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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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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1. 6. 10.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확률 매커니즘을 공개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문제발견이 빨랐거나 유저들이 기망당했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유저들은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해 게임사에 시정과 해명을 요구해 개발사와 각각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답변이나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게이머들은 대체재가 될만한 게임으로 <로스트 아크>를 지목해 올해 3월 한달동안 대량이주를 이어갔다.


한편 <리니지M>의 유저들은 핵과금 유저와 중저과금 유저들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과금을 부추기는 게임구조를 숨기고, 유저들간의 반목처럼 보이도록 일관한 개발사에 화가 나 있었다. 이들은 과거 <리니지2>의 혈맹 간 계급투쟁이었던 <바츠 해방전쟁>을 패러디 해 <개돼지해방전쟁>으로 자신들의 저항적 행동을 명명하고 항의성 차원에서 <로스트 아크>나 <검은 사막>으로 이주해 나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각기 메난민(메이플스토리 난민), 마난민(마비노기 난민) 등으로 불리우며 '난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게임이주 운동은 제품향상이나 서비스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운동의 연장선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민'이라는 명명에는 몇 가지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메난민, 마난민에 비해 린난민(리니지M)보다는 린저씨가 더 자주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리니지M 유저의 경우 난민이 겪을 고단함이나 소수자, 약자의 입장이 없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돈많은 침략자처럼 묘사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서 대중들이 생각하는 리니지M의 게임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플레이를 숙련하기 앞서 상세한 전략을 세워 각종 아이템을 맞추고, 한정 아바타를 과감히 구입하는 플레이 습관으로 <로스트 아크>의 경제를 인플레이션 시킬 수 있다는 공포를 로아 유저들은 느꼈다고 한다. '난민'이라는 명명에는 다음과 같은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첫째, 이주자들은 그 스스로 하나의 가상적 종족성을 가진 존재로서, 새로운 게임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고단함을 '난민'으로 표현하고 있다.


둘째, 이주자들이 본래 활동하던 게임공간을 가상의 고향땅으로 간주하고, 혹시라도 고향땅의 문제가 해결되면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난민'으로 지칭한다.


셋째, 이주 대상이 된 게임의 올드 유저들은 특정한 게임성으로 훈련된 뉴비들이 와서 자신들이 형성한 게임성을 오염시키고 변형할 지 모른다는 공포를 드러내는 단어로 '난민'이라는 명칭을 쓴다. 이 경우 '난민'은 멸칭에 가깝다.


mmorpg의 게임공간은 단지 놀이적 재미만을 얻는 곳이 아니라 현실과는 또 다른 인격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곳으로 유저로 하여금 다른 어떤 장르보다 오랜 시간을 가상적 환경에서 보내며 사회적 관계를 이루도록 만든다. 그들이 특정 게임에서 형성한 게임적 습관은 제시된 게임룰을 개량하도록 개발사에 요구하고 유저들과 암묵적으로 합의해 얻은 사회적 결과다. 그들이 자신의 게임에 불만이 있다해도 바로 탈주할 수 없는 이유는, 게임공간이 여전히 유저들의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적 공간에서는 매일 같이 전쟁이 벌어지고, 강제될 수밖에 없는 협력의 업무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재미를 위해 디자인되었고, 노력이 필요하다 한들 현실의 노동에 비하면 가볍게 즐길 만하다. 적게 노력하면서 손쉽게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게이머가 자신의 자부심을 특정한 게임종족으로 표출하거나 게임성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정체성의 불안과 연관을 맺는다. 현실 속의 모호함을 가상 속의 명확함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다.


게임공간과 게이머의 관계는 단순한 상품과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에서 iOS로 이주했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반면 메난민, 마난민 등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난민'이라는 표현은 게임이라는 플랫폼이 오늘날 새로운 가상적 정체성을 발명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특정한 게임의 문화는 특정 집단의 민속적인 기록으로서 가치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인터넷과 게임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공간이다. 가상 민족지학(virtual ethnography)은 인터넷 공간 속의 다양한 매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집단과 문화적 기록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뜻하는 신조어로 점차 그 실체가 입증되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3월말 도입된 <로스트 아크>의 염색시스템을 소위 마난민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플레이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바타의 신체와 의상의 색을 바꾸는 꾸미기 플레이를 <마비노기>시절부터 익혀왔는데, 그 수준이 일반적인 갈색이나 노란색의 구분이 아니라 선호하는 색을 다크초코(#29141A)와 바나나(#FFE062)로 세분화하고, 해당 색의 색상코드(HEX)까지 암기하는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다. 당연히 마난민들의 아바타 꾸미기 실력은 장인급이었고, 이들은 황금비율의 색배합을 담은 문건과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다양한 예시를 보여주어 지금까지의 <로스트 아크>에서는 보지 못한 캐릭터들을 게임 내 전시하였다. 이는 염색 시스템을 이용해 꾸미기 플레이로 빠져들 가능성을 열어준 적극적인 게이밍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이 점에서 '난민'은 단순히 유입된 신규유저가 아니라 적극적인 혼종 플레이의 유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기존에 <로스트 아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잠재적 플레이를 극대화시켜, 해당 게임의 게임성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들은 이주하기 전 게임의 게임성을 새로운 게임공간 안에 이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 자신들도 온전히 과거의 플레이를 모두 구현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변형 굴절되면서 <로스트 아크>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 게임성을 변형시키면서 그 안으로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현대인들이 단지 이동상의 초국적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이미 가상적인 초국성을 띤다고 지적한다. 현실의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제멋대로 파편적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김치를 먹으면서 유럽인의 정체성을 내재화하기도 하고, '한국적인'이라는 수식어는 점점 모호해져서 실상은 글로벌 코드에 가까운 보편성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 임시적이라는 것을 안다. 동시에 서로 다른 정체성이 중층으로 겹쳐서 나타날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게임 속 난민이 보여준 혼종적 플레이는 인터넷 공간이 가속화하고 권유하는 혼종적 정체성의 작은 판본이다. 무엇보다 디지털공간은 현실보다 매끄럽고 장애물이 적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재난이나 박해로 인한 강제적 이주의 의미가 강한 '난민'보다 본래적으로 흩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라는 점에서 '디아스포라'를 강조해 새로운 조어를 선택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른바 사이버 디아스포라(Cyber Diasporas)라는 개념이다. 사이버 디아스포라의 주인공인 우리들은 정체성이 모호하거나 없는 자들이 아니라 이 곳 저 곳을 매끄럽게 여행하며, 다종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혼용하는 존재들이다.


지난 3월 20일 공연한 다원예술작품 <에란겔: 다크투어>에서는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커스텀 게임을 이용해 게임공간을 기존 플레이 방식과 다르게 전유하는 실험을 했다. 사전에 신청한 일반관람객들을 에란겔 섬 세 곳(스쿨, 갓카, 밀타파워)을 지정해 모이게 하고, 그들이 그 안에서 다양한 형식의 게임비평을 듣게 해 교감하는 것이 전반부의 내용이었다. 그 중 스쿨에서 열린 권보연(게임씽킹 디자이너)-장병호(문화연구자)의 스크립트의 한 대목을 소개해본다.


"플레이어란 현실과 가상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플레이하고 접속하면서 자기존재를 증명해요. 나는 그것을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도 배틀그라운드가 전쟁게임이고 내가 살아남으려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놀이를 해야한다는 것은 알고 왔어요. 하지만 내가 동숲러 '뽀'로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은 내가 누군가를 죽이러 선택해 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예요. 나는 이 곳 배틀그라운드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여기 와보고 싶었죠. 아름다운 자연, 멋진 건물, 신기한 아이템. 그리고 귀여운 춤도 마음껏 출 수 있다고요. 배틀그라운드에서는 총에 맞아 죽는 것만 빼면 내가 동물의 숲에서부터 좋아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요." 

‹에란겔: 다크 투어› #2.이주민(권보연)/삼선동 주민(장병호) (c)가상정거장) 

연사들은 <동물의 숲>의 유저였지만 <배틀그라운드> 에란겔 섬에 자기 발로 왔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곳의 룰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한편 다르게 사용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들은 에란겔 섬을 마치 동물의 숲처럼 뛰어다니고, 탐색하는 게임공간으로 만들자고 제의한다. 이 뻔뻔함은 이들이 쫓겨온 난민보다는 자발적 디아스포라처럼 보이게 한다. 약간의 풍자적 유머를 담은 이 씬은 우리 시대의 게이머가 보다 더 적극적인 디아스포라로 전향되었을 때, 오히려 게임공간이 더 많은 가능성으로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1년 대한민국의 게임 난민들은 스스로 자신이 거주한 게임공간에 이의를 제기하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주해 온 땅에 기꺼이 스며들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게이머가 게임성을 바꾸는 혁명적인 사건의 시작으로 이 사태가 기록되길 바래본다. 이러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조금 더 공정하게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가담하고 있는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뮬레이션으로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길어내는 공간이 게임이라면 이 공간에서부터 개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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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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