를 수집할 만한 서사 조각으로 제시해 플레이어 스스로 짜맞추게 하기에, 정보의 측면에서도 불능(감)을 전능(감)으로 바꿔나가는 방식을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금, 이 또한 이른바 ‘환경적 스토리텔링’을 적극 활용하는 게임들에서 (때로는 〈시스템 쇼크 (System Shock, 94)〉같은 이머시브 심 장르와 엮어) 오랫동안 보아왔던 방식일 테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두 게임 모두 특유의 모의법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무심하게 작동할 뿐인 세계를 제시하며, 제어와 정보에 불능하며 불능감을 느끼는 플레이어가 이 세계를 다양한 층위로 익혀나가게 한다는 점에서 게임 내 세계와 특별한 관계를 맺을 테다. 그렇게 따져보자면 두 게임의 ‘서사’란 로어 조각의 형태로 곳곳에 산개한 과거사보다도, 차라리 이를 포함해 플레이어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주어진 세계의 수많은 정보를 알아가는 플레이 과정 전체가 될 것이다. 한 차례의 플레이 주기 동안 그저 정신없이 살아남는 것에 급급하던, 물리법칙과 생태구조에 휘말려 우스운 슬랩스틱이나 끔찍한 호러를 연출하던, 어쩌면 새로이 얻은 정보들에 경이와 경외 또 경악을 느끼던 말이다. 적어도 이 세계의 아주 자그마한 구석이라도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면, 그 또한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는 무심하게 모의된 세계와 전능하게 익히기가 까다로운 제어, 그리고 서사를 조각내 만든 정보를 제각각의 불능(감)으로 묶어, 플레이어가 이 세계를 헤쳐가고 알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이야기를 생산하는 ‘기계장치의 우주’일 테다. 나가며 작년에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 그리고 두 게임의 DLC를 나란히 플레이하며 글감을 착상하고 올해 상반기에 〈튜닉 (Tunic, 2022)〉과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을 플레이하며 이를 머릿속에서 굴리는 동안, 이들 게임(특히나 홍보상에서 꽤나 이목을 모았던 〈애니멀 웰〉)을 중심으로 단어 하나가 영어권 웹을 떠도는 광경을 보았다.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nia)’라는 이 신종 장르명은 메트로배니아에 ‘브레인’을 추가한 말장난으로, 플레이어가 다양한 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맵을 탐사하면서 처음에는 진입 불가했던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 및 기술을 얻는 메트로배니아의 기본적인 설계에서 특히나 ‘두뇌’를 요구하는 요소가 강조되는 유형의 게임을 지칭한다. 이 ‘두뇌’란 물론 게임 내에 숨겨진 비밀과 작동법과 같은 정보에 대한 비유로, 기존 메트로배니아에서 플레이어가 특정 임무를 달성해야만 추가적인 이동 능력 및 기술을 획득하는 것에 비해 ‘메트로브레이니아’에서는 게임과 세계에 대한 특정 정보 자체가 바로 그러한 능력 및 기술이 되는 셈이다. 언급된 네 게임은 종종 그러한 ‘메트로브레이니아’를 대표할 만하고 어쩌면 새로운 장르로 묶일 수 있을 만한 게임으로 불리는 듯한데, 과연 이들 게임이 그렇게까지 지식 정보의 획득과 두뇌 훈련의 필요성만을 강조할까? 〈튜닉〉과 〈애니멀 웰〉 또한 (〈아우터 와일즈〉나 〈레인 월드〉와 비슷하게도) 각각 3D 어드벤처와 2D 플랫포머의 기본적인 틀을 바탕으로 그저 특정 정보의 획득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조작과 탐험 (〈튜닉〉의 경우에는 전투) 또한 동등한 분투의 수단으로 취급하며 이들을 정교하게 엮는데 말이다. 이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머릿속을 떠돌기만 하던 정보 조각들이 문득 하나로 짜맞춰질 때의 쾌감, 모든 것이 전부 다 그럴싸하게 말이 되는 것만 같고 이 세계의 가려진 뒷면을 잠시 엿보고 온 듯한 짜릿함, 무엇보다도 이를 전부 알아먹은 스스로가 영리하게 느껴지는 전능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미처 다루진 못했지만 〈튜닉〉과 〈애니멀 웰〉도) 오로지 두뇌와 지식만을 플레이의 중추로 삼지는 않았을 테다. 도리어 내가 여기서 즐긴 전능감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찾아다니다 보니, 이 게임들이 모의와 제어와 정보와 같은 수많은 장치가 맞물리고 불능감을 연료로 사용해 플레이어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능감을 제공하는 기계와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알아가는 즐거움을 도무지 제어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만 느껴질 뿐인 현실이 아니라 알맞은 규모와 규칙으로 작동하는 허구에 실어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런 게임은 세계를 익혀나가는 법을 익혀나가도록 하는 연습 경기장이 된다. [1] 『두 번째 유모』, 알마, 2019, 301쪽. [2] 두 게임의 특성을 흥미롭게 확장한 DLC인 〈다운푸어 (Downpour, 2023)〉과 〈에코스 오브 디 아이 (Echoes of the Eye, 2021)〉는 아쉽게도 번외로 두고, 이 글은 본편에만 집중하겠다. [3]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oegames, MIT Press, 2007, p.35. [4] 옥선영, 「게임 속의 세계는 세기말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가?」,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통권 98호, 한국게임학회, 2021, 12쪽. 원문에서 simulate는 ‘모사’로 번역되었으나 여기서는 ‘모의’로 통일했다. [5] 유진 새커,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 13쪽. [6]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2, 206쪽. [7] 응우옌, 같은 책, 177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나원영 2016년에 웹진 [weiv]를 통해 대중음악 비평을 시작했고, 2022년 웹진 ma-te-ri-al을 통해 <대체 현실 유령>을 출간했다. 아무래도 작은 게임을 랩톱에서 짧게 하는 편이다. 계속됩니다.
- GDC 2023 탐방기: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흐름들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게임쇼에도 봄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게임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발표되었던 E3 2023의 취소 소식은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3월 말에 열린 PAX EAST는 GDC 2023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B2C 부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필자 역시 4년 만에 GDC를 찾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0년부터 2022년 GDC에 모두 등록했었다. 다만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참석이 불가능했고, 작년은 패스를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 Back GDC 2023 탐방기: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흐름들 11 GG Vol. 23. 4. 10.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게임쇼에도 봄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게임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발표되었던 E3 2023의 취소 소식은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3월 말에 열린 PAX EAST는 GDC 2023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B2C 부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필자 역시 4년 만에 GDC를 찾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0년부터 2022년 GDC에 모두 등록했었다. 다만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참석이 불가능했고, 작년은 패스를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GDC 2023에서는 기존에 제공하던 온라인 중계를 막대한 비용 문제로 거의 중단하고 오프라인 중심으로 다시 돌아왔다. 공식 홈페이지 통계상으로는 28,000여명의 업계 관계자가 방문했다고 하는데, 이는 작년 GDC 2022의 12,000명가량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을 기록한 셈이다. 이는 팬데믹 이전 2019년의 GDC 참가자 29,000명에 거의 근접한 수치이다. 실제 참가한 개발자들 얼굴에서는 Covid-19의 영향을 느끼기 어려웠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즐겁게 서로를 대면하면서 식사하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만 처음 패스를 받는 과정에서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추가되어 예년보다 매우 긴 패스 수령 줄이 이어졌다. * GDC 2023 기간 중 패스를 수령하기 위해 늘어선 긴 줄 팬데믹 기간과 그 이후의 GDC는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팬데믹 기간 중에 게임업계에서 일어났던 AI, Web3(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등의 기술적인 변화와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GDC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열리는 특정 주제 중심의 서밋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메인 컨퍼런스로 양분되어 왔다. 그간 서밋은 인디게임, 내러티브, 게임 교육, 로컬라이제이션, 시리어스 게임, 스마트폰/태블릿 게임, 과금 제도, VR/AR 등 게임 디자인과 관련한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올해 GDC 2023 서밋은 내러티브나 인디게임, 게임 교육 같은 전통적인 서밋이 어느 정도 남아있긴 했지만 많은 부분들이 기술 중심 서밋으로 대체되었다. AI, Web3, F2P, 퓨처 리얼리티(구 VR/AR), 온라인 게임 테크놀로지, 툴, 비주얼 이펙트 등 수많은 기술 중심 서밋들이 작년과 올해 새롭게 생겨났고, 이는 모두 팬데믹 이후 새롭게 부상한 게임 업계의 다양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중 AI 서밋이 가장 많은 개발자들을 불러 모았으며, 자연어처리, 행동 패턴 설계 같이 AI의 전문 영역을 넘어 게임 배급과 유통 부문까지 AI의 영향력이 확장될 수 있음을 확인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비해 한국 게임 개발자들이 GDC를 많이 방문했으며, 발표 횟수도 늘었다. 이번 GDC에서 가장 적극적인 포지셔닝을 보여준 한국 게임회사는 위메이드였다. 작년에도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발표를 진행했으며, 올해는 아예 메인 스폰서 자격으로 Web3 서밋 키노트 스피치를 담당했다. 작년 GDC에서 장현국 대표는 위믹스 생태계에 100종 이상의 게임이 온보딩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 말해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까지 위믹스 플레이에는 25종의 게임이 각기 다른 토큰노믹스를 가진 채로 게임을 서비스 중이다. 아직 절반의 성공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GDC 엑스포 장에는 엄청난 크기의 위메이드 부스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메인 스폰서의 화려한 위용 뒤에 느껴지는 조급함을 감출 수는 없었던 것 같다. * GDC 2023 메인 스폰서로 이름을 올린 위메이드 최근 10여 년간 거의 매해 GDC에 참여하거나 최소한 온라인으로 컨퍼런스에 참가해 온 필자는 한국 게임 개발자가 한국 게임회사 소속으로 비즈니스 모델이나 로컬라이제이션을 제외한 게임 디자인 영역에서 GDC 발표를 진행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예외가 있다면 2018년 〈PUBG〉의 사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말 스팀에 〈PUBG〉가 출시될 당시에는 한국 게임회사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비즈니스 모델로 PC 게임 플랫폼에서 판매 1위를 달성했다는 것이 정말 예외적인 사례로 취급받았던 시기였다. 물론 그 이후로도 이러한 사례가 자주 나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GDC에서 한국 게임사들의 발표가 거의 예외없이 게임 비즈니스 모델로 귀결되고, 게임 디자인이나 내러티브, 창의성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히 알려진 불편한 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 GDC 2015에서 〈룸(Loom)〉에 관한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을 진행하고 있는 브라이언 모리아티(Brian Moriarty) 한편으로 올해 GDC에서 느끼게 된 또 하나의 변화는 전통적인 게임 디자인 분야의 위상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게임 업계 내에서 아이디어 발상과 메커닉 개발에 치중하는 컨셉 디자인의 분야가 점점 시스템 기획이나 레벨 디자인 등으로 축소되어 버린 것도 한몫 할 것이다. IGF 파이널리스트에 올라온 소수의 창의적인 게임 일부를 제외하면 인디게임으로 엑스포에 전시된 상당수는 익숙한 장르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약간의 변주만을 거친 경우가 많았다. 컨퍼런스에서도 게임 디자이너들이 즐겨 찾았던 포스트모템(postmortem) 강연들이 대거 축소되어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2010년대 GDC에서는 최소 4-5회 정도의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 강연이 진행되었다. 올해에는 단 하나 반다이 남코 사의 CTO인 노부히코 모모이가 진행하는 〈다마고치〉의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컨퍼런스 1주일 정도를 남겨놓고 개발자의 개인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인디 게임 포스트모템도 서밋 기간 중 보통 4-5회, 메인 컨퍼런스 기간 중에 2-3회 정도 열리는 것이 관례였으나 올해에는 거의 열리지 않거나 기술 중심 세션으로 대체되었다. 때문에 정식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은 아니었지만 〈별의 커비〉 시리즈 30주년을 맞아 해당 시리즈의 여러 측면을 회고하는 “The Many Dimensions of Kirby” 강연이 반사적인 인기를 누렸다. HAL 연구소의 쿠마자키 신야와 카미야마 타츠야가 출연한 이 강연을 보기 위해 강연장을 몇 바퀴 돌 정도의 긴 줄이 늘어섰으며, 예정 시간을 30분 넘긴 이후에야 모두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커비 캐릭터의 비정형성과 공중 부양, 몬스터를 빨아들인 후 외양과 스킬이 변화하는 전통적인 메커닉의 고안 과정이 개발 과정에서 산출된 다양한 컨셉 아트와 함께 제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 외에는 1인 개발자 제임스 와들(James Wardle)이 출연한 “‘Wordle’: One Year Later”의 포스트모템이 인기를 끈 강연이었다. 그는 이 게임을 뉴욕타임스에 매각하여 7자리 숫자의 달러 수익을 거두었지만, 수익을 위해 게임 개발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언급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 〈별의 커비〉 30주년을 기념한 GDC 2023 강연 이런 몇몇 예외적인 사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게임 디자인 강연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GDC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점점 게임 개발이 분업화되어가고,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 광고를 통한 수익화가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잡으면서 게임 디자인이나 메커닉의 개선을 통한 컨셉 디자인의 영역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인디 게임 개발사들 역시 이제는 대형 퍼블리셔나 VC로부터의 투자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인디스러운 스타일만 유지한 채 인기 장르의 게임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내러티브와 비주얼만 바꾸어 기존 게임을 모방하는 케이스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점점 자기복제가 만연화 되어가도 이를 합리화하기에만 급급한 인디 게임 분야의 돌파구를 찾아보기 위해 방문했던 올해의 GDC였지만, 미국 인디 게임 씬에서도 뾰족한 해답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인디 게임 씬은 그간 외부에서 투입되는 자본의 단맛을 보면서 외연을 키워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AA급 게임과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인디 스타일 게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졌으며, 완성도가 높은 인디 게임들은 점점 스타일리시한 AA급 정도의 게임을 지향하고 있다. 올해 IGF를 심사하면서도 느낀 사실이지만, 많은 심사위원들이 거칠면서도 날것을 보여주는 저예산 인디보다는 세련된 스타일의 AA급 인디게임을 더 높은 위치로 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올해 GDC는 여느 해보다 복잡한 심정을 안고 행사장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필자를 배신하지 않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맛있는 클램 차우더와 샤도네이 와인 한 잔 뿐이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박동수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Read More 버튼 읽기 유도된 걷기와 우연한 만남의 장소 – AR 산책 게임의 지금 일종의 ‘비동기 멀티플레이’로서 산책 게임들은 사람들을 게임이 유도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끔 하지만 때로는 상상치 못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에서 누군가 설치해둔 집라인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따봉’을 눌러본 기억이 있는가. 산책 게임은 각자의 황량한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산책하게끔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돌리면 엄지를 치켜세울 직접 타인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버튼 읽기 별점·평점이라는 표면 별점의 역사를 짧게 훑어보자. 최초의 별점은 1820년경 영국의 마리아나 스타크가 펴낸 『유럽대륙 여행가이드』라 알려져 있고, 본격적으로 별점이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통해서다. 버튼 읽기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 사실 호러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물론 좀비물의 성격을 차용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장르적 요소를 가져오거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처럼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AAA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버튼 읽기 유보된 이야기와 넓어진 유희공간- <용과 같이 8> 이 글에서 다루는 <용과 같이>는 전통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으로 취급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카무로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수두룩하고, 선형적인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으며, 무수한 미니게임이 게임의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버튼 읽기 게임을 산책하기(장려상) 지난 5월 2일 민형배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가상공간에서의 가상인물을 통한 음란행위”를 성범죄로 규정하고 있다1). 물론 민형배 의원의 개정안은 현실의 성폭행 범주를 고스란히 옮겨와 메타버스 속 성범죄를 온전히 규정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이 개정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메타버스라는 아바타를 신체의 확장으로 바라보며, 아바타의 경험이 실제 신체의 체험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버튼 읽기 규모의 문화상품 -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 약간의 오해를 감수하고 말해보자면, 어느 순간부터 게임 시장은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는 트리플A 게임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 영화의 블록버스터 개념과도 차이를 보인다.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범주 속에 블록버스터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업영화가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중저예산의 로맨스, 코미디, 호러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영화들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 비상업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다만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 제작, 유통, 홍보되는 영화가 아닌 작은 규모의 상업영화일 뿐이다. 게임은 그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영화는 소수의 블록버스터를 ‘텐트폴 영화’라 부르며 그에 속하지 않는 다수의 저예산 상업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으로 구성된 시장을 지닌다. 게임도 몇몇 트리플A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스트레이〉(2022), 〈잇 테이크 투〉(2021)와 같은 인디게임들이 흥행을 기록하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2022)처럼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트리플A 게임이든 인디게임이든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비상업적 게임”이라는 어색한 어감의 단어조합은 극소수의 예술적 게임, 혹은 전시나 공공성을 위해 만들어진 몇몇 게임만이 속해 있을 뿐이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최선주
선주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며 활동해왔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 개념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을 두고 인공지능 창작물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였으며 미디어의 이면을 탐색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코리아나미술관 *c-lab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아이돌로직 신드롬』(2021, 공저), 『특이점의 예술』(2019) 등이 있다. 최선주 최선주 선주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며 활동해왔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 개념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을 두고 인공지능 창작물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였으며 미디어의 이면을 탐색하는 다양 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코리아나미술관 *c-lab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아이돌로직 신드롬』(2021, 공저), 『특이점의 예술』(2019) 등이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디지털게임은 그 출발점부터 시장에서 상품으로 규정된다는 속성과 긴밀한 연계를 이루며 발전해 왔습니다. 제작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이 매체는 정말 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그 소모되는 자원은 시장의 기능에 의해 충당되기에 게임의 속성에는 지속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개입합니다. < Back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09 GG Vol. 22. 12. 10. 디지털게임은 그 출발점부터 시장에서 상품으로 규정된다는 속성과 긴밀한 연계를 이루며 발전해 왔습니다. 제작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이 매체는 정말 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그 소모되는 자원은 시장의 기능에 의해 충당되기에 게임의 속성에는 지속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개입합니다. 이런 게임의 상품적 속성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텍스트 내부에도 늘 강한 영향력을 끼쳐 왔습니다. 동전투입 게임 시대의 1라운드 보스부터 오늘날 보편화된 현질과 자동사냥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게임 텍스트는 자신에게 소비자가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느냐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결제양식의 변화가 다양해지는 시대 앞에 섰습니다. GG의 이번 호 고민은 그래서 상품으로서의 게임으로 향합니다. 플랫폼의 게임 독점, 구독결제 서비스, 부분유료결제 문제, 할인과 번들링에 이르기까지 많은 게임의 상품적 속성들은 게임이 만드는 세계 내부에까지 깊숙하게 침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게임담론에서 게임의 상품적 속성은 그 비중만큼 두텁게 다뤄지지는 못한 듯 싶습니다. 미약하나마 GG가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양한 필자들과 함께 GG는 2022년 12월에 상품으로서의 게임들을 이야기해봅니다. 새롭게 등장한 결제방식과 유통방식들 속에서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는 또 어떻게 흘러갈까요? 정답없는 고민이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찌보면 조금 늦은 발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GG의 독자들은 게임과 사회를 동시에 고민하는 독자들일 것입니다. 게임과 사회라는 두 주제 사이에서 게임의 상품성은 무척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제야 이 이야기를 던지는 늦은 감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 드리며, 이번호도 많은 애정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 Back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21 GG Vol. 24. 12. 10. 지난 2021년 10월. 에픽 게임 스토어를 통해서 얼리 액세스를 시작한 ‘다키스트 던전 2’는 전작을 즐겼던 팬들에게는조금 당혹스러운 모습과 같았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전작의 연장선에 자리한 작품이었음에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플레이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다키스트 던전 2의 플레이는 조금 더 로그라이트에 가깝게 변했으며, 전작의 핵심 시스템이라 할 수 있었던 영지 관리와 같은 매니지먼트 요소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플레이어들의 기대감을 정면으로 반하는 것임과 동시에, ‘대체 왜 이렇게 바꿨는가?’하는 질문을 낳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개발진이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라는 문장으로 방향성을 일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 만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우선, 전작인 다키스트 던전 1의 플레이를 잠시 떠올려보자. 전작을 떠올렸을 때, 가장 앞에 자리하는 것은 역시나 무척이나 어려운. 난도 있는 게임 플레이가 될 것이다. 다키스트 던전 1은 플레이어의 결정이 무게감을 가지는 타이틀로 설계되어 있다. 한 번의 실수가 파티를 사망으로 인도하며, 여차하면 잘 육성된 파티를 잃고 키보드를 내려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나올 정도였다. 다키스트 던전 1이 가지고 있는 높은 난도는 ‘운’으로 대표되는 확률이 가장 중심에 자리한다. 운에 따라서 플레이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 대만 때리면 되는 상황에서 파티가 두 바퀴를 돌 때까지 빚맞춤이 뜬다거나. 어느 순간 갑작스레 데스 블로우를 맞아서 캐릭터가 상태 이상에 빠지는 등의 플레이를 마주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운은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적에게도 적용된다. 적에게 운이 제대로 적용될 때에는 다른 타이틀에서 느끼기 어려운 각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초로 작동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캐릭터인 영웅이 모든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하고 적을 순식간에 제거할 때의 쾌감이 대표적이다. 운은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것으로도 작동하지만, 한편으로는 플레이에게 잊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요소임은 분명했다. 개발진이 말하는 ‘도전과 영웅적 승리’라는 지향점이 각별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운이라는 것은 플레이어가 실패와 시도를 누적하는 것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다뤄졌다. 던전에서 획득한 재화와 보상들을 이용해 영웅들을 육성하며, 조금 더 나아진 상태에서 다음 던전으로 출발할 수 있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마을 경영 콘텐츠들은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운’ 들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에 두도록 만들었다. 마치 처음에는 20면체 주사위를 굴리다가, 시간이 지나며 16면체로. 그 다음은 8면체로 조금씩 확률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운이라는 형태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결과물이 조금씩 제어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게임 플레이는 점차 통제 가능한 영역이 늘어나고 궁극적으로는 다키스트 던전 1의 끝에 도달하는 경험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을 경영은 본질적으로는 타이쿤 장르와 같은 매니지먼트 형태를 가지게 됐다. 세부적인 수치를 조절하고 여분의 자원을 쌓고. 이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플레이에 가깝다. 그렇기에 다키스트 던전 1은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초반과는 다른 결의 정체성을 보여주게 된다. 통제 가능한 영역이 충분히 늘어나고. 플레이어가 게임 과정에 익숙해졌다면 다키스트 던전 1은 자원을 투입하고 거기서 보상을 얻는 플레이의 반복이다. 운을 어느 정도 감안해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시점부터 영웅과 파티는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인적자원과 같이 다뤄진다. 이 즈음부터 효율적으로 자원을 파밍하고 변수를 교정하며 제어하는 과정은 주력 인적자원이 더 나아가기 위한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 즈음부터 플레이어의 선택과 실수. 그리고 변수를 통제하는 과정이 가장 앞에 자리하며 다키스트 던전 1이 추구하던 ‘도전과 영웅적 승리’라는 조금씩 희석된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익숙해져서 긴장감 보다는 일종의 루틴과 같은 게임 플레이를 하게 되며, 반복 플레이를 통한 자산의 누적으로 인하여 초기와 같은 경험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개발사인 레드훅 스튜디오는 다키스트 던전 1의 이와 같은 플레이를 일종의 한계라고 인식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 그리고 플레이 양상이 영향을 미쳤다. 초반부의 플레이가 각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좋았으나,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변수가 통제되고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리는 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불어 양날의 검과 같이 다뤄지는 변수들이 막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흥미로운 것은 맞지만, 플레이어 전략에 맞는 플레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들어갔으며,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게임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가 엔딩 까지의 플레이 타임을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었으며, 꽤 많은 플레이어들은 중간 그라인딩 (파밍) 과정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에서 게임을 중단하기도 했다. 도전 과제를 보면, 이러한 양상은 꽤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초반부에서 중반부.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의 콘텐츠를 달성한 사람의 비율은 극단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전작의 문제점을 인식한 레드훅 스튜디오는 후속작인 다키스트 던전 2를 통해서 또 다른 형태의 모험을 기획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작의 변수들이 가져다주는 장점과 단점을 답습하지 않고 형태와 플레이 양상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을 말이다.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한 ‘도전과 영웅적인 승리’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방침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웅적 승리. 즉, 고난을 넘어서는 행위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그리고 플레이어가 이를 어떻게 극복하도록 할 것인가에 가장 많은 고민을 들였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고난을 마주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이 결과를 낳고. 이를 통해서 고난을 극복하는 플레이가 핵심이다. 따라서 다키스트 던전 2는 플레이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확률을 조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모든 공격은 변수 없이 확정적으로 적중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는 어느 정도는 플레이어가 예상한 형태로 진행된다. 사전에 수립한 전략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한편, 토큰 시스템과 스킬 업그레이드의 조합을 통해서 플레이어의 전략 / 전술이 전작과 비교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확률적인 요소는 ‘지옥으로의 로드트립’이라는 컨셉에 맞춰서 조율이 이루어졌다. 다키스트 던전 2의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 변수들은 무작위 생성을 통해서 제공된다. 하나의 ‘런’으로 구성된 플레이가 자리하며, 플레이어들은 마차에 올라타고 무작위로 배치되는 이벤트와 적들을 마주하는 구조를 택했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다키스트 던전 2는 확률과 변수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전작과는 다른 지향점을 가진다. 확률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나가는 것. 또는 반복 플레이를 통해서 통제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수립한 전략과 전술을 이용해 확률과 맞서는 데에 코어 게임 플레이를 집중한다. 다만, 전략과 전술이 수립되고. 육성이 완료된 상태에서는 전투 자체가 루틴을 갖기 마련이다. 토큰 시스템으로 변경이 되면서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줄어들었고 스트레스 관리도 사라지며 전투 과정 자체는 어느 정도 고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모든 것이 통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개발진은 여기서 캐릭터간의 관계를 플레이어가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위치시켰다.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장치로 캐릭터 관계를 넣어두면서 전투와 이후의 플레이는 플레이어의 예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전투를 벌이기 어려운 고난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전작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가늠이 안되는 게임 플레이 시간 / 그라인딩 과정은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런’을 통해서 보완됐다. 전작 대비 한 번의 플레이 시간 자체는 짧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무작위로 구성된 요소들이 고난으로 제시되고 플레이어가 자신의 구상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핵심인 셈이다. 반복 플레이에서 누적되는 요소들은 마을이 아니라 ‘캐릭터’에게 집중한다. 이 또한 개발진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작이 대략적인 세계관이나 분위기에만 집중했다면, 후속작에서는 각 캐릭터들을 세부적으로 설정하고 활용한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플레이가 누적되면서 캐릭터의 능력이 강화되는 것과 함께,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시되는 것이 대표적인 요소다. 전작의 영웅들은 이제 이름으로 불리며, 인적 자원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고 성취하는 히어로에 가깝게 다뤄진다. 런의 반복을 하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은 각자의 이야기와 관계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며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설득력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인적 자원에서 어떠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되는 과정과 같다. 이렇게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과 여기에 곁들여서 세계를 여행한다는 가치는 다키스트 던전 2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지향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을 하나에서 이야기가 끝났던 전작과 다르게, 다키스트 던전의 세계를 한층 더 넓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얼리 액세스 기간 동안 다키스트 던전 2가 지향했던 변화들은 제대로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흥행과는 별개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개발진이 구축했던 플레이들은 각 요소들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함께, 역경을 넘어 승리라는 쾌감을 제공하는 것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결국, 게임 플레이가 바뀌었어도 ‘도전과 영웅적인 승리’라는 가치는 다키스트 던전 2에서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메커닉이나 실제 게임 플레이 양상이 크게 바뀌기는 했지만, 개발진이 제시하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하다. 갑작스레 큰 성공을 거둔 인디 타이틀틀이 시리즈로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고, 다방면으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명확하게 남기고 있다. 그리고 현재. 다키스트 던전 2는 현재 준비 중인 무료 업데이트를 통해서 전작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결에 자리한 신규 게임 모드 ‘킹덤스’를 준비 중에 있다. 다키스트 던전 2의 원래 모드가 개발진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킹덤스의 신규 모드는 전작을 플레이 했던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인 결과처럼 보인다. 전작의 영지 관리와 다키스트 던전 2의 플레이가 어느 정도 합쳐진 신규 모드는 다키스트 던전 2와는 다른 또 다른 변화이기도 하다. 2021년 에픽 게임즈에서 얼리 액세스를 출시한 이후 정식 발매까지 3년의 시간이 걸린 만큼, 이제 월드 전반을 더 확장한다는 의도에 맞춰 변화를 가미했다. 그간 쌓아온 것들을 바탕으로 세계와 캐릭터. 그리고 여러 게임 플레이를 동시에 잡겠다는 의도다. 전작의 코어 플레이였던 영지 관리는 그 개념을 변용해 킹덤스에 들어갔으며, 그간 런을 통해 이야기를 쌓은 캐릭터들은 해당 모드에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적 자원과 같이 다뤄진다. 전작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기존 모드의 게임 플레이에서 보충했던 만큼, 이후에는 플레이어의 니즈에 맞춰 관리적인 측면을 늘리겠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정식 출시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다키스트 던전 2의 변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작의 거대한 진입 장벽이 되었던 변수를 조율하는 한편, 한 번의 플레이 시간을 낮추는 결정. 그리고 형태가 크게 달라졌음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고난을 극복하며 달성하는 영웅적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고민이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다키스트 던전 2는 이 영웅적 승리가 게임 세계관 측면에서 보다 설득력을 갖도록 만들기 위한 과정인 것이며, 동시에 영웅적 승리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맛볼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기 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두 작품에서 이 가치는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 단지 형태가 다를 뿐이다. 플레이어가 고난을 마주하고 극복하도록 만드는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의 방법론. 고난을 극복하고 영웅적 승리를 달성했을 때의 경험. 이것이 같은 방향에서 자리하고 있기에, 다키스트 던전 2를 후속작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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