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03

GG Vol. 

21. 12. 10.

대충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 90년대 초였던 것 같지만, 정확히 몇 년도였는지 불확실한 옛날 기억이 있다. 나에게 ‘게임기’가 생겼다. 아마 어떤 잡지에서 경품에 당첨되어 받았던 것 같다. 시대를 감안하면 어떤 기종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짐작일 뿐이다. 기종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이렇게 흐릿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 게임기를 몇 번 만져보지 못했다. 롬팩도 게임 모음집 하나가 있었거나 아예 없어서 내장 롬의 미니게임뿐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사용권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지만,  새 롬팩을 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집의 TV에 그 게임기를 연결하는 행위 자체로도 눈길이 곱지 않았다. 게다가 단자가 무엇인지, 선은 왜 이리 많은지, 아무런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았던 내게는 연결 방법을 알려줄 어른이 필요했지만, 부모님은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내가 그 게임기를 돌려보려면 친구 집에 가야만 했고, 친구 부모님은 연결을 도와주긴 했으나 불편한 기색이었다. 할 만한 게임도 없는데 게임할 공간도 없으니 자연히 내 인생 최초의 게임 콘솔은 벽장과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8, 90년대에 성장한 게이머들은 아마 대부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4.5%인데, 사실상 명맥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비율이 1.4%다. 북미의 38.4%와 유럽의 37.5%, 남미의 19.1%는 물론이고 2022년 세계 시장 비율인 25.2%와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시장의 콘솔 게임 비율은 8.7%인데, 한국의 작은 콘솔 시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아시아에서 각각 25.7%과 54.1%로 다른 권역에 비해 차이가 극명하다.


*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 p. 668

그 이유는 8, 90년대의 미약한 시작에서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시장이, 단 한 번도 아케이드와 PC와 모바일에게서 헤게모니를 가져오는 모멘텀을 겪지 못한 채로 성장해왔다는 슬픈 스토리다. 그 슬픈 시절로 잠깐 가보자.


한국에서 처음 판매된 게임 콘솔은 오트론 텔레비전 스포츠다. 게임 내장형 콘솔로 미국의 ‘홈 퐁’과 똑같았으며, 최초 가격은 29500원, 이후 인하해서는 19800원이었다. 77년 기준으로 노동자 평균 월급이 69000원이던 시절이다. 시장 형성이나 대중화와는 거리가 먼 가격이었으니, 최초라는 점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가격으로 인해 가정용 퐁과 아타리의 시대에는 한국의 콘솔 게임이 자라나지 못했고, 닌텐도를 필두로 한 80년대가 왔다. 하지만 강력한 반일 정서가 지배하는 한국에 닌텐도가 수입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어불성설이었다. 때문에 80년대 초반에는 8비트 MSX를 플랫폼으로 하는 PC 게임이 이를 대체하듯이 수입되었다. 그나마도 고가품이었으니, 82년 기준으로 국내 도입 대수는 천 대가 채 안 되었다고 한다.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을 했고, 그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자연히 일본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고, 85년에 대우가 재믹스라는 자체 콘솔을 출시하면서 게임이라는 신문물에 대한 낯설음도 많이 반감되었다. 그래도 일본 기업이 현지 법인을 만들어 진출하는 것은 대중의 정서상 어려웠기에, 국내 기업이 별도의 이름으로 콘솔을 수입했다. 이제야 의미 있는 게임 콘솔이 등장하는 것이다.


삼성이 세가의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겜보이’라는 명칭으로 수입해 판매했고, 이게 히트를 거뒀다. 이에 현대는 닌텐도의 NES, 즉 북미판 패미컴을 수입해 ‘현대 컴보이’로 출시했다. 이로써 재믹스, 겜보이, 컴보이의 삼국지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 시장의 규모는 대중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크지는 못했다. 히트를 했고, 대중이 존재를 알 정도의 규모는 되었지만, 매니아 위주의 시장이 되었다. 각 콘솔의 가격만 봐도 그 결과가 자명하다.


* 대우 재믹스 광고, 가격이 7만 원이다.

* 삼성 겜보이 광고. 가격이 11만9천 원이다.

* 현대 컴보이 광고. 13만9천 원이 가격이다.


* 92년 하반기의 콘솔 게임 타이틀의 가격. 따라서 게임 콘솔에 더해 이 가격까지 감안해야만 콘솔 게임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나온다.

1990년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중등 교원과 대기업 사원의 초봉이 60만 원이 안 되던 시절이다. 이 시기부터는 빈부 격차가 벌어지면서 노동자 평균 월급을 기준으로 삼기가 좀 어려워지는데, 그나마도 150만 원이었다. 따라서 게임 콘솔은, 10년 전의 오트론과는 달리, ‘구매는 가능하지만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또한 게임 시장의 헤게모니는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아케이드에서 PC로 옮겨가고 있었다. 게임 콘솔의 경쟁자는 사실 PC였던 셈인데, 당시 싸게는 100만 원에서 비싸게는 2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던 PC가 20만 원 이하의 게임 콘솔과 경쟁한다는 것은 가격 경쟁력에 있어 상대가 안 될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PC에게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는 맥락이 있었고, ‘교육용’도 가능한 다용도라는 강점이 있었다. 이에 비하면 게임 기능 하나만 있는 콘솔은 상대적으로 싼 가격만큼이나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콘솔과 PC에는 가장 큰 차이, 공간적 차이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콘솔의 공간은 거실, PC의 공간은 방이다.


게임 콘솔은 TV와 연결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TV는 가족 공통의 미디어이니 거실에 있다. 거실 TV의 용도는 부모 세대가 결정하니, 당시의 자녀 세대가 콘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거실의 권력을 얻어내야만 했다. 또한 당시의 학생들은 야간 자율학습을 겪던 세대다. 따라서 거실에 존재할 시간 자체가 없는 경우도 꽤 많았으며, 설사 야자가 없더라도 퇴근한 부모를 상대로 거실 TV의 사용권을 협상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PC라면 공간이 방으로 바뀌면서 거실 권력에 대항할 필요가 없어진다. 야자를 끝내고 와서, 혹은 부모가 TV를 시청하고 있는 시간에,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된다. 당시 게임 소프트웨어의 복사 유통이 콘솔 롬팩의 복사보다 훨씬 손쉬웠다는 점도 PC 게임 확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케이드에서 게임을 하는 시대가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대로 바뀔 때의 서사에서, 북미나 유럽은 이와 달랐다. PC의 보급이 한국보다 빨랐으며, 따라서 PC에 대한 인식은 게임용보다 다용도에 가까웠다. 즉 PC는 이미 부모 세대의 것이었다. 자녀 세대들은 학원과 야자가 없으며, 부모 세대에게는 여가 생활 선택지에 PC가 추가된 구도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거실 권력의 일부를 내주는 여유가 가능하다. 게다가 콘솔의 보모 기능을 부모들이 깨닫게 된다. 동네 아이들 몇 명을 거실에 모아놓고 피자 한 판과 게임 콘솔을 쥐어줄 경우, 부모 세대는 시내로 영화를 보러 잠시 외출할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이다. 반면 한국의 부모에게 보모 역할은 조부모나 학부모나 야자가 해주었으니 게임까지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다만 유럽의 경우엔 북미보다 이런 경우가 덜했는데, 그 원인을 평균 거주 공간에서 찾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거면적이 월등히 넓은 북미의 경우엔, 거실에 콘솔을 구비해도 상관없는 주거면적이지만 유럽의 경우엔 고려를 한 번 거쳐야 하는 것이다. 특히 동유럽은 과거 공산권이어서 자본주의 진영의 상품인 게임 콘솔의 수입에 대한 문턱이 높기도 했고, 주거면적 또한 다른 유럽에 비해 좁은 편이어서인지 콘솔 점유율이 가장 낮다. 이 해석에서 유일한 예외는 영어가 모국어라서 미국 문화와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영국이다.


* 2014년의 자료이긴 하지만, 북미와 호주의 평균 거주 공간이 유럽(특히 동유럽인 러시아)보다 넓음을 알 수 있다. 

1990년 당시 한국의 가구당 평균 주거 면적은 이 그래프의 덴마크와 비슷한 62.94였지만, 상기한 문화적 이유로 인해 이 공간의 이점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북미와 서유럽은 게임의 헤게모니가 아케이드에서 콘솔을 거쳐 PC로 옮겨갔지만, 한국과 동유럽은 아케이드에서 곧장 PC로 이동했다고 서술할 수 있겠다. 해당 국가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이 갖는 위상을 고려해서 공간 위주로 서술을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북미와 서유럽의 경우엔 시내에서 거실로, 다시 거실에서 방으로. 한국과 동유럽의 경우엔 동네에서 방으로.


이 공간의 서사는 이제 모바일의 득세로 인해 ‘내 손’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해당 공간이 함축하는 맥락은 그 이상이다. 아케이드는 북미와 유럽처럼 시내의 번쩍번쩍한 게임 센터이건, 한국의 우중충한 동네 오락실이건,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공적 공간이니 자연히 커뮤니티의 성격 또한 갖게 된다. 고수의 플레이를 구경하고, 다른 동네의 고수와 대전하기 위해 그 동네 오락실을 갔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이를 ‘아케이드는 소셜 친화적 게임 공간이다’라고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공간이 거실이라는 사적 공간으로 바뀌면 소셜의 색채는 옅어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거실에서의 게이밍은 누군가가 구경할 수 있고, 그에 대해 대화할 수 있고, 함께 플레이할 수도 있다. 콘솔 게임은 1인 미디어이긴 하지만 오프라인 소셜 미디어로서도 활용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방으로 게임 공간이 바뀌자 소셜의 비중은 극도로 줄어들어버렸다. 방은 철저하게 사적 공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부모들이 TV를 볼 동안 자녀가 PC 게임을 하는 구도가 가능했다. PC라는 단어 자체가 Personal Computer의 약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온라인 게임의 등장 이전의 한국에서 게임은 1인 미디어의 이미지였다. ‘게임을 같이 한다’의 의미가 아케이드/콘솔에서 조이스틱/패드를 각각 하나씩 잡고 게임을 하는 의미였던 시절이었다. 이를 오프라인 안티소셜 + 온라인 소셜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PC 게임 자체의 안티소셜적 성격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콘솔 수준으로 희석되었다. PC방의 경우엔 방의 공간을 다시 아케이드로 되돌리는 흐름이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스타크래프트의 아케이드화가 굉장히 큰 역사적 방점이었다. 혹은 비록 친구들끼리 모여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갔던 모습은 오프라인 소셜이긴 하지만, 온라인으로도 이 모습은 가능하다. 즉 한국의 PC방 문화는 PC 게임의 오프라인 안티소셜 성격을 옅게 만들긴 했지만, 인프라의 확장으로 인해 온라인 소셜의 성격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현재 결과로는 보강의 의미 이상이 되지 못했다. MMORPG를 같이 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만날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그리하여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달라진다. 점유율 40%에 육박하는 북미와 유럽이라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헤일로를 하는, 게임의 오프라인 소셜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 살아 있다. 미국식 영어에서 비디오 게임을 지칭하는 속어 중 하나가 nintendo game인 것은 닌텐도의 역사적 영향력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콘솔의 소셜적 측면이 영어권 사회가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이미지에 녹아들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아케이드를 빠져나온 후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오프라인 소셜의 이미지는 없다시피 하다.


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 속 두 캐릭터가 토르와 구경이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게임 폐인이 된 토르가 등장하는데, 그는 친구들과 함께 거실에서 포트나이트를 플레이하고 있다. 반면 드라마 ‘구경이’의 주인공 구경이는 마찬가지로 게임 폐인이지만, 자기 집에서 MMORPG를 플레이한다. 그는 게임을 통해 길드원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게임 바깥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다. 토르의 거실과 포트나이트, 구경이의 집콕 MMORPG의 차이가 콘솔이 빠져있는 한국 게임의 특수성이다.


* 토르는 사회와 단절한 상태지만 그의 게임은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콘솔이 가진 옅은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이 남아있는 형태로 볼 수 있다.

* 구경이 또한 사회와 단절했지만 토르와 달리 그의 오프라인 공간에는 구경이 혼자만 존재한다. 온라인 소셜 위주인 PC게임의 사회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이미지, 게임 내부의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게이밍 경험의 차이가 이 역사적 맥락 혹은 경험의 차이에서 나오게 된다. 한국의 콘솔 게임이 극도로 적다는 의미는, 단순히 해당 플랫폼의 게임을 덜 만든다는 1차적 의미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소셜로도 활용이 가능한 게임을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한다는 의미다. 달리 표현하면 한국에서 만들거나 유통되는 게임은 온라인 소셜을 기본으로, 혹은 아예 온라인 소셜만을 상정하고 만들어진다는 귀결도 가능하다.


그리고 시대는 이제 2022년을 바라보고 있다. 게임의 헤게모니는 아케이드-콘솔-PC 순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인 모바일로의 이행이 진행 중이다. 모바일의 오프라인 공간은 ‘내 손’이니 매우 협소하며, PC 이상의 오프라인 안티소셜 성격을 보여준다. 이 이행 과정을 보면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은 계속 옅어지면서 온라인 소셜의 비중이 늘어나는 그래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시대의 무게추는 온라인 소셜로 완전히 옮겨가는 것일까?


몇 년 전의 기억이다. 내 예전 애인 한 명은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고를 깊게 플레이했다. 그는 더 많은 포켓몬을 포획하고 교환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비정기적으로 집 근처의 커뮤니티 사람들을 만나 함께 동네 여기저기로 몰려다녔다. 온라인 소셜이 오프라인 소셜로 바뀌는 지점이었다. 기존 온라인 게임의 ‘정모’와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모여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리의 모바일 아케이드나 모바일 PC방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고 보면 포켓몬고를 플레이하려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유명인과 그를 쫓아가는 팬들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닌텐도 스위치의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도 이 부분이었다. 거치형인 동시에 휴대형인 콘솔이므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두 플레이어가 서로의 콘솔을 연동해 동반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모바일이 사실은 오프라인 소셜의 측면을 숨기고 있음을 증명한다. 휴대가 가능하기에 오프라인 접촉이 용이한 최초의 플랫폼이 되는 역설이다. 오프라인으로 동반 플레이를 하기 위해 게임 콘솔이나 PC를 싸들고 친구 집에 가는 것에 비하면 경이적으로 편하다.


AR 게임의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때 모바일 게임의 소셜적 측면은 확고한 영역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콘솔 게임이 빠진 탓에 아케이드 이후로 사라졌던 한국 게임의 오프라인 소셜적 측면이 극적인 부활을 할 수 있을까? 포켓몬고가 오프라인에서도 작동하는 소셜 활동을 만들어낸 것 이상의 무엇이 생겨날 수 있을까? 답은 개발자의 상상력과 유저의 활용력에 달려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이경혁.jpg

(덕질인)

프리랜서 기자.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라고 확신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 커리어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애써 뺀 살이 다시 돌아온 것에 자신을 탓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돌고 도는 윤회의 쳇바퀴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경혁.jp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