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추억의 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찾아서
06
GG Vol.
22. 6. 10.
광속과 인터넷 속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흥미 있는 글을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500마일 문제( https://edykim.com/ko/post/500-mile-email-problem/ )를 들어보셨을 지도 모르겠다. 아직 읽지 못한 분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학내 이메일 관리를 하는 직원이 교수에게 500마일(800km) 혹은 그보다 약간 먼거리를 넘어가는 장소에 이메일을 보내면 실패한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몹시 흥미롭지만 이 곳에 다 소개하기에는 분량이 충분하지 않으니 직접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미리 결말을 이야기하자면 서버설정에 문제가 생겨서 0.003초 안에 답을 받지 못하면 에러가 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답을 이야기 하자면 광속 * 0.003초 는 899km 이다.
우리는 인터넷이 세계을 연결한다고 생각하고 그 연결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신호는 빛이고 빛의 속도는 분명히 정해져있기도 하다. 현대의 게임들은 대부분 서버와 클라이언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회사들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적어도 클라이언트가 서버와 통신을 할때는 기본적으로 500ms 의 지연이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설계하는 것이 좋다고 배웠다.
이러한 물리적인 한계는 게임의 기획이나 구현 과정에 영향을 주고, 게임개발자들은 이러한 물리적한계를 속이기위해 여러가지 트릭을 사용하기도 한다. 게임디자인이 이러한 물리적 한계에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게임 연구에서 많이 놓치는 부분이기도 했다. 2010년쯤 되서야 MIT 출판사의 플랫폼스터디즈 시리즈 같은데서 이러한 하드웨어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접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타리2600을 다룬 “Racing the Beam” 에서는 아타리2600에서 다루는 7개의 게임이 아타리 2600 게임기의 기술적인 한계를 게임이 어떻게 극복해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다루고 있다. 〈팩맨〉에 등장하는 네가지 유령의 색들이 아타리가 한번에 출력할수 있는 색상의 한계보다 더 많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회한 방법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아타리 2600용 〈팩맨〉을 망겜으로만 치부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 아타리 2600의 팩맨 게임 플레이 화면
(옛날) 게임을 지탱하는 기술
추억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온 기술의 저자는 마쓰우라 겐이치로와 쓰카사 유키로 이들의 저서 중 “슈팅게임 알고리즘 매니악스”나 “탄막” 같은 게임매니악스 시리즈는 게임개발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언급한 두 책은 슈팅게임에서 등장하는 각종 패턴들을 수식으로 풀어내어서 해당 장르를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필수도서로 알려져 있다. 책의 원제를 직역하면 “전설의 아케이드게임을 지탱하는 기술” 로 일본에서는 이미 “~~~를 지탱하는 기술”이라는 기술서적이 상당수 나오기도 했고 국내에도 번역된 책이 많아 익숙한 제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목들의 책은 서비스나 게임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를 돕고 최신 기술을 다룬다면 “추억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온 기술”은 과거의 게임과 기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 일 것이다.
이 책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주요 게임들을 소개하며 게임이 가진 의미와 게임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소개하는 구성으로 아무래도 게임들 역시 최신 게임이 아니다보니 게임에 대한 소개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다. 브라운관 TV 같은 옛날 기술을 다루고 있다보니 텔레비전 역시 구현부터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텔레비전이 평면TV로 PDP를 넘어 OLED나 LCD 중심으로 제품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브라운관의 원리부터 설명하고 있다. 뒤가 불룩한 옛날 TV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면 이런 브라운관에 대한 설명은 생소할 것이다. CRT라고 부르는 음극선관은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레트로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나 예술작품등 일부 특수한 경우에는 계속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의 튜브가 CRT(Cathode-Ray Tube)의 튜브에서 기원한 텔레비전을 지칭하는 단어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있지 않다. 브라운관은 화면 뒤에 광선총이 위에서 순차적으로 화면을 한줄씩 쏘면서 화면을 만드는 것이고 책에서는 〈퐁〉부터 브라운관의 원리를 설명한다. 이러한 브라운관의 원리는 이후 등장하는 다양한 게임들에서 그래픽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방법들로 사용되기도 하고 한번에 출력할수 있는 스프라이트의 숫자에 제한이 생기는 등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리우스가 화면을 붙이는 방법
지금의 텔레비전은 베젤이 너무 얇아 거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브라운관 TV의 실물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그 거대함에 놀라고는 한다. 흔히 다라이어스라고 알려진 다리우스는 오락실에서 압도적으로 넓은 화면을 쓰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화면은 모니터 3개를 붙임으로써 가능했는데 화면이 거의 자연스럽게 이어져있다는 것도 놀라운 부분이다. 큰 브라운관 TV로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냐면 사실은 거울을 이용하여 반사를 시켜 보여주면서 화면을 연결하는 트릭을 사용한 것이다. 언뜻보면 간단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하다.
* 다라이어스 캐비넷에서 거울을 이용하여 화면을 반사시키는 기술 (위키피디아)
건 컨트롤러가 화면을 인식하는 방법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오락실의 건 슈팅 게임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미 1984년에 닌텐도 패미콤에서 〈오리사냥〉이 대히트를 쳤고 비단 비디오게임이 아니더라도 총을 이용한 유희는 아케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놀이이기도 했다. 레트로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정도 알려져있긴 하지만 이러한 브라운관을 사용하는 건컨트롤러는 현대의 브라운관TV가 아닌 텔레비전에서는 동작을 하지 않는다. 건 컨트롤러가 어떻게 총이 화면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방식이 브라운관 TV의 특성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덕분에 현대의 텔레비전에서 이러한 총 형태의 입력을 구현하기 위해 Wii의 센서바가 소개되는 것이 아마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장 최신 기술이 아닐까 싶다.
현실의 게임 개발
책에서는 브라운관 이외에도 게임에 사용된 다양한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다리우스〉에서는 언급한 거울을 이용한 트릭 외에도 연사에 대한 설명이나 마지막에는 트랙볼의 원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언급되는 게임 중에 한국에서 가장 크게 히트한 흔히 갤러그로 알려진 갤러가에 대해서는 멀티코어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을 지탱하는 기술"에 대하 책들이 당장 개발에 필요한 지식을 다룬다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기술은 어떻다고 해야할까. 1989년.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게임을 제작하는데는 물리적인 한계가 많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개발자들의 실력이자 회시의 기술력이었다. 컴퓨터 칩 성능이 2년에 두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생각하면 1990년의 성능은 2020년에는 32768배는 좋아졌다. 책에서 가장 처음에 언급하는 1970년과 비교하자면 33554432 배는 좋아졌다. 예전에는 컴퓨터의 시간이 사람의 시간보다 비쌌지만 이제는 아니게 되면서 컴퓨터의 자원을 크게 아껴서 개발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좀 더 편하게 개발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발 트렌드가 변화하였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대부분 게임엔진을 통해 개발하며 하드웨어의 성능을 극한까지 올려야 하는 경우는 임베디드나 휴대용 게임 같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스마트폰 플랫폼마저 요즘은 게임 엔진 제작사가 대응을 해줘서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텔레비전 역시 이제는 LCD가 주류를 차지하며 주사선등 약점을 가지는 CRT모니터의 한계는 게임을 개발하면서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레트로게임을 당시 화면으로 즐기기 위해 소프트웨어적으로 에뮬레이션을 어떻게 할지 연구가 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여기에서 소개가 되는 기술들은 대부분 지금은 필요없거나 잊혀진 기술들이다. 지금와서 게임개발자들이 〈퐁〉과 〈컴퓨터스페이스〉 처럼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를 직접 회로로 연결해가면서 게임을 만들지는 않기 때문에 당시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호사가를 위한 것들일 수도 있다.
선배들을 따라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게임디자인들에게 우리는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다. 경로의존성이라는게 있다. 남들이 앞서 간 길을 이미 따라가는 것인데 우리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예라면 두벌식과 QWERTY자판이 있을 것이다. 세벌식이 두벌식보다는 좀 더 좋은 점이 많고, QWERTY 자판의 경우는 드보락이 더 빠르다고 알려져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이미 익숙한 두벌식과 QWERTY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미 간길을 따라가기 쉬웠던 것 처럼 하드웨어의 한계 위에서 줄타기를 하며 만들어진 첫 번 째 시도들은 이후의 게임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별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 문법들의 뿌리를 찾아가면 이러한 시도들의 뒤를 따라가며 자리 잡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뿌리를 짚어보는 점은 더 새로운 시도나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좀 더 게임디자인에 대해 납득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설이 되지 못한 게임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번역된 제목이 “추억 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 온 기술” 인 것처럼 다루는 게임들은 대부분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환경에서 익숙한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제목이 전설의 게임에서 추억의 게임으로 바뀐 것도 흥미로운 지점인데 특히 게임이 선정된 기준이 게임에서 새로운 기술을 사용했느냐 아니냐이다 보니 추억 속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하기에도 1990년 이전 국내 오락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게임들이 많은 편이다. 전설이라고 하기에는 국내 인지도가 너무 낮은 게임들이 많아서 선택한 고육지책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나마 가정용 게임들은 정식루트가 아니더라도 국내에 들어오거나 잡지를 통해 소개되거나 하는 경우도 많지만 중간에 게임소프트와 게임기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달리 아케이드 게임들은 따로 표준이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책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같은 기판을 활용하는 게임들이 아닌 한은 게임을 변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물며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의 경우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독특한 접근이 많다보니 그것만을 위해 국내에서 들어오는 경우는 적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 이후라면 게임잡지 등을 통해서 이름이라도 들어볼 수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국내에서 게임전문지가 1990년에 창간된 것을 감안하면 여기 소개되는 게임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된 경우가 많지 않을까 짐작된다.
하물며 대부분의 게임에 대한 소개들이 사진이나 실제 스크린샷이 아닌 그림이라는 점은 혹시 봤던 게임이더라도 어떤 게임인지 바로 알아보기 힘들게 만드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기술을 설명할 때는 유리하긴 하지만 한국에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이 소개되면서 이름이 바뀐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서 게임을 해온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 추억 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온 기술
쇼와시대의 아케이드 게임을 넘어서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은 1989년까지이다. 1989년은 일본의 연호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1989년이란 해는 1990년과 그 이전을 나누기도 하고 1990년대와 그 전을 나누기도 하는 적절한 분기점일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이후로도 게임은 개발되고 있고 여전히 개발자들은 하드웨어의 한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예전보다 하드웨어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 것은 사실지만 렌즈의 왜곡을 이용하여 화면크기에 대한 한계를 극복한 VR헤드셋들이라던가 기기한계를 정해놓고 한계 안에서 게임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인디게임들도 존재한다. 여전히 기술과 컨트롤러 등의 물성은 게임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런 영향을 탐구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게임은 미국이나 일본의 상황과는 달리 여전히 게임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을 중심으로 발전해왔고 컴퓨터는 게임을 하라고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이 곳에서 언급되어있는 하드웨어에서 지원해서 쓸 수 있는 상당수 기술들은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컴퓨터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도 스프라이트라고 부르긴 했지만 컴퓨터에서는 스프라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 가속은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id소프트의 〈커맨더킨〉이, 한국에서는 〈리크니스〉등이 컴퓨터의 한계를 극복하고 게임기처럼 부드러운 스크롤을 구현해냈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탐구해볼만한 환경과 게임들이 많다. 척박한 국내 도서 시장에서 아케이드 게임을 시작으로 가정용 게임과 컴퓨터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보고 싶은 것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