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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세미나] 평행하다가도 뒤엉키는 게임과 현실의 시간: "Introduction to Game Time". In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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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12. 10.

게임에 열중하다가 시계를 봤을 때 몇 시간이 훌쩍 흘러가있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반대로 온라인 게임을 할 때면 많은 양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몬스터가 다시 리젠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우두커니 한 자리에 서있는 그 순간은 몇 초밖에 되지 않더라도 어느 때보다 지난하게 흘러간다. 시간은 어떤 플레이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체감되기 때문에 게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흘러가는 면이 있다.


온라인 게임이 보편화된 지금, 공통의 시간을 다시금 다르게 쪼개는 것은 네트워크 환경이다. 네트워크가 원활하지 않는 사람의 게임 세계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흘러간다. 시차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캐릭터가 갑자기 몇 보 순간이동을 하기도 하고, 팀 플레이에 지장을 주거나 대화를 할 때 갑자기 뒷북을 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이렇듯 현실 세계와 게임 세계의 시간이 서로 똑같이 흘러가지 않는데, 굉장히 흥미롭고 독특한 지점이다. 어떤 게임에서 두 세계의 시간은 평행하게 흘러가지만, 어떤 게임에서는 서로 뒤엉켜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과학과 철학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탐구의 대상이 되었듯 게임학에서도 시간을 본질적으로 개념화해볼 수 있지 않을까?


 

게임 시간에 대한 소개


오늘 소개할 글은 2000년대 초반에 쓰여진 “게임 시간에 대한 소개”(2004)로, 게임 시간의 개념화를 시도했던 초기 논의에 해당된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는 게임학이 막 학문의 한 분야로 정립되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그 당시는 게임이 소설 및 영화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질문하기 바빴던 때였고, 이 글의 저자인 예스퍼 율은 다른 문화와 다르게 게임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 무엇일까 고심했다. 하여 독자적인 이론 구축의 시도로서 게임의 시간성에 대해 논의를 더했다.


게임의 시간성이란 수치화되거나 구조화된 시간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경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포함한다. 특히 게임 저장라는 기능은 한 시점을 고정하로 계속 회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매체에서 관찰되지 않는 독특한 지점이기도 하다.


글의 전문은 예스퍼 율의 개인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http://www.jesperjuul.net/text/timetoplay/)

 


게임 시간성의 기본 개념: 플레이 시간, 이벤트 시간, 매핑


저자에 따르면, 게임에서 시간은 두 가지 주요 차원으로 작동한다. 첫째는 플레이 시간(play time)으로, 플레이어가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시간이다. 둘째는 이벤트 시간(event time)으로, 게임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서사적 또는 메커니즘적 시간이다. 게임 세계 안과 밖의 이 두 가지 시간. 이들의 관계는 게임 장르와 설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체스나 테트리스 같은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몰입하기보다 규칙에 따른 게임 상태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저자는 이러한 게임을 ‘추상적 게임’이라고 부르는데, 추상적 게임에서 시간은 플레이어가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 시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게임를 한 수 한 수 두는 지금 이 순간이 시간성인 것이다.


반면 퀘이크3이나 언리얼 토너먼트(오늘날 게임으로 따지면 배틀그라운드 또는 발로란트)와 같은 실시간 FPS에서 플레이어가 발사 버튼을 누르면 즉시 총이 발사된다. 현실과 게임의 시간은 동기화되어 있고 마치 평행 세계처럼 작동한다. 앞서 언급한 개념을 가져오면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이 서로 1:1 매칭되는 것이다.


심시티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또 다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현실 플레이에서 몇 분 남짓한 시간이 게임에서 1년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이런 게임에서 시간의 속도를 조정하는 버튼을 빠르게 돌리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를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이 각각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고 볼 수 있고, 아니면 다른 단위의 척도로 작동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 간 매칭되는 현상을 매핑(mapping)이라고 부른다. 액션 게임에서는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이 1:1로 매핑되어 실시간으로 동일하게 작동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도를 선택함으로써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 간의 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


매핑되는 시간은 단순히 기술적인 동기화에 그치지 않고, 게임의 설정에 따라 중세 시대나 근미래 등 다양한 시공간으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에서는 15세기를 배경으로 플레이어가 시간 속도를 가속해 이벤트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지금의 1분이 1400년대 배경의 10일이 될 수 있는 매핑의 개념은 게임의 경험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시간의 단절과 역행: 컷신, 레벨, 유물


게임에서 컷신이란, 이야기 설정을 설명하거나 미션을 제시하기 위해 중간에 재생되는 영상이다. 종종 미션을 완료했을 때 보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컷신이 재생되고 있을 때 플레이어는 작동을 멈추고 감상을 하게 되며, 그 사이에 서사는 진행되기 때문에 이벤트 시간은 흘러간다. 컷신은 플레이 시간에서 이벤트 시간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벤트 시간을 플레이어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며,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동안에도 서사를 전달함으로써 컷신은 게임 경험에 몰입감을 부여하면서도 플레이어에게 잠시 쉬어갈 틈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으며, 시간의 단절은 게임의 서사와 메커니즘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


컷신과 함께 게임이란 매체의 독특한 특성인 게임의 레벨 구조는, 게임에서 시간의 흐름을 재편성한다.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이 일치하더라도, 레벨 전환 시점이나 로딩 중에는 두 시간이 모두 멈추게 된다. 때에 따라 로딩 시점을 컷신으로 대체하여 시간이 멈추는 느낌을 미연에 방지하기도 하는데, 아케이드 게임 ‘펭고’는 레벨 사이의 전환을 컷신으로 매꾼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 레벨을 완료하면 펭귄들이 춤을 추며 축하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시간의 흐름을 끊기지 않도록 했다.


저자는 레벨 구조가 소설이나 영화 같은 전통적인 내러티브 구조에는 없는 불연속적인 구조라고 하머, 어떻게 보면 스포츠의 라운드 개념과도 비슷하기도 하면서, 또 다른, 독특한 매체적 특징인 점을 어필한다. 아무래도 2000년대 초반은 아직 게임학이 성립이 안되었던 때라서 이런 지점들이 계속 등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레벨은 게임 속에서 경험의 단위로 작용하며, 플레이어에게 새롭게 설정된 시간과 공간을 탐험하도록 독려한다.


그 외에도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특정 유물과 상호작용하기를 선택하여 시간을 이동하거나 과거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저자가 예로 드는 90년대 게임 <미스트>에서도 그랬듯, 최근의 게임 <오브라딘 호의 귀환>에서 플레이어는 타임머신 같은 장치를 사용해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방식은 과거라는 시간대를 플레이어가 직접 탐험하게 하면서, 시간의 흐름이 일차원적인 요소가 아니라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밖에도 저자가 언급하진 않았지만, 턴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의 경우, 플레이 시간이 지속적으로 흘러가지만 턴을 종료하기 전까지 게임의 이벤트 시간은 중단되기 때문에 플레이 타임과 이벤트 시간 간의 단절이 발생하는 또 하나의 장치로 볼 수 있다.


 

게임 저장: 시간을 조작하는 행위


게임 저장 기능은 플레이어가 특정 순간으로 돌아가 이전의 실패를 극복하거나 게임 진행을 반복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게임 경험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통제력을 부여한다. 플레이어는 이를 통해 플레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하거나 게임의 긴장감을 낮추고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 저자는 게임 저장을 게임의 시간성에 대한 중요한 설계 요소로 거론하면서, 이는 마치 ‘시간을 조작하는 행위’와 같다고 설명한다.


또한, 온라인 게임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게임 저장 기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버와 항시 소통하여 매 상태가 저장되는 케이스이고, 플레이어는 온라인 게임에서 저장된 것을 다시 로드하거나 하는 통제 가능성은 없다. 온라인 게임들은 시간을 되돌리는 옵션을 허용하지 않으며, 플레이어는 현재의 시간을 기반으로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대신, 게임 내에서 저장 가능한 것은 플레이어가 획득한 아이템뿐이다.


저자는 추가로, 저장을 반드시 시켜야만 하는 게임 디자인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면서 게임 디자이너 크리스 크로포드의 말을 인용한다. 크로포드는 정상적인 게임 디자인이라면 중간에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잘하든 못하든 끝까지 통과할 수 있어야 하며,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플레이 도중에 죽음을 강요하고 ‘재장전’을 반복하게 만드는 게임은 디자인적으로 미흡하다는 것이다.



경험으로서의 시간: 죽은 시간, 몰입된 시간


마지막으로 저자는 플레이어가 게임의 시간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경험하는지를 논의한다. 그는 ‘죽은 시간’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분석하며,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의미 없이 기다리거나 반복 작업에 시간을 들이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게임에서 시간이란 단순히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의 관계를 넘어서,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방식에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시간은 게임의 맥락에서는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플레이어에게는 종종 즐겁지 않은 경험으로 남는다.


몰입(flow)과 같은 심리학적 개념이 게임 시간 경험의 중요한 측면을 설명한다고 주장하지만, 게임 시간의 복잡성을 완전히 포착하지는 못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몰입 상태란 플레이어가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한 상태로, 몇 시간이 몇 분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말한다. 이 경험은 플레이어의 능력과 게임 난이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발생하는데, 너무 어려운 게임은 좌절과 불안을 유발하고, 너무 쉬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죽은 시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물론, 플로우 개념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더라도, 게임의 모든 시간 경험을 완벽히 정의할 수는 없다. 게임은 때로는 의도적으로 죽은 시간을 설계해 몰입을 조율하거나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결국, 시간은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가장 본질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며, 그 주관성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 시간 논의의 과거와 현재


문학에서 채트먼이 스토리 시간과 담화 시간을 나누며 서사구조를 설명했듯, 게임학이 한창 성립될 때 문학과 다른 논의를 펼치기 위해 저자 예스퍼 율은 이 글을 통해 게임 시간을 개념화했다. 게임의 시간성은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경험과 게임 설계의 메커니즘적 구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현실과 평행하게 흘러가는 시간도 있고, 게임 속 독특한 방식으로 왜곡되거나 단절되는 시간도 있다. 이벤트 시간과 플레이 시간의 매핑, 저장 기능과 시간 조작, 죽은 시간과 훌쩍 지나가버리는 몰입된 시간 경험은 모두 게임의 시간성이 얼마나 유연하고 다양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예를 들 수 있는 장르들이 많이 출현한 상태에서, 저장이란 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과거 시간으로 회귀를 보여주는 ‘로그라이크’ 장르나, 게임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 않고 항상 플레이되고 있는 모바일의 ‘방치형 게임’ 장르,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현실 시간과 똑같이 400일이 흘러야 게임이 진행되는 <The Longing>이나, 문학처럼 12분이라는 사건의 스토리 시간을 긴 시간으로 늘려 곱씹어보고 반복하는 게임 <Twelve Minutes>,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퍼즐을 푸는 게임 <Braid>의 내러티브 장치은 시간을 게임의 주된 메커니즘으로 활용한 사례로 논의를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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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화연구자)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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