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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평점이라는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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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10. 10.

별점의 역사를 짧게 훑어보자. 최초의 별점은 1820년경 영국의 마리아나 스타크가 펴낸 『유럽대륙 여행가이드』라 알려져 있고, 본격적으로 별점이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통해서다[1]. 국내에 경우 『조선일보』에 기고하던 영화평론가 정영일이 미국의 영화평론가 레너드 말틴이 매년 발간한 『레너드 말틴의 영화 가이드북 Leonard Maltin's Movie Guide』의 별 4개 만점 시스템을 별 5개 만점 시스템으로 변경해 가져온 것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으며[2], 1995년 『씨네21』의 창간과 함께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포털사이트의 시대가 열리며 영화는 물론 음악, 문학, 만화 등 거의 모든 대중문화 영역에 별점 평가를 남기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며, 플랫폼의 시대인 지금 음식점은 물론 배달, 과외, 중고거래, 택시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 별점 평가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악의적인 별점테러가 자영업자에게 큰 손해를 입히거나 창작자의 평판을 박살내는 등 일종의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별점은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출발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상을 평가하거나 평가를 찾아보기 위한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의 영역에서 특히 공고하게 자리 잡은 별점 평가는 기자와 평론가들이 남기는 잡지와 신문의 공식적인 별점부터 (지금은 서비스 종료한) 네이버 영화와 다음 영화의 네티즌 평점, 왓챠피디아나 키노라이츠와 같은 관객 개인이 직접 평점과 짧은 평을 남길 수 있는 서비스로 이어진다. 해외의 경우에도 IMDB와 레터박스 등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이와 비슷한 다른 방식도 존재하는데, 단순한 호불호를 표기하는 것이다. 가령 레너드 말틴이 별점평가를 도입한 것과 비슷한 시기 대중적 영화평론가로 이름을 알리던 로저 이버트는 ‘엄지 올리기/내리기(thumbs up/thumbs down)’ 평가방식을 도입했는데, 이와 같은 방식은 ‘썩음/신선함(rotten/fresh)’으로 호불호를 표기하고 참여한 이들의 평가 비중을 퍼센트화하여 공개하는 로튼토마토로 이어지며, 현재 CGV에서 사용하는 ‘골든에그’ 평가의 경우에도 이를 참조한 것이다. 별점 평가가 대상을 수치화하는 것에 비해 단순 호불호만을 표시하는 이러한 방식은 조금 더 환영받는다. 별점 평가가 별점테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넷플릭스에서 별점을 폐지하고 좋아요/싫어요 표기 체계로 변경한 바 있다. 혹은, 아예 메타크리틱에서처럼 각 사이트의 평점을 100점 만점 시스템으로 환산하여 조금 더 정교한 평점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게임 웹진의 글인데 영화 이야기를 너무 길게 했다. 현재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 또한 사실 별점보단 단순 호불호 평가다. 스팀의 경우 긍정적/부정적 평가만 남길 수 있으며, 긍정적 평가가 80~100%는 매우 긍정적, 70~79%는 대체로 긍정적, 40~69%는 복합적, 20~39%는 대체로 부정적, 0~19%는 매우 부정적으로 구분되고, 리뷰가 500개 이상이면서 긍정적 평가가 95~100%일 경우 압도적으로 긍정적, 0~19%인 경우에는 압도적으로 부정적, 리뷰가 50개 미만이면서 80~100%는 긍정적, 0~19%는 부정적으로 표기하는 등 총 9개의 평가로 구별된다. 2017년 국내 런칭한 게임 전문 커뮤니티 플랫폼 ‘미니맵’의 경우 별 5개 평가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유저가 남긴 평가를 기준으로 취향과 성향에 맞는 게임을 추천해준다는 지점에서 영화 별점 플랫폼 왓챠피디아와 유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게임 부분에서 전문가들의 평점으로 채워지는 대표적인 매체는 메타크리틱일 것이다. 영화, 드라마, 음악, 게임 등의 분야에서 여러 웹진이 남긴 평점을 종합해 100점 만점으로 평균을 내는 메타크리틱은 대부분의 극찬(Universal acclaim, 90~100), 전반적인 호평(Generally favorable reviews, 75~89), 복합적이거나 보통(Mixed or average reviews, 50~74), 전반적인 혹평(Generally unfavorable reviews, 20~49), 압도적 저평가(Overwhelming dislike, 0~19)의 다섯 단계로 구별된다. 여러 전문가의 평가를 종합한다는 점에서 로튼토마토가 신뢰를 얻는 것처럼, 여러 평점을 종합한 결과라는 지점에서 유저들의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게임의 정식출시 전 미리 플레이해본 평론가와 기자들의 평점이 가장 먼저 공개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관심도가 높다.

     

이처럼 평점과 별점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중 비평의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트리플A 게임의 메타크리틱 점수가 공개되는 날이면 소셜미디어와 게임 커뮤니티에 일대 소란이 일어나고, 주요 게임의 대형 업데이트는 스팀 평가란의 변동을 통해 즉각적 반응으로 표기된다. 영화에서의 별점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수다거리 정도일 뿐 뉴스거리까진 되지 못하지만[3], 메타크리틱이나 스팀 평가의 공개와 변동은 게임언론의 기사로 다뤄지기도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디스이즈게임은 지난 2월 출시된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가 출시 당일 스팀에서 ‘복합적’ 평가를 기록한 것이 며칠 뒤 ‘매우 긍정적’으로 변한 것을 두고 “출시 초기의 악평을 극복한 모양새”라고 평가한다[4][5]. 게임메카는 지난 4월 <백영웅전>, 이번 8월 <검은 신화: 오공>이 각각 출시를 앞두고 공개된 메타크리틱 평점을 보도하며 평점과 리뷰 내용을 종합하여 게임을 평가한다[6]. 물론 스팀의 평가는 출시 이후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가 남긴 평가이며 메타크리틱은 평론가와 기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이 남긴 평점의 종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두 평점 모두 게임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주요한 지표로서 자리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점은 정말로 비평의 기능을 수행하는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사례처럼 유저와 전문가 사이의 견해 차이가 논란으로 비화된 사례는, 어떤 면에서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전문가들이 남긴 평점이 비평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메타크리틱에서 현재 132명의 전문가에게 93점(100점 만점)을 받아 ‘메타크리틱 머스트-플레이’ 마크를 받은, 163,543명의 유저에서 5.8점(10점 만점)의 평점을 받아 ‘복합적 혹은 평균’을 받은 상반된 평가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비평이 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나아가 이것이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평점이 비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증거한다. 오히려 문제적인 것으로 여겨질만한 것은 게임즈비트의 저널리스트 딘 타카하시가 <컵헤드>의 튜토리얼을 가까스로 통과하고 첫 스테이지마저 클리어하지 못하는 처참한 게임플레이[7]를 보여준 뒤 혹평하는 프리뷰 기사[8]를 작성했던 사건이다. 게임의 기본적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그의 플레이는 많은 게이머로 하여금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그의 전문성을 의심케 했다. 평점이 갖는 비평으로서의 기능 이전에 전문가로서 전문성을 갖지 못한 이들이 평점을 남긴다는 사실은 많은 게이머의 분노를 끌어냈다.

     

사실 전문성이란 것은 애매한 영역이며, 명확한 기준은 없다. 더군다나 게임 평론가가 되기 위해서 (게임제너레이션의 공모전 등이 있긴 하지만) 등단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게이머들은 그 기준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것을 요구한다. 마치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영화 별점을 매길 때 “비평적으로 할복자살할 마음의 준비”[9]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종종 게임 평론가들이 남긴 평점은 그들의 모든 비평적 견해를 대리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게임 평점을 남기는 일련의 전문가들이 겪는 고충은 단지 평점 혹은 별점이라는 표면만으로 환산되기 어렵다. 그것은 비평 행위라기엔 (정성일의 말이 드러내는 것처럼) 너무 가볍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은 2007년 영화 <디 워>와 관련해 영화비평과 관련한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대중비평(mass criticism)에 관한 발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비평에서 드러난 ‘대중’은 기존 평론가들이 제시하지 못한 참신하고 새로운 각도의 영화보기의 가능성에서부터 파워 블로거나 파워 트위터리안 같은 오피니언 리더들에 의해 쉽게 의견이 조작될 수 있는 획일성까지, 또한 특정 영화인이나 비평가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악플에서도 드러나듯이 별다른 성찰이 없는 파시즘적인 양상까지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10]

     

프롬소프트웨어의 <엘든 링>이 출시됐을 당시 메타크리틱 97점이라는 평론가 점수가 논란이 됐었다. 게임 자체의 높은 난이도 속에서 평론가들이 제한된 시간 내에 온전한 평가를 내렸을지에 관한 의심과 평점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만들어낸 논란이었다. 이에 대해 유튜버 ‘중년게이머 김실장’이 남긴 말은 참고할만 하다. “(<엘든 링>이라는) 하나의 타이틀이고 똑같은 게임인데, 우리는 그 게임을 통해서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까?”[11] 모든 문화예술 작품(혹은 상품)은 향유자의 경험을 전제로 삼는다. 다만 그 경험의 파생물로서 등장하는 비평이 비평으로서 승인되기 위해서는 동일한 대상을 경험했다는 전제를 두어야 한다. 김실장의 말은 하나의 게임을 두고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딘 타카하시의 다소 극단적 사례처럼 플레이 실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선호하거나 더 잘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장르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마감의 문제로 평론가에게 부여된 게임플레이 시간의 제약이 문제일 수도 있다. <엘든 링>이나 <발더스 게이트 3>와 같이 볼륨이 큰 게임의 경우 하나의 게임을 전혀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일 길이 게임 자체에 내재되어 있기도 하다.

     

게임플레이 경험은 녹화되어 리플레이될 수 있을지언정 과학적으로 재연될 수는 없다. 그 경험은 한 편의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만큼 동등한 경험이 되지 못한다. 게임 비평이 지닌 곤란함은 여기서 출발한다. A라는 게임의 고인물이 B 게임의 뉴비가 되기도 하고, 모든 게임을 훑어가며 플레이하는 라이트 유저와 하나의 게임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헤비유저 사이의 차이도 존재한다. 그 안에서 비평의 토대라할 수 있는 공통의 경험을 제시하는 것은 꽤나 곤란하다. 누군가가 발견한 요소를 누군가는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고, 여러 제약이 가져오는 탐색의 불가능은 게임 전체를 파악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모두가 비평가의 태도로 게임을 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같은 지평 위에 서 있는가? 웹진과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별점과 평점은, 영화에서의 별점이 일종의 마케팅 효과를 지닌 것처럼, 게임 구매를 결정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을 진지한 비평과 등치시키는 것은 경험의 차이, 혹은 평점이라는 표면 뒤에 있는 리뷰와 비평의 영역을 지워버리는 것에 가깝다. 참고하되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을 것, 우리는 미슐랭 3스타 식당에 가서 음식 맛이 없다고 할 수도, 이동진 평론가가 별 5개를 부여한 영화를 보고 지루함에 빠져 잠들 수도 있다. 경험이 상대적인 것처럼 비평 또한 상대적이다. 별점과 평점은 그 상대성의 표현일 뿐이다.



[1] 김성태 (2021.05.24). ‘별점’의 함정, 무엇이 문제인가. <지디넷 코리아>. https://zdnet.co.kr/view/?no=20210524104310 
[2] 한현우 (2009.03.31). [그것은 이렇습니다] Q: 영화나 뮤지컬에 '별(★)점'을 매기는 이유는?.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30/2009033002002.html 
[3] 물론 올해 개봉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박평식 평론가가 별점 4.5개를 준 것으로 크게 화제가 되며 기사까지 난 적이 있지만, 이는 오히려 예외적 사건이다. 대부분의 영화기자/평론가의 별점은 보도자료나 포스터 디자인 등 마케팅의 하나로써 사용된다.
[4] 김승주 (2024.02.06). '복합적'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스팀 평가 역주행한 게임. <디스이즈게임>. https://thisisgame.com/webzine/nboard/11/?page=3&n=184405 
[5]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복합적’ 평가의 주된 이유는 출시 초기 발견된 버그 때문이었다. 버그나 최적화의 문제는 유저 평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평가기준이 된다. 다만 서로 다른 기술적 환경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그것은 정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나아가 그것은 비평과 얼마나 관련 있는가? 이것은 이 글에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6] 이우민 (2024.04.22). 평작과 수작 사이, 백영웅전 메타크리틱 78점. <게임메카>.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748202 , 김미희 (2024.08.19). 분위기·전투 호평, 검은 신화: 오공 메타크리틱 82점. <게임메카>.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752250 
[7] Cuphead Gamescom Demo: Dean's Shameful 26 Minutes Of Gameplay https://www.youtube.com/watch?v=848Y1Uu5Htk&embeds_referring_euri=https%3A%2F%2Fnamu.wiki%2F&source_ve_path=MjM4NTE 
[8] Dean Takahashi. (2017.08.24.). Cuphead hands-on: My 26 minutes of shame with an old-time cartoon game. GameBeat. https://venturebeat.com/games/cuphead-hands-on-my-26-minutes-of-shame-with-an-old-time-cartoon-game/ 
[9] 정성일, 허문영 (2010). [씨네산책2] 정성일과 허문영이 김영진, 김혜리, 이동진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2). <씨네21>. 776호.
[10] 심영섭 (2007). ‘대중비평(Mass Criticism) 시대’의 등장, 그리고 비평가와 대중의 거리(距離). http://fca.kr/ab-1068-4 
[11] 엘든링에 대한 엇갈린 평가? 경험과 기대에 대한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LSndHMGBF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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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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