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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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8. 10.
PC ESD플랫폼 ‘스팀’에는 늘상 좀비물이 넘쳐흐른다. AAA급 타이틀은 말할 것도 없고, 저예산의 소규모 게임들로 가면 온통 좀비 천국이다. 좀비의 인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호러 장르라면 좀비는 더욱 본격적이긴 하다.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게임 속 좀비의 등장과 변화
단순하게 좀비라는 개념을 처음 게임 안에 가져다 놓은 게임을 꼽으라면 1984년의 <좀비 좀비Zombie Zombie>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의 경우는 좀비 게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특성만을 보여주었다. 좀비 영화가 나름의 흥행을 이어가던 시절, 이 게임은 그저 영상물로서 갖는 좀비의 인기를 비디오게임으로 가져오는 정도에 머물렀다. 고층 빌딩 위에서 좀비라고 불리는 적들을 밀어 낙사시키는 방식의 간단한 규칙 안에서 적 캐릭터들의 행동은 굳이 좀비가 아니어도 무방할 패턴이었기에 본격적인 좀비 게임의 시작이라고 <좀비 좀비>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 <좀비 좀비>는 좀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게임규칙 면에서 좀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블 데드Evil Dead>(1984)나 <고스트 앤 고블린(일명 ‘마계촌’) Ghost N Goblins>(1985) 등의 게임부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의 행동패턴이 게임 캐릭터 안에도 들어오는 흐름을 볼 수 있다. 다소 느릿한 움직임과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패턴을 통해 적 유닛으로서의 행동에 좀비 특유의 방식들이 녹아들기 시작하지만, 여기서도 언데드라고 불리는 그룹과 엄밀하게 구분해 좀비라고 부를 수 있는 만한 유니크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 <이블 데드>와 <마계촌>부터는 언데드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좀비의 행동적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좀비라는 개념이 게임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중적 게임을 꼽으라면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1996)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언데드와 구분되는, 명확한 좀비로서의 외형과 움직임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게임 안의 공간이 어느 정도 3차원 공간으로 잡히는 시기와 엇비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적으로서 좀비가 갖는 특성 중 하나인 느릿한 움직임이 3차원 공간에서의 공격방식인 ‘조준하고 쏘기Aim and shoot’에서 좀더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실감형 게임으로 직접 전자총을 들고 조준해 사격하는 방식인 <하우스 오브 데드House of Dead>(1997)이 주요 대상으로 좀비(혹은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것도 어느 정도 같은 영향력 하에 나타난 일로 보인다.
* 3차원 공간에서의 에임 앤 슛에서 좀비의 행동은 좀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느릿한 움직임’이라는 좀비의 특성은 고정된 것은 아니기에 함부로 속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의 게임들에 등장하는 좀비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군집으로서의 양상이다. <데이즈 곤Dayz Gone>(2019), <그들은 수백만They are billions>(2017)등은 결코 느리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의 좀비들을 투입하면서 대신 엄청난 숫자의 물량으로 밀려들어오는 좀비로부터 버터내야 하는 도전을 안기는 형태로 변화했다. 오늘날 좀비를 주적으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 나타나는 좀비의 특성은 그래서 단일하다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디지털게임과 좀비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좀비라는 대상은 적으로 자주 활용되었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좀비가 활용되는 것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디지털게임의 특수성이 도드라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워킹데드>같은 드라마들에서 좀비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외형과 유사해 더욱더 불쾌감과 공포감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이러한 적에게 공격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사회적으로 디지털게임은 폭력성에 관한 오해를 자주 받곤 하지만, 실제로 게임 안에서 강렬하고 적극적인 폭력행동을 수행하는 일은 게이머에겐 때론 버거운 윤리적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 적지 않다. 유명한 사례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의 ‘노 러시안’ 미션에서 많은 게이머들이 무고한 민간인에게 화력을 투사하라는 명령 앞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이것이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폭력의 사용이 매우 높은 심리적 장벽 앞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특히 액션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라면 좀비는 매우 그럴듯하게 윤리적 문제를 비껴나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좀비의 신체는 인간의 신체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명백하게 이는 인간이 아님을 드러낸다. 작은 머리와 직립보행하는 두 다리, 양 팔을 가진 좀비의 신체는 액션게임에서의 조준과 식별 과정에서라면 실루엣상으로는 인간을 향한 사격과 동일하지만, 인간을 닮은 이들 폴리곤 위에 덧씌워진 텍스처는 아주 강력하게 이들이 인간이 아님을 어필한다. 사격의 기술적 과정에서는 인간을 쏘는 것과 동일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좀비라는 존재는 막대한 화력을 투사할 때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앞서 이야기한 윤리적 장벽을 우회하며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좀비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들의 상당수가 중화기를 동원한 강한 화력을 선보이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의미다. 미니건이나 소형 전술핵과 같은 대량살상이 가능한 병기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이를 인간을 향해 쏘는 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좀비와 같은 대상이라면 보다 강력한 무기를 디자인하고 그 화력을 맛볼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근현대 화기가 갖는 위력이 만드는 강한 스펙터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좀비라는 타겟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게임만의 특징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좀비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콜 오브 듀티: 나치 좀비> 나 <스나이퍼 엘리트: 나치 좀비 아미>와 같은 나치와 좀비를 결합한 게임들이다. 나치와 좀비의 콜라보레이션은 매우 간단한 의도가 담겨 있다. 중화기로 화력을 들이부어라! 이들은 ‘죽어도 싼’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치와 좀비를 콜라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 속 좀비의 새로운 트렌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 속 좀비는 한 시기, 한 모습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며, 매 시기마다 그 시기에 가장 걸맞는 형태로 변화해 온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좀비는 윤리 문제를 넘어선 강한 화력의 투사대상이라는 관념 바깥으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식물 대 좀비Plants VS Zombies>에서 좀비는 전통적인, 위협적이지만 느릿한 존재이지만 공포보다는 코믹한 형태로 재구성된 대상이다. 코믹한 좀비는 혼자 사는 너드 아저씨 주인공의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오지만, 이를 막아내는 것은 감자, 해바라기, 콩 같은 앞마당의 채소들이다. 외부의 조력 없이 혼자 자신이 사는 집의 앞마당yard을 침공해오는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게임 속 플레이어의 활동은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물이지만, 이 때의 좀비는 공포가 제거된 대상이다.
* <식물 대 좀비>에서 좀비는 공포를 뺀 대상으로 나타난다.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에는 동충하초 같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좀비가 적으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섭고 위협적인 적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자주 이야기되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이야기가 <라스트 오브 어스> 세계관과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고, 이 속에서 좀비는 ‘차라리 사람보단 낫더라’라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폴아웃>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구울이라는 집단을 상정하는데, 방사능에 피폭되어 인간의 골격을 하고 있지만 외형은 좀비와 닮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명확하게 좀비라는 존재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좀비들과는 달리 지성을 갖고 집단을 이루며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존재이며, 플레이어의 동료나 아군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좀비라는, 한때 ‘절대로 인간이 아님’을 강변하며 존재하던 개념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묻던 그 장면들처럼, 최근의 적지 않은 게임들은 완벽한 상상 속 창작물인 좀비 또한 반드시 인간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분지어져야만 하는 대상인가를 역으로 묻는다. 어떤 면에서, 좀비에 대한 이야기는 포스트휴먼에 관한 최근의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