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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러시: 같은 뿌리의 리듬과 액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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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4. 10.

리듬은 사전적 정의에서 ‘일정한 박자나 규칙에 따라 장단과 강약이 반복될 때의 규칙적인 음의 흐름’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있다. 박자에 따라서 음이 일정하게 반복될 때. 음의 덩어리를 리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게임에서 리듬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 자체는 연주하는 행위. 혹은 건반을 정확한 타이밍에 수행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리듬 그 자체보다는 음악 연주를 모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므로 날아오는 노트를 처리하는 형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리듬 게임 장르의 대부분이 노트를 처리하는 메커닉으로 구성되기는 했지만, 여기에 다른 시각을  더한 타이틀도 있다. 리듬 천국의 개발자 ‘층쿠’ PD가 ‘리듬 천국 골드’ 발매 시점에 진행했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와타 사토루 사장과의 대담을 통해 “최근 소위 음악 게임(리듬 게임)이란 것이 유행했었잖아요. 조금 해보고 있습니다만,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좌절을 느끼게 됩니다. 리듬보다는 눈으로 보고 누르는 것을 강요하는 것을 강요하는 거죠”라고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층쿠 PD가 갖는 의문은 결국, 음악에서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리듬이라는 존재를 타이밍에 맞춰 노트를 누르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렇기에 층쿠가 제작한 ‘리듬 세상’이라는 타이틀은 플레이어들이 박자와 규칙을 ‘느끼고’  조작하는 형태로 시리즈가 이어졌다. 



그간 공포 게임을 만들었던 ‘탱고 게임웍스’가 갑작스레 선보인 타이틀, ‘하이파이 러쉬’도 비슷한 측면에서 접근한다. 보고 정확한 타이밍에 버튼을 입력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액션이 시작되는 형태가 아니라, 플레이어인 사람 안에 자리한 박자에 집중하고 이를 메커닉 측면에서 액션으로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파이 러쉬는 액션 게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리듬 그 자체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리듬 액션’이라는 장르적인 측면에서의 정리보다는 액션이라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박자에 주목했다는 표현이 옳을 듯하다. 즉, 동작이 가지고 있는 리듬이 더욱 두드러지도록 게임 메커닉을 구성한다는 아이디어가 더해진 것이며, 이는 모든 액션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게임에 있어서 음악을 의미하는 ‘리듬’이 아니라, 박자와 규칙의 반복이라는 사전적 정의의 리듬이 앞선다. 


잠시 예를 들어보자. 어떠한 동작에서 ‘리듬’이라는 것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축구에서 공을 차는 데에도 선수 개인마다 동작에 리듬을 찾아볼 수 있다. 어디서 어떤 타이밍에 공을 슈팅할 것인지. 어떤 템포와 타이밍에 행위를 진행하고 결과를 얻어나가는 것이다. 야구 또한 마찬가지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타자가 때릴 때에는 모든 동작이 하나의 리듬을 보여준다. 타격을 위해 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부터 무게중심의 이동. 배트를 휘두르기까지 이어지는 흐름 자체가 하나의 리듬이 된다. 



액션 장르에 있어서 이 ‘리듬’은 플레이어 캐릭터의 동작을 버튼으로 치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동작과 동작을 이어나가는 과정은 단발성 공격에서 시작해 하나의 콤보와 새로운 액션으로 파생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버튼을 누르는 것은 캐릭터가 보여주는 동작을 통해 표현되며, 전체적으로 보면 리듬을 구성하는 요소로 자리한다.


하이파이 러쉬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액션 게임은 결국 버튼으로 플레이어 캐릭터가 동작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서 적을 제압하는 플레이로 귀결된다. 따라서 버튼을 어떻게 누르느냐. 언제 누르느냐의 플레이 형태를 보이기 마련이다. 타악기를 연주하듯이 버튼을 누르는 것 -이는 버튼 입력형 리듬 게임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에서 착안한 메커닉이다.  


리듬을 구성하는 요소는 ‘비트’와 ‘템포’로 다시금 나눌 수 있다. 이에 비추어보면 액션 장르에서의 비트는 버튼의 연속적인 입력과 동작의 반복이 되고 플레이어 캐릭터가 버튼 입력을 수행하는 액션의 속도와 템포가 되는 셈이다. 이 비트와 템포는 하이파이 러쉬가 아닌 그간의 액션 타이틀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빠른 공격의 속도감과 콤보를 테마로 삼은 타이틀에서 두드러진다. 


하이파이 러쉬는 액션 장르에서 표면에 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 ‘리듬’이라는 개념을 가장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게임 내의 모든 요소가 구성되도록 했다. 버튼을 누르는 과정 전반이 리듬을 구성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형태다. 이를 위해서 비트에 플레이어 캐릭터의 액션을 접목하고 속도감인 템포를 더하는 것으로 특유의 리듬이 느껴지도록 플레이어를 이끈다. 



말 그대로 타격한다는 의미의 비트(beat)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공격 액션이 되며, 비트와 비트의 조합이 콤보 그리고 액션으로 이어진다. 게임 시스템적으로는 공격을 쉬는 ‘레스트’ 버튼을 길게 누르는 것으로 약간의 변주를 가한다.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가 변경되기는 하지만, 누르는 것을 쉬거나 장시간 누르는 것도 비트를 기반으로 실행되도록 구성했다. 


잘 살펴보면, 하이파이 러쉬의 플레이 자체는 드럼을 연주하는 것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타격이라는 점에서도 정체성이 맞물리지만, 플레이어의 박자감을 유도하는 것이 베이스 드럼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공격 시에 나오는 효과음 등이 하이햇과 스네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개발진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동시에 하이파이 러쉬의 메커닉은 플레이어들이 ‘같은 간격으로 버튼을 입력하는 것’을 유도한다. 즉, 해당 타이틀은 일정한 템포(BPM)의 틀 안에서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는 액션 장르의 문법에서 보자면 이질적이며 쉽지 않은 결정이다. 속도감을 내세우는 타이틀을 몇 가지 떠올려보자. 이들의 경우 다양한 패턴을 가진 적들을 선보이는 것이 일반이다. 이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진 적들을 상대하고 파훼하며 극복하는 재미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하이파이 러쉬는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같은 박자로 구성하는 결정을 내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파이 러쉬가 보여주는 공격의 템포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나마 변화가 있는 것은 배경음악인데, 배경음악의 템포가 130~160 정도로 설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베이스 드럼이 보여주는 연주의 템포는 변화가 없다.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액션. 그리고 적들의 모든 공격은 바로 이 고정된 템포 위에서 진행된다. 비슷한 속도와 비슷한 간격. 이 두 가지를 통해 적들의 패턴이 구성되며, 일정한 템포는 독특한 플레이를 만들어낸다. 플레이어의 액션과 적의 패턴 모두를 하나의 리듬으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이파이 러쉬에는 엇박자 패턴을 사용하는 적이나 플레이어가 유지 중인 리듬을 뒤흔들 수 있는 적의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다. 적의 종류도 많지 않으며 대응 방식도 큰 틀에서는 변화가 적용되어 있지 않다. 일부 적들의 QTE 상황을 제외하면 상황에 따라서 누르는 버튼 조합이 달라질 뿐, 비트와 템포는 같은 악보 위에서 연주되는 셈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속도 / 프레임으로 구성된 액션을 조합하고 적을 파훼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절하게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액션을 즐기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일정한 속도로.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비트를 연주하는 것. 게임으로 치면, 일정한 속도로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이는 공격을 해도 마찬가지고 패링이나 잡기를 통해서 변주를 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투 도중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본인의 리듬을 잊을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개발진은 게임 내의 모든 오브젝트를 같은 템포로 만들어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주인공인 ‘차이’가 활동하는 게임 내의 장소들. 배경음악. 효과음 모두가 같은 템포 위에서 함께 리듬을 맞춘다. 심지어 차이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도 일정한 속도와 박자를 따라가게 하기 위함이며, 걷는 동작까지 포함해 모든 액션이 개발진이 의도한 레일 위로 플레이어를 유도한다.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의 비트와 템포. 더 나아가 하나의 리듬을 구성하고 있으므로,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여기에 따라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에 비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보조 기능을 지원하는 한편, 박자를 놓치더라도 개발진이 의도한 속도감과 리듬 위로 올라탈 수 있도록 해뒀다. 



적과 아군 모두 일정한 속도감과 리듬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다소 단조로울 수 있다는 단점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개발진은 이를 액션을 구성하는 조합을 수를 늘리는 것. 그리고 플레이어가 비트를 따르지 않는(버튼을 입력하지 않는) 사이에 이용할 수 있는 것들로 채운다. 다양한 적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적이 나왔을 때에는 동료를 불러 도움을 받거나 패링을 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이를 통해서 게임 초반부에 그저 버려야만 했던 비트들은 후반부에 들면서 정체성이 확립된다. 적들의 패턴에 익숙해지더라도 다수의 적이 조합을 이뤄 등장하기에 버려지는 비트가 점차 사라진다. 궁극적으로 모든 비트에 플레이어가 버튼 입력을 할 수 있게 되며 하이파이 러쉬의 메커닉은 개화한다. 연주라는 게임 플레이가 꽉 채워질 수 있도록 모든 비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의미없이 버려지는 비트가 점차 사라지고 액션으로 연주되는 리듬이라는 개념이 점차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간 리듬에 다른 장르의 문법을 접목한 타이틀이 여럿 나왔음에도 하이파이 러쉬가 발상 측면에서 고평가를 받은 것은 이러한 이유다. 기존에 있던 장르의 문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근본적인 부분까지 한 번 해체하는 것에서 개발을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체를 통해 액션 게임이 가지고 있는 일면을 다시금 파악했고 이를 하나의 목적에 맞춰서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쳤다. 



여느 리듬 액션 타이틀처럼 리듬 장르 위에 액션 메커닉을 얹어두고 조율한 것이 아니라, 액션 게임이 가지고 있는 리듬 측면을 비트와 템포로 다시금 규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후에 재조립으로 하이파이 러쉬라는 작품을 완성한 셈이다. 그 결과, 하이파이 러쉬는 리듬 혹은 노트에 맞춰서 플레이어가 행동하는 것을 강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액션이라는 장르가 함유하고 있던 리듬 그리고 플레이어의 조작에서 오는 반복적 리듬을 일깨우는 것에 있다. 게임 내에서 박자가 심장에서 시작되듯이, 노트가 아닌 박자 자체가 리듬의 시작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서 액션 장르가 가지고 있었던 리듬이라는 측면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는 것에서 나오는 리듬감을 강조하기 위해 게임 내의 모든 요소는 같은 비트와 템포에 맞췄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세부적 요소들이 뻗어 나가면서 하이파이 러쉬는 일관되고 집중력이 있는 경험으로 맺어지기 시작한다. 


리듬과 액션을 더했다고 일축할 수도 있을 테지만, 아이디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 그리고 액션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던 요소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임은 틀림없다. 액션의 버튼 입력을 비트로. 오브젝트와 배경음악을 포함한 액션 외적인 것 일체를 템포로 치환한 이들의 발상이 이채를 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하이파이 러쉬는 발상하나가 얼마나 다른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타이틀과 같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작은 발상하나로 얼마나 큰 경험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증거이며, 장르 측면에서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가치를 다르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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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농부이자 제빵사이자 바리스타. 현재는 게임 기자로 글을 쓴 지 8년차 입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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