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05
GG Vol.
22. 4. 10.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게이머는 미니맵을 통해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주변 환경과 사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게임에는 크게 두 가지의 공간 감각이 동원된다. 아바타의 신체를 경유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얻는 감각을 지각된 공간감각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스스로의 위치와 관계를 파악함으로서 얻게 되는 인지된 공간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맵은 그러한 두 차원의 공간감을 통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미니맵은 게이머가 게임 세계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며 게임의 그래픽이나 서사가 미처 채워 넣지 못한 공간감을 보조해 준다. 나아가 공간을 사회적 행위의 결과물로서 구성된 것으로 본다면, 게임 환경을 그려내는 3D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된 물리법칙과 마찬가지로 미니맵 또한 게임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참여한다.
이 글에서는 게임 속 미니맵이 무엇을 그려내고 재현하는지 보다는 미니맵이라는 비유를 통해 조망하는 시점과 가시성이 어떤 위계 관계를 만들어내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는 게임 내에 구현되는 공간을 넘어, 게임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서열체계와 그것이 의미하는 사회적 맥락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다만, 이 글이 이론이나 구체적인 분석을 포함하기 보다는 관련된 역사와 사건들을 간략하게 제시하는 “미니맵”과 같은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니맵의 작은 역사
* 〈Rally X〉(1980) 우측의 미니맵(위)과 〈Defender〉(1981)(아래) 상단의 미니맵.
미니맵의 초기 형태는 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니맵은, 지금과 비교해서 굉장히 단순한 그래픽을 사용했던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들, 가령 〈Rally X〉(1980)이나 〈Defender〉(1981) 같은 게임들에서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케이드 게임에서는 주로 단조롭고 비슷한 지형지물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미니맵은 지도의 역할보다는 근처의 적들을 보고 피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는 레이더 기능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
미니맵이 조금 더 ‘지도’와 유사한 형태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1986년에 발매된 〈젤다의 전설〉에서 부터이다. 화면 좌측 상단의 회색 사각형은 젤다의 전설이 배경이 되는 하이랄의 전체 지형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안의 초록색 점은 현재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구역이 전체 지형 중에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오늘날 다양한 정보와 기능을 포함하는 오늘날의 미니맵과는 달리, 당시의 미니맵은 플레이어의 위치 외의 정보를 포함하지 않았으며 상호작용도 전무한 수준이었다. 1986년작 젤다의 전설에서 미니맵의 그래픽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동하더라도 플레이어가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초록색 점은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젤다의 전설〉(1986). 왼쪽 상단의 회색 사각형이 미니맵의 역할을 한다.
* 〈젤다의 전설〉(1986)의 전체 맵. 이것이 미니맵에서 회색 영역으로 표시된다.
〈슈퍼 메트로이드〉(1994)에서는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 플레이어가 탐험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플레이어가 이미 탐색한 지역을 붉은색으로 표시해주는 기능을 도입한 것이다. 플레이어가 아직 탐색하지 않은 미지의 지역을 가리거나 까맣게 남겨두어 정보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전장의 안개(fog of war)는 1977년 작 〈엠파이어(empire)〉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지만, 이를 미니맵에 도입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았다.
* 〈슈퍼 메트로이드〉(1994). 우측 상단 미니맵에 플레이어가 지나온 지역이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 ‘전장의 안개’를 처음 도입한 〈엠파이어〉(1977).
이런 ‘전장의 안개’는 다른 게이머와 대적하는 멀티 플레이어 RTS(Real-Time Strategy) 장르 게임에서 자주 이용되는 게임 메커니즘이다. 아군 유닛을 전장의 안개가 낀 지역에 정찰 보내 시야를 확보하고 적군의 위치와 진입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이 같은 게임들에서 필수 전략으로 여겨진다. 일부 악의적인 유저들은 불공정한 방식으로 승리하기 위해 전장의 안개를 없애주는 불법 프로그램(맵핵; map hack)을 사용하기도 한다.
* 아군이 정찰하지 않은 지역의 정보가 ‘전장의 안개’로 차단되는 〈스타크래프트〉(1998). 왼쪽 하단이 미니맵이다.
이런 ‘전장의 안개’가 적용된 미니맵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적인 지도와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근대의 지도 제작은 식민 지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고 자주 미지의 땅에 대한 탐험과 타 민족과의 전쟁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마치 RTS 대전 게임에서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미지의 검은 땅을 정찰하고, 적군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도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축소하고 기호화 시켜 표현한 재현물이라면, 그러한 지도를 재현한 미니맵은 게임 공간의 재현, 그리고 지도의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재현에 대한 재현이 된다.
2000년대 이후 MMO, RPG, 오픈 월드 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서 미니맵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포함하게 되었다. 도로, 몬스터, 적군, 친구, 퀘스트 가능 여부, 상점과 여관 등 건물들, 목적지까지의 거리, 방위 등 많은 정보들이 기호와 아이콘으로 표시되어 플레이어에게 제공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면서부터는, 화면의 한 구석을 차지하던 이런 미니맵이 유명 트리플-에이 게임 시리즈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7년, 한 코타쿠(Kotaku) 기자는 “지난 15년 동안 부상한 대악마, 비디오 게임 미니맵의 지배가 마침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부터 줄줄이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 〈파 크라이(Far Cry) 5〉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거나 그 자리를 작은 나침반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어쌔신 크리드의 디렉터 진 게스돈(Jean Guesd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미니맵에서 하나의 아이콘에서 다른 아이콘으로 이동하는 이러한 방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쏟은 노력과 자원 때문에 우리는 플레이어가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를 정말로 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미니맵을 나침반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나침반은 여전히 힌트와 정보를 제공하지만, 당신 역시 세계에 참여하고 더욱 관여해야 합니다.”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미니맵이 세계로부터 눈을 돌리고 조잡한 아이콘과 목적지를 가르키는 화살표만 따라가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처음 게임에 미니맵이 도입되었을 때, 게이머들에게는 비디오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일종의 미지의 땅이었다. 그러나 게임이 등장하고 40-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미 베테랑 탐험가가가 된 게이머들에게 미니맵은 오히려 세계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걸리적거리는 요소가 된 것이다.
* 〈GTA 3〉 왼쪽 하단에 위치한 동그란 미니맵.
내려다보는 자와 그러지 못하는 자
FPS 장르 게임들인 〈배틀그라운드(PlayerUnkown’s Battlegrounds〉(2017)와 〈포트나이트(Fortnite)〉에는 미니맵이 있지만, 〈오버워치(Overwatch)〉(2016)에는 미니맵이 없다. 2016년, 〈오버워치〉의 치프 디자이너 제프 카플란(Jeff Kaplan)은 왜 〈오버워치〉에 미니맵을 추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초보 유저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앞으로도 미니맵을 도입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미니맵을 제공했을 때, FPS 장르에 익숙한 고수 유저들과 초보 유저들 간의 실력 간극이 더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 초보 유저들을 배려하기 위해 미니맵을 제공하지 않도록 선택했다는 것이다.
전장의 안개를 구현하는 RTS 장르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전 게임들에서는 정보 싸움이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만 〈오버워치〉에서는 적의 위치나 진입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UI가 구현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고지대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운용하는 캐릭터 조합과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지대를 선점했을 때 적군에 비해 공격할 수 있는 각도가 잘 나온다거나 후방 유닛을 공격하기가 쉬워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야를 확보해 진입경로와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 〈오버워치〉에서는 이러한 고지대를 선점할 수 있는 점프기나 z축 이동기가 있는 유닛들을 선택하는 전략이 유행하기도 했다.
물론 〈오버워치〉에서도 미니맵과 유사한 화면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오버워치〉의 프로 레벨 경기를 시청하는 것이다. 공식 〈오버워치〉 리그는 게임 리그 시청자들에게 게임의 상황을 최대한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의 화면을 제공한다. 그러한 시점 중 하나가 바로 이 탑-다운(Top-down) 시점이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옆에 띄워주는 화면은 아니라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미니맵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진영과, 유닛들의 진입 경로와 대치 구도를 아이콘을 통해 설명하는 화면이라는 점에서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 〈오버워치〉 리그의 탑-다운 뷰.
* 〈오버워치〉 리그의 중계 화면.
뿐만 아니라 과거 〈오버워치〉 리그의 공식 중계 사이트였던 트위치(Twitch)에서는 〈오버워치〉 리그 올-액세스 패스(Overwatch League All-Access Pass)를 구매하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시점과 각도로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준 바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스펙타클을 제공해주었다. 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메인 화면과 더불어,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몸에 그대로 들어가 마치 그의 몸에 빙의한 듯한 시점으로 경기를 시청할 수도 있었고, 위에서 본 탑-다운 시점과 같이 위에서 모든 유닛들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정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캐릭터는 게임 내 중력법칙에 묶여 게임 속 땅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했던 반면 (물론 특정 기술을 사용해 잠시 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있다) 게임을 시청하는 사람과 중계진은 자유롭게 떠다니며 선수-캐릭터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점에 대한 일종의 공간적인 비유로서, 프로 선수와 시청자 간의 높고 낮은 위치 설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오버워치〉 리그를 플레이하는 프로 선수 안에서도 고지대를 선점한 플레이어와 그렇지 못한 플레이어가 있는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선수와 리그 경기를 시청하는 시청자 사이에는 가시성의 격차가 존재한다. 〈오버워치〉의 플레이어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대로 올라가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고지대를 선점하더라도 선수는 관객이 볼 수 있는 광경을 볼 수 없다. 반면 관객은 선수의 시점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야와 정보의 불균형함은 제레미 벤담이 제안하고, 미셸 푸코가 근대적인 공간의 전형으로서 비평했던 파놉티콘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미셸 푸코는 학교, 병원, 군대와 같은 공간들도 본질적으로는 파놉티콘 구조를 띄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감시 체계는 그러한 시설 안의 재소자들(학생, 환자, 군인들)을 유순하게 길들인다고 보았다. 파놉티콘 구조는 오늘날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정보의 세계에도 편재한다. 빅 테크 회사들이 이용자의 성별, 나이, 위치, 검색 기록과 시청 기록 등 갖가지 정보를 수집해 맞춤 광고를 내놓는다는 것은 오늘날 더 이상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버워치〉와 같은 대전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는 것은, 앞서 제프 카플란이 말했듯,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소수의 고수가 정보를 독식하는 것을 견제하고 게임이 극단적으로 서열화 되는 것에 맞서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여전히 이스포츠의 관객에게는 선수가 볼 수 없는 것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치 신과 같은 눈이 부여된다. 물론 이러한 시선의 위계가 게임 리그를 시청하는 재미의 큰 부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모든 것을 조망하는 절대적인 관찰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