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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 Back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11 GG Vol. 23. 4. 10.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게임패드는 지금 보기에는 게임을 하기에 매우 당연한 도구이고, 게임을 나타내기 위한 아이콘으로도 흔하게 사용된다. 많은 게임들이 게임패드를 지원하며, XBOX용 패드가 윈도우와 매우 잘 호환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 게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같은 안내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처음부터 게임패드로 게임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굳이 〈둘을 위한 테니스tennis for two〉 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신호탄을 쏜 〈퐁Pong〉은 다이얼 형태의 동그란 컨트롤러가 달려있었다. 어떤 아케이드 게임들은 조이스틱이 달려있기도 했다.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한 스틱에서 온 컨트롤러 형태는 기계식 게임기를 거쳐 전자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그대로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 자리 잡았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 스틱으로 굳이 비행기만 조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2차원 평면에서 움직여야 하는 모든 것들을 스틱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번째 가정용 게임기로 여겨지는 마그나복스의 컨트롤러는 흰색 직육면체에 3개의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으며 아타리가 가정용으로 제작한 TV퐁은 게임기에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다. 이러한 다이얼이 달린 컨트롤러는 아타리가 만든 가정용 게임기인 아타리 2600에서 패들paddle 이라 불리는 전용컨트롤러 형태가 일반적으로 되면서 회전을 위한 컨트롤러를 칭하는 놉(knob), 휠(wheel), 다이얼(dial)대신 패들(paddle)이란 단어가 일반적인 호칭으로 자리잡았다. 기존 입력장치의 이름이 아닌 탁구채를 뜻하는 패들이 대표적인 이름으로 이유는 해당 컨트롤러가 탁구를 모사한 퐁을 위한 컨트롤러 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타리 2600의 컨트롤러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이었던 것은 조이스틱이었다. 게임기에 기본으로 포함되어있는 이 조이스틱은 경쟁 게임 사들의 조이스틱 보다도 가장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직관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기는 아타리의 조이스틱을 가장 초기의 게임에 대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 아타리 2600용 컨트롤러 미국 기업들이 과도한 경쟁 때문에 스스로 가정용 게임시장에 대한 매력을 못느껴 시장을 포기하는 동안 일본의 닌텐도는 패미콤을 준비해서 전 세계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차지했다. 자사의 게임&워치의 동키콩에서 사용한 방향키(D-pad)를 이용한 게임패드는 닌텐도 패미콤의 게임패드에도 들어갔다. 이 입력방식의 변화는 가정용 게임기의 입력방식의 가장 큰 패러다임 변화중 하나일 것이다. 방향키와 B,A 버튼이 달린 (그리고 스타트와 셀렉트버튼이 있는) NES의 게임 패드는 매끈한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쇼크가 나오기 전까지 아타리의 조이스틱에 이어 게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 북미 NES용 컨트롤러 닌텐도는 패미콤의 출시와 함께 자사의 서드파티를 강력하게 관리했다. 미국 게임기 제작사들의 부진을 소프트웨어 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보았던 닌텐도는 패미콤으로 출시되는 게임들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미컴 용으로 제작하는 게임들은 대부분 게임패드에 최적화할 수 밖에 없었다. 오리사냥 같이 아주 특수한 닌텐도 전용 광선총(재퍼 - 일본에서는 그냥 총(Gun)으로 발매되었다. 모양 역시 그냥 리볼버 권총에 가까웠다.)을 지원하는 총 컨트롤러나 R.O.B나 파워글로브 같이 대중적으로 자리잡는데는 실패한 컨트롤러만이 게임패드와 차별화된 플레이를 제공했다. 패미콤 이후 가정용 게임의 컨트롤은 게임패드르 완전히 굳어졌다. 아케이드에서는 여전히 아케이드만의 독특한 조종 방식을 가진 게임들이 나왔지만, 이러한 아케이드용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는 경우에도 대부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조종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며 추가로 부가장치가 나올 때가 있었지만 그 가격은 대부분 게임 보다 비쌌고 가끔씩은 게임기보다도 비쌌다. 방향키와 두개의 버튼만 존재하던 게임패드는 게임기의 세대가 거듭되며 발전하면서 지금은 방향키와 조이스틱 두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4개의 입력버튼과 범퍼로 불리는 상단 좌우에 두개씩 위치한 버튼들 스타트 버튼과 옵션 버튼. 그리고 조이스틱을 버튼으로 활용하는 L3, R3 까지 10개의 버튼과 3개의 축입력장치가 거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대부분 자이로를 통한 6축센서와 함께 게임기에 따라 터치등의 추가 인터페이스가 들어가있기도 하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게임을 시작하기에는 과거의 게임기 비해선 복잡해졌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익숙해지면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게임 패드는 게임을 오래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며, 게임 안의 캐릭터를 설명서를 보지 않더라도 대충 이전에 했던 감각으로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함은 게임패드에 어울리지 않는 게임들이 거실에 자리잡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가 게임패드보다 편한 실시간 전략 장르나 AOS 같은 장르의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보다는 컴퓨터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기와 컴퓨터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게임패드와 키보드 마우스이외의 컨트롤러는 한정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주로 시뮬레이션 장르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션과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장르를 위한 주변기기인 드라이빙 휠과 플라이트스틱은 꾸준히 발매되고 있으며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각 장르의 마니아에게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필수로 갖추어야 하는 장비로 인지되고 있다. 드라이빙휠의 경우는 특히 기능에 따라 장비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으며 실제 운전할 때 처럼 운전 상황에 따라 운전대에게 힘을 전달하는 포스피드백 기능이 있는 드라이빙 휠은 특히 더 비싼 가격이며 이를 위한 거치대나 시트. 좀 더 사실적인 게임을 위한 사람들에게는 시트를 움직여주는 모션시뮬레이터등의 장비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부가장비의 경우 게임값을 넘어서 가끔은 컴퓨터 혹은 게임기 값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는 힘들며, 이러한 게임들 대부분 게임 패드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닌텐도 Wii 가 본격적으로 자이로와 가속센서를 사용하는 컨트롤러를 사용하면서 컨트롤러에 제한된 게임 플레이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스포츠게임이 있겠지만 그러한 변화를 하나를 언급하자면 기존에 존재하던 낚시 게임이 이러한 컨트롤러 특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포츠로서의 낚시는 아무래도 “손맛”이라 부르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케이드를 제외한다면 지금으로선 실제 물고기의 움직임을 포스피드백으로 전달하는 낚시대 컨트롤러가 대중화된 적은 없다. 적어도 진동 덕분에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부분은 비단 6축을 사용하지 않는 게임이라 하더라도 진동기능이 있는 컨트롤러를 사용한다면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동물의 숲에서의 낚시는 컨트롤러 진동의 특성을 잘 살려서 정품 컨트롤러가 아니면 그 느낌을 충분히 느낄수 없다. 컨트롤러를 흔들고 돌리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낚시 게임에 릴을 감는 행위를 컨트롤러를 돌리는 것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이 기능은 옵션이다. 손목의 건강과 함께 선택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오락실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극장 근처의 오락실이나 혹은 키즈카페 앞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 *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딥 시 파티 딥 시 파티라는 이 게임은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사실은 2012년에 일본에 출시된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과 흡사한 게임이다. 6인 까지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은 비슷하긴 하지만 컨트롤러가 매립되어있어서 미끼를 던지는 것도 버튼으로 해야하며, 스크린이 1개라는 차이점이 있다.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Ace Angler〉은 현실 낚시 보다는 일본의 전통축제에서 볼 수 있는 금붕어낚시 등의 영향이 더 큰 편이라 낚시 시뮬레이션이란 장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 로드, 플로트, 릴등을 선택해서 현실 낚시와 가깝게 즐기는 게임과는 결이 다르다. 낚시 스피릿의 플레이 실제 낚시와는 거의 다른 물고리를 낚아 메달을 모으는 게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게임에선 다른 종류의 낚시 게임과는 같은 지점이 있다. 릴을 컨트롤하며 물고기가 낚였을 때 릴을 감아야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던지는 방향과 힘을 버튼으로 정하고 필살기가 있으며 보스 스테이지가 존재하는 현실 낚시와는 매우 동떨어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낚시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이라면 바로 이 컨트롤러 일 것이다. 2012년에 출시가되어 이제는 10년이 넘어가는 시리즈인 이 게임은 컨트롤러의 특성상 아케이드에서밖에 즐길수 없었지만 2019년에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게임이 출시되면서 상황이 좀 바뀌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동전을 잡아먹는 아케이드 게임은 집에서 했으면 그 손맛을 위해 좋겠지만 6인용 게임기를 집에 들여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닌텐도 스위치의 조이콘은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지원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락실에서 낚시대를 휘두르고 릴을 감는 그 느낌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개발사는 게임의 고유한 조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스위치 조이콘의 자이로센서와 각속도를 이용하여 조이콘을 휘두르는 형태로 낚시대를 던지고, 들고 돌리는 행위로 릴을 감는 동작을 재현했다. 전통적인 닌텐도 스위치와 컨트롤러를 붙여서 쓰는 방식으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문제는 없다. 이경우는 다른 많은 낚시게임이 그렇듯이 버튼으로 릴을 감는다. * 인게임 도움말 닌텐도 스위치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기로도 낚시 게임은 많이 나오는 편이며 고전이며 명작으로 불리는 세가 배스 피싱 같은걸 언급하지 않더라도 굳이 낚시 스피릿을 가져온 이유는 이 게임이 전용컨트롤러가 아닌 기존 컨트롤러에 붙여 쓰는 “사오콘”을 별매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종류의 컨트롤러를 확장하는 개념은 Wii 리모콘부터 PS Move, 가깝게도 VR 컨트롤러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편이지만 낚시 스피릿의 경우 2019년에 〈Ace Angler 낚시스피릿 Nintendo Switch버전〉을 이번엔 2022년에 나온 〈Ace Angler 낚시스피릿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이 두차례에 걸쳐 나왔는데 추가장치로 나온 사오콘의 형태가 다르다. 물론 새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에서도 이전 버전의 추가장치를 지원하고는 있고 이러한 별매 사오콘이 없더라도 조이콘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컨트롤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며, 게임에 연결한 상태에서 버튼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 호리사에서 나온 첫번째 사오콘 첫번째로 나온 사오콘의 특징이라면 결과적으로 조이콘 두개를 쥐고 흔드는 형태의 플레이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가이드에 가깝다. 일본의 게임용 주변기기 전문 업체인 HORI사에서 제작한 이 컨트롤러는 결과적으로는 이 컨트롤러 없이도 같은 형식의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릴역할을 해주는 부분있어서 좀 더 줄을 감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에이스 앵글러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두번째 사오콘 두번째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사오콘은 조이콘 두개를 쓰는 형태가 아닌 하나만 쓰는 형태로 돌릴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나는 릴이 달려있는 형태인데, 왼쪽 조이콘과 오른쪽 조이콘의 버튼 배치가 다른 것에 대응하기 위해 릴을 분리할 수 있는 형태의 아이디어가 특히 돋보였다. 두 컨트롤러의 중대한 차이점이라면 첫번째 사오콘이 조이콘 두개가 달려있으면서 또한 릴에 조이콘 하나가 붙어있어야만 하는 구조라서 실제로는 무거워서 플레이가 힘든 구조 였다면 두번째 사오콘은 처음부터 회전을 조이콘틀 통해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한바퀴 회전할 때마다 A버튼을 두번 누를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는 사실상의 연타기계라는 점이다. * 사오콘 연타 기믹 – 릴을 돌릴 때마다 흰 부분이 A버튼을 눌러준다 기계적으로 릴의 회전을 강제로 조이콘의 A버튼과 연결한 이 기믹 덕분에 정작 선택하는 A버튼을 누르기 힘들다는 단점이 생기긴 했으나 이전 버전보다 훨씬 가볍고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조이콘의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전 조이콘들의 조작 역시 지원을 하지만 낚시 스피릿의 후속작에서 조이콘을 직접 회전하는 방식이 아닌 버튼을 통한 입력으로 돌린 이유는 아무래도 무게가 동반된 회전 조작이 조종에 부담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게임은 컨트롤이 없더라도 1개의 컨트롤러로 즐길 때의 조작 방법으로 낚은 후에는 어찌되었던 열심히 릴을 감는 동작을 모사해야 물고기를 낚을수 있다는 점에서 낚시 게임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조작으로는 릴을 감는 행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낚시용 부가 컨트롤러로는 이미 Wii 리모트를 활용한 경우가 있었고 낚시 전용 컨트롤러로 가면 가정용 게임기는 물론 국내 PC용 게임으로도 나온 컨트롤러도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다고 할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컨트롤러가 이러한 릴을 감는 장치를 어떻게든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낚시 컨트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VR 게임에서도 이러한 낚시 시뮬레이션이 점차 출시되고 있으며, 낚시가 주는 가장 큰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다. VR 특유의 양손 컨트롤러는 현재로는 모두 게임패드를 절반으로 나눠 한쪽씩 쥐는 형태로 수렴하고 있으며 한손에 쥐기 편하도록 총의 손잡이 형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양손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많은 VR 게임들은 이 컨트롤러에 손을 매칭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가상 공간에 있는 물체와 상호작용 하도록 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피드백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은 허우적대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따로 이러한 컨트롤러를 끼워서 사용 할 수 있는 확장 컨트롤러가 나오기도 한다. 현재로선 가장 인터페이스의 확장에 진심인 것은 따로 물리적 비용이 필요없는 VR 장르의 게임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회전시키는 입력장치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탄생과 함께 했지만 결국 기존 게임 컨트롤러에 포함되는데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레이싱휠이나 낚시 컨트롤러를 통해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은 아케이드에서 컨트롤러의 물성이 강하게 필요한 게임들만이 가정용 게임기에 피드백 되고 있지만 한차례 조이스틱이 사라졌다가 결국 게임패드에 포함되었던 것 처럼 새로운 물성이 게임 컨트롤러에 들어갈 수록 플레이의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VR 공간이 될지 물리적 공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플레이의 확장은 게이머에게도 게임디자이너에게도 좀 더 많은 가능성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 Back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17 GG Vol. 24. 4. 10. 2024년 3월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가 발간됐다. 백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발행하는 정기간행물로,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규모, 업종별 현황, e스포츠 동향, 산업 전망, 교육기간 현황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현황 및 특성,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와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 또는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공공과 민간 영역을 막론하고 게임산업이나 이용에 대한 다른 광범위한 조사가 없는 데다, 다른 콘텐츠산업(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 솔루션) 현황과의 비교 속에서 이뤄지는 조사인 만큼 그 데이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하겠다. 주로 수치 중심의 데이터를 다루지만,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산업·이용 양상과 관련 이슈, 트렌드들에 대해서는 질적으로도 분석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즉, 게임백서는 게임산업과 이용에 관한 한 해 동안의 양적·질적 데이터가 망라돼 있는 결과물인 셈이다.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중요한 데이터와 흐름들에는 약간의 해석을 덧붙이고자 한다. 2022년 한 해 동안(2024년 초에 발간된 2023 백서이지만, 기준 데이터는 2022년의 것이다)의 게임산업과 이용을 둘러싼 양상, 이슈, 트렌드를 살피고,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한국 게임시장 규모: 22조원 돌파, 성장률 둔화, 플랫폼별 균형 있는 성장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22조 2,149억 원 규모로, 2021년(20조 9,913억 원) 대비 5.8% 성장했다. 2020년 21.3%, 2021년 11.2% 성장했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조금씩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랫폼별 시장에서 두드러지는 지점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바일 게임시장의 굳건한 강세다. 그간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빠르게, 큰 폭으로 팽창해왔다. 다만 전체 시장에서 모바일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9.7%, 2020년 57.4%, 2021년 57.9%, 2022년 58.8%로, 최근 들어 아주 크게 늘고 있지는 않다. 모바일 게임시장 비중의 확장세 둔화가 앞으로도 계속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플랫폼들의 비중 역시 아주 크게 달라지고 있지는 않아, 당분간 아주 큰 폭으로 비중이 늘지는 않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비중이 크게 늘지는 않았음에도 매출액 13조 720억 원으로 전년(12조 1,483억 원) 대비 8.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게임 제작 및 배급업 중 아케이드게임(8.9%)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둘째, 아케이드와 PC 게임시장의 성장세가 아주 크지는 않은 가운데, 콘솔 게임시장이 1년 만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됐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전년 대비 8.9% 성장해 2,976억 원 규모를, PC 게임시장은 3.0% 성장해 5조 8,053억 원 규모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9년 전년 대비 31.4%, 2020년 57.3% 성장하다가 2021년 –3.7%의 성장률을 보였던 콘솔 게임시장은 1조 1,196억 원 규모로, 전년(1조 520억 원) 대비 성장률 6.4%를 기록했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해당 게임시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오프라인 활동 수요 폭증으로 대폭 증가했다가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4.3% 감소했던 PC 게임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선호경향의 혜택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플러스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전체 게임시장 내 점유율은 26%대로 성장에 있어 한계가 드러났다. 콘솔 게임시장의 경유 성장률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됐다 해도, PC 게임시장과 유사하게 점유율이 2021년과 비슷한 5% 초반이다. 2022년 콘솔 게임기기나 타이틀 관련해 시장의 변화를 주도할 흐름이 발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폭의 하락을 보여 왔던 PC방 및 아케이드 게임장 매출액이 2021년에 이어 소폭 증가했다. PC방 매출은 2019년 2조 409억 원에서 2020년 1조 7,970억 원으로 큰 역성장(-11.9%)을 기록했고, 아케이드 게임장은 2019년 703억 원에서 2020년 365억 원으로 시장이 거의 반토막(-48.1%) 났었다. 이는 물론 코로나19만이 아니라 PC 게임시장의 성장 정체와 모바일게임으로의 이용 집중, 가정에서 플레이되는 콘솔게임의 인기 폭증 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 유통시장 매출은 정부의 아케이드 게임산업 활성화 정책, PC 및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성장, 그리고 야외 활동 본격화 등과 맞물려 반등했다. 종합적으로,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지난 4년, 그러니까 코로나19 전후를 비교해봤을 때 아주 크게 확대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2019년 9.0%, 2020년 21.3%, 2021년 11.2%, 2022년 5.8%), 플랫폼별로 비교적 균형 있게 성장해온 듯 보인다. 그동안 ① 크게 성장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콘솔게임), ② 성장이 정체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③ 크게 역성장하는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개되던 흐름이, ① 여전히 성장 중이나 조금씩 안정화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② 성장세 둔화와 뚜렷한 플랫폼시장(PC게임), ③ 하락세 혹은 보합세에서 다시 성장세로 전환된 플랫폼시장(콘솔게임, 아케이드게임) 및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 그림 1. 한국 게임시장의 규모 및 성장률(2013~2023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28쪽. * 표 1. 한국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 및 성장률(2019~2022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0쪽. 세계 게임시장 내 한국의 위상: 세계 4위로 3위인 일본을 바짝 추격 2022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021년 대비 0.9% 증가한 2,082억 4,900만 달러로 집계됐다. 2021년 성장률이 5.9%였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엔데믹 이후 세계 게임시장은 가시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 전염병, 전쟁 등 외부 악재와도 맞물려 불확실성도 심화되는 상황이다. 전체 게임시장의 성장을 견인해왔던 모바일게임이 마이너스 성장(-0.5%)했고, PC게임의 성장률도 0.1%에 그쳤다. 콘솔게임이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인 2.6%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아케이드게임도 2021년(9.5%)에 비하면 크게 성장했다 보기는 어렵다(4.1%). 2016년 이후 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온 모바일게임은 2022년에도 916억 8,100만 달러 규모로, 점유율 44.0%를 기록했다. 그 뒤는 콘솔게임(591억 4,100만 달러, 28.4%), PC게임(363억 5,200만 달러, 점유율 17.5%), 아케이드게임(210억 7,600만 달러, 10.1%) 순이다. 표 2. 세계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20~2025년).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 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42~743쪽. 2022년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8%다. 2019년 점유율이 6.2%, 2020년이 6.9%, 2021년 7.6%였음을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순위도 2020년 5위에서 2021년 4위로 한 순위 올라간 후, 2022년에도 마찬가지로 4위를 유지했다. 2020년 0.8%, 2021년 1.4% 차이였던 5위 영국과의 거리도 2.2%로 더 크게 벌렸다. 3위인 일본과의 차이는 1.8%로 영국과의 차이보다 적다. 2021년 2.7% 차이에서 0.9%나 좁힌 것을 감안하면, 향후 몇 년 간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위인 미국(22.8%)과 2위 중국(22.4%)의 차이도 0.4%밖에 나지 않아, 둘의 순위가 바뀔지도 관건이다. * 표 3.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과 위상(2022년).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67쪽에서 재인용. 한국게임 수출·입 규모: 수출 3.6% 증가, 수입 16.7% 감소, 아케이드게임만 수출 감소 2022년 한국게임 수출액은 89억 8,175만 달러(약 11조 6,040억 원, * 한국은행 2022년 연평균 매매기준율 적용)로 집계됐다. 전년(86억 7,287만 달러)과 비교했을 때 3.6%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증가율 80.7%를 기록한 이후 2018년 8.2%, 2019년 3.8%로 수출성장세가 주춤하다가, 2020년만 23.1%로 반짝 높은 수치를 보이고 2021년 5.8%, 2022년 3.6%로 다시 이전 증가율 수준이 된 셈이다. 플랫폼별로는 역시 모바일게임의 수출규모가 55억 6,300만 달러(2021년 53억 3,030만 달러)로 가장 컸고, PC게임이 31억 9,467만 달러(2021년 31억 4,562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콘솔게임 수출규모는 1억 8,651만 달러(2021년 1억 5,674만 달러), 아케이드게임 수출규모는 3,757만 달러(2021년 4,021만 달러)로 나타났다. 전년대비 수출규모를 비교하면, 대부분 플랫폼에서 증가세를 보인 가운데 아케이드게임만이 전년대비 6.6%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표 4. 한국 게임 수출·입 현황(2016~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1쪽의 표를 재구성. 수입은 전년대비 16.7% 감소한 2억 6,016만 달러(약 3,361억 원)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계속 감소해왔던 수입 증가율이 4년 만인 2021년 잠깐 반등했다가 다시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2016년부터 7년 간 수입액 증가율이 수출액보다 높았던 건 2018년과 2021년뿐이었고, 나머지 해에는 수출액 증가율이 수입액 증가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른 모든 플랫폼의 수입액 규모에서 감소세가 나타나는 가운데(아케이드게임 –66.3%, 콘솔게임 –48.3%, 모바일게임 –13.4%), PC게임만이 5.4% 증가했다. 2021년 완전히 반대로 모든 플랫폼 수입액이 전년대비 크게 증가하고 PC게임만이 감소했던 것을 감안하면 특기할 변화라 하겠다. * 표 5. 한국 게임 플랫폼별 수출·입 규모 비교(2021년 vs. 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2쪽의 그림을 재구성. 게임 이용현황: 전체의 62.9%가 이용, 이용률 11.5% 감소, 모바일게임 이용률이 최고 만 10~65세의 일반인(n=10,000)을 대상으로 2022년 6월 이후 게임 이용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9%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게임 이용률은 2020년 이후 증가세를 보이다가(2019년 65.7% → 2020년 70.5% → 2021년 71.3% → 2022년 74.4%), 다시 2019년 수준으로 하락한 셈이다.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n=6,292)들에게 있어 이용률이 가장 높은 플랫폼은 모바일게임(84.6%)이었다. PC게임(61.0%), 콘솔게임(24.1%), 아케이드게임(11.8%)이 뒤를 이었다. 또, 게임 이용경험이 있는 응답자(n=6,292)의 99.4%가 평소에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전년 대비 0.4%p 증가). 업무/학업 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기기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 93.2%로 가장 높았고, 데스크톱PC가 60.1%, 노트북이 56.4%, 태블릿PC가 42.8%였다. PC방 이용현황에 대한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게임 이용자들(n=6,292)의 56.8%가 2022년 6월 이후 1년 간 PC방을 이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18.3%가 월 1회 이상 PC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연령별로는 20대가 이용률이 가장 높았다. 게임 이용자의 1회 평균 PC방 이용시간은 169.2분, 미이용자는 126.5분이었다(42.7분 차이).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n=3,229)에게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를 질문했을 때, 1+2순위 응답을 기준으로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56.7%)와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55.7%)를 꼽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연령대가 낮을수록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를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게임업계 노동환경: 코로나19 이후 사업체 규모별 격차 심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게임업계 생산환경은 신기술 기반으로 급격하게 변화를 맞았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P2E(play to earn), 인공지능과 관련된 신기술 개발·도입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관련기술 보유 인재에 대한 주요 게임사들의 확보 경쟁도 심화됐다. 이에 따라 주요 게임사들의 인력과 인건비 지출이 함께 증가했는데, 특히 개발직군의 임금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22년 2분기 이후 10대 상장 게임사의 정규직 인력은 오히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코로나19 특수의 종료, 인건비 급등에 따른 비용 부담, 신작 미출시 혹은 실적 미흡 등의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적 환경도 긍정적이지 않다. 엔데믹이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악화, 전쟁, 중국의 게임규제 강화 흐름들도 한국 게임업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단기간 내 인력상황이 급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시장의 노동환경이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상대적으로 큰 회사들까지 그렇다면, 작은 회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유연화를 둘러싼 논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 출범 후인 2022년 6월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 및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 등을 포함하는 유연근로제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업계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안착화되어 가는 분위기에서, 이러한 계획은 사측과 노조를 중심으로 한 종사자측 입장을 다시 한 번 갈라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찬성하는 사측의 논거는 주 52시간제 자체가 게임업계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 중국 등 글로벌 게임사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우려가 커진다는 것, 현장에서 유연근로제의 활용률이 떨어진다는 것 등이었다. 반면 노조측은 노동시간이 유연화될 경우 그간 게임업계 노동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었던 크런치 모드가 다시 활성화될 우려가 크며, 과로사 등 여러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결국 노동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이 시행 중인 휴양지 워케이션, 주 4일 근무제 도입 등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큰 기업에서 노조에 가입해 있는 종사자들은 교섭권을 바탕으로 처우와 복지 등에 있어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반면, 노조가 부재하고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소게임사 종사자들의 경우 노동환경 악화의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처럼 2022년 국내 게임업계 노동환경은 안팎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속에서, 일부 긍정적인 변화, 그리고 고용, 노동시간, 처우 등에 있어 대체로 불안정한 요소들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바로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국내 게임시장이 쇠퇴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당분간 노동환경은 더욱 안 좋아질 확률이 높다. 한국 게임시장 전망: 안정기에서 쇠퇴기로, 그리고 불확실성의 증대 한국의 게임들이 질적·양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전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 게임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지만, 시장규모가 갈수록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2022년 대비 10.9% 감소한 19조 7,900억 원을 형성할 전망이다. 2013년 전후로 마이너스 성장한 적 없던 한국 게임시장이, 그리고 이제 20조 규모에 안정적으로 접어든 듯 보였던 한국 게임시장이 이처럼 위축될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엔데믹으로 향유 가능한 여러 엔터테인먼트와 야외 활동이 많아진 때문이자,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부진이 현실화되고 있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게임시장의 주축인 모바일 게임시장은 꾸준히 전체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유지는 하겠지만, 그 성장률은 한국 경제 전반의 움직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PC 게임시장은 멀티 플랫폼화와 충성도 높은 플레이어들의 존재에 힘입어 현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콘솔 게임시장 역시 멀티 플랫폼화, 니치마켓을 추구하는 게임 개발사들의 진입 등 성장에 긍정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차세대 콘솔기기가 언제 출시돼 얼마나 인기를 끌지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될 듯하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크지 않은 아케이드 게임과 게임장은 특별한 전기 없이 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는 세대들의 엔터테인먼트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가정 보유 PC의 고사양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PC방을 찾을 유인이 낮은 상황에서 PC방의 인기는 갈수록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개발비, 간접비 등 제반비용의 상승은 게임업계의 영업이익에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경기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전반적인 가처분소득도 감소 중이다. 글로벌 게임시장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게임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예측이 어려운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시장규모의 축소가 예상된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지, 또 얼마나 계속될지, 그것에 정부, 업계, 그리고 플레이어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중국 학부모』의 과잉 경험과 리얼리즘의 신화

    < Back 『중국 학부모』의 과잉 경험과 리얼리즘의 신화 11 GG Vol. 23. 4. 10. [편집자주] 비디오 게임은 그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다. 그것에 대해 관찰해 보면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각을 지닐 수 있다. 문화에 대한 시각과 기술에 대한 시각이 있을 수 있고, 게임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시각과 게임개발자에 대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미디어에 대한 시각과 산업에 대한 시각도 있으며, 최소한 사회변화와 게임의 역사에 대한 시각도 있는데, 이것들은 마치 없어서는 안 될 두 개의 성악 파트처럼, 그 소일거리라는 강바닥에서 지식의 악장을 연주한다. 펑파이신문( www.thepaper.cn )의 ‘아이디어 시장’ 섹션은 인문과 사상조류의 관점에서 오늘날 게임적 현실의 주요한 방향을 최대한 종합적으로 조사 및 파악해 게임 비평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에 매주 토요일 ‘게임론’ 연재를 시작한다.) ‘비평의 방향’, ‘역사의 시선’, ‘문화의 논리’, ‘매체와 현실성의 확장’ 등 다양한 글들이 담긴 연재로서, 한·중·일 관련 분야에서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연구자, 게임연구에 뜻을 둔 젊은 연구자, 게임업계의 선배들과 종사자 등 업계와 학계 각 방면 게임동호인들의 원고를 모을 것이다. 이를 통해 게임비평의 개념과 관점을 제시하고, 게임비평의 가치·가능성·방향·경로 등을 두고 토론할 것이다. 또, 역사를 지향 삼아 문화와 기술, 동아시아와 글로벌, 현대와 포스트모던 등 맥락에서 게임 역사의 원류와 방향을 드러내고, 게임텍스트와 사회문화 사조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고 탐구하는 것은 게임이 장난감에서 문화미디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특징을 나타낸다. 비판적 시각으로 오늘날 게임 세계의 내부적 원리를 고찰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 게임산업의 독특하고 지배적인 문화생산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게임(산업) 문화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탐색하며, 게임의 전통적 매체에 대한 재생산과 게임을 통한 현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밖에도 이 연재는 게임과 젠더에 대한 토픽과 게임 ‘진화’의 원동력으로서 젠더를 포함하며, 게임 속의 젠더 의제에 대해 토론할 것이다. 그리고 게임 플레이어들에 대한 여러 기사들, 서버운영자(网管)와 스트리머(主播), 대리게이머(金币农夫; 중국 게임계의 한 현상. 아이템 수집 등으로 일정한 보수를 받으며 게임을 하는 사람들), 따이롄(代练; 온라인 게임에서 누군가의 레벨업을 돕고, 돈을 받는 행위들), e스포츠 선수 등 게임이라는 영역 내 변두리에 있는 이색적인 집단을 소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매개로 일본과 한국에서 게임비평의 기준점을 제공했거나 제공하고 있는 해외 작품들을 골라 게임 배후의 광범한 구도에 대해 논할 것이다. [역자의 말] 각주는 모두 국내 출간물 표기 또는 역주로, 원문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기하였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리얼리즘 게임’이라 불리는 『중국 학부모(中国式家长)』 는 서민적인(接地气) 1) 콘텐츠 덕분에 “매우 현실적”이고 “삶에 근접해 있다”는 등 일관된 평가를 받았다. 이 게임은 현장 조사에서 얻은 실제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경험을 과잉 경험으로, ‘현실감’을 ‘현장감’으로, 실제 상황을 ‘공감(感同身受)’으로 대체하며, 궁극적으로 사회구조 문제를 가족윤리 문제로 축소한다. 또, “부모를 용서하라”는 감정주의적 결말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게임의 기초적인 설정 - 세대속성의 대물림(다음 세대 아이가 윗세대의 우세속성을 물려받는다) - 이 모든 ‘리얼리즘’ 게임에서도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게임의 ‘리얼리즘’은 바로 계급 상승의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과잉 경험과 그 이면에 깔린 리얼리즘의 신화는 『중국 학부모』로 하여금 진짜 문제를 은폐하는 동시에 폭로자가 되도록 한다. 『중국 학부모』는 모위완 게임즈(墨鱼玩游戏, Moyuwan Games)가 제작한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2018년 9월 29일 코코넛아일랜드 게임즈에서 대행해 출시했다. 이 게임이 출시되며 인터넷에선 많은 화제가 일었는데, 가장 인기있는 댓글평에는 “매우 리얼하다”, “실제 삶과 닮았다”, “너무 공감된다” 등이 있다. 『중국 학부모』의 게임 소개 페이지에는 “현실적인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쓰여 있다. 이러한 자기 포지셔닝은 대부분의 게이머가 이 게임에 대해 평가하는 바와 일치한다. 이 게임은 아이가 태어나 대학 입시(高考)를 치르기까지를 따라가는데, 게임의 최종적인 목표 미션은 바로 아이가 만족할만한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에 있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부모와 자녀의 이중 역할을 맡는다. 부모로서의 플레이어는 자녀의 하루 일정을 짜야 하는데, 아이가 공부할 내용과 개발할 기술 등을 결정해야 하며, 자녀로서의 플레이어는 자녀의 시각에서 대인 관계와 문제 해결 등을 진행하고, 학급 임원 선거에 출마하거나 이성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락용품을 사는 등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게임 플레이 방법으로서는 평범한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보이지만, 게임에 ‘리얼리즘’의 분위기를 채워주는 독특한 ‘중국식’ 가정의 요소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학부모는 자녀를 활용해 이웃이나 친구의 자녀와 ‘체면 대결’을 치러야 하고, 아이는 부모의 체면을 세워줌으로서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춘절 연휴에 친척들과 ‘홍바오 2) 쟁탈전(红包拉锯战)’을 치를 때 홍바오를 너무 빨리 먹으면 친척이 기분 나빠하고, 또 너무 양보하면 어머니가 기분 나빠한다. 홍바오를 가져갈 때 반드시 신중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또, 부모에게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하면 부모는 “어린 애가 무슨 스트레스니?”라고 질책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 수치는 더 높아진다. 이처럼 모든 디테일들이 『중국 학부모』와 자녀들 간 세대 갈등을 강조하는데, 이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하다”고 “공감”하는 것이다. 『중국 학부모』에 대한 평가들은 비판과 성찰을 담고 있으며, 그 디테일에 대한 언론들의 경탄은 『중국 학부모』를 더더욱 ‘중국식 교육’에 대한 비판의 훌륭한 소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 학부모』가 제시하는 다양한 ‘현실’이란 비단 중국 가정교육의 실제 딜레마를 반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 경험으로 구조적 문제를 감추는 것에 있다. 과잉 경험 : ‘현실’과 ‘현장’ 『중국 학부모』의 시나리오 텍스트 내용 대부분은 현실 조사를 통해 발췌한 것으로, 조사 대상자가 진술한 실제 경험을 게임 속에 직접 배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학부모』의 줄거리는 완전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구축한 거대한 ‘경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게임 속에선 일련의 무작위(随机; 랜덤, 임의) 선택이 촉발되고, 플레이어의 선택은 아이의 속성치에 영향을 미친다. ● 오늘 부모님은 일찍 잠들었고, 당신은 방에서 몰래 휴대폰을 꺼내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10연승의 결정적 순간이 다가오기 직전, 당신은 숨을 꾹 참는데… 그런데 돌연 방의 문이 열렸네요! ○ 휴대폰을 끄고 재빨리 숨을 참고 잠자는 척한다. 그리곤 긴장을 풀고 강좌를 듣는다. (기억력 40 증가) ○ 큰 소리로, 당신이 깨어났다고 말한다. 그러자 부모님은 깜짝 놀라 방에서 나간다. (지능 50 증가) ○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계속해서 플레이한다. 알고보니 그것은 가을바람이 지나간 잘못된 경보였다. (오성 悟性 50 증가) 이러한 유형의 선택지에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세 가지 옵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다른 길 - 부모님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휴대폰을 넘기는 등 - 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무작위 선택의 몰입감은 전적으로 플레이어 선택에 대한 제한에 기반하며, 플레이어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척하는 옵션으로 물러선다고 할 때, 플레이어가 ‘자주적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수면 역시 플레이어의 현실 경험을 쌓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 된다. 왜냐하면 이는 나(플레이어) 스스로 선택하고 “공감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게임 속에서 촉발되는 무작위위 이벤트들도 있다. 이벤트가 발생하면 플레이어에게 그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나타나고, 선택을 하고나면 게임 화면상에 나와 같은 선택을 한 플레이어가 몇 명인지 알려준다. ● 엄마와 할머니는 기저귀를 사용할지,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할지를 두고 말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 어린아이는 무료 입장! 하지만 당신의 키가 기준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에 엄마는 당신에게 무릎을 조금 굽혀서 기준선을 넘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결국 들키고 말았네요.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 수업시간에 몰래 떠들었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벌점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선생님에게, 애가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시라고 말씀하시네요. 이와 같은 설계는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확고하게 포착한다. 플레이어가 ‘예’를 선택하든 ‘아니오’를 선택하든,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비슷한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아직 겪지 못한” 경험은 플레이어를 특정 집단에 속할 수 있도록 묶어주고, 여러 플레이어들이 “공감한다”고 외치게 하는 ‘현실’의 요소가 된다. 여기서 『중국 학부모』가 ‘리얼리즘’의 에토스를 구축하려는 전략이 드러난다: 즉,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제한함으로써, 플레이어는 특정 선택지 그룹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의 선택이 ‘무작위위 선택’에서 플레이어의 ‘생각’인 것으로 바뀌도록 설정돼 있으며, 이러한 무작위 선택에서 플레이어의 경험(또는 미경험)은 일반적인 경험(또는 미경험)으로 변한다. 이러한 설정 하에서 『중국 학부모』는 거대한 ‘경험의 집합체’로서 스스로의 고유한 역할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중국 학부모』가 제공하는 경험은 결국 과잉 경험이다. 저우즈창(周志强) 교수는 벤야민의 「경험과 빈곤」(1933) 3) 을 해설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위 ‘경험과 빈곤’이 반드시 사람들의 경험 생산 부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바로 ‘경험과잉’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문화생산 시스템이 끊임없이 현실적 상태를 감추는 경험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경험과 빈곤을 구성하게 된다. (…) 감정과 경험이 풍부할수록 실제 경험은 더 적어진다.” - 저우즈창, 「유사 경험 시대의 문학정치비평 - 벤야민과 우화론 비평」(伪经验时代的文学政治批评——本雅明与寓言论批评), 『난징사회과학』, 2012년 제12기. 과잉 경험은 거짓 경험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감정이 충만하며, 생생한 경험을 가리킨다. 하지만 풍부하고 충만한 것처럼 보이는 과잉 경험이 많을수록, 실제적인 경험은 적어진다. 『중국 학부모』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경험은 모두 이와 같은 과잉 경험이다. 그것들은 진실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분노의 정서와 자조적인 구원으로 가득 차 있지만, 실제 상황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수십 가지의 무작위 이벤트와 옵션들이 구성한 과잉 경험의 집합체에서 플레이어의 지나간 경험과 일치하는 것이 몇 가지만 있으면 그것들은 죄다 “공감”과 같은 것으로 식별될 것이다. 별자리 안내서의 어떤 별자리에 대한 서술처럼 한두 가지 자신과 맞아떨어지는 내용만 있으면, 독자는 “정말 진짜같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 학부모』의 ‘리얼리즘’은 차라리 “현장주의”라고 하는 편이 낫다. 저우즈창 교수는 “오늘날 리얼리즘은 서민적인 행위나 사실적 표현이라는 담론에 포위되어, 서서히 현장주의로 대체되고 있다” 4) 고 말한 바 있다. 즉, 점차 더 많은 ‘리얼리즘’ 작품들이 ‘현실감’을 ‘현장감’으로, ‘공감’을 ‘실제 상황’으로, 과잉 경험을 실제 경험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잉 경험은 현장감이 충만하고 감정도 풍부하지만, 반드시 진실된 경험이라 할 수는 없다. 이처럼 『중국 학부모』는 한 명 한 명의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한 ‘통점’을 통해 과잉되고도 풍부하며 충만한 고통의 경험을 플레이어의 유일한 경험으로 설정한다. 벤야민은 「경험과 빈곤」에서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 평가 절하가 진지전에 의해 까발려진 전략 경험, 인플레이션에 의해 까발려진 경제 경험, 기근을 통해 폭로된 신체 경험, 권력자들에 의해 까발려진 윤리적 경험 등 그들이 직접적으로 겪은 전쟁과 그 영향에 의해 폭로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전의 직접적인 경험으로는 전쟁의 이러한 문제를 설명할 수 없었을 때 그러한 경험 부족을 은폐하기 위해 균열을 메우는 일련의 심령주의(오컬트)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즉, 직접적인 경험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 할 때마다 사람들은 명확한 비난의 대상을 찾는 경향이 있다. 심령주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고대 중국 책력 상의 불길한 징조라던지, 관상이 좋지 않았다던지, 흉년(流年不顺) 등 비난 대상이 그것이다. 즉, 경험의 과잉을 통해 경험의 결핍을 덮는 것이다. 『중국 학부모』라는 이 게임에서도 ‘중국 학부모’는 플레이어들이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중국 학부모』가 드러내는 과잉 경험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 ‘가정’이라는 매우 적나라한 답을 제공한다. 청년들이 대인관계, 일과 학업, 심지어 친밀한 관계에서 겪는 각종 문제들은 하나같이 가족 문제로 귀결된다. 여기서 ‘중국 학부모’는 슬라보예 지젝이 말하는 “고정 지시어” 5) , 즉 대상 안에 머무르면서 대상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다른 이들과 구별해낸 잉여이다. 원래 지적될 수 있는 것으로서 ‘중국 학부모’는 좋은 외모에, 독선적이며,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등의 “유효한” 특징들을 암시했다. 하지만 ‘가정 원죄’라는 맥락에서 순서가 뒤바뀌었는데, 이는 일련의 특징들이 ‘중국 학부모’를 만들어낸 게 아니라, 그 학부모가 이와 같은 특징들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중국 학부모’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점을 가리킨다. 고정 지시어로서의 “중국 학부모”와 반유대주의 논리 속의 유태인은 궤를 같이 한다. ——즉, 당신이 까다롭고,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에 유태인인 게 아니라, 당신이 유태인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당신은 까다롭고 돈만 밝힌다는 것이다. —— 그러니까 독일 사회 전체의 문제는 유태인의 존재로 축소되어버렸듯, 각종 사회문제들은 게임 속에서 ‘중국 학부모’ 자신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과 같다. “부모를 용서하라” : 주정주의 7) 적 해결 방안 『중국 학부모』 게임을 시작할 때 한 문장의 인용구가 나타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부모를 사랑하고, 나이가 들면 부모를 심판하며, 때로는 부모를 용서한다.” 8) - 오스카 와일드 이 문구는 게임 전체의 기본 아이디어로서 ‘부모를 용서하라’로 설정했다. 플레이어가 1라운드를 끝내고 다음 세대 아이를 키우기 시작할 때, 게임의 2라운드에도 흥미로운 대화가 등장한다. 아빠(이전 세대의 플레이어가 키운 자식) : 생각치도 못했지만 나도 아이를 가질 나이가 됐으니, 교육을 잘 시켜야 할텐데, 우리 부모님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해!!! 엄마(이전 세대의 플레이어가 택한 동반자) : 당신과 함께 시부모님댁에 갈 때마다 당신이 아버님이랑 똑같단 생각이 들어! 생각하긴 뭘 생각해! 얼른 기저귀나 갈아! 대화를 나눈 후 플레이어들은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 게임은 이전의 메커니즘, 시스템, 무작위 이벤트, 무작위 선택 등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체면 대결’, ‘홍바오 쟁탈전’, ‘재능 대결’, ‘작문 백일장’ 등 이벤트들이 마찬가지로 적지 않게 일어나고, 플레이어들은 부모의 희망 수치와 스트레스 수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춤으로써, 아이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가출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게임은 바로 이처럼 “당신을 당신의 부모로 바꾸는” 반복적 메커니즘을 통해, 플레이 방법의 측면에서 플레이어가 “부모를 용서”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비록 당신이 부모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더라도, 게임의 모든 메커니즘은 당신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다. 즉, 아이들에게 기술을 학습하도록 해야 하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정리해야 하고, 아이들이 높은 성적을 받도록 해야 하며, 좋은 일자리를 얻도록 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아이는 메커니즘 속에서 새로운 ‘중국 학부모’가 된다. 그렇게 새로운 부모가 된 플레이어는 “내가 원치 않던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바로 부모님의 고심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게임 엔딩을 맞으면 아이의 소감 한 구절이 나타난다. “대입 시험 전과 후의 일상이 꽤 다른 것 같단 생각을 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저 자신은 더는 아이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부모님 눈에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거죠. 부모님과 늘 함께 했던 날들이 그리워요. 그게 어떠했든 꽤나 아름다운 시기였어요.” 『중국 학부모』는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한 게임 내용을 갖고 있음에도 온정적인 핵심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말들은 부모 탓은커녕 그리움과 용서가 담겨 있다.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네요.” —— 즉, 어린 시절에는 비록 항상 혼나고 이해받지 못했지만, 커서 보니 그 시절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게 됐고, 부모님 눈에는 어린아이로 남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세대 간의 각종 갈등은 단지 노련한 농담에 불과하며, 감정의 대화합이 주제인 셈이다. 2015년에 인기리에 방송된 『환락송(欢乐颂)』에는 남존여비의 가정에서 자란 판셩메이(樊胜美)가 등장하는데, 한때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 중심에 있었다. 그 이후로 부모와 자녀 간 관계에 초점을 맞춘 여러 화제작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했다. 『도정호 : 가족의 재발견(都挺好)』, 『아빠와 함께 유학을(带着爸爸去留学)』, 『소환희(小欢喜)』 등이 그것이다. 이 드라마들은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중국 학부모’들이 등장한다. 이 드라마들의 내러티브에서 모든 문제는 가족 갈등에서 비롯되며, 문제해결 방식은 단 하나, 바로 부모와 자녀가 서로 이해하는 것에 있다. 따뜻한 결말로 과정상의 갈등을 희석시키는 것은 가정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드라마 『도정호 : 가족의 재발견』 전체 서사의 전환점은 마지막에 쑤다창(苏大强)이 유언을 남기는 부분에 있다. 쑤밍위(苏明玉)의 회사에서의 위기, 쑤밍청의 결혼 파탄, 쑤밍저의 사업 문제는 모두 쑤다창이 오열하며 “너희 세 형제자매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행동하고, 도울 수 있는 한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해결된다. 이때부터 온 가족의 관계가 빠르게 바뀌기 시작하는데, 쑤밍위는 아버지가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했던 이유가 바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에 따라서 이 드라마의 전반부 갈등과 문제의 전말이 분명해진다. 한바탕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는 신파극이 일가족의 진실된 곤경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부모를 용서하라”는 주정주의적 결말은 가족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대체하는 해결이기도 하다. 과잉 경험 속에서 부모가 유일한 원망의 대상으로 세팅되어 있다면, “부모를 용서하라”의 결말이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이 되는 셈이다. 게임 전체의 설정은 플레이어가 부득불 ‘전철을 반복’하는 것에 있으며, 게임의 원망하는 내용과 감동적 결말은 플레이어가 부모를 용서하는 ‘전철을 반복’하도록 한다. 이는 일종의 스스로 문제를 옮긴 뒤 스스로를 설득하는 자화자찬의 대체 해결이라 할 수 있다. 『중국 학부모』의 반복적인 메커니즘에서 우리는 구조적 문제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이 부모가 낳은 문제가 아니라, 게임 메커니즘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용서하는 결론의 온정 강박 하에서 우리는 다시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네가 부모가 되어도 이렇게 할 거야” 같은 부모의 고뇌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리얼리즘 신화 『중국 학부모』에서 과잉 경험은 그것의 ‘리얼리즘’을 구축하는 기본요소다. 한데 흥미로운 점은 게임 전체의 리얼리즘이 하나의 ‘신화’를 기반으로 하며, 이것이 게임의 세대 간 속성의 계승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중국 학부모』는 다른 모의 양성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키우는 대상의 속성을 평가하는 수치 시스템을 갖고 있다. 게임 속에서 아이의 속성은 IQ, EQ, 체력, 기억력, 상상력, 매력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 속성별 수치는 아이의 과목별 성적과 장래 직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게임의 기본적인 플레이 방법은 바로 부모의 ‘스케줄링’과 아이의 ‘브레인스토밍’을 기반으로 속성의 수치를 향상시키는 것에 있다. 전자는 부모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아이의 일정을 배치하여 아이의 특정 기능들을 배양하는 것이고, 후자는 아이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미니게임을 통해 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세대 간 속성 계승은 바로 플레이어 세대가 키운 아이가 다음 라운드 게임에서 키울 아이의 부모가 되면서, 이전 세대의 우세적인 속성이 아이의 몸에 물려지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 플레이어가 키운 아이가 결국 프로그래머가 되면 다음 세대 아이는 IQ에 15점이 추가되고, EQ는 3점, 상상력 3점, 기억력 5점, 신체 3점이 추가된다. 만약 아이가 운동선수가 된다면, 신체에 더 많은 능력치가 추가되고, 다른 속성들엔 더 적게 부여된다. 세대 간 속성 계승을 통해 다음 세대 아이는 반드시 이전 세대보다 우수해지는데, 이는 즉 플레이어들이 세대를 거듭해 꾸준히 키워나가기만 한다면, 당신의 아이는 항상 칭화대와 베이징대 같은 명문대에 합격해 인생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게 됨을 뜻한다. 이처럼 “다음 세대가 전 세대보다 강하다”는 설정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본 동력이 된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의 게임 목표는 모두 “우리 가문의 몇 대손이 베이징대학에 합격하는지 보는 것”에 있다. 속성 수치로 플레이어의 게임 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기초 설정이다. 게임이 플레이할 가치를 갖기 위해선 플레이어가 게임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갖고, 플레이어들의 투입 시간이 누적되고 플레이 전략의 최적화됨으로써 끊임없이 수치가 증가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게임 속 아이의 인생은 단순하고도 곤란해진다. 단순함이란 시간을 들여서 수치를 쌓고 최적화 전략을 짜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있고, 곤란함이란 아무리 훌륭한 방안을 사용하더라도 자연적인 속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잉 경험으로 가득 찬 이 ‘리얼리즘’ 게임은 구조적 문제를 감추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문제를 돌출시킨다. 즉, 가장 비현실적이고 게임화된 수치 시스템을 빌리지 않는 한, 게임의 리얼리즘적 기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리얼리즘’과 가장 무관한 부분인 세대 간 속성의 계승은 하나의 예정된 신화인데, 이 게임의 모든 ‘리얼리즘’이 이러한 계층 상승의 신화를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다. 한마디로, 만약 이와 같은 신화 예고를 제거해버리면 그것이 중국 학부모든 미국 학부모든, 아이를 성공시킬 수 없다. 이 게임의 근본 모순이 여지없이 드러난 셈이다. 한 측면에서 아이는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의 속성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아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 모순을 잠재우기 위한 계층 상승 신화는 곧 무결점 피부를 보여주면서도 그 속의 끔찍한 흉터를 암시하는 마스킹액과 같다. 여기서 세대 간 속성 계승에 따른 계층 상승은 그 자체의 비현실이 작품의 리얼리즘적 토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하나의 ‘리얼리즘 신화’가 되었다. 합리적이고 진실되며 현장감 넘치는 디테일을 모두 제거하고나면, 상징계에 의해 수용될 수 없는 하드코어만 남게 되는데, 지젝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실재계의 손상”이다. 벤야민의 맥락에서 이 하드코어는 바로 아름다운 경험의 실체를 까발리는 인플레이션, 기근, 권력자이다. 그것은 바로 신화를 들춰내는 리얼리즘의 역설이며, 이는 우리에게 “계층 상승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제출한다. 『중국 학부모』는 이 문제에 대해 말없이 침묵하며, 자신이 지닌 리얼리즘의 거짓을 폭로한다. 계층 상승의 신화 속에서 당신은 다섯 시간에 걸쳐 세 아이를 키우고 갑부나 대문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계층이 고착화된 구조적 문제 앞에서는 자녀의 학교생활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평생 열심히 일해도 자녀가 매일 수업을 빼먹고 인터넷PC방에 다니다가 결국 대입 시험에 실패해 “아빠는 맨날 일만 하느라 바빠서 내 공부엔 관심도 없었는데, 우리 집안은 내게 뭘 가져다 줬나"같은 글을 올릴 수 있다. 경제학자 마일스 코라크(Miles Corak)는 ‘위대한 개츠비 곡선(Great Gatsby Curve)’을 제시하면서 미국의 계층분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이 곡선은 언론이 ‘아메리칸 드림’의 거짓을 지적할 때 볼 수 있다. 하지만 2003년 이래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도 0.46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핀디에(拼爹) 지수로 불리기도 하는 세대 간 소득탄력성 계수(intergenerational elasticity; IGE) 역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세대 간 소득탄력성 지수는 세대 간 소득 변화를 보여주며, 한 세대의 경제적 소득이 다음 세대의 경제적 소득 또는 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나타낸다.) 바로 이 두 지수가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구성하는 X·Y축이다. 『중국 학부모』에서 과잉 경험은 문제를 가정 문제로 단순화하고, 용서하는 결말은 이성주의 대결을 주정주의적 포용으로 유화시킨다. 최종적으로 이 게임은 우리에게 가족 구성원들 간에 서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준다. 물론, 가족의 윤리적 문제는 상호 이해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부모님의 고된 노력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그 메커니즘의 강압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계층 상승의 신화와 고착화된 현실 사이에서 『중국 학부모』는 현실적인 디테일들로 가득하지만, 거짓된 신화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중국 학부모』의 리얼리즘은 결국 하나의 코딩 시스템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과잉 경험으로 진실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온정적인 결말을 통해 대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상상계와 상징계의 겹들은 실재계의 존재를 말소해버린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코딩에서 벗어난 하드코어는 언제나 실재계의 왜상으로 게임 속에 존재함으로써, 그 리얼리즘으로하여금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계층 상승의 ‘리얼리즘 신화’이다. 신화의 불가능성은 그 현실의 거짓을 암시하고, 달콤한 꿈 뒤에는 감출 수 없는 고착화된 모순이 있다. 하지만 일단 우리가 이 모순에 접근하려고 하면 주정주의적 가르침은 가족애를 내세워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혹은 우리를 대신해 문제를 전이시켜버린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공감의 향수나 ‘중국 학부모’에 대한 원망일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게임 전체의 논리 뒤에 감추어져 있는 진짜 문제이다. 우리가 되물어야 하는 것은 ‘중국 학부모’가 어떠하냐가 아니라, 왜 이러하냐에 있다. ‘중국 학부모’의 문제는 가정의 윤리 문제가 아니며, 자녀와 부모 간 갈등 완화로 해결할 수도 없다. 이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우리는 더 이상 ‘출신 가정’의 아픔에 매달리지 않고 사회 전체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구어 ‘接地气’는 정치인이나 인기 연예인 등이 유명인답지 않게 소탈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대중의 일상과 접촉하며 어울리고, 대중의 요구를 경청하고, 대중의 습관과 문구 등을 사용하는 것 등을 지칭한다. 중국 바깥의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포퓰리즘 현상을 대중의 언어생활에서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홍바오는 중국 춘절 연휴에 주고받는 돈주머니로, 한국으로 따지면 세뱃돈과 유사하다. 대다수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위챗’ 등 소셜미디어앱에는 ‘홍바오’ 기능이 있는데, 이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룹채팅방 안에서 나눠줄 수 있다. 카카오톡에도 이와 유사한 기능이 있다. 3) 국내에서는 2008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외』(최성만 옮김, 길)에 수록되어 출간됐다. 4) 저우즈창, 「현실-사건-우화: 리얼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现实·事件·寓言:重新思考现实主义)」, 『남국학술(南国学术)』, 2020년 제1기. 5) 현실 세계와 대비되는 가능성의 세계(possible universe; 논리학·철학에서 가능성·필연성·우연성 등의 양상 명제를 논리적으로 다루기 위한 이론적 장치)에서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언어 표현을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라고 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사울 크립키(Saul A. Kripke)의 반기술주의가 우리가 본질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고 어떤 특정한 영역의 결정적 역할을 공식화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를 제공해준다고 본다. 크립키의 ‘고정 지시어’ 개념은 라캉의 ‘지배기표(master signifier)’ 개념과 일치한다. 지배기표는 대상의 실증적 속성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언표작용적 행위를 통해 화자와 청자 간 새로운 상호주관적 관계를 확립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중국 학부모”라고 하면 우리는 대상이 가진 실증적 속성들에 포함되는 게 아니라 발화 수행으로 상징적 위임을 그 대상에 부여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상징적 현실과 관계가 창출되며, 그 관계에서 특정한 책무를 떠맡는다. 6)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새물결, 2013. 원서: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7) 원문의 ‘情感主义’는 주정주의(emotionalism)의 중국식 표현으로, 이성이나 지성보다 감정이 우월하다고 여기거나, 감정이 가장 근원적인 것이라고 하는 사상을 가리킨다. 8) 이 유명한 문구는 오스카 와일드가 1890년에 집필한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의 등장인물 헨리 워튼경이 한 말이다. 9) ‘比拼老爹’의 준말로, 스스로 경쟁(比拼)하지 않고, 부모(老爹)의 능력에 의존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저우스위, 周思妤 난카이대학 문학대학원 석사과정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 Back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09 GG Vol. 22. 12. 10. 디지털게임은 그 출발점부터 시장에서 상품으로 규정된다는 속성과 긴밀한 연계를 이루며 발전해 왔습니다. 제작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이 매체는 정말 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그 소모되는 자원은 시장의 기능에 의해 충당되기에 게임의 속성에는 지속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개입합니다. 이런 게임의 상품적 속성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텍스트 내부에도 늘 강한 영향력을 끼쳐 왔습니다. 동전투입 게임 시대의 1라운드 보스부터 오늘날 보편화된 현질과 자동사냥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게임 텍스트는 자신에게 소비자가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느냐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결제양식의 변화가 다양해지는 시대 앞에 섰습니다. GG의 이번 호 고민은 그래서 상품으로서의 게임으로 향합니다. 플랫폼의 게임 독점, 구독결제 서비스, 부분유료결제 문제, 할인과 번들링에 이르기까지 많은 게임의 상품적 속성들은 게임이 만드는 세계 내부에까지 깊숙하게 침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게임담론에서 게임의 상품적 속성은 그 비중만큼 두텁게 다뤄지지는 못한 듯 싶습니다. 미약하나마 GG가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양한 필자들과 함께 GG는 2022년 12월에 상품으로서의 게임들을 이야기해봅니다. 새롭게 등장한 결제방식과 유통방식들 속에서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는 또 어떻게 흘러갈까요? 정답없는 고민이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찌보면 조금 늦은 발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GG의 독자들은 게임과 사회를 동시에 고민하는 독자들일 것입니다. 게임과 사회라는 두 주제 사이에서 게임의 상품성은 무척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제야 이 이야기를 던지는 늦은 감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 드리며, 이번호도 많은 애정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 Back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14 GG Vol. 23. 10. 10. Text: Arjoranta, J., & Siitonen, M. (2018). Why Do Players Misuse Emotes in Hearthstone?: Negotiating the Use of Communicative Affordances in an Online Multiplayer Game. Game Studies: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er game research, 18 (2). 1. 들어가며 누가 뭐라 해도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수 만을 두는 컴퓨터와 달리, 변칙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큰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플레이어간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여기서의 큰 축을 담당해 왔다. 게임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상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이에 대한 기대는 정말 대단한데, 다수의 플레이어들에게 소통과 사교는 항상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는 결정적 동기로 이야기 된다(Yee, 2005). 한편 ,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게임은 악성 채팅으로 가득 차있다. 소소하게는 도배부터 심각하게는 욕설까지 게임 내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발견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스트레스이며 가장 큰 이탈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은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엇게임즈(Riot Games)는 인 게임 내 부정적인 텍스트를 신고를 통해 검토하고 친 사회적인 행동에 보상을 주며, <콜오브듀티>(Call of Duty) 팀은 음성 채팅 중재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나아가,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언제나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긴다는 인식과 함께 게임 디자인적으로 채팅 기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도 하는데 <하스스톤>(Hearthstone)은 이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은 <하스스톤>에서 이루어지는 비매너 의사소통 행위(BM)를 추적하는 논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하스스톤>은 채팅이 배제된 게임이기에 이는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의사소통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한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들이 언급한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접근은 플레이어들이 제한된 자원을 통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의미를 협상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인 게임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이번 호에 맞추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하스스톤>이 소통을 제한하는 방법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하스스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제한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하스스톤>만은 아니다. 그의 의도 역시 다양한데, 게임 디자이너들은 공격적인 행동을 줄이고자 할 뿐만 아니라, 게임의 스토리라인이나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가능 방식을 설정한다. 대표적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서 한 플레이어는 적대 세력의 플레이어와 채팅을 할 수 없으며, <저니>(Journey)에서 플레이어는 버튼으로 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하스스톤>에서 사용하는 의사소통 전략은 ‘감정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하스스톤>에서는 채팅이 금지되어 있으며, 플레이어 간 의사소통은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으로 제한되어 있다. 한편, 게임 내 채팅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닌데 친구추가를 한 상대와는 텍스트 기반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럼에도 채팅 기능은 로비에 한정되며 게임을 당장 함께하는 상대와 나눌 수 있는 것은 감정 표현 뿐이다. 그림1. <하스스톤>에서의 감정표현 연구가 시작된 2015년까지 감정표현은 ‘감사’, ‘칭찬’, ‘인사’, ‘사과’, ‘이런!’, ‘위협’으로 구성되었으나 2016년 4월 24일 ‘사과’가 삭제되고 그 자리에 ‘감탄’이 추가되었다. 1) 이에따라 데이터 수집도 두 차례 이루어졌는데, 연구자들은 ‘사과’가 ‘감탄’으로 대체된 이전과 이후의 데이터를 비교해보며 디자인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 살폈다. 사용 가능한 감정 표현은 여섯 종류가 있으나 각각의 대사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캐릭터에 따라 약간씩 달라진다. 이를테면 같은 ‘위협’ 표현에 대하여 사제 캐릭터 란두인이 “빛이 당신을 태울 것입니다!”라 한다면, 사냥꾼 캐릭터인 렉사르는 “네놈을 추격해주마!”라고 말한다. 위와 같은 감정 표현은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는데, 방해 받고 싶지 않은 플레이어를 위해 상대방의 감정표현을 차단하는 기능도 있다. 표 1. 하스스톤: 오리지널 영웅과 영웅 별 감정표현 한편 , 유저의 커뮤니케이션이 마냥 주어진 감정 표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는 커서(터치스크린일 경우 손가락)의 위치, 카드 검토나 주문 선택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과 암묵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3. < 하스스톤> 플레이어들이 (잘못된)의사소통을 하는 방법 그렇다면 <하스스톤>의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그들은 주어진 기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아니면 기능을 벗어나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내는가? 저자들은 <하스스톤> 포럼인 ‘Hearthpwn’ 2) 의 글을 수집하여 이를 살핀다. 그에 따르면, 플레이어들의 비매너 소통에는 ‘감정표현을 사용하는 방식’과 ‘그 외의 방식’이 있다. 1) 감정표현을 사용하기 플레이 중 이루어지는 감정 표현은 주어진 그대로의 의미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그것이 발화되는 특정 맥락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게임이 시작할 때 하는 인사는 인사로 받아들여지지만 고민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을 때의 인사는 재촉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고맙습니다’는 정말 감사를 표할 수도 있지만 상대의 실수를 조롱하는 데에도 사용 가능하다. 즉, 같은 표현이라도 타이밍이나 상황의 단서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캐릭터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의미의 범위를 더욱 확장한다. 이를테면, 같은 ‘감사’인사라도 우서가 하는 ‘고맙네’는 안두인 린의 ‘감사합니다!’는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각 캐릭터의 어조를 살려 감정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상대방을 약 올릴 수 있는 캐릭터의 대사가 드러난다. 실제로, 본문에 언급된 한 플레이어에 따르면, 제이나의 ‘이런!’은 특히나 얄밉다. 그림 2. 한국 커뮤니티에서 밈(meme)으로 자리잡은 안두인의 감정표현(욕설은 블러처리) 3) 이처럼 , <하스스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그 자체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섯 종류의 감정 표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내며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에 사용된다. 따라서, 몇몇 플레이어들은 문맥적 해석을 제거함으로써 합의된 어휘를 개발하고자 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감정 표현은 각각이 의도된 대로 동일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즉, ‘인사’ 표현은 인사를 하는 의미로 발화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감정 표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 역시 존재했다. 그들은 채팅을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공격적인 행동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감정 표현을 통한 비매너 소통은 겉으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제제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편 , 모두가 감정 표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감정 표현의 확장된 사용을 재미의 일부로 수용했다. 그들은 각각의 감정 표현이 가지는 미묘한 느낌에 흥미를 가지고 감정표현을 확장시키는 것 자체를 ‘놀 거리’라 생각했다. 2) 플레이를 통하기 <하스스톤 >에서 상대방과 소통하는 방식은 감정표현 뿐만이 아니다. 해당 게임에선 그보다도 훨씬 많은 비언어적 표현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플레이어어는 의도적으로 천천히 플레이하며 시간을 끄는 ‘로핑(roping)’을 할 수 있으며, 승리가 확실해진 상태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하며 플레이를 지속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캐릭터나 덱의 선택 을 통해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의 가장 단순한 기능도 여러 방식으로 사용되고 다양한 뜻을 전달한다. 플레이어의 창의성이 개입된다면 어떤 것도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①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경우 . 플레이어의 차례가 끝나려 할 때 천천히 타는 밧줄을 가리켜 ‘로핑(roping)’이라고도 함 ② 스패밍 (spaming)을 비롯한 감정 표현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행위. ③ 항복을 하지 않고 게임을 종료하는 행위 . ④ 승리가 확실 해졌음에도 불필요한 공격으로 플레이를 연장시키는 행위 ⑤ 게임이 끝난 후 , ‘친구 요청’을 보내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 4. 나가며: 비매너라는 회색 지대 한국의 위키피디아 사이트인 ‘나무위키’에는 ‘인성질(하스스톤)’이라는 문서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인성질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하스스톤에서 제공하는 의사 표현 기능을 이용하여 상대를 희롱하는 행위’ 4) 로 본 논문에서 확인한 비매너 소통에 해당한다. 웬만한 논문보다 긴 길이의 위 문서는 여섯 가지의 감정표현만을 가지고 어떻게 상대를 화나게 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전략들은 본문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텍스트가 영미권 커뮤니티를 분석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때 나타나는 유사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현상이 유사한 만큼 본문에서 나타나는 문제의식 또한 공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텍스트의 중심 주제인 비매너 플레이는 매우 다층적으로 나타나는 흐릿한 개념이다. 저자들은 비매너 플레이의 다섯 가지 양상을 정리하지만, 항목들에 논쟁의 여지가 있음을 밝힌다. 가령 게임 종료 직전 남은 카드를 모두 사용하는 것은 어떤 플레이어에겐 불필요한 플레이의 연장으로 해석되었으나, 다른 플레이어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동일한 맥락의 같은 행위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 비매너인지 아닌지가 결정됨을 시사한다. 비매너 상호작용이란 깔끔히 떨어지는 명료한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하스스톤>에서 감정표현을 오용하는 것은 비의도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발화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감정 표현은 비매너인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직접적인 욕설 만이 비매너 플레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 텍스트 기반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도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표현은 언제나 가능하다. 즉, 단순한 감정 표현 몇가지라도 충분히 상대를 괴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언어적 소통의 공격성은 회색 지대에 위치한다. 무엇이 비매너인지 아닌지는 주관적이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색 지대야 말로 본 논문 제시하는 주목해볼만한 지점일 것이다. 게임에서 비매너 플레이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의 모호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참고문헌 Call of Duty Staff. (2023, 8, 30). 유해성 근절 진행 보고서 – 음성 채팅 중재. URL: https://www.callofduty.com/blog/2023/08/call-of-duty-modern-warfare-warzone-anti-toxicity-progress-report Yee, N. (2005, June). Motivations of Play in MMORPGs. In DiGRA Conference. Riot Games. (2022, 8, 29). 플레이어 관계분석 현황. URL: https://www.riotgames.com/ko/news/an-update-on-player-dynamics-ko 1) https://hearthstone.blizzard.com/ko-kr/news/20097359 2) https://www.hearthpwn.com/ 3) https://www.inven.co.kr/board/hs/3509/2037951 . 인벤 유저의 게시 글. 여기서 저자는 안두인 린의 한국 대사가 성우의 음성 녹음으로 인하여 훨씬 짜증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4) https://namu.wiki/w/%EC%9D%B8%EC%84%B1%EC%A7%88(%ED%95%98%EC%8A%A4%EC%8A%A4%ED%86%A4) Tags: Arjoranta, siitonen, 콜오브듀티, 하스스톤, 비매너, 커뮤니케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예찬

    이예찬 이예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북한문학이 아닌 조선문학 연구자를 표방하지만, 주류문학 말고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대중‧통속‧장르 및 기타 등등 애호가가 되었다. Read More 버튼 읽기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두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탈북자’가 가상의 ‘평양’이지만 ‘김일성 동상’을 향해 총을 쏜다. 이때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동상을 보자마자 총을 쏘는 탈북자의 모습이다.

  • 어려움에 직면한 유럽의 게임 구독 서비스

    < Back 어려움에 직면한 유럽의 게임 구독 서비스 09 GG Vol. 22. 12. 10.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69 지난 15년 동안 게임을 만들고 소비하는 방식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이는 보다 향상된 인터넷 연결 그리고 새로운 (모바일)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촉발된 변화였다. 한 때 컴퓨터 게임은 상점에서 물리적으로 판매되었고, 그렇게 해서 구매한 게임을 플레이하려면 거실에 위치한 가족용 컴퓨터나 게임용 콘솔 앞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게임을 언제 어디서나 플레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우리가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뿐 아니라 게임이 디자인되고 시장에 출시되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고 있다. 서비스로서의 게임, 소액 결제, 클라우드 게이밍, 인-게임 광고부터 해서 NFT와 콜렉터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결제 형식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플레이어들도 이와 같은 거대한 변화상을 느끼고 있지만, 그 변화가 플레이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게임 플레이를 둘러싼 보다 넓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게임은 현재 글로벌한 현상이기 때문에 세계의 각 권역별로 그 맥락들은 상이하게 나타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유럽인의 관점에서 게임 문화를 논하려고 한다. 유럽의 게임 문화와 게이머 정체성 역사적으로 유럽 게임 시장은 대중화 된 개인용 컴퓨터 및 아마추어 게임 개발 활동과 해적판의 번성이라는 특성을 보여왔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 지금도 여전히 – 단순한 여가용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진지한 문화이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고가의 게임 하드웨어를 구매하거나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그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다. 이와 더불어 게임이 일부 헌신적인 매니아들을 위한 하위문화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형성되어왔으며, 이 하위 문화의 “구성원”들은 본인이 달성한 성취(achievement)와 더불어 소유하고 있는 게임 장비의 테크니컬 스펙을 통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곤 했다. 실력중심주의(meritocracy)적인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게임 하위문화 내) 지위는 게임플레이 실력에 달려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플레이를 잘한다는 것은,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이와 같은 실력중심성이 게임의 가상적 환경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게임 생태계로 스며들어 확장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게이머로서 지닌 정체성의 가치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그 성취 - 후에 자아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 에 의해 규정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닌텐도 wii나 모바일 게임 등의 캐주얼 게임의 확산으로 어느 정도 바뀌긴 했다. 캐주얼게임이 보다 넓은 범주의 사람들에게 게임의 접근성을 높여주면서 게이머들의 하드코어한 “서브컬처”라는 규범이 변화해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정한” 하드코어 게이머들과 짧은 시간동안 간간이 플레이하는 캐주얼 플레이어들 간의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서 핵심은, 캐주얼 플레이는 하나의 활동인데 반해 하드코어 게이밍은 하나의 정체성이 된다는 점이다. 게이머 정체성에 도전하는 클라우드 게이밍 최근 비즈니스 모델이 게임을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한 가지 가능한 답변은 비즈니스 모델이 앞서 언급한 게이머 정체성의 구축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는 클라우드 게이밍과 리모트 플레이 서비스다. 구글 스태디아의 실패는 클라우드 게이밍이 기존의 게임 플레이 실천과 가치에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구글 스태디아는 런칭하기 전부터 “게임용 넷플릭스”라 불렸다. 스태디아는 플레이어들과 개발자들에게 각각 약속을 내걸었는데, 개발자들에게는 향후 출시될 타이틀 개발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엄청난 규모의 수용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접근을 약속했고, 플레이어들에게는 어떤 디바이스를 통해서든 언제나 옛 게임들을 비롯해서 새로 출시되는 메이저 작품까지 포함하는 게임의 다양성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월정액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스태디아는 이 야심찬 약속들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그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독점적인 블록버스터가 부재하다는 것, 일단 스태디아에 게임을 올려놓으려면 개발자들이 게임 이식 작업을 해야 했다는 것, 플레이어들이 스태디아에서 게임을 하려면 이미 소유한 게임일지라도 또 사야 했다는 것. 그리고 구글이 플레이어들이나 게임 업계로부터의 신망을 얻지 못한 채 외부자로서 게임 산업에 진입했다는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이 존재한다: 스태디아가 게이머 정체성의 구축 그 자체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플랫폼상에서 언제나 게임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스태디아의 약속이 고가의 게임 하드웨어에 대한 수요를 한물 간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언데 어디서나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은 언뜻 좋게 들리지만, 고가의 게임 하드웨어 소유 여부가 하드코어 게이머를 규정짓는 속성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 스태디아가 한 일은 다양한 게임에 대한 풍족한 접근뿐 아니라 덜 헌신적인 플레이어 집단으로의 접근 또한 제공한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게임 문화 내 구축 되어있던 위계질서를 흐트러뜨린 셈이다. 앞서 게이머 정체성의 확장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했던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성취 또한 이와 연관되는데, 이러한 점과 관련해서도 스태디아는 문제가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 소프트웨어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구독하고 그에 대한 접속권을 얻는 방식이,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게임에 쏟았던 자신들의 노력 및 그에 따른 성공과 성취가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게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부자인 구글이 시장을 파괴하고 정복하러 왔다는 사실 또한 플레이어들의 의심을 샀다. 아마추어 게임 제작이 초창기 시절부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왔던 유럽의 게이머들은 당연히 더욱 그러했다. 업계 내 여타의 개발사들이 대개 게임 문화 내에서 “내부자 출신”으로 여겨졌던 것과 달리, 구글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소중한 문화를 정복하려 드는 거대 기업으로 보였던 것이다. 고결한 플레이어가 느끼는 위협감 물론 스태디아는 엑스박스의 게임패스처럼 새롭게 등장한 구독 서비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유럽을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편인 게임패스에 대해서도 여전히 비판적인 게이머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이러한 경향을 소유권의 부재 및 하드코어 게이밍 중심의 “하위문화”의 낮아진 문턱과의 연관 속에서 생각해볼 만하다. 또한 바람직한 게임 문화를 망친다고 여겨지는 새로운 유형의 게임 및 결제 방식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분노도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캐주얼 게임의 도래, 특히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플레이하는 게임의 등장은 잘해봐야 수준 이하, 최악의 경우 게임도 아닌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불이 없는 무료 게임의 결제 방식(freemium games) 또한 게임 전체를 오염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한 방식의 게임들은, 좋은 게임의 제작이 아닌,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쓰도록 만드는데 디자인의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한편 게임 내 리소스는 스킬과 노력을 통해서 얻어야 정직한 것이라 여겨지는 경향 속에서, 소액 결제는 – 지금도 어느 정도는 여전히 – 약한 수준의 속임수(cheating)이라 여겨져 왔으며, 따라서 이는 열등한 플레이어나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요약하자면 클라우드 게이밍 및 최신 게임 결제 방식의 발전 방향이 고결한 플레이어에게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클라우드 게이밍의 미래 스태디아는 실패했고, 엑스박스 게임패스는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게임팬들로부터 어느 정도 회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서비스가 미래 시장성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오늘날 게임 시장에서 하드코어 게이머는 소수다. 유럽에서 게임은 나이를 뛰어넘어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 되어있는 활동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6~60세 연령대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많은 수가 아마도 휴대폰으로 무료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그친다 할지라도, 따라서 현 시점에 클라우드 게임이 그리 매력적인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구독 기반 게임의 부상은 그리 먼 시점의 일이 아닐 수 있다. 게임 개발의 측면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한 상황이다. 유럽 게임 산업은 Rockstar North 같은 몇몇 거대 회사나 CD Project Red나 IO Interactive등의 중간 규모 업체 몇 군데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인디 스튜디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에게 있어 앞서 언급한 상황들에 따른 어려움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럽 시장에 있어 진짜 어려움은 완전히 다른 전선에서 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다. 예컨대 기술 산업 분야의 규제, 특히 개인 정보 취급과 관련된 엄격한 규제 같은 문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다 요르겐센 이다 요르겐센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IT 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게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젠더 재현, 게임 문화, 매체로서의 게임 등과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던 덴마크 대학(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박사후 과정 중에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 Back 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19 GG Vol. 24. 8. 10. 나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포 게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워하라고 만든 게임을 무서워해서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긴 한데 뭔가 아쉽긴 아쉽다. 바로 내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공포 게임에도 명작이 참 많다. 〈암네시아〉(Amnesia), 〈블레어 위치〉(Blair Witch),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맨 오브 메단〉(Man od Medan), 〈디 이블 위딘〉(The Evil Within),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Dead by Daylight),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Alien: Isolation), 〈화이트데이〉(White day),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 〈사일런트 힐〉(Silent Hill), 〈디텐션: 반교〉(Detention: 返校)는 플레이해 보지 않았지만 제목도 게임 속 장면들도 너무 친숙한 작품 또는 시리즈들이다. 고백하자면 이중 적지 않은 게임들을 소장하고 있다. 책 구매도 독서이듯 게임 구매도 플레이의 일환이기에 아직 플레이하지 않았을 뿐 언젠가 하긴 할 것인데 아직 그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 따름이다. 그렇지만 명작으로 불리는 게임들을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무서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니 공포 게임은 떠올리지 않아버리기 쉽지만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다시 고개를 돌려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질문들이 이어진다. 공포 게임은 왜 무서운가? 공포 게임의 재미는 무엇인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공포를 즐기는 것일까,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일까? 공포 영화를 통해 비추어 본 공포의 정체 가장 궁금해지는 것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마음이다. 이들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즐거움을 느낄까, 괴로울까? 만약 그것이 즐거움이라면 어떤 즐거움일까, 한편 그것이 괴로움이라면 거기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 공포 영화를 대상으로 유사한 질문을 던진 시도가 있다. 공포 영화를 관람하는 이들이 공포 영화의 무서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괴로움을 느끼는지를 연구한 [1] 풍원과 나은경은 공포 영화를 관람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양가적인 감정의 복합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공포 영화의 무서움을 통해 “짜릿하고, 신선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 긍정적인 즐거움이라면, “끔찍하고, 불쾌하고, 징그럽고, 스트레스를 받는” [2] 느낌을 받는 것은 부정적인 괴로움인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면서 복합적인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마음에 적용하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게이머가 경험하는 두려움은 긍정적인 즐거움과 부정적인 괴로움 모두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로 이어지는 출발점인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이 허구에 불과한데도 관객이 무서워하는 이유를 연구한 [3] 안의진은 콜린 래드포드(Colin Radford)가 제시한, 영화의 허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순적인 관객을 뜻하는 ‘픽션 패러독스’(Fiction Paradox) 개념 [4] 을 활용해 관객이 공포 영화를 보면서 무서움을 느끼는 맥락을 설명한다. 관객은 영화에 등장한 괴물이 진짜 있다고 믿어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허구인 것을 알고 실제로는 그 괴물이 누구의 안전도 해치지 않음을 (두려움의 범위와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를 통해 느껴지는 공포감을 ‘즐거운 흥분’으로 받아들인다 [5] . 이는 관객이 공포 영화를 통해 느끼는 공포는 감각을 토대로 하는 것으로, 관객이 공포 영화에서 괴물을 보면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모순적인 과정이 아니라 없다는 것을 아는 채로 즐기는, 합리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관객이 공포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영화 속 괴물이 정말 눈앞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실감이 나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괴물이 눈앞에 있는 셈 치고 ‘무서워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이 관객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공포 영화를 즐겨 본다’는 것도 자연스레 가능해진다(여전히 엄두는 안 나지만). 공포를 경험해서 얻는 재미가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두려움이란 주어지는 동시에 선택되기도 한다는 점은 두려움이 제한된 조건에서만 경험하는 비일상적이고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된 것임을 뜻한다. 이를 염두에 두면 공포 영화에 대한 다른 여러 논의들, 가령 특정 작품에서 표현한 공포가 갖는 의미를 당시의 사회적 정서를 토대로 해석 [6] 한다거나, 영화가 만들어진 허구적 세계에만 해당하는, 극장 안에 갇히는 공포와 극장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더 강렬해지는 공포 [7] 로 두려움의 정체와 영역을 확장하여 구분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종합하면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며, 이 두려움을 통해 우리는 즐거운 동시에 괴로울 수 있다. 이를 공포 게임에 적용하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경험하는 두려움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며, 게이머는 이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복합적인 재미를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공포는 영화의 공포와 어떻게 다른가 어쩌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지 모른다. 공포 영화/게임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함께 발휘되는 양가감정이라면, 마음의 방향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 재미의 모양새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공포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는 데 필요한 건 마음의 방향을 옮기는 것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게 잘 안된다. 마음먹기로 결심은 하는데 실행에 옮기기 전에 매번 주춤하게 만드는 고비가 있어서다. 바로 게임의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이다. 영화와 달리 게임은 공포 상황을 직접 헤쳐 나가야 한다. 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공포 상황도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 게임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은 영화를 관람할 때와 달리 즐거움으로든 괴로움으로든 어느 정도 견디면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방향을 달리하는 것 외에도 그 방향을 꼭 붙들고 있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를 감내하면서. 더군다나 공포 상황이 펼쳐진 현장에 실제로 있는 것 같은 임장감을 토대로 한 VR 게임이라면? VR 공포 게임이 게이머의 두려움을 유발하는 요인을 분석한 He Zhang 등의 연구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중심으로 게이머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게 느끼면서 몰입된 공포를 경험한다 [8] 고 제시한다. 귀신이 갑자기 등장하거나,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린다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발생할지 모른다고 긴장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두려움은 (영화든 게임이든) 스크린을 통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경험하는 두려움과는 다르다. 게임에서 경험하는 공포 상황은 여전히 허구이지만, 그것이 허구임을 아는 채로 즐기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게임에 따라 상호작용성이 다양하게 적용되면서 두려움을 경험하는 구체적인 맥락이 달라지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인디 게임을 사례로 두려움을 ‘허구 감정’(fiction emotion)과 ‘게임플레이 감정’(gameplay emotion)으로 구분해 공포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어떤 감정적 경험을 하는지 탐색한 Jan-Noel Thon의 연구는 인디 게임이 시청각적/서사적/놀이적 요소를 통해 대형 스튜디오와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을 전달함을 제시한다 [9] . 적은 예산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대신 독창적인 표현을 시도할 수 있는 공포 인디 게임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두려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 VR 게임과 인디 게임의 사례는 임장감이 두려움에 대한 몰입을 강화하고 독창성이 두려움의 범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교해 게임이 새롭게 제공하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이 게임에서도 유효하다면 그것은 어떤 경험일까. 공포 게임에서 가상의 캐릭터와 인간과 유사한 정도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에 차이가 있는지 탐색한 Angela Tinwell 등의 연구는 가상의 캐릭터가 인간과 유사할수록 무섭게 느낀다는 것을 제시 [10] 한다. 현실과 맞닿은 지점에서 두려움을 더 효과적으로 느끼는 셈이니 게임을 통해 경험하는 공포는 영화와 유사한 부분은 있지만, 동시에 더 넓고 짙은 셈이다 [11] . 공포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겠다던 결심이 번번이 좌절되거나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은 데에는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굳게 마음을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다고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 들진 않는다. 더 넓고 짙은 두려움이 가득한 세계이지만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상호작용성은 시도를 요구한다. 그 시도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것을 요청한다. 그 시도는 일련의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 시도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는 분투의 과정을 통해 게이머는 게임에 펼쳐진 세계를 경험하고 탐색한다. 공포 게임에서 무서움은 실패를 유도한다. 게임에 구현된 규칙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부정적인 괴로움을 먼저 떠올리게 해 도전을 반복하면서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게 한다. 이 무서움을 반드시 극복할 필요는 없다. 공포 게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즐겁고도 괴로운 양가감정이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공포의 형식이 아니어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게임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동안 선제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두려움이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괴로운 동시에 즐거울 수 있음을 믿고 공포 게임의 세계로 다시 다가가 보려 한다. 분명 그 과정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을 것이다. 무서우라고 만든 게임을 안 무서워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보려 한다. 실눈을 뜨고서라도, 발걸음을 아주 더디게 내딛게 되더라도. [1] 풍원, 나은경. (2021). 공포영화를 보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한 수용자 반응의 차이 연구: 관람자의 현실 공포 경험 및 관람 환경(장소/매체/동행)의 영향을 중심으로. 언론과학연구, 21(2), 118-155. [2] 풍원과 나은경의 논문, 136-137쪽. [3] 안의진. (2013). 관객은 허구에 불과한 공포영화의 괴물을 왜 무서워하는가?. 미디어, 젠더 & 문화,(26), 41-70. [4] 래드포드는 영화의 허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규정하기 위해 세 가지 전제를 제시했다. 첫째, 인간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나 사건에 감정 반응을 하는데, 둘째, 영화를 볼 때 영화의 인물이나 사건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셋째, 그런데 인간은 영화를 보며 감정 반응을 한다. 안의진은 이 전제를 공포 영화에 적용해 ‘인간이 공포 영화의 괴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려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공포 영화의 괴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다’고 제시한다. [5] 안의진의 논문, 64쪽. [6] 송아름. (2011). 1990년대의 불안과 <여고괴담>의 공포. 한국극예술연구, (34), 291-324. [7] 김지미. (2012). 영화 가짜 공포와 진짜 공포. 황해문화, 76, 349-356. [8] Zhang, H., Li, X., Qiu, C., & Fu, X. (2023). Decoding Fear: Exploring User Experiences in Virtual Reality Horror Games. Chinese CHI 2023, Denpasar, Bali, Indonesia. doi:10.1145/3629606.3629646. [9] Thon, J.-N. (2020). Playing with Fear: The Aesthetics of Horror in Recent Indie Games. Eludamos: Journal for Computer Game Culture, 10(1), pp. 197–231. doi: 10.7557/23.6179. [10] Tinwell, A., Grimshaw, M., & Williams, A. (2010). Uncanny behaviour in survival horror games. Journal of Gaming & Virtual Worlds, 2(1), 3-25. [11] 현실과 맞닿은 공포에 대해서는 풍원과 나은경의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지적되었다. 공포 영화를 관람하며 느끼는 두려움의 정도를 나이별로 구분하였을 때 연령이 더 높을수록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영화에서 제시된 공포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경험했을수록 두려움을 더 느끼는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 Back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02 GG Vol. 21. 8. 10. 편지와 절벽을 함께 떠올리며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 1) 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게임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해서 당신처럼 훌륭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말로 끝나는 여느 팬레터 같지만, 사실 이 편지의 용건은 다른 데에 있다. “어떻게 하면 원주민들에게서 ‘안내자의 머리’를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거나 힌트를 줄 수 있나요(Could you please tell me or give me a hint on how to get the navigating head from the natives)?” 톰슨은 게임의 공략법을 구하기 위해 개발자에게 직접 편지를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모험은 단지 컴퓨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주인공 가이브러쉬(Guybrush)가 해적이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나 아이템과 힌트를 찾고 장애물을 넘고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이 12살 어린이도 자신의 모험 중 맞닥뜨린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힌트와 아이템을 구하고 있었다. 12살의 모험가 톰슨은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에는 아직도 ‘원숭이 섬’을 떠나지 못하는 몇몇 어른들이 등장한다. 1999년 론칭된 이후 시간이 흘러 이용자도 얼마 남지 않고 더 이상 업데이트도 되지 않는 게임 〈일랜시아〉에 접속하는 ‘내언니전지현(감독 박윤진의 게임 캐릭터)’과 그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일랜시아〉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돌고 돌아 〈일랜시아〉를 다시 찾는다 2) " . 영화는 내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찬 현실 세계와 집단적 향수의 공간이 되어버린 게임 세계를 번갈아 비춘다. 그러다가 영화의 후반부에는 내언니전지현과 길드원들이 게임 맵의 절벽 앞에 다 함께 모여 차례로 유언을 남기고 그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죽지 않는 절벽 낙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놀이 혹은 퍼포먼스인데, 어쩐지 이 낙하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곳에 가닿기 위한 움직임처럼 보였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원숭이 섬에서, 그곳에 남은 최후의 어른들은 얼마간 슬프고 무모한 모험을 떠나고 있었다. 이 여정은 시간을 거스르고자 한다. 톰슨의 편지를 읽으며 절벽 앞에 서 있는 내언니전지현을 생각했다. 12살 톰슨으로 돌아가고 싶은 내언니전지현을 떠올리며 과거의 게임들이 다시 인기를 얻는 최근의 현상이 단지 플랫폼, 그래픽 스타일, 뉴트로 산업, 복고 열풍 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느꼈다. 왜 어떤 어른들은 ‘안내자의 머리’를 얻기 위해 직접 편지를 써야 했던 어린 시절 주변에서 서성대는가? 29살의 내언니전지현은 왜 더 이상 개발되지 않는 과거의 섬에 계속 남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가? 우리는 왜 어린 시절의 모험담을 잊지 못하며 심지어 이미 퇴색해버린 모험의 세계로 다시 시간을 거슬러 모험을 떠나는가? 그때의 모험과 지금의 모험은 어떻게 다시 만나는가? * 다큐멘터리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공식 스틸컷.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조국은 왜 향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동화 속의 나라가 되는가?” 3) 노스탤지어는 동시대 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들 중 하나다.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과거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적어놓은 댓글들, 어린 시절 접속했던 게임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오래전 유행가가 다시 순위 역주행을 했다는 기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래전 문화, 예술, 그리고 미디어의 많은 부분이 복고, 레트로 열풍의 흐름 안에서 소개되면서 더 이상 그것을 경험한 적 없는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 되고 있다. 최근 〈슈퍼 마리오〉, 〈소니 더 헤지호그〉부터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리니지 리마스터〉까지 수많은 옛날 게임들이 다시 사랑받는 것을 보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게임에도 해당되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이러한 현상에 보다 구체적인 세대 구분을 적용할 경우, 90년대에 오락실에서 게임을 했던 3-40대가 그 게임을 다시 찾는 경향은 ‘레트로’, 오래전 콘솔 게임과 비디오 게임에 대한 실제 경험이 없는 1-20대가 그 게임을 하나의 유행으로 즐기는 경향은 ‘뉴트로’로 해석되고는 한다. 이때 ‘과거의 게임과 음악과 영화와 물건들이 어떻게 다시 인기를 얻었는가?’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그보다 ‘우리는 왜 낡고 조악하고 엉망진창인 과거의 것들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지’ 질문하고 싶다. 왜 우리는 숱한 좋은 것들을 놔두고 다시 보잘것없는 것에 매혹되는지, 이를테면 더 그래픽이 뛰어난 다른 게임들을 ‘돌고 돌아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일랜시아〉로 돌아가는지’ 묻고 싶다. ‘과거는 어떻게 유행이 되었는지’가 아니라 ‘우리는 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지’, 이 글은 그것이 궁금하다. 노스탤지어는 일반적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했지만 점점 그 대상이 구체적인 시공간으로서의 고향을 넘어 확대되어, 마치 고향과 같은 과거의 어떤 기억과 경험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폭넓게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고향을 그리워하기 위해서는 고향을 떠나거나 고향을 잃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처럼, 노스탤지어의 감정에는 그 대상에 대한 상실과 결핍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에 노스탤지어를 느낀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의 고향으로서 해당 시공간, 기억, 경험을 이미 떠났거나 잃어버린 상태이다. 결국, 노스탤지어는 우리가 현재 무엇을 상실하고 결핍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거뿐 아니라 현실과 미래와 연결되는 감정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공유하는 노스탤지어의 감정은 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상실과 결핍을 반영한다. 우리가 현재 무엇을 상실하고 결핍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서 ‘고향’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향은 사전적으로는 ‘태어나고 자라난 고장’을 의미하지만, 단지 지리적인 의미를 넘어 언어와 습관을 공유하는 집단 혹은 자신이 기원을 느끼는 어떤 추상적인 시공간이 될 수도 있다. 고향은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는 고정된 기원과 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노스탤지어는 정체성이 위기를 맞이한 순간에 사회적 현상으로 두드러진다. 범람하는 노스탤지어는 그 자체로 현대사회가 정체성의 훼손을 겪고 있음을 암시한다. 4) 오늘날 노스탤지어는 때로는 그 대상이 모호한 채로 느끼는 근원적인 ‘뿌리 뽑힘’, ‘집 없음’ 등의 감정이며, 이는 현대인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감정이기도 하다. 5) 〈내언니전지현과 나〉에서 주인공인 ‘나’(내언니전지현)가 때로는 ‘나’가 부캐(부 캐릭터)이고 〈일랜시아〉 속 ‘내언니전지현’이 본캐(본 캐릭터) 같다고 말할 때, 그리고 길드원들이 입시, 졸업, 취업, 결혼 등의 어려운 난관으로 가득한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성취감을 얻기 위해 〈일랜시아〉를 다시 방문했다고 말할 때, 이 감정에는 ‘성취감이 가능한 곳으로서의 고향’인 ‘일랜시아’와 그 세계 속 ‘내언니전지현’에게서 뿌리를 느끼는 ‘나’의 불안이 씁쓸하게 개입한다. 도트 그래픽과 단순한 조작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심지어 직접 플레이하지 않아도 숫자가 올라가는 이 허술하고 단순한 세계는 그 자체로 복잡하고 치열한 현실 세계에 대한 도피처일 뿐 아니라 대응물이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과거의 초라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살았던 유년 시절은 이제 안온하고 편안한 고향의 모습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3-40대가 어린 시절 열심히 했던 슈퍼마리오 게임을 그리워하는 것, 10-20대가 슈퍼마리오 게임을 해본 적 없지만 해당 이미지와 플롯에 이유 모를 애착감을 느끼는 것이 세대의 특정한 경험으로 구분되어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다르게 해석되기 이전에, 어떤 근원적인 노스탤지어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 게임의 엉성한 세계가 우리 각자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엉성함 그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결핍하고 상실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동화라는 가장 엉성한 세계, 그리고 그 동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 어릴 적 우리는 영화, 음악 혹은 소설에서와 달리 게임 속에서 ‘직접’ 걷고, 움직이고, 말하고, 성취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노스탤지어를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고, 다른 여가들보다 더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악당을 물리친 영웅을 보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당을 물리쳤던 순간을 기억한다” 6) . 다시 〈원숭이 섬의 비밀〉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모험가가 길을 찾는 장면을 보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험가가 되어 (편지를 쓰고 힌트를 얻어) 길을 찾는 순간을 기억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인 조지 루카스가 만든 게임회사 루카스아츠의 〈원숭이 섬의 비밀〉은 1990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어드벤처 게임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19년 후인 2009년에 리메이크되며 많은 게임 이용자들과 스트리머들, 시청자들이 〈원숭이 섬의 비밀〉에 다시 찾기도 했다. 한편,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말 그야말로 ‘엉성한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엉성함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이 게임의 주인공 가이브러쉬 쓰립우드는 해적이 되고 싶지만 입만 살아 있는 캐릭터다. 그는 해적들과 검술 결투를 벌여 이겨야 하는데, 이때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검술 능력이 아니라 얼마나 말을 잘 받아칠 수 있는가의 정도이다. 이 세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악당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침 뱉기 대회’를 치러야 하고, 여기서 녹색 침을 뱉기 위해서 녹색 술을 마셔야 하는데 이때의 공략법은 노란 술과 파란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없는 농담과 엉뚱한 상상력은 모험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원숭이 섬의 비밀〉은 코믹 어드벤처라는 이름으로 천진하고 엉뚱한 규칙과 규범이 작동하는 세계를 만들어놓고 이용자는 그 안에서 모험을 떠나야 했는데, 8-90년대는 이러한 어드벤처(모험) 장르의 게임들이 가장 부흥했던 시기였다. 12살의 톰슨에게는 현실 논리의 바깥에 있는 이 ‘유치한’ 세계 속에서 ‘안내자 머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 톰슨은 직접 편지를 써서 힌트를 얻기로 한다. 실제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그 시절의 수많은 톰슨‘들’은 스스로 그 얼토당토하지 않은 세계의 모험가가 되었다. “동화는, 신화가 우리의 가슴에 가져다준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인류가 마련한 가장 오래된 조치들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동화가 태곳적에 인류에게 가르쳐주었고 또 오늘날에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가장 현명한 조언이 있다면 그것은 신화적 세계의 폭력을 꾀와 무모함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7) 성취가 쉬운 단순한 세계(〈일랜시아〉)와 엉뚱한 상상력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세계(〈원숭이 섬의 비밀〉), 그리고 그러한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단순하고 엉성하고 허술한 것들에 몰입하고 있던 어린 시절은 ‘지금, 여기’와는 먼 곳에 동화로 남아 있다. 게임은 그 동화로부터 시작한다. 무모한 것으로 신화의 폭력을 해결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세계가 게임이고 그것을 믿는 세계가 유년 시절이라면 어쩌면 게임은 필연적으로 유년 시절과 노스탤지어와 깊이 관계 맺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 시절의 모험가였던 수많은 톰슨들은 그 조악하고 허술한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됐지만 신화적 세계의 폭력, 현실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악몽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고향을 찾는다. 현실의 절벽을 피해 게임 속 절벽 앞에서 모인 어른들은 옛날 옛적 고향으로 가기 위해 아래로 뛰어내린다. 무모하고 무용하지만, 재밌는 모험이 될지도 모른다. 1) https://grumpygamer.com/monkey25 2) 김소미. (2020. 8. 13). ‘내언니전지현과 나’ 박윤진 감독 – 그 시절의 꿈과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씨네21. URL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976 3) Fodor, N. (1950). Variety of Nostalgia, Psychoanalysis, vol, 37. p25. 4) 이하림 (2020). 생경한 그리움 :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잔재의 이미지. 미디어, 젠더 & 문화, 35(2), 189-243. 5) Smith, K. (2000), Mere Nostalgia: Notes on a Progressive Paratheory, Rhetoric & Public Affairs, Vol.3, No. 4,.505-527. 6) Hill, M. (2015. 11. 22). Nostalgia Is Running Video Games. The Atlantic. URL: https://www.theatlantic.com/entertainment/archive/2015/11/nostalgia-video-games/416751/ 7) Benjamin, W. 이야기꾼 :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에 관한 고찰. In 최성만 (역) (2019). 〈발터 벤야민 선집 9〉. 서울: 길. 448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각문화연구자) 이하림 기억과 이야기와 이미지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쓴다. 공적 기억과 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영상 작업에 관심이 있다. 경계에 놓여있는 것들, 정착하고 못하고 부유하는 존재들에 마음이 간다. 요즘은 머뭇대며 다가가는 것, 뒤돌아보며 걸어가는 것이 글과 생활의 방법인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

  • 지구를 다시 지구로, 지금을 다시 지금으로 만들기: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를 즐기며

    < Back 지구를 다시 지구로, 지금을 다시 지금으로 만들기: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를 즐기며 05 GG Vol. 22. 4. 10. * 〈호라이즌〉 시리즈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 요소가 있습니다. 지구를 지구로 만들기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말을 점점 더 자주 듣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이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자본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가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것을 사업의 최종적인 목표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동시대 자본주의 세계의 신화처럼 전해진다. 테라포밍은 말 그대로 어떤 행성을 ‘지구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보통은 지구 바깥의 다른 행성을 지구처럼 만들어 인간이 이주하거나, 식민지로 삼기 위한 계획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다. 테라포밍이라는 말은 1942년에 발간된 잭 윌리엄슨(Jack Williamson)의 SF소설 『충돌 궤도』(Collision Orbit)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이후 1961년에는 저명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이 금성을 테라포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하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뜬구름이었던 상상에는 조금씩 구체성이 부여되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문학과 영화 그리고 게임 등 다양한 방면의 창작물에서 활용되며 SF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아 왔다. 생각해보면 테라포밍은 굉장히 식민주의적인 발상이다. 인간의 생존이나 욕망을 위해 지구 바깥의 행성을 인간의 공간으로 뒤바꾸는 것만큼 궁극적인 식민주의가 있을까. 실제로 테라포밍은 행성 간 자원개발 같은 문제와 함께 다루어지며 식민주의의 알레고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영화 〈아바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테라포밍은 단순한 착취에서 나아가 어떤 생태계를 통째로 전환하는 것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성과 인간/자연 이분법의 극한에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지구 안의 생태계에서도 인간들은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무려 지구 바깥의 다른 별을 ‘지구화’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상상인가. 그러나, 여타 ‘-되기’의 문제가 그렇듯 테라포밍은 지구가 아닌 것을 지구로 만드는 일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하면서 그 자체로 ‘과연 무엇이 지구를 만드는가’하는 질문이 되기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지구가 아닌 것이 지구가 될 수 있을까. 대체로 물과 에너지원의 존재,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대기 상태, 물질의 합성이 잘 일어날 수 있는 환경 등이 꼽힌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면 어디든 ‘지구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우리가 딛을 수 있는 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호라이즌〉 시리즈의 세계관은 고유의 탁월한 설정으로 흥미로운 영역을 열어낸다. 〈호라이즌〉 시리즈를 거칠게 요약하면, 지구를 다시 테라포밍하는 것에서 비롯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유저 경험이나 그래픽에 대한 호평도 눈에 띄지만 〈호라이즌〉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세계관에 있다. 〈호라이즌〉 시리즈는 세계가 멸망한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소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이지만, 여러 방면에서 전형성을 크게 벗어난다. 고대와 미래가 이상하게 꼬여있는 새로운 인류의 모습을 그려내고, 무엇보다 자연과 로봇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독특한 세계관은 지구가 완전히 파괴된 이후에 그것을 다시 복구하는 과정을 배경으로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호라이즌〉의 세계관에서 지구가 멸망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우리의 세계처럼 지구의 환경은 점점 더 악화되었고, 그에 따른 분쟁도 격화된다. 물론 그만큼 환경을 위한 기술도 거듭 발전했지만, 역시나 문제는 자본주의. 테드 파로라는 자본가는 유기물을 스스로 분해하여 에너지로 만들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여 큰돈을 번다. 그러한 기술은 처음에는 생태와 융합을 지향하는 친환경적인 솔루션이었고, 망가져가는 지구 생태계에 희망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군사용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된다. 2050년대에 들어서면 파로 오토메이티드 솔루션사(社)의 군사용 로봇이 선진국 군대의 대부분을 대체한다. 인류는 전쟁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군사용 로봇 시스템은 계속 발달하여 자체적으로 에너지원을 찾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통해 로봇들이 스스로 생산하고, 통제하는 일종의 생태적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그렇게 고도로 발달한 로봇 시스템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결국 ‘파로 역병’이라고 불리는 결함이 확산되면서 로봇들은 끊임없이 개체 수를 늘려나가며 지구의 모든 유기물과 생명체를 자신의 에너지원으로 바꾸어 나간다. 인간들은 저항해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지구 상의 모든 생명과 에너지원이 고갈되는 광경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 테드 파로는 로봇들의 군사 목적 활용을 반대하며 퇴사했던 핵심 개발자 엘리자베스 소백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보안을 핑계로 로봇에 접근할 수 있는 코드를 제대로 구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로봇들이 지구를 모두 파괴하기 전에 그들을 멈추는 방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소백이 찾은 유일한 방법은 지구가 완전히 황폐화된 이후에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즉 지구를 다시 테라포밍할 시스템을 갖추어 놓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지구를 포맷하는 것. 이것이 〈호라이즌: 제로 던〉에서 드러나는 ‘제로 던’ 프로젝트의 전말이다. * 테라포밍 시스템을 총괄하는 ‘가이아’의 홀로그램 모습. 그 프로젝트를 위해 전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은 지구의 멸망을 준비하며 지구를 다시 지구로 만들기 위한 알고리즘을 구축한다. 전체 테라포밍 시스템을 총괄하는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 ‘가이아’를 중심으로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가진 9개의 하위 기능이 각각의 역할을 하며 지구를 다시 지구로 만드는 시스템이 계획된다. 1) 기본적인 세계관은 이 정도로 언급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2017년에 첫 출시된 〈호라이즌: 제로 던〉이 엘리자베스 소백의 복제인간인 주인공 에일로이의 탄생 비화와 이러한 세계관의 구조를 밝혀나가는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신작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는 하데스 시스템의 오류로 문제를 일으킨 가이아의 테라포밍 시스템을 다시 복구하고, ‘제로 던' 당시에 방주를 타고 지구 바깥으로 피신했던 21세기의 고대인들과 조우하는 이야기가 핵심에 있다. 초반부에 백업된 가이아의 데이터를 찾으면, 가이아의 홀로그램과 관계를 맺으며 그의 하위 기능들을 복구해나가는 퀘스트를 통해 게임의 핵심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지구의 명운을 짊어진 인공지능들이 모두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가졌다는 점이 계속 눈에 밟힌다. 이러한 설정뿐만 아니라, 〈호라이즌〉 시리즈 전반의 서구중심주의를 먼저 비판적으로 짚을 필요가 있다. 지구를 죽이고 살린 인물들과 모든 주요 사건이 모두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거나, 심지어 미국 서부의 IT자본들이 그 모든 것의 주체가 된다는 설정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또한 신생 인류 각 부족의 모습이나 풍습을 그려내는 방식에서는 전반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입체적으로 견지하더라도 가이아가 흑인 여성의 이미지로 재현되었다는 점은 단순한 ‘PC 요소’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 될 수 있다. 가이아는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과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가 주장한 ‘가이아 가설’을 연상시킨다. 가이아 가설은 대기의 원소 구성이나 해양의 염분 농도가 오랜 시간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지구에 살고 있는 다종다양한 생물들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지구를 무생물적 기반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복합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다. 러브록은 지구를 가이아로 부르며 지구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조정하는 지적인 생명체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이른바 에코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사상적 흐름의 기반이 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가이아의 존재가 〈호라이즌〉의 세계관에서는 테크놀로지와 완전히 결합되어 있다는 점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자연을 총괄하는 여신이 인공지능 알고리듬이라는 설정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기술과 자연의 이분법을 가로지르게 된다. 여기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은 신적인 존재와 실제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 그것은 생태계의 일부, 아니 생태계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설정에서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사이보그 매니페스토』의 “여신이 되기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는 선언은 한 번 더 뒤집어지면서 전복적인 의미가 발생된다. 지금을 지금으로 만들기 이러한 요소 이외에도 〈호라이즌〉이 흥미로운 여성 서사인 이유는, 단지 주인공 에일로이가 여성이라는 점이나 에일로이가 태어난 노라 부족이 모계 사회라는 설정을 훨씬 초과한다. 2) 오히려 21세기 인류의 지식과 역사를 신생 인류에게 전달했어야 할 남신 아폴로의 이름을 딴 인공지능이 파괴된 상태로 리셋된 지구가 서사의 배경이라는 점이 더욱 근본적인 차이를 만든다. 생물학적인 이분법에서의 여성이 아니라, 남근적 대문자 역사와의 관계 속에서 여성적인 것의 위상을 고민해야 한다. 플레이어가 에일로이와 함께 탐험하는 세계는 고대(21세기)와 역사적 단절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고대의 사물들은 말 그대로 고고학적 사물이 된다. 푸코(Michel Foucault)는 『지식의 고고학』 등 텍스트를 통해서 고고학을 역사와 대별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역사는 세계를 선형적이고 논리적인 시간에 배치하는 작업이다. 또한 역사는 서술하는 주체의 관점에서의 질서이다. 그러나, 고고학은 땅에 파묻혀 있던 것을 갑자기 지금-여기에 튀어나오게 하면서 잘 정리되어 있던 역사적 배열을 깨뜨리곤 한다. 그렇기에 고고학적 사유에는 일종의 변증법이 작동하는 것이다. * 테낙스 부족이 신전으로 삼고 있는 과거의 전쟁기념관에서 포커스로 데이터를 발견했다. 설정에 따라 데이터 손상이 심한 경우에는 내용의 일부가 누락되곤 한다. 〈호라이즌〉 시리즈에서 플레이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에일로이가 관자놀이에 끼고 다니는 ‘포커스’의 활용이다. 일종의 AR기기인 포커스는 플레이어가 버튼을 누르면 주변 공간을 스캔하면서 기존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낯선 공간에 진입하면 패드의 버튼을 연신 눌러대며 새로운 요소는 없는지, 혹은 유실된 데이터 포인트는 없는지 말 그대로 발굴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게 발견되는 데이터 포인트의 정보들은 게임의 퍼즐 요소에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게임 속 세계의 고대(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근미래인 21세기 중반)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그것은 단지 읽을 거리를 제공할 뿐이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이상하게 뒤틀리는 감각을 주어 흥미롭게 작동한다. 듀얼센스를 잡고 있는 플레이어의 시간에서 현재가 게임 속 에일로이의 시점에서는 고대가 되면서,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지금을 발굴하는 작업하게 된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서는 북미 대륙의 서쪽으로 나아가면서 동부 출신인 에일로이 입장에서는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종족으로 여겨졌던 테낙스 부족을 만나게 된다. 처음 그들이 등장했을 때, 현대식 군대 제식에서나 볼 수 있는 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성지로 삼고 있는 공간은 21세기의 전쟁기념관이었다. 그들은 그곳의 홀로그램 자료들을 기반으로 일종의 종교를 만들어 고대의 전사들을 섬기면서, 전쟁기념관의 프로파간다 영상들이 제시하는 이념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공간 이외에도 〈호라이즌〉에는 데이터가 보관된 서버룸이나, 일종의 시드볼트, 심지어 인류의 유산으로 여겨지는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가 등장한다. 결코 불가능한 영원성을 전제하면서 시간들을 하나의 지평에 물질적으로 모아내는 장소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이례적인 위상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시간에 대한 감각을 꼬아내는 설정은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전개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점에서도 작동하는데, 가이아의 백업 데이터를 처음 발견하는 곳에서 플레이어는 정말로 뜬금없이 구 인류의 생존 세력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청난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보호막을 입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활을 쏘는 것 밖에 없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엄청난 무력감을 느낀다. 플레이어를 당황시키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꼬여있어서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할지도 헷갈린다. 비슷한 맥락에서 게임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퀜 부족은 에일로이처럼 포커스를 지니고 있어서, 고대의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소벡 박사와 똑같이 생긴 에일로이를 ‘살아있는 선조’(living ancestor)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계관 전반의 이렇게 꼬여있는 시간성을 통해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다시 돌아볼 수 있다. * 지구로 돌아온 구 인류의 일원인 틸다 판 더 미어는 자신의 수장고에 고대 인류의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설정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라익스미술관(Rijksmuseum)과 협업 프로젝트로 이루어졌다. 관련 링크: https://blog.playstation.com/2022/04/06/preserving-art-through-tildas-vault-in-horizon-forbidden-west/ 회복이 아닌 전복 SF,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은 이렇게 지금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또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세계가 몽땅 망해버린 이후에도 이야기를 이어갈 누군가를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희망의 서사이기도 하다. 파국을 뜻하는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는 아무것도 없는 절멸을 뜻하지 않는다. 어원적으로 그것은 ‘아래로 뒤집다.’ 혹은 ‘반전’이라는 뜻과 통한다. 그러한 세계의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것은 사실 무언가 뒤집어져 쏟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라이즌〉의 서사도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결국 인류는 승리할 것이라는 인간중심적인 감동을 주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그런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홀로그램으로 과거의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모습이 복원되는 장면 등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인류애를 자극하는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라이즌〉의 세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에일로이의 동료들과 그 시대의 인간들이 ‘우리’ 인간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우리 시대의 인간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들은 지구로 다시 돌아와서도 깽판을 치고 결국 복제인간인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한다. 에일로이와 동료들은 단지 시대적으로 우리 시대 이후의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복제인간이거나 대부분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배양되어 태어난 말 그대로의 포스트-휴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호라이즌〉은 인류를 회복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전복시키는 이야기이다. 〈호라이즌〉은 이렇게 인간 너머의 인간들, 그러니까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성찰하게 만드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이런 식으로 〈호라이즌〉은 같아 보이는 것의 다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것, 지구이면서 지구가 아닌 것, 지금이면서 지금이 아닌 것. 지구를 다시 지구로 만드는 작업은 반복이지만, 차이를 가지고 있는 반복이 된다. 아니, 사실 차이는 반복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여기에서 시간의 문제는 특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SF가 가지는 근본적인 가능성은 그러한 시간성에 있다. SF의 시간성은 순간적으로 우리의 지금을 돌아볼 수 있는 틈새를 만든다. 우리는 오직 미래를 통해서만 현재를 볼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아닌 존재들을 통해서만 우리를 돌아볼 수 있다. 1) 가이아의 하위 기능들의 역할을 간략히 정리한 메모를 덧붙인다. 미네르바는 인류가 멸종한 이후에도 파로의 로봇들을 멈추기 위한 코드 분석을 지속하여 결국 로봇들을 멈추는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이다. 그렇게 미네르바가 군사용 로봇을 멈추면, 헤파이토스는 지구 곳곳에 소위 ‘가마솥’(cauldron)이라고 불리는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동물 형태의 생태적 로봇들을 만들어 지구에 순환 시스템을 복구한다. 동시에 아이테르는 대기를, 포세이돈은 바다를 정화하고, 데메테르는 토양을 복원하여 식물이 다시 생장하도록 돕는다. 아르테미스는 생체 동물들의 유전자를 복원하여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엘리우시아는 인간의 유전자를 보관하고 있다가 생태계가 복원되면 인간을 배양하여 태어나게 만들고, 나아가 인큐베이팅까지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인간들은 정보와 지식의 아카이브인 아폴로를 통해 21세기 수준의 지식을 다시 복원하고, 무엇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파로 역병’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공유한다. (사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제로 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파로가 자신의 과오가 영원히 남는 것이 두려워 아폴로를 파괴해버렸기 때문이다. 지구의 테라포밍 이후에 다시 태어난 인류가 고대 문명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데스는, 테라포밍이 오류를 일으키는 것을 대비하여 이 모든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모든 것을 다시 초기화한 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2) 물론 〈호라이즌〉은 거대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지구의 운명을 건 서사이고, 때로는 에일로이가 남성 영웅의 여성 버전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는 플레이의 중요한 기점 곳곳에서 주어지는 대화의 선택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지점이다. 에일로이는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서사의 인물이 아니라, 게임의 플레이어가 만들어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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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10 대규모 인력과 자본을 투여해 만들어지는 트리플 A 게임은 현대 비디오게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덕분에 얻게 되는 가능성 뿐 아니라 한계도 동시에 존재한다. 트리플 A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Read More Prompt2Videogame: 더빙의 오래된 미래 이러한 맥락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데스티니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 너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조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질 GPT-4(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모델)에 연동된 데스티니는 플레이어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잠재적인 사운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리 녹음을 했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운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따라 반응이 3가지 정도로 나뉘는 고전적인 NPC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대화의 분기가 한 10가지쯤 될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긴밀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며, 그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사나 대화에 있어서 데스티니에게 기존 게임 사운드의 특성들을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Read More The Coevolution of Arcade Games, Gamers, and Interfaces As such, interfaces may evolve to accurately construct the ideals projected on the design, but that design can easily change based on coincidental chance. The modified interface also brings about transformation to one’s gameplay itself, and this change in gameplay can change the experience provided by the game, thus bringing about an effect that makes the game itself feel different. Therefore, the interface is not merely a simple input device nor a factor that does not bring any fundamental changes to the game, but rather is the very hardware that constitutes the game and simultaneously the “physicalized” mechanical object connected to the gamer. The interface does not evolve or progress according to the game’s design; it lies in the process of ever-changing co-evolution while interacting with the game, the gamer, and all environments tied to the self. Read More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Read More [Editor's View] 트리플 A, 거대한 만큼 희미한 개념을 헤치며 안녕하세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입니다. GG의 호수가 오늘로 두자릿수에 진입했습니다. 격월로 나가는 호로 10회니 벌써 20개월을 지나왔다는 이야기겠지요. 매 호마다 GG는 오늘날 게임문화담론의 주요한 테마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그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기획을 실어왔습니다. 때로는 기술에, 때로는 문화에 초점을 맞추며 지난 10호는 한국 게임문화담론을 이루는 여러 기초적인 요소들을 탐색해온 바 있습니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Sexuality does not belong to the game” - Discourses in Overwatch Community and the Privilege of Belonging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AA급 게임 〈오버워치(OVERWATCH)〉. 〈오버워치〉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내 다양한 논쟁이 오갔던 201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오버워치〉에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왔고 이를 통해 드러난 현상과 논의들이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기를 풍미한 〈오버워치〉는 작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해 후속작인 〈오버워치 2(OVERWATCH 2)〉로 재탄생했다. 이 글은 Triple A!라는 주제를 맞아,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한 AAA급 게임 〈오버워치〉에 관한 한 논문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오버워치 속 ‘퀴어’를 다룬 논문이다. Read More [인터뷰] : “중꺾마”의 장본인,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인터뷰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처음 사용한 문대찬 기자가 ‘게임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일간지의 기자라는 점이다. 문대찬 기자가 소속된 쿠키뉴스는 2005년에 만들어진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인터넷 종합일간지가 게임을 다룬다는 점을 넘어, 게이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일반에 진출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보게 한다. ‘중꺾마’의 대중화만 하더라도 게임과 게임 산업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게임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중꺾마’의 장본인인 문대찬 기자와 만나, 게임이 서브컬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Read More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Read More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Read More 게임 to 현실, 현실 to 게임: <게임의 사회학> 서평 〈게임 사회학〉은 저자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게이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였을지 이유를 추적하고 그 인과성을 검증하는 모델을 세우는 과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정량적인 연구라도 연구 문제를 설계하고 모델에 어떤 변수를 채택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이나 통계학 연구자들이 딥러닝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딥러닝 모델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필요성이 부각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I는 알고리즘이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추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량적인 연구와 정성적인 연구가 연결되는 지점이며, 앞으로 게임과 그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Read More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2023년 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를 발행했다. 백서는 연 1회 발행되며,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수출입,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e스포츠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이나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Read More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Read More 고전게임 리메이크에서 트리플 A를 고려하는 방식에 관하여 세간에서 말하는 트리플A 게임만의 매력은 뭘까? 아무래도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세대의 가장 앞선 기술을 다각도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포기하기 어려운 요소이다. 특히 게임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게임-문법은 이미 앞세대의 게임에서 대개 구현이 완성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트리플A 게임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비주얼과 사운드라는 면에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생산비 증가와 개발 기간의 장기화라는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선 ‘트리플A 포기론’까지 나올 정도이다. Read More 규모의 문화상품 -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 약간의 오해를 감수하고 말해보자면, 어느 순간부터 게임 시장은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는 트리플A 게임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 영화의 블록버스터 개념과도 차이를 보인다.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범주 속에 블록버스터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업영화가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중저예산의 로맨스, 코미디, 호러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영화들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 비상업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다만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 제작, 유통, 홍보되는 영화가 아닌 작은 규모의 상업영화일 뿐이다. 게임은 그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영화는 소수의 블록버스터를 ‘텐트폴 영화’라 부르며 그에 속하지 않는 다수의 저예산 상업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으로 구성된 시장을 지닌다. 게임도 몇몇 트리플A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스트레이〉(2022), 〈잇 테이크 투〉(2021)와 같은 인디게임들이 흥행을 기록하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2022)처럼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트리플A 게임이든 인디게임이든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비상업적 게임”이라는 어색한 어감의 단어조합은 극소수의 예술적 게임, 혹은 전시나 공공성을 위해 만들어진 몇몇 게임만이 속해 있을 뿐이다. Read More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에 대해 생각해보기 2022년 9월 29일 구글 스태디아의 서비스 종료가 발표되었다. 스태디아는 클라우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서비스로 또 한가지의 특징은 월정액으로 구글이 계약해서 제공하는 여러 게임을 플레이할수 있는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였다는 점이다. 다만 따로 돈을 내야하는 게임도 있어서 완전한 구독형 서비스는 아니었다. 제공하는 게임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최신 게임을 하려면 월정액 요금 외에도 추가적인 비용을 내야했기 때문에 구글 스테디아는 이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구글의 의지 부족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Read More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Read More 엘든 링: 황금 나무가 솟은 정원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완성한 지도에서 더 이상 가지 않은 장소는 없으며, 무한한 탐험을 약속하던 세계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그때 〈엘든 링〉은 그림 같은 정원에 가까워진다. 자연물과 폐허를 포함한 정원은 “열정적인 기억, 회한,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잘 자극할 목적으로 새로이 부재를 만들어낸다.”16) 설령 엔딩이 일종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에도, 플레이어들은 불완전한 총체성을 해소할 길 없이 꿈꾸며 정원을 헤맨다. Read More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에 이렇게 진부한 요소들이- <승리의 여신: 니케>의 SF 세계관과 캐릭터 디자인의 충돌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2022년 11월 시프트업에서 제작하고 레벨 인피니트에서 서비스하는 FPS/TPS 모바일 게임이다. 출시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광고에서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2019년 처음 트레일러가 발표되었을 당시 캐릭터들의 섹슈얼한 디자인과 가슴과 엉덩이의 모핑(morphing)이 과도하게 부각된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화젯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2022년 출시를 앞두고서도 미디어를 통한 광고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부각된 광고가 있었다. Read More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Read More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Read More

  • Inside BIC 2021- 감염병 시대의 인디게임페스티벌 참관기

    < Back Inside BIC 2021- 감염병 시대의 인디게임페스티벌 참관기 02 GG Vol. 21. 8. 10. 부산행 전날, 병원에 들러 코로나 PCR 진단검사를 받았다.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BIC Festival)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PCR 음성 확인증(혹은 백신 접종 완료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년 BIC-2020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감염병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철저한 방역 절차 아래 오프라인에서도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렇듯,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정서를 하나 꼽아보자면 ‘불안’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염자가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딜 가든 짙게 깔려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 게임은, 그 중에서도 인디 게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떠안은 채 9월 9일 부산으로 향했다. 서면 e스포츠 경기장에 도착해 PCR 확인 스티커를 받고, 온도체크와 QR 체크인을 완료한 후, 전시장의 게임 부스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올해 BIC-2021 행사의 일부로 기억되었다. BIC 페스티벌은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참여하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글로벌 인디게임 축제다. 2015년에 처음 개최된 이후, BIC 참가작들은 창의적인 게임 메커니즘을 시도 하거나 더 이상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면서 게임의 표현양식을 확장시켜 왔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상업적인 요소를 추구하는 참가작도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다양한 실험적인 게임들이 선보여지는 자리다. 안전한 성공의 공식만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디 게임은 불안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람들의 게임이기도 하다. 나아가 불안은 게임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인 요소다. 게임 연구자 예스퍼 율(Jesper Juul)은 플레이어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게임은 지루한 게임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한다.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불안함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게임인 것이다. 물론 게임에서 우리는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에서의 실패는 그다지 무겁지 않다. 많은 경우, 사람은 게임에서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금방 털어낼 수 있다. (당신이 가챠 게임에 엄청난 액수를 낭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은 실패와 불안에 대한 면역을 길러주는 백신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번 BIC-2021의 참가작 들 중 일부를 현재의 코로나 상황과 연관 속에서 리뷰해보고자 한다. 전세계적인 감염병 유행이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 이번 BIC-2021 참가작들을 맥락화해서 기록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게임 페스티벌의 특성상 완성된 게임이 아닌 데모버전의 게임들을 짧은 시간동안 플레이 해 보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건택틱스〉 -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과거에는 사람이었던 존재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공격받은 사람은 또 다시 감염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좀비 감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아군과 적군이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다. 누구나 좀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포 더 던〉, 〈배틀LIVE〉, 〈페이티드 얼라이브〉, 등, 감염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하는 좀비가 등장하는 게임을 올해 참가작 중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의 〈건택틱스〉가 눈길을 끌었다. 3*3의 사각형 안에서 캐릭터 카드를 이동시키며 좀비와 싸우거나 피하거나를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좀비 서바이벌 카드 게임이다. 제한된 칸 안에서만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사실 이 게임에서 ‘좀비’는 끝없이 몰려오는 적을 상징할 뿐, 아무리 많은 좀비를 처치하더라도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이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좀비를 없애면 새로운 좀비 카드가 생산되어 필드에 나타나고, 다음 스테이지를 해금하면 더 강력한 좀비들이 나타난다. 게임 속 상황은 일견 절망적으로 보인다. 몇 달이면 코로나가 없었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믿었지만 1년 넘게 확진자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금 우리의 상황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건택틱스〉를 플레이하다보면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스테이지에서 패배하더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필드에서 주은 코인으로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켜 더 나은 조건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어쩔 때는 좀비에게 포위당해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일도 생기지만, 그런 불안함 또한 이 게임을 스릴 있는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 중 하나다. * 〈건택틱스〉 플레이 화면. 〈디바이스0101〉 - 고립의 공포 낯선 방에서 눈을 뜬다. 모든 문은 잠겨있다. 플레이어는 숨겨진 아이템을 찾고 퍼즐을 풀어서 방을 탈출해야 한다. 복고풍 도트 그래픽과 퍼즐요소가 가미된 미스터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RPG메이커 제작툴을 이용해 만들어진 〈디바이스0101〉은 과거에 유행하던 방 탈출 게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이유, 다른 가족들의 행방,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등, 초반부 스토리가 흡입력이 있어 완성이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편, 외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표상되는 위험이 존재하며 별장 내부에 고립되어 있는 게임 속 상황은, 오늘날 바이러스의 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집에 머무르는 요즘 우리의 모습과도 맞닿아있는 것도 같다. * 〈디바이스0101〉 플레이 화면. 〈셔터냥〉, 너와 나를 이어주는 카메라 〈셔터냥〉은 길을 잃은 고양이가 카메라를 이용해 소녀에게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따뜻한 분위기의 플랫포머 게임이다. 마우스 왼쪽 클릭을 하면 고양이가 머리에 쓴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오른쪽 클릭을 눌러 찍은 사진을 맵에 배치할 수 있다. 다양한 오브젝트들을 복제해 그 위를 점프하고 이동하는, 제작자들이 ‘카메라 액션’이라고 이름 붙인 창의적인 게임 메커니즘이 돋보인다.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게임으로 이 있다. 플레이어는 액션 영화를 촬영하는 배우이자 카메라가 되어, 건물들 사이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배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 혼자 플레이할 때는 왼손 키보드로 배우를 이동하는 동시에 오른손 마우스로는 카메라를 조종하고, 두 사람이 플레이하는 경우에는 각각 키보드-배우와 마우스-카메라를 담당해 플레이하면 된다. 카메라 화면 밖으로 배우의 모습이 완전히 벗어나면 게임 오버다. 왼손과 오른손의 조화, 배우를 조종하는 사람과 카메라를 조종하는 사람의 협동이 요구되는, 창의적이면서도 컨트롤 난이도가 있는 게임이다. 두 게임에서 게임 화면 속 ‘카메라’ 화면이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모니터 속에 또 다른 화면이라는 점에서 두 게임 모두 메타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그것이 독특한 게임 컨트롤 메커니즘과도 연관되어 있어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때 각각의 카메라는 두 존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셔터냥〉에서는 소녀와 고양이가 만날 수 있도록 매개해주는 역할을, 에서는 카메라와 배우의 협동을 이끌어낸다. 교실문이 잠기고, 많은 기업들은 비대면 출근을 시행하는 비대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영상 통화나 화상 채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 〈셔터냥〉과 은 이 같은 매개된 연결감각이 반영된 게임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셔터냥〉 플레이 화면. * 〈Ready Action〉 플레이 화면. 〈더웨이크〉 -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혼수상태에 빠진 한 남자가 일기장을 남겼다. 일기장은 남자의 거짓말을 암호로 바꾸어 기록해주었다. 〈레플리카〉와 〈리갈던전〉에 이어 ‘죄책감 3부작’을 마무리하는 개발자 소미(Somi)의 신작 〈더웨이크〉이다. 플레이어는 일기장의 암호를 해독해 나가며 남자의 과거 기억들을 따라가게 된다. 일기장의 주인인 남자는 어린 시절 형제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혐오하면서도 연민하며,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전철을 밟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모순된 감정을 남자는 “거짓”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어쩌면 내 삶은, 이 한 문장이 전부였구나, 싶다. ‘내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 게임은 언뜻 한 남자의 개인적인 일생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기록’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 진실은 때로는 모순되며 논리적이지도 않다. 사건은 생략되고, 누락되거나, 혹은 강조되면서 여러 방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 누락되어서 읽히지 않았던 암호가 해독된 후, 일기는 조금 더 복합적인 진실을 보여준다. 먼 훗날 우리는 코로나19 판데믹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게 될까? 배달 플랫폼, 게임, 메타버스 산업의 성장을 촉진했지만, 동시에 청소년들의 학업 성취도를 낮추고 소중한 학창 시절 추억을 쌓을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성공적인 방역 관리 체계를 보여주었지만,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 주거 격차가 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2021년을 우리는 나중에 어떻게 떠올리게 될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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