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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WOW>가 2023년에 보여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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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12. 10.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와우’)>로 원고를 써야 한다고 했을 때, 절대 고인물 플레이어처럼 예전 이야기를 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와우>의 9번째 확장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용군단(World of Warcraft: Dragonflight, 이하 ‘용군단’)>은 여러 면에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텍스트다. 우선, 오리지널 시절부터 위세를 떨쳤던 용군단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초자연적이었던 어둠땅을 뒤로 하고 아제로스로 돌아오게 한다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용군단이 한 때 자신들의 왕국이었던 유서 깊은 고향으로 돌아온 가운데, 호드와 얼라이언스 영웅들은 다시 부름을 받고 아제로스에서 신비한 용의 섬을 탐험하고 고대의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

     

  캠페인의 주요 캐릭터는 당연히 대부분 용족이다. 알렉스트라자, 노즈도르무, 래시온, 칼렉고스 등은 특히 초기 캠페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3번째 확장팩이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격변(World of Warcraft: Cataclysm)> 이후 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용군단>이 플레이어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이며, 모험의 주 무대가 어둡고 우울했던 어둠땅을 벗어나 아제로스 하이 판타지로 복귀했음을 의미한다.

     

  설정과 캐릭터가 친숙하다 해도, <용군단>이 <와우>의 20여 년 역사에 현대적인 인상을 더해줌에는 틀림이 없다. 그간 <와우>의 주된 이야기 줄기는 아제로스의 큰 두 대립진영인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전쟁으로 규정돼 왔다. 특히 전전 확장팩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World of Warcraft: Battle for Azeroth)>에서는 두 진영의 큰 전쟁으로 인해 아제로스가 황폐화될 뻔했다. 하지만 <용군단>은 두 진영 간 갈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용의 섬에서 벌어지는 모험은 얼라이언스와 호드 사이에 누가 섬을 개척하고 점령할지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아니라, 많은 세력과 NPC들의 공유, 그리고 두 진영의 협력과 공동 탐험에 가깝다. 이는 실제 게임 플레이에도 반영된다. 이제 각기 다른 진영에 있는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함께 모여 던전, 공격대 등을 즐길 수 있다. 대립과 경쟁에서, 협력과 탐험으로 게임 세계의 초점이 전환한 것이다.

     

  용의 섬에 봉인돼 있던 드랙티르 종족도 추가되었다. 판다렌처럼 얼라이언스와 호드 양 진영 모두에서 선택 가능한 중립 종족이고, 전용 직업인 기원사로만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다. 늑대인간처럼 용 형태와 인간 형태 모두를 가지며, 전투 중에는 비인간 형태로 고정된다. 기원사는 사슬 방어구를 착용하는 하이브리드 클래스로, 원거리 딜러와 힐러를 오간다. 죽음의 기사나 악마사냥꾼처럼 확장팩 구간 시작 직전인 58레벨에서 시작, 전용 퀘스트라인 진행을 통해 기본 기술을 배워나간다. 신규 직업 외에 종족별 직업도 추가되었다. 이제 모든 종족에서 도적, 마법사, 사제, 수도사, 흑마법사를 플레이할 수 있다.

     

  특성도 네 번째 확장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판다리아의 안개(World of Warcraft: Mists of Pandaria)> 이전으로 돌아갔다. 선택한 직업과 전문화에 대한 하나의 특성 트리 대신, 이제 각 전문화에는 두 개의 트리가 존재한다. 하나는 클래스 전체에 걸쳐 공유되며 방해, 이동강화, 생존과 같은 유용성에 중점을 두고, 다른 하나는 해당 전문화에만 해당하며 전투, 방어, 치유 스킬에 중점을 둔다. 특정 목적 달성을 고려할 경우 선택지가 좁았던 기존과 달리, <용군단>의 특성 트리는 비교적 폭넓은 선택지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그 특성은 전투할 때를 제외한 거의 모든 때 변경 및 조정이 가능하다. 재미있게도 각 특성 트리의 많은 능력은, 군단의 유물, 어둠땅의 성약의 단 능력과 같은 소스로부터 상당 부분 가져와졌다.

     

  UI(user interface) 개편도 특기할 만하다. <와우>의 진입장벽을 높여왔던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애드온(addon)이었다. 기존에는 UI 스크립트 기능이 있고 애드온을 통해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었을 뿐, 게임 내에서 기본적으로 UI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지는 않았다. <용군단>에서는 UI를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개체 상호작용 기능도 생겨 콘솔패드로 플레이하는 일부 플레이어들의 편의성을 높였다. 여전히 많은 플레이어들이 애드온을 사용하고 싶어 하고 또 사용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와우>를 플레이하는 데 있어 애드온이 필수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졌다.

     

  메인 스토리 퀘스트에의 참여를 권장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차기 확장팩을 앞둔 패치 전까지는 대장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4개 지역을 탐험하고 최대 레벨에 도달한 후에야, 영웅 던전, 월드 퀘스트 등과 같은 항목에 대한 참여가 가능하다. 물론 각 구역의 메인 스토리 퀘스트가 대부분 독립형이고 다른 퀘스트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사이드 퀘스트 역시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용군단>의 메인 콘텐츠들을 즐기는 데 있어 메인 스토리 퀘스트를 생략하기는 쉽지 않다. 그 퀘스트가 선형적이긴 해도 상당한 재미를 주는 것은 사실이나, 메인 스토리 퀘스트로의 참여 권장은 <와우>의 자유도가 높아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여전히 주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용군단>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콘텐츠 중 하나는 용 조련술이다. 만렙 전까지는 캐릭터를 강제로 지상에 묶어두었던 기존 확장팩에서와 달리, <용군단>에서는 초반부터 하늘을 날 수 있다. 용 조련술은 쾌감 넘치는 공중 이동방식으로, 캐릭터들은 용에 올라타 높은 하늘에서 급강하해 속도를 올리고, 다시 고삐를 당겨 쌓은 가속도로 활공을 즐길 수 있다. 반대로 오르막길을 비행하는 일이 어려워졌음은 물론이다. 물론 이 새로운 콘텐츠는 가상의 세계에 현실감을 더하는 요소이자, 진작 이뤄졌을 법한 요소이기도 하다. 날/탈것이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거리에 상관없이 똑같은 속도를 내는 기존의 설정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용 조련술은 이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정해진 거리를 이동하는 데 있어 동선만이 아니라 속도의 완급과 가속을 고려하게 만든다. 그 밖에도 플레이어들은 시간제한 도전이나 멀티 플레이어 경주를 통해 용 조련에 익숙해지고, 용의 섬 곳곳에서 비룡들의 형상 꾸미기 요소를 수집하거나 기술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용군단>의 레벨 상한인 70레벨을 향해 나아가면서 이루어진다. 용 조련술로 인해 비행은 더 이상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게임 플레이 요소가 된다.

     

  완전히 새로운 요소들을 몇몇 제시하고, 지난 것들 중 의미 있는 요소들을 그보다 더 많이 현대화함으로써 <용군단>은 <와우> 플레이어들이 그동안 좋아해 왔던 캐릭터, 몬스터, 그리고 게임 플레이 시스템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선다. <와우>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열성 플레이어들도 나이를 먹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의 유입보다 기존 플레이어의 여전한 참여가 <와우>를 유지시키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와우>가 기존 플레이어들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용군단>에서 발견되는 기존 아이디어의 적용과 변경, 새로운 아이디어의 추가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면서도 다음에 올 일을 포용하는 <와우>의 면모임에 다름 아니다. <용군단>은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을 통해 앞으로 갈 방향을 찾았다. 그 방향에서는 다음 확장팩 이후 쓸모가 없게 될 (이번 확장팩의) 새로운 시스템보다는, 애초에 <와우>가 내재하고 있던 시스템들을 개선하는 일이 더 중요한 듯하다. 여전히 <와우>가 진화 중이고, 다음 확장팩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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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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