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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컨트롤러 : 가상현실 게임 속의 컨트롤러의 특징들
< Back 사라진 컨트롤러 : 가상현실 게임 속의 컨트롤러의 특징들 11 GG Vol. 23. 4. 10. * 그림 1. 실제 손과 컨트롤러(좌)와 가상 현실 내에서 사라진 컨트롤러(우).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vr.com/importance-believable-vr-hands-presence/ 가상 현실 게임에서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컨트롤러는 게임 내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림1). 예를 들어, 스팀(Steam)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가상현실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 (Half Life: Alyx)〉나 PSVR2의 대표작인 〈호라이즌 콜 오브 더 마운틴 (Horizon Call of the Mountain)〉을 비롯한 다양한 슈팅 및 액션 게임에서도 대부분 손을 보여주는 방식의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가상현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최대한 실재감(sense of presence)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가상현실 컨트롤러가 어떻게 생겼길래 가상현실 속에서 볼 수 없을까? 그림 2를 살펴보면, VR 컨트롤러는 기본적으로 콘솔용 게임 컨트롤러를 반으로 나눈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각 컨트롤러의 옆면에는 검지로 누르는 트리거 버튼과 주먹을 쥐면 자연스럽게 눌리는 그립 버튼이 있다. 또한, 컨트롤러의 윗면에는 엄지로 조작할 수 있는 두 개의 버튼과 조그 스틱이 있고, 시스템 메뉴를 호출하는 버튼도 있다. 모든 상황에서 일인칭 시점의 주인공이 무채색 VR 컨트롤러를 들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장르를 불문하고 가상현실 속의 일인칭 시점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에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게임 개발자들은 이러한 컨트롤러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 그림 2. 메타 퀘스트 2의 컨트롤러, 측면(회색 부분)에 위치한 트리거 및 그립 버튼과, 상단(검은 부분)에 위치한 조그 스틱, 두 개의 버튼, 시스템 버튼이 보인다. * 〈하프 라이프 알릭스〉에서 보이는 손. 이미지 출처 : https://www.roadtovr.com/half-life-alyx-update-1-4-1-example-pistol-modding/ 사용자의 외부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는 가상현실 헤드셋의 특성 때문에 가상현실 속의 가상현실 컨트롤러를 어떻게 보여줄지 결정하는 것은 가상현실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필연적이었다. 컨트롤러 디자인은 기기 제작사가 아닌 게임 디자이너에게 일부 위임되었다. 가상현실 컨트롤러의 외형은 게임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다르게 재정의될 수 있다. 대다수 디자이너들은 마치 컨트롤러를 들고 있지 않은 것처럼 가상 현실 속에서 컨트롤러를 숨기고, 컨트롤러를 쥐지 않은 ‘가상 손’을 그렸다. 이것은 캐릭터의 손을 보면서 가상 환경 속의 객체와 상호작용하는 것이 플레이어가 그 환경에 실재하고 있다고 느끼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상 손으로 표현된 컨트롤러의 문제들 가상 손이라는 디자인 옵션은 가상현실 게임 디자인에서 전형적인 문법이 되어가고 있지만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사용자가 실제 손과 가상 손 사이의 감각적인 불일치(discrepancy)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플레이어의 고유감각과 촉각이 느끼는 손의 모양과 가상 현실에서 그려진 손의 모양이 다른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손으로 표현된 컨트롤러는 일반적으로 트리거 버튼은 검지에, 그립 버튼은 중지부터 소지까지 대응되어 버튼이 눌리면 손가락이 접히는 애니메이션이 재생된다. 이 경우에는 실제 손과 비슷하게 가상 손이 표현되기 때문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보인다. 반면, 실제 컨트롤러의 상단의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 엄지를 움직일 때, 가상 손 엄지의 움직임은 생뚱맞고 이질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가상 현실 속에서 본다면, 아무 이유 없이 접었다 폈다 하는 엄지를 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적 불일치는 플레이어들의 실재감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다. 두 번째는 조작 방법 학습의 어려움이다. ‘가상 손'이 사용되는 경우에 실제 컨트롤러와 이를 조작하는 손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게임 컨트롤러의 조작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다. 친구와 함께 VR 게임을 해본 경험이 있는가? 있다면 가상 현실 헤드셋을 착용한 친구에게 지금 뭐가 보이냐고 외치고, 왼쪽 컨트롤러에서 Y 버튼을 누르라고 외치고, Y 버튼은 볼록한 버튼 2개 중에 앞이라고 목소리를 높여본 일이 있을 것이다. 자기 손과 컨트롤러를 직접 볼 수 없는 것은 앞서 설명한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유가 된다. 가상현실 컨트롤러에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많은 버튼이 있고, 각 버튼은 가상 현실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복잡한 행위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 게임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모든 버튼 맵핑을 빠르게 학습하고 이를 빠르게 실행에 옮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임 컨트롤러의 조작을 학습할 때는 적어도 버튼들과 이를 조작하는 손을 볼 수 있었지만, 가상 손으로 표현된 컨트롤러에서는 플레이어의 손가락이 의도한 버튼에 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고, 의도한 버튼이 어떤 기능이 있는지 떠올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경험은 플레이어의 전반적인 퍼포먼스를 떨어뜨리고 게임에 대한 흥미를 감소시킬 수 있다. 필자는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플레이하면서 크고 작은 감각적 불일치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조작 방법의 학습에 관한 것이었다. 플레이 도중에 잠시 실제 컨트롤러 모양을 보여주며 어떤 상황에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시각적으로 안내해주었지만,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안내는 사라지고 가상 손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로 인해서 간단한 동작을 수행하는데도 여러 버튼을 눌러 시행착오를 겪는 일이 많았고, 이는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가상현실에 대한 기대와 현실 컨트롤러 대신에 가상 손을 보여주는 것은 플레이어들에게 현실에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앞서 언급한 단점들을 감수하고서라도 게임 디자이너들이 가상 손을 선택하는 이유는 시각적인 실재감을 그만큼 중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재감은 가상 현실에서 항상 우선해야 할 가치일까? 가상현실 헤드셋을 착용한 경험이 모든 면에서 현실과 같을 필요는 없다. VR에서는 현실과 다르지만, 성공적으로 관습화된 상호작용 방식들이 있다. 레이 포인팅의 예를 들어보자. 어떤 대상을 선택하고자 할 때, 만지거나 찌르듯이 직접 컨트롤러를 가져다 대는 대신에 컨트롤러 전면에서 나가는 레이(ray)를 이용해서 가리키고 선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터페이스 조작에서 레이를 활용한 방식은 직접 컨트롤러를 옮겨 선택하는 방식보다 더 선호된다. 현실과는 다르게 원거리에 있는 대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순간이동이라는 이동 방식의 예도 들 수 있다. 특정한 위치로 이동하려고 할 때, 현실과 같이 걸어서 이동하거나 연속적으로 캐릭터의 위치와 시점을 업데이트하길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실제 공간은 좁고 가상 공간은 훨씬 더 넓은 경우가 많아 직접 걸어서 게임 속 공간을 모두 탐험하기는 어렵다. 부드럽게 캐릭터를 이동시키는 것도 쉽게 멀미를 일으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이동을 많이 해야 하는 게임에서는 이동할 위치를 가리키고 그 위치까지 한 번에 이동하는 순간이동 방식이 많이 채택된다. 레이 포인팅과 순간이동은 현실의 경험과는 아주 다르지만 가상 현실 속에서는 일반적이다. 우리가 현실적이라고 여기는 방식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사용자의 의도를 실현한다. 결과적으로 가상현실에 안에서 제시하는 내용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VR 컨트롤러는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쉽게 정답을 맞힐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각적인 실재감을 추구하는 데에서 벗어나,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컨트롤러를 시각화하는 것도 가능한 방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효율적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시스템을 사용자가 쉽고 빠르게 익숙해지도록 돕는 것을 포함한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VR 게임을 만들고 있을 게임 디자이너들이 가상 현실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컨트롤러 표현 방식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현철 학부에서 산업디자인 및 뇌인지과학을 공부하고, 석사 과정에서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시각인지연구실에 소속된 박사 과정 학생이다. 행동 및 생체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경험을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 Back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01 GG Vol. 21. 6. 10.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편집장: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진예원: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이스포츠 브로드캐스터 및 글로벌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는 진예원이다. 주요 업무는 LCK 글로벌 영문 방송을 총괄하는 것이다. LCK는 중국어나 영어 이외로도 6개 국어로 진행되고 있다. 각 방송이 원활하게 제작, 상영될 수 있도록 관련 업무를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일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편집장: 현재 이스포츠가 대중문화로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무엇인가? 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특색이라면 어떤 것이 있나? 진예원: 이제 이스포츠는 단순히 게임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종합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관객층의 변화에서 가장 뚜렷이 읽어낼 수 있다. 과거 롤드컵의 주 시청자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게이머가 많았다. 이 시청자들은 게이머이자 시청자이다. 프로 선수의 수준 높은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프로 선수의 플레이를 자신의 게임에 접목시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리그 시청에 새로 유입되는 층은 좀 다르다. 이 시청자들은 본인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리그 자체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다. 축구를 직접 하지 않아도 월드컵 시청을 즐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월드 챔피언십 같은 대형 이벤트를 제작할 때는 이 점을 특히 유의한다. 게임 중계라는 기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스펙터클한 연출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스포츠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이라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선수분들도 스트리밍과 다큐 제작 등 콘텐츠 생산을 하고 있고 이런 콘텐츠들을 기반으로 2차, 3차 생산을 하는 열정적인 팬분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들어내는 콘텐츠 또한 이스포츠 콘텐츠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겠다. 편집장: 국내와 해외 방송을 동시에 관리하며 양쪽의 방송 콘텐츠와 팬덤의 반응을 꾸준히 지켜보고 계시다. 국내와 해외 방송에 차이가 있는지? 각 방송에 대한 반응은 다른 편인지? 진예원: 국내 시청자들의 경우 주로 LCK를 시청하기 때문에 LCK 중심의 피드백이 많다. 그런데 해외 시청자들은 LCK뿐만 아니라 여러 리그를 함께 시청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reddit)같은 경우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에서 모든 리그에 대한 정보며 하이라이트 영상, 게임 분석 등을 전부 수용한다. 팬덤의 성향 또한 차이가 나는 편이다. 국내 팬덤의 경우 자신이 응원하는 특정한 팀이나 선수를 보러 경기를 시청한다. 해외 팬덤은 프로 게임 경기 자체의 수준높은 플레이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캐스팅에서도 국내와 해외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캐스터들은 플레이에서 주목하는 요소가 각각 다르다. 동일한 플레이를 봐도 다른 관점에서 플레이를 보기 때문이다. POG 노트를 할 때 한국과 중국 등 다양한 해설자가 참여하고 있다. 영어 방송 캐스터는 게임 플레이의 흐름에 집중해서 승리로 가는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 선수에 주목한다. 반면 국내 캐스터는 슈퍼플레이나 한타 싸움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또 해외 캐스터분들은 국내 시청자들이 보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에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겨울 시즌 게임에서 날이 너무 건조해서 커다란 가습기를 몇 대씩 가동했던 적이 있었다. 국내 팬분들은 ‘큰 가습기를 쓰는구나’, 하고 넘어가는걸 해외 팬분들은 ‘저 증기는 뭐냐’, ‘선수 귀에서 김이 나온다’, 하면서 정말 재밌어하셨다. 이런 한국만의 맥락을 캐스터분들께서 설명해준다. 국내 선수들이 하나같이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 모양을 하고 뿔테안경을 쓰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스타일이 비슷한지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시기도 한다. 팬의 입장에서 궁금하고 또 따라해보고 싶은, 그런 흥미로운 문화로서 한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스포츠 종주국이 갖는 장점이 아닐까? 편집장: 이스포츠 방송 제작에 대해 좀 더 묻겠다. 이스포츠에 있어 게임 화면을 구현한다는 것이 게임 종목에 따라 달라지나? 이를테면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배틀그라운드를 연출하는 것에 있어서 차이가 있나? 진예원: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초창기와 현재의 관전 모드는 많이 다르다. 초창기 중계가 다양한 카메라 각도를 활용하여 게임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면 현재 중계는 챔프의 등 뒤에서 게임을 보는 구도를 쓰는 등,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을 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FPS 게임은 총과 칼을 쓰는 등 게임의 룰을 몰라도 누구나 상황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반면 리그 오브 레전드는 다양한 챔프와 스킬, 아이템이라는 요소가 있어 직관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 요소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선수 개인의 게임 플레이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스포츠로서의 배틀그라운드는 접근성은 좋되 스펙터클은 약한, 넓고 얕은 게임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옵저버의 영향도 있겠다. LCK에는 옵저버 팀이 있는데 한 게임을 여럿이서 지켜보며 적절한 화면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옵저버 팀은 준프로급 실력을 갖춘 분들로 구성되어있다. 옵저버 팀은 맵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싸움을 추적하고 경기의 큰 흐름에서 승패에 결정적인 기점이 되는 장면을 잡아내야 한다. 이를 해내려면 반드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LCK 옵저버 팀의 실력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진PD는 2020 WORLDS FINAL 제작에 참여하며 에미상 스포츠부문을 수상하는 커리어를 쌓기도 했다. 편집장 : 지난 LCK 결승전은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다. LCK의 결승 무대가 중요한 행사인 만큼 제작자로서 많이 허전하지는 않았나? 진예원: 코로나 이후로 대규모 현장 행사에 제약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난 LCK 결승전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무관중 상황이어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연출을 새로이 시도해볼 기회가 되었다. 이를테면 AR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면서 도시에 떠있는 스튜디오에서 경기를 하는 연출을 했다. 가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섞여있는 독특한 연출을 새로 시도해볼 수 있었다. 또 지난 결승에서는 LCK 영어방송 최초로 분석 방송과 프리쇼를 진행하고, 프리쇼에도 조영길 캐스터를 섭외하는 등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승 게임이라는 스펙터클을 제공하기는 어려웠지만 보다 풍성해진 콘텐츠 통해 시청자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감을 드릴 수 있었다. 오히려 무관중 상황이었기에 제작 측면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기도 했던 셈이다. 특히 지난 LCK 결승 오프닝 무대에서는 TFT 모바일 광고였던 ‘두둥등장’ 영상을 방영하기도 했는데, 국내와 해외 안팎으로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주셨다. 편집장: 다음은 조금 씁쓸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현재 이스포츠에서 부동의 1위는 LCK지만 그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현장에서도 이런 반응을 느끼는지? 진예원: 전반적으로 다른 리그의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LCK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재작년까지도 그런 위기감이 있었지만 작년 경기때는 LCK만의 위상을 잘 보여주었다. 다른 지역, 특히 중국의 자본력이나 지원에 비하면 우리는 단일 국가 단위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이만한 성과를 거둬나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편집장: 이스포츠 산업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명실상부한 1위이다. 그런데 리그 오브 레전드의 독주도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게임에도 수명이 있다. 이 인기는 얼마나 갈 것이라고 예상하나? 진예원: 참 어려운 문제다. 이스포츠와 게임 업계의 특성상 변화가 빠르고 또 변화의 양상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모바일 이스포츠도 성장하는 중이고 모바일이 언제 PC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 언제 개발되는지, 그리고 그 게임이 이스포츠 종목으로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서도 이스포츠 시장은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위험은 언제나 짊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안팎으로 이 게임을 오래 지속하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라이엇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게임에 지속적인 리뉴얼을 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챔프들을 업데이트하는가 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에 기반한 여러 파생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등으로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KDA는 리그 오브 레전드 아이피를 확장하여 케이팝과도 연계한 좋은 사례이다. TFT와 같은 전략적 팀전투도 이스포츠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바깥을 살펴보면 이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여러 제도들이 해외를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대학에 이스포츠 전공이 생기는가 하면 칼리지 이스포츠의 형태로 지역 리그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반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 더 나아가 이스포츠의 확고한 자리매김을 도울 원동력이 될 것이다. 편집장: 마지막 질문이다. 조금 뻔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이스포츠 문화의 현장에서 이스포츠라는 단어를 어떻게 평가하나? 진예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시간 감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입사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오후 2시에 출근을 하는데 캐스터분들이 ‘좋은 아침!’ 이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아침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건 이스포츠식 시간이라면서 다들 밤을 새고 이제 일어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또 시간 감각 자체가 무척 빠른 것도 있다. 중계 메인 캐스터들의 일정도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 사이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콘텐츠를 따라가고 사건사고를 체크하느라 하루가 무척 빠르게 지나간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 [창간사] 문화를 향하는 가교의 역할을 기대하며게임문화재단 이사장
< Back [창간사] 문화를 향하는 가교의 역할을 기대하며게임문화재단 이사장 01 GG Vol. 21. 6. 10. 인간은 왜 창조적일까?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행동만 하면 인간 외의 다른 동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하나의 종(種)으로서 가장 중요한 이 두 행동 외의 일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창조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뇌에서는 뉴런과 뉴런 사이의 연결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있으며 이 연결성이 바로 창조성을 만들어 내는 핵심이다. 그리고 이 연결성은 다양한 게임들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각기 다른 규칙성들과 그에 따른 피드백으로 인해 극대화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의 게임에 익숙해지면 이제 곧 다른 게임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끊임 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적 요소를 이해하는 개인이 많은 사회일수록 같은 기술과 자원으로도 차원이 전혀 다른 많은 것들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제 게임은 문화이자 교양이며 다시금 통합되어 그 사회의 역량이 되었다. 적은 인구와 제한된 국토가 우리의 현실이다. 즉 우리의 하드웨어는 매우 초라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소프트웨어다. 그것도 기발한 생각들이 필요하다. 그 절묘한 연결성들을 만들어 내는 게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미술이 문화로 자리잡은 건 미술관과 큐레이터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게임에도 그 장소와 사람이 필요하다. 가 그 역할을 할 가장 중요한 적임자가 되어 주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Generation 발행인.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김경일
- 영상의 환상이 사라진 지금, 숙제를 남긴 2023년의 두 유비식 오픈 월드
< Back 영상의 환상이 사라진 지금, 숙제를 남긴 2023년의 두 유비식 오픈 월드 15 GG Vol. 23. 12. 10. 필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 TV 나 영화관에서 펼쳐지는 영상들은 편집이라는 전문적인 기술 , 즉 편집 권력을 가진 PD 나 감독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어떤 것이라고 여겨지곤 했다 . 누가 만들었는지 그 내용은 무엇인지 의심하기보다 필터링 없이 바로 수용하는 , 경전과 같은 믿음의 영역이자 신비로운 무언가로 받아들인 것이다 . 발터 벤야민이 사진과 같은 복제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술의 아우라가 사라졌다고 말했지만 , 어린 시절의 나에게 영상은 여전히 편성표의 시간과 TV 앞이라는 공간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 아우라가 있는 존재였다 . 그 시절 나에게 <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 는 누군지 알 수 없는 PD 님이 제작한 , 동물들에 대한 신성한 경전 그 자체였던 것이다 . 시각적인 표현을 주로 텍스트보다는 영상의 문법에 의지하는 게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지금 보면 조악한 도트로 그려진 < 포켓몬스터 골드 > 의 ‘ 불대문자 ’ 나 < 파이널 판타지 7> 의 투박한 폴리곤 움직임도 그 당시에는 ‘ 살아 움직인다 ’ 는 환상이 가득 담긴 , 사실적인 생명체의 모습이었다 .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했던 문자의 자리를 영상이 대체한 2023 년에 이런 영상 매체의 환상성을 설명하는 건 영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 ‘데크 ’ 라고 불렸던 수천만 원 상당의 편집기가 만들어낸 방송국의 영상 권력은 무너졌고 , 이제는 값비싼 테이프가 아니라 bit 단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PC 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다 . 이렇게 대중적인 차원으로 내려온 영상은 스스로 신비로움이 사라진 채 , 우리로 하여금 ‘ 가짜 뉴스 ’ ‘ 어그로 ’ 등 영상을 감히 (?) 의심하고 , 선별하게 만드는 불경스러운 (?) 자세를 가지게끔 했다 . 얼마 전에 의심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 는 절대적인 동물 지식을 담고 있는 신성한 경전이 아니라 외국의 동물 다큐멘터리를 몰래 재가공한 누군가의 세속적인 창작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이렇듯 영상 매체와 그 체험은 더 이상 예전처럼 환상이 가득 담긴 상상력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 미디어의 변화에 따라 우리들의 감각이 달라진다고 했던 마셜 맥루한의 말을 생각해 보면 , 글을 읽는 것보다는 영상을 보는 것이 익숙한 , 더 나아가서는 영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보편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감각은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이러한 감각의 변화 속에서 2023 년의 게임은 어떤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았을까 . 특히나 그 세계관의 구현이 시각적인 영상으로서 표현되는 게 중요한 오픈 월드 게임에서 말이다 . 서론이 좀 길었지만 이제 2023 년의 게임 중에서 기억에 남은 두 오픈 월드 게임을 소개할 차례가 됐다 . 바로 < 호그와트 레거시 > 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이다 . 유비식 오픈월드 2023년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이 두 게임은 한쪽은 호그와트라는 가상의 마법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 다른 한쪽은 800 년대의 바그다드를 배경을 한다는 점의 차이만 있을 뿐 게임의 장르적인 부분에서는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 오히려 게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스템을 보고 쉽게 공통적인 한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 ‘ 유비식 오픈 월드 ’. * 누가 봐도 유비식 오픈 월드라는 것은 알아보기 쉽다 게임을 요리로 비유하자면 , 끝도 없이 펼쳐진 오픈 월드라는 메인 디쉬를 게이머 스스로 부위마다 다른 맛을 음미하며 전부 소화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 오히려 오픈된 가상 공간에서 플레이 목적을 잃거나 , 가늠 안 되는 규모에 지쳐 쓰러지는 등 게임 ‘ 소화 불량 ’ 상태가 되어 게임을 닫아 버리는 일도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이다 . 아무런 안내 없는 광활한 오픈 월드는 탐험의 욕구를 자극하지만 , 미지의 공포와 끝이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바로 뒤따라오기 때문일 것이다 . 이런 오픈 월드의 양면성 속에서 < 호그와트 레거시 > 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는 ‘ 유비식 오픈 월드 ’ 라는 친절한 방식을 취했다 . 먹을 수 있는 부위와 먹는 방법이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고 셰프가 서빙해주는 순서를 따라가기만 하는 오마카세처럼 , 하나하나 친절하게 마커로 표시해둔 유비식 시스템을 오픈 월드라는 거대한 음식의 소화제로써 선택한 것이다 . 그런데 이렇게 동일한 방식을 선택한 2023 년의 두 유비식 오픈 월드 게임을 막상 해보면 전체적인 틀은 비슷하지만 , 그 넓은 세계를 채우고 있는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으며 그로 인한 플레이 감도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다 . 비효율과 효율로 가득 찬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 > 는 굉장히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요소들이 많은 게임이다 . 게임은 유일한 무기인 마법 지팡이의 길이와 재료들을 디테일하게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 그런 내 선택이 게임의 플레이에 어떠한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 즉 게임에서의 효용성은 하나도 없는 , ‘ 기능으로만 보자면 ’ 전혀 무의미한 세팅일 뿐이다 . 주 무기에 옵션이 없던 게임이 최근에 있었던가 ? 싶다 . 게다가 이 지팡이를 이용해 새로운 주문을 배우는 순간 , 플레이어는 마법 문양의 모양을 따라 마치 현실에서 휘두르는 지팡이 궤적을 따라가듯 패드를 조작해야 한다 . 물론 이 역시 게임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적은 순간이며 , 그 부분만 뺀다고 하더라도 게임은 전혀 문제없이 흘러간다 . 소모품의 경우는 게임적인 효율성이 마이너스까지 도달한다 . 일반적인 게임의 포션에 해당하는 위젠웰드 물약은 필요의 방으로 직접 이동해서 15 초라는 현실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 AAA 게임에 그 흔한 휴대용 연금술 가방도 , 자동화 공정과 즉시 완료 시스템이 없다는 게임의 인상은 2023 년의 플레이어를 당황하게 만든다 . *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은 , 어딘가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무언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의 게임 플레이는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거추장스러운 감각과는 다르다 . 시리즈 명칭에 걸맞게 암살 중심의 플레이 방식으로 선회한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의 조작이나 선택이 게임 시스템의 기능적인 부분을 계속 드러내며 게임 진행 속 효율성을 강조한다 . 다양한 무기마다 정해진 특성과 스탯이 있으며 , 파쿠르를 통해 목표 지점까지 효율적으로 돌파하기도 하고 , ‘ 엔키두 ’ 는 소환의 딜레이 타임 없이 바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 암살 대상들을 체크한다 . 유비식 오픈 월드에서 지적받았던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서브 퀘스트들도 그 보상으로 NPC 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 토큰 ’ 이라는 특수 화폐를 챙겨줌으로써 스스로 게임적인 당위성을 챙긴다 . 재밌는 점은 이러한 무기 , 파쿠르 , 엔키두 , 토큰과 같은 게임적인 경험들은 어느 하나 무의미하게 쓰이는 요소 없이 , 모두 암살 (R1 버튼 ) 을 위한 기능적인 역할로 수렴한다는 부분이다 . 암살 버튼 하나를 누르기 위해서 위에 언급된 요소 하나하나가 최적화된 시간 속에서 허투루 낭비되지 않는다 .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의미 없는 지팡이 재료 고민이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에서는 암살을 위한 특성 세팅으로 , 현실의 시간을 들여 수고롭게 제작해야 하는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소모품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에서는 제작이 아닌 , 암살을 위해 빠르게 이동하며 나도 모르는 짧은 시간에 줍는 방식으로 적용되어 있다 . * 길이나 재료가 아닌 , 암살을 위한 스탯과 스킬이 적혀있는 무기 애초에 유비식 오픈 월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게임 시스템을 경제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일 것이다 . 게임 내의 마커들은 모두 해당 컨텐츠에 도달하기 위한 ‘ 최단 거리 ’ 를 자동으로 떠올리게 만들고 그 컨텐츠들이 어떤 내용인지를 미리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 . 마커의 위치 , 마커의 모양 , 마커의 내용 모두 하나하나 다 ‘ 게임적인 기능 ’ 의 소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마치 본인이 이 시스템의 원조임을 자랑하듯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는 이 경제적인 유비식 시스템 위에 역시나 경제적으로 설계된 , 암살이라는 기능에 집중된 게임 플레이를 얹어 게이머들에게 선보이고 있는 느낌이다 . 그러나 < 호그와트 레거시 > 를 플레이했던 게이머라면 본인을 엔딩까지 이끌었던 , 플레이 욕구를 자극하는 부분이 게임의 이런 ‘ 기능적인 시스템 ’ 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이 게임의 매력은 오히려 넓은 세계를 이동하며 적들을 물리치고 사건을 해결하는 그런 오픈 월드의 중심 영역에서 벗어난 변두리 ,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가 설계해 둔 그런 기능적인 시스템의 ‘ 외부 ’ 에 있다 . 게임 시스템의 노출과 사라지는 게임적인 환상 게임의 기능적인 시스템들은 많은 경우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모니터 너머의 플레이어에게 질문을 던지고 계획과 선택을 유도한다 . “메인 암살하기 전에 위력 선물 토큰이나 벌어볼까 ?” 모니터 밖의 게이머가 스스로 질문하는 이 순간에 우리는 , 바그다드라는 공간이 bit 라는 최소 단위의 데이터들이 모여 그것이 이미지화된 것일 뿐임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모른 체 하는 것이다 . 누구도 800 년대 바그다드에 사는 캐릭터 바심이 ‘ 위력 선물 토큰 ’ 이라는 게임적인 시스템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것을 인지하고 활용하게 되는 것은 모니터 밖의 ‘ 나 ’ 이다 . 이렇게 ‘ 토큰 ’ 이라는 편의적인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는 플레이어의 조작이 디지털 데이터 0 과 1 이상의 의미 , 즉 살아있는 듯한 바심의 행동으로 치환된다는 게임적인 환상을 놓쳐버렸다 . ‘ 토큰 ’ 은 게임 진행을 위해서만 존재할 뿐 사실적으로 설계된 바그다드와는 굉장히 이질적이다 . 어디서부터 어떻게 날아오는지 모르는 엔키두가 동물 동료라는 몰입감을 주지 못한 채 , 암살을 하기 위한 하나의 부속 시스템에 불과한 것이라는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이렇게 게임의 세계관과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한 채 게임적으로 효율적이기만 한 시스템은 마치 마감 덜 된 노출 콘크리트로 내부를 장식한 카페를 보듯 , 숨어 있어야할 게임의 뼈대가 1200 년 전의 바그다드의 세계관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 이와 동시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바그다드는 게임적인 데이터였을 뿐임을 다시 한번 게이머에게 상기시키며 살아있는 듯한 세계관과 장소로서의 매력을 잃어버린다 . * 엔키두는 결국 암살을 위한 정찰 드론 역할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 * 사실적인 바그다드 구현과 이질적인 ,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토큰 ( 방송 소품과 비슷하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거추장스러운 부분은 , 게임 외부에 존재하는 플레이어의 효율적인 게임 공략법을 버리게 하고 , 게임 속 캐릭터의 시선으로 그 세계관을 마주하게 만든다 . ‘ 나한테 어울리는 지팡이는 뭘까 ?’ ‘ 내 가방에서 동물이 나오고 있어 !’ 게임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필요의 방에서의 소모품 제작 역시 적절한 난이도 조절과 거추장스러운 여러 연출 효과로 이것이 게임의 시스템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임을 게이머에게 계속 주지시킨다 . 굳이 소모품을 챙길 필요도 없는 세계의 난이도와 자동으로 일하는 냄비와 자라나는 식물 앞에서 게이머는 더 이상 게임의 효율 탓을 하며 시스템을 떠올리지 않는다 . 이렇게 게임의 시스템은 감춰지고 , 눈앞에 남은 건 콘크리트 마감공사가 잘 된 위저드리 세계관일 뿐이다 . * 갑자기 등 뒤에서 날아오는 눈속임이 아니라 내 가방에서 직접 튀어나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 무조건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 위저드리 세계관에 맞게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네 … 이 외에도 흔히들 ‘ 위쳐 센스 ’ 라고 말하는 주변 상호작용 대상을 파악하는 게임적 기능을 구현해 놓은 방식을 살펴보면 두 게임이 게임적 시스템을 각각 어떻게 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의 ‘ 매의 눈 ’ 은 버튼을 누르면 1 초의 딜레이 없이 바로 화면 전환 효과와 함께 주변 사물들과 인물들을 감지해 낸다 . 마치 이제는 밈이 돼버린 스타필드의 ‘ 딸각 ’ 처럼 단순한 스위치의 ON/OFF 와 비슷하게 기능한다 . 어찌 보면 이 기능은 바심의 실제 행동인 것 같으면서도 , 모니터 밖의 내가 게임 진행을 위해 직접 스위치를 켜고 있다는 사실이 겹쳐 보이기도 하는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이와는 달리 < 호그와트 레거시 > 에서는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면 캐릭터는 ‘ 레벨리오 ’ 를 입으로 외치며 지팡이를 휘두르고 , 그 지팡이에선 파장이 서서히 퍼지는 동시에 주변 사물을 구분해 낸다 . 이는 레이더 같이 긴급하게 주변 사물을 감지해야 하는 본래의 기능적인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거추장스러운 연출 효과임은 분명하다 . 그러나 이 짧은 시퀀스는 게임 속 ‘ 캐릭터 ’ 와 게임의 ‘ 기능적인 시스템 ’ 사이의 미싱 링크를 찾아 노출 콘크리트 같았던 게임의 시스템을 마치 캐릭터의 행동인 것처럼 덮어버린다 . 우리가 종이책이 아닌 디지털 신호로 구성된 전자책을 읽을 때 단순한 슬라이드 전환을 보는 것보다는 종이 넘기는 모션과 함께 ‘ 사각 ’ 거리는 소리 표현이 있는 쪽이 비효율적이지만 더 낭만 있다고 여기는 것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 이렇게 ‘ 레벨리오 ’ 는 ‘ 매의 눈 ’ 보다 세계관 몰입에 더 가까워진다 . * 화면 전환과 함께 순식간에 펼쳐지는 매의 눈 *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지만 게임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액션과 음성으로 가려져있다 .. 사실적인 묘사가 주는 영향이 적어진 시대 물론 그렇다고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게임 시스템과 동떨어진 채 덧붙여지기만한 요소들이 오픈 월드의 구현으로써 완벽하게 잘 굴러간다고 볼 수도 없다 . 게임의 기능적인 요소들과 떨어져 있는 많은 부분들은 캐릭터에 맞춰 상호작용한다기 보다 ,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또 다른 데이터 더미라는 것이 금방 밝혀지기 때문이다 .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 전시된 , 상호작용 버튼을 누르면 반복적으로 반응하는 어딘가 공허한 장난감들의 반응을 떠올려보라 . 이를 ‘ 시커 스톤 ’ 이라는 장치와 다양한 상호작용들로 게임 속 캐릭터와 시스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 > 플레이와 비교해 보면 이 반응들이 얼마나 아쉬운지 바로 체감된다 . <호그와트 레거시 > 가 살아있는 듯한 세계의 구현이 아니라 ‘ 테마파크 ’ 라고 계속 일컬어지는 것도 아마 이와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 * 세계관을 구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 게임으로서 들어오지 못한 아쉬움 앞서 서두에 얘기했던 2023 년 시대의 논의로 돌아가 보자 . 영상이 갖고 있던 환상이 사라진 시대의 우리들은 어떤 오픈 월드 게임에서 리얼한 세계관을 느끼게 될까 ? 하나 추측해 봄 직한 사실은 , 영상의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에서 게임의 세계관과 그 몰입은 더 이상 높은 해상도와 사실적인 묘사에서 나오진 않으리라는 점이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티비에서 나오는 정갈하고 사실적인 영상은 진실하지 않은 , 가식적인 취급을 받으며 동시에 실제 화질이 더 떨어지는 유튜브의 거칠고 투박한 영상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에 더 가까운 리얼함으로 평가받는다 . 게임도 마찬가지다 . AAA 급 게임들이 화려하고 사실적인 그래픽을 앞세우지만 , 그것은 자본의 힘이라는 것을 게이머들은 안다 . 그와 동시에 누군가는 < 맞춤법 용사 > 와 같은 쯔꾸르 형식의 RPG 가 단순히 사실적인 묘사의 게임보다는 더 몰입력 있는 , 더 현실과 맞닿아 있는 리얼한 세계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 * 벌써 15 년 된 신뢰의 도약 말고 어떤 새로운 경험을 줄 것인가 사람들은 더 이상 사실적인 공간 묘사 자체에 예전처럼 충격 받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 오히려 ‘ 위력 제거 토큰 ’ 처럼 허구가 느껴지는 플레이감에 대한 반발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 > 이후 , 어쩌면 게이머들이 원하는 오픈 월드라는 건 사실적인 공간의 디자인이 아니라 모니터 밖의 나를 소환하지 않은 채 게임의 캐릭터와 시스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 서로 유기적으로 엉켜 있는 그런 경험의 집합체가 아닐까 . 어쩌면 사실적인 세계를 구현하는 데까지 성공한 < 호그와트 레거시 > 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를 비롯한 많은 오픈 월드 게임이 마주한 다음의 과제는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 2023년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유비식 오픈 월드 게임인 < 호그와트 레거시 > 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모두 , 다음 시리즈에서는 게임의 시스템과 세계관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잘 융합된 충격적인 작품으로 돌아오길 응원해 본다 . 두 시리즈 모두, ‘유비적인 ’ 오픈 월드의 시스템을 넘어 이 모든 게 ‘유기적인 ’ 오픈 월드로 돌아올 수 있길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프리랜서 영상PD) 장준수 시너지 없는 '토목공학'과 '국어국문학' 스킬트리를 타고 근데 이제 2차 전직을 '영상 제작'으로 선택해버린...혼종 (똥망캐까진 아무튼 아님). 게임 방송국 OGN 포함, 10년간의 방송국 PD생활을 거치고 이제는 퇴사 후 프리랜서 PD로 인생 '가챠'와 '덱빌딩' 사이에서 서커스 중.
-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 Back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10 GG Vol. 23. 2. 10. 이 글의 중국어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79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것이 돈으로 향하는” 시대와 산업환경 속에서,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검은 신화 : 오공(黑神话:悟空)』(이하 ‘검은 신화’)는 2020년 8월 20일 영화 『서유기3(원제: 大话西游)』 속에서 “황금갑옷을 입고, 무지개빛 구름을 탄” 영웅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그것은 중국 게임업계 전체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게임산업에 대한 사회와 여론의 기대까지 불붙게 만들었다. 민족주의 정서의 고양 속에서 사람들은 고전문학 『서유기(西游记)』와 현대 테크놀로지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의 ‘해후’가 최초의 위대한 중국 AAA게임을 만들어내길 꿈꾸고 있다. 현재, 『검은 신화』는 여전히 제작 중으로, 2024년 여름에 발매될 예정이다. 이 게임과 관련하여 인터넷상에는 총 9편의 영상이 공개됐다. 2020년 8월 20일에는 ① “최초 공개 시연 영상”이 공개됐고, 2021년 2월 9일엔 ② “신축년(辛丑年) 새해 맞이 영상”이, 2021년 8월 20일 ③ “언리얼엔진5 테스트 모음”, 2022년 1월 2일 ④ “호랑이의 해 맞이, 게임과학(游戏科学)에 관한 짧은 영상”이 게시됐고, 2022년 8월 20일에는 ⑤ “6분 테스트 : 에피소드”와 ⑥ “게임 삽입곡 「경계망(戒网, 지에왕)」, ⑦ “『검은 신화』 글로벌 프리미어 8분 테스트 플레이”이 업로드됐다. 그리고 2023년 1월 16일에는 ⑧ “게임과학 토끼해 신년 맞이 영상”이 공개됐다. ①~⑧ 영상들은 이 게임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으며, 파트너인 엔비디아(NVIDIA)가 내놓은 영상도 비리비리상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직 완성된 게임이 세상에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검은 신화’에 대해 충분히 비평할 수 없다. 하지만 긍정할 수 있는 점은 이 미완성의 게임이 중국 내 AAA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동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본 증식을 자신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중국 게임산업의 우악스러운 산업발전의 공식을 전환하겠다는 아름다운 희망을 응집한다는 사실이다. 문자 그대로 『검은 신화 : 오공』이 원작으로 삼는 서사는 중국의 4대 고전명작 중 하나인 『서유기』이다. 일반적으로 『서유기』는 늦어도 고려시대 말기에 한국으로 전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표면적으로 『서유기』는 당나라 승려와 손오공(孙悟空), 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僧), 백룡마(白龙马)가 9,981차례의 고난을 겪으면서 인도(西天)로 건너가 불경을 구해낸다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의 사회적 모순을 신마소설(神魔小说. 역주: 신이나 요괴 등이 활약하는 동양만의 독특한 소설형식. 자유분방한 언어형식, 풍부한 상상력, 가상의 배경, 중국 바깥 가상의 장소, 종교, 신화 등이 뒤섞여 있다. ) 의 형식으로 굴절시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된 영상들의 내용을 보면, 이 게임은 『서유기』를 모사한 게 아니라, 장회체 소설(역주 : 명/청시대에 인기를 구가한 소설 형식. 청중에게 들려주기 적당한 길이의 장과 회로 나누어져 있다고 해서 ‘장회(章回)’라는 명칭이 붙었다. 비교적 쉬운 백화체로 쓰였으며, 설화예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인 『속서유기(续西游记)』(역주 : 명나라 시기 익명의 저자들에 의해 쓰인 백화 장편소설로, 『서유기』에 이어 승려가 진경(眞經)을 가져온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요 인물들은 『서유기』와 거의 같으며, 유머가 많다. ) 와 영화 『대화서유』, 인터넷소설 『오공전(悟空传)』, MMORPG 게임 『투전신(斗战神)』 등 『서유기』를 바탕으로 한 크로스 미디어 작품들의 상상력을 포스트모던한 ‘패러디(parody)’ 기법을 통해 원작을 해체(deconstruction)하여 “이 게임 특유의 형식으로 원작의 정신과 함의를 구현”해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열거한 ‘원형’이 된 작품들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투전신』으로, 텐센트가 2010년부터 운영 중인 MMORPG 게임이다. 이 게임은 자체 프로젝트로 시작하여 텐센트를 구원해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투전신』은 시작부터 큰 성과를 거둔 후에 오히려 다른 여러 요인들 때문에——물론 주된 원인은 자본 논리와 게임정신 사이의 비타협적인 모순에 있었다——제3장 ‘백골부인’ 에피소드 이후 급속하게 쇠퇴했고, 이는 21세기 중국 게임의 역사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남았다. 『투전신』의 메인 기획자는 현재 『검은 신화』의 프로듀서인 요카(Yocar)로, 『검은 신화』의 제작 멤버들 중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투전신』 제작에 참여했었다. 펑지(骥等; FENG Ji)(역주 : 앞서 언급한 ‘요카’의 본명) 등의 인원들은 텐센트를 떠난 후 게임과학을 설립했다. 게임과학은 『100 히어로즈 (百将行)』, 『아트 오브 워 : 레드 타이드(战争艺术:赤潮)』 등 모바일 게임들을 출시한 이후, 그동안 중국의 게임산업이 손대지 못했던 AAA게임이라는 정점에 도전하고자 했다. 2020년 8월, 헤어진 연인이 재결합하듯 “백골 이후 다시 서쪽으로”라는 이상를 기치로 내걸고, “서유기 세계관”의 게임 『검은 신화』의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검은 신화』는 비단 『투전신』의 정신적인 후속작일뿐만 아니라, 게임의 이상에 대한 1세대 중국 게임 제작자들의 고집과 “돈냄새”로 가득한 21세기 중국 게임의 역사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 게임 역사를 향한 또 한 차례의 자기초월의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빛나고 우수한 문화 콘셉트와 가슴 속의 뜨거운 피만으로는 분명 충분하지 않다. AAA게임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여전히 게임의 기술에 있다. 2020년 8월 20일 첫 시연 영상이 공개된 후, 프로듀서 펑지는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13분짜리 B1에는 여기저기 꿰맞춰 놓은 흔적들이 있습니다. 수치는 제멋대로이고, 착지는 딱딱합니다. 작은 몸은 체조를 하고, 큰 체형은 힘이 없고요. 매미는 모형을 뚫고 나가고, 물에는 피드백이 없습니다. 투박한 방향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사운드는 끊겨 있습니다.”라고 게시했다. 분명히도 당시 『검은 신화』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기술적인 난제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현재 최근에 공개된 『검은 신화』의 영상 화면을 보면, 상기한 난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 게임의 일부 디테일에서는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나 『사이버펑크 2077』 등 글로벌 톱 AAA게임들과 맞먹는 퀄리티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과학측이 언급했듯이 ‘서유기 세계관’에는 글로벌 게임산업에서는 단순한 이족보행 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지는 네발 달린 요괴가 대량으로 존재한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요괴들의 행동 특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인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난제일 것이다. 『검은 신화』는 이에 맞추어 네발 동물의 모션캡쳐를 위한 모션 시뮬레이션 시스템 ‘루우(陆吾; luwu)’를 개발했다. 그러나, 중국 게임업계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첨단이지만 사소하기도 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게임을 “하이테크놀로지” 게임상품에서 인문 사상이 풍부하게 함유된 문화예술 작품으로 바꿀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최종적으로 기술과 인문의 이중 추월을 실현하는 것에 있다. 『검은 신화』의 제작과 홍보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이중 추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신화』가 중국 게임 감독들의 ‘작가성’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성’이란 게임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는가 수준의 평범한 어휘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게임 작품이 인문사상의 매개체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사회적·역사적 상황에 대한 게임 감독의 깊은 고민이 개입되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작가성’이란 게임의 맥락이 사회적인 맥락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플레이어가 게임 도중 게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시대의 언어를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료들을 보면, 『검은 신화』 제작자 펑지의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접근은 일본 게임감독들의 게임사상에 대한 해석에 비교적 가까운 듯하다. 게임기획자 출신인 그는 게임과학의 창업자이기도 한데, 이는 곧 그가 다른 일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도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검은 신화』에 주입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게임 디자인 외에는 비즈니스적인 세계의 현실적인 압력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창작 배경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검은 신화』와 그것의 홍보 문구로부터 과거에 『서유기』를 주제로 한 다른 장르 게임들과 완전히 다른 철저한 이상주의의 색채를 읽어낼 수 있다. 가령, 게임 속의 캐릭터 형상화나 액션 디자인, 줄거리 설정, 애니메이션의 연출, 화면 전환, 장면 구축, 공식 웹사이트의 문안까지. 『검은 신화』는 비용 불문 높은 품질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야심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이상주의는 바로 게임 작품 속에서 ‘작가성’을 부화시키는 전제가 된다. 이에 대해 펑지 등의 (제작진) 사람들은 당연히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13년 전, 일찍이 펑지는 다음과 같이 호언장담한 바 있다. “위대한 게임은 항상 위대한 사상에서 나오고, 위대한 사상은 으레 위대한 게임 디자이너들로부터 나온다.” 『검은 신화』에 게임과학 제작팀의 일상생활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와 깊이 있는 관찰이 개입되어 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서유기 세계관’의 현대적인 함의를 가능한한 풍부하게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는 어떠한 “위대한 사상”이 개입되어 있을까? 공개된 게임 영상들에서 우리에게 확실한 판단 근거를 제시할만한 것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우리는 단지 약간의 실마리로부터 바람과 그림자를 잡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검은 신화』는 『오공전』과 『투전신』의 현실세계와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인 사유를 연장하고 있지 않을까? 이는 『검은 신화』의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재해석 역시 『서유기』의 내러티브 자체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원숭이는 양보할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며, 대신 “최고의 화면, 풍부한 디테일, 몰입감 넘치는 전투 체험을 통한 충분한 플롯 연역”을 활용해 동방신마(东方神魔)의 세계를 표상하는 메타 서사 공간으로 새로이 창조하는 것에 있다. “교활한 요정, 흉악한 도깨비, 다정한 군주, 비겁한 신선”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과 원한을 노래하고, “동양의 슈퍼히어로 서사시를 새롭게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은 신화』의 “위대한 사상”은 유럽과 미국의 마블 유니버스와 같은 영웅찬가가 아닐 수도 있으며, 반대로 불경을 구해오기 위한 길 위의 “평범한” 캐릭터들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려 그/그녀들을 따라 공감하고, 그/그녀들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일 수 있다. 신격화된 신선과 성불, 그리고 오명을 뒤집어 쓴 요괴들과 악마들을 메타 서사의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재인격화하여, 플레이어는 영웅의 후광에 가려진 ‘작은 인물들’에게 다가가 평범하지만 충만한 ‘인성’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서유기』는 현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반영한 기서이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한 『검은 신화』의 최대 난제는 어쩌면 AAA게임 기술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중국 최초의 AAA게임에서 사회 비평적 의제를 설정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검은 신화』는 과연 하이엔드 “디지털 장난감”일까, 아니면 사회 비평의 매개인가? 내년에는 그 답이 나올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학자) 덩 젠 , 邓剑 쑤저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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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4 대중문화로서 게임 또한 오랫동안 소수자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음을 최근 많은 게임제작자들이 토로하기 시작했고, 이제 게임은 다른 대중문화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소수자성을 향한 발디딤을 시작했다. 단순한 재현의 문제를 넘어 게임에서의 소수자 문제는 접근성까지를 고려하는 양방향성을 포함한다. GG는 소수자 문제 앞에 선 오늘날의 게임 이야기를 고찰하고자 한다. Towards more responsible representational practices in games How we talk about a medium reveals a lot about who we consider its target audience or user and what purposes we attribute to their engagement with the medium. The public discourse on digital games in both Europe and North America, have for many years been characterized by the idea, that digital games was, roughly speaking, for young, teenage boys, who spend hours upon hours painted by the luminescence of the computer screen and immersed in mindless entertainment. This was of course never true. Read More [Editor's View] 게임과 소수자, 소수자와 게임 그런 고민의 결과로 ‘GG’ 4호는 ‘소수자들의 게임’을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소수자라는 건 단지 숫자가 적은 집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주류’가 아닌, 주류로부터 스스로가 아닌 ‘대상’으로 취급받는 많은 존재들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게임은 그런 소수자와 얽히는 부분에서 아직까지 짧은 역사 때문인지 고민을 오래 해 오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Read More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두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탈북자’가 가상의 ‘평양’이지만 ‘김일성 동상’을 향해 총을 쏜다. 이때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동상을 보자마자 총을 쏘는 탈북자의 모습이다. Read More 〈폴아웃〉의 미국, 오늘날의 미국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그 결과는 앞서 본 것처럼 미국 역사의 어떤 장면을 재현하는 것에 그칠 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듯 보이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미국 역시도 길게 보면 동일한 미국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불러 들이고, 트럼프는 다시 바이든을 되살려 내며 끝도 없이 갈등한다. Read More 게임 디자이너, 수익모델의 변화 앞에서 결국 온라인 게임의 수익 모델이 부분유료화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분유료화로 뭉뚱그려 취급되는 과금 모델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Read More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Read More 대안세계를 향한 미래고고학: 반문화의 문제계로서 〈사이버펑크2077〉 〈2077〉은 한계와 단점이 뚜렷한 게임이다. 수많은 구매자들이 비난했듯이 이 게임은 수 년간 홍보해온 수많은 시스템과 기능들을 대부분 폐기처분 했으며, 짜임새 있는 트리형 서사구조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플레이어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실패했다. Read More 도시 밖도 자본의 바깥은 아니다 -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문명 6’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등장한다. 건물의 효과 또한 쇼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데, 단순히 상업수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의 쾌적도와 지역의 관광을 크게 올려주는 효과가 핵심이다. 우리의 여가는 시스템 밖을 꿈꾸지만, 그 밖을 향하는 경로까지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상품화한다. 설령 무인도에서의 고요한 삶을 꿈꾸더라도 그조차도 Inc. 가 붙은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숲〉의 설정은 애초에 그런 삶을 생각하며 게임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도 읽힌다. Read More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그 중에서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은 보조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2020년부터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제적 가치 부문과 사회적 가치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개인이 부담하기에 지나치게 비싼 해외 보조기기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라면, 후자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수요를 공모를 통해 파악하여 수요자와 함께 개발하고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Read More 미소녀 게임 속 에서의 여성 재현 문제 누구에게나 이상(理想)이 있다. 거창하게는 미래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소소하게는 입고 싶은 옷이나 만나고 싶은 작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상 중에서도 특히나 사람에 대한 이상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언급되고 구체화된다.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 스타일이 세련된 사람, 지적인 사람, 활발한 사람, 나보다 키가 큰 사람, 나이가 적은 사람 등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물음에 할 수 있는 대답은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이것을 사람이 아닌 캐릭터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 보면 어떨까? Read More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Read More 소수자들의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소고 디지털게임은 한때 ‘소수자’들의 매체이기도 했다. 소수자라는 개념이 단순히 적은 숫자를 가진 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게임 초창기에 한국에서 게이머는 소수자에 가까웠다. 전자오락실은 불량한 이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낙인찍혔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엄연한 자영업장인 오락실에 학교 교사들이 들이닥쳐 ‘손님’인 학생 게이머들을 강제로 끌고나가는 영업방해 행위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불량한 오락실과 게임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이 부분은 아직도 유지되는 바 또한 있다) 게임은 눈치보면서 해야 하는, 말그대로 여가오락 문화 부문에서의 소수자 포지션이었다. Read More 시각장애인과 게임: 편견이라는 경계를 넘어 반지하게임즈의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하여 당사자로서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생기고 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 하지 못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도 게임과는 무관한 것이라서 사실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평범한 시각장애인으로서 내가 경험한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시각장애인들이 더 폭넓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역시 한 게이머의 입장으로 말해 보고자 한다. Read More 실패한 혁명의 잔여물로서의 디스코 음악:〈디스코 엘리시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상당부분 고난과 실패의 의미로 다가온다. 게임이 다룬 파리코뮌 혹은 그 이후의 러시아 혁명, 가깝게는 중동에서의 혁명과 홍콩의 우산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혁명들이 실패했고 민중들은 다시 고난의 상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그 모든 역사 속 실패한 혁명의 잔해를 딛고 사는 사람들이며, 디스코라는 음악 또한 60년대의 실패가 낳은 아쉬움과 침잠의 흔적일 것이다.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이 굳이 실패한 혁명의 도시를 배경으로 삼아 디스코라는 흘러간 장르를 꺼내붙이는 이유는 이 게임의 주제가 살인사건이 아닌 ‘실패한 혁명의 역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Read More 아케이드가 할 수 있는 미래의 역할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케이드 게임장은 1980~1990년대의 많은 게이머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다. 점차 가정용 게임기와 PC가 보급되며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어가는 환경에서도, 집에서 절대 즐길 수 없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게임을 동전 하나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의미를 넘어 게임 환경의 선두를 달린다는 이미지마저 주는 곳임을 뜻했고, 실제 게임 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분야가 아케이드 게임이기도 했다. Read More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Read More 현황점검: 플랫폼 인앱결제의 오늘 카메라 앞에 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든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사람들 주머니에 통화도 되고, MP3 플레이어도 되고, 동영상 재생기도 되는 스마트폰이 담기기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저들은 ‘그 작은 기계로 무슨 게임이냐’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Read More
- 현질의 탄생, 새로운 플레이의 탄생: 〈현질의 탄생〉 서평
< Back 현질의 탄생, 새로운 플레이의 탄생: 〈현질의 탄생〉 서평 09 GG Vol. 22. 12. 10. 놀이란 본래 아무것도 (경제적으로) 생산하지 않는 무언가였다. 디지털 게임(이하 ‘게임’)은 놀이라는 맥락에 디지털 기술이 덧붙으면서 탄생했다. 놀이와 디지털 기술의 접합으로 가상공간에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놀게끔 만든 것이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이 지닌 폭발적인 가능성에 주목한 산업자본의 개입으로 게임도 산업화된다. 이제는 일부 예술적 실험들을 제외하면 게임은 대부분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상품이자 서비스이다. 게임이 상품이자 서비스라는 말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일종의 대가를 지급해야 함을 의미한다. 게임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데 크고작은 비용이 드는 만큼 플레이어들의 대가 지급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방식이나 정도에 따라 게임 자체가 달라지기도 하고 플레이어들의 반응 또한 바뀔 수밖에 없다. 광고를 보든,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이든, 현금으로 결제를 하든 게임 플레이에 대해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게임사-게임-플레이어 간 경합의 영역이 된다. 이경혁의 신간 〈현질의 탄생〉은 그 영역 내 양상과 의미를 밝히고자 하는 텍스트다. 책은 크게 2부로 구분된다. 각 부별 분량도 거의 비슷하다. 1부에서는 먼저 게임의 ‘결제사(史)’를 다룬다. 특히 한국적 맥락에서 (하지만 가끔은 해외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게임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결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핀다. 결제는 게임 공간, 플레이어의 실력과 같은 ‘게임 밖’, 그리고 난이도, 장르와 문법, 플레이 타임과 같은 ‘게임 안’의 요소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살피기 위해 저자는 두 축을 구분틀로 삼는다. 한 축은 게임 플랫폼이다. 아케이드 게임에서부터 가정용 콘솔게임, PC 게임, 온라인 게임, 그리고 모바일 게임에 이르기까지 플랫폼의 등장시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다른 한 축은 결제와 관련된 요소들로, ‘대여-구매·소장-불법복제’, ‘물리적 매체 구매·소장-디지털 (소프트웨어) 다운로드-스트리밍’, ‘무료-정액결제-부분 유료결제’와 같이 여러 기준에 따라 본문에 따로 또 같이 등장한다. 이처럼 플랫폼의 축을 결제와 관련된 여러 축들과 교차시키며, 결제가 게임에서 갖는 의미들을 다양하게 논의하는 것이 1부의 대강이다. 2부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현질 이야기가 시작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강한 반발을 사지만 한국 게임이 역대급 매출 및 이용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모순적이거나 양가적인 상황이, 현질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보여준다고 저자는 입을 뗀다. 현질은 일차적으로는 현금(現金)의 ‘현’과 접미사 ‘-질’의 합성어로, 게임 내 캐릭터, 아이템, 재화 등을 현금으로 사는 행위를 낮잡아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저자는 특정 결제방식을 현질이라고 부를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이 결제가 실제 게임 플레이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와 ‘그러한 결제가 사실상 강제되는가’임에 주목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어울려 경쟁하는 온라인 게임 안에서 부분유료결제를 통해 게임 내적인 승패나 우열의 관계에서 확실한 우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결제가 만드는 우위가 매우 확고하고 넘어서기 어려워서 게임을 플레이할 때 그 영향력이 크다면, 그것이 현질’이라고 조작화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질이 플레이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결제방식은 현질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의 승패를 결정하는 특정한 결제양식은 게임 내부의 변화, (저자가 문제적 상황으로 인식하는) 자동전투와 확률형 아이템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먼저, 자동전투의 배경에는 무한히 영속하는 게임시간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과정이 필수적으로 자리한다. 경쟁에서 게임 플레이를 자동으로 유지하는 행위는 그보다 훨씬 더 간편한 해결책인 경험치와 아이템을 유료로 구매하거나 부스트하는 현질과 선택적 상호관계를 이룬다. 또,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은 유용한 아이템이나 기능을 순수하게 구매할 수 없게 하고 오직 확률형 아이템으로만, 그것도 아주 낮은 확률로 뽑히도록 만듦으로써 플레이어가 많은 지출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현질과 자동전투-확률형 아이템을 따로 떼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지점이 이렇게 나타난다. 현질이 놀이로서의 게임 플레이에 긍정적이지 못한 것이라 치부하고 그것을 멀리하자고 말해버리면 편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현질을 유도하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게임산업의 전략이 아주 은밀하면서도 치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이 알게 모르게 게임산업의 상업적 팽창과 지속에 복무하고 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 현질의 자장 속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이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플레이 현장에서 게임을 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전통적 플레이에서 난이도와 숙련도 사이의 길항은 이제 게임 텍스트와 플레이어 사이의 독립적 상호작용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고난이도 상황에 대해 숙련도가 미치지 못하더라도, 현질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 이용자와 규칙이라는 전통적 플레이 상호작용은 그렇게 현질로 인해 계속 침범받는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러한 상황을 두고 현질에 기반한 플레이는 진정한 플레이가 아니라고 비난하지만, 저자는 현질의 시대 게임 플레이를 진정한 플레이가 아니라기보다는 새로운 플레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현질 플레이를 진정한 플레이가 아니라고 규정한다면, 현질에 매달리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전통적인 게임 내 플레이를, 게임 외적인 납금행위와 연결함으로써 플레이 개념 자체를 확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후 논의를 끌어가기 위해 ‘납금 플레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납금 플레이란 ‘플레이어가 게임 규칙 안에 존재하는 아이템이나 경험치 등을 포함한 게임 내 수치와 상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대상을 구매함으로써 플레이를 만드는 난이도-숙련도 길항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현실의 행위면서도 게임의 난이도와 숙련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지점을 납금 플레이로 새롭게 개념화함으로써 현질 대중화 이후 현실과 직접적인 교차점을 지닌 현실의 결제로 게임 이후의 플레이를 살펴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현질과 플레이 사이의 그 무엇들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친다. 지금의 게임 플레이가 더 이상 게임의 시공간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임 텍스트-플레이어 간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납금 플레이 개념이 갖는 타당성과 확장성은 크다. 실제 산업자본의 욕망 하에서 비자율적으로 혹은 다분히 교섭적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는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전혀 즐겁지 않다면 게임을 지속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지속하는 플레이어들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적 당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질에 기인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어떤 플레이가 그냥 별일 아닌 것이라 해버리면, 그 말은 게임이 그 이상의 의미있는 경험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게임에의 참여가 플레이어에게 어떤 영향력이 있는 무언가라면, 그에 대한 이해는 진지한 것이어야 한다. 좋은 플레이와 나쁜 플레이, 바람직한 플레이와 바람직하지 못한 플레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플레이다. 게임을 하는 모두가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제 플레이어들은 게임 프레임과 현실세계의 프레임이 교차하는 제3의 공간에 거주한다.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그들만의 방법을 찾고 그들만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플레이어는 (만약 그가 정말 플레이어 빠져들고 있다면) 더 잘 플레이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도 돈을 쓰기 위해 플레이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플레이하기 위해 플레이한다. 본문의 흐름을 좇으며 써내려간 서평이지만, 앞에서 다루지 못한 〈현질의 탄생〉의 여러 미덕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고 싶다. 대표적으로, 석사학위논문에 기반한 텍스트임에도 쉽게 잘 읽힌다. 저자가 연구자만이 아니라 비평가로서 (그것이 텍스트를 매개한 것이라고는 해도) 독자와의 만남을 늘 고민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본다. 이론을 정리하고 그에 기반해 논리를 쌓아가는 대신 이슈를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면서 그 과정에서 슬쩍슬쩍 개념들을 내놓는 방식, 혼자 말을 꺼내는 대신 앞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 등 논의방식도 꽤 독특하다. 전자오락실에서 숙련된 플레이어들의 대전을 함께 서서 지켜보던 (하지만 본인은 게임을 정말 잘 하지는 못하는) 동네 선배가 흘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달까. 다만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방식으로 종합해 들려주는 선배. 마지막으로 책 제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책은 게임 결제 전반을 둘러싼 환경과 결제의 역사, 그리고 그 결제‘들’이 갖는 의미를 폭넓게 다룬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이 ‘결제’의 탄생이 아니라 ‘현질’의 탄생이었을까? 저자도 92쪽에 이르러서야 “여기부터가 현질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라고 언급할 정도로 현질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야 등장한다. 하지만 책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1부 게임의 결제사를 지나, 2부를 읽으면서 현질이 게임의 안과 밖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읽고나면, 그제서야 지금의 게임산업과 문화에서 현질의 탄생이 갖는 중요한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현질의 탄생〉은 결제도 아니고 현질도 아닌, 지금의 게임을 말하는 연구서이자 보고서이자 비평서라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게임을 계속 해나가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말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펼쳐들어야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현황점검: 플랫폼 인앱결제의 오늘
< Back 현황점검: 플랫폼 인앱결제의 오늘 04 GG Vol. 22. 2. 10. 카메라 앞에 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든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사람들 주머니에 통화도 되고, MP3 플레이어도 되고, 동영상 재생기도 되는 스마트폰이 담기기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저들은 ‘그 작은 기계로 무슨 게임이냐’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과일을 썰고(프루트 닌자), 새를 날리는(앵그리 버드) ‘스내커블’한 게임을 넘어서 스마트폰에는 수백 명 이상의 유저들이 모여 공성전을 펼치는 MMORPG와 <원신> 같은 3D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까지 플레이되고 있다. (물론 3-매치-퍼즐 등 캐주얼 게임은 아직도 유력한 모바일 게임 분야다) 플랫폼을 넘나드는 크로스플레이를 넘어, 클라우드 기술로 모바일에서 PC 게임을 구동시키겠다는 원대한 아이디어도 현실의 영역에 다가섰다. 조사 업체 뉴주(Newzoo)의 데이터를 보면, 전 세계 게임산업 내 소비자 지출은 1,803억 달러(약 213조 6,900억 원)를 기록했고, 그 가운데 모바일 게임 분야가 52%에 해당하는 932억 달러를 차지했다.1) 이밖에 ‘지난 10년간 모바일 게임 시장은 줄곧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오고 있다’는 명제를 근거하는 분석은 곳곳에 널려있다. 이러한 시장 상황 속에서 엔씨소프트, 넷마블, 크래프톤 등 한국 게임사들도 모바일 게임 시장에 진출해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 모바일 게임 시장에는 거대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스마트폰의 운영체제, 그리고 앱 마켓을 서비스 중인 구글과 애플이 매기고 있는 30%의 인앱결제 수수료가 과연 온당한 수준이냐는 것이다. 현재 게임을 비롯한 모바일 앱에서는 인앱결제가 사실상 강제 중이며 결제가 발생할 ‘때마다’ 30%의 이용 수수료가 부과되고 있다. 이 30%는 왜 부과하는 걸까? 왜 이 수수료가 너무하다는 까닭은 무엇일까? 누가 구글과 애플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옛날에는 혁신적이었던 30%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가 30%의 수수료를 가져가기로 약속이 된 것은 언제일까? 애플은 2003년 음악 플랫폼 아이튠즈를 출시했다. 애플은 당시 음악사에게 앱스토어에 인앱결제를 필수적으로 적용하며, 중앙 통제적인 서버를 관리하고 보안 문제를 책임지는 비용으로 30%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이 30%는 '우수리'를 뗀 금액으로 이해됐다. 그 무렵 애플은 99센트의 노래를 판매할 때마다 큰 음반사에 72센트, 독립 음반사에 62센트를 지급했다.2) 이러한 기조는 2008년 앱스토어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3) 앱에 대한 개념도 희미하던 시절, 일정 부분의 수수료만 내면 전체 애플 이용자를 대상으로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소개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졌다. 이전에는 결제가 이뤄질 때마다 카드사 별 대행 수수료나 통신사별 호스팅 비용이 발생했는데 모든 금액을 30%로 일원화해 책정한 것이다. 개발사는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애플을 통해서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초창기 애플이 내세운 인앱결제 의무 + 30% 정책은 비교적 합리적인 정책으로 평가됐다. 애플에 복귀해서 앱스토어의 얼개를 짠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가 30%의 수수료에 대해서 "우리는 (CP들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려는 게 아니라 아이폰을 더 많이 파는 것이 목표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4) 놀이터를 제공한 뒤 최소한의 관리 비용만 걷을 뿐이지, 중요한 것은 자사 스마트폰을 더 많이 보급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30%는 구글플레이 스토어, 아마존 앱스토어, MS 스토어는 물론 엑스박스, 소니, 닌텐도, 스팀도 책정 중인 비율이다. 규모있는 콘텐츠 제공자(CP)들에게 30%의 수수료는 '국룰'이 아닌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ESD)의 '국제 표준'이었다. 향후 자신의 ESD에 더 많은 CP를 유치하기 위해서 연매출을 기준으로 영세한 규모의 회사들에겐 수수료를 15%나 20%로 깎아주었다. 거의 모든 ESD 사업자들이 생태계 관리를 위해서 수수료를 매기고 있다. * 플랫폼 사업자별 수수료 요율.5) 낮은 효능감, ‘갑질’... 수수료 30%는 적당한 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CP들은 30%에 의문을 품었다. 비즈니스모델(BM)이 고도화되면서 30%씩 구글과 애플에 납부하는 것에 불만이 발생했던 것이다. 다이아와 루비 같은 인게임 재화에 대한 결제가 이뤄지는 순간마다 30%의 수수료를 물리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냐는 주장이다. 애플이 초기 30%를 설정할 때는 통신사마다 따로 진행되는 빌링 시스템에서 벗어나 애플 생태계를 통해 전 세계에 자신의 앱을 알릴 수 있는 혁신이었지만, 시장이 성장세를 거쳐 안정세에 진입한 오늘날까지 플랫폼 사업자가 30%나 거둬가는 것은 무리라는 해석이다. 2020년 애플 앱스토어에는 2,800만 명의 개발자가 활동 중이고 등재된 앱은 180만 개에 이른다.6) 플랫폼 사업자들은 거대해진 생태계를 관리하는 데 30%의 수수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역폭 처리, 거래 관리, 악성코드 식별에도 비용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앱결제가 '갑질'이라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기업과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제공한 앱을 통해서 생태계를 키운 구글과 애플이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며 반기를 들었다. 양대 기업에 반발하는 이들에게 '30%의 룰'은 인앱결제로 강제된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등이 가입된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은 "앱 마켓의 독점이 콘텐츠 서비스의 독점으로 이어질 것이며 (구글, 애플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해 앱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려 한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7) 창작자들로 구성된 한국웹소설산업협회, 한국만화가협회, 한국웹툰작가협회도 인앱결제 수수료가 부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창작자들에게는 30%로 이루어지는 생태계에 대한 효능감이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게임 개발사들에게도 수수료를 내고 있지만 앱 심사 지연, 서비스 중단 등에 관한 안내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구글과 애플이 몇몇 플레이어에게는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2018년, 넷플릭스는 앱스토어가 아닌 웹브라우저로 회원을 모객했다. 앱스토어의 정기구독 앱은 첫 번째 해에 30%, 두 번째 해에 15% 수수료를 떼어가는 데 이 돈을 내기 싫었던 넷플릭스는 우회책을 사용했다. 넷플릭스 앱에서는 신규 가입을 등록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양대 기업은 다른 곳에게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 이 방법을 사실상 용인해줬다.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에서 자체 빌링 옵션을 추가했다가 양대 스토어에서 퇴출된 적 있다. 엔진사, 게임사, 스토어 사업자 등 다종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에픽게임즈는 퇴출을 준비라도 한 듯 구글과 애플에게 “반 독점법 위반”이라며 고소장을 날렸고, 기나긴 법정 투쟁을 시작했다. 현재 에픽게임즈는 대표 팀 스위니를 중심으로 양대 산맥의 지위에 균열을 내고 있다. 스팀은 매출이 1,000만 달러(약 119억 원) 미만이면 30%, 1,000만 달러 이상은 금액에 따라 25%, 20% 순으로 수수료를 매긴다. 이들과 달리 에픽 스토어는 12%를 떼간다. 지난한 소송 투쟁을 통해서 에픽게임즈가 원스토어, 갤럭시스토어와 같이 써드 파티 스토어를 기획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애플은 이같은 써드 파티 스토어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에픽게임즈는 인기 데이팅 앱 ‘틴더’의 매칭그룹과 함께 CAF(앱 공정성 연대)을 만들었다. 현재 CAF는 구글, 애플에 조직적으로 맞서고 있다. 한국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CAF 임원들은 코로나19 시국에도 한국을 찾아 국회 토론회, 인터뷰 등에 참석하며 한국의 ‘구글갑질방지법’을 높이 평가8)하며, 구글과 애플의 행위를 "자사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며 혁신이나 경쟁, 공정성을 위한 노력을 지향하는 회사는 아니다"라며 비판하고 있다. (‘데이팅 앱’의 존재는 뒤에서도 한 번 더 등장할 것이다.) 30%의 벽은 무너졌다 이미 영세 규모 기업에는 낮은 요율을 적용했던 플랫폼 사업자들, 에픽게임즈의 행보 등을 통해 구글, 애플이 고수하던 30%의 벽은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구글와 애플은 여러 나라 규제 당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글과 애플을 감시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쳤다. 전기통신사업자 일부개정안, 이른바 ‘구글갑질방지법’에는 특정 결제방식 강제, 부당한 앱 심사 지연 및 삭제, 타 앱마켓 등록 방해 등을 할 수 없으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해당 업무를 담당케 했다. 방통위는 앱마켓 사업자의 의무 이행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자료 제출과 시정을 '명령'할 수 있다. 법 체계에서 요구와 명령은 무게가 다르다. 아직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상당히 강력한 법안이 통과된 셈이다. 이 법 통과를 바라본 팀 스위니 대표는 “나는 한국인”이라며 기뻐하기도 했다. 새 법이 통과되자 구글 한국 지사는 4%p 낮은 결제 수수료를 부과하는 외부 결제를 허용하기로 발표했다. 이 조치에 대해 국내 업계는 ‘꼼수’라는 비판을 내놓았다.9) 공개적인 액션을 취하는 구글에 비해 애플 한국 지사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연초 애플 코리아는 한국 법을 지키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서한을 방통위에 전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본 원고를 제출하는 지금까지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애플코리아 서비스 최고 책임자 한수정은 새 법에 대한 구체적인 회의를 전개하던 시점, 미국으로 건너가 직접 논의에 참가하지 않았다.10)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한 총괄이 EA코리아 대표 등을 역임한 게임 업계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뿐 아니라 네덜란드 당국은 애플에게 틴더, 범블 등 데이팅 앱에서 인앱결제 외 써드파티 결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명령했다. 애플은 이에 따라서 지난 1월 14일부터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외부 결제 시스템을 적용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애플에게 벌금을 물렸다. 제3자 결제를 도입하면서 일부 앱스토어 기능을 차단시키는 식으로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개발자에게 외부 결제를 위한 별도 앱을 개발하도록 지시했으며, 외부 결제를 이용할 경우 애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만들었다. 이뿐 아니라 애플은 제3자 결제 도입 후에도 수수료를 징수했는데, 네덜란드는 이것을 명령 위반으로 보고 신속하게 애플에게 벌금을 부과시켰다.11) 유럽의회는 빅 테크에 대한 규제·감시를 강화하는 디지털 시장법을 추진 중이며, 호주에서는 애플과 구글의 행위들이 반경쟁적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인도, 영국, 프랑스 당국이 양대 기업의 인앱결제 강제 등에 대해서 주시하고 있다.12) 결제 규모, 본사의 위치 등을 복합적으로 보았을 때 대마(大馬)는 미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10월, 미국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 반독점 위원회는 구글과 애플의 행동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는 "한때 기존 질서(Status Quo)에 도전했던 산만한 언더독 스타트업들은 이제 석유 부호나 철도 거물들의 시대에나 봤던 독점자(Monopolies)가 되어버렸다"라는 강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들 기업은 사회에 분명 혜택을 주었지만, 이제 대가를 치를 때가 됐다"며 "다른 회사들도 그들의 규칙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구도 있다.13) 강력한 어조의 보고서가 발간된 뒤, CAF는 미국 현지에서 결코 무시 못할 수준의 로비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후문이 들려온다. 이와 별개로 에픽게임즈와 애플의 소송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이 사안에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 2021년 9월 1심에서 재판부는 인앱결제 외 직접 구매로 연결할 수 있는 링크를 포함시키지 못하게 하면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10개의 쟁점 사안 중 1개에만 에픽게임즈의 손을 들어주었다. 인정된 1개의 쟁점은 이미 애플이 영세 규모 개발자들과 소송에서 합의한 내용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1심 재판부는 현상 유지를 선택했고, 2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새로운 국면이 마련될 것이다. 지난 1월 21일,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는 구글과 애플을 규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들 기업의 지배력 남용을 막는 법안을 16:6으로 통과시켰다. 자사 상품 우대를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인앱결제가 유튜브 등 자사 앱을 우대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으므로 이 법에 따라서는 금지의 대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법이 장기적으로 30%의 수수료에도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 법안은 곧 본회의에 올라갈 예정이다.14) 1) The Games Market and Beyond in 2021: The Year in Numbers (Newzoo, 21-12-22) 2) 2000년대 애플의 아이튠즈 수수료에 대한 뒷이야기는 <콘텐츠의 미래>(바라트 아난드 저)에 잘 정리되어있다. 3) How Apple’s 30% App Store Cut Became a Boon and a Headache (NYT, 20-08-14) 4) Apple’s Latest Opens a Developers’ Playground (NYT, 08-07-10) 5) Apple's App Store and Other Digital Marketplaces (Analysis Group, 20-07-22) 6) Apple,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를 전체 온라인 포맷으로 다시 가져오다 (Apple Newsroom, 21-03-30) 7) 구글 “네이버·카카오 웹툰 日 성공, 인앱 결제 덕분”... 인기협 “구글만 좋은 불공정 정책” (아주경제, 20-09-29) 8) [단독] "이러다 다 죽는다", 팀 스위니가 말하는 앱 생태계와 독점 (TIG, 21-11-18) 9) 구글, 4%p 수수료 낮춘 ‘꼼수’ 논란 여전…방통위는 ‘골머리’ (뉴스1, 22-01-12) 10) 인앱결제법 이행 논의 헛도는데…애플코리아 경영진은 '부재중' (연합뉴스, 21-11-24) 11) 네덜란드, 애플에 67억 벌금…"외부결제 허용 불충분" (ZDNet Korea, 22-01-25 )12) 美 앱공정성연대 "한국 구글갑질방지법 기념비적…강제화 중요" (연합뉴스, 21-11-15) 13) 미국 하원 반독점위원회 "구글·애플 마켓 수수료 30% 너무해 (TIG, 20-10-08) 14) 구글, 위치 추적 설정 꺼놔도 몰래 추적…미국 지자체 '줄소송' (경향신문, 22-01-25)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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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 Back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12 GG Vol. 23. 6. 10.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2년 10월에 방영했던 EBS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3부에서는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담론들을 다루었다. 비단, <게임에 진심인 편>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은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담론의 두께만큼 다양한 관점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구획하려 하는 시도 자체가 구태의연하다는 인식까지 존재한다. 그런데 실제로 게임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엄숙한 미술관, 그것도 한국 미술계에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3년 5월 12일부터 9월 10일까지 게임을 주제로 한 <게임 사회> 전시를 연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국에서 게임의 문화적 지위가 변화했음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로의 게임이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는지, 게임으로의 예술이 가지는 특수성은 무엇인지 등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이에 해당 전시에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했던 편집장은 <게임 사회>를 기획한 홍이지 학예연구사와 만나 게임과 예술의 관계를 더 깊게 고찰하고자 하였다. 다만, 전반적인 전시에 관한 소개는 국립현대미술관 콘텐츠( https://www.youtube.com/watch?v=_mZEphegRDc) 에도 잘 나와 있기에, 인터뷰에서는 게임을 전시하는 것의 의의와 한계, 또 앞으로의 가능성들을 사유하고자 하였다. 이경혁 편집장: 안녕하세요. 학예연구사님. 먼저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릴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대학에서는 조각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이제 전시 기획을 전공을 한 뒤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을 하다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한 지 3년 되었습니다. 홍이지라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전시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전시에 대한 반응들이 뜨겁더라구요. 인터넷에서도 많은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게임 관계자들과 미술 관계자들이 이번 전시를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를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비단 미술계와 게임계로 나뉘는 것뿐 아니라, 게임계 안에서도 게이머가 보는 전시가 다르고, 게임 업계에 계시는 분이 보는 전시가 다르고, 게임을 콘텐츠로 기획하시는 기획자분이 보는 관점도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은 것이 저는 재밌어요. 이 전시 하나만으로도 저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대화를 할 때마다 너무 흥미로워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게임 전시라는 것이 리터러시의 문제가 있죠. 전시에서 애초에 게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알아볼 수 있는 지점들도 있고요. 사실은 일반적인 미술관도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 상황인데, 미술 전문가로서 게임에 관한 전시가 다른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 다른 특이점이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사실 처음 기획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이 전시의 기획 의도를 한 방향으로 읽으시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의 리터러시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더욱 피드백이 궁금한 전시이기도 했어요. 일반적으로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올려도 피드백은 거의 없거든요. 개인의 호불호나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 정도는 있지만, 전시 전반의 경험에 관한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전시는 오픈한 지 일주일 됐는데도 피드백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굉장히 놀라워요. 그게 게임 전시의 특이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전에 우리 미술관에서 비슷하게 피드백을 받았던 전시는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였어요. 강아지들이 들어왔을 때,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모종의 엄숙주의나 결계가 해제되면서 이 공간을 다르게 점유하고 경험했을 때 확실히 훨씬 더 적극적인 피드백이 있었던 것 같고, 또 그거를 염두하고 만들었던 전시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코로나 때, 저희 미술관이 몇 개월 동안 문을 닫았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얼마나 장소가 좋아요? 위치도 훌륭하고. 코로나 때 병상이 없을 때에도 여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거든요. 저희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미술관이 기능을 하지 못할 게 뻔한데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미술관에 대한 경험과 이용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이번 기획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한 지점이 있어요. 다만, 피드백 중에는 기획자가 누구이며, 얼마나 게임을 해봤는지 묻는 질문들도 있어요. (웃음) 물론, 제가 게임을 하기는 하지만, 모든 게임을 섭렵하고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에요. 그러나 외부 기획자가 미술관에 와서 하는 전시와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공공성을 주제로 해서 만드는 전시는 분명히 접근이 되게 다를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 층위를 보는 것도 중요하기는 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공공미술로의 기획이 가질 수 있는 특수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아무래도 디지털 게임 전시도 있다보니 기계들이 많잖아요? 그 지점에서도 공공미술에서의 의의나 어려움들이 만들어질 것 같은데, 기계들은 괜찮나요? 잘 돌아가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네. 괜찮아요. 저희가 우려했던 것보다 그래도 안정화는 빨리 됐고,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전시되고 있어요. 저희 오픈하고 그다음 날 단체 관람객이 900명이었거든요. 그때가 진짜 위기였긴 했어요. 관람객분들이 개별로 혹은 두 세분씩 오실 때는 미술관의 분위기나 문법을 인지하고 오세요. 그런데 900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기계들은 별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의 기획의도 이면에 있던 고민들에 대해서도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미디어 아트 작품이 굉장히 많던데, 전시가 끝나면 이 작품들은 어떻게 되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사라져요. 실체로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고요. 처음부터 저희가 작품들을 파일 형태로 받았는데, 어차피 전시가 끝나면 파일을 바로 폐기하고 그걸 사진을 찍어서, 소장품 대여처에 보내줘야 돼요. 김희천 작가님의 작품에 쓰인 큰 LED 이런 거는 패널도 그냥 다 해체해 버리는 거예요. 렌트기 때문에. 저희는 자산 취득을 할 수가 없어서 장비가 비싸도 렌트를 해야 돼요. 이 현장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아카이빙을 한다 해도 사실상 ‘전시의 재현’이라는 건 불가능한 형태군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렇죠. 이경혁 편집장: 음. 게임 매체가 원래 그렇긴 하죠. 게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원래 애초부터 재연이 불가능한 거니까요. 그래도 파일을 가지고 계신거면, 나중에 오페라처럼 다른 무대에서 다른 연출로 재현할 수는 있는 거겠네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네. 그런데 그것도 조금 문제가 있긴 해요. 제가 이번에 MoMA(Museum of Modern Art: 미국의 유명 근현대 미술관)랑 스미스소니언(미국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박물관)에서 각각 작품을 빌렸는데, 최종 협약서에 사인할 때까지 1년 가까이 걸렸거든요. 애초에 MoMA와 스미스소니언이 2010년 초반에 게임을 소장하기로 했는데, 당시에는 지금이랑 문법이 많이 달랐던 거죠. 지금의 관점에서 당시 계약서는 명확한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 체결된 거였거든요. 게다가 당시의 판단으로는 (게임 관련 전시물을) 어디까지 소장해야 되는지에 관한 연구가 너무 미비했기 때문에, 누구의 권한을 어디까지 일임받아서 관리할지에 대한 부분도 각각 다 달랐던 거죠. 어떤 게임사는 ‘전시할 때마다 허락을 받아야 한다’, 어떤 곳은 ‘전권을 다 준다’ 대중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너무 달라졌고, 또 담당자들도 다 바뀌어서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에, 저희가 이번에 전시할 때에는 MoMA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 MoMA의 모든 리스트를 보면서 게임 회사들에게 다시 또 허락을 받았어요. 그때 어떤 게임사는 알아보고 연락 준다고 하고 두 달, 여름 휴가라고 한 달, 어떤 곳은 ‘우리가 MoMA랑 계약을 했다고요?’ 하는 곳도 있고,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게다가 MoMA가 2010년에 전시를 하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전시를 안 했기 때문에, 저작권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컨디션이 많이 바뀐 거예요. 그 사이에 데이터 파일도 굉장히 압축이 많이 되고, 전시물을 상영하는 방식도 달라졌고... 그래서 나중에 다시 재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MoMA에서 전시된 작품들도 실제 상용 작품들이고, 사실은 직접 컨택을 해서 전시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그런데 MoMA와 계약한 작품들을 빌려왔던 의도가 따로 있으셨을지 궁금해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희도 그 지점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게임을 미술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지점이었어요. 포스트 디지털 미술사의 맥락에서, 그러니까 89년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를 디지털 미술사로 정립을 하고 있는 와중인데, 이 디지털 미술사의 맥락에서 게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미술사에서는 게임을 거의 다루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연구하고 있던 맥락 안에 게임을 긴급하고 진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는데, 이러한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MoMA의 사례가 주효했어요. 애초에 게임을 접해본 적이 없으신 분들에게도 ‘MoMA도 게임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설득에 도움이 되는 것이죠. 이경혁 편집장: 그렇다면 역사적 맥락 외에도 ‘미술 전시로서의 게임’이 가지는 특수성이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물론 있지만, 그걸 구현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단순한 체험으로 제공되는 것 외에, 저희가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미디어 작품처럼 뭔가 감상의 여지가 생기고, 이걸 통해서 특정한 순간을 경험하고 그러기에는 미술관에서의 공간이 한정적이고, 너무 찰나인 거죠. 경험의 시간 자체가.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사실 이번 전시 중에서 특히 심시티 같은 경우는 어떤 감각을 느끼는 체험을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들죠. 결국, 전시장의 한계라는 것은 공연 공간에서, 줄을 서서 공연 기기를 잠깐 대여하는 방식에서부터 나올 것 같은데요. 오락실 게임은 이런 논리가 가능하겠지만, 심시티나 마인 크래프트가 공적 공간에 올라왔을 때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시연 외에도 미술 작품과는 다르게 게임은 일반적으로 협업해서 만들어지잖아요? 그러면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니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맞아요. MoMA도 게임 전시는 항상 디자인 분과에서만 하는데, 시연이 어렵다는 점과 크레딧의 문제가 닿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게임 전시의 형태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지점도 있고, 아직은 예술로서 게임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한 관점의 차이들도 큰 것 같아요. 저희가 빌릴 때도 게임사의 반응에 따라서 그 게임사가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거든요. 가령, 제노바 첸(Sky : 빛의 아이들, Flower, Journey 제작자)은 확실히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뭔가를 요구했을 때, 모든 걸 조건 없이, 질문을 하지도 않고, 무상으로 전부 제공해줬는데요. 확실히 게임이 예술로 보여줄 수 있는 자리라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저희가 지금 헤일로 2600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을 통해 에드 프라이즈(Ed Fries, 헤일로 2600 개발자)의 연락을 받았어요. 저희는 모든 전시품을 똑같은 컨디션으로, 너무 향수를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는 방향에서, 관람객들에게 중립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에드 프라이즈는 자신의 작업이 아트이기 때문에, 전시할 때 게임이 이용되었던 당시의 CRT 모니터로 바꿔 달라는 연락이 온 거예요. “접근성 확장을 위해서 전시에 버튼과 조이스틱을 쓴 것은 알겠지만, 내 작업은 이미 종결된 그 시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다시 번역된 상태로 제공이 되는 형태는 반대한다.” 그런 거죠. 이런 지점에서는 게임과 전시에 대해서 고민들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예술이냐고 하다가 지금은 백남준 류의 비디오 아트가 미술계에 자리가 생겼잖아요? 게임도 그런 게 가능할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어떤 측면에서는 (게임이) 이미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만큼 자리 잡혔다고 생각해요. 싱글 채널 비디오 아트에서 옛날에는 작가가 선형적인 타임라인 안에서 촬영을 해서 편집을 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CGI가 안 들어가는 작업을 찾기가 힘든데, 그 CGI 작업 자체가 유니티 아니면 언리얼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에, 이미 게임의 문법으로 영상 언어를 만들고 있고, 그 과정에서 메타버스나 NFT를 경험해 본 작가들이 너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게임의 작법을 어떻게 적용시키고 잘 만들지에 있어 기술력에 대한 갈구가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작가들도 고민하는 게, 그런 기술력을 써서 작업을 만들면 1, 2년 사이에 빠르게 낡아버린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는거죠. 이제는 딱 보면 ‘이거는 심즈 미감, 이거는 플레이스테이션 1 미감, 이거는 언리얼 엔진 5 미감’ 이런 걸 바로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금방 낡아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김희천 작가가 개발을 할 때도 큰 화면에 굉장히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만들 수 있었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거는 풀레이스테이션 1 미감에 로우 폴리곤을 써서, 시간대를 흐트러뜨리고 싶은 의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77220)에서 언급한 예시 중에 라라 크로프트가 있었는데요. 옛날에,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에는 게이머들 각자의 라라가 있었던 거예요.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라라. 그런데 기술이 발달해서 실사화가 되니까 모두가 실망했다는 거죠. 자기의 라라가 아니라서. 그런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게임을 하던 그 시기가 현대 미술과도 닿아있는 것이, 예술을 감상하고 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딱 그 부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요.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게임계에서는 그런 기술적 맥락들이 중요하죠. 사실 초창기 레트로 게임들은 지금처럼 폴리곤 방식으로 안 만들고, 도트로 이제 디자인을 했잖아요. 근데 도트디자인에서는 박모라고 하죠? CRT 특유의 번짐을 포함해서 디자인을 한 게 있었죠. 그런 미감들은 시대적인 맥락에서 감상되고,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지요. 그런 맥락에서 생각나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슈퍼 마리오 무비>는 다양하게 감상될 것 같은데, 이전 게이머들에게는 그 화면이 익숙하거든요. 게임팩을 처음 꽂았을 때, 뭔가 지직거리면서 나오는, 그래서 다시 훅훅 불고 게임팩을 꽂는 익숙한 화면인데, 그 경험이 없거나 그 시절을 안 겪은 요즘 게이머들은 무슨 화면인지 모르는 거죠. 그런건 도록에 아무리 써도 잘 알 수가 없죠.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런 지점이 현대 미술과 게임의 접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제가 브로셔에 쓴 글이 있어요. 게임을 하는 것과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과정이 되게 비슷하다고 써놓은 게 있거든요. 저는 실제로 그랬던 것이, 제가 게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미술계에 계신 많은 분들은 제임을 잘 모르시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외부에서 ‘저 미술관에서 일해요’라고 하면 ‘저는 현대 미술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죠. 이렇게 서로 문법이 다르고, 시간을 들여서 익히지 않으면 온전히 즐길 수 없는 두 대상을 공공미술관에서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에 ‘접근성’을 무게감 있게 다룬 것도 연장선 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해주신 접근성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이번 작업을 하시면서 접근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게임계의 바깥에 계신 입장에서 게임 접근성의 현재를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희가 전시를 기획할 때, 컨트롤러를 이용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Xbox Adaptive Controller (Xbox 접근성 컨트롤러: 국립재활원의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도 소개되었던, 장애인의 게임 접근을 돕기 위한 컨트롤러)로 전시할 수 있는 게임이 거의 없는 거예요. 특히 국내 게임은 하나도 없었죠. 그런데 지스타가 열렸을 때, 넥슨에서 ‘카트라이더: 드리프트’가 나오니까 그거를 이 컨트롤러로 쓸 수 있게 기술적으로 검토를 해달라는 이야기가 국립재활원에서 있었고, 국립재활원 연구에 참여했던 가족들에게도 ‘단 하나라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국내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 마지막에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넣은 지점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엑스박스 컨트롤러는 국내에서 팔지도 않고,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죠. 그리고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서 게임에 대한 (장애인과 여러 소수자의) 접근성을 확장해야 한다는 논의는 많이 있었지만, 여전히 게임은 산업으로 분류되고 게임에 대한 평가도 이용자가 얼마인지 등 가시적인 숫자로 평가되기 때문에,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떨어지는 거예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서 한편으로는 이번 전시 이후에도 게임의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전시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사실 미술관과 접근성은 게임보다 먼저 논의들을 거쳤잖아요? 이제는 미술관이, ‘한국에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가장 접근성이 높은 공간’ 중 하나로 꼽히는데, 거기에서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부족한 ‘게임’이 이야기된다는 지점이 유의미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런데 저는 매일 내려가서 Xbox Adaptive Controller를 쓰시는 분들을 보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익숙하게 잘하세요. 저희 딸이 11살인데, 저희 딸한테 마인 크래프트를 이 컨트롤러로도 시켜봤는데,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서 하긴 하더라고요. 확실히 접근성에 관한 논의들은 실제로 경험해보면서 느끼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어떤 컨트롤러에 익숙한지에 대한 문제를 확장하면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논의와 같은 맥락이에요. 그러니까 사실 접근성 관련 논의가 비단 장애인으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보편성에 관한 논의이고, 오히려 메이저를 향해 가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지요. 그래서 이러한 고민들을 손쉽게 ‘돈 안되는’, ‘착한 일’로 인식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맞아요. 사람들이 접근성을 자꾸 소수자의 문제라고 쉽게 인식하지만, 크게 보면 사실 키오스크의 사례도 같은 맥락이죠. 만약 키오스크에서 에러가 떴을 때, 핸드폰을 많이 쓰는 세대는 직관적으로 초기 화면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해력이 있는데, 그게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냥 손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문해력이 없는 사람도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죠. *김희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상호작용의 현장 이경혁 편집장: 앞서 게임계의 다양한 반응과 그 지점에서 공공미술로의 특수성 같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미술계의 반응은 좀 어떤가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미술계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긴 한데요. 먼저 제가 예전에 <유령팔>이라는 전시를 했던 걸 많이들 아시니까, 연장선에서 봐주시는 분들은 포스트 디지털 미술사 맥락에서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게임 전시를 해서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새로운 세대가 (미술계로) 진입해서, 경험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있다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과 미술이라는 콜라보가 참 쉽지 않은 영역이었는데, 이후에는 어떻게 관계를 가져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좀 해야 할 시기 같아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래서 미술 쪽에 비평하시는 분들 중에선 게임의 미감과 질감이 다음 세대의 미디어 아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왜냐하면 언리얼 풍이나 유니티 풍의 미감이나 마감이 단순히 작업물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작업 방식이나 사고 방식에도 영향을 주잖아요. 재미있는 사례로, 최근에는 실제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온 것을 느끼는데요. 저는 실제 전시 장소에서 물리적인 양감과 구조를 이해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설치하는데, 어떤 작가분들은 실제 전시장에 와서도 사진을 찍은 다음, 사진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보는 것이 낫지 않나?’고 했더니, 자기는 핸드폰 스크린으로 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르다고 말하는 거죠. 이처럼 프로그램이나 기술이나 게임의 문법이 여러 변화를 만든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논의들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시각적인 대상으로 볼 때 한정되는 문제이기도 한데요. 어떻게 보면 게임의 또 다른 정체성이자 특징인 규칙, 그리고 그 규칙과 상호작용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감정의 변화라는 것을 어떻게 다룰지도 고민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아요. 미술이 게임의 방법론을 가져간다면 사실 이 고민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전시라는 방식으로 우리가 이런 영역을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좋은 예시가 김희천 작가 작업인 것 같아요. 김희천 작가 작업은 앞 부분에서 유니티로 만든, 모바일 게임을 하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게임의 아바타 같은 사람이 미술관을 돌아다니는데, 이후 실제 인물이 연기를 하는 파트가 끝나면 전시장에 구현된 35대의 CCTV가 이미지를 수집하고, 수집된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변환되어서 출력되는 파트가 있거든요. 실제 게임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건 이 부분이죠. 우리는 보통 앞부분을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뒷부분을 게임으로 보지 않는데, 작가님에게는 이 부분이 게임인 거고, 내러티브가 있는 기존의 미디어 작품의 문법으로 해석했을 때 실시간 반영이 작품에 즉흥적으로 개입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전의 영상 작품과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게임의 문법 쪽으로 가지를 뻗어간다면, 어차피 집에서도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전시장에 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웃음)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렇죠. (웃음) 다만, 전시장이 어떤 풍경을 만들었는지가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적으로 어떤 콘텐츠가 상영되는 지보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 반응,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는 것이 유효한 지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전시장에 와서 보는 미디어 작업이 어떤 경험의 차이를 만드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우리가 예술을 통해서 온당하게 다뤄야 할 내용에 대해서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사회적 주제에 대해서 모두가 드나드는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굳어질 수 있는 사회 문법에 균열을 줄 수 있어요. 그런 균열을 만드는 공간이 미술관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맞습니다. 게임 자체로는 이미 예술을 하고 있어요. 다만, 그중에 전시될 수 있는 방식이 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모든 게임이 미술관을 가야하는 것도 아니며, 의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81년생인데, 어렸을 때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여자애가 무슨 게임이야? 오락실에 가 있는 오빠나 빨리 데려와서 저녁 먹으라고 해.’ 라는 말을 듣고 자랐거든요. 그래서 오빠를 데리러 가면, 오빠는 친구들이랑 ‘스트리트 파이터’ 하고 있고, 오빠가 저한테 200원 주면 테트리스하고, 보글보글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것처럼 저는 어릴 적부터 게임을 접했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남성적 문화라는 점에서 게임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적 경험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도 게임에 몰입하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경험들을 하게 되고, 그런 경험들 때문에 이런 전시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유령팔>도, 85년 이후 세대들이 포스트 미디엄을 다루고 있는 특성과 달라진 창작 환경에 대해서 짚어보고자 기획했어요. 물리적인 감각이나 스케일 감이나 물질에 대한 감각을 인지하는 세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현대미술에도 그런 맥락에서 게임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전시도 이런 고민들을 담는 지점에서 세대적 경험에 균열을 만들어갈 것 같습니다. Tags: 인터뷰,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노년게이머에에게 경외와 동료애를 - 그레이게이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 Back 노년게이머에에게 경외와 동료애를 - 그레이게이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02 GG Vol. 21. 8. 10. 나이들면 게임하기 어려운가? <리그 오브 레전드>가 처음 들어와 국내에서 조금씩 바람을 일으키던, 아직 프로씬은 만들어지기 전이었던 그 시절 전국구 고수로 이름을 떨치던 사람 중에는 ‘황충아리’라는 게이머가 있었다. 챔피언 ‘아리’ 장인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아리장인’ 보다 그는 ‘황충아리’로 더 이름을 떨쳤는데, 이유는 그가 노장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노장 캐릭터로 유명한 황충의 이름이 그에게 붙었지만, 그의 당시 나이는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일반적인 사회문화에서라면 창창한 나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시원치 않을 30대 중반이 ‘황충’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게 되는 곳이 게임공간이다. 이는 편견이나 농담이 아니라 일정 부분 사실에 가깝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가 갓 제대했을 즈음 이야기한 목표가 ‘30대에도 프로게이머로 살아남겠다’ 였고,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20대 중반만 지나도 신체적인 한계를 느낀다며 은퇴를 선언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이렇게 보면 게임이라는 매체는 확실히 젊은이들의 공간인 것 같다. 그러나 또 고개를 돌려 보면 꼭 피지컬만이 게임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심시티>를 하는 데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니 심지어 신체적인 반응능력이 정말 좋아야 하는 <철권> 의 영원한 황제 ‘무릎’ 배재민 선수는 2021년 기준으로 36세고, <스트리트 파이터>로 EVO 2003에서 전설적인 명경기를 만들어냈던 우메하라 다이고는 올해 나이로 마흔을 넘겼지만 여전히 현역 게이머로 활동중이다. 격투 게임과 RTS 같은 장르 안에서의 피지컬 문제를 일일이 따지기는 어렵겠지만, 디지털게임이 상당부분 신체적인 능력치를 요구하는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모든 게이머가 나이가 들었다고 게임으로부터 멀어진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그레이게이머의 두 가지 의미 전자오락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게임 문화가 한국에 처음 등장한 1970년대 말로부터 계산해보면 어느새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80년대 오락실에서 동전 하나로 몇 시간을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꼬마 아이들은 이제 중장년의 나이가 되었고, 20대에 담배연기 자욱한 오락실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갤러그>로 시간을 때우던 청년들은 어느새 노년의 초입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 오락실에 앉아있던 20세 청년인 1960년생은 올해부터 60세를 넘기며 인구통계학적으로 노년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반세기라는 시간의 흐름은 한동안 우리에게 일종의 고정관념이었던 어떤 부분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렸다. 노년 세대라면 그저 ‘하여간 요즘 것들은 게임 같은거나 하고’라고만 영원히 말할 것 같았지만, 이제는 <테트리스>와 <팩맨>, <갤러그>를 즐기던 오락실 세대가 노년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장년을 생각한다면 이 변화는 좀더 성큼 우리에게 다가온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출시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빌드오더를 가르치는 부모와, 과거의 추억으로 <리니지>에서 혈맹 뛰던 이야기를 나누는 4-50대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나보는 시대를 맞았다. 그레이게이머greygamer라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그렇게 게임과 함께 나이를 먹어 온, 좀더 경의를 붙여 표현하자면 ‘인류 최초의 디지털게임 세대’라고 일컬을 수 있는 어떤 세대를 담는다. 초창기 디지털게임의 역사를 문헌이 아니라 자신의 플레이로 겪은 노년 세대의 등장은 노년층을 이른바 ‘겜알못’으로 부를 수 있는 시기가 끝나감을 보여주는 단서다. 그리고 이는 게이머라는 구분이 더 이상 특정 연령, 특정 세대만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 구분이 아니라 전연령대에 걸친 보편적인 경험이면서도 동시에 시대별로 그 양상을 매우 뚜렷한 차이로 갖게 되는 어떤 문화 전반을 통한 구분으로 옮겨가게 만드는 흐름이다. 그레이게이머라는 말이 가진 첫 번째 의미가 이른바 레트로 세대를 가리키는 과거 경험을 향했다면, 두 번째 의미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모바일 시대가 열어낸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보편화를 시작한 게임저변의 확장으로부터 만들어진 또다른 변화를 향한다. 지하철 안을 둘러보면 이제 쉽게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을 하고 있는 노년층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다. 게임하는 노년의 배경은 반드시 유년기의 게임경험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뒤늦게 잡아보게 된, 이제는 시대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으로부터 손쉬운 게임으로의 접근성을 얻게 된 이들 또한 게이머의 이름을 달 수 있게 되었고, 그로부터 두 번째 의미로서의 그레이게이머가 출현한다. 2020년에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게임문화연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직접 심층인터뷰를 통해 만난 노년층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노년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기 시작한 디지털게임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 바 있었다. 은퇴한 노년 여성이 주시청자를 이루는 평일 저녁의 지상파 텔레비전 일일연속극 시청은 이제 게임플레이와 섞이기 시작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TV는 귀로만 들으며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퍼즐 게임을 즐기곤 했다. 어차피 드라마의 진행은 큰 줄기를 벗어나지 않으니 귀로 상황만 들으며 게임에 집중하다가, 드라마에서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대부분의 드라마는 이런 순간에 시청자로 하여금 집중을 유도하기 위해 별도의 음악을 깔거나 배우의 대사톤이 높아지는 등의 포인트를 만들곤 한다) 비로소 눈을 스마트폰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기는 식이었다. 그레이게이머의 존재는 그래서 유년기의 경험을 가진 1세대 게이머로서, 동시대의 게이머로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유의미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존재는 그러나 현재의 게임담론 하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게이머들보다 더 치열하게 게임했을 그 세대는 정말 이제는 게임과 담쌓고 지내는 것일까? 백발이 성성한 사람이니 당연히 게임을 모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제대로 된 판단인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게이머라는 집단을 너무 좁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년 게이밍에 대한 이해는 아직까지 부족하다 노년 게이머의 양적, 질적 증대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산업과 제도의 변화는 아직까지 잘 나타나지 않는 편이지만, 서구권에서는 2010년대부터 게이머 노년화에 관한 주목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게임은 젊은 사람들만의 매체라는, 그래서 노년층은 아예 거론되지 않는 고정관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연구(Facer & Whitton, 2010), 실제로 늘어나고 있는 노년 게이머에 비해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 산업과 제도의 변화는 크게 뒤쳐지고 있다는 지적(Quandt & Grueninger, 2009)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연구 또한 결국 서구권에서도 노년 게이머가 잘 조명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한국이나 서구권 모두 상황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일부 연구들은 노년 게이밍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과도 유사한데, 이를테면 노년의 게임하는 이유를 치매예방과 같은 신체노화에 대한 기능적 대안으로만 바라보거나(Schutter & Brown), 자녀세대와의 교감만을 위한 용도로 활용된다고 보거나(Pearce, Lee) 하는 기능주의적 접근들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이는 단지 비노년이 노년의 게이밍을 ‘두뇌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년층 스스로도 ‘늙지 않으려면 고스톱이라도 쳐야지’라고 마음먹는 모습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런 기능주의적인 접근만이 실제로 노년층의 게임하는 이유를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한국에서도 노년 게이밍에 대한 접근은 주로 기능주의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치매예방을 위한 게임개발과 플레이,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게임과 같은 방식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이머라는 큰 범주로부터 노년 게이머를 매우 타자화된 대상으로 분리시켜버리는 시선으로 굳어질 수 있는 우려를 내포한다.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의 반응속도를 낼 수 없어 <다크소울>이 어렵다 할지라도 그가 여전히 <저니>를 하고 있다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클리어하고 감상에 젖어 있다면, 혹은 과거 동네 오락실에서 <갤러그> 하이스코어 1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굳이 우리는 특정 기능의 향상을 위해서만 게임을 만지는 사람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인가? 경의와 동료애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노년 게이머에의 이해를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라는 매체는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수용양식을 넘어 반응이라는 행위를 요구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에 분명한 접근에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2012년에 <리그 오브 레전드>를 곧잘 하던 나는 이제는 방송경기의 리플레이를 봐도 한타싸움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신체나이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런 장벽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임이 반드시 높은 반사신경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진정한 의미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이머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음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아니 다른 의미로라면 오히려 과거 레트로 게임 시절에는 동네 오락실을 휘어잡았을지도 모를, 왕년의 용사들에 대한 경의를 가져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플레이를 통해 완성되는 디지털게임의 경험은 단지 특정한 프로그램을 보존한다고 해서 후대에 그 경험이 온전하게 복원되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여러 고전게임의 리마스터를 통해 겪은 바 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이들과 함께 그들의 게임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의 게임과 플레이어에 일련의 존경을 표하는 것이 ‘치매예방 게임’을 하는 세대로 바라보는 것보다 오히려 노년 게이머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같은 시대에 살면서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인종과 성별로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통해 누군가를 대상화하려는 어떤 흐름을 넘어서서 게이머로서의 동료애를 품을 수 있는 대상으로 그레이게이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노년층 게이머에 대한 이해와 그로부터 시작될 변화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게이머라면 함께 플레이할 노년 게이머를 이해해야 하고, 게임사라면 늘어나는 노년 게이머들에게 필요한 게임과 인터페이스를 고민해야 하며, 정부와 공공단체라면 변화하는 게임문화 향유층에 필요한 제도와 인프라를 생각해야 할 시기다. 최초의 레트로 게임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디지털게임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이 매체가 보편적인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 보편성에는 인종과 젠더, 계급과 장애유무 뿐 아니라 연령대라는 요소도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보편 대중문화로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노년 게이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 기네스북 공인 세계 최고령 비디오게임 유튜버 하마코 모리. 2019년 89세로 등재되었다.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457124-oldest-videogames-youtube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명규
이명규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Read More 버튼 읽기 4X장르의 강자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구축한 대전략의 길 개인적으로 4X/대전략 게이머가 되는 일에는 하나의 허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문명’ 시리즈로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거기서 더 나아가 다른 4X, 대전략 게임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느냐다. 애초에 일반적으로는 4X 라는 명칭도 무슨 소리인지를 잘 모른다. 버튼 읽기 모든 게임의 확률은 여전히 주사위다 비록 이제는 멀티코어를 활용하거나 별도의 알고리즘, 하드웨어를 이용해 진정한 의미의 난수를 디지털에서도 생성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그 벽은 높다. 주사위라면 단 몇백원 만에 유의미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확률놀음을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의 것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버튼 읽기 게임의 로맨스가 진짜 사랑은 아니지만 중요해, CRPG의 로맨스 하지만 예로부터 어떤 게임을 설명할 때 “야, 이 게임에서는 섹스도 가능해!!” 라고 하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저절로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었듯, ‘연애’ 는 사람들을 흥분케하는 콘텐츠였다. 버튼 읽기 마블 스파이더맨 2, 코믹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서사를 하는 방법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그건 방법론도 다양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된 독자를 설정하지 못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가상의 독자를 설정하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매번 그의 가상의 독자 역할을 맡아준건 그의 부인, 태비사 킹이었다. 비록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필수적인 고민이다. 버튼 읽기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버튼 읽기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버튼 읽기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비동기 멀티플레이는 모바일 게임의 시류에서 도드라진 방식이다. 모바일, 그리고 무선 네트워크라는 아직 태동기에 불안정성이 남아있던 플랫폼들은 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하지 않으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은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현재 이 방식은 비단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특유의 선택적 연결성 덕분에 많은 게임에서 채용되곤 한다. 버튼 읽기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버튼 읽기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 Back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10 GG Vol. 23. 2. 10. 2023년 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를 발행했다. 백서는 연 1회 발행되며,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수출입,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e스포츠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이나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게임에 대한 다른 광범위한 조사가 거의 없는 데다, 다른 콘텐츠들과의 비교 속에서 이뤄지는 조사인 만큼 그 데이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게임에 대한 백서가 나오는 것처럼, 다른 콘텐츠산업들에 대해서도 백서가 나온다. 그 백서들의 발행주체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한국표준산업분류체계와 콘텐츠산업 특수분류체계, 그리고 문화산업진흥기본법과 콘텐츠산업기본법 내 분류체계를 결합해 콘텐츠산업을 11개로 분류한다. 이를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특수분류체계라 하는데, 여기에는 게임 외에도 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 솔루션이 포함된다. 분류된 11개 콘텐츠산업 조사에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항목(예를 들어, 산업규모, 수출입규모, 관련업체 수, 종사자 수 등)을 적용한다. 이를 통해 전체 콘텐츠산업에서 개별 콘텐츠산업이 갖는 위상을 점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단순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개별 콘텐츠산업의 양상과 관련 이슈, 트렌드들에 대해서는 질적 분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게임백서는 게임산업과 이용에 관한 한 해 동안의 양적·질적 데이터가 모두 포함돼 있는 백과사전과도 같은 존재라 하겠다.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잡아 소개한다. 물론 단순히 내용을 정리해 옮기기만 할 것이라면, 조사 요약본이나 관련 기사들을 참고하는 것이 낫다. 여기서는 그 데이터와 흐름들에 약간의 해석을 덧붙이고, 말미에 백서에 대한 간단한 제언까지를 추가하려 한다. 이를 통해 한 해 동안의 게임산업과 이용을 둘러싼 양상, 이슈, 트렌드들을 살피고, 그것들이 갖는 의미, 앞으로 백서가 나아갈 방향을 점검해본다. 한국의 게임시장 규모: 20조원 돌파, 크지 않은 성장률, 플랫폼별 고른 성장 2021년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20조 9,913억 원으로, 20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전년(18조 8,855억 원) 대비 11.2%나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 한국 경제성장률(4.1%)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특수분류체계에 따른 총 11개 콘텐츠산업(게임, 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솔루션) 중 게임이 방송, 출판, 지식정보에 이어 4번째로 20조원 규모를 기록하게 되었다. 게임백서에서는 게임 플랫폼을 게임이 구동되는 하드웨어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아케이드게임, 콘솔게임, PC게임, 모바일게임의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이 플랫폼별 이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바일 게임시장의 안정화 다.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갈수록 팽창해왔고, 한국 전체 게임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지도 오래됐다. 다만 2019년 49.7%에서 2020년 57.4%로 7.7%나 증가했던 것과는 달리, 2021년은 57.9%로 적어도 전년과 비교했을 때 아주 크게 늘지는 않았다. 물론 모바일 게임시장 비중의 확장세 둔화가 2022년에도 계속될지 다시 반등에 오를지는 확실히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 플랫폼들의 비중이 전년 대비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감안했을 때 당분간 아주 큰 폭으로 비중이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비중이 크게 늘지 않았다 해서 모바일 게임시장이 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매출액 12조 1,483억 원으로 전년(10조 8,311억 원) 대비 12.2% 성장률을 기록했다. 둘째, 아케이드와 PC 게임시장이 크게 성장한 반면, 2년 연속 가장 크게 성장했던 콘솔 게임시장은 마이너스 성장 했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전년 대비 20.3% 성장해 2,733억 원 규모를, PC 게임시장은 15.0% 성장해 5조 6,373억 원 규모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9년 전년 대비 31.4%, 2020년 57.3% 성장했던 콘솔 게임시장은 1조 520억 원 규모로, 전년(1조 925억 원) 대비 –3.7%의 성장률을 보였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약진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해당 게임시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따라 회복세에 접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PC 게임시장의 성장에는 넥슨 〈서든어택〉, 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 엠게임 〈열혈강호 온라인〉 등과 같은 인기게임들의 매출 증가가 한몫했다. 반대로 콘솔 게임시장의 마이너스 성장에는 시장 파급력을 일으키는 게임이 적었던 탓이 컸다.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플레이 공간이 집 밖으로 확장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타 콘텐츠 분야에서 흥행작이 연이어 등장하는 등 가정 내 게임 플레이 증가에 긍정적이지 못한 요인들이 꽤 있었음에도 PC게임은 선방했지만 콘솔게임은 그러지 못했다. 셋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폭의 하락을 보여왔던 PC방 및 아케이드 게임장 매출액이 소폭이라곤 해도 증가 했다. PC방 매출은 2019년 2조 409억 원에서 2020년 1조 7,970억 원으로 큰 역성장(-11.9%)을 기록했고, 아케이드 게임장은 2019년 703억 원에서 2020년 365억 원으로 시장이 거의 반토막(-48.1%) 났었다. 물론 코로나19 외에 PC 게임시장의 성장 정체와 모바일게임으로의 이용 집중, 가정에서 플레이되는 콘솔게임의 인기 폭증 등도 오프라인 유통업소의 쇠락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외 활동 본격화, 정부의 아케이드 게임산업 활성화 정책, 그리고 PC 및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성장 등에 힘입어 게임 유통시장 매출은 반등했다. 종합적으로, 2021년 한국 게임시장은 지난 3년을 비추어봤을 때 크게 팽창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2018년 성장률 8.7%, 2019년 9.0%, 2020년 21.3%, 2021년 11.2%), 플랫폼별로 비교적 균형 있게 성장했다 볼 수 있다. 그동안 ① 크게 성장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콘솔게임), ② 성장이 정체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③ 크게 역성장하는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개돼던 흐름이, ① 안정적으로 성장한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② 성장세가 둔화된 플랫폼시장(콘솔게임), ③ 하락세 혹은 보합세에서 다시 성장세로 전환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및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 그림 1. 한국 게임시장의 규모 및 성장률(2012~2021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6쪽. * 표 1. 한국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20~2024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8쪽. 2022년에도 한국 게임시장은 2021년 대비 8.5% 성장해 22조 7,723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반적인 성장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많은 요소들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코로나19의 영향 감소다. 실외 활동이 다시 본격화됨에 따라 아케이드게임, PC방과 아케이드게임장 등의 이용 활성화가 예상된다. 대신 같은 이유로 PC와 콘솔게임 이용은 전보다 어느 정도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게임시장의 경우 꾸준히 성장하겠지만, 시장 안정세에 따라 성장세는 둔화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매출액 성장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인건비, 개발비, 간접비 등 제반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실제 한국 게임업계의 영업이익은 조금씩 감소할 듯하다. 세계 게임시장 내 한국의 위상: 세계 4위, 미국·중국·일본이 전체 시장의 절반 차지 2021년 기준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020년 대비 8.7% 증가한 2,197억 5,800만 달러였다. 특히 모바일과 PC게임이 각각 11.1% 증가하여 전체 게임산업의 성장을 견인했다. 아케이드게임은 10.5%, 콘솔게임은 2.2% 성장했다. 콘솔게임을 제외하면 모든 플랫폼이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한 셈이다. 2016년 이후 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온 모바일게임은 2021년에도 1,002억 3,400만 달러 규모로, 점유율 45.6%를 기록했다. 그 뒤는 콘솔게임(551억 4,000만, 25.1%), PC게임(372억 4,300만 달러, 점유율 16.9%), 아케이드게임(271억 4,200만 달러, 12.4%) 순이다. *표 2. 세계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19~2024년). (단위: 백만 달러, %) 주 1) 2018년부터 기존 온라인게임과 PC패키지게임을 PC게임으로 통합하여 통계산출 2) PC 게임시장 규모는 가입비, 아이템 구매가 포함된 수치이며, 한국의 경우 PC방 매출액은 미포함 3) 아케이드 게임시장 규모는 아케이드게임기 판매액과 게임장 운영수익을 합한 규모 4) 모바일게임의 경우 휴대폰과 태블릿 기반 게임이 포함 5) 콘솔 게임시장 규모는 Console 및 Portable console game 매출액을 합한 것이며, 유럽 시장 산정 시 동유럽/아프리카/중동시장까지 포함 6) 콘솔게임의 경우, 게임기 매출을 포함하고 있는 국내 기준과 동일하게 맞추기 위해서 각 권역별로 게임기 매출을 포함 7) PwC 등 통계 발표기관에서 과거 시장규모 데이터를 변경한 경우, 백서에서 해당 변경사항을 반영해 과거 통계치를 수정 8) 환율적용 기준: 외환은행에서 발표하는 연평균환율(매매기준율 최초) 적용 * 출처: PwC(2022); Enterbrain(2022); JOGA(2022); iResearch(2022); Play meter(2016); NPD(2022) 2021년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6%로 나타났다. 2019년 점유율이 6.2% 6.2%, 2020년이 6.9%였음을 감안하면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순위도 2020년 5위에서 4위로 한 순위 올라간 후 마찬가지로 유지했다. 2020년 0.8% 차이였던 5위 영국과의 거리도 1.4%로 조금 더 벌렸다. 앞으로 한국은 5위부터 7위까지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는 비슷한 선상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반면, Top3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게임시장 전체의 50%가 넘으며, 3위인 일본과 4위인 한국 간 규모차이도 커(10.3% vs. 7.6%), 당분간 한국이 3위권 안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동아시아 3개국이 전세계 게임시장의 1/3이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 표 3.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과 위상(2021년).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PWC(2022), Enterbrain(2022), JOGA(2022), iResearch(2022), Playmeter(2016), NPD(2022);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88쪽에서 재인용. 한국게임 수출·입 규모: 수출 5.8%, 수입 15.3% 증가, 아케이드 게임 수출·입 급증 2021년 한국게임 수출액은 86억 7,287만 달러(약 9조 9,254억 원, * 한국은행 2021년 연평균 매매기준율 적용)로 집계됐다. 전년(81억 9,356만 달러)과 비교했을 때 5.8%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증가율 80.7%를 기록한 이후 2018년 8.2%, 2019년 3.8%로 수출성장세가 둔화되다가, 2020년만 23.1%로 반짝 높은 수치를 보이고 다시 이전 증가율 수준으로 돌아온 셈이다. 플랫폼별로는 역시 모바일게임의 수출규모가 53억 3,030만 달러로 가장 컸고, PC게임이 31억 4,562만 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콘솔게임 수출규모는 1억 5,674만 달러, 아케이드게임 수출규모는 4,021만 달러로 나타났다. 전체 수출규모 성장을 견인한 것은 모바일게임으로 전년대비 4.8%의 성장률을 보였고, 아케이드게임의 경우 15.9%, PC게임의 경우 8.3%로 모바일게임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긴 했으나 수출액 자체가 많지는 않았다. 한편, PC게임 수출규모만이 전년 대비 8.2%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표 4. 한국 게임 수출·입 현황(2015~2021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9쪽의 표를 재구성. 수입은 전년대비 15.3% 증가한 3억 1,233만 달러(약 3,574억 원)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계속 감소해왔던 수입 증가율이 4년 만에 반등한 것이다. 수출액보다 수입액 증가율이 높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2015년부터 지난 6년 간 수입액 증가율이 수출액보다 높았던 건 2018년뿐이었다. 다른 모든 플랫폼의 수입액 규모에서 증가세가 나타나는 가운데(아케이드게임 264.1%, 콘솔게임 47.6%, 모바일게임 18.5%), PC게임만이 23.8% 감소했다. 물론 아케이드게임 수입액 증가율이 세 자릿수이긴 하나, 액수로 환산했을 때 그 규모가 크지는 않다. * 표 5. 한국 게임 플랫폼별 수출·입 규모 비교(2020년 vs. 2021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84쪽의 그림을 재구성. 게임 이용현황: 전체의 74.4%가 이용, 이용률 3.1% 증가, 모바일게임 이용률이 최고 만 10~65세의 일반인(n=6,000)을 대상으로 2021년 6월 이후 게임 이용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4%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n=4,462)들에게 있어 이용률이 가장 높은 플랫폼은 모바일게임(84.2%)이었다. PC게임은 54.2%, 콘솔게임은 17.9%, 아케이드게임은 9.4%였다. 또, 게임 이용경험이 있는 응답자(n=4,462) 중 99.0%가 평소에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업무/학업 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기기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 90.4%, 데스크톱 PC가 59.4%, 노트북/넷북이 54.3%, 태블릿PC가 35.9%였다. PC방 이용현황에 대한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게임 이용자들(n=4,462)의 11.4%가 평균 주 1회 이상 PC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연령별로는 20대가 이용률이 가장 높았다.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n=1,868)에게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를 질문했을 때,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1순위: 35.0%, 1+2순위: 57.3%)와 ‘PC 사양(성능)이 좋아서’(1순위: 26.7%, 1+2순위: 51.9%)를 꼽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10대와 20대에서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를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게임업계 종사자 인식: 코로나19 이후 사업체 규모별 격차 심화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업 만족도, 국내 게임산업에 대한 기대 및 전망, 게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으로 임금・보수 상승, 비대면 회의 증가, 온라인 협업툴 사용의 증가, 구직 또는 경력 유지・발전 기회의 증가 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기할 점은, 이러한 긍정적 변화가 주로 100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들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5인 미만 사업체 소속 종사자들의 경우 게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에 있어서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환경과 관련해서도 일거리와 사업기회가 크게 축소되면서 임금과 보수, 업무강도, 고용안정성, 경력 발전기회 등 전반적인 요소에 대해 마찬가지로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 사업체 대상 조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유지됐다. 회사규모가 커질수록 매출과 인력고용, 투자 및 자금조달, 신규사업 기회, 해외진출 및 유통 기회 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파악됐다. 그에 비해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사업기회가 오히려 축소된 경향이 강했다. 코로나19 이후 산업 양극화가 더욱 노골적으로 심해진 셈이다. 관련해 백서에서는 게임업계 노동환경 이슈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분석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점, 종사자들 스스로가 인식하는 개인 역량수준이 매우 낮고 교육훈련 기회가 부족하므로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 중소규모 업체들의 사업환경 개선 및 역량 강화를 통해 생태계 균형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 등을 시사점으로 꼽았다. 백서가 앞으로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 이상에서 백서의 주요 데이터들, 그리고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살펴보았다. 백서가 게임에 대한 국내 유일, 최대규모의 조사인 만큼 방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음엔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백서가 갖고 있는 아쉬운 점, 그리고 백서가 나가야 할 방향을 간단하게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태생적인 요소이긴 하나 2021년도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백서를 2023년 초에 내서 활용하게 하는 것이 갖는 한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그것도 다른 콘텐츠산업들과 함께) 추출해 다듬고 모으는 작업, 이슈 및 트렌드를 정리하고 그것들을 풀어 쓸 필자를 찾아 원고를 받고 책으로 묶는 작업이 갖는 노력을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여건들을 차치하고 오직 활용도 제고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차년도 중반 정도에는 발행해 독자들로 하여금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물론 매출, 수출, 종사자 등의 양적규모에 대해서는 백서가 아닌 〈반기별 콘텐츠 산업 동향분석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끔 되어 있지만 말이다. 둘째, 게임 ‘문화’에 대해 다시 다루는 것이다. 2017년까지의 백서에서는 게임 문화를 다뤘다. 국내외 e스포츠 동향을 정리하고, 게임이 우리 사회·문화에서 갖는 의미를 돌아보며, 인디게임과 같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왔던 분야를 발굴했다. 문화만이 아니다. 게임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 개발 동향을 살피고, 게임정책과 지원사업에 대해서도 논의를 펼쳤다. 하지만 상·하 두 권으로 발행되던 백서가 2018년부터 한 권으로 통합되면서 문화, 사업, 기술, 정책 등에 대한 논의가 다른 챕터로 녹아들거나 삭제됐다. 문화에 대한 논의는 생략되거나 축소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확대해야 한다. 2022년 9월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게임도 문화예술진흥법 상 문화예술의 범위에 편입됐다. 물론 법적으로 문화예술이어야만 게임이 진정한 문화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애초부터 영상, 미술, 음악, 서사 등이 융합된 종합적인 문화예술이었다. 당연히 그랬던 것이 이제 법적으로까지 인정받은 것일 뿐이다. 법안 통과로 게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개선될 여지가 크고,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공적지원 역시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게임산업은 긍정적이지 못한 인식으로 인해 지원이나 육성보다는 규제의 대상으로 비춰져 온 측면이 크다. 당연히 기존 문화예술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의 산업적 측면만이 아닌, 문화적 측면에 대한 공적 차원의 관심이 더욱 요청된다. 백서에 문화 챕터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닐 터다. 그럼에도 백서를 통해 한 해 간의 게임문화를 정리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서가, 그리고 게임이 다가간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덧붙여, 기존에 포함됐던 e스포츠 동향, 게임의 사회·문화적 의미, 인디게임 등의 발굴뿐 아니라, 게임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들이나 출판물들, 관련 저널 및 잡지 현황, 비평 장의 흐름 등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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