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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 Back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10 GG Vol. 23. 2. 10. 2022년 12월 8일 할리우드 스타일로 “최고의 게임을 기념하는”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가 9번째로 개최되었고, 1억 3백만명의 시청자들이 시상식을 생방송 스트리밍으로 지켜보았다. 1) 오스카 시상식과 비슷하게, 이 행사는 크고 작은 게임들에 대한 업계 인식의 융합이자, 게임의 예술적 또는 기술적 장점에 대한 검증이자, 게임 마케팅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문화적 공간의 지표라 할 수 있다. 작은 규모의 게임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더 게임 어워드는 AAA마케팅 및 최신 블록버스터 게임들에 대한 문화적 장치(cultural apparatus)다. 실제로 더 게임 어워드는 축하공연이나 수락 연설같은 것을 없앤 속사포 스타일로 시상식을 진행한다. 이는 트레일러나 퍼스트룩, 게임플레이 프리미어 등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주로 정교한 음악 프레젠테이션이나 리드인(lead-ins) 등이 포함된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메탈기어 솔리드(Konami)〉와 〈데스 스트랜딩(Kojima Productions, 2019)〉 등으로 유명한 슈퍼스타 개발자 히데오 코지마(Hideo Kojima)가 등장하기도 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Sony, 2022)〉나 GOTY 수상작 〈엘든링(FromSoftware, 2022)〉 같은 거대 AAA 작품들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비중에 있어 절대적이었던 가운데 그보다 소규모인 게임들 또한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으나, 더 게임 어워드는 주로 큰 예산으로 만들어진 주류 게임들을 축하하고 홍보하는 행사였다. 행사의 밤은 이제는 유명해진 어느 젊은 청년의 히데타카 미야자키(Hidetaka Miyazaki) 수락 연설 난입 사건과 함께 종료됐는데, 이는 우리가 주류 게임 문화로서 아무리 격식을 갖춘다 할지라도 그 수면 아래에는 밈-주도의 사회적 일탈이 끓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더 게임 어워드에서 드러난 사회경제학적 권력의 융합은 서구의 AAA게임에 대한 연구에서 나타나는 3가지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첫째는 거대 예산 게임의 창의적 영역과 예술적 장점이고, 두번째는 그러한 거대 규모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출시하는 개발사와 노동 환경과 관련된 문화적 영역으로, 이는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고 있는 게임 문화와 엮어있다. 셋째는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 경험으로서 게임을 마케팅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수익 요소에 관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AAA게임의 맥락에서 이와 같은 경향을 둘러싸고 생성되고 있는 담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게임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장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게임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위해성과 혜택에 대해 미디어와 학계에서 엄청난 관심을 쏟았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 대해 폭력적인 게임 콘텐츠가 미칠 영향에 큰 관심이 모였다. 2) 이 시기 여러 게이머들과 일부 연구자들이 어렴풋이나마 게임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있긴 했지만, 게임을 수준 낮은 미디어 형식으로 보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펠런 파커(Felan Parker)의 언급대로, 게임 및 게임이 지닌 예술적 특성에 대한 논의는 미국 영화비평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악명 높은,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게임은 절대로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언급 이후 2005-2010년 사이에 등장했다. 3) 이와 같은 언급으로 촉발된 논쟁에 언론과 학계의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그와 같은 ‘비-예술’의 전제로부터 게임이 벗어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감독들이 그러하듯, 게임 디자이너를 자신이 만든 게임에 뚜렷한 예술적 스타일을 남길 수 있는 작가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4 )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몇달 전 게임 어워드에서 나타났던 핵심 게임 감독들의 높아진 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AAA게임은 높은 가시성 그리고 생산 및 마케팅을 위한 엄청난 예산 덕에 새로운 콘솔을 위한 플래그십 게임으로서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AAA게임은 또한 게임 디자인에 있어 기술적 한계를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2010년 초반 인디게임 붐이 일기 전까지 예술적 게임 담론을 점유해왔다. 브랜든 커우(Brendan Keogh)는 AAA게임 개발사들이 수익 창출을 중시하는 거대 퍼블리셔 밑에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게임들이 관습적이거나 안정지향적으로 전통적인 AAA게임의 틀에 맞춰 개발되어왔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5) 그럼에도 비디오게임 작가의 전설은 지속되었는데, 게임담론장에서 2010년대에 비해 ‘인디’게임들의 비중이 훨씬 적어진 가운데, 히데오 코지마의 〈데스 스트랜딩(Kojima Productions, 2019)〉 같은 게임은 관습에서 탈피한 게임플레이와 미학을 만들어냈다. AAA게임들은 부분적으로 ‘인디’적인 디자인 및 미학의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왔다. 6) 물론 매년 출시되는 스포츠 시리즈 게임이나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Acitivision)〉 같은 FPS 프랜차이즈처럼 관습을 무시하지 않는 친숙한 AAA게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게임 시상식- 나아가 보다 확장된 게임 저널리즘 - 은 기존하는 친숙한 장르적 관습을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살짝 새롭거나 도전적인 것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이 작가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는 인디적인 감성을 살짝 가미한 형태의 AAA게임들을 칭송한다. 게이머와 업계는 그와 같은 방식을 지지하는데, 그 이유는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논쟁이 여전히 대중문화계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접근이 게임플레이를 하나의 가치있는 활동으로 보이게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판매율을 높이고 소비자 기반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의 숨겨진 문화적 속성을 승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AAA개발사 내부의 작업 방식은 안타깝게도 게임 작가에 대한 강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학계에서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AAA 노동 문화에 있어 과도한 업무량과 젠더적으로 편향된 작업환경은 눈에 띄는 특징이다. 게임업계의 과도한 업무량에 대한 초기 연구로는 2006년 다이어-위데포드와 드 퓨터(Nick Dyer-Witheford and Greig de Peuter)의 작업을 들 수 있는데, 노동 착취, 번아웃, 이직률, 그리고 이 극단적인 노동 문화 내 노조 결성을 향한 투쟁 등을 다뤘다 7) . 12년 후인 2018년에는 코타쿠의 전 작가 제이슨 슈라이어(Jason Schreier)가 당시 〈레드 데드 리뎀션 II(Red Dead Redemption II, 2018)〉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의 ‘크런치 문화’를 폭로했다. 8 ) 근 20여년의 세월동안 거대 예산 게임 개발분야의 문제로 알려져 왔음에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크런치 모드는 여러 분석과 연구의 핵심적인 주제로서 다뤄지고 있는데, 특히 학계에서는 노조 결성 및 노동자 권리와 관련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9) 이와 관련해서 개발사 내 젠더 격차 문제가 있다. 2013년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Game Developer’s Magazine)이 실시했던 설문조사를 인용한 연구에서, 드 윈터와 코큐렉은(Jennifer deWinter and Carly Kocurek)은 “급여에 있어 젠더 격차는 (96%가 남성인) 프로그래밍과 엔지니어링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게임 관련 고용 부문에서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10) 그 이유가 여성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여성이 게임업계에 진출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짐작과는 반대로, 연구자들은 여성들이 게임 문화의 여성혐오적이고 해로운 요소의 영향을 받은 개발사 내 업무 문화에 의해 훨씬 더 소외받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보다 빨리 번아웃하게 되고 업계를 떠나게 됨을 밝혀냈다. 11) 게임문화를 다룬 여러 연구들은 AAA게임들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처럼 게임문화와 작업환경 간에 무한으로 반복되는 고리 때문이다. 게임문화나 개발사 내 업무 환경에 있어 그 어떠한 변화라도 게임문화 내 노동 공간과 놀이 공간 사이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최근 AAA게임을 비롯한 게임 전반에 걸쳐 많은 관심이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화에 쏠렸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소액결제, 확률형 아이템, 배틀 패스가 핵심이었다. 이러한 경향이 모바일 및 그리고 프리-투-플레이(free-to-play) 게임과 연관되는 것이긴 하지만, AAA게임의 정의가 규정되어있는 것은 아니므로 프리-투-플레이 모델의 카테고리에 AAA 게임이 배제되어야 할 본질적인 의미는 없다. 배틀패스를 다뤘던 다니엘 조세프(Daniel Joseph)의 연구가 보여주었듯,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도타2(DOTA 2)〉, 〈포트나이트(Fortnite)〉 등 거대 개발사에서 만든 대작들도 프리-투-모델이나 소액결제를 주요 수익화 모델로서 활용할 수 있다. 12) 조세프가 주목한 것은, 게임사들이 소비자로부터 효과적으로 돈을 뽑아내기 위해 그러한 모델을 통해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방식으로 게임을 쇼핑 플랫폼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3) 게이머들로부터 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게임 서비스나 시즌제 모델이 크게 강조되면서 소액결제 방식이 AAA게임들의 제작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모델들이 얼마나 약탈적으로 진화할 지 크게 우려 된다. 이는 단지 착취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익화 방식이 AAA게임의 제작 및 소비 방식을 변질시킨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또한 AAA 게임 개발에 있어 노동 문제에 더해 새로운 형태의 크런치 모드를 만들고 있다. 조세프가 지적하듯 〈포트나이트〉 개발자들은 “...(중략)...게임의 엄청난 성공 및 다음 시즌과 배틀 패스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문제로 인해 주당 100시간에 이르는 노동 시간을 보고”하고 있다. 14)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메이저 게임 개발사들이 예술적 인정과 명성 그리고 전능한 달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속에서, AAA 영역에 대한 학계의 작업은 계속해서 해결되지 못한 채 존속하는 문제들을 비출 것이다. 참고문헌 1. Zheng, Jenny. “The Game Awards 2022 Received Over 103 Million Views, Sets New Viewership Record.” Gamespot. December 16th, 2022. 2. Ivory, James D., “A Brief History of Video Games.” The Video Game Debate: Unraveling the Physical, Social, and Psychological Effects of Digital Games. Edited by Rachel Kowert and Thorsten Quandt.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6, 16-17. 3. Parker, Felan. “Roger Ebert and the Games-as-Art Debate.” Cinema Journal 57, no 3 (2018):77-79. 4. Ibid., 95-96. 5. Keogh, Brendan.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Edited by Kate Oakley and Justin O’Connor.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5. 153-154. 6. Lipkin, Nadav. “Examining Indie’s Independence: The Meaning of ‘Indie’ Games, The Politics of Production, and Mainstream Co-optation.” Loading… The Journal of the Canadian Game Studies Association 7, no 11 (2012): 8-15. 7. Dyer-Witheford, Nick, and de Peuter, Greig. “‘EA Spouse’ and the Crisis of Video Game Labour: Enjoyment, Exclusion, Exploitation, Exodus.” Canadian Journal of Communication 31, no 3 (2006): 599-617. 8. Schreier, Jason. “Inside Rockstar Games’ Culture of Crunch. Kotaku. October 23rd, 2018. 9. Cote, Amanda, and Harris, Brandon, C. “‘Weekends Became Something Other People Did’: Understanding and Intervening in the Habitus of Video Game Crunch.” Convergenc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New Research into Media Technologies 27, no.1 (2021): 161-176. 10. deWinter, Jennifer and Kocurek, Carly. “” Gaming Representa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Edited by Jennifer Malkowski and Treaandrea M. Russwor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7, 65. 11. Ibid. 12. Joseph, Daniel. “Battle Pass Capitalism.”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1, 1 (2021):68-83. 13. Ibid., 81. 14. Ibid.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Marc Lajuenesse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夢としてのクソゲ
< Back 夢としてのクソゲ 05 GG Vol. 22. 4. 10. * 이 글의 한글 번역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culturemagazinegg.wixsite.com b3ca971a-22ba-428a-8fde-4af1a167b94f "패미컴을 통해 초능력을 개발한다"라는 테마로 개발된 게임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초능력 붐 속에서 초능력자로 알려졌던 키요타 마스아키(清田益章; 통칭, 에스퍼 키요타)씨가 감수한 〈마인드시커〉라는 작품이다. 플레이 과정에서 조언자 격으로 등장하는 키요타씨의 지시를 받아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핵심 컨셉은 "실제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였다. 超能力開発ゲーム『マインドシーカー』 「ファミコンを通じて超能力を開発する」というテーマで開発されたゲームがあった。 1980年代当時の日本の超能力ブームのなか、超能力者として知られていた清田益章氏(通称、「エスパー清田」)が監修した『マインドシーカー』(FC,1989)という作品だ。作中に登場する清田氏の指示をこなし、この作品を遊ぶことで、実際に超能力が使え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た。 筆者も、このゲームを昔、実際にやってみたことがある。しかしながら、そもそもゲームが要求する課題に応えることができない。「では、まず透視をしてみましょう」とか、「予知をしてみましょう」というような課題が次々に出てくる。残念ながら、かすかな超能力も秘めていなかった(?)筆者にとっては、初期の課題からしてすでに達成困難だった。そのため、超能力は得るには至らなかった。 『マインドシーカー』は、まともにクリアすることができず、まともに楽しむことも難しく、(おそらく)超能力を開発することもできない。それゆえ、この作品は、何一つ成功を収めているとは言えない作品であると言ってもいい。 そう、何一つ成功を収めていないのだ。 しかし、それでも、この作品には、特筆すべきものがあると言いたい。 それは、作り手と、遊び手の、ゲームへの「夢」が詰め込まれているということだ。そのあまりに直接的な夢のあり方の痕跡を確認できるという意味において、この作品ほどわかりやすい作品は珍しい。本稿では、この「夢」をどのように評価するべきかということを少しだけ書いてみたいと思う。 夢の装置としてのコンピュータ・ゲーム 『マインドシーカー』の発売された当時、コンピュータ・ゲームという文化が、かつて担っていた面白さの一部は、このようなものだった。すなわち、人々の無制限な夢を実現してくれる機械であるということだった。 コンピュータの中のキャラクターと対戦ができる。登場人物と話ができる。モニターに向かって銃を撃ったら反応を返してくれる。声を入力することができる……今では当然とも思えるこれらのことは、1980年代に多くの人の目の前に急速に日常に現れた新しいテクノロジーのあり方だった。「コンピュータが進化すれば、ゲームでなんでもできるようになる」という、無責任な夢を多くの子供が信じたし、ゲームの作り手は、その夢をどんどん具現化していった。それが1980年代の、ファミコンがヒットし、ゲームというメディア自体が多くの人の、果てしない夢を、ある意味で無責任に担ってしまうことが可能だった時代の風景だった。 もっとも、テクノロジーが人々の「夢」を無責任に背負うという構図それ自体は、コンピュータば・ゲームに限ったことではない。佐藤俊樹は、情報社会の未来を語る情報社会論の言説が何度も何度も同じ夢を繰り返しみてきたということを1996年に指摘している(『ノイマンの夢・近代の欲望』1996,講談社選書メチエ)。1970年代にも夢は語られ、1980年代にも夢は語られ、繰り返し、繰り返し「情報技術が社会を変える」という「神話」が語られてきたという。佐藤は、図書館のなかに溜まっている情報社会論を議論する構図がほとんど変化していない、ということをある日、発見し、そのことに驚いたという。 「コンピュータがどう社会を変えていくか」という言説が、オトナが社会に見る夢を際限なく拡大させる装置であるとするならば、1980年代のコンピュータ・ゲームは、子供が遊びに見る夢を際限なく拡大させていく装置であったと言ってもいい。1980年代の世界は、その夢の「素朴さ」という点において、2022年現在とは隔絶したものがある。もちろん、2022年現在においても、人々はAIに過剰な夢を託し、もっと本格的なVRゲームの実現を心待ちにしている。しかし、1980年代に見られた夢とは、どうも、その性質が異なっている。 誰が、1980年代のクソゲーの担い手だったのか? 何が異なっているのかといえば、無茶な夢の担い手が、一体誰だったのかということだ。 1980年代の伝説的なクソゲーを作ったのは、ポッと出の新人 や、他業界の素人 には限らなかった。「クソゲー」の担い手は、しばしばゲーム業界の中心人物だった。 『マインドシーカー』の開発プロデューサーは、あの『パックマン』の生みの親である岩谷徹が勤めている。そして、開発の中心にいた鈴木浩司は、その後1997年にRPGのあり方に大きな波紋を投げかけた『moon』の開発に関わり、今で言うインディーゲーム文化の先駆けとなる作品に大きな貢献を果たした人物でもある。 ゲーム業界の重要人物が、「クソゲー」に関わるという構図は、実は珍しくない。アメリカの家庭用ゲーム機のマーケットの崩壊(いわゆる「アタリショック」)を導く要因の一部となった「伝説のクソゲー」として参照される『E.T.』(Atari 2600,1982)の開発担当者Howard Scott Warshawも、当時のアタリ社におけるスター開発者だった。『Yar’s Revenge』(Atari 2600,1981)というAtari 2600において最も売れたとされるタイトルの開発者である 。Howard Scott Warshawは、無茶な話を勢いよく引き受けて、『E.T.』を作った。 ちなみに、日本の1980年代の代表的なクソゲーである『たけしの挑戦状』は、今で言うところの「オープン・ワールド」の実装を夢見て、華々しく失敗した作品ということができるが、これはゲーム業界の内部ではなく、タレントのビートたけしによる素朴な発案だった 。 彼らは、コンピュータ・ゲームに人々が見ていた「夢」を引き受け、そして失敗したのである。 今思えば、それは、あまりにも馬鹿馬鹿しく、未熟で、粗末なものだった。そう、言うことはできる。そして、時代の寵児たちが、馬鹿馬鹿しい失敗をできたということは、ゲーム業界全体が若い時代特有の特権だったといってもいい。馬鹿げた夢をひきうけ、それに無謀に挑戦することが許されたのだ。それは、出来上がった作品を見てみれば、不幸なプロジェクトだったようにも見えるかもしれない。 しかし、2022年の現在から見てみれば、業界のトップスターが、ひどく馬鹿げた企画に、馬鹿げた予算をかけ、馬鹿げた情熱を注ぐということは、ほとんど見ない風景になってしまった。もちろん、突拍子もない企画でヒットを狙おうとすることや、失敗するプロジェクト自体は今でも存在する。しかし、そこにトップクリエイターが最初から張り付き、巨額の予算がかけられるということ自体は、ゲーム開発に関わるリスクの意識が発達した現代の大規模開発では、なかなか見られないものになった。 繰り返すが、1980年代のクソゲーのもつ「愚かさ」は、開発者たちの無能さゆえではない。むしろ、未熟で有能な人々が、夢を煮詰めたプロジェクトに全力で取り組んだものの痕跡が、1980年代の「クソゲー」なのである。 新しいものをつくる装置としてのクソゲー これほどまでに、素朴な欲望の発露によって、大作を作ろうとする志しは、今となっては、むしろ眩しくすらある。 「超能力を開発できるゲーム」など、馬鹿らしいにもほどがあるし、1980年代に大規模なオープン・ワールドのゲームをつくろうなどという野望もあまりに無理があった。 この後、コンピュータ・ゲームという世界のなかに漂う「夢」を引き受ける一つのピークとして生まれた作品は、1999年の『シェンムー』(DC,1999)だっただろう。『シェンムー』もまた、夢が詰め込まれた作品だった。『シェンムー』はもう一つの現実世界をゲームの中に実装しようという多くの人が夢見ることの一つを、愚直に実現しようとした作品の一つだ。この作品が残したのは赤字だけではなく、失敗とも成功ともなんとも言い難い強烈な印象だった。今の「オープン・ワールド」と言われる作品の多くは、直接にせよ間接にせよ『シェンムー』の試行錯誤の結果を反映させてつくられている。 コンピュータに人々が見る「夢」は多くの場合、無責任なものだ。 それはしばしば愚かだったり、詐欺まがいであると言ってもいい。その愚かさはしばしば滑稽なものになり、出来上がったものは笑いを誘う。人々が何かを笑うときというのは、ある認識の枠組みを外側からメタ視点に立てるようになっている瞬間でもある。夢は、その内側にまどろんでいるときには尊く、その外側に出れば、ときには笑いを誘う。「夢」を見るとういうことは、その意味で滑稽であることが宿命付けられたものだと言っていい。 ゲーム業界が成熟するほどに、笑えるほどに愚かな作品をつくることは大手のトップクリエイターの仕事としては難しくなった。その結果、1990年代も後半になってくると、より小さなゲームの開発元が果敢なクソゲーも、単に開発力不足によるクソゲーも、その両方を担うようになっていった。現代では広大に広がるインディーマーケットがその主力を担っている。 我々は、笑えるほどに愚かしいものをつくることによって、新しいものをつくることができるとも言える。我々が新しいものを見たいと思い、前に進みたいと思う欲望と、笑えるほどに愚かな作品をつくってしまうことは表裏一体の現象である。 私は『マインドシーカー』を起動して、久々に遊んでみると、そこにはもちろん、笑ってしまうような馬鹿馬鹿しさがある。たしかに、ゲーム自体は馬鹿らしいのだ。しかし、このゲームは、同時に輝いているようにも感じてしまう。それは、その馬鹿らしさを可能にしているものの存在を背後に感じ取ってしまうからだ。夢をみて見たいと思う人々の子供のようなワクワクとした気持ちが、この作品の裏側には横たわっている。それは無茶なものだったとしてもいい。 それこそが世界の多様さと豊かさのありようだ、と私は考える。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Inoue Akito ゲーム研究者。現在、立命館大学講師。国際大学GLOCOM助教、関西大学特任准教授などを経て現在に至る。「ゲームとは何か」という問いを中心に据えつつ、ゲームのアーカイブや、ゲームを応用した社会的課題の解決に関わるプロジェクトなどにも取り組んでいる。 Game researcher. Currently a Senior Lecturer at Ritsumeikan University. After completing a master's degree at Keio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Media and Governance, he worked as an assistant professor at International University of Japan GLOCOM and a specially appointed associate professor at Kansai University before assuming his current position. He is also involved in projects related to game archives and databases. He is the author of "Gamification" (NHK Publishing, 2012).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게임의 경계는 어디까지 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든 일본어든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Beyond the K-Game
< Back Beyond the K-Game 09 GG Vol. 22. 12. 10. K-게임은 어찌하여 호K호형 하지 못하는 신세로... 접두사 ‘K-’가 붙는 단어들이 있다. K-웹툰, K-드라마, K-POP, K-영화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닮은 점이 있다. 컨텐츠라는 점이다.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안으로는 국민에게 사랑받고, 해외로는 우리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K로 시작하는 컨텐츠임에도 저기에 끼지 못한 서자가 있다. 이름하여 K-게임이다.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대중에게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항변할 것이다. K-게임은 컨텐츠 수출을 견인하는 산업일꾼이란 주장이다. 업계종사자 중에서는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게임은 다른 K-게임과 다르다는 이유다. 맞다. 인정한다. 컨텐츠 수출액의 70%를 점하는 효자이고, 국내와 해외에서 사랑받는 K-게임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다. 수출역군의 일등공신도 BM(비즈니스 모델)이고, 대중에게 배척받는 이유도 BM이다. 예상하듯이, 그 BM은 확률형 아이템을 주 기반으로 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여러 자리에서 주장해 왔기에 ‘확무새’라고 지겹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주 독자층이 주로 ‘게임高관여층’일 것이기에 또 한번 쓸 수 밖에 없다. 태풍의 눈에 있으면 태풍의 세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극히 일반적인 게이머들의 생각을 되풀이해서 들어야 한다. 랜덤박스와 P2W의 결합: 게임사엔 최고의 궁합, 이용자는 최악의 조합 확률형 아이템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는 게임의 본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한 달에 한 번 매직 더 개더링 카드팩을 살 수 있었다. 그 날은 매월 가장 설레는 날이었다. 카드팩을 뜯을 때 나던 그 특유의 카드 냄새, 드물게 나오는 레어카드의 기쁨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 'Mirri, Cat Warrior'. '매직 더 개더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템페스트 블록’중 엑소더스에 등장한 레어 카드. 당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던 녹색 생물이다. 이 카드를 뽑고선 15년 인생 중 가장 큰 짜릿함을 경험했다. 문제는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Pay to Win’(이하 P2W) 과 만났을 때다. P2W 시스템은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에 필요한 핵심 조건, 즉 캐릭터 능력치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행위 및 이것을 유도하는 게임구조를 말한다. 이용자는 P2W을 통해 남들보다 적은 시간을 투자하여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어찌 보면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아울러 P2W 이 게임 밸런스를 과하게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살짝만 곁들여지면 게임의 재미를 더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매운 맛을 좋아한다고 음식에 캡사이신 소스를 뿌려대면 응급실행이다. 마찬가지로 P2W이 과하면 게임을 해치는 독이 된다. 대다수의 P2W 아이템이 확률형 아이템 BM을 통해서만 획득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더 좋은 P2W 아이템일수록 더 낮은 획득 확률이고, 자연스럽게 사행심도 함께 부추겨진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낮은 확률을 뚫고 어렵사리 아이템을 구해도 안심할 수 없다. P2W 아이템을 계속해서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먼저, 어렵게 획득한 P2W 아이템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확’풀어 버린다. 그리고선 보다 높은 등급의 희귀 P2W 아이템을 랜덤박스로 내놓는다. 즉, 인위적으로 아이템 성능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기존 아이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주로 대규모 패치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주기가 짧을수록 잦은 과금을 해야 한다. 지상 낙원을 꿈꿨던 랩처, 그러나 그 끝은 파국만이 있었다 “회사의 제1원칙은 수익 창출이다. 따라서 민간의 영리활동에 정부나 국회가 과하게 개입해선 안된다.” 업계의 논리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자유와 방종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바이오쇼크'라는 게임시리즈가 있다. 심오한 세계관과 뛰어난 연출로 평론가, 이용자 모두에게 극찬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07년에 출시된 '바이오쇼크 1'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바이오쇼크1'은 수중도시 랩처가 배경 무대다. 이 곳은 앤드류 라이언이라는 자유지상주의자에 의해 건설된 도시다. 랩처엔 특징이 있다. 그 어떤 규제도, 간섭도, 책임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순도 100%의 자유로만 채워진 공간이다. 언뜻 들으면 낙원 같기도 하다. * 초기 랩처의 유토피아 모습. 그러나 랩처의 끝은 파멸이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기본적인 규범과 도덕마저 부재했다. 욕망을 한껏 부추기는 환경은 즐비했지만, 제동장치는 없었다. 결국 랩처의 주민들은 광기에 빠져 공멸했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 방종으로 파멸한 랩처. 우리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BM의 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개선의 기회도 충분히 주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니라 업계에 자율규제를 맡겼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했다. 전 세계 초유의 게임이용자 집단 연쇄시위 사태, 이를 통한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를 코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업계의 대응 방식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자,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국회 문체위 모든 의원실에 입장문을 전달하는 협회의 모습에서 랩처의 그림자가 겹쳐보였다. 마치 랩처처럼, 협회는 게임 이용자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규제, 최소한의 이용자 보호조치마저 거부했다. 그런가 하면 타 의원실을 통해 청부 입법하기도 했다. 자율규제를 유지·강화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결국 법안은 철회되었다. 그런가하면 민간 자율기구에서 사실을 왜곡하여 의원실을 폄훼하기도 했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다시 '바이오쇼크 1' 이야기다. 스플라이서라는 존재들이 있다. 본래 평범했으나, 마약성 유전자 변형제인 '아담'에 중독되어 그 부작용으로 괴물화된 랩처의 주민이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이슈에 대해 여론이 돌아섰다. 질병코드 문제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2019년 당시와 지금을 놓고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3년 전에는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업계편에 서서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전에서도 등재 찬성측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랜덤박스 규제에 대한 업계의 대응을 보고 게이머들의 마음이 식어버렸다. 한번 차가워진 여론은 되돌리기 어렵다. 국내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에게 분노를 넘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게임 이용자들의 지지를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질병코드 등재에 찬성하고 나서는 게임 이용자들도 여럿 보이는가 하면, 확률형 아이템 위주의 게임을 도박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실제로 최근 질병코드 등재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사의 업보’라며 조소어린 관망세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게임업계의 대응은 스플라이서와 쌍둥이 꼴이었다. 본인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다. 원코인 남은 심정으로.. 지난 2년 동안 K-게임환경은 지각변동이 있었다. 연쇄 트럭시위, 마차 시위, 집단 소송은 물론 여러 정부 기관에 민원 제기까지, 이제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게임업계는 이용자의 집단화를 두려워하고 피해야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도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애정마저 식으면 K-게임의 엔딩은 ‘배드 루트’뿐일 것이다.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Here comes a new challenge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국회 보좌관)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 게임과 데이팅 세계
< Back 게임과 데이팅 세계 16 GG Vol. 24. 2. 10. 욕망의 수치화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소개팅을 하다보면, 첫 만남 이후 관계 설정을 위한 만남의 횟수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소개팅 이후 가볍게 혹은 종종 계속해서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상대와 만나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소개팅은 ‘연애’를 목적으로 한 만남이고, 이 때문에 첫 만남에 애프터를 신청할 것인지, 그리고 애프터 이후 몇 번의 만남 뒤에 공식적으로(officially) 연인관계로 돌입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존재할 가능성이 의외로 높다. 이처럼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때 ‘굳이 정의하지 않고 넘어가도 될 만큼 서서히 스며드는 애정의 관계’라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소개팅의 법칙(!)도 마찬가지고, 의외로 친구 관계에서도, 더 나아가 아주 관습적이라 일컫는 결혼도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관계 혹은 감정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하면 연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어쩌면 반대, 즉 연애를 해야만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이성애)연애의 완결은 마치 결혼인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는 수많은 형태의 (굳이 게임적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선택지’의) 사랑이 존재한다. 1) 가족 간의 사랑 2) 친구 간의 사랑 3) 연애 파트너, 즉 섹슈얼한 대상으로서의 사랑 4) 상대방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랑(짝사랑으로 주로 표현되는) 등. 생각보다 사랑의 모양새는 다양하고, 우리는 이를 정확하게 정의내리지 않으면서도 모순적으로 상대적 기준을 통해 수치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 특히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형태는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눈여겨보고, 이것이 과연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욕망의 수치화가 높은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미디어 환경 내부에서 인간의 일상적 ‘플레이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사랑을 게임을 통해 인지했거나, 이미 게이미피케이션이 고도로 진화된 상황에서 현실의 사랑을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자. 그렇지 않은가. 이미 사적/감정적인 대상이 모두 미디어에서 재현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미 수치화한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 메신저에 응답하는가. 사귀는 사이에서 하루에 전화는 몇 통을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소셜 미디어 팔로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이다.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의 사적인 플레이 역사 : 사랑을 게임으로 배웠나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연구자 본인은 시스젠더 여성이고, 남성애자에 가깝다. 그러나 십대 때 본인이 접근할 수 있었던 다수의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게임 주체’가 생물학적 남성으로 고정되어있고, 이 남성이 다수의 여성을 공략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접했던 게임이 바로 ‘동급생’, ‘두근두근 메모리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게임들을 진행하면서 연애시뮬레이션 안에서의 ‘연애’의 전형을 배웠다. 예를 들어 첫인상에 상대방의 특성 1) 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것들이 그랬다. 특히 이러한 연애시뮬레이션은 ‘첫만남’-‘대화를 통해 친밀도를 높이고’,-‘공략대상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 능력치를 개발한 뒤’-‘퀘스트(이벤트)를 충족시켜’‘엔딩을 맞이하는’ 루트를 탔다. 물론 나는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두는 남성애자에 가까운데, 이 당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둔 연애시뮬레이션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열광했던 '프린세스메이커'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감정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90년대 연애시뮬레이션은 게임의 특성상 육성 시뮬레이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여성 게이머인 나에게 플레이는 관습적인 것에 가까웠고, 이를 통해 ‘목표’를 성취한다는 점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남성 주체 중심의 육성-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나의 게임 플레이 성향을 ‘관조’에 가깝게 만들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연애시뮬레이션이 개념적으로 정의하는 연애관계에 이입하기보다 사랑에 대해 ‘관조적’일뿐만 아니라 ‘제 3자’의 위치에서 ‘관음’할 수 있는 주체에 더욱 가까웠단 뜻이다. 그러다 오토메 게임 2) 이 발매되기 시작했다. 이는 육성-연애시뮬레이션에 열광하는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어느 정도 3) 욕망하고 원했던 게임 텍스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오토메 게임은 외적 4) 으로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을 게임 주체로 하는 여성향 게임으로, 이 중에 한명은 너의 타입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여성이) 남성들을 공략하는 텍스트 기반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미연시(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이성애 기반의 성별반전으로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기 등장하는 남성들은 매우 전형화된 카테고리로 나뉠 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이후 유통되는 많은 오토메 게임, BL(Boy’s Love) 게임, 혹은 텍스트 기반의 라이트 노벨성이 짙은 게임의 남성 공략 캐릭터를 정형화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후술할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2016)’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형화된 남성 캐릭터 선택지를 내어놓는다. 1) 연상의 로맨티스트(다정캐) 2) 모태솔로에 순수 연하(햇살캐) 3) 츤데레(광공캐) 4) 히든 캐릭터(사연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토메 게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후지쯔에서 제작하고 1998년 발매되었던 '판타스틱 포츈'이다. 이 게임은 놀랍게도 국내에서 정발되어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팬덤을 양산해냈다. 이 게임은 초반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이 3명이다. 육성 시뮬레이션이 여성 게이머들에게 매력적인 플레이 요소가 되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게임은 남성 캐릭터를 연애적으로 공략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메인 캐릭터를 육성해야하는 이중고(苦)를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 주인공 중 한명은 성별이 육성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중성인 존재 5) 가 섞여 있다는 것이 독특했다. 이처럼 연애+사랑의 루트를 타는 게임은 1) 캐릭터와 서사 2) 그리고 이 캐릭터와 서사에 접근하는 플레이 방식에 따라 진화하게 되는데, 이 당시에는 '판타스틱 포츈'처럼 미형의 남성을 공략하는 ‘여성’ 캐릭터, 그리고 이 캐릭터를 이 남성들이 원하는 이상향에 맞추어 ‘육성’해야 하는 플레이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캐릭터와 플레이 방식은 이 게임들이 타겟팅으로 삼았던 여성 주체들이 게임에 몰입할 때, 플레이 주체로서 주인공에 자신을 동일시하기 보다는 앞서 언급했던 ‘관조’적 성향의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여성 게이머들은 이 세명의 주인공들을 돌아가면서 플레이하고, 자신과 동일시한 캐릭터를 찾아냈을 수도 있지만(그러면서 자연스레 남성 캐릭터들을 유사남친의 대상으로 바라봤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다시 말해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으로 이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읽어내기만’했을 가능성 또한 존재 6) 한다. 특히 세 명의 주인공은 얼굴이 전부 드러나 있고, 그 캐릭터를 육성하면서 마치 케어링을 하는 제 3자적 인물로서 플레이어들이 그려지는 것은, 게이머가 그 서사 안이 아닌 밖으로 자신을 위치 지으며 이 게임을 플레이할 가능성이 더 높은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처럼 사랑은 하나의 게임에서도 단 하나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판타스틱 포츈'은 자식 같은 세 명의 메인 캐릭터, 그리고 그 대상 자체에 몰입하는 나, 동시에 그들을 짝을 지어주기 위한 제 3자(즉 관계성에 몰입하는)로서의 나 사이에서 연애와 사랑을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데이터화된다. : 디지털 로미오적 행태 여성향 게임이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은 여성게이머들이 대중적으로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시점과 맞물리는데, 그 시기가 바로 개인화된 미디어의 확산, 즉 휴대폰 플랫폼으로 게임이용이 확산되기 시작한 때다. 그 당시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임 중 하나가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다. 이 게임은 텍스트 노벨처럼 만들어진 전형적인 여성향 게임인데, 게임 타이틀에도 반영되어있듯 메신저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특성을 갖는다. 이 게임은 핸드폰으로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상황이나 메신저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는 방식이 실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일상적인 메시지 주고받기와 전화통화를 게임 어플리케이션 내에서 진행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어서, 이전까지 제 3자의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 방식의 이야기 진행이 아닌 강력한 자기 동일시 기제를 게임 안에 포함하고 있다. 이런 방식 자체는 나에게 데이팅 기술(Technology)에서 상대방이란 ‘기계’ 혹은 ‘게임 그 자체’일수 있겠구나를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앨피 본(Alfie Bown)이 자신의 저서인 <게임, 사랑, 정치>(2022/2023)에서 서술했듯 “연애 시뮬레이션에서는 실제 대상과 상상적 대상의 은유적 대체가 실제적이고 분명하게 구현(182)” 된다. 실제로 나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등장인물(상대방)들에게 무작위로(물론 시스템화되어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무작위는 아니지만)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받지 못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과의 채팅이 끝나고 나면 풀 보이스로 랜덤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모든 시간대마다 전화 내용이 다르다. 심지어 새벽에도 온다. 마치 구 남친의 ‘자니’와 같은 순간처럼). 이러한 일상적 대화의 기술은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게 만드는, 혹은 사랑이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보편적인 상황이다. 이것이 가상의 게임엔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기술이 감정을 확장하는(물론 이것이 사랑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을지라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마주한 것은 상대방이 아닌 기계였다. 만질 수 없어도, 바라보지 않아도, 무척이나 ‘생생한 ’기계. 실제로 이러한 감각은 현재 아이돌 팬덤들이 아이돌과의 메신저로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위버스나 버블 7) 서비스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게임의 상관관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우리가 욕망하는 사랑이 데이트 상대와의 눈맞춤인지, 아니면 친구와의 심도 깊고 즉흥적인 대화인지, 아니면 게임의 보상처럼 메시지 알림 소리를 울리는 버블의 인터페이스 그 자체인지 우리는 이제 알기 어렵다. “사랑과 욕망은 우리가 그것들을 경험하는 매체에 너무도 깊이 얽혀있다(Alfie Bown, 2022/2023, 225)”. 사랑은 수치화되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을지 모른다. 이것이 디지털 공간에 편재되었을 때, 게임은 빠르게 흡수해 텍스트로 옮겨냈고, 동시에 현실의 사랑은 이미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게임으로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어느 정도 관조적인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빠져있는 사랑. 8) 나는 이미 그렇게 습득한 사랑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나의 가상의 최애(feat. '플레이브' 남예준)를 위해, '풍화설월' 9) 의 주인공(feat. 금사슴반 클로드)들에게 이미 퍼붓고 있다. 이 때문에 의외로 현실세계의 연애와 사랑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참고문헌 Alfie Bown(2022). Dream Lovers: The gamification of Relationship. Pluto Press; London. 박종주역(2023). 게임, 사랑, 정치. 시대의창; 서울. 1) 이는 지금까지의 많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한데, 대부분 연애시뮬레이션에서 비주얼(즉, 캐릭터 디자인)은 그 캐릭터의 특성을 반영하여 제작되고 이 때문에 외모는 공략법과도 깊이 연관되어있다. 실제로 연애시뮬레이션의 완결성은 비주얼이 팔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여성향 게임에서의 비주얼은 대체적으로 남성향 게임과는 달리 특정 신체를 부각하기보다,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되어있다. 2) 乙女ゲーム 소녀의 게임. 3) 여기서 어느 정도, 라고 어중간하게 서술한 것은 기본적으로 당시 오토메 게임이 여성의 성적 욕망, 혹은 연애적 욕망에 대한 구체적 반영보다는 단순 성별반전에 가까웠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여성들의 모든 욕망을 단일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 외적이라고 굳이 덧붙인 것은 오토메 게임이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들을 주체로 하여 만들어진 게임이긴 하나,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주체의 성별은 실제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들 여성향이라고 말하는 장르의 콘텐츠를 실제로 이용하는 주체는 시스젠더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별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쓰인 여성향/남성향과 같은 용어들은 이미 관습적으로 굳어진 용어로 본문에서 사용될 뿐, 실제 이용 주체를 명명하는 것은 아니다. 5) 3명 중 한명인 실피스는 선택지 플레이에 따라 여성/남성으로 나뉘게 되므로, 초반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존재(중성)로 나온다. 이 때문에 오토메 게임이지만 BL 게임으로 서사를 진행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2차 창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6) 이것은 여성 게이머 주체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기보다 초반 여성들이 게임 텍스트를 접할 때 일어나는 남성 중심적 서사에 적응하기 위한 기제로서 관습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바라보는 여성 주체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가정되는데,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내재화된 카메라와 그 카메라 시선의 대상(여성) 사이에서 동일시할 주체를 찾지 못하고 관조적이거나 유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여성향 게임에서 ‘텍스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지보다는 텍스트가 제 3자의 입장에서 거리두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에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거리두기의 연애방식(연애 관계에서 자신을 배제하고 그 관계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은 현대의 여성들에게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좋아하는 연예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프라이빗 메신저 ‘구독’ 서비스. 물론 인터페이스 자체는 자신이 하는 텍스트 메시지와 연예인의 메시지 밖에 보이지 않지만, 진짜 대화를 나누는 것은 1:수많은 팬서비스 구독자다. 8) 사랑에 빠져든 나와 나를 배제한 사랑 모두를 뜻한다. 9) 닌텐도 게임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중 하나. 3개의 나라 3개의 반 중에 하나를 골라 육성하는 SRPG 게임이다. 메인 캐릭터를 남성과 여성 둘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으며, 각각의 학생을 지도하면서 교류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 Back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13 GG Vol. 23. 8. 10. 2022년 11월 중순, 랩시드(西山居SEED实验室, 시산쥐SEED실험실)에서 인큐베이팅한 중국산 공익게임 <바이페즈>가 정식 출시됨으로써, 국내 최초 게임 형식으로 양극성 장애[역주: 조울증]를 다룬 게임이 됐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인 양극성 장애는 전 세계에 약 6천만 명의 환자가 있다. <바이페즈>는 수평 액션의 2D 플랫폼 점프게임이다. 게임이 처음 시작되면 다양한 액션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가 백색 피에로를 컨트롤해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한 블록과 기호 사이를 점프할 수 있도록 한다. 레벨을 통과하려면 플레이어는 태양과 유사한 백색의 기하도형을 터치해야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 메커니즘은 1990년대 ‘소패왕 학습기(小霸王学习机)’[역주: 1980년대 말, 재미 화인기업가가 창립한 소패왕문화발전유한공사(小霸王文化发展有限公司)에서 만든 컴퓨터 학습도구] 카세트(팩)에서 볼 수 있었던 < 콘트라(魂斗罗)> 나 < 모험섬(冒险岛)> , < 슈퍼마리오> 등 평범한 오락게임을 연상시키지만, <바이페즈>의 플레이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구체적인 인지를 통해 양극성 장애의 기본 증상인 조증 위주의 조울증을 번갈아가며 경험할 수 있다. 필자 역시 게임을 하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울증 환자였던 필자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다양한 치료를 받은 후에야 서서히 정신 상태가 개선된 경험을 한 바 있다. 정신장애 : 게임의 신체화 게임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양극성 장애의 게임 체험은 ‘스크린 안쪽에 표시되는 가상의 신체를 가진 캐릭터’와 ‘스크린 바깥에 구성된 물리적 신체를 가진 플레이어' 1) 사이의 관계 간극을 인위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게임의 말단 설계에서 실현된다.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두 가지 ‘나’ 사이엔 ‘은폐된 비대칭성’이 존재하며, 게임 플레이의 메커니즘은 일시적이나마 이 둘의 동일화와 주체 전환시 발생하는 현기증의 인지를 온 힘을 다 해 완성하고자 한다. 나아가 플레이어의 실제 공간과 게임의 3D 공간이 스크린 공간(screen space)에 겹쳐지면서 게임의 시점이 분산되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주체성을 의식하지 않은 채 복수의 캐릭터들의 미션 시점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현대 정신병리학 이론에 따르면 게임은 본질적으로 정신분열증 증상으로 플레이어가 여러 인칭과 시각, 주체 사이를 반복적으로 넘나들고, 상징화된 게임세계는 진정한 깊이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스스로 깊이 있는 체험을 복구해야만 한다. 게임이 만드는 신체화(somatization)는 자기 인지의 보완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보류된다. 게임은 시뮬레이션의 투사라는 측면에서 이미 주체를 분열시키는 구조이지만, 게임에서 조울증 환자의 감정을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면식이론(acquaintance theory)’ 상의 ‘타자 마음의 문제(Problem of other minds)’를 더더욱 복잡하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타자 마음의 문제’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을 경험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에 있다. 통속심리학에서는 두 유형의 방법론을 선호하는데, 추리추측을 통한 이론론(the theory theory)과 자신이 상대방의 시야에 있다고 가정하는 가장론(the simulation theory) 2) 이 그것이다. 스포츠 게임의 시뮬레이션(룰 기반, 세계 기반, 액션 기반 등)은 가장론의 방법론에 보다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가장론은 자신과 상대가 사용하는 사적인 감각이 정상적이고, 같은 언어에 의해 서로 통하고 표현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신장애환자의 문제가 있다. 질환을 갖는 시기 동안 개인의 사적 감정은 분열되고 가변적이며,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인해 표현력이 쇠퇴하거나 심지어 사라지는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일상생활에서도 신체의 증상화 징후가 형성된다. 즉, 장애의 문제가 심리적인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신체적인 증상으로 대체되며, 정신적 수준의 피해와 고통이 억제되어 신체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증상은 낙인찍기의 심리화(psychologization)가 이뤄지는 사회환경에서 더 가혹하게 나타나고,신체 경험의 궤적도 더욱 강하게 형성된다. 3) 이렇게 하면 환자는 심리적 증상의 생리학적인 성분을 더 많이 인정하고, 심리적인 영향은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장론의 인지적인 기초는 정신장애 환자가 타자 마음을 증명하는 것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정상인은 환자의 경험이나 감정을 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장애를 소재로 한 여러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 시청각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이론론의 방식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타운 오브 라이트(The Town of Light)>에서 플레이어는 정신분열증 환자 르네(Renèe)의 안내를 받아 정신병원을 돌아다니며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고, 환각을 경험하며, 마지막에는 그녀와 함께 전두엽 절제술의 과정에 의해 각종 고통을 직접 맞닥뜨리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때로 게임은 상호작용을 통해 시청각적 감각을 강화하기도 한다. 게임 <에디스 핀치의 유산(What Remains of Edith Finch)> 속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루이스 핀치(Lewis Finch)는 해리 장애를 앓고 있는데, 편지를 읽을 때 플레이어는 루이스의 정신 상태를 모방함으로써 미로를 걷고 생선을 자르는 이중적인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 <아웃 오브 핸즈(Out of Hands)>에선 정서 장애를 겪는 ‘나’의 육체가 무수히 많은 손들이 그러모은 모조품이 되어버리고,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카드 게임은 다양한 부정적 정서와의 싸움이 된다. 하지만 <바이페즈>의 게임 설계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감정적인 독백을 통해 내러티브의 존재 가능성을 돌이켜 본다. 이 게임의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은 내러티브보다는 구조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게임 데모 시연 당일에도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처음에 게임 메커니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이페즈>는 조울증 환자의 신체화된 증상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해 보다 가장론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스포츠 게임의 현실 세계 모방에 매우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고작 하나의 모방은 시청각적 경험에 기반하고, 다른 한 가지는 정신적인 감정에 기반한다. 이 두 모방은 시점이 동일하지 않은데, 마츠모토 켄타로은 이것이 1인칭 시각과 3인칭 햅틱을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바이페즈>에서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은 조울증 환자의 1인칭 시점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색상과 기호 블록 사이를 오가는 조작된 하얀 피에로의 햅틱은 3인칭이기 때문에, 결국 플레이어는 둘 간의 조율되지 않은 지각의 부조화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 플레이어는 분열 속에서 둘 사이의 지각 부조화를 고칠 수 없고, 그 분열 속에서 정신 부조화의 세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이것은 일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더욱 고통스러운 신체화 게임 경험을 갖게 한다. 빨간색과 검정색의 교차 : 시각의 신체화 스포츠 게임이나 피지컬 게임이 아닌 게임의 경우, 신체화는 표현하기 어렵고 통증 연상을 통해서만 시청각적인 감각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하지만, 시청각 감각은 하나의 실험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정신장애를 겪는 환자의 눈에 비친 세상이 두 차례에 걸쳐 전환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의 <절규>가 그 예시다. 이 작품은 불안장애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눈으로 바라본 왜곡된 세계만이 아니라, 불안장애 환자 자신의 모습도 담고 있다. 그 스스로 심각한 불안장애를 겪었던 뭉크는 모더니즘 하에서 소외된 이의 감정에 대한 공감대를 느끼기 위해 독립적이고 빙빙 도는 색채의 상호작용을 그렸다. <절규>에서 감상자는 타인의 눈에 비친 절규만이 아니라, 그림 속 인물의 절규에 영향을 받은 주변세계, 즉 1인칭 시점이 3인칭 시점으로 재조명되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정신장애인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심미적 주체로서 자아는 자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동시에 ‘정상인’의 체험에 의해 비교하면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또, 만약 게임이 정신장애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대로 재현한다면, 이와 같은 핍진성은 ‘정상인’의 체내에 잠복하고 있는 정신장애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바이페즈>는 반드시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페즈>에서 컨트롤하는 하얀색 피에로는 고도로 기하화(geometrization)된 캐릭터다. 플레이어는 이어지는 퍼즐 해석 속에서 그것이 양극성 장애를 앓는 ‘열여섯 여름의 그녀’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어렵고, 오직 시청자의 관점에서만 캐릭터를 컨트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적 세계는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의 눈에 보이는 1인칭 시점으로, 캐릭터가 바운스할 때마다 스크린이 빨간색과 검정색으로 색깔들이 점프한다. 바운스는 게임 플레이를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수행해야 하는 동작이기 때문에 플레이어 눈의 게임 인터페이스는 빨간색과 검정색 전환이 수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인터레이스된다. 이 때문에 광과민성 간질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광과민성 간질의 신체화 증상은 조증 발작시의 증상과 일부 유사하며, 이는 양극성 증상 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게임을 시작하는 화면에는 “양극성 장애가 있는 분은 게임 플레이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게임은 광과민증이 있는 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명시적 알림 메시지가 뜬다. 이 알림은 사실상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울증 환자는 관찰의 대상이 되고, 그들/우리는 구경꾼들의 눈에 비친 세계가 진정으로 그들이 느끼는 그대로 인지 아닌지 느낄 수가 없다. 게임 속 여기저기에서 강렬한 생산 전환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장면에서 더욱 그렇다. 붉은색 백야와 검정색의 밤이 과도기적인 전환 없이 나타나고, 시각 체험에 있어서도 심각한 불연속성(discontinuity)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잠은 사람들로 하여금 낮과 밤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양극성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수면만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각성 요법과 같은 어떤 의학 치료방식들은 수면 박탈이라는 방식을 통해 정서와 인지능력의 즉각적인 보상을 촉진하도록 설계됐다. 물론 수면 보상을 시행한 이후 재발 확률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4) 게임에서 하얀 피에로가 하는 하는 일은 빨간색 블록과 검정색 블록을 끊임없이 돌리면서 게임으로부터 탈출하거나 통과하는 것이다. 이는 치료의 한 형태이기도 한데, 수면 박탈, 리튬, 빛을 결합한 3중 생체시계 치료법(필자도 경험한 바 있음)이 게임에서 모두 표현되어 있다. 검정색은 수면 박탈, 리튬은 약물 복용, 빨간색은 빛을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얀 피에로는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는데, 이는 수면을 박탈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빛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게임을 통과하기 위해 태양을 터치할 수 있는지 여부는 덜 중요해진다. 이 1인칭 시점은 게임의 3인칭 햅틱에 의해 끊임없이 상기되고 강화되어, 플레이어의 시야는 빨간색과 검정색의 시차적 변화, 바운스하는 동작의 시각적인 동선, 그리고 접점을 오가는 단조로운 경험이라는 3중 간섭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3중 간섭 하에서 하얀 피에로는 더 이상 조울증의 화신이 아니며, 대신 실시간 화면(screen of real time)에서 역동적인 빛의 한 지점이 된다. 5)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화면의 위계와 의학적인 관찰을 통해 새로운 시간적 감각을 얻게 된다. 이 때 전자(화면의 위계)는 레이더 추적 방식의 체험인데,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 것은 광선총(lightgun)을 사용해 광점을 추적하는 과정이 된다. 후자는 한계 뇌파의 동적인 궤적이 된다. 이와 동시에 체크포인트의 ‘왕복’과 ‘순환’에는 뇌파도계(encephalofluctuograph)와 유사한 구조가 대량으로 등장한다. 뇌전도나 뇌파도계는 모두 ‘정상인’이 정신이상자를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보이는 시각성은 더더욱 ‘과학적으로 관찰된’ 타자의 시야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조울증 환자는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광점으로 소외된 채 남루하게 배치되어 탈출하는 것이 점점 더 험난해진다. 컨트롤의 불균형 : 감정의 신체화 “악의 문학적 표현양식" 6) 인 반복은 지옥 신화에서 연이어 묘사된 고통의 영구 형벌로 존재하며, 지옥은 언-오르트(Un-Ort)가 된 순환 공간이다. 또한 지옥 속의 개체는 신체화된 형벌의 대상이 된다.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Huis clos)>에서 실존주의적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무한한 것(ad infinitum)의 모방으로 단조로움과 반복을 가져와, 그 속의 주체를 끊임없이(마치 업보를 태우는 불처럼) 불 태워버리는 느낌을 만든다. [역주: 원문의 业火(업화)는 불교 용어로, 죄인을 태우는 지옥불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불타는 감각은 플레이어의 자의식을 괴롭히는 조증과 매우 유사하다. <바이페즈>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데, 이 과정에서 3인칭 햅틱이 더해져 플레이어는 과잉 시각화(overvisual)의 평면에 현혹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를 강렬한 양극성 정서(특히, 조증 정서)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 속의 여러 반복 행동들이다. 이 게임의 메커니즘은 루트를 끝내는 것, 플레이 경험, 시야의 확산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감정의 신체화를 악화시키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루트를 끝내는 과정에서 게임 프로세스엔 반복적인 작업들이 많이 나타난다.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에 따르면 이는 “양극성 장애가 재발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것인데 (…) 이는 바로 외출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빙빙 돌기만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세 번째 스테이지가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레벨을 완료하기 위해 메커니즘을 지렛대로 삼기 위해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반복해야 한다. 여섯번째 스테이지 이러한 경험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얀 피에로는 촉발된 기관 여러 차례 중복해 통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전략 가이드를 참고한다는 전제 하에), 어떤 특수 장면에서는 능동적으로 추락해 게임 인터페이스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빨간색과 검정색 두 가지 색상으로 만들어진 파손된 통관 루트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중복(too repetitive) 메커니즘은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의 인내심을 낭비하고, 게임의 플레이가능성을 계속 희생시켜, 1인칭 시각성의 자극으로 불안과 무료함을 이중적으로 체험하는 걸 강화한다. 게임 체험에서 이러한 느낌은 더욱 확대된다. 스마트폰 컨트롤 인터페이스에서 이 게임의 조이스틱(摇杆) 체험성은 매우 엉망이다. 손이 시야를 일부 가리게 되어 터치 오류가 날 확률이 매우 높고, 이는 하얀 피에로가 스마트폰에서의 점프 컨트롤이 데스크탑에서보다 더 어렵도록 만든다. 이는 또한 캐릭터가 추락해 죽을 확률도 크게 높인다. 만약 기관을 반복해 오고가는 게 수평적인 불안의 체험이라면, 죽음이 거듭된 뒤 게임을 재개하는 것은 수직적인 불안 경험이 된다. 종횡으로 교차해 만들어진 불안의 장력은 끊임없이 플레이어의 시각과 청각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플레이어가 자신의 손가락 컨트롤에 대해 짜증을 느끼게 만든다. 게임 인터페이스는 색깔 블록 말고도 메커니즘이 작동할 때 움직임의 궤적을 바꾸는 대량의 선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선들은 신체 바깥에 있는 기호의 표본을 만드는데, 이는 하얀 피에로의 빨강-검정 색상 전환과 메커니즘이 촉발하는 컨트롤과 관련되어 글자들의 춤(written dance)을 만든다. 순수하게 물리적인 특성, 즉 비생명의 객체가 생명의 활력(élan vital)을 갖추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그런 다음 “업무 중 지령이 암시하는 억압의 정도에 따라 점차적으로 약화”된다. 7) 시청각적인 경험이든 컨트롤의 감각이든, 모두 게임의 신체화를 통해 정신장애의 신체화를 모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페즈> 플레이어의 지각은 여러 인칭들에 의해 분열되고, 동시에 투시체험은 여러 각도로 분리된다. 그래픽이 중첩되는 방식(즉, 4인칭 단수 시점) 8) 을 통해 각기 다른 카메라의 시선이 마치 뒤샹의 <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역주: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과 같은 어지러움에 도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하이퍼 시각화된 평면은 스크린 공간에 투사되어, 응시의 단일한 초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지조화가 이뤄진 ‘정상인’은 게임 도중 초점이 인터페이스의 도처를 조급하게 돌아다니게 되고, 이미 신체화된 양극성 정서장애 환자는 게임을 더욱 어려워 하게 된다. 내러티브 독해 : 결말의 신체화 게임 체험 말고도 <바이페즈>의 숨겨진 결말은 또 다른 의미로 신체화된 독해의 가능성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곧 전두엽이 절제된 미래이다. 게임 속에서 빨간색-검정색이 교차하는 것은 단순히 양극성의, 낮/밤이 교착된 이미지가 아니다. 게임의 다섯번째 스테이지 <미궁>에선 빨간색-검정색이 직접적으로 접점을 이루는 교착점의 조합이 바로 의약품인데, 이는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 언급된 바 있는 리튬이다. 바꿔 말해, 또 다른 의미에서 플레이어는 스테이지를 통과하도록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캐릭터에 의해 컨트롤당하고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는 약을 복용하는 캐릭터가 가져다주는 보다 평평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두 개의 색깔만으로 이뤄져 있고, 구체성이 없으며, 도처에 함정과 추락으로 가득 찬 평평한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환각제(LSD)를 복용한 후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는 <인식의 문>에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 바로 다양한 색깔들이 뒤엉킨 평면적인 세계를 체험한 것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게임이 말하고 있듯, 약물 치료는 사실 단지 정신질환을 일시적으로 보류할 뿐, 진정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9) 오랫동안 비판받아온 완치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바로 전두엽 절제술이다. “의사들은 가벼운 우울증과 불안증부터 조현병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했다. 한마디로 그 당시 의료 전문가들은 전두엽 절제술을 ‘영혼을 위한 수술’이라고 여겼고, 가벼운 우울증부터 심각한 정신분열증까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라도 추락할 수 있는 하얀 피에로(양극성 장애 환자)는 당연히 비정상적이다. 전두엽 절제술 이후 환자는 다시는 양극성 장애를 앓지 않지만, 완전히 순종적인 좀비가 되어버린다. 이 역시 ‘완치’의 결과일 수 있다. 많은 영화 및 TV프로그램들에서, 정신질환자의 경험을 심도 깊게 보여주는 작품일수록 결말은 점점 더 전두엽 절제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1971), <판의 미로(Pan's Labyrinth)>(2006), <서커 펀치(Sucker Punch)>(2011), <니하오, 미친놈(你好,疯子)>(2016) 등 모든 영화들이 그렇다. <바이페즈>에 대한 또 다른, 좀 더 자기 구속적인(self-imposed) 해석도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하얀 피에로의 치유를 돕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 하얀 피에로는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미래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얀 피에로는 이 운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데, 플레이어가 줄곧 피에로를 컨트롤하고 있고, 태양을 향해 그녀를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색과 검정색이 중첩된 흰색은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테이블의 흰색 전등을 상징한다.) 피에로는 (철창 안에 갇힌 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자신이 완치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미로에 갇힌 채) 적극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며, 심지어 (반복에 갇힌 채로) 다시 또 다시 이뤄지는 치료에 계속해서 협조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사회 또는 가족)는 결코 믿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컨트롤하며 태양을 향해 컨트롤한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피에로는 아홉번째 스테이지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타나는 영상은 피에로가 플레이어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2차원 이미지였던 피에로는 3차원의 주체적 사람이 되고는 “고생했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발병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아홉번째 스테이지의 숨겨진 결말은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해 태양이 없는 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해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따라서 태양 뒤에 치유의 문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피에로가 전두엽 절제술을 받지 않고도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가능한데, 플레이어는 그 대가로 게임에 대한 길고 지루한 해설을 볼 수 없고, 하얀 피에로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병철은 정신질환의 치유가 본질적으로 일종의 살해라고 여긴다. 그것은 인간성을 죽이며, 그것을 통해 고도로 자기 훈련된 의식의 산업으로 되돌려 놓는다. 여기서 ‘정상인’으로서 우리는 ‘우애로운 빅브라더’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빅브라더)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자기 착취와 자기 계몽(Selbstauslechtung)을 통해 더더욱 원자화되도록 교도한다. “더 높은 생산성을 창출하기 위해 감정의 자본주의(Kapitalismus der Emotion)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das Andere der Arbeit)인 게임을 배우게 됐다. 감정 자본주의는 일상과 일터를 모두 게임화(Gamifizierung)한다." 11) 어떤 면에서 <바이페즈> 역시 게임화의 산물인데, 게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신체화된(소외된) 자아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죽고 또 부활하는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은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모바일 체험이 엉망인 상황에서 그것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인상을 더욱 배가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소외의 경험은 플레이어를 감정 자본주의의 함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러한 경험들은 자기계발의 방식으로 게임을 완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하는 게임 인터페이스를 비플레이어와 비캐릭터의 4인칭 관점에서 본다면,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이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보여준 엇갈린 톱니바퀴가 다시 우리 앞에 떠오른다. 훈육 사회에서 집중 교정된(konzertierte Orthopädie) 화면들이 꼭 양극성 정신장애 환자의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강한 조급증(emotionszustand)의 정서 상태는 양극성 장애 환자의 체험이 아니라, 개체로서의 존재의 흔적이다. 필자 주 1 ) 마츠모토 켄타로(松本健太郎), 「스포츠 게임의 구성 : 현실의 무엇을 모방하는가?」, 덩지안(邓剑) 번역, 천즈난(陈梓楠) 교정, 『게임 왕국의 보물을 탐험하다(探寻游戏王国里的宝藏)』, 상하이서점출판사(上海书店出版社), 2020. 12. 2 ) 이론론은 마음과 행동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이론들을 바탕으로 타인의 심리를 추측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내가 내 몸의 일부를 긁는 행위는 그 부분에 가려움을 느낀다는 신호라고 보면, 타인이 자신의 다리를 긁는 것이 다리가 가려운 상태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우리의 추리(reasoning)를 통해 이뤄진다. 가장론은 상대방의 위치(place)와 관점(perspective)에서 자신을 상상함으로써 행동을 예측하고, 가설을 세워 이를 테스트하는 등의 방식으로 행동을 해석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론론과 가장론은 모두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다양한 구체적 주장을 포함하는 큰 부류의 이론틀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즈후(知乎)에 게시된 이 내용을 참고하라. 3 ) Karen Hanson. Social Origins of Distress and Disease: Depression, Neurasthenia, and Pain in Modern China by Arthur Kleinman. New Series, Vol. 1, No. 3, Obstetrics in the United States: Woman, Physician, and Society (Sep., 1987), pp. 343-345 4 ) Linda Geddes. Staying awake: the surprisingly effective way to treat depression. https://mosaicscience.com/story/staying-awake-surprisingly-effective-way-treat-depression/ 5 )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新媒体的语言)』, 구이저우인민출판사(贵州人民出版社), 2020. 6 ) 피터 앙드레 알터, 『악의 미학적 여정: 낭만적 읽기(恶的美学历程:一种浪漫主义解读)』, 닝잉(宁瑛)·왕더펑(王德峰)·종창성(钟长盛) 번역, 중앙편역출판사(中央编译出版社), 2014. 7 ) 클라우스 피아스, 『비디오 게임의 세계(电子游戏世界)』, 숑슈어(熊硕) 번역, 푸단대학출판사(复旦大学出版社), 2021. 8 ) 황원다(黄文达), 「제4인칭 단수: 영화 이미지의 자율성에 대하여(第四人称单数——论电影影像的自主性)」, 베이징전영학원학보(北京电影学院学报), 2010. 9 ) 올더스 헉슬리, 『지각의 문(众妙之门)』, 천창두어(陈苍多) 번역, 베이징옌산출판사(北京燕山出版社), 2016. 10 ) John Kuroski, 「The Twisted History Of The Widely Misunderstood Lobotomy」 https://allthatsinteresting.com/lobotomy-walter-freeman 11) 한병철,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문학과지성사, 2015. 필자가 참고한 중국어 번역본은 『精神政治学』, 관위홍(关玉红) 번역, 중신출판사(中信出版社), 201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단위안, 但愿 쓰촨사범대학(四川师范大学) 문학원 문예미학 박사.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북한 게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지적 재산권, 소액결제, 그리고 검열을 중심으로
< Back 북한 게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지적 재산권, 소액결제, 그리고 검열을 중심으로 06 GG Vol. 22. 6. 10. ***편집자 주: 유사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북한은 아주 머나먼 곳이며, 특히 디지털게임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농담처럼 평양의 유일한 스팀 IP를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우리는 북한의 디지털게임에 대해 궁금해해야 합니다. 이 글은 게임연구 전문 저널인 gamestudies.org에 익명으로 게재된 북한의 게임에 관한 논문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으며, gamestudies 관리자를 통해 원저자로부터 한글번역 허가를 구하여 게임제너레이션에 게재하였습니다. 참고문헌 등은 원문 사이트에서 보다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링크: http://gamestudies.org/2201/articles/anonymous 초록: 이 글은 북한 게임 산업의 역사 및 그 불법복제 의존성에 대해 살펴본다. 오늘날 북한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비디오게임은 해외의 유명 게임을 개조한 것으로, 여기서는 리버스-엔지니어링 방법론을 통해 북한의 개조판 게임에 대한 분석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그와 같은 개조의 목적이 소액결제 같은 시스템을 북한의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들여오는 것, 그리고 콘텐츠의 민감한 요소들을 검열해서 민족주의적으로 또는 사회주의적으로 수정하는 것에 있음을 밝힐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불법복제 게임은 민족주의적이고 포스트-식민주의적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소비 진작과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상반된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들어가는 말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아케이드용 해적선 전투 게임기 앞에 놓인 전투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장치의 밑바닥에는 'No Step!'이라는 영어로 쓰여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다른 아케이드 게임기들도 살펴본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노동자들을 향해 'Do not step'과 'Caution' 등 게임기에 영어로 쓰여있는 지시문을 우리말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Han, 2020, p. 14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게임 산업보다는 자급자족식 민족주의와 주체사상 이데올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 보급이 증가하고(Yoon, 2020) 여가활동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Evans, 2018), 북한 도시 중상류층의 일상적인 여가로서 게임이 떠오르고 있다. 교육용 소프트웨어와 더불어 게임은 현재 북한 IT 유통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 . 완전히 국산으로 만들어진 게임도 몇몇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필자가 "현지화 수입(localized imports)"이라 부르는 방식 - 해외의 게임을 국가 승인 개발사가 북한의 디지털 환경에 적합하도록 다양한 수준에서 번역하고 개조하는 방식 - 을 거쳐 공급되고 있다. 이러한 개조는 엄밀히 말해 북한이 최근에 정립한 저작권법 위반이자 그 자신도 가입 되어있는 국제 저작권 협약 위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는데, 저작권법은 반-제국주의적 또는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종종 불법복제가 장려되곤 하는 개발도상국에서 느슨하게 적용되어왔기 때문이다(Wang, 2003). 북한에서도 이와 같은 합리화 - 게임 내 외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검열해서 제거해야 할 필요성에서부터 지적재산권의 불공정성에 대한 경제학적 비판에 이르는 - 가 확인되는 한편, 이와 같은 합리화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게임의 불법복제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굉장히 엄격한 기술 및 법 체계와 공존하고 있다. 북한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는 국가의 "중앙 소프트웨어산업 지도 기관(Central Guidance Organ of Software Industry)"에 등록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디지털 기기는 중앙기관에서 암호화 방식으로 승인을 받지 않은 경우 애플리케이션의 실행이 OS차원에서 금지 되어있다. 반면 저작권법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예상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데 2) , 즉 플레이어를 자본주의적 소비자로 "호명"해서 디지털 아이템에 돈을 쓰게 만드는 인-게임 결제 전략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북한의 게임산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술적 인공물에 있어 이데올로기적 적응성과 탄력성에 대한 연구를 제공할 것이다. 게임은, 여타의 기술적 인공물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발현되는 맥락(Bijker, Hughes & Pinch, 1987)이나 수입되는 맥락(Choi, 2017)이 이데올로기적이고 경제적인 사회적 구성물이다. 그런데 만약 게임이 수입된 이데올로기적 환경이 그것이 원래 생산되었던 곳과 다르다면, 심지어 적대적이라면 어떻게 될까? 북한에서 게임은 리버스-엔지니어링(게임의 속성들을 이해하거나 변경, 또는 비활성화하기 위해 프로그램의 컴파일 바이너리를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그것이 원래 기원한 국가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의 도구가 된다. 다른 문화적 수입품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은 북한에서 문화적 침투를 통해 (특히 미국) 제국주의에 복종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Ra, 2005, Kim, 2009).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침투나 북한 수입업자들의 로열티 지불 또한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행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Hwang, 2017). 북한식 불법 복제는 외래 문화 요소를 제거하고, 자국의 프로파간다를 주입하고, 개조된 소프트웨어에 대해 완전한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그와 같은 제국주의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현지화 된 북한 버전일지라도 원본 게임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은 부분적으로 여전히 발견된다. 게임 내 소액결제 시스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소비가 지속적으로 유발되는 패턴은 북한의 사회적 기반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 여러 거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비롯한 여러 문화 상품에 대한 이용권한(license) 시스템을 수용하여(Stallman, 1997)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전송되는 콘텐츠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 활용하고 있다. 해적 행위(Piracy), 게임의 역사 그리고 리버스 엔지니어링 게임에 있어 해적 행위는 단순히 파일을 무허가로 복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보호장치를 "크래킹cracking"하는 것, 크로스-플랫폼 호환을 위한 에뮬레이션 제작, 속성을 바꾸거나 추가하여 게임을 "모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의 행위자, 실천,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아우른다. 이와 같은 해적 행위는 상업용 비디오게임의 발전과 병행되어 왔으며, 업계(International Intellectuall Property Alliance, 2021)와 게임학 연구자들(Postigo, 2003; Kretzschmar & Stanfill, 2019)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아왔다. 게임 해적 행위에 대한 초기 연구들은 해적 행위자의 자유주의적인 혹은 반체제적인 에토스를 강조했다(McCandless, 1997; Tetzlaff, 2000; Goldman, 2005; Coleman, S., & Dyer-Witheford, 2007). "디지털 졸리 로저(역주: 해골이 그려진 해적기로 해적 행위자들을 상징한다)들의 조용한 전복 행위"(Kline et al., 2003, p. 217)를 글로벌 자본주의나 초국가적 거대기업 또는 저작권을 통한 지적 공유재산의 불공정한 점유 등에 대해 저항하는 반체제적인 또는 반식민주의적 입장으로서 읽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지하 네트워크와 불법적인 경제를 지나치게 낭만화(Nicoll, 2019)하고, 북미와 서구의 중산층 출신 남성 해적들이라는 특정한 소수 집단의 자기-특성화를 무비판적으로 반복해왔다는 비판(Wasiak, 2012)을 받았다. 예를 들어 냉전시대 후반 체코슬로바키아(Švelch, 2018)와 폴란드(Wasiak, 2014)에서 저작권은 생소한 개념이었고, 그에 따라 그에 대한 이해도, 법적인 집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부 유럽의 공산당이 초기 비디오게임 시장에 대한 검열이나 규제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 해적 행위는 그에 대항하는 기업이나 정부의 검열 없이 번성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남한(Nicoll, 2019; Jo, 2020)이나 홍콩(Ng, 2019), 또는 1990년대 중국(Liao, 2016)에서 그랬듯, 제한 없는 소프트웨어 복제행위는 은밀한 행위였다기 보다는, 정부의 간섭이 윤리적 차원에서 그치고 국제적인 저작권 협약이 강제되지 않는 일종의 (일상적) 규범에 가까운 행위였던 것이다. 학술 영역에 있어 이와 같은 변화는 해적 행위에 대한 연구를 기존에 한정되고 양극화된 것 - 범죄 행위 또는 반자본주의적/자유주의적인 저항으로 보는 - 으로부터 벗어나 이용자 중심적으로 게임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이끌었다. 야로슬로프 스벨치(Švelch, 2018, p. 152)는 "국제적인 유통 인프라가 구축되기 전의 1980년대 그리고 이후 디지털 유통이 자리잡은 이후에도 주변부는 중심보다 거대했으며, 소형 컴퓨터들의 상당수는 해적판 게임의 실행에 활용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해적 행위의 일상성을 인정하는 것은 게임의 역사가 몇몇 소수의 거대 기업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게이머 커뮤니티와 공유의 네트워크, 창의적인 개조자들(modders), 그리고 모험적인 거래자들의 역사이기도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O'Donnell, 2013). 그 활용과 이용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전세계 게이머들이 외래의 테크놀로지와 콘텐츠를 전유하고 자국용으로 순화하는(domesticate) 방식을 강조함으로써 "주변부"를 실험과 혁신이 벌어지는 독특한 다수의 장소들로서 재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유(appropriation)에 대한 분석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면서 현지화와 혼종화의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게임의 현지화를 다뤘던 콘살보의 작업(Consalvo, 2016)은 일본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일본 게임에 대한 언어·문화적 각색을 매우 상세하게 다루었지만, 그 초점이 선진 시장 경제를 가진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어 일본 게임이 문제가 되거나 금지되어 있는 국가에서 일본 게임에 깔린 정치적 담론과 전제가 어떻게 현지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1980년대 폴란드의 해커들이 사회주의적인 것보다 "서구적인" 것들을 선호했음을 기술했던 바시악(Wasiak, 2014)도 사회주의 경제 내 새롭게 부상했던 소비주체들에 대해 서구 유럽이 끼친 문화적 영향력이나 상업적인 행위의 확산이 지닌 함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중국 시장 내 해적판 일본 게임의 확산을 다뤘던 랴오(Liao, 2016)는 중국 정부의 "테크노-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기술하면서도 아시아권 내 일본 제국주의 문제나 중국에 시장의 논리가 유입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해적 행위를 통한 현지화의 그와 같은 과정이 기술적인(technological) 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해적 행위를 저항 행위로 퉁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해적판 테크놀로지가 특정한 이데올로기 프레임 내에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항해서 작동하는 방식들을 다룬 최근의 연구들과 궤를 함께 한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게임 해적 행위가 "신식민주의" 내에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항해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다룬 니콜(Nicoll, 2019)의 작업 3) 이나 해적판 영화시장에 대한 분석(Lobato, 2012, pp. 74-74) - 해적 행위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실천적인 비판인 동시에 "자유 기업 체제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읽힐 수 있다는 - 이 있다. 나는 북한 게임 산업의 해적 행위가 글로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것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많은 측면들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국가 검열을 통해 자본주의적 상징들을 제거하고 문화 보존이라는 명목 하에 외래적인 콘텐츠를 국내식으로 수정한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해적판) 게임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지적 재산 모델이 도입되고, 그 플레이어들을 소비주의적으로 충동질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자 감시에 활용하는 것을 도모하고 있다. 북한 내에서 게임 해적 행위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 및 현대 미국 중심의 신제국주의에 대한 대응으로서 강력하게 진화된 민족주의로 나타나고 있다(Shin, 2006). 한편 저작권과 지적재산권 개념 그 자체는 지속적으로 북한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제국주의적 독점"의 "차별적인 특성"의 사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Hwang, 2017, p 62). 저작권 무시가 해외 자본에 대한 저항 행위가 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 따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모딩(modding)을 통한 복제 게임의 재전유는 종종 강렬한 민족주의적인 담론으로 가득 차 있는데, 때에 따라 반-일본 또는 반-미국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이렇게 수복된 게임은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 무기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급진적인 입지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배와 복종이라는 오래된 식민주의 관계를 극복하려는 탈식민국의 공식적인 노력은 종종 바로 그 관계를 다른 모습으로 재생산하고 고착화하는 것을 가장(disguise)하는데 그치곤 한다(Mbembe, 2011, p. 45). 마찬가지로, 탈식민화와 반-제국주의의 어휘들은 대중의 해방과 자주보다는, 권위주의 체제와 글로벌 기업들, 그리고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기업가들"의 경제·정치적 지배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Comaroff & Comaroff, 2009). 북한의 해적판 게임 산업은 글로벌 시장 논리에 대항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자국의 경제가 자본주의적으로 시장화되는 것을 고양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서 외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은 내부적인 종속을 도모한다. 이 글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집해 온 북한에서 판매 중인 불법복제 모바일 게임에 대해 맥락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와 같은 현상을 탐구한다. 게임의 외부적인 특성에 대한 관찰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기에, 필요한 경우 소스코드의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는 리버스-엔지니어링 방법론을 활용했다. 게임 역사에서 해적 행위가 주요 연구 주제였다면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통해 어떤 방식의 해적 행위가 게임에 대해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주요 분석 방법이었을 것이지만, 아직까지 리버스-엔지니어링이 해적판 게임 연구, 나아가 보다 일반적인 게임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활용된 적은 없다 4) .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처럼, 이 방법론은 해적 행위에 의해 게임의 바이너리에 가해진 수정과 개조에 대한 명확한 맵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데올로기가 컴퓨터 코드상에서 어떻게 번역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북한의 게임 역사와 현재의 게임 생태계 북한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전자 및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다룬 것은 1960년대 초반부터였다. 북한이 최초로 생산한 디지털 컴퓨터는 1961년 국립과학원(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서 소련제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었다(Hŏ, 1961). 냉전 시기에는 불가리아나 폴란드, 루마니아 등 사회주의 국가와 일본, 프랑스, 서독 등 자본주의 국가 양쪽 모두로부터 컴퓨터를 수입했다(Berthelier, 2019). 하지만 이 컴퓨터들의 용도는 경제 계획의 수립이나 과학적 연구, 또는 산업적인 활용 등에 한정되었다(Orlowski, 1985). 당시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매우 엄격히 통제되었으며, 따라서 유희적 활용을 위한 여지는 거의 없었다. 북한에 최초로 소개된 게임은 범용 컴퓨터가 아니라 게임에 특화된 아케이드 장치에서 실행되는 게임이었다. 1980년 평양 호텔의 로비에 타이토의 아케이드용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기가 설치됐는데, 이는 2년 전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평양 호텔처럼 이 게임도 외국방문객들만 접할 수 있었으며, 플레이하려면 100엔 동전을 투입해야 했다. 이후 남은 80년대 동안 다른 게임기는 수입되지 않았다. 1990년에 들어오면서 바뀌는 당의 정책 그리고 일본 아케이드 게임산업의 발전상은 북한의 첫 오락실 개장으로 이어진다. 그 전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은 10여년 간 이어져온 생산성 하락 극복을 위해 북한 경제를 "계산기화(computerize)"할 것을 주문했는데(Kim, 1995; Kim, 1990), 그에 따라 1987년 3차 7개년 계획 때부터 북한 산업의 디지털화 계획이 수립되었다. 새로운 디지털 지식층의 육성은 과학 교육을 강조하면서 어린 세대가 컴퓨터와 친숙해져야 함을 의미했다. 따라서 김일성이 1991년 북한 최초의 오락실 개장 - 평양 만경대 지역에 700평방미터 공간에 100여대의 오락기를 갖춘 - 을 지원했던 것은 "세계의 최신 과학 트렌드에 맞춰 능숙하게 현 시대의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다룰 줄 아는 자립적이고 다재다능한 젊은 혁명 인재의 양성"(Chosŏn Ilbo, 1991)이라는 목표에서 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당이 새롭게 품기 시작한 디지털을 향한 야망이 북한에 게임이 도입된 유일한 요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락실의 게임기들 - 그 중 일부는 오늘날 평양에서도 여전히 작동 중이다 - 은 〈웨스턴건(Western Gun, Taito, 1975)〉이나 〈서브마린(Submarine, Bandai, 1978)〉 등의 1세대 게임으로, 이는 재일 한국인들로 구성된 "애국적 무역상(Patriotic traders)"이 보낸 것이었다(North Korean Central Communication Agency, 1992, p. 205). 1980년대 중반 하드웨어의 성능이 향상되고 신작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기 시작한 게임기들이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재일 한국인 내 조직 - ‘청년’ - 을 통해 평양에 도입되었던 것이다(Ryang, 2016). 1990년대엔 더 많은 아케이드 게임기들이 평양의 놀이공원이나 상점, 식당 등에 도입됐는데(Kyunghyang Sinmun, 1992), 게임기 외부에 적힌 제목이나 기호들은 종종 한글로 번역되어 표기됐지만, 게임 화면에서는 원래 언어가 그대로 사용됐다. 한편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게임을 개조하거나 만드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주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는 조선콤퓨터센터와 평양정보센터를 들 수 있는데, 두 기업 모두 경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산업 구축 및 산업적 활용을 위해 1990년에 세워졌다. 주요 업무로는 레이더 신호 처리 시스템, 오피스 작업, CAD 소프트웨어, 전문가 시스템, 처리 자동화 등이 있다(Department of Defense, 1996; 1995). 이러한 전략적 영역들 가운데 딱히 게임 개발 작업을 수행한 분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모두 인공지능(AI)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알렌 뉴웰이 언급했던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공지능 분야에서 선호되는 영역"이었는데(Newell, Shaw & Simon, 1963, p. 37), 조선콤퓨터센터의 엔지니어들은 실제로 1990년대 후반 자신들의 인공지능 연구를 바탕으로 바둑 기반의 〈은별바둑(1997)〉과 한국 전통의 체스 게임(역주: 장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반의 〈평양체스(1997)〉라는 게임 두 편을 제작했다. 이 두 게임은 여러 국제 게임 AI 컨퍼런스에서 수상했으며 남한과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상업화되어 오늘날까지 판매 중에 있다 5) (Nam, 2002). * 평양정보센터가 2005년 상용화한 〈소년 장군〉 게임. 이어지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주로 해외의 소비자를 겨냥한 게임을 개발했는데, 이는 북한의 여타 소프트웨어 산업 전략과 맞춘 것이었다. 컴퓨터가 많지 않은데다 내수 소비는 더 기대하기 어려운 북한의 상황에서 수출 시장은 외화 획득의 기회와 함께 좀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 합작투자 연결망을 연 조선콤퓨터센터는 2002년 자사의 온라인 바둑 게임(〈My Baduk〉)을 상용화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남한의 사업가와 파트너십을 맺고 온라인 카지노(DK Lotto, DK Casino & Jupae)를 구축했다 6) . 포커와 슬롯머신, 블랙잭, 복권 등을 제공하는 이 카지노는 2005년 남한에서 도박 방지 입법화 관련 이슈가 불거지기 전까지 남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Choe, 2004). 같은 해 평양정보센터는 싱가폴에 위치한 지사를 통해 〈소년 장군〉을 출시했는데([그림1]참조), 이 게임은 전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바일용 영어 게임으로, 원작은 일본과 중국의 침략자들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고려 시대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유명 만화/애니메이션 시리즈다. 2008년에 이르러 북한은 독일과 합작으로 만든 기업 노소텍(Nosotek)을 통해 플래시 및 모바일 게임을 외주 개발하기 시작한다(Williams, 2010; Campbell & Lim, 2010). 상업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에는 북한의 문화 상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이 거의 없다. 그러나 2013년부터 북한의 지원을 받는 웹 포털 〈우리민족끼리〉에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플래시 게임([그림2])이 올라오면서 북한 이데올로기의 게임화(gamification)가 시작된다. 브라우저에서 플레이 가능한 이 시리즈는 조지 W.부시와 아베 신조를 파리로 등장시킨 일종의 두더지 잡기 게임과 남한의 보수적인 이명박 대통령을 패러디한 "이명쥐" 대통령에게 펀치를 날리는 게임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한글로만 만들어진 이 게임들이 겨냥한 것은, 웹에 접속할 기회가 거의 없는 북한의 주민들이라기 보다는, 남한의 주민들 그리고 세계에 퍼져있는 한국 이주민이라 할 수 있다. * 우리민족끼리 포털에 출시된 정치적 플래시게임들. 2010년대 들어와 북한의 휴대폰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2013년부터 5.11 공장에서 중국 모델을 기반으로 한 내수용 안드로이드 휴대폰을 생산하기 시작한다(Political Reporting Team, 2013). 이러한 휴대폰은 개인용 PC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에 따라 게임용 플랫폼으로서 휴대폰이 빠르게 부상한다. 모바일 게임이 대중화되고 많은 인기를 모으면서 이제는 공공연하게 게임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방송이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Zwirko, 2021). 그러나 북한의 휴대폰들이 세계 여타의 폰들과 동일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북한의 모바일 게임은 인프라 구조의 한계 그리고 국가의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통제에 맞춰 독특한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DVD나 MP3 플레이어 같은 장치들이 보급되고 모든 유형의 미디어(해외의 콘텐츠 포함)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복제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북한 당국은 문화적 -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 생산에 대한 독점을 유지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소비할 콘텐츠를 더욱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전통적인 감시와 통제 방식이 빠르게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보다 기술적인 솔루션을 도입하는데, 현재 북한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디지털 장치 내 OS에는 암호화 서명 기반의 시스템이 내재되어 있어 비승인 프로그램의 설치와 장치 간 미디어 파일 공유가 금지되어 있다(Schiess, 2018). 즉 북한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설치되는 게임은 검열을 통과한 뒤 국가 기관의 암호화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적 통제에 더해, 게임의 유통 또한 휴대폰 이용자들의 제한된 연결성에 맞춰져 있다. 북한에서 휴대폰 이용자들의 인터넷 접속은 드물지만 WiFi나 셀룰러 데이터를 통한 인트라넷 접속은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인트라넷을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이나 데이터 비용 등은 평균적인 소비자 입장에서 여전히 비싸며, 공공 WiFi 같은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온라인 앱 스토어 같은 일반적인 유통 경로는 솔루션이 될 수 없다. 일부 특정한 앱의 경우 인트라넷 연결을 통해 라이센스나 인-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앱들은 우선 오프라인에서 설치되어야 하며, 일단 실행되면 그 이용자는 지불 기록 증명과 이용권한 파일만 처리되는 구매 과정 - 따라서 앱 전체를 다운로드 받는 비용을 피하는 - 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 - 국가적 통제와 연결성 - 에 대한 솔루션이 제공되는 곳은 "정보기술 교류실" 또는 "정보기술 봉사"라는 이름이 붙은 물리적 상점이다. 국가로부터 승인받은 앱의 유통 및 설치에 대한 허가를 받아 운영하면서 휴대폰이나 컴퓨터 수리 같은 서비스도 제공하는 이 상점들이 바로 북한의 주요 게임 제공업자다. 상점 벽에는 신작 포스터가 붙어있으며 소비자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여러 게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상점들은 평양 내에서는 흔히 볼 수 있으며, 그보다 드물긴 하지만 지방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 평양의 정보기술교류실(2018). 리버스-엔지니어링 된 게임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방법론 북한의 상점에서 볼 수 있는 게임들은 전세계 여느 온라인 샵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판매되고 있는 게임 대다수는 〈팜빌(Farmville)〉, 〈캔디크러쉬(Candy Crush)〉, 〈앵그리버드(Angry Birds)〉 같은 해외 게임들과 매우 유사한데, 그 이유는 그 게임들이 실제로 해외의 게임들이기 때문이다. 즉 북한측이 마치 북한산 게임인 것처럼 보이도록 해외의 게임들을 번역 및 개조하고 리패키징한 것이다. 예를 들어 〈피버 포 스피드(Fever for Speed, Agame, 2017)〉의 개조판 홍보 포스터를 보면, 제목이 〈만리차경주〉로 바뀌어 있고 7) 평양 컴퓨터스튜디오의 신제품인 것으로 홍보되고 있다. 또한 붉은색 공산당 스카프를 맨 어린이 캐릭터가 관객을 바라보는 모습의 배경에는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이라는 북한의 유명한 국가 슬로건이 적혀 있다. 오리지널 국산 게임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대부분은 교육용 게임이나 전통적인 아날로그 게임들(체스나 바둑, 체커 등)의 전자식 버전에 한정되어 있다. * 평양의 한 IT 상점에 걸려있는 〈피버 포 스피드 3D〉의 현지화된 개조판 게임 홍보 포스터. 지금부터는 이데올로기와 게임, 검열 간의 관계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평양에서 구매할 수 있는 현지화된 수입 게임 7편을 살펴볼 것이다. 북한이 접근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 그래서 현지 작업이나 데이터 수집을 더욱 어려운 - 국가이긴 하지만, 그 유명세는 상당히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다. 앙드레 슈미트(Schmid, 2021)가 "북한 연구는 결국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듯이, 남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유럽에는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아카이브와 자료들이 존재한다(상당 부분 디지털화 되어 온라인상에서 무료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북한에서의 현장조사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연구에 사용된 게임들은 여행 비자를 지닌 외국인들이라면 북한 내 어느 도시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드웨어 구입은 좀 더 제한적이긴 하지만, 게임과 소프트웨어는 안드로이드 버전이 돌아가는 기기라면 어느 가게에서나 설치할 수 있다. 진짜로 어려운 일은 실제로 게임이 제작되는 과정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다. 정보가 대단히 부족하고, 게임 개발사 방문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발사들이 자사의 게임 상당수가 해외에서 유래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양 같은 도시에서 게임의 소비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자주 접할 수 있기에) 어렵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본 게임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으며 시장 진입 전에 모든 게임들은 수정/개조 작업을 거치게 되어 있다. 게임의 원본과 북한의 개조 버전을 비교함으로써 어떤 요소들이 검열되는지, 어떤 개발사들이 지워지고 수정되고 또는 강조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인데, 이 글에서는 보다 알아채기 쉬운 외양상의 변화들부터 시작해서 게임 내 소스코드에 보다 깊숙이 내재된 수정/변화상을 살펴볼 것이다. 원본과 현지화 버전을 나란히 실행시키면서 화면상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을 확인하면, 게임 에셋이나 번역 또는 게임의 흐름 상의 변화들을 표면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그러나 나름의 가치있는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이 방법은 두 게임 간 차이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개조 버전의 어떤 속성이 (연구자가) 재현할 수 없는 특정한 조건 - 예컨대 북한의 인트라넷에 연결되어야 한다든가 - 에서만 활성화된다면, 그러한 부분은 간과되기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5]는 광흥 스튜디오가 만든 게임의 디컴파일 자바소스 코드의 조각들인데, 이는 게임의 이용권한 및 인-게임 아이템의 온라인 구매에 관한 것이자 통합권한관리 라이브러리다. 그러나 (북한의) 게임들은 그러한 속성의 일부만 사용하거나 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즉 코드를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게임의 권한체크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게임들은 결제를 위해 인트라넷과 QR코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더해 우리는 권한관리 라이브러리가 원본 게임 위에 덧입혀진 북한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코딩 스타일 상의 차이나 패키지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텍션과 결제 모듈 같은 것들이 일반적임(새 게임을 쉽게 추가할 수 있도록 재사용 라이브러리가 생성되므로)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 활용된 이용권 프로텍션의 수준이나 강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게임 내 모든 단어가 한글로 굉장히 주의 깊게 번역된 것과는 달리, 변수나 함수, 클라이언트 서버 메시지 등의 이름을 짓는 데는 영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 이용권한 라이브러리의 코드 조각들. 이 앱은 해당 사이트 이용자의 남은 "포인트"를 확인하고 게임이나 인-게임 아이템 구매를 위해 http를 경유하여 인트라넷에 연결해준다. 따라서 스크린상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어떤 개조가 있었는지, 그 내부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워크스루 방법론"(Light, Burgess & Duguay, 2016) 같은 기존의 분석 방법론은 바로 그와 같은 한계를 지닌다. 코드 기반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물(relic)들 - 미사용된 속성이나 기능 또는 애셋들, 개발자 코멘트 등 - 뿐만 아니라 "후드 아래(under the hood)"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호하게 남겨둔 채 "앱의 스크린이나 속성 그리고 활동의 흐름"만을 기록하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유저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앱을 분석함으로써 분석자가 놓칠 수 있는 사항들 - 예컨대 특정 속성을 활성화할 수 있는 조건이 맞지 않았던 것인지 여부 같은 - 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비디오게임이라는 기술적 인공물의 "블랙박스"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소스 코드와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 게임 개발사들이 원본 게임의 원 바이너리를 활용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디지털 포렌식 및 리버스-엔지니어링 기술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게임은 컴파일된 실행파일로서 유통되는데, 다시 말해 원본의 소스 코드가 기계어로 번역되어 데이터 파일이 포함된 애플리케이션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계어는 비트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 관찰자가 해석하기 어려운데, 이를 보다 인간 친화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로 원본의 소스 코드를 바꾸어주는 툴이 여럿 있다. 디컴파일러는 원본 개발자가 썼던 본래의 코드에 가깝게 실행 파일들을 추출하는 것을 가능케 해 준다. 하지만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가 쉽게 디컴파일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보다 낮은 수준의 어셈블리 언어로 기계어를 좀 더 쉽게 해독해주는 역어셈블러를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북한에서도 게임 제작은 자바 프로그래밍언어로 코딩된 안드로이드 응용프로그램 패키지(APK), 유니티 게임 엔진으로 개발된 게임을 위한 라이브러리, 원래 C나 C++로 쓰여진 네이티브 코드 라이브러리 등 여느 모바일 게임들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Shim et al. 2018). 각 게임에 대한 분석을 위해 우선 압축 유틸리티를 사용해서 각 게임의 실행 파일, 라이브러리 파일, 에셋 파일을 애플리케이션 패키지로부터 추출했다. .obb나 .assetbundle 등 다른 파일 포맷으로 저장된 에셋인 경우 DevX의 유니티 언패커 툴을 사용했다. 그러고 나서 에셋들을 살펴보았는데, 이는 원본과 현지화된 게임을 종합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 애플리케이션 내 제거되거나 교체된 에셋 파일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럴 땐 Java와 C# 코드용 디컴파일러를 써서(각각 Jad-X와 ndSPY) 코드에 접근했다. 디컴파일이 불가한 네이티브 코드 라이브러리는 NSA가 개발한 리버스-엔지니어링 툴인 기드라(Ghidra)를 사용해서 역어셈블 작업을 수행했다. 이 연구에서 수행한 분석 방법은 실제로 실행하지 않고도 애플리케이션을 제어하고 데이터 플로우를 재구축할 수 있는 정적 분석(static analysis)인데, 이는 특정한 실행 환경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프로그램의 모든 기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가능한 분석방법이다. 애플리케이션의 엔트리 포인트를 추적하고 나서는 "후드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게임이 로딩되면서 코드 상의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코드의 로직을 따랐다. 기술적으로 원본과 현지화 버전 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부분적으로 자동화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상당한 차이 및 작은 코드 뭉치들의 구조적인 변경으로 인해 기존의 솔루션에 의존하거나 새로운 실용적 솔루션을 개발해야 했다. 또한 사용자 인증 모듈 같이 관심이 있는 특정 속성들을 설치하고 디컴파일 및 역어셈블된 코드로부터 그 로직을 재구축하였다 8) . 정적 분석을 통해 비활성화되거나 활성화가 요구되는 흥미로운 속성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일시적으로 그 실행파일들을 수정하여 최종 이용자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이 5개 카테고리로 구분했다: "재전유" 카테고리에서는 용어 그대로 법적 소유권 및 저작권 표기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살펴본 결과이고, "현지화"와 "이데올로기적 각색" 카테고리는 모두 게임의 외양을 해독하고 원본과 현지 버전의 애셋을 비교한 결과인데, 두 카테고리가 가끔 교차되는 지점이 없진 않지만, "현지화" 카테고리는 좀 더 문화적 번역에, "이데올로기적 각색"은 게임 내에 변형(transformation)되거나 추가 혹은 제거된 이데올로기적 콘텐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액결제"와 "게임 이용권한 및 프로텍션 모듈"은 대부분 디컴파일된 코드에 대한 해석으로, 이는 게임 바이너리에 새로운 결제 방식이 삽입된 방식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재전유: 북한 게임을 실행할 때 가장 먼저 화면에 뜨는 것은 북한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법에 따른 저작권 보호 메시지와 게임에 대한 크레딧을 소유한 개발사의 이름이다. 유저 인터페이스 상의 원본 게임 개발사나 퍼블리셔를 지칭하는 모든 언급은 전부 지워져 있지만, 바이너리상에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이 남아있어 원래 타이틀을 확인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원본 게임 개발사에 문의해보니 자사의 게임이 북한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업체는 하나도 없었다. 현지화: 북한에서는 유럽, 미국, 러시아, 호주, 남한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게임들이 출신이 모호한 상태로 유통되고 있다(중국산 게임 또한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연구에선 확인되지 않았다). 영어만 사용한 게임은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한글 제공 게임일지라도 남한식 철자법과 표현, 폰트를 사용한 경우 번역을 거쳤다. 남한의 언어는 영어에서 차용한 단어가 많아 북한 이용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텍스트 말고도 과도하게 외래적이라 여겨지는 것들도 바뀌었다. 예를 들어 페더웨이트 게임즈(Featherweight Games)의 〈로데오 스탬피드(Rodeo Stampede, 2016)〉는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구정 등의 시즌에 맞춘 음악뿐 아니라 서부 아프리카와 라틴, 네팔 등지의 분위기가 섞인" 사운드 트랙을 제공하는데, 현지화 버전인 〈날으는 동물원(Pyongyang Morning Star Technical Development Center, 2018)〉에서는(역주: 원문에서는 〈Flying Zoo〉로 나와있으며 실제 북한에서 사용하는 한글 제목은 확인불가) 북한의 유명한 연주곡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수정은 단순히 소비자 취향에 맞춘 것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국가 혁명에 이바지하고 인민의 사고와 감정에 맞춘" 음악을 선호하는 공식 정책에 따른 것이다(Kim, 1991, p. 19). 원본과 현지화 버전 간 스프라이트 시트(sprite sheets) 비교는 [그림 6-1]과 [그림 6-2]를 통해 〈게임 오브 워리어즈(Game of Warriors, G-Station Studio, 2016; Kwanghung, 2018)〉 내 다양한 요소들의 다양한 수정과 변형 사례를 제시해보았다. 캐릭터 머리는 좀 더 아시아적인 얼굴의 2D 그래픽으로 바뀌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장비를 쓰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여기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캐릭터 중에는 한국의 전통 군사복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 바뀐 의상과 그림체는 북한의 SEK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만든 고려 시대 배경의 〈소년 장군〉 같은 인기 역사 만화/애니메이션과 유사하다. 영어 원본에는 "invading forces"로 표기된 적은 한국어 "오랑캐"로 바뀌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침략자였던 만주족을 멸시할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 이처럼 의상의 변형을 통해 게임을 한국의 역사 내 재배치시키는 가운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 콘텐츠의 노골성에 대한 점잖은 정도(modesty)과 민감도(sensitivity)의 상이한 기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작 게임에서 말을 타고 등장하는 붉은 머리의 바바리안 캐릭터의 드러난 맨살은 북한 버전에서 어두운 푸른색 셔츠로 덮였다. 이와 같은 커버업은 학교에서 배우고 주변에서 강제되는 행동 규칙인 "사회주의 도덕"에 맞춘 것이다. 이러한 도덕은 북한인들이 지녀야 할 매너나 예의범절 그리고 적절한 복장 등을 규율하는데, 북한에서는 군인, 나아가 남성들이 팔꿈치 윗부분이나 무릎 아래를 노출하는 것이 올바르지 못한 복장으로 여겨진다. 게임에서 졌을 때 나타나는 해골 스프라이트의 경우 북한판에서는 두개골이 두 개의 칼 뒤에 숨겨지고 해골의 팔은 지워지는 등 덜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레드 몬스터의 두드러지는 이빨이나 뿔 달린 헬멧 등의) 다른 요소들과 더불어 (바바리안 캐릭터의 벨트와 오른쪽 위에 위치한 헬멧 같은) 다른 곳에 나타난 두개골 또한 제거되거나 수정되었는데, 이는 그러한 모티브들이 일부 이용자들에게 부적절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 〈게임 오브 워리어즈〉 스프라이트의 원본 버전(왼쪽)과 현지화 버전(오른쪽). 이데올로기적 각색: 지금까지 살펴본 현지화 양상은 대개 게임을 현지 문화 등에 맞추는 것에 초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문화적 측면에는 언제나 정치적 차원이 동반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것들이 체계적으로 누락되고 북한의 언어로 재번역되는 이유는 단순히 상호이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외래어를 다수 차용한 남한의 언어가 북한의 언어에 비해 열등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남한의 외래어 남용이 언어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외래 권력에 복종하는 것임을 반영한다는 것이다(Chong, 2019). 뿐만 아니라, 남한의 경우 영어 원어를 말 그대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북한의 번역은 훨씬 더 주의 깊게 콘텐츠에 접근한다. 예를 들어 〈게임 오브 워리어즈〉에서 플레이어는 팽창주의 정복자의 역할을 맡아 적의 도시를 "정복"한 후 그것을 "식민지"로 바꾼다[그림 7]. 남한은 역사적으로 식민지 문제에 민감함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판에서 정복된 도시들은 해방된 마을과 성으로 표현된다. 원본에서 깃발의 문장들은 정복된 적 도시를 표현하지만 북한판에서 이는 "해방"과 "강점"으로 대체되는데, 이 두 용어는 직접적으로 한국의 (일제)강점기와 북한의 전(前)지도자 김일성에 의한 해방을 의미한다. 북한식으로 현지화된 이 게임은 한국의 고대 역사를 참조한 동시에, 원본의 정복과 팽창의 로직을 북한의 역사 기술에 있어 가장 많이 반복되어온 - 외래 침략자들로부터 한국의 해방이라는 - 내러티브로 재구성되었다. * 원본 〈게임 오브 워리어즈〉의 도시 정복 튜토리얼 화면(왼쪽)과 북한판 화면(오른쪽). 북한판에서는 "마을 해방 --- 마을을 해방하였습니다. 더 많은 자원을 얻으려면 성을 갱신하십시오"라고 쓰여있다. 몇몇 수정사항들이 북한의 민족주의나 주체사상을 반영하거나 강화한다면, 다른 것들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징들을 중화(neutralize)시킨다. 북한판 게임에서 다양한 형태의 돈(지폐, 동전, 보물 등)이 변형되는 방식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림의 검 양쪽으로 쌓여있는 달러가 그려진 골드 코인은 북한판 그림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으며, 게임 내에서 달러 코인은 금색 별로 대체되었다. 시리어슬리(Seriously)의 게임 〈베스트 프렌즈(Best Friends, 2014)〉의 북한 버전인 〈멍청한 달팽이(Kwanghung, 2018)〉의 경우(역주: 원문에는 〈Stupid Snail〉이라 표기되어있으며 실제 북한에서의 한글판 제목은 확인불가) 원본 게임에서 주류 통화로 사용되는 골드바(gold bar)가 노란 보석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시티 아일랜드 2(City Island 2, Sparkling Society, 2014)〉의 북한 버전의 경우, 골드바는 남았지만 게임 내 통화를 상징하는 미국 달러처럼 생긴 초록 지폐는 "유희 점수"를 의미하는 회색 종이로 대체되었다. 〈날으는 동물원〉의 경우 원본에서 Z에 두 개의 세로로 된 선이 관통한 모양의 코인이 북한판에서 삭제되었다. 이처럼 인-게임 통화의 재현 형태에 대해 일관된 처리 방식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 개발자들의 지속적인 수정과 변형 작업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 - 부와 돈 - 가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형된 코인, 골드바, 지폐 등은 화폐로서의 기능을 유지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돈의 단위로서 자신들의 기능은 빼앗긴 것이다. 이처럼 통화 상징들이 중화된 가운데, 목표가 수익의 극대화에 있는 게임들은 그 로직을 유지했다. 〈날으는 동물원〉에서 게임의 목표는 여전히 희귀 동물을 포획해서 주인공의 동물원을 발전시키고 보다 많은 관객들을 유입시킴으로써 수입을 증대시키는 것에 있으며, 〈시티 아일랜드 2〉의 경우 요령 있는 부동산 투자를 통한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소액결제: 이처럼 돈에 대한 재현을 순화시키려는 노력은 북한판 게임의 인-게임 통화가 실제 돈으로 구매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매우 역설적이다. 현지화된 게임에서 원본 게임에 딸린 광고나 구글 플레이 같은 결제 플랫폼 링크는 제거되는데, 여기서 인-앱 결제 방식은 제거되지 않고 남은 채 북한의 인프라에 맞도록 변형된다. 즉 북한 게임 산업의 행위자들에게 그 수익이 재배치되도록 수정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한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게임의 소스코드를 확인하면 새로운 소액결제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어있는지 알 수 있다. 대개 게임의 소액결제 시스템은 시리얼 넘버 시스템이나 암호화 키 파일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작동한다. 아이템 구매는 해당 아이템을 해제할 수 있는 시리얼 넘버와 게임에서 생성되어 - 오프라인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 텍스트 키나 QR코드를 교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텍스트 키 또는 QR 코드는 암호화 해시 함수(cryptographic hash function)를 이용자의 기기(모바일기기식별코드나 시간, OS 빌드의 식별자 등)의 다양한 식별자에 적용함으로써 생성된다. 이는 이용자들이 동일한 시리얼 넘버로 여러 기기에서 아이템을 해제하는 것을 방지해주며, 무엇보다도 시리얼 넘버를 제3자에게 증여하거나 재판매하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최종 이용자가 자신이 구매한 것에 대해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물리적 앱 상점이) 상품의 유통권 독점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2차 시장을 통한 이용자 간의 수평적인 흐름이 아닌, 이용자로부터 유통사와 개발사로 흐르는 수익의 흐름에 대한 소유권을 확고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광흥 스튜디오가 유통 중인 게임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 작업을 통해, 이용자의 기기가 국가의 인트라넷에 연결되어 있을 경우 온라인 소액결제가 일부 게임에서 가능함을 확인했다. 결제는, 전자식 지불카드가 아니라, 이용자 계좌와 게임이 개발사의 인트라넷 사이트상에서 연결되어 구매한 사람의 계좌에서 포인트가 차감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짐작컨데 계좌상의 포인트는 전자식 결제로 또는 더욱 높은 확률로 오프라인 상점에서 현금으로 구매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구매와 마찬가지로, 공유나 재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이용자의 계좌가 기기 고유의 식별자와 묶여있는 것이다. 게임 이용권한 및 프로텍션 모듈: 게임 내 소액결제 시스템과 더불어, 게임 그 자체의 결제도 오프라인 IT 상점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무단 복제와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게임들은 강력한 암호화 방식(4096 bits RSA)으로 보안된 라이선스 키 파일에 의존하고 있으며, 라이선스 시스템은 종종 (사용권 파일 체크를 우회하기 위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바이너리 수정을 방지하는) 파일 무결성 검사나 (디컴파일 또는 디어셈블된 소스 코드를 해독 불가하게 만들어 바이너리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방지하는) 코드 난독화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텍션 방식을 이용해서 추가적인 보안을 하기도 한다. 게임 프로텍션 모듈의 환경설정이나 강도는 개발사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전부 불법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고도화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 국가가 승인한 스튜디오에 의한 해외 게임의 불법복제 뿐 아니라 - 스튜디오가 만든 현지화된 불법복제 게임에 대한 무단 불법복제가 그처럼 고도의 방지책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만연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북한 게임의 결제 및 라이선스 시스템 내에서, 물리적 앱 상점은 게임 개발자와 이용자가 상호작용하는 플랫폼으로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이와 같은 경제적 중간층(economic middle layer)는 흥미롭게도 디지털 앱 스토어와 비슷하게 - 생태계를 둘러싸는 울타리 쳐진 정원(walled garden)이나 유저 락-인(lock-in) 테크닉, 독점 유지, 그리고 게이트 키핑 전략을 통한 콘텐츠와 자본의 흐름 통제 등의 - "플랫폼 자본주의"(Srnicek, 2017)적 특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게임 개발사나 앱 상점들이 이용자 데이터 수집 및 게임을 통한 수익 창출을 하지 않고 인-앱 구매가 유일한 수익 원천이라는 점은 플랫폼 자본주의와 다른 부분이다. 디지털 기기들이 여전히 거대한 규모로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이는 전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저작권, 감시, 그리고 소비 북한의 게임산업은 저작권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여러 국제 저작권 조약에 가입했고 세계 지식재산권 기구의 오랜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게임 개발사들은 해외 게임의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리버스-엔지니어링을 수행하고 게임을 개조하면서 현지 시장에서 재판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소비자에게는 자사의 게임들이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는 한편, 불법복제를 방지하고 지적 재산을 수익화하기 위한 복잡한 테크닉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성이 게임 산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0여년 간의 북한 법학 학술저널과 경제학 저널을 살펴보면 지적 재산에 대한 경제적, 법적 담론들이 넘쳐난다 9) . 북한의 학자들은 저작권 보호가 보다 빈곤하고 기술적 발전이 떨어지는 국가들을 희생시켜 선진국의 부를 불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공정한 행위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Hwang, 2017). 예를 들어 1980년대 말 남한이 국제 저작권 규제를 따르기로 한 결정은 "미 제국주의"가 남한의 "괴뢰 정권"을 통해 강제한 또 하나의 강탈 책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Chon, 1988, p. 82). 어떤 경제학자는 저작권, 특허, 지적 재산 연관 법률에 대해 "제2의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기술했는데,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다(An, 2005, pp. 139-140). 국제 저작권법 또한 강국들이 자국의 규율을 독립적인 해외 영토에 강제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국가의 주권을 위협한다며 비판한다(Chon, 1998; Chong, 2004; Lee, 2013).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저작권과 지적 재산에 대해 훨씬 긍정적인 평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지식 경제의 구축"과 보다 체계적인 입법의 추구가 필수라는 것이다(Kim, 2014). 이러한 변화는 저작권을 인정한 1998년의 개헌, 2001년 북한의 첫 저작권 법 및 2003년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보호법 추인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같은 해 북한은 베른 협약에 가입하기도 했다. 저작권 보호를 향한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입법상 변화는, 일반적으로 1990년대 국가 경제의 붕괴를 경험한 뒤 재산권에 대한 법적 정의가 개정되면서 진행된 것이자 남한과 북한간 상호 화해를 추구하는 소위 햇볕 정책과 함께 강화된 것으로 생각된다(Shin, 2005). 이와 같은 새로운 접근은 북한 문화상품의 남한 내 상품화 증대 및 그에 따른 로열티 수익 증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5년에는 북한의 소설을 출판한 남한의 출판사가 로열티 미지급으로 저작권 소유자들에게 피소되기도 했다(Lee, 2005). 하지만 이와 같은 두 개의 입장에 있어, 특히 국가적 이익과 주권을 우선시하는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볼 때, 근본적인 모순은 없다. 북한 경제학자들과 법학자들은 지적재산권 법을 "입법적 식민화"라고 보았던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의 주장(Stallman, 2006, p. 335)을 반복했으며, 그러한 비판은 부유한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국가들에 대해 저작권을 행사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그러한 비판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대로, 보다 선진화된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북한의 권리 소유자들이 해외에서의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국가적 이익을 수호하고 있다. 보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북한의 - 국외에서보다 - 국내에서의 저작권 활용 양상이다. 선진국의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국의 저작권 권리를 해외에서 추구하는 것은, 경제 및 문화적 제국주의를 향한 저항이나 반항으로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하지만 북한 내 저작권 적용에 대해서는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북한의 국내 저작권 시행은, 창작자에 대한 보상이라기 보다는, 통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컴퓨터 소프트웨어 보호법 통과는 국내외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국가 기관 - 중앙 소프트웨어산업 지도 기관 - 에 등록하는 것이 소프트웨어의 "과학성, 객관성, 적시성(timeliness)"을 확보하는 것이자 개발자의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보증하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규정한 것이었다. 이러한 등록 과정은 해당 소프트웨어의 오리지널리티와 보안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시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의 국가 조직이 효과적으로 소프트웨어의 유통을 통제하고 "국가의 방식과 관습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작업물을 검열할 수 있는(Computer Software Protection Law, 2003, p. 6)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작권은 소프트웨어의 흐름을 감시하고 파일 공유를 방지하는데 사용되는 암호화 서명 체계를 뒷받침하는 법·제도적 장치가 되는 셈이다. 지적 재산의 보호가 대량 감시 및 디지털 기기를 통해 국가가 승인한 것 외 다른 콘텐츠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저작권은 노동 가치로부터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 체제 하에서 인-게임 소액결제가 지닌 자본주의적 로직을 정당화하고 있다. 디지털 상품은 한계 생산 비용이 없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와 게임은 언제나 북한 경제학자들에게 문제적으로 인식되어왔다(Lee, 1998).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고정된 노동량과 연결시키는데 있어서의 그 어려움은 역으로 훨씬 유연한 가격 모델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게임의 경우 이를 통해 소액 결제 기반의 수익화 시스템이 번성할 수 있었다. 이 수익화 시스템은 현지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상으로서 제거되는 대신, 북한 시장에 맞게 각색되었다. 이러한 측면은 북한의 문화적 환경 내에서 게임이 독특해지는 지점인데, 게임이 이용자를 (현지화된 특성이나 이데올로기적 표현을 통해) 시민으로서 호명하면서 동시에 소비자로서도 호명하기 때문이다. 소비(consumerism)가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Betts, 2014; Gerth, 2020), 중앙 계획식 생산 및 사치나 불필요한 지출에 대한 멸시, 계층적 구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이상, 소비상품의 부족 등은 사회주의 내에서 소비를 드문 현상으로 만들었다(Stitzel, 2005; Tsipursky, 2016). 특히 북한의 경우 소비상품은 인민의 실질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으로, 수익 창출을 위해 "인공적으로 구매 욕구를 촉진"하는 시도는 "물질적 문화의 삶을 망치는" 자본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을 받았다(Kim, 2015, p. 32). 소비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목적이 있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문청완은 소니(Sony) 등 자본주의 기업이 컴퓨터나 게임을 생산하는 것을 그 상품의 "실제적인 쓸모"와는 무관한 생산이라 보았다. 북한이었다면 동일한 상품(컴퓨터)이 교육이나 생산적인 활동을 관리한다는 목적을 표명하며 기획되었을 것이다(Mun, 2009). 이러한 형태의 소비를 보여주는 흔적들은 북한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Schmid, 2017), 예를 들어 국가 선전 포스터, 잡지, 상점 등은 상품과 소유의 미학을 활용하면서 소비자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상품을 꾸미고 전시하였다 10) . 이러한 형태의 소비는 일상적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국가의 사회주의식 생산 방식이 성취한 물질적 풍요를 보여주는데 활용되고 있다(Dobrenko, 2007, p. 282). 의심스러운 소비 또한 - 비공식적으로나마 - 흔했고, 희귀하거나 비싼 소비 상품들이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Choi, 1991). 하지만 이상의 기존 소비 양상과 게임의 소액결제 모델은 상당히 다르다. 주지하다시피 인-게임 구매는 지속적인 소비 패턴을 도모하고 플랫폼 자본주의의 지대 추구 시장을 유지하도록 진화해왔다(Nieborg, 2015; Almaguer, 2018; Joseph, 2021). 소액 결제 시스템의 이와 같은 수익 극대화 로직은 북한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데, "타임 랩스"나 잠긴 레벨, 구매해야 하는 보너스 등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유료화 장벽을 북한의 플레이어들이 돈을 써서 우회하는 방식이 장려되고 있다(Burroghs, 2014). 자본주의 세계의 플랫폼이 북한 소프트웨어 산업 중앙 지도 기관의 독점적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대체되었을 뿐인 것이다. 기존의 소비 양식은 언제나 물리적 자원의 결핍/부족이라는 현실 그리고 계획 경제를 통한 물질적 풍요와 공정한 배분에의 약속 사이에서 협상해야 했다. 그러나 소액결제에서는 결핍/부족이 적용되지 않는다. 추가적인 저장소나 연산 작용 없는 아이템의 무한 증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템들은 또한 이미 원본 게임에 코딩되어 있고, 해적판에서는 추가적인 개발이나 디자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이용자의 구매가 현지화 된 지불 시스템을 만든 노동에만 지불됨을 의미한다. 지불할 권리에다 지불하는 셈이다. 따라서 게임에 엮인 소비 형태는 목적이 있는 소비나 게임 개발에 투입된 노동으로부터 분리된다. 대신 그것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재정적 수익의 추출이다. 북한의 불법복제를 통한 해외 게임의 현지화는, 지정학적,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작고 빈곤한 후기-식민 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 해외로부터의 영향을 제한하고 불공정한 지적 재산 규제에 저항하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익화에 기반한 소액결제가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게임이 북한이 국가적으로 주장해온 가치에 반하는 소비주의적인 수익 추구 행위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과 같이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이러한 행위의 발생은 일종의 해방 신호로서 환영할만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수익화를 추구하는 게임의 부상이란 그 이용자와 생산자가 소련의 2차 경제를 연상시키는 "비사회주의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주체성의 증대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루딕(ludic) 경제는 전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 경제 체계가 단일한 주체에 의해 엄격한 감시 시스템 하에서 국가의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 당국이 지적 재산 체제 및 그와 연관되는 수익화 시스템을 빠르게 수용해서 활용하는 양상을 보면, 그것이 대량 감시와 소비자 착취와 엮여있음을 알 수 있다. 수익 극대화, 자본 축적, 독점 등의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고스란히 반영한 메카닉을 지닌 채 기존의 수익화 시스템과 통합된 게임의 북한 내 인기는, 나아가 놀이(ludicity)의 문화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속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유화된 시장의 경쟁적 속성에서부터 로빈후드(Robinhood)앱에서 나타난 게미피케이션화된 주식과 옵션 거래, 그리고 암호화폐 기반의 P2E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게임과 탈중앙화된 금융 간의 혼합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이미 게임과 유사한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Giddings and Harvey, 2018). 그렇다면 그러한 게임에 대한 북한 이용자들의 열정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놀이적인(ludic)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게미피케이션이 그러한 것을 - 북한의 검열 체계 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 좀 더 보편화하고 있는 것일까. 1) 2019년과 2020년에 평양에서 6군데 IT 상점에서 접했던 소프트웨어 카탈로그들을 비공식적으로 살펴본 것에 기반한 판단이다. 알렉 시글리의 기사(Sigley, 2019)를 참조할 것. 2) 여기서 사용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라는 용어는, 상품의 가격이 민간 주체에 의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 평등을 표명하는 정치적 목표에 맞춰 (그러나 그러한 목표가 실현되거나 실질적으로 추구될 필요는 없는) 중앙 계획 당국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체제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북한이나 소련, 중국을 위시한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행했던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마르크스 등 여러 학자들이 말했던 사회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나 생산 수단의 소유(및 국가가 노동자의 대리로서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것 등)에 대한 문제 등은 논외로 배제한다. 또한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사회주의 국가 내의 특정 조직이나 기관에서 사용한 경우(예컨대 공산당이라든가 청년 공산당 조직 등)를 제외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대중적인 정의는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이 중앙 계획 경제체제를 운영하는데 있어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라든지 여러 문화적 요인들이 사회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끼친 영향 같은 것 등 다양한 입장들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나아가 각 국의 경제체제가 거쳐온 역사적 변화과정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력을 지니지 못한데, 예컨대 김정은의 경제 정책은 조부인 김일성 시대의 정책과 상이하며, 둘 다 상이한 시점에 상이한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 주권이나 소비, 사적 소유 등과 관련해서 북한 사회주의의 특성을 논할 때는 부가적으로 역사적 맥락과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3) 니콜은 조영찬(Cho, 2016)의 논의를 빌어 남한에 비디오게임 및 야구가 유입된 것이 일본과 미국의 "신식민주의"에 따른 결과라고 기술한다. 문화 제국주의적인 요소(Mohammadi, 1995)들과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점령하다시피한 국내외 게임 시장을 통해 들어온 전(前)지배세력이자 경제적 제국주의 국가(즉 미국과 일본)의 게임들에 담긴 가치나 상징, 미학적 요소들이 결합되어있다는 것이다. 니콜은 나아가 불법복제로부터 성장한 한국의 게임산업이 국가적 - 그리고 민족주의적 - 상징으로 게임을 재전유함으로써 그 과정을 전복시키면서도 그러한 과정에 여전히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한편 리버스-엔지니어링 분석은 학계 외의 게임 보존가들 사이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5) https://www.silverstar.co.jp/ 6) 해당 게임의 웹사이트는 www.mybaduk.com, www.dklotto.com, www.dkcasino.com, www.jupae.com을 통해 호스팅되었으며 지금도 the Internet Archive에서 접할 수 있다. 7) '리'란 동아시아권에서 400미터 정도되는 거리를 지칭하는 전통 단위다. 8) 사용된 방법론이나 툴에 대한 정보를 더 알고 싶다면, 다음의 링크를 통해 리버스-엔지니어링된 북한 게임들의 소스 코드 변경사항과 암호화 방식을 살펴볼 것: https://digitalnk.com/blog/2019/04/21/reverse-engineering-a-north-korean-sim-city-game/ 9) 여기에 해당하는 저널로는 〈경제연구〉, 〈정치법률연구〉, 〈김일성 종합 대학 학보〉가 있다. 10) 예를 들어 1970년대에 북한이 발행한 〈Korea Today〉 잡지(nos. 914(1972), 201(1973), 203(1973), 12(1974) 등)에 실린 백화점이나 산업박람회, 농산물박람회 사진을 보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불명 Anonymous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장준수
장준수 장준수 시너지 없는 '토목공학'과 '국어국문학' 스킬트리를 타고 근데 이제 2차 전직을 '영상 제작'으로 선택해버린...혼종 (똥망캐까진 아무튼 아님). 게임 방송국 OGN 포함, 10년간의 방송국 PD생활을 거치고 이제는 퇴사 후 프리랜서 PD로 인생 '가챠'와 '덱빌딩' 사이에서 서커스 중. Read More 버튼 읽기 영상의 환상이 사라진 지금, 숙제를 남긴 2023년의 두 유비식 오픈 월드 2023년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유비식 오픈 월드 게임인 <호그와트 레거시>와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모두, 다음 시리즈에서는 게임의 시스템과 세계관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잘 융합된 충격적인 작품으로 돌아오길 응원해 본다.
-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 Back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01 GG Vol. 21. 6. 10. 게임법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대로 쓰다가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 아무래도 현재 게임법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시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다. 법안이 발의되고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발의-상임위원회 심사-법제사법위원회 심사-본회의 심사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전부개정안은 상임위원회 심사단계에 있다. 상임위원회 심사는 다시 전체회의 상정-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전체회의 의결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전부개정안은 상정 단계를 지나 법안소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발의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심사가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공청회 순번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여‧야 문체위 소관 법안에 대한 이견으로 심사 속도가 더딘 것이다. 공청회부터 설명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법안의 종류부터 설명해야 한다. 법안은 크게 제정법안, 전부개정안, 일부개정안으로 구분된다. 제정법안은 말 그대로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다. 전부개정안은 기존에 있던 법이지만 어떠한 이유로 법의 체계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싹 바꾼 형태다. 마지막으로 일부개정안은 어떤 법의 몇몇 조항만 개정하여 발의한 유형이다. 게다가 제정법안과 전부개정안을 대상으로는 한 가지 절차가 더 필요하다. 국회법상 공청회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일부개정안에 비해 전부개정안과 제정법안을 심사할 때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을 진술인으로 불러 이 법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이를 통해 법안을 심사할 때 참고하게 된다. 공청회는 상임위 교섭단체 간사간 협의에 따라 생략이 가능하다. 공청회를 생략하면 법안 심사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될 수 있지만, 반면 심사가 부실해질 수 있고 법사위에서 공청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류될 우려도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21대 상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는 발의된 모든 문체위 소관 제정법안과 전부개정안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실시하고, 그 순서는 발의순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게임법 공청회는 15번째 순서다. 한참 오래 걸릴 것처럼 보이지만, 여차저차 공청회가 계속 열렸다. 이제 게임법 앞에 놓인 공청회는 불과 네다섯개 정도다. 여‧야 정쟁을 설명하자니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하지만 숨기지 않고 세세하게 얘기하겠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문화 및 예술 분야의 법안을 심사하는 1소위원회와 관광‧체육 분야의 법안을 심사하는 2소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2소위원회는 꽤 잘 진행되어 왔다. 문제는 1소위다. 일단 문체위 소관으로 발의되는 법안 중 1소위 소관의 법안 수가 2소위 법안보다 많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야간 이견이 컸던 법안들은 거의 다 1소위 법안들이었다. 법안을 심사하다가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정회를 한다. 정회하고 간사간 협상을 시도하는 것인데, 타결이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머리가 아파진다. 정회 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거나, 산회하고 다음 회의 전까지 협의를 이어가기로 하고 회의가 끝나게 된다. 심할 때는 법안소위가 아예 열리지 못하는 회기도 왕왕 있다. 이 경우, 해당 쟁점 법안 뒤에 심사를 기다리던 나머지 법안들까지 심사가 밀리게 된다. 앞서 말한대로 쟁점법안들은 거의 1소위 법안인데, 가뜩이나 법안 수도 많은데 병목현상까지 생기면서 심사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면 게임법이 2소위 소관이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다 아예 심사도 못하고 전부개정안이 폐기되는거 아니냔 불안이 엄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이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법안은 ‘언제’심사될 지의 문제일 뿐, 심사 자체는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부개정안을 제외하고서도 확률형 아이템 관련 법안이 이미 3건이나 발의되어 있고, 발의 절차에 있는 법안이 2건 더 있다. 이처럼 특정 사안에 대해 여러 건이 발의 되어 있는 법안은 심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낮다. 국회에서 일한 지 10년 차다. 그동안 적지 않은 수의 법안을 만들어 왔다. 국민에게 칭찬을 받을 때도, 반박할 수 없는 비판을 들을 때도 있었다. 정말 좋은 내용의 법안인데 생각하지도 못한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임기 만료 폐기될 때도, 일사천리로 통과될 때도 있었다. 법안 하나하나가 모두 내 자식 같고,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법안을 만드는 정책보좌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때문에, 어떤 법안에 가장 애정이 깊은지 물어보면 답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법안을 추진할 때 가장 힘들었나 물어보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이다. 게임법처럼 이해관계자가 많고, 첨예한 법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게임법이 게임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유독 크기도 하다. 역사에 비해 발전 속도가 빠른 산업일수록 이런 경향이 큰데, 게임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게임법 조항 하나만 개정돼도 파급력이 클 때가 많다. 조항 하나에도 이런데, 수십 개의 조항이 새로 쓰여지는 제정법안이나 전부개정안은 말할 것도 없다. 조항만 많은 것이 아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여있는 게임의 종류들도 많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온라인 pc게임, 모바일 게임, 아케이드 게임, 웹보드 게임, 콘솔 게임, 교육용 게임, VR 게임, 여기에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블록체인 게임까지.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법은 하나다. 물론 게임법 내에서 몇 가지 구분을 둔다고는 하지만, 게임 저마다의 특징을 모두 반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한국게임산업협회, 게임문화재단, 모바일게임협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한국게임학회 등등… 게임 종류별, 직업별 의견을 내는 목소리들도, 추구하는 바도 각양각색이다. 목적 자체가 이윤추구인 게임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법 하나에 이 모든 내용을 담으면서도 모두가 만족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우리 의원실에서 발의하기 내키지 않았다. 나도 사람인데, 이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 심사 과정 내내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야 할 것이 뻔해 보였다. “욕먹기 싫은건 당연하다. 이해한다. 하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국민이 그 노력을 몰라줘도, 언론에 기사가 많이 나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쉽고 편한 길만 가려고 하지 마라. 나는 그렇게 정치를 배우지 않았다.”이 문제로 이상헌 의원님께 보고드렸더니 하신 말씀이다. 결국 우리 의원실에서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는 언론에 많이 다뤄져서 내용을 알고 계신 분들도 많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를 두고 게임업계와 논쟁하는 동안, 많이 괴로웠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법안과 나를 헐뜯었다. 추측성 음모론도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게임업계인이나 기자들 여러명과 서먹해지기도 했다. 전부개정안의 다른 조항과 연관된 다른 이해당사자들은 내 뒤를 밟는다던지, 면전에서 몸 조심하라는 협박까지도 했다. 그래도 앞을 보고 걸어가야 한다. 전부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이상헌 의원님 말씀대로 힘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고(産苦)가 크지만, 통과되고 나면 이용자 권익보호가 보다 강화될 수 있고 게임업계도 한층 성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국회 보좌관)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 Back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08 GG Vol. 22. 10. 10.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실러캔스를 통해서 연구자들은 어류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양서류가 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추론할 수 있었다. 나는 보드게임을 보고 있으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몇 천년 전 인류 중 하나가 땅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가지고 재밌게 노는 장면을 말이다. 놀이의 역사 속 보드게임 게임의 역사는 곧 보드게임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 흔히 말하는 비디오 게임은 전기가 발견되고도 한참 후에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전부터 게임을 즐겨왔던 인류는 보드게임을 게임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요한 하위징아 ‘호모루덴스’라는 책에서 문명은 놀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좀 더 급진적으로 그는 문명의 모든 것이 놀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논란이 있다. 하지만 ‘놀이 문화’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통일 신라 시대 유물로 알려진 안압지 14면체 주사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게임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종이가 발명되고 나서 나타난 카드의 존재는 게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 덕분에 사람들은 정보를 이전보다 쉽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종이는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이점도 가졌다. 당나라에서는 종이 화폐, 즉 지폐에 해당하는 ‘지전(紙錢)’이 생겨났다. 이 때 지전을 활용하거나 혹은 비슷하게 따라한 종이돈을 만들어서 게임에 썼다고 한다. 이게 흔히 아는 트럼프 카드의 시초이다. 이런 카드는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이슬람에 전해지고, 이슬람에 전해진 제지 기술과 카드는 유럽까지 전해진다. 각 지역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던 카드 정보와 그림은 인쇄기술을 만나면서 점차 통일되어 간다. 인쇄 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게임 관련 서적 발행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카드게임 룰이 정리되고,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지금 한국의 보드게임은 어떠할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매년 산업의 전반적인 상황을 알려주는 ‘게임백서’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한다. 2021년에 발간된 게임백서에서는 보드게임 동향에 대해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1. 수집으로의 보드게임 취미 확대 2. 소그룹 플레이 양상 3. 디지털 플랫폼에서 플레이 4. 코로나 19 방역조치로 인한 보드게임 카페의 저성장 5. 물류비 및 제조 원가 상승 6. 온라인 유통 채널의 급상승 7.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광고, 홍보 플랫폼 강화 2020년 당시엔 코로나 여파로 인해 대면활동이 매우 힘들었다. 이런 상황은 게임 산업 전반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보드게임 산업계에도 다르지 않았다. 보드게임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플레이를 하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업계 대부분은 매출이 줄지 않았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2021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보드게임 시장 1위인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경우 전년 대비 32.7 %의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코리아보드게임즈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들의 매출도 전년대비 상승했다. 게임백서를 바탕으로 현재 보드게임 상황에 대해서 나름의 추측을 해보았다. 1. IP 컬러배러이션 등으로 비(非)보드게이머의 유입을 통한 매출 증대 2020년에는 위쳐, 워크래프트 등 보드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IP를 기반으로 한 보드게임이 출시되었다. 컨텐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일종의 굿즈 느낌으로 보드게임을 소유하기 위해서 구매했다. 이를 기반으로 보드게임에 관심 없던 ‘비보드게이머’가 보드게이머가 되기 시작했다. 2. 매니아 취미로만 인식되던 보드게임, 코로나 19로 인한 가족 중심 소비 증가 코로나 19로 인해 어린이집 또는 학교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워졌고 아이의 보육과 교육을 온전히 가정에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때문이었는지 캐주얼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루미큐브(Rummikub)’ 등의 보드게임 판매가 늘었다. 이를 통해 보드게임에 대해 거의 모르던 사람들이 보드게임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3. 코어 게이머의 증가와 함께 코어 게임 매출 증가 코로나 19 유행 이전부터 보드게임을 즐겼지만 난이도 있는 유로 게임까지는 즐기지 않은 게이머들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유행 이후로 다양한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한 게임 홍보와 함께 보드게임 매니아(‘게임백서’에서는 이를 ‘코어 게이머’라 칭한다)를 위한 보드게임이 많이 출시되었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많이 바이럴 되었다. 심지어 ‘글룸헤이븐(Gloomhaven)’은 두 번째 인쇄판이 나오기 전까지 리셀러들에 의해서 정가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위와 같은 세 가지 추론을 종합해보면 보드게임 시장이 코로나 19가 유행한 상황에서도 매출이 커진 현상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일단 IP 컬러배레이션 등과 같은 이유로 보드게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보드게임을 접한 사람들 중 보드게임에 관심이 커지는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한 여러 홍보채널을 통해 이전보다 더 다양하게 발매되는 보드게임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커뮤니티를 통해 ‘꼭 플레이 해봐야 하는 보드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에는 품절되는 일이 잦은 매니아용 보드게임은 거의 대부분 구매까지 이어진다. 보드게이머들 중에는 보드게임을 모으는 것 자체가 게임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드게임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그 종수가 점차 많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제조 원가와 물류비용 증가로 인해 보드게임 가격이 비싸지고 있는데도 구매를 주저하기는 커녕 오히려 지갑을 더 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데뷔하는 실험장 게임. 그리고 보드게임 게임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의 실험장이 되곤 했다. 컴퓨터와 관계된 기술은 게임을 위해서 개발된 기술이 아님에도, 이를 가장 먼저 활용하는 곳은 높은 확률로 게임이고는 했다. NPC의 다양한 행동을 위해서 내부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기도 하고 메타버스라는 개념 역시도 게이머들에겐 매우 익숙한 개념이었다. 증강현실도 마찬가지였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여러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했지만 대중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게임인 ‘포켓몬 GO’였다. 이처럼 게임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가장 빨리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보드게임은 어떨까? 보드게임은 만질 수 있고, 실제 움직일 수 있는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다양한 기술의 접목으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한밤의 늑대인간’ 이라는 마피아 류 보드게임에서는 진행자 없이도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언락(Unlock)’ 이라는 게임 시리즈는 카드에 담겨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인데, 문제의 답과 판정을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확인 할 수 있다. ‘광기의 저택’이라는 게임은 더 특이하다. 게임을 구매하면 이를 진행할 수 있는 피규어와 모듈 형 게임 판을 제공할 뿐이다. 스팀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스토리를 확인하고 실제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다. 코로나 19 이후에 게임 홍보 역시도 온라인 채널을 활발히 활용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보드게임 콘 등 보통 신작 보드게임을 홍보하던 오프라인 채널을 운영하기 힘들어지면서 많은 유통사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홍보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소통 채널은 비단 유통사만 활용한 것은 아니다. 많은 보드게이머들이 보드라이프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서 기존에 보드게임에 친숙하지 않던 이들이 정보를 찾기 쉬워졌으며, 여러 공략방법 역시 얻을 수 있었다. 점차 증가하는 코어 유저 수와 그들이 바라보는 보드게임 보드게임은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수고스러워진다. 많은 부분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비디오 게임과 달리 보드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스스로가 해결해야하는 부분이 많다. 보드게임을 플레이한다고 하면 먼저 룰을 익혀 공부를 해야 한다. 게임에 따라서는 공간 자체도 필요하다. 혼자서 가능한 게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 보드게임 하나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일이 정말 많다.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보드게이머는 스스로 게임을 행사해야만 한다. 보드게임과 비디오 게임을 가르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보드게임에 참여하는 모두는 룰북에 있는 룰을 숙지하고,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 룰에 대한 판정은 플레이어 스스로가 감시하는 특징 역시 가진다. 이는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다. 다른 놀이와 비교해도 그렇다. 비디오 게임과도 그렇기에 다르다. 비디오 게임에서는 정해진 룰을 벗어나게 되면 게임 자체가 오류를 일으키거나, 플레이어를 막아 세운다. 하지만 보드게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룰북이 모든 걸 다 정해줄 수 없는 부분도 있어서 어떠한 경우에는 참여한 플레이어들간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보드게임 중 대부분은 그 게임을 펼칠 공간과 같이 플레이할 사람이 필요하다. 모바일을 통해서 언제든지 실행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현재의 비디오 게임과는 다른 상황이다. 그래서 보드게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 코어 유저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이렇게 변화한 보드게이머는 점차 더 다양한 게임적 경험에 대해 욕망하게 된다. 특히 함께 게임을 할 플레이어가 필요한 보드게임 특성상 커뮤니티나 모임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러캔스는 과연 실러캔스인가? 지금 발견되는 실러캔스는 과연 예전에 절멸했다고 말하는 실러캔스인걸까? 아무리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말을 하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러캔스는 그때의 실러캔스가 아니다. 보드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의 역사와 보드게임 역사는 거의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드게임은 게임이 가지는 본래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장르이다. 한편으로는 가장 실험적인 게임일 수 있다. 킥스타터 등의 펀딩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소량제작이 원활해지고, 국내에도 더욱 다양한 작가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보드게임 시장의 크기가 커짐과는 별개로 다양한 재미를 가진 게임이 발표되고 많이 플레이 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더 흥미롭고 재밌어질 보드게임을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께도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참고문헌 & 자료 1. 호모루덴즈 (요한 하위징아 지음) 2. 게임의 역사와 이해 (김정태 지음, 도서출판 홍릉) 3. 카드 게임의 기원: 플레잉 카드(aka 트럼프 카드)의 역사 1편 - 카드 게임은 어디서 왔을까? (데굴데굴 studio 코리아보드게임즈 유튜브채널) 4. 2021 대한민국 게임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5. 실러캔스 항목 (위키백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보드게임기획자) 윤창환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보드게임을 만드는 재미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항시 보드게임 게이머 모집 중입니다. @imakeboardgames 인스타그램 으로 연락주세요.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김도근
김도근 김도근 디지털 미디어와 같이 자란 세대로 특히 디지털 게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 레트로 시대 한국 게임비평의 흔적들
< Back 레트로 시대 한국 게임비평의 흔적들 02 GG Vol. 21. 8. 10. 한국에서 게임의 역사는 길지 않다. 길다 짧다는 것이 주관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길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은 한국 게임의 역사가 길지 않다고 한다. 다른 매체에 비하면 그 탄생이 늦어서 짧다. 미국, 일본보다도 짧은 편이다. 주변부의 다른 국가에 비하면 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게임의 역사를 몇 년으로 봐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가 한국 게임 역사의 시작이라고 하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1987년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시행 시기와 함께 출시된 〈신검의 전설〉을 그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1983년 컴퓨터 보급과 컴퓨터 잡지의 발간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그에 앞서 아케이드용 전자 오락기들이 막 수입되고, 가정용 오락기들이 수출용으로 제작되던 때를 시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짧게 잡는다면 25년 정도가 될 것이다. 가장 길게 잡는다면 50년이 될 수 있는 이 역사는 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80년대 〈갤러그〉를 하던 오락실 어린이들이 지금은 성인이 되어 비슷한 연배의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된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도 게임이란 매체가 다른 매체만큼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될 것이다. 다만 우리 안에서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치가 산업적으로의 게임의 위치만큼은 아니라는 것은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이유로 여러 가지를 지목할 수 있겠지만 다른 매체처럼 충분한 평론 등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게임 평론이란 분야는 다른 매체만큼 활성화되어있지 못하다는 것 역시 대부분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국내에서 게임 평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해외의 평론만을 수입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 평론이 필요하다고 하는 견해만큼이나 게임평론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많은 부분일 것이다. 지금의 한국에서 게임 평론 시도들은 일부 웹진의 기자들을 통해 이루어지거나, 일부 게임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평론을 지면에 생산하는 게임평론가는 매우 적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 게임 평론계는 의미 있게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25년 동안 한국 게임계는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렇다 보니 실제 게임평론을 생산하지 않는 자칭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최초의 게임평론가라고 이야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도 벌어지고는 한다. 이런 점을 정리하려면 먼저 과거에 있었던 게임비평에의 시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임잡지를 통해 나타난 초창기의 게임평론 시도들 한국에서 최초의 게임잡지를 꼽으라면 1990년에 창간된 〈게임월드〉일 것이다. 그 무렵 컴퓨터 게임을 복사해주거나 판매하는 소프트하우스 중심으로 동인지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공식적으로 출판된 게임잡지는 〈게임월드〉가 가장 먼저였다. 이후 〈게임뉴스〉, 〈게임챔프〉, 〈게임정보〉 등 다양한 가정용 게임기를 다루는 게임잡지들이 출간되고 이후 컴퓨터 게임을 다루는 컴퓨터 게임 전문지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잡지들은 국내에서 게임 문화가 자리 잡는 데 큰 영향을 끼쳤지만, 시기상 게임의 유입보다는 늦었다. 흔히 한국 게임개발 원년으로 다뤄지는 1987년보다 4년 이른 1983년 창간된 〈컴퓨터학습〉과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는 이미 컴퓨터와 게임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각 컴퓨터 제작사별로 제공되는 게임들을 비교하기도 했다. 이 무렵의 게임에 대한 소개를 평론이나 공략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었다. 〈컴퓨터학습〉 1984년 1월부터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실린 〈제비우스 1,000만점 돌파의 비밀〉은 일본 컴퓨터 잡지에 있는 공략을 그대로 옮겼으나, 국내 최초의 게임공략으로 인지되며, 〈컴퓨터학습〉이 이후 게임을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제비우스〉 공략이 실린 컴퓨터학습 1984년 1월호와 2월호. 컴퓨터 전문 잡지들의 게임 필자들은 학생들이 주로 맡은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분 투고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게임 초기에 게임평론가로 활동했던 박병호는 학생 때 〈컴퓨터학습〉에 게임공략을 투고하여 잡지에 게재된 것을 인연으로 〈컴퓨터학습〉에 MSX 게임공략을 꾸준히 연재하였다. 상당히 많은 필자가 게임공략으로 활동하였으나 이 중 게임평론가로 활동을 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박병호는 이후 〈PC매니아〉 등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평론가로 활동하며 나중에 〈게임피아〉 등의 잡지와 〈경향신문〉에서 종합지 최초로 게임 관련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 〈컴퓨터학습〉 86년 3월호에 실린 〈헬기대작전〉의 공략. 〈헬기대작전〉은 윌라이트가 제작했던 〈번겔링만의 습격〉 MSX판의 국내 유통 제목이다. 1990년대 초 게임잡지들의 창간은 이러한 컴퓨터 잡지들의 게임 코너의 영향들을 받았다. 초기 게임잡지 중 특히 주요한 영향을 꼽은 잡지라면 〈게임월드〉, 〈게임챔프〉, 〈게임채널〉 등이 있으며, 게임잡지들은 대부분 창간과 함께 필자들을 모집하며 기술 중에 게임 평론을 요구하기도 했다. 93년 추가로 〈게임정보>를 창간한 미래시대는 "나도 게임평론가"라는 코너로 독자들의 게임에 대한 평가를 연재하기도 했다. * 〈게임정보〉에 실렸던 독자마당 '나도 게임 평론가' 코너. 93년에 창간된 〈게임챔프〉는 기자들을 명인으로 지칭하며 신작들을 모아 평가를 했다. 평론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지만, 평점과 함께 기자의 이름을 걸고 평가를 하는 시스템은 이후 창간되는 〈PC챔프〉-〈PC파워진〉으로도 이어져 기자의 이름과 함께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 업계를 평론하는 연재하는 지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게임챔프〉에 실린 명인의 게임평가. 초기의 게임잡지들이 일본의 것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게임 유통사였던 동서게임채널에서 발행한 〈게임채널〉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 유학을 계기로 게임산업에 진출하게 된 대표의 영향도 있겠다. 〈게임채널〉은 창간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미국의 〈컴퓨터게이밍월드지〉의 칼럼이나 게임에 대한 평가를 국내에 소개했으며 바이라인과 함께 기자 사진이 같이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 게임 시장이 컴퓨터 게임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컴퓨터 게임 전문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존 게임잡지들의 부록으로 시작해서 자매지로 창간되는 경우부터 방송사에서 직접 창간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잡지들이 창간되었으며 비디오 게임 잡지의 편집 형태가 일본 게임잡지를 따라가는 그것과 달리 좀 더 미국의 게임잡지에 가깝지만 고유한 형태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기자들의 이름을 걸고 게임 자체를 깊게 평가한다던가, 게임뿐만 아니라 업계나 문화 자체에 대한 칼럼을 기자의 이름을 건 코너 등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93년 12월 정보문화센터에서 주최한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에서는 여러 수상작이 나오며 실제 게임으로 발매되는 단계까지도 갔는데, 당시 인식으로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자는 게임전문가라는 인식이 있어, 이 수상자들이 게임 칼럼니스트들로 활동하는 예도 있었다. 이 중에서도 이문영 씨의 경우 다양한 기고와 함께 게임피아에서 울티마 온라인 여행기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 〈피씨파워진〉에 실렸던 기자들의 평론이나 칼럼들. 〈게임월드〉와 〈게임챔프〉가 시작한 가정용 게임 잡지들은 〈게임매거진〉, 〈게임라인〉 등 후속 잡지들이 출현하면서 좀 더 다양하게 바뀌었다. 모두 다른 잡지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가능한 일본의 최신 정보를 가져오려고 노력한 부분과 함께 깊이 콘텐츠를 만들려는 노력이 함께 했다. 〈게임매거진〉의 경우는 TRPG를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했으며 〈게임라인〉은 좀 더 자신의 색이 강한 콘텐츠가 강점이었다. 이중 게임라인에서 연재했던 'B급 게임의 심오한 세계'는 게임에 대해 좀 더 깊게 접근하면서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 〈게임라인〉에 실린 B급 게임의 심오한 세계 코너. 게임잡지의 인기가 좋다 보니 그동안 〈게임채널〉이나 〈PC챔프〉에서 기사 협약을 통해 단신으로만 소개되던 〈컴퓨터게이밍월드〉를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출간하던 잡지사인 정보시대에서 직접 라이선스를 가져와서 창간하는 예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시도는 게임잡지들의 과다한 경쟁으로 인해 길게 가지는 못하였다. 〈게이머즈〉를 발행하던 게임문화는 일본의 잡지 〈게임비평〉의 라이선스를 얻어 일본의 잡지 내용에 한국에서 제작한 원고를 추가하여 같은 이름으로 〈게임비평〉을 격월로 출간하였다. 일본의 〈게임비평〉처럼 광고를 전혀 받지 않아 독립적인 편집을 보장한다는 기조는 격월로 좀 더 깊은 주제의 이야기들이 실렸으며, 국내 실정에 대한 분석, 평론이나 당시 〈악튜러스〉를 개발했던 김학규가 〈악튜러스〉의 개발 철학과 다루는 주제에 대해 기고를 하는 등 인상적인 시도가 많았으나, 3년 정도 이어지고 휴간하였다. * 〈게임비평〉 표지. 한국에서 90년대 게임 평론에 대한 시도의 한 축이 잡지라면, 다른 한 축은 PC통신일 것이다. PC통신이 등장하기 전에는 게이머들의 교류는 각 지방 소프트하우스를 중심으로 매우 작게 일어났으며, 잡지에 기고하던 필자들 역시 이렇다 할만한 교류가 있지 않았다. KETEL이 등장하고 개오동이 등장하고서야 게이머들이 장소를 초월해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곳에서는 활발하게 이야기가 오갔는데, 이러한 PC통신 동호회의 특징이라면 게시판에 대한 강한 규칙이라 양식이나 내용을 구분할 수 있는 제목의 말머리 등을 강하게 통제하였다. 초반에는 게임의 공략 질문 친목 위주로 운영되었다. 처음엔 PC통신 서비스가 KETEL이 이름을 바꾼 하이텔뿐이었지만 이후 PC-Serve가 이름을 바꾼 천리안과 나우누리 등의 서비스가 늘어나고 게임을 다루는 동호회도 늘어났다. 이러한 동호회에서는 게임에 대한 소감, 평가에 대한 수요가 있어 한곳에 모아놓기 시작했으며 당시의 컴퓨터 자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한된 게시판 숫자, 글, 자료실 용량으로 기존 게시판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90년대 후반에서는 동호회들마다 평론, 평가 게시판들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다 보니 게임의 홍보에 게임평론가란 호칭과 함께 이름과 하이텔 아이디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 하이텔 시뮬동의 소개/평론 게시판.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걸쳐 게임 평론에 대한 시도들은 게임전문지뿐만 아니라 그 밖에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 게임평론가로 활동하던 박병호는 1996년부터 5개월에 걸쳐 경향신문에 "다시 보는 컴퓨터 게임"을 매주 연재하였으며, 이는 알려진 종합지에 연재된 최초의 게임칼럼이다. 1999년에는 문화연구로 게임에 접근한 박상우가 〈씨네21〉에 게임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무가지로 시작한 잡지 〈페이퍼〉에서도 “박정선의 게임스테이션”이란 제목으로 게임칼럼이 연재되었다. 2000년대 초 게임의 중심이 PC게임에서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가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종이 잡지의 영향력이 줄어가면서 2010년에 이르러선 대부분의 게임 잡지들이 폐간하였다. 이후 게임비평 공모상 등의 시도와 함께 저술 활동을 한 게임평론가들이 등장하고 사라져왔다. 가끔 왜 한국에 게임 평론이 뿌리내리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주변과 여러 이야기를 나눠왔다. 그중 한 가지는 시장이 게임 평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90년대에서 2010년에 이르러서 게임 평론에 대한 요구가 없었을까. 90년대 당시의 독자 코너들을 살펴보면 미국의 게임 평론을 찬양하고 한국의 게임 평론은 수준이 낮으니 노력해야 한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각 게임잡지의 구인코너에서 요구하는 능력에 게임 평론은 빠지지 않으며, 1998년에 호서대학교에서 게임공학과가 개설되면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게임평론가와 매니저 양성이 목표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국내 게임 잡지들이 사라진 이후에는 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지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 역시 수요 덕분일 것이다. 2008년부터 진행된 게임비평 상이나 월간 〈게임문화〉지 같은 것은 기존의 게임잡지에서 시도되었던 평론의 외연을 넓히는 데 성공하였으나, 재정의 영향을 크게 받아 시행사나 주관사의 의지 때문에 지속되지 못하고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게임잡지, PC통신의 게임 평론의 특징이라면 그 특징이 외국의 것을 흉내를 내거나, 자신만의 이론으로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초기의 게임잡지들에서는 게임 평론보다도 게임음악 평론들이 먼저 등장하며, 초기 게임 평론 역시 평론이란 호칭을 단 원고는 고전 게임 평론 등을 먼저 살펴볼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다른 매체의 비평에서 사용되는 접근들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게임들과의 비교들이 평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평가를 작성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미성년자라는 점. 그리고 매체 중에서도 주로 게임을 접했다는 것 역시 당시 평론이 게임의 바깥을 다루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르면서 이러한 평론 경험을 했던 학생들이 성장하여 계속 게임 평론을 생산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엔 시장이 너무 척박하였다. 앞서 게임 비평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고는 하였으나, 그것이 금전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수요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겠다. 〈게임챔프〉에서 “명작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칼럼은 필자를 공개하지 않고 1년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독자들에게 평론으로의 반응 역시 좋았다. 나중에 가서야 필자를 공개하였는데, 당시 막 창세기전을 출시한 소프트맥스의 최연규였다. 이처럼 게임평론가 등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게임개발자를 겸업하거나, 게임지 기자, 필자로 일하는 상황이었다. 게임 평론을 할 수 있는 게임전문가들이 대부분 게임업계 내에서 게임 지식이 있는 사람 외에는 힘든 상황이었고, 게임 평론의 원고료만으로는 충분한 수입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피씨게임잡지 등에서 소개되는 어떻게 하면 게임 필자가 될 수 있나요.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필자들은 대부분 생업이 따로 있다고 언급하며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매우 힘들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박상우 역시 2000년 피씨피워진에서 실린 게임평론가란 직업에 대한 인터뷰에서 영화평론가도 먹고살기 힘든데, 게임으로 돈을 벌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게임평론가와 하드코어 게이머의 관계 역시 평론이 계속되기 힘든 환경이라 지목된다.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평단과 하드코어 게이머의 골을 크게 부각해 이러한 거리감이 최근에 생겼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2000년 〈피씨파워진〉의 기자 칼럼에서 게임 평론 부진의 원인을 맹목적인 팬덤 문화로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역시 20년 전에도 존재하는 전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에 나왔던 것처럼 게임 평론에 대한 반응은 자신의 게임 지식을 자랑하는 형태로 흐르거나, 자신의 느낌과 다르다며 “겜알못”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 평론을 지속하기 힘든 환경이다 보니 박병호의 경우는 1999년 미국 유학으로 더는 게임 평론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박상우 역시 일반 문화지와 게임전문지에서 집필활동을 하였으나 지면의 부족으로 지속되지 못하기도 했다. 평론가나 전문 필자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 중 상당수는 게임개발사로 직장을 옮기기도 했다. 비단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 이르러서도 지면과 인식의 부족으로 게임 평론 활동이 지속되는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이렇다 보니 이러한 시도들이 대부분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게임평론가들은 대부분 앞선 평론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해외의 칼럼이나 다른 매체 평론의 방법론을 통해 혼자 고민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활동이 다른 평론가들에 영향을 주었는지 파악하기는 매우 힘들다. 각 평론가가 저술한 평론의 숫자 역시 많지 않다 보니 각자의 개성을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존재를 알기조차 쉽지 않다. 2000년 박상우가 게임평론가란 직업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게임은 산업이 아닌 문화"라고 이야기했다. 2021년에도 우리는 똑같은 이야기를 공허하게 외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1년 동안의 시도들이 쌓아나갈 수 있었다면 좀 덜 공허할 수 있었을까. 2000년의 평론에서 다루는 게임과 2021년에 평론을 다루는 게임은 다르다. 게임 평론에 대한 시도를 더 찾아보기 힘든 것은 2010년 이후의 게임들이 단발적인 작품이 아니라 대부분 서비스 형태의 게임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야기하기 더욱 힘들어진 영향도 존재할 것이다. 가정용 게임의 보급과 스팀 같은 서비스들이 일반적으로 늘어나면서 인디게임을 비롯한 싱글 플레이게임 운신의 폭이 늘어나, 이러한 게임에 대한 평론은 지금은 게임웹진 등에서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한국 게임에서 주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평론은 시도할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커뮤니티 중심으로 재편된 게임웹진의 온라인게임 사이트들은 이제 공략조차 기자가 작성하지 않고 이용자가 작성하는 상황에 이르러 전문가가 더는 전문성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최근 5년간은 게임산업 바깥의 지면에서 게임평론들을 찾아보기 쉬워졌다. 케이블은 물론 공중파 라디오에서도 게임 전문 코너가 생겼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론들에서 지금 까지의 한국 게임에서 있었던 평론의 영향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2030년에 연구자나 산업관계자들이 "한국에 게임 평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확언할 수 있을까. “옛날에 게임잡지들이 있었고, 게임문화재단의 〈게임문화〉나 〈게임제너레이션〉 같은 시도가 있었다.” 정도만 언급될 수도 있다. 그조차 언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게임비평 잡지나 게임문화재단의 〈게임문화〉는 현재는 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게임비평〉 등의 과거 게임을 다루던 잡지들은 이제 레트로 게임 아이템이 되어 수집가들에 의해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 보통이고, 게임문화재단의 〈게임문화〉는 분명히 당시에는 pdf로 배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구할 방법이 없다. 책이 아닌 인터넷의 자료들은 더욱더 쉽게 휘발된다. 한국엔 게임 비평에 대한 시도들이 있었다. 끊임없이 있었다. 모든 시도가 무의미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쌓는 데는 실패했다. 어떻게든 부스러기를 모으다 보면 계속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는다. 게임 평론 문화를 탑처럼 이야기했다. 이것이 탑이고 재료를 쌓는 데 실패했다면 탑을 세우는 데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탑이 아니라 화학작용이라면 어떨까. 수많은 재료가 쌓여왔고 무언가 촉매로 인해 화학작용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게임제너레이션-GG〉가 그것이길 희망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게임과 예술 :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 Back 게임과 예술 :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12 GG Vol. 23. 6. 10.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다" - 베르그송 1. 게임은 예술인가 우문에 현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임이 일정한 미적인 속성을 체계적이고 인공적으로 구성한 형식이 아니면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했다. 사진과 영화가 아날로그 기술적 혁신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면, 게임은 디지털 혁신에 대응하는 고도의 예술형식이라고 보는 게 당연하고 타당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가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1) 더욱이 게임은 일찌감치 여느 예술 못지않게 당대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과 감정을 담아냈다. 어쩌면 그 이상이다. 게임은 사람들과 ‘호흡’한다고, 게임을 통해서 사람들끼리 ‘공명’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도대체 게임의 어떤 점에서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MMORPG에서 여럿이 함께 난관을 하나씩 극복하며 최종보스를 잡는 경험도, 싱글 액션게임에서 고독한 게이머가 산산히 흩어진 세계(와 조각난 이야기)를 힘겹게 짜맞추어 나가는 과정도, 예술적 경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게임은 기존의 예술적 형식과 경험을 반복하는 동시에 갱신하며, 예술·세계·경험을 확장시킨다고 봐야 했다. 물론,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고, 여러 불편한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는 있었다. 전례가 있지 않은가. 영화 사진 만화 등 뒤늦게 등장한 예술형식들은 이 통과의례를 거쳤으며, 여전히 시험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임이라고 예외는 될 수 없을 테니,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고난의 시기’만 잘 넘기면, 어렵지 않게(?) 정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당연히 준비할 거리는 있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과 미술 같은 예술과 똑같지는 않았기에 ‘설명’이 필요했다. 새로운 형식들을 추동한 것이 무엇인지, 그 때문에 다른 특성을 띠는 게 무엇인지, 밝혀야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꼬였다. 이 점에서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운이 나빴다. 그것도 매우. 2. 서사, 그 예견된 잘못된 만남 생각해 보면, 문학은 언제나 준비된 상태였고, 그만큼 성공할 때가 많았다. 미술과 음악은 물론이고, 최근에 등장한 영화까지 문학의 위성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전례를 생각해 보라. 문학의 이른바 ‘멀티’ 행보는 유구하게 악명 높다. 2)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미술이었다. 역사와 함께 태어났지만, 미술은 언제나 ‘찬밥’ 신세였다. ‘시는 회화와 함께’ut pictura poesis라는 테제처럼, 미술은 문학이 되고 싶었고, 문학의 기준에 따랐다. 아니, 따라야 했다. 더욱이 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비롯해 이후에도 쟁쟁한 문학·이론이 뒷받침했다.(서구에서 성경은 역사·서사 자체였다) 역사는 (그리고 종교와 이념과 체제는) 언제나 문학의 편이었다. 역사 자체가 그것들이 뒤섞인 ‘이야기’story이지 않은가. 그들은 마음대로 미술과 음악 등에 마수를 뻗쳤고, 서사를 형식에 상관없이 우격다짐 밀어 넣었다. 미술은 그렇게 종교화나 역사화가 되었고, 음악은 가극이 되었다. 미술의 경우 20세 중반이 돼서야 겨우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평면, 그 2차원성은, 회화예술이 어떤 다른 예술과도 공유할 수 없는 유일한 조건이며, 따라서 모더니스트회화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평면성 그 자체에로 향하는 것이다.” 3)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을 ‘평면성’flatness으로 규정하고, 비미술적인 것에 전면전을 선포했다.(물론, 문학이 완전히 ‘청소’된 것은 아니었고, 현재도 여전히 곳곳에서 진지전이 벌어지고 있기는 하다) 영화는 비교적 형편이 나았다. 기술적 태동기를 짧게 거친 후, 영화의 잠재력을 알아차린 전위대가 일찍부터 달라붙었다. 만 레이가 대표적일 것이다. 초현실주의와 다다 등, 그들은 선언부터 하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필요하다면 스스로 비문학적 문학을 하는 예술집단이었다. 예술의 외부인 자본과 산업도 한몫 거들었다. 그것들은 영화형식의 기술적 본성을 완전히 실현시켰다. 강철에서 다리로 뛰는 철마가 아니라 바퀴로 구동하는 기차를 제작했듯, 영화의 형식을 완전히 개방시켰다. 매체의 양적 속성을 합리화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른바 순수이론 영역은 오해를 양산했다. ‘기술적 반응과 질료적 실현’은 ‘순수예술·대중문화’의 범주로 엉뚱하게 굴절되어, 결국은 ‘머릿수’ 논쟁으로 곡해되어 전파됐고, 두고두고 ‘서열놀이’가 이어졌다. 이후, 벤야민의 이론을 통해서 교정될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일소됐다고 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운이 나빴다. 더욱이 게임은 영화와도 매우 달랐다. 돌연변이나 괴생명체 같다고 할까. 영화는 그래도 사진과 연극이란 징검다리로 기존의 예술과 연결됐고, 예술적 전위들이 재빠르게 합류할 수 있었다. 반면에 게임은 모든 게 기존의 예술과 단절되어 발원했다. 최초의 게임 〈퐁〉을 생각해 보라. 출력되는 모니터, 입력하는 인터페이스, 장치내부의 숨겨진 이진수체계 등, 기존의 예술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형식이 달랐다. 더욱이 생산자도 생산환경도 개발자에 실험실이었으니, 완벽한 이종(異種)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후, 문학 미술 음악 등 기존의 예술을 내용으로 ‘흡수’하면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가시화됐지만, 사진과 영화에 비해서 처음에 느꼈던 이질적인 ‘거리’는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했다. 게임이 성숙하고 형식이 완연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자, 설명이 요구됐다. 게임은 예술인가, 예술이면 무엇 때문인가, 꼬리에 물 듯 질문이 이어졌고, 예술적 ‘인정과 인증’이 필요해졌다. 문학은 언제나 그렇듯 독보적으로 빨랐다. 역시 서사가 전가의 보도였다. 장장 2000년 넘게 호령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생각해 보라. 장수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곰곰 생각하면, 문학은 참 이상하다. 미술이나 음악은 다른 곳에 차용돼도 청구하지 않는데, 문학은 늘 청구한다. 때로는 월권을 서슴지 않는다. 게임이 운이 나빴던 것은 (영화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개발과 예술의 거리는, 비평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이 상황은 나아졌다고는 해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할 사람도 빠르게 나타나지 않았다. 4) 이론적 무주공산, 누구에게 이보다 쉬운 등반은 없었을 것이다. 놀이론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불가피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게임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관련된 전거를 찾았고, 자연스럽게 인류학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곳에 게임·놀이가 있었으니까. 더욱이 ‘행위’를 설명하기도 적합해 보였다. 그것은 일찍이 다른 문화·예술 형식이 들추어낸 적이 없었다. 주지하다시피, 놀이는 미분화된 원시종합적 (예술)형식이다. 모든 게 녹아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정치와 사회를 배우고, 미술도 음악도 춤도 익힌다.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면, 사람과 이론에 따라 선택되는 속성의 조합은 무한해진다. 어떤 이는 도박과 가면놀이를, 또 어떤 이는 다른 무엇들을 선택해 조합할 것이다. 이 작업은 끝이 없고, 발굴되는 유적이 늘어날 때마다 가설이 늘어나는 고고학처럼, 게임이 다양해질수록 선택되는 속성들의 조합도 똑같이 늘어날 것이다. 이후, 이렇게 성립한 ‘서사 대 놀이’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승패를 영원히 가릴 수 없는 카드게임과 전혀 다를 없었다. 이쪽이 이 카드(반례)를 내밀면, 저쪽은 저 카드(반례)를 내밀고, 이것이 영원히 진행된다. 이 미학적 PvP에서 문학이 졌을까. 사실 역사에서 문학이 지는 법은 거의 없었다. 역사는 (이념은 종교는 체제는) 언제나 문학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개개의 논쟁에 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도는 영원히 남는다. 이 문학적 ‘문제’를 제거하지 않는 한, 문학적 ‘해’solution와 씨름해 봤자 소용이 없다. 이 문제는, 이 논쟁은, 이미 문학의 승리를 영구히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전리품’이며, 그런 식으로 폐쇄적인 담론구조를 만들어, 또 다른 생산적 담론을 은폐하고 차단하는 것은 훌륭한 ‘덤’이다. 3. 게임, 해석과 비평의 사이에서 모든 비평은 ‘텍스트’라는 것을 무엇보다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이 ‘언어의 유혹’은 너무나 강력해서, 떨치기 힘들다. 그것은 본능에 가깝다. 비평조차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평의 내재적 운명이다. “모든 예술은 벙어리인 것이다…시는 언어를 사용하되 사심 없는 언어를 사용한다. 즉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는다.” 5) 비평이 예술에 대해서 말하는 권리라면, 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평의 태도는 모든 곳에서 ‘언어’를 발견하는 구조주의자와 비슷하다. 6) 그들은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서사를 발견할 것이다. 따라서, 비문학적인 것을 비평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다. 다른 매체의 고유한 굴곡을 ‘평평하게’ 다듬고 눌러서, 서사의 고속도로를 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어는 언어로 분해하는 게 가장 쉽다. 그러한 해석에 반대해야 하며, 그것이 제1의 공리가 돼야 한다. 앞서 미술의 경우 장장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서사에서 겨우 독립했다고 말했다. 회화론은 1430년대에 와서야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트가 처음으로 제창했고, 이때 처음으로 ‘의미 있는’ 그림에서 ‘정확한’ 그림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는 무엇보다 기하학의 세속적 형식인 원근법 덕분이었다. 말하는 방법이 아닌 보는 방법은, B.C. 4세기 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등장한 이후, 장장 1800년이 필요했다. 본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 본래의 형태를 그리는 것이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소중한 자산이었지만, 카드 한 장에 불과했다. 카드게임을 할 만큼 패가 두둑히 마련된 것은, 20세기를 거치며 수많은 실천과 이론이 축적된 이후였다. 특히 러시아 구성주의자(미래파)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5년) 같은 작업은 텍스트가 한치도 침입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기껏해야 작품 전까지 작가의 행로나 그의 태도나 같이 활동한 집단을 묘사할 따름이다. 언어가 주변을 웅성거리며 맴도는 그곳은, 텍스트의 무덤이다. 7) * '검은 사각형'. 카지미르 말레비치. *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 블라디미르 타틀린. 그래서 〈에디스 핀치의 유산〉이나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같은 게임을 조심해야 한다. 물론, 좋은 게임들이란 사실은 틀림없다. 몇 시간 몰입해 끝내고 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솟구칠 것이다. 변신이나 미로 같은 구조를 보면 카프카를 언급하고 싶어질 수도 있고, 전체주의와 반영웅을 보면서 근대체제의 우의allegory로 분석하고 싶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입장에 따라서는 윤회까지 떠올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예를 들어, 〈디아블로 3〉 2회차 경험을 생각해 보라. 과연 게이머가 레아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생각할까. 티리엘의 (지위) ‘하강’을 보면서 희랍비극의 과오harmatia 개념을 끄집어낼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이머의 머릿속에는 이번에 할 빌드와 하늘에서 ‘찰랑’ 빛나며 떨어지는 전설 아이템만 주시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이 346회차 하니까 서사적 경험은 1/346으로 줄었군 하면서, 게임의 평균회차로 서사적 경험을 ‘나누면’ 문제가 해결될까. 혹은 딱 한 차례 경험한 게이머를 심층면접해서 따로 정리해 ‘본질적’ ‘핵심적’ 서사적 경험을 증류하면 충분할까. 이런 식의 접근법은 넌센스다. 여기서 서사는 놀이동산에 입장할 때 필요한 ‘입장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인물도 사건도 심지어 개연성까지 타락시켰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계속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게임에서 서사는 기껏해야 필요조건 중 하나지,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8)9) * '에디스 핀치의 유산'(위), '바이오쇼크'(아래) 4. 미술이라는 전례, 미래의 전령으로서 게임 현대에 미술은 문학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본질로 부르든 핵심이라고 하든 ‘하나’를 고수하는 대신에, 그 하나마저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술을 영역이라고 한다면, 무대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틀고 연극도 하고 강의도 하는 등, 실행가능하고 상상가능한 모든 행위가 ‘전시’되며, 심지어 요리도 한다. 미술은 말 그대로 ‘일반예술’이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게임은 미술과 비슷하다. 여러 다른 예술을 흡수하는 동시에, 심지어 경제 사회 정치 등 다른 부문까지 끌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과 게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미술이 ‘사용’하는 수준이라면, 게임은 각각의 부문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윌리엄 깁슨) 깁슨의 말대로 미래가 널리 퍼져 있지 않을지는 몰라도, 게임이 미래의 일부를 선취해 게이머를 ‘훈련’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최소한 게임이 전위에 서 있다는 뜻이다. 일찍이 하우저는 연극을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대화하고 논쟁하며, 근대적 시민으로 형성됐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고독한 개인의 ‘묵독적 (혹은 해석적) 태도’가 연극은 물론 영화까지 점령했지만, 초창기 영화도 연극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 10)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서 왁자지껄하게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장면을 상기해 보라. 그곳에서 지금과 같은 개인의 정적이고 수동적인 감상은 없었다. 그 경험은 집단적이었고 역동적이었다. “대중은, 예술작품을 대하는 일체의 전통적 태도가 새로운 모습을 하고 다시 태어나는 모태이다. 양은 질로 바뀌었다…정신분산으로서의 오락Zertreuung과 정신집중Sammlung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다…영화는, 관중으로 하여금 비단 비평적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만이 아니라 그와 아울러 이러한 영화관에서의 관중의 비평적 태도가 주의력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종교의식적 가치를 뒷면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관중은 시험관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그러나 그는 정신이 산만한 시험관인 것이다.” 11) 벤야민은 이 분산적 태도에서 새로운 사회(사회주의), 예술(영화), 주체(대중)를 모색했다. 벤야민은 영화를 분석하며 미래를 진단했지만, 그의 묘사는 게임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물론, 그것이 연극이나 영화처럼 민주주의적 경험은 아닐 것이다. 벤야민이 기대했지만 실패했던 미래의 사회도 미래의 예술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의 예술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문학적 패악은 끝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각작용aesthesis 일반’의 변화다. 미시적 습속들의 변화, 말하는 화법들,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방식들, 물건을 교환하고 결제하는 행태들,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들, 혹은 작업장의 봇들이나 디지털 사회범죄 같은 문제들 등등, 그 밑바닥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꾸준하고 착실하게 변화를 추동하는 기술적 동향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의 기원을 게임에서 찾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경험과 태도의 변화를 게임이 주도하며, 게이머를 (혹은 인류를) 훈련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관찰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잘 만든 AAA게임에 주목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게임과 다른 사건과 다른 기획을 주시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어차피, AAA게임들은 본성상 비평(제도)에 친화적이다. 그런 게임들은 언제나 할 ‘이야기들’이 많고, (게임 외적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그러면 다른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예를 들어, 통계적 피드백을 게임에 접목해 게임행위를 미묘하게 비트는 행태 같은 것.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뻔한 서사적 결말들보다, 게임행위에 개입하는 통계수치의 ‘효과’를 분석하는 게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중요한 (윤리적) 판단을 할 때마다 통계수치와 비교해 보는가. 통계적 지표는 관찰대상이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지표의 기능을 상실한다. 피드백 루프가 발생해, 게이머가 행동을 선택할 때 지표로 삼는 순간, 지표기능이 교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별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렇게 미묘하게 인간·게이머의 ‘결정구조’를 변화시키는 방식들, 거칠게 말해서 수치에 따라 윤리적 판단을 하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12) 게임 외부에서 흥미롭게 볼 만한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메타의 메타버스 기획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블리자드 인수계획 같은 게 있겠다. 언뜻 보기에 메타의 메타버스는 과거 〈세컨드 라이프〉를 상기시킨다. 둘 다 커뮤니티 서비스의 3차원 확장인데, 게임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세컨드 라이프〉는 현실의 ‘보완재’에 불과했다면, 메타의 기획은 ‘대체재’를 지향한다는 것. 실패했지만 메타가 2019년 암호화폐 리브라를 발표했던 것도 생각해 보라. 메타의 메타버스는 온전한 세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인류 이주계획’인 것이다. 이 계획에서 게임이 직간접적으로 매개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달리 다가오는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도 의미심장하기는 비슷하다. 최근 인공지능 때문에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게임 쪽 확장도 광폭이다. 다섯 손가락에 손꼽히는 RPG 스튜디오 베데스다를 인수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까지 노리고 있다. 독점 논란 때문에 여의치 않아 보이지만, 성사만 된다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지 사뭇 흥미롭다. 알다시피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사회’다. 시작은 달랐지만 이런저런 흐름들이 게임을 매개로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 메타의 '메타버스' 한때 예술은 미래의 안테나라고 했다. 이제 게임은 현재에 도착한 미래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균등하고 불균질적일 지라도. 1)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0, 224~5. 2) 한국에서도 비슷한 패악이 되풀이됐다. 2000년대 초중반, 영화비평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을 때, 계간지 〈창작과비평〉은 ‘문학적으로’ 영화비평을 딱 한 번 시도했다. 편집위원 김영희가 앞장섰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김소영이 〈창작과 비평〉의 월권을 거세게 비판하며, 일단락(?) 되었다. 3) 클레멘트 그린버스, “모더니스트 회화,” 〈현대미술비평 30선〉, 계간미술편중앙일보사, 1992, 67쪽. 4) 이후 매체예술이나 뉴미디어 형태로 미술에서 반응하기 시작하긴 했다. 2000년 개최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디지털 호모 루덴스〉가 초창기 상황을 보여준다. 5) 노스럽 프라이, 〈비평의 해부〉, 한길사, 2000, 48쪽. 6) 들뢰즈, “구조주의를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518쪽. “사실상 오로지 언어적인 것에만 구조가 존재한다…무의식은 그것이 말하는 한에서, 그리고 언어인 한에서 구조를 지닌다. 신체는 징후들이라는 언어를 통해 말하는 한에서 구조를 지닌다. 사물들은 기호들의 언어인 침묵의 담론을 취하는 한에서 구조를 지닌다.” 7) 그러나 러시아 구성주의의 미래는 ‘배드 엔딩’으로 끝났다. 미래의 사회(였던) 소련에서 미래의 미술은 스탈린이 집권한 이후 현재가 된 사회에서 과거의 문학에 패배했다.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는 일리야 레핀의 아류이자 후계자들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갈음됐다.(벤자민 부흘로, ‘팍투라’에서 ‘팍토그람’으로,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시각과언어사, 1995 참고) 8) 영화나 게임에서 비평가의 진술과 관객과 게이머의 선호가 충돌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쓰기 좋은 소재와 관객과 게이머의 경험은 ‘우연히’ 일치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더욱이 이야기하기 좋은 게임이 반드시 좋은 게임인 것도 아니다. 조금 과장하면, 졸작은 졸작대로 할 말이 많다. 9) 〈엘든링〉 같은 게임에서 파편화된 이야기 조각들을 찾는 게 ‘또 다른’ 게임행위가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게이머가 서사와 무관하게 시간을 통제하며 행동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행태는 루카치가 생각했던 근대적 주체의 의미찾기 같은 게 아니다. 죽은 시체에서 단서찾기 같은 것으로, 에른스트 블로흐가 ‘죽은 이야기’라며 비판했던 범죄소설의 형식과 비슷하다. 영웅적인 주체가 의미를 찾는 여정이 약물중독자의 수수께끼 풀이로 귀결되는 것을 주류 (문학) 이론가들은 못내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장르문학 딱지를 붙이며 서열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지금도 그렇기는 하다. 10) 1973년 〈록키 호러 픽쳐 쇼〉가 우발적으로 인기를 끌며, 이 정적이고 묵독적이고 해석적인 태도를 공격했다. 이 컬트영화가 영화제도와 관객성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 소규모 ‘반란’은 이내 진압되었다. 지금은 영화역사서 아니면, 흔적조차 찾기 힘들게 되었다. 반면 게임에서 행위는 ‘디폴트 값’이다. 11)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0, 228~9쪽. 12) 현재 미국은 범죄자의 재범가능성을 엄격한 수학적 통계적 알고리즘에 따라 평가하고 반영한다.(데이비드 섬프터, “편향없음은 불가능하다,” 〈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착각〉, 해나무, 2022) Tags: 예술 미술 비평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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