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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덤한 덤, 쏠쏠한 덤 : 덤으로서의 게임들

09

GG Vol. 

22. 12. 10.

〈PressPausePlay〉(2011)1) 는 디지털 콘텐츠 산업과 문화가 확장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회와 그로 인해 줄어드는 기회 속에서 창작자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또 우려하는지를 잘 포착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주된 매체가 음반에서 음원으로 변화하는 맥락인데, 세계적으로는 1999년 ‘냅스터’(Napster), 한국에서는 2000년 ‘소리바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음원 사용에 대해 창작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2)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는 내내 ‘변화’에 초점을 두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을 비롯한 음악 산업과 문화의 많은 변화 속에서 이전과 변함없이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들은 그 변화로 인한 흥망성쇠의 여부보다는 음악의 가치가 어떻게 빛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방법의 하나는 현장이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만나 음악을 함께 향유하는 현장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들으며 이 변화가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무언가가 등장하면 무언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흐름에 접어드는 과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기술이 콘텐츠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만큼 게임에서도 디지털 기술로 인한 변화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 년 동안의 기간은 한국에서 디지털 기술이 사회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게임산업과 문화 차원에서도 여러 주목할 만한 의미를 남긴 시기였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일본 대중문화 개방, 휴대전화(PCS)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보급 등 사회문화적으로 주요한 사건이 발생하고 정책이 추진되면서 게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PC 패키지 게임’ 시장의 축소와 온라인‧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 ‘플레이스테이션 2(PS2)’ 정식 발매를 필두로 한 비디오게임 시장 확대, PC방의 확산과 프로 게임 리그 출범 등 현재 한국 게임 산업과 문화의 주를 이루는 분야들이 이 시기에 처음 시작되거나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인터넷이 있다. 인터넷은 게임의 제작, 유통, 소비, 향유방식 모두에 걸쳐 변화의 구심점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를 통해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기존의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또,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음악에서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변화 속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게임의 가치’는 무엇일까. 혹은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가치는 어떻게 추구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덤으로서의 게임’이 갖는 의미에 대한 하나의 답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정품 부록’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얻지 못했나


요즘은 ‘굿즈’라는 명칭으로 더 친숙한 잡지의 별책부록은 잡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굿즈를 샀는데 본품이 따라왔다’는 식의 표현처럼 발간되는 잡지가 여러 종인 분야에서는 잡지의 판매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의 부록을 제공하는 경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보그〉, 〈코스모폴리탄〉, 〈지큐〉, 〈에스콰이어〉 등의 패션 매거진을 위시해 형성된 ‘매거진 전성시대’3)는 잡지 간의 부록 경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다.


게임 잡지에서도 1990년대 후반 PC게임 잡지를 중심으로 부록 경쟁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매거진 전성시대’보다 훨씬 앞선 시기였다. 부록 경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는 유명 시리즈의 신작이나 출시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의 공략이나 특정한 테마의 정보를 별책으로 제공하거나, 게임의 데모나 패치, 혹은 유틸리티 파일을 수록한 CD롬을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게임 잡지 간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더 ‘좋은’ 부록을 제공하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게임 타이틀을 제공하는 ‘정품 부록’ 경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4).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부록 경쟁이 시작된 배경이었겠지만 이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격화되어만 갔다. 당시에도 잡지의 부록을 제공하는 제도적인 틀이 있었고, 게임 잡지사를 중심으로 경쟁을 자제할 것을 협의하기도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5). 경쟁은 더 최신의 게임을, 정품을 구매한 것과 가깝게 부록으로 제공하느냐로 이어졌다. 


적절한 경쟁은 경쟁자 모두가 성장하는 기회가 되지만, 과도한 경쟁은 경쟁자 모두가 소모되는 결과를 만든다. 이 경쟁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게임을 부록으로 제공하느냐에 따라 매달 독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잡지는 판가름 났지만, 그것이 잡지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가는 불투명했다. 오히려 이 경쟁은 게이머들의 게임 구매 심리를 낮춤으로써 게임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금만 기다리면 (사실상) 정품 게임을 부록으로 받을 수 있다’는 상황에서 손꼽아 기다린 게임이 아닌 이상 아무리 신작 게임이라도 바로 구매하지 않고 한동안 기다려보는 흐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게임 잡지 간의 ‘정품 부록’ 경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는 가운데 게임 산업에 득보다는 실이 되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를 어떤 분명한 변화의 기점으로 단정 짓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경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살펴볼 만한 나름의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경쟁의 주요 당사자는 잡지사들이지만 이 경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잡지사들에 게임을 제공한 업체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작 게임’마저도 부록으로 제공한 까닭 혹은 사정이 있을 텐데, 주된 이유는 비용이다. 즉, 정상적인 유통을 하는 것보다 게임 잡지에 부록으로 제공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효율적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 게임산업과 문화에 주요한 변화가 발생한 시기인 1990년대 중반부터 약 십여 년 사이에 발생한 IMF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 악화, 초고속인터넷 보급에 따른 불법복제 성행 등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그 사정과 겹쳐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경향도 있었다. 잡지들은 독자들에게 가장 돋보이려고 경쟁에 참여했지만, 독자들은 그중에 한 권만을 고르지 않은 것이다. 여러 잡지를 구매하는 독자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정품 게임 하나를 구매하는 가격으로 잡지 여러 권을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품 게임 하나를 구매하지 않고 잡지를 여러 권 구매하면 (사실상) 정품 게임 여러 개를 소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게임 잡지의 ‘정품 부록’ 경쟁은 게임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는 기회였다. 분명 게임을 더 많이 소장하는 기회는 되었겠으나 그 게임들을 모두 충분히 플레이하는 기회까지 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는 제한된 시간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게임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일명 ‘게임 불감증’과도 맞닿아 있다6). 제한된 시간 때문에 게이머가 여러 게임을 모두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정품 부록’ 경쟁은 독자들에게 게임을 소장하는 만족은 주었겠으나, 게임을 플레이하는 만족을 주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르지 못했다.



게임을 ‘줍는’ 시기, 게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부록’ 경쟁과 비합법적 경로를 통한 무단 유통은 게임 그 자체에 상품의 가치를 두는 것이었다. 게임에 암호표를 두거나 불법복제 방지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상품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디지털 유통이 일반화되어 여러 플랫폼에서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는 현재 이러한 사례들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게임을 줍는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합법적이고)공짜로 얻을 수 있는 ‘정품 게임’이 매우 많고,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비용을 들이지 않는 선택이 풍부하게 주어지는 현재 게임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여기서 〈PressPausePlay〉에서 살펴본 변함없는 음악의 가치를 잠시 떠올려 보자. 음악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음악을 만들고 듣는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을 감상하는 주요한 경로가 되면서 음반이 얼마나 팔렸느냐 보다 음악을 얼마나 많이 듣느냐가 중요해졌다. 이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쓰는 시간이 중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이라는 상품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점차 낮아진 대신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게이머가 들이는 시간이 중요해졌다.


게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게임의 수도 대단히 많고, 과거에 만들어진 게임들이 지금의 환경에서 불편함 없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조율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 사이에서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높은 비율로 할인하는 것은 앞으로 게임을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금 더 높여두는 정도가 되었다7).

 

이러한 배경에서 게임의 가치는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 그 자체가 되었다.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더 주목받기 어렵게 되었다. 덤은 언제나 반갑지만, 플레이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쏠쏠한 덤인지 덤덤한 덤인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는 방향도 비용을 치르도록 강제하는 것에서 시간을 쓰기 편하도록 보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꽤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이다. 무수히 많고 많아질 게임뿐 아니라 영상과 음악을 비롯한 디지털 콘텐츠들이 하루 24시간 중에서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 흐름은 언제까지일까? 그다음 변화는 무엇일까, 그 변화를 통해 게임의 가치는 어떤 흐름으로 접어들게 될까. 



1) www.presspauseplay.com
2) 작품이 공개된 시기로부터 십여 년이 더 지난 현재 음원을 파일로 내려받아 여는 것보다 스트리밍으로 감상하는 것이 더 일반화되었으니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이 카세트테이프나 CD로 음악을 감상하던 것으로부터 꽤 많이 변화한 셈이다.
3)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년), 드라마 〈스타일〉(2009년) 등의 인기는 당시 잡지에 대한 높은 대중적 관심을 짐작하게 한다. 201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매거진 에디터에 대한 직업적 관심도 높았다.
4) 부록 경쟁을 포함한 한국 게임 잡지의 흐름을 일별하는 데 웹진 〈게임메카〉의 시리즈 기사 ‘게임 잡지 연대기’가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25133 그밖에 온라인에서 검색어 ‘게임잡지 번들’을 통해 다양한 구술과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5) 〈전자신문〉 “게임잡지 번들제공 게임개발업체 반발” 1997년 11월 7일. https://www.etnews.com/199711070072 
6) ‘할 - 합법적으로 구매했는지 불분명한 - 게임이 너무 많은 나머지 하나의 게임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의 용어인 ‘게임 불감증’이 ‘발생한’ 배경은 게임을 비롯한 소프트웨어가 ‘와레즈’나 P2P 서비스 같은 비합법적 경로로 무단 유통된 것이다. 정식으로 구매한 것과 무단으로 입수한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나(무단 유통을 옹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선택할 수 있는 게임이 너무 많아졌다는 점에서 유사함을 연결하고자 했다. 
7) 게임 플랫폼 ‘스팀’을 두고 게이머들이 “게임 모으는 게임”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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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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