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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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8. 10.
나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포 게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워하라고 만든 게임을 무서워해서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긴 한데 뭔가 아쉽긴 아쉽다. 바로 내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공포 게임에도 명작이 참 많다. 〈암네시아〉(Amnesia), 〈블레어 위치〉(Blair Witch),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맨 오브 메단〉(Man od Medan), 〈디 이블 위딘〉(The Evil Within),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Dead by Daylight),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Alien: Isolation), 〈화이트데이〉(White day),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 〈사일런트 힐〉(Silent Hill), 〈디텐션: 반교〉(Detention: 返校)는 플레이해 보지 않았지만 제목도 게임 속 장면들도 너무 친숙한 작품 또는 시리즈들이다.
고백하자면 이중 적지 않은 게임들을 소장하고 있다. 책 구매도 독서이듯 게임 구매도 플레이의 일환이기에 아직 플레이하지 않았을 뿐 언젠가 하긴 할 것인데 아직 그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 따름이다. 그렇지만 명작으로 불리는 게임들을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무서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니 공포 게임은 떠올리지 않아버리기 쉽지만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다시 고개를 돌려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질문들이 이어진다. 공포 게임은 왜 무서운가? 공포 게임의 재미는 무엇인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공포를 즐기는 것일까,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일까?
공포 영화를 통해 비추어 본 공포의 정체
가장 궁금해지는 것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마음이다. 이들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즐거움을 느낄까, 괴로울까? 만약 그것이 즐거움이라면 어떤 즐거움일까, 한편 그것이 괴로움이라면 거기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 공포 영화를 대상으로 유사한 질문을 던진 시도가 있다. 공포 영화를 관람하는 이들이 공포 영화의 무서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괴로움을 느끼는지를 연구한[1] 풍원과 나은경은 공포 영화를 관람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양가적인 감정의 복합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공포 영화의 무서움을 통해 “짜릿하고, 신선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 긍정적인 즐거움이라면, “끔찍하고, 불쾌하고, 징그럽고, 스트레스를 받는” [2]느낌을 받는 것은 부정적인 괴로움인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면서 복합적인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마음에 적용하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게이머가 경험하는 두려움은 긍정적인 즐거움과 부정적인 괴로움 모두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로 이어지는 출발점인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이 허구에 불과한데도 관객이 무서워하는 이유를 연구한[3] 안의진은 콜린 래드포드(Colin Radford)가 제시한, 영화의 허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순적인 관객을 뜻하는 ‘픽션 패러독스’(Fiction Paradox) 개념[4]을 활용해 관객이 공포 영화를 보면서 무서움을 느끼는 맥락을 설명한다. 관객은 영화에 등장한 괴물이 진짜 있다고 믿어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허구인 것을 알고 실제로는 그 괴물이 누구의 안전도 해치지 않음을 (두려움의 범위와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를 통해 느껴지는 공포감을 ‘즐거운 흥분’으로 받아들인다[5].
이는 관객이 공포 영화를 통해 느끼는 공포는 감각을 토대로 하는 것으로, 관객이 공포 영화에서 괴물을 보면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모순적인 과정이 아니라 없다는 것을 아는 채로 즐기는, 합리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관객이 공포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영화 속 괴물이 정말 눈앞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실감이 나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괴물이 눈앞에 있는 셈 치고 ‘무서워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이 관객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공포 영화를 즐겨 본다’는 것도 자연스레 가능해진다(여전히 엄두는 안 나지만).
공포를 경험해서 얻는 재미가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두려움이란 주어지는 동시에 선택되기도 한다는 점은 두려움이 제한된 조건에서만 경험하는 비일상적이고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된 것임을 뜻한다. 이를 염두에 두면 공포 영화에 대한 다른 여러 논의들, 가령 특정 작품에서 표현한 공포가 갖는 의미를 당시의 사회적 정서를 토대로 해석[6]한다거나, 영화가 만들어진 허구적 세계에만 해당하는, 극장 안에 갇히는 공포와 극장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더 강렬해지는 공포[7]로 두려움의 정체와 영역을 확장하여 구분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종합하면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며, 이 두려움을 통해 우리는 즐거운 동시에 괴로울 수 있다. 이를 공포 게임에 적용하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경험하는 두려움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며, 게이머는 이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복합적인 재미를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공포는 영화의 공포와 어떻게 다른가
어쩌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지 모른다. 공포 영화/게임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함께 발휘되는 양가감정이라면, 마음의 방향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 재미의 모양새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공포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는 데 필요한 건 마음의 방향을 옮기는 것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게 잘 안된다. 마음먹기로 결심은 하는데 실행에 옮기기 전에 매번 주춤하게 만드는 고비가 있어서다. 바로 게임의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이다.
영화와 달리 게임은 공포 상황을 직접 헤쳐 나가야 한다. 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공포 상황도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 게임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은 영화를 관람할 때와 달리 즐거움으로든 괴로움으로든 어느 정도 견디면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방향을 달리하는 것 외에도 그 방향을 꼭 붙들고 있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를 감내하면서.
더군다나 공포 상황이 펼쳐진 현장에 실제로 있는 것 같은 임장감을 토대로 한 VR 게임이라면? VR 공포 게임이 게이머의 두려움을 유발하는 요인을 분석한 He Zhang 등의 연구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중심으로 게이머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게 느끼면서 몰입된 공포를 경험한다[8]고 제시한다. 귀신이 갑자기 등장하거나,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린다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발생할지 모른다고 긴장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두려움은 (영화든 게임이든) 스크린을 통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경험하는 두려움과는 다르다. 게임에서 경험하는 공포 상황은 여전히 허구이지만, 그것이 허구임을 아는 채로 즐기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게임에 따라 상호작용성이 다양하게 적용되면서 두려움을 경험하는 구체적인 맥락이 달라지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인디 게임을 사례로 두려움을 ‘허구 감정’(fiction emotion)과 ‘게임플레이 감정’(gameplay emotion)으로 구분해 공포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어떤 감정적 경험을 하는지 탐색한 Jan-Noel Thon의 연구는 인디 게임이 시청각적/서사적/놀이적 요소를 통해 대형 스튜디오와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을 전달함을 제시한다[9]. 적은 예산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대신 독창적인 표현을 시도할 수 있는 공포 인디 게임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두려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 VR 게임과 인디 게임의 사례는 임장감이 두려움에 대한 몰입을 강화하고 독창성이 두려움의 범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교해 게임이 새롭게 제공하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이 게임에서도 유효하다면 그것은 어떤 경험일까. 공포 게임에서 가상의 캐릭터와 인간과 유사한 정도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에 차이가 있는지 탐색한 Angela Tinwell 등의 연구는 가상의 캐릭터가 인간과 유사할수록 무섭게 느낀다는 것을 제시[10]한다. 현실과 맞닿은 지점에서 두려움을 더 효과적으로 느끼는 셈이니 게임을 통해 경험하는 공포는 영화와 유사한 부분은 있지만, 동시에 더 넓고 짙은 셈이다[11].
공포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겠다던 결심이 번번이 좌절되거나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은 데에는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굳게 마음을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다고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 들진 않는다. 더 넓고 짙은 두려움이 가득한 세계이지만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상호작용성은 시도를 요구한다. 그 시도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것을 요청한다. 그 시도는 일련의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 시도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는 분투의 과정을 통해 게이머는 게임에 펼쳐진 세계를 경험하고 탐색한다.
공포 게임에서 무서움은 실패를 유도한다. 게임에 구현된 규칙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부정적인 괴로움을 먼저 떠올리게 해 도전을 반복하면서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게 한다. 이 무서움을 반드시 극복할 필요는 없다. 공포 게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즐겁고도 괴로운 양가감정이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공포의 형식이 아니어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게임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동안 선제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두려움이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괴로운 동시에 즐거울 수 있음을 믿고 공포 게임의 세계로 다시 다가가 보려 한다. 분명 그 과정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을 것이다. 무서우라고 만든 게임을 안 무서워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보려 한다. 실눈을 뜨고서라도, 발걸음을 아주 더디게 내딛게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