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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25년, 그 좌충우돌의 역사

23

GG Vol. 

25. 4. 10.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며 시작된 2000년은 한국이스포츠협회(이하 협회)의 전신인 ‘21세기 프로게임협회’가 창설되고 전문적인 리그대회가 한참 생겨나던 시기였다. 당시 e스포츠는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인기를 얻던 문화 콘텐츠였지만, 기성세대에게는 그저 유치하고 심지어 병리적인 사회 현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당시 게임을 플레이하던 프로게이머조차도 e스포츠가 이렇게 커다란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e스포츠는 치열하게 대결하며 전략과 열정을 공유하던 게이머 공동체에서 시작되었으나, 산업의 성장과 함께 e스포츠의 정체성도 변화되어 갔다. 연구자와 산업 관계자 각자 e스포츠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리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은 e스포츠가 기존 산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디어학자인 허친스(Brett Hutchins)는 e스포츠가 미디어와 스포츠, 컴퓨터 게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하이브리드 산업이라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게임과 e스포츠 문화를 연구하는 테일러(T.L.Taylor)는 e스포츠가 텔레비전, 게임, 인터넷 그리고 온라인 네트워크의 융합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e스포츠는 그 전부터 존재했던 미디어·문화 산업의 울타리 안팎을 넘나들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닌 e스포츠만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e스포츠의 혼종성은 게임 산업의 빠른 생애주기, 플랫폼의 전환 등 변화의 순간마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그래서 e스포츠는 매순간 위기와 함께 했다. 짧은 호황기를 누리다가도 돌발적인 변수로 인해 다시금 어려움을 맞닥뜨렸다.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내가 즐기고 있는 이 리그와 종목이 언제 무너지거나 중단될지 알 수 없기에 팬들은 늘 불안감을 품은 채 선수와 팀을 응원한다. 그렇기에 e스포츠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보다는 그 변화의 흔적을 그저 따라가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에서 e스포츠가 시작된 시점으로 여겨지는 1999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e스포츠의 역사를 훑는 일은 나의 성장기를 되짚어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글은 한 명의 팬으로서, 그리고 이 산업과 함께 자라온 동시대인으로서 e스포츠 문화의 궤적을 따라가 보려는 짧은 기록이다.



초기 e스포츠의 도약과 제도화


초창기 e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1999년 처음 중계된 제5회 하이텔배 KPGL(Korea Professional Gamers League) 당시에는 방송국 지원이 없어 탁구대에 천을 씌워 경기 테이블과 중계석으로 사용했으며, 경기복 두 벌을 출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입었다. 좁은 방 하나에서 선수들끼리 함께 자거나 PC방에서 생활하는 일이 빈번했다. 게임 자체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 인식과 신생 산업의 불안정한 기반에도 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버티던 게이머와 산업 관계자들은 2000년 말 붕괴한 닷컴 버블로 인해 한 차례 무너져 내렸다. KPGL, PKO, KIGL과 같은 초기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빠르게 폐지되었고 우후죽순 생겨나던 게임대회 주최사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게임만 해서 먹고 산다는 목표는 당시로서는 허황된 꿈에 가까웠다. 많은 선수들이 다른 직업을 겸하여 생활하거나 게이머 경력을 통해 게임 관련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때문에 선수들의 프로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는 신주영, 한국통신(Korenet) CF를 촬영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이기석, 지금은 방송인으로 더욱 유명한 기욤 패트리 등이 이 시기에 짧은 인기를 누린 게이머들이었다.


그리고 2003년부터 게임 방송사를 중심으로 한 차례의 도약이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온게임넷과 MBC 게임(당시 이름은 geMBC)이라는 두 케이블채널은 기존의 대회 주관 업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꾸며 방송 중심의 게임리그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1대1 대결이던 기존 대회 형식에 더해 팀 단위의 리그를 새로 만들면서 그와 함께 대기업의 재정지원을 받는 프로팀이 등장한다. 임요환, 최연성의 SKT와 강민, 홍진호, 박정석의 KT는 스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팀을 꾸리며 통신사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러한 구도는 단순히 팬들의 즐거움을 넘어 기업이 홍보를 위해 전면에 나서 팀을 만들고 자본을 투자하여 리그의 판을 키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특히 광안리에서 진행된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 결승전(한빛 스타즈 vs SKT T1)에는 10만여 명의 관중이 몰려 상징적인 순간을 만들어냈고, 2005년 So1 스타리그 결승전(임요환 vs 오영종)은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는 등 스타리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기사에서 SK텔레콤 T1은 팀 창단만으로 150억 원이 넘는 홍보 효과를 봤다고 전해지며 리그를 후원한 신한은행 역시 300억 원이 넘는 홍보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이를 기점으로 2006년까지 대기업팀의 적극적인 창단이 이루어졌다.



* [2004년의 광안리 대첩(출처:
https://home.kepco.co.kr/kepco/front/html/WZ/2023_09_10/sub1_4.html)]

특히 협회에 의해 2005년부터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한 본격적인 제도화가 이루어졌다. 협회 공인 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는 준프로게이머의 자격을 얻게 되고, 매년 진행되는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특정 팀에 소속되면 프로게이머가 되는 식이었다. 또한 각 팀 내에서도 연습생을 10여명 내외로 육성하며 선수 인력의 재생산을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오늘날 대기업 구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e스포츠 아카데미의 국내 모델이 이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프로게이머는 점차 많은 게이머와 청소년들이 꿈꾸는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잡았다.



한 차례의 위기 그리고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


그런데 이때부터 커진 파이를 둘러싸고 산업 행위자들 사이의 치열한 힘 싸움이 시작된다. 2007년 협회와 양 방송사 사이의 중계권료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고, 2010년에는 블리자드와 협회, 방송사 간 지적재산권 소송이 이어졌다. 그 전까지 게임사가 협회와 방송사의 IP 활용을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형식이었다면, 이제는 e스포츠 산업의 생산과 유통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초창기 e스포츠 리그의 제작과 주최, 방송을 도맡아 하며 독점적인 권한을 수행하던 방송사는 이 시기부터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 싸움에 더해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까지 벌어지며 스타크래프트 리그뿐 아니라 e스포츠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입힌다. 다른 한편에서는 2011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리그 오브 레전드가 서서히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이후 2013년, 넓게 보면 2016년까지 국내 e스포츠 산업은 과도기를 거치게 된다.

당시 나를 포함한 청소년들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또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세대였을 것이다. 당장 PC방에서 친구들과 하던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로 바뀌었고,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을 통해 아프리카 TV를 보는 것이 또래 문화가 되었다. 교실에서 남자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밈(meme)은 ‘날아오르라 주작이여’에서 ‘이걸 나진이’로 옮겨갔다. 페이커(Faker)가 미드 마이를 썼다느니 미드 리븐을 썼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경기 다음날 아침부터 화제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TV와 트위치, 유튜브 게이밍과 같은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보는 게임’ 문화의 대중화를 이끌며 산업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매체였는데, e스포츠 역시 마찬가지여서 수용자층을 하드코어 게이머에서 캐주얼 팬으로까지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더불어 전현직 프로게이머가 스트리밍 플랫폼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선수와 팬 사이의 온라인 소통의 기회도 확대되었다. 라이브 채팅을 통한 정동의 공유는 기존의 TV라는 일방향적 정보 제공을 넘어 실시간 상호작용에 기반한 능동적인 콘텐츠 소비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테일러는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e스포츠가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라 복합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워졌다고 분석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또 다른 장점은 방송사에서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제한적으로만 방영할 수밖에 없던 다양한 종목의 리그를 중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 어렵게 찾아보아야만 했던 해외 리그나 철권, 워크래프트 3와 같이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한 종목의 국내 리그도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챙겨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 스트리머 중심의 게임 대회가 인기를 끌고 아마추어 게이머 대상의 리그 역시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중계가 가능해지면서 풀뿌리 리그와 자생적 e스포츠 생태계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즉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전은 한편에서는 전 세계 팬들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국제화의 흐름을 만들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과 소규모 리그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e스포츠 문화의 저변을 넓혀주었다.

 


e스포츠의 황금기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전에 힘입어 e스포츠 산업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e스포츠 산업규모는 연평균 17.9%의 성장률을 보였으며 국제적으로는 매년 30.7%의 고속 성장이 진행되었다. 경기장 역시 양적·질적 확장이 이루어져 2016년 OGN e스타디움이 개장한 이후 2018년에는 LOL 파크와 VSG 아레나가, 2020년에는 아프리카TV 콜로세움, V.Space 아레나, 부산·광주 e스포츠 경기장이 연이어 개장했다. 프로게이머 평균 연봉 역시 2018년 50% 넘게 뛴 데 이어 2019년에는 80%나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경제적 성장과 함께 두드러진 건 기술의 발전이었다. 대표적으로 e스포츠 관전 및 연출 기능이 개선을 거듭하면서 e스포츠는 거대한 스펙타클 이벤트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초창기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관전 및 연출 기능은 옵저버의 수동 조작과 선수 얼굴 클로즈업이 전부일 정도로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해설진은 경기 시작 전이나 직후 맵 위에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면서 바둑처럼 맵을 설명하고 각 선수의 전략을 예상했다. 선수의 미네랄과 가스 보유량, 인구수를 보여주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EVER 스타리그 2007’이었다.  


반면 2010년대에 들어 게임사가 리그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려는 의욕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관전 및 중계 모드의 기능을 대폭 개선하면서 보다 직관적이면서도 극적인 시청을 가능하게 했다. 2015년부터 LCK에서는 스포트라이트 카메라 기능을 통해 게임 화면을 3D 애니메이션처럼 연출할 수 있게 되었고 2018년에는 한국에서 개최된 월즈 무대에서 가상 걸그룹 K/DA의 증강현실 무대를 꾸몄다. 같은 해 OGN에서는 VR을 통한 배틀그라운드 경기 생중계가 국내 최초로 시도되었다. 이 같은 실험적 시도는 비록 모두 상용화되지는 않았더라도, 그 당시 기술의 발전과 e스포츠 산업 전반에 만연하던 낙관을 반영한 산물이었다.


* 리그오브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 K/DA 오프닝 세레머니 영상

 


다시, 겨울을 나는 e스포츠


그러나 최근의 e스포츠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또 한 번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 e스포츠 게임단과 게임 대회 운영사들의 누적된 적자가 문제되었다. 특히 젠지 e스포츠의 CEO인 아놀드 허(Arnold Hur)는 2023년 ‘e스포츠의 겨울’을 주장하며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함을 역설했다.


또 라이엇 게임즈나 블리자드, 일렉트로닉 아츠(EA)와 같이 게임과 e스포츠 업계를 지탱하는 게임사들이 2024년 들어 줄줄이 구조조정과 해고를 단행하며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위기를 초래한 내부적·외부적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빠른 성장과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를 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종목에 편중되어 있는 산업 구조 역시 산업의 안정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이에 게임사와 구단은 나름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LCK는 2020년부터 폐쇄형 프랜차이즈 리그[1]로 전환했으며 FC 온라인 슈퍼챔피언스 리그 역시 2025년부터 리그 프랜차이즈화를 시도하고 있다. 반대로 오버워치 리그는 프랜차이즈 및 연고제를 2024년부터 폐지하고 개방형 리그 시스템으로 개편했다. 다른 한편 2023년 정식출시한 게임 이터널 리턴은 국내 최초로 지역 연고 풀리그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e스포츠 구단 역시 참여 종목 다양화와 함께 아카데미 설립, 국내외 대학과의 활동 연계, 팬덤 마케팅 활성화 등의 노력을 통해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e스포츠는 빠르게 달려온 궤도를 잠시 조정하는 또 하나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처럼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에 무너지기보다, 이제는 산업 전체가 변화의 국면을 인식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차분히 모색하고 있다. 다가올 e스포츠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두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e스포츠는 처음부터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스포츠이자 게임이고, 방송이자 오락이며 문화인 이 복합적 정체성은 위기의 순간마다 유연하게 적응하며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무너졌을 때도, 방송사가 사라졌을 때도, 플랫폼이 전환되었을 때도 e스포츠는 멈추지 않았다. 누구도 이 산업이 여기까지 올 줄 몰랐듯, 지금의 과도기 역시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한번 자신을 재구성할 시간, 본질을 점검할 기회일지 모른다.


아직도 춥고 눈이 내리는 날씨이지만, 곧 봄이 올 것이다. 변화의 속도에 익숙한 e스포츠가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      Hutchins, B. (2008) Signs of meta-change in second modernity: The growth of e-sport and the World Cyber Games. New Media and Society, 10(6): 851-869.
-      Taylor, T. L. (2018) Watch me play : Twitch and the rise of game live streaming, Princeton,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      박건하. (2004) 게이머들의 PC방 문화와 프로게임리그의 형성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화학협동과정 석사학위논문.
-      이용범. (2020) 동북아시아 e스포츠 현황에 대한 기초연구 1: 정동(affect)의 실각, 한국 e스포츠 10년사.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20권 2호. 61-73.
-      정헌목 (2009) ‘스타’ 게이머 팬클럽을 통해 본 e-스포츠 팬덤의 형성과정과 특성. <비교문화연구>, 15권 1호. 51-95.
-      진예원. (2022) 이스포츠의 기술성(technicity) 분석을 통해 본 포스트디지털 문화 연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전공 석사학위논문.



[1] 프랜차이즈 모델은 리그에 소속되는 팀을 고정하여 이 팀들이 강등이나 해체의 위험 부담 없이 수익 창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의미한다. 반대로 개방형 모델은 리그 참가 및 탈퇴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에 리그 소속팀이 자주 바뀌며, 승강제를 도입해 경쟁을 보다 치열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프로야구 KBO 리그는 프랜차이즈 모델, 프로축구 K리그는 개방형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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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자)

e스포츠를 포함한 보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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