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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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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4. 1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DEI는 Diversity, Equity, Inclusion의 약자로 다양성, 평등, 포용을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성소수자나 소수인종과 같은 비주류 계층에 대한 차별하지 않고 나아가서 배려를 해주는 모든 정책을 의미한다.


행정명령은 정부기관 내에서 이 DEI 정책들을 폐기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다양성과 관련한 직책은 모조리 없애고 인종이나 성적 지향이 고려되서 지급되던 보조금 등은 다 폐지한다. 정부기관 채용을 할 때나 수의계약을 맺을 때도 인종이나 성적지향에 대한 고려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 게임계에서도 DEI는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일부 게이머들은 게임 내용에 하등 상관없이 DEI적인 요소를 게임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곤 했다. 게임 내 주요 캐릭터가 성적소수자이거나 소수인종인 경우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반응도 나오곤 했다. 심지어 게임 주요 캐릭터가 미형이 아니면 ‘또 PC(정치적 올바름) 묻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게임계는 DEI 문제에 대한 첨예한 전쟁터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해리 포터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였다. 해리 포터 원작자인 J. K. 롤링이 트랜스젠더 혐오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내고 게임의 주요 제작진 중 한 명이 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가득찬 유튜브를 운영해온 것이 밝혀지자 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를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완성된 게임을 보면 주요 NPC는 트랜스젠더거나 동성애자가 많았고 학교 내 캐릭터들도 ‘적절하게’ 인종적 분배가 되있었다. 플레이어 커스터마이제이션에는 트랜스젠더도 있었다.


<어쌔신 크리드> 최신작을 끌고 들어오지 않더라도 대작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북미의 경우 게임계에서는 DEI의 위세가 강한 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주류 계층 모두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백인 남성 위주였던 미국의 게이밍 커뮤니티의 외연을 확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DEI였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부문 한 임원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방법’ 중 하나가 DEI 측면의 부각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DEI 정책 자체가 공격받자 게임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직장 내 변화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역시 직장 내에서의 변화다. 한 때는 DEI의 전도사처럼 나섰던 테크업계와 게임업계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블룸버그에 따르면 S&P 지수에 편입돼 있는 기업 100군데 중 DEI 프로그램을 축소한 것은 20%를 넘는다. 메타, 구글, 아마존도 DEI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게임업계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다. 엑스박스라는 플랫폼은 물론 액티비전블리자드킹의 모회사기도 한 마이크로소프트는 DEI 관련한 팀 자체를 폐지하기도 했다.


당연히 게임업계에서는 이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게임업계의 일터는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화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바 있어서 더욱 그렇다. 수유실이 없어서 회의실에서 수유를 하고 있는 여직원을 놀리려 남자 직원들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는 에피소드가 법정에서 명시된 블리자드의 케이스가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아직까지 현직의 이야기가 기사화 등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발자 커뮤니티 등에서 변화를 느꼈다는 목소리는 조금씩 나오고 있다.



커뮤니티의 변화


게이밍 커뮤니티에서는 그동안 DEI를 공격하는 움직임이나 비판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로는 강도가 한층 심해졌다는 인상이 크다. 이미 10여년 전 게이머게이트 사건으로 성차별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괴롭힘 논란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우려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에 가장 큰 사례는 스윗 베이비 INC 사건이었다. 스윗 베이비 INC는 캐나다에 있는 내러티브 컨설팅 회사다. 말 그대로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서 자문을 하는 것이다. 게임 내 이야기 구성과 대사 작성 등을 전문으로 한다. <앨런 웨이크 2>와 <갓오브워 라그나로크> 등에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해부터 게이밍 커뮤니티 일부에서 스윗 베이비가 게임에 강제로 다양성을 주입한다는 음모론이 확산됐다. <앨런 웨이크 2>에 등장하는 사가 앤더슨이 흑인 여성인 것은 스윗 베이비 때문이라는 루머가 퍼졌다. <앨런 웨이크 2>의 디렉터가 직접 이를 부인했으나 소용 없었고 스윗 베이비가 참여한 게임은 불매하자는 스팀 그룹이 만들어져 가입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DEI가 마치 게임업계 전체의 적처럼 공격받는 현상에 대해서 플랫폼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스팀은 스윗 베이비 안티 그룹에 대해서 활동을 제재하지 않았고 이 그룹을 움직이는 디스코드 서버 또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스윗 베이비의 CEO 킴 벨에어는 “우리는 게임 속 문제를 상상해 쓰는 작가들일 뿐, 실제 괴롭힘을 막는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플랫폼은 분명 더 나은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게임 내 변화


일터와 팬 커뮤니티 양 쪽에서 DEI가 거세게 공격받고 있기 때문에 이는 게임 내부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나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서 미국에서는 이제 성별은 단 두 개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피해는 커질 것이다. 게임에서 등장했던 트랜스젠더 캐릭터들은 이제 갈 곳을 잃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과장된 위협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해 공개돼서 파장을 일으켰던 ‘프로젝트 2025’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프로젝트 2025는 보수성향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공개한 문서로 향후 미국 보수정치의 전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문서에서는 공공연하게 젠더나 인종과 관련된 ‘평등정책’을 축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다. 헤리티지 재단 대표 케빈 로버츠는 이미 트랜스젠더의 권리 옹호를 포르노그래피로 규정하고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프로젝트 2025가 그대로 실행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을 같이 하는 ‘두 개의 성별’ 행정명령을 발표한 마당에 <사이버펑크 2077>과 <발더스 게이트 3>에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있다는 이유로 포르노로 취급될 수 있다는 예상은 웃어넘기기 힘들다. 여기에 플랫폼이 콘텐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플랫폼 책임 보호법도 폐지하자는 제안이 있어서 결국 게임사들의 자기검열은 더욱 심해지고 다양성과 관련한 콘텐츠는 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예측은 힘을 얻는 중이다. 



게임이라는 전장


게임은 이제 어린 세대만 즐기는 문화가 아니고 모든 세대가 즐긴다. 따라서 게임만큼 폭넓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체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이데올로기의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상업적인 이유로 혹은 문화적 트렌드로 지금까지 DEI가 힘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백래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최소한 트럼프의 정책적 추진력이 약화될 것으로 보이는 2026년 중간선거 전까지는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만드는 쪽과 게임을 즐기는 쪽은 어떤 선택을 할까에 대해서 고민은 커져만 갈 것으로 보인다.

Tags:

DEI, 트럼프, 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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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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