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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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2. 10.
서론: ‘애착’에 살고 죽는 ‘서브컬처 게임’
대략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는 그러한 표현 양식을 내세우는 게임들에 의한, 시장에의 참여도가 높아졌음을 방증한다.
순위 | 타이틀명 | MAU(명) |
19 | 원신 | 43만 |
23 | 좀비고등학교 | 39만 |
34 | 붕괴: 스타레일 | 31만 |
39 | 승리의 여신: 니케 | 24만 |
40 | 리버스 1999 | 24만 |
[표1] 2023년 12월 월간 인기 게임 순위(IGAWorks, 2023)
순위 | 타이틀명 | 스토어별 순위 | ||
구글 | 애플 | 원스토어 | ||
16 | 승리의 여신: 니케 | 14 | 18 | - |
18 | 원신 | 16 | 40 | - |
20 |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 20 | 34 | - |
31 | 블루 아카이브 | 94 | 77 | 2 |
35 | 붕괴: 스타레일 | 33 | 28 | - |
41 | 리버스 1999 | 37 | 45 | - |
48 | 더블유: 크로스월드 | 43 | 61 | 34 |
39 | 던전앤파이터 | 44 | 36 | - |
[표2] 2023년 12월 월간 게임 매출 순위(IGAWorks, 2023)
시장에의 참여도가 높아졌는가의 여부는, 그 장르의 게임들이 국내외 게임 시장에서 얼마나 고도의 월별 이용자(MAU) 인구수와 매출 순위를 기록하는지를 확인하여 알아볼 수 있다.
IGAWorks가 발표한 2023년 12월 게임 MAU‧매출 순위에 따르면 한국 시장에서 ‘서브컬처 게임’ 중 상위권을 기록한 게임들은 〈원신〉(MAU 43만명, 19위/매출 종합 18위), 〈붕괴:스타레일〉(MAU 21만명, 39위/매출 종합 34위), 〈승리의 여신:니케〉(MAU 24만명, 39위/매출 종합 14위) 등 이미 다수가 존재한다(IGAWorks 2023)[표1][표2]. 한편으로는 MAU 실적 부문에서 다른 게임들에 비해 MAU에 있어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서브컬처 게임’이 매출 기준으로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관측된다.
〈승리의 여신:니케〉와 더불어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MAU 50위권 바깥/매출 종합 20위), 〈블루 아카이브〉(MAU 50위권 바깥/매출 종합 31위)와 같이, 똑같은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을 사용하면서도 여성형 플레이어 캐릭터로 채워진 게임들이 그러한 특징을 잘 나타낸다. 간단히 말하여 이러한 게임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게이머들이 보다 많은 비용을 투자하며 즐기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러한 유형의 게이머들(이후 ‘서브컬처 게이머’들로 표기)은 게임 그 자체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으며, 특히 여성형 플레이어 캐릭터로 채워진 게임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그 캐릭터에 대한 애착, 즉 ‘모에’(萌え)를 강하게 느끼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이정훈 2021). 도대체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어떤 이유로, 그들이 즐기는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해 이와 같은 애착을 어필하는 것일까?
2. 본론: 캐릭터에 대한 ‘모에’의 보편화와 개량, 노출
[그림1] 〈겨울연가〉를 모티프로 일본만화 〈은혼〉의 패러디를 시도한 일본 동인지(©白玉団子)
[그림2] 〈블루 아카이브〉를 패러디한 한국 동인지 〈삼인삼색〉(©순수한불순물)
‘모에’, 다시 말하여 캐릭터를 비롯한 공상적인 피조물을 깊이 마음에 품는 행태(야스다‧손낙범 편저 2016)가 발현되는 계기는 그 행위자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다만 ‘모에’를 유발할 수 있는 캐릭터의 표현 요소가 하나의 작품군, 또는 하나의 캐릭터 안에서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음은 아즈마(東 2001) 등의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가 있다. ‘모에’라는 심리상태 자체는 그것이 굳이 만화‧애니메이션이 아닌 TV드라마를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으나(井手口 2009),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를 시청하고 팬이 된 일본인 중에서, 작중 인물을 패러디하거나 세계관, 혹은 극중 클리셰를 오마쥬한 2차 창작물을 생산해 유통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그림1]. 그러나 예를 들어 〈블루 아카이브〉와 같은 ‘서브컬처 게임’을 향유하는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캐릭터를 모사하거나 다른 IP와 조합한 2차 창작 출판물, 즉 ‘동인지’를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판매전에서 제작‧매매하는 형식으로 그 ‘모에’ 촉발 요소를 유통하고 있다[그림2]. 즉, ‘서브컬처 게이머’들은 ‘모에’의 요소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익숙해지고, 때로는 그 표현 양식에서 파생된 창작물을 스스로 제작‧유통함으로써, 자신들 또한 다른 향유자들이 같은 표현 양식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공모자에 위치하게 된다.
아즈마는 TV애니메이션 〈디‧지‧캐럿〉(デ・ジ・キャラット, 1998)[그림3]의 주인공 캐릭터인 데지코(でじこ)의 대표적인 조형상 특징점인 ‘고양이 귀’, ‘메이드복’, ‘더듬이처럼 뻗은 머리카락 한 가닥’, ‘큰 손발’ 등이, 사실은 성인용 비디오 애니메이션 〈크림 레몬‧흑묘관〉(くりぃむレモン・黒猫館, 1989)[그림4]이나 미소녀 어드벤처 게임 〈키즈아토〉(痕, 1996)[그림5]에서 처음 등장하여 전파된 의상이나 신체적 특징 묘사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고 정리하였다(東 2001). 그의 설명대로라면 캐릭터를 조합하는 과정은 소비자로 하여금 최대한 ‘모에’를 느껴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상업적 프로세스인 것이다. 이윽고 만화 정보 검색 사이트 〈TINAMI〉(https://www.tinami.com)와 같은 온라인 정보교류 공간을 통해, ‘모에’를 유발하는 캐릭터의 특징들을 팬들과 크리에이터가 공유하고 유통하는 구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들이 캐릭터의 특징을 유통하는 과정에는 원작 캐릭터에 대한 패러디가 수반되기도 하며, 2차 창작을 통해 원작과 무관한 세계에 처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럼에도 그 대상이 되는 캐릭터는 자신만의 특색을 굳게 지켜나가고 있는데, 이는 이토(伊藤 2005, p54)가 지적했듯 이야기보다는 캐릭터에 중점을 둔 소비가 보편화된 것에 기인한다.
[그림3(왼쪽)] 〈디‧지‧캐럿〉의 주인공 캐릭터 데지코 (©Bushiroad ©令和のデ・ジ・キャラット ©BROCOLLI)
[그림4(가운데)] 〈크림 레몬‧흑묘관〉의 작중 장면(©フェアリーダスト)
[그림5(오른쪽)] 미소녀 어드벤처 게임 〈키즈아토〉(©Leaf)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서브컬처 게임’ 크리에이터들 중에는, 상술한 과거 일본으로부터 전수된 ‘모에’ 코드를 이어받으면서도 그것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가공하고, 나아가서 ‘모에’를 유발하는 동기의 설명 자체를 개량하려 시도하는 개인도 등장하고 있다. 이후 〈블루 아카이브〉의 총괄PD에 오른 김용하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us)을 입증하는 ‘거위가 가짜 알을 품게 만들기’ 실험을 2014년 당시 강연에서 소개하면서, 실존하는 대상의 특징을 극대화한 가짜는, 심지어 자연계에서조차 진짜보다도 더욱 선호된다고 주장했다(Barrett 2010). 또한 인간이 보았을 때 가장 매력을 느끼는 타인의 얼굴에는, 성적 매력을 자극하는 요소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움의 요소가, 7:3 전후의 비율로 조합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선행 연구도 함께 언급하였다(김용하 2014). 그의 주장을 폭넓게 해석하자면, 앞에서 말한 ‘고양이 귀’, ‘메이드복’이나 ‘안경’과 같이 ‘모에’를 유발하는 요소를 무작정 조합하기보다, 캐릭터의 종합적 매력을 최대화하면서도 시대의 유행에 부합하는 맥락을 세우면서 그에 맞는 조합을 선택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시청자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시청한 TV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심리적으로 더욱 가깝게 느낀다는 연구 사례까지 고려하면, 똑같이 ‘모에’ 코드를 이어받은 게임 중에서도, 일별 로그인 보상과 같이 정기적인 접속을 권장하는 게임이야말로 유저의 친근감을 노리기 용이해진다. 예를 들어 TV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과 같이 연출상의 이유로 매주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장면은 시청자의 머릿속에 더욱 쉽게 기억된다. 그런데 해당 장면의 배경 장소가 실존하는 어딘가를 모티프로 삼았으며, 추후 시청자가 그 실존하는 장소를 실제로 찾았을 경우, 시청자는 그 장소에 대한 친근감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그림6(왼쪽)] 〈블루 아카이브〉의 뽑기 장면에 등장하는 ‘아로나’ (©2021 NEXON Korea Corp. & NEXON GAMES Co., Ltd.)
[그림7(오른쪽)]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 시어터 데이즈〉의 로그인 장면에 등장하는 ‘아오바 미사키’(©窪岡俊之 THE IDOLM@STER™& ©Bandai Namco Entertainment Inc.)
이러한 일종의 각인 효과는, 공간은 물론 인물에게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매일 게임에 로그인하여 소소한 게임머니나 강화 아이템을 비롯한 접속 보상을 챙기는 동안[그림6], 그 게이머는 자신이 ‘모에’를 느끼거나 느낄 만한 캐릭터가 출력되는 화면을, 로그인 화면이든 가챠(뽑기) 화면[그림7]이든 어디선가 일정한 상황에서 항상 접하게 된다.
3. 결론: 정리, 그리고 연구 노력의 필요성
지금까지의 내용을 순서대로 다시 정리해 보자. ‘서브컬처 게임’에 대하여 게이머들이 ‘모에’를 느끼게 되는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첫 번째로 현재의 ‘서브컬처 게임’들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과거의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모에’ 코드는, 이후 다른 크리에이터와 팬들에 의해 유통되고 재가공되면서 제작의 노하우를 축적했고 세력 또한 확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캐릭터의 신체‧복장상 특징을 우선시하던 ‘모에’ 코드에의 고찰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얼굴에서 드러나는 ‘성적 본능 자극’과 ‘귀여움’의 요소 조합, 시대 맥락에의 부합까지 따지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완성도를 높여간 ‘모에’의 노하우는 게이머들에게 긍정적으로 기억될 수 있는 디자인 외적인 기회를 얻게 되는데, 매주‧매일마다 반복 방영되는 TV드라마나 애니메이션처럼 게이머들을 일상적인 접속으로 이끌게 해주는 일일 로그인 보상이나 가챠 연출과 같은 상투적 연출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승리의 여신:니케〉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블루 아카이브〉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지만, 게이머가 캐릭터에 대한 ‘모에’를 느끼는 게임들 중에는 미소녀를 내세우는 것들이 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또한 그로 인해 이들 게임을 ‘남성 전용 게임’이라고 오해하는 태도가 게임 업계의 내외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주마를 미소녀형 캐릭터로 재창조한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한국 서버 기준 남녀 성비가 2023년 7월 기준으로 정확히 50:50이었다는 기사에서처럼, 남성 캐릭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적지 않은 여성 유저들이 기여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게임와이 2023.7.4.). 여성 게이머라고 해서 모두가 ‘모에’ 그 자체를 기피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미소녀 캐릭터를 문제시하는 여성 게이머들은 그 캐릭터의 디자인보다는, 예를 들어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성적 특성의 묘사와 같은, 다른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일련의 문제를 포함하여, 게임계에서의 ‘모에’ 담론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다양한 연구와 분석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모에’를 소중히 생각하는 팬이나 크리에이터에 의한 자기진술 이외에도, 게임업계 바깥에서 문화연구라는 본업에 종사하는 다른 연구자들의 참여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