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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직면한 유럽의 게임 구독 서비스

09

GG Vol. 

22. 12. 10.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69 


지난 15년 동안 게임을 만들고 소비하는 방식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이는 보다 향상된 인터넷 연결 그리고 새로운 (모바일)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촉발된 변화였다. 한 때 컴퓨터 게임은 상점에서 물리적으로 판매되었고, 그렇게 해서 구매한 게임을 플레이하려면 거실에 위치한 가족용 컴퓨터나 게임용 콘솔 앞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게임을 언제 어디서나 플레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우리가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뿐 아니라 게임이 디자인되고 시장에 출시되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고 있다. 서비스로서의 게임, 소액 결제, 클라우드 게이밍, 인-게임 광고부터 해서 NFT와 콜렉터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결제 형식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플레이어들도 이와 같은 거대한 변화상을 느끼고 있지만, 그 변화가 플레이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게임 플레이를 둘러싼 보다 넓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게임은 현재 글로벌한 현상이기 때문에 세계의 각 권역별로 그 맥락들은 상이하게 나타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유럽인의 관점에서 게임 문화를 논하려고 한다. 



유럽의 게임 문화와 게이머 정체성 


역사적으로 유럽 게임 시장은 대중화 된 개인용 컴퓨터 및 아마추어 게임 개발 활동과 해적판의 번성이라는 특성을 보여왔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 지금도 여전히 – 단순한 여가용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진지한 문화이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고가의 게임 하드웨어를 구매하거나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그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다. 이와 더불어 게임이 일부 헌신적인 매니아들을 위한 하위문화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형성되어왔으며, 이 하위 문화의 “구성원”들은 본인이 달성한 성취(achievement)와 더불어 소유하고 있는 게임 장비의 테크니컬 스펙을 통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곤 했다. 실력중심주의(meritocracy)적인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게임 하위문화 내) 지위는 게임플레이 실력에 달려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플레이를 잘한다는 것은,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이와 같은 실력중심성이 게임의 가상적 환경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게임 생태계로 스며들어 확장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게이머로서 지닌 정체성의 가치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그 성취 - 후에 자아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 에 의해 규정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닌텐도 wii나 모바일 게임 등의 캐주얼 게임의 확산으로 어느 정도 바뀌긴 했다. 캐주얼게임이 보다 넓은 범주의 사람들에게 게임의 접근성을 높여주면서 게이머들의 하드코어한 “서브컬처”라는 규범이 변화해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정한” 하드코어 게이머들과 짧은 시간동안 간간이 플레이하는 캐주얼 플레이어들 간의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서 핵심은, 캐주얼 플레이는 하나의 활동인데 반해 하드코어 게이밍은 하나의 정체성이 된다는 점이다.  



게이머 정체성에 도전하는 클라우드 게이밍


최근 비즈니스 모델이 게임을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한 가지 가능한 답변은 비즈니스 모델이 앞서 언급한 게이머 정체성의 구축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는 클라우드 게이밍과 리모트 플레이 서비스다. 구글 스태디아의 실패는 클라우드 게이밍이 기존의 게임 플레이 실천과 가치에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구글 스태디아는 런칭하기 전부터 “게임용 넷플릭스”라 불렸다. 스태디아는 플레이어들과 개발자들에게 각각 약속을 내걸었는데, 개발자들에게는 향후 출시될 타이틀 개발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엄청난 규모의 수용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접근을 약속했고, 플레이어들에게는 어떤 디바이스를 통해서든 언제나 옛 게임들을 비롯해서 새로 출시되는 메이저 작품까지 포함하는 게임의 다양성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월정액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스태디아는 이 야심찬 약속들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그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독점적인 블록버스터가 부재하다는 것, 일단 스태디아에 게임을 올려놓으려면 개발자들이 게임 이식 작업을 해야 했다는 것, 플레이어들이 스태디아에서 게임을 하려면 이미 소유한 게임일지라도 또 사야 했다는 것. 그리고 구글이 플레이어들이나 게임 업계로부터의 신망을 얻지 못한 채 외부자로서 게임 산업에 진입했다는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이 존재한다: 스태디아가 게이머 정체성의 구축 그 자체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플랫폼상에서 언제나 게임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스태디아의 약속이 고가의 게임 하드웨어에 대한 수요를 한물 간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언데 어디서나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은 언뜻 좋게 들리지만, 고가의 게임 하드웨어 소유 여부가 하드코어 게이머를 규정짓는 속성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 스태디아가 한 일은 다양한 게임에 대한 풍족한 접근뿐 아니라 덜 헌신적인 플레이어 집단으로의 접근 또한 제공한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게임 문화 내 구축 되어있던 위계질서를 흐트러뜨린 셈이다. 앞서 게이머 정체성의 확장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했던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성취 또한 이와 연관되는데, 이러한 점과 관련해서도 스태디아는 문제가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 소프트웨어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구독하고 그에 대한 접속권을 얻는 방식이,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게임에 쏟았던 자신들의 노력 및 그에 따른 성공과 성취가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게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부자인 구글이 시장을 파괴하고 정복하러 왔다는 사실 또한 플레이어들의 의심을 샀다. 아마추어 게임 제작이 초창기 시절부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왔던 유럽의 게이머들은 당연히 더욱 그러했다. 업계 내 여타의 개발사들이 대개 게임 문화 내에서 “내부자 출신”으로 여겨졌던 것과 달리, 구글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소중한 문화를 정복하려 드는 거대 기업으로 보였던 것이다.  



고결한 플레이어가 느끼는 위협감 


물론 스태디아는 엑스박스의 게임패스처럼 새롭게 등장한 구독 서비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유럽을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편인 게임패스에 대해서도 여전히 비판적인 게이머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이러한 경향을 소유권의 부재 및 하드코어 게이밍 중심의 “하위문화”의 낮아진 문턱과의 연관 속에서 생각해볼 만하다. 또한 바람직한 게임 문화를 망친다고 여겨지는 새로운 유형의 게임 및 결제 방식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분노도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캐주얼 게임의 도래, 특히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플레이하는 게임의 등장은 잘해봐야 수준 이하, 최악의 경우 게임도 아닌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불이 없는 무료 게임의 결제 방식(freemium games) 또한 게임 전체를 오염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한 방식의 게임들은, 좋은 게임의 제작이 아닌,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쓰도록 만드는데 디자인의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한편 게임 내 리소스는 스킬과 노력을 통해서 얻어야 정직한 것이라 여겨지는 경향 속에서, 소액 결제는 – 지금도 어느 정도는 여전히 – 약한 수준의 속임수(cheating)이라 여겨져 왔으며, 따라서 이는 열등한 플레이어나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요약하자면 클라우드 게이밍 및 최신 게임 결제 방식의 발전 방향이 고결한 플레이어에게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클라우드 게이밍의 미래


스태디아는 실패했고, 엑스박스 게임패스는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게임팬들로부터 어느 정도 회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서비스가 미래 시장성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오늘날 게임 시장에서 하드코어 게이머는 소수다. 유럽에서 게임은 나이를 뛰어넘어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 되어있는 활동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6~60세 연령대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많은 수가 아마도 휴대폰으로 무료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그친다 할지라도, 따라서 현 시점에 클라우드 게임이 그리 매력적인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구독 기반 게임의 부상은 그리 먼 시점의 일이 아닐 수 있다. 게임 개발의 측면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한 상황이다. 유럽 게임 산업은 Rockstar North 같은 몇몇 거대 회사나 CD Project Red나 IO Interactive등의 중간 규모 업체 몇 군데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인디 스튜디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에게 있어 앞서 언급한 상황들에 따른 어려움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럽 시장에 있어 진짜 어려움은 완전히 다른 전선에서 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다. 예컨대 기술 산업 분야의 규제, 특히 개인 정보 취급과 관련된 엄격한 규제 같은 문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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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연구자)

이다 요르겐센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IT 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게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젠더 재현, 게임 문화, 매체로서의 게임 등과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던 덴마크 대학(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박사후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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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연구자)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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