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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PD-자문위원의 코멘터리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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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2. 12. 10.


지난 10월 10일, EBS에서 만든 게임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참조: https://youtu.be/5LWXpmdV_BU) 일반적인 게임 다큐멘터리처럼 게임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게임의 본질과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트렌디한 연출에서부터 방송 직후 유튜브에 즉시 공개한 것까지, 제작과정과 유통과정 모두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공개된 유튜브의 댓글에는 ‘제작자가 게임에 진심’이라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그러나 기존의 게임 다큐멘터리와 궤를 달리한다는 것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뒤따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은 어땠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며, 어떠한 관점으로 게임을 보고자 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이번 호에서는 박진우 PD와 자문위원 이경혁 편집장의 대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Q. 마침 다큐멘터리의 PD와 자문위원을 모시게 되었는데요. 이 다큐멘터리에 관한 논의를 처음 시작하신 것은 언제인가요?


이경혁 자문위원: 제가 기억하는 첫 만남은 한예종에서 열었던 크리티컬 플레이어 행사였어요. ‘게임 비평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주제의 행사에서 제가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끝나고 찾아오신 거예요. 게임 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그때 앉은 자리에서 2시간을 더 이야기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굉장히 반가웠던 것이 ‘이제는 게임을 하던 세대가 제작자의 위치로 가는 순간이구나’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다큐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웠어요. 그래서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그다음에는 서로 바빠서 잊고 있었어요. (웃음) 


박진우 PD: 그렇죠. 서로 바빴죠.


이경혁 자문위원: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났는데 다시 또 연락이 와서 예산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다큐의 시작이라고 하면 5년 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다큐멘터리가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한 것은 3년 정도이지만, PD님은 예전부터 이 주제를 다루고 싶어하셨으니까, 마치 배추를 절이는 데 2년, 양념에서 묻히는 데 3년 같이 5년을 고민하셨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진우 PD: 맞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었고, 대학 졸업할 때도 졸업 논문을 게임에 관해 썼거든요. 그러다 보니 뭔가 나름대로 파보고 이것저것 읽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관심이 생겼고, 이차적으로는 이러한 작업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PD가 된 다음에도 ‘내가 어떤 프로그램을 할 것이냐’라고 했을 때 게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 과정에서 편집장님이 말씀하셨던 한예종 행사에 갔는데,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필드가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위안과 용기를 얻었어요. ‘이 정도의 콘텐츠가 있으면 다큐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사실 아이템만 가지고는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거든요. 그게 2018년 겨울이었어요. 




Q. 5년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은데, 그 과정에서 생각이 변하거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진우 PD: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조바심이 있었어요.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게임에 관한 감각을 잃어버리기 전에 게임 다큐멘터리를 두 개는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한 3, 4년 정도 제작했는데, 1년, 1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제 어릴 적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제가 게임을 엄청 좋아하고, 가장 열성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그 시절과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서 더 빨리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게임의 주 소비층을 2030이라고 봤을 때, 이 문화에서 제가 조금씩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좋아하면 예전에는 100% 다 알았는데, 조금씩 모르는 것들이 생기면서 이걸 완전히 놓치기 전에 만들어야겠다고 서둘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나왔던 다큐도 어떻게 생각해 보면 2년 후에 저라면 이런 방식과 이런 드립을 넣는 형태로 만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드립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는 인터넷 상의 반응을 보면서 굉장히 ‘성공했구나’라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있었어요. 


박진우 PD: 어떤 씁쓸함이었을까요?


이경혁 자문위원: 유튜브에 댓글이 달리는 데, 이런 댓글인 거죠. ‘이 다큐가 훌륭한 이유는 밈을 잘 쓴 것이다, 이말년이 나왔다, 전용준이 나왔다.’ 그러나 이 다큐의 의미가 그거 하나는 아닌 거죠. 밈이 잘 사용된 것은 맞지만, 한편으로는 이 다큐의 핵심은 결국 게임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인데, 이것이 주목받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어요.


박진우 PD: 그렇죠. 그 부분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에 선생님과 함께 다큐 기획을 할 때도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고, 방송 나간 결과물을 보면서도 어렵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말씀하신 타겟에 관한 문제예요. 시청자들의 게임 이해가 각기 다르고, 어떤 것을 원하는가 했을 때, 이런 부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물론 다큐의 본질이 별로였으면, 밈에 대한 반응도 안 나왔겠죠. 그렇지만 저희가 2년 반 동안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찍어놓은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리서치를 굉장히 길게 했어요. 그런 지점에서 오는 아쉬움이죠.


박진우 PD: 사실 내용적인 부분에 있어서 반응이 많이 나왔던 것은 3부였거든요. 전체 기획의 측면에서 봤을 때, 1부가 기본적인 내용이라면 2부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고, 3부가 일종의 심화편으로, 시청자들이 다큐프라임이나 다큐멘터리에 기대하는 정보량과 깊이는 3부의 온도였을 것 같아요. 다만, 제작과정에서 너무 심층적인 논의들은 의도적으로 많이 뺐어요. 핵심적인 내용만 남기고 많이 덜어내고자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보면 게임을 해왔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나 공중파 다큐멘터리라는 미디어는 일종의 공인 효과를 만들잖아요? 저희는 그런 지점에 더 초점을 맞추고자 했어요. 다들 느끼고 있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걸 언어화해서 공유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으로 담론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잖으니까요. 그렇게 족적을 남김으로써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급적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밈이나 인터넷 문화를 많이 가져온 것도 이런 맥락이에요. 재밌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테니까요.


*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시청자 반응.

이경혁 자문위원: 그래서 그런 후속 효과도 굉장했죠. 계속 커뮤니티에 돌았고, 소위 말하는 ‘짤’로 ‘EBS가 이런 것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웃음)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게임을 하나의 매체로서 다루는 시금석’이라는 방향성은 확실히 기존 문법이랑 다른 지향점을 가지게 했는데요. 저희가 시작할 때부터 배제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했거든요. 처음에 저희가 기존 다큐들이 무엇을 다루었는지 쭉 훑었어요. 그러면서 게임 산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고 방향을 정했었죠.


다른 이야기지만, 어려움이라고 했을 때는 그런 것도 있을 것 같네요. 이전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들을 보니까 미국의 경우에는 비디오 게임 연구의 장이라는 것이 이미 있는 거죠. 거기서 자신들이 쌓아놓은 역사들이 있고, 대학의 전공도 있으며, 전문가들이 있어요. 그러면 다큐 제작진들이 누군가를 컨택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전문가가 없으니까 어려웠죠. 


박진우 PD: 맞아요. 그게 되게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였습니다. 자료도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고 리서치에 동원될 수 있는 인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Q. 그러면 자료나 전문가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가 다큐의 방향성을 바꾸셨던 지점도 있을까요?


이경혁 자문위원: 저는 기억나는 게, 초기에 기획했던 콘텐츠 중에는 백인의 인터뷰가 있었어요. 게임계의 100명을 선정해서 가장 좋았던 게임에 대한 인터뷰를 모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했었죠.


박진우 PD: 저는 여전히 그 기획이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중에라도 해보고 싶은데, 당시에 캔슬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 정도가 있었어요. 하나는 여태까지 나왔던 게임 중에서 최고의 걸작을 꼽는다고 하면, 걸작이라는 말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정해진 답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배제하기가 너무 쉬운 거예요. 결국, 작품론적 관점으로 질문이 흐르게 되죠. 저희 내부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때도 기껏해야 와우(WoW) 정도?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 두 가지 매체의 게임을 포기하게 되니까 세팅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하나 있었고요. 두 번째로 다큐를 기획할 때는 판데믹 시국이었기 때문에, 해외로 못 나갔었거든요. 그래서 해외의 게임 관련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는 요인이 작용했어요. 물론 이 기획 과정에서 프린세스 메이커의 아카이 타카미씨를 만날 수 있게 되어 이번 다큐에 나오시긴 했지만요.



Q. 두 분은 그 5년 사이에 어느 정도로 만나신 건가요?


박진우 PD: 처음에 만나 뵙고 그 이후로는 저도 이제 다른 프로그램 한참 제작을 하다가, 다큐프라임 기획안 공모가 떠서 올해는 게임을 본격적으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정리를 하다 보니 한계가 있는 거예요. 이전에 정리해놓은 자료들 중에서는 유실된 것도 있고, 그 사이 지형이 많이 바뀌면서, 전문가 선생님의 도움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경혁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나와주셨어요. 


이경혁 자문위원: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장소가 그렇게 멀지 않아서요. (웃음) 동네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했어요. 우연찮게 작가분도 근처에 사셔서, 초창기에는 거의 하루종일 이야기를 하는 모임들을 꽤 자주 가졌던 것 같아요. 어떤 결론이 나기보다는 탐색을 엄청 많이 했었죠.


박진우 PD: 그래도 꽤 많은 가능성들을 펼쳐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렸어요. 그러다가 기획을 다듬어서 지금의 1, 2, 3부 형식을 잡기까지 한 1년 걸렸던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제작이라는 과정이 그런 것 같아요. 완성된 작품은 150분이지만, 할 이야기는 정말 많은데 제한된 150분 안에 무엇을 넣어야 우리의 목표에 들어갈 것인가 하고 훨씬 많은 시간을 고민했죠. 이런 식으로 걸러내는 과정들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박진우 PD: 맞아요. 전체 50분짜리 다큐멘터리에서 내러티브가 전개되는데 필수 불가결하게 쓰이는 시간들이 있어요. 거기서 시간을 더 줄이면 몰입이 안 되거나, 캐릭터가 설명이 안 되거나, 상황이 인지가 안 되거나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구조 자체가 무너지는 거고, 구조가 무너지면 알맹이들은 더 머릿속에 안 들어오는 거죠. 게다가 내용적인 면에서도 깊게 다루거나 더 들어가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거든요. 그래서 진짜 핵심만 남기고 버리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이경혁 자문위원: 결국은 다 필요없고 재밌게 보면 좋겠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남겨줄게! 같은 식으로 만들어지죠. (웃음)


박진우 PD: (웃음) 맞아요. 정확하게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욕심으로는 약간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1부에서는 다큐 중에서 규칙이나 상호작용을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싶었었어요. 그치만 사실 동영상은 일방향 콘텐츠니까 상호작용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나마 최대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느낌이라도 줄 수 있게 중간중간 퀴즈나 퀘스트 같은 것들을 넣으려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짜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죠. 


추가적으로 그런 어려움도 있었네요. 인터뷰이들을 어렵게 모셨는데, 제한된 시간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담기가 어렵잖아요. 50분 다큐에 한 두 세문장 정도 나오실 수 있는데, 저희가 조사를 할 때에는 평균적으로 3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거든요. 진짜 좋은 말씀이 많았는데, 그걸 다 못 담아내서 너무 아쉬워요. 다만, 저희가 그래도 최대한 모든 분들의 인터뷰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작업에서 낭비가 거의 없었거든요. 인터뷰 등을 나갔던 모든 자료들을 다 썼고, 한두 컷이라도 담으려 했죠. 근데 딱 한 분 전반적인 톤과 약간 달라서 못 쓴 분이 있었어요. 방송 나가기 직전까지 어떻게든 녹여내려 고민했는데, 안 돼서 방송 전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세 부가 사실 각기 다른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니까 에피소드 별 비하인드도 다를 것 같은데요.


이경혁 자문위원: 맞아요. 저도 궁금했던 것이, 1부에서 인트로가 충격적이었잖아요? (웃음) 사람들이 말로만 하던 ‘고인의 생전 최고의 플레이를 보시겠습니다’를 직접 그려내니까. 그런데 해당 장면을 촬영하는 배우들은 자기가 뭘 찍는지 아나요? 예를 들어 목사님은 이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시는 걸까? 그런 점에서 저는 PD님이 어떻게 디렉팅을 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박진우 PD: 저희가 앞부분 대본을 드리고, 감추는 것은 없었어요.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를 했는데, 다만 밈에서 출발했던 것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신 분들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어르신 출연자들도 있고 했었으니까. 한 30대 중후반쯤 되시는 남자 배우 분만 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디렉팅은 그런 거죠. ‘상상도 못했던 걸 봤다고 생각하고 놀래 달라’ 


이경혁 자문위원: 아무래도 다 알고 연기하시긴 어렵겠죠. 아, 그 ‘전용준 게임’은 따로 외주 제작한 건가요?


박진우 PD: 네 맞아요. 따로 게임 개발하시는 분을 컨택해서 제작을 했죠. 저희 나름 그 게임 진짜 신경 많이 썼습니다. (웃음) 다큐멘터리가 그냥 한 편의 다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체험을 할 수 있는 다큐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의 확장선이었던 거죠. 영상이라는 일방향적인 매체의 한계를 벗어나보고 싶었고, 그 안에는 나름 많은 비밀과 다큐에서 나왔던 내용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장치들 등을 세밀하게 조정을 하고자 했습니다. 진짜 공을 많이 들였죠. 


* 다큐프라임의 ‘게임의 신’ 게임 출시 공지. 전용준 게임은 http://www.ebsgodofgame.com에서 바로 접속할 수 있다.


이경혁 자문위원: 이게 진짜 이스터에그가 많더라고요.


박진우 PD: 네. 그런 비밀을 감춰놓음으로써, '게임이 재미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직접 느껴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거든요. 처음에 화면을 켜면 튜토리얼이 짧게 한 장으로 나오는데, 진짜 미니멀하게만 짜놨고, 어떻게 해야 고득점을 하는지, 고득점을 받으면 어떻게 집계가 돼서 뭘 하는지 이런 규칙은 일부러 다 감춰놨어요. 그걸 찾아내는 게 일종의 재미를 발생시킨다고 봤기 때문이죠.


이경혁 자문위원: 나도 그 의도를 보고 그게 게시판이 좀 올라오길 바랐어요. ‘이 게임 고득점 뽑는 법’ 뭐 그런 걸로요. 이런 게 어디에 글이 올라와야 재밌는 거니까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사람들이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아직도 액티브 되어 있죠?


박진우 PD: 네. 한 3년 정도 서버비를 내놨습니다. 제 사비로... (웃음) 그리고 이야기 나온 김에 3부 마지막에 가상의 미술관도 실제로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공들인 것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이 안 보셨더라고요.


이경혁 자문위원: 그것도 3년치 서버비를 넣어뒀나요? 사비로?


박진우 PD: 네 (웃음) 


(가상 미술관은 https://www.ebsgamedocu.co.kr 주소로 접속할 수 있다)


이경혁 자문위원: 그리고 1부에서는 ‘바람의 나라’가 메인이 되고, 송재경씨가 거울에 나오잖아요? 세 게임 중에서 맨 처음으로 바람의 나라를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박진우 PD: 음. 아무래도 제 유년 시절의 일부분을 책임졌던 게임에 대한 리스펙이 크죠. 


이경혁 자문위원: 그래서 저는 바람의 나라 세대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바람의 나라와 송재경씨가 가지는 의미가 또 특별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지점에서 또 중요한 것이 거울에 관한 지점일 것 같은데요. 거울은 왜 쓰셨나요?


박진우 PD: 우선은 인터뷰 공간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어요. 인터뷰 샷이라는 게 사실 다양하게 보이지만, 한국에서 전문가들이 나온다고 했을 때 한정적이거든요. 사무실 혹은 집무실, 교수님 방 이런 공간이 가지고 있는 넓이나 장면이 너무 뻔하고, 각도도 제한적이어서 어쨌거나 좀 다르게 구성하고 싶다는 게 출발이었어요. 다만 저희가 전문가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 뵙고 촬영을 하는 형태니까, 인터뷰 샷에 통일감을 줄 수 있는 공통의 오브제가 하나 있어야 되겠다 싶었고요. 그게 게임에 대한 무언가면 더욱 좋겠죠. 다만 뻔하게 콘솔 패드나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등을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고민을 하다가 떠올린 게, 게임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거울이었어요. 거울이 우리를 비추듯, 게임이 우리 자신을 반영하기도 하고, 거울에 우리를 투영하기도 하고... 일상에 함께하면서도 저 너머의 현실과 꼭 닮았지만 완전히 현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무언가. 그런게 게임이라고 봤기 때문에 거울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사각의 프레임이라는게 시각적으로 활용하기도 좋았고요. 자막을 넣는다거나, 거울에 비친 인물에 게임의 일부를 합성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쓰기에 좋았죠. 


아울러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사각 프레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경혁 선생님이 쓰신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라는 책의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네요. 매체로서 게임을 바라본다는 차원에서 더더욱 그렇네요. 


이경혁 자문위원: 무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2부의 세팅이 또 굉장히 재밌잖아요. 제가 볼 때에는 온스테이지 공간의 느낌이 들던데, 어떤 기획이었나요?


박진우 PD: 온스테이지와 같은 공간이냐고 물어보시면, 완전히 같은 공간은 아니고요. 요새 호리존트(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음새 없이 만들어 놓은 세트 벽면)에 조명을 넣는 방식으로 공간을 채우는 영상들이 되게 많아요. 아마 처음에는 공중파의 세트 규모를 소규모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따라가기는 힘들어서 차용한 방법일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이제는 오히려 역으로 공중파에 영향을 많이 미치죠. 왜냐하면 그것들이 일종의 공통감이라는 걸 만들어내거든요. 예를 들면 90년대 영상들을 보면, 편집의 호흡이나 샷의 크기 이런 것들이 미묘하게 지금 되게 다르거든요. 이런 감각이 결국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통감에 기반을 둔다고 하면, 유튜브 콘텐츠에서 나오는 배경들이 지금 공통감의 영역에 올라섰고, 그런 지점에서 온스테이지 같은 느낌을 좀 받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온스테이지의 팬입니다. 제가 예전에 뮤직박스라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거기에 음악 공연을 보여주는 구성이 있었거든요. 당시에 온스테이지를 많이 참고했고 훈련된 면들이 있지요. 이번 다큐에서는 최대한 심플하게 가면서도, 인상적인 비주얼을 만들고자 했고요. 거기도 이제 보면 사람들을 상징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가령, 집이라든지 음표라든지 이런 것들을 넣기로 했었어요. 사실 그 거울도 되게 비싼 겁니다. (웃음) 거의 한 100만 원 되는 거울인데, 인터뷰를 위해서 샀어요. 사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다 말렸었고, 제가 귀가 얇은 편이라 웬만하면 사람들이 말리면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해야 한다고 우겨서 넣었어요. (웃음) 그래도 결과물을 보고 다들 만족해서 다행이에요.


이경혁 자문위원: 저는 2부 마지막에 4명 부감 잡는 장면에서 무대 세팅에 놀라움을 느꼈는데요. 아마 저만 그렇게 느끼진 않았을 것 같아요.



* 위에서 찍었을 때, Game을 나타낸 무대효과.


이경혁 자문위원: 3부서는 예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은 결론을 명확하게 내리지는 않잖아요. 결론을 강하게 가져가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까요?


박진우 PD: 부담이 없었다고 하면 사실이 아니겠죠. 근데 그게 결론을 굳이 내리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물론, 강하게 이야기 해볼 수는 있었겠죠. 예를 들어, 다큐에 나왔던 표현을 좀 빌리자면 “게임의 상호작용이 예술이다”,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보면서 반대 의사를 가지신 분들의 말씀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저는 이 주제가 논리적으로 설득할 게 아니라, 그냥 다름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분들이 자연스럽게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의 단초들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우리 다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을 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면에서는 이루려고 했던 소기의 성과들을 조금 이뤘던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또 절묘하게도 화두를 던지는 엔딩이 더 의미가 있었던 모종의 시대적 배경이 있었잖아요? 사실 우리가 논의할 때만 해도 그런 이야기가 없었죠?


박진우 PD: 맞아요. 9월 7일에 ‘문화예술’의 범위에 게임을 추가하는 내용의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죠. 8월 초부터 뉴스에 ‘이번에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고 나왔던 것 같은데, 그걸 처음에 봤을 때는 약간 식은 땀이 흘렀죠. (웃음) 지금은 게임이 최소한 법적으로는 예술의 영역 바깥에 있다는 걸 가정하고 이미 다 만들어 놨는데, 갑자기 그 안에 들어온다니요. 반갑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몇 년을 고민한 걸 엎을 수도 없고, 이거를 모른 체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래서 어떡할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오히려 좋은 거예요. 이런 상황을 살리자. 그게 3부에서 다루는 ‘게임과 예술의 관계’라는 게 먼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마주하고 있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질문이라는 게 확 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방송 말미에 자막으로 덧붙였습니다. 


박진우 PD: 때가 다행히 잘 맞았죠. 그것도 방송 나가기 직전까지 몰랐던 게 국회 본회의에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그다음에 행정상의 절차라고 보통 얘기를 하는데, 그 이후에 행정부로 이관하고 공포하는 그 두 가지 단계가 남아 있더라고요. 물론 거기서 파기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한데, 그래도 확정이 되어야지 법적으로 효력을 갖는 거니까. 근데 그게 방송 3일 전인가 막 이랬거든요. 그래서 일단 다 써놓고 처리가 되었는지 계속 새로고침하고 그런 초조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Q. 마지막으로 이후에 하시고 싶은 작업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박진우 PD: 기획하고 있는 여러 가지 아이템 중 하나는 인디 게임 제작기거든요. 한 케이스로 쭉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여러 케이스를 같이 엮어서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이외에도 게임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더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자문위원: 이번 다큐를 책으로 만들거나 하는 후속 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진우 PD: 사실 지금의 3부작만으로는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아카데믹한 작업들이 진행된 경우가 조금 더 책으로 발간하기 적합할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게임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더 탐닉하고 싶어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게임 다큐를 하다 보면, 작업물들이 충분히 쌓인다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소망이 있습니다. 결국 게임 다큐로 좀 더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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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문화연구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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