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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와 투쟁하던 이야기로 세상을 구하게 만드는 방법 - 헬블레이드 2: 세누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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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12. 10.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묘사하는 것은 때로 놀라울 만큼 쉽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천재나, 비현실적인 실력을 가진 전사를 만들 수도 있다. 어떤 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곤란함은 그들의 비범함 앞에서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일상적인 세계 속의 이례적인 인물이던, 이례적인 세계 속 일상적인 인물이던, 이들의 능력과 서사는 우리의 상상과 언어가 허락하는 한에서 필요한 만큼 설정될 수 있다. 아무리 극단적이고 허황되더라도.


여기엔 이들이 창조된 인물이기에 가지는 편리한 이점들이 있다. 이들이 가진 능력의 이면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 뛰어난 능력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 능력을 얻으며 걸어오는 길은 어땠는지, 어떤 부침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때이른 지위와 성공의 대가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이를 ‘구태여’ 설명하는 것은 이들의 서사를 간혹 다채롭게 만들어줄 부차적 이야깃거리로 소비된다.


대개의 영웅 이야기에서는 영웅들의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칭송하며, 이를 한층 낭만적으로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그 행보에 놓인 고통과 좌절이다.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과 사건은 순수한 백지 또는 기초적인 도덕주의자의 상태에 머물러있던 인물을 영웅으로 만든다. 이 고통은 마치 '훈장 같은' 흉터로 남아 영웅을 더욱 빛나고 고귀한 존재로 장식한다.


고통과 좌절을 겪은 영웅은 마침내 이를 극복하고 더 성장, 발전한다. 고통이 남긴 트라우마는 영웅의 의지와 용기 앞에서 무력화되고, 더 이상 그를 번민케 하거나 괴롭히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숭고한 영웅 이야기의 일부지만, 이 길이 때로는 어둠과 추악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매 순간 어떤 대가를 견뎌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세누아의 전설: 헬블레이드 IISenua’s Saga: Hellblade II(2024, 이하 전설)>이 직시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전작인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Hellblade: Senua’s Sacrifice(2017, 이하 희생)>은 세누아가 겪는 개인적인 문제들을 부차적인 이야깃거리가 아닌 서사의 핵심으로 다루며, 그녀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스스로를 구해보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리고 뒤이은 <전설>에서는, 이 세누아가 타인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외부 세계로의 여행을 묘사하겠다 선언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고통을 파고들며 논하던 작품이, 이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논하는 주인공을 논해보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고통을 어떻게 묘사하고 활용할 것인가? 그녀가 이 유산을 끌어안고 여정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POV: 세누아의 시선으로 보는 현실과 비현실


한 켈트 전사가 죽은 연인을 되살리기 위해 저승으로의 여정을 떠난다. 이것이 <희생>의 기초적인 로그라인이다. 게임을 실행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당신은 세누아가 몇 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 존재하지 않는 형상들을 본다. 그녀를 학대한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심어진 부정적 자기 인식과 죄책감이 그녀의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 전투가 다가올수록 당신은 서서히 깨닫는다. 이 여정은 죽은 연인을 되살리는 여정이 아닌, 세누아가 스스로 짊어진 죄책감과 고통으로부터 일어서기 위한 여정이다.


<전설>에서 시작되는 여정은 <희생>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따른다. <희생>에서 헬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홀로 떠났던 세누아는 이제 그녀의 민족을 침략한 노스먼의 땅이라는 현실의 공간으로 향한다. 더 이상의 침략을 막고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현실적인 대의도 가졌다. 자신의 과거와 개인적인 상실에서 기인한 고통에 맞섰던 세누아는 이제 그녀의 칼날을 내면에서 외면으로 돌려, 외부 세계에서 타인들을 괴롭히는 세상의 고통에 맞서려 한다.


그리고 게임을 실행한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떻게 <전설>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성의 이야기를 시도하려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익숙한 목소리의 해설자가 당신을 반긴다. 세누아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목소리들은 여전히 그녀의 귓전을 맴돌고 있다. 아버지 진벨의 망령은 잊을만하면 나타나 세누아를 덮친다. 그리고 그녀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적은 여전히 그녀 자신이다. [그림 1]


* 전작에서처럼 세누아의 과거와 진벨의 망령에서 비롯된 비현실적 공간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해설자, 목소리들, 진벨의 망령은 <희생>의 전반에 걸쳐 플레이어에게 세누아의 내면을 묘사했다. 명백하게도 세누아 본인의 생각과 직관을 상징하는 이 요소들은 <전설>에서도 역시나 내밀하고 자세하게 작동하며, 세누아가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과 그녀의 모든 행동 및 선택에 반응하고, 평가하고, 주석을 단다. 세누아가 마주하는 모든 현실 또는 비현실의 세계는, 플레이 내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그녀의 내면을 풀이하는 이 장치를 통해 다듬어져 묘사된다. 사실상 플레이어들은 변함없이 세누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작품의 초점은 세누아의 여정 자체가 아닌, 여정을 겪는 세누아의 내면에 맞춰져 있다.



떨쳐내지 못한 어둠을 동력으로 찾아가는 이정표


세누아의 새로운 여정은 분명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의 여정이다. <희생>에서 겪었던 여정과는 달리,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매 성취를 입증하고 평가받는다. 어떤 문제를 얼마나 해결해 무엇을 얻어냈는지가 중요해지며, 대개 이런 여정의 경우 감정이 논해지는 순간들은 마치 베일을 들추듯 제한된 장면에서의 특별한 기회로 허락된다. 그러나 <전설>은 상술했던 수단을 통해 여정의 매 순간 세누아의 내면을 플레이어에게 들려주는 것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고통으로 얼룩진 과거를 뒤로한 채 영웅이 되어가는 인물의 내면을 관찰할 기회가 되는 것일까? 세누아가 노스먼의 땅에 도착하자마자 진벨의 망령이 그녀에게 말한다. ‘전부 두고 온 줄 알았느냐’고.


그녀가 벗어났다고 생각한 악몽이 다시 등장할 때마다, 세누아는 어김없이 타격을 입는다.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때마다 세누아는 자신을 탓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저주받은 아이라고 세뇌하면서 시작된 이 비합리적인 죄책감은 여전히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더 이상 인신공양을 할 필요가 없게끔 거인을 물리치겠다고 외치는 순간에도, 역시나 인신공양으로 신을 달랬던 아버지에게 배웠던 것을 떠올리며 확신을 잃는다.


세누아가 거인을 물리칠 때마다, 사람들이 그녀를 신뢰한다. 그녀의 능력에 대한 평판이 쌓이고 새로운 동료가 생긴다. 영락없는 성취와 성장의 순간이지만, 목소리들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세누아의 내면을 들려준다. 아우구스트르가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목소리는 그녀를 신뢰할지 불신할지를 끊임없이 논한다. 은신족은 세누아를 시험할 때마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들을 집요하게 공략하고, 세누아는 매번 이 함정에 걸려든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극복하는 것은, 이 작품에서 그녀가 이뤄내야 하는 최종적인 성취로써 묘사되지 않는다. 이 문제들은 극복할 수도, 물리칠 수도 없다. 지난번 닥친 어둠에서 살아남았어도, 이번에 닥친 어둠 역시 두렵긴 매한가지다. 작품은 세누아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모습이 아닌, 이 문제들을 가진 상태의 세누아, 이 문제들에 익숙한 세누아가 여정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 땅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감각, 내면의 의심, 불안과의 끊임없는 투쟁, 발목을 잡히는 감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노스먼의 땅에서 거인들의 실체를 알아채는 순간, 세누아는 공포가 만든 거짓에 지배당했던 익숙한 경험, 이를 꿰뚫어 보기 위해 싸워야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곳의 사람들이 자신처럼 진실을 되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자신만의 사명을 찾아낸다.


* 야른비에른 숲 레벨은 세누아와 같은 문제들을 겪게 된 동료들을 안내하며 숲을 빠져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더 나아가 <전설>은 이 지점에 세누아가 최종적인 성취를 달성할 수 있는 해답을 심어둔다. 그녀가 내면에서 겪었던 문제들, 그녀가 <희생>에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맞서야 했던 문제들이 외면으로 끌려 나오자, 결코 죽일 수 없다는 거인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세누아만의 무기로 벼려진다.



이해와 공감의 전략적 무기화


세누아는 자신의 동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침략자들인 노스먼의 땅으로 향한다. 그러나 처치해야 할 적이라고 생각했던 노예 상인에게서, 한때 저승으로 가는 여정에서 자신을 잠식했던 어둠의 싹을 발견한다. 이 순간 그는 더 이상 세누아가 물리쳐야 하는 잔혹한 괴물이 아니라, 어떠한 이유로 그녀가 과거에 걸었던 길을 걷고 있는 연약한 인간이 된다.


<전설>은 세누아가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적인 외부 세계를 묘사함과 동시에, 세누아의 앞에 펼쳐진 여정의 모든 요소들에 세누아가 본인을 투영할 수 있는 측면을 만든다. 토르게스트르는 그녀처럼 억압적인 아버지의 그림자에 갇혀있고, 파르그림르는 그녀처럼 특별한 직관과 시선을 가졌으며, 아우구스트르는 그녀처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운다. 사람들은 고통과 두려움에 빠져있으며, 세누아는 이 땅에 만연한 도탄의 감각에 익숙하다. 그녀는 자신이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그 과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도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는 세누아는 이 여정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앞서 말했듯, 작품 전반에 걸쳐 그녀의 여정을 추동하는 것은 그녀가 극복하지 못한 이 문제들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녀가 이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녀의 여정에 이정표가 되어준다. 학살당한 이들의 고통을 잊지 못해 노스먼의 땅으로 향한 세누아는 어둠의 싹을 품고 있는 노예 상인을 이해하고, 자신이 찾던 고통의 근원이 따로 있음을 알아챈다. 마침내 진정한 근원을 마주하게 된 세누아는 이들조차 고통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이해하고, 이들을 해방시킴으로써 여정을 완수한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최종적인 적들은 이 땅에 살고 있는 3명의 거인들이다. 신들에게 버림받은 노스먼의 땅에서 사람들을 두려움과 고통으로 지배하고, 바다 건너 세누아의 동족에게까지 공포를 퍼뜨리는 악의 근원이다. 그리고 세누아가 이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는 방법은 그녀의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거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 작품에서 등장하는 보스전은 보스를 처치하는 것이 아닌 보스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은신족은 세누아에게 거인들의 사연을 들려줄 때, 이들의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배경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아닌, 사람들이 상처받았고, 공포를 느꼈고, 각박해졌고, 호전적으로 변했음을 설명한다. 이는 작품 내에서의 특정한 상황이 아닌, 현실에서의 어떤 상황에서든 벌어질 수 있는 통상적인 문제들로 그려지며, 세누아가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 - 이해와 공감을 작동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최소한의 맥락을 제공하는 서술이다.


이를 통해 은신족은 그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었던 일퇴이가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는가? 자신이 초래한 죽음들에 대한 샤우바리시의 죄책감을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끝없는 힘을 탐했던 고디의 집착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들을 거인으로 만든 고통의 근원들을 찾아 나서는 전후에는 세누아가 느꼈던 동일한 고통의 경험이 병치된다. 연인과 이웃들을 지키지 못했던 분노,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죄책감, 그리고 거인을 물리치는 구원자라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집착.


결코 죽일 수 없는 거인들을 해방하고, 거인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된 사람들을 해방시켜 고통의 근원을 뿌리뽑는 이 임무는, 여전히 자신의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한 세누아만이 발휘할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는 능력을 통해 완수된다.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스스로 상처 입을 정도로 치명적인 이 약점은, 그녀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게 만드는 서사적 열쇠로 사용된다.



전작이라는 뼈대에 영웅 서사의 살을 붙이다


<희생>이 주인공 세누아가 겪는 내적 고통을 중심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면, <전설>은 동일한 주인공으로 하여금 현실적인 과업을 수행하게끔 만든다. 이 상반된 방향의 서사에서 작품은 늘 주인공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서사를 경험하는 당사자의 입장이라는 일관된 시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작품은 전작에서 서사의 중심이었던 여러 문제로부터 세누아를 극적으로 해방시킨 채 지나간 과거의 요소로 치부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활용해 타인마저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서사를 꾸려나간다.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 이해와 공감은 작품에서 단순한 메시지가 아닌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전략으로써 사용된다. 사태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고, 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는, 세누아만이 발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묘사하는 것은 때로 놀라울 만큼 쉽다. 이들이 가진 능력의 이면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설>은 이를 설명할 뿐 아니라, 이와 무관해 보이는 목표를 가진 서사의 뼈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사실, 단순히 전작의 묘사적 장치들을 작품의 전반에 걸쳐 삽입하는 것, 그것만으로 전작에서 형성한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방향의 서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겠는가. 세누아의 고통을 직시해야 했던 이들은, 세누아 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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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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