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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오롯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은 : 싱글 플레이에 던지는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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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2. 10. 10.

오래전 어느 PC게임 잡지의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칼럼에서 글쓴이는 재미있게 플레이하던 게임을 끝내는 것이 아쉬워 엔딩을 앞두고 진행을 멈춘 채 머뭇거린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칼럼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 ‘머뭇거림’의 정취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경험해야 할 다른 게임이 이미 많이 쌓여있고 또 앞으로 더 그럴 것을 생각하면 엔딩을 향해 박차를 가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그 발걸음을 붙들고 서성이게 하는 힘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 호기심에 대한 답은 찾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엔딩을 앞두고 일부러 멈춰 서성거린 적은 없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경험한 특정한 순간들이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코 ico〉에서 게임을 저장하기 위해 ‘요르다’와 함께 처음 소파에 앉았을 때나, 〈Gibbon: Beyond the Trees〉에서 긴팔원숭이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섰을 때가 그랬다. 그 순간들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경험한 일련의 과정들을 떠올리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해당 게임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인 동시에 게임에서 겪은 바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칼럼을 쓴 이의 지인이 마침내 머뭇거림을 지나 엔딩으로 향했건 끝내 멈추었건 그에게도 그 게임의 어떤 특정한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그 머뭇거림의 순간을 게임 크리에이터가 의도했을까 하는 새로운 호기심도 생겼다. 게임을 끝내는 걸 아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게이머가 느끼는 만족감이 크다는 뜻이겠지만, 거기서 느낄 보람과 별개로 그 머뭇거림이 크리에이터가 의도한 결과인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이 호기심은 굳이 선명한 답을 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호기심을 품는 순간, 게임을 만든 이가 어떤 의도를 품었을지 궁금해하면서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을 ‘혼자’ 던져보는 경험은 중요하다.



게임 플레이 형식을 가리키는 용어인 ‘싱글 플레이’는 한 사람의 게이머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련의 과정을 혼자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싱글 플레이의 의미는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방식이 확장되는 변화와 함께 달라져 왔다. 흥미로운 것은 그 변화가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싱글 플레이가 게임을 하는 본래의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하면 간단하다. 메인 메뉴에서 게임을 새로 시작할지 이어서 할지 선택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 방식의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다.


여럿이 함께하는 ‘코옵 플레이’(Cooperative Play)를 생각하면 싱글 플레이의 의미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램페이지Rampage〉나 〈황금 도끼Golden Axe〉처럼 여러 명이 동시에 플레이하거나, 〈스코치드 어스Scorched Earth〉처럼 차례를 기다리며 순서대로 플레이하는 등 다른 유형이 이미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들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련의 과정을, 같은 장소에서 진행한다는 점에서 싱글 플레이에 포함된다.


싱글 플레이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는 네트워크에 있다. 싱글 플레이와 대비되는 용어인 ‘멀티 플레이’가 대표적이다. 같은 장소나 가까운 범위 안에서 유선 통신망으로 기기들을 연결해 여러 명이 함께 플레이하는 ‘랜 플레이’(Local Area Network Play)를 주로 의미하는 ‘멀티 플레이’는 인터넷의 활용이 높아지면서 이제 ‘여럿이 하는 게임’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멀티’가 복수나 다중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임을 생각하면 딱히 축소되었다고 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온라인 게임’이 복수와 다중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연결’을 더 풍부하게 갖춤으로써 ‘멀티 플레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온라인 게임’의 기반이 되는 인터넷은 이제 ‘사회 기반 시설’로 자리 잡았다. 사회와 일상의 많은 영역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03년 1월 인터넷 대란이나 2018년 11월 통신망 장애 등으로 인해 겪은 불편을 통해 우리 생활의 많은 방식이 온라인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체감한 바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넘어 서버에 접속한 여러 사람이 함께 플레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온라인 게임 외에도 인터넷은 싱글 플레이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연결’한다. 텔테일 게임즈의 〈더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는 에피소드를 마치면 주요 선택지에서 다른 게이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준다. 선택의 순간에 다른 게이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잠깐 떠올리거나, 다른 게이머들의 선택 결과와 자신의 선택을 비교하면서 게임의 여운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장치는 게이머가 느끼는 즐거움을 풍부하게 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쌓은 업적을 중심으로 순위를 나타내는 ‘리더 보드’ 역시 다른 게이머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이것이 게임 플레이에 얼마나 동기를 부여하느냐는 게이머마다 다르겠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다른 게이머가 있다고 인식함으로써 게이머가 다른 게이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환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비슷한 경우를 ‘엑스박스 게임패스’로 대표되는 게임 구독 서비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게이머들의 게임 이용 행태를 분석하는 에이전시인 GameDiscoverCo는 2022년에 엑스박스 게임패스 구독자들이 게임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관한 자료를 발표했다.1) 이 중 이목을 끈 결과는 게임의 최초 출시일에 공개되는 ‘데이 원’(Day One) 타이틀 이용에 관한 기록이었다. 구독자들의 게임 플레이 기록이 하나의 새로운 차트로 다루어진 셈인데, 개별 게이머들의 게임 플레이 정보가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자료였다. 즉, 싱글 플레이를 혼자 플레이하더라도 그 경험 자체가 서버로 전달되면서 게이머는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2) 



이러한 예들이 싱글 플레이의 의미 중 게임을 플레이하는 인원에 대한 것이라면, 또 다른 부분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DLC(Downloadable Contents)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DLC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일련의 과정을 일단락 지은 싱글 플레이 게임에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콘텐츠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기존 게임의 줄거리에서 갈라지는 ‘외전’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결말이 될 수도 있다.


매체를 통해 게임이 유통되던 시기에는 이러한 콘텐츠가 ‘확장팩’(Expansion Pack)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졌다. 그런데 온라인을 통해 확장할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가 스킨, 캐릭터, 아이템부터 새로운 싱글 미션이나 스테이지까지 다양해지면서 ‘DLC’가 ‘확장팩’을 대신하게 되었다. ‘업데이트’라는 관점에서 보면 DLC는 단순히 콘텐츠를 추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게임의 오류를 수정하는 패치의 기능과 시스템을 변경하는 등의 변화도 포함한다. 이를 통해 일단락 지어진 싱글 플레이 경험이 다시 이어지거나 새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만들어졌다. 결말이 존재한다는 것을 싱글 플레이만의 특징으로 꼽기가 애매해진 셈이다.


이처럼 온라인을 중심으로 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하는 방식이 확장되면서 싱글 플레이의 본래 의미는 달라졌다. 혼자이되 완전한 혼자가 아니고, 결말이 있되 그것이 완전한 끝은 아닌 것이다. 온라인이 다양한 방식과 정도로 접목되면서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 싱글 플레이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새로 하든 이어 하든, 혼자 하든 여럿이 하든 싱글 플레이 게임과 온라인 게임 모두 “룰에 따라 일정한 시공의 한계 속까지 완료하는 자유로운 임의의 행동 또는 활동으로 인간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자 문화현상의 한 가지 표현 형태”3) 라는 점에서 싱글 플레이의 변화는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확산’되었다. 온라인이 다양한 방식과 정도로 사회와 삶 전반에 접목된 것처럼 싱글 플레이는 지금의 게임에 다양한 방식과 정도로 접목된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게임 시대’라 부를 정도로 많은 게이머가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하는4) 현재, 본래 의미의 싱글 플레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이루어진 싱글 플레이의 변화가 축소가 아닌 확산이라면, ‘머뭇거림’과 ‘의도에 대해 던지는 질문’ 역시 유효할 것이다. 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건 고독하고 쓸쓸한 일이다. 하지만 크리에이터가 만든 세계를 탐색하면서 의도와 까닭을 짐작하는 것, 그리고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자기만의 페이스에 온전히 집중하며 플레이 해나가는 것은 게이머와 게임 크리에이터의 비동시적인 대화인 동시에 게이머가 자기와 마주하는 동시적인 과정이다. 엔딩을 앞두고 플레이를 멈추도록 붙든 것은 어쩌면 게임 크리에이터의 의도가 아닌 게이머 그 자신의 목소리였지도 모른다.


한편, 싱글 플레이를 통해 게이머가 던지는 ‘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은 영영 어딘가로 흩어지고 마는 걸까. 같은 게임을 두고 뚜렷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게이머마다 다를 것이듯, 그 질문 역시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게임 크리에이터의 답을 구하지 않더라도, 게이머들끼리 자신의 질문을 서로에게 건네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 질문과 답들이 게임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게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누어질 필요가 있고 더 많은 비평의 장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 https://newsletter.gamediscover.co/p/xbox-game-pass-titles-in-2022-whats
2) 이와 관련해서 2013년 Xbox One 출시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제시했다가 철회한 중고 정책을 생각해볼 수 있다. MS는 중고 거래에 제약을 둘 목적으로 Xbox One을 최소 24시간에 한 번씩 온라인에 연결되도록 강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거센 비난에 직면한 후 중고 정책과 온라인 연결 강제에 대한 계획을 모두 철회했다. 이 경험이 MS가 게임패스 서비스를 추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으나, 당시 온라인 연결을 강제해 확인하고 싶어 했을 게임 이용 정보를 게임패스를 통해 큰 반감 없이 확인할 수 있게 된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3) 도쿄 지방재판소 1979년 제10867호 손해배상청구사건 판결주문 중 발췌, 〈팩맨의 게임학〉(이와타니 토루 저, 김훈 역, 비즈앤비즈, 2012년) p.53.
4) 한국의 게이머들은 온라인 게임을 확실히 더 많이 플레이하고 있다. 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해마다 발간하는 〈대한민국 게임백서〉의 ‘국내 게임 플랫폼의 시장 규모 및 점유율’과 〈2021 게임이용자 패널연구(2차년도)〉의 ‘게임이용자 1순위 이용게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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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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