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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으로 사랑을 담아 내기 -

    < Back 게임으로 사랑을 담아 내기 - 16 GG Vol. 24. 2. 10. ※ 본 글은 의 주요한 게임의 줄거리 및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사랑을 담은 게임 (이하 < 댓 드래곤 캔서 >) 는 2016 년 Numinous Games 의 소규모 팀에 의하여 개발된 자서전 형태의 게임이다 . 라이언 그린 (Ryan Green) 과 에이미 그린 (Amy Green) 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게임을 제작하였는데 , 그들은 자신들의 셋째 아이인 조엘 (Joel) 이 암을 투병해 나가는 모습을 게임으로 담아내었다 . 게임의 제목인 ‘ 댓 드래곤 캔서 ’ 는 ‘ 암 (cancer)’ 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른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기 위하여 고안된 상징적 장치로 , 조엘이 겪고 있는 암을 무찔러야 할 ‘ 드래곤 ’ 그리고 투병 중인 조엘을 ‘ 용사 ’ 로 묘사한다 ( Green, 2017). 그림1, 2. 용사 조엘과 드래곤(Numinous Games) 그린 부부의 셋째 아들인 조엘은 생후 1 년 만에 뇌암을 진단받았다 . 당시 의사들은 아이의 수명이 4 개월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지만 , 조엘은 치료를 통해 3 년을 더 살았고 4 살이 되던 해에 숨을 거두었다 . 추가적으로 얻게 된 3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린 부부는 “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법 ” 을 배웠으며 이러한 경험을 전달하기 위하여 < 댓 드래곤 캔서 > 를 제작했다 (Aki, 2016). 그림3, 4. 라이언과 그의 아들 조엘(Robertson, 2016; Numinous Games) 게임은 간단한 포인트 앤 클릭 방식으로 1 인칭과 3 인칭을 오가며 진행된다 . 플레이어는 그린 부부의 시점에서 매 순간을 조엘과 함께하게 되는데 , 이로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와 그를 돌보는 부모의 경험에 참여하게 된다 . 게임을 구성하는 14 개의 작은 챕터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특정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 각 챕터들을 통해 플레이어는 투병 중인 아이와 함께하며 얻게 되는 기쁨과 , 불안 , 사랑과 , 의심 , 절망 등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경험한다 . ‘게임’으로 ‘사랑’을 담아내기 조엘과 함께한 시간을 심리적으로 기록한 < 댓 드래곤 캔서 > 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담아낸 게임이다 . 그린 부부가 실제로 느꼈던 조엘에 대한 당시의 ‘ 사랑 ’ 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인 셈이다 . 한편 , ‘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 은 이야기를 다루는 모든 미디어에서 가장 흔한 주제 중 하나이다 .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절절한 사랑을 다루는 글이나 영화는 특히나 넘쳐 난다 . 그럼에도 개발자들은 ‘ 게임 ’ 으로 자신들의 ‘ 사랑 ’ 을 담아 내길 선택했다 . 그렇다면 , < 댓 드래곤 캔서 > 는 왜 하필 게임이었을까 ? 제작자인 그린 부부가 자신들을 사랑을 기록하기 위해 ‘ 게임 ’ 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왜 영화나 소설이 아니었을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은 2016 년 SDF 1) 에서 진행된 라이언 그린의 짧은 강연으로부터 엿볼 수 있다 . 2) 해당 강연에서 라이언은 제작 중 겪은 어려움을 바탕으로 ,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어떻게 사랑을 담는 매체가 될 수 있는지 , 그리고 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 “게임은 재미를 위한 매체 ” 라는 풍조 속에서 < 댓 드래곤 캔서 > 는 환영 받을 수 있는 주제는 아니었다 . ‘ 시한부 아이의 투병기 ’ 는 이용자들이 쉽게 즐기기에는 너무나도 어둡고 무거운 주제였기 때문이다 . 이러한 괴리는 투자금 확보에 있어 큰 장애가 되었는데 , 제작자들은 왜 이 새로운 주제가 게임으로서 가치가 있는지를 계속해서 증명해야만 했다 . 3) 여기서 라이언 그린은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이야기 하며 < 댓 드래곤 캔서 > 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 먼저 , 게임에 대한 그의 정의는 다소 광범위하다 . 라이언에 따르면 , 게임은 ‘ 인터렉티브 미디어 ’ 로 수용자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독특한 매체이다 . 즉 , 어떠한 행동 (action) 을 취하는 것이 게임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 게임 제작자들은 특정한 행위성을 만들어 내고 , 수용자는 게임을 플레이하게 됨으로써 제작자가 정한 특정한 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 4 ) 한편 , 대부분의 게임들이 따르는 행위성은 매우 한정적이다 . 그들은 특정한 미션을 제시하고 , 플레이어의 행위에 대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형식을 취한다 . 그리고 , ‘ 성과 ’ 라는 기준으로 플레이어의 ‘ 행위 ’ 를 판단하는 위와 같은 게임들은 너무나도 신자유주의적이다 . 수많은 게임들이 장애물을 극복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중요한 행위의 척도로 설계되지만 , 이는 성취 지향적이고 자기책임 논리에 복속되어 있는 미디어의 한 형태일 뿐이다 . 결국 인터렉티브 미디어는 어떤 행위성에 대한 설계이며 , 그 행위성은 사회의 특정 가치를 담고 있다 . 그렇다면 , 게임이 담아낼 수 있는 행위성 역시 다양할 것이다 . 게임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될 수 있고 ,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 ,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그를 사랑하는 것 역시 될 수 있다 . 즉 , 게임이라는 매체가 담을 수 있는 행위는 무궁무진하다는 말이다 . 여기서 , 라이언 그린은 인터렉티브 미디어가 포용적이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제시하는 행위가 사회 공동체적 가치와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성공이나 성취를 위한 행위 보다는 사랑과 배려 , 관용을 베푸는 게임 , 즉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게임을 설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 그리고 , < 댓 드래곤 캔서 > 는 정확히 이러한 주장과 맞닿아 있다 . 그림5. 풍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떠나가는 조엘(Numinous Games) <댓 드래곤 캔서 > 는 본질적으로 성취가 불가능한 게임이다 . 약 두 시간 남짓의 플레이 타임 동안 플레이어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지만 , 그 어떤 행동도 조엘의 병을 이겨내게 할 수 없다 .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 암으로 인한 조엘의 죽음 ’ 이라는 하나의 결말로 나아갈 뿐이다 . 실제로 , 플레이 과정 중 이용자들이 하는 모든 액션은 성공이나 실패로 나누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 < 댓 드래곤 캔서 > 에서 유저들은 아이와 놀아주고 ,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 편지를 읽는다 . 모두는 ‘ 실패가 불가능 ’ 한 활동들이다 . 이는 미니게임에서 역시 마찬가지인데 , 카트 라이딩에는 제한 시간이 없으며 , 드래곤을 무찌르고자 나아가는 용사 조엘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나아가며 미션을 완수한다 . 행위에 대한 적절성 보다는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 이와 같이 , < 댓 드래곤 캔서 > 는 ‘ 성취 ’ 가 아닌 ‘ 사랑 ’ 을 위해 디자인 된 게임이다 . 한 방의 역전이나 선택에 따른 긴장은 없지만 , 플레이어들은 ‘ 불치병에 걸린 아이와 함께 산다 ’ 라는 상황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들을 수행하며 전혀 다른 상황 안에 있는 사람들에 공감할 기회를 얻게 된다 . 이러한 접근은 게임이란 매체 자체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에 기여하였는데 , 제작자들은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 내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임으로써 ‘ 혁신성 (Most Innovative)’ 분야의 상을 수상하였다 . 그림6,7. 미니게임 장면들(Numinous Games)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 < 댓 드래곤 캔서 > 가 ‘ 게임 ’ 으로 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 < 댓 드래곤 캔서 > 는 게임으로 제작되었지만 , 당시의 조류에 있어서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 그럼에도 그것은 왜 반드시 게임이여야 했을까 ? 이는 제작자들이 담아내고자 한 것이 아가페 (Ageape) 적 사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 헌신적인 거룩한 사랑 ’ 을 의미하는 아가페는 대상에 무조건적으로 베풂으로써만 실천된다 . 시한부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아이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애정을 베푸는 것이다 . 이러한 의미에서 게임은 아가페적 사랑이 가능한 유일한 매체이다 .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교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 5) 이처럼 , < 댓 드래곤 캔서 > 는 사랑의 매체로서 게임을 보여준다 . 게임은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냥 주는 것 역시 될 수 있다 . 그리고 , 사랑은 순간적인 감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행동을 통해 표현하는 적극적인 행위이기에 , 행위성을 통해 보여지고 게임을 통해 담아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참고문헌 라이언 그린 (2016, 5, 20). 친밀함을 위한 게임 디자인 : 댓 드래곤, 캔서 [That Dragon, Cancer]. . URL: https://www.sdf.or.kr/archive/2016/ko/video/10000000347 Aki, A. (2016, 1, 22). ‘That Dragon, Cancer’: Q&A With Developer Ryan Green. Voice of America. URL: https://blogs.voanews.com/techtonics/2016/01/22/that-dragon-cancer-qa-with-developer-ryan-green/ Eilon, S. (2018, 7, 21). That Dragon, Cancer. IEEE: Technology and Society. URL: https://technologyandsociety.org/that-dragon-cancer/ Green, A. (2017). A video game to cope with grief. TED. URL: https://youtube.com/watch?v=vWJwa7lntTs Tanz, J. (2016, 1). Playing for Time. WIRED. URL: https://www.wired.com/2016/01/that-dragon-cancer/ Robertson, A. (2016, 2, 12). That Dragon, Cancer: the video game that takes death seriously. The Guardian. URL: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16/feb/12/that-dragon-cancer-video-game Stafford, P. (2015, 4, 16). A GAME ABOUT CANCER, ONE YEAR LATER. Polygon. URL: https://www.polygon.com/features/2015/4/16/8374481/that-dragon-cancer 1) SDF(SBS D포럼)는 SBS가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실시해온 지식나눔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2) 강연에 대한 전체 내용은 다음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sdf.or.kr/archive/2016/ko/video/10000000347 3) <댓 드래곤 캔서>의 투자금 유치에 있어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예술로서의 게임’ 논쟁으로 유명한 캘리 산티아고(Kellee Santiago)이다. 그녀는 <댓 드래곤 캔서>가 가지는 가능성에 주목하여 투자금 유치에 적극적인 조력자가 되어주었다(Stafford, 2015). 이후 개발자들은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Kickstarter를 통해 약 3,700명의 후원자로부터 100,000달러 이상을 모금 받아 게임을 제작하였다. 때문에 게임 내부에는 클라우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진 및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4) 이는 게임을 행위성의 매체로 본 티 응우옌(Nguyen, C. Thi)의 주장과도 닿아 있다. 5) 실제로, 제작자들은 조엘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보다는 그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방점을 맞추었다. 조엘을 그대로 남기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세세한 묘사에 효과적인 영화나 수필이 더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공모전] 오디오 로그의 문학적 요소와 방법론

    < Back [공모전] 오디오 로그의 문학적 요소와 방법론 13 GG Vol. 23. 8. 10. 1993년 [시스템 쇼크]라는 비디오 게임이 발매되었다. 호러 성향의 던전 크롤러와 FPS 액션 간의 결합한 이 게임은 여러 지점에서 게임 서사 전달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 바로 ‘오디오 로그’ 칭하는 음성 기록물이었다.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오디오 로그는 기본적으로 필드 내 아이템으로 배치되어 있다. 오디오 로그가 있는 장소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이전에 있었던 사건을 회고하는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 플레이어가 오디오 로그를 읽기 시작하면 화면 좌측 아래엔 오디오 로그를 남긴 주인의 이미지가 뜨고, 중앙 아래에는 내용 텍스트가 뜬다. 스피커에서는 주인이 내용을 낭독하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 도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스템 쇼크]는 소통이 가능한 NPC를 제거하고, 괴물들로만 게임 내 공간을 채웠다. 그렇기에 오디오 로그의 존재는, 플레이어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일방적인) 목소리며 동시에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실마리인 셈이다. 이런 접근은 서사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기존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비선형적인 ‘텔링’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시스템 쇼크]는 현재진행형으로 사건을 진술하는 목소리를 사후적인 시점에서 접하게 하는 스토리텔링과 공간 연출을 개척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스템 쇼크]의 오디오 로그 개념이 시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진 않다. [시스템 쇼크] 제작자 중 한 명이었던 오스틴 그로스먼에 따르면, 오디오 로그라는 디자인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시인 에드거 리 매스터즈의 [스푼리버 시선집]이라고 한다. 1) 윤석임의 [소도시(小都市) 삶의 우울한 초상(肖像) :에드거 리 매스터즈의 『스푼리버 시선집』 논문] 2) 에 따르면 [스푼리버 시선집]은 “스푼리버라는 가상의 마을을 창조하고 그 마을의 묘지에 묻힌 250여 명의 죽은 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내용의 연작 시집이다. 매스터즈는 자유시 묘비문 형식과 극적 독백을 이용하여 그곳에서 발생한 다양한 부패상, 실망감, 수많은 실패 경험, 위선과 정신적 타락을 예시하는 숨겨진 비밀들을 드러”낸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에드거 리 매스터즈가 [스푼리버 시선집]을 쓰게 된 계기로는 자연주의적 통찰력과 사실주의적 묘사로 당대 미국 소도시의 낭만주의를 비판하면서, “마을로부터의 반항” 운동을 주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연하겠지만 비디오 게임의 오디오 로그가 이런 매스터즈의 구체적인 소도시 ‘낭만주의’를 담아내고 있지는 않다. 그로스먼이 주목했던 지점은 묘비문이라는 사후적인 기록 형식과 극적 독백을 통한 비밀고백이라는 형식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로스먼 역시 자기 아이디어 역시 “사람들의 일련의 짧은 연설을 종합해, 한 장소의 역사를 알려준다”로 정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템 쇼크]에서 인간 NPC가 6개월이라는 시간 속에 전부 사망했기 때문에-쇼단이나 에드워드 디에고 같은 현재 시점으로 살아있는 반동 캐릭터의 오디오 로그도 있기는 하다.-작중 등장하는 대다수의 오디오 로그는 시청각적으로 확장된 묘비와 유언과도 같다. 다만 이 묘비는 한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장소에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오디오 로그 주인의 최후 행적을 보여준다. 오디오 로그의 텍스트를 작성하는 단계에서 그로스먼과 각본진은 [스푼리버 시선집]의 문학적 요소로 호명된 ‘극적 독백’을 변용해 도입한다. ‘극적 독백’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자신의 시를 통해 완성한, 시적 화자를 활용한 문학 기법이다. 이 기법에서 화자는 시인이 아닌 극 중 등장인물로 등장하여 중대한 순간에 특정한 상황 속에서 시 전체를 이야기한다. 화자는 시 속에서 다른 사람들 혹은 청자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시를 읽는 독자는 화자의 말(문장)을 통해서만 다른 이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알게 되거나 실마리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화자가 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단어나 문장을 통해 (일종의 통제원리) 화자의 기질과 성격을 알게 된다. 극적 독백 개념을 활용해 [시스템 쇼크] 내 오디오 로그의 형식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시스템 쇼크] 속 오디오 로그 대다수는 쇼단의 습격과 시타델의 붕괴라는 위급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을 화자로 삼는다. 그들은 눈앞에 없는 가상의 청자를 상대로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과 감정,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얘기하거나, 누군가와 얘기를 나눈다. 이런 발언들 속에서 청자인 플레이어는, 화자가 녹음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단어와 문장 (즉 통제원리) 속에서 성격과 녹음되고 있을 당시의 상황을 알아낼 수 있다. 다만 문학적 효과를 노리는 시의 극적 독백 개념과 달리, 그로스먼이 고안한 오디오 로그는 좀 더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목적으로 극적 독백을 활용한다. 사후 시점 고백을 기본으로 느슨하게 구성된 소도시 공동체의 면면을 보여주는 [스푼 리버 시선집]과 달리 오디오 로그는 생전 고백을 기본으로 거대한 사건 속에서 개인이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 보여준다. 즉 [스푼 리버 시선집]의 극적 독백은, 실재하는 공동체와 그 속에 속한 개인이라는 관계를 다룬다면 오디오 로그의 극적 독백은 플레이어가 진행하는 거시적인 서사와 미시적인 (작은 단위의 서브 플롯들로 구성된) NPC의 서사 간의 관계와 파급을 분절적이고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여기다 게임 플레이를 풀어나가는 힌트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몇몇 오디오 로그는 퍼즐 풀이에 대한 단서나 답, 적이나 보스에 대한 대처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디오 로그는 특정 상황에 대한 진술이나 특정한 무언가에 대한 안내서처럼 텍스트를 구성하기에, 주인공이 아닌 살아있는 다른 인물이 발견했더라도 어색하지 않게 청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시스템 쇼크]가 굳이 1인칭 과묵한 주인공을 택한 이유도 플레이어를 청자로 삼아 오디오 로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한 텍스트가 기본 매개체인 시와 달리, 오디오 로그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향을 기본 매개체로 하고 있다. 텍스트 없이도 오디오 로그는 성립할 수 있지만, 오디오가 없으면 오디오 로그는 성립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오디오 로그가 빌린 화술에서 녹음된 목소리 질감은 화자의 어휘 다음으로 청자가 알아차릴 수 있는, 또 다른 무의식적인 통제원리 요소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시스템 쇼크]의 피해자가 남기는 오디오 로그와 쇼단 같은 악당이 남기는 오디오 로그에서, 화자의 목소리 (연기)는 현격히 차이를 보인다. 피해자 대다수의 오디오 로그에서 목소리는 슬픔과 분노, 체념의 감정과 질감이 일관되게 담겨 있다. 반대로 악당 화자의 오디오 로그는 이들에 비해 ‘개성’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제일 흥미로운 예시가 본작의 AI 악당 쇼단일 것이다. 이 캐릭터의 목소리와 화자로서 오디오 로그는 일반적인 피해자 화자와는 명백히 다르다. 악당으로서 본색을 드러내기 전인 극 초반부까지는 쇼단은 일반적인 AI 목소리의 무기질성을 ‘흉내’ 낸다. 플레이어가 메디컬 레벨에서 나왔을 때 쇼단은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처럼 배경이 되는 시타델의 각 층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때 플레이어는 오프닝 컷신에서 쇼단의 윤리 모듈이 제거되었다는 걸 알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뮤턴트를 처리하고 나온 상태라, 쇼단의 무기질적인 목소리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본색을 드러내고 난 뒤, 쇼단은 무기질성을 완전히 버리고 차가운 비인간성과 위압적인 오만함을 섞어서 성격과 개성을 드러낸다. 쇼단의 오디오 로그 내용 역시, 자신의 ‘자칭 신’에 기반한 오만함을 과시하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종종 쇼단은 자신의 청자를 휘하의 적이나 주인공 등으로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게임의 진행이나 향후 전개에 대한 힌트를 주기도 한다. 오디오 로그만의 또 다른 개성으로는 비선형적인 접근성이 있다. 시집은 기본적으로 서적 구성을 띄고 있으며 서적은 저자가 의도한 내용대로 선형적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반대로 오디오 로그의 배치는 플레이어가 비선형적으로 접하게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1층에서 발견한 오디오 로그가 2층에서 발견한 같은 화자의 오디오 로그보다 후에 녹음된 것일 수도 있다. 또 같은 레벨에 A와 B, C라는 오디오 로그가 있으면 진행 방식에 따라 A-B-C 식으로 획득할 수 있지만, 진행에 따라서는 C-B-A 또는 B-A-C 순으로도 획득할 수 있다. 물론 비일관성으로만 흐르면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내용이나 획득 순서에서도 어느 정도 선형성을 유지하긴 하지만, 오디오 로그의 구성이나 접하는 방식이 무조건 선형적이지 않다는 점은 서적이나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게임만이 가능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비선형적인 구성 때문에, 오디오 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장르는 제작자가 설계한 높은 자유도의 세계를 플레이어가 창발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게임 장르를 일컫는, 이머시브 심이다. 언급한 [시스템 쇼크]도 이 장르에 속해 있고, 이 장르의 대표작인 [바이오쇼크]는 오디오 로그 개념을 적극적으로 퍼트린 게임으로 손꼽힌다. 왜 세계와의 접촉과 활용을 중시하는 이머시브 심 장르는, 오디오 로그를 적극적으로 택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이머시브 심을 설명하는 ‘환경적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유명 이머시브 심 게임인 [디스아너드]를 제작한 하비 스미스는 환경적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을 제창한 바 있다. ‘환경적 스토리텔링’은 이머시브 심 장르의 핵심적인 어법 중 하나이라 할 수 있는데, 컷신이나 이벤트가 아닌, 게임 내에 있는 배경이나 환경을 통해 게임 속 상황과 서사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만드는 연출을 의미한다. 이때 스토리텔링을 하는 ‘환경’은 기본적으로 ‘이미지’ 중심이다. 무너진 건물, 처형당한 시체, 특정한 이념을 설파하는 현수막이나 포스터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환경은 기본적으로 시선의 주체가 아닌 객체이다. 이렇게만 시선의 객체로만 스토리텔링을 하려면, 이머시브 심이 내세우는 환경/공간과의 창발적 활용이 어려워진다. 우에다 후미토의 게임들처럼 아예 환경에서 설명과 활용을 모두 배제하는 방법도 있으나, 플레이어 대다수는 이렇게 배제하는 것을 방법을 모호하고 불친절하게 여긴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비디오 게임, 특히 이머시브 심 게임은 환경 이미지를 방해하지 않을 적절한 ‘설명’이 요구된다. 오디오 로그는, 그 점에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설명을 제공해줄 도구다. 이는 텍스트 로그나 비디오 로그랑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텍스트 로그는 자원이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적게 들지만 매우 단순한 형태와 상호 작용으로 인해 자칫하면 지루해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비디오 로그 같은 경우, 가장 풍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과도해지면 환경적 스토리텔링을 해칠 정도로 설명적으로 될 수 있다. 여기다 로그를 구성하는 영상을 게임 내 이벤트 컷 신이나, 영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텍스트나 오디오 로그에 비해 많은 품이 든다. 오디오 로그는 이 둘의 중간 지점에서 지나치게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텍스트와 오디오, 화자를 드러내는 이미지의 결합으로 적당한 자원을 소비하면서도 풍부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오디오 로그는 음향 영역에서 서사 전달의 채널을 다채롭게 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디오 로그는, 작위성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듯이 고백해 녹음 장치라는 물질적 증거이자 아이템으로 남겨놓는, NPC 화자들의 존재는 플롯 이해과 진행을 위한 고백이라는 인위성에 빠지기 쉽다. 그렇기에 오디오 로그 디자인이 성공하려면 정보 전달에 있어서 특정한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녹음의 작위성을 억제하도록 화자의 녹음 시점을 조율해야 한다. 두 번째로 화자가 고백하려는 사실과 증언에 관한 당위성과 개연성을, 화자의 배경과 설정을 통해 청자가 납득해야 한다. [시스템 쇼크]의 후속작 [시스템 쇼크 2]의 오디오 로그를 활용한 중요 반전은 그 점에서 설득력 있고 창의적인 오디오 로그 구성을 통한 비디오 게임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디오 로그 속에서 플레이어에게 지시하는 연구원 재니스 플리토가 사실은 쇼단이었다는 반전인데, 이 반전을 위해 제작진은 오디오 로그의 텍스트/목소리가 전달하는 태도와 내용, 시점에서 화자의 정체와 신빙성에 대한 섬세한 복선을 깔아두고, 게임 내 이벤트와의 연계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쇼단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한 이 반전은 [바이오쇼크]나 [데드 스페이스] 같은 게임들에서도 차용될 정도로, 유명한 반전이기도 하다. 오디오 로그는 앞으로도 비디오 게임에서 적극적으로 차용될 디자인이다. 죽거나 여기 없는 NPC들을 화자로 삼아 극적 독백으로 거시적인 상황에 얽힌 미시적인 감정과 정보를 서술하며, 이를 비선형적으로 구성해 환경적 스토리텔링의 일환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 디자이너가 플레이어의 이해에 필요하다고 여겨 배치하는 작위성이 잘 드러날 수도 있기에, 서사 속 상황과 캐릭터의 심리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요한 도구기도 하다. 오디오 로그의 창의적인 활용 역시 오디오 로그의 문학적인 요소 및 구성, 게임 내 배치 및 거시적인 서사와의 연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1) https://web.archive.org/web/20110720003321/http://gambit.mit.edu/updates/2011/02/looking_glass_studios_intervie.php 2) 윤석임. (2014). 소도시(小都市) 삶의 우울한 초상(肖像) :에드거 리 매스터즈의 『스푼리버 시선집』. 국제언어문학, 30, 447-466.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슈퍼 히어로 '게임'의 과거와 오늘

    < Back 슈퍼 히어로 '게임'의 과거와 오늘 16 GG Vol. 24. 2. 10. 한 장르의 팬으로서, 그 장르가 대중의 화제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마주할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장르를 많은 사람들이 갖고 놀기에 더불어 대화하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틀린 정보나 나와는 너무 다른 해석 앞에서 불안과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다행인지 요즘은 그런 감정의 골짜기에 빠질 일이 별로 없다. 사람을 덜 만나서도 있지만 화제로 다뤄지는 빈도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두 번째 사가인 멀티버스 사가가 진행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정확히는 영상화된 수퍼히어로, 수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관심이다. 원전인 수퍼히어로 만화는 여전히 독자적 산업을 잘 이끌고 있다. 그리고 영상 컨버전이 최근에 들어 절정을 찍었다면, 게임 컨버전은 비교적 신생이다. 수퍼히어로라는 장르 만화, 특히 미국 만화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수퍼히어로라는 영웅 서사 장르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영상이나 게임으로의 컨버전 또한 이 세 가지 특징을 플랫폼에 맞춰 변용하는 것에 핵심이 있다. 수퍼히어로라는 부류의 캐릭터와 서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첫 번째로 수퍼파워, 초능력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요건은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반드시 코스튬, 복장을 정해놓는다는 관습이다. 세 번째는 코스튬을 입고 수퍼파워를 휘두르는 수퍼히어로의 반대항인 수퍼빌런이 등장하여 양자 간의 결전을 절정으로 하는 서사 구조를 기본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 세 특징 혹은 요건 중에서 앞의 둘은, 만화에서는 손쉽게 표현된다. 만화의 ‘수퍼파워’는 과장의 미학이기 때문이다. 초능력의 표현 또한 소설 문학 다음으로 경제적인 표현 수단 덕분에 손쉽게 표현한다. 반면 돈이 많이 드는 표현 수단을 쓰는 영상 문학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지드로잉가이드닷컴이라는 그림 교육 사이트에서 ‘superhero’의 예시로 든 코스튬. 하지만 이런 디자인의 코스튬이 실사로 제시되면 유치해지기 쉽다. 3D 그래픽의 경우엔 다소 허들이 낮아지긴 하지만 낮아질 뿐이다. 만화의 표현으로는 괜찮았던 코스튬이 영상에서는 유치하거나 불합리해진다. 초능력의 표현은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가 어느 이상의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역시 유치한 연출 기법에 기대야 했다. 게임으로의 컨버전은 영상의 고생에 비하면 별 거 없었다. 영상의 ‘수퍼파워’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달이었기 때문에, 같은 수퍼파워를 쓰는 게임 입장에서는 미적 디자인과 게임 기획만 고민하면 되었다. 그리하여 영상과 게임 모두 공히, 코스튬이라는 요소는 미학적 코드를 약간 틀어서 해결했다. 초능력의 표현은 기술적 발전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수퍼히어로 장르가 영웅 서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생긴 마지막 특징, 빌런과의 대결 서사는 표현형을, 클리셰를 결정짓게 되었다. 일단 대결 서사이기 때문에 기본 표현형은 액션 장르가 된다. 그래서 수퍼히어로와 수퍼빌런을 연기하는 모든 배우 및 스턴트는 다양한 액션을 소화해야 한다. 게임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로, 기본 장르가 액션으로 고정된다. 이 때문에 수퍼히어로 영화는 모두 액션 영화이거나 액션 요소가 강하며, 수퍼히어로 게임의 주류 또한 상황이 비슷하다. 수퍼히어로 영화의 성과 게임이 참고할 수 있었던 수퍼히어로 영화 장르의 역사를 보면 그 결과로 나온 클리셰의 구조를 요약할 수 있다. 영상화의 시도는 40년대부터 있었지만,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하위 장르를 집대성한 첫 작품은 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영화였다. 2003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2’는 앞선 배트맨의 성과를 좀 더 대중적인 형태로 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수퍼히어로의 캐릭터성 – 작중 세계의 구현 – 영화 서사의 성격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모델이었고, 이는 사실 원전 만화에서 명작들이 가닿은 지점이기도 했다. 팀 버튼의 1989년 배트맨 코스튬. 원전의 코스튬에서 회색과 남색 부위를 없애버렸다. 이 코스튬은 어둑한 고담시를 구현한 미장센, 심리적 불안정을 드러내는 연기와 유기적으로 맞아떨어졌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는 현실적인 수퍼히어로를 보여주려 애썼다. 이는 마블의 캐릭터 묘사 전략이기도 한데, 영화의 사실적인 뉴욕 풍경 및 스파이더맨의 오리지널 캐릭터성과도 맞아 떨어졌다. 이 두 영화의 성취를 통해 수퍼히어로 영상 문학에서 정형화된 클리셰 구조가 등장했다. 초반에는 히어로와 빌런의 오리진 스토리를 보여준다. 이후 전개에서 둘의 갈등이 형성되어 부딪히면서 액션 장면들이 나오고, 빌런의 계획을 히어로가 박살내는 절정부에서 둘의 최종 결전이 벌어진다. 히어로의 승리로 이야기가 종결된 후에는 다음 영화를 예고하는 짤막한 에필로그가 덧붙는다. 이렇게 클리셰를 완성한 수퍼히어로 영화는 2008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와 존 패브로의 ‘아이언맨’에서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정립된 서사 구조를 따라가는 한편 교묘하게 뒤틀어서 다른 용도로 썼다는 점이다. 다크 나이트 3부작은 원전 만화에서 성공했던 상징 체계 도입 전략을 써서 성공했고, ‘아이언맨’은 에필로그를 이용해 작중 세계 확장 전략을 시작했다. 다크 나이트 영화는 미국 의회도서관의 영구 보존 영화에 포함되는 걸작으로 남았다. 아이언맨의 첫 영화는 기획도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수퍼히어로 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장비 제작’을 서사의 중심에 놓는 등의 독특한 테이스트가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독자적인 성취를 이뤘다. 이 두 영화의 성취는 만화 원전의 두 회사, DC와 마블의 스타일과도 걸맞는다. DC는 수퍼히어로 장르를 개창한 회사이며, 그래서인지 영웅의 신적 면모를 강조하는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는 서사가 상징 체계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의미다. 마블은 스탠 리 이후 ‘현실성의 닻’을 독자적 스타일로 하고 있다. 현실의 독자와 유사성을 설정과 서사에 집어넣어, 독자의 감정이입을 꾀하는 전략인데, 이것이 아이언맨 이후 진행된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다만 DC 캐릭터들의 작가주의적 스타일은 이후 한참 길을 찾지 못하다가 2019년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에서 간신히 부활한 반면, 마블이 시도한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인피니티 사가의 완성이라는 확장 전략의 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수의 영상 작품이 하나의 서사로 확장 통합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그러나 현재에는 다음 클리셰로 발전하지 못하면서 목적 잃은 확장이 되어 답보 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돌파구가 될 작품을 기다리는 상태다. 수퍼히어로 게임, 시작 그리고 수퍼히어로 게임은 영상 장르가 겪은 이 모든 경험을 흡수했다. 기본적으로 게임에서의 수퍼히어로 서사 또한 만화와 영화가 먼저 만들어놓은 클리셰 구조를 따라간다. 당연한 것이, 게임은 대결 서사를 녹여내기 딱 좋은 플랫폼이다. 하지만 초창기의 수퍼히어로 소재 게임은, 서사 구조가 복잡하거나 장대하지 않았고 게임 디자인이 심층적이지 않았던 초기 게임의 특성을 그대로 공유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르는 스크롤 액션이었다. 특히 이런 게임들은 영화 시장에서 히트한 작품의 홍보용 게임이었는데, 1989년 배트맨 영화를 기반으로 한 패미컴의 배트맨 게임 시리즈가 대표적이었고, 이런 류의 게임들은 대부분 퀄리티가 낮았다. 반면 코나미의 1992년작 ‘엑스멘’은 영화에 기대지 않은 게임이었다. 여전히 장르는 벨트스크롤 액션이었지만, 익숙한 장르를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이미 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캐릭터의 인기를 이용해 충분히 히트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려 6인 플레이가 가능했던 엑스멘. 스크롤 액션 장르 다음으로 수퍼히어로가 이식된 장르는 격투였다. 역시 마블의 캐릭터들이 쓰였는데, 1994년의 ‘엑스멘: 칠드런 오브 디 아톰’, 1995년의 ‘마블 슈퍼 히어로즈,’ 바로 다음 해 나온 캡콤의 ‘엑스맨 vs 스트리트 파이터’와 이후 시리즈는 대결 서사를 납작하게 압축하면 격투 게임 디자인으로 치환 가능함을 간파한 결과물이다. 비록 캐릭터 밸런스는 엉망이었지만 캡콤의 ‘vs 시리즈’는 주욱 이어지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한다. 이 계보는 DC 방면에서는 2008년의 ‘모탈 컴뱃 vs DC 유니버스’를 거쳐 2012년의 ‘인저스티스: 갓즈 어몽 어스’로 이어진다. 인저스티스 시리즈는 수퍼히어로 게임 중 격투 장르의 최신판이다. 수퍼히어로 게임, 액션 어드벤처 스크롤 액션, 격투를 지나 수퍼히어로 서사가 게임에서 제대로 꽃을 피운 장르는, 액션 어드벤처다. 2009년 락스테이디의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은 배트맨의 캐릭터성, 원전 서사의 특성, 게임 디자인의 완성도 모두를 잡아낸 명작으로, 이후의 수퍼히어로 게임의 전형성을 제시해냈다. 하지만 이 정점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2000년, 액티비전에서 ‘스파이더맨’이 발매되었고 후속작 ‘스파이더맨 2: 엔터 일렉트로’가 이듬해에 발매되었다. 최초의 3D 스파이더맨 게임이었으며 액션 어드벤처 장르에서 전투와 웹 스윙 액션을 구현해냈다. 이 시리즈의 시도는 곧이어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발매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영화를 게임화한 시리즈와 액티비전의 2008년 ‘스파이더맨: 웹 오브 섀도우즈’, 2010년 ‘스파이더맨: 섀터드 디멘션즈’ 등의 시도로 확대되었다. 한편 2005년에는 영화 ‘배트맨 비긴즈’의 홍보용 게임 또한 유사한 성과를 올렸다. 영화에 기대는 게임임에도 2005년의 배트맨/스파이더맨의 두 작품은 다소의 완성도를 보인다. 스파이더맨은 웹 스윙 액션을 오픈월드에서 펼친다는 게임 디자인을 완성해가고 있었고, 배트맨은 연막탄 같이 환경에 맞는 도구를 사용해 적을 제압한다는 게임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둘 모두 각자의 캐릭터성을 구현해낸 성과다. 이 성과가 2009년의 ‘아캄 어사일럼’에서 시작되는 아캄 시리즈와 2018년 인섬니악의 ‘마블즈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캄 시리즈의 성취는 이후 스파이더맨 게임에서 재조합된다. 영화에서 있었던 일이 그대로 게임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마블즈 스파이더맨은 아캄 어사일럼과 함께 이후 등장할 수퍼히어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이 두 작품에서의 배트맨/스파이더맨은 원전 만화의 배트맨/스파이더맨을 체험하는, 게임 자체의 특성을 십분 이용했다. 아캄 시리즈의 수사 모드는 탐정 소설의 후예로서 “세계 최고의 탐정”인 배트맨의 캐릭터성을 반영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웹 스윙 액션 또한 같은 성격의 요소다. 수퍼히어로 캐릭터의 캐릭터 컨셉 자체를 게임 디자인에 녹여낸 것이다. 물론 프리플로우라는 간편하면서도 화려한 전투 시스템이 아캄 어사일럼에서 마블즈 스파이더맨으로 이어진 것도 성과였다. 이 두 시리즈를 통해 수퍼히어로 게임의 주류는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장르가 되었고, 이에 따른 클리셰도 정립되었다. 영화와 달리 문서의 형태로 전달이 가능한 오리진 스토리는 생략한다. 오픈월드 내지는 느슨하게 열린 형태로 연결되는 스테이지가 게임 내 공간이 된다. 액션 어드벤처에서 전투를 하며, 영상과 달리 시간 제한이 없는 게임의 특성상 빌런도 여럿 등장하기에 결전 서사도 여럿 중첩된다. 캐릭터는 롤플레잉처럼 레벨링 성장을 하는데, 이 과정을 배트맨의 장비나 스파이더맨의 수트를 업그레이드하는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 클리셰를 종합한 첫 번째 시도가 2020년의 ‘마블즈 어벤저스’다. 오픈월드는 포기한 대신 각 스테이지가 매우 넓으며, 빌런만이 아니라 히어로도 여럿 등장하며, 성장 시스템이 있고, 프리플로우 대신 진 삼국무쌍과 유사한 액션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 작품의 만듦새는 다소 떨어지긴 했으니 캐릭터별 특색을 가진 액션은 잘 표현되었고, 같은 형태가 이후의 AAA 수퍼히어로 게임에서 반복되었다. 바로 다음 해에 발매된 ‘마블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만 하나로 축소한 마블즈 어벤저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에 가깝다. 2022년의 ‘고담 나이츠’는 아캄 시리즈의 연장선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같은 해 발매된 ‘미드나잇 선즈’는 앞선 클리셰를 대부분 따르지만 장르가 X-COM 스타일의 턴제 전술인 것이 특징이다. DC 캐릭터의 레고 버전을 컨셉으로 한 레고 DC 게임 시리즈도 이런 분류에 포함된다. DC 캐릭터의 레고 버전을 이용해 게임을 만든 레고 DC 시리즈의 게임 또한 액션 어드벤처가 기본 장르다. 그리고 영화의 예에서 보듯 클리셰 정립이 완료되면 정체기가 등장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게임의 단점이 마블즈 어벤저스와 동일한 점, 고담 나이츠의 완성도가 애매했던 점, 마블즈 어벤저스와 미드나잇 선즈가 결국 흥행에 실패한 점은 수퍼히어로 게임 또한 영화처럼 다음 돌파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넓은 맵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성장의 경험은 이미 충분하다. 오픈월드에서의 액션 어드벤처는 폭넓은 경험을 보장하지만, 경계가 명확하다. 그렇다면 다른 시도는 무엇이 있을까? 수퍼히어로 게임의 다른 시도 주류의 시도와는 동떨어진 장르에서도 수퍼히어로 서사를 써보려는 시도가 있다. 가장 먼저 모바일 환경의 게임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한 다양한 게임들이 있다. 2018년에 발매하여 2020년에 종료한 ‘DC 언체인드’는 액션의 외피를 쓴 수집형 게임이다. ‘마블 퍼즐 퀘스트’, ‘마블 스트라이크 포스: 스쿼드 RPG’, ‘마블 퓨처파이트’ 같은 게임들 또한 매치3 퍼즐이나 수집 장르의 게임에 수퍼히어로 스킨을 씌운 수준이다. 이런 사실상의 수집 장르 게임이 카드 배틀의 형태로 바뀌는 시도는 이제 시작되는 중이다. 2023년작 ‘마블 스냅’은 게임성 면에서는 호평을 받았으나, 얼리 억세스로 시작한 ‘DC 듀얼 포스’는 2월 29일에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다. 한편 MMO 장르에서는 수퍼히어로가 흔하지 않다. 유의미한 게임은 ‘시티 오브 히어로즈’(COH)와 ‘DC 유니버스 온라인’(DCUO)이다. COH는 2004년에 시작, DCUO는 2011년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MMORPG 장르가 클리셰와 시스템이 완성된 후 긴 정체기를 겪는 장르여서인지 신작이 없다시피하다. 그나마 2013년에 시작한 ‘마블 히어로즈’는 핵 앤 슬래시의 MMO였는데, 2017년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선구자인 COH 또한 2019년에 결국 서비스를 종료해 유저 서버만 남았으니, 현재 수퍼히어로 MMO 게임은 DCUO가 유일하다시피 한 상태다. COH와 DCUO의 특색은 커스터마이징에 있다. 이 두 게임은 기존 히어로/빌런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인데, 그래서 캐릭터의 초능력 또한 스킬 트리 조합의 형태를 통해 자기만의 초능력 조합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택했다. 스킬 조합을 통해 자신만의 수퍼히어로를 커스터마이징한다는 컨셉은 게임 제목인 ‘시티 오브 히어로즈’와 잘 어울렸다. DC 유니버스 온라인은 COH와 같은 계열의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한다. 이는 새로운 수퍼히어로가 되어 기존 DC의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멘토로 둔다는 스토리와 어울린다. 아쉽게 끝난 장르 도전도 있다. 클래식한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 온 텔테일 게임즈는 DC에서는 배트맨을, 마블에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사용해 2016년과 2017년에 게임을 발매했다. 수퍼히어로의 요건 중에서 서사 부분에 집중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게임들의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텔테일 게임즈가 경영난으로 인해 폐업하게 되면서 일단락 되었다. 다음 지점을 향한 고민 수퍼히어로 장르에서는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공식이 하나 있다. 이 산업에서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시도는 DC 코믹스가 먼저 시도한다. 장르를 개창한 최초의 수퍼히어로인 수퍼맨이 DC의 캐릭터이며, 수퍼히어로 팀이라는 아이디어도 DC가 먼저 시작했으며, 장르의 두 번째 확장기인 실버 에이지(Silver Age)를 시작한 것도 DC가 플래시를 통해 멀티버스 서사를 들여오면서였다. 실버 에이지의 다음 시대를 연 것도 DC였으며, 영상화 시대의 방점도 배트맨 영화들이 수행했다. 반면 마블 코믹스는 시장의 혁신을 완성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실버 에이지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아이언맨인 것과, 배트맨에서 생긴 영상화 조류의 변곡점을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영화가 이어받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반면 게임에서 수퍼히어로 게임의 주류가 액션 어드벤처 장르로 정립되는 과정은 예외로 보인다. 다수의 스파이더맨 게임이 시도한 3D 오픈월드 액션의 시도가, 비슷한 시도를 한 배트맨 게임보다 더 충실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시도를 종합하여 변곡점이 된 작품이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이었고, 이 시스템을 계승해 발전시킨 작품이 ‘마블즈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은 역사의 공식대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초기의 유산을 이어온 격투 장르와, 주류가 된 액션 어드벤처 장르 외의 수퍼히어로 게임은 성과가 미미하거나 없거나 계보가 끊긴 상태다. 앞서서 영화와 게임에서 수퍼히어로 장르가 정체기라는 서술을 했지만, 기실 수퍼히어로라는 장르 전체가 현재 정체기다. 최초 원전인 만화에서는 풍부한 역사와 저렴한 표현 형식의 강점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혁신을 꾀해 왔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은 자기 복제 혹은 자기 변주의 레벨에 머무는 중이다. 그리고 만화에 비해 표현 형식을 구현함에 있어 자본이 더 필요한 영화와 게임의 경우에는, 이미 만화가 쌓아놓은 다양한 형식의 서사를 이식해 오거나 자신들만의 형식을 개척하기에는 굼뜬 편이다. 그리하여 현재 수퍼히어로 만화와 영화는 다음 단계의 성과가 어떤 것인지 제시하는 작품을 기다리는 중이다. 반면 수퍼히어로 게임은 현재 주류가 된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한계를 깨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그런 돌파구를 보여줄 작품을 기다린다. 수퍼히어로 영화는 등장 요소의 문화적 다양성을 다음 지점으로 정했고, 그 지점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쌓는 중이다. 수퍼히어로 게임의 화두는 무엇일까? 같을까, 다를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기자.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라고 확신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 커리어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애써 뺀 살이 다시 돌아온 것에 자신을 탓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돌고 도는 윤회의 쳇바퀴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통로’를 지나 풀 다이브(full-dive)

    < Back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통로’를 지나 풀 다이브(full-dive) 05 GG Vol. 22. 4. 10. [이미지1] 《MODS》 (사진:박승만) 시작하기 필자는 지난 호에서도 큐레이터 동료가 언급한 바 있는 전시, 《MODS》(2021, 합정지구, 서울)에서 장진승 작가와 프로젝트 ‘SYNC’를 진행했었다. 1) 전시를 위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서로 관심이 있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동시대 시뮬레이션 비디오게임 플레이어의 자율성, 몰입도로 초점이 맞춰졌다. [이미지2] 사이버펑크2077 SYNC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그 때는 2020년 12월로, CDPR의 〈사이버펑크2077〉이 엄청난 기대와 함께 출시될 무렵이었다. 출시까지의 8년은 기대감을 집중시켰고 발매와 동시에 갖은 논란들을 가져왔다. 그 중 출시 전까지 수년간 “오픈월드”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놓은 개발사의 언론 마케팅이 여러 커뮤니티에서 스토리나 플레이의 면면을 파헤침 당하며 다양한 공방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이버펑크’라는 이제는 대중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문화코드에 대한 기대함 또한 빼놓을 수 없었는데, 많은 영화나 게임에서 이미 너무 많이 그려진 적이 있는 이 세계를 얼마나 더 새롭고 황홀한 그래픽과 아트웤으로 완성할 것인지가 게임을 기다리는 게이머들의 또 다른 설렘이기도 했다. 게임이 출시되고 거세게 일었던 일련의 이슈들을 들여다보며 필자는 게이머들에게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하면 이제 이동의 자유는 기본이고, 물리적, 감각적으로 젖어 들어갈 수 있는 환경과 함께 무궁무진한 상호작용이 보장되어 있어야하며, 플레이어의 창발적 플레이 또한 시도해 볼 수 있는 그런 방대한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슷하게 의미가 부여된 ‘이머시브 심(Immersive Simulation)’과 같은 게임 장르가 이미 호명되어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RPG에 기대하는 바가 확장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2 ) 접속과 동시에 게임의 가상세계로 몰입이 가능하며, 피부 가까이에서 그것을 느끼고, 시스템 안에서 적극적인 수행자로서 개인의 마음과 자유에도 또한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접속-되기 [이미지3] 〈존 말코비치되기〉 포스터 “Ever want to be someone else? Now you can.” - 영화 〈존 말코비치되기(Being John Malkovich)〉 (1999) 게임으로의 ‘접속’이라는 건 마치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속 ‘통로’로 물리적 비유가 가능하다. 영화의 주인공 크레이그 슈와츠(Craig Schwartz: 존 쿠삭 분)는 어느 날 다니고 있는 회사의 ‘딥 스토리지Deep storage’에서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15분간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몸으로 감각하며, 온전히 그의 삶을 가상체험 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한다. 생계를 위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동시에 무명의 마리오네뜨 인형술사였던 크레이그는 그 통로를 통해 말코비치의 주체가 된다면 우울한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 꿈을 이루고 짝사랑하는 맥신(Maxine: 케서린 키너 분)의 마음 또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말코비치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고 원하던 바를 이룬다. 말코비치의 머리에 들어간 또 다른 사람인 그의 아내 라티(Lotte Schwartz: 카메론 디아즈 분)는 그 통로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생의 사랑을 이루게 된다. 이 영화에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 알 수 없었던 것들을 타인되어 극복하게 되고, 성취하게 된다. 이 타인의 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영화적 설정은 ‘자아와 타인이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존재하는가, 경험을 한 육체와 경험을 기억하는 의식 중에 자아를 구성하는데 더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이며 아득한 질문을 상기시키면서도 동시에 어쩌면 언제나 인간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는 상상을 별스럽지 않게 항상 하고 있지 않은가, 항상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통로’로 풀 다이브(full-dive) [이미지4] 장진승,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2021 스틸컷 장진승 작가의 13분 25초 길이의 영상작업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은 등장인물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에서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감각이 없었던 상태에서 점차 들리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등장인물 ‘나’는 본인의 감각을 의심하면서도 그 곳이 어딘지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리는 말소리와 빗소리에 집중한다. 사실 그는 디지털 게임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인데, 첫 장면에서는 본인이 현실에 존재하는지 가상에 존재하는지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다가 빠르게 청각과 시각의 감각을 획득하면서 본인이 있는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래픽으로 구성된 특정한 세계의 안에서 그의 본질과 존재하고 있는 위치를 알아내고, 주어진 세계 밖을 넘어가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화면은 1인칭과 3인칭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그와 밀착하기도 했다가 멀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화면의 변화가 몰입을 위한 최적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접속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5,6] 장진승,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2021 스틸컷 스스로 존재하는 곳에 대한 지각적 신념을 갖게 된 영상 속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예측가능하다고 하면서 현재 그가 존재하는 가상현실이 아닌 다른 특정 시공간으로 자신을 ‘전송’하고자 한다. 영상의 말미에는 실험실 같은 곳 유리창 너머에서 다른 차원에 존재할 ‘그’와 같은 인물을 만들고 있는 또 다른 ‘나’들이 등장하며 끝난다. 마치 ‘통로’에서 빠져나와 나로 돌아온 것 같달까. 작품의 제목이 주지하듯 작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인지하게 되는 ‘나’의 경험을 ‘망상 현실’로 규정하고자 했다. ‘망상’은 ‘현실’을 전제하지 않는, 그래서 양립불가능한 개념이지만, 유효한 것으로 병존시켜놓음으로써 “이 불안한 동시에 유연하기도 한 자기 파열의 내적 구조만이 서로 다른 차원에 놓인 세계들에 자유로이 동기화 할 수 있는 ‘의식 연동’의 가능성을 내재할 지도 모른다” 3) 는 명제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수잔 손탁(Susan Sontag, 1933-2004)은 역사적으로 ‘기예’들이 예술로 승격화 되었던 첫 번째 ‘신화적 예술’의 탄생 이후 예술은 보다 복잡하고 비극적인 것이 되었다고 언술한 바 있는데, 이를테면 단순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긍정하는 의식에서 머무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예술은 (단순한) 의식의 표현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생겨난 의식의 해독제(antidote)”인 셈이다. 4) 가상현실에서 만들어진 가상인간이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들이 종종 눈에 띄는 요즘, 가상현실로의 풀 다이브는 가능한 것인가라는 이 글을 시작하는 질문은 꽤나 주관적인 답안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고 그것에 일루젼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쫓는 것은 시각예술에 있어서 기실 늘 중요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해에 이어 장진승 작가와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다양한 분과에서 더 매끈하게 열려가고 있는 ‘통로’에 관하여, 그 현상에 관하여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 패치 후 또 다른 궤적을 그려볼 예정이다. 1) 큐레이터-게이머 동인 모즈(Mods)의 전시 《MODS》 관련 지난 아티클,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2&match=id:65, 김세인,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GG vol.3. 2) 유명 유투버나 위키, 개발자들이 정리한 바로는 ‘몰입가능한 거대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제시된 시스템과 규칙을 활용하여 창발적 플레이가 가능한 물리엔진과 인공지능’을 갖춘 ‘선택과 결과에 방점이 찍힌 비선형적 디자인(을 지향하는 형식)’의 게임을 말한다. [Immersive Sim]https://www.giantbomb.com/immersive-sim/3015-5700/ [The Comeback of the Immersive Sim] ]https://www.youtube.com/watch?v=kbyTOAlhRHk 3) 작가노트 참고. 4) 수잔 손택, 「침묵의 미학」,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 pp.11-16 참고.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 멤버) 구윤지 유미주의자이지만 항상 카니발적 그로테스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이쿤류의 게임들을 좋아해서 척추가 망가졌다. 게임이든 뭐든 궁금한건 못 참아서 빠르게 엔딩을 보고 자주 새로 시작한다.

  • 9

    GG Vol. 9 대중문화상품으로서 오랫동안 자리해 온 디지털게임에서 결제양식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결제와 맞물리며 게임이 변화해 온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현질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대두되는 디지털게임의 제 문제를 현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다. Beyond the K-Game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Read More Disco Music as the Vestige of a Failed Revolution: Disco Elysium The title of Disco Elysium, a highly controversial role-playing game that came out in 2019, does not tell you much about what kind of a game it is or what it's about. In fact, it's not easy to deduce why the word "disco" is included in the title of the game when its story centers around a derelict alcoholic detective investigating a murder in the port city Revachol, a place of mixed industrial prosperity and dilapidation. Read More The challenges of subscription-based gaming in Europe The last 15 years have witnessed major changes in the way we design and consume games made possible by better and faster internet connections, and new (mobile) technologies. Where computer games were once bought as physical copies in a retail shop, and then required the player to spend hours in front of the family computer or gaming console of the living room, games can now be played everywhere and at any time. But this has not only changed how we consume games, but also how games are designed and put to market. A range of very different new business models and monetization schemes have emerged such as games-as-service, microtransactions, cloud-gaming, in-game advertising along with collectibles and NFT´s and so forth. Read More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디지털게임은 그 출발점부터 시장에서 상품으로 규정된다는 속성과 긴밀한 연계를 이루며 발전해 왔습니다. 제작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이 매체는 정말 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그 소모되는 자원은 시장의 기능에 의해 충당되기에 게임의 속성에는 지속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개입합니다. Read More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PD-자문위원의 코멘터리 대담 지난 10월 10일, EBS에서 만든 게임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참조: https://youtu.be/5LWXpmdV_BU) 일반적인 게임 다큐멘터리처럼 게임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게임의 본질과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트렌디한 연출에서부터 방송 직후 유튜브에 즉시 공개한 것까지, 제작과정과 유통과정 모두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공개된 유튜브의 댓글에는 ‘제작자가 게임에 진심’이라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Read More [인터뷰] 구독 서비스가 게임에 가져올 변화: 스튜디오 사이 유재현 대표 넷플릭스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에 기꺼이 구독료를 내고 영상물을 시청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넷플릭스와 같은 게임 구독 서비스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게임 구매와 다운로드 형식이 ‘구독 서비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은 글로벌 게임 업체인 소니와 닌텐도였다. 지금은 애플까지 합세해 게임 구독 서비스를 둘러싼 플랫폼 경쟁이 점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게임 구독 서비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게임 구독 서비스가 기존의 게임 구매나 다운로드 형식을 대체하게 된다면, 이러한 유통 방식의 변화는 게임 텍스트에 어떤 영향을 줄까? Read More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Read More 논모던 워페어nonmodern warfare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개자의 증식이 전쟁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의 일상적인 세계는 때때로 전쟁보다도 불투명하다. 물류와 인프라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 팽배하지만, 역설적으로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는 (아이패드처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 아래서 가시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팬데믹을 거쳐 급격한 기후 변동까지, 2020년대의 우리는 마치 이 모든 비인간 행위자들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세상에 등장하기라도 한 듯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Read More 덤덤한 덤, 쏠쏠한 덤 : 덤으로서의 게임들 덤은 언제나 반갑지만, 플레이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쏠쏠한 덤인지 덤덤한 덤인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는 방향도 비용을 치르도록 강제하는 것에서 시간을 쓰기 편하도록 보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꽤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이다. 무수히 많고 많아질 게임뿐 아니라 영상과 음악을 비롯한 디지털 콘텐츠들이 하루 24시간 중에서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Read More 독점 게임의 새 지형도: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Read More 문예진흥법 개정: 게임이 예술 되어 돈이라도 있고 없고 예술인복지법이 언제 어떻게 개정될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구체적인 논의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게임의 예술화에 있어서 한국은 이제 첫 번째 페이지를 연 것이고, 단순히 법 한두 개를 개정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인 업계 모니터링과 철학적 담론 탐색이 있어야 하며, 그 결과는 향후 여러 번의 개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Read More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서바이버즈-라이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단순히 간단하고 쉬운 반복 플레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즐거움은 게이머가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장르가 10, 20년 후까지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표절, 모방 게임이 쏟아지고 있고, 게이머들은 이 행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무분별한 장르의 남용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Read More 부분유료결제는 영원할 것인가? 이처럼 2022년의 연말을 맞는 지금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존재하는 거래 행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 플레이와 밸런스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사업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개발자의 입장은 늘 조심스럽다. 유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며,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트렌드를 선도하는지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Read More 어려움에 직면한 유럽의 게임 구독 서비스 스태디아는 실패했고, 엑스박스 게임패스는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게임팬들로부터 어느 정도 회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서비스가 미래 시장성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오늘날 게임 시장에서 하드코어 게이머는 소수다. 유럽에서 게임은 나이를 뛰어넘어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 되어있는 활동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6~60세 연령대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많은 수가 아마도 휴대폰으로 무료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그친다 할지라도, 따라서 현 시점에 클라우드 게임이 그리 매력적인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구독 기반 게임의 부상은 그리 먼 시점의 일이 아닐 수 있다. Read More 적정한 게임가격이란 무엇일까? 흔히들 스팀 라이브러리를 두고 하는 농담에는 ‘옛날에는 게임을 사서 안 했고, 요즘에는 게임을 사서 안 한다’는 말이 있다. 오랜 불법복제가 만연했던 시대를 지나 ESD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맞은 PC게임 이용자들은 한때는 게임에 돈을 내지 않았고, 지금은 돈을 써 놓고도 막상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뒤튼 말이다. Read More 현질의 탄생, 새로운 플레이의 탄생: 〈현질의 탄생〉 서평 지금의 게임 플레이가 더 이상 게임의 시공간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임 텍스트-플레이어 간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납금 플레이 개념이 갖는 타당성과 확장성은 크다. 실제 산업자본의 욕망 하에서 비자율적으로 혹은 다분히 교섭적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는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전혀 즐겁지 않다면 게임을 지속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지속하는 플레이어들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적 당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질에 기인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어떤 플레이가 그냥 별일 아닌 것이라 해버리면, 그 말은 게임이 그 이상의 의미있는 경험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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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Game for Young Men

    < Back No Game for Young Men 20 GG Vol. 24. 10. 10.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64ec6d72-3c26-4dc7-b6bc-91c99e7c0b02 Unfortunately, I am not one of the “young men” nor do I have kids—yet. So I felt a bit uneasy when the Game Generation (GG) editorial team first asked me to write about recent trends in the game industry with a focus on children's gameplay. My initial response to the team was, “How about finding a new writer who’s a parent, someone who has kids?" I tried to politely decline the offer. However, the editor-in-chief replied, “Wouldn’t it be more objective to discuss this issue from the perspective of someone without kids?” And there I was, realizing not only how excited we were about this topic but also how cleverly they had lured me into it. Well, at least I was once a child myself. I belong to the South Korean generation that was once called the “PC-bang Zerglings,” named after a unit in the Starcraft (Blizzard, 1998) game series. It was the mid-2000s, a time when Kart Rider (Nexon, 2004) was seen as a nationwide kids' phenomenon in South Korea. Every Saturday, I would rush to the PC-bang with my classmates. I’ll probably never forget the experience of eagerly pressing the "Shift" key (for drifting in Kart Rider) amidst the haze of acrid cigarette smoke (FYI, smoking was still allowed in those places back then).Online games like Lineage (NCsoft, 1998) and Mu (Webzen, 2001) were widely popular among adult players in Korean PC-bangs at that time. There were also several games that kids could play, such as Maple Story (Nexon, 2003), QPlay (also known as Quiz Quiz) (Nexon, 1999), and Mabinogi (Nexon, 2004). Of course, some kids were eager to move past their childhood and went straight to playing FPS games or more 'adult-like' MMORPGs. However, there was always one game that every kid knew how to play: the legendary Kart Rider. * Kart Rider was truly a nationwide form of entertainment enjoyed by people of all ages in South Korea. At the heart of this phenomenon were the young players. Kart Rider was incredibly popular in Korea at the time. The magazine “Cine 21”, a highly regarded publication that covers a wide range of cultural sectors like films and media, once referred to the game as “Kookmin” (meaning “national” or “of the people”) due to its widespread acceptance among the Korean public [1] . The magazine attributed the game’s popularity to its "child-like play experience", highlighting its simple gameplay mechanics and charming cartoon-style characters that stood out from previous racing games. While some critics pointed out similarities between Kart Rider and Nintendo’s Mario Kart series, this controversy did not concern its players, especially the young kids already enjoying the game—myself included. Kart Rider marked a pivotal moment in Nexon’s history, peaking at 200,000 concurrent players (in a country of 50 million people), dominating the PC-bang market, and reaching 10 million registered accounts in 2005, within just a year of its release. In 2023, after 18 years of service, Kart Rider was replaced by its sequel, Kart Rider: Drift, though the reception to this successor has been mixed and is still unable to surpass the legacy of its predecessor. Jung-ju “Jay” Kim, the founder of Nexon, once remarked, “It is amazing to see how children and their parents willingly spend their own money and wait in long lines in queue to enjoy Disney content”, adding, “They do so happily of their own will, without being forced or being lured” [2] . This reflected Nexon's approach to its young players in the 2000s: to create games that would naturally attract kids (and their parents), encouraging them to engage and enjoy happily at their own will. This philosophy is evident in many of Nexon’s early 2000s game portfolios, with Kart Rider at the forefront. Another major success that followed was Maple Story, although I won’t delve into the game’s ups and downs over the years, like recent controversies around Maple Story’s heavy and toxic micro-transactions. Interestingly and ironically, Nexon is currently researching and developing a blockchain version of Maple Story [3] . There was a time when the world felt simpler, and Koreans shared similar experiences nationwide. The label “Kookmin (people of the nation)” was frequently attached to various phenomena in the 2000s—Kookmin actors for acclaimed actors, Kookmin popular dishes for widely-enjoyed new menus, and famous Kookmin songs that everyone listens to together. The game Kart Rider was indeed among these “Kookmin” icons. However, two decades later, in the 2020s, the world has become more diversified, complex, and arguably more fragmented. People no longer gravitate toward a single cultural trend; instead, the ability to recognize and embrace individual preferences has become more important. Henceforth, the era of “Kookmin” is over. For example, my grandmother wouldn’t know Pani Bottle or JB Kwak, some of the most famous YouTubers among South Korean Gen Z. Similarly, Gen Z has little interest in her favourite trot music shows, a genre that is popular among Korean boomers. With that in mind, here’s a quiz for our adult Korean readers: Have you heard of “Sibling War (also known as “hhnm”)? This YouTuber, with over 2.8 million subscribers, is overwhelmingly popular with South Korean kids, particularly those in elementary school. As such, mass media is no longer what it once was. There is no longer a singular, large-scale media that is embraced by all generations. In the past, Koreans would rush home to watch the same K-drama on TV and eagerly discuss the plot with friends and colleagues the next morning. Those days are now a thing of the past. It has become increasingly difficult to know what kinds of content different segments of society, particularly children, are consuming. Combined with the country’s historically low birth rate (Korea has the lowest birth rate among OECD countries, with 0.7 births per woman in 2023), Korea is becoming a less appealing place for young people as their population rapidly declines. It is now harder for adults to meet, interact with, and understand the younger generation. Unless you have children, it’s nearly impossible to know what Korean kids are enjoying or demanding these days. Fortunately for me, I have a nephew. So I decided to "interview" him to find out what content kids are currently into. Soon after I started the conversation, we quickly realized we had one topic in common; the legendary Pokémon series. With my excitement, my nephew said, “Yes, I also know the 1st generation Pokémon!” But the conversation didn’t last long. It soon became clear that, aside from Pokémon, we didn’t share many common media experiences. Readers might want to try this with their younger relatives and see how many things they have in common. But be prepared for responses like, “Who watches The Haunted House (2016) these days?” or “Nah, Pororo the Little Penguin (2003) is for babies!” (Even if your nephew might still look like a baby to you.) And neither of these are digital games. If we take a look at games, there are even fewer games to talk about with children these days. One reliable source on this trend is the "Comprehensive Report on Children and Adolescents’ Game Usage" published by the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in 2023. The study found that 65.2% of children and adolescents in Korea play some form of smartphone game. Popular titles include sandbox games like Minecraft and Roblox (23.7%), followed by first-person or third-person shooting games (23.5%) such as Brawl Stars, Valorant, and Sudden Attack [4] . Game genre (%) RPGs (e.g., Cookie Run: Kingdom, Dungeon Fighter Online, Maple Story, World of Warcraft, Blade & Soul, Mabinogi, etc) 8.9 AOS games (e.g., League of Legends, Arena of Valor, Dota, etc) 9.2 FPS/TPS games (e.g., Brawl Stars, Sudden Attack, PUBG, Overwatch, Valorant, etc) 23.5 RTS games (e.g., Clash of Clans, Clash Royale, Starcraft, etc) 2.6 Sports games (e.g., FIFA, Director Manru, Magumagu, FreeStyle Street Basketball 2, etc) 10.5 Casual games (e.g., Candy Crush Saga, Friends Pop, etc) 3.8 Sandbox games (e.g., Minecraft, Roblox, etc) 23. Others (e.g., web games, board games, racing games, arcade games) (e.g., Kart Rider, TalesRunner, Crazy Arcades, Animal Crossing: New Horizons, Modoo Marble, Super Star, etc) 17.8% * Games that are most enjoyed by children and adolescents in Korea (source: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2023) Sandbox games are those where players can freely create their own worlds and experiences, much like playing in a sandbox. Roblox, for example, is a platform accessed by over 150 million children globally each month. Essentially, it’s difficult to know what's trending in the virtual world of Roblox without logging in and observing or participating, like how you wouldn’t know what’s trending on YouTube without understanding how the platform functions. These days, children are exposed to a wide range of games within the Roblox platform and the Roblox world itself is regarded as a virtual gaming experience. According to my nephew's keen analysis, one of the most popular games on the Roblox platform right now is “Adopt Me!” However, he says there are “too many (naïve) kids” in the game, so he recently switched to another Roblox game called “Murder”, where the players reportedly behave a bit better. Overhearing our conversation, my nephew’s guardian expressed concern about the violence in “Murder” and immediately suggested banning him from playing—and seeking my support. But to secure the continuous access of knowledge from my informant, I responded, “Nah, he will be fine”. It’s also interesting to see that Sudden Attack (Nexon, 2005) is still listed as one of the games enjoyed by minors today. Perhaps that is because this new generation no longer gets game-related information from TV or magazines as we did in the past. Instead, minors in South Korea seem to discover games by watching game streamers and influencers that they follow. Recent studies have also found that these young players tend to enjoy games in a relatively reactive manner. For instance, they start playing the game when it becomes a common topic of interest within their social circle, like school friends. Coming from that context, it appears Sudden Attack’s old-style polygon graphics, as the game was released nearly two decades ago in 2005, doesn’t seem to bother young Korean players at all—as they value social experience through the game, and thus, as long as the game is enjoyable with their peers. My nephew (currently my only source of information) is too young to play Sudden Attack, as the game is rated 15+. But it was clear that he wasn’t interested in playing the game anyway because no one in his immediate schoolmates was playing the game (or even allowed to play it). Then it’s not worth the effort to go through the hassle of getting parental consent, installing and playing the game when there’s no social benefit thereof. Come to think of it, I think accessing the game by fake-using our parent’s ID was much easier back then in the 2000s before the time of two-factor authentication—I’ve been there, done that. According to Gallup Korea Research Group, 44% of males and 13% of females in their teens listed “gaming” as their favourite hobby [5] . This evidently indicates that gaming still remains a popular leisure activity among the younger generation. However, it’s unfortunate that fewer and fewer new games are being released in Korea targeting the younger audience. If we refer back to the 2023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report, the only Korean game title on the list is Cookie Run: Kingdom (Devsisters, 2021), and that’s already three years old. It seems the Korean game industry no longer finds interest in making games for children with the decline in Korea’s birth rate and the overall number of younger population. Perhaps it’s no longer a profitable business. I can already see that it’s probably easier to pitch your game business to shareholders by saying, "We’re making games for adults in their 40s with disposable income" than saying that you’re interested in making games for teenagers. There was a time when games were considered childish—something that only youngsters would enjoy. Back then, kids would gather at arcades and PC-bangs. Now, it’s far less common to see young people in those places perhaps due to the declining number of children or the decline of arcades and PC-bangs. Or, it’s perhaps both. Let’s take a look at mobile games. In the Korean Apple App Store, the top five game apps in the “Kids” section are: YouTube Kids in first place, followed by the colouring game Quiber in second, the sandbox game Toca Boca World in third, Band Kids in fourth, and i-Nara in fifth. To me, only Quiber and Toca Boca World can really be considered “games,” while the others are more like social media or e-learning apps. YouTube Kids is also ranked first in Google Play’s kids’ section. Notably, both major mobile app platforms in Korea are dominated by apps focused on providing wholesome, educational content for minors. It’s interesting that Roblox, arguably the most popular game among children, isn’t on the list. It is directly provided by its developer, Roblox Corporation, and it is filled with games made by young creators. This makes me wonder: Is this a country where games for children can and will continue to exist? Will we ever see new games targeting younger players emerge in Korea again? * App Store’s “Kid” section, retrieved on May 31st 2024. There are hardly any games on the list. [1] Sang-woo Park, 「How the Kart Rider became a “kookmin” game 」<카트라이더>는 어떻게 국민 게임이 되었나)」, Cine21, 2005.09.16. [2] Jae-hoon Kim, Ki-joo Shin, 「PLAY: Gamer kids who became the founders of global game corporation – the story of Nexon (플레이: 게임 키드들이 모여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까지, 넥슨 사람들 이야기)」, 민음사, 2015.12.7. [3] Jae-seok Kim, 「Nexon is dreaming of Blockchain-based Maple Story (넥슨이 그리는 블록체인 메이플스토리의 꿈)」, Thisisgame.com , 2024.03.23. [4] 「Comprehensive Report on Children and Adolescents’ Game Usage 2023 (2023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 Korea Creative Contents Agency, 2024.03.05. [5] 「50 things that Koreans enjoy – cultural sector (한국인이 좋아하는 50가지 [문화편])」, Gallup Korea Research Group, 2024.05.2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 Back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20 GG Vol. 24. 10. 10. "Video games are great. They let you try out your craziest fantasies. For example, on The Sims, you can have a job and a house." "비디오 게임은 위대하다. 게임은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정신 나간 공상까지 이뤄준다. 예를 들어 <심즈The Sims>에서,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발견한 익명의 농담 * 심즈3(The Sims™ 3) 스팀 소개 이미지, EA 제공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임”의 기획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세계를 구하거나 제트기를 조종하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심즈>에 흥미로운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다(Barnes).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이라고 일컬어진 대목은 물론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 공상은 <심즈>에서 플레이어가 서는 출발선과 관련을 맺는다. <심즈>를 최초로 시작할 때, 플레이어는 ‘심’이라고 불리는 아바타를 하나 혹은 여럿 만들어낸다. 심의 성격과 취향, 생김새를 빚어낸 플레이어는 주어진 초기 예산을 바탕으로 그의 심들에게 거주지를 지정한다. 자신의 거주지를 거점으로 심들은 <심즈>의 가상 세계에 진입하고 직업을 구해 본격적으로 생계와 살림을 꾸려 나간다. 심의 생계와 살림은 ‘허기’, ‘용변’, ‘재미’, ‘수면’, ‘위생’과 ‘사교’로 대표되는 그들의 여섯 가지 욕구를 충족하거나 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를 넘어서 다종다양한 야망을 이룰 수 있도록 심의 일상을 구조화해 나갈 수 있다. 『커밍 업 쇼트』에서 제니퍼 M. 실바(Jennifer M. Silva)는 포스트산업 노동 계급의 세대가 “성인이 되는 경험”을 “블루 칼라 일자리가 아니라 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유동성과 유연성”으로서 정의하는 보편적인 경향을 확인한다(실바 54-55). <심즈> 시리즈는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중산층 교외의 삶을 테마로 삼아 출발했다.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로 끝나는 펀치라인은 플레이어의 심에게 주어지는 출발점 자체가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의 영역에 속하게 된 유동성과 유연성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현실에서 불가능한 바를 게임 속에서 이룬다는 대리 충족의 논리는 우리가 라이프 시뮬레이션, 혹은 생활 시뮬레이션을 유희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깔끔한 설명을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우리가 가상 세계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기를 감수하는가? 그게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이 확정적으로 열려 있는, 개연성 있는 허구적 세계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더 좋은 삶’에 대한 정의는 물론 개인화되고 다양화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떠한 정의에서나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그 좋은 삶의 가능성을 유지하는 목적 지향적인 행동으로 의미 지어지고, 반복할 만한 가치와 쾌감을 띄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진짜 현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한 동일성을 근거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설명은 생활 시뮬레이션의 다양한 플레이 양상 중 한 가지 버전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여러 생활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적어도 <심즈>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력한 동일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아바타를 가상 세계의 중심에 두고서 등 뒤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혹은 아바타의 1인칭 시점으로 주변을 관망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다. 하나의 아바타만 조작하는 플레이가 장려되는 것도 아니다. <심즈 4>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시점에 일치된 카메라로 심들이 자리한 공간을 원형 극장처럼 360도 돌려가며 관망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정밀 카메라를 조작하는 듯한 감각으로 한 아바타의 움직임을 쫓거나 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고, 하나의 심, 하나의 가정만을 조작하지 않고 다른 동네에 사는 여러 가정을 돌아가며 조작할 수도 있다. 거주지만이 아니라 심들이 방문할 수 있는 술집, 클럽, 헬스장을 지을 수 있고, 심의 생활을 플레이하는 도중 잠시 시간을 정지시키고 인테리어를 바꿀 수도 있다. 이러한 가단성은 ‘놀이터’, ‘모래사장’ 혹은 ‘장난감’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다루는 논리를 뒷받침한다. ‘놀이터’의 은유는 게임 연구가 곤살로 프라스카(Gonzalo Frasca)의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시뮬레이션의 교육적이고 윤리적인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던 프라스카는 카이와와 피아제의 개념을 참조하며 “루두스”와 “파이디아”의 이원론을 비디오 게임에 도입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루두스적인 게임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가지며 “체스보드”, “운동장”, “축구장”과 같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게임이라면, 파이디아적인 게임은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갖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역할극과 같은 놀이 행위다(프라스카 11). 그는 ‘루두스’의 위상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고 “파이디아”의 위상이 최종 심급이며, “괴물과 트롤”이 아니라 “우리와 매우 친숙한 실제 사람”을, 그리고 그들이 삶을 관리해가는 체계를 모델화했다는 점에서 <심즈>가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이슈들”을 다루기에 적합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프라스카, 46). 프라스카는 “루두스”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 “파이디아”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의 동기, 이 특정한 유형의 게임을 함으로부터 얻어지는 쾌와 재미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조작을 촉구하고 전제하는 매체의 잠재력을 논의할 때, 게임 디자인에 호응하거나 그것을 ‘오용’하는 조작의 동인, 곧 관습적 경로를 따라가면서 변주하는 쾌감을 살피지 않는 건 반쪽짜리 논의가 될 테다. ‘놀이터’의 은유를 통해 말하자면, 젠더화된 소꿉놀이, 아름다운 모래성을 짓고 파괴하는 손짓, 이파리와 자갈 따위를 배치해 개미의 진로를 방해하는 감각 등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거나 강화하며 재미를 만들어내는지 질문하는 게 역시 필요한 것이다. 오히려 프라스카가 시뮬레이션의 급진적 가능성이 충분히 개화되지 못한 형태로서, 혹은 보편화될 수 없는 형태로서 평가했던 플레이 유형들로부터 우리는 <심즈> 시리즈와 같은 생활 시뮬레이션이 선사하는 재미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 대한 프라스카의 언급을 살펴보자. 심들의 생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스냅사진으로 찍을 수 있도록 하는 이 기능을 플레이어는 디자인된 의도를 넘어서 “그들의 심들이 주연하는 스토리들을 창조”하려고 활용한다(프라스카, 228). 플레이어들은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는 어떤 상황을 창조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고 “텍스트적인 주석”을 덧붙이는 등의 편집을 가미함으로써 “스토리보드”를 구성하고 이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한다(프라스카 ,81). 심들의 자율성으로 인해서, 가족 앨범 스토리의 시퀀스에 추가할 만한 제대로 된 스냅사진을 찍는 건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요될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심즈>의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시간과 정성을 감수하고 스냅사진 기능을 활용해 대체로 “통속적이거나 멜로드라마적”인 “선형적인 내레이션”을 만들어냈다(프라스카, 81). 게임이 고정된 내러티브로 환원되는 걸 경계했던 프라스카는 “만화를 창조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는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평하며 좀 더 친숙한 영상과 애니메이션의 문법적 관습에 기댄 이러한 실천들이 시뮬레이션이란 매체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표현된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Frasca 82). 하지만 프라스카의 이러한 부인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포토앨범’ 기능을 활용하는 강력한 동인이 시뮬레이션된 세계로부터 선형적인 이야기를 함축한 시퀀스를 발생시키고자 하는 욕구이며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에서 오는 쾌락임이 드러난다. 프라스카의 논의는 주로 심즈 프랜차이즈의 첫 판본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는 UI와 그래픽, AI의 정교함 상에서 기술적으로 발전했고, ‘포토 앨범’의 기능 역시 정교화되었다. ‘심즈 일지’로 불리는 스토리텔링 형태도 이에 발맞춰 복잡성을 획득했다.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스크린샷 기능, 모더(modder)들이 배포하는 특수한 조명 효과, 포토샵 보정 기능 등을 활용하여, 플레이어들은 심들의 반복되면서도 변화하는 일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시퀀스를 가지도록 배치한다. ‘일지’라는 규정은 개인화된 경험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대체로 ‘심즈 일지’는 ‘나’를 주어로 하지 않고 심에게 부여된 가상의 이름을 주어로, 즉 3인칭으로 서술된다. 플레이어들은 아바타에 동일시되기보다는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카메라 감독과 같은 위치에 선다. ‘심즈 일지’의 제작 과정은 특정 시퀀스나 내러티브를 환기하는 요소들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주변 환경을 조성하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서 움직이는 심들을 수고스럽게 조작함으로써 이뤄진다. 하지만 ‘심즈 일지’를 만드는 유저들은 이러한 조작 과정을 최종적인 내러티브 산물로부터 세심하게 삭제한다. <심즈 4>의 경우 ‘심즈 일지’를 더욱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게임 내에 스크린샷과 녹화 기능을 단축키로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심들을 기동하고 조작하는 버튼 인터페이스와 ‘욕구’와 관련된 UI를 편리하게 배제한 채로 스크린샷을 저장할 수 있다. 저장된 스크린샷의 개연성 있는 배치와 텍스트 주석을 통해서 ‘일지’는 심들에게 개인화된 역사성을 부여한다는 환상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환상을 지탱하는 강력한 근거인 기록물은 버튼을 누른 뒤 다시 하위 버튼을 누르는 식의 마우스 연타, 특정 행동을 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의 계측, 원하는 상황을 연출해 내도록 돕는 모드의 다운로드 등 게임 내외적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조작을 거쳐 연출되지만, 이러한 조작 절차는 자주 비가시화된다. ‘심즈 일지’로부터 우리는 자신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조작 과정이 전면화되기를 원치 않는 플레이어들의 소망을 읽을 수 있다. 인터페이스를 배제하는 스크린샷의 기능은 ‘포토앨범’ 스토리텔링에 이미 잠재되어 있던 수요에 게임 디자인이 반응한 결과다. 게임사에서 새로운 DLC를 예고할 때 보이는 티저 이미지 등에서도 역시 조작 인터페이스는 드러나지 않게 처리된다. <심즈> 시리즈의 트레일러들은 마우스와 키보드 클릭이 필요치 않은, 일일 연속극의 예고편을 차라리 연상시킨다. ‘심즈 일지’를 작성하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상호작용하며 시뮬레이션을 조정해 나가는 차원의 인터페이스는 기록 과정에서 전면화되지 않기를 넘어서 은폐되어야 한다. 시뮬레이션된 세계가 띄는 허구적인 리얼리티는, 이 시뮬레이션의 전제 조건들과 설정들을 조작하는 인터페이스의 은폐를 통해서 추체험된다. * The Sims 4 그로잉 투게더: 공식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The Sims 제공 은폐를 실천하는 다양한 전략들 중 흥미로웠던 심즈 일지의 양태는 심들이 하는 대화를 상상적으로 구성하고 스크린샷의 하단에 ‘자막’을 달아서 표시하는 형식이다. 심들은 옹알이처럼 들리기도 하는 “심리시(Simlish)”라는 가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걸로 가정되어 있는데, 자막 형식의 사용은 마치 실재하는 언어를 플레이어의 모국어로 번역해낸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 같은 편집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없는 체하는 기만과는 다르다.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은폐의 전략들을 활용하면서, 플레이어는 ‘현실’에 대한 편집자이자 촬영 감독의 자의식을 표현해낸다. 게임 커뮤니티와 게임 내 상호작용을 포괄하여, 게임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자의식의 표현이 <심즈> 시리즈가 전하는 쾌의 중핵을 이룬다. 앞서 언급한 ‘모더’들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심즈> 시리즈는 모딩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랜차이즈다. 나는 <심즈 4>를 정확히 밝히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플레이했는데, 이는 <심즈 4>가 시리즈 중 가장 진보했거나 흥미로운 판본이기 때문은 아니다. 심즈 유저들과 모더의 커뮤니티가 현시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타냐 시보넨(Tanja Sihvonen)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모딩(Modding)은 “공식적으로 발매된 컴퓨터 게임, 그 게임의 그래픽과 소리, 캐릭터를 사용자 정의 콘텐츠를 통해서 확장하고 변경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리키는데, 이는 “새로운 게임 메카닉, 새로운 게임 플레이 레벨”을 창조하는 것까지 의미할 수 있다(Sihvonen 6). 모더들은 게임 플레이 상의 편의성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증대하기 위하여 게임의 전제들을 뒤바꾸기도 하고, 심의 외양과 건축물을 꾸밀 수 있는 사용자 정의 콘텐츠(custom contents)를 창조한다. <심즈>의 모더 역시 모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코딩 절차나 포토샵, 블랜더와 같은 툴의 사용을 전면화하기보다는 허구적 리얼리티의 편집자로서 자의식을 표현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취한다. 그 전략들이 자주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현대적 직업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표현된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가령 게임 속 심에게 입힐 수 있는 새로운 복장들을 만들어내는 모더들은 심들의 옷을 갈아 끼우는 게임 플레이 기본 화면을 통해 자신의 옷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단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심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모델 화보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공유 페이지의 전면에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Sentate와 같은 모더들은 그가 제작한 의상 모델링을 걸치고서 <심즈 4> 내에서 워킹을 하는 심 모델들이 출연하는 패션쇼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 Sentate Haute Couture 2022 Collection (Sims 4 CC), Sentate 제공 케이팝 아이돌과 한국의 예능인을 닮은 심을 창조하는 유튜버 심즈 아무나AMUNA 역시 그가 세심한 조작을 통해서 빚어낸 심을 ‘출연’시켜 뮤직비디오나 한국 예능의 문법을 패러디한 영상들을 만들어낸다. 한편, <심즈> 시리즈에서 깔끔하게 지워지거나 코믹하게 그려질 따름인 폭력과 비극적인 사고를 구현하는데 관심이 있는 모드 “Life is Tragedy”의 경우 과잉의 부정적 감정 표현을 선보이는 막장 멜로드라마의 제스처들과 컬트 영화의 황당무계한 폭력들을 함께 빌려온다. 모더의 홈페이지는 자신의 모드로 <심즈> 상에서 연출할 수 있게 되는 장면들을 슬래셔와 코미디에 각각 반 발자국씩 걸쳐 있는, B급 영화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섬네일을 통해 예고한다. <심즈> 시리즈의 모더와 플레이어 모두 다양한 층위에서 시뮬레이션의 전제들을 조작하고 변경하며 상상적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이들이란 점에서 시뮬레이터로 느슨하게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뮬레이터가 화려하게 인테리어한 건축물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플레이어의 심이 생활해갈 수 있는 환경으로서 공유한다면, 또 다른 이는 하이틴 드라마나 컬트 무비의 PD이자 촬영 감독이 되고, 패션 디자이너와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으로서 의식을 표현하기도 한다. 시뮬레이터의 무궁무진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자기표현은 <심즈> 시리즈의 폭넓은 자유도나 소위 ‘현실’과의 근접성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시뮬레이터의 자기 상은 매스미디어의 문법들, 그 심상들과 함축을 조립하고 편집하는 소위 ‘창작자’의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자의식을 대체로 참조한다. ‘자기 브랜딩’의 영역을 유희화하는 수준에까지 말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심즈> 시리즈가 무한한 자유도를 보장한다기보다는, 그것에 함축된 통속성, 현대적 분업과 ‘창조적’ 생활의 맥락이 시뮬레이터의 즐거움을 장르화하고 구체화하는 차원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 텍스트,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함축과 인터페이스와의 관계, 그리고 그 게임에 지배적인 장르들이 교차하여, 시뮬레이터의 자의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즐거움이 띌 수 있는 형상들을 빚어낸다.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며 그 제반 조건을 변화시키고 조작하며 편집적인 현실을 생성하는 과정은 시뮬레이터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시뮬레이터의 자기 표현 과정 역시 게임적인 쾌가 펼쳐지는 장소이며, 게임 디자인과 플레이가 상호 개입하며 기틀을 잡아가는 구조물로서 식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경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문현아, 박준규 역, 리시올, 2020 Barnes, Adam. “The Sims Turns 20: Creator Will Wright Reflects on the Battle He Waged to Get One of the Best Games of All Time Made.” Gamesradar , GamesRadar+, 4 Feb. 2020, www.gamesradar.com/the-making-of-the-sims/ . Sihvonen, Tanja. Players Unleashed ! Modding the Sims and the Culture of Gaming .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0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나현수

    나현수 나현수 Read More 버튼 읽기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 : 진정한 이용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가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 법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잘 알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 당시에는 그 종류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한 행위 (요컨데 뽑기를 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강화를 하는 등의 행위) 를 할때 확률에 따라 그 종류나 효과가 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 Back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07 GG Vol. 22. 8. 10. 1. 암호 설정 fromgall, 그곳의 ‘전통’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를 9번의 시도 끝에 잡았을 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동시에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내달렸다. 거듭된 죽음 끝에 쟁취해낸 승리는 퍽 달콤했다. 그렇게 맵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공략을 봐도 내 힘으로 온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 그러던 와중 '프롬 소프트웨어 갤러리(이하 : 프롬갤)'라는 사이트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프롬 소프트웨어 사가 발매한 다크소울3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들은 fromgall이라는 통일된 서버 비밀번호를 설정해 까다로운 보스나 맵을 협력해줬고, ‘복지’와 같은 이름으로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뉴비에게 각종 템을 지원했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익명으로도 글을 업로드할 수 있다는 갤러리의 특성은 이제 막 게임이라는 걸 시작한 당시의 나에게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눈팅 끝에 익명으로 도움 요청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댓글은 바로 달렸다. “그었음.” 나는 프롬갤의 게시글을 훑으며 게임 관련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의 기묘한 플레이를 보며 즐거움을 얻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특정한 게시글은 어떤 순간에서 내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분리감을 느끼게 했다. 프롬갤의 '전통'이었다. ‘어떤 한 집단에서 꾸준히 전해져 내려오는 행위’라는 전통의 사전적 의미를 환기하듯, 다양한 사람이 게임 내에서 유사한 행위를 수행하고 그것을 인증하는 형식으로 게시글을 작성했다. 많은 갤러들은 이에 긍정적으로 동조함으로써 긴 수명을 유지했다. 이 특정한 게시글은 일정한 포맷을 갖고 있다. 그 골자는 이러하다. 요르시카라는 이름의 NPC가 있다. 이 NPC는 '암월의 검'이라는 계약을 주관한다. 플레이어는 그와 계약을 맺고 특정 아이템을 모아 바쳐 보상을 얻는다. 아이템을 얻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지난한 노가다를 요한다. 모든 노가다를 마쳐 보상을 다 얻은 플레이어는 요르시카를 (창의적으로) 죽인다. 2.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 1) 프롬갤에 게시된 글을 바탕으로 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통 포맷을 한 번 살펴보자.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는 글은 프롬갤의 전통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 ‘드뎌(드디어) 끝났다’는 부사와 동사를 통해 작성자가 요르시카와 계약-서약자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장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작성자는 NPC의 이름 뒤로 디시인사이드에서 욕설 ‘시발’을 변용한 ‘야발년’을 결합하여 이 인물에게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캡쳐된 게임 화면에서 작성자의 캐릭터는 ‘탐욕의 낙인’이라는 머리 장비를 장착하고 있다. 이는 캐릭터의 발견력 스탯을 올려주는 장비로, 아이템 노가다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상자를 뒤집어 쓴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의 모습은 그 자체로 노가다 행위를 증빙해준다. 다크소울3에서 발견력 스탯을 증가시키는 장비는 제한적으로 존재하므로 공물 노가다에 뛰어든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외관은 전형적인 구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샷 속 캐릭터의 모습은 작성자와 유사한 경험을 겪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상이 된다. 작성자는 이제 막 암월의 검 노가다를 끝냈다. 공물 아이템 30개를 모아왔을 때 요르시카가 이를 보상과 교환하며 출력하는 특수 대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 하단의 UI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장착하고 있는 장비를 보여주는데, 윗칸은 주문 아이템이 할당된 자리이다. ‘암월의 빛의 검’이라고 적힌 흰 글씨는 스크린샷 속에서 캐릭터가 대검에 인챈트하고 있는 기적의 이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적은 암월의 검 계약의 최종 보상이다. 작성자는 대사를 확인했으며, 노가다의 보상을 획득했다. 따라서 프롬갤의 전통이란 곧 게임 내 성취를 인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요르시카라는 NPC가 인게임에서 제공할 수 있는 물리적(인벤토리에 기입되는) 인센티브를 모두 취득했다. 이제 다른 동기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와의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이에 그는 요르시카로부터 받아낸 기적을 살해에 직접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요르시카 어금니 꽉 깨물어라..’는 문장은 막 행할 폭력을 예고한다. 그는 자기 캐릭터가 암월의 빛의 검 기적을 대검에 바르는 순간적인 모션을 포착함으로써 역동성을 강화하며 이미지를 끝맺는다. 한편으로 NPC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죽였는지는 글의 매력을 판가름하는 요소가 된다. 이 글에서 인용한 게시글의 작성자는 오른손에 로스릭 기사의 대검으로 요르시카를 가격하려 한다. 그런데 UI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검의 이미지 우측 상단에 빨간 X자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대검 아이템을 장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스탯을 갖지 않았다는 알림이자 경고다. 요구치를 충족하지 않은 장비는 제 성능을 낼 수 없으며 미진한 피해를 준다. ‘일부러 데미지 낮춰서 더 때릴꺼라는 생각은 안하십니까? 당신’이라는 타 갤러의 댓글은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작성자의 행위에 개연성을 부여해준다. 타인이 내러티브를 붙여 해석해줌으로써 작성자의 게시글은 전통의 계보에 안착하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즉 전통이란 프롬갤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축적된 일정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발화 형식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3. 게임에서의 죽음 문제 여기서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살해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율이 게임 플레이를 두고 “플레이어가 게임 내부의 규칙과 상호작용 하면서 그 자신의 목표, 레퍼토리, 선호를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한 바 있듯, 게임은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몰입을 강화하기 위한 요소로써 죽음은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죽음은 지속해오던 모든 상태 일체로부터 정지되는 것이며,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영원한 단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임 속 죽음은 플레이어가 규칙을 이해하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특히나 RPG 게임과 같은 장르에서는 길을 막는 적을 제거하면서 특정한 장소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게임 메커닉으로 차용해 왔다. 플레이어가 경험한 죽음은 내부 규칙을 이해할 단초가 되며, 피드백을 거쳐 적을 성공적으로 살해할 경우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역량을 높인다. 게임에서의 죽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플레이어 개인의 폭력성·사회성에 대한 우려와 만나기도 한다. 화면 속이지만 누군가를 찌르고, 때리고, 살해하는 행위는 규범과 법률 속에서 자란 교양 시민과는 반대 선상에 놓인 행위로 이해된다. 게리 영은 이를 STA(Symbolic Taboo Activity)로 설명한다. 이는 가상에서는 가능한 행위이나 현실에서는 법과 도덕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들이라는 것이다 2) . 그러나 플레이어의 행동 범주를 설정하는 절대적인 배경으로 게임의 규칙이 존재한다. 특정한 행위를 유도하는 일련의 규칙이 있는 이상 이를 개인의 비도덕성 문제로 환원하기는 어렵다는 측면이 존재한다 3) . 실제로 요르시카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요르시카의 성령'은 강력한 살해 동기로 작동한다. 이렇게 바라보았을 때 단순히 요르시카를 죽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로 플레이어 개인이 그 게임 세계 내부에 시선을 두고 플레이를 수행하고 완결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놀이가 일상생활과 분리된 그 고유의 질서를 갖는다는 ‘매직 서클’의 의미를 환기한다. 4. 여기 ‘나쁜 남자’가 있다 프롬갤 전통이 갖는 독특한 지점은 커뮤니티에 전시하여 공유하는 과정에 있다. 전시는 게임 밖의 세계에 위치한 청중을 동반한다. 독특한 플레이는 화제성을 갖기 마련이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의 인터페이스는 경우에는 ‘추천’을 받아 ‘개념글’로 올라가는 구조를 통해 화제성을 수치화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위해 원칙과 같이 보편적인 범주로 규정된 것 이상으로 발휘된 폭력이 심저에서 불쾌감을 자극할 때, 게시글 아래에 달린 경악성의 댓글은 그가 수행한 괴멸적인 플레이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즐길 수 있다. 니스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즐거움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4) 이 ‘나쁜 남자’와 같이 규범을 위협하는 존재에 자기를 동일시할 수 있는 데서 즐거움은 증폭된다. 전시는 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할수록 좋다. 그러한 목적성을 갖고 특정한 라인을 따라 행위를 수행하게 되면 갤러들은 익숙한 내용에 익숙한 반응과 익숙한 호의를 내비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플레이가 따라가야 할 일종의 포맷이 생기는 셈이다. 그렇게 형성된 게시판 내의 놀이 형식에 맞추어 나의 플레이를 만드는, 게임의 매직 서클 내외부를 넘나드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프롬갤이라는 공동체 내의 동력이 게임 내 플레이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에서 작성자는 NPC를 폭행하기 위해 대검을 선택했다. 대검이라는 무기 종은 프롬갤 내부에서 특정한 상징성을 갖는데, ‘상남자’라면 마땅히 들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무기로 플레이하는지에 따라 ‘게이’와 ‘진짜 남자’를 구분하는 발화를 프롬갤 내에서 목격할 수 있다. 게이와 상남자의 구분을 통해 프롬갤이라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남성성에 대한 상상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직검과 방패의 조합을 의미하는 ‘직방’은 이상적인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게이’와 동의어로 활용되는데, 이는 구르기를 통해 공격을 피하는 대신 방패로 막아내는 게 남자답지 못한 행위로 여겨지는 탓이다. 대검을 들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 방패를 들지 않고서 자신의 체격을 훨씬 상회 하는 무기를 든 캐릭터는 그 자체로 공세적인 인상을 준다. 그는 비열하게 방패 뒤로 숨지 않는 ‘진정한 사나이’나 다름없다. 이는 수잔 제퍼드가 레이건 시대의 할리우드 남성 재현을 설명하기 위해 표현한 ‘하드 바디’를 떠올리게 한다. “지치지 않는, 근육질의, 무적의 남성 육체”에 대한 환상을 바탕으로 프롬갤은 “자신의 뜻을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 강화된 몸”을 꿈꾼다. 5) 그러는 한편 암월의 검 계약은 플레이어를 노가다로 인도하며, 그는 희박한 확률이 그저 터지기만을 바라면서 주체성을 상실한다. 플레이어는 무력한 확률 앞에서 억울함을 환기한다. 프롬갤의 갤러들은 이를 남성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치환하여 요르시카를 정복함으로써 주체성을 되찾으려 한다. 게시글 작성자의 캐릭터는 대검을 들 수 없는 스탯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화하기 힘든 장비를 들기를 고수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프롬갤이라는 집단 내부에서 설정된 남성성의 환상을 입고서 요르시카를 살해한 셈이다. 5. 밈 앞에서 웃지 못할 때 이길호는 디시인사이드에서 발생하는 게시물이 끝없이 분화하고 변형되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산물은 하나의 갤러리 안에서 생산된다. 그것은 갤러들 사이의 관계에서 결과적으로는 어느 특정 갤러의 결과물로 도출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생산물의 소스는 명백히 다른 갤러에게 제공받았다. 그것은 여러 갤러들의 손을 거치면서 변형을 맞는다. 최종적으로 하나의 갤러가 일종의 ‘완성본’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매 순간 새로운 변형의 힘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미완성’이다.” 6) 이러한 갤러리 내 생산물의 분화 과정은 밈의 발생과 활용 방식을 닮아있다. 본래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가 특정한 문화 요소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문화 유전자의 개념이나 온라인 생활에서는 달리 통용된다. 주로 밈이란 “특정한 이미지, 영상, 대사나 어휘 등이 유행하면서 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7) 밈의 재미가 “공동의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며, 이에 밈이 호응을 얻은 것은 “개인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이라는 분석이 존재한다. 8) 밈이 생산되는 환경은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와 유사해 보인다. 갤러들은 모여든 게시판에서 해당 주제를 갖고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친목질을 배제한다는 엄격한 수평 관계를 유지하며 그저 한 개인으로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디시인사이드의 게임 게시판이 유머러스한 공간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게임 플레이라는 공감대를 나누는 과정에서 타 갤러와 동질감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머란 곧 집단 내부에서 통용되는 규율이나 사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에서 유머를 느낀다면 그것은 어째서인가? 또 유머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통이라는 밈에서 유머를 느낄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프롬 갤러들이 발화하는 여성 혐오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들 공동체 내부에서 승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르시카를 살해하는 게시글은 2016년 다크소울3이 발매된 이래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주 개념글로 올라갔다. 2022년 프롬 소프트웨어의 신작인 엘든링이 출시된 이래, 엘든링의 열기를 즐기는 지금의 시점에서 요르시카를 죽이는 전통은 이제 개념글에서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프롬갤의 전통을 전통으로 만들어낸 동원을 상실하지 않은 이상, 새로운 전통이 태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밈이 될 정도로 화제성을 가진 플레이가 아직 전시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쁜 남자가 되기 위해 안달 난 프롬갤 앞에서, 나는 그저 서성거리고 있다. 1) 권천. “[일반] 똥3)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 2021.11.28.등록. 2022.06.02.접속. 프롬소프트웨어 마이너 갤러리.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romsoftware&no=2383063&page=1 2)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589. 3) 미구엘 시카트. 김겸섭 역. 컴퓨터 게임의 윤리(n.p.: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4 4)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600. 5) 수잔 제퍼드. 이형식 역. 하드 바디(n.p.:동문선, 2002) 6) 이길호. 우리는 디씨. (2012). 이매진: 서울. 82쪽. 7) 정지우. “무엇이 밈이 되는가”. 민음사. 릿터(32). 14쪽. 8) 이자연. “밈 검열, 그게 진짜이긴 해?”. 민음사. 릿터(32). 30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 Back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04 GG Vol. 22. 2. 10. -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in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86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정형화 되어있는 게이머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표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처음 게임을 접하게 된 유아들, 〈워드퓨드(Wordfeud)〉 같은 게임에 빠진 은퇴한 여성, 손주와 〈카운터 스트라이크〉 게임을 함께 하는 할머니 게이머 등이 포함된다. 또한 〈포트나이트〉를 배회하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게이 게이머나 잠든 아기 옆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젊은 엄마도 포함될 수 있다. 게임 문화의 규범 비평 디지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당연히 - 정형화된 유형의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 나름의 개별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경험하는 실제 플레이어들이다. 지난 십 년간 게임 저널리스트, 문화 비평가, 학자들은 주류 게임 내 젠더와 인종, 장애, 나이, 신체에 대한 재현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다. 이러한 논의가 밀도 있게 시작된 것은 북미였지만, 이제는 유럽에서도 규범 비평(norm critique)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게임 내 재현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3가지로 나뉜다. 첫째, 게임이 사람들의 다양한 정체성 또는 정체성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둘째, 게임의 이용자층에서 주변화되어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현이 어떠한가, 셋째,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업무 환경은 어떠한가. 이 세 가지 요소는 공공 담론상에서 상호적으로 얽혀서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서 여성이 부정적으로 재현될 경우 여성 플레이어들이 그 게임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라고 여겨지며,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양상이 개선되면 게임 내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개선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어느 정도 사실일지라도,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게임학자들은 지적한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게임들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수적으로 적고,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한정되는 등 오랫동안 불균형이 존속되어왔으며, 여성 캐릭터들의 외모가 시각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지나치게 부각되어왔음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1983-2014년 사이에 출시된 5백편이 넘는 게임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90년대 후반에 정점을 찍은 여성 신체의 성적 대상화는 2006년 이후부터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업계 전반적으로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이 진지한 주제에 대한 자각을 일깨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시작된 느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Hellblade: Senua’s Sacrifice)〉를 출시한 영국의 게임사 닌자씨어리(Ninja Theory)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밈 안토니아데스(Tameem Antoniades)는 인터뷰를 통해 이 게임이 단순한 오락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신병으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 경험인지 플레이어들이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2018년 덴마크에서 인디게임 데모로 출시된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지를 표현했다. 이 게임은 현재 오토스코피아 인터랙티브(Autoscopia Interactive)에서 개발 중이다. 유럽의 인디게임 업계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된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게임개발사 픽셀 헌트(The Pixel Hunt)가 개발한 〈Bury me, My love〉는 유럽을 횡단해서 프랑스 파리까지 이동하는 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2021년 가을에는 영국의 AAA 게임사 플레이그라운드 게임즈(Playground Games)가 인기 레이싱 게임 〈포르자 호라이즌(Forza Horizon)〉의 다섯번째 판을 내놓으면서, 게임 내에서 의수나 의족을 찬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과 성 중립적인 대명사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주류 언론의 헤드라인을 통해 알렸다. 많은 논쟁이 게임 캐릭터에 대한 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포용적인 게임 디자인이 이 특정한 문제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상하고 있는 인디게임 산업은 AAA 산업의 잘 다듬어진 모델 너머에 존재하는 경험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게임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게임들은 또한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없는 플레이어들에 맞는 플레이 모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IO인터랙티브(IO Interactive) 같은 소수의 거대 스튜디오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규모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로 구성되어있는 덴마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짧은 게임이다. 기억 상실과 왜곡의 감각을 주기 위해서 게임 캐릭터들의 얼굴이 흐려져 있다. 플레이어층의 확장 이처럼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는 변화상은 플레이어층의 다양화라는 두번째 문제로 부분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게임산업은 새로운 수용자층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에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재현과 플레이어층의 다양성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으며, LGBTQ 등 주변화된 집단의 사람들은 게임 내 LGBTQ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재현될지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류 매체조차 게임 내 주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적 재현에 관심을 가지면서, 게임사들이 그와 같은 부정적인 정형화를 반복 재생산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공공 담론 그 자체가 게임업계로 하여금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집단을 겨냥하여 새로운 이용자층으로 포섭하도록 장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묘사의 문제는 상황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데 그칠 뿐이다. 많은 주변화된 집단들은 여전히 괴롭힘과 차별,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데, 특히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할 때 심각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플레이어의 주변화 문제를 다루는 유럽 내 담론이 주로 (젊은) 여성 플레이어의 경험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주변화된 사람 등 여타의 주변화된 집단의 상황은 여전히 공공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주변화된 정체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을 존중하면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음에도, 게임 업계가 여전히 그러한 집단이 지닌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를 통한 노동 조건의 개선 지난 수년 간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문제는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업계 내 주변화된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1ReasonWhy 해쉬태그를 통해 업계 내 차별과 성차별주의, 괴롭힘에 대해 알리기 시작하면서 십년 전부터 주목 받아온 이 문제는, 지난 몇년 동안 유럽의 AAA 업체 내 유해 업무 문화나 성적 부정행위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다시 헤드라인에 오르기 시작했다. 북유럽에서는 아직 이와 유사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러 매체에서 폭력이나 가해 행위의 몇 가지 사례를 다룬 바 있다. 노동조합은 명백히 이와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기관으로서 주변화된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의 개선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의 전통을 지닌 스칸디나비아 반도임에도 이 권역 내 게임 업계의 노동자 조합은 아직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주변화된 인물에 대한 책임감 있는 게임 내 재현이나 남성 게이머라는 정형화된 규범의 바깥에 놓인 플레이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의 조성 등과 같은 다양한 논의들이 벌어지고 있는 공공 담론의 다른 한편에서는 업계 내 조직의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다 요르겐센 이다 요르겐센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IT 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게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젠더 재현, 게임 문화, 매체로서의 게임 등과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던 덴마크 대학(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박사후 과정 중에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 Back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18 GG Vol. 24. 6. 10. 들어가며 이번 논문 세미나는 하나의 사진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11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찍힌 이 사진에서 오바마를 비롯한 현장의 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회의를 하면서 띄워둔 자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심각한 문제 발언을 했던 걸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사실 빈 라덴 급습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지켜보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이 사진이 보여주는 건 두 가지다. 첫째, 이제는 그 어떤 전투(또는 전쟁)든 원격으로 지켜보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지금 내 눈앞에서 전투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는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있다. 이제 전투는 우리 눈에 굳이 보이지 않아도 될 만큼 빨라지고, 또 효율적이 되었다. 그리고 일찍이 이에 관한 것을 이론화한 인물이 프랑스의 정치 이론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다. 오늘 보게 될 데이비드 웨딩턴(David I. Waddington)의 논문은 비릴리오의 <속도와 정치(Vitesse et Politique)> 및 <소멸의 미학(Esthetique de la disparition)>을 통해 실시간 전략 게임(Real-time strategy, 이하 RTS 게임)을 살핀다. 교육철학 연구자인 웨딩턴은 비릴리오의 이론을 RTS 게임과 아울러 보고, 해당 게임이 가진 교육적 가능성을 발굴해 내고자 한다.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 비릴리오(Virilio, 2004)는 <속도와 정치>에서 정치 및 전쟁을 ‘속도’에 연관 지어 바라보았다. 그는 해당 저작을 통해 속도는 곧 시간과 같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런 비릴리오의 사유는 고대부터 190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비릴리오 연구자인 존 아미티지(John Armitage)는 그의 사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본디 도시는 요새화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인 공간이자 토대였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요새화된 도시는 점차 사라졌고, 비릴리오는 이 같은 변화에 집중했다. 그 안에서 비릴리오가 주요하게 보고자 한 것은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된 이유였다. 아미티지(Armitage, 2003)는 비릴리오가 쉽게 운반할 수 있고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설명한다. 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 건 운반 시간을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며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했다는 건 이전보다 더욱 빠른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릴리오가 정치와 전쟁을 속도와 연결 지어 보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그래서 비릴리오가 볼 때 전쟁은 속도의 문제이며, 속도는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즉 군사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속도에 관한 요소들이 나타나면서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게 비릴리오의 주장이다. 이런 비릴리오의 의견은 맑스와는 대조적이다. “맑스가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을 쓴 곳에서 비릴리오는 군사적 역사 개념”(Armitage, 2003, 10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문의 연구자인 웨딩턴도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을 몇 가지 핵심 요소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에른스트 윙거(Ernst Jünger)에게서 따온 ‘총동원’이라는 용어다. 총동원은 전시 상황/비전시 상황을 가리지 않고 사회에서 활용되는 것들을 함축한 말이다. 이것은 경찰의 군사화, 신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감시의 증가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두 번째는 ‘병참’이다. 병참은 비전시 상황에도 사회의 에너지를 군대에 모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병참은 총동원이 보이는 형태들과 연결되며, 세 번째 요소인 ‘공간의 붕괴’로도 통한다. 과거에는 좋은 지형(공간)을 선점하고, 그 지형을 감시와 위협에 활용하는 것이 전쟁에서 유리해지는 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그 성격이 바뀌었다. 컴퓨터와 드론, 미사일, 핵무기가 공간의 의미를 잃게 만든 것이다. 이제 공간을 선점하는 것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전쟁을 벌이던 공간은 붕괴하였으며, 유리함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활용해야만 한다. 네 번째 요소는 ‘사라짐’이다. 그동안 전쟁의 이미지는 탱크, 전투기 등으로 대표되었지만, 오늘날의 전쟁에서 탱크와 전투기는 이전만큼 보이지 않는다. 사실 탱크와 전투기의 사라짐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일련의 단계가 존재한다. 지금은 위장하기 용이한 색과 무늬를 띠고 있으나, 이전의 군복은 눈에 띄는 밝은 색상이었다. 이런 군복은 점점 사라져,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럼, 거기서 끝일까? 아니다. 위장된 군복을 입은 군인은 탱크와 전투기 속으로 사라졌다. 맨몸으로 치고받으며 행해지던 전투는 차체와 기체를 이용하여 행해졌다. 그리고 이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된’ 전쟁은 최종적으로 사회 구조에서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전쟁은 일상 어디서든 함께하고 있다. 이렇게 비릴리오의 이론을 정리한 웨딩턴은 그러한 관점을 토대로 RTS 게임을 바라본다. 그는 총동원, 병참, 공간의 붕괴를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장소 중 하나로 게임, 그중에서도 RTS 게임을 지목한다. 속도: 게임의 이름 이 연구는 RTS 게임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웨딩턴은 FPS 게임과 MMORPG 게임 또한 비릴리오의 이론에 적합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웨딩턴이 RTS 게임만을 본 건, 해당 게임이 총동원과 병참, 공간의 붕괴, 시간이 중요해진 전쟁을 제대로 이미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딩턴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예로 들어 RTS 게임의 작업 단계를 설명한다. 첫 번째는 자원 채집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자원이라면 광물과 가스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실시간 전투 여부에 상관없이 꾸준히 축적해야 하는 것이다. 자원을 채집하기 위해서는 유닛의 쓰임새를 구분할 줄 알고, 자원 채집 장소를 탐색하는 등 여러 관리가 필요하다. 이 자원채집은 ‘총동원’에 해당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총동원이 떠오르는 작업이 있다면 ‘병참’에 걸맞은 작업도 있기 마련이다. 바로 건물 건설과 군사 유닛 생성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유닛을 생성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건물을 건설해야만 한다. 건물은 곧 강력한 유닛 생성과 연관되며, 이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승리를 위한 밑 작업인 건물 건설과 유닛 생성은 총동원 격인 자원채집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병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공간의 붕괴’로 대표되는 건 본거지를 방어하면서 적군을 제거하고, 적의 기지까지 파괴하는 행위이다. 특히나 강력한 군사 유닛은 혼자서도 밝혀지지 않은 맵을 탐험하고 적 기지를 감시하며, 원거리 급습을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게 한다. 테란의 유닛인 고스트로 적 기지를 조사하고 핵탄두를 떨어트리는 게 이에 해당할 것이다.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그 의미처럼 RTS 게임은 속도가 중요한 환경에서 펼쳐진다. 일꾼 유닛과 군사 유닛을 신속하게 배치하고 생산과 탐사를 효율적으로 할수록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플레이어는 재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속도에 따라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웨딩턴은 RTS 게임이 시간을 활용한 전쟁 게임이라고 본다. 학습과 RTS 게임: 긍정적인 관점 앞서 이야기했듯이 웨딩턴은 교육학 연구자이다. 그래서인지 웨딩턴은 이번 장에서 비릴리오의 개념을 잠시 내려두고, 다른 연구를 인용하며 RTS 게임이 가지는 학습 효과를 살핀다. 먼저 웨딩턴이 인용한 지(Gee, 2003)의 글은 RTS 게임을 하면서 느낀 압박감을 서술하고 있다. 지는 RTS 게임에 미숙하여, 게임이 요구하는 것보다 느린 속도를 가진 플레이어였다. 이런 지는 <라이즈 오브 네이션스(Rise of Nations)>를 통해 게임을 학습하는 방식에 대해 풀어낸다. 이를테면 지는 게임 내 일시 정지 버튼에 관심을 보였다. 일시 정지 버튼은 빠르게 진행되는 게임을 잠시 멈추게 하여, 플레이어가 화면 내 기능들을 살피고 전략을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해당 게임에는 조작 숙달을 돕는 각종 테스트가 존재했다. 지는 그를 통해 일종의 단련을 할 수 있었다. 일시 정지와 테스트로 나타나는 시스템의 배려는 게이머가 언제든 전투에 참여할 수 있게 대비시켜 준다. 웨딩턴이 지의 이야기를 끌어온 건 느린 속도의 게이머가 ‘실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위해서다. 그러면 웨딩턴이 이 주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 후에 인용된 블레어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블레어(Blair, 2013)는 <스타크래프트 2(StarCraft 2)>를 비롯한 RTS 게임의 플레이어 주도적인 통제 환경이 실생활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사실 여기에는 다양한 반박이 가능하다. 한 분야에서 획득한 전문성을 곧장 다른 영역에 적용하기 어렵다는(Thorndike & Woodsworth, 1901) 의견을 이 반박에 포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웨딩턴은 그를 인지하면서도, 블레어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에 더 주목하였다. 학습에 활용될 수 있는 RTS 게임의 가능성을 보려고 한 것이다. 학습 속도: RTS 게임과 경험의 아치 지와 블레어 두 사람은 RTS 게임에서 획득할 수 있는 학습 효과를 서술하였다. 지의 경우에는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어를 그 안으로 이끌 수 있을지 말하고, 블레어는 게임으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해 얘기한다. 이에 웨딩턴은 그들의 주장에서 도출해 낸 생각을 밝힌다. 하나는 게임을 속도와 효율성을 단련하는 훈련으로 본 자신과 저들의 이야기가 일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에서 학습되는 요소가 눈에 띄는 만큼, 그 안의 문제성도 관심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웨딩턴은 특히 후자를 유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임을 통한 학습이 가지는 문제점은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훈련 시킨다는 데에 있다. 이 사고방식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활용 가능한 것으로만 보는 시선(Heidegger, 1977: Ellul, 1964: Dreyfus, 2002: Borgmann, 1984, 1992 재인용)을 의미한다. 이런 부분에서 웨딩턴이 전유하는 속도 개념은 RTS 게임을 비롯하여 여타 게임으로 학습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게임 경험은 우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성장했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선이 무미건조해지지는 않겠는가? 교육학자인 듀이(Dewey, 1938)는 “모든 경험은 이전에 있었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흡수하는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이후에 오는 경험의 질을 수정”(12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모든 경험은 아치’와 같다는 시를 인용하여, 경험에 차별을 둘 근거는 없다고도 이야기했다. 이번 장 제목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 듀이의 글은 RTS 게임 경험과 학습에 대한 웨딩턴의 생각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듯하다. 주요 이의 제기 경험을 아치에 빗댄 듀이의 글은 사실 게임 내 폭력적인 경험이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웨딩턴은 게임에서 행해지는 폭력적인 행위가 단순 놀이로만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시카트(Sicart, 2009)의 주장은 게임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주류 의견에 반대된다. 시카트는 플레이어가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을 따르므로 그러한 행동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때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은 몬스터를 죽이고 골드를 얻는 것과 같은 행위를 뜻한다. 이런 시카트는 플레이어 개인의 가치와 판단 능력이 게임 시스템과 결합하여 새로운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시카트의 주장은 <맨헌트(Manhunt)> 분석을 통해 심화한다. <맨헌트>는 사람을 쇠지레로 때려죽이거나 비닐봉지로 목 졸라 죽이는 등 실제 살인이 연상되는 잔인함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맨헌트>는 내용상 무조건 살인을 저질러야만 하는데, 시카트는 이렇게 강제된 상황이 오히려 윤리에 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다고 설명한다. 웨딩턴은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런 반성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지만, 시카트의 지적 자체는 옳다고 말한다.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벌이는 행동과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는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딩턴은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RTS 게임에서 속도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가상의 폭력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보다, 가상의 속도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예를 들면 <맨헌트>에서 가상의 살인을 저질러도 현실의 내가 살인자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게임 도중 재빠른 판단을 내리는 이는 이후에도 판단력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한 마디로 게임을 하면서 나타난 속도는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둘째, RTS 게이머는 플레이 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속도와 효율을 꼽는다.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가 자신의 속도를 높이는 것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는 연구 결과(Kow and Young, 2013: Yan, Huang, & Cheung, 2015 재인용)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만큼 속도는 RTS 게임 한 판 한 판을 책임지는 필수 요소다. 웨딩턴의 서술 흐름이 시카트에서 속도 개념으로 흐르게 된 것은 게임과 속도에 관련된 담론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반영된 게 크다. 웨딩턴이 보는 RTS 게임은 모든 것을 자원으로 보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효율성에 관해 학습할 수 있는 장소다. 또한 전쟁이 일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 전쟁 체험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을 속도와 연결해 바라보는 시도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웨딩턴은 게임이 실제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처럼 속도에 관한 것도 주시해 보기를 제언한다. 나가며 웨딩턴이 속도 개념을 이용해 궁극적으로 역설하고자 한 건 게임을 통해 효율적인 학습, 내지는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웨딩턴의 주장은 자칫 효율 중심적인 사고로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는 웨딩턴 그 자신 또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비릴리오의 속도 이론은 웨딩턴이 전개한 것과는 달리, 비판적인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물론 비릴리오가 기술의 긍정적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글에 기술에 대한 경계가 서려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웨딩턴의 주장은 교육학 연구자라는 그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지만, 비릴리오의 속도가 왜곡되게 이해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움이 남는다. 그래도 웨딩턴의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해 보자면, 효율성이 게임의 인상에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낙관적인 생각도 든다. 게임을 통해 학습 효과를 증진시키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상당한 이점이다. 즉 그동안 지배적이었던 폭력성이나 중독에 관한 담론을 탈피할 가능성도 생긴다는 소리다. 그러나 몇 가지 질문도 함께 남는다. 게임은 오직 효율성을 입증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게임에서 효율성과 학습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근 게임을 이용한 교육이 조명받기 시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 이는 앞으로의 게임과 우리의 인식에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Armitage, J. (2003). 폴 비릴리오의 정치 이론-<속도와 정치>를 중심으로 (서문), <속도와 정치> (7-42쪽). 이재원 (역)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Blair, M. (2013). Real-time strategy video games; a new ‘drosophila’ for the cognitive sciences. [Online video]. Retrieved from https://www.sfu.ca/cognitive-science/defining-cognitive-scienceseries/dcs-archive/2013/spring/blair-rts-games-expertise.html (현재 이용 불가) Borgmann, A. (1984). Technology and the character of contemporary life. Illinoi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Dewey, J. (1938). Experience and education, Free Press. Gee, J. P. (2003a). What video games have to teach us about learning and literacy. London: Palgrave-MacMillan. Gee, J. P. (2003b). Learning about learning from a video game: Rise of nations. Wisconsin: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Sicart, M. (2009). The ethics of computer games. Massachusetts: MIT Press. Thorndike, E. L., & Woodsworth, R. S. (1901). The influence of improvement in one mental function upon the efficiency of other functions. Psychological Review, 8(6), 247-261. Virilio, P. (1977). Vitesse et Politique. 이재원 (역) (2004). <속도와 정치>.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Yan, E. Q., Huang, J., & Cheung, G. K. (2015). Masters of control: Behavioral patterns of simultaneous unit group manipulation in StarCraft 2. Paper presented at the Proceedings of the ACM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Seoul. Tags: 비릴리오, 가속, 속도의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융합예술과 문화연구를 공부했습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Pawel Grabarczyk

    Pawel Grabarczyk Pawel Grabarczyk Pawel Grabarczyk is an associate professor at the IT University of Copenhagen, Denmark, and an associate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Lodz, Poland. He is a philosopher by training and works on the boundaries between philosophy and game studies. His research deals primarily with game ontology, ethics of microtransactions, virtual reality, and the history of games. He is currently working on a platform studies book on Atari 8-bit computers. Read More 버튼 읽기 Randomness is a double-edged sword. The opposite reception of randomness in AAA and indie game sectors It seems fascinating that the same mathematical phenomenon could become the foundation of the most acclaimed and the most despised design principles of modern gaming. As I will argue in this article, this is precisely what happened to random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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