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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One hour One Life>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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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10. 10.

Staying with the Trolls

 

나의 책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와 관련한 여러 반응 중에 다음과 같은 의견이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상대방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현실에서 벗어나 일탈적인 행동을 하는 게임문화의 일환’이며, 그 과정에서 여성 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저 ‘상대의 특징 중 하나를 짚어내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게임에서는 여성만 욕을 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비하적인 용어나 욕설이 여성 차별의식의 발로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지칭하여 멸칭으로 부른다면 그것이 어떻게 차별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상대방에게 욕설을 함으로써 일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발상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멀티플레이 게임의 텍스트/보이스 채팅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욕설은 여성들을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짜고짜 욕을 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과연 소통하면서 하나의 팀을 이룰 수 있을지를 회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고민한다. “나 그냥 이 게임(헬조선)에서 탈주하면 안 될까?”

 

그렇다고 게임과 소수자를 주제로 다루면서 여성을 차별받는 피해자로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물론 여성 게이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입은 피해나 상처들을 꺼내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적인 게임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문제를 회피하고 게임에서 계속 탈주해봤자 내 경쟁전 실력등급만 점점 떨어질 뿐이니까!

 

 

차별의 논리들

 

내가 석사논문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트롤들에게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트롤들은 당신을 욕하는 것이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여성성을 내세워 다른 팀원들의 기여에 무임승차하려는 여왕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 역시 이와 유사한 논리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게임 <오버워치>의 예를 들어보자. 이 게임에서 여성 플레이어들은 “지원가,” “서포터,” 혹은 “힐러”라고 일컬어지는 게임 내 직군을 맡기를 강요당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그러한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트롤들의 논리가 구조화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전제와 가치판단들이 중층적으로 엮여 있다. 우선, <오버워치>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공격군에 비해 서포터 역할은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서포터를 해야 한다,”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서포터가 아닌 다른 역할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압력을 받는다. 하지만 설령 여성이 그러한 압력에 못 이겨 서포터 역할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편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서포터라는 역할 자체가 수동적이고, 팀에 기여하는 것이 별로 없는 직업군이기 때문에 여성 게이머는 여전히 다른 팀원들의 성과에 업혀가는 무임 승차자, 민폐녀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게임공간과 현실은 별개가 아니다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자를 보조하는 인력으로 취급받거나, 혹은 남성이 바깥일을 할 수 있도록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육아를 하는 “돌봄 노동”을 강요당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경제적인 이득을 직접 창출해내지는 않기에 하찮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점에서 프레이저가 결국 가장 지적하고 싶은 문제가 시작된다.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이러한 돌봄 노동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돌봄의 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며 사회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진단이었다.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버워치>의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유저가 부족해 게임 매칭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불평하는 유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을 모욕하지 않음으로써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치료, 돌봄, 유지와 보수 같은 가치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처럼, 그런 의식이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게임의 밸런스가 붕괴하여 서포터가 아닌 유저들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게임과 같은 온라인 스페이스는 현실 사회와 분리된 일탈의 공간이라기보다, 이처럼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공간에서 나타난 돌봄의 위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출처: 디씨인사이드

 

One hour One Life

 

<One Hour One Life>는 제이슨 로허(Jason Roher)가 제작한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서바이벌 게임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1시간 동안만 살아가는데, 1분이 지날 때마다 나이를 먹고 60분이 지나 60살이 되는 순간 사망한다. 6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살아있을 수 있지만, 그 시간 내에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어 내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최대한 생존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마을을 일구어 문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게임을 하게 된다.

 

이 게임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게임을 시작한 직후인 초반 3분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아기로서 엄마인 다른 여성 캐릭터의 곁에 스폰(spawn)된다. 이 아기는 3살이 되기 전, 즉 현실 시간으로 3분이 지나기 전까지 걸어 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낳은 엄마 역할인 다른 플레이어가 젖을 주지 않으면 굶어죽는다. 채팅 역시 알파벳 한 글자 밖에 칠 수 없기에, 배고픔 상태가 될 때 마다 밥(Food)을 달라는 뜻의 "F"를 쳐서 엄마와 소통해야 한다. 새로운 아기들이 태어나면 엄마들은 그들을 모닥불과 곰 깔개가 깔린 따뜻한 방으로 데려와 옷을 입히고, 음식이 들어있는 가방을 등에 매준다. 이 곳 아기방에는 여자들이 상주하며 서로의 아기를 번갈아 안아주며 공동육아를 하기도 한다. (남자 캐릭터는 아기에게 옷을 입혀줄 수는 있지만 젖을 줄 수는 없다.) 이 모든 과정에서 텍스트 채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너는 [이름]이야”라고 말함으로써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처음에는 알파벳 한 글자 밖에 말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입력할 수 있는 글자가 늘어난다.


스크린샷 출처: https://saveorquit.com/2018/12/27/review-one-hour-one-life/)

 

<One Hour One Life> 에서는 남을 돌보는 행위가 재미의 핵심이 된다. 이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가령, 스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끼 뼈를 구워 만든 바늘, 양털으로 만든 실 등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 사냥을 해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양 목장을 관리해야 한다. 사냥을 하려면 누군가가 활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누군가 우물에서 물을 떠오고 비료를 만들어 놓았어야 한다. 양을 가둘 울타리가 있어야 하고 철을 캐와 가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해 스웨터를 만들더라도, 재화 시스템이나 창고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죽기 전에 옷을 다 벗어서 다음에 태어날 아기들에게 넘겨주고 갈 수밖에 없다.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에서 그 아이템을 본 적이 있는지, 혹은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게임을 진행하기 용이하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돕는다. 가령, 이 게임의 플레이어로서 나는 파이를 굽거나, 스웨터를 만들거나, 비료를 만드는 법은 알지만, 삽을 만들고 바늘을 만드는 법은 모른다. 일을 하다가 삽이 부러지면 나는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우정을 쌓고, 다른 캐릭터가 노인이 되어 죽기 전에는 서로 “사랑한다(ILY)”고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남아 있는 문제들

 

<One Hour One Life>의 사회 속에서 생산성과 돌봄은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행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존과 마을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많은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폄하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며 남이 불쾌할 만한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실제 우리 사회도 <One Hour One Life>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협업과 돌봄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아이를 낳고 먹이고, 청소와 요리를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집을 수리하는 일들은 우리의 생활과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결과적으로 사회를 지탱케 하는 일들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그것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것을 가장 원시적이고 간단한 형태로 가시화 시켜놓았을 뿐이다.

 

이 글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 <오버워치>에서 여성 차별적인 채팅들이 현실에서의 돌봄에 대한 가치 폄하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게임 채팅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차별적 언사들은 반향실(혹은 에코 챔버) 효과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강화되는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실의 구조와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성을 혐오하고 육아와 돌봄을 폄하하면 신규 유저가 점점 줄어드는 게임처럼 우리 현실도 태어나는 자 없는 죽음만이 가득한 땅이 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One Hour One Life>와 같이 돌봄의 가치를 재정의 하는 게임이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게임이 불합리한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


Tags:

원아워원라이프, 여성게이머, 상호작용, 프레이저, 오버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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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화연구자)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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