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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롤링 권하는 기술: 인게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한 소고

    < Back 트롤링 권하는 기술: 인게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한 소고 14 GG Vol. 23. 10. 10. 같이 하는 게임으로 시작해 다시 '같이'하는 게임으로 오기까지 디지털게임 안에서 작동하는 플레이어 상호간의 의사소통은 게임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굉장히 후대의 것에 가깝다 . 특히 기원이 되는 디지털 이전의 게임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애초에 게임 안의 커뮤니케이션은 굳이 따로 만들 이유가 없었는데 , 장기나 바둑 , 체스 같은 게임들은 같은 시공간에서 마주보고 한다는 대원칙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시기적으로도 그렇지만 애초에 게임이 상호작용으로부터 빚어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별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게임 규칙 외에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 앞에서 바둑과 장기 이야기를 언급했지만 , 이들 게임은 규칙으로서의 게임만 이야기한다면 대화가 불필요한 것이겠지만 실제 게임이 플레이되는 현장에서 바둑 두는 두 사람간의 대화는 또한 일상적이다 . 프로 간의 대국에서라면 수담 ( 手談 ) 외에는 문답무용이겠지만 , 일상의 놀이가 모두 프로 같지는 않을 것이다 . 딱딱하게 구분해 본다면 텍스트로서의 게임은 순전히 규칙이 제시하는 방식 안에서만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부분만을 가리킬 것이다 . 그러나 애초에 모든 게임이 모여서 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졌음을 감안한다면 그 규칙 바깥의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게임과 함께 있어 온 존재이기도 했다 . 이는 초창기 비디오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 < 퐁 > 과 같은 경우는 기기 한 대에 두 명이 달라붙어 플레이하는 구조였고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플레이어 두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곤 했다 . 이 자연스러움이 없어지는 첫 번째 분기점은 아마도 싱글플레이 게임의 대두로부터일 것이다 . < 퐁 > 에서 < 브레이크아웃 > 으로 변화하면서 혼자서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대세가 되면서부터는 소프트웨어가 제시하는 규칙에 대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불필요해지는 순간을 볼 수 있었다 . 이보다 더 큰 분기점은 온라인 네트워크 기능의 도입일 것이다 . 앞서 이야기한 , 멀티플레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둘 이상의 사람이 같은 시공간에 모여야 한다는 전제는 온라인이 도입되면서 깨졌다 . 아니 애초에 온라인 멀티플레이의 도입이 이루어진 배경 자체가 굳이 한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 오프라인 시절에는 당연했던 , 함께 게임을 하며 이야기나누는 상호작용은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들어오면서 이제 별도로 구현해야만 가능한 무엇으로 그 성격을 바꾸었다 . 멀티플레이 디지털게임에서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구성 요소가 아니면서도 게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며 발전해 왔다 . 그리고 이는 애초에 기술적인 시작점부터도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 . 채팅과 온라인 멀티플레이는 같은 시작점을 가진다 네트워크 상에서 둘 이상의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텍스트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의사소통하는 채팅 기술은 1974 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PLATO 컴퓨터 시스템의 내부 네트워크를 통해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본격적인 채팅 시스템은 핀란드 프로그래머 야르코 외카리넨(Jarkko Oikarinen)에 의해IRC(Internet Relay Chat) 프로토콜이 개발된 1988년 이후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한국에서는 초기 전화 모뎀을 이용한 PC통신 등에서 메일, 동호회, 게시판 기능과 함께 PC통신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 대중에 소개되었다. 1) 채팅의 역사 속에서도 이미 공격적인 행동에 대한 우려는 나타난 바 있다. 영화 <접속>(1997)처럼 비대면의 익명 상대이기에 가능한 로맨스가 있었던 것 이상으로 사람들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공격적이었다. 이는 채팅이라는 기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대면의 다대 다 익명성으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익명성의 문제는 동일하게 온라인게임에서도 나타난다. 최초의 다중접속 게임으로 거론되는 게임인 은 1978년 영국 에섹스 대학의 로이 트럽쇼가 개발한 게임으로, 채팅과 마찬가지로 PLATO 시스템 기반의 대학 서버 내에 올려진 TRPG 기반 텍스트 게임에 여러 사람이 동시접속할 수 있게 만든 게임이다. 접속한 플레이어들은 서로 같은 방에 위치한 플레이어들끼리 텍스트 채팅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작동방식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이 둘은 서로 비슷할 수 밖에 없었다. 혹자는 게임 안에서의 행동들이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보다 더욱 거칠게 나타나는 것을 두고 게임이 가진 본질적인 공격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게임 때문이라기보다는 애초에 비대면 다대다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다분히 참여자들을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보는 편이 좀더 합리적이다. 오히려 참여자가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은 反게임적인데, 로제 카이와는 ‘놀이와 인간’에서 게임의 요소 중 하나인 경쟁agon이 단순히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라는 틀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수행되는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놀이 안에서 일종의 학대와 골탕먹이기가 발생하는 과정은 카이와에 따르면 ‘경쟁에서 멀어지는’(42p) 어떤 순간이며, 게임을 벗어나 원시적인 투쟁으로 향하는 순간이다. 이는 게임 자체보다는 채팅이라는 기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가까워 보인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대화상대가 누구냐는 것 오늘날 게임들은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방대한 대역폭을 활용하여 텍스트 채팅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제공한다. 보이스채팅이라고 불리는 이 음성 기반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이름부터 흥미로운데,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와 음성으로 이야기나누는 것을 인터넷전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름에 ‘채팅’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와 ‘채팅’의 위와 같은 용례는 이 둘의 구분이 어떤 상대와 커뮤니케이션하느냐에 있음을 드러낸다. 전화는 (일부 텔레마케팅을 제외하면) 상대가 누구인지 이미 아는 경우에 활용되고, 채팅은 익명성에 기반한다. 게임과 함께 하는 음성기반 커뮤니케이션을 보이스’채팅’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익명성에 기반한 음성 커뮤니케이션은 텍스트 채팅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사실이다. 미디어학자 매클루언은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의 차이를 두고 부족사회에서의 음성언어가 서구문명의 문자언어로 변화하고, 이것이 전기기술의 힘에 의해(전화, 라디오 등) 다시금 음성언어로 치환되면서 문자언어 중심의 사회에 일종의 내파를 일으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매클루언의 주장을 빌어 온다면, 우리는 과거 부족 사회처럼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만큼 가까운 사이에서만 작동했던 음성언어가 그 제한과 한계를 기술을 딛고 넘어서면서 익명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공격적 보이스채팅의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고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멀티플레이 게임이 디디고 있는 '익명성'의 대전제 그러나 원인을 안다고 해서 딱히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멀티플레이 기반 게임들은 1:1의 멀티플레이 이상으로 팀 대 팀의 플레이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이는 다시말해 하나의 팀이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협동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서는 게임 규칙 안의 상호작용 외에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게임 승리를 위해 필수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매우 강력하게 게임의 규칙에 “한 팀은 무조건 다섯 명으로 이루어집니다”를 내세우는 게임이다. 친구와 둘이 PC방에 가더라도 두 사람은 결국 모르는 세 명을 팀원으로 받아 다섯 명을 채워야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때에 따라서는 개인의 순수한 실력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승패에 크게 영향을 주는 사례를 목격할 수 있다. 때문에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즈는 초창기에 이용자들로부터 랜덤 매칭된 팀원 사이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 줄 수단으로서의 보이스채팅 기능 추가를 요구받은 바 있는데, 그에 대해 답변한 기록은 오늘날 보이스채팅의 기능을 역으로 잘 드러내는 자료로 남아 있다. (중략) 이 논의를 시작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친구들과 음성 채팅으로 게임을 즐길 때와, 모르는 사람들과 음성 채팅으로 게임을 즐길 때의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여러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친구들과 음성 채팅을 하는 것에 대해선 79% 이상이 이것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더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응답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 음성 채팅을 하는 것이 즐거울지를 묻는 질문에는 겨우 50% 정도의 플레이어 여러분만이 동의하셨고, 나 되는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4 명 중 1 명이 모르는 사람과 음성 채팅을 하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저희들에게도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중략) 음성 채팅을 하게 되면, 몇몇 플레이어만 끝까지 음성 채팅을 사용하며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음성 채팅에 아예 참여하지 않거나 음성을 차단한 후 텍스트 채팅만을 사용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기계 학습 (machine learning) 기법을 통해 실제 어떤 대화가 이루어지는지 분석하는 고도화된 모델을 개발하여 적용한 결과, 일부 플레이어들만 음성 채팅을 사용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텍스트 채팅으로 소통하는 게임의 경우 텍스트 채팅에 나타나는 공격적인 언어 사용이 126% 나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플레이어 여러분도 저희도 리그 오브 레전드에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욕설 등의 언어 사용이 126%나 증가한다는 뜻입니다. 음성 채팅을 활용하면 공격적인 언어 사용이나 욕설을 감지하기가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음성 채팅을 활용하는 플레이어들이 텍스트 채팅에서 공격적인 언어와 욕설을 훨씬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악성 플레이어를 감지하기가 더 쉬웠습니다. 놀랍지 않은 결과이지만, 모르는 사람과 음성 채팅으로 게임을 즐긴 플레이어들은 평균보다 신고되는 횟수가 47% 나 많았습니다. (중략)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친구들과의 음성 채팅은 매우 훌륭한 게임 경험이며,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여러분께서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실 많은 플레이어 여러분께서 스카이프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고 계시며, 이는 매우 바람직한 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음성 채팅 앱이나 게임에 포함된 음성 채팅 기능은 모르는 사람과의 음성 채팅에 활용되기 쉬우며, 자동으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공격적인 언어 및 욕설이 126% 증가하고 신고 횟수는 47%나 증가하며 , 이는 플레이어가 서로를 차단하거나 음성 채팅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라이엇게임즈 , 2014) 2)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된 라이엇게임즈의 이 공지문은 오늘날 보이스채팅 문제가 가지고 있는 난점들을 매우 정확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다. 친구들과의 음성 채팅과 익명의 음성채팅은 완전히 다르며, <리그 오브 레전드>는 반드시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팀을 이뤄야 하는 구조다. 익명 보이스채팅이 가지는 공격성은 텍스트채팅보다 훨씬 강력하기에 우리는 익명 매칭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게임에 보이스채팅을 추가할 생각이 없다는 라이엇게임즈의 메시지는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익명 매칭 기반의 팀 온라인 게임이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소통의 지점을 또렷하게 가리키고 있다. 기술은 매 순간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는 발전 속도를 보여주지만, 결국 그 기술이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과거 우리가 맨몸으로 겪었던 어떤 순간이다. 반드시 한 자리에 모여야만 가능했던 게임을 디지털기술은 원거리에서도 게임 규칙이 제시하는 승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무언가로 탈바꿈시켰고, 이제는 그 게임의 바깥에 존재하던 음성언어마저도 구현가능한 상황에 우리를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는 단지 기술적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시작되어 아직까지도 극복되지 못한 비대면 익명성이라는 대전제다. 기술이 모르는 사람들을 강제로 지인으로 만들어버리는 방향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제가 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기술이 어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내건간에 우리는 트롤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1) IT동아 (2014, 5, 19). ‘ 채팅 ’ 탄생 40 주년 PC 통신과 메신저 거쳐 모바일까지 2) 라이엇게임즈(2014). 음성 채팅 기능에 대한 내부 논의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 URL: https://leagueoflegends.co.kr/?m=forum&mod=view&topic_id=7&thread _id= Wje_dd9l Uk Tags: 매클루언, 채팅, 보이스채팅, 커뮤니케이션, 음성언어, MUD, PLATO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모험은 그곳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에 대하여

    < Back 모험은 그곳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에 대하여 02 GG Vol. 21. 8. 10.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모험가가 된다. 평범한 일상을 벗어난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나가며 때로는 자신 안의 영웅적 면모를 깨워 세상을 구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계 곳곳에 산재된 난제를 해결하는 모든 여정에 기꺼이 뛰어들며 게임을, 모험을 이어왔다. 게임과 모험은 그 궤적을 함께하며 게임을 경험하는 친숙한 방법론을 구축해왔다. 게임의 역사 자체가 일종의 모험기처럼 계속해서 쓰여지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글은 ‘게임’이라는 오래된 모험기를 다른 방향에서 펼쳐 본다. 거꾸로 펼친 모험기는 모험의 바깥에서 주인공의 모험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여인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모험 서사 속 여성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여성은 본래부터 ‘그곳(there)’에 있으며 영웅이 도달하려는 곳 그 자체라고 대답했다. 그곳은 이를테면 영웅의 영광스러운 업적의 끝으로 모험의 종착지이자 그를 위한 보상이 기다리는 곳이다. 이 보상은 물질적인 부나 명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그에게 구출되길 간절히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 어떤 모험은 그곳에 붙잡혀 간 여인을 찾아 떠나면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는 영웅의 모험 동기이면서 동시에 승리를 거둔 이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되는 셈이다. 고전 게임 ‘동키콩’ 속 레이디가 그러하듯, 게임 속 수 많은 여인들이 게임의 목표이자 최종 보상이 되어 그곳을 지켰다. 그들은 모험의 시발점 혹은 목적지로 설정되지만 결코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게임의 서사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자 모험의 이정표가 될 뿐이다. 스스로는 모험을 떠날 수 없어 악당의 탑에 갇혀 구출되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 피치공주. 모험의 바깥에 자리한 여성 캐릭터로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피치공주를 빼놓을 수 없다. 1985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로 피치공주는 수많은 시리즈에서 납치를 당하고 마리오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수 많은 여정 끝에서 구출되기만을 기다렸다. 시리즈가 이어지며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수행한다거나 다양한 능력을 지녔다는 설정이 생겨났지만 스토리의 전개를 위해서는 아무 의심없이 납치 당하고 구해지고 있다. 그렇게 구해진 피치공주는 마리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마리오의 볼에 입을 맞춘다. 피치공주의 키스는 무사히 모험을 마치고 자신을 구해준 남성-주인공을 위한 보상으로서 여러 타이틀에서 반복되며, 남성-영웅과 납치된 여인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붙잡힌 여인’의 대표 명사인 피치 공주도 단독 주인공으로 모험을 떠난 적이 있다. ‘슈퍼 프린세스 피치’(2005)에서 피치공주는 납치된 마리오와 루이지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 작품은 시리즈의 외전으로 제작되어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점이 두드러지는데, 우선은 ‘여자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상당히 쉬운 난이도로 제작되었으며 ‘감정 액션’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감정 액션’은 희로애락이라는 4가지 감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술로, 극적이고 풍부한 감정 표현이 게임의 무기가 되었다. 피치공주는 상징과도 같은 풍성한 분홍 드레스를 입고 울고 웃고 화내며 맵을 활보했다. 닌텐도의 또 다른 공주,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젤다는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로 시작했지만 점차 새로운 캐릭터성을 보여주고 있다. 젤다는 세상을 구할 핵심적인 힘을 지닌 캐릭터지만 그 힘 때문에 적대 세력의 주요 타겟이 되는 일이 빈번했다. 시리즈가 전개되면서 ‘시간의 오카리나’(1998)나 ‘바람의 지휘봉’(2002)에서는 링크를 돕는 주요 조력자로도 등장했지만 ‘공주’로서 모험에 동참하지는 못했다. 두 작품에서 젤다는 남성으로 변장하거나 해적으로서 모험에 동참하여 활약하지만, 공주로서의 정체를 드러내자마자 납치당하거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모험에서 배제된다. 또한 변장한 젤다는 짙은 피부와 활동적인 복장으로 자신을 감추다가 공주로서 정체를 드러내면 피부톤이 밝아지고 화려한 드레스로 환복한다. 마리오와 루이지를 구하고자 떠난 피치공주가 분홍 드레스를 벗어 던지지 못했 듯, 그들의 모험은 ‘공주다운’ 복장에 제한되었다. 시리즈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이들은 시작부터 모험의 가장 바깥으로 떠밀려버리거나 주인공들의 영웅성을 돋보이게 할 역할로만 한정되어 ‘수동적 공주’라는 전형성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야 젤다는 세계를 구할 모험의 핵심적인 존재로서 설정이 확고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 소개된 후속작 트레일러에서는 긴 금발 머리와 드레스를 입은 익숙한 공주의 모습이 아닌 짧아진 머리에 모험가 복장을 한 젤다를 확인할 수 있다. 비로소 오랜 시간 링크의 모험을 지켜보던 젤다도 새로운 모험에 돌입하고 있다. * 사무스 아란. 한편 일찍이 모험을 나선 여성 캐릭터도 있다. 1986년 닌텐도에서 출시한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주인공 사무스 아란은 강화 슈트를 입고 우주를 종횡하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개발진들은 강화 슈트 속의 전사가 여성이라면 더 멋지지 않겠냐는 아이디어에서 ‘메트로이드’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처음 발매된 ‘메트로이드’에서 사무스 아란의 외모는 강화 슈트로 인해 드러나지 않으며 게임에서도 그의 성별을 추측할 단서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을 좋은 성적으로 클리어하면 엔딩에서 사무스 아란은 헬멧을 벗어 강화 슈트 속 전사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플레이어에게 ‘파격적인’ 반전을 선사했다. 더 좋은 성적으로 클리어하게 되면 레오타드나 비키니와 같이 노출이 심한 복장까지 볼 수 있었다. 복과묵하고 강인한 우주 전사도 게임이 끝난 뒤에는 ‘팬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이러한 ‘팬서비스’는 시리즈에서 전통처럼 계속되었다. * 라라 크로프트. 사무스 아란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고의적으로 성별을 숨겨 화제성을 노렸다면, 여성으로서 강한 파급력을 보인 캐릭터로는 단연 라라 크로프트가 꼽힐 것이다. 라라 크로프트는 ‘툼 레이더’의 주인공으로 1996년 처음 등장하여 높은 인기를 얻으며 최근까지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변주되고 있다. 초기 라라 크로프트는 독립적이고 야망있는 캐릭터로 설정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90년대의 ‘걸 파워’ 유행도 맞물려 있다. 제작 초반에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었지만, 설정을 여성으로 바꾸면서 수동적이지 않고 강하면서 동시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로 수정되었다. 하지만 기획 의도에서 당당한 여성상을 추구한 것과는 별개로 실제로 라라 크로프트는 ‘섹스 심벌’로서의 이미지로 홍보되거나 소비되어 왔다. 여러 버전을 거치면서 많은 변화 있었지만 라라 크로프트를 떠올리는 상징적인 복장은 첫 작품에서의 쌍권총과, 민소매, 짧은 반바지를 입은 모습이다. 초반에는 기술의 한계로 인해 어색한 폴리곤 덩어리로 구현되었음에도 비현실적인 볼륨감이 두드러지며,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은 자유로운 활동성보다도 몸매를 과하게 드러내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적 대상화도 구체화되어 노출도가 높은 코스튬이 제공되거나 바스트 모핑이 도입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적 대상화된 육체가 아닌 한 인물로서의 라라 크로프트에 주목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이 게임 내에서 라라의 복장을 바꾸거나 누드로 만드는 모드를 제작하거나 모드로 새롭게 연출된 라라 크로프트의 모습을 공유하는 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사무스 아란과 라라 크로프트는 분명히 모험의 중심에 있지만 이들이 플레이되는 방식, 보여지고 소비되는 방식은 다른 ‘전통적인 영웅’들의 행보와는 크게 다르다. 남성 유저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임 시장 특성상 여성 캐릭터들은 ‘캐릭터’가 아닌 ‘여성’에 방점이 찍힌 채로 탄생하고 소비되고 플레이되었다. 여성 캐릭터의 모험에는 게임 속 세계의 위험천만한 장애물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넘어서야 하는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역경이 더해져 왔다. 모험을 떠나는 여성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도 모험의 장벽이 되어왔다. 2014년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 : 유니티’에는 최대 4인까지 함께할 수 있는 협동 미션이 도입되었는데, 여성이나 유색 인종으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아 많은 비판이 있었다. 당시 디렉터 알렉스 아만시오는 초기에는 여성 암살자도 계획되었으나 “2배의 애니메이션, 목소리, 영상 소스”를 제작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컸기에 “여성 캐릭터를 삭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발은 #womenaretoohardtoanimate라는 해쉬태그를 통해 공유되었다.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이 사건 이후로 ‘어쌔신 크리드’는 플레이가능한 몇 명의 여성 캐릭터를 선보였다. ‘어쌔신 크리드 : 신디케이트’(2015)의 이비는 쌍둥이 남매 제이콥과 함께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로 등장했고, ‘어쌔신 크리드 : 오리진’(2017)의 아야는 주인공 바예크의 아내이자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였다. 이비는 마스터 암살자가 될 만큼 유능하고 아야는 ‘어쌔신 크리드’ 세계관의 핵심 집단인 ‘형제단’을 창설했다는 설정이 있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이들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대폭 축소되고 홍보 아트에서도 이들의 존재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었던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2018)조차 홍보에서는 공식 캐논인 카산드라보다 알렉시오스가 주력으로 등장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 여성캐릭터가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한 건 외전인 ‘어쌔신 크리드 3 : 리버레이션’(2012) 뿐이다. 그리고 2020년 블룸버그를 통해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이러한 행보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이슈는 ‘어쌔신 크리드’의 제작사 유비소프트 내의 성추행, 성차별적 구조와 권력 남용에 대한 집단 소송 건이었다. 그리고 이 고발에는 2018년에 ‘어쌔신 크리드 : 오디세이’가 단독 여성 주인공으로 개발될 예정이었으나, ‘여성 주연 게임은 팔리지 않는다’라는 고위층의 주장에 의해 주인공의 성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출시되었다는 폭로도 함께 실려 있었다. ‘어쌔신 크리드’를 해 본 유저라면 다음의 문장이 익숙할 것이다. “이 가상 시나리오는 다양한 종교, 성적 성향 및 성 정체성을 가진 다문화 팀에서 기획, 개발, 제작하였습니다.” 다양성을 명시한 문장 너머에는 넘을 수 없던 현실이 가로막고 있었다. 게임을 만들어내는 게임 바깥의 차별적인 문화가 실제 게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갖은 고난과 난제에 부딪히면서도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비욘드 굿 & 이블’의 제이드 (2003),’ ‘미러스 앳지’의 페이스 (2008),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의 맥스 (2016), ‘호라이즈 제로 던’ 의 에일로이 (2017), ‘하프-라이프 : 알릭스’의 알릭스(2020)까지, 이들은 더 이상 탑에 갇힌 공주가 아니라 스스로 뛰쳐나와 자신만의 모험을 이끄는 모험가다.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의 양상이 다양해지면서 동시에 주변의 이야기도 더욱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때때로 유의미한 시도와 전진하지 못하는 입장이 반복되기도 하며, 어떤 성취는 또 다른 도전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모험가는 난제를 해결할 또 다른 가능성을 품고 다시 여정에 오른다. 모험의 본질은 닥쳐오는 장애물을 피하지 않고 세계를 마주하는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느라 고정관념에 얽매인 사고를 뛰어넘어서 새로운 상상으로 돌입하는 일이다.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게임 속 세계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런 가능성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전시 기획자) 서다솜 큐레이터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종종 전시를 기획하거나 글을 쓰고 주로 게임을 한다. 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의 멤버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jian deng (邓剑)

    jian deng (邓剑) jian deng (邓剑) He is a post-doctoral researcher at the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at Peking University. It deals with digital game culture research as its main interest, and continues to publish columns on games in 闻湃澎. Read More 버튼 읽기 8bit era in china This article looks to the 8 bit gaming history in China to illuminate the Chinese gaming industry of today, one that earned 2786.87 billion yuan in 2020 (GPC et al. ) . While becoming the world's largest game market, Chinese gaming industry has also attracted worldwide attention. However, despite our fascination with the great success of the Chinese gaming industry in the 21st century, we should not forget the road ahead. Looking back on the early challenges that China's 8 bit gaming industry ever faced is an essential prerequisite for us to understand the industry’s current success. Therefore, this paper will analyze the Chinese 8 bit game and its history. 버튼 읽기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 Back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21 GG Vol. 24. 12. 10.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의 중심을 차지해 온 지라, 중국의 디지털게임을 향한 도전에서 중국 고전은 언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온 바 있었다. GG의 지난 칼럼(참조)에서처럼, 중국의 디지털게임 제작은 초창기부터 <봉신연의>, <료재지이> 같은 중국의 고전 소설들을 디지털게임으로 가져오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유기>는 매우 자주 디지털게임으로의 시도가 이어져 온 작품이다. 8비트 게임 시절부터 중국에서는 <대화서유>, <서유기>, <서전취경>과 같은 여러 회사에 의한 다양한 게임 장르로의 시도가 서유기를 딛고 이루어졌다. (관련내용은 GG 2호, "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 참조) 비단 중국에만 국한되었다기보다는 <서유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판타지성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전반에서 현대적 대중문화 콘텐츠로의 잦은 시도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손손>과 같은 아케이드 디지털게임화, <서유기>를 초기 모티프로 삼아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아예 서구권 전반에서 ‘손오공’이 아닌 ‘손 고쿠’를 고유명사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성공한 <드래곤볼>과 같은 사례와 함께 한국에서도 <날아라 슈퍼보드>를 기반으로 한 ‘사오정 시리즈’의 성공이나, <마법천자문>과 같은 사례들이 서유기라는 고전 판타지의 확장성을 증명한다. 동아시아 고전 판타지라는 강한 배경을 가진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이하 <오공>)의 제작 발표가 있은 뒤부터 이 게임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한편의 기대와 한편의 걱정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티저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서의 상당한 완성도가 오래도록 다시 익혀 내어 온 고전의 새로운 게임적 재해석에 빛나는 성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또 서유기?’라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주제에 안이하게 천착해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는 시장 규모에 비해 오랫동안 이렇다 할 ‘문화적 업적’으로서의 대표작을 보여주지 못한 중국 게임제작 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한 배경이었다. 높은 장르적 완성도는 세계관과 결부되며 빛을 발한다 <오공>의 성과는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측면에서도 상당하다. 곤술과 창술이라는 우슈에 기반한 무기 액션은 특유의 부드러운 초식 연격을 통해 매끄러운 전투 흐름을 완성했고, 사실상 전투 액션의 핵심이 되는 강공격은 천지를 울리는 과장법을 무리없이 연출해내내는 데 성공했다. 전투 액션에서의 성공은 게임 시작부터 이어지는 주인공 캐릭터의 완성도 이상으로 다채로운 기믹을 자랑하는 수많은 보스 몹들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른바 ‘복붙’으로 만들어지는 장면들 대신 풍성한 파훼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다양한 전투 도전이 게임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이끌어냈다. 난이도 설정이 별도로 없다는 점은 일부 게이머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고전적인 방식인 ‘시간을 들이면 해결된다’는 기믹을 살려둠으로써 완화점을 두었다. 초반부는 소울라이크를 방불케 할 만큼 확실히 도전적인 난이도를 보여주지만, 특정 구간들을 지나면서 열리는 도술과 특성이 누적되면서 난이도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을 들이면 못 넘어설 것은 아니라는 일련의 안도감을 부여한다. 소울라이크 느낌을 내면서도 게임 오버에도 경험치를 흘리지 않게 만들어진 디자인은 난이도 설정이 없다는 점을 보완하는 디자인이었고, 게임은 전반적으로 쉽다고 말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지만 그렇다고 초심자를 완전히 내팽개친다고만은 볼 수 없는 타협점을 보여주었다. 디지털게임의 성취를 바라볼 때 메카닉만을 뚝 떼어 보는 것은 게임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단순히 막대기를 돌리고 휘두르는 공격 액션이 훌륭하다고 하면 굳이 ‘서유기’라는 배경과 이야기라는 스킨을 덧씌운 게임에서 우리가 받는 감상을 정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공>의 성취 또한 상당히 공들인 전투 액션이 어떤 세계관 하에서 어떤 목적을 향하고 있는지와 결부될 때 비로소 본격적인 의미를 드러내는데, 기본적으로는 ‘서유기’의 세계관을 활용하되, 손오공의 서역 여정길 당시가 아닌 그 다음의 이야기라는 배경 설정을 통해 게임은 이 세계관을 21세기에 디지털게임으로 재현할 때 필요한 많은 자유로움을 끌어낸다. 신분제 시절의 판타지가 못다 한 이야기의 현대적 재구성 중국의 또다른 판타지 소설인 ‘봉신연의’와 마찬가지로 ‘서유기’ 또한 요괴라는 이름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총출동한다. <오공>은 ‘서유기’에 등장한 수많은 요괴들 중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서 도드라지는 기믹이 될 수 있는 요괴들을 서유기 원작의 순서와 관계없이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고전 판타지 소설이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재구성될 때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서 <오공>은 주인공인 손오공의 서역 행보를 되새기는 것이 아닌, 그가 죽은 뒤 그의 후계를 자임하는 주인공 ‘천명자’의 행보를 그려낸다. <오공>이 그려낸, 삼장법사 일행의 고행이 끝난 뒤의 세계는 원작이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원작의 상상력을 이어 간다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어떤 세계의 후속담이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공>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서역에서 가져온 대승의 불경이 중국에 도착했다면 이 세계는 부처의 대자대비심으로 이전보다 나은 세계가 되었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오공>은 끊임없이 보여주고자 한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일행이 지났던 마을들은 폐허가 되었고, 아예 원작에서 투전승불의 지위에 올라 해탈에 이른 것으로 결론지어진 손오공은 게임 시작부터 죽었다고 나온다. 관세음보살이 현장법사에게 일러 주었던, 중생을 구제할 대승의 새 불경은 딱히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 <오공>이라는 게임의 출발점이다. 더욱 의뭉스러운 것은 세계의 남은 자들이 그런 세계를 구하기 위해 불경을 다시 가져온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어버린 손오공의 부활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주인공 천명자는 부처의 지위를 버리고 다시 원숭이 왕으로 살고자 했다 죽게 된 손오공이 세상에 남긴 육근을 모아 손오공의 부활을 시도한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 방법이 서역에서 가져온 불경이 아니라 손오공의 부활이라는 점은 언제나 다음에 이어질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드는 것을 암묵적 전제로 삼는 디지털게임의 구조 안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다. 원전 ‘서유기’가 그려낸 세계는 신격 존재들과 인간들, 그리고 요괴들이라는 구분이 엄격한 세계였다. 일종의 신분제라고도 볼 수 있을 이 구분은 한편으로는 엄격하면서도 아예 고정불변인 것은 아닌데, 이를테면 원래 요괴 출신이었던 손오공이 천계의 부름을 받아 옥황상제와 겸상하거나 투전승불이 될 수도 있고, 천계의 군인이었던 천봉원수와 권렴대장이 잘못을 저질러 요괴로 환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신분은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지만, 그 오름과 내림이 명확한 격차를 갖는다는 점에서 이 세계의 신분제는 태생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상벌적 개념에 가깝다. <오공>의 시작부분에서 손오공은 천계로 부름받은 투전승불이라는 지위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 외침에 대해 천계는 군대를 보내 손오공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으로 화답한다. 이는 고전 소설 ‘서유기’가 시대적 한계로 그려내지 못한 지점을 21세기의 디지털게임이 다시 가져올 때 살려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고전 판타지의 게임을 통한 현대적 재해석은 이미 크게 시도된 바 있는데, <오공>의 제작진들이 직접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한 바 있는 <갓 오브 워> 리부트 시리즈다. 원작이 되는 북유럽 신화가 오딘과 토르라는 주신들의 관점에서 진행된 바 있다면, 게임으로 등장한 <갓 오브 워>의 북유럽 신화는 실제 신화 속에서 반영웅의 위치에 있었던 로키의 시각에서 신화를 풀어나가고자 했다. 시점을 바꾸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는데, 오딘의 지혜는 게임 안에서 교활함으로 재해석된다. 신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세계 전체를 지배하려 들고, 그 신의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의 저항은 주신들의 관점에서는 세계의 멸망, 라그나뢰크인 것이다. 라그나뢰크가 예언한 세계의 종말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그들만의 세계’에 찾아오는 종말이라는 해석은 고전적 신분제 사회를 벗어난 현대에 들어 신화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주요한 관점이다. 그리고 <오공>은 같은 맥락으로 ‘서유기’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에 나선다. 신분제가 명확했던 시절에는 자연스러웠을 신계가 인간계를 관리하고(혹은 보호하고) 있는 모습은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에 들어서는 그 자체로 이미 억압적인 무언가가 된다. 로키라는 악신의 존재를 활용한 <갓 오브 워>의 방식 대신, <오공>은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요괴 출신이지만 천계의 명령에 순순히 복무했던 이가 받은 의심과 실망을 부각시킴으로써 고전적 신분제 하에서의 평화와 행복이 가진 모순을 정면으로 끌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각론은 다르지만, 두 게임 모두 고전 사회에서 만들어진 신화와 판타지가 현대 관점에서는 여전히 모순일 어느 지점을 향해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냈다는 점에서 신화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평을 받을 만 하다.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 이 게임의 의미에 다가가는 어려움에 대해 고전 소설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 성공적일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제작진들이 고전 소설로서의 ‘서유기’를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 ‘서유기’는 원전 자체가 보편적 교양 소설로 취급받으며, 한국에 비해 폭넓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실제 <오공> 안에 등장하는 원작 출신의 많은 캐릭터들은 원작에서 보여줬던 성격과 캐릭터를 게임 특성에 맞게 변형한 상태로 등장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특성이 게임 메커닉과 강하게 결부되며 게임을 말그대로 살아움직이는 ‘서유기’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로 만들어진 2차창작 콘텐츠로서의 <오공>은 이 점 때문에 오히려 ‘서유기’에 익숙하지 않은 중국 바깥의 게이머들에게는 미처 다 전달되지 않는 지점 또한 적지 않다.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다음 회에서 풀어보자는 말의 의미는 중국 문화권이 아니면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충분히 잘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오공>에 대한 아쉬움은 역으로 이 게임이 원전에 너무나 충실했다는 점에서 원전이 보편적이지 않은 이들에겐 미처 그 정교함이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 때문에 온다. 원전에 대한 세심한 재해석에 경탄하면서도 내내 이걸 서구권 게이머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를 떠올린 것은, 게임의 기저에 흐르는 ‘서유기’라는 원전에 대한 추가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을 여러 서브 컨텐츠들이 충분히 갖춰지지는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사천왕과의 전투라는 것도 아마 서양권 이용자들에겐 '멋진 거대 몬스터와의 박력있는 전투'까지만 전달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역전재판 456 오도로키 셀렉션> : 법정 미스터리와 내재적 오리엔탈리즘의 그림자

    < Back <역전재판 456 오도로키 셀렉션> : 법정 미스터리와 내재적 오리엔탈리즘의 그림자 18 GG Vol. 24. 6. 10. 본문은 <역전재판> 시리즈의 주요 설정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의있음!“ <역전재판>하면 가장 먼저 이 대사가 떠오른다. 나는 이 게임 시리즈를 2009년부터 하기 시작해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다. 주인공 변호사의 ”이의있음“ 이란 외침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2009년 당시만 해도 한글판이 정식 발매되지 않았던 때라서 모바일 폰으로 영문판을 사서 플레이했고, 스마트폰, 스마트패드가 생긴 뒤에는 어플리케이션을 구입해서 일본어판으로 플레이 했다. <역전재판>은 2019년이 되어서야 1,2,3편의 합본판이 한글화가 되어 정식 출시되었다. 그리고 올해 초 4,5,6편의 합본판이 출시된다는 소식에 너무나 반갑고 기대가 컸다. 어른이 되어서 하는 <역전재판>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외치는 ”이의없음“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만들까? * <역전재판 456> 메인 타이틀 <역전재판> 시리즈는 대표적인 법정 미스터리 게임이다. <게임제너레이션> 2호에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이라는 기사가 수록된 바도 있다. 2001년 일본에서 첫 작품을 출시한 이후로 스핀오프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11개의 시리즈가 발매된 <역전재판>은 전세계 팬들에게 추억의 게임이자 다음 시리즈를 계속해서 기다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역전재판> 시리즈는 주인공인 변호사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을 변호하여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은 크게 재판을 위한 증거와 정보를 수집하는 탐정 파트와 피고인, 증인, 검사와 협상을 하는 법정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인칭 비주얼 노벨 장르인 <역전재판>은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고 진범을 밝혀내는 과정을 변호사인 주인공의 시점으로 보여주기 위해 변호사가 탐정의 역할을 수행한다. 탐문 조사와 증거 수집 등이 탐정 파트에서 진행되고, 법정 파트에서는 피고인의 변호를 위해 변호사가 심리 중에 진범을 기소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변호사 역할을 보조하는 조력자로 미스터리한 존재가 등장하는데, 바로 ‘영매사’다. ‘영매’는 역전재판을 본격 미스터리 법정 추리극으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장치다. 미스터리 서사에는 '서스펜스'와 '본격 미스터리' 두 가지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 이 두 가지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는데, 서스펜스가 수수께끼에 대한 ‘흥미’가 추진력이 되어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본격 미스터리는 수수께끼가 논리적으로 ‘해명’되는 과정이 주안이 되는 이야기를 뜻한다. 이는 2018년 오사카에서 개최된 "GAME CREATORS CONFERENCE'18(GCC'18)" 에서 <역전재판1, 2, 3, 4>의 제작자인 타쿠미 슈가 <역전재판> 시리즈에 대해 설명하며 했던 말이다. 그는 <역전재판>을 ‘본격 미스터리’라고 설명하면서, "본격 미스터리에서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약속된 규칙과 전제만 있다면 어떤 요소든 논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역전재판> 초기 시리즈의 '영매'라는 오컬트적인 요소다. <역전재판> 시리즈의 등장인물 중에는 영매사가 존재하고, 법정에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와 증언을 시키거나, 주인공인 나루호도 류이치는 영매가 된 영혼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 ‘영매’라는 장치는 ‘단서’와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미스터리 서사를 완성시킨다. <역전재판>은 선형적이고 단일한 스토리라인을 따르는 미스터리 서사물에 가까운 게임이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영매는 선형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는 추리 미스터리 장르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생겨나는 '반복'과 '전형'을 타파하고자 만들어진 하나의 장치로 볼 수 있다. <역전재판>을 문학의 미스터리 장르와 비교한 유승환(2017)은 <역전재판>이 게임이라는 장치를 통해 이야기(서사)를 놀이의 대상으로 만들고, 독자(플레이어)들이 게임의 서사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체험의 공간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게임의 내러티브와 ‘영매’와 같은 색다른 게임적 요소를 통해 게임 속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 자체가 하나의 체험이자 놀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역전재판>은 그저 단순히 법정에서 피고인을 무죄로 만드는 게임이 아니라, 변호사 주인공이 증거와 정보를 수집하는 탐정 역할도 수행하고, 신비로운 존재인 영매사에게 새로운 단서와 조언을 얻기도 하면서 억울한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미스터리=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일종의 추리 게임이 된다. 호평을 받았던 초기 시리즈에 이어서, 이러한 서사 전개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후기 시리즈인 <역전재판 456>가 차례대로 출시되었다. 초기 제작자인 타쿠미 슈가 하차한 뒤, 야마자키 타케시가 디렉팅에 참여한 후기 시리즈에서도 영매처럼 ‘단서’와 ‘조력’의 역할을 하는 색다른 게임 시스템이 새롭게 등장한다. 반복되는 구조상 지루함을 깨부숴주는 장치로써 주인공 오도로키 호스케의 '잡아내다'나 키즈키 코코네의 '심리 스코프'가 그 예다. 이 두 가지 시스템은 피고인이나 증인이 새로운 증언을 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활용된다. ‘잡아내다’는 상대방의 버릇을 찾아 어떤 증언을 할 때 긴장을 하는지,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지를 잡아낸다. ‘심리 스코프’는 상대방의 증언과 감정의 ‘모순’을 찾아 새로운 단서를 끄집어낸다. * <역전재판 4>의 ‘잡아내다’ / <역전재판 5>의 ‘심리 스코프’ <역전재판 6>에서 처음 등장한 '아니마의 비전'은 죽은 자가 사망하기 직전 몇 초 가량의 감각을 재현하여 보여주는 영적인 능력이다. 이 영적 능력은 전작들의 장치들이 단순히 ‘단서’나 ‘조력’의 역할을 했던 것과는 달리, 오컬트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허용된다. 이는 <역전재판 6>의 배경이 1~5편과는 다르게 일본이 아니라 ‘쿠라인 왕국’이라는 가공의 국가를 무대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이다. 쿠라인 왕국은 영매가 가능한 자만이 왕이 될 수 있는 신정국가로, 죽은 자의 혼(=아니마)을 신앙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매의 역할도 기존 작들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법정에서도 ‘아니마의 비전’이 더욱 크게 자리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아니마의 비전’만으로 손쉽게 피고인에게 유죄가 내려질 만큼 이 장치는 결정적인 증거로 작동한다. <역전재판 6>은 시스템적으로 완벽하게 논리적 부정을 하지 못하도록 현실국가 일본이 아닌 가상의 국가를 무대로 세우고, 오컬트적 요소를 지닌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서 게임 난이도는 높이고 색다른 미스터리적 재미를 가져왔다. * <역전재판 6>의 ‘아니마의 비전’ 그렇다면 갑자기 왜 <역전재판 6>의 배경은 일본에서 쿠라인 왕국으로 옮겨왔을까? 그것은 아마도 타쿠미 슈가 언급했듯이 미스터리를 위해 준비한 새로운 게임 시스템인 ‘아니마의 비전’을 ‘작가와 독자 사이에 약속된 규칙과 전제’를 통해 논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기 위함일 것이다. <역전재판 6>에는 ‘아니마의 비전’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를 위해 활용된 설정이 한 가지가 더 있다. 쿠라인 왕국에는 '변호죄'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는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이를 변호한 변호사도 동일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는 게임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주인공이 변호에 실패하면 사형에 처해져 게임오버가 된다'는 게임적 리얼리즘(아즈마 히로키, 2012)의 요소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변호죄'는 플레이어가 조금 더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늘어지는 스토리에 긴장감을 주는 패널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전의 작품들과 <역전재판 6>의 가장 큰 차이점 혹은 흥미로운 지점이 여기에 있다. <역전재판 6>에서 쿠라인 왕국의 공주는 '아니마 비전'만이 진실이며 범죄자를 변호하는 변호인은 모두 악인이라고 규정한다. 이 어린 공주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일본인 변호사(주인공)다. 또한 변호죄로 인해 변호사가 모두 죽거나 사라져버린 쿠라인 왕국에서 23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이 역시 일본인 변호사다. 쿠라인에도 변호사 출신 혁명파가 존재하지만 독재 권력 앞에서 힘을 못 쓰고 결국 혁명의 기폭제가 되는 것은 일본인 주인공이다. 이러한 설정들은 기존 편들과는 다르게, 우월적 위치에서 다른 나라를 일깨우고 지도하는 일본(혹은 일본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오리엔탈리즘과는 다르지만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을 재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주인공의 시선은 다정하며 타 문화를 업신여기지는 않지만, 왜인지 모르게 현실 국가인 일본에서 가상 국가인 쿠라인 왕국으로 배경을 옮겨오면서, 일본 혹은 일본인(주인공)의 위치는 과거 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위치가 된 것 같다. 쿠라인 왕국에 대한 묘사도 서양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힌두교의 빈디 장식과 유사해 보이는 이마의 점과 의상 디자인, 배경으로 등장하는 건물양식, 산스크리트어와 비슷한 언어체계 등 쿠라인 왕국의 설정에는 힌두교와 불교 문화권의 요소들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특히 작중에서 혁명군의 깃발에 그려진 용의 그림은 부탄의 국기와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역전재판 6>을 접해본 이용자들은 쿠라인 왕국의 묘사가 부탄이나 티베트 지역 등 히말라야 인근의 국가들의 문화적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다양한 추측들을 하고 있다. 정체불명의 동양적 이미지들이 혼종된 쿠라인 왕국은 게임이 창조해 낸 가상의 국가가 아닌 정체성 없는 기묘한 국가의 모습으로 <역전재판 6>의 무대가 되었다. 쿠라인 왕국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같은 동양권 국가들 내에서도 오리엔탈리즘을 내재화한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으로 다른 동양의 국가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 물론 <역전재판>의 게임적 재미 때문에 게임을 즐기는 이들에게 이런 문제의식은 무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가상의 동양 국가 쿠라인 왕국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내재한 채로 재현된 것이라면, 이는 제작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충분히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역전재판>이 동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전재판 6>의 ‘쿠라인 왕국’과 관련된 스크린샷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서는 서양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양에 대한 편견이 수많은 텍스트들과 권위에 의해 객관과 보편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말한다(Edward W. Said, 1991). 이러한 인식은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양 국가들간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동양 내부에서 다시 서로를 대립적으로 구별하는 의식과 담론인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을 의미한다. 그러한 양상 중 하나인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의 일원으로 자신을 동일한 하는 것이 아닌 타자적 시각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일본을 구별하려는 자의식이 강화된 동일시와 객관화의 산물이다(강상중, 1997; 윤지관 외, 2006).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시선이나 서구의 제국주의를 수용한 일본은 아시아에 대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최유경, 2009). 일본에서 만들어진 게임에서 등장하는 종교적이고 신비한 가상의 동양권 국가가 제3세계적인 묘사로 등장하고, 다양한 동양 문화권의 요소를 뒤섞어 쿠라인이라는 가상 국가를 창조했다는 점,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이미지들만 취사선택하여 재구성한 측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이질감은 피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역전재판 6>은 오리엔탈리즘적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미국 연방정부와 많은 주정부, 기관들이 공식 문서에서 '오리엔탈(Oriental)'이라는 단어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 '오리엔탈'이라는 단어가 아시아인들을 비하하거나 고정관념화하는 차별적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동양인을 하나의 단일 집단으로 환원시키고, 서구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로 대상화하는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2016년 이후 미국 연방정부 법전과 공문서에서는 '오리엔탈'이라는 표현 대신 '아시안(Asian)'이란 표현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특정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오리엔탈리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예술계에서 '오리엔탈풍'과 같은 단어는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고, 오리엔탈리즘적 고정관념은 일상 도처에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다. 동양의 내재적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설명한 진태원(2014)은 동양인들 자신도 그 틀에 따라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상상하도록 만들어 '오리엔탈리즘과 다른' 동양을 사고하는 것을 어렵도록 만든다고 했다. 한국적 미스터리 장르와 오컬트 장르의 교차성에 대해 설명한 박인성(2022)은 주술적인 요소 역시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통해 오컬트 장르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장르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환경과 로컬적인 특수성, 문화의 시대적 상황과 교섭하면서 더욱 개성적으로 갱신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에 <역전재판 6>에서 ‘아니마의 비전’과 유사한 시스템을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일본을 배경으로 일본인 영매사 캐릭터가 수행했다면, 이는 또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신비 현상이나 무속, 로컬리티의 성공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초자연적이거나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미스터리 장르 게임은 <역전재판> 이후로도 계속 등장해왔다. 데스게임 학급재판이 펼쳐지는 <단간론파> 시리즈나 한국에서 개발한 초능력 추리 어드벤처 게임인 <스테퍼 케이스>, 타임루프를 주제로 한 <레이징 루프> 등이 그 예시이다. 이 요소들은 미스터리 추리 장르에 있어서 스토리의 기발함, 다시 말해 ‘상상력의 확장’을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역전재판 6>에서 보여준 쿠라인 왕국의 요소들 역시 위와 같은 ‘상상력의 확장’을 위한 장치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일본의 내재적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로 읽힐 위험이 있다. 게임과 서사를 확장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게임 시리즈가 나이를 먹어가듯이 게임 이용자도 나이를 먹는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게임적 요소나 상상력의 확장을 위한 요소, 이념, 재미 모두 시대에 맞게 성장하거나 진화해야 한다. 나루호도 류이치와 오도로키 호스케, 키즈키 코코네의 법정 이야기를 이대로 멈추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이 작품을 아주 오랫동안 좋아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 시리즈가 출시되면 좋겠다고 바라는 입장에서 이 게임의 문화적 비평이 어렵게 느껴졌던 것과는 별개로, <역전재판>이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뻔하게 반복되는 구조와 서사라는 평가를 '역전'할 수 있는 새롭고 기발한 이야기의 법정 미스터리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이어지는 역전에 ”이의없음!!!“ 참고자료 강상중. (1997).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산. 강신규. (2021). 《서브컬처 비평》. 커뮤니케이션북스. 박인성. (2022). 미스터리란 무엇인가 한국적 장르 서사와 미스터리 ① - 오컬트와 미스터리의 친연성과 교차성. 계간 미스터리, 270-284.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2012).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장이지 역. 현실문화. 유승환. (2017). 게임과 서사의 충돌과 그 극복의 노력. 『스토리앤이미지텔링』 제14집. 윤지관, 정정호, 태혜숙, 설준규, 성은애, 김성곤, 이경원, 고부응, 이석구, 김상률, 오길영. (2006).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화해와 공존으로》. 책세상. 진태원. (2014). "오리엔탈리즘과 다른 동양은 존재하는가". 한겨례. 책과 생각. 최유경. (2009). 조선을 향한 일본의 오리엔탈리즘 - 일본근대 미술 속의 조선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Tags: 오리엔탈리즘, 판타지, 법정물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과학연구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PS는 졸업을 자축하며 산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학부는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문화를 연구합니다.

  •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 Back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19 GG Vol. 24. 8. 10.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 H.P.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중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실현 가능한 장르를 게임을 통해 재현하는 일은 그 목적이 플레이어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코스믹 호러는 단어 그대로 인간의 사유와 이성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거대한 존재를 마주쳤을 때 경험하게 되는 우주적 공포를 의미한다. 오랜 기간을 통해 축적해 온 문명을 포함한 인간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불가해한 공포를 목도하는 상황과 그에 대한 매혹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대변하는 특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보다는 오히려 지금에 와서 적극적으로 향유되고 차용하고 있다. “거기서 크툰을?”이라는 밈으로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을 <하스스톤>의 고대신의 저주 덱만 하더라도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고대신 중 하나인 크툴루 이미지를 빌려온 대표적인 사례다. 크툰(C'Thun)이라는 이름조차 크툴루(Cthulhu)를 연상케 하는 의도적인 작명이다. 게임을 비롯한 서브 컬쳐에서 크툴루가 코스믹 호러를 대표하는 표상이자 오마쥬로 손쉽게 활용되는 이유는 러브크래프트의 작업물 중 드물게 크툴루 만이 소설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외양이 묘사되어 있고 작가의 스케치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시각화할 수 있는 뚜렷한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점은 공포를 야기하는 데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크리쳐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나 <콜 오브 크툴루>와 같은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요인 중 하나는 시각적 재현을 통해서는 공포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래픽 해상도나 디자인, 크리쳐의 거대함을 체감할 수 있는 상대적 크기의 구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분명하게 가시화된 것일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이야기가 예술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정밀하게 사건을 묘사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분위기의 조성을 제안한 바 있다. 코스믹 호러를 경험하게 되는 소설적 사건은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허구적인 것이기에 정밀한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기분을 명확하게 상징화하는 것이야말로 묘사보다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영역이다. 공포, 그것도 특정한 맥락의 사건을 통해 야기되는 감정의 결을 상징화하는 작업은 시각을 중점적으로 매개하는 매체가 좀처럼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모호함, 불분명함에서 오는 상상이 야기하는 불안감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포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 중심적 매체라는 영화의 장점 일부를 포기하고 카메라의 시야를 제한하고 대상을 어둡고 흐릿한 배경을 통해 부각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울러 관객이 사건을 목도하는 전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감상의 가이드라인으로써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사건 전개의 중심축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시각 매체 감상자가 경험하는 무력감, 일방향적인 위치에서 수행되는 관음에서 비롯된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의 마중물로 활용한 인용문과 같이 공포는 대상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기원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 앎으로 포섭할 수 없는 존재를 목도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힌다. 다만 서술자는 광인으로 대변되는 낯선 타자를 목격할 때 경악하거나, 서서히 잠식되는 광기로 인해 미지의 대상에 매혹되며 변화하는 자신의 내면을 진술하는가로 나뉠 뿐이다. 최소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이 둘은 선행과 후행의 문제일 뿐 어느 쪽을 배제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소설 <벽 속의 쥐>의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는 <다키스트 던전>은 고대신의 유적을 저택에 은닉하고 있는 전대 가주의 편지로 시작된다. 지하의 유적을 탐사하며 결국 고대신의 제물로 후손을 끌어들인 선조의 목적을 저지하더라도 탐사대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광기에 잠식된 이들은 결코 이전과 동일한 내면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후손의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과 새로운 희생양이 될 또 다른 후손을 초대하는 편지로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서사는 한낱 인간으로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대한 악의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하는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을 잘 보여줬다. 그러나 그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하나의 변수이자 수치화할 수 있는 요소로 디자인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공포가 대응할 수 없는 미지에서 창출되는 감정이라면 공포 게임의 행위성은 그를 위배하는 방식으로, 달리 말하면 미지를 해소하고 장악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된다. 이 모순적인 결합방식을 시도한 결과물 중 눈여겨볼 만한 대표적인 게임은 크툴루 세계관을 기반으로 추리와 코스믹 호러의 공존을 시도한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이다. 추리는 과학을 포함한 근대적 지식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지향하는 행위다. 이 경우 만약 이성이 미지를 해체하는 유용하고 적확한 도구라면 해소될 수 있는 공포는 하나의 소재로 활용될 뿐이다. 그러나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의 서사는 이성과 공포의 대결에서 공포에 손을 들어줬다. 홈즈는 어머니를 파멸로 이끈 광기가 자신에게도 유전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광기에 접근한다. 그리고 광기에 매혹된 자신이 근대적 이성으로 무장한 이전의 ‘나’는 같은 인간일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성은 미지의 사건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도구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질서와 법칙으로 무장한 자신의 세계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불안한 외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홈즈는 이전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인간이 된다. 심지어 고대신을 소환하고자 하는 이교도의 제의를 저지한 후일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홈즈의 정신은 그의 정체성이 붕괴되었던 상황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은 게임을 통해 재현된 캐릭터의 내면일 뿐이며 플레이어의 영역에서 꼼꼼하게 단서를 모아가며 추리하는 플레이 경험은 이 게임이 ‘호러’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전자의 수식어가 약소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차라리 행위성을 제한하는 동시에 특정 행위성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광기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활용하는 방식이 바로 그런 형태다.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특정 확률로 이상상태를 겪는 캐릭터들을 컨트롤하며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관철할 수 없는 세계를 인식한다. 물론 이것은 공포를 직접적으로 창출하기보다는 긴장감을 통해 몰입감을 고조시키는 효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포를 해소하는 어드벤처식 게임 장르를 대신해 제안할 수 있는 하나의 예시로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드렛지> 역시 광기를 게임적 요소로 활용한다. <드렛지>는 확률의 결과물만 보여주는 <다키스트 던전>보다 광기에 노출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게임 초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마을에 정착하고자 하는 낚시꾼의 일과 사이에는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질감이 불거져 나온다. 심해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의 어종, 이방인인 주인공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응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대사, 낮과는 전혀 다른 위협이 도사린 밤바다의 풍경은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정작 크툴루의 오마쥬인 것이 분명한 고대신은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매우 짧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재현되면 될수록, 즉 대상을 명확하게 인지할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전략은 유의미하다. 오히려 <드렛지>는 미지의 존재가 응시하는 시선을 화면 상단이나 심해의 충혈된 눈으로 표현하거나 광기에 잠식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차 붉게 번져가는 파라미터 등의 인터페이스로 재현한다. 불분명하고 암시적인 분위기가 캐릭터의 불안을 야기하고 공포라는 감정을 창출하는 것이다. 광인은 타자의 모습으로 재현되기 쉽다. 그러나 <드렛지>는 분열된 자아를 통해 이성의 영역에서는 확신할 수 없는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투신하는 인간의 모습과 미지에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희생된 아내를 부활시키기 위한 수집가의 광기는 설사 그것이 고대신을 소환해 마을이 소멸하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다섯 가지의 물건을 모아달라는 의뢰를 수락한 어부는 결국 이것이 스스로 초래한 비극의 후일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광기는 자신의 다른 얼굴이었던 셈이다. 코스믹 호러는 이제까지 믿어왔던 판단 능력에 대한 의심이자 철학의 붕괴, 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공포다. 정상성, 실재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공포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명이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토대, 근거가 전면적으로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발상이 게임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플레이가 경험하는 공포란 오히려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전은기

    전은기 전은기 문화인류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현재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과 한양대학교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인터페이스는 설계에 투영된 이상을 정확히 구사하기 위해 발전할 수도 있지만, 우연한 계기들에 의해 손쉽게 그 설계가 변형되기도 한다. 변형된 인터페이스는 게이머들의 게임 실천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하며, 이런 변화된 게임실천은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변형을 가져오고, 게임성 그 자체를 다르게 느끼게 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입력장치이고,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게임의 요소라기보다는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하드웨어이면서 동시에 게이머와 연결되어 신체화된 기계적 대상물이다.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설계에 따라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게이머는 물론이고 자신과 연결된 모든 환경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변화무쌍하게 공진화(co-evolution)하는 과정 안에 놓여있다. 버튼 읽기 펌프잇업의 플레이 분화에 놓인 '기계'의 의미 앤서니 던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들을 제품에 구현된 가치와 개념을 사용자들이 스스로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동안 학습시킨다.1) 이것이 전적으로 맞는 전제라고 가정한다면 게임도 마찬가지일까? 게임은 다른 전자제품들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상품은 그것이 완성되거나 완벽하게 조립된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서의 게임은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게임이라는 상품의 형태는 게이머의 ‘수행’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각각의 게이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체험된다. 소프트웨어로서는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고 난 뒤에야 ‘게임’ 그 자체는 완성된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권태현

    권태현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Read More 버튼 읽기 지구를 다시 지구로, 지금을 다시 지금으로 만들기: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를 즐기며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말을 점점 더 자주 듣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이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자본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가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것을 사업의 최종적인 목표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동시대 자본주의 세계의 신화처럼 전해진다. 테라포밍은 말 그대로 어떤 행성을 ‘지구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보통은 지구 바깥의 다른 행성을 지구처럼 만들어 인간이 이주하거나, 식민지로 삼기 위한 계획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다. 버튼 읽기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버튼 읽기 게임 인터페이스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전시 리뷰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다양한 담론장을 떠돌고 있다. 게임과 예술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행정과 법의 영역에서도 게임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물론 예술가, 행정가,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게이머 각각의 입장과 목표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러한 정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 주제전은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기에 일단 《게임사회》라는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 [Editor's view] 게임비평공모전에 부쳐

    < Back [Editor's view] 게임비평공모전에 부쳐 07 GG Vol. 22. 8. 10. GG 7호는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들을 중심으로 꾸몄습니다. 게임비평이라는 영역 자체가 사회 전반에서는 다소 낯선 부문일 수 있겠지만, 무려 93건의 응모작이 들어온 것을 보면서 적어도 게임에 대한 비평적 접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심사 과정에서 가졌던 고민들과, 공모전과 GG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드리고자 합니다. 2022년 5월 첫 공지를 올린 후 7월 8일 접수마감까지 대략 2개월동안 공모전에는 총 93개의 글이 들어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총 5분의 심사위원분들과 함께 응모작을 읽고 토론하여 7월 말에 최종 수상작을 선정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심사위원들과 함께 고민한 가장 큰 이슈는 ‘우리에게 게임비평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였습니다. 게임비평이란 무엇일까요? 제게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지만 개인의 생각만으로 잡지가 추구하는 비평의 방향을 재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게임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적을 수도 있고, 다양한 레퍼런스를 뒤져 가며 무겁게 게임의 의미를 파고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텍스트 내적인 요소들의 작동방식에 대한 평가도, 게임이 다루는 서사적, 미술적 요소들의 완성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게임 바깥의 관계들과 맺는 영향력을 다루는 것도 게임비평의 영역일 수 있겠지요. 1회 공모전에서는 그래서 어떤 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비평의 폭넓은 의미를 최대한 열어보자는 입장으로 공모전을 시작했습니다. 수상작들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제각각의 주제를 다루지만, 심사위원들이 포괄적으로 동의한 일련의 방향성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GG는 이것만이 게임비평이다 라는 배타적인 시선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GG 공모전이 선택한 비평의 정체성이 있다고 한들 단 한 회의 공모전으로 그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나지는 않으며, 수상하지 못한 많은 글들이 함량미달이라는 의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게임비평의 방향성 중에 GG는 이런 정체성에 가깝다는 정도의 선언이 이번 공모전 수상작의 의미일 것입니다. 수상작 선정보다 제게 더 의미있었던 것은 93건의 다채로운 입장과 방향을 드러낸 글과 글쓴이가 존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직 우리는 무엇을 게임비평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적어도 게임에 대해 갖는 비평적 태도가 충분히 유의미하며 시도할 만한 무엇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수상하신 분들께는 큰 축하를, 그리고 9명밖에 안되는 좁은 자리에 미처 다 모시지 못한 많은 응모자분들께는 앞으로도 함께 게임문화를 지켜보고 이야기하실 수 있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비평공모전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며, GG는 더 풍부한 게임문화담론을 만들어가는 데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유럽 속의 타자, 게임 속의 동유럽

    < Back 유럽 속의 타자, 게임 속의 동유럽 06 GG Vol. 22. 6. 10. 서구, 오늘날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불리는 이 말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북미와 유럽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를 이루는 많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들의 원산지로서 서구는 일종의 기원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적 의미로서의 북미가 사실상 유럽으로부터의 문명 이주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대 세계의 많은 부분은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동아시아에 위치한 우리에게도 유럽에 관한 지식과 관심은 상당한 비중으로 다가온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청소년 필독서로 오르내리고, 세계사에의 접근 또한 상당부분 유럽의 변화를 중심으로 기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 유럽이라는 말도 사실은 서유럽이라는 좀더 좁은 범주를 가리키는 말임을 떠올리게 된다. 이를테면 동유럽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유럽이라는 말로부터 조금은 동떨어져 있다. 이는 디지털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재현과 묘사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동유럽을 다룬 두 개의 게임 출입국관리소에서의 여권 심사라는 독특한 소재를 게임화한 루카스 포프의 작품 〈페이퍼스, 플리즈〉(2013)는 그 지리적 배경으로 아스토츠카라는 가상의 국가를 설정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아스토츠카가 동유럽 어디쯤을 가리키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는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나 국가명, 국가 상징이나 경직된 관료제로 드러나는 보수화한 공산주의 체제 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게임이 한창 분쟁을 겪고 있던 시기의 동유럽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어수선한 한 장면임을 떠올리게 한다. 11비트 스튜디오의 화제작 〈디스 워 오브 마인〉(2014)은 내전 상황 속에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휴전의 날까지를 버티는 과정을 윤리와 생존의 딜레마로 풀어내며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었다. 이 게임 또한 가상의 국가인 그라츠나비아의 도시 포고렌을 배경으로 삼는데, 같은 국가를 구성한 두 민족의 갈등과 분리주의 움직임이 내전으로 격화된 상황 또한 동유럽 어딘가에서 벌어진 내전을 모티프로 삼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애초에 개발사가 폴란드인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 〈페이퍼스, 플리즈〉와 〈디스 워 오브 마인〉은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전쟁과 같은 문제로 사회가 어수선한 동유럽이라는 유사한 배경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두 게임은 모두 현실적인 주제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와 게임화한 사례다. 〈페이퍼스, 플리즈〉는 이상과는 달리 현실에서 관료제가 더욱 고착화하면서 기이한 독재 체제로 바뀌어버린 공산주의 사회가 만드는 모순으로부터 플레이어가 넘어서야 할 역경을 이끌어낸다. 국가로부터 배정받은 공동주택에 대가족이 모여살지만, 플레이어의 낮은 연봉으로는 난방과 식비조차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은 출입국 사무에서의 부정부패를 자연스럽게 촉발한다. 이로부터 벌어지는 온갖 밀입국은 경우에 따라 국가의 존립을 흔들기도 할 정도의 여파를 갖는다. 〈페이퍼스, 플리즈〉의 플레이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실패한 현실공산주의를 향한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의 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디스 워 오브 마인〉 또한 플레이어가 넘어서야 할 과제들은 현실적인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국가의 거대한 분열이 갈등으로 치닫고, 이로 인해 벌어진 내전은 사회 전반의 질서를 흔들며 물리적, 제도적인 모든 안전망을 무력화했다. 수도와 전기마저도 끊어지는 상황에서 생존을 요구받은 플레이어의 분투 또한 동유럽 – 내전이라는 의미 연결을 통해 현실의 뉴스를 차지하던 동유럽 내전에서의 생존기라는 현실적인 주제로 게임의 이야기를 맞춰나간다. 실패한 공산주의에서 파생한 독재, 민족과 인종대립에 의한 내전상태는 그런데 사실 꼭 동유럽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이런 사회적 이슈들이 벌어지는 곳은 따지고 본다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다. 아프리카의 앙골라에서 벌어진 공산주의 독재 장기화에 의한 부패나 내전 문제, 르완다 학살과 같은 민족, 인종간의 갈등과 내전처럼 오히려 같은 이슈라면 아프리카 쪽이 더 크고 위험하며 극단적인 경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게임에서 아프리카 내전이나 독재 문제 등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파크라이〉 시리즈처럼 마약밀매나 독재, 사이비 종교 같은 이슈를 다루는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게임의 자세는 그 이름만큼이나 ‘먼’ 스탠스를 취한다.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잔악무도한 양상들은 그 무대가 ‘우리’의 세계가 아닌 ‘머나먼’ 세계로 그려진다. 여기서 ‘우리’의 범주는 상당히 좁아 보인다. 〈파크라이 5〉가 다룬 사이비 종교의 세계에서 플레이어의 관점은 ‘도시민’이다. 이 이상한 일들은 ‘머나먼 시골’로 그려진다. 도심에서의 범죄를 다루는 〈GTA〉같은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여기는 사회적 이슈를 접근하는 방식이 〈페이퍼스, 플리즈〉나 〈디스 워 오브 마인〉과는 아예 다른 방향이라 함께 묶이기는 어렵다. 아프리카의 독재 문제는 〈재기드 얼라이언스〉 처럼 플레이어를 외부인이자 제3자 개입의 시점으로 게임에서 다뤄지곤 한다. 반면 경우에 따라 유럽, 서구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면서도 서유럽 중심의 선진국과 달리 정치적 불안요소를 높게 가지고 있는 동유럽은 한편으로는 서구라는 동질선상에 놓이면서도 사회적 불안이라는 요소 측면에서는 좁은 서구의 바깥 범주에 놓이는 독특한 위치다.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발생한 사건에 직접 휘말리고 그로부터 여파를 받아 넘어서야 할 과제들 앞에 놓이는 〈페이퍼스, 플리즈〉 류의 게임에서 제3자적인 접근은 오히려 난이도 – 숙련도 간의 길항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처럼 머나먼 곳의 이야기도 아닌, 같은 유럽이라는 의식 안에서 발생한 문제에 개입해야 하는 상황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많은 게임들로 하여금 동유럽의 불안한 정치상황이라는 소재를 택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서구'라는 시점의 문제 ‘왜 동유럽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플레이어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디지털게임은 다른 매체에 비해 접근에 필요한 인프라에의 요구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게이밍 PC라고 불리는 쾌적한 게이밍을 위한 장비는 범용 PC에 비해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사용하는 전력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콘솔게임기도 만만한 가격은 아니며, 특히 온라인 시대 이후로는 쾌적한 게임을 위해서는 플레이 뿐 아니라 게임소프트웨어의 구매와 패치 등에도 충분한 속도와 용량의 네트워크 인프라가 요구된다. 안정적인 전력과 인터넷이 공급되고 고가의 디지털장비를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디지털게임 플레이어의 위치는 어쩔 수 없이 서구를 포함하는 선진국에 자리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게임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한 게임 디자인들은 디지털게임 플레이어의 보편적 위치가 ‘서구’라는 전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입장에 선다. 같은 이슈라도 유럽권에 가까운 곳을 배경으로 삼을 때 이 문제는 비로소 플레이어의 문제로 좀더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외양도 문화도 ‘먼 타자’일 수 밖에 없는 지역보다 ‘서구’라는 시선의 위치에 가깝게 자리하는 듯한 동유럽의 사례가 성공적인 메시징을 수행한 게임으로 거론되는 배경은 플레이어와 재현된 세계가 갖는 그 거리감으로부터 무관하지 않다. 현실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게임에 있어 동유럽은 유럽이면서도 ‘서구’로부터 타자화된 대상이 된다. 그리고 ‘서구’가 아님에도 선진국의 범주 안에 들어가기 시작한 한국 게이밍 문화는 플레이어의 물리적 시점 면에서는 ‘서구’의 범주와 겹치는 부분들을 갖는다. 디지털게임들이 현실사회의 문제를 좀더 많이, 더 다양하게 다루는 시대가 온다면, 이 시선과 대상의 거리감은 좀더 중요한 문제로 작동할 수도 있다. 영화의 카메라와는 또다른 게임매체의 접근방식이 만드는 재현대상과의 거리감 문제를 좀더 고민해 볼 이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소수자들의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소고

    < Back 소수자들의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소고 04 GG Vol. 22. 2. 10. 디지털게임은 한때 ‘소수자’들의 매체이기도 했다. 소수자라는 개념이 단순히 적은 숫자를 가진 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게임 초창기에 한국에서 게이머는 소수자에 가까웠다. 전자오락실은 불량한 이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낙인찍혔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엄연한 자영업장인 오락실에 학교 교사들이 들이닥쳐 ‘손님’인 학생 게이머들을 강제로 끌고나가는 영업방해 행위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불량한 오락실과 게임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이 부분은 아직도 유지되는 바 또한 있다) 게임은 눈치보면서 해야 하는, 말그대로 여가오락 문화 부문에서의 소수자 포지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을 소수자들의 매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콘솔게임 같은, 한국에서 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킬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소수자라는 개념은 단지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 분류하는 말은 아니다. 특히 급격히 게이머 범주가 넓어지기 시작한 모바일 시대 이후를 생각한다면 게임은 오히려 대중문화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 위상을 바꿔온 바 있었다. 대중문화콘텐츠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게임과 소수자의 문제는 좀더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대중문화라는 이름과 함께 하는 디지털게임의 이야기를 할 때 크게 세 맥락의 소수자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이 매체에 접근가능한 매체이용자로서의 접근성 관점에서 바라보는 소수자 문제이고, 두 번째는 이 매체가 콘텐츠 안에서 재현하고 재구성해내는 대상으로서의 소수자 문제다. 그리고 온라인게임이라는 특성에 따른, 게임 안에서 게이머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재현을 통해 나타나는 소수자 문제가 마지막으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은 대중문화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단지 ‘모두가 즐긴다’는 말로 그 의미를 뭉뚱그려선 안된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던,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실천과 개선의 방향까지를 대중문화로서의 매체는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 넓어지는 게이머 저변 안에서 커진 덩치만큼 우리의 디지털게임은 대중문화로서 갖춰야 할 지향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 또 그 실천이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를 고찰해 볼 때다. 접근성 관점에서의 소수자 이슈들 서구권의 게임연구들에서는 오랫동안 ‘비디오게임’의 주이용자층을 ‘젊은 백인 남성’이라는 그룹 안에서 살피며 게이머집단에서의 주류화와 그에 따른 마이너리티의 발생을 논의해온 바 있었다. 그러나 이용자집단의 문제는 게임 저변이 점차 넓어지면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형태로 게이머집단의 구성이 변화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서구의 ‘젊은 백인 남성’에서 ‘백인’은 빠지게 되며, ‘젊은’ 또한 게이머집단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점차 희미한 정체성이 되어가는 중이다. 콘텐츠가 타겟으로 삼는 소비자집단이 호응하는 피드백 속에서 남성 중심의 게임콘텐츠와 게이머집단이라는 점은 여전히 주류집단의 존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 플랫폼의 다양화와 모바일기기를 통한 대중화 속에서 남성중심적인 게임이라는 말도 과거만큼의 집중도를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지는 추세다. 전반적인 대중화의 과정에서 오히려 두드러지는 것은 특유의 인터페이스로 인해 접근성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인 장애인 게이밍, 혹은 노화나 미디어 리터러시 문제로 인해 접근이 어려워진 노년 게이밍과 같은 영역일 것이다. 여전히 손쉽게 게임에 접근할 수 없는 여러 환경들이 존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게임 접근성에 대한 고민들이 점차 누적되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대중문화로서의 게임이 가져야 할 범용성의 위상에 대한 변화들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매체의 재현에서 드러나는 소수자 문제 오랫동안 디지털게임이 주류 게이머가 아닌 대상을 향해 만들어낸 대상화된 재현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아온 주제였다. 수동적 대상이나 트로피처럼 등장하는 게임 속 여성의 문제, 존재 자체가 지워진 성소수자 문제, 비서구권 캐릭터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의 반복과 같은 문제들이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고, 이는 2000년대 이후 디지털게임 시장이 소비자 확장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오버워치>의 저격수 캐릭터 ‘아나’는 그런 변화를 상징할 만한 캐릭터다. 60대 노년 여성에 장애를 가진 비서구 아랍권 출신의 캐릭터는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라기보다는 마치 과거 인종차별과 대상화에 적극적이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변화한 양상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욱 넓어진 시장에서 대중문화콘텐츠로 어필하기 위해 이뤄진 시장적 조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의도가 어떤 것이건간에 게임에서의 소수자 재현 문제에 변화가 일어나는 확인 가능하다.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가 리부트되면서 변화한 캐릭터나, 가 게임 내 NPC들의 인종적 다양성을 컴퓨터 사양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옵션을 추가하는 것과 같은 변화는 분명 소수자 재현 문제에 있어 유의미한 변화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분들도 적지 않다는 점 또한 공존한다. 게이머 저변의 확대로부터 비롯되는 시장의 압박에 의한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는 글로벌 릴리즈가 중심인 AAA급 대형 게임들에 한정된 변화이며, 대중문화로서의 게임콘텐츠 전반에 걸친 변화라고 이야기하기엔 이제 겨우 첫 발을 뗀 수준이라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게이머 속에서의 소수자 문제 콘텐츠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수자 이슈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불거지는 이슈는 게이머 스스로로부터 발생하는 이슈들이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멀티플레이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디지털게임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로 이어지는 메시징 이상으로 게이머간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나타나는 맥락이 더욱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여성, 성소수자, 인종, 장애인에 대한 비하들부터 게임 캐릭터 등을 활용한 2차창작에 이르기까지 게이머들이 직접 생산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폭넓게 나타난다. 게임 규칙 내적으로서의 트롤링이나 일반적인 욕설, 모욕이 아니라면 아직까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나 혐오발언 등이 별도로 제재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는 않다. 현실의 현행법상에서도 차별금지법 등이 입법에서 난항을 겪는 것을 생각하면 게임 속에서의 소수자 차별 문제는 더 험난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된 콘텐츠 이상으로 이용자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소수자에 대한 대상화, 혐오 문제는 디지털게임과 소수자 문제를 다룰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왜 게임이 소수자 문제를 신경써야 하는가 접근성, 콘텐츠, 상호작용 세 측면 모두에 걸쳐 디지털게임과 소수자 문제를 살펴보는 이유는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결국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모두의 게임’이라는 대중문화로서의 디지털게임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소수집단에 의해 향유되는 것이 아닌, 이름 그대로 ‘대중’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매체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대중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과 그에 따라 해당 매체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무가 요구된다. ‘게임은 문화다’ 라는 말은 실제 한국사회를 이루는 대중문화의 일각으로 디지털게임이 자리하고자 할 때 요구되는 최소한의 윤리와 공공성을 갖추고자 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대중화 시대를 맞아 게임이 갖게 된 영향력은 기존에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커졌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 매체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부담 또한 막중해질 수 밖에 없다. 디지털게임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장벽 허물기, 게임 콘텐츠 안에서 사회적으로 소수자인 이들을 향한 부당한 표현을 줄이기, 그리고 게이머들 스스로가 이 매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무례가 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기. 이런 여러 요소들이 함께 할 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당당하게 ‘게임은 문화다’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실천이 따라가지 않는 한, 디지털게임은 적어도 좋은 의미로의 문화에 다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업계와 이용자 모두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효율 같은 건 필요 없어: 느리고 답답하게 게임하기

    < Back 효율 같은 건 필요 없어: 느리고 답답하게 게임하기 18 GG Vol. 24. 6. 10. * 데이비드 소로의 원작 <월든>은 2017년 디지털게임으로 발매된 바 있다. 스팀 등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다. 월든에 대한 단상 <월든(Walden)>이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라는 인물이 되어 그의 삶을 체험한다. 소로는 1845년에 도시를 떠나 숲 속 외딴 오두막에서 몇 년간 거주했고, 그때 깨달은 점들을 책 <월든>으로 썼다. 책과 동명의 게임 <월든>에서 플레이어는 1845년의 소로가 되어 당시의 삶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소로처럼 사계절 내내 매일 나무에 망치를 두드려 집을 수리하고,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옷을 기우며, 열매를 따서 병에 저장하고, 나룻배에 올라 노를 저어 호수를 이동한다. 실제 소로가 하던 일을 그대로 따라해보면서 여정을 하다보면 어느새 소로가 남긴 책 한 권, 월든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월든>에서 소로가 도시와의 오랜 분리 생활 끝에 알게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과 게임에서 모두 언급되듯, 모든 사물에게는 각자 고유한 삶의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되었다. 사과나무는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와 계절에 맞게 성숙할 필요가 없었고, 어디선가 북소리 장단이 들려온다면 발걸음을 맞추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을 듣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다른 사람의 목적, 시간, 가치판단 때문에 굳이 자신의 것을 바꿔야 할 필요가 없다는 <월든>의 통찰을 통해, 우리는 단지 소로의 삶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미덕으로 여기는 ‘효율’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만의 선택과 속도로 게임을 즐기기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속성뿐 아니라, 많은 게임들이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그에 맞춰 게임에서 최적의 선택을 찾아간다. 게임 문화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플레이는 많은 이들에게 이상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게임은 단순히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전개 방식을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폭넓은 경험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미디어이기도 하다. 일부 플레이어들은 의도적으로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일부 제작자들은 비효율을 강요하기도 한다. 효율 떨어지더라도 감수할만한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게임 <월든>의 철학을 게임 플레이에도 적용하면서, 게임 플레이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비효율의 사례와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효율성보다 더 우선되는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는 지를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 게임 플레이의 다양성 또는 인간 플레이어의 다양성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의도된 ‘비효율’ 게임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를 찾는 과정은 마치 퍼즐을 푸는 것과도 같다. ‘A라는 상황에서 B라는 아이템을 선택하고 C라는 행동을 하면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해답을 얻기 위해 플레이어는 수많은 조합이나 계산을 해보거나 공략을 찾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서 퍼즐의 답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어떤 플레이어들은 퍼즐의 해답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게임이 보장하는 정도(正道)를 무시하고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을 고의적으로 행한다. 자신의 실력을 확인거나 과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데, 예를 들면 초보자의 무기를 가지고 보스 몬스터까지 격파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게임 <다크소울> 시리즈에서는 “SL1 Run”이라는 문화가 있는데, 이는 캐릭터의 레벨을 전혀 올리지 않고 소울 레벨 1로 게임의 끝까지 완주하는 챌린지를 뜻한다. 쉽게 말해 ‘노렙업 플레이’이다. 스트리밍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플레이는 극단적인 모습에 무모하다는 감상을 전달하다가도 동시에 경외감을 선사하는 모습이다. 공격력이 매우 약한 초심자의 무기로 강력한 보스를 격파하는 이러한 도전은 사실 굉장히 비효율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의도된 비효율적 플레이는 동시에 플레이어의 실력을 가장 쉽게 증명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되기도 한다. 엄청난 시간의 플레이 타임이나 스피드런 기록의 수치가 의미하는 플레이어의 실력이 있듯, 알몸 상태의 막대기로 보스를 이기는 비효율적인 실황은 자신이 얼마나 실력자인지 알리고자 하는 플레이어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서 생긴 ‘비효율’ 승리나 성공이 아닌 다른 것에 게임 플레이의 목적이 있는 경우에도 비효율의 상황은 발생한다. 단순히 멋지다는 이유로 선택되는 무기, 장비, 스킬이 바로 그것이다. 어떠한 플레이어들은 능력적인 효과와는 상관 없이, 방어력이 비교적 낮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보인다는 이유로 그 옷을 선택하거나, 노출된 몸이 더 아름답기 때문에 옷을 입히지 않기도 한다. 또는 냉기 마법보다 화염 마법이 덜 효과적인 상황임에도 불길이 이글거리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더 강렬해보인다는 이유로 화염 마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취향의 문제에 캐릭터와의 관계로 비효율적인 선택이 배가되기도 한다. <포켓몬스터> 시리즈에서 플레이어는 포켓몬의 능력치를 따져 강력한 팀을 구성해 배틀을 진행해야 하지만, 자신과 게임 속에서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왔거나 더 귀엽다고 생각되는 포켓몬을 배정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비효율적인 선택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비슷하다. 수납력이 떨어지는 불편한 지갑이라도 누군가와의 추억이 담긴 선물이라면 기꺼이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다. 스토리 전개를 위해 효율성을 과감히 포기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인간의 삶 자체를 시뮬레이션화한 게임 <심즈4>는 현실처럼 다양한 직업군을 제공한다. 플레이어가 만든 캐릭터 ‘심’이 성장해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가질 수 있는데, 하루종일 글만 쓰는 작가부터 명망있는 사업가, 인스타 인플루언서까지 50개에 달하는 직업이 플레이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렇듯 각각 직업군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모두 다르고 근무시간, 출근 요일도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 <심즈4>에서 효율적인 플레이 방식은 캐릭터가 오랫동안 고소득 직장에서 능력을 쌓아 승진하고 부를 축적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심에게 극적인 스토리라인을 만들어주기 위해 비효율적인 결정을 내린다. 다른 직업과 비교했을 때 시급이 적은 바텐더나 화가를 시켜 힘겨운 삶에 살게 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기 위해 승진 없이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낮은 보수의 직업을 이어나간다. 현실성을 강조해서 나타난 ‘비효율’ ‘탈것’이란 보통 게임에서 말, 자동차, 비행기처럼 캐릭터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도보로 먼 거리를 이용해야하는 상황에서 이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탈것은 게임에서 플레이의 효율을 증가시키는 대표적인 시스템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플레이어의 시간을 아껴주는 편의성 콘텐츠로 보편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반면 어떤 게임들은 일부러 탈것을 존재시키지 않는다. 개발자의 의도가 담겼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개발자들은 게임의 현실감을 증가시키고 싶은 의도에서 플레이어가 두 다리로 직접 걸어서 이동하도록 한다. 또는 탈것이 게임 내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이동속도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탈것에게 기대하는 높은 속도의 이동이 아닌 실제로 그 수단이 현실에서 사용되는 시간의 그대로를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현실성의 강조는 탈것뿐 아니라 게임 속 캐릭터의 생활 방식 자체에 적용될 수 있다. <레드 데드 리뎀션2>는 현실적인 연출을 묘사한 게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캐릭터가 직접 사냥하고, 가죽을 하나하나 벗기고, 요리를 하는 시간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이러한 게임의 표현 방식은 일각에서는 현실성이 높아 몰입을 가져다준다는 평가 받기도 했지만 상당수의 플레이어의 시간을 잡아먹고 답답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플레이타임 대비 얻은 게임 속 자원의 형편 없음을 지적했다.( 게임제너레이션 11호 글 참조) 혹자는 이런 상황을 보고 개발자들이 ‘낭만’을 추구한 결과라고 표현한다. ‘낭만’은 상대적인 가치다. 어떤 사람에게는 낭만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 답답함 뿐인 부정적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소위 ‘개발자의 낭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게임의 평판에도 부정적인 평가를 가져오게 된다면 개발자는 뒤늦게 조치를 취하기도 하는데, 탈것을 유료 재화나 DLC로 추가 업데이트 하거나 불필요한 소요 시간을 단축하는 버튼 등의 시스템을 추가한다. 물론 현실성을 강조해서 나타난 비효율적 플레이는 개발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에 의해 추구될 수도 있다. 탈 것이 있음에도 타지 않는 플레이어들에 해당되는 말이다. 필자의 경우 <용과 같이 8>에서 캐릭터를 빠르게 먼 장소까지 이동할 수 있는 택시라는 수단이 있었음에도 잘 이용하지 않았다. 평소 일본 요코하마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선뜻 실현할 수 없었는데, 게임 속 배경인 요코하마의 거리 풍경이 너무 잘 표현되어있었기 때문에 굳이 도보를 통해 걸어가면서 여행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덕분에 플레이타임은 게임 공략에서 제시하는 수준보다 훨씬 초과하였지만, 주변 경관을 즐기기 위해 느릿느릿 도보를 선택하는 플레이어에게는 비효율적인 선택이 오히려 더 가치있는 플레이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의 가치가 달라서 만들어진 (상대적인) ‘비효율’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비효율의 사례는 플레이어의 삶 전반에 깔린 태도이자 시간에 대한 문제다. 게임을 즐기는 부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공략을 보면서 빠르고 효율적인 선택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부류와 공략 따윈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 헤매고 깨닫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부류다. 두 타입의 플레이어 모두 각자의 만족감을 추구한다. 공략을 보지 않는 플레이어는 고행길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데에서 성취감을 얻는다. 반면 공략을 보는 타입의 플레이어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 없이 게임을 최적의 루트로 클리어 한다는 데에서 만족감을 얻게 된다. 이러한 플레이어의 태도는 각자의 시간의 가치가 달라서 나눠진다고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스카이: 빛의 아이들>이라는 게임을 할 때의 일이었다. 게임에는 양초라는 상징적인 아이템이 있다. 이 양초는 스킬이나 캐릭터 커스텀 등을 구입할 때 사용되는 주요 재화로, 게임의 맵 전체에 걸쳐 분포 되어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맵을 탐험하면서 양초를 수집해야만 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게임은 맵을 탐험하는 것이 주 콘텐츠였기 때문에 양초란 사실 수집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재화이기도 했다. 나는 한 플레이어와의 대화 중 어떤 이야기를 들었고, 그가 게임 커뮤니티에서 읽은 양초 획득 공략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가 말하길, 전체 맵에는 총 00개의 양초가 분포되어 있고, 양초 위치를 외워서 최단 거리로 이동하면 이 게임은 하루 XX분만 해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양초 위치가 표시된 맵 지도는 커뮤니티에 다 나와있으니 참고하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 뒤에 이어진 내 대답은 크게 부응하진 못했다. “아, 그렇구나. 고마워. 근데 왜 그래야 하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플레이어와 그렇지 않는 플레이어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타당한 이유도 있었던 것이, 그 플레이어는 “하루 중 게임에 접속할 수 있는 시간이 XX분밖에 안된다”라고 언급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소위 ‘효율충’이 되어버린 데에는 배경이 있음을 설명했다. 하루에 30분밖에 게임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만을 추구해서 하루종일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사람과 동등한 성취를 얻도록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효율/비효율은 플레이어의 다양성의 문제 효율성은 분명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플레이 방식일 필요는 없다. 게임에서 비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성공에 관심 없는 것이나 열등하거나 패배적인, 혹은 의도에서 벗어난 부적응적인 태도라고 보긴 힘들다. <월든>에서 소로가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고유한 삶의 속도를 발견했듯이, 무엇이 게임에서 ‘성공'인지 각자가 내리는 정의가 다를 뿐이며 플레이어 각각에게 존재하는 삶의 속도가 다를 뿐이다. 비효율적인 게임 플레이는 게임이 단순한 목표 달성의 도구가 아닌 복합적인 경험의 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을 통해 게임을 어떻게 접근하고 경험하는지를 드러낸다. 효율을 추구하는 플레이어들은 빠른 진행과 최적의 결과를 위해 게임 내의 모든 선택을 계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탐험과 발견, 그리고 감정적인 만족감을 중요시한다. 이는 마치 소로가 숲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찾았듯이, 플레이어들이 게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찾는 과정과도 같다. Tags: 제노바첸, 효율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보라무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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