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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 Back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01 GG Vol. 21. 6. 10. “조식은 6AM 날카로운 시간에 제공되며 수업은 오늘 7에 시작합니다.”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그런데 이렇게 허술해보이는 게임에 매달 전세계 1억 5천 명의 유저가 접속한다 [1] . 그 중 4,200만명은 로블록스에 매일 접속한다 . 이는 리그오브레전드보다 높은 수치다. 로블록스는 그야말로 전세계를 휘어잡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은 아마도 전세계 1억 5천명 안에 속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이름만 들어만봤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나, 해본 적이 있더라도 진지하게 즐겨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플레이하는가? 로블록스의 주 유저층은 명확하게 미성년층이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어린 축에 속하는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인 만 12세 이하가 전체 유저의 절반이 넘는다(54%) [2] . 만약 당신이 옆에 있는 유저와 팀플레이를 한다면, 상대방은 높은 확률로 초등학생일 것이다. 로블록스는 어른을 위한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당연히 게임을 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로블록스라는 플랫폼에 접속하여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한다. 로블록스 계정을 생성하면 유저는 하나의 아바타를 배정받는다. 유저는 고유한 아바타를 매개로 하여 수만 가지의 게임에 입장한다. 각각의 세계에는 주어진 상황과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유저는 〈Twilight Daycare〉를 켜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기가 되었다가, 머지않아 〈Murder Mystery 2〉게임으로 바꾸어 살인마가 되고, 질릴 때 쯤에 밖으로 나가 〈Tropical Resort Tycoon〉에 접속해 호화 리조트 사장님이 될 수 있다. 로블록스는 유저가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로블록스 스튜디오’라는 개발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직접 제작한 게임을 게시할 수 있다. 개발자들의 나이 또한 어린 편이다 [3] . 로블록스 내에 올려진 게임의 개수는 1,800만개 [4] 에 이른다. 전세계 애플의 앱 스토어에서 유통되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의 수가 450만개인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큰 숫자이지 않은가. 그중 로블록스 유저가 가장 많이 접속하는 월드는 〈입양하세요! Adopt Me!〉 [5] 다. 이 게임은 누적 플레이수 200억 회를 기록하고 있다. * 로블록스의 〈입양하세요Adopt me〉 로그인을 하고 로블록스 메인화면으로 가보자. 화면에는 〈입양하세요〉로 시작하는 인기 게임 순위가 있고, 그 밑에 “나를 위한 추천 체험”, “친구가 방문 중인 체험”과 같이 나와 비슷한 취향의 게임들을 알고리즘에 맞게 보여주는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유저는 로블록스라는 하나의 플랫폼에 접속한 뒤 원하는 게임을 선택하여 입장한다. 어떤 게임을 할지 정하기 귀찮다면 현재 가장 인기있는 것을 플레이해도 되고, 친구가 하고 있는 게임을 따라서 해도 되고, 아니면 원하는 주제의 검색어를 넣어 게임을 찾아도 된다. 어찌 보면 우리가 유튜브에서 영상을 선택하고 시청하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실시간 인기 동영상 순위가 있고, 나의 피드에는 평소 시청 취향에 맞게, 또는 자신과 사회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보는 영상이 추천되는 것처럼 말이다. 잠깐, 앞의 문단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잘 읽어 보면 필자는 문장에서 같은 대상을 지시하더라도 다른 단어를 사용하였다. 게임(game), 체험(experience), 세계(world).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개별적인 게임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하나가 아니다. 이들은 서로 혼용되며 의미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유저들은 “무슨 게임 할래?”라고 대화하고, 게임화면으로 돌아가는 버튼에는 “체험 계속하기”라고 쓰여있으며, 게임 개발 도구는 “나만의 월드를 제작해보세요!”라고 자신을 홍보한다. 그동안 게임 문화는 게임, 체험, 세계를 구분해왔다. 특정 역할을 체험하는 부류를 시뮬레이션 장르로, 역할을 설정하는 장르를 RPG로, 가상현실을 탐험하는 것을 어드벤처라고 불러왔다. 로블록스의 용어 사용법은 이러한 게임에 대한 규정들을 흩뜨려놓는다. 앞서 언급한 가장 인기있는 〈입양하세요!〉를 예를 들어보자. 유저는 게임에 진입하자마자 부모 또는 아이가 될지 역할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토대로 마을에서 활동하며 퀘스트를 하거나 아이템을 수집하고, 펫을 키우거나 가족을 만들어 다른 유저와 교류한다.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하는 일은 부모나 아이가 되어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자 그 체험 규칙이 허용되는 세계에 입장하는 것이다. 로블록스의 유명 FPS 게임 중 하나인 〈아스널 Arsenal〉은 누적 30억 회의 플레이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게임은 FPS임과 동시에 적과의 긴박한 전투가 펼쳐지는 가상세계이자, 전투병이 되어보는 체험이기도 하다. 또 다른 게임 〈로열 하이 Royale High〉에서는 접속하자마자 호화스러운 궁전이 펼쳐진다. 그곳 나름의 아이템 수집과 퀘스트를 주지만 유저는 굳이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며 시스템적으로 강요되지 않는다. 공간을 배회하면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스타일을 꾸미거나, 밥을 먹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상류층처럼 살아보기. 유저가 〈로열 하이〉에 접속한 순간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로블록스는 ‘체험하는 게임’, ‘게임 세계’와 같은 언어 간의 수식관계를 해체하고, 모두를 동격에 놓는다. 체험하는 것,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곧 게임이 된다. * 로블록스 〈로얄 하이〉 게임 내부로 잠시 들어와보자. 로블록스에서 주된 대화법은 사물과의 충돌(collision)이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앞에 가발 아이템이 놓여있다고 가정했을 때, 캐릭터가 가발을 쓰는 방법은 가발과 몸의 부딪힘이다. 그러면 곧바로 머리에 씌워진다. 많은 게임들은 유료 재화인 로벅스(Robux) [6] 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부분 유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아이템을 구입하고 싶은가? ‘구매’라고 쓰여있는 바닥 타일 위에 발을 올리면 된다. 그러면 결제창이 뜰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물체와 부딪혀라. 로블록스 세계에서 아바타와 오브젝트의 마찰은 주요한 소통방식이다. 이미 예상되어지듯, 그러다보면 엄한 물체와 부딪혀 원치않는 입력이 발생할 것이다. 옆에 놓인 물체에 스쳤을 뿐인데 “구매하시겠습니까?”라는 알림창이 대문짝만하게 뜨는 일은 매우 성가시다. 이쯤 되면 게임들이 왜 이렇게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화면에 버튼을 띄워 클릭하게 하거나 키보드 특정 키를 누르게하면 더욱 명확했을텐데 말이다. 그 이유는 로블록스가 게임으로 진입하는 유저의 물리적 조건을 차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로블록스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지대가 교차하고 있다. 이곳에서 유저들은 피씨, 모바일 그리고 태블릿 그 어떤 기계를 사용하든간에 같은 서버에서 만나 게임을 즐긴다. 충돌은 가장 심플한 플랫폼 통합적 작동 방식이며, 더 많은 유저를 한 공간에 모을 수 있는 장치다. 마우스나 키보드와 같은 별도의 장치는 유저들을 나눌 뿐이다. 이 공간은 서로 다른 기계에서 공통으로 게임이 펼쳐질 수 있는 방식을 지향한다. 로블록스를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로블록스는 ‘플랫폼’이다. 게임을 매개하는 거대한 땅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명확할 것이다. 또는 게임으로 들어가는 포털(portal)로 볼 수도 있다. 포털은 곧 상상된 즐거움을 의미한다. 그 곳에 접속하면 무궁무진한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곳에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전세계의 어린 유저들이 매일 매일 방문하여 이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이 바로 로블록스의 존재 이유다. [1] Statista, 2021년 5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2573/daily-active-users-global-roblox/ [2] Statista, 2020년 9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0869/roblox-games-users-global-distribution-age/ [3] 개발자 Alex Balfanz는 로블록스를 즐겨하던 유저로, 2017년 만 18세의 나이로 유명 게임 〈Jailbreak〉를 제작했다. 출시 후 3주 만에 누적 플레이수 4,400만회를 달성한 이 게임에서 얻은 수익으로 그는 이미 4년치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4] 2020년 11월 기준. [5] Statista, 2021년 3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220905/roblox-most-visited-games/ [6] 로블록스에서 유저가 현금으로 구입하는 유료 통화.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통합 구매(충전)하여 개별 게임 내에서 사용한다. 개별 게임 내에서 발생한 로벅스 수익은 로블록스와 게임 개발자가 3:7의 비율로 배분한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

  • 개척, 애정, 확장성: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 그리고 제다이 서바이버

    < Back 개척, 애정, 확장성: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 그리고 제다이 서바이버 16 GG Vol. 24. 2. 10. 우리는 넘쳐나는 콘텐츠의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살며 다양한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 ) 와 마주하고 있다 . 그 중에서 ‘Star Wars Jedi: Fallen Order’ 그리고 ‘Star Wars Jedi: Survivor’ 라는 게임 작품으로 IP 확장성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 컨텐츠 IP 우선 , IP 에 대해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위해 정의를 하고 가려 한다 . 다들 저작권을 가지고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알고 있겠지만 정확히 그 개념이 무엇인지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IP, 우리말로 지식재산이란 것은 무형적인 자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사람의 머릿속에서 탄생하여 창작된 무형적인 것으로 이익을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 그 중에서 오늘 계속 언급할 IP 는 콘텐츠 IP 이다 . 하나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부가 사업을 가능하게 하며 , 오늘날에 영화 , 애니메이션 그리고 웹툰 , 만화 , 게임과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 Star Wars 세계관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위 구절로 항상 시작하는 스타워즈는 루카스 필름이 제작한 미국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영화 시리즈로 조지 루카스 감독이 감독 , 각본을 맡아 1977 년에 개봉한 첫번째 작품인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부터 다양한 영화 , 애니메이션 , 드라마 , 소설 등 여러 매체로 뻗어 나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과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 스타워즈는 들어봤지만 세계관을 모를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세계관 설명과 뒤에 게임 얘기를 위해 알아야 할 내용 정도만 얘기하고 가겠다 . 우선 간단하게 은하 공화국이 존재하고 은하계의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는 제다이 기사들이 있다 . 하지만 은하 공화국에 분열의 움직임이 보이고 시스 ( 제다이와 같이 포스라는 힘을 쓰지만 악한 쪽 ) 의 움직임과 “ 오더 66” 에 공화국이 몰락하고 사악한 은하제국이 들어섰으며 이에 저항하는 반란군과 은하 제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위에서 간단하게 설명한 것에서 “ 오더 66” 는 제다이 폴른 오더를 시작할 때도 알고 가면 좋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만 조금 더 설명하겠다 . 우선 위에서 은하 공화국의 분열의 움직임을 말했었는데 은하 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한 분리주의자들은 공화국이 크지 않은 군사 조직을 가지고 있는 점을 노려 비밀리에 대규모 드로이드 군대를 제작하고 공화국을 무력으로 압박하여 독립을 얻으려고 하였다 . 이러한 상황에서 은하 공화국 최고 수상 ( 은하 공화국의 국가원수 , 총리 위치 ) 인 쉬브 팰퍼틴이 공화국 앞으로 주문해 놓은 대규모 클론 트루퍼 군대를 발견하게 되고 , 급한 상황 해결을 위해 이 군대를 사용한다 . Excute Order 66. - 다스 시디어스 - 공화국의 가장 큰 군대로 채용된 클론 트루퍼들은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하였지만 이후 팰퍼틴에게 제다이들을 즉각 사살하라는 내용을 받아 은하계 곳곳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제다이와 파다완 ( 제다이 수련생 ) 들은 함께 싸운 전우들인 클론 트루퍼들에게 배신당해 사살당한다 . 그 외에 위치가 알려져 있던 제다이들도 사살당하고 마는 슬픈 서사이자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넘어가는 스타워즈의 큰 사건이다 . Star Wars IP 확장 1970 년대에 스타워즈가 등장하게 되면서 콘텐츠 IP 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단순히 영화가 성공한 것만 아니라 스타워즈 콘텐츠 IP 를 문구 , 장난감과 같은 MD 상품 영역 확대와 영화 속 복장을 똑같이 코스튬 플레이하여 일상 , 문화에 크게 녹아 들었고 , 이런 사유로 스타워즈라는 콘텐츠 IP 의 사업영역과 부가가치가 크게 올랐다 . 스타워즈는 자신이 보유한 IP 를 직접 게임으로 개발한 기업 중 한 사례로도 꼽힌다 . 바로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루카스 아츠이며 , 디즈니에 인수되기 이전까지 30 여 종이 넘는 스타워즈 IP 기반 게임을 개발하였다 . IP 라이선스 홀더가 직접 게임을 개발한 만큼 , 루카스 아츠의 스타워즈 게임은 IP 가 가진 특징이 잘 드러나며 , 영화 속 장면을 게임화 한 ‘ 스타워즈 레이서 ’ 와 비행 시뮬레이션 같은 현실감이 있던 ‘X-wing 시리즈 ’ 그리고 호평을 받았던 RPG 게임인 ‘ 스타워즈 : 구 공화국의 기사단 ’ 은 현재 리메이크 작품까지 개발 중이라고 한다 . 요즘 스타워즈 IP 의 확장을 얘기하자면 디즈니 인수 이후를 얘기해야 할 것이다 . 70 년대에 나온 스타워즈는 30~40 년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다가 디즈니에 인수되었고 , 그 이후 스타워즈의 스카이워커 사가의 세번째 시리즈인 시퀄 3 부작을 망쳐 최악의 평가를 받았지만 스핀오프 영화인 ‘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 같은 경우에는 기존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못 보던 부분을 보여주어 신선함과 첫번째 스핀 오프임에도 성공을 거둬 ‘ 한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 ’ 나 후에 성공하는 ‘ 만달로리안 ’ 과 같은 스타워즈 앤솔로지의 발판이 되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또 , TV 시리즈로 제작된 스핀오프 작품인 ‘ 만달로리안 ’ 은 시퀄로 온갖 악평을 받았던 디즈니의 스타워즈를 다시 일으킬 만큼 큰 영향력을 가져왔고 새로운 캐릭터들의 매력적인 서사가 인상깊다 . Star Wars Jedi: Fallen Order 위에도 여러가지 부분으로 스타워즈 IP 확장을 설명했지만 스타워즈의 IP 확장은 말하기엔 길 정도로 너무나 많다 . 그 중 우리는 EA 의 스타워즈 게임에서 Respawn Entertainment 가 개발한 스타워즈 제다이 시리즈를 중점적으로 알아볼 것이다 .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는 2019 년도말에 나온 작품으로 스토리는 위에서 말한 오더 66 이후 살아남은 옛 제다이 파다완 ( 수련생 ) ‘ 칼 케스티스 ’ 의 이야기를 다룬다 . ‘ 칼 ’ 은 브라카라는 행성에 숨어 고철 처리부로 몇 년 동안 조용히 지내다 제국에 발각되어 위기에 처하지만 ‘ 시어 준다 ’ 와 ‘ 그리즈 드리터스 ’ 덕분에 살아남게 된다 . 그들을 따라 보가노 행성에 가 고대 회랑의 비밀을 밝히러 가다 ‘BD-1’ 이라는 드로이드를 만나 동행해 회랑 안에서 마스터 ‘ 에노 코르도바 ’ 의 메시지를 보게 된다 . ‘ 에노 코르도바 ’ 는 제다이 오더가 몰락하는 환영을 미리 보고 포스 센서티브 아이들 ( 포스를 가진 아이들 ) 의 목록을 복사해 담은 홀로크론을 두었다 하며 , 이를 알게 된 ‘ 칼 ’ 과 ‘ 시어 일행 ’ 이 홀로크론을 찾고 제다이 오더 재건이라는 목표를 위해 진행되는 스토리이다 . 우선 게임은 홀로크론을 찾기 위해 ‘ 칼 케스티스 ’ 가 되어 다양한 행성에 가 탐험하는 스타워즈 배경의 액션 어드벤쳐 게임이다 . 타이탄폴 같은 명작을 만들어낸 Respawn Entertainment 인 만큼 자신들이 가진 재미 요소가 잘 담겨져 있다 . 훌륭한 그래픽과 맵 디자인에 벽 타기나 그래플 등 기존 리스폰에서 볼 수 있던 친숙한 요소와 광선검을 통한 전투는 단순한 공격키 연타가 아닌 소울 시리즈의 전투 방식을 참고하였는지 상대의 공격 패턴에 맞게 패링을 하고 공격하는 컨트롤이 필요한 부분이다 . 소울 시리즈라 하면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제다이 폴른 오더는 소울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전투가 더 캐주얼한 방식이며 , 난이도 조절도 플레이어에 맞게 적절히 설정할 수 있다 . 또한 스타워즈 세계관에서도 모호한 포스를 간단하게 전투와 스토리를 진행하는 퍼즐에 적절히 녹여낸 점도 칭찬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스토리의 서사구조도 깔끔하다 . 컷신이 지루하게 길지도 않으며 , 맵을 탐사하면서 포커싱되는 장면 , 과거 회상 장면에 스타워즈 특유의 사운드트랙이 어우러져 더욱더 연출과 스토리를 아름답게 해준다 .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스타워즈를 모르는 사람이 하더라도 진입장벽 없이 할 수 있도록 게임의 매력과 스타워즈 세계관이 들어있고 , 기존 팬덤에게도 큰 선물 같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 Star Wars Jedi: Survivor 우선 다른 리뷰나 비평에서도 말이 많이 나온 최적화에 대한 얘기는 아래서 짧게 얘기만 하겠다 . Respawn Entertainment 가 최적화 부분에 매우 실망스럽게 낸 것은 맞지만 이미 다른 곳에서 많이 언급된 내용이고 본 비평은 게임에 대해서 얘기도 하지만 결국 IP 에 대한 개척 , 애정 , 확장성을 주제로 잡기 때문에 이를 중점적으로 말하기 위해서이다 . 기존 스타워즈 세계관에 없던 칼 케스티스 같은 인물이나 스타워즈 IP 를 개척하였고 이를 추가적으로 더 확장시키려 노력한 부분이 보인다 . 각 행성들의 오픈월드로 하여 볼륨은 커지고 넓은 맵에 각각 있는 npc 들은 칼과 이전 작처럼 얘기를 나누는 기능 말고도 서브 퀘스트를 주기도 하고 대화를 할수록 npc 에 대한 정보도 도감에 기록된다 . 생물도 무조건 적대시하는 것이 아닌 ‘ 칼 ’ 이 포스로 길들여 타고 다닐 수 있는 생물도 있으며 광활하고 멋진 퀄리티의 오픈월드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며 탐사할 수 있다 . 넓어진 맵에 따라서 길 찾기 시스템도 개선한 것이 보이고 오픈월드인 만큼 수집 요소도 많지만 강제되지 않고 주요 목표만을 따라 빠르게 진행하는 방향과 수집품이나 이곳저곳 탐사를 하면서 천천히 진행하는 방향 둘 다 상관없다 . 탐사를 하는데 풀 게 되는 퍼즐은 행성마다 작용하는 기믹과 컨셉의 차별화를 두려한 점이 보인다 . 성장할 요소도 많이 늘었다 . 퍽이라는 상황에 맞게 명상 지점에서 일정 개수를 선택하여 선택한 종류의 퍽에 대한 패시브를 제공받는 것과 기존에 한가지 줄기에서 뻗어 나가 스킬 트리를 찍던 제다이 폴른 오더와 다르게 스킬 포인트는 공유하지만 각 파트별로 스킬 트리를 찍게 되어 있다 . 생존 관련 스킬 , 광선검 관련 스킬 , 포스 관련 스킬로 크게 나뉘며 광선검 스킬 트리는 또 그 중에서 광선검 스탠스별로 스킬 트리가 있다 . 전투에서 쓰는 광선검 스탠스는 기존에 보여준 싱글 블레이드 , 더블 블레이드를 넘어서 전작에서는 스킬로만 등장했던 듀얼 윌드가 아예 스탠스로 등장한다 . 또 , 아예 새롭게 나온 전투 방식으로는 한쪽에서 광선이 나오고 바로 그 밑에 양쪽으로 짧게 광선이 나와 크로스가드를 갖춘 검과 같은 모양으로 사용하는 크로스 가드 스탠스를 포함해 아예 광선검과 함께 블래스터 ( 광선총 ) 도 쏠 수 있다 . 스토리에 대한 부분도 전작에서 5 년이 지난 시점으로 잡고 주연 캐릭터들의 변화가 잘 표현되어 있다 . 5 년동안 각자 다른 선택을 하고 이러한 위치에서 이렇게 활동하였다가 이해된다 . 기존 주연 캐릭터의 개성을 살린 부분 말고도 새로운 캐릭터도 매력적이게 디자인되었다 . 주요한 인물 중 하나인 ‘ 데이건 게라 ’ 는 고 공화국 시대라는 은하공하국 이전 시대의 제다이로 스토리를 보다 보면 그가 타락하는 과정과 이유를 보고 공감할 수 있다 . 이처럼 다양한 게임 요소와 매력이 가득하며 전작보다 스토리와 즐길 부분이 너무나 많다 . 게임을 하면서 불편한 점을 꼽자면 키보드 , 마우스로 플레이하는데 회피 키가 Tap 키로 되어 있어 불편했던 점 말고는 정말 없다 . 이는 키 설정만 바꾸면 해결된다 . 정말 얘기가 많이 나온 문제인 최적화만 잘 했다면 최다 G.O.T.Y 정도의 많은 시상을 받았지 않았을까 싶은 작품이다 . 게임 자체만 놓고 보자면 정말 명작이라 평가한다 . 수많은 IP들과 매력 우리는 문화 예술과 마주하고 그 안에서 수많은 IP 들이 꽃피었고 지금도 피어나고 있다 . 그리고 ,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수많은 IP 들에 빠지는 방식은 세계관 , 캐릭터 그리고 확장성이라고 본다 . 우선 영화 , 게임 , 드라마 , 애니메이션 등에는 다양한 세계관이 존재하고 있다 . 우리가 오늘 중점적으로 본 스타워즈도 커다란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 세계관의 매력은 단지 크고 작음이 아니라 사람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시뮬레이션이 되야 매력적인 세계관이라 생각된다 . 스타워즈는 다양한 생물체와 역사 , 기술이 있으며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유명한 광선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다 했을 때 원리 , 제작방식 , 종류 , 색상이 다른 이유 등 다양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 이는 제작사가 알려준 여러 정보를 가공해서 다른 사람이 올린 정보를 또다른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 2 차 소비하는 구조라 볼 수 있다 . 이렇게 깊이 있는 세계관은 관심을 가지고 애정이 생긴 사람들에게 앞선 예시로 빠져들게 한다 . 세계관이 잘 구축되어 있다면 그 다음은 세계관 속 캐릭터를 들어볼 수 있겠다 . 스타워즈의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다스베이더는 “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 “ 왜 다크사이드로 빠지는 선택을 하였는가 ” 같은 물음으로 그 캐릭터를 알아가면 이제 앞선 것이 합쳐져 “ 캐릭터가 이러한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 “ 스토리에서 만나지 않았던 이들이 만난다면 어떠한 시너지를 일으킬까 ” 같은 사고로 이어지며 이는 다양한 2 차창작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확장성인데 사실 앞서 세계관과 캐릭터를 말하면서 말한 부분에서도 확장성이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 앞서 말했던 세계관 정립 2 차소비와 캐릭터 이해에 따른 2 차창작이며 , 소비자나 팬 입장이 아닌 제작 쪽으로 얘기하자면 앞서 말한 Respawn Entertainment 의 스타워즈 시리즈인 제다이 폴른 오더와 제다이 서바이버 모두 좋은 IP 확장 사례라 말할 수 있다 . 그들은 스타워즈 세계관에 없던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내 새로운 서사시를 쌓았을 뿐만 아니라 그 구조가 짜임새 있게 작동해 기존 스타워즈 세계관을 알고 있던 사람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였고 새롭게 스타워즈를 Respawn 의 게임으로 즐기는 사람도 스타워즈 세계관을 게임을 하면서 이해하게 구성하였다 . 기존 스타워즈 팬이든 새롭게 접해본 사람이든 칼 케스티스나 BD-1 또는 그리즈 , 시어까지 새로운 인물들이 어떠한 성격과 과거를 가졌고 , 서로가 어떠한 도움을 주는 지 우리가 칼이라는 주인공으로 여정을 이어나가며 함께 성장하고 공감하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되어있다 . 스타워즈라는 거대 IP 이자 세계관을 새로 개척해 나간 것이다 . 위 과정이 개척이었다면 이번 제다이 서바이버에서는 확장을 보여준다 . 성장한 주인공과 변화한 일행이 어떠한 일을 하는 지 , 특히 칼 케스티스가 이번작을 시작하면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은 우리가 이번 여정에서 어떠한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는 지를 바로 이해하고 같이 생각한다 . 또 ,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알려져 있지만 팬덤에서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고공화국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며 시간은 뒤로 갔지만 앞선 시대의 스타워즈의 생소한 설정도 이번 스토리와 모험에 잘 담겨진 모습을 보여준다 . 기존에 없거나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확실히 확장한 것으로 말할 수 있겠다 . 디지털 게임이 IP 확장에서의 위치와 가지고 있는 것 디지털 게임은 여러가지 문화 예술과 산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영화 산업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 그냥 기술적 발전이 아니라 콘텐츠적으로 소설에서 영화가 미치고 영화에서 소설이 미치는 상호보완성처럼 영화 산업이 새롭게 만들어낸 확장성과 상호보완성을 게임이라는 문화예술이자 산업이 이에 대해 또다른 영향력을 가진다 . 우선 앞서 말한 소설과 영화로 예시를 들어 말해보자면 소설과 영화 , 서로 가진 강점이 다르다 . 영화는 우선 정보가 소설처럼 상상할 필요없이 시각적 , 청각적으로 접근해온다 . 기존에 소설이 있든 대본이 있든 이것을 배우들의 대사나 몸짓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대중들에게 친숙하다 . 우리가 말로 하는 것보다 몸으로 직접 보여주는 게 이해가 잘 되는 상황처럼 말이다 . 다만 이 부분은 단점도 있는 것이 배우가 해당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 거나 연기에 대한 부분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 또한 슬픈 장면에 슬픈 노래가 깔리는 효과처럼 분위기를 더욱 몰입하고 영화 ost 를 들었을 때 해당 장면이 떠오르는 것처럼 청각적으로도 영향을 준다 . 반대로 이제 소설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 소설은 시각적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 간단하게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가 아니기 때문 .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장 하나에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상상하게 해준다 . 또한 책은 텍스트로 모든 것을 담아야 하다 보니 묘사가 상세하다 . 심리에 대한 것을 영화는 배우의 연기만을 보고 이해해야 한다면 소설에는 그대로 적혀 있다 . 이는 시각적이지는 않지만 직관적으로 정보가 들어오는 것 . 또한 요즘은 ott 가 많기 때문에 돌려볼 수도 있긴 하지만 영화관에서 본다 했을 때 시간에 따라가야 하지만 책은 이해가 안 된다 거나 놓친 문장이 있다면 다시 앞으로 가 읽으면서 각자의 템포에 맞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진다 . 이렇게 각자의 강점이 있고 , 단점도 있으며 소설에서 영화가 되기도 하고 영화가 소설로 나오는 사례 등 서로를 보완하면서 확장시켜준다 . 다시 게임에 대한 얘기로 돌아와보면 게임도 이러한 위치에서 또 다른 보완성과 확장성을 가지고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게임의 가장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 상호작용 ’ 인데 퍼즐을 풀 때 포스로 물체를 당기고 미는 방식도 있고 그냥 캐릭터한데 말을 걸었을 때 , 해당 캐릭터가 대답을 하는 방식도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다 . 이는 간단하지만 영화와 소설과는 다르게 내가 직접 말을 걸어서 이 캐릭터가 대답을 해주고 직접 알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 맵 탐사도 같다 . 우리는 이 모르는 행성을 돌아다니면서 임무를 완수하는 것만 아니라 그 행성의 사는 생물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 , 메아리로 포스 안에 남아있는 것을 감지하는 ‘ 칼 ’ 의 능력으로 이전에 해당 메아리에 있던 사건을 알아볼 수 있다 . 이는 플레이어가 직접 행하는 과정으로 또 다른 몰입을 준다 .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 루크 스카이워커가 제국에 맞서 싸워 은하계에 평화를 가져왔다 .” 같은 진술이지만 게임에서는 “ 나 ” 가 사용될 수 있다 . “ 내가 스타워즈 제다이 시리즈에서 칼 케스티스가 되어 남은 제다이를 찾아 학살하고 다니는 인퀴지터와 싸워 이겼다 .“ 또는 “ 나는 험난한 행성인 다쏘미르를 탐사하였다 .” 와 같은 자연스러운 진술이 게임에서는 가능하다 . 이러한 차별성과 강점이 소설 , 영화 등과 비슷하지만 다른 위치를 가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 게임은 여러 요소가 합쳐졌다고도 할 수 있지만 디지털 게임만이 개척할 수 있는 방향성과 매력이 있는 것이다 . 이렇게 IP 가 개척되고 , 우리가 IP 에 애정을 가지고 사랑에 빠지며 , IP 가 다양하게 확장되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았다 . 이번에 얘기한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와 스타워즈 제다이 서바이버를 플레이해보며 , 스타워즈라는 새로운 문화에 발을 내딛는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 당신이 크리에이터라면 새로운 IP 를 개척하는 데에 영감을 얻을 지도 모르며 , 소비자로서 새롭게 접한 IP 에 애정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며 , 어떤 방식이든 당신의 세상에 또 하나의 큰 확장이 될 것이다 .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생) 이규연 어릴 적 프로그래밍을 배운 후, 여러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게임 기획자(Game designer)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며 게임업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음과 동시에 게임 관련 전시, 축제, 대회(E-Sport)를 즐겨 찾고 있다. ​ ​

  • 고전게임 리메이크에서 트리플 A를 고려하는 방식에 관하여

    < Back 고전게임 리메이크에서 트리플 A를 고려하는 방식에 관하여 10 GG Vol. 23. 2. 10. 세간에서 말하는 트리플A 게임만의 매력은 뭘까? 아무래도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세대의 가장 앞선 기술을 다각도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포기하기 어려운 요소이다. 특히 게임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게임-문법은 이미 앞세대의 게임에서 대개 구현이 완성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트리플A 게임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비주얼과 사운드라는 면에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생산비 증가와 개발 기간의 장기화라는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선 ‘트리플A 포기론’까지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산업적 측면에서든 기술의 발전이라는 면에서든, 아니면 게임의 본질이라는 차원에서든 ‘트리플A’를 향한 게임계의 열정을 근본부터 부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트리플A 게임이 사라진 빈 공간을 ‘인디게임’으로 전부 채울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그렇다면 ‘트리플A’ 사이 사이의 빈 공간을 직시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는 무엇을 떠올려야 할까? 물론 스퀘어에닉스처럼 다수의 B급 정도에 해당하는 게임을 연이어 출시하는 물량공세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 특별히 살펴볼만한 것은 이전 세대 게임의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에 해당하는 움직임이다. 어떤 의미로든 이런 움직임은 ‘트리플A’ 외의 게임 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걸로 생각된다. 물론 주로 화제가 되는 리메이크 사례는 그 자체가 ‘트리플A’를 지향하는 경우다. 가령 〈파이널판타지 7 리메이크〉는 그럴듯한 그래픽과 음향 효과로 외형적인 면만 보자면 원작 고유의 느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트리플A 게임처럼 느껴진다. 앞서 ‘트리플A’의 난제로 언급한 개발 기간과 비용 문제는 에피소드를 쪼개 나눠 출시하는 걸로 어느 정도 해결했다. 어떻게 보면 어떤 종류의 무성의로 느낄 법도 한 일인데,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이런 불만을 진지하게 제기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잖아도 대작이었던 원작이 출시된지 거의 25년이 지나서 나온 리메이크인데다, 분할 출시 했음에도 독립적인 게임으로서 퀄리티가 크게 떨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시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리마스터와 리메이크를 모두 거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사례가 나오면서 〈파이널판타지 7 리메이크〉는 오히려 돋보이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런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리메이크의 효용은 뭘까? 하나의 트리플A급 게임을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기획하는 수고를 거치지 않고도 결과물에 있어서는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사실 흘러간 게임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리메이크 해온 것은 이전 세대에도 있었던 일이다. 가령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경우 패미컴판으로 출시됐던 1, 2, 3이 슈퍼패미컴과 게임보이 등의 플랫폼으로 리메이크 된 바 있다. 이런 사례를 세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원작과 리메이크작 출시 시점의 격차(〈드래곤 퀘스트 3〉의 경우 1988년과 1996년)가 비교적 크지 않다. 플랫폼의 세대로 따져도 그렇다. 따라서 새로운 유저층에게 경험해보지 못한 게임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효과보다는 원작을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에게 새로운 플랫폼에서의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게 우선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대 게임을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해 출시한다는 것의 의미는 좀 다를 수 있다. 최근 출시된 〈페르소나 3〉와 4의 리마스터작들은 어떤가? 이 게임들의 원작은 각각 2006년과 2008년에 발매되었다. 리마스터판의 원본인 〈페르소나 3 포터블〉과 〈페르소나 4 골든〉이 각각 2009년과 2012년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해도 상당히 오래 전 일이다. 더군다나 〈페르소나 4 골든〉은 비운의 휴대용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 비타로 발매돼 판매량 자체에 한계가 있었다. 시리즈의 최신작인 페르소나 5가 대성공을 거두고 로얄이라는 딱지가 붙은 완전판이 추가 발매되기까지 하면서 〈페르소나〉 3, 4도 다시 빛을 볼 기회가 열렸다. 페르소나 5로 시리즈에 입문한 유저 상당수가 3과 4를 접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생기면서 리마스터판 발매 성과에 기대를 걸어볼만한 상황이 된 거다. 〈페르소나〉 3, 4, 5는 스토리상의 주제나 기술 발전에 따른 연출 등이 다를 뿐 기본적인 게임의 구조는 거의 같다.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과 교감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얻은 힘으로 더 강한 악마를 수집하고, 이 악마들을 이렇게 저렇게 합체시켜 더 강한 악마를 얻어가며 던전 공략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형식이다. 〈페르소나 5〉에 만족한 게이머라면 3과 4 역시 재미있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5를 해본 사람이라면 3의 상대적으로 음울한 마치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듯한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4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골 마을의 일상을 실아가는 것은 즐거운 경험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기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물을 큰 역량을 투입하지 않고 단지 리마스터해 출시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트리플A’의 등장까지 걸리는 기간을 버티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왕 하는 거면 잘 하는 게 좋다.’ 새로운 게임’으로 비춰질 수 있을 정도의 현대적 매력을 창출하면서 기성세대가 돼버린 게이머에게 ‘추억’으로 어필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게 관건이다. 최근 출시된 〈택틱스 오우거 리본〉은 이 과제에 도전하는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과거 슈퍼패미컴판으로 발매됐던 〈택틱스 오우거〉는 당시로서는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SRPG라고 부르는 장르의 한계에 도전한 게임이다. 사실 SRPG의 기본 문법은 초창기 〈파이어 엠블렘〉이나 〈랑그릿사〉 시절에 이미 완성돼있었다. 〈택틱스 오우거〉는 여기에 장비의 무게에 따른 수치를 턴 순서에 반영한다거나 지형의 성격 뿐만이 아닌 높낮이 심지어 부여된 원소 속성까지 변수로 계산하는 하드코어한 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높은 데서 화살로 공격하면 중력의 영향으로 데미지가 늘어난다는 점을 이용하는 전략 등이 가능했던 거다. 이러한 룰이 전략전술의 깊이를 더했다면, 나름 심오한 갈등구도를 다루는 스토리라인은 이 룰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만 하는 당위를 부여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민족 갈등과 이를 이용하는 외세의 개입, 거기에 대응하며 현실에 휩쓸려 가는 주인공이 겪는 도덕적 내면 갈등은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 소설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시나리오의 주요 분기가 주인공의 도덕적 결단을 통해 갈리게 한 장치도 의미심장하다. 나는 목표 달성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며 손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할 수 있는가? 혹은 그러한 일에 관여한 사람들과 같은 목표 아래 타협할 수 있는가? 타협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고고한 이상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모든 민족을 적으로 돌리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런 질문에 답을 하면서 앞서의 복잡한 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현실의 전투를 해나가야 한다. 이런 고뇌는 블럭처럼 단순화 된 세계의 SD화 된 귀여운 캐릭터를 통해 표현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이거야 말로 전쟁 그 자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에서 전장의 스펙타클을 추구하기 보다는 바둑돌이나 장기말로 비유한듯한 병사들의 움직임을 통해 오히려 전쟁의 잔혹함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효과이다. 만일 이 게임을 앞서 〈파이널 판타지 7〉 처럼 ‘트리플A’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리메이크하기로 했다면 같은 느낌을 주기 어려웠을 거다. 상징화된 그래픽이라는 장치를 제거함으로써 복잡한 전투룰을 단순화 하거나 완전히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복잡을 넘어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전투 시스템 일부는 이번에 수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과거 슈퍼패미컴 혹은 PSP 리메이크판을 경험했던 올드 게이머라면 ‘트리플A’가 된 〈택틱스 오우거〉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다. 이 덕에 이 게임은 슈퍼패미컴 시절 그래픽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게 ‘트리플A’에 익숙한 신규 유저들에게는 장벽으로 다가온다. 복잡한룰 덕에 지나치게 느린 게임의 템포도 요즘 사람들이 적응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성의가 없는 리메이크를 한 것은 아니다. 배경음악 전체를 오케스트라 실연으로 다시 녹음했고 콘솔판의 경우 섬세한 콘트롤러 진동을 통해 타격감과 날씨의 변화 등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성공을 거두기엔 어려운 조합이 아닐까 했는데, 애초 비관했던 것보다는 제법 팔린 모양이다. 올드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택틱스 오우거〉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 놓으면서 게임 산업이나 플랫폼의 변화, 소비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리메이크나 리마스터가 어떤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어떤 착각 때문이다. 〈택틱스 오우거〉가 다루고 있는 독립전쟁과 이를 이용하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몰두하는 제국, 여기에 기만적으로 이용당하는 민족 간 갈등이라는 소재는 냉전 구도가 붕괴되고 양쪽으로 뭉쳐있던 세계가 흩어지면서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된 현실의 모사였다. 우리는 이게 이제는 과거가 되었다고 한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또다시 신냉전을 말하고, 이빨 빠진 호랑이였던 제국은 다시 깨어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주변국들은 자원 수급과 전쟁이 미치는 경제적 영향을 따지면서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가 될지 셈하는데 분주하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침공에 맞서 똘똘 뭉쳐 싸우고 있지만, 거기에도 내부의 정치라는 것이 있기에 전쟁이 마무리되는 어떤 시점에선 자기들끼리의 정치적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현실은 우크라이나의 것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평에 따르면 세계는 더욱 더 격렬하게 ‘헤어질 결심’을 거듭해가는 중이다. 어디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 모든 매체와 예술 작품이 그렇듯(〈슬램덩크〉는 왜 이 시기에 다시 등장했는가?) 게임도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세계가 반복된다면 게임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트리플A’가 앞으로 나아가는 세계에 발맞추는 게임의 모습이라면,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는 과거가 끝없이 변주되는 세계에 대한 게임의 응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는 것은 무엇을 누가 리메이크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아마도 이 선택에서도 새로운 시대정신은 태어날 것이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

  •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 Back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10 GG Vol. 23. 2. 10. 이 글의 중국어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79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것이 돈으로 향하는” 시대와 산업환경 속에서,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검은 신화 : 오공(黑神话:悟空)』(이하 ‘검은 신화’)는 2020년 8월 20일 영화 『서유기3(원제: 大话西游)』 속에서 “황금갑옷을 입고, 무지개빛 구름을 탄” 영웅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그것은 중국 게임업계 전체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게임산업에 대한 사회와 여론의 기대까지 불붙게 만들었다. 민족주의 정서의 고양 속에서 사람들은 고전문학 『서유기(西游记)』와 현대 테크놀로지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의 ‘해후’가 최초의 위대한 중국 AAA게임을 만들어내길 꿈꾸고 있다. 현재, 『검은 신화』는 여전히 제작 중으로, 2024년 여름에 발매될 예정이다. 이 게임과 관련하여 인터넷상에는 총 9편의 영상이 공개됐다. 2020년 8월 20일에는 ① “최초 공개 시연 영상”이 공개됐고, 2021년 2월 9일엔 ② “신축년(辛丑年) 새해 맞이 영상”이, 2021년 8월 20일 ③ “언리얼엔진5 테스트 모음”, 2022년 1월 2일 ④ “호랑이의 해 맞이, 게임과학(游戏科学)에 관한 짧은 영상”이 게시됐고, 2022년 8월 20일에는 ⑤ “6분 테스트 : 에피소드”와 ⑥ “게임 삽입곡 「경계망(戒网, 지에왕)」, ⑦ “『검은 신화』 글로벌 프리미어 8분 테스트 플레이”이 업로드됐다. 그리고 2023년 1월 16일에는 ⑧ “게임과학 토끼해 신년 맞이 영상”이 공개됐다. ①~⑧ 영상들은 이 게임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으며, 파트너인 엔비디아(NVIDIA)가 내놓은 영상도 비리비리상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직 완성된 게임이 세상에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검은 신화’에 대해 충분히 비평할 수 없다. 하지만 긍정할 수 있는 점은 이 미완성의 게임이 중국 내 AAA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동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본 증식을 자신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중국 게임산업의 우악스러운 산업발전의 공식을 전환하겠다는 아름다운 희망을 응집한다는 사실이다. 문자 그대로 『검은 신화 : 오공』이 원작으로 삼는 서사는 중국의 4대 고전명작 중 하나인 『서유기』이다. 일반적으로 『서유기』는 늦어도 고려시대 말기에 한국으로 전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표면적으로 『서유기』는 당나라 승려와 손오공(孙悟空), 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僧), 백룡마(白龙马)가 9,981차례의 고난을 겪으면서 인도(西天)로 건너가 불경을 구해낸다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의 사회적 모순을 신마소설(神魔小说. 역주: 신이나 요괴 등이 활약하는 동양만의 독특한 소설형식. 자유분방한 언어형식, 풍부한 상상력, 가상의 배경, 중국 바깥 가상의 장소, 종교, 신화 등이 뒤섞여 있다. ) 의 형식으로 굴절시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된 영상들의 내용을 보면, 이 게임은 『서유기』를 모사한 게 아니라, 장회체 소설(역주 : 명/청시대에 인기를 구가한 소설 형식. 청중에게 들려주기 적당한 길이의 장과 회로 나누어져 있다고 해서 ‘장회(章回)’라는 명칭이 붙었다. 비교적 쉬운 백화체로 쓰였으며, 설화예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인 『속서유기(续西游记)』(역주 : 명나라 시기 익명의 저자들에 의해 쓰인 백화 장편소설로, 『서유기』에 이어 승려가 진경(眞經)을 가져온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요 인물들은 『서유기』와 거의 같으며, 유머가 많다. ) 와 영화 『대화서유』, 인터넷소설 『오공전(悟空传)』, MMORPG 게임 『투전신(斗战神)』 등 『서유기』를 바탕으로 한 크로스 미디어 작품들의 상상력을 포스트모던한 ‘패러디(parody)’ 기법을 통해 원작을 해체(deconstruction)하여 “이 게임 특유의 형식으로 원작의 정신과 함의를 구현”해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열거한 ‘원형’이 된 작품들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투전신』으로, 텐센트가 2010년부터 운영 중인 MMORPG 게임이다. 이 게임은 자체 프로젝트로 시작하여 텐센트를 구원해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투전신』은 시작부터 큰 성과를 거둔 후에 오히려 다른 여러 요인들 때문에——물론 주된 원인은 자본 논리와 게임정신 사이의 비타협적인 모순에 있었다——제3장 ‘백골부인’ 에피소드 이후 급속하게 쇠퇴했고, 이는 21세기 중국 게임의 역사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남았다. 『투전신』의 메인 기획자는 현재 『검은 신화』의 프로듀서인 요카(Yocar)로, 『검은 신화』의 제작 멤버들 중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투전신』 제작에 참여했었다. 펑지(骥等; FENG Ji)(역주 : 앞서 언급한 ‘요카’의 본명) 등의 인원들은 텐센트를 떠난 후 게임과학을 설립했다. 게임과학은 『100 히어로즈 (百将行)』, 『아트 오브 워 : 레드 타이드(战争艺术:赤潮)』 등 모바일 게임들을 출시한 이후, 그동안 중국의 게임산업이 손대지 못했던 AAA게임이라는 정점에 도전하고자 했다. 2020년 8월, 헤어진 연인이 재결합하듯 “백골 이후 다시 서쪽으로”라는 이상를 기치로 내걸고, “서유기 세계관”의 게임 『검은 신화』의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검은 신화』는 비단 『투전신』의 정신적인 후속작일뿐만 아니라, 게임의 이상에 대한 1세대 중국 게임 제작자들의 고집과 “돈냄새”로 가득한 21세기 중국 게임의 역사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 게임 역사를 향한 또 한 차례의 자기초월의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빛나고 우수한 문화 콘셉트와 가슴 속의 뜨거운 피만으로는 분명 충분하지 않다. AAA게임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여전히 게임의 기술에 있다. 2020년 8월 20일 첫 시연 영상이 공개된 후, 프로듀서 펑지는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13분짜리 B1에는 여기저기 꿰맞춰 놓은 흔적들이 있습니다. 수치는 제멋대로이고, 착지는 딱딱합니다. 작은 몸은 체조를 하고, 큰 체형은 힘이 없고요. 매미는 모형을 뚫고 나가고, 물에는 피드백이 없습니다. 투박한 방향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사운드는 끊겨 있습니다.”라고 게시했다. 분명히도 당시 『검은 신화』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기술적인 난제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현재 최근에 공개된 『검은 신화』의 영상 화면을 보면, 상기한 난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 게임의 일부 디테일에서는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나 『사이버펑크 2077』 등 글로벌 톱 AAA게임들과 맞먹는 퀄리티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과학측이 언급했듯이 ‘서유기 세계관’에는 글로벌 게임산업에서는 단순한 이족보행 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지는 네발 달린 요괴가 대량으로 존재한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요괴들의 행동 특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인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난제일 것이다. 『검은 신화』는 이에 맞추어 네발 동물의 모션캡쳐를 위한 모션 시뮬레이션 시스템 ‘루우(陆吾; luwu)’를 개발했다. 그러나, 중국 게임업계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첨단이지만 사소하기도 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게임을 “하이테크놀로지” 게임상품에서 인문 사상이 풍부하게 함유된 문화예술 작품으로 바꿀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최종적으로 기술과 인문의 이중 추월을 실현하는 것에 있다. 『검은 신화』의 제작과 홍보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이중 추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신화』가 중국 게임 감독들의 ‘작가성’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성’이란 게임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는가 수준의 평범한 어휘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게임 작품이 인문사상의 매개체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사회적·역사적 상황에 대한 게임 감독의 깊은 고민이 개입되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작가성’이란 게임의 맥락이 사회적인 맥락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플레이어가 게임 도중 게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시대의 언어를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료들을 보면, 『검은 신화』 제작자 펑지의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접근은 일본 게임감독들의 게임사상에 대한 해석에 비교적 가까운 듯하다. 게임기획자 출신인 그는 게임과학의 창업자이기도 한데, 이는 곧 그가 다른 일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도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검은 신화』에 주입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게임 디자인 외에는 비즈니스적인 세계의 현실적인 압력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창작 배경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검은 신화』와 그것의 홍보 문구로부터 과거에 『서유기』를 주제로 한 다른 장르 게임들과 완전히 다른 철저한 이상주의의 색채를 읽어낼 수 있다. 가령, 게임 속의 캐릭터 형상화나 액션 디자인, 줄거리 설정, 애니메이션의 연출, 화면 전환, 장면 구축, 공식 웹사이트의 문안까지. 『검은 신화』는 비용 불문 높은 품질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야심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이상주의는 바로 게임 작품 속에서 ‘작가성’을 부화시키는 전제가 된다. 이에 대해 펑지 등의 (제작진) 사람들은 당연히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13년 전, 일찍이 펑지는 다음과 같이 호언장담한 바 있다. “위대한 게임은 항상 위대한 사상에서 나오고, 위대한 사상은 으레 위대한 게임 디자이너들로부터 나온다.” 『검은 신화』에 게임과학 제작팀의 일상생활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와 깊이 있는 관찰이 개입되어 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서유기 세계관’의 현대적인 함의를 가능한한 풍부하게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는 어떠한 “위대한 사상”이 개입되어 있을까? 공개된 게임 영상들에서 우리에게 확실한 판단 근거를 제시할만한 것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우리는 단지 약간의 실마리로부터 바람과 그림자를 잡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검은 신화』는 『오공전』과 『투전신』의 현실세계와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인 사유를 연장하고 있지 않을까? 이는 『검은 신화』의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재해석 역시 『서유기』의 내러티브 자체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원숭이는 양보할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며, 대신 “최고의 화면, 풍부한 디테일, 몰입감 넘치는 전투 체험을 통한 충분한 플롯 연역”을 활용해 동방신마(东方神魔)의 세계를 표상하는 메타 서사 공간으로 새로이 창조하는 것에 있다. “교활한 요정, 흉악한 도깨비, 다정한 군주, 비겁한 신선”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과 원한을 노래하고, “동양의 슈퍼히어로 서사시를 새롭게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은 신화』의 “위대한 사상”은 유럽과 미국의 마블 유니버스와 같은 영웅찬가가 아닐 수도 있으며, 반대로 불경을 구해오기 위한 길 위의 “평범한” 캐릭터들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려 그/그녀들을 따라 공감하고, 그/그녀들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일 수 있다. 신격화된 신선과 성불, 그리고 오명을 뒤집어 쓴 요괴들과 악마들을 메타 서사의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재인격화하여, 플레이어는 영웅의 후광에 가려진 ‘작은 인물들’에게 다가가 평범하지만 충만한 ‘인성’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서유기』는 현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반영한 기서이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한 『검은 신화』의 최대 난제는 어쩌면 AAA게임 기술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중국 최초의 AAA게임에서 사회 비평적 의제를 설정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검은 신화』는 과연 하이엔드 “디지털 장난감”일까, 아니면 사회 비평의 매개인가? 내년에는 그 답이 나올 것이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학자) 덩 젠 , 邓剑 쑤저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 Back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09 GG Vol. 22. 12. 10. 디지털게임은 그 출발점부터 시장에서 상품으로 규정된다는 속성과 긴밀한 연계를 이루며 발전해 왔습니다. 제작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이 매체는 정말 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그 소모되는 자원은 시장의 기능에 의해 충당되기에 게임의 속성에는 지속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개입합니다. 이런 게임의 상품적 속성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텍스트 내부에도 늘 강한 영향력을 끼쳐 왔습니다. 동전투입 게임 시대의 1라운드 보스부터 오늘날 보편화된 현질과 자동사냥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게임 텍스트는 자신에게 소비자가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느냐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결제양식의 변화가 다양해지는 시대 앞에 섰습니다. GG의 이번 호 고민은 그래서 상품으로서의 게임으로 향합니다. 플랫폼의 게임 독점, 구독결제 서비스, 부분유료결제 문제, 할인과 번들링에 이르기까지 많은 게임의 상품적 속성들은 게임이 만드는 세계 내부에까지 깊숙하게 침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게임담론에서 게임의 상품적 속성은 그 비중만큼 두텁게 다뤄지지는 못한 듯 싶습니다. 미약하나마 GG가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양한 필자들과 함께 GG는 2022년 12월에 상품으로서의 게임들을 이야기해봅니다. 새롭게 등장한 결제방식과 유통방식들 속에서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는 또 어떻게 흘러갈까요? 정답없는 고민이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찌보면 조금 늦은 발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GG의 독자들은 게임과 사회를 동시에 고민하는 독자들일 것입니다. 게임과 사회라는 두 주제 사이에서 게임의 상품성은 무척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제야 이 이야기를 던지는 늦은 감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 드리며, 이번호도 많은 애정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

  • 대안세계를 향한 미래고고학: 반문화의 문제계로서 〈사이버펑크2077〉

    < Back 대안세계를 향한 미래고고학: 반문화의 문제계로서 〈사이버펑크2077〉 04 GG Vol. 22. 2. 10. 1. 미래는 널리 ‘분배’되지 않았다 사이버펑크의 효시가 되는 소설 『뉴로맨서』의 저자인 윌리엄 깁슨은 이렇게 적었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evenly distributed.” 새로운 전자기기, 혁명적인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수많은 IT기업가들과 평론가들, 테크노크라트들이 이 문구를 인용해 왔다. 기술혁신이 사회를 이끌고, 정체된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는 산업적 낙관주의에 기인한 인용들이다. 이들의 발언에는 두 가지의 의미심장한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기술의 진보를 사회의 진보와 동일시하는 기술결정론적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는 하이테크 전문가집단과, 신산업을 소비하는 대중들을 분리하려는 엘리트주의적 관점이다. 우리 엘리트들이 열심히 개발하고 제도화할테니, 무지몽매한 당신들은 초개처럼 동참하기나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 새 기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해마다 스마트폰을 바꾸고 있지만 이를 직접 분해해 들여다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알파고가 도대체 어떻게 인간을 이겼는지 자세히 이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으며, 유튜브와 피드에서 엄청난 콘텐츠 소비를 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왜 내 앞에 추천되는지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별로 없다. 얼리어댑션과 진보의 상징인 아이폰이 계획적 노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공유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깁슨의 계시록적 문구를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라고 섣불리 해석한다. 그러나 깁슨이 왜 ‘spread’ 가 아닌 ‘distribute’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가 실제 전달하고 싶었던 뉘앙스는 “미래가 이렇게 널리 퍼져있는데도, 적절히 사람들에게 분배되지 않았다.” 였을 것이다. 신기술은 역사적으로도 사회적 부의 불평등과 그에 따른 불만을 조절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증기기관과 전기·화학 및 소재공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19세기, 서구 사회는 전에 없던 엄청난 생산력을 획득했지만 절대 다수의 노동인구는 최악의 빈곤에 시달렸다.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당시 실태를 조사한 문헌을 인용하면서(특히 1850년대의 정부 보고서들) 산업도시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20세보다도 짧았다!)과 영양상태가 선사시대 수렵·채집을 하던 인류보다 나빴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괜히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찰스 디킨스가 『위대한 유산』같은 책을 쓴 게 아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최신 기술은 우리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야한 공구로 노동하는 야만인들보다 더 오래 노동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가진 자들에게는 궁전을, 빈자들에게는 움막을 생산한다.” 2. 사이버펑크라는 반문화적 문제계 따라서 사이버네틱스 제어혁명이 일어난 당시, 선구적인 컴퓨터기술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은 신기술에 대한 엄청난 우려와 낭만주의의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헤게모니를 선점하기 위한 행동주의를 선포했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개발하는데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들어갔는데, 왜 소수의 거대기업들이 그 권리를 독점하는가?’였다. 실제로 그러했다. 그저 그런 타자기나 생산하던 IBM, 뜨내기 대학생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벼락부자가 된 것은 정부에서 주어진 특혜와 넘쳐나는 세금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자아내는 새로운 세계를 자본주의의 공간이 아닌,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통계(commons)로 만들기 위해서는 신기술들을 널리 ‘분배’할 필요가 있었다. 기업과 국방성이 독점한 컴퓨터·인터넷을 만인이 조건 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공공재화 하는 것이다. 월드와이드웹(WWW)이라는 공통의 네트워크는 이러한 이념 속에서 자유와 평등을 확장시키는 정신적 통로들인 간-네트워크(inter-network), 인터넷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급진적인 정보기술 사상가인 존 페리 발로우는 1996년, 미국 독립선언문의 공리주의이념을 월드와이드웹에 적용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인종, 경제, 군사, 지역에 따른 특권과 편견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자신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 현실의 재산, 표현, 정체성, 운동, 맥락에 관한 법적인 개념들은 우리에게 적용되어선 안 된다. 그것들은 물질에 기반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에는 물질이 없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휴머니티의 모든 감정과 표현이 연속적인 전체의 부분이며 비트의 전 지구적인 대화이다…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 그것은 너희 정부가 이전에 만든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될 것이다.” - 존 페리 발로우,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1996) 사이버스페이스를 여전히 형이상학적인 공간으로 상상하던 시기, 깁슨과 발로우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 대안적인 세계가 평등과 해방의 공동체로 건설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들의 기대처럼 초기 사이버스페이스에는 환대와 존중이 공통윤리로 자리 잡았고, 다양한 민주주의 실험과 참여가 꽃피우는 영토로 거듭났다. 개인홈페이지와 정보공유가 미덕이던 초창기 PC통신과 웹 1.0 시대는 실제로 그랬다. 누구나 익명 게시판에서 애정이 듬뿍 담긴 글과 답변을 주고받고, 선망하는 마음으로 채팅방에서 타인을 기다리며 서로 연결되는 순간을 꿈꾸던 그런 때가 있었다. 비록 오늘날 인터넷은 분노와 언설, 비아냥과 혐오로 점철되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핵티비스트와 진보주의자들은 ‘물질이 아닌, 정신만이 존재하는’ 이 신세계에 새로운 문화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기존의 사회관계들(인종, 젠더, 지역, 세대 등)에 기반한 구 문화는 이곳에 들어와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광대한 성간을 채워 넣기 시작한 것은 지배질서 문화가 아닌 반문화(counter culture)였다. 배타적 소유와 일방적 상품 생산-소비문화가 아니라 공유와 연대의 문화를 창조할 당위가 요청됐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임금노동, 인종주의로부터 인류의 정신을 해방하고자 하는 반문화. 선택된 시민들만의 교양에 반대하는 재즈와 록음악,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힙합·레게, 부르주아의 패션을 비웃는 노동계급의 데님패션,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어루만지는 뉴에이지와 히피이즘 등이 그것이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서구의 합리주의가 초래한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제국주의 전쟁과 범국가적 폭력, 홀로코스트, 주기마다 반복되는 경제대공황, 빈곤, 항구적 실업이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반문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사이버-펑크’는 이와 같은 테크노 진보주의와 반문화 시대정신이라는 두 역사적 실타래가 엮이면서 등장한 문제계라 할 수 있다. 야심차게 장르명을 제목으로 차용한 〈사이버펑크 2077〉은 깁슨의 『뉴로맨서』를 필두로 해서 닐 스티븐슨의 『스노크래시』, 브루스 스털링의 『스키즈 매트릭스』, 영화 〈블레이드러너〉와 〈트론〉, 〈매트릭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와 〈아키라〉가 수놓은 사이버펑크의 별자리들을 하나의 은하계로 집대성한 게임이다. 〈2077〉은 그간 우리가 목겨해온 사이버펑크의 디스토피아적 살풍경과 반문화적 열광에 대한 모든 노스탤지어가 망라되어 있다. 〈2077〉은 크게 세 가지의 문제적 시공간을 내포하고 있는데, 여기에 어떤 유포리즘의 상상력이 결부되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3.1. 오딧세이적 활극의 간-경계 시공간 〈2077〉은 세 가지의 시작점으로부터 출발한다. 스트릿 키드, 노마드, 기업하수인이 그것이다. 이 배경 설정은 찰스 디킨스를 비롯한 19세기 대중소설에 자주 등장했던 거리 부랑아의 SF적 재매개화라는 문제를 던진다. 거리를 비참하게 떠도는 부랑아가 자신의 특별한 능력(해킹)을 무기삼아, 뒷골목 정보거래와 갱들과의 경쟁에서 성장해온 인물군상이다. 크게 한탕 해서 성공을 꿈꾸는 얼치기 현상금사냥꾼이 거대 기술기업-권력의 음모와 연루되어 고난을 맞이하는 구도다. 이는 『뉴로맨서』 이후 사이버펑크가 하나의 장르문법으로 구축해 온 서사에 조응한다. 『뉴로맨서』의 주인공 케이스와 몰리가 거의 동일한 설정으로부터 출발하고, 이 설정은 〈공각기동대〉의 모토코와 바토로 차용되었으며, 『스노크래시』에서는 히로와 와이티라는 인물로 반복해서 나타난다. 일본도를 쓰는 한국계 피자배달부인 히로와 스케이트 배달부인 와이티는 메타버스(사이버스페이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지만 요즘엔 PVE나 NFT로 돈벼락을 맞을 수 있다며 온갖 사기가 판치는 그 메타버스가 맞다)에서는 잘 나가는 해커로, 유행하는 사이버 약물 ‘스노크래시’를 추적하는 의뢰를 맡고 그 과정에서 해커 갱단-거대기업의 권력 암투에 휘말리게 된다. 『뉴로맨서』의 주인공 케이스는 한때 이름을 날렸던 사이버스페이스 카우보이(해커)였지만, 의뢰인의 정보를 빼돌린 댓가로 독극물 주사를 맞아 몰락한 인물이다. 케이스는 수수께끼의 인물 아미티지로부터 거대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센스/넷’에 침투해 전설적인 카우보이의 영혼이 복제된 데이터 ROM을 빼내면 대가로 신경복원술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게 되고, 미녀 카우보이 ‘몰리’와 함께 침투극에 발을 내딛는다. ROM은 카우보이의 침입을 차단하는 방벽 ‘아이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블랙아이스’에 침투했다가 죽음을 당한 전설적인 카우보이 ‘딕시-플래트론’의 인격이 담겨진 데이터 집합체이다. 〈2077〉의 현상금사냥꾼 주인공 V와 사고로 그의 인격에 빙의되는 전설의 현상금사냥꾼 조니 실버핸드, 그리고 픽서의 영혼을 가두는 사이버감옥 ‘미코시’와 ‘소울킬러’ 흑막인 거대 군벌기업 아라사카는 사이버펑크의 문법을 고스란히 계승하며 오딧세이적 활극을 연출한다. 그렇다면 왜 ‘활극’인가? 활극은 탈영토적이고, 대안적인 상상으로 재구축된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모험담이다. 물리적 현실의 제약이나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국경과 민족을 넘나들며 초월적인 모험을 펼치는 시공간으로서 활극은 하나의 공통계이다. 활극은 기존의 법이나 사회계약이 작동하지 않고, 자유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정의와 공동선이 우선시되는 장소다. 무협의 ‘강호’, 웨스턴의 ‘황야’, 스페이스오페라의 ‘우주’는 이러한 활극 공간의 무정부성과 자유를 펼치는 무대다. 국경과 민족, 인종과 성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활극에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웨스턴의 문법은 다양한 지리적 맥락에 따라 새로 번역되고 재조립된다. 한국의 만주웨스턴은 〈쇠사슬을 끊어라〉(1971),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 등에서 보듯이 ‘황야’를 미국 서부가 아닌 만주로 옮겨놓는다(마찬가지로 커리웨스턴, 스파게티웨스턴, 스시웨스턴 등 각 지역마다 웨스턴을 차용한다).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강조되는 ‘강호’에는 한족, 몽골족, 거란족, 여진족, 한민족까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넘나드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스타트렉〉과 〈스타워즈〉의 우주는 인간과 다양한 외계인 종족들이 만나고 협상하는 광활한 공통 공간으로서, 문화다양성이 자리잡은 대안세계에 대한 상상적 메타포가 도입된다. 요컨대 해안선과 산맥을 넘어 비물질의 신대륙을 건설한 사이버스페이스를 재현하는 문제로서 활극만큼 적절한 형식은 없을 것이다. 사이버펑크의 디스토피아적 도시공간에서 벌어지는 활극은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의 이념을 역설적으로 재현하는 안티테제적 서사다. 〈2077〉의 나이트시티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모험담은 사이버펑크의 활극을 고스란히 전유하는 동시에, 점점 악화되고 있는 자유와 기술 기축사회의 빅브라더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훌륭한 장치로 작동한다. 3.2. Turn on, Tune in, Drop out! 사이키델릭의 반자본주의적 시공간 〈2077〉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화려했던 사이버펑크의 반문화 흔적들이 사려 깊게 재현된다는 데에 있다. 선글라스와 가죽패션, 할리데이비슨과 메탈음악, 모히칸머리와 LSD, 프리섹스, 유체이탈과 화끈한 총격전, 일본도를 쓰는 테크노-사무라이, 말끝마다 은어와 욕설을 붙이는 쿨한 길거리 언어, 사랑 한 큰 술까지… 조니 씨발핸드와 나이트시티는 사이버펑크의 모든 문법들이 통하는 교과서 자체다. 일본도를 등에 맨 채, 마음에 맞는 라디오채널을 골라 들으며 유유자적 바이크를 타고 도시를 질주하는 경험은 다른 어떤 사이버펑크들보다 유의미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브레인댄스’ 라는 게임 속 영상기록매체(사실상 『멋진 신세계』의 촉감영화의 오마주인)에 들어가 재현을 만지고 조작하는 경험은 디지털 게임만의 고유한 매체성인 능동적 탐색과 조형행위를 십분 활용한 연출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제작사가 거창하게 광고했던 것과는 달리 한정적인 시퀀스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브레인댄스, 블랙월(현상금사냥꾼들을 막는 사이버 방벽) 너머의 초월적 이계에 대한 갈망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2077〉은 여타의 사이버펑크가 그러하듯 이 대안적 시공간을 충실히 재현한다. 〈공각기동대〉의 네트와 2501, 〈매트릭스〉의 매트릭스와 요원이 그렇듯 〈2077〉 또한 물질/관념, 육체/정신이 탈주하는 이데아로서 ‘사이버스페이스’를 묘사한다. 여기에서는 현실의 어떤 물리적 및 사회적 제약도 한계로 작용하지 않는다. 신체는 죽었지만 영혼이 살아남아 사이버스페이스의 지성체가 된 넷러너 알트 커닝햄은 대표적인 알레고리다. 니체는 육체가 정신의 감옥이라고 했지만,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정신이 육체를 초월하는 대탈주가 가능해진다. 1966년, 히피들의 성자이자 반문화의 선구자였던 티모시 리어리는 “전원을 켜고, 조율하고, 이탈하라!(turn on, tune in, drop out!)”라고 선동했다. 서구사회 전역에서 발발한 68혁명을 기점으로, 시민사회는 수세기간 이어진 합리적 이성 중심 세계관에 신물이 난 터였다. 그 산물인 자본주의 시스템은 계속된 경제공황과 양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로 파산을 선고받았다. 반대편 진영의 소련과 중국도 전체주의 감시국가로 변모하던 중이었다. 전 지구적 노동착취와 식민지 수탈, 감시국가, 전쟁에 사람들은 더 이상 동의하지 않았으며, 이지적이고 무능한 인간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혁파하길 열망했다. 이 열망을 동력삼아 다양한 운동들이 전개되었다. 여성해방, 생태주의, 탈성장, 노동거부, 마을공동체, DIY, 프리섹스 등이 주요 골자였는데 이는 앙시앙 레짐(구 체계)의 사고방식과 전부 단절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즉 냉철한 이성을 통해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감성을 해방시켜 물질의 굴레로부터 이탈하는 영성혁명이 새 방법으로 대두된 것이다. 서구 사람들이 요가를 배우고 인도와 중국, 터키에서 내면을 발견하는 여행을 하는 것도 이 시기부터다(한국은 90-2000년대).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전통 직물을 입고, 밥 말리의 드레드헤어를 백인들도 따라한다. 이른바 ‘정신줄을 놓은 채 몽상과 꿈의 원천의식을 좆는’ 사이키델릭은 리어리를 위시한 당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LSD나 마리화나의 환각을 통해 더욱 이상적으로 형상화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반문화를 추종하던 청년들과 이상주의자들은 거리가 아닌 내면으로부터 혁명이 시작된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주 52시간 노동, 보편적 복지, 차별금지법, 지속가능경제 등은 이 시대 영성혁명의 맹아에서 발아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의 공고한 노동윤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근면성실하게 노동하는 프로테스탄트 자본주의 정신,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아낌없이 쓰는 소비사회의 레짐은 이들 반문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부는 즉각 법을 입안시켜 LSD와 환각제를 불법으로 규제하고(한국에서 마약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미디어는 내면을 좆는 사람들을 게으르고 무능하면서 사회 탓만 하는 싸이코들, 성스러운 노동을 거부하는 이교도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반문화의 옹호자들은 이런 사회적 낙인을 비웃고 뒤틀었다. 이들은 구체제가 경멸적으로 표현하는 그 ‘펑크’가 되길 스스로 택했다. 외모를 괴이하게 꾸미고, 메탈 밴드를 결성하고, 사회구조의 모순을 고발하는 가사를 욕설처럼 내뱉으며, 튜닝한 오토바이로 도로를 질주하는 폭주족되기를 스스로 자청한 것이다. 사이버펑크는 반체제적 사이키델릭의 이념적 파편들이 장르의 문법 속에서 재결정화된 문장들인 동시에, 노동을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이 ‘힙하게’ 재현되는 대중문화 장소이기도 하다. 메탈 밴드 ‘사무라이’를 이끌며 군벌 기업들의 폭정을 비판하던 조니 실버핸드가 아라사카로 쳐들어가 화끈한 파장을 일으키고, V에 탑승해 반문화의 환등도시 나이트시티를 거니는 플레이경험에는 이러한 역사적 긴장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나이트시티는 사이키델릭의 어둡지만 섹시한, 좌절된 이상향들이 펼쳐지는 그런 시공간이다. 3.3. Becoming with: 기술적 탈신체화의 시공간 자유로운 외형 커스터마이징과 신체개조 시스템, 등장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기계신체 구현들은 〈2077〉의 탈신체화된 마음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플레이어는 남성/여성의 외형과 성기를 교차 선택해서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 젠더와 신체의 횡단을 시스템에서 구현한 것도 재미있지만, 이에 따라 달라지는 서사 상호작용 및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크게 네 명의 인물들과 연애를 할 수 있는 분기들도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플레이어가 남성인 경우 게이 인 ‘캐리’와 여성 조력자 ‘팬앰’과 로맨스를 진행시킬 수 있으며, 여성인 경우 히스패닉 레즈비언인 ‘주디’와 남성 마초 ‘리버’와 연애를 선택할 수 있다. 남/녀라는 생물학적 성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경로들을 플레이어가 만들어갈 수 있으며, ‘탈 신체화’의 기술적 마법을 조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부분은 개발자들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데,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강박때문에 억지로 끼워 넣은 설정이 아니라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다각적으로 이해했다는 징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질계의 질서가 해체되는 사이버펑크에서 신체는 더 이상 제약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무엇인가 될 수 있는 ‘becoming with ~’의 계기가 된다. 물질과 신체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리퍼닥(사이보그 외과의)에게 인공 인지기관과 신체부위를 시술받으니, 더 이상 신체의 물리적 강도나 유전된 외형이라는 선험성이 무의미해진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자아인 마음의 신체 또한 변화한다. 사이버펑크에서는 여성을 얕잡아본다거나 인종에 편견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적이다. 메레디스, 레지나, 로그, 다코타 스미스 같이 카리스마 넘치고 위험한 기계신체 여성들이 즐비한 나이트시티에서 그/녀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반면 미스티나 마마 웰즈, 이블린 같은 전통적인 성향의 여성들도 존재한다. 교조주의적 정체성 정치를 우회해 탈신체화된 판타지를 적절한 균형 속에서 실현하고 있기에, 〈2077〉은 사이버펑크의 장르적 유연성을 잘 전유했다 볼 수 있다. 포스트휴먼 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1985년 『사이보그 선언문』에서 “여신이 되기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라고 선언했다. 이 시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해러웨이 또한 사이버네틱스 과학기술이 인간 정신의 진보와 공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사이보그’는 신체의 한계에서 탈코드화되는 상생의 미래에 대한 고고학적 은유다. 해러웨이에 따르면 외형과 물리적 차이, 성역할에 따른 사회권력의 관계망은 유사성의 원리로부터 기인한다. 근대의 자연과학과 생물학은 외형과 진화의 유사 정도에 따라 세세한 분류학을 만들어냈다. 개과, 고양이과, 파충류, 포유류 등의 분류는 유사성과 더불어 차이 또한 만들어낸다. 백인과는 다른 흑인, 남성과는 다른 여성, 아리아인과는 다른 하류인종, 유럽인과는 다른 아시아인, 위대한 한족과 야마토민족과 구분되는 야만족 등… 이분법에 기반해서 사회적 권력(너를 차별할 수 있는 나)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권력은 차이와 호혜를 허용하지 않는다. 고래·고양이와 협력하는 인간, 아시아인과 흑인 친구, 서로 협조하는 LGBT와 이성애자들, 서로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남성과 여성 등. 주어진 신체의 날인으로부터 벗어나는 ‘탈 신체화’의 순간에야 차이를 넘어서서 ‘다른 누군가가 되어 함께하는 경험, 즉 더불어 되기(becoming with)’을 상상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병폐와 파괴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별의 상상을 연결하는 강력한 은유(사이보그)가 필요하다.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 ‘사이버 펑크’의 탈 신체적 사회공간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다름’을 넘어서 연대하는 경험이다. 인간, 개, 고양이 뿐 아니라 바이러스, 인공지능, 퇴비, 곤충,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객체들과 반려종이 될 준비가 되어야 우리는 진정으로 평등과 자유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다. 기술은 미래에 그것을 가능할 수 있게 만들지도 모른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사이보그들이 활극을 펼치는 무정부적 시공간, 사이버펑크는 그렇게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고고학적 발굴 현장이 된다. 4. 극단의 시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고학 〈2077〉은 한계와 단점이 뚜렷한 게임이다. 수많은 구매자들이 비난했듯이 이 게임은 수 년간 홍보해온 수많은 시스템과 기능들을 대부분 폐기처분 했으며, 짜임새 있는 트리형 서사구조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플레이어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실패했다. 상호작용할 수 있는 NPC는 몇 안되고, 엄청난 고층 빌딩들이 늘어서 있지만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이처럼 물리적 자유의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사이버펑크의 팬이 아니라면 메인서사 진행과 큰 상관관계가 없는 대부분의 사이드퀘스트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수많은 어처구니 없는 버그는 화룡점정을 찍으며, 갑자기 영향력을 잃는 캐릭터들(대체 메레디스는 V를 불러내 질펀하게 즐긴 다음 어디로 사라진 걸까?), 서사 진행을 위해 소모되는 팩션(부두보이즈는 블랙월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가?) 등 미숙한 게이밍 설계들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77〉은 사이버펑크 장르를 여러 방면에서 집대성한 정점으로 추켜세우기 아까움이 없는 작품이다. 사이버펑크가 제기하는 반문화, 탈신체화, 초월이라는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쌓아올린 점, 그리고 각 주제들이 조화롭게 플레이어의 조형행위들과 조응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특히 오늘날처럼 극단적인 분열과 적대가 판치는 하수상한 시대, 철로에서 이탈하지 않고 새롭게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뉴 클래식의 정류장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와 사이보그 그 이후는 무엇이 도래할까? 인간 사회의 진보와 자유를 꿈꿨던 초창기 사이버펑크의 기획은 오늘날 종언을 고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인터넷을 대안적인 공간이라거나 새로운 민주주의 실천의 장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 ‘사이버 공간’의 해프닝이 아니게 되었다. 인터넷은 더 이상 공통계(commons)도 아니다. 카피레프트도, 자유소프트웨어 운동도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들의 빈 자리를 꿰찬 것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다. 콘텐츠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고, 전지구에서 납세를 회피하며, 고용은 거의 하지 않는 다국적 IT 자본들. 어떻게 보면 〈2077〉과 같은 사이버펑크가 다시 귀환하는 것이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르겠다. 〈2077〉의 멀티 엔딩 중 하나인 ‘악마’ 엔딩에는 거대기업 ‘아라사카에 완전히 항복하기’라는 선택지가 나온다. 말 그대로 그토록 죽어라 싸웠던 군벌독재 기업 아라사카에 백기투항하고, 생존을 위해 정신을 디지털 감옥인 미코시로 전송해 영원한 사이버 유령이 되어버리는 결말이다. 지금 여기, 우리는 어떻게 그때처럼 다시금 반문화를 일으키고 자유를 꿈꿀 수 있을 것인가. 다만 그 발자국들이 만들어낸 길들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 순간 샛길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77〉이 제시한 사이버펑크라는 문제계는, 오래된 스토리텔링과 미래지향적 매체기술을 버무려 메타버스와 인공지능이 도래할 우리의 미래에 다시금 묵시록적 개연성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

  •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 Back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06 GG Vol. 22. 6. 10. 게임문화웹진 ‘게임제너레이션’은 디지털게임의 문화적 접근 폭을 넓히고 게임문화를 선도적이고 실천적으로 이끌어갈 새로운 필자의 발굴을 위해 아래와 같이 게임비평공모전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게임과 게임문화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많은 분들의 참가를 부탁드립니다. - 아 래 – 1. 공모명: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2. 공모 주제: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자유주제) 3. 공모기간 및 접수마감: 2022. 07. 08.(금) 23:59까지 email 도착분에 한함 4. 공모형식 및 참여방법: - 형식: hwp, doc, odt 형식 중 택일하여 제출. 제목, 저자명 포함. - 분량: 한글 4,000자 ~ 8,000자 내외. 이미지삽입 5개 이하. - 제출방법: 공모전 전용 email을 통해 제출( ggcriticcomp@gmail.com ) 5. 시상내역 최우수상(1명): 상금 100만원(세전), GG 7호 게재 우수상(3명): 상금 50만원(세전), GG 7호 게재 장려상(5명): 상금 30만원(세전). GG 7호 게재 * 수상자는 응모한 메일을 통해 심사완료후 개별 통보합니다. 6. 일정 2022. 07. 08(금) 접수마감 (23:59까지 도착분 기준) 2022. 07. 29(금) 심사완료 및 결과통지 2022. 08. 10(수) GG 7호 수상작 게재 2022. 08. (미정) 시상식 7. 기타 유의사항 - 공모전 참가는 1인 1개 글에 한하며, 중복응모는 불가합니다. - 응모는 블로그 등 개인매체를 포함한 타 매체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어야 하며, 중복게재 및 표절이 밝혀질 경우 수상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 수상작 선정 후 개인정보 취득을 위해 당선자분들께 개별 연락이 진행되며, 이 과정에서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당선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 관련한 문의사항은 공모전 공식 메일계정( ggcriticcomp@gmail.com )을 통해 문의해 주십시오. 게임의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많은 여러분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

  •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 Back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08 GG Vol. 22. 10. 10. 비동기 멀티플레이는 모바일 게임의 시류에서 도드라진 방식이다. 모바일, 그리고 무선 네트워크라는 아직 태동기에 불안정성이 남아있던 플랫폼들은 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하지 않으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은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현재 이 방식은 비단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특유의 선택적 연결성 덕분에 많은 게임에서 채용되곤 한다.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분명 상시 온라인 접속을 요구하는 온라인 게임이지만,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와 직접 마주하거나 연결되는 순간이 매우 적다. 분명 마을에서 직접 캐릭터를 마주할 수 있는 게임임에도 할 수 있는 실시간 상호작용은 매우 적다. 플레이어 간의 전투는 서로가 서로의 전투력을 상정한 AI와 싸우는 비동기 전투로 이루어지며, 거래소의 경우에도 간접적으로 돈과 장비를 주고 받는다. 이 게임에서 가장 큰 온라인 활동 중 하나는 바로 ‘투자전’ 이다. 협동 콘텐츠는 전무하며, 정작 ‘대항해시대’ 하면 떠올릴만한 유저 해적질, 속칭 ‘유해’ 는 그 여파가 상당히 간접적이고 애초에 양쪽이 모두 비동기로 전투를 하기 때문에 서로의 전투력을 복사한 AI와 대결하는 식이다. 굉장히 상호작용성이 떨어지고, 실질적으로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직접적으로 맞붙는다는 느낌이 드는 콘텐츠는 투자전 하나 뿐이다. 이 투자전은 기본적으로 각 도시들에 두캇(인게임 머니)과 젬(유료 재화)을 소모하며 투자를 할 수 있고, 이 액수를 비교해 가장 높은 사람에게 시장 자리를 부여하고 해당 국가와 플레이어에게 소유권과 그 도시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주는 시스템에 기반한다. 그래서 각자 중요한 항구를 두고 자본의 전쟁을 벌이고, 이 게임의 실질적인 PVP는 바로 이 투자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온라인 플레이의 구조 때문에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온라인 플레이에 접근할 수 있는가, 온라인에 천착해있는가를 자본이라는 조건으로 구분짓기 때문이다. 현재의 구조를 따르면 실질적으로 투자전을 통해 거시적인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을만큼의 자본이 있는 경우에만 유의미한 게임 내 온라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자본은 물론 게임 내에서 벌어들이는 두캇을 포함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간당 수급량에 제한이 있는 두캇보다는 레드젬, 즉 현질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투자전 자체의 문제는 단순히 비동기 멀티플레이의 거시화라는 관점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지속적인 현금 투입을 유도해야 하는 한국형 F2P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이 투자전을 제외한 다른 온라인 플레이들이 전무하거나 또는 유의미할 만큼 게임 내 가치를 가지거나, 또는 플레이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겹치고, 때문에 이 ‘투자전’ 이 이 게임의 온라인 플레이 자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문제가 도드라져 보인다. 여기서 마찬가지로 비동기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고, 또 마찬가지로 운송이 핵심인 게임 ‘데스 스트랜딩’ 의 온라인 활동은 어떤가. 비록 두 게임은 플레이어의 시점, 플레이의 밀도, 스케일 등 많은 면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운송과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테마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데스 스트랜딩’ 에서는 자신 이외의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는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온라인 동기화를 통해 다른 플레이어가 건설한 도로나 건물, 장비들이 무작위 선별을 통해 내 월드에 설치되어 있고, 이것을 내가 직접 사용하면서 플레이 자체에 변화가 생긴다. 도로 하나, 충전기 하나의 차이만 해도 굉장히 큰 게임이고, 설원에서 죽기 일보 직전까지 운송을 하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설치해둔 충전기 하나를 본다면 그야말로 구원이나 다름없다. 내가 온라인 플레이에 참여하고 싶다면, 자원을 모아 건물을 설치하면 된다. 만약 정말로 필요한 건물을 적절한 위치에 설치했다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이용하면서 무수하게 쌓인 좋아요, 일명 따봉을 보게 된다. 재미있게도, 이 따봉은 플레이어가 온라인 플레이에 참여하도록 하는 순수한 원동력이다. 직접적인 채팅조차 불가능한 게임임에도 오히려 타 플레이어의 흔적, 영향이 게임 내에서 깊고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오히려 상시 온라인 접속을 요구하는 명실공히 온라인 게임인 ‘대항해시대 오리진’ 이 싱글 플레이도 가능한, 프리페이드 게임인 ‘데스 스트랜딩’ 에 비해 유저 간의 연결성, 온라인 플레이의 가치가 더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핵심은 동기식이냐 비동기식이냐, 플레이어 아바타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등의 차이는 이 상황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이런 상황 하에서 ‘대항해시대 오리진’ 온라인 플레이는 ‘계층화’ 된다.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의 온라인 플레이는 투자전이 핵심이자,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투자전은 한편으로는 이 게임에서 현질을 유도하는 가장 큰 요소다. 한때, 필자가 플레이 중인 대서양1 서버에서 투자전이 한창 과열 양상에 들었을 때 한 플레이어가 도시 하나를 먹기 위해 들인 현금은 추정치 약 800만원이었다. 이 게임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그 플레이어는 수십개의 도시를 한꺼번에 차지했다. 그럼 대체 얼마의 자본이 투입된걸까? 이처럼, 투자전은 단순히 게임 내에서 벌어들이는 두캇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벌어진다. 즉, 일정 규모, 적어도 백만 단위의 현질을 하지 않고서는 주요 도시를 차지할 수 없는게 이 시스템이다. 여기서 이러한 ‘도시 하나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칠만한 액수의 투자금’ 이 바로 일종의 입장권 역할을 한다. 이 게임에서 의미있는 온라인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이 액수를 내야하고, 거기서 얼만큼을 더 지불해야 하는가는 게임의 시스템이 아닌 경쟁 상대의 지불 능력에 달려있다. 때문에, 이 게임 내에서 투자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는 지극히 소수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의사결정이나 참여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이 게임의 권력구도, 그리고 국가 및 도시 배치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이는 마치 전근대 시절 대부분 국가의 전쟁이 하급 국민까지 모두 생사를 걸고 싸우는 총력전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권력 충돌이었던 양상과 일치한다. 결국 극소수의 투자자들을 제외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사이버 농노가 되어 조금씩 이 게임의 제한된 콘텐츠를 소비해나갈 뿐이다. 그래서 그런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게임은 정말로 온라인 게임이 맞는가? 나는 이 온라인 게임의 일부로서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나? 또는 상위 계층에서 하향식으로 내려오는 영향에 맞추어 나는 어떤 영향을 상향식으로 끼칠 수 있는가? 보통 이러한 과금액수에 의한 플레이어의 계층화는 비슷한 F2P 모델을 가진 게임들에서는 모두 생겨나는 일이긴 하나,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그 계층의 카테고리도 얄팍하고, 상위 계층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훨씬 적음에도 그 괴리나 거리감은 훨씬 더 크다는 점이 부각된다. 즉, 왕족과 농노라는 양극화 계층만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 때문에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플레이는 단순히 플레이어의 상승욕구를 자극해 돈을 쓰게하는 것을 넘어 아예 멀티플레이에 참여하는 걸 포기하도록 만든다. 물론 F2P 게임은 플레이어의 결핍을 만들어내고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현질을 하도록 유도한다. 수많은 역체감과 타인과의 비교우위를 만들어내어 이를 돋보이게 하고, 각 층위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조금씩 다른 플레이 목표를 가지도록 조정한다. 그러나 이 게임은 후자, 최상위의 계층이 아닌 플레이어들이 이러한 대단위 상호작용, 멀티플레이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나 별도의 멀티플레이 콘텐츠를 준비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극단적인 양극화가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는, 온라인 플레이와 오프라인 플레이의 특색은 그저 기술적인 네트워크 연결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에 따라 오히려 ‘대항해시대 오리진’ 보다 ‘데스 스트랜딩’ 이 더 ‘온라인 게임’ 일 수 있다. 물론 온라인 플레이와 오프라인 플레이가 상하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게임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강점과 특유의 재미를 얼마나 잘 구축했느냐는 중요한 판단거리다. 그러나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분명 온라인 게임이라는 명제를 깔고 있음에도 이 온라인 플레이가 매우 선택적으로, 그것도 돈에 의해 작동한다. 온라인 게임으로서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세가지 큰 문제는 먼저 투자전 중심의 온라인 플레이로 인해 생기는 플레이어의 계층화, 두번째로는 그 투자전 자체도 어떤 기획의 복합적인 아름다움이나 재미는 없는 단순한 숫자 대결 콘텐츠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게임 내에 투자전 이외에 제대로 된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런 게임이 된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은 이 게임 자체가 실무를 맡은 개발사가 기획 전권을 휘두르기 어려운 원본 IP를 토대로한 협력 개발 게임이고, 또 2차 클로즈 베타까지 게임의 근간이 계속 뒤엎어진 난항에 난항을 거듭한 게임이라는 개발 상황의 문제가 있다. 더불어, 그 근간이 F2P 모바일 게임이기에 수익 구조가 일부 고객들의 고액 지출에 기대어 디자인된 부분도 있다. 또 고의적으로 전투 부분에서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을 최소화시킨 영향도 있다. PVP 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때문에 수많은 고객이 이탈한 ‘대항해시대 온라인’ 의 사례를 재현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즉,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온라인 플레이는 직접 그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게이머의 입장보다는 온라인 플레이와 라이브 서비스를 결합하여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회사의 입장이 더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지 이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내 F2P 모델의 게임들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게임이 수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산업화의 결과물이며 개발자들, 그리고 그 게임의 제작과 퍼블리싱에 참여한 모두가 정당한 금전적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기형적 형태의 기획에 의존하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분명 과열된 투자전 와중에 벌어들인 수익은 상당하리라. 하지만 과연 그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투자전의 열기가 한차례 빠지고 난다면, 이 게임은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이는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개발자나 또는 서비스사에 대한 도덕적 규탄이 아니다. 이는 왜 이 게임의 온라인 플레이는 이전작인 ‘대항해시대 온라인’ 에 비해 퇴화할 수 밖에 없었는지, ‘대항해시대’ 라는 인기 IP 이자 수십년이 지나도 아직도 특별한 재미가 있는 이 플레이 로직을 기반으로 왜 이 이상의 온라인 플레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는가 하는 게임 완성도 측면에서의 비판이다. 오프라인 베이스에 선택적 요소로서 비동기 멀티플레이가 첨가된 게임이, 오히려 상시 온라인 연결을 필요로 하는 대단위 멀티플레이어보다 오히려 더 밀도 있고 끈끈한 멀티플레이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아니다. 소수의 투자자들이 아닌 대다수의 플레이어들, 이 사이버 농노들은 이 ‘대항해시대 오리진’ 이라는 세계에서 어떤 플레이 목적, 또는 존재 의의를 찾아야 하는가? 그것이 이 과정을 거쳐 정제된 마지막 질문이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

  •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 Back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13 GG Vol. 23. 8. 10. 2022년 11월 중순, 랩시드(西山居SEED实验室, 시산쥐SEED실험실)에서 인큐베이팅한 중국산 공익게임 <바이페즈>가 정식 출시됨으로써, 국내 최초 게임 형식으로 양극성 장애[역주: 조울증]를 다룬 게임이 됐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인 양극성 장애는 전 세계에 약 6천만 명의 환자가 있다. <바이페즈>는 수평 액션의 2D 플랫폼 점프게임이다. 게임이 처음 시작되면 다양한 액션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가 백색 피에로를 컨트롤해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한 블록과 기호 사이를 점프할 수 있도록 한다. 레벨을 통과하려면 플레이어는 태양과 유사한 백색의 기하도형을 터치해야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 메커니즘은 1990년대 ‘소패왕 학습기(小霸王学习机)’[역주: 1980년대 말, 재미 화인기업가가 창립한 소패왕문화발전유한공사(小霸王文化发展有限公司)에서 만든 컴퓨터 학습도구] 카세트(팩)에서 볼 수 있었던 < 콘트라(魂斗罗)> 나 < 모험섬(冒险岛)> , < 슈퍼마리오> 등 평범한 오락게임을 연상시키지만, <바이페즈>의 플레이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구체적인 인지를 통해 양극성 장애의 기본 증상인 조증 위주의 조울증을 번갈아가며 경험할 수 있다. 필자 역시 게임을 하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울증 환자였던 필자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다양한 치료를 받은 후에야 서서히 정신 상태가 개선된 경험을 한 바 있다. 정신장애 : 게임의 신체화 게임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양극성 장애의 게임 체험은 ‘스크린 안쪽에 표시되는 가상의 신체를 가진 캐릭터’와 ‘스크린 바깥에 구성된 물리적 신체를 가진 플레이어' 1) 사이의 관계 간극을 인위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게임의 말단 설계에서 실현된다.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두 가지 ‘나’ 사이엔 ‘은폐된 비대칭성’이 존재하며, 게임 플레이의 메커니즘은 일시적이나마 이 둘의 동일화와 주체 전환시 발생하는 현기증의 인지를 온 힘을 다 해 완성하고자 한다. 나아가 플레이어의 실제 공간과 게임의 3D 공간이 스크린 공간(screen space)에 겹쳐지면서 게임의 시점이 분산되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주체성을 의식하지 않은 채 복수의 캐릭터들의 미션 시점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현대 정신병리학 이론에 따르면 게임은 본질적으로 정신분열증 증상으로 플레이어가 여러 인칭과 시각, 주체 사이를 반복적으로 넘나들고, 상징화된 게임세계는 진정한 깊이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스스로 깊이 있는 체험을 복구해야만 한다. 게임이 만드는 신체화(somatization)는 자기 인지의 보완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보류된다. 게임은 시뮬레이션의 투사라는 측면에서 이미 주체를 분열시키는 구조이지만, 게임에서 조울증 환자의 감정을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면식이론(acquaintance theory)’ 상의 ‘타자 마음의 문제(Problem of other minds)’를 더더욱 복잡하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타자 마음의 문제’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을 경험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에 있다. 통속심리학에서는 두 유형의 방법론을 선호하는데, 추리추측을 통한 이론론(the theory theory)과 자신이 상대방의 시야에 있다고 가정하는 가장론(the simulation theory) 2) 이 그것이다. 스포츠 게임의 시뮬레이션(룰 기반, 세계 기반, 액션 기반 등)은 가장론의 방법론에 보다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가장론은 자신과 상대가 사용하는 사적인 감각이 정상적이고, 같은 언어에 의해 서로 통하고 표현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신장애환자의 문제가 있다. 질환을 갖는 시기 동안 개인의 사적 감정은 분열되고 가변적이며,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인해 표현력이 쇠퇴하거나 심지어 사라지는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일상생활에서도 신체의 증상화 징후가 형성된다. 즉, 장애의 문제가 심리적인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신체적인 증상으로 대체되며, 정신적 수준의 피해와 고통이 억제되어 신체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증상은 낙인찍기의 심리화(psychologization)가 이뤄지는 사회환경에서 더 가혹하게 나타나고,신체 경험의 궤적도 더욱 강하게 형성된다. 3) 이렇게 하면 환자는 심리적 증상의 생리학적인 성분을 더 많이 인정하고, 심리적인 영향은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장론의 인지적인 기초는 정신장애 환자가 타자 마음을 증명하는 것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정상인은 환자의 경험이나 감정을 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장애를 소재로 한 여러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 시청각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이론론의 방식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타운 오브 라이트(The Town of Light)>에서 플레이어는 정신분열증 환자 르네(Renèe)의 안내를 받아 정신병원을 돌아다니며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고, 환각을 경험하며, 마지막에는 그녀와 함께 전두엽 절제술의 과정에 의해 각종 고통을 직접 맞닥뜨리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때로 게임은 상호작용을 통해 시청각적 감각을 강화하기도 한다. 게임 <에디스 핀치의 유산(What Remains of Edith Finch)> 속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루이스 핀치(Lewis Finch)는 해리 장애를 앓고 있는데, 편지를 읽을 때 플레이어는 루이스의 정신 상태를 모방함으로써 미로를 걷고 생선을 자르는 이중적인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 <아웃 오브 핸즈(Out of Hands)>에선 정서 장애를 겪는 ‘나’의 육체가 무수히 많은 손들이 그러모은 모조품이 되어버리고,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카드 게임은 다양한 부정적 정서와의 싸움이 된다. 하지만 <바이페즈>의 게임 설계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감정적인 독백을 통해 내러티브의 존재 가능성을 돌이켜 본다. 이 게임의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은 내러티브보다는 구조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게임 데모 시연 당일에도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처음에 게임 메커니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이페즈>는 조울증 환자의 신체화된 증상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해 보다 가장론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스포츠 게임의 현실 세계 모방에 매우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고작 하나의 모방은 시청각적 경험에 기반하고, 다른 한 가지는 정신적인 감정에 기반한다. 이 두 모방은 시점이 동일하지 않은데, 마츠모토 켄타로은 이것이 1인칭 시각과 3인칭 햅틱을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바이페즈>에서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은 조울증 환자의 1인칭 시점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색상과 기호 블록 사이를 오가는 조작된 하얀 피에로의 햅틱은 3인칭이기 때문에, 결국 플레이어는 둘 간의 조율되지 않은 지각의 부조화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 플레이어는 분열 속에서 둘 사이의 지각 부조화를 고칠 수 없고, 그 분열 속에서 정신 부조화의 세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이것은 일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더욱 고통스러운 신체화 게임 경험을 갖게 한다. 빨간색과 검정색의 교차 : 시각의 신체화 스포츠 게임이나 피지컬 게임이 아닌 게임의 경우, 신체화는 표현하기 어렵고 통증 연상을 통해서만 시청각적인 감각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하지만, 시청각 감각은 하나의 실험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정신장애를 겪는 환자의 눈에 비친 세상이 두 차례에 걸쳐 전환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의 <절규>가 그 예시다. 이 작품은 불안장애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눈으로 바라본 왜곡된 세계만이 아니라, 불안장애 환자 자신의 모습도 담고 있다. 그 스스로 심각한 불안장애를 겪었던 뭉크는 모더니즘 하에서 소외된 이의 감정에 대한 공감대를 느끼기 위해 독립적이고 빙빙 도는 색채의 상호작용을 그렸다. <절규>에서 감상자는 타인의 눈에 비친 절규만이 아니라, 그림 속 인물의 절규에 영향을 받은 주변세계, 즉 1인칭 시점이 3인칭 시점으로 재조명되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정신장애인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심미적 주체로서 자아는 자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동시에 ‘정상인’의 체험에 의해 비교하면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또, 만약 게임이 정신장애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대로 재현한다면, 이와 같은 핍진성은 ‘정상인’의 체내에 잠복하고 있는 정신장애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바이페즈>는 반드시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페즈>에서 컨트롤하는 하얀색 피에로는 고도로 기하화(geometrization)된 캐릭터다. 플레이어는 이어지는 퍼즐 해석 속에서 그것이 양극성 장애를 앓는 ‘열여섯 여름의 그녀’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어렵고, 오직 시청자의 관점에서만 캐릭터를 컨트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적 세계는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의 눈에 보이는 1인칭 시점으로, 캐릭터가 바운스할 때마다 스크린이 빨간색과 검정색으로 색깔들이 점프한다. 바운스는 게임 플레이를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수행해야 하는 동작이기 때문에 플레이어 눈의 게임 인터페이스는 빨간색과 검정색 전환이 수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인터레이스된다. 이 때문에 광과민성 간질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광과민성 간질의 신체화 증상은 조증 발작시의 증상과 일부 유사하며, 이는 양극성 증상 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게임을 시작하는 화면에는 “양극성 장애가 있는 분은 게임 플레이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게임은 광과민증이 있는 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명시적 알림 메시지가 뜬다. 이 알림은 사실상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울증 환자는 관찰의 대상이 되고, 그들/우리는 구경꾼들의 눈에 비친 세계가 진정으로 그들이 느끼는 그대로 인지 아닌지 느낄 수가 없다. 게임 속 여기저기에서 강렬한 생산 전환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장면에서 더욱 그렇다. 붉은색 백야와 검정색의 밤이 과도기적인 전환 없이 나타나고, 시각 체험에 있어서도 심각한 불연속성(discontinuity)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잠은 사람들로 하여금 낮과 밤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양극성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수면만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각성 요법과 같은 어떤 의학 치료방식들은 수면 박탈이라는 방식을 통해 정서와 인지능력의 즉각적인 보상을 촉진하도록 설계됐다. 물론 수면 보상을 시행한 이후 재발 확률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4) 게임에서 하얀 피에로가 하는 하는 일은 빨간색 블록과 검정색 블록을 끊임없이 돌리면서 게임으로부터 탈출하거나 통과하는 것이다. 이는 치료의 한 형태이기도 한데, 수면 박탈, 리튬, 빛을 결합한 3중 생체시계 치료법(필자도 경험한 바 있음)이 게임에서 모두 표현되어 있다. 검정색은 수면 박탈, 리튬은 약물 복용, 빨간색은 빛을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얀 피에로는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는데, 이는 수면을 박탈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빛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게임을 통과하기 위해 태양을 터치할 수 있는지 여부는 덜 중요해진다. 이 1인칭 시점은 게임의 3인칭 햅틱에 의해 끊임없이 상기되고 강화되어, 플레이어의 시야는 빨간색과 검정색의 시차적 변화, 바운스하는 동작의 시각적인 동선, 그리고 접점을 오가는 단조로운 경험이라는 3중 간섭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3중 간섭 하에서 하얀 피에로는 더 이상 조울증의 화신이 아니며, 대신 실시간 화면(screen of real time)에서 역동적인 빛의 한 지점이 된다. 5)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화면의 위계와 의학적인 관찰을 통해 새로운 시간적 감각을 얻게 된다. 이 때 전자(화면의 위계)는 레이더 추적 방식의 체험인데,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 것은 광선총(lightgun)을 사용해 광점을 추적하는 과정이 된다. 후자는 한계 뇌파의 동적인 궤적이 된다. 이와 동시에 체크포인트의 ‘왕복’과 ‘순환’에는 뇌파도계(encephalofluctuograph)와 유사한 구조가 대량으로 등장한다. 뇌전도나 뇌파도계는 모두 ‘정상인’이 정신이상자를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보이는 시각성은 더더욱 ‘과학적으로 관찰된’ 타자의 시야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조울증 환자는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광점으로 소외된 채 남루하게 배치되어 탈출하는 것이 점점 더 험난해진다. 컨트롤의 불균형 : 감정의 신체화 “악의 문학적 표현양식" 6) 인 반복은 지옥 신화에서 연이어 묘사된 고통의 영구 형벌로 존재하며, 지옥은 언-오르트(Un-Ort)가 된 순환 공간이다. 또한 지옥 속의 개체는 신체화된 형벌의 대상이 된다.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Huis clos)>에서 실존주의적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무한한 것(ad infinitum)의 모방으로 단조로움과 반복을 가져와, 그 속의 주체를 끊임없이(마치 업보를 태우는 불처럼) 불 태워버리는 느낌을 만든다. [역주: 원문의 业火(업화)는 불교 용어로, 죄인을 태우는 지옥불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불타는 감각은 플레이어의 자의식을 괴롭히는 조증과 매우 유사하다. <바이페즈>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데, 이 과정에서 3인칭 햅틱이 더해져 플레이어는 과잉 시각화(overvisual)의 평면에 현혹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를 강렬한 양극성 정서(특히, 조증 정서)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 속의 여러 반복 행동들이다. 이 게임의 메커니즘은 루트를 끝내는 것, 플레이 경험, 시야의 확산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감정의 신체화를 악화시키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루트를 끝내는 과정에서 게임 프로세스엔 반복적인 작업들이 많이 나타난다.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에 따르면 이는 “양극성 장애가 재발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것인데 (…) 이는 바로 외출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빙빙 돌기만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세 번째 스테이지가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레벨을 완료하기 위해 메커니즘을 지렛대로 삼기 위해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반복해야 한다. 여섯번째 스테이지 이러한 경험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얀 피에로는 촉발된 기관 여러 차례 중복해 통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전략 가이드를 참고한다는 전제 하에), 어떤 특수 장면에서는 능동적으로 추락해 게임 인터페이스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빨간색과 검정색 두 가지 색상으로 만들어진 파손된 통관 루트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중복(too repetitive) 메커니즘은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의 인내심을 낭비하고, 게임의 플레이가능성을 계속 희생시켜, 1인칭 시각성의 자극으로 불안과 무료함을 이중적으로 체험하는 걸 강화한다. 게임 체험에서 이러한 느낌은 더욱 확대된다. 스마트폰 컨트롤 인터페이스에서 이 게임의 조이스틱(摇杆) 체험성은 매우 엉망이다. 손이 시야를 일부 가리게 되어 터치 오류가 날 확률이 매우 높고, 이는 하얀 피에로가 스마트폰에서의 점프 컨트롤이 데스크탑에서보다 더 어렵도록 만든다. 이는 또한 캐릭터가 추락해 죽을 확률도 크게 높인다. 만약 기관을 반복해 오고가는 게 수평적인 불안의 체험이라면, 죽음이 거듭된 뒤 게임을 재개하는 것은 수직적인 불안 경험이 된다. 종횡으로 교차해 만들어진 불안의 장력은 끊임없이 플레이어의 시각과 청각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플레이어가 자신의 손가락 컨트롤에 대해 짜증을 느끼게 만든다. 게임 인터페이스는 색깔 블록 말고도 메커니즘이 작동할 때 움직임의 궤적을 바꾸는 대량의 선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선들은 신체 바깥에 있는 기호의 표본을 만드는데, 이는 하얀 피에로의 빨강-검정 색상 전환과 메커니즘이 촉발하는 컨트롤과 관련되어 글자들의 춤(written dance)을 만든다. 순수하게 물리적인 특성, 즉 비생명의 객체가 생명의 활력(élan vital)을 갖추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그런 다음 “업무 중 지령이 암시하는 억압의 정도에 따라 점차적으로 약화”된다. 7) 시청각적인 경험이든 컨트롤의 감각이든, 모두 게임의 신체화를 통해 정신장애의 신체화를 모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페즈> 플레이어의 지각은 여러 인칭들에 의해 분열되고, 동시에 투시체험은 여러 각도로 분리된다. 그래픽이 중첩되는 방식(즉, 4인칭 단수 시점) 8) 을 통해 각기 다른 카메라의 시선이 마치 뒤샹의 <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역주: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과 같은 어지러움에 도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하이퍼 시각화된 평면은 스크린 공간에 투사되어, 응시의 단일한 초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지조화가 이뤄진 ‘정상인’은 게임 도중 초점이 인터페이스의 도처를 조급하게 돌아다니게 되고, 이미 신체화된 양극성 정서장애 환자는 게임을 더욱 어려워 하게 된다. 내러티브 독해 : 결말의 신체화 게임 체험 말고도 <바이페즈>의 숨겨진 결말은 또 다른 의미로 신체화된 독해의 가능성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곧 전두엽이 절제된 미래이다. 게임 속에서 빨간색-검정색이 교차하는 것은 단순히 양극성의, 낮/밤이 교착된 이미지가 아니다. 게임의 다섯번째 스테이지 <미궁>에선 빨간색-검정색이 직접적으로 접점을 이루는 교착점의 조합이 바로 의약품인데, 이는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 언급된 바 있는 리튬이다. 바꿔 말해, 또 다른 의미에서 플레이어는 스테이지를 통과하도록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캐릭터에 의해 컨트롤당하고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는 약을 복용하는 캐릭터가 가져다주는 보다 평평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두 개의 색깔만으로 이뤄져 있고, 구체성이 없으며, 도처에 함정과 추락으로 가득 찬 평평한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환각제(LSD)를 복용한 후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는 <인식의 문>에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 바로 다양한 색깔들이 뒤엉킨 평면적인 세계를 체험한 것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게임이 말하고 있듯, 약물 치료는 사실 단지 정신질환을 일시적으로 보류할 뿐, 진정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9) 오랫동안 비판받아온 완치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바로 전두엽 절제술이다. “의사들은 가벼운 우울증과 불안증부터 조현병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했다. 한마디로 그 당시 의료 전문가들은 전두엽 절제술을 ‘영혼을 위한 수술’이라고 여겼고, 가벼운 우울증부터 심각한 정신분열증까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라도 추락할 수 있는 하얀 피에로(양극성 장애 환자)는 당연히 비정상적이다. 전두엽 절제술 이후 환자는 다시는 양극성 장애를 앓지 않지만, 완전히 순종적인 좀비가 되어버린다. 이 역시 ‘완치’의 결과일 수 있다. 많은 영화 및 TV프로그램들에서, 정신질환자의 경험을 심도 깊게 보여주는 작품일수록 결말은 점점 더 전두엽 절제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1971), <판의 미로(Pan's Labyrinth)>(2006), <서커 펀치(Sucker Punch)>(2011), <니하오, 미친놈(你好,疯子)>(2016) 등 모든 영화들이 그렇다. <바이페즈>에 대한 또 다른, 좀 더 자기 구속적인(self-imposed) 해석도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하얀 피에로의 치유를 돕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 하얀 피에로는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미래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얀 피에로는 이 운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데, 플레이어가 줄곧 피에로를 컨트롤하고 있고, 태양을 향해 그녀를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색과 검정색이 중첩된 흰색은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테이블의 흰색 전등을 상징한다.) 피에로는 (철창 안에 갇힌 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자신이 완치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미로에 갇힌 채) 적극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며, 심지어 (반복에 갇힌 채로) 다시 또 다시 이뤄지는 치료에 계속해서 협조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사회 또는 가족)는 결코 믿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컨트롤하며 태양을 향해 컨트롤한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피에로는 아홉번째 스테이지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타나는 영상은 피에로가 플레이어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2차원 이미지였던 피에로는 3차원의 주체적 사람이 되고는 “고생했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발병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아홉번째 스테이지의 숨겨진 결말은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해 태양이 없는 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해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따라서 태양 뒤에 치유의 문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피에로가 전두엽 절제술을 받지 않고도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가능한데, 플레이어는 그 대가로 게임에 대한 길고 지루한 해설을 볼 수 없고, 하얀 피에로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병철은 정신질환의 치유가 본질적으로 일종의 살해라고 여긴다. 그것은 인간성을 죽이며, 그것을 통해 고도로 자기 훈련된 의식의 산업으로 되돌려 놓는다. 여기서 ‘정상인’으로서 우리는 ‘우애로운 빅브라더’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빅브라더)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자기 착취와 자기 계몽(Selbstauslechtung)을 통해 더더욱 원자화되도록 교도한다. “더 높은 생산성을 창출하기 위해 감정의 자본주의(Kapitalismus der Emotion)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das Andere der Arbeit)인 게임을 배우게 됐다. 감정 자본주의는 일상과 일터를 모두 게임화(Gamifizierung)한다." 11) 어떤 면에서 <바이페즈> 역시 게임화의 산물인데, 게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신체화된(소외된) 자아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죽고 또 부활하는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은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모바일 체험이 엉망인 상황에서 그것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인상을 더욱 배가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소외의 경험은 플레이어를 감정 자본주의의 함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러한 경험들은 자기계발의 방식으로 게임을 완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하는 게임 인터페이스를 비플레이어와 비캐릭터의 4인칭 관점에서 본다면,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이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보여준 엇갈린 톱니바퀴가 다시 우리 앞에 떠오른다. 훈육 사회에서 집중 교정된(konzertierte Orthopädie) 화면들이 꼭 양극성 정신장애 환자의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강한 조급증(emotionszustand)의 정서 상태는 양극성 장애 환자의 체험이 아니라, 개체로서의 존재의 흔적이다. 필자 주 1 ) 마츠모토 켄타로(松本健太郎), 「스포츠 게임의 구성 : 현실의 무엇을 모방하는가?」, 덩지안(邓剑) 번역, 천즈난(陈梓楠) 교정, 『게임 왕국의 보물을 탐험하다(探寻游戏王国里的宝藏)』, 상하이서점출판사(上海书店出版社), 2020. 12. 2 ) 이론론은 마음과 행동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이론들을 바탕으로 타인의 심리를 추측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내가 내 몸의 일부를 긁는 행위는 그 부분에 가려움을 느낀다는 신호라고 보면, 타인이 자신의 다리를 긁는 것이 다리가 가려운 상태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우리의 추리(reasoning)를 통해 이뤄진다. 가장론은 상대방의 위치(place)와 관점(perspective)에서 자신을 상상함으로써 행동을 예측하고, 가설을 세워 이를 테스트하는 등의 방식으로 행동을 해석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론론과 가장론은 모두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다양한 구체적 주장을 포함하는 큰 부류의 이론틀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즈후(知乎)에 게시된 이 내용을 참고하라. 3 ) Karen Hanson. Social Origins of Distress and Disease: Depression, Neurasthenia, and Pain in Modern China by Arthur Kleinman. New Series, Vol. 1, No. 3, Obstetrics in the United States: Woman, Physician, and Society (Sep., 1987), pp. 343-345 4 ) Linda Geddes. Staying awake: the surprisingly effective way to treat depression. https://mosaicscience.com/story/staying-awake-surprisingly-effective-way-treat-depression/ 5 )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新媒体的语言)』, 구이저우인민출판사(贵州人民出版社), 2020. 6 ) 피터 앙드레 알터, 『악의 미학적 여정: 낭만적 읽기(恶的美学历程:一种浪漫主义解读)』, 닝잉(宁瑛)·왕더펑(王德峰)·종창성(钟长盛) 번역, 중앙편역출판사(中央编译出版社), 2014. 7 ) 클라우스 피아스, 『비디오 게임의 세계(电子游戏世界)』, 숑슈어(熊硕) 번역, 푸단대학출판사(复旦大学出版社), 2021. 8 ) 황원다(黄文达), 「제4인칭 단수: 영화 이미지의 자율성에 대하여(第四人称单数——论电影影像的自主性)」, 베이징전영학원학보(北京电影学院学报), 2010. 9 ) 올더스 헉슬리, 『지각의 문(众妙之门)』, 천창두어(陈苍多) 번역, 베이징옌산출판사(北京燕山出版社), 2016. 10 ) John Kuroski, 「The Twisted History Of The Widely Misunderstood Lobotomy」 https://allthatsinteresting.com/lobotomy-walter-freeman 11) 한병철,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문학과지성사, 2015. 필자가 참고한 중국어 번역본은 『精神政治学』, 관위홍(关玉红) 번역, 중신출판사(中信出版社), 2019.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단위안, 但愿 쓰촨사범대학(四川师范大学) 문학원 문예미학 박사.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텍사스 한복판에서 사회주의 게임의 깃발을 꽂다 - Tonight we Riot

    < Back 텍사스 한복판에서 사회주의 게임의 깃발을 꽂다 - Tonight we Riot 06 GG Vol. 22. 6. 10.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 미국 내에서 백인 비율이 가장 많은 지역. 마초이즘으로 대표되는 도시 텍사스. 텍사스는 맥시코와의 접경지역이라는 특성에 기반하여, 미국의 역사 속에서도 특수하고 주체적인 성향을 갖는 장소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텍사스의 중심 오스틴. 이 곳에서 하나의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있는 장소를 생각하면 떠올리기 어려운. 붉은 물결이 나부끼는 인디 타이틀 ‘투나잇 위 라이엇(Tonight We Riot)’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메인 화면부터 적기.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투나잇 위 라이엇은 분명하게 위험한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문제가 극에 달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지극히 사회주의적-동시에 아나키즘적인-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혁명으로 세상을 뒤집어 엎자’는 동의하기 어려운 형태의 것으로 게임이 자리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게임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개발사가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와 전달 방식. 그리고 여러모로 문제작이 될 법한 이 게임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독특한 개발사의 위험한 메시지를 담은 ‘투나잇 위 라이엇’이 현재 사회상에서 가질 수 있는 존재감을 말이다. 텍사스 한복판에서 사회주의를 외치다 - PPU 512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왼쪽으로 매우 치우쳐진 게임을 만든 이들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무릇 창작물에는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투나잇 위 라이엇’처럼 소재가 매우 명확한 게임이라면, 이와 같은 경향은 더 크기 마련이다. 어떤 인물들이기에 좌측 방향 지시등을 넣고 악셀을 끝까지 밟는 시도를 하게 되었는가. 배경에는 어떠한 요소가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게임이 만들어진 맥락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선 흥미로운 점은 ‘투나잇 위 라이엇’이 미국 개발자들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개발사인 픽셀 근로자 조합 512(PIxel Pushers Union 512, 이하 PPU512)는 미국 공화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하고 있다. 즉, 가장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띄는 장소에서 매우 급진적인 메시지를 담은 게임을 만든 셈이 된다. 개발사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노동조합(Union)’이다. 사무실 근로자를 뜻하는 속어 Pencil Pusher에서 영감을 받아 픽셀 근로자(Pixel Pusher)로 회사의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을 표방하는 만큼, 이 회사에는 마땅한 소유자가 없다. 회사는 구성원인 노동자들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이익이 모든 구성원에게 수익과 책임이 균등하게 분배된다. 회사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특정 인물은 없으며, 모든 결정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취합하여 결정한다. * 그러니까, 이런 친구들이다. ‘데드셀’로 성공 궤도에 오른 프랑스의 개발사 ‘모션트윈(Motion Twin)’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는 대표도 소유자도 없는 독특한 회사의 형태를 가진다. 기존과 다른 형태의, 소위 ‘좌파적’이라 정의할 수 있는 이러한 개발자들의 지향점은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Wobblies, 워블리)와 지향점이 겹쳐 있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매니저를 선출하는 작업장 민주주의를 채택하여 운영하거나, 구성원들이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된다. 워블리의 성향이 아나코-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하면, PPU 512와 같은 인디 개발사들의 성향은 아나키스트적 상향까지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구성원들의 직접행동, 연대와 노동자의 자주경영 등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보면, 개발사의 성향 자체는 개인이 권력이나 통제로 억압되지 않고 공동체의 자치로 구성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원들의 노동운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PPU 512의 설립자이자 구성원 중 한 명인 테드 앤더슨(Ted Anderson)은 지난해 GDC2019에서 인디 개발사의 노동자 협동 모델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유럽의 게임 노동자 연합(Game Workers Unite)에 긍정적인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 여러가지 측면에서 정체성이 매우 확고한 개발조직인 셈. 이렇듯 PPU 512는 그 정체성이 매우 분명한 회사이자 조직이다. 개인의 자유와 결정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에게는 구성원과 공동체의 자율이 중요하게 다뤄지며, 직접적인 노동 운동과 행동 등을 통해서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PPU 512 구성원 전반의 가치관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하게 급진적인. 그리고 핍박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주제는 ‘투나잇 위 라이엇’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아주 직접적이고 포장이 없는 날것 그대로의 메시지가 말이다. 투박하게 게임으로 담아낸 소재 ‘투나잇 위 라이엇’은 인간성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담아낸다. 플레이어는 악덕 자본가가 지배한 디스토피아적 도시국가에서 한 명의 노동자이며, 붉은 깃발을 한 손에 들고 다른 노동자들을 규합하고 자본에서 ‘해방’되는 것이 목표다. 좌에서 우로 이동하며 등장하는 적들과 대치하고 노동자들을 제압하는 경찰과 자본 권력에서 해방을 노린다. 소재 자체는 그간 노동운동의 역사에 수도 없이 있었던 것들이지만, 표현은 직설적으로 이루어진다. 게임 플레이의 기본적인 틀은 ‘군중 제어 액션’ 또는 피크민과 같은 AI액션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스테이지 끝까지 군중을 최대한 많이 살려서 도달해야 하고, 스테이지 진행 도중에는 다양한 형태의 적들이 등장해 플레이어를 방해한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군중 속의 일원만을 조작하게 된다. 투나잇 위 라이엇에는 플레이어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적 캐릭터 또는 플레이어가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는 주인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중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도, 명령을 내리는 커서의 역할도 없다. 어디까지나 깃발을 든 사람은 노동자의 일원이며, 사망 시에는 다른 노동자가 깃발을 들고 해방을 이끌어 나간다. 이는 메시지와 게임 플레이 시스템에서의 조화라고 볼 수 있다. PPU 512가 기반을 두는 지향점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구성원인 노동자들의 자율과 선택이다. 그렇기에 게임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노동자, 군중의 하나로 플레이어를 설정한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집단을 만들고 직접행동으로 변화를 이끌어 나간다는 생각 그대로다. PPU 512가 개인의 주체적인 결정과 자유에 방점을 두는 것처럼, 게임 또한 개인이 집단으로 구성되고 목적을 달성하는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대를 지휘하여 무언가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형태가 유사한 인디 게임 ‘시 솔트(Sea Salt)’와 비교해보면 투나잇 위 라이엇의 플레이는 조금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종하는 주체가 플레이어기는 하지만, 시 솔트처럼 부대를 하나의 묶음으로 보기 보다는 그 속에 개별적인 존재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투나잇 위 라이엇에서 충원되는 유닛들은 전투에 소비되는 소모적인 자원보다, 보존하고 함께 목적에 도달하는 존재에 가깝다. 세밀한 움직임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험을 피하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 커서가 곧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 인디 게임, '시 솔트' 흥미로운 것은 개발자 스스로가 "솔직하고 비현실적인 좌파적 게임(leftist game)"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음에도 파괴 행위에 대한 보상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스테이지의 목적은 자본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지만,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폭력들에는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경찰들의 피가 바닥에 얼룩져도, 살수차가 터져나가도 스테이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게임 내에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클리어 시,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수에 따라서 결정될 뿐이다.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투나잇 위 라이엇은 평이하게 구성된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다. 특징적이거나 놀라운 시스템, 플레이는 없지만, 적어도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딱히 모난 곳은 없다. 메시지가 분명한 게임임을 감안하고도 플레이 과정에서 과도한 불편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과 준수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이는 투나잇 위 라이엇의 게임 플레이가 메시지에 매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PPU 512는 이 부분에서 나름의 선을 지켰다. 자신들의 역할은 비현실적인 어디까지나 좌파적 게임을 구성하는 것에 있고, 담아낸 메시지와 비현실적 배경에서 어떤 것을 읽어낼지는 플레이어의 역할로 넘긴 셈이다. 등장하는 적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만든 게임에서 ‘담아낸 메시지가 옳다’고 강요하는 방향보다는, 그저 생각해보는 계기로 구성하고 게임으로서의 플레이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플레이의 방식과 시스템에 집중할 수 있다. 더불어 개발자들의 의도와 메시지를 읽어내고자 한다면, 스스로 몇 가지 해석을 곁들여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시선에 따라서는 파괴를 주제로 한 게임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억압 그리고 분노에 대하여 투나잇 위 라이엇의 게임 플레이는 너무도 확연하게 억압-자본에 의한 것이든, 권력에 의한 것이든. 혹은 극단적 자본에 의한 것이든-에 맞서는 저항을 그리고 있다. 억압이라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일련의 과정은 적기와 피. 그리고 파괴와 폭력의 형태로 완성됐다. 비슷한 소재를 다뤘던 ‘라이엇: 시빌 언레스트(Riot: Civil Unrest)’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2017년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라이엇: 시빌 언레스트’는 ‘투나잇 위 라이엇’과 마찬가지로 투쟁이라는 다루고 접근한 바 있다.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을 게임의 배경으로 놓아두고 시위대와 공권력. 양 측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했다. 라이엇 : 시빌 언레스트의 지향점은 파괴가 아니다.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며, 양측의 관점이나 가치관을 살펴보고서 플레이어 스스로가 감정과 생각을 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직설적이기 보다는 논란을 배제한,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접근법을 택했다. * 양 쪽 모두를 플레이할 수 있던 '라이엇: 시빌 언레스트' 하지만 ‘투나잇 위 라이엇’은 다르다. 의도가 명백하게 정치적이고 게임이 보여주는 폭력은 강렬하다. 존재하는 모든 억압으로의 해방이 이루어져야만, 노동과 생각의 해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이를 두고 ‘너무 급진적이어서 불편하다’는 감정이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이와 같은 행동으로 이어지기는 불가능하고 동시에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임에 구현한 저항의 형태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개발 구성원 또한 동시에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발 구성원의 지향점에 맞게 게임 전반을 구축하기는 했지만, 이외의 주변 환경은 여전히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다양 복잡한 사회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벗어나서는 현재의 생활이 유지되기 어렵다. 당장 이들이 게임을 출시한 플랫폼들도 현재의 사회적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대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자본주의에는 이미 많은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발전해 나가고 있는 상태다. 복지, 노동, 기본권 등 정책적으로든 사회 규범적으로든 사회주의의 요소들은 이미 현실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폭력을 통해서 근본적인 갈등과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증명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PPU 512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적기와 피, 화염으로써 대표되는 노동 해방이 아니라, 분노에 대한 표현에 가깝다. 게임 플레이가 어느 정도의 목적성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가르치려 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담아내고자 한 메시지의 강렬함과는 별개로 중심은 게임으로서의 표현에 확실하게 무게를 두고 있으며, 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매체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사회 복지나 안전망이 전무한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한 세계를 배경으로, 현실에서 벌어지기 어려운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극단적인 상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있을 수 없고 벌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이후의 해결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역할에 가깝다. 속된 말로 "이렇게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빡쳐있다. 그러니까 우리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 좀 해보자" 같은 느낌에 가깝다. *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했듯, 사회 불평등이 사회주의 열풍으로 이어진 점에서 표현의 방향이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스스로의 정치성향을 아나코-생디칼리즘이라고 언급했던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의 발언과 ‘투나잇 위 라이엇’을 양 쪽에 놓고 생각해보자. 정치 성향에서 촘스키와 방향을 같이하는 PPU 512의 의도는 약간은 더 명확해진다. 촘스키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이 정치를 억압하고 조종하여 자본의 이익을 최대화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노동자와 시민은 억압되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여 자본과 정치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촘스키는 이 과정에서 해방의 방법론을 폭력이 아닌 대화와 소통으로 봤다.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촘스키는 모든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비판적 사고를 통한 교류와 도출되는 대안들로 억압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투나잇 위 라이엇’은 이러한 관점에서 소재가 될 수 있다. PPU 512 또한 이러한 점을 노린 것처럼 보인다. 테드 앤더슨은 인터뷰에서 “내게는 모든 것이 정치적이다. 모든 사람이 평소에 행하는 크고 작은 활동들 모두가 그러하며, 크고 작든 간에 초라하거나 부정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이 이와 같은 정치적 측면의 역사와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정치와 개인은 불가분한 관계이며, 그렇기에 이러한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지를 담은 게임들로 현실적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란 방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 GDC 2019에서 강연을 진행한 PPU 512의 테드 앤더슨 즉, PPU 512는 게임을 통해서 나름의 화두를 던진 셈이다. 결론을 내거나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시작으로 생각하고 고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목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회주의적 화두-민주적 사회주의를 말하는 버니 샌더스와 같은 인사를 포함한-를 보면, ‘투나잇 위 라이엇’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통해서 현실적 불합리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생각과 논의를 해보게 만드는 역할도 가능해 보인다. 투나잇 위 라이엇이 발매된 지 약 1년이 지난 2021년. PPU 512가 자리한 텍사스에 대한파 및 정전 사태가 발생하며, 이들의 시각은 한편으로는 명확하고 분명했던 우려와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자리했던 텍사스는 1845년 미국의 아래로 편입됐다. 보다 거대한 부를 낳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후 텍사스는 자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거의 모든 것을 시장에 흐름에 맡긴다는 선택을 내렸다. 지극히 독자적인 이들의 성향과 선택은 이후 텍사스를 미국 공화당이 꾸준히 강세를 보이는 주이자, 보수적이고 국수주의에 가까운 색체를 띄는 것으로 연결됐고 점차 시장은 극한으로 자유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대적 흐름 속에서 텍사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자본이라는 깃발 아래, 삶을 영위하고 하나의 부품과 같이 살아간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 지역적 성향은 각자의 삶이 불평등하고 극복할 수 없는 하나의 억압과 제한 속에 있는 것처럼 만들었고. 필연적으로 안온한 생활이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상황은 PPU 512가 적기를 나부끼게 만든 이유이자. 게임을 통해서 스스로의 열망을 표현하는 배경이 됐다. 실제로 게임의 완성 이후인 2021년 2월. 대한파 상황에서 자본이 일상의 평온함을 위협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면, 자본가와의 상황을 뒤집는 ‘투나잇 위 라이엇’은 텍사스라는 장소이기에 가능했던 것이자. 텍사스에서 조합을 만들었던 반골들의 감정 표현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투나잇 위 라이엇’은 너무도 투박하게. 그리고 솔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단순하게 바라보자면 그저 이룰 수 없는 폭력과 메시지만을 담은 게임이 될 것이란 것은 분명한 단점이다. 하지만 적어도 몇 부분에서는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려 노력하는 계기로는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현실의 한계와 폐해를 담아낸 게임이 있듯이, 한편으로는 해방이라는 소재로 사회주의의 한계와 현실적 고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게임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이 "저항하는 것은 곧 창조하는 것이고 창조하는 것은 곧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현실에 분노하고 개인의 상상력에 기반한 다양한 창조와 저항이 현실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지는 않을까. 독특한 회사 구조와 발칙한 상상력을 소재로, 텍사스 한복판에서 사회주의를 외치는 PPU 512의 결과물은 최근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상황들. 사회적 배경에서 생각해 본다면, 나름의 의미를 갖출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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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 Back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04 GG Vol. 22. 2. 10. 시리아 난민을 다룬 시리어스 게임 〈 21Days 〉(2017)는 독일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 모하메드 쉐누가 자신의 가족들을 기다리며, 21일동안 노동과 교육, 외로움과 편견으로부터 견뎌내는 경험을 다루고 있다. 서울대 정보문화학 연합전공 수업 〈게임의 이해〉를 통해 만난 현유지, 고은비, 최우빈, 김진형, 이원석 등이 이정엽 교수의 코디네이팅을 받아 출시했다. 제작자들은 게임연구자 이안 보고스트의 시리어스 게임이론을 기초로 플레이어가 퀘스트 완료에 성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실패하도록 만듦으로써 난민의 현실을 드러내는 게임 디자인을 추구했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난민에 대한 막연한 혐오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스토리텔링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토리텔링은 나와 다른 자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들 또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유일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이야기라도 게임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특이성이 있을까? 당사자 입장을 가진 플레이어로서 압둘 와합이 느낀 바를 중심으로 기록해 보았다. 이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형식에 대해, 타자의 입장을 플레이한다는 윤리적 당위를 넘어서 그 입장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설계하는 것이 더 좋을 지 논평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몇 가지 비판적인 발언으로 시리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감에 따라 여권 갱신 등이 자유롭지 않아 활동에 제약이 생긴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귀화뿐이었다. 압둘 와합은 2020년 10월 한국에 귀화했다. * 교사 김혜진이 저술한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2021, 원더박스) 표지 - 게임 하기 앞서 Q: 압둘 와합은 게임을 즐겨했었나? A: 유년시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주로 경험해 보았다. 축구게임같은 스포츠 게임을 친구들과 했었다. 게임을 자주 하기에는 언제나 부모님의 잔소리가 많으셨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웃음) 요즘 사람들처럼 깊게 파고 든 적은 없었다. Q: 오늘 플레이할 게임은 조작이 어렵거나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저와 상의하면서 플레이하면 될 것 같다. A: 좋다. - 0Days 압둘 와합은 게임의 첫장면, 난민관리국에서 모하메드의 난민인정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부분에서 놀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 게임이 시작부터 가장 어려운 것을 해결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난민인정을 받기까지 신원조회부터 적응교육까지 여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게임에서지만 가장 어려운 것을 시작부터 이루게 되어 기쁘네요.”라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은 게임 디자인 안에서 의도된 것이었다. 그 동안 난민 소재의 시리어스 게임들이 주로 유럽지역 탈출루트 이동의 어려움이나 난민캠프에서 어려움을 극적으로 게임화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21days〉는 그러한 고난이 끝나고도 발생하는 일상의 어려움을 시뮬레이션 하고자 했다. 그들이 한 사회에 들어와 겪는 노동의 고단함과 차별 또한 난민의 고통이지만 표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 상에서 주인공 모하메드는 자신의 난민인정 이후 아내와 아들을 독일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 UN의 가족결합원칙 하에 난민인정을 받게 만드는 일을 목표로 삼게 된다. 이제부터 플레이어는 이를 위해 브로커를 고용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받아든 난민인정 증명서의 국적이 ‘RYSIA’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제작진의 오타인가 싶었지만 이 또한 의도된 것으로 실제하는 시리아 난민뿐 아니라 모든 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특정 국가를 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게임적 의도는 게임이 끝난 후 제작자에게 문의하여 압둘 와합에게 알려주었다. - 1 Days 우리는 모하메드를 난민관리국이 소개해 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도록 했다. 공사장 반장에게 일에 대해 설명을 받는 데, 자막 곳곳에 ㅁㅁ표시로 구멍이 나서 자세한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은 모하메드의 언어능력이 좋지 않아 독일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벽돌을 나르는 일 같은데, 대충 알아듣고 한 것으로 처리가 되었다. 3시간 30분을 일하고 80시리를 받았다. 압둘 와합은 이 같은 게임적 표현이 재밌다고 평가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와 일할 때도 열심히 일하라는 것인지, 그만 두라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워 고생한 경험이 떠올라요”라고 말했다. 모자란 언어능력이 신경쓰여 공사장 아래 위치한 어학원에 등록해 독일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압둘 와합은 이 부분은 게임적인 연출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난민들은 어학교육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생활비를 보조받기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등록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습은 〈21Days〉의 중요한 요소로 언어능력이 모자랄 때, 일을 맡지 못하거나 노동 시 급료가 깍이는 패널티가 있다. 심지어 어학원 등록비는 40시리로 비싸다. 벌면 족족 어학원비로 나가도록 디자인되어 있어 이 게임의 난이도에 영향을 끼친다. 필자는 지속적인 언어학습이 없을 때 외국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압둘 와합에게 주었다. 노동도 하고 공부도 했으니 우리는 모하메드에게 음식을 먹이기로 했다. 더 싼 맥도날드가 있었으나 그곳에는 돼지고기가 섞인 음식이 많아 실제로도 무슬림들은 꺼려 한다고 한다. 첫날이니 아랍 음식점으로 가서 케밥과 허머스, 페투쉬, 팔라펠 중 무엇을 먹을 지 골랐다. 압둘 와합은 웃으며 비싼 음식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비싼 순서가 팔라펠→페투쉬→허머스→케밥 순서가 아니라 케밥(고기)→페투쉬(샐러드)→허머스(병아리콩으로 만든 소스형 음식)→팔라펠(병아리콩으로 만든 고로케) 순이 대충 맞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게임상에서 케밥은 가성비가 좋은 음식이니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케밥을 먹어야 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 2Days 어제보다 떨어진 멘탈 지수가 신경쓰였다. 혹시 지도상에 보이는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하면 이 수치가 올라갈 수 있을 지 궁금했다. 모스크에 가는데, 교통비가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게임에서 이동은 곧 시간과 돈을 소모한다. 궁금하다고 아무 곳이나 가기보다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스크에 가니 같은 처지에 있는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 도중 모하메드는 “그래도 이 나라만큼 난민들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어”라고 대답했다. 압둘 와합은 게임에서 언급하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는 난민들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메르켈은 각종 난민문제로 지지율이 흔들리는 가운데 뚝심있게 난민유입 정책을 체계적으로 세워나가 여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니 멘탈 수치가 올랐다. 압둘 와합은 한국에 와서 고국이 어려움에 휩싸일 때,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내 계획은 무엇이고 그 진행과정대로 진행하고 있는 지, 나는 왜 무엇을 위해 고생해야 하나 같은 질문을 던지며 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게임에서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는 일이 멘탈점수를 높이는 것은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귀가하는 도중 숙소 앞에서 노래하는 버스커에게 팁을 주었다. 무려 10시리나 되었기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주었다. 혹시나 독일인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압둘 와합은 멘탈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고독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이 게임 상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지 기대하며 우리는 버스커 친구에게 돈을 주었다. 그는 시리아에 파병된 아들을 둔 자로 훗날 자신이 일하는 라이브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3 Days 아내가 보내달라는 200시리를 보내야 하는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의 사치?를 반성하고 일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배고픔 수치가 절반 이상 떨어져도 계속해서 오전 오후로 일하기로 했다. 공사장에 일이 없어 레스토랑에 취직해 설겆이를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어학원은 다니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급해도 공부를 멈추면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앞에는 난민을 혐오하는 남자가 “ㅁㅁ나는 무슬림”이라고 모하메드에게 외쳤다. 굶어가면 모은 돈 중 200시리를 아내에게 송금했다. 배고픔 수치가 너무 떨어져 있어, 싫어도 맥도날드에 가서 핫도그를 먹고 이른 잠을 청했다. - 4 Days 아침부터 교통비가 없는 상황이 되어 모하메드는 40분이나 걸려 모스크에 가야 했다. 압둘 와합은 별 다른 현지인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못하고 직장과 모스크 정도만을 가야하는 게임안의 상황이 너무 리얼하며 동시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럽식 레스토랑이 선택지에 생겼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고 동시에 돼지고기가 든 음식이 많았다. 게임 상에서 먹을 수는 있었지만 플레이어인 압둘 와합은 선택하지 않았다. 공원에 들려 “우리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주장하는 노인을 만났다. 압둘 와합은 자신이 만났던 어떤 한국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결국엔 그 사회에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물론 공원에는 모하메드에게 선의를 보이는 시민도 있었다. 다시 돈을 벌어야 하니 공사장까지 걸어가 노동을 했다. - 5 Days 아내의 편지가 도착했다. 가방을 도둑맞아서 송금한 돈을 다 잃어버렸다고 한다. 가족에게 3일안에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하게 되었다. 교통비가 없어 역시 또 공사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오전 오후 일을 했으니 아랍식당에 가는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배고픔이 조금 가시면서 멘탈도 약소하게 오르게 되었다. 버스커 친구가 일하는 카페 블루노트에 갔더니 입장료 25시리를 지불하라고 한다. 술과 음악을 즐기는 현지인들을 부러워 하며 친구의 노래를 들었다. 취객 중 하나가 이민자였는데, 그는 모하메드에게 “어허 독해져야 해”라고 충고했다. 순간 매우 한국적인 충고라서 압둘 와합과 나는 한참 웃었다. 압둘 와합은 아직 해금되지 않은 지역 중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문화원과 유원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장소를 모하메드가 다녀야 그 사회에 대한 호기심도 유지하고 멘탈도 건강해진다는 논리였다. 실제 본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하메드는 이제 숙소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버스커 친구와 이런 저런 속내를 털어놓으며 고향에 있던 부모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압둘 와합은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자 대개의 나이든 부모님들이 피난을 고사하고, 젋은 자식들부터 탈출시켰다고 말해 주었다. - 6 Days 아내에게 돈 독촉하는 편지가 왔다. 플레이어에게 긴장감을 주려는 게임 내 장치는 이해되지만 돈 이야기만 들어야 하는 모하메드의 상황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맥도날드로 가서 가장 싼 햄버거를 먹었다. 조금 먼 곳에 주유소 일자리가 해금되어 있어 세차 일을 했다. 압둘 와합은 독일의 난민 정책은 실제로는 난민에 대한 직업훈련코스가 정비되어 있어, 게임처럼 공사장과 식당, 주유소 같이 일용직만 전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독일 외 지역 대개의 난민들은 저런 악순환 고리 속에서 바보가 되어가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공원에서 다시 만난 할아버지는 역시 또 난민혐오적 발언을 한다. 모하메드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한다. 압둘 와합은 이 상황이 모하메드의 심성이 착한 것이 아니라 싸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언행이라고 해석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뭔가 한탕을 노리는 룸메이트를 만났다. - 7 Days 주유소에 일이 없어 공사장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계속 했더니 멘탈과 배고픔이 계속 떨어졌다. 아내에게 돈을 송금해야 하기 때문에 모하메드에게 밥도 먹지 않고 일만 시켰다. 이른 오후에 숙소에 들어가 잠을 잤다. - 8 Days 아내로부터 브로커를 고용하기 위해 250시리가 필요하다고 편지가 왔다. 압둘 와합과 나는 모하메드의 멘탈과 배고픔 수치의 관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오직 빠르게 일만 시키기로 했다. 배고픔이 거의 바닥을 치니 캐릭터는 느려지고 멘탈 수치는 점점 감소되고 만다. 모하메드는 공원의 할아버지와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IS에 대해 욕하고 있기에, 우리도 그 IS를 피해서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답변했다. 압둘 와합에게 이 할아버지의 생각이 혹시 바뀔 수 있을까 질문해보았다. 압둘 와합은 자신의 경험으로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이 날도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다. - 9 Days 아내는 기차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연락을 했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남자를 또 숙소 앞에서 만났다. 배고픔과 멘탈 수치가 바닥이 치는 가운데, 일할 의욕도 공부할 의욕도 잃어버렸다. 모스크에 가서 간신히 멘탈수치를 높였다. 하지만 이미 바닥난 멘탈과 배고픔에 모하메드는 일할 의욕을 잃었다. 멘탈수치를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카페 블루노트에 가서 음악을 들었지만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숙소로 이른 귀가를 했다. 룸메이트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뭔가 나쁜 일인 것처럼 보였다. 잠을 잤다. 아내가 말한 250시리를 모으지 못한 상황이다. - 10 Days 아내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아들 압둘이 아프다고 한다. 오늘까지 반드시 기차표를 살 돈을 보내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다. 일할 의욕이 사라져서 모스크에 갔다. 약간의 멘탈 회복이 되어 공사장에 갔으나 결국 작업명령을 못 알아들어 사고를 치게 되었다. 급료가 깎였다. 결국 아내에게 보낼 돈을 다 벌지 못하고 숙소에 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룸메이트가 3층 카심의 방으로 오라는 쪽지를 남겼다. 주인 없는 방에 가서 룸메이트 메흐디의 지갑이 떨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훔칠까 말까 고민하다 훔쳤다. 이것만 훔치면 아내에게 돈을 보낼 수 있으니까. 아내에게 송금하고 돌아오니 메흐디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화가 나 있었다. - 11 Days 아내가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 내일까지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모하메드는 멘탈도 체력도 바닥이 나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 12 Days 도저히 방법이 없어 모하메드는 모스크에 갔다. 멘탈 수치가 조금 올랐지만 돈도 없고, 여전히 배고프다. 어학원을 다닌 지 오래되니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내에게 송금하지 못했다. - 13 Days 아내와 아들에게서 소식이 없다. 모하메드는 이제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배드엔딩을 보게 된 압둘 와합과 나는 매우 허탈한 마음이었다. 우리는 모하메드의 가족이 도착하기 까지 21일 중 겨우 13일을 버틴 것이었다. 이 게임을 더 나은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1Days〉는 일반적인 세이브 로드 시스템이 없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하거나 지난 날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이후의 날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재플레이가 가능했다. 다음날 터키로 실제 출국을 앞 둔 압둘 와합이 사정상 빠진 이후, 필자는 게임 4일차로 되돌아 가 플레이 해 보았다. 하지만 게임 상의 모하메드가 겪는 현실은 소매치기의 유혹과 범죄가담 등으로 더욱 더 암울해져 갔다. 노동조건은 가혹해지고 건강상태는 나빠지니 필연적으로 옳지 못한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상봉하는 날짜가 다가오지만 내용상으로 결코 좋은 엔딩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성실한 노동자가 된 모하메드의 행복한 가족상봉은 애초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스팀에 진열된 이 게임에 대한 평가로 누군가 ‘순진한 프로파간다’라고 적어놓았는데 세상에 프로파간다를 이렇게 암울하게 재현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난민들의 입장을 미화시키기는 커녕, 그들의 행동이 필연적으로 어긋나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깔끔하게 클리어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패시켜 그 원인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 게임 플레이 후 소감 1회차 게임이 끝난 뒤 압둘 와합에게 아래와 같이 질문하였다. Q: 난민문제에 대한 게임적 접근법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A: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뉴스나 영화도 좋지만 게임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이성이 분명 있다고 본다. 5년 전에 한 시리아 출신인 압둘라 알 카람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직접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난민 포비아와 이슬람 포비아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는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을 통해 시리아 사태를 경험시켜 난민들에 대한 선입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압둘라 알 카람의 게임 [〈 Path Out 〉(2017)]의 초반부 한 씬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 시리아인의 평범한 생활상을 경험하던 중 플레이어는 도시의 골목에서 낙타를 발견하게 된다. 대개의 플레이어는 당연히 낙타를 향해 타기 위해 돌진한다. 그 때 프로그래머는 게임 화면에 실사화면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시리아인들이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며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일갈한다. 게임 플레이와 다큐적 표현, 가벼움과 진지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 때부터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게이머 세대에게 게임을 통해 세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 Q: 〈21Days〉는 의도적으로 배드엔딩만을 보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A: 그렇다. 아마도 이 게임은 난민의 고난을 체험시켜 현실을 환기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게임을 통해서 직접 당사자가 되는 경험을 주는 이런 시뮬레이션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개발자 분들이 난민이 하나의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테마로 후속작을 따로 만들어주시도 좋을 것 같다. (웃음) 중간 중간 모하메드가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데 실은 이런 결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이 높은 자는 범죄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는 디자인도 멋지지 않을까? Q: 게임적인 구조 안에서 희생되는 현실의 디테일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이러한 현실적인 요소들 하나 하나 다 신경쓰다 보면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게임은 복잡한 현실에 대한 최대한 단순한 구조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기에 중요한 것은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Q: 만약 이 게임에 해피엔딩이 가능하려면 어떤 요소를 추가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가? A: 게임 안에 희망(hope)이라는 수치를 추가하고, 모하메드의 선택지에 여행과 놀기를 집어넣어 반영하고 싶다. 실제로 이러한 장소들은 난민으로서 내게 큰 도움이 된 적이 있다. 현지 독일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난민이나 이주노동자가 그 사회에 잘 적응하는 방법은 그 곳을 즐겁게 느끼는 일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이 게임의 주인공처럼 일만 하는 사람은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사례를 자주 보았다. 일만 하다가 멘탈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다. - 재현에서 아쉬웠던 점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게임상에서 아내에게 돈을 송금할 때 ATM기를 사용하는데, 실제로는 그리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갓 난민지위를 얻은 자가 유럽밖으로 돈을 보내는 일에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차라리 모하메드쪽에서 브로커를 고용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게임 상에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받을 때, 컴퓨터 메일로 받는데 실제로는 스마트폰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내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동하는 가운데 컴퓨터를 쓰는 행위보다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편이 기동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난민들이 되도록 좋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려는 이유다. - 게임과 사회 게임 플레이가 반드시 퀘스트 수락과 클리어만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현실의 부조리를 시뮬레이션해 보다 나은 질문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을 〈21Days〉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게임체험을 내적 구조 안에 갇힌 유희가 아니라 현실 밖으로 질문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여길 때 게임은 사회와 또 다른 연결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의 개념을 무엇이든 접속 가능한 매개의 개념으로서 상상하면 게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재미의 회로와 현실의 회로 사이를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발명중이며, 이 발명품들로 게임의 역사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계보를 가질 것이다. 옳음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다름을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21Days〉를 응원한다. Tags: ​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 ​

  • <본토템>과 AI 애셋 시대로서의 2023년

    < Back <본토템>과 AI 애셋 시대로서의 2023년 15 GG Vol. 23. 12. 10. 0 2023년은 전 세계의 게이머들에게 충만했던 해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이제 게임 회사들은 예전처럼 끈질긴 집념으로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단기 이익을 위해 계속해서 더 놀라운 착취적인 비지니스 모델을 고안할 뿐이라는 근래의 냉소주의를 정면으로 반박이라도 하듯이, 준수한 게임들이 줄을 이어 출시했다. 특히 고전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를 즐겁게 플레이했으며 라리안 스튜디오가 만든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 시리즈의 열광적인 팬이기도 한 사람으로서, <발더스 게이트 3>의 대대적인 성공은 당연한 결과처럼 느껴지면서도 (crpg장르의 인지도를 고려할 때) 여전히 잘 믿기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서 다룰 게임은 <발더스 게이트 3>나 고티GOTY 후보에 오를 만한 여타의 대작들이 아니다. 나는 두 명의 형제가 주축이 되어서 개발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 <스테이시스: 본 토템>(이하 본토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명작들이 숨 가쁘게 쏟아지는 이 시점에 굳이 이름도 생소한 인디 게임을 조명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홍대병은 차치하고라도) 이 게임은 뒤틀린 2023년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과 무서울 정도로 미세하게 공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토템은 연말 행사들에서 벌어지는 소위 ‘갓겜’ 경쟁과는 별개로 GOTY라는 타이틀에 가장 걸맞은 작품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는 대략 60년 정도 되는 디지털 게임의 짧은 역사 내에서도 꽤 큰 지분을 차지할 만큼 ‘근본 있는’ 장르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참신한 게임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올해 출시한 본토템 역시 기존 장르의 문법을 더 유저 친화적으로 유려하게 다듬을지언정 이 ‘오래된’ 장르를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시키는 식의 혁신추구형(?) 게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고전 포인트 앤 클릭 게임들의 악명 높았던 픽셀 헌팅 1) 까지는 아니더라도 본토템은 여전히 많은 횟수의 헛된 클릭질을 요구한다. 퍼즐은 대부분 논리적이지만 종종 뜻밖의 조합을 통해서 해결되며, 유비소프트의 게임들처럼 친절하게 플레이어들의 손을 잡아 주지도 않는다. 따라서 진행이 막혔다는 느낌이 들면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아이템들을 하나씩 클릭해 보거나 나의 캐릭터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다시 한번 클릭해 보는 것이 이 바닥의 일상이다. 그럼 다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도대체 이토록 고루한 장르의 최신작이 올해의 게임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1 본토템은 세 명의 캐릭터가 같은 시간대에서 각기 다른 공간을 탐험하는 (가끔 서로 만나기도 하는) 일종의 병렬적인 진행 방식을 채택한다. 플레이어는 언제든 세 캐릭터 사이를 옮겨 다닐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구조 자체보다도 캐릭터들이 아이템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장르의 특성상 아이템을 분해하거나 재조립하는 과정은 퍼즐을 풀기 위한 핵심적인 고리이다. 그리고 이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아이템이 최대한 간단하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 만약 논다이어제틱(nondiegetic) UI 2) 에 크게 의존하는 게임이라면 특정한 캐릭터의 인벤토리 창에서 다른 캐릭터의 인벤토리 창으로 아이템을 드래그해서 옮기는 식으로 은근슬쩍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본토템에서 아이템을 전달하는 모습은 언뜻 봐서는 그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템을 마우스 커서로 집어다가 보내고 싶은 캐릭터의 프로필 위에 떨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이러한 마법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가 그 세계 내에 존재하는 기술인 QSD(Quantum Storage Device) 덕분이라는 지점을 (예를 들면, 캐릭터들의 대화를 통해서) 명확히 짚는다. 즉, 내가 아무런 딜레이 없이 어느 아이템을 완전히 다른 공간에 있는 캐릭터에게 보낼 수 있는 근거는 그저 게임의 인터페이스적 편의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 세계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방법이라는 월드 빌딩의 맥락에 있다. 이렇듯 본토템의 다이어제틱 UI는 (매우 논다이제틱하게 느껴지는) 게임 아이템의 공유 기능을 세계 내에서 내러티브적으로 정당화한다. 이와 같은 전면화의 효과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확장하는 세계다. 특히 아이템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능력이 서로 다른 캐릭터들에게 각각 할당되며, 어떠한 아이템이 퍼즐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양자 전송 물류(?)의 기반 위에서야 비로소 각 캐릭터의 플롯은 서로 맞물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 플레이의 ‘최종 심급’에는 공급망이 자리잡는다. 놀랍지 않게도 이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보다 몇백 년은 과거인 2023년의 지구를 돌이켜 봐도 공급망은 여전히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다. 오히려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2010년대에는 공급망이 중요하지 않았나? 혹은 2024년에는 갑자기 공급망 이슈가 사라지게 될까? 말하자면 어째서 2023년인가? 공급망과 같은 방대한 개념이 2023년이라는 특정한 연도와 겹치는 교집합은 예측 가능성의 붕괴로 인한 불확실성의 폭발과 그로 인한 공급망의 대전환기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세계화 시대의 물류는 예측 가능한 흐름이라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최적화다. 공급망이 국경을 넘어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엮인 상황에서 특정한 지점의 병목 현상은 예상치 못하게 큰 파급 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턴시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양자 전송 물류의 위엄 따라서 팬데믹이나 국가 간의 전쟁과 같은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이벤트들은 이러한 공급망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끊어낸다. 모두가 알다시피 2023년은 바로 그와 같은 거대한 사건들이 일어난 직후의 세계다. 팬데믹은 올해 초에야 비로소 종식됐으며,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거의 2년 가까이 늘어지고 있다.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듯이 가자 지구에서의 끔찍한 전쟁이 더해졌다. 많은 전문가들은 세계화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리쇼어링reshoring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코노미스트의 다음과 같은 데이터 3) 가 환기하는 것처럼 탈세계화라는 강력한 지정학적 유인마저 이미 세계화의 논리에 따라 배치된 공급망을 쉽게 재편하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관건은 앞으로 그것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와는 독립적으로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공급망 자체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모든 (반)세계화로의 ‘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에야 이 특정한 자의식은 다시 수면 아래로 잠길 것이다. 본토템의 게임 플레이가 촉발하는 수행적인 반복이 공급망의 내면화로 다시 이어지는 흐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확히 2023년과 오버랩된다. 플레이어는 평소에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QSD’ 공급망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서 게임을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더 이상 퍼즐이 쉬이 풀리지 않을 때, 비로소 아이템들을 ‘무의미하게’ 옮겨 보는 절박한 시도를 통해서 역으로 공급망 자체를 인식하게 된다. 즉, 사후적으로 게임의 시스템적인 근간을 재인식한다. 어쩌면 2023년은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절박한 시스템 재인식의 계기를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언제든 다시 도래할지 모를 긴 망각의 시간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2 고전 crpg와 어드벤쳐 게임에 대한 디테일한 리뷰로 명성이 높은 유튜브 채널 MandaloreGaming은 지난 9월 15일 본토템에 관한 리뷰 영상 4) 을 업로드한다. 게임이 출시된 지 석 달이 훌쩍 넘은 시점에 등장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리뷰에 별달리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다. 다른 여러 게임 웹진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어드벤쳐 게임 매니아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이 게임을 매우 높이 평가하며 “난 이 게임을 사랑한다'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필자는 다른 리뷰어의 권위를 빌려서까지 본토템이 훌륭하다는 것을 강변하고 싶나’라는 생각에 긴가민가할 것이다. 그런데 문장은 계속된다. 그는 바로 이어서 “which is why the cheap AI stuff pains me so.”(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사용된 싸구려 AI 에셋들이 날 고통스럽게 한다)라고 말한다. 즉, 이 게임에는 미드저니와 같은 생성모델이 만들어 낸 에셋이 다수 사용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게임 출시 후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그가 유일했다. 그리고 리뷰 영상이 올라간 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본토템의 개발자는 X(전 트위터)를 통해서 직접 Mandalore에게 게임 내의 AI 에셋들이 전부 ‘맞춤 제작한’ 에셋들로 교체되었음을 알렸다. 5) 이 일련의 사태에는 의문스러운 지점들이 많다. 이를테면 많은 수의 전문 리뷰어들과 하드코어 어드벤쳐 게임 매니아들이 같은 게임을 플레이했음에도, 어째서 석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저품질의 AI 에셋이 쓰였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또한 개발사는 (마치 이러한 반응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떻게 하루도 지나기 전에 그 모든 에셋들을 교체할 수 있었을까? 결국 그렇게 교체할 예정이었으면 굳이 그러한 ‘날림’ AI 에셋을 써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생성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디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던 레딧의 글 6) 을 통해서 우리는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이 글이 특히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글쓴이의 의견보다도 그가 공개한 밸브 사의 답변을 통해 스팀이라는 글로벌 플랫폼이 AI 에셋에 취하는 입장을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7) 밸브의 스탠스는 신중하고 유보적이다. 앞선 레딧 글에 대한 파장으로 밸브와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유로게이머의 기사 8) 에 따르면, 밸브는 생성모델이 한창 발전 중인 테크놀로지며 그 과정에서 혁신적인 무언가가 나오리라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성 모델을 훈련하기 위해 데이터로 활용된 과거 작품들의 저작권과 소유권 문제 9) , 그리고 생성모델이 만들어 낸 결과물의 저작권 문제 10) 로 인해서 AI 에셋이 포함된 게임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생성모델이 ‘상상한’ 새로운 넌센스 언어 이러한 맥락을 바탕으로 우리는 본토템의 출시에 관해 몇 가지를 유추해 낼 수 있다. 하나는 법적인 문제로 민감해진 밸브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본토템은 출시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11) 이는 그들이 사용한 생성모델의 에셋들이 주로 게임 속에서 줍게 되는 PDA 기기 스크린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AI 에셋이 게임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게임 플레이 과정 뒤로 숨겨져 있는 것이다. 심리적인 작용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개별적인 이미지만을 본다면 그 어설픔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지만 정성스럽게 구현된 세계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로 마주한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가능성이 클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에셋을 잡아내야만 하는 동기가 확실했던 플랫폼의 감시망을 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어째서 출시 이후에도 한동안 아무도 이를 알아채지 못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수 제작한 에셋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 역시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화제가 되었던 레딧의 글과 그에 기반한 유로게이머, 테크크런치의 기사로 인해 밸브의 입장이 확고하게 드러나게 된 것은 본토템 출시 이후 한 달 뒤의 일이다. 이미 출시한 게임이 다시 내려가는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에셋 교체 작업은 곧바로 진행되어야 했다. 혹은 스팀에 거절당한 레딧 글쓴이의 경우처럼 개발 일정에 쫓겨서 일단 생성모델로 대충 만든 에셋을 끼워서 먼저 출시를 한 다음에 교체하자는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벌어질 일이 아닌가? 특정한 게임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논할 필요가 있을까? 내 대답은 ‘그럴 필요가 있다’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와 흡사한 양태의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밸브의 확고한 입장과 조만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생성모델 관련 저작권과 소유권 문제를 고려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일체의 분쟁과 잡음을 피하고자 스팀의 가이드라인대로 AI 에셋 없이 게임을 개발하는 가능성이다. 이 방향은 이미 몇십 년을 걸어온 익숙한 길이라 많은 개발사들이 따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신 버전의 생성 모델 12) 을 사용하는 동시에 마감까지 완벽하게 함으로써 AI 에셋을 포함했다는 사실 자체를 최대한 숨길 가능성이다. 생성모델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 가능성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더 힘들 것이다. 문제는 게임을 보고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이 두 시나리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은 (만약 그러한 차이가 실제로 있다면) 그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 낼 정도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가청 주파수 내의 소리만 녹음한 음원과 가청 주파수를 넘어선 소리까지도 전부 포함한 음원의 차이가 인간에게는 무의미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결국 어느 시나리오로 가든 본토템의 출시와 같은 일들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그러므로 본토템의 출시와 관련한 이야기는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투입되기 시작한 생성모델의 에셋들이 게임 출시와 함께 전환기 특유의 그 어설픈 마감을 노출하는 2023년 고유의 사건으로 기억될 확률이 높다. 마치 인류세Anthropocene의 시작을 플루토늄 원소의 전방위적 확산이라는 특정한 물질적인 조건으로 정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AI 게임 개발 시대의 시작은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아이러니한 해프닝인 것이다. 그리고 이미 1년 전보다 극적으로 향상된 생성모델이 ‘생성’하는 에셋들을 품에 안은 앞으로의 게임들은 퍼블리셔인 플랫폼들의 감시망과 해결되지 않는 법적인 애매함 속에서 더 감쪽같은 모습을 뽐내며 등장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간의 눈으로 AI 에셋을 구별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절’을 지금 막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1) https://tvtropes.org/pmwiki/pmwiki.php/Main/PixelHunt 2) 다이어제틱 UI와 논다이어제틱 UI의 결정적인 차이는 특정한 게임의 세계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느냐의 여부다. 예를 들어, 미니맵은 대표적인 논다이어제틱 UI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를 제외하고는 게임 세계의 그 누구도 미니맵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3) The Economist Staff, “Don’t be fooled by America’s “new” supply chains” The Economist 2023.11.14. https://www.economist.com/graphic-detail/2023/11/14/dont-be-fooled-by-americas-new-supply-chains 4) MandaloreGaming, “STASIS: BONE TOTEM Review” YouTube 2023.09.15. https://www.youtube.com/watch?v=l1dyox71Y7o&t=451s 5) Mandalore, X(formerly Twitter) 2023.09.15. https://twitter.com/Lord_Mandalore/status/1702709191498932242 6) potterharry97, “Valve is not willing to publish games with AI generated content anymore” Reddit 2023.06.06. https://www.reddit.com/r/aigamedev/comments/142j3yt/valve_is_not_willing_to_publish_games_with_ai/ 7) 다른 모든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스팀 역시 앱(게임) 출시 이전에 스크리닝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이 언제나 명백하고 투명하지는 않으며, 규정 및 지침에도 생성모델에 관한 내용은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다만 생성모델이 ‘생성’한 에셋의 경우, 게시할 수 없는 콘텐츠의 5번 항목인 “소유권이 없거나 적절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콘텐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https://partner.steamgames.com/doc/gettingstarted/onboarding?l=koreana 8) Victoria Kennedy, “Valve says AI-generated content policy goal is "not to discourage the use of it on Steam"” Eurogamer 2023.07.03. https://www.eurogamer.net/valve-says-ai-generated-content-policy-goal-is-not-to-discourage-the-use-of-it-on-steam 9) Kyle Wiggers, “The copyright issues around generative AI aren’t going away anytime soon” TechCrunch 2023.09.22. https://techcrunch.com/2023/09/21/the-copyright-issues-around-generative-ai-arent-going-away-anytime-soon/ 10) Blake Brittai, “AI-generated art cannot receive copyrights, US court says” Reuters 2023.08.22. https://www.reuters.com/legal/ai-generated-art-cannot-receive-copyrights-us-court-says-2023-08-21/ 11) 각주 7에 등장하는 레딧 글쓴이는 6월 6일에 올린 포스트에서 한 달 전에 자신이 제출한 게임이 스팀의 스크리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썼다. 바꿔 말하면 적어도 5월 초부터 밸브는 생성모델이 연루된 에셋을 검열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본토템은 5월 31일에 출시했다. 12) 이미 최신 버전의 생성모델들은 기존의 문제점으로 자주 언급되었던 사람의 손가락 같은 부분을 말끔히 재현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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