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연구학회의 새로운 도전, DiGRA-K 윤태진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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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12. 10.
2024년 3월, 세계 최대 게임 연구 단체인 '디그라(DiGRA;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의 한국지회(디그라 한국학회)가 설립되었다. 디그라 한국학회는 영미권과 유럽, 남미 등에 이어 18번째로 설립된 지회로서, 게임 연구의 학제적 접근과 현장과의 연결성을 지향하고 후속세대 지원, 국제교류 및 협력연구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과를 뛰어넘는 학술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국내 게임 연구 분야에 있어, 다양한 업계 현장과 학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호 GG에서는 디그라 한국학회(이하 디그라-K)의 초대 회장인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를 만나 디그라 한국학회의 지향성과 중점 사업 및 한국의 게임문화에 대한 진단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신규 편집위원: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비평지를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뷰이기도 하기에, 오늘 인터뷰에서는 게임 관련 학계의 흐름과 함께 게임 문화나 산업에 대한 연구나 비평으로서 학회가 하는 시도들을 말씀해 주시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회장님께서 디그라-K에 초대 학회장으로 출마하실 당시 취임 맥락과 포부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사담이 될 수도 있지만 편히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제가 귀차니스트라 조직의 요직 일을 하기 어려워하다 보니 나서서 회장을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게임 학회의 경우 사실은 아주 성격이 다른 상황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기존 학회와 달리 게임계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상황이라, 학회를 통해 조그마한 오두막이라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마침 주위에 도와주는 분들이 나이와 경력 상으로 주니어였기 때문에 내가 조금만 시작해놓으면 이분들이 굉장히 잘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겸손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땅만 조금 파면 될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학회를 시작했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그렇다면 게임 관련하여 다른 여러 공동체의 유형이 있었을 텐데 왜 학회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하구요.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학회를 만든다고 했을 때, 다른 국가에 여러 개의 지회가 있는 학회를 선택하여 한국에 지부를 만들기로 결정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한데, 제가 위와 같은 막연한 고민을 하던 차에 디그라 학회 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습니다. 일단 한국은 문화, 경제, 산업, 정치 분야를 막론하고 게임 분야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앞서 나가는 나라이기도 한데요. 디그라 학회가 16개 나라에 지회를 가졌지만 한국 지회는 없는 상황이었고 한국 학자가 디그라 학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보니 헤드쿼터 입장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게임과 관련한 학술영역 개척을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지회 제안과 함께 수년 내로 한국에서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오퍼가 있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학회를 설립하게 됐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기존에 국내에 있는 다른 여러 게임 관련 학회들이 있고, 최근에 생긴 곳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존의 학회들과 비교했을 때 디그라 학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우선 기존의 학회들은 몇 번 참여 경험이 있었지만 학문적인 입장이나 백그라운드가 제가 추구하는 바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연구 주제들이나 학회 진행 스타일 등이 낯설다 보니 내가 거기서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게 게임 연구 커뮤니티를 만들자라는 마음을 먹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이기도 해요. 컴퓨터나 정책 분야와 관련된 게임학회 같은 경우는 제가 만들자 하는 학회와 성격이 다르고 굉장히 특수한 분야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구요. 물론 그런 곳에서 일을 맡고 계신 선생님들과는 오히려 학회 설립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었고, 학회 조직에 고문 등으로 모시기도 하면서 진행을 했습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사실 저 또한 기존의 게임학회들이 경영 쪽이나 공학 쪽 베이스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낯설었는데, 한편으로 그런 학회들이 일종의 모학회 같다는 느낌은 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디그라-K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면, 디그라-K 역시 여러 분야의 이사진들이 있지만 밖에서 보면 신문방송학이나 문화연구로 치우쳐 있지 않냐고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학회의 성향 문제는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많이 해요. 오히려 설립 당시에 내가 특정한 방향을 정한다고 해서 그렇게 가지 않더라구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디그라-K 학회를 시작할 때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두 가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법과 정책, 공학에 포커스를 맞춘 게임 학회가 있듯이 게임 문화에 포커스를 맞춘 좁고 깊은 학회를 만들면 색깔이 분명하고 추진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동시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디그라 지회로서 세계 게임 학술대회 조직과 더불어 업계 사람들과 교류하며 현실 필드와의 관련성을 갖는 학회를 원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게임 문화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어요. 학회 운영에 있어 특별한 개성을 갖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더 제너럴리스트로 가는 게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제가 논문 지도할 때 ‘깔때기’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깔때기 윗부분처럼 처음에 관심을 넓게 갖되 점점 좁혀 들어가며 자기만의 특별함을 가져야 된다고 얘기하거든요. 저는 우리 학회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회가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포괄할 수 있는 분야가 넓어야 하고 게임 프로그래밍이나 디자인, 개발과 마케팅 관련 관계자들도 들어올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모든 걸 다루는 학회를 지향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학회에서 우리가 좀더 강점을 갖고 있거나 더 하고 싶은 부분에 무게가 실리는 건 불가피하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이 상태에서 학회를 운영하다 보면 성격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그런데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유도를 높여놓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사실 저도 최근엔 학회들이 누가 회장이 되든 변하지 않고 대부분 비슷하게 간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를테면 윗부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크게 담아놓고 깔때기를 모으는 방향이 각자 다른 분들이 회장을 하신다면, 그때그때 어떤 회장이 하느냐에 따라 보편성과 구체성을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학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하신 바에 동의하구요. 그럼 어쨌든 여러 모순적인 포지션을 유지하고 계시다고는 했지만 지금 디그라-K가 지난 3월 발족 후 조금씩 사업을 해나가고 있잖아요. 현재 학회에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으며, 그중에 특히 애정이 가거나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를 여쭤봐도 될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학회를 시작할 때부터 저는 그냥 터만 잘 파놓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터를 파는데 있어 몇 가지 강조점이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두 개는 학문 후속세대와의 연결과 국제적인 학술 교류입니다. 그 다음엔 학회와 현장과의 연결성을 잊지 말고 계속 필드로부터 정보를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걸 기본적인 자세로 지향하고자 했어요.
우선 우리가 디그라 세계학회의 지회라는 성격이 있다보니 국제적인 교류는 계속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학계의 문제이기도 한데, 학회에서 많은 비용을 대어 해외 학자를 데려오고 언론 보도에 크게 소식을 내는 것이 국제 교류로 오도되는 경향이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게임 쪽도 그렇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국제교류를 일상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한국에 자비로 관광오는 사람도 많고, 제가 있는 대학의 경우 자비로 와서 연구를 하는데 소속만 빌려달라는 해외 학생들도 대단히 많아요. 그런 분들을 되도록이면 다 받고 싶고, 그들이 한국에 오면 혼자 연구만 하다 가는 게 아니라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디그라-K에서 진행했던 두 건의 국제 발표 또한 이런 취지에서 개최한 행사였어요. 학생들이나 업계 관련자, 연구자들이 뭔가 외국의 누군가가 와서 영어로 발표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니고 매우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했으면 좋겠다는 게 하나가 있구요.
그 다음 학문 후속세대 얘기는 당연히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후속세대 양성에 욕심을 갖지요. 그런데 강조하고 싶은 건 게임 연구 분야는 독립된 학제라 보기 어렵다 보니 연구자들이 대부분 이탈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사회학이나 심리학에서 게임을 연구하던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 취업이나 연구비를 위해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를 하는 식으로 바뀐다는 거죠. 이런 걸 피하기 위해서는 게임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을 위해 자리를 만들거나 지원하고 북돋아줘서 누군가가 그들의 작업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말씀을 들으니 국제교류와 후속세대 양성 모두 거창한 형태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야 되는 일로 연결하신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게임 쪽은 후속세대 뿐 아니라 기성 연구자 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부터 게임을 다루던 미디어 연구자들 중 지금 게임 분야에 남아계신 분이 아마 회장님밖에 안 계실 거예요. 신진연구자든 기성연구자든 게임 연구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회장님은 어떠신가요? 회장님은 대중문화 전반, 특히 TV쪽을 많이 하시다가 게임 분야로 관심을 구체화시켜 현재까지 계속 하고 계시는데요. 스스로를 어떤 연구자로 정체화하시나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스스로를 대중문화 연구자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의 100분의 1만큼도 웹툰을 안 보는 사람이지만 웹툰 갖고도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잘 나가는 걸그룹 멤버의 얼굴과 이름 매치도 못하지만 케이팝에 대해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게임 전문 연구자라는 생각은 사실은 안 해요. 연구의 비중으로 보자면 제 연구는 2010년까지는 게임 연구의 비중이 컸고 그 이후에는 한류 연구를 오래 했고, 2017-18년부터 다시 게임 연구를 많이 한 셈입니다. 이제 은퇴가 얼마 안 남았다 보니 제 연구나 교육 생활 중 마지막 10년 정도는 게임 문화 연구를 주 전공으로 삼는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진짜 ‘게임 연구자’는 우리 후속 연구자들이 그 역할을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그런 말씀을 들으니 진짜 게임 연구를 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라는 의문점이 듭니다. 이건 GG를 보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슈일 수도 있는데, 사실 저도 대학의 게임 강의 등에서 ‘내가 너희보다 잘 하는 게임이 있다’고 해야 제 말을 좀 더 잘 들어줄 것 같다고 느끼곤 합니다. 게임이란 분야가 누구나 ‘자기가 잘하는 게임에 대해서는 자기가 제일 잘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강하다 보니, 게임 연구자들에 대해 게임 플레이어들이 던지는 좋지 않은 시선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들에게 이를테면 회장님이 플레이어에게 연구자로서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으실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솔직히 굉장히 흔하고 보편적인 질문인데, 저는 그런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게임 연구자들의 교과서적인 답은 ‘게임 좋아하고 잘 한다고 좋은 학자는 아니다’, ‘내가 게임은 못 해도 학자로서 훈련과 트레이닝은 많이 받았다’ 이런 게 교과서적인 답일텐데. 저는 그걸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유처럼 얘기하는 건, 저는 제가 일종의 우리나라 70년대 텔레비전 연구자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80년대 대학을 다닐 때, 당시 텔레비전에 관해 가르치던 강사들은 산업이나 제작과정을 잘 모르거나 실제로 TV프로그램을 많이 보지 않는데 우리한테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기에 동료 교수나 지식인들에게도 비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강의가 아주 무의미했냐면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분들의 가장 큰 업적은 ‘텔레비전 드라마도 독립적인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준 것이고, 그런 신념 하에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고 그들이 조금 더 발전시킨 논문과 책을 쓰게 한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젠킨스가 얘기한 대로 결국 팬들이 공부를 하는 것이 대중문화 연구에 옳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학자가 팬이 되는 것보다 팬이 학자가 되는 게 더 정확한 학문의 발전 방향인 것이죠. 근데 이제 그러기에는 저는 늦었다고 생각하고요. 따라서 저는 그런 질문이 나온다면, ‘당신들이 훨씬 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 나는 당신들한테 길을 만들어 주겠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학회를 일종의 오두막처럼 만들고 그분들이 어떤 주인이 되는 때가 오면 훨씬 학술적으로도 성숙된 커뮤니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해외에서도 조금 나이가 있고 학문에 익숙한 학자와, 젊지만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만나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점에 있어 회장님께서 지도교수로서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들과 교류하고 코워킹을 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 학생들과의 만남이나 마주침이 학문적으로 회장님한테도 역으로 자극이 좀 되셨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그럼요.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학생들에게 훨씬 실질적으로 많이 배웁니다. 학생들의 페이퍼를 내가 평가자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재미가 없는데 실은 제가 요즘 공부하는 것의 한 70%는 학생들 논문 읽으면서 배우는 것 같거든요. 학생들의 페이퍼를 보다가 재밌는 거 있으면 조금 더 찾아보고 이런 식으로 배우기 때문에 게임 연구도 사실은 저는 그런 식으로 해온 것 같아요.
강신규 편집위원: 비슷한 질문일 수 있겠는데요, 그렇다면 게임 연구가 게임 플레이어들한테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디그라-K 학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업계 및 연구자와의 교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플레이어와의 교류 또한 매우 중요한 최종 도달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게임 연구자가 플레이어들에게는 어떻게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지금 질문을 듣자마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영화 팬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아마 게임 평론가보다 영화 평론가가 훨씬 많겠지만, 조금 좁혀서 ‘시네필’들을 얘기한다면 그 많던 시네필들 중 일부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된 사람도 있고 유학 가서 학자가 된 사람도 있죠. 만약 우리나라의 영화학이 당시 굉장히 풍성했더라면 그런 사람들을 굉장히 잘 소화할 수 있었을 거에요. 계속 인터랙션이나 학습이나 교류를 통해 보람을 주면서 영화에 대한 그들의 에너지를 결국 학계건 업계건 연결을 시켰을 겁니다.
저는 우리나라 게임 평론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성격과 규모는 좀 다르겠지만 게임과 관련해 그런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GG의 게임 평론 공모전도 훌륭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자리를 만들고 교류하는 일을 학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많이 알거나 막연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게임에 대한 다른 시각이나 개념, 타국의 게임 현황을 배우면서 게임에 대한 애정이나 에너지가 더 커지면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차츰 쌓여서 게임 업계나 학계에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한편으로 저는 그간 대중문화나 영화를 연구하던 사람들이 게임 쪽을 자연스럽게 연구하고 비평하는 게 장르의 저변을 넓히고 경계가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 게임만의 고유한 무엇이 남아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듭니다. 디그라-K의 지향점을 말씀해 주시기도 했지만 게임과 관련한 (고유한) 이론과 방법론이 없는 상황에서 게임이 어떻게 나아가야 될 것인가를 저희가 굉장히 오래 논의했었죠. 대중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상으로서 게임을 한 번쯤 이야기할 수 있다는 분위기인데, 한편으로 그게 약간 공허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혹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신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그 부분은 저와 좀 생각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데, 저는 게임이 독립된 학문적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독립적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 독립된 이론과 방법론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반대합니다. 질적 연구방법론을 예시로 들면, 분과별로 질방이 각자 있지만 주제와 소재만 바뀌고 내용이 크게 차이가 없죠. 분과적인 것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각자 방법론적 노력을 하는거라고 생각하고 이론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학회를 만든 것도 형식적이거나 제도적인 문제를 고려한 것이지 그 안의 내용물이 사회학회나 언론학회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구요. 저는 오히려 우리 학회도 많은 사람들이 ‘잠깐 와보는 곳’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아마추어 평론가나 업계에서 열심히 뛰는 현장 인력들도 학회에 한 번쯤 와서 기여도 잠깐 하고 그러다 재미없으면 가고 하는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숏폼, 메타버스, VR, AR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재 게임의 경계도 굉장히 애매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땐, 그럼 빨리 게임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만들어 제도화시켜서 뿌리를 내리자는 의견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게임의 영역과 경계를 아주 흐릿한 채로 오히려 넓혀서 다양한 주제를 게임 연구에서 할 수 있고 또 게임 연구에서 그런 쪽에 기여도 할 수 있게 만들자는 의견이 있을 텐데요. 저는 그 둘 중에 압도적으로 후자로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강신규 편집위원: 학회의 방향과 관련된 질문을 좀더 드려보자면, 게임 산업이나 문화에 대해 학회가 실천적으로 참여나 개입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혹시 생각하고 계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게임 관련 규제 개선이나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과 관련된 부분이라던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두 가지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저는 학회가 그런 의제를 적극적으로 전면에 내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고 있어요. 왜냐면 학회가 지향하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 곳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화를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던지,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을 어떻게 해야 된다던지에 대해 학회 이름을 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건 대전제로 하는 얘기구요. 그렇지만 둘째로 개별적인 사안에서는 사실 기민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내년 초에 세미나 하나를 계획 중이에요. 외국 사례를 참조해 이게 정말 법령화가 되고 있는지,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그동안과는 좀 다른 시각에서 세미나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추진 중에 있습니다. 즉 학회의 방향이 이를테면 산업 친화적이거나 정책 지향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하며 이건 저는 굉장히 분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지 산업이나 정치, 국제관계 등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특정 이슈가 있다면, 이와 관련한 자리를 학회가 기민하게 만들어서 전문가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강신규 편집위원: 오늘 회장님이 학회와 관련하여 말씀해 주신 부분들, 여기저기 있는 사람들이 그런 부분들을 알고 학회에 와서 편히 들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인터뷰가 GG에 실린다고 하니, 질문과 무관하게 한 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우선 이 글의 독자가 대학원생 등의 연구자가 아니라 그냥 게임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평론가나 게이머일 가능성이나 비율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체감상 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게임 관련 조직이 생기거나 책이 출판되고 행사가 만들어질 때 일종의 ‘정치적 판단’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우려가 들어요. 정치적 판단이라 함은, 진보와 보수의 얘기가 아니라, ‘이거는 업계가 돈 벌려고 하는 일이야’, ‘저 사람은 페미니스트니깐 이거는 개판일 거야’ ‘이거는 누가 특정한 의도로 뭘 해보려고 만든거야’ 등의 어떤 냉소적인 반응의 문화랄까요? GG의 비평 콘테스트에 나온 글에 대해서도 저 글은 잘못 알고 쓴 글이라는 방식의 비방도 많았구요. 이런 걸 보면 텔레비전이나 케이팝 등 다양한 여러 대중문화 영역 중에 게임 쪽이 어떻게 보면 가장 긍정적 리액션이 적은 곳 같고, 무언가를 지지하거나 기여하는 발전지향적 태도를 제일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 게임 판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고, 그런 문화가 사라지는 건 어려워도 어떻게 완화될 수 있을까를 고민을 많이 하는데 사실 방법은 없거든요. 어떤 캠페인을 벌여서 될 것도 아니고 한편으로 이런 태도가 전세계적 트렌드이기도 하기에 어렵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얘기는 해보고 싶어요.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일 욕하고 냉소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조금은 긍정적으로, ‘게임을 사랑하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떤 특정 게임사가 분명히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도 많겠지만, 사실 게임 산업이 망하지 않고 잘 되어야 하는 거니까요. 저는 산업이나 정책, 경영에 참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게임 판이 쇠락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생각을 하고, 이 부분은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에 어떤 연구결과물이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냉소적으로 ‘교수들이 또 대학원생 시켜서 아무거나 쓰고 책이나 낸다’는 식의 반응이 많은데요. 거기서도 본인들이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것이나 자극이 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찾아 좀더 긍정적인 리액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강신규 편집위원: 저희가 오늘 굉장히 많은 것을 여쭤봤고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편집장님께서 꼭 질문을 해달라고 하셔서 넣은 것입니다만 학회장으로서 ‘최애 게임’이 무엇이신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우선 저는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온라인에서 싸우거나 협력하는 등 모르는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 게임은 못하겠더라구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잘 못하는 걸 들키기 싫은 본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그러다 보니 네트워크가 없는 콘솔 게임이나, 혼자 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 위주로 하게 되네요. 그리고 저는 게임을 다른 일을 하다가 기분 전환용으로 잠깐 하는 것이기에 빨리 끝날 수 있는 아케이드류가 많아요. 보통은 간단한 크로스워드 퍼즐이나 3매치 류의 게임을 많이 해요. 참고로 제 게임 역사에서 제일 오래 했던 게임은 유학 초기에 했던 <동키콩>입니다. 유학 가서 말도 안 통하고 심심하고 해서 그거를 맨날 하다보니 잘하게 돼서 오락실에 제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기도 했어요. 집에 아이가 좀 크고 나서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위닝>도 많이 했구요. 최근엔 <대항해시대>나 <우마무스메> 등이 워낙 많이들 하니까 의무감에서 했었는데 <대항해시대>는 좀 재밌게 했었네요. 원하는 장르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말이 많으면 맛이나 보자는 마음에 플레이하는 게임도 꽤 많은 편이에요.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