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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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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2. 2. 10.

시리아 난민을 다룬 시리어스 게임 〈21Days〉(2017)는 독일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 모하메드 쉐누가 자신의 가족들을 기다리며, 21일동안 노동과 교육, 외로움과 편견으로부터 견뎌내는 경험을 다루고 있다. 서울대 정보문화학 연합전공 수업 〈게임의 이해〉를 통해 만난 현유지, 고은비, 최우빈, 김진형, 이원석 등이 이정엽 교수의 코디네이팅을 받아 출시했다. 제작자들은 게임연구자 이안 보고스트의 시리어스 게임이론을 기초로 플레이어가 퀘스트 완료에 성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실패하도록 만듦으로써 난민의 현실을 드러내는 게임 디자인을 추구했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난민에 대한 막연한 혐오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스토리텔링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토리텔링은 나와 다른 자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들 또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유일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이야기라도 게임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특이성이 있을까? 당사자 입장을 가진 플레이어로서 압둘 와합이 느낀 바를 중심으로 기록해 보았다. 이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형식에 대해, 타자의 입장을 플레이한다는 윤리적 당위를 넘어서 그 입장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설계하는 것이 더 좋을 지 논평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몇 가지 비판적인 발언으로 시리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감에 따라 여권 갱신 등이 자유롭지 않아 활동에 제약이 생긴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귀화뿐이었다. 압둘 와합은 2020년 10월 한국에 귀화했다. 

* 교사 김혜진이 저술한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2021, 원더박스) 표지 

- 게임 하기 앞서


Q: 압둘 와합은 게임을 즐겨했었나?


A: 유년시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주로 경험해 보았다. 축구게임같은 스포츠 게임을 친구들과 했었다. 게임을 자주 하기에는 언제나 부모님의 잔소리가 많으셨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웃음) 요즘 사람들처럼 깊게 파고 든 적은 없었다. 


Q: 오늘 플레이할 게임은 조작이 어렵거나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저와 상의하면서 플레이하면 될 것 같다. 


A: 좋다. 



- 0Days


압둘 와합은 게임의 첫장면, 난민관리국에서 모하메드의 난민인정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부분에서 놀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 게임이 시작부터 가장 어려운 것을 해결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난민인정을 받기까지 신원조회부터 적응교육까지 여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게임에서지만 가장 어려운 것을 시작부터 이루게 되어 기쁘네요.”라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은 게임 디자인 안에서 의도된 것이었다. 그 동안 난민 소재의 시리어스 게임들이 주로 유럽지역 탈출루트 이동의 어려움이나 난민캠프에서 어려움을 극적으로 게임화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21days〉는 그러한 고난이 끝나고도 발생하는 일상의 어려움을 시뮬레이션 하고자 했다. 그들이 한 사회에 들어와 겪는 노동의 고단함과 차별 또한 난민의 고통이지만 표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 상에서 주인공 모하메드는 자신의 난민인정 이후 아내와 아들을 독일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 UN의 가족결합원칙 하에 난민인정을 받게 만드는 일을 목표로 삼게 된다. 이제부터 플레이어는 이를 위해 브로커를 고용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받아든 난민인정 증명서의 국적이 ‘RYSIA’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제작진의 오타인가 싶었지만 이 또한 의도된 것으로 실제하는 시리아 난민뿐 아니라 모든 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특정 국가를 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게임적 의도는 게임이 끝난 후 제작자에게 문의하여 압둘 와합에게 알려주었다.



- 1 Days


우리는 모하메드를 난민관리국이 소개해 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도록 했다. 공사장 반장에게 일에 대해 설명을 받는 데, 자막 곳곳에 ㅁㅁ표시로 구멍이 나서 자세한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은 모하메드의 언어능력이 좋지 않아 독일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벽돌을 나르는 일 같은데, 대충 알아듣고 한 것으로 처리가 되었다. 3시간 30분을 일하고 80시리를 받았다. 압둘 와합은 이 같은 게임적 표현이 재밌다고 평가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와 일할 때도 열심히 일하라는 것인지, 그만 두라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워 고생한 경험이 떠올라요”라고 말했다. 


모자란 언어능력이 신경쓰여 공사장 아래 위치한 어학원에 등록해 독일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압둘 와합은 이 부분은 게임적인 연출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난민들은 어학교육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생활비를 보조받기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등록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습은 〈21Days〉의 중요한 요소로 언어능력이 모자랄 때, 일을 맡지 못하거나 노동 시 급료가 깍이는 패널티가 있다. 심지어 어학원 등록비는 40시리로 비싸다. 벌면 족족 어학원비로 나가도록 디자인되어 있어 이 게임의 난이도에 영향을 끼친다. 필자는 지속적인 언어학습이 없을 때 외국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압둘 와합에게 주었다. 


노동도 하고 공부도 했으니 우리는 모하메드에게 음식을 먹이기로 했다. 더 싼 맥도날드가 있었으나 그곳에는 돼지고기가 섞인 음식이 많아 실제로도 무슬림들은 꺼려 한다고 한다. 첫날이니 아랍 음식점으로 가서 케밥과 허머스, 페투쉬, 팔라펠 중 무엇을 먹을 지 골랐다. 압둘 와합은 웃으며 비싼 음식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비싼 순서가 팔라펠→페투쉬→허머스→케밥 순서가 아니라 케밥(고기)→페투쉬(샐러드)→허머스(병아리콩으로 만든 소스형 음식)→팔라펠(병아리콩으로 만든 고로케) 순이 대충 맞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게임상에서 케밥은 가성비가 좋은 음식이니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케밥을 먹어야 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 2Days


어제보다 떨어진 멘탈 지수가 신경쓰였다. 혹시 지도상에 보이는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하면 이 수치가 올라갈 수 있을 지 궁금했다. 모스크에 가는데, 교통비가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게임에서 이동은 곧 시간과 돈을 소모한다. 궁금하다고 아무 곳이나 가기보다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스크에 가니 같은 처지에 있는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 도중 모하메드는 “그래도 이 나라만큼 난민들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어”라고 대답했다. 압둘 와합은 게임에서 언급하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는 난민들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메르켈은 각종 난민문제로 지지율이 흔들리는 가운데 뚝심있게 난민유입 정책을 체계적으로 세워나가 여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니 멘탈 수치가 올랐다. 압둘 와합은 한국에 와서 고국이 어려움에 휩싸일 때,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내 계획은 무엇이고 그 진행과정대로 진행하고 있는 지, 나는 왜 무엇을 위해 고생해야 하나 같은 질문을 던지며 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게임에서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는 일이 멘탈점수를 높이는 것은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귀가하는 도중 숙소 앞에서 노래하는 버스커에게 팁을 주었다. 무려 10시리나 되었기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주었다. 혹시나 독일인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압둘 와합은 멘탈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고독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이 게임 상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지 기대하며 우리는 버스커 친구에게 돈을 주었다. 그는 시리아에 파병된 아들을 둔 자로 훗날 자신이 일하는 라이브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3 Days


아내가 보내달라는 200시리를 보내야 하는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의 사치?를 반성하고 일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배고픔 수치가 절반 이상 떨어져도 계속해서 오전 오후로 일하기로 했다. 공사장에 일이 없어 레스토랑에 취직해 설겆이를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어학원은 다니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급해도 공부를 멈추면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앞에는 난민을 혐오하는 남자가 “ㅁㅁ나는 무슬림”이라고 모하메드에게 외쳤다. 굶어가면 모은 돈 중 200시리를 아내에게 송금했다. 배고픔 수치가 너무 떨어져 있어, 싫어도 맥도날드에 가서 핫도그를 먹고 이른 잠을 청했다.



- 4 Days


아침부터 교통비가 없는 상황이 되어 모하메드는 40분이나 걸려 모스크에 가야 했다. 압둘 와합은 별 다른 현지인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못하고 직장과 모스크 정도만을 가야하는 게임안의 상황이 너무 리얼하며 동시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럽식 레스토랑이 선택지에 생겼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고 동시에 돼지고기가 든 음식이 많았다. 게임 상에서 먹을 수는 있었지만 플레이어인 압둘 와합은 선택하지 않았다.  


공원에 들려 “우리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주장하는 노인을 만났다. 압둘 와합은 자신이 만났던 어떤 한국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결국엔 그 사회에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물론 공원에는 모하메드에게 선의를 보이는 시민도 있었다. 다시 돈을 벌어야 하니 공사장까지 걸어가 노동을 했다. 



- 5 Days


아내의 편지가 도착했다. 가방을 도둑맞아서 송금한 돈을 다 잃어버렸다고 한다. 가족에게 3일안에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하게 되었다. 교통비가 없어 역시 또 공사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오전 오후 일을 했으니 아랍식당에 가는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배고픔이 조금 가시면서 멘탈도 약소하게 오르게 되었다. 버스커 친구가 일하는 카페 블루노트에 갔더니 입장료 25시리를 지불하라고 한다. 술과 음악을 즐기는 현지인들을 부러워 하며 친구의 노래를 들었다. 취객 중 하나가 이민자였는데, 그는 모하메드에게 “어허 독해져야 해”라고 충고했다. 순간 매우 한국적인 충고라서 압둘 와합과 나는 한참 웃었다. 


압둘 와합은 아직 해금되지 않은 지역 중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문화원과 유원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장소를 모하메드가 다녀야 그 사회에 대한 호기심도 유지하고 멘탈도 건강해진다는 논리였다. 실제 본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하메드는 이제 숙소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버스커 친구와 이런 저런 속내를 털어놓으며 고향에 있던 부모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압둘 와합은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자 대개의 나이든 부모님들이 피난을 고사하고, 젋은 자식들부터 탈출시켰다고 말해 주었다.



- 6 Days


아내에게 돈 독촉하는 편지가 왔다. 플레이어에게 긴장감을 주려는 게임 내 장치는 이해되지만 돈 이야기만 들어야 하는 모하메드의 상황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맥도날드로 가서 가장 싼 햄버거를 먹었다. 조금 먼 곳에 주유소 일자리가 해금되어 있어 세차 일을 했다. 압둘 와합은 독일의 난민 정책은 실제로는 난민에 대한 직업훈련코스가 정비되어 있어, 게임처럼 공사장과 식당, 주유소 같이 일용직만 전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독일 외 지역 대개의 난민들은 저런 악순환 고리 속에서 바보가 되어가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공원에서 다시 만난 할아버지는 역시 또 난민혐오적 발언을 한다. 모하메드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한다. 압둘 와합은 이 상황이 모하메드의 심성이 착한 것이 아니라 싸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언행이라고 해석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뭔가 한탕을 노리는 룸메이트를 만났다. 



- 7 Days


주유소에 일이 없어 공사장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계속 했더니 멘탈과 배고픔이 계속 떨어졌다. 아내에게 돈을 송금해야 하기 때문에 모하메드에게 밥도 먹지 않고 일만 시켰다. 이른 오후에 숙소에 들어가 잠을 잤다. 



- 8 Days


아내로부터 브로커를 고용하기 위해 250시리가 필요하다고 편지가 왔다. 압둘 와합과 나는 모하메드의 멘탈과 배고픔 수치의 관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오직 빠르게 일만 시키기로 했다. 배고픔이 거의 바닥을 치니 캐릭터는 느려지고 멘탈 수치는 점점 감소되고 만다. 


모하메드는 공원의 할아버지와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IS에 대해 욕하고 있기에, 우리도 그 IS를 피해서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답변했다. 압둘 와합에게 이 할아버지의 생각이 혹시 바뀔 수 있을까 질문해보았다. 압둘 와합은 자신의 경험으로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이 날도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다. 



- 9 Days


아내는 기차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연락을 했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남자를 또 숙소 앞에서 만났다. 배고픔과 멘탈 수치가 바닥이 치는 가운데, 일할 의욕도 공부할 의욕도 잃어버렸다. 모스크에 가서 간신히 멘탈수치를 높였다. 하지만 이미 바닥난 멘탈과 배고픔에 모하메드는 일할 의욕을 잃었다. 멘탈수치를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카페 블루노트에 가서 음악을 들었지만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숙소로 이른 귀가를 했다. 룸메이트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뭔가 나쁜 일인 것처럼 보였다. 잠을 잤다. 아내가 말한 250시리를 모으지 못한 상황이다. 





- 10 Days


아내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아들 압둘이 아프다고 한다. 오늘까지 반드시 기차표를 살 돈을 보내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다. 일할 의욕이 사라져서 모스크에 갔다. 약간의 멘탈 회복이 되어 공사장에 갔으나 결국 작업명령을 못 알아들어 사고를 치게 되었다. 급료가 깎였다. 결국 아내에게 보낼 돈을 다 벌지 못하고 숙소에 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룸메이트가 3층 카심의 방으로 오라는 쪽지를 남겼다. 주인 없는 방에 가서 룸메이트 메흐디의 지갑이 떨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훔칠까 말까 고민하다 훔쳤다. 이것만 훔치면 아내에게 돈을 보낼 수 있으니까. 아내에게 송금하고 돌아오니 메흐디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화가 나 있었다.



- 11 Days


아내가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 내일까지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모하메드는 멘탈도 체력도 바닥이 나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 12 Days


도저히 방법이 없어 모하메드는 모스크에 갔다. 멘탈 수치가 조금 올랐지만 돈도 없고, 여전히 배고프다. 어학원을 다닌 지 오래되니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내에게 송금하지 못했다. 



- 13 Days


아내와 아들에게서 소식이 없다. 모하메드는 이제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배드엔딩을 보게 된 압둘 와합과 나는 매우 허탈한 마음이었다. 우리는 모하메드의 가족이 도착하기 까지 21일 중 겨우 13일을 버틴 것이었다. 이 게임을 더 나은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1Days〉는 일반적인 세이브 로드 시스템이 없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하거나 지난 날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이후의 날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재플레이가 가능했다. 


다음날 터키로 실제 출국을 앞 둔 압둘 와합이 사정상 빠진 이후, 필자는 게임 4일차로 되돌아 가 플레이 해 보았다. 하지만 게임 상의 모하메드가 겪는 현실은 소매치기의 유혹과 범죄가담 등으로 더욱 더 암울해져 갔다. 노동조건은 가혹해지고 건강상태는 나빠지니 필연적으로 옳지 못한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상봉하는 날짜가 다가오지만 내용상으로 결코 좋은 엔딩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성실한 노동자가 된 모하메드의 행복한 가족상봉은 애초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스팀에 진열된 이 게임에 대한 평가로 누군가 ‘순진한 프로파간다’라고 적어놓았는데 세상에 프로파간다를 이렇게 암울하게 재현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난민들의 입장을 미화시키기는 커녕, 그들의 행동이 필연적으로 어긋나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깔끔하게 클리어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패시켜 그 원인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 게임 플레이 후 소감


1회차 게임이 끝난 뒤 압둘 와합에게 아래와 같이 질문하였다.



Q: 난민문제에 대한 게임적 접근법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A: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뉴스나 영화도 좋지만 게임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이성이 분명 있다고 본다. 5년 전에 한 시리아 출신인 압둘라 알 카람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직접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난민 포비아와 이슬람 포비아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는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을 통해 시리아 사태를 경험시켜 난민들에 대한 선입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압둘라 알 카람의 게임 [〈Path Out〉(2017)]의 초반부 한 씬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 시리아인의 평범한 생활상을 경험하던 중 플레이어는 도시의 골목에서 낙타를 발견하게 된다. 대개의 플레이어는 당연히 낙타를 향해 타기 위해 돌진한다. 그 때 프로그래머는 게임 화면에 실사화면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시리아인들이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며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일갈한다. 게임 플레이와 다큐적 표현, 가벼움과 진지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 때부터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게이머 세대에게 게임을 통해 세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 



Q: 〈21Days〉는 의도적으로 배드엔딩만을 보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A: 그렇다. 아마도 이 게임은 난민의 고난을 체험시켜 현실을 환기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게임을 통해서 직접 당사자가 되는 경험을 주는 이런 시뮬레이션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개발자 분들이 난민이 하나의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테마로 후속작을 따로 만들어주시도 좋을 것 같다. (웃음) 중간 중간 모하메드가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데 실은 이런 결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이 높은 자는 범죄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는 디자인도 멋지지 않을까?



Q: 게임적인 구조 안에서 희생되는 현실의 디테일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이러한 현실적인 요소들 하나 하나 다 신경쓰다 보면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게임은 복잡한 현실에 대한 최대한 단순한 구조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기에 중요한 것은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Q: 만약 이 게임에 해피엔딩이 가능하려면 어떤 요소를 추가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가?


A:  게임 안에 희망(hope)이라는 수치를 추가하고, 모하메드의 선택지에 여행과 놀기를 집어넣어 반영하고 싶다. 실제로 이러한 장소들은 난민으로서 내게 큰 도움이 된 적이 있다. 현지 독일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난민이나 이주노동자가 그 사회에 잘 적응하는 방법은 그 곳을 즐겁게 느끼는 일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이 게임의 주인공처럼 일만 하는 사람은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사례를 자주 보았다. 일만 하다가 멘탈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다. 



- 재현에서 아쉬웠던 점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게임상에서 아내에게 돈을 송금할 때 ATM기를 사용하는데, 실제로는 그리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갓 난민지위를 얻은 자가 유럽밖으로 돈을 보내는 일에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차라리 모하메드쪽에서 브로커를 고용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게임 상에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받을 때, 컴퓨터 메일로 받는데 실제로는 스마트폰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내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동하는 가운데 컴퓨터를 쓰는 행위보다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편이 기동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난민들이 되도록 좋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려는 이유다. 



- 게임과 사회


게임 플레이가 반드시 퀘스트 수락과 클리어만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현실의 부조리를 시뮬레이션해 보다 나은 질문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을 〈21Days〉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게임체험을 내적 구조 안에 갇힌 유희가 아니라 현실 밖으로 질문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여길 때 게임은 사회와 또 다른 연결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의 개념을 무엇이든 접속 가능한 매개의 개념으로서 상상하면 게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재미의 회로와 현실의 회로 사이를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발명중이며, 이 발명품들로 게임의 역사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계보를 가질 것이다. 옳음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다름을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21Days〉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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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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