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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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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4. 10.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그리고 사람. 두세 자릿수 이상의 사람들이 공통점을 갖고 모인 커뮤니티는 개체수의 조합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만큼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 역사가 사반세기 쌓이면서 이 또한 방대해진다. 가끔은 역사의 요약을 감히 할 수 있는가 겸허함이 들긴 하지만 그 두껍고 넓은 영토를 정리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공동체, 커뮤니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목적은 자기 방위다. 부족과 국가는 구성원들을 굶주림과 죽음에서 보호하는 기능이 최적이다. 종교는 그 기능을 위한 질서화 기능과 내면의 평안 기능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다. 반면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는 방위 기능이 거의 없고 대신 정보와 정서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엔 물리적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방위 기능은 심리적인 것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존재 가치이자 1차적 기능은 정보 제공 기능과 정서적 연대 기능이 된다. 그리고 정서적 연대 또한 정보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렇게 느슨한 형태의 부족을 형성한 것이 지난 25년 온라인 커뮤니티의 요약이다.

     

커뮤니티가 성립하면 그 내부에서는 두 가지의 길항 관계가 형성된다.

     

첫째는 정보 생산 주체가 누구인가다. 지배자, 엘리트 등의 상부에서 유통하는 경우와 민중, 대중 등의 집단 지성이 유통하는 경우로 나뉜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두 가지가 모두 작동한다. 한국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 현상이 나타났는데, 외국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번역하여 가져오고 직접 생산도 하는 소위 ‘기자’와, 비슷한 일을 하지만 커뮤니티 운영 그룹은 아닌 ‘사용자’의 2중 구조다. 운영 그룹에 속하는 생산자들을 기자로 불렀다는 점에서 이는 이 집단이 언론인가 커뮤니티인가를 가르는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정체성의 측면에서 언론 기능에 치우치기를 선택한 대표적 예시가 디스이즈게임이다.

     

두 번째 길항 관계는 이 운영권에 있다. 커뮤니티가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집단, 국가라면 정부다. 운영 관리를 하는 집단은 내부의 질서도 잡아야 하고 그래서 규칙을 제정하여 강제한다. 이 집행 행위를 운영 집단이 직접 하는가와 사용자의 자율이나 사용자 일부에게 위임하는가의 경우가 있다. ‘운영자’와 ‘알바’의 페어다. 후자의 경우엔 서술의 순서를 뒤집으면 그게 곧 민주주의인데, 현실 정치에서도 질서와 자유는 길항 관계로 국가를 조직해간다. 중요한 것은 한계선의 존재인데, 자유가 선을 넘으면 혼돈이 되고 질서가 선을 넘으면 경직이 된다.

     

     

0. 20세기, 최초의 게임 커뮤니티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 자리잡기 이전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커뮤니티 혹은 유사 커뮤니티는 있었다. 게임 잡지다. 90년대의 게임매거진, 게임라인 등의 게임 전문 매거진은 게임 정보를 번역하고 게임을 공략하는 기자와 전문 필진을 고용해 컨텐츠를 만들었다. 독자들은 편집부에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2차 컨텐츠를 만들고 교류를 했는데 특히 게임라인과 그 후신 게이머즈는 동호회의 창작 합평 같은 분위기의 독자 편지 코너를 갖고 있었다.

     



* 단순한 Q&A 외에도 2차 창작물의 공유, 나아가서는 독자 자신과 담당자의 캐릭터성 만담이 이뤄지기도 하는 대화성 코너였다.

     

비슷한 시기에 PC통신 서비스가 생기면서 게시판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동호회들이 생겨났고, 이것이 곧바로 꽃핀 인터넷 환경의 웹 게시판으로 옮겨갔다. 정보를 번역/생산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는 인터넷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로 자리를 옮기거나 플레이포럼, 루리웹 같은 팬 기반의 정보 공유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 구조는 다들 비슷했다. 게시판 여럿이 병렬로 모인 게시판 집합체의 성격이었는데 이런 표준의 대표는 디시인사이드였다.


* 디시인사이드 중세게임 갤러리, 속칭 중갤의 화면

     

질서 한계선을 높게 두었고, 생산을 사용자에게 일임했고 관리 또한 사용자 중 일부로 대체했다는 의혹도 있다. 게임뿐 아니라 수많은 관심사의 게시판들이 병렬로 모여 있고, 그 수의 게시판을 관리하려면 새로운 게시판이 생길 때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 디시인사이드는 기본적으로 직원이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방임 정책이었다. 질서의 한계선이 자율에 가깝다 보니 한계가 매우 느슨한 무제한적 자유가 허용되었다. 반면 소속감은 매우 크다. 맹점은 생산되는 정보도, 정보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사용자도 많아. 큐레이팅 기능이 매우 떨어졌고 정치적 정서는 종종 극단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게임 게시판의 대표격인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가 그러한데, 이 경우엔 후일 악명 높은 일간베스트의 게임 게시판 사용자들을 흡수하기도 했다.

     

이러한 디시인사이드의 특징, 병렬화/파편화된 게시판 체제와 높은 자유도는 일간베스트, 인벤 등의 후계 주자들이 참고하는 지점이 되어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전제로서 존재한다.

     

     

1. 00년대 시작, 웹진과 카페


90년대 후반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정보화 혁명은 커뮤니티를 촉발시켰다. 정보를 번역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모이면서 커뮤니티 운영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프리챌과 디시인사이드를 필두로 한 웹 커뮤니티 시장이 열렸다. 게임만 다루는 커뮤니티 또한 플레이포럼, 루리웹, 그리고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된 인벤 등 여러 플랫폼이 사업체 등록을 하면서 판이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플랫폼의 구조는 디시인사이드에서 온 병렬형 게시판 구조였고, 정보 생산은 기존 정보 번역/생산을 하던 사람들이 기자 혹은 필진이 되어 웹진의 형태를 취했다. 오프라인의 레거시 매거진과 다른 점은 사용자들이 게시판을 기반으로 정보 생산 기여를 한다는 점이었다. 편지보다 훨씬 실시간 소통이 되는 웹의 특성 덕에 기자/필진 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정보를 제보하고, 플레이포럼과 인벤은 이런 컨텐츠를 큐레이팅해 기사 형태로 업로드되어 사이트 첫화면에 이미지 링크도 되었다. 이들은 인기 게임 별로 별도의 하위 사이트를 개설하고 여기에 관련 게시판을 정리해서 넣어두는, 나무뿌리 형태의 계층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가장 붐비는 곳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다루는 와우플포와 와우인벤이었다. 사이트 첫화면이라는 개념이 없는 구성의 디시인사이드와 루리웹은 게시판 상단에 고정글로 올려두는 방식을 택했고, 이후 추천글 목록이라는 별도의 위젯 시스템으로 발전해갔다. 후발주자인 인벤의 2004년 창립 다음 해에 디스이즈게임이 창립했지만, 시작부터 언론 기능에 치중하며 시작했던지라 커뮤니티 기능은 약했다.

     

이제 시작한 시장에 파란이 없을 수 없다. 시장 형성 직후인 2002년에 선두 주자였던 프리챌이 유료화라는 무리수를 던졌다가 비참하게 사라졌다. 경쟁자였던 포털 사이트가 이 커뮤니티 수요를 대거 흡수했다. 다음, 뒤이어 네이버가 내놓은 카페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서비스가 대세가 되었고, 각 게임사는 게임 홈페이지에 커뮤니티 게시판을 열어두거나 아예 포털 카페에 팬 카페를 개설했다.

     

전자의 의도는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와야 하는 구조로 만들면서, 커뮤니티 기능 또한 홈페이지에서 소화하는 것이다. 웹진이나 포털의 커뮤니티를 사용하면 데이터 수집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의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개발사가 이 방법을 썼다. 작은 회사는 다음과 네이버로 갔다.

     

그래도 게임 커뮤니티의 헤게모니는 웹진과 게시판에 있는 형국이 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오래 가지는 못했으니, 업계가 너무 빨리 커졌다. 게임의 종류가 많아지고 각 게임의 역사도 깊어지면서, 필요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면 인기 온라인 게임이 대여섯 개씩 새로 출현한다. 업계에 돈이 돌고 시장이 커지면서 스탠드얼론 게임도 대작들이 점점 많아진다. 공략 생산과 정보 큐레이팅에 인력을 추가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었다. 웹진 모델로는 게임 전반의 정보를 유의미하게 다루기가 어려워져 갔다. 결국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플레이포럼은 탈락했다.


* 플레이포럼의 개편 이전 UI

     

디스이즈게임이 언론 기능을 목표로 삼고, 디시인사이드는 무한 자유의 놀이를 하는 도중, 똑같이 팬 기반의 울티마 온라인 정보 사이트로 출발한 플레이포럼은 실패 사례가 되었다.

     

트리거가 된 사건은 UI 개편의 실패였지만, 이를 전후하여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징후가 나타났다. 생산과 큐레이팅의 주체를 기자로 고집하면서 생산 주기가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기능을 과감히 포기한 디스이즈게임이나 처음부터 사용자에게 일임했던 디시인사이드/루리웹과 달리 어느 한쪽을 정하지도 균형점을 찾지도 못하고 개편 실패 이후 2012년 12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플레이포럼의 커뮤니티 기능은 플레이포럼에서 파생되어 나온 후발주자인 인벤이 흡수했다.

     


2. 10년대의 질서, 게시판의 헤게모니


플레이포럼이 사라지면서 정보 생산의 무게추가 사용자들에게로 옮겨갔다. 기자/필진의 숫자도 사용자에게 밀렸지만, 공략과 분석이 업무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이는 시간은 재미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일 수 있는 시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에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산하는 정보의 옥석을 가려내는 큐레이팅 기능이 중요해졌다. 인벤은 발 빠르게 각 게임의 담당 팀을 정보 생산 역할에서 큐레이팅 역할로 변신시키면서 변화에 적응했다. 루리웹과 디시인사이드는 초기부터 이미 직원 및 알바에게 게시판 관리 역할, 즉 게시판 큐레이터를 맡기고 있었다. 이후 인벤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루리웹은 스탠드얼론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역할을 하고 있다.


* 와우인벤의 첫화면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되어 나온 인벤은 웹진으로 출발했고 현재도 언론 기능의 기본은 유지하고 있다. 사이트 체계부터 UI 구성까지 플레이포럼을 답습하다시피 한 인벤이 살아남은 이유는 적응력이다. 이들은 시시각각 광대해지는 담당 영역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빠르게 정보 생산 주체를 기자/필진에서 사용자로 이동시켰다. 이제 기자는 에디터로 변신하여 큐레이션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용자들이 게시판에 자신들의 공략, 분석, 외국 자료의 번역을 올리면 잘 정리된 것을 각 게임 사이트 첫화면에 올려준다. 이전에는 기자/필진들이 작성한 기사의 링크 이미지가 올라가던 자리다.

     

관리 주체 또한 디시인사이드, 루리웹과 달리 질서 한계선을 더 낮게 그어 제한을 더 두었다. 플레이포럼에서 따온, 회원이 활동량에 따라 아이디의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구조는 장기간 고정 활동을 장려하고 정도 이상의 일탈을 자제시키는 정책이기도 했다.

     

또한 인벤은 ‘사건 사고 게시판’이라는 일종의 해방구 공간을 운영했다. 2005년부터 와우인벤을 비롯한 MMORPG 게임 페이지 하위에 개설된 이 게시판은, 게임 내에서 생긴 갈등을 가져와 여론 재판을 받는 재판정이다. 명분은 ‘이러이러한 비매너 유저를 고발한다’고, 따라서 여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집단 린치나 사이버 불링의 형태도 나타난다. 사건 사고 게시판은 소위 막장 드라마와 같은 길티 플레저이기도 하다. 마음껏 욕해도 되는 수준의 플레이어가 징벌대에 올라오고, 그에게 가학성을 드러낼 수 있고, 가끔은 고발한 사람이 진짜 나쁜놈이었다는 반전도 생기고, 어쩔 때는 고발 당한 플레이어가 억울하다며 등장해 싸우는 등, 온갖 엔터테인먼트가 이 게시판에 있다. 게다가 비난할 대상은 계속 재생산된다. 따라서 해방구가 되는 재판정 혹은 아예 결투장이기도 하다. 또한 합심하여 누군가를 공격하면 그 경험으로 인한 옅은 공동체 의식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아이디 레벨 제도가 합쳐지면 인벤의 커뮤니티 서비스 전반의 사용량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다.


* 루리웹의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게시판

     

자유도라는 점에서는 디시인사이드와 같은데, 반면 큐레이팅의 존재와 규칙과 운영은 오히려 인벤에 가까운 것이 루리웹의 특징이다. 루리웹 또한 정보 생산을 사용자들의 게시물에 의존하는데, 이는 인벤과 달리 초기부터 유지한 특징이다. 관리 주체는 운영사와 사용자가 함께 부담하며 이 인력이 큐레이팅도 하는데, 대신 몇몇 붐비는 게시판은 운영사 직할로 관리한다. 큐레이션 능력은 인벤만큼은 아니지만 아예 없는 디시인사이드보다는 나은 정도다.


* 블레이드 앤 소울의 자체 커뮤니티 게시판

     

반면 10여 년의 시간 동안 게임 홈페이지의 자체 게시판은 별 역할이 없었다. 그나마 활성화가 되어도 정보 공유보다는 사용자 결집과 상호작용의 기능 정도만 수행했는데, 그마저도 ‘구 웹진’의 게시판에 빼앗기면서 서서히 도태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포털로 이동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엔 이쪽이 더 적합했다. 기술의 발전과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위젯 기능 적용이 확장되면서, 게임을 실행하고 있는 동시에 옆 위젯으로 잠시 커뮤니티 화면을 불러오는 식의 구현이 가능해졌는데, 포털 대기업의 기술 지원은 이 구현을 용이하게 했다.

     

그러니 2018년 말, 또 한 번의 파란이 일었다. 게임사가 운영하는 게임 카페에 대해 네이버가 유료화 모델을 시도한 것이다.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카페의 상단 광고에 다른 회사 게임 광고를 노출시킨다는, 감탄이 나오는 전략에 몇몇 회사들은 포털을 탈출했다. 다시 자체 커뮤니티를 시도했고, 역시 이쪽이 회사 입장에서는 데이터 확보가 가장 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세가 된 것은 더욱 혁신적인, 아예 게시판 기반 체제를 버리는 방안이었다.

     

     

3. 10년대 후반에서 20년대, 게시판 너머의 채팅방


어차피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사용자들이다. 개설과 존속에 드는 비용은 어느 회사인가가 댈 수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드는 것은 비용 이상의 무엇이다. 그리하여 회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와 별개로 사용자들은 새로운 플랫폼인 메신저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떠오른 커뮤니티 시장의 새 강자는 메신저, 특히 디스코드다.


* 디스코드 채팅방에 개설된 아르테일의 채널
(출처: 게임인사이트, “활성화되어 있으나 원하는 정보를 찾기 까다롭다”는 캡션이 있다)

     

텍스트와 음성 채팅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하는 디스코드의 체계는 게시판과는 다른 장단점을 가진다. 게시판은 생산한 정보가 게시글의 형태로 고정되어 후일에도 찾아올 수가 있다. 다만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기는 힘들다. 채팅방은 그 반대로, 과거의 유용한 정보를 되짚어 찾기는 어렵지만 실시간 교환은 매우 쉽다. 이 장점은 사용자 간에도 작용하지만 제작자와 사용자 사이에도 적용된다. 반면 유저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웹진과 포털보다 더 어려운 상대였다.

     

그리하여 현재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섯 가지의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높은 자유도만큼이나 혼란하고 정보량은 적은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 자유도를 약간 희생했으나 큐레이팅 기능이 있어 진주가 묻혀 있는 루리웹, 언론의 기본 기능을 유지하면서 큐레이팅 기능을 강화해 양질의 정보를 보유한 인벤, 사실상 기능이 없는 채로 구색만 갖춘 것이 대부분인 게임사 자체 커뮤니티, 그리고 게시판을 벗어나 실시간 소통에 특화된 메신저 채팅방.

     

     

4. 온라인 부족 사회


모든 커뮤니티는 자체 존속을 위해서 여러 자원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구성원의 소속감, 즉 충성도다.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온라인 연결만 보장된다면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높다. 기존의 커뮤니티는 지역에 묶였다. 국가의 정의 중에 영토가 있듯이 말이다. 따라서 공간을 뛰어넘는 커뮤니티의 범람은 인류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다. 그 경험이 25년 남짓 되었다.

     

그동안 존속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제각각의 전략으로 구성원의 충성도를 얻었다. 커뮤니티 참여를 일상화시켜 소속감 또한 일상화시키는 방법은 인벤의 레벨제에서도 볼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갤러리는 자신들만의 말투와 은어를 만들어 일체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지속하면 커뮤니티마다의 특성이 생겨나는 것은 민족성의 발명 과정과 거의 유사하다. 장수하는 커뮤니티는 점차 온라인 부족의 색채를 얻게 되었다. 다중 소속도 가능한, 느슨한 형태의 부족인 셈이다.


*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대를 신(新)부족주의로 정의한 미셸 마페졸리의 저서 ‘부족의 시대’
마페졸리는 이 책에서 신부족주의 행위자는 합리적 성인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고 보고 있다.

     

커뮤니티 부족들은 인벤의 사사게처럼 내부 갈등도 있지만 부족 간 갈등 내지는 고정관념도 생겨났다. 디시인사이드에는 루리웹을 “씹선비”라 부르며 멸시하는 경우가 있고, 이따금 ‘인벤 놈들은 역시 그 따위’ 식의 폄하도 찾아볼 수 있다. 오경택의 2023년 석사 논문은 게임 커뮤니티의 공정성 담론에 관한 연구인데, 여기서 소개한 정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온라인 게임의 과금 유도에 지갑을 열어주는 사람은 게이머가 아니라 개돼지라는 정서. 진정성이라는 기준으로 다른 부족을 공격하면서도 동시에 ‘게이머’라는 이상적 주체를 상상하고 있다. 같은 계열의 게시물 중에서 오경택은, ‘진정한 게이머’인 자신과 모바일 게임이나 잠깐 하는 사람이 같은 게이머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불만에도 주목한다.

     

이는 ‘게이머’라는 대분류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부족성을 넘어 민족성 혹은 민족 개념이 싹트는 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 성립의 과정은 언제나 폭력성을 수반한다. 우리와 타자의 경계를 나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민족 개념이 분쟁을 매개로 구체화 되었듯이 말이다. 또한 민족 개념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수용과 불수용의 충돌 또한 발생한다.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반대에는 선민의식과 계급화를 경계하는 거부감이 있어 이 둘이 부딪힌다. 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니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런 폭력성의 발현 사례를 여럿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와우인벤의 사사게는 내부의 분노를 처리함과 동시에 집단 린치를 스포츠화하여 해소하는 형태다. 디시인사이드는 전통적으로 폭력성 노출을 문제 삼지 않는 갤러리가 많으며 게임 관련 갤러리는 특히 그렇다. 이런 기초 토양 위에 원세훈 치하 국정원의 심리전이 끼어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여론 조작 시도는 뉴스 댓글 몇 개 단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여론 흐름을 조작하려 하면서 일베에서 사용된 밈의 재료들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심리학자의 자문까지 받은 이 시도에서 현재의 사회를 괴롭히는 극우화의 물결이 싹텄다고도 볼 수 있다. 때는 마침 게임 커뮤니티에서 정보 생산 주체가 사용자들로 이전되던 2010년 전후다. 새 판이 만들어지는 변화기는 오염 정보가 들어간 게시물, 심리를 건드려 선동하는 댓글이 침투하기 좋다. 15년이 지나는 동안 그 씨앗들이 재생산되고 변이하였다. 그리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전반, 특히 남성 게이머가 많은 게임 커뮤니티에는 페미니즘과 진보 정치성에 대해 현실과 다른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영어권 웹도 비슷한 역사를 겪었다. 팬 사이트 기반의 정보 사이트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적응 또는 도태되고, 합종연횡하고, 서로 싸우고, 게이머 정체성을 놓고 충돌하고, 비평가에 대한 반엘리트주의적 반감을 드러내고, 그러다가 2013년에 게이머 게이트가 터졌다. 이 사건은 게임 언론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규모가 제법 커서 주류 언론의 눈길까지 끌고, 급기야는 극우의 숫자에 합류하여 수를 늘려주고, 도널드 트럼프의 초선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까지 커졌다. 이 과정에서 브레이트바트와 같은 대안 우파 언론, 대안 현실을 신봉하는 음모론 극우의 독이 스며들어 판을 키웠다. 그렇다면 거의 비슷한 과정을 밟으면서 탄생한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특히 게임 커뮤니티의 극우성이 윤석열 당선에 영향을 주었다는 서술은 가능할까?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해체 공약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가설은 반대로 생각해 볼 지점도 갖고 있다. 앞서 주장했듯 게이머 정체성은 일종의 민족 개념으로 정착하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폭력성 표출은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게임은 승리를 향한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격성 발현은 정서상 자연스러울 수 있다. 물론 이런 해석에는 비현실적인 현실 인식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긴 하다.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서 성립한 지 사반세기다. 그동안 우리는 게임에 관련한 여러 가지 때문에 검색을 해왔다. 수집품의 위치를 모를 때, 데미지 계산식을 근거로 했을 때 어떤 스킬 조합이 좋은지 궁금할 때, 버그가 발생했을 때, 새로운 업데이트에 대한 해석이나 요약이 궁금할 때 등이다. 검색의 결과로 우리는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의 어느 구석에 있는 게시물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동료 게이머가 알아낸 공략과 분석, 혹은 외국의 어느 사이트나 디스코드 채팅방에서 가져온 정보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보를 올린 사람 혹은 거기에 댓글로 첨언하는 사람이 옆 게시물에서 ‘페미는 정신병’이나 ‘걔들은 전부 빨갱이’라는 식의 극우 정서를 표출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유용한 정보에서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쉽게 만나는 세상이다.

     

이미 다양한 형태로 이 극우 정서의 근원을 분석하는 연구가 많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다음 사반세기다. 과연 이 느슨한 부족의 크기와 실제 영향력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중이기 때문이다. 해악은 어떻게 극복하고 효용은 어떻게 유지할지의 답은 게임 커뮤니티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고 다시 찾아내고 또 찾아내는 발굴의 과정에서부터 만들어갈 수 있다.

     

    

     

Tags:

커뮤니티, 디시, 루리웹, 펨코, 인벤, 게임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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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인)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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