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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 Back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11 GG Vol. 23. 4. 10. 게이밍의 컨벤션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이러한 과정은 추리물에서 특히 투명하게 나타난다. 화려하고 어두운 대도시, 연쇄 살인사건과 무능한 경찰, 괴팍한 성격에 방대한 지식과 촉을 가진 탐정, 사건의 추적 과정에서 드러나는 구조의 모순과 지적 유희는 관객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긴장을 선사한다. 트렌치코트와 모자를 쓴 인물들의 하드보일드한 묘사와 혈흔이 낭자하는 폭력은 복잡함이 아니라 스타일로서, 이는 느긋하게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교통수단처럼 느끼게 만든다. 망설이며 입고 나온 옷이 튀지 않고 길거리 군중의 패션에 녹아듦을 느낄 때 우리는 안도한다. 사람들은 이 탑승 경험에서 특별한 것들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집합적인 요구들 속에서 컨벤션이 나온다. 영화와 TV쇼는 모두 편안한 컨벤션을 만들기 위해 공식화된 장치들을 사용한다. 필름누아르 영화에서 총격전이나 살인 장면, 로맨스물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 등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속촬영 연출 등이 대표적인 예다. * 좌측부터 윈스턴 처칠, 필립 말로(빅슬립), 닉 발렌타인(폴아웃4), 릭 데커드(2019블레이드러너). 컨벤션은 무수한 스테레오타입과 스타일들 사이의 점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지만 공유된 관습의 선분들이다. 검은 양복에 톰슨 기관총을 든 남자가 나타났을 때,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우리는 그 뒤에 일어날 사건들을 기시감처럼 느낀다. 기관총 난사 장면은 교차 편집이나 고속촬영으로 연출되거나, 담배 연기가 자욱한 어둠 속에서 권총이 무심히 발사될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밍에서 컨벤션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까? 기존의 루돌로지(ludology)의 논의들은 디지털게임을 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지부터 의심했다. 이는 서사가 게이밍의 토대가 아니라는 단호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렇다. 테트리스나 팩맨 같은 게임에서 어떤 서사를 읽을 수 없으며, 때때로 방대한 서사를 갖춘 게임에서도 종종 서사가 부재한 플레이 행위성이 출현한다. 올셋(Espen Aarseth)이 지적하듯이 게이밍은 해석이 아니라 탐색이 근간이 되는 실천이다. 이는 플레이의 행위성이 서사와 플롯의 시학을 읽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공간을 탐험하고, 오브젝트를 만지면서 변화시키는 조형행위에 훨씬 기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게이밍에서는 컨벤션이 포뮬라에 앞서고, 조작이 문법에 우선한다. 인터페이스, 매커닉, 조작 디자인이 생각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로들을 만들 뿐 아니라 행위성을 창조함으로써 게이밍을 생산한다. 영화나 TV쇼에서 장르가 형성되는 순간은 포뮬러가 우선한다. 탐정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주하는 공권력 사각지대와 현실의 모순, 카우보이가 방랑 중에 들린 마을에서 악당들을 혼내준 뒤 석양 너머로 떠나는 구조(포뮬러)는 광활한 황야의 풍광, 12시 정각 고독한 두 남자의 권총결투, 질주하는 열차 위에서의 아찔한 몸싸움, 톰슨 기관총을 난사하는 갱스터들의 폭력(컨벤션) 등을 자아낸다. 반면 게임에서는 이 도식이 변주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시간 전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공통의 플레이 암묵지가 있고, 플레이를 만들기 위한 요소들(자원, 생산, 유닛)을 덧붙이고, 그 위에 두 진영 간의 전쟁이라던가 외계인-지구인 간의 투쟁 같은 구조가 덧씌워진다. 똑같은 어드벤처 게임이라도 그것이 정지된 평면의 포인트앤클릭으로 이루어지는지 1인칭의 시점에서 공간을 탐험하는 방식인지에 따라 상반된 포뮬러가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에는 정형화된 항로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인디아나 존스〉나 〈원숭이섬의 비밀〉은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의 대명사이지만, 〈검은방〉 시리즈처럼 하드보일드하고 어두운 미스터리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횡스크롤 슈터는 〈던전앤 드래곤〉 이나 〈황금도끼〉, 〈너구리〉, 〈소닉〉, 〈록맨〉 같은 호쾌하고 캐주얼한 스테이지클리어 게임이이나 캐슬바니아 게임에 최적화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반교: 디텐션〉처럼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거나, 〈림보〉가 보여주듯 그로테스크한 기억의 알레고리 공간이 되기도 한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화끈한 전쟁의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만, 〈스펙옵스: 더 라인〉은 전쟁의 스펙터클을 해체해 전쟁의 모순을 재조립한다. 요컨대 게이밍에서 장르와 컨벤션의 관계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상부구조가 토대에 협상을 제안하는 관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역사화, 기억의 조작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도로 노동 집약적이고 창의의 분업이라는 성격을 띠는 문화산업 자장에서 장르는 익숙한 산책로가 되기도 하지만 종종 뻔한 보물찾기가 되기도 한다. 게이밍은 이런 난점이 특히 두드러지는 분야일 것이다. 수많은 1인칭 슈터 게임, 롤플레잉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다양하게 획일적인 난립 가운데서 어떤 환멸을 느낀다. 체육관에 가서 매일 똑같은 무게로, 똑같은 회수로 정해진 세트만큼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아주 균질적인 작용 반작용이 유희감각을 소구시킨다. 이 지난한 컨벤션의 루프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양한 시도들이 지금까지 있어왔지만 중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나는 게이밍의 핵심을 절차적 수사학이나 에르고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조작술’로 보기를, 그리고 확고하기 짝이 없는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는 경로로서 ‘인디’의 이념을 다르게 전유하기를 제안한다. 보고스트(Ian Bogost)가 정의하듯 게이밍은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에 크게 기대고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에 연동시킨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 게임속의 공간·오브젝트를 조작한다. 플레이어는 탐색하고, 탐험할 뿐 아니라 조형하면서 스케일된 게임 시공간의 점들에 선을 연결해 나간다. 이 프로세스는 과정 추론적이고, 로지컬한 사고를 동반하며, 다분히 공학적이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이기 이전에 행위성(혹은 텍스트)을 출력하는 무형의 기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풋이 있고, 아웃풋이 있으며 반드시 피드백을 동반한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게임 내 디자인과 조응하는 과정들, 이를 설계하는 방식을 절차적 수사학이라 부른다. 절차적 수사학은 영화에서 몽타주, 소설에서 서술기법과 같은 위상으로 게임만의 독특하게 담화 요소이기도 하다. * 〈소닉〉(좌상), 〈더블드래곤〉(우상), 〈반교:디텐션〉(좌하), 〈림보〉(우하). 인디 게임의 래디컬한 상상력은 사건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기억의 시간들을 재배치하고자 하는 어셈블리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동일한 매커닉, 축적된 컨벤션을 전유하면서 기억을 조작하고, 나아가 자율적인 역사 인식의 계기들을 생성하는 ‘기억의 조작술’은 게임이 존재론적 한계(에르고딕 또는 절차적 수사학이라 여겨지던)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이고 실천적인 행위성의 순간과 조우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절차적’ 혹은 ‘에르고딕’ 이라는 수사는 다분히 결정론적으로 들린다. 디지털게임이 컴퓨터와 알고리즘의 산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계량적인 측면만 그 본질로 정의될 이유는 없다. 역사의 지형은 언제나 불연속적이고 위상학적이다. 마르크스의 오랜 전통이 가르쳐주듯이, 역사는 물질대사의 과정이지 추상이나 관념의 구성물이 아니다. 아주 촘촘히 수학적으로 짜여진 사고야말로 번번히 이데올로기라는 기만적 재현계를 만들어왔음을 우리는 안다. 사회진화론이 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우생학이라는 결과물을 만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게이밍이 우리 두뇌의 어떤 로지컬한 뉴런들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로직이 어떤 역사를 상상하게끔 만드느냐다. 우리는 파블로프의 개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다. 디지털 게임이 데이터 처리의 절차들로 이뤄졌다고 해서 역사를 떠올리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무의지적 기억의 의미를 비선형적인 의식 흐름 속에서 발견하는 과정과 연동된다. 절차적 수사학 또는 에르고딕의 개념은 게임이라는 유희공간 안에서 사건을 다루는 기술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산업적 컨벤션으로 벗어나기 위해 사건 너머의 숭고를 다루는 조작술을 필요로 한다. * 〈언폴디드: 동백이야기〉(좌), 〈페치카〉(우) 즉 사건은 역사가 될 필요가 있는데, 이 과정을 나는 ‘인디’ 의 개념으로부터 재전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건의 연속에서 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사건의 배치 속에서 어떤 역사를 획득하는 것이다. 대만의 반세기 철권통치기를 응시하는 〈반교:디텐션〉, 독립운동가들의 고난과 투쟁을 그리는 〈페치카〉, 제주 4.3 대량학살의 파편들을 퍼즐풀이로 재구성하는 〈언폴디드: 동백이야기〉 등은 대문자 역사를 그린다. 좌우의 공간이동만이 허용되는 이들 게임의 공간을 탐색하면서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알았던 과거가 2차원적인 평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물을 조작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스테이지들이 바뀌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물들의 상념과 의식을 가로지르며 우리는 2차원에 강탈당한 에피스테메의 복잡성을 되돌려 받는다. 여기서 역사는 반드시 대문자 역사일 필요는 없다. 역사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지만 가끔 섬광처럼 떠오르는 얼굴들 속에서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집합적인 기억일 수도, 개인의 소중한 일상일 수도 있다. 대문자와 소문자 역사 사이에서 기억의 조작술은 파편적인 무의지적 기억들을 별자리로 만든다. 개인적인 것은 한편으로 정치적인 것이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참여하고, 스스로의 로직 속에서 퍼즐풀이를 하도록 기억의 조작술을 고무하는 것이다. 기억의 조작술은 한계지워진 게임의 절차들과 에르고딕에서 벗어나 역사의 위상학적인 시공간으로 행위자를 승급시킨다. 기억의 조작술은 공허하고 선형적인 컨벤션의 진형을 해체하고 우리를 역사의 물질 대사로 초대하는 게이밍의 강력한 전략이 된다. 우리는 인디 게임의 탈주적이고 실험적인 상상력 속에서 이를 발굴하고, 하나의 숭고로 기록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 잊혀진 과거의 기억들을 재조립하고, 지양된 현재를 환대하는 기억의 조작술. 〈A Memoir Blue〉(좌)는 대사나 이야기 대신 마임과 음악으로만 어머니와의 추억을 연출하며, 〈Lieve Oma〉(우)는 할머니와 함께 숲을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만 게임이 진행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the personal)들이 가장 역사적인 것(the historical)”이다.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서의 ‘인디펜던트’ 대다수 게임의 천편일률적인 컨벤션은 사건을 단지 흘러갈 뿐인 연속적인 것으로 제시하며, 그 가운데 불구화된 행위성을 주조한다. 플레이어는 관성적으로 게임을 조작하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본 뒤 그것을 잊어버린다. 사건의 끝은 망각이다. ‘인디’ 는 사건들을 재배치해 우리의 기억을 오래 지속되는 미래로 인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나는 인디 게임을 비상업적, 소규모 개발이라는 유형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 보기를 주장한다. 인디펜던트는 단순히 아마추어리즘이나 1인 개발, 크라우드펀딩 등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 대규모 자본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심급을 포함해 창작의 인습으로부터도 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스팀, 에픽게임즈 등 메이저 게임 플랫폼들과 대형 개발사들이 인디게임 개발과 판매를 지원하면서 게이밍 생태계에서 인디의 개념은 기술적으로 변해버린 감이 있다. 공고한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반문화 정신, 문화 창조의 자율성과 현실 변혁을 촉구하는 메시지, 상업적 관습을 깨트리는 형식파괴 및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는 작가주의는 역사의 어느지점에서나 인디펜던트의 덕목이었다. 불행히도 게이밍은 여전히 산업적 이해와 인디 사이의 어느 과도기적 지점에 있다. 물론 경제적 요인은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접근성이 뛰어난 유니티와 언리얼엔진, 오픈소스 제작환경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게임 개발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의 상태를 본다면 아직 인디게임이 까이에 뒤 시네마나 펑크, 미학적 대중주의라는 특이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현재 인디게임의 환경은 사실상 산업예비군이나 스타트업, 혹은 포트폴리오 연습의 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매년 관성적으로 열리는 인디 게임 전시나 비평은 개발자들로 하여금 산업의 컨벤션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조되도록 강요한다. 이 틀을 깨야만 할 때다. ‘인디펜던트’는 자본의 출구전략이나 편리하게 부르는 콜택시가 아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경로와 로직 사이에 발걸음들을 만들어내는 인디의 급진적인 노력들을 사려 깊게 관찰하고, 그것들이 온연히 발휘될 수 있도록 고무할 필요가 있다. ‘인디펜던트’는 하나의 이념이고, 망설이는 조작 가운데 기억이 역사가 되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삶의 잠재태를 건져 올려 인기척으로 소묘한다. 발터 벤야민이 적었듯이, “인식의 진보는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행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인디 게임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들을 세계를 인식하는 한 프리즘으로서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나는 짤렸다: 미국 게임계의 해고 붐 한복판의 현장 스케치
< Back 나는 짤렸다: 미국 게임계의 해고 붐 한복판의 현장 스케치 18 GG Vol. 24. 6. 10. 나는 짤렸다 2023년 11월 나는 짤렸다. 상사가 예정에도 없는 짧은 미팅을 제안했고 그 때 부터 뭔가 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맡고 있던 큰 클라이언트가 계약을 해지했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다. 불안함은 현실이 됐다. 상사가 나에게 절대 퍼포먼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해줬지만 기분이 좋아지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인간적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퇴사하기 1달 전에 알려주면서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재취업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내가 그 동안 들어오던 미국의 정리해고는 준비할 시간 조차 주지 않고 이메일이 와서 “30분 후 부터 너는 그 어떤 회사 정보에도 접속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사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023년과 2024년은 미국의 게임업계에 전례없이 차가운 겨울이었다. 역대급 정리해고 2023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게임업계에 있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악몽같은 시간을 보냈다. 겉잡을 수 없는 정리해고의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글로벌 팬데믹 시기 정점을 맞이하면서 엄청난 돈잔치를 벌였던 게임업계는 코로나 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다가온 불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집줄이기에 나섰다. 미국 게임업계에서 일하며 흉흉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은 2023년 봄쯤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기억으로 이 모든 정리해고들의 시작을 끊은 것은 EA였다. EA는 2023년 3월 전체 인원의 6%에 달하는 800여명을 해고했다. 5월에는 유니티가 600여명을 해고했다. 이 뉴스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유니티가 이미 1월에 300여 명을 해고했기 때문이었다. 6월에는 포켓몬으로 유명한 나이안틱이 200명 이상을 해고하고 LA 스튜디오를 폐쇄했다. 8월에는 정말로 큰 건이 터졌다. 중동측과 2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계약을 맺기로 한 유럽 게임계의 거인 엠브레이서 그룹이 투자유치에 실패하면서 자사 스튜디오들을 폐쇄해 나갔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세인츠 로우 시리즈로 유명한 볼리션이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나오는 이름들은 커져만 갔다. 9월에는 에픽 게임스가 800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했는데 이는 전체 직원의 16%에 달하는 것이었다. 데스티니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사 번지가 100명을 해고한 것은 놀랍지도 않은 수준이었지만 지인이 해고에 영향을 받아서 나에게는 좀 더 피부로 느껴졌다. 해고를 당한 내 지인은 본인이 데스티니 시리즈에 정말 ‘영혼을 갈아넣었’는데 해고를 당해서 도저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가 건넬 수 있는 위로의 말은 별로 없었다. ‘금방 다시 직업을 찾을거야’라는 말이 너무나 거짓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유비소프트는 대규모 해고보다는 각 스튜디오를 폐쇄하는 등으로 지속적으로 해고를 했다. 전체를 보면 이미 500여 명이 해고당한 수준이었다. 게임에 대한 전폭적 투자를 해왔던 아마존 게임스는 11월 아예 한 부서를 없애며 180여 명을 해고했다. 가장 정리해고 규모가 컸던 달은 2024년 1월이었다. 직원을 계속 짜르던 유니티는 1800명을 추가로 짜른다고 발표했고 트위치는 500명을 해고했다. 라이엇 또한 500명 이상을 해고했고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무려 2000여 명에 가까운 사람을 해고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1월에 해고된 사람의 숫자가 5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재취업을 위한 노력 나는 재취업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다들 짜르기 바쁜 와중에 채용을 하는 곳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있는 곳도 내가 일하던 곳보다 훨씬 더 큰 개발사/퍼블리셔 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지원을 해 서류통과도 못하고 있었다. 매일 매일 거절을 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재미있는 현상이 보이긴 했다. 테크나 게임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본인들의 자구책을 ‘협동’을 하면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단 커리어 전문 소셜미디어인 링크드인을 중심으로 해서 해고현황을 공유하고 업종별로 올라온 채용공고들을 공개된 구글시트에 모아놓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정리해고의 아카이브를 보면 정말 들어본 적 없는 인디게임개발사의 정리해고까지 빼곡히 차있었다. 구직자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기 보다는 서로 도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링크드인에서도 서로를 태그해주는 등 ‘상부상조’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게임업계 사람들 답게 디스코드 채널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보통 직군별로 정보를 공유하는 디스코드 채널이 있는데 그 곳에서 채용공고나 팁을 공유했다.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 열려있는 채용공고는 본인이 ‘리퍼럴’을 해주겠다고 먼저 나서는 사람도 많았다. 아예 본인 팀에 자리가 있다고 다른 곳에 공개적으로 게시하지 않지만 여기서 먼저 이력서를 받아보고 싶다고 한 사람도 봤다. 업계의 내부결속력은 어려운 시절에 더 잘 발휘됐다. 해고자의 모임 심지어 그들은 위로조차 모여서 했다. 블리자드가 해고를 발표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월말 블리자드 본사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한 카페에서 게임계 정리해고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 공지를 보고 같이 갈 사람을 찾았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내 특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침 모바일 전문 개발사에서 해고를 당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운영부서에 있었는데 본인이 담당하던 게임이 운영을 중단했고 회사 측에서는 회사 내 다른 팀에 자리를 찾으면 고용을 유지해줄 수 있지만 아니면 나가라고 통보했다. 그는 회사 내부에서 본인이 받아줄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어 모임에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그 노력은 허사였고 그는 정리해고를 피할 수 없었다. 판타지한 배경으로 꾸며져 있는 카페에 혼자 들어서니 이미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음료를 한잔씩 들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가운데 있는 넓은 테이블에는 전지가 있었고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는 게시판 같은 역할을 했다. 이미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짜내서 말문을 열었다. 대부분이 블리자드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었고 대부분이 한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었다. 직종은 다양했다. 대부분은 프로그래머나 아티스트 같은 개발직군이었지만 IT 인프라부터 마케팅까지 거의 모든 직종이 망라됐다. 우울함은 전혀 없었다. “20년 블리자드에서 일을 했는데 내 후임 교육 잘 시켜놨더니 나는 짤리고 그 후임이 내 자리 차지하더라”같은 자조적인 농담들은 있었지만 그것 또한 웃음의 재료일 뿐이었다. 서로 어디 면접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업계 전체적으로 해고의 바람이 불자 자연스럽게 생겨난 대처방법의 단면을 보았다. 겨울에 대처하는 방법 미국 게임업계가 얼어붙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겪었던 미시적 경험들을 통해서 알게 된 업계에 대한 몇가지의 통찰이 있다. 과도한 인재영입 경쟁과 개발비용의 상승이 이러한 사태를 불렀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 게임계는 전에 없는 호황을 맞이했고 따라서 엄청난 규모의 채용을 진행했다. 채용 중 일부는 필요한 채용이기도 했지만 경쟁업체에 인재를 뺏기지 않기 위한 채용이기도 했다. 실제로 지인들 중 게임회사에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몇달 동안 아무런 프로젝트도 배정받지 못한 경우도 들어봤다. 이는 채용이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였다는 말. 결국 이런 기형적 형태는 개발비용의 엄청난 상승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경쟁시장국(CMA)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종래 5000만 달러에서 1억5000만 달러 정도였던 AAA 게임의 개발비용은 이제 2억 달러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콜 오브 듀티나 GTA 같은 프랜차이즈는 개발비용으로 3억 달러를 넘게 쓰기도 한다. ‘인건비’가 전체 비용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임업계에서 상승하는 개발비용은 정리해고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특히나 프로젝트가 ‘접힐 시’에는 더 그렇다. 실제로 대형 모바일 게임회사에서 일하던 지인은 본인이 맡은 게임이 서비스 종료를 하면서 실직상태가 됐다. 포스트 펜데믹이라는 경제적 상황 또한 게임업계에 좋지 못하게 작용했다. 야외 활동이 극도로 자제되는 코로나 기간에 올랐던 매출은 이미 2021년부터 상승세가 둔화됐다. 2022년 들어서는 외려 떨어지기도 했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 프라이스워터쿠퍼하우스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의 전체 매출은 2022년과 2023년에 3.1%와 3.3%가 떨어졌다. PC게임시장도 2022년에는 1.4%가 쪼그라들었다. 비용은 늘고 매출은 떨어지는 시장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비디오 게임은 오래된 산업이 아니다. 산업으로서 자리를 잡고 나서 역사를 보면 전체적으로 우상향을 그려왔다. 그리고 그 상승세는 코로나 시기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에 찾아온 겨울은 어쩌면 산업으로서의 게임계가 몇번 겪지 못한 것이었을 수 있다. 미시적 시점과 거시적 시점에서 풍파를 겪어낸 나의 체험은 결국 업계에 대해서는 차가움을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따듯함을 느끼며 마무리 됐다. Tags: 북미, 미국, 해고, AAA게임, 게임산업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UX를 찾아서] 체력과 기회
< Back [UX를 찾아서] 체력과 기회 06 GG Vol. 22. 6. 10. 디노미네이션 오랜 와우저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00년대 초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60레벨 만렙 체력은 대략 4천 대 근처였다. 캐릭터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풀 파밍이 완료된 탱커도 1만을 넘는 경우가 흔치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좀 지나 같은 게임에서 캐릭터의 체력은 지나간 시간과 비례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14년 출시된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에 이르면 10만 단위의 체력도 보기 드물지 않은 상황을 맞았는데, 이때 블리자드는 능력치 압축이라는 이름의 디노미네이션을 결정했다. 디노미네이션은 게임 안에서 작동하는 스탯들을 동일한 비례식 하에 전반적으로 낮추어 잡는 변화를 가리킨다. 특정 패치를 기점으로 게임 내의 모든 스탯들, 레벨, 캐릭터의 체력과 공격력, 마나량과 회복량, 몬스터의 체력과 공격력 같은 전반적인 수치가 일제히 하향조정되었다. 물론 상호작용하는 모든 수치가 함께 하향된 터라 전체적인 게임의 밸런스가 크게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언제 하향했냐가 무색하게 이어지는 패치를 통해 다시금 게임 내의 모든 수치들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게임 플레이 속에서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과거보다 더 강한 적과 맞서 싸운다는 감각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이룬 승리는 경험치와 레벨, 아이템이라는 보상을 통해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누적되며, 이를 바탕으로 플레이어는 또다시 다가오는 더욱 강한 도전에 맞서는 구조 안에 선다. 플레이 이력이 서버에 기록되며 마치 플레이어의 소유물인 것처럼 인식되는 온라인 기반의 게임이 지속되는 한, 이 영원한 우상향의 그래프는 지속될 것이다. 체력과 기회 디지털게임에서 체력의 근원을 거슬러올라 생각해보면 ‘기회’라는 개념에 맞닿을 것이다. 체력 개념이 보편화하지 않았던 초창기 아케이드 시절에도 난이도 – 숙련도의 대결 안에는 도전기회라는 규칙이 존재했었다. 제시된 난이도를 향한 도전의 의미는 실패의 가능성이 있을 때 발생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 외계인 무리가 지상에 닿을 때, 〈팩맨〉에서 식탁보 유령에게 붙잡힐 때, 〈테트리스〉에서 쌓인 블록이 천장에 닿을 때 맞는 게임오버의 순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플레이어는 분투하며 클리어를 향해 달려나간다. 한 판의 플레이는 그러나 한 번의 기회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소프트웨어마다, 혹은 아케이드나 콘솔 기기의 설정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대체로 한 판의 게임에는 일정 숫자의 도전기회가 주어졌다. 잔기, 생명 등으로 표현되었던 이들 도전기회는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었던 간단한 숫자의 기회였고, 기회의 상실은 작은 규모의 리스타트 – 플레이가 이어지지 않고 실패 후에 다시 리트라이되는 방식으로 표현되곤 했다. 체력 개념은 기회의 부여 차원에서 이 실패 후 리트라이를 좀더 연속적인 감각으로 바꿔낸다. 이를테면 벨트스크롤 액션게임 〈골든액스〉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1개의 생명당 총 3개의 체력 바를 가지고 나오는데, 적의 공격을 받으면 체력 바가 하나씩 줄어들고 체력 바가 0이 되면 하나의 라이프가 날아가는 방식이다. 이때 도전기회, 다시말해 허용되는 실수의 수는 체력바 X 생명 수로 나타난다. 3개의 생명을 가지고 시작했다면 클리어까지 허용되는 피격의 수는 총 9번인 것이다. 그러나 생명과 라이프는 그 실패의 결과 면에서 연속성이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나타난다. 피격당했지만 생명이 줄지 않는 경우에는 말그대로 체력이 깎이면서 나타나는 약간의 경직과 넉백 정도에 머무르지만, 캐릭터가 사망한 경우에는 아예 새로 캐릭터를 출현시키면서 생명을 깎는 연출을 보여준다. 같은 기회지만 체력 생명으로 이어지는 점층적인 구조를 통해 실패의 패널티는 다르게 기능한다. 〈파이널 파이트〉에 이르면 이제 체력은 바bar로 표시된다. 적의 공격은 모두 동일한 1회의 피격이 아니라 적과 공격의 유형에 따라 다른 수치의 피해를 플레이어의 체력에 입히는데, 이때부터는 그 피해량을 숫자로 매기는 대신 일종의 인포그래픽인 체력바를 통해 표현한다. 플레이어는 정확히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히고 입는지 수치를 통해 확인할 수 없다. 〈너구리〉에서 한 번만 압정을 밟아도 게임오버되던, 가벼운 숫자의 도전기회는 체력 바라는 표현의 시대에 이르면서 점차 실패와 도전의 관계를 좀더 연속적인 변화량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동시에 보너스 점수 등을 통해 추가 도전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방식 또한 체력 바의 시대에는 숫자로 표기되는 점수 대신 음식, 약물과 같은 체력과 상관관계를 이루는 아이템을 획득해 받은 피해를 복구하는 은유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력 바의 시대에 이르면 도전과 기회는 횟수가 아닌 게이지로서 좀더 연속적인 형태의 기회로 변화한 것이다. 방향성이 아니라 표현의 다변화 횟수로서의 기회가 체력이라는 형태의 연속적 기회로 변화한 데에는 일정부분 컴퓨팅 기술의 발전 또한 기능했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서두에 언급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디노미네이션 사례와도 통하는데, 디노미네이션의 이유로 당시에는 과도하게 상승한 수치 때문에 개별 컴퓨터의 연산능력이 불필요하게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8비트 시대의 컴퓨터로는 아무래도 연속적인 기회로서의 체력 연산보다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규칙이 우선했을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디지털게임의 규칙은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TRPG와 같은 아날로그 게임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이를테면 대전격투 게임에서 타격과 피격의 순간 각각의 행동에 맞추어 공격력과 방어력을 계산해 실시간으로 반영해 결과에 반영하는 게임규칙을 가능케 하면서도 동시에 연산력과 같은 제한에 의해 생명, 체력과 같은 다른 양식의 도전기회를 규칙화하는 영향력을 동시에 발휘한다. 그러나 이 변화의 방향은 반드시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당장 오늘날의 전투형 게임들은 도리어 방대해진 체력량을 새로운 연출요소로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타격감(이 개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을 위한 연출에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꽂아넣는 피해량이 막대한 숫자로 표기되는 방식이 들어간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체력 바는 자세히 보면 전체 체력 바의 총량을 100%의 길이로 두되, 레벨업과 아이템을 통해 향상되는 체력의 수치를 체력바 사이에 일정 단위로 표기되는 눈금을 통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가늠할 수 있게 한다. MMORPG에서 나타나는 수치의 우상향도 다른 장르에서는 다른 의미로 나타난다. 매 게임마다 다시 리셋되는, 서버에 레벨과 경험치가 축적되지 않는 순환형 시간에 놓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플레이할수록 나의 캐릭터가 강해진다’는 전제가 희미해지기 때문에 체력의 절대값은 반드시 우상향하지 않으며 고정된 최대값 – 최소값의 범주 안에 위치한다. 이처럼 도전기회라는 규칙은 기술과 환경, 노하우의 변화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인다기보다는 더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확보하며 다양화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강해지지 않는다 서두에 언급한 디노미네이션의 사례와, 세부적인 규칙연산의 결과를 플레이어에게 데이터로 보여주느냐 혹은 연속적인 기호를 통해 보여주느냐의 문제의 기저에는 결국 난이도 – 숙련도 길항이라는 디지털게임의 근본적인 갈등구조 자체에는 크게 변화하지 않아 왔다는 전제가 있다. 난이도 – 숙련도 길항에 관여하는 데이터값들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력이 1천만!’, ‘체력이 500만!’같은 숫자 크기가 아니다. 100만에서 99만 9,999를 뺀 1이라는 값, 난이도와 숙련도가 주고받은 그 연산의 결과값이 길항의 의미이자 결과물이기에 체력과 공격력은 동시에 하향될 수 있다. 최근 모바일게임 광고에서 ‘플레이어의 강함’을 어필하기 위해 보여주는, 막대한 공격력을 뽑아내는 장면이 별로 와닿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전혀 강해지지 않는다. 플레이를 통해 정말 강해지는 것은 아마도 플레이어의 몸에 쌓이는 숙련도뿐일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 Back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07 GG Vol. 22. 8. 10.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이 ‘이야기 구조’와 ‘플레이 구조’의 대립 관계는 초기 게임학 연구의 내러톨로지와 루돌로지의 구분에서 유래하지만, ‘루돌로지스트에 속한 쪽’의 주역이었던 에스펜 올셋(Espen Aarseth, 2014)이 회상한 바에 의하면 당시 ‘내러톨로지스트’들이 게임에 서사학을 부적절하게 적용한 것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루돌로지스트’라는 자리가 주어졌을 뿐이었다. 덧붙여 그는 이 루돌로지스트들은 현재 모두 게임에 대해 서사학 이론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밝히며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 대조의 오해를 지적한다. 이렇듯 게임 연구 방법론의 이원화는 다소 인위적인 구분에 기인하지만, 주류 비디오 게임(특히 대량의 자본이 투입된 소위 ‘AAA 게임’)의 방향성이 발전된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스펙타클한 장면 연출을 위시하여 기존 영화적·문학적 서사를 게임 환경에서 재현하는 데 힘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도 2년 전 논쟁적이었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현대의 게임들은 이러한 단절을 의식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절충하는 방식을 써오면서, ‘영화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플레이 같은 영화’를 보는 것 사이에서 전통적 서사 구조에 대해 여전히 양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인성, 2020). 여기선 이런 배경에서 대두된 몰입환경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원론적인 관점에서 기존 논의를 되짚어가며 디지털 게임에 대한 이해를 재고해보고자 한다. 이야기로 환원하기 단지 산만하고 무의미한 서술이 아니라 표현력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선 그 구성요소를 온전히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바깥의 행위자, 즉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환경에서 이를 행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는 이야기의 의미 구조하에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변수이고, 이야기의 청자가 단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수용할 때와 달리 이들은 이야기의 과정과 내용 자체에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 플레이어의 존재가 게임이 기존의 수용적인 예술 매체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게 한다. 게임은 그 안에 영상이든 음악이든 텍스트든 다른 예술 형식을 적극적으로 담아낼 수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을 모방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데이터로써 포함할 뿐이다. 예스퍼 율(Jesper Juul, 2001)의 지적처럼 내러티브의 시간과 이야기되는 시간 간에는 시간적 거리가 존재하는 반면, 상호작용은 항상 현재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서술과 상호작용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때문에 이야기로서 서술되기 위해선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분리되고 그 영향력 바깥에 있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게임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의 입력이 허용되지 않는 컷신 속에서나, 시간적·공간적으로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해왔다. 이들은 그 자체로 게임 플레이를 형성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맥락을 제시하면서 현재 나의 행동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 〈오브라 딘 호의 귀환〉에서 플레이어는 특수한 시계를 이용하여 과거의 한 시점으로 이동하지만 단지 관찰하고 정황을 추측하는 해석적인 접근만이 가능하다. 한편 비디오 게임이 스포츠나 보드게임 등과 달리 내러티브 요소를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게 가능한 것은 디지털 매체로서 가지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과 케이티 세일런(Katie Salen)의 저서 〈Rules of Play〉에선 디지털 게임의 특징 중 하나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제시한다. 보드게임을 할 때는 이해한 룰에 따라 말을 손으로 움직이고 상호작용 결과를 직접 계산해야 했던 과정을 디지털 게임상에선 구현된 AI,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 그래픽 엔진 등의 모든 자동화된 절차로 대신할 수 있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비-디지털 게임에서 손수 수행하기엔 너무 복잡한 수준의 상호작용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로부터 단지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는 것 이상으로 디지털 게임은 가상의 공간과 캐릭터를 구체화하여 동적인 허구 세계를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플레이어의 존재는 이렇게 시스템이 자동화됨에 따라 축소된다기보다는 각 게임의 설정에 따라 그 역할이 바뀔 뿐이다. 최근 모바일 시장에서 지배적인 ‘방치형 게임’이라 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을 재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화를 소비하고 캐릭터나 아이템의 조합을 적절하게 구성하는 식의 운영을 요구하며 다른 조건과 방식의 플레이를 제공하고 있다. 1)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는 이러한 자동화된 구성요소 사이에서 입력을 요구받고 자동적인 절차를 거쳐 출력을 되돌려 받는다. 이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로 새로운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이에 다시 대응하는 과정이 연속된다. 게임 플레이를 이렇게 단순화했을 때 이 ‘모델’로부터 플레이어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 과정은 게임을 하는 동안 반복되지만, 플레이어가 스토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모든 시간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 구조 안에서 (상정된 것이든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것이든) ‘이상적인 시퀀스’를 그려낼 때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건은 게임에서 항상 일어나지만, 이야기는 이를 사후적으로 의미화하고 재조합할 때만 존재한다. 따라서 게임 내부에 고정된 이야기를 조합하여 연속된 하나로 이은 것이 그 게임의 스토리라는 것도 지나치게 좁은 해석이고, 반대로 게임 플레이 전체를 두고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던가 ‘각본 없는 드라마’ 혹은 ‘플레이어 스토리’나 ‘창발적 내러티브’라고 이르는 것 2) 도 가능성을 두고 말하는 비유일 뿐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 내러티브인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로 제시될 수 있는 것’에 가깝다. 3) 시스템으로 환원하기 한편으로 게임연구 초기엔 게임에 대한 텍스트적 해석에 반대하고 (‘학문적 식민지화’를 경계하며) 게임 매체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게임 내 기존 이론으로 해석하기 쉬운 요소들(텍스트, 이미지, 내러티브 등)이 도외시되기도 했다. 올셋(2004)은 한 에세이에서 체스 말이 어떤 모양을 가지든 체스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라라 크로프트의 외모는 몸이 다르게 보인다고 다른 식으로 플레이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이런 논지는 현재까지 몇몇 비평과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지속되어, 이들은 ‘진정한 게임’을 찾기 위해 ‘가장 게임다운 것’ 혹은 모호하기 그지없는 ‘게임성’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항상 룰과 상호작용을 발견하고, 거기에 더해진 스토리와 이미지, 음악은 부차적이고 메커니즘을 보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상부 구조인 이야기로 환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위 요소로 환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호모 루덴스〉에서 하위징아(Huizinga, 1949/2010)는 놀이가 ‘외양의 실현’으로서 상상력을 질서화하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디지털 게임이 놀이의 시뮬레이션적 본질을 가지고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통해 허구세계를 다른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모방 행위’라는 의미를 고려했을 때, 게임이 그려내는 픽션은 단지 뼈대인 룰을 이해하기 위해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재현하는 데 있어 생생함을 더하고 그 일부로서 참여하기 위해 질서가 부여된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율(Juul, 2005)이 설명한 것처럼 픽션과 룰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규칙에 묘사 대상의 성질이 개입되고 또 반대로 구조가 표현 방식을 지정하는 식으로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경쟁하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이다. 또한 디지털 게임은 시스템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맥락에 의해 경험하는 하나의 과정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 앞서 기계적 관점에서 단순화시킨 디지털 게임의 플레이 과정을 돌이켜 봤을 때, 룰을 먼저 이해하고 진행하는 다른 놀이 형식과 달리 디지털 게임에서 프로그램이 절차를 처리하는 과정은 숨겨진다. 플레이어는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출력된 것만을 감각할 수 있기에 작동 방식을 직접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그 기능을 알게 된다. 4) 일반적으로 가이드북이나 게임 내의 튜토리얼을 통해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메커니즘을 숙지할 순 있지만, 게임 시스템을 완전히 알고 행동할 수는 없다. 다니엘 벨라(Daniel Vella, 2015)는 이런 성질 때문에 게임의 본질로서 시스템에 대한 탐구는, 시스템이 의미하는 방식을 주장하기 위해선 전체 시스템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현상을 경험하고 이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는 대신 오히려 의도적으로 작동방식을 숨기고 플레이하면서 발견하고 추론하도록 한다.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는 행위도 근본적으로 이런 ‘미스터리’의 존재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폴 마틴(Paul Martin, 2011)은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의 풍경이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인 전체를 그리면서 ‘게임적 숭고’(Ludic sublime)를 제시한다고 하였다. *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오픈월드의 풍경에 외부는 없다. “세계는 눈이 볼 수 있는 데까지 뻗어나간다.”(Martin, 2011)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숭고함은 약화된다. 게임에 익숙해짐에 따라 시스템을 내면화시키고 전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상을 그릴 수 있게 되면, 점차 게임의 세계는 가능성의 공간에서 질서정연한 우주로 변화하면서 이에 따라 플레이도 “좌절과 발견 사이의 팽팽한 기브앤테이크에서 생산적인 놀이를 위한 일상화된 운동”에 가까워진다(Welsh, 2020). 그럼에도 벨라(Vella, 2015)는 게임에 웬만큼 숙련된 상태라 하더라도 여전히 새로움을 발견할 여지는 있으며 5) , ‘블랙박스’라는 특성상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 불가능하다는 성질이 게임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미지와 몰입 서술한 대로 플레이어는 시스템에 직접 접근하는 대신 이미지, 인터페이스를 통해 메커니즘을 해석하며 이를 통해 상호작용한다. 디지털 게임의 이미지는 단지 표면적인 기호가 아니라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되고, 지표로서 룰과 상호작용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현재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는 3D 그래픽 엔진의 사실적 재현 수준은, 게이머들이 이런 정교한 그래픽으로 그려진 신작 오픈월드 게임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특히 ‘자유도’에 대해)을 가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외적 사실성만큼의 실제적인 시스템을 구현하는 건 현실의 물리법칙에 점근하는 수준의 정교함이 요구되는 일이기에, 게임들은 재현의 한계에 도전하는 대신 플레이에 적합한 방식으로 추상화되고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상호작용에 제한을 두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제약으로서 룰’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시화되면서, 게임 이미지는 그림과 액자의 관계와 같은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이 미디어의 존재를 수시로 각성시키기 때문에 시각적 리얼리즘이 그리는 환영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게 한다. 영화와 같은 스펙타클함을 추구하는 게임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숨기고 심리스 스타일을 사용하면서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온전히 몰입하기를 바라지만, 비현실적인 규칙의 존재가 인공적인 시스템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유저 인터페이스(하드웨어 인터페이스도 물론이고)에 의해 플레이어는 허구 세계와 늘 일정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비디오 게임은 연극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내부 세계의 환영은 투명하게 노출된다기보다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극적인 연상을 통해 상상된다. 초기 비디오 게임 그래픽의 투박함은 기술적 한계에 의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추상적인 기호로서 이해되어 그 비현실성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6) 점 두 개와 선 하나로 사람의 얼굴을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재현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의미가 제시될 수 있다면 환영은 만들어진다. *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2019). 여타 리마스터·리메이크 작품과 다르게 〈꿈꾸는 섬〉의 리메이크된 그래픽은 플라스틱 미니어처처럼 그려진다. 닌텐도는 여전히 추상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비디오 게임의 몰입 환경에 대해 고규흔(2004)은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아무런 계기판 없이 하늘을 날고 있는 행글라이더의 라이더가 자신이 대기 안에 존재함으로써 온몸으로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경험하고 상황을 판단하여 기체를 조종한다면, 계기판 앞에 앉은 파일럿은 자신의 대기에 존재하면서도 환경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의 패턴으로 나누고 객관화시킨다. 풍속과 고도, 현재의 운항 속도, 시야 거리 등등의 수치화된 정보를 기준으로, 행글라이더의 기수와는 달리 현 상황에 대해 객관적 방식으로 각성하는 것이다.” 그는 “고전적 리얼리즘에서의 관객”이 행글라이더의 기수라면, 게임 플레이어는 환영과 동화되지 않는 파일럿의 태도와 같다고 한다. 자각몽으로서 게임 *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Don’t Look Back〉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판의 미로〉의 주인공 오필리아에게는 다른 불행한 인물들과 달리 따로 판타지 세계가 주어진다. 오필리아는 요정에 이끌려 목신 판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과제를 수행한다. 이와 유사한 알레고리를 가진 게임 〈Don’t Look Back〉에서는 그림과 같은 장면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불행해 보이는 그에게도 역시 판타지 세계로서 지옥이 주어진다. 우리는 그를 조종하여 장애물을 통과하고 괴물들을 격파하며 거침없이 나아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까지 물리친 후에 그는 아내의 영혼과 만난다. 이제 ‘규칙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이동하여 다시 이승으로 올라오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 결과가 〈판의 미로〉에서는 사실관계가 모호하게 그려지지만 여기서는 보다 명확하다. 남자가 처음 떠난 자리로 돌아올 때, 이 과정을 함께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게임적 존재’들은 그대로 소멸한다.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아에게 혼란스러운 현실과 대조적으로 판타지 세계에선 절대적인 규칙이 제시되고, 이에 따라 고난을 극복한다. 이 짧은 게임 안에서도 플레이어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상상하는 남자로서 게임을 하고, 목적을 달성하곤 합당한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 두 작품이 판타지를 체현하는 방식은 게임 플레이와 맞닿아있다. 이들이 진행하는 게임은 규칙을 두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긴장 속에서 문제를 극복하는 놀이이면서, 공상만이 아닌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으로 제시되는 공간이다. 상상된 시스템 속에서 꿈을 꾸고 있지만 일상적 현실을 자각한 채로 정교하게 욕망을 만족시킨다.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로서, 게임은 일방적으로 재생되는 꿈도, 잠깐 빠져드는 백일몽도 아닌 자각몽으로 경험된다. 1) 다만 그 자동화의 대상이 기존 액션 RPG 장르에서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자동 사냥’을 제공하는 RPG 게임들은 게임 커뮤니티 등지로부터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 Soler-Adillon(2019)이 지적한 바대로 시스템의 자기조직화가 행위자의 인지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Importantly, they do so while responding to this sense-making process itself. However ... it is problematic to associate self-organization to processes in which the agents generating the phenomenon are aware of it” (Soler-Adillon, 2019) 3) 다만 게임이 기존 내러티브 구조를 따르는 대신 “더 큰 내러티브 경제에 기여”하는 매체라는 관점도 있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2004)는 〈스타워즈〉 시리즈와 1983년 아타리에서 출시한, 영화의 한 장면을 시뮬레이팅하는 동명의 비디오 게임이 영화에서처럼 전체적인 플롯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주장을 두고, 게임을 하며 환경적 세부 사항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미디어와 결합하여 더 큰 단위에서 풍부한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의 주류 온라인 게임에도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4) 워게임 디자이너 제임스 더니건(James F. Dunnigan, 2000)은 이를 컴퓨터 게임의 경험을 축소시키는 ‘블랙박스 신드롬’(Black box syndrome)이라 불렀다. 그는 내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워게임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했다. 5) 일례로 1994년 출시된 〈둠 2 : 헬 온 어스〉의 한 숨겨진 구역은 출시 후 24년이 지난 2018년까지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유튜버 Zero Master가 특수한 방법을 써서 정상적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이에 게임 개발자 존 로메로(John Romero)가 직접 트위터에 축하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다. romero. (2018,09,01). CONGRATS, Zero Master! Finally, after 24 years! "To win the game you must get 100% on level 15 by John Romero." Great trick getting to that secret! 6) 이런 점에서 현대 인디 게임에서 흔히 표방하는 로우폴리곤이나 픽셀 그래픽이 활용된 레트로 스타일은 단지 노스탤지어만이 아닌 게임적 이미지의 물성에 관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Hocking, C. (2009). “Ludonarrative dissonance in Bioshock: The problem of what the game is about.” In D. Davidson (Ed.), Well played 1.0: Video games, value and meaning. ETCPress. Aarseth, Espen (2014) “Ludology,” in The Routledge Companion to Video Game Studies edited by Mark J.P. Wolf and Bernard Perron. 박인성 (2020). “2010년대 비디오 게임에서 나타나는 서사와 플레이의 결합 방식 연구 - AAA급 게임의 심리스(Seamless)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21(1), 83-111. Juul, Jesper (2001). “Games telling stories? - A brief note on games and narratives.” Game Studies, Vol. 1 Issue 1, July 2001. Eric Zimmerman, Katie Salen (2003). “Rules of Play.” MIT Press Soler-Adillon, Joan (2019). “The Open, the Closed and the Emergent: Theorizing Emergence for Videogame Studies.” Game Studies, Volume 19, issue 2 Jenkins, Henry (2004). “Game design as narrative architecture.”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d. Noah Wardrip-Fruin & Pat Harrigan. Cambridge, Ma.: The MIT Press. Aarseth, Espen (2004). “Genre trouble: narrativism and the art of simulation.”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d. Noah Wardrip-Fruin & Pat Harrigan. Cambridge: The MIT Press. Huizinga, J. (1949).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이종인 (역) (2010). 〈호모 루덴스〉. 일산: 연암서가 Juul, Jesper (2005). “Half-Real: Video Games between Real Rules and Fictional Worlds.” MIT Press. James F. Dunnigan, “Wargames Handbook: How to Play and Design Commercial and Professional Wargames.” 3d ed. (San Jose: Writers Club Press, 2000) Welsh, Timothy (2020). “(Re)Mastering Dark Souls.” Game Studies, Volume 20, Issue 4 Martin, Paul (2011). “The Pastoral and the Sublime in Elder Scrolls IV: Oblivion.” Game Studies, Volume 11, issue 3 Vella, Daniel. (2015).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Volume 15, Issue 1 고규흔 (2004). 비디오 게임에 대한 스펙터클적 관점에서 계약의 관점으로 이동. 한국게임학회 논문지,4(3),29-4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학생) 김도근 디지털 미디어와 같이 자란 세대로 특히 디지털 게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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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0 제3회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4편과, 게임비평에 관한 고민을 담은 글들과 함께합니다. No Game for Young Men While some critics pointed out similarities between Kart Rider and Nintendo’s Mario Kart series, this controversy did not concern its players, especially the young kids already enjoying the game—myself included. Kart Rider marked a pivotal moment in Nexon’s history, peaking at 200,000 concurrent players (in a country of 50 million people), dominating the PC-bang market, and reaching 10 million registered accounts in 2005, within just a year of its release. In 2023, after 18 years of service, Kart Rider was replaced by its sequel, Kart Rider: Drift, though the reception to this successor has been mixed and is still unable to surpass the legacy of its predecessor. Read More [Editor's View]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에 부쳐 2024년 10월 GG 20호는 제3회 게임비평공모전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GG는 처음 창간하면서부터 연 1회 게임비평공모전을 여는 것을 주 업무로 삼았고, 다행히 한 해도 쉬지 않고 성공적으로 공모전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Read More [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Read More [공모전수상작]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의 제4의 벽 활용을 중심으로 퀀틱드림의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은 사람과 무척이나 유사한 안드로이드의 출현 이후, 그들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SF적 상상력 아래 제작된 게임이다. 스토리라인은 크게 수사 보조 안드로이드 코너, 가정용 안드로이드 카라, 그리고 칼이란 인물을 위해 특별제작된 안드로이드 마커스, 이 셋이 초점화자가 되어 진행된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 장르답게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러 다른 엔딩을 볼 수 있다. Read More [공모전수상작]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2022년 만우절 주간, 레딧의 거대한 땅따먹기 픽셀아트 프로젝트인 r/place에서 <레인 월드 (Rain World, 2017)>와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 2019)>의 서브 레딧끼리 자그마한 동맹을 맺었다. ‘아우터 와일즈 원정대’의 로고를 중앙에 두고 양 게임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슬러그캣과 화로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예쁘게 공유된 캔버스를 보고 있자면, 임시적이거나 느슨하게 맺어졌을 몇몇 r/place 동맹들에 비해 두 게임 간의 연합이 제법 어울리게 느껴졌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만큼? Read More [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미국에서의 비디오게임 비평에 대한 개론 - 2017 (원제: Videogame Criticism and Games in the Twenty-First Century) 이번 논문 세미나는 비평 공모전 특집에 맞춰, 시카고 대학 영화 및 미디어학과와 영문학과 연구 교수인 패트릭 자고다(Patrick Jagoda)가 2017년에 쓴 "비디오게임 비평과 21세기 게임"을 다루고 있다. 자고다는 시카고 대학에서 웨스턴 게임 랩(Weston Game Lab)과 미디어 아츠 앤 디자인(Media Arts and Design, MADD) 학부 프로그램의 책임자로서, 시카고 대학을 북미 게임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Read More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Read More 게임비평의 쓸모 게임 비평 역시 앞서 언급한 시의성이나 대규모 자본과의 관련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글의 형식은 게임 비평일 수밖에 없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자문하지 않는 존재는 점차 자기 합리화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현재 한국 게임이 처해 있는 다양한 위기들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Read More 별점·평점이라는 표면 별점의 역사를 짧게 훑어보자. 최초의 별점은 1820년경 영국의 마리아나 스타크가 펴낸 『유럽대륙 여행가이드』라 알려져 있고, 본격적으로 별점이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통해서다. Read More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Read More 전업 게임평론가의 솔직한 고민 경험과 지식,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 모두가 필요한 것이 교양을 딛고 서는 게임평론의 전제가 된다는 생각은 굳건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대중성은 오히려 게임평론에 필요한 요소 중 이 둘보다 후순위에 선다. 경우에 따라서는 훌륭한 게임 경험과 이를 적절히 일반화하고 풀어내는 지식의 조화만으로도 대중성은 완성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Read More 제3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이 올해로 벌써 세 번째를 맞이했다. 세 차례 모두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계속 좋아졌다는, 어쩌면 뻔한 총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향평준화라는 표현이 정확할텐데, 이는 ‘좋은 비평’의 요소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는 징표이기도 하겠다. 응모작들의 평균적인 형식적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Read More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024년 진행된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Read More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Read More
-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 Back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09 GG Vol. 22. 12. 10. 2021년 겨울, 게임 ESD 플랫폼 스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디게임이 있다. 흔히 ‘뱀파이어 서바이벌(이하 뱀서)’이라고 불리는 〈뱀파이어 서바이버즈(Vampire Survivors)〉이다. 당시 ‘앞서 해보기’로 단돈 3,300원에 출시한 이 게임은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저사양, 간단한 게임 플레이로 전문 유튜버나 게임 스트리머뿐만 아니라 일반 게이머들 사이까지 유행했다. ‘뱀서’는 투박한 도트 그래픽과 2D 탑 다운(Top-down) 뷰를 이용한 고전 아케이드 슈팅 스타일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마치 팩 인 비디오가 개발한 〈람보〉 시리즈나 〈GTA〉 시리즈 1, 2편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게임은 2021년 말~2022년 초 사이에 나온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어떻게 보면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전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고전 게임에 추억이나 경험이 있는 혹은 레트로 스타일의 인디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에게는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게임에 추억이나 경험이 없는 그 밖의 게이머에게는 매력적으로 어필되기 힘들다. 그런데도 다양한 게이머에게 이토록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도 ‘뱀서’의 인기는 식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비슷한 게임들이 올 한 해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20 Minutes Till Dawn〉과 같은 도트 스타일, 〈Brotato〉와 같은 카툰풍, 〈Beautiful Mystic Survivors〉와 같이 미소녀 3D 버전의 유사 게임도 출시되고 있다. ‘뱀서’ 스타일의 시작은 한국의 1인 개발사 LEME가 만든 모바일 게임 〈매직 서바이벌〉이다. 종종 게이머들은 〈매직 서바이벌〉같은 장르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도 게임에서 등장하는 시스템이나 표현들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유사한 것 같은 느낌의 원인은 〈매직 서바이벌〉의 장르적 특징이 복합적인 장르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게임 틀은 고전 아케이드 슈팅이다. 적이 발사하는 탄막을 피하고 적을 처지하는 구조가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 방식이다. 결국 ‘이런 스타일과 장르의 원조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고전 게임 계보까지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고전 게임과는 〈매직 서바이벌〉은 어떠한 차별점이 있는 것일까? * 〈매직 서바이벌〉 인 게임 화면. 겉으로 보이는 고전 게임 스타일과는 다르게 〈매직 서바이벌〉에서 현대 게임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심은 ‘로그라이트’와 ‘캐주얼’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로그라이트(Rogue-lite)’ 장르는 1980년 출시된 최초의 2D 그래픽 RPG인 〈로그(Rogue)〉가 지닌 영구적인 죽음, 절차적 생성과 같은 핵심 원칙을 적용하되, 죽더라도 다음 게임 플레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일정량의 보상을 가져가게 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게이머는 다음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아이템을 미리 장착하는 등의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여전히 게임을 다시 시작하지만, 진정으로 0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매직 서바이벌〉은 로그라이트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로그〉를 단순 수용이 아닌 변용 했다. 이러한 점이 레트로 장르에 대한 실천적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게임은 간단한 게임 플레이 방식과 쉬운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캐주얼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그럼에도 파고들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하드코어’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캐주얼게임을 ‘하드코어’의 반대급부로 보는 것은 캐주얼의 단편적인 면만 강조한다. 예스퍼 율(Juul, 2010)은 캐주얼 게임이 일반적으로 ‘하드코어’ 게임과 상반되는 형태의 게임이라는 관점과 달리, 초창기 게임의 ‘단순함’으로부터 재발견된 범주로 본다. 이러한 점에서 단순히 〈매직 서바이벌〉이 캐주얼게임이기에 고전 게임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캐주얼’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즉, 〈매직 서바이벌〉은 단순한 고전 게임의 모방과 무분별한 수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조금 더 자세한 게임 플레이 메카닉은 후술하겠지만, 〈매직 서바이벌〉과 같은 게임은 그 자체로 새로이 등장한 장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실제로 ‘뱀서’의 제작자도 장르와 스타일의 기반이 〈매직 서바이벌〉이라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 ‘뱀서’는 〈매직 서바이벌〉을 참고하면서도 해당 게임이 가진 문제점을 개선하여 출시되었다. 개발사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장르를 탄탄하게 개량하고 있다. 게이머나 커뮤니티 혹은 게임 웹진에서도 ‘like vampire survivors’라는 용어를 쓸 정도이니 말이다. 이른바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라이크’라 불리는 장르는 기존 장르와 어떤 부분이 차별화되는 것일까? ‘서바이버즈-라이크’에서 살아남는 방법 *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메인 메뉴와 인 게임 화면. 그렇다면 게임을 조금 더 살펴보자.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는 제작사에서 “로그라이트 요소를 갖춘 고딕 호러 케주얼 게임” 이라 밝히고 있다. 소개 문구만 보면 감이 잘 안 온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레트로 비트 사운드와 함께 단순한 메인 메뉴가 반겨준다. 처음 시작하는 게이머는 콜렉션, 강화나 잠금 해제 메뉴 모두 아무것도 이용할 수 없다. 이것들 전부 잠금 되어있거나 메뉴 상단에 보이는 돈은 0이기 때문에 강화도 할 수 없다. 결국 게이머는 어쩔 수 없이 시작 버튼을 누르고 캐릭터를 골라서 시작한다. 캐릭터는 풀밭에 놓이게 된다. 어떤 튜토리얼도 주어지지 않지만, 캐릭터는 자동으로 채찍질하고 있고, 멀리서 박쥐가 캐릭터를 향해 날아온다. 이후 게이머는 WASD나 방향키로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공격이 캐릭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임은 일련의 과정을 설명해주지 않지만, 게이머는 경험적으로 알아차리고 터득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제작사가 밝힌 “케주얼”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레고리 트레프리(Trefry, 2010)는 〈Casual Game Design〉에서 캐주얼 게임의 몇 가지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뱀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의 속성은 “규칙과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게이머가 빠르게 게임 플레이에 숙련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Trefey, 2010). 이처럼 ‘뱀서’는 게임에서 분명하게 플레이 방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 메커니즘은 감각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손쉬운 접근성을 제공한다. 게이머는 그저 방향키를 움직여 캐릭터를 조작하고, 자동 공격을 몬스터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 이걸 반복적으로 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즉,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하기 위해 몰려오는 적들을 물리치거나 피한다는 단순 명쾌한 목표가 제시된다. * 레벨업 메뉴와 보물상자 연출 화면.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캐릭터는 박쥐, 언데드와 같은 몬스터를 처치하면서 보석을 습득하면 경험치를 얻게 된다. 이를 통해 레벨이 올라간 캐릭터는 세 가지의 선택지를 골라서 무기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RPG 게임의 캐릭터처럼 성장한다. 이 과정을 어느 정도 반복하다 보면 기존 몬스터와 색이 다른 몬스터를 볼 수 있다. 열심히 색이 다른 적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면 처치할 수 있다. 여기서 색이 다른 보석 혹은 보물 상자가 나타난다. 보물상자를 습득하게 되면 특별한 연출이 나오면서 돈과 강화 아이템이 나오게 된다. 이는 랜덤하게 더 많은 돈과 아이템을 얻게 되는 기회가 된다. 게이머는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또 하나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운데 상단에 표시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게 되면 빛나는 몬스터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되면 다음 단계의 스테이지로 넘어가듯이 보스가 등장한다. 난도가 높은 탄막들이 날아오고, 캐릭터는 이를 피하면서 보스를 공격한다. 하지만 초반 플레이에서 보스를 쓰러뜨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캐릭터는 결국 죽게 되고, 게이머가 게임 오버 화면을 보고 나면 다시 메인 메뉴로 돌아온다. 하지만 메인 메뉴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돈이 생겨서 캐릭터 강화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몇몇 요소들이 해금된다. 게이머는 다음 게임에서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즉, 우리는 처음부터 더 강해진 캐릭터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서바이버즈-라이크’ 플레이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실천된다.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조금씩 얻게 되는 돈을 통한 업그레이드와 새로이 얻게 되는 해금 요소들로 캐릭터는 오랜 시간 버틸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러한 요소들이 스테이지를 도전하는 게이머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게이머는 처음에 몇 가지 안 되는 무기들만 고를 수 있지만, 해금되는 요소들을 통해 다양한 무기와 아이템, 그리고 진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닿는다. 이를 통해 캐릭터는 더 많은 적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점점 쌓이면서 캐릭터는 강해진 적과 보스를 물리칠 수 있다. 게이머는 이를 반복하며 일정 시간까지 버티게 되면 승리한다. 하지만 게임이 끝났다고 완전히 클리어한 것은 아니다. 다음 맵이 해금되면서 게이머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한다. 게이머도 새로운 무기, 캐릭터와 함께 새 스테이지에 도전한다. ‘로그라이트’ 메커니즘은 게이머에게 계속해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를 제시하면서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이머는 항상 캐릭터와 무기의 선택을 고민하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고자 한다. 랜덤하게 제시되는 선택지는 판마다 신선함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게임은 게이머의 조작과 캐릭터 강화로 운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순전히 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점이 게이머에게 실질적인 플레이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기존 로그라이크, 로그라이트 게임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아주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타 장르와 차이점은 ‘서바이벌’에 있다. ‘서바이버즈-라이크’ 게임은 분명하게 생존 게임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흔히 생존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는 현실감을 부여한 시뮬레이션 장르나 오픈 월드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하드코어’ 게임을 떠올린다. 하지만 생존 게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생존전략에 있다. 생존 게임 게이머는 생존하기 위해 맵 곳곳에 있는 자원과 물자를 모으고, 새로운 무기와 아이템을 만들거나 습득하며 앞으로의 위험에 대비한다. 생존주의가 생존 게임 장르의 기초 문법이다. ‘서바이버즈-라이크’는 생존전략을 핵심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게이머는 캐릭터를 조작해서 어느 방향이든 갈 수 있다. 맵을 돌아다니다 보면 무작위로 생성된 다양한 오브젝트가 존재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캐릭터는 자동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근처에 가기만 해도 오브젝트를 공격하게 된다. 이윽고 오브젝트가 파괴되고 아이템들이 나온다. 여기서 게이머는 적을 처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맵에 배치된 아이템들을 통해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 알게 된다. 이를 알게 된 게이머는 더 많이 맵을 돌아다니게 되고 다양한 지형을 발견한다. 게임별로 재단, 집터, 건물, 거목 등과 같이 다양한 지형으로 배치된다. 여기서 게이머는 랜덤하게 강화용 아이템이나 특수한 이벤트들을 마주치게 된다. 즉, 더욱 강한 무기나 아이템들을 얻을 기회는 단순히 적을 처치하는 것 외에도 맵에 배치된 오브젝트를 통해 제공된다. 맵에서 자원과 물자를 모아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드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고 등장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준비이다. 비록 질병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시뮬레이션 된 현실성은 없지만, 게이머는 살아남기 위해 자원을 모으고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는다. 이는 게임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게이머는 능동적으로 게임을 클리어할 수 없다. 일정 시간을 채워야만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 즉, ‘서바이버즈-라이크’는 주어진 생존환경에서 살아남아야만 클리어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게임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내러티브를 통해 생존 본능을 자극한다. 혼자 남아 있는 캐릭터와 나만 공격하는 적은 일종의 ‘배틀로얄’ 구도와 같다. 우리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갈구한다. 게임 내 아이템이 됐든, 캐릭터를 조작하는 게이머의 손가락이 됐든 살기 위한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러한 점이 게이머에게 생존 본능과 함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게이머가 이 장르를 좋아해 주는 데에는 단순히 레트로 인디게임이라는 점 때문은 아니다. 게임 기반에는 다양한 레트로 장르에 대한 각색과 생존주의가 깃들어 있다. 이 같은 지점이 기존 레트로 인디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뿐만 아니라 캐주얼 게이머, 하드코어 게이머까지 어필할 수 있는 ‘서바이버즈-라이크’가 가진 재미 요소이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더 재밌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후속 게임들은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를 모방한다. 특히 일부 게임이 ‘서바이벌’이 아닌 ‘서바이버즈’라는 제목을 달고 출시한다. 분명하게 원조는 〈매직 서바이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도 몇몇 게임은 ‘뱀서’에 새로운 요소를 더하거나 불편한 부분을 제거하여 출시되기도 한다. 사뭇 달라진 게임 스타일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즉, 많은 후속 게임이 ‘뱀서’에서 영감을 얻고 있지만, 그 형태는 미묘하게 다르다. 또 하나는 〈매직 서바이벌〉은 본래 모바일 게임이었지만, 상당수의 게임이 PC 플랫폼으로도 출시되었다는 점이다. 간단한 조작법과 짧은 플레이 타임은 모바일에 적합했지만, PC로 넘어오게 되면서 더 많은 연산이 가능해진 점은 많은 적과 큰 규모를 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게이머는 게임 플레이를 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후속 게임들은 ‘뱀서’에서 틀을 가져와서 지금 상황에 알맞게 바꾼다. 어째서 이들은 모방을 넘어 변화하는가? 이는 당연한 논리이다. 게임 시장은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게임이 개발되고 있고, 일주일만 해도 수십 개의 PC게임이 출시한다. 모바일 환경을 포함하면 더욱 많아진다. 이 중에서 ‘서바이버즈-라이크’ 게임 또한 분명하게 존재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대다수 게임은 흥행에 실패할 것이다. 장르를 선점하고 있는 게임들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에 맞게 변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진화’라 부른다. 진화는 진보가 목적이 아니다. 진화는 생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변화, 즉, ‘변이’다. 변이가 바로 진화의 제1 조건이다 . 개발자들은 ‘서바이버즈-라이크’가 우후죽순 나오는 지금 시장에서 모범이 되는 게임을 모방하고 변이하는 생존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에게 장르의 진화는 생존을 위한 것이다. 게임들은 어떤 변이가 게임 시장에 더 잘 맞을지 이리저리 모습을 바꾸고 있다. 그리고 결국 유리한 형질을 가진 게임은 살아남아 장르를 확립할 것이다. 마치 자연 선택의 원리처럼 말이다. * 〈탕탕특공대〉 인 게임 화면. 이 생존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례가 바로 〈탕탕특공대〉이다. 이 게임은 ‘서바이버즈-라이크’가 지향하는 바를 실천함과 동시에 게임이 오랫동안 플레이 될 방법을 고안해냈다. 모바일 환경에 맞게 플레이할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는 ‘스태미나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게임 내의 육성 시스템은 간소화했지만, ‘장비 가챠 시스템’을 도입하여 캐릭터가 영구적으로 들고 갈 수 있는 업그레이드 요소는 오히려 강화했다. 게이머는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비를 착용함으로써 시작 무기를 바꾸거나 더욱 높은 공격력과 방어력을 통해 이점을 갖고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게이머는 ‘서바이버즈-라이크’ 게임이 주는 즐거움과 게임 플레이 경험을 온전히 얻을 수 있다. 오히려 〈탕탕특공대〉는 라이브 게임 서비스를 통해서 더 오랫동안 게임을 즐길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이것이 기존 후속 게임과는 다른 생존전략이다. 나가며 ‘서바이버즈-라이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단순히 간단하고 쉬운 반복 플레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즐거움은 게이머가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장르가 10, 20년 후까지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표절, 모방 게임이 쏟아지고 있고, 게이머들은 이 행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무분별한 장르의 남용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기 게임이 많이 출시하고 있는 현 게임 시장에서 ‘서바이버즈-라이크’가 짧은 시간이지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은 게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생존전략을 세우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추이가 기대된다. 참고문헌 Trefry, G. (2010). Casual Game Design: Designing Play for the Gamer in ALL of Us (1st ed.). CRC Press. Juul J. (2010). A casual revolution : reinventing video games and their players. MIT Pres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게임의 경계는 어디까지 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든 일본어든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 Aska Mayer
Aska Mayer Aska Mayer A Doctoral Researcher at Tampere University Game Research Lab and the Finnish Center of Excellence in Game Culture Studies. Aska’s research is focused on bodily perceptions of digital games and technology, as well as apocalyptic media. Read More 버튼 읽기 Playing with Shivering Bodies: Expectation, Exploration, Perception The dark hallway I walk through seems to be deserted. I can only hear my own steps and the eerie soundscape of the cranking metal pipes surrounding me, and can barely see what lays beyond the light of my flashlight. I’m afraid, as I don’t know if something is waiting in the shadows for me. As I enter the next room, I hear heavy breathing and as the light catches a mutilated body, in between the dead and living, I feel my stomach contract from disgust.
-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 Back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19 GG Vol. 24. 8. 10. PC ESD플랫폼 ‘스팀’에는 늘상 좀비물이 넘쳐흐른다. AAA급 타이틀은 말할 것도 없고, 저예산의 소규모 게임들로 가면 온통 좀비 천국이다. 좀비의 인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호러 장르라면 좀비는 더욱 본격적이긴 하다.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게임 속 좀비의 등장과 변화 단순하게 좀비라는 개념을 처음 게임 안에 가져다 놓은 게임을 꼽으라면 1984년의 <좀비 좀비Zombie Zombie>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의 경우는 좀비 게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특성만을 보여주었다. 좀비 영화가 나름의 흥행을 이어가던 시절, 이 게임은 그저 영상물로서 갖는 좀비의 인기를 비디오게임으로 가져오는 정도에 머물렀다. 고층 빌딩 위에서 좀비라고 불리는 적들을 밀어 낙사시키는 방식의 간단한 규칙 안에서 적 캐릭터들의 행동은 굳이 좀비가 아니어도 무방할 패턴이었기에 본격적인 좀비 게임의 시작이라고 <좀비 좀비>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 <좀비 좀비>는 좀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게임규칙 면에서 좀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블 데드Evil Dead>(1984)나 <고스트 앤 고블린(일명 ‘마계촌’) Ghost N Goblins>(1985) 등의 게임부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의 행동패턴이 게임 캐릭터 안에도 들어오는 흐름을 볼 수 있다. 다소 느릿한 움직임과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패턴을 통해 적 유닛으로서의 행동에 좀비 특유의 방식들이 녹아들기 시작하지만, 여기서도 언데드라고 불리는 그룹과 엄밀하게 구분해 좀비라고 부를 수 있는 만한 유니크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 <이블 데드>와 <마계촌>부터는 언데드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좀비의 행동적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좀비라는 개념이 게임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중적 게임을 꼽으라면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1996)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언데드와 구분되는, 명확한 좀비로서의 외형과 움직임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게임 안의 공간이 어느 정도 3차원 공간으로 잡히는 시기와 엇비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적으로서 좀비가 갖는 특성 중 하나인 느릿한 움직임이 3차원 공간에서의 공격방식인 ‘조준하고 쏘기Aim and shoot’에서 좀더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실감형 게임으로 직접 전자총을 들고 조준해 사격하는 방식인 <하우스 오브 데드House of Dead>(1997)이 주요 대상으로 좀비(혹은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것도 어느 정도 같은 영향력 하에 나타난 일로 보인다. * 3차원 공간에서의 에임 앤 슛에서 좀비의 행동은 좀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느릿한 움직임’이라는 좀비의 특성은 고정된 것은 아니기에 함부로 속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의 게임들에 등장하는 좀비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군집으로서의 양상이다. <데이즈 곤Dayz Gone>(2019), <그들은 수백만They are billions>(2017)등은 결코 느리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의 좀비들을 투입하면서 대신 엄청난 숫자의 물량으로 밀려들어오는 좀비로부터 버터내야 하는 도전을 안기는 형태로 변화했다. 오늘날 좀비를 주적으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 나타나는 좀비의 특성은 그래서 단일하다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디지털게임과 좀비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좀비라는 대상은 적으로 자주 활용되었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좀비가 활용되는 것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디지털게임의 특수성이 도드라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워킹데드>같은 드라마들에서 좀비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외형과 유사해 더욱더 불쾌감과 공포감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이러한 적에게 공격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사회적으로 디지털게임은 폭력성에 관한 오해를 자주 받곤 하지만, 실제로 게임 안에서 강렬하고 적극적인 폭력행동을 수행하는 일은 게이머에겐 때론 버거운 윤리적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 적지 않다. 유명한 사례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의 ‘노 러시안’ 미션에서 많은 게이머들이 무고한 민간인에게 화력을 투사하라는 명령 앞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이것이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폭력의 사용이 매우 높은 심리적 장벽 앞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특히 액션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라면 좀비는 매우 그럴듯하게 윤리적 문제를 비껴나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좀비의 신체는 인간의 신체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명백하게 이는 인간이 아님을 드러낸다. 작은 머리와 직립보행하는 두 다리, 양 팔을 가진 좀비의 신체는 액션게임에서의 조준과 식별 과정에서라면 실루엣상으로는 인간을 향한 사격과 동일하지만, 인간을 닮은 이들 폴리곤 위에 덧씌워진 텍스처는 아주 강력하게 이들이 인간이 아님을 어필한다. 사격의 기술적 과정에서는 인간을 쏘는 것과 동일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좀비라는 존재는 막대한 화력을 투사할 때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앞서 이야기한 윤리적 장벽을 우회하며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좀비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들의 상당수가 중화기를 동원한 강한 화력을 선보이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의미다. 미니건이나 소형 전술핵과 같은 대량살상이 가능한 병기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이를 인간을 향해 쏘는 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좀비와 같은 대상이라면 보다 강력한 무기를 디자인하고 그 화력을 맛볼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근현대 화기가 갖는 위력이 만드는 강한 스펙터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좀비라는 타겟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게임만의 특징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좀비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콜 오브 듀티: 나치 좀비> 나 <스나이퍼 엘리트: 나치 좀비 아미>와 같은 나치와 좀비를 결합한 게임들이다. 나치와 좀비의 콜라보레이션은 매우 간단한 의도가 담겨 있다. 중화기로 화력을 들이부어라! 이들은 ‘죽어도 싼’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치와 좀비를 콜라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 속 좀비의 새로운 트렌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 속 좀비는 한 시기, 한 모습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며, 매 시기마다 그 시기에 가장 걸맞는 형태로 변화해 온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좀비는 윤리 문제를 넘어선 강한 화력의 투사대상이라는 관념 바깥으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식물 대 좀비Plants VS Zombies>에서 좀비는 전통적인, 위협적이지만 느릿한 존재이지만 공포보다는 코믹한 형태로 재구성된 대상이다. 코믹한 좀비는 혼자 사는 너드 아저씨 주인공의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오지만, 이를 막아내는 것은 감자, 해바라기, 콩 같은 앞마당의 채소들이다. 외부의 조력 없이 혼자 자신이 사는 집의 앞마당yard을 침공해오는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게임 속 플레이어의 활동은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물이지만, 이 때의 좀비는 공포가 제거된 대상이다. * <식물 대 좀비>에서 좀비는 공포를 뺀 대상으로 나타난다.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에는 동충하초 같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좀비가 적으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섭고 위협적인 적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자주 이야기되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이야기가 <라스트 오브 어스> 세계관과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고, 이 속에서 좀비는 ‘차라리 사람보단 낫더라’라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폴아웃>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구울이라는 집단을 상정하는데, 방사능에 피폭되어 인간의 골격을 하고 있지만 외형은 좀비와 닮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명확하게 좀비라는 존재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좀비들과는 달리 지성을 갖고 집단을 이루며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존재이며, 플레이어의 동료나 아군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좀비라는, 한때 ‘절대로 인간이 아님’을 강변하며 존재하던 개념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묻던 그 장면들처럼, 최근의 적지 않은 게임들은 완벽한 상상 속 창작물인 좀비 또한 반드시 인간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분지어져야만 하는 대상인가를 역으로 묻는다. 어떤 면에서, 좀비에 대한 이야기는 포스트휴먼에 관한 최근의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심사위원장 총평
< Back 심사위원장 총평 13 GG Vol. 23. 8. 10. 제 2회 게임 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총 51편의 원고가 투고되었다. 작년에 비해 수적으로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원고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과 비평의 주제 및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이 각 원고에 대한 개별 평가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집단 토론을 거쳐 7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작년과 달리 대상, 우수상 등의 위계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당선작에 대한 간단한 심사평을 접수번호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게임과 행위 원리"는 <핫라인 마이애미>의 서사와 숨겨진 결말을 통해 게임 플레이의 근본적 목적을 질문하는 글이다. 게임의 본질을 잘 이해한 작가가 특정 개념에 얽매이지 않은 채 창의적이고 참신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논리가 다소 거친 면은 있으나, 글의 재미와 완결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는 리듬게임 장르의 엄지러 규범의 의미를 파헤치는 흥미로운 비평문이다. 독창적 아이디어가 돋보였고, 가독성도 뛰어난 글이다. 다양한 예시와 논의가 결론에서 집약되는 논리적 수렴이 다소 미흡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1993년 게임 <시스템 쇼크>의 오디오 로그를 차분하게 분석한 "오디오 로그의 문학적 요소와 방법론"은 심사위원 전원이 별 이의 없이 당선작으로 선정한 수작이다. 독창성과 문장력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고, 무엇보다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 비평문이다.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은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의 리메이크작 분석을 통해 러브크래프트와 셜록 홈즈의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치밀한 관찰과 탄탄한 논리로 풀어나갔다. 성실함이라는 비평가의 덕목이 돋보였고, 문장력 또한 뛰어났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는 다른 투고작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어쩌면 게임 비평의 영역을 확대하려 시도한 글이다. FPS 게임에 대한 장르 비평이자 게임비평을 통한 사회비평이기도 한 이 글은, 다소 힘이 떨어지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저작 의도의 차별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게임 공간의 한계에 대한 호기심을 훌륭한 비평으로 승화시킨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은 무엇보다 게임에 대한 저자의 지적 관심과 애정이 부각되는 글이다. 다소 장황하고 나열적 문체라는 점이 아쉽기는 했으나, 논지 전개의 발상이 흥미롭고 여러 게임을 넘나드는 횡단적 분석의 장점이 잘 살아난 비평문이라 평가하였다. 마지막으로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는 게임 텍스트나 수용자 분석이 아닌 생산과정 비평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내용적으로 다소 평이하고 현장과의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유용한 개념의 활용이나 적절한 레퍼런스 등을 높이 평가하였다. 무엇보다 저자의 독창적 시선이 신선했다. 이번 공모전에 출품한 저자 51명은 모두 우리나라의 척박한 게임비평 씬을 어떻게든 일궈보려는 게임 애호가이자 게임 플레이어이자 게임 연구자들이라 생각한다. 이들의 애정이 여러 문을 거치고 턱을 넘고 다리를 건너 언젠가는 우리나라 게임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특히 수상에 영예를 안은 일곱의 새내기 비평가들은 당선의 기쁨이 이력서의 한 줄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게임에 대한 애정을 비평문 집필로 형상화하는 노력을 꾸준하게 지속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2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심사위원 명단 윤태진 (심사위원장.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김상우 (더플레이 대표. 게임평론가)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명규 (게임웹진 기자)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교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 Back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17 GG Vol. 24. 4. 10. 이 원고가 나올 무렵이면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번 총선이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고 이야기했다. 게임기자로 종종 국회에 출입하는 필자는, 이번에 그 ‘중간평가’의 바람이 워낙 강렬했던 탓에 게임 부문이 지난 총선에 비해 빛을 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업계인과 고관여층이라면 게임과 e스포츠 의제가 복합예술이거나 미래 먹거리거나 무겁게 다루어야 할 과제겠지만, 국회 전체에서 게임이 일개 부문에 불과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유독 지난 국회에서는 ‘친게임’이라 부를 만한 국회의원이 다수 활동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이라는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져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게임 정책을 힘주어 발표하거나, 게임 전문 유튜버,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앞으로 4년간 활동할 새로운 입법부의 구성을 앞두고, 지난 국회에서 어떤 게임 법안이 입안되었으며 통과되었는지 돌아보려 한다. 국민의 중간평가가 끝났다면, 이제는 게임 생태계가 다시 나름의 바람을 일으켜야 할 일이 아니겠나? * 국회의사당의 전경 (필자 촬영) ① 10년 만의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2021년 11월11일,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 10년 만의 일이다. 18대 국회는 청소년 보호법에 "인터넷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유는 "청소년의 수면권과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제정 당시부터 업계와 게이머의 반대를 받았던 이 법은 시행 이후부터 줄곧 실효성 논란과 청소년 자기결정권 침해 논란이 있었고 21대 국회 들어 인터넷 공간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권인숙, 전용기, 류호정, 허은아(가나다순) 의원이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이른바 '마크 사태'가 터지면서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촉발됐다. 2020년 말,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 계정 인증 절차를 강화하면서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마인크래프트>의 접속을 아예 막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은 점화됐다. '<마인크래프트>가 성인게임이냐'라는 슬로건은 파급력이 있었고, 같은 해 11월 국회에서 강제적 셧다운제의 전면 폐지가 결정됐다. 한편, 이러한 장면은 정반대의 노선을 걷게 된 중국과 비교효과를 불러왔는데, 2019년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만 18세 이하의 청소년은 하루에 90분 이상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규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 셧다운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데, 요청에 의해 부모가 자녀의 게임 시간을 차단할 수 있는 '게임시간 선택제'가 남아있다. 친권자가 요청하면, 게임사가 미성년자의 게임 접속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강제적 차단보다는 일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국내 법에서 준용하는 실명 인증을 스팀게임과 콘솔게임에 적용하기 어려워 '갈라파고스 법'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콘솔 3사는 ‘아동 계정’, 가입 제재, 온라인구매 차단 등 자체적인 자녀 보호 정책을 취하고 있으나, 이는 접속 시간을 통제하는 게임시간 선택제와는 무관하게 적용 중이다. 이들 3사는 현행 한국 법의 게임시간 선택제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회색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게임이용시간을 감소시키지도 못했으며, 수면 시간을 증가시키지도 못한 강제적 제도의 폐지는 지난 국회가 게임 부문에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라고 부름 직하다. 지난 선거에서 여야의 전용기 의원, 허은아 전 의원은 입을 모아 자신이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의 일등공신이라고 언급했다. 실로 자랑할 만한 성과다.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법안이 통과된 이후 중독포럼, 중독정신의학회 등의 단체들은 셧다운제 폐지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차기 입법부에서는 ‘게임시간 선택제’와 그 회색지대에 대해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 두고 볼 만하다. * 셧다운제가 국회에서 논의되던 2011년 진행된 이른바 ‘폭력성 실험’ (출처: MBC) ② 게이머 여망의 실현…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 2023년 2월 27일,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의무로 하는 게임산업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2일부터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가 시행 중이다. 새로운 법에 의하면, 사업자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정보에 대해 게임물과 누리집(홈페이지)에 밝혀야 한다. 이용자가 Ctrl+F를 써서 검색할 수 있도록 확률을 공개해야 하며, 확률을 백분율 단위로 일일이 표기해야 한다. 게임을 선전하는 이미지에도 해당 게임이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하고 있다고 명시해야만 한다. 이 법을 지키지 않은 사업자는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이뿐 아니라 새로운 게임산업법은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게임물 이용자가 직접적·간접적으로 유상으로 구매하는 게임아이템 중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문체부 장관이 이를 감독하게 했다. 문체부 장관의 시정명령을 어기는 사업자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간 국내 게임사는 자율규제에 따라서 게임의 각종 확률을 밝혀 왔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이미지 형태로 확률표를 공개해 검색을 어렵게 만들거나, 유저가 찾기 어려운 곳에 확률을 내놓거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는 날 선 비판을 겪어왔다. 게임사와 유저의 신뢰관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면서 21대 국회에서는 여러 차례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 공개가 의무화되어야만 한다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실제로 넥슨은 자사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운영하며 유료로 판매되는 큐브의 확률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거나, 그 확률이 발표 없이 수정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16억 원을 받았고,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에서 캐릭터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문양의 달성을 쉽게 하는 시스템을 공개했다가, 다른 유저들의 반발을 사고 그 도입을 취소했다가, 이윽고 롤백에 반대하는 유저들이 전액 환불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확률 공개를 실시한 직후에도 문제는 끊기지 않고 있는데, 최근에는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특정 아이템 획득 확률이 0.8%라고 안내됐지만, 새로운 표기에는 0.1%로 밝혀져 '거짓 확률'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전술한 바와 같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2020년 12월 15일 발의된 이상헌 의원의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을 필두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이 법안은 의원 발의 형태의 전부개정안이었지만, 실제로는 문체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서 설계된 것이었다. 이후 하태경 의원은 '이용자 위원회'의 설치, 유동수 의원은 '컴플리트 가챠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기하면서 여러 법안이 비교 논의되었고, 최종적으로 오늘날의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 조항까지만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법이 비교적 최근 실효성을 가지게 되었고, 유저와 게임사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지금, 22대 국회 문체위는 게임사들이 새 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사들은 ‘첫 번째 사례’에 자사 게임이 거론되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자사 라이브게임의 확률을 점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를 적극 홍보 중이다. 축적된 분노를 정부가 발 벗고 나서 해결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효능감을 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출처: 문체부) ③ 문화예술이 된 게임, e스포츠는? 2022년 9월 7일, 게임은 '문화예술진흥법'상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이 법에서 문화예술은 그 정의에서 문학·미술·음악 등 장르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항목에 게임,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이 추가된 것이다. 이 법을 대표발의한 조승래 의원은 "게임이 문화예술로 인정되면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고, 게임산업에 활력이 더해지리라 기대한다"며 입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 지난 국회에서는 게임산업법에 명시된 '중독' 용어가 삭제됐다. 그 대신 '과몰입'이라는 표현만 남게 됐는데, 과몰입·중독 예방에서 전자만 남기게 된 것이다. 의학적으로 '중독'이라는 용어는 내성이나 금단증상을 포함하는데, 게임중독을 여기에 쓰기에는 논란이 있다는 것이 주요 논리였다.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했는데, 이 질병코드의 국내 적용을 논의하는 것도 다가올 4년간의 과제이다. e스포츠와 관련해서는, 의제의 성격상 입법활동보다는 단기적 이벤트가 많았다. 2020년 7월에는 임요환, 박정석, 강도경 등의 프로게이머 출신 인플루언서들이 국회를 찾아 국회의원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했다. 국회 '문화콘텐츠포럼' 창립총회 행사였는데, 게임 등 문화콘텐츠의 잠재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연구조직으로 발족되었으나 토론회 이상의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최초의 국회의장배 e스포츠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그 종목은 <철권 7>이었다. 2020년 11월, 행정부와 입법부는 부산, 대전, 광주에 이어 지역 e스포츠 경기장을 2곳 더 짓기로 합의하였으나, 그 가동률은 40% 내외로(2023, 한국콘텐츠진흥원) 경기장을 지어도 게임대회를 열 수 있게끔 종목사를 설득하는 시도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강원, 충남, 충북, 전남, 전북 등의 지역에서 지역 e스포츠 경기장 구축을 희망하고 있거나, 실제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고민 없이 사업 유치에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e스포츠인 LCK에 디도스 공격이 가해지는 등 e스포츠, 인터넷방송에 대한 '연쇄 사이버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입법부 차원에서의 논의는 미진한 상황이다. 정치권이 디도스 공격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내놓기 쉽지 않겠지만, 그들의 e스포츠에 대한 접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다가올 4년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 현재 한국에는 3개의 지역 e스포츠 경기장이 개관하여 운영 중이다. e스포츠 대회 가동률은 40% 내외로 조사됐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④ 게임과 메타버스를 구별 짓는 유일한 나라, 미국보다 앞서 빅테크 제동 건 나라 국회는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안(조승래·김영식·허은아 의원 병합안)을 통과시켰다. "가상융합산업의 진흥을 위한 각종 시책의 추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메타버스 산업 기본계획의 수립, 전문인력의 양성, 사업자에 대한 지원, 건전한 메타버스 산업 생태계의 조성 등을 골자로 사업 추진에 필요한 임시 기준을 마련"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은 "메타버스 산업의 발전을 위해 사업자의 조세를 감면"하고,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아울러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표준화 사업을 위한 전문 인력 육성, 산업 내의 자율규제"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한국은 세계에서 최초로 메타버스와 게임을 구분하고, 메타버스의 발전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나라가 됐다. 그간 문체부와 과기부는 게임과 메타버스의 구분을 두고 논의를 진행해 왔는데, 이 법이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줄곧 계류되던 이 법안은 연초 급물살을 타게 되어 2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수혜 기업으로는 <제페토>는 게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네이버제트 등이 있다. 정부에서 이 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메타버스 지원을 위한 공적 재원이 적잖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21대 국회는 막바지에 이 법을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이 공히 발의한 법안을 반대하기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국회가 이 법을 통과시킨 데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맡기려 한다. 지난 2021년 8월 31일에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구글, 애플 등 앱마켓 사업자가 게임사 등 사업자에게 자사 빌링 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리하여 이 법은 '구글갑질방지법'이라는 이름을 득했다. 홍정민, 조승래, 박성중, 양정숙 의원 안이 병합된 것이다. 관련 규제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됐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는 "한국이 디지털 상거래 독점을 거부한 첫 번째 오픈 플랫폼 국가가 됐다"며 "퍼스널 컴퓨팅 45년 역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서 "이제 전 세계 모든 개발자는 자랑스럽게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썼다. 담당 규제 기관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맡기로 결정되었으나, 방통위는 구글과 애플을 대상으로 사실을 조사하고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구글은 다른 업체의 결제 시스템을 허용하면서도 사실상 인앱결제와 다름없는 최대 26%의 수수료를 받게 하면서 이 법의 시행을 우회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10월 구글과 애플에 680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예고했지만, 우회로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는 이른바 ‘구글갑질방지법’ 통과에 “나는 한국인이다”라며 격하게 환영했지만, 실효성은 기대 미만이라는 것이 현재 중론이다. (출처: 팀 스위니 X) ⑤ 논란의 중심 된 게임위, 사전심의 폐지 여부는 미완의 과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지난 국회에서 여러 차례 문제의 중심에 선 기관이다. <블루 아카이브> 등급 조정, 게임물관리시스템(GMS) 구축 사업비 횡령 의혹, 국민감사청구 등 여러 문제에서 게임위는 도마 위에 올랐고, 위원회가 스스로 밝힌 혁신 의지에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상헌 의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게임위의 국민감사청구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았고, 여기에 동참한 게이머는 5,489명에 이른다. 감사위 감사 결과, GMS 과업이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검수 후 대금 지급 등의 계약 관리 업무를 부당 처리한 것 납품이 확인되지 않은 물품과 용역에 대금을 지급한 것에 대한 비위가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게임위의 비위행위를 멈출 수 있도록 등급분류 기능을 없애거나, 게임물 사전심의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2년 10월 14일, 게임물 사전심의의무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회 청원이 발의되어 5만 명의 동의를 넘겼다. 이에 따라서 국회 문체위에서 이 청원을 심사하게 되었는데, 정부와 국회 모두 이 청원을 수용하기에 곤란하다는 의견을 내며 게임물 사전심의에 대한 논의는 정체에 이르게 됐다. 당시 정부는 청원에 "게임물 등급분류제도는 아동 청소년을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고, 사행성 게임물 유통을 방지하는 등 건전한 게임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답변했고, 국회 문체위에서도 논의의 맥을 바꿀 만한 의견이 제출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지난 국회에서는 게이머의 청원이 사실상 기각되고, 현행 노선이 유지하게 됐다. 다가올 국회에서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에게 모든 게임의 심의를 맡기자는 주장, 게임위를 문체부 산하에 완벽하게 편입하자는 주장, 등급분류 의무 자체를 폐기하자는 주장, 사감위원회에 일부 권한을 넘기자는 주장 등이 쟁명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주제에 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2022년 10월 2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게임위 감사청구 서명. 이날 5,000명 넘는 게이머들이 감사청구에 서명했다. (출처: 이상헌 의원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 Back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18 GG Vol. 24. 6. 10. 원문: 《奥威尔》:“监视资本主义”时代的政治焦虑.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16494534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2020년 9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The Social Dilemma)>가 온라인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다방면으로 확산됐다. 주로 자본주의의 이윤 지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윤리적 감시와 도덕적 성찰이 부족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혼란을 드러낸다. 이러한 플랫폼에서 일했던 여러 내부자들은 여러 유명 사이트가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지속적으로 특정 주제로 시청자를 유도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며, 사람들이 플랫폼용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자본 지향에 대한 성찰은 사회적 반응의 한 단면일 뿐이다. 소셜미디어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이해하고 의견을 발표하고 소통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면서, 정보의 정확성과 이견의 포용성 등에 대한 관심은 ‘감시자본주의’에 휘말려 정치적 불안감을 형성한다. 이에 따라 사이버 세계에서의 권위적 경향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상이 됐으며, 근래에는 반복적으로 논란거리로 부각되기도 했다. 2016년 10월 게임 개발사 오스모틱 스튜디오(Osmotic Studios)에 의해 <오웰: 당신의 눈을 떠라>라는 디스토피아 게임이 출시됐다. 2018년 2월, 속편 <오웰: 무지가 힘이다>가 발행됐다. ‘오웰’이라는 감시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묘사함으로써 디지털 생활에 잠재된 엄청난 위험을 보여주려는 두 게임의 시도는 게임 제작자들이 인터넷 시대의 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특성화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관점을 제공한다. 특성화된 사회 통제 : 자유국가의 감시계획 이 게임의 내러티브는 ‘더 네이션(The Nation)’이라는 가상 국가에서 일어난다. 불안한 이웃나라 정세와 국내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오웰'이라는 극비 감시 프로그램을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정보당국은 해외 지원자들을 조사요원으로 모집해 정보부서 직원의 지도 아래 정부 내 인사들이 열람할 수 없도록 돼 있는 자국민 파일을 감시하고, 사람들의 전자기기를 해킹해 반사회적 인물이나 테러리스트의 혐의가 있는지 검사하도록 한다. 플레이어는 조사관으로서 오웰 시스템을 직접 조작해 각종 혹은 공개적이거나 은밀한 정보 채널을 빌려 이른바 ‘위험 인물'의 사생활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게임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자유광장 폭발 사건에서 시작된다.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당국은 폐쇄회로 영상을 보면서 경찰 습격으로 형사사건에 휘말린 젊은 여성이 폭발장치 설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한다. 수사관들은 곧 그녀의 가족 정보, 소셜미디어 계정을 수집하여 그녀가 폭발 사건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플레이어들은 용의자를 특정할 근거가 의심스럽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감정적으로 흘러가는 논쟁, 인터넷 친구나 커뮤니티의 정치적 경향이 기록되며, 이는 사회적으로 위험한 인물이라는 낙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 및 언론 등의 의심스러운 증거를 통해 조사관은 특정 개인의 다양한 네트워크 흔적과 사적인 채팅 및 전화통화 녹음 내용까지 계속 모니터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에피소드2가 시작되면 회색 영역을 넘나드는 수사 임무 뒤에 있는 권위주의적 권력의 추진력은 더욱 적나라해진다. 같은 시간대에 반정부 블로그 ‘피플스 보이스(People's Voice)’의 라반 바르트(Raban Vhart ) 편집장은 주류 언론을 비판해 두터운 팬을 얻고 있다. 그가 유력지 ‘내셔널 비홀더(The National Beholder)’를 거듭 비난하자 오웰의 수뇌부는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리기로 하고 바르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려 한다. 정부 관료는 앞 에피소드에서처럼 조사원의 유죄추정만 시사하는 게 아니라, 조사원에게 직접 위법 증거를 찾아내 체포영장을 발부하도록 한다. * 게임 속 ‘더네이션’에서 가장 권위 있는 뉴스 사이트 ‘내셔널 비홀더’ 흔히 디스토피아 게임의 배경 묘사에서는 권력당국의 사회적 통제 수단을 경계가 모호하고 제지하기 어려운 정치폭력으로 묘사한다. 같은 장르의 게임, 예를 들어 2016년 발매된 <비홀더(Beholder)>의 경우에도 주인공은 도시 세입자를 감시하는 건물 관리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권력을 아래를 향해 무한정 뻗어나가는 공포정치의 풍경으로 연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주의적 상상과 비교했을 때 <오웰>은 국가권력의 구현에 대해 훨씬 더 복잡하며, 당대 미디어 권력의 작동 논리에 가깝다. 게임 속에서 수사관들은 ‘내셔널 비홀더’ 뉴스 업데이트를 통해 주류 언론의 홍보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유력 언론은 국경 충돌과 테러 사건을 대량으로 보도하고,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더네이션’ 범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희소식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한다. 이들은 게임 배경에 대한 설명을 통해 왜 ‘오웰’ 시스템이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대해 대중의 항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는지 교묘하게 해석한다. 1978년 출간된 <위기 관리: 노상강도, 국가, 법과 질서(Policing the Crisis: Mugging, the State and Law and Order)> 책에서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을 비롯한 버밍엄학파 저자들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적 통제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국에서는 언론 보도로 인한 작은 강도 사건이 대규모의 도덕적·법적 공황 상태로 이어지면서 사회가 갑자기 질서를 잃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다양한 운동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우려와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법의 엄격한 집행과 사회거버넌스 정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홀의 입장에서 볼 때 범죄가 핵심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도덕적 해이 때문도, 사회질서의 혼란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하는 것은 미디어[로 인한] 사태라는 점이다. 그것은 영국 정부 당국이 뉴스 보도에 대해 의도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가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복지국가가 쇠퇴하면서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대중의 동의가 약해지면서 정치운동이 빈발했고, 자본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부족해져 뉴스 주도권에서 상업매체의 방해를 받았다.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긴박한 정세하 다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사회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 미디어 사태로 인한 사회적 공황은 일석이조의 훌륭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경찰과 법원 시스템, 주류 언론의 범죄 문제 집중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사회가 갑자기 부정적인 감정의 분출구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의 결과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폭력이 예상되는 소외계층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정부의 엄격한 사회적 통제를 묵인하게 됐고, 영국 정부 역시 공포에 떠밀려 모인 여론을 바탕으로 언론 통제권을 더 확장했다. 1991년 필립 슐레진저(Philip Schlesinger)가 집필한 에서도 저자는 테러로 분류되는 대형 사건들이 언론 통제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건들에서 영국 정부 당국은 언론 보도의 정치적 경향과 내용을 합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당국이 테러에 대한 해석권을 장악하고 이성적이고 의도적인 납치사건을 비논리적인 테러로 해석하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역설적으로 정부가 언론 통제를 강화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앞서 게임 속 ‘더네이션’의 사회 상황을 살펴본 결과, 게임 제작자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 국가들이 사회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통제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웰>에서 ‘더네이션’이 위치한 지역은 불안정하다. 이웃나라 ‘파게스(Parges)’에서 오랜 내란이 이어지고 있어 ‘더네이션’은 군대를 파병해 지역 안보를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더네이션’이 더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 갈등이 첨예하다. ‘파게스’로부터 대량의 난민이 유입되고, 퇴역 군인들이 취업난을 겪으며, 자국의 지식인들은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오웰’의 시스템은 주류 언론의 여론에 부응해 사회 통제라는 비장의 수단이 된다. 게임은 시스템 조사관의 관점에서 정보 부서, 반론 단체 및 일반 네티즌을 포함한 다양한 집단들에 대한 관점과 감정을 반영하며, 이러한 정보는 또한 현대 사회의 위기에 대한 게임 제작자의 개인적 이해를 반영한다. 인터넷 생태계 묘사하기 : 복잡한 개인, 모호한 국가 1. 이견집단의 내재적 긴장감 <오웰>은 디스토피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지나치게 편평하게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특히 반체제 인사들의 경우에도 인물군상을 차별적으로 형상화하지 않는다. 제작자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의 정의만 부각시키기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다양한 인물들과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네이션’의 사회 위기와 권력 통제는 신분 간 격차가 큰 시민들에게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성적인 능력을 발휘해 사회적 위기에 대처한다. 에피소드1에서 정부 정보당국은 ‘생각(The Thought)’이라는 엉성한 인터넷 동호회에 초점을 맞춰 폭발사건의 진범을 찾으려 한다. 수사관들이 이들을 감시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좌편향의 이 집단이 사회 환경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행동 이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의 창시자 에이브러햄 골드펠스(Abraham Goldfels)는 당국의 미디어 거버넌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고, 청년들을 조직해 미디어 윤리에 대해 토론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정부가 오웰 시스템의 윤리계획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했을 때 그는 개방적 자세로 이에 참여했지만, 조사원으로서 도저히 임무를 중립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퇴했다. ‘생각’의 동인이었던 해리슨 오도넬(Harrison O'Donnell)은 ‘생각’의 블로그에 여러 차례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주류 언론 ‘내셔널 비홀더’의 칼럼니스트로 변신했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펑크 신분을 감추려 애쓴다. 취업난과 정신질환, 폭력적 저항이 많은 편집증적 사고를 지닌 퇴역 군인 니나 마테르노바(Nina Maternova)는 끝까지 반발을 제기하고 정치문제에 대한 민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유광장에서 폭탄을 터뜨린다. 에피소드2에서 반체제 인사들의 모습은 더 어두워진다. ‘피플스보이스’ 편집장 라반 바르트는 ‘파게스’ 난민으로서 ‘파게스’의 국가적 재난과 개인적 불행은 ‘더네이션’에 의해 의도된 설계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과 추종자들은 그의 음모론에 대한 집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 게임 속 ‘피플스보이스’ 편집장 라반 바르트는 “국가기관에 맞선 전쟁을 시작한다”는 글을 게시한다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서 있고, 다른 배경과 경력을 가진 반체제 인사들은 단순히 사회적 사명감에 의해 소환되는 단순한 저항자가 아니다. 정치이념의 성숙도에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에이브러햄 골드펠스는 오랫동안 사회비판적 활동을 해온 지식인으로서 당국의 정책에 대해 보다 인내하며 체제 내 개혁의 가능성을 믿었던 반면, 다른 반체제 인사들은 안정적인 정치적 입장가 부재했다. 해리슨 오도넬의 정치적 태도는 급진적인 듯하면서도, 좌절할 때는 현실에 쉽게 고개를 숙인다. 니나와 바르트의 과격 행동은 ‘더네이션’에 대한 위화감과 관련이 깊지만, 그 배후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얕다. 이처럼 내부적 긴장감이 넘치는 인물군상을 부각해 보면, 정부 당국의 미디어 거버넌스 논리를 게임 안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보 교류가 빈번한 인터넷 시대에 사회 상황에 대한 여러 집단들의 능동적 반응은 편리한 미디어 조건으로 인해 더 쉽게 발견되고, 관심받고 인식되며, 더 큰 사회적 영향을 미친다. 급진적인 반대 의견과 행동이 확산될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 외에도, 권력자들은 더 엄격한 사회적 통제를 고려해야 할 ‘강제’를 받을 수 있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적 리스크 때문에 오웰식의 시스템이 게임에 등장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반체제 인사들의 복잡성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정치적 압박의 저항자로만 보는 것은 정부와 민중 간 미묘한 관계를 적절하게 묘사하기 어렵게 만들고, 국가기구에 대한 게임의 주장을 너무 가볍게 보이게 할 수 있다. 2. 전능한 정부의 이미지 안타깝게도 <오웰>은 반체제 인사에 대한 묘사만큼 국가기관에 대한 묘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으로 인해 게임 내 당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사회 통제 수단 간 관계는 효과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에피소드2에서 ‘피플스보이스’의 조직자 라반 바르트는 ‘더네이션’이 ‘파게스’ 정국에 개입해 현지 내란을 일으켰으리라는 음모론에 사로잡혀 있다. 나아가 그는 ‘더네이션’ 정부가 ‘피플스보이스’에 대한 보복으로 자유광장 폭발 사건을 일으켰고, 자기 아내를 살해했다고 믿고 있다. 오랜 정신적 편집증 때문에 그는 ‘더네이션’ 정부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처음에 수사관들의 시각에서 보면 라반 바르트의 정부 고발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그는 파게스에 있는 학교에서 우발적인 폭탄테러를 당했고, 그의 아내는 감시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게 폭발 사건에 연루된다. 하지만 수사가 진척될수록 게임 제작자들은 역설적으로 바르트의 입에서 나오는 음모론을 따라가도록 구현한다. 그것은 즉, 정부가 조직적으로 바르트를 도발하여 그가 편집장이란 직위를 통해 파게스 선거에 간접 개입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바르트가 받는 항간의 소문들은 모두 오웰 시스템이 주관하는 통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속 ‘더네이션’ 정부의 모습은 너무 전능한 나머지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게임은 정보의 홍수가 쏟아지는 인터넷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디스토피아 게임의 진부한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기관은 급변하는 여론 동향과 민중의 반응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미디어에 대한 권력구조의 상실과 관련한 제작자들의 우려를 투영한 측면이 크다. 인터넷의 힘은 실재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인터넷이 겉보기에는 더 큰 자유를 가져다주었지만 이로 인한 개인의 사생활 손실과 사회적 통제 강화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크게 느끼고 있다. 기술과 권력의 불균형에 직면하여 제작자들은 미디어가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믿음이 없기에 <오웰> 역시 권력의 자리에 대해 인식하거나 이입하지 않는다. 또, 끊임없이 확장되는 권력의 미디어 권력,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주저하지 않는 미디어 거버넌스의 논리가 부분적으로는 온라인 여론의 복잡성과 실제 영향력에 대한 통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현실에 대해 편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에피소드2는 국가기관의 형성에 대해 전체주의화되기 시작한다. 오웰 시스템은 더 이상 수사관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정보 당국의 리더가 직접 수사에 개입해 바르트의 ‘흑색선전’을 찾아내 ‘피플스보이스’의 명성을 떨어뜨리고, 바르트 가족의 메신저 계정을 해킹해 이들을 체포할 수 있는 불법 증거를 찾도록 독려한다. * 에피소드2의 ‘인플루언서’ 메커니즘엔 댓글러 활용 여론공세로 비판여론 공격하기 기능이 있다 물론 이러한 전체주의적 상상력이 결코 목적 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필립 슐레진저는 정치폭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막스 베버(Max Weber)와 기든스(Anthony Giddens)를 인용해 자유주의 국가에서 전체주의적 성향은 당국이 정치상황이 급박하다고 생각하고 민중들이 이를 묵인할 때 어떤 국민국가도 도덕적 전체주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역설적인 점은 미디어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통해 사회 정세의 긴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당국에 의해 장악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 수사관 모델: 윤리적 계획은 가능한가? <오웰> 플레이의 핵심인 수사관 모델은 이런 현실적 우려에 대한 활로를 모색해보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즉 사회적 통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실제 범죄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권력의 침투를 피할 수 있는 거버넌스 방법이 있는지 여부이다. 정부 지도자는 ‘더네이션’ 시민들의 사생활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특정 사건이나 집단을 중심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지만, 수사 대상자의 위협성 여부를 판단할 때는 결정적인 의견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비전이 개인에 대한 정치 폭력의 침해를 해결하지 못할 것임을 행간에서 암시하기도 한다. <오웰>의 두 에피소드 모두 수사관들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취향, 사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보를 정보당국에 제공하는데, 게임 내러티브의 전개는 복수의 엔딩으로 이어지도록 설정됐다. 반체제 인사들이 오웰의 감시 계획을 폭로했는지, 아니면 오웰 시스템이 사회적 위기를 통제했는지 여부는 수사관의 도덕적 선택에 크게 의존한다. 동시에 권력구조는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도자가 수사관에게 내리는 대부분의 명령은 수사관이 피의자를 유죄로 판단하도록 강제하거나 유도할 의향을 갖고 있다. 에피소드1에서 플레이어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하지만 폭발사건에 연루된 ‘생각’의 멤버 카산드라와 니나는 체포된다. 이와 비교했을 때 게임의 엔딩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생각’의 멤버들이 오웰 시스템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성공해 당국이 계획을 취소하더라도 시스템의 계획은 여전히 암암리에 진행된다. ‘더네이션’의 승인으로 수사관이 된 시민은 위험 인사로 기록 및 저장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헤게모니를 다투는 과정에서 갖는 관성 때문에 공식 통제를 받는 오웰 시스템이 중립적 성격의 매개체 기술로 사용될 가능성은 없다. <오웰>의 정치적 불안 결국 오웰의 서사는 스스로가 설정한 딜레마에 빠진다. 이 게임은 ‘더네이션’ 당국의 상징에 대해 제작자들이 온라인 매체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다. 권력과 과학기술의 우위를 쥐고 있는 권력자를 상대로 권위주의적 성향의 사회통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오웰>에는 권위 있는 언론과 일반 대중, 반체제 인사들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단순하게 표현된다. 당국은 유력 매체에 공개된 정보를 통해 항상 사람들의 감정을 조작하고 적시에 반체제 인사들을 격분시켜 그들이 예정된 계획에 복무하도록 한다. 이 게임의 제작자들이 정치적 힘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비관적 미래상에 더 공감하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인터넷 세계 권력구조 현상에서 취약계층의 저항은 항상 존재할 수 있지만, 강자가 항상 국민의 동의와 묵인을 얻는다면 권력은 계속 확장될 것이다. <오웰>의 게임 상징은 이런 관점의 ‘자기실현’이다. 한편으로 게임 속 네티즌의 이미지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감정적 집단으로 축소되고, 반체제 인사들은 대중들로부터 공감받지 못하는 외톨이로 묘사된다. 다른 한편, 인터넷 디스토피아에 대한 제작자의 과도한 관심은 인터넷 밖 현실의 표현 공간을 밀어낸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표현을 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사회적 상황에 대한 판단이 결여되어 있는 ‘오합지졸’인 것은 아니다. 인터넷 세계에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냉정한 관점이 어쩌면 진짜 이견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온건한 견해가 일상에서는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주류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기술과 권력의 결합이 <오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매우 긴밀하더라도, 우리는 인터넷 세계가 오늘날 정치 지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각종 뉴스와 인기검색어, 상업광고가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세계는 결국 사람들의 실생활, 실제의 사회적 감정이나 견고한 관점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오웰>에서 표현된 상징들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진정한 정치적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터넷 세계에 ‘이용자’로 진입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이 부족한 현대인들의 경우에는 정치적 다툼의 공간은 급속하게 축소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헤드라인 뉴스와 감정적인 관점에 의해 빈번하게 끌올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념을 확고하게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견고한 관점을 형성해 주류와 경쟁할 가능성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점차 인터넷에 의존해 정보를 얻고, 자신의 인식을 구축하거나 소통하고, 심지어 생계를 유지한다. 인터넷 세계의 이질적인 권력구조는 긴장감 넘치는 국가-개인 관계를 대체하는 압도적인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오웰>의 엔딩은 이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디스토피아적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이 아닐지라도, 권력에 맞선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현실’과 조심스레 거리를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관적인 인터넷 풍경의 배후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능성의 사회를 봐야 할 것이다. 통제 불능의 폭력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꿈꾸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논리를 보다 정교하게 이해해야 한다. Tags: 빅브라더, 파놉티콘, 전체주의, 감시, 혁명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량청린 梁成林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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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1 한국에서 문화로서의 게임이라는 말은 다양한 함의를 내포한다. 중독을 유발하므로 규제해야 한다는 규제담론과 산업으로서 진흥되어야 한다는 산업담론 사이에서 갈곳을 잃은 문화담론의 의미를 짚는다. 게임의 문화적 존재론: 천출(賤出), 기술적 총아, 참여문화 이 작품의 결말은 AR 안경을 쓰고 이루어지는 놀이와 장난스러운 일이 등장인물의 연애 관계를 넘어 트라우마를 발생시키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를 사용하는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게 되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 부모들은 AR 안경을 압수해버리려고 하는데, 이 때 주인공인 유코와 그의 친구들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한 번 그 세계에 몸담아서 그 세계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게임의 세계를 이미 경험해버렸기 때문에 이제 게임 이전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그렇다면 게임이 만들어 낸 달콤함과 고통 모두를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Read More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오사카 도톤보리, 오키나와, 후쿠오카, 삿포로, 나고야,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Read More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Read More [Editor's view] 선언을 넘어선, 실천으로서의 게임문화 매우 급박하게 변하는 것 같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도도한 맥락을 놓치지 않고자 하는 것이 〈게임 제너레이션〉의 목표다. 첫 호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꾸준히 그리고 우직하게 그 길로 가고자 한다. 동시대의 교양으로서, 혹은 지금 시대의 가장 뜨거운 놀이로서 게임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이어질 의 모든 이야기일 것이다. Read More [인터뷰] 북미 게임연구자 Consalvo, 한국과 북미의 게임문화를 말하다 콘살보 교수와의 이번 인터뷰는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고찰에 있어 필수적인 게임학의 현재를 진단해보는 한편 북미의 상황에 대해 들어봄으로써 이 시점, 여기에서 고민해볼 만 한 지점들을 모색하고자 기획하였다. 실시간 인터뷰가 어려운 현재 여건상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Read More [창간사] 문화를 향하는 가교의 역할을 기대하며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적은 인구와 제한된 국토가 우리의 현실이다. 즉 우리의 하드웨어는 매우 초라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소프트웨어다. 그것도 기발한 생각들이 필요하다. 그 절묘한 연결성들을 만들어 내는 게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미술이 문화로 자리잡은 건 미술관과 큐레이터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게임에도 그 장소와 사람이 필요하다. 가 그 역할을 할 가장 중요한 적임자가 되어 주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Read More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Read More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Read More “개발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 죄책감 3부작의 개발자 somi 인터뷰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책감을 느슨한 연결로 풀어낸 SOMI의 ‘죄책감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전의 두 작품이 세상 밖으로 닿는 길을 터주었다면, 2020년 신작 <더 웨이크>는 한 개인의 과거와 깊은 내면으로 안내한다. 암호를 해독하며 엔딩에 이르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가장 개인적인 삶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Read More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Read More 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Read More 게임문화/비평에 대한 작은 바람 -권력투쟁을 위한 비평의 역할과 책임에 관하여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이 꽤나 발칙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요 귀여운 녀석이 게임에 미쳐 부모님 몰래 수십만 원어치의 현질을 했고, 그걸 들켜 죗값을 달게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장성한 아들을 둔 우리 엄마는 비슷한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은 바, 대수롭지 않게 ‘애들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지만 이모는 ‘이노무 시키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발을 동동거렸다. Read More 구독이 세상을, 게임을 바꿀까? - 구독형 결제,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여기 두 개의 질문이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몇 개의 게임을 플레이해봤습니까?”와 “당신은 지금까지 몇 개의 게임을 소유해봤습니까?”이다.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온 두 개의 숫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소유하지 않은 게임도 플레이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Read More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Read More 메타버스, 호흡을 고르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도 10억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메타버스를 핵심 비전으로 언급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향후 5년 후에 페이스북을 메타버스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펄어비스와 텐센트도 메타버스를 주요 아젠다로 언급했고, 지난 NDC에서도 넥슨 김대훤 부사장이 “더이상 게임 회사, 게임 산업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제안했다. 다분히 메타버스를 의식한 발언이다. Read More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미국에는 100일간의 여름(100 days of summer)라는 개념이 있다. 5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그리고 여름의 끝은 9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대략 이 기간이 100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Read More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Read More 즐기는 사람들을 지켜라 - 만화는 어떻게 멸시와 비하를 딛고 일어섰는가 1972년 6월 29일 동아일보에선 “불량만화 화형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불량만화는 사회악의 근원이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한국아동도서보급협회’는 서울 남산 야외음악당(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위치한 자리다!)에서 ‘어린이 악서 추방대회’를 열고 만화책을 모아 불태웠다. 이 단체는 만화를 두고 ‘유소년의 정서발달을 해친다’,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주류의 시선에서, 당시 만화는 ‘악서’였던 셈이다. Read More 한국 게임비평의 궤적과 방향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는 1981년 영국에서 발간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Computer & Video Games: CVG)>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으로만 발행되다, 2015년에는 온라인사이트까지 폐쇄하고, (www.gamesradar.com )로 리디렉션됐다. Gamesradar+는 여전히 기대작이나 신작 리뷰, 업계동향뿐 아니라 알찬 내용의 작품비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 게임잡지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PC 보급시기와 맞물려 닌텐도(Nintendo)의 ‘패미콤(Famicom)’을 국산화한 ‘현대 컴보이’가 소개됐다. 이후 세가(Sega)의 16비트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를 삼성전자가 국내버전으로 바꾼 ‘수퍼 겜보이’가 발매되고,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 급증이 게임전문잡지의 탄생을 추동했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