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을 넘어서는 전통의 긍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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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2. 10.
잘 짜인 레벨 디자인. 플랫포밍의 역사라 부를 수 있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는 1985년 첫 작품이 등장한 이후에도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 시리즈는 40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시리즈는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플레이 양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달리고. 뛰고. 밟으면서 코스를 돌파한다는 핵심적인 요소다.
밟고 뛴다는 액션 측면은 유지하면서 부가적으로 붙는 아이디어는 시리즈의 첫 작품과는 다른 갈래에서 발전을 이룩했다. 2D 플랫포밍을 넘어서 3D 플랫포밍으로 전환된 것도 이제 엿말이다.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컨셉을 제시하고 넓은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수집품을 찾는 탐색형 타이틀까지 발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마리오 시리즈가 지속적인 변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무르는 작품도 나왔다. 시리즈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2D 플랫포밍. 우리가 2D 마리오 시리즈라 부르는 작품들이 그 예다. 첫 플레이가 익숙해지면서 플랫포밍의 난이도가 점차 오르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비슷한 메커닉을 채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2D 마리오 시리즈는 여타 3D 마리오나 탐색형과 다르게 변화하지 않는. 혹은 매너리즘이라는 굴레에 빠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컨셉은 다른 마리오 시리즈에서 진행하고 있기에 근본적으로는 뛰고 밟고 변신하는 것과 같이 변화할 수 없는 플레이가 자리했다. 늘 비슷하다는 혹평과 저조한 판매량. 그것이 11년 동안 후속작이 나오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파생작과 달리 11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 자리한 후속작. 2D 마리오 시리즈의 갈래에 있는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이하 슈퍼 마리오 원더)는 이제 익숙함을 넘어 매너리즘이 되어버린 플레이와 흐름을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다른 시리즈가 근본적인 메커닉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컨셉으로 변화를 추구하듯이, 효과적이고 쉼 없는 놀라움의 연속으로 본인들의 미래를 새로이 그리고자 했다.
슈퍼 마리오 원더는 마리오 시리즈이기에 항상 같은 선상에 있던 플레이 양상 ‘뛰고 / 밟고 / 변신한다’는 개념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간의 시리즈와는 다른 경험을 주기 위한 게임 디자인이 곁들여졌다. 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변화와 플레이 과정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변화를 통해서 슈퍼 마리오 원더는 놀라움이라는 큰 가치를 전하기 시작한다.
슈퍼 마리오 원더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단계적으로 진행되던 레벨 디자인을 벗어나는 데에 있다. 레벨 디자인의 교과서처럼 다가오는 형태. 즉, 첫 코스에서 굼바를 밟으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2D 마리오 시리즈가 꾸준하게 쌓아온 문법이기도 하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플레이를 배우고 엔딩에 도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론이기도 했다.
순차적으로 설계된 코스별 구조는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는 시도이자 결과물이었다. 게임을 진행하며 조금씩 난이도를 올려나가고 플레이어가 학습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였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명백한 단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2D 마리오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약점. ‘게임 플레이를 엔딩까지 진행한 사람이 적다는 점’으로 이어진다.
플레이 과정에서 선보인 것들을 모두 활용하게 만들고 있기에, 플레이어의 조작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조작 타이밍에서 한 번의 실수가 실패로 이어지기도 하며, 플레이어가 이를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적은 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마주하는 레벨 디자인도 오랜 시간 재생산되며, 익숙함의 영역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작과 도전 체계에서 나오는 어려움이라는 감정. 그리고 시리즈를 지속하며 이제는 익숙해진 레벨 디자인과 플레이 양상. 슈퍼 마리오 원더는 이러한 두 개의 개선점을 가장 중심에 두고 게임 플레이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시리즈의 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 요소를 개편하고 지금까지 없었던 것들을 덧붙이는 과정과 같았다.
우선, 슈퍼 마리오 원더는 이와 같은 시리즈 전통의 레벨 디자인을 벗어나,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어느 정도 자유로이 플레이할 수 있는 형태로 두고 있다. 하나의 메커닉을 선보이고 이를 체득시키는 과정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동시에 난이도를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두면서 몇 개의 층위로 도전적인 게임 플레이라는 측면을 잡아낸다.
대표적인 변화는 40년 가까이 유지되던 시간 제한을 삭제한다는 결정이다. 시간 제한이 사라지며 슈퍼 마리오 원더의 코스는 탐색을 할 수 있는 장소로 변모했다. 탐색을 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코스에서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장소들을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발진은 코스 여기저기에 숨겨둔 것들을 제공하는 한편, 다음 코스로 넘어가기 위한 ‘원더 시드’라는 수집품을 조건으로 배치해 뒀다.
이를 통해서 코스의 시작부터 끝까지 죽지 않고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원더 시드를 획득하는 것이 슈퍼 마리오 원더의 중요한 지점으로 자리한다. 샌드박스나 탐색형 마리오 시리즈의 그것과 같이, 플레이어가 평면적으로 구성된 환경을 자유로이 둘러보고 코스를 클리어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원더 시드를 찾는 것이 코스 클리어의 진정한 목적이 되고 시간 제한도 없어졌다는 것은 곧, 꼭 어려운 코스에 도전하지 않아도 진행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게임 내 상점 등에서 원더 시드를 구매할 수도 있으므로 쉬운 코스를 선택해 엔딩까지 도달하는 방법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개발진은 플레이어가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캐릭터에 능력을 부여하는 ‘배지’나 코스별 난이도 표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배지의 경우 플레이어가 난이도를 직접 조정할 수 있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 액션 측면에서 다른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조금 더 멀리 날아가는 등의 기능이다. 코스 자체의 어려움은 ★의 수로 표기되어 플레이어가 얼마나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지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해뒀다.
이를 통해서 슈퍼 마리오 원더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단계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전처럼 정해진 순서대로 클리어를 해야만 엔딩까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표기를 통해 쉬운 코스부터 어려운 코스까지 단계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다음 월드로 진행하는 것 또한 키 아이템인 ‘원더 시드’가 담당하므로 사람에 따라서는 일부 코스를 거치지 않고도 게임의 끝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슈퍼 마리오 원더는 도전적인 코스와 그렇지 않은 코스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이마저도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적과 접촉해도 사망하지 않는 요시나 톳텐 같은 캐릭터를 통해 한 단계 난이도를 낮추는 것도 가능해졌다.
온라인 가입자에게 제공되는 멀티 플레이는 끝까지 엔딩에 도달하는 데에 일조한다. 실시간으로 진행되지만 물리적인 간섭이 없는 ‘라이브 고스트’ 형태로 멀티 플레이를 설계하면서 플레이어들이 간접적으로 협력하고 부활 지점을 만들도록 했다. 마리오 메이커와 같이 경쟁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코스 완주에 도움을 주는 형태로 작동한다.
게임 내에서 다른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받거나. 의미가 없이 재활용되던 시간이나 점수를 탈피하고. 플레이어가 지표를 통해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을 보면, 거기서 나오는 결과물은 명확하다. 혁신적이거나 지금까지 없던 것이 아님에도 2D 마리오 시리즈 내에서는 큰 변화다. 큰 어려움 없이도 누구나 도전 가능한 플레이를 코스나 메커닉의 직접적인 변화 없이도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한편, 자꾸 사망해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면 보너스 스테이지와 같은 부가적인 요소를 자연스레 꺼내 간접적으로 돕는다.
궁극적으로는 구조적으로 치밀하게 설계되었던 게임 플레이 양상이 탐색형 마리오 시리즈의 문법을 곁들이면서 많은 변화를 거친 셈이다. 40여년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게임 구조가 조금 여유롭게 변화했다. 그리고 변화를 거치며 필연적으로 생기는 공간들은 새로운 기믹을 더하는 것으로 채운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변화이자 전면에 자리하는 요소인 ‘원더 플라워’의 존재다.
코스 진행 도중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원더 플라워’는 기능적으로는 명확한 즐거움을 준다. 이전 시리즈의 코스 구성을 보면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이전 시리즈에서 하나의 코스는 월드 컨셉의 아래에 있었다. 수중 코스나 성 안 코스와 같이 월드의 컨셉에 맞춰서 개별 코스가 디자인되며, 이와 어울리는 새로운 기믹과 플레이 방법이 제공되는 구조였다.
원더 플라워는 이렇게 월드 컨셉 아래에 있던 코스의 디자인을 극단적으로 뒤트는 일종의 ‘킥’이자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에 가깝다. 이전 시리즈의 경우, 월드의 컨셉을 따라가면서 코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약간의 제한이 되기도 했다. 치밀한 레벨 디자인으로 설계되어야 하기에 새로운 기믹을 넣거나 이질적인 요소를 넣기 어려워서다.
하지만 슈퍼 마리오 원더는 앞서 언급한 구조적 변화로 말미암아 월드 컨셉의 제한에서 보다 자유롭게 다뤄진다. 코스 중간에 만나게 되는 원더 플라워는 플레이어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점으로 인도한다. 때로는 퀴즈쇼를 하게 되기도 하며, 원래 코스에서 보지 못했을 다양한 색감의 플레이 등이 제공된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원더 플라워는 개발진이 구상한 독특한 발상의 총체다. 코스 자체를 뒤집어 엎어버리기도 하며, 발상의 근본적인 출발 지점이 기존 시리즈의 한계를 벗어난다. 심지어 사이드뷰에서 탑뷰로 시점을 바꾼다거나. 이전까지 진행한 코스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하는 등 온갖 상상력들이 여유 공간을 채운다.
결국 슈퍼 마리오 원더는 코스를 돌파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타이틀이 아니게 된다. 이전 시리즈가 초급-중급-상급으로 차근차근 레벨 디자인과 도전적인 즐거움을 주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기믹과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형태로 다뤄진다. 이를 통해서 비슷한 코스처럼 다가오다가도 순식간에 인상과 경험 자체가 달라지는 장면을 마주한다. 이전에 했던 경험의 확대 재생산이 아닌, 지속적으로 새로운 경험이 자리하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과 놀라움의 지속적인 공급은 원래의 마리오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요소를 발전시킨 것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시리즈를 내면서 익숙해졌기에 경험 자체가 흐릿해졌지만, 근본적으로는 토관을 거쳐서 새로운 장소가 나왔을 때. 혹은 블록을 두드렸을 때 나오는 즐거움이 슈퍼 마리오 시리즈가 전하는 핵심적인 경험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특별한 경험은 현재 시점에서 익숙한 것이 되었고 이제 놀라움을 전하지 못했다.
원더 플라워는 시리즈가 시간을 쌓아오며 도달했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정면에서 비튼다. 어떤 기믹과 상황이 나올 것인지 알 수 없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경험들이 꽃을 피운다. 코스마다 하나씩 마련된 원더 플라워는 시점이나 플레이 양상을 바꾸기도 하면서 코스 자체를 두 개의 맛으로 설계한다. 일반적인 점진적인 난이도 구성을 보여주는 코스는 물론이고, 놀라움이 가득한 원더 플라워 코스까지. 다채로운 경험이 자리하게 되는 모습이다.
정리하자면, 슈퍼 마리오 원더는 그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원더 플라워를 통해 비트는 한편, 코스의 전반적인 설계는 이전 시리즈의 것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자칫하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는 두 개의 요소를 한데 묶어서 뒤섞는다. 결과적으로 개발진이 시도한 접목은 놀라움이 된다. 이전 2D 마리오 시리즈에 없던 비주얼과 경험이 자리하는 한편,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반복 없이 모든 순간이 발견과 감탄의 연속으로 승화한다.
이제 2D 마리오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월드 중심의 설계는 없다. 대신 기믹과 이를 활용하는 디자인이 코스 전반을 관통하며, 여기서 새로운 기믹과 플레이 양상을 ‘원더 플라워’로 더한다. 이와 같은 방법론을 통해 슈퍼 마리오 원더는 시리즈 첫 작품이 전했던 놀라움에 가까워진다. 덩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그 때의 감정. 토관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을 때의 발견과 같은 것들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면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시리즈의 한계를 벗어난 슈퍼 마리오 원더는 새로운 자극을 연속적으로 주는 데에 가장 큰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모든 순간이 즐겁고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지켜야만 하는 플레이 양상과 치밀한 레벨 디자인을 어느 정도 덜어내더라도 놀라움을 택한 슈퍼 마리오 원더. 오랜 고민 끝에 매너리즘을 탈피하고 감탄과 발견이라는 고전적 가치를 재발견한 타이틀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