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작성날짜 : 2021-10-01

편지와 절벽을 함께 떠올리며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1)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게임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해서 당신처럼 훌륭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말로 끝나는 여느 팬레터 같지만, 사실 이 편지의 용건은 다른 데에 있다. “어떻게 하면 원주민들에게서 ‘안내자의 머리’를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거나 힌트를 줄 수 있나요(Could you please tell me or give me a hint on how to get the navigating head from the natives)?” 톰슨은 게임의 공략법을 구하기 위해 개발자에게 직접 편지를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모험은 단지 컴퓨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주인공 가이브러쉬(Guybrush)가 해적이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나 아이템과 힌트를 찾고 장애물을 넘고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이 12살 어린이도 자신의 모험 중 맞닥뜨린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힌트와 아이템을 구하고 있었다.


12살의 모험가 톰슨은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에는 아직도 ‘원숭이 섬’을 떠나지 못하는 몇몇 어른들이 등장한다. 1999년 론칭된 이후 시간이 흘러 이용자도 얼마 남지 않고 더 이상 업데이트도 되지 않는 게임 〈일랜시아〉에 접속하는 ‘내언니전지현(감독 박윤진의 게임 캐릭터)’과 그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일랜시아〉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돌고 돌아 〈일랜시아〉를 다시 찾는다2)". 영화는 내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찬 현실 세계와 집단적 향수의 공간이 되어버린 게임 세계를 번갈아 비춘다. 그러다가 영화의 후반부에는 내언니전지현과 길드원들이 게임 맵의 절벽 앞에 다 함께 모여 차례로 유언을 남기고 그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죽지 않는 절벽 낙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놀이 혹은 퍼포먼스인데, 어쩐지 이 낙하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곳에 가닿기 위한 움직임처럼 보였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원숭이 섬에서, 그곳에 남은 최후의 어른들은 얼마간 슬프고 무모한 모험을 떠나고 있었다. 이 여정은 시간을 거스르고자 한다.


톰슨의 편지를 읽으며 절벽 앞에 서 있는 내언니전지현을 생각했다. 12살 톰슨으로 돌아가고 싶은 내언니전지현을 떠올리며 과거의 게임들이 다시 인기를 얻는 최근의 현상이 단지 플랫폼, 그래픽 스타일, 뉴트로 산업, 복고 열풍 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느꼈다. 왜 어떤 어른들은 ‘안내자의 머리’를 얻기 위해 직접 편지를 써야 했던 어린 시절 주변에서 서성대는가? 29살의 내언니전지현은 왜 더 이상 개발되지 않는 과거의 섬에 계속 남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가? 우리는 왜 어린 시절의 모험담을 잊지 못하며 심지어 이미 퇴색해버린 모험의 세계로 다시 시간을 거슬러 모험을 떠나는가? 그때의 모험과 지금의 모험은 어떻게 다시 만나는가?


* 다큐멘터리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공식 스틸컷.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조국은 왜 향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동화 속의 나라가 되는가?”3)


노스탤지어는 동시대 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들 중 하나다.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과거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적어놓은 댓글들, 어린 시절 접속했던 게임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오래전 유행가가 다시 순위 역주행을 했다는 기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래전 문화, 예술, 그리고 미디어의 많은 부분이 복고, 레트로 열풍의 흐름 안에서 소개되면서 더 이상 그것을 경험한 적 없는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 되고 있다. 최근 〈슈퍼 마리오〉, 〈소니 더 헤지호그〉부터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리니지 리마스터〉까지 수많은 옛날 게임들이 다시 사랑받는 것을 보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게임에도 해당되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이러한 현상에 보다 구체적인 세대 구분을 적용할 경우, 90년대에 오락실에서 게임을 했던 3-40대가 그 게임을 다시 찾는 경향은 ‘레트로’, 오래전 콘솔 게임과 비디오 게임에 대한 실제 경험이 없는 1-20대가 그 게임을 하나의 유행으로 즐기는 경향은 ‘뉴트로’로 해석되고는 한다. 이때 ‘과거의 게임과 음악과 영화와 물건들이 어떻게 다시 인기를 얻었는가?’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그보다 ‘우리는 왜 낡고 조악하고 엉망진창인 과거의 것들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지’ 질문하고 싶다. 왜 우리는 숱한 좋은 것들을 놔두고 다시 보잘것없는 것에 매혹되는지, 이를테면 더 그래픽이 뛰어난 다른 게임들을 ‘돌고 돌아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일랜시아〉로 돌아가는지’ 묻고 싶다. ‘과거는 어떻게 유행이 되었는지’가 아니라 ‘우리는 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지’, 이 글은 그것이 궁금하다.  


노스탤지어는 일반적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했지만 점점 그 대상이 구체적인 시공간으로서의 고향을 넘어 확대되어, 마치 고향과 같은 과거의 어떤 기억과 경험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폭넓게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고향을 그리워하기 위해서는 고향을 떠나거나 고향을 잃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처럼, 노스탤지어의 감정에는 그 대상에 대한 상실과 결핍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에 노스탤지어를 느낀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의 고향으로서 해당 시공간, 기억, 경험을 이미 떠났거나 잃어버린 상태이다. 결국, 노스탤지어는 우리가 현재 무엇을 상실하고 결핍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거뿐 아니라 현실과 미래와 연결되는 감정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공유하는 노스탤지어의 감정은 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상실과 결핍을 반영한다. 


우리가 현재 무엇을 상실하고 결핍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서 ‘고향’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향은 사전적으로는 ‘태어나고 자라난 고장’을 의미하지만, 단지 지리적인 의미를 넘어 언어와 습관을 공유하는 집단 혹은 자신이 기원을 느끼는 어떤 추상적인 시공간이 될 수도 있다. 고향은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는 고정된 기원과 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노스탤지어는 정체성이 위기를 맞이한 순간에 사회적 현상으로 두드러진다. 범람하는 노스탤지어는 그 자체로 현대사회가 정체성의 훼손을 겪고 있음을 암시한다.4)  오늘날 노스탤지어는 때로는 그 대상이 모호한 채로 느끼는 근원적인 ‘뿌리 뽑힘’, ‘집 없음’ 등의 감정이며, 이는 현대인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감정이기도 하다.5)

 

〈내언니전지현과 나〉에서 주인공인 ‘나’(내언니전지현)가 때로는 ‘나’가 부캐(부 캐릭터)이고 〈일랜시아〉 속 ‘내언니전지현’이 본캐(본 캐릭터) 같다고 말할 때, 그리고 길드원들이 입시, 졸업, 취업, 결혼 등의 어려운 난관으로 가득한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성취감을 얻기 위해 〈일랜시아〉를 다시 방문했다고 말할 때, 이 감정에는 ‘성취감이 가능한 곳으로서의 고향’인 ‘일랜시아’와 그 세계 속 ‘내언니전지현’에게서 뿌리를 느끼는 ‘나’의 불안이 씁쓸하게 개입한다. 도트 그래픽과 단순한 조작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심지어 직접 플레이하지 않아도 숫자가 올라가는 이 허술하고 단순한 세계는 그 자체로 복잡하고 치열한 현실 세계에 대한 도피처일 뿐 아니라 대응물이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과거의 초라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살았던 유년 시절은 이제 안온하고 편안한 고향의 모습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3-40대가 어린 시절 열심히 했던 슈퍼마리오 게임을 그리워하는 것, 10-20대가 슈퍼마리오 게임을 해본 적 없지만 해당 이미지와 플롯에 이유 모를 애착감을 느끼는 것이 세대의 특정한 경험으로 구분되어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다르게 해석되기 이전에, 어떤 근원적인 노스탤지어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 게임의 엉성한 세계가 우리 각자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엉성함 그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결핍하고 상실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동화라는 가장 엉성한 세계, 그리고 그 동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


어릴 적 우리는 영화, 음악 혹은 소설에서와 달리 게임 속에서 ‘직접’ 걷고, 움직이고, 말하고, 성취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노스탤지어를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고, 다른 여가들보다 더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악당을 물리친 영웅을 보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당을 물리쳤던 순간을 기억한다”6) 다시 〈원숭이 섬의 비밀〉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모험가가 길을 찾는 장면을 보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험가가 되어 (편지를 쓰고 힌트를 얻어) 길을 찾는 순간을 기억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인 조지 루카스가 만든 게임회사 루카스아츠의 〈원숭이 섬의 비밀〉은 1990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어드벤처 게임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19년 후인 2009년에 리메이크되며 많은 게임 이용자들과 스트리머들, 시청자들이 〈원숭이 섬의 비밀〉에 다시 찾기도 했다. 한편,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말 그야말로 ‘엉성한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엉성함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이 게임의 주인공 가이브러쉬 쓰립우드는 해적이 되고 싶지만 입만 살아 있는 캐릭터다. 그는 해적들과 검술 결투를 벌여 이겨야 하는데, 이때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검술 능력이 아니라 얼마나 말을 잘 받아칠 수 있는가의 정도이다. 이 세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악당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침 뱉기 대회’를 치러야 하고, 여기서 녹색 침을 뱉기 위해서 녹색 술을 마셔야 하는데 이때의 공략법은 노란 술과 파란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없는 농담과 엉뚱한 상상력은 모험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원숭이 섬의 비밀〉은 코믹 어드벤처라는 이름으로 천진하고 엉뚱한 규칙과 규범이 작동하는 세계를 만들어놓고 이용자는 그 안에서 모험을 떠나야 했는데, 8-90년대는 이러한 어드벤처(모험) 장르의 게임들이 가장 부흥했던 시기였다. 


12살의 톰슨에게는 현실 논리의 바깥에 있는 이 ‘유치한’ 세계 속에서 ‘안내자 머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 톰슨은 직접 편지를 써서 힌트를 얻기로 한다. 실제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그 시절의 수많은 톰슨‘들’은 스스로 그 얼토당토하지 않은 세계의 모험가가 되었다.


  “동화는, 신화가 우리의 가슴에 가져다준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인류가 마련한 가장 오래된 조치들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동화가 태곳적에 인류에게 가르쳐주었고 또 오늘날에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가장 현명한 조언이 있다면 그것은 신화적 세계의 폭력을 꾀와 무모함으로 대처하는 것이다.”7) 

  

성취가 쉬운 단순한 세계(〈일랜시아〉)와 엉뚱한 상상력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세계(〈원숭이 섬의 비밀〉), 그리고 그러한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단순하고 엉성하고 허술한 것들에 몰입하고 있던 어린 시절은 ‘지금, 여기’와는 먼 곳에 동화로 남아 있다. 게임은 그 동화로부터 시작한다. 무모한 것으로 신화의 폭력을 해결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세계가 게임이고 그것을 믿는 세계가 유년 시절이라면 어쩌면 게임은 필연적으로 유년 시절과 노스탤지어와 깊이 관계 맺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 시절의 모험가였던 수많은 톰슨들은 그 조악하고 허술한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됐지만 신화적 세계의 폭력, 현실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악몽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고향을 찾는다. 현실의 절벽을 피해 게임 속 절벽 앞에서 모인 어른들은 옛날 옛적 고향으로 가기 위해 아래로 뛰어내린다. 무모하고 무용하지만, 재밌는 모험이 될지도 모른다. 





1) https://grumpygamer.com/monkey25  

2) 김소미. (2020. 8. 13). ‘내언니전지현과 나’ 박윤진 감독 – 그 시절의 꿈과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씨네21. URL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976 

3) Fodor, N. (1950). Variety of Nostalgia, Psychoanalysis, vol, 37. p25. 

4) 이하림 (2020). 생경한 그리움 :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잔재의 이미지. 미디어, 젠더 & 문화, 35(2), 189-243.

5) Smith, K. (2000), Mere Nostalgia: Notes on a Progressive Paratheory, Rhetoric & Public Affairs, Vol.3, No. 4,.505-527. 

6) Hill, M. (2015. 11. 22). Nostalgia Is Running Video Games. The Atlantic.  URL: https://www.theatlantic.com/entertainment/archive/2015/11/nostalgia-video-games/416751/ 

7) Benjamin, W. 이야기꾼 :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에 관한 고찰. In 최성만 (역) (2019). 〈발터 벤야민 선집 9〉. 서울: 길. 448쪽.



  


이하림(시각문화연구자)


기억과 이야기와 이미지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쓴다. 공적 기억과 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영상 작업에 관심이 있다. 경계에 놓여있는 것들, 정착하고 못하고 부유하는 존재들에 마음이 간다. 요즘은 머뭇대며 다가가는 것, 뒤돌아보며 걸어가는 것이 글과 생활의 방법인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