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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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10. 10.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전술한 과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엄연히 다르게 작동한다. 현실과 다른 인지 체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상의 객체와 플레이어 사이에 생성되는 보이지 않는 관계망은 현존감(presence)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는 어느새 스크린 밖으로 나와 현실 위에 포개진다. 마인크래프트의 겉시늉은,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장식용 선물 상자와 같다. 그저 작고 가볍게 포장된 이미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솜 없는 침대
현실 세계는 매끈한 표면의 사물로 가득하다. 그러나 마인크래프트 속 세상은 모두 블록 형태로 모서리를 갖고 있다. 입체의 면으로만 이루어진 객체들은 간신히 식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비)현실적으로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부분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을 인지할 때 그다지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 속 사물은 물리적인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모든 사물은 형상과 관념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물은 겉을 이루는 외형보다 관념으로서 존재하는 순간이 더 많은 듯하다. 그렇기에 마인크래프트의 단순한 묘사는 대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인지함에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상상력이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채워 넣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인크래프트의 블록 세상에 들어서면, 우리의 인지는 저절로 전이된다. 누구도 네모난 고양이에 대해 이의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전이는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이다[1]. 우리가 기존에 알던 것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부분이 맞닿은 상태로 변형되어 또 다른 형상을 갖게 되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변형이 되어도 원형을 상기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인지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이다. 마인크래프트 속 세상을 거닐면, 기억 저편에 담긴 현실 세계의 이미지가 무수한 형태로 분절되어 떠오른다. 그리고 확장된 인지 체계 위에 포개진다. 무엇이 원본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일은 무의미해 진다.
사실 인지의 전이는 마인크래프트에만 해당된다기 보다 비디오게임 전반에서 일어난다. 상하좌우로만 이동하는 납작한 이차원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이차원의 세계는 우리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곳이다. 그러나 비디오게임 안에서는 이러한 제약이 문제 되지 않는다. 또한 이차원 게임에서는 마인크래프트보다 고도로 압축된 형상의 객체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두 개의 네모난 픽셀만 보고도 인간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렇듯 비디오게임 내부에서는 고도로 압축된 묘사가 추상적인 레벨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다. 인지의 전이는 우리가 가진 고정된 관념과 사고, 그리고 이미지로부터 해방을 선사하며 확장된 감각의 세계를 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젖지 않는 비에 추위를 느끼고, 온기 없는 벽난로에서 몸을 녹이고, 솜 없는 침대에서 푹신함을 느낄 수 있다.
* 마인크래프트의 침대[2]
네모난 고양이의 골골송[3]
비디오게임 속 객체들은 명백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현존감을 기반으로 게임 속 가상의 객체들과 지각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비디오게임에서의 현존감은 말 그대로 현실을 넘어 게임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험은 가상 환경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감각하는 심리적인 공간에 가깝다[4].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데이터로 이루어진 가상의 우주로, 현실과 동일한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존감은 비디오게임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현실감 외에도, 플레이어와 가상의 객체 사이에 생성되는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다.[5]
마인크래프트의 싱글 플레이 모드는 온 우주를 플레이어 혼자 쓴다. 플레이어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는 모두 NPC(Non Player Character)다. 이러한 점이 플레이어에게 자유로움과 안락함을 주기도 하지만,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다양한 생물, (비)공격적인 몹(mob), 마을 주민은 매우 단순한 행동으로 프로그래밍된 NPC이긴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 마인크래프트의 고양이[6]
플레이어는 여러 동물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신뢰를 쌓으면 반려동물처럼 함께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의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 플레이어가 바다에서 생선을 낚아 고양이에게 지속적으로 가져다주면 점차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모난 상자에 다리와 꼬리가 달린 투박한 고양이는 야옹 소리를 내며 사뿐하게 걷고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긴 채집 끝에 집으로 돌아가 고양이를 마주하면, 보드라운 반려묘의 감촉이 떠오르며 골골송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렇듯 마인크래프트 속 가상의 생명체와 플레이어 사이에 오가는 상호작용은 단순하고 때로는 단방향적이기도 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관계망을 피워내기도 한다. 홀로 숲이나 동굴에 들어가 재료를 채집하고, 외딴곳에 집을 짓고 살아갈 때는 알지 못했던 플레이어의 생기를 감지할 수 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온종일 낚시만 해야 했던 고양이와 ‘나(플레이어)’ 사이의 결속은 사회적인 풍부함(Social Richness)[7]으로 이어지는 현존감을 발생시키며 물리적 실체의 필요성을 허문다. 그들은 어떤 생물의 외피를 두르고 단순하게 움직이는 상자처럼 보일 수 있으나, 플레이어를 움직이게 하고 때로는 죽게 만드는 크고 작은 동기가 된다. 즉 가상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은 이들이 관장한다.
내재적인 모서리
게임은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로 구성된 하나의 무리다. 즉 게임은 시스템적이다. 여기에서 시스템은 광범위한 의미를 담아낸다. 우선 게임의 시스템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가지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가지는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갈래로 뻗어 있다. 게임의 시스템은 구조적인 요소와 감각적인 요소를 포괄한다. 따라서 이를 텍스트로서 정의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상호작용적인 관계 안에서 복합체를 이룬다는 것이다[8]. 이는 게임의 시스템에 대한 모호한 정의를 하나로 묶어 냄과 동시에 여러 가지 경우를 포함한다. 비디오게임의 시스템은 무수하게 얽힌 관계망을 기반으로 하나의 복합체를 이루며 내부에서 외부로 점차 뻗어 나간다[9]. 이렇게 시스템은 또 다시 현실 위에 포개지고 또 다른 우주를 이루게 된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크리퍼(Creeper)는 이름처럼 몰래 다가와 자폭하며 일대를 박살 내는 몹이다. 크리퍼는 일정 조도 이하로 내려가면 어디서든 생성된다. 특히 지하 동굴이나 깊은 숲, 비 오는 날에 자주 출몰한다. 크리퍼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폭발할 듯 빛을 내며 경고한다. 그리고 삽시간에 터져 버린다. 물론 크리퍼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아도 스스로 폭발하기도 한다. 즉 크리퍼의 행보는 예측할 수 없다. 소리 없이 다가와 일상의 한 부분을 통째로 날려버리고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10]
그러나 크리퍼는 사실 현실 도처에 존재한다. 위기는 언제나 소리 없이, 예측 불가능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드러난 거친 모서리를 흉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서리를 내재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모서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둘 이상의 면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본 채로 맞닿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또한 무수한 존재자들의 각으로 이루어진 모서리의 세계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느 한 부분이 맞닿은 채로 커다란 시스템을 이룬다.
이처럼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는 내재적인 현실의 모서리를 보는 눈과, 이를 매만질 수 있는 손으로 확장된다. 마인크래프트의 네모난 블록, 그리고 이를 감싸고 있는 외피는 이미지 너머로 연결되는 또 다른 차원의 경로를 연다. 다시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장식용 선물 상자를 떠올려 보자. 이는 분명 선물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 선물로 기능할 수 없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이 작고 가벼운 상자에 담을 수 없는 따뜻한 온기와 안락한 공간을 떠올리고 감각할 수 있다. 온 세상의 모서리와 외피를 매만지며, 지난 겨울 공원에서 우연히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늦더위를 달래 본다.
* 지난 겨울의 공원
[1]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겸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p.18.
[2] 이미지 출처: https://minecraft.fandom.com/wiki/Bed
[3] 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를 노래하는 것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4] 김영욱, “VR 영상 콘텐츠의 현황과 프레즌스(presence) 향상을 위한 과제”, 문화영토연구 Vol. 4 No.2, 2023, pp14-17.
[5]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pp.107-109.
[6] 이미지 출처: https://www.digitaltrends.com/gaming/how-to-tame-cat-minecraft/
[7]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pp.111-112.
[8] 케이티 세일런, 에릭 짐머만, “게임디자인원론Ⅰ”, 권용만, 윤형섭 역, 지코사이언스, 2010, p.113.
[9] 위의 책, pp.117-118.
[10] 이미지 출처: https://modbay.org/mods/1756-creeper-spore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