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20

GG Vol. 

24. 10. 10.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목이 턱 막히는 질문이지만 이 답답함을 후배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가까스로 꺼낸 대답은 ‘게임기자는 게임쇼에 갈 수 있어’였다. 필자는 지금은 사라진 E3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형 게임쇼를 취재했다. 한국의 지스타, 플레이엑스포, BIC부터 중국의 차이나조이, 일본의 도쿄게임쇼, 대만의 타이베이게임쇼와 독일의 게임스컴, 미국의 GDC를 다녀왔다. 게임사들이 자체적으로 연 행사까지 포함한다면 필자가 다녀온 곳은 더 많다.


게임쇼는 여러 게임사가 신작을 발표하는 한편 개발 상황을 대중에 공유하는 쇼케이스이고, 사업적 기회를 찾는 기회의 장이며, 게임인들이 모이는 축제다. 게이머로서 게임쇼는 놓치기 아쉬운 현장이다. 필자가 이 원고를 탈고하는 지금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쎄에선 도쿄게임쇼가 막을 내렸다. 오는 11월, 지스타는 행사 20주년을 맞이한다.


* 오는 11월 개막하는 지스타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다. 사진은 2024년 지스타의 행사장 조감도 일부


사라진 E3, 점점 올라가는 비용… 높아지는 게임쇼 무용론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디지털게임이 오프라인 쇼라는 형식을 통해 공유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를 경유하면서 온라인 쇼케이스 방식은 널리 퍼졌다. 신작 발표라면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나 제프 케일리의 초호화 발표회가 있고, 체험이라면 스팀의 얼리억세스가 있다. 북미를 대표하는 게임쇼는 E3는 사라진 게임쇼가 되었다. 단일 게임사 게임쇼로는 가장 유명한 블리즈컨은 개최와 미개최를 반복하고 있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코로나19를 지나며 비대면의 익숙함을 경험했지만, 디지털게임은 특별히 비대면 콘텐츠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스탑이나 용산상가보다 온라인 유통망에서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익숙한 지금, 오프라인 게임쇼의 의미도 새로 생각해봐야 한다. 게임 CD와 CD-ROM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최근 필자는 CD는 커녕 USB 저장장치를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이 대학생이 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아무튼, 이미 많은 업계인들이 <헤일로> 신작을 공개하면서 팔에 <헤일로> 문신을 보여주는 것보다 게임스컴 오프닝 라이브나 더 게임 어워드에 쇼케이스 자리를 구매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외신 에스콰이어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제프 케일리가 주최하는 각종 쇼케이스에 광고를 내려면 1분에 25만 달러, 약 3억 4,0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기자가 그간 만난 많은 업계인들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는 것보다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이 저렴하다고 토로했다.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플레이 가능한 게임빌드가 있어야 하고, 그게 없다고 하더라도 손님들을 만족시킬 적당한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며, 코스프레 업체와 안내요원에게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는 한편, 행사 주최측에게 부스 공간을 대여해야 한다. 철도로 운송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항공편으로 물자와 인력을 대야 하는 경우라면, 그 비용이 대단히 올라간다. 즉,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은 게임쇼 직접 출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게임 업계가 감축 국면으로 접어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기자가 아는 모 게임사는 코로나19 이전까지 고용하고 있던 행사 관련 전담 인력을 대부분 내보냈다.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MS의 옛 게임사업부 대표를 맡은 피터 무어는 <헤일로 2>의 출시일을 문신으로 새겨 현장에서 공개했다. 현장 분위기는 열광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신작 발표의 플랫폼이 옮겨 가면서 이런 충격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듯한 인상이다. 한껏 기대를 받은 상황에서 출시된 <헤일로 2>는 대박이 났다. (출처: E3)



그럼에도 살아남은 게임쇼는 역대 최다 관중 갱신


그래서 오프라인 게임쇼에는 파리만 날리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각 게임쇼는 역대 최다 인원을 모객하고 있다. 지난 게임스컴과 올해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지고 그 자리를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이 채우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라인메쎄 사무국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게임스컴의 방문객 수는 총 120개국 출신의 33만 5,000여 명으로 역대 최고 관람객 수를 기록했다. 도쿄게임쇼의 방문객도 274,739명이 방문해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차이나조이도 338,000명의 집계를 올리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누군가에게는 무용한 논의일 수 있겠으나,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장에 찾아서 돈과 시간을 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서 그 해 행사를 점검하는 한편, 다음 해에 대한 예측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게임쇼의 조직위원회가 꼬박꼬박 방문객 수를 집계하고 발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반대로 특정 게임쇼가 관람객 발표를 주저한다면, 이는 내년도 행사에 적신호가 될지도 모른다.


E3가 사라진 가운데 주요 게임쇼들이 역대 최다 관람객 수치를 매년 갱신하면서 한때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오프라인 게임쇼에 대한 심리가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엔 일상을 찾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하다. 오프라인 게임쇼는 여전히 폭발력 있는 마케팅 창구이고, 방문객으로 하여금 대체 불가능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그중 백미는 단연 미발매 게임을 먼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졌음에도 크래프톤이 <인조이>, 펄어비스가 <붉은사막>을 선보이며 전 세계 게이머를 사로잡았다. 소위 ‘국뽕’ 요소를 제하더라도 두 게임에 대한 열기는 <몬스터 헌터 와일즈>나 MS 게임패스 부스 못지 않게 뜨거웠다. 관람객들은 캠핑 의자를 끌고 와 5시간에서 6시간을 앉아 두 게임의 시연을 기다렸다. 지난해에도 게임사이언스의 <검은 신화: 오공>을 즐기려는 장사진이 들어섰다. “대기시간 수백 분”은 “사전예약자 몇만 명”보다 센 파급력을 지닌 듯하다. 사전예약은 버튼 터치로 가능하지만, 대기시간은 순전히 그 앞에서 기다려야 하지 않은가? 일반 관람객을 위한 ‘매직패스’ 부류의 탑승 예약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 지난 게임스컴에서 수백 분의 대기시간을 기록한 크래프톤의 <인조이>. (필자 촬영)

 

챔피언의 사정, 컨텐더의 사정


그러나 단일 기업이 충분한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을 때에는 굳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듯하다.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가 그렇고, 닌텐도의 ‘닌텐도 다이렉트’가 그러하며 블리자드의 ‘블리즈컨’이 그러하다.(혹자는 이 문장을 과거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단일 게임쇼가 열리는 기간에 맞추어 자사 게임쇼를 열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에는 EA가 E3를 앞두고 EA PLAY라는 이름의 자체 게임쇼를 열어 관객을 맞이했다. 앞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주목도가 높은 게임사들은 자사의 마케팅 전략과 비용, 국가 내의 입지 등의 따라서 부스 출전을 결정할 것이다. 도쿄게임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닌텐도 부스를 한국의 플레이엑스포에서 찾을 수 있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라는 개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소니는 올해도 차이나조이에서 대형 부스를 냈지만, 굳이 독일 게임스컴까지 출전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면에 단일 회사와 IP의 지명도가 개별 게임쇼보다 부족하다면 그 기업은 여건이 되는 한 적극적으로 출전을 고려할 것이다. 당장 크래프톤과 펄어비스는 <인조이>와 <붉은사막>을 알리기 위해 수천 km를 날아갔고, 좋은 성과를 얻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는 모두 상장사인데) 다가오는 실적 발표에서 이들 기업이 출전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여러 비용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물가 인상 기조가 끝나지 않는 이상, 오프라인 게임쇼 출전을 위한 비용도 올라갈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 게임사들은 자사가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의 규모를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차이나조이에 참가했던 소니는 게임스컴을 결석하고, 안방의 도쿄게임쇼에 다시 참가했다. 사진은 2024년 차이나조이에서 촬영한 소니 부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PS5는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오공>이 출시됐기 때문. (필자 촬영)
 

 

몰맥락적 ‘쇼걸’ 대신 코스프레, 그리고 굿즈의 향연

 

게임업계의 올드비들은 게임쇼에서 ‘쇼걸’이 도열해 현장을 찾은 손님의 팔짱을 끼면서 부스 방문을 영업했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꺼내곤 한다. 이제 그런 모습은 전과 달리 많이 사라졌다. 지금도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몇몇 곳은 ‘쇼걸’을 적극적으로 배치해 모객에 나서지만 이제는 대부분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가 됐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코스프레 모델로 보인다. 자사 IP와는 아무런 쇼걸보다는 맥락이 있는 전시로 평가되기 때문에 빠르게 쇼걸의 자리를 대체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게임이 아닌 코스프레가 행사의 중심이 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행사장에는 매년 눈에 띄게 코스프레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매년 찾는 지스타에서도 코스프레 참가자가 늘어나는 것이 꾸준히 관측된다. 이런 개인 참가자 중 몇몇은 게임사에서 준비한 코스프레 모델을 뛰어넘는 수준의 분장을 보여주며 보는 사람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전 세계 어느 게임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포스트모템과 강연 중심의 GDC에서도 코스어를 여럿 목격했다.


이렇듯 게임쇼에서 코스프레는 이미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지도 오래다. 한국의 플레이엑스포는 코스프레 참가자를 위한 탈의실과 코스프레 가이드까지 안내하는 등 코스프레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자도 누가 ‘택일하라’고 한다면 코스프레 중심의 게임쇼보다는 시연 중심의 게임쇼를 선호하는 쪽이지만, 그것은 개인의 호불호 영역에 불과할 뿐, 둘은 앞으로도 완전히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시아권 게임쇼를 중심으로 코스프레 모델에게 과도한 촬영을 시도하는 몇몇 사진가들이 있어 유의가 필요할 듯하다.


여담이지만, 지난 게임스컴에서 필자는 한 업계 관계자로부터 ‘굿즈 배포의 관행’에 대한 사견을 들은 바 있다. 언젠가부터 게임 캐릭터나 게임사 로고 등으로 장식된 대형 비닐 백에 게임사에서 나눠주는 마우스패드, 휴대용 선풍기 등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게임쇼에서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굿즈 살포가 근래 트렌드가 된 ESG 경영에 맞춘 행보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은 언제나 작은 성의에 감동하기 때문에 굿즈 배포의 문화를 단박에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행사장 한편에 무더기로 버려지는 종이부채 쓰레기를 보면, 다른 방식의 ‘작은 성의’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지스타 사진 중 기사에 쓰기 적합한 사진을 골랐다. 사진기사 본문에는 "부스에 미모의 여성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라고 쓰여있다. (출처: 디스이즈게임)


오프라인 게임쇼의 미래는?

 

정리하자면, 게임업계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을 빠르게 학습했으며 지금도 비대면 행사와 마케팅이 자주 펼쳐지고 있다. 축소 국면에서 트레일러 마케팅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이고 있고, 이 기조는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제프 케일리의 아성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게임쇼의 현장감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각 기업의 영업활동이 허락하는 한 오프라인 게임쇼는 계속될 것이다. 사라진 E3의 빈자리는 게임스컴 등 타 게임쇼들이 성공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본문에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같은 예술 행사에서도 게임은 당당히 현장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소니와 닌텐도 같은 빅 플레이어들이 게임쇼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호사가들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은 근래 바둑을 두듯 빈자리를 파고 들어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크래프톤과 펄어비스가 대표적이다. 지금으로서는 근거 없는 기자의 망상이지만, ‘퍼스트 펭귄’을 주시하는 업계의 특성상 이러한 시도는 당장 내년도부터 다른 한국 게임사들에 확대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몇 시간씩 게임 시연에 줄을 서기도 하고, 자기 카드 덱을 들고 듀얼을 펼칠 수도 있고, 꼬리 달린 털옷을 입고 나와서 현장의 분위기를 돋울 수 있다.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언제나 얼마나 많은 관람객을 모았는지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주최사와 게임업계에게 긍정적인 신호이고, 그들은 그 신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이경혁.jpg

(기자)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이경혁.jp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