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작성날짜 : 2021-10-02

개인적인 이야기로 운을 띄우자면 어릴 적 게임보이 어드밴스로 〈포켓몬스터 실버〉를 처음 접했을 때 컬러 도트 그래픽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배틀하던 포켓몬들, 사각 타일의 마을에서 움직이는 2등신 도트의 주인공 캐릭터를 움직이던 경험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당시 시리즈의 8비트 OST는 게임을 더욱 즐겁게 해준 일등공신이었다. 휴대용 게임기는 필자를 새로운 취미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게임보이, 닌텐도DS, 닌텐도 3DS를 거쳐 닌텐도 스위치까지 가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GBA 도트 그래픽 기반의 〈젤다의 전설: 이상한 나무열매 - 대지의 장〉과 같은 탑다운 어드벤처와 횡스크롤 슈팅 게임 〈다라이어스 R〉 처럼 2차원 평면 구조의 게임들만 접해 온 어중간한 게이머의 눈에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3차원 오픈월드 기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발전한 게임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고, 기술의 위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다크소울〉을 휴대용 게임기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했을까. 고품질 텍스처들은 생동감을 강조해주었고, 수려한 파티클 이펙트와 사운드는 캐주얼과 코어 게이머를 아울렀다. 


돌이켜보면 시대의 흐름이었다. 컴퓨팅 능력은 끊임없이 발전했고, 경쟁적 기술 사회에 발맞춰 게임 성능도 점점 좋아졌다. 보다 높은 퀄리티의 현실 같은 그래픽에 기반한 게임 경험에의 요구는 당연했다. 게임은 상품이었고,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산업이었다. 게임사들이 주도하던 게임 시장은 거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더욱 기술발전에 가까워져 갔다. 


물론 단순히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그래픽 변화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높아진 메모리 용량으로 더 많은 게임 시스템을 처리할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다양한 장르들이 이를 통해 분화하고 깊어졌다. 각각의 게임 시리즈는 다채롭게 진화하며 게이머를 사로잡아 왔다. 발전하는 거치형 콘솔과 PC를 만나면서 재현된 게임 속 세계는 현실과 견주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게임을 고르는 것에 고해상도의 현실적인 그래픽, 뛰어난 상호작용성을 가진 게임 시스템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동시에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 안정적인 게임 경험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다수의 메이저 게임사들은 보장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러한 기술발전의 결과들을 새로운 게임 개발에 지속적으로 가져온다. 


기술의 발전으로 나날이 '고퀄'화되는 게임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올해 접한 게임 중 가장 즐거웠던 게임을 꼽자면 〈오모리(OMORI)〉와 〈이온 퓨리(Ion Fury)〉다. 메이저 게임사들이 만들어 낸 AAA급 퀄리티의 게임들이 아닌, 개인 또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오히려 초기 기술에 가까운 시각적 재현을 보여주는 게임들이다. 〈오모리〉는 2020년 12월 출시한 레트로 스타일의 탑다운 어드벤처 RPG 게임으로, ‘OMOCAT’이라는 일본계 미국인 만화가가 동명의 인디 게임회사에서 킥스타터 펀딩을 통해 개발한 게임이다.  게임 툴 ‘RPG 쯔꾸르(RPG 만들기, RPG Maker)’를 통해 개발된 게임은 전형적인 레트로 형식의 2D 도트 그래픽이며, 시나리오는 닌텐도의 〈마더〉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이온 퓨리〉는 2018년 2월 스팀 얼리 엑세스를 통해 2019년 8월 정식 발매한 ‘보이드포인트(Voidpoint)’라는 인디 게임회사에서 개발된 올드 스쿨 FPS 게임으로, 배급사인 ‘3D렐름(3D Realms)’의 1990년대 FPS 게임 엔진인 ‘빌드 엔진’으로 개발해 고전 〈듀크 뉴켐 3D〉과 같이 90년대 FPS 문법을 활용한 게임 시스템과 2D 캐릭터와 3D 배경 디자인으로 경쾌한 슈팅 액션을 엿볼 수 있다. 


* 〈오모리〉 스크린샷. 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게임 장르를 설명하는 고전, 레트로, 클래식, 올드 스쿨 등 단어들은 최근 인디 개발자들이 자신의 게임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곤 한다. 게임 장르에서 경계를 나누어 구식과 신식을 나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특징과 스타일을 통해 레트로라는 이름의 장르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인데, 예를 들면 올드 스쿨 FPS, cCRPG(Classic Computer RPG), 고전 JRPG, 고전 2D 플랫포머 등을 거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레트로 장르라고 부를 수 있을, 기술이 지금보다 낮은 단계에 있을 때 구현된 특유의 스타일을 동시대 인디 게임들이 다시 가져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스팀'과 같은 플랫폼의 등장은 인디 게임 시장과 가능성을 확장했고, 인디 개발자들로 하여금 시장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개성있는 장르의 게임 개발을 가능케 했다. 2010년대 이후 시작된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 시장 확대 또한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같은 개방적 게임 플랫폼, '구글 인디 게임 페스티벌'과 같은 지원정책 등에 힘입어 인디 게임의 개발과 유통에 새 루트를 만들며 인디 게임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디 게임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함을 강조하기 위해, 인디의 자율성을 적극 활용한다. 시장의 대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은 다양한 장르의 활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레트로 문법의 차용이 어색하지 않은 개발 환경이 되었다.


레트로 장르를 인디 게임들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이유를 꼽자면 개발 관점에서 필요한 (자본이 크게 드는)기술에 대한 요구치가 높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기술적 한계로 오브젝트를 지금보다 더 강하게 추상화했다는 점은 그래픽 리소스와 같은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가장 저렴하게 구현해볼 수 있는 개발방법론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미 앞서 출시된 과거의 게임들을 레퍼런스 삼아 개발하는 과정의 용이성 또한 장점으로 거론될 것이다. 이런 장점들을 토대로 레트로 게임에 대한 오마주, 창조적 모방, 벤치마킹 등을 통해 현대의 인디 게임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리소스 상황에서도 충분한 창의적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맞게 되었다.  


그렇게 레트로 게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오늘날의 인디 개발자들을 통해 레트로 장르 자체의 재현(Representation)으로 나타난다. 레트로 게임들이 예전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측면에서 게임 장르에 대한 재현의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레트로 장르에 대한 모방으로서의 재현이 아니며, 레트로 장르가 현대적 상황과 감각에 맞도록 각 개발자들의 관점과 역량에 의해 재구성된 결과물이다. 레트로 장르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변주와 재해석을 통해 레트로 게임들의 의미는 현대에서도 다시금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다. 인디 올드 스쿨 FPS 퍼블리셔인 ‘뉴블러드 인터렉티브(New Blood Intertactive)’는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통해 재현된 올드 스쿨 FPS 장르가 사라졌다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했지만 누군가 새로이 원하게 되어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레트로 장르는 사라지거나 단절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순환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현대 인디게임에서의 레트로 재현이 장르적 융합과 변주를 통해 재해석되는 과정과 결과는 2018년 출시한 리듬 게임 〈올드 스쿨 뮤지컬〉의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게임은 레트로 게임 장르들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를 통한 장르적 융합의 한 사례다. 8비트 칩튠 사운드와 레트로 장르의 게임 플레이를 BGA(BackGround Animation)로 재현하여 리듬 게임 장르와 결합한 〈올드 스쿨 뮤지컬〉 의 메인 디렉터인 프랑수아 베르트랑(Francois Bertrand)은 이전 기획작인 〈8Bit The Musical〉이 자신이 좋아하던 리듬 게임을 통해 레트로 게이밍에 대한 러브레터가 되기를 바랬다고 회고한다. 비디오 게임을 통해 힘든 어린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레트로 게임들에 대한 감사와 추억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레트로 장르에 대해 인디 게임 개발자이 갖는 자신들의 과거 게임 경험이 주었던 즐거움과 추억이 게임 개발의 주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또한 레트로 장르가 인디 개발자들에 의해 다시금 활용되는 이유다.

〈올드 스쿨 뮤지컬〉. 이미지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이러한 점들을 돌이켜보면 인디게임에서 레트로 장르를 활용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레트로 장르의 현대적 계승으로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완결된 게임 시리즈, 다양한 이유로 후속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거나 오랜 기간 개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시리즈들을 인디 게임 씬(Scene)에서 장르 혹은 게임 디자인을 가져와 계승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계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가진 경험과 시각 - 고전 게임의 계승을 시도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가졌던 게임 경험에 대한 추억과 헌정이라는 점에서 - 에 의해 융합과 변주를 거친 재해석의 결과물로서 의미지어진다. 

인디 게임들이 ‘정신적 계승작’, ‘정신적 후속작’과 같은 대담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레트로 장르에 대한 실천적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레트로 장르의 계승은 인디 게임의 장르를 풍부하게 함과 동시에 고전 명작을 다시 현대로 불러오고 장르의 대중화를 장려한다. 물론 이는 전체 게임 생태계에서 보자면 비약적인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디 개발자들의 작업이 단순히 낡은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게임디자인과 장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이를 통해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에게 각각 추억과 새로움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트로배니아(Metroidvania)’ 장르는 이러한 레트로 - 인디 트렌드의 수혜자이자 결과물이다. 인디 게임의 저변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면서 고전 게임의 규칙은 동시대의 보편 장르로도 의미지어지기 시작하며 캐주얼 게이머들의 입에까지 오르는 상황을 맞았다. 해당 장르의 원류인 〈메트로이드〉 2D 시리즈와 〈캐슬배니아〉 시리즈는 메이저 게임 시장의 주류 장르들이 교체되는 시대적 유행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메트로배니아는 현재 AAA급 게임들에 비하면 꽤나 단순한 구조의 게임 디자인과 2D 횡스크롤이라는 특징에서 낡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충실히 이 장르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액시옴 버지(Axiom Verge)〉, 〈할로우 나이트〉, 〈데드 셀〉 등과 같은 인디 게임들이 성공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냄으로써, 2010년대 이후 메트로배니아는 여전히 유효한 장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과거 메트로배니아 팬덤과 현재의 새롭게 진입한 게이머 모두에게 레트로 장르가 가지고 있던 규칙을 다듬고, 새로운 해석과 재현의 문법과 결합시키며 장르를 일신했다.


* 19년만에 〈메트로이드〉 시리즈 정식 후속작이 나온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레트로 장르에 대한 현대적 계승은 비판적 수용을 통한 계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수용으로서의 장르적 재현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한 점은 레트로 장르는 시초(Beginning)와도 같은 오래된 문법이라는 점으로, 어떤 식으로 든 동시대에 대중적으로 의미지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현재 인디 개발자의 관점을 통해 새롭게 다듬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비판적인 접근을 통해 과거 장르가 가진 오늘날에는 불필요한 낡은 지점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현대적 문법을 통한 변주나 타 장르와의 융합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측면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작품이 〈디스코 엘리시움〉일 것이다. 게임의 외형은 cCRPG의 기본적인 게임 디자인을 통해 나타나지만, 마냥 cCRPG의 클래식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다. 고전적인 불편한 요소들을 버리고 편의성을 현대적으로 수정했지만, cCRPG의 비선형적인 레벨 디자인은 훌륭하게 재현했다. 이뿐 아니라 cCRPG의 강점인 내러티브 경험을 위해 다시 레트로 장르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스타일이 플레이 내러티브에 결합했다. 이러한 요소들의 누적은 〈디스코 엘리시움〉이 가지고 있는 레트로로서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편의성을 구현해냈다.


〈액시옴 버지(Axiom Verge)〉와 〈디스코 엘리시움〉. 


인디게임이 다루는 레트로 게임의 가장 큰 의미는 앞서도 언급한 바처럼 고전을 활용한 융합과 계승을 통해 장르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순환시킨다는 점이다. 인디 게임 시장이 커짐에 따라 각각 게임들의 유사성을 피하기는 정말 어려워졌다. 이러한 이유로 인디 게임 개발자들은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여 돌파를 꾀했다. 레트로 장르는 게임 장르의 시작과도 같다. 게임들이 정말 재밌다고 느낄 수 있는 것에는 장르의 즐거움 또한 클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 본연의 재미 같은 원초적인 레트로 장르들이 현대에도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박수진(게임문화연구자)




이공계를 탈출하여 게임문화연구에 이제 발을 들인 예비 연구자입니다. 대학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아직도 벅차지만, 게임과 얽힌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 노력하면서 오늘도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