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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1989년에 상상한 미래형 컨트롤러, U-Force와 파워 글러브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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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4. 10.


* JOYDICK의 사진.

* 다양한 모양의 조이스틱들


“표준적” 컨트롤러?


조이스틱과 게이머의 남근선망을 연결 짓는 비평(Pozo, 2015)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어떨까. 2009년, “섹스와 테크놀로지”를 테마로 개최된 Arse Electronika 컨퍼런스에서 SF미디어 랩은 실험적인 게임 컨트롤러 하나를 선보였다. “조이딕(Joydick)”으로 명명된 이 게임 컨트롤러는 벨트로 부착시킨 원기둥 물체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당시 SF미디어랩의 공동대표였던 노아 와인스타인(Noa Weinstein)이 게시한 유튜브 영상에 의하면, 이러한 조이딕은 “사용자의 페니스를 네 개의 주요 방향 으로 화면의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는 조이스틱으로 변환시킨다.”1)


조이딕은 실제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기 보다는 당시의 게임문화에 대한 일종의 농담으로서 기획된 것이었다. "페니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조이딕을 본래 설계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조이딕은 아이러니한 방식을 통해 특정한 신체의 형태에 척도를 부과·이용하는 게임 컨트롤러의 속성을 조명한다.(Pozo, 2015). 


컨트롤러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보편적 형태의 컨트롤러가 특정 형태의 신체를 표준으로 상정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특정한 방식의 플레이스타일을 정석적인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을 비판한다 (Pozo, 2015; Boluk, LeMieux, 2017; Marcotte, 2018). 그렇다면, 표준에서 벗어난 형태의 컨트롤러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이 글에서는 1990년 초 게임 잡지에 실렸던 컨트롤러 기기들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1990년대 초까지의 비디오 게임 잡지에서는 다양한 모양, 질감, 그리고 기능을 가진 컨트롤러에 대한 광고와 리뷰가 범람하였다. 이를 통해 조이스틱과, 알록달록한 버튼, 그리고 고무 패킹과 같은 물성들이 당시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었음을, 그리고 이러한 인터페이스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게임 소프트웨어와 컨트롤러 사이의 위계가 지금만큼 공고하게 구축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적인 형식의 컨트롤러를 먼저 개발한 다음, 그러한 컨트롤러가 추구하는 기능에 호환되는 게임 소프트를 개발하는 방식이 지금에 비해 더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편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게임패드의 형식이 대체로 굳어지게 된다. 왼쪽에는 십자 모양의 방향키가, 오른쪽에는 네 개의 원형 버튼이 자리 잡고 있으며, 컨트롤러의 상단에는 검지로 누를 수 있는 L버튼(Left;왼쪽)과 R버튼(Right; 오른쪽)이 위치하는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의 게임 패드가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 컨트롤러 형식이 표준화되면서 그 모습도 서로 비슷해져 갔고, 이에 따라 90년대 중반부터는 게임 잡지에서 컨트롤러를 묘사하는 사진 이미지 경쟁도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게임이 더 이상 최신의 신기한 기술로 여겨지지 않게 되면서 게임 기기가 주는 물성에 매혹되기보다는 게임 자체의 스크린샷이나 공략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 U-Force와 파워 글러브의 광고 


U-Force와 파워 글러브(Power Glove)의 경쟁구도 


1989년에는 브로더번드(Broderbund)사의 U-Force와 마텔(Mattel)사의 파워글러브(Power Glove)가 출시되었다. U-Force는 노트북처럼 펴고 접을 수 있는 폴더 형태로, 수직으로 맞물리는 적외선 장을 통해 손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기기였다. 그리고 파워 글러브는 장갑처럼 손에 착용하는 형태로, 손을 움직이거나 손가락을 굽히는 방식으로 게임을 조작할 수 있었다.  두 기기 모두 기존의 컨트롤러와는 매우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신기한 최신 장난감의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하게 되었다. GamePro나, Electronig Gaming Monthly를 포함하여 다양한 게임 잡지들에서 둘을 비교하는 특집 기사를 다루었으며, 각 제품 개발의 책임자인 데이브 카퍼(Dave Capper)와 스캇 굿맨(Scott Goodman)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2)


* 파워글러브와 U-Force를 다루는 특집기사 

U-Force와 파워글러브는 현실의 상호작용과 더 유사한 방식의 “향상된 상호작용”을 통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U-Force는 특히 플레이어의 행동이 아무런 접촉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비접촉식 플레이에 기술적으로 보다 진보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했다. 당시에 실렸던 광고 카피를 보자. “그 어떤 것도 들고 있거나, 올라타거나, 착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U-Force는 당신의 커맨드에 반응하는 파워-장을 만들어 내며, 바로 당신을 컨트롤러로 만듭니다.”3) 


다시 말해, U-Force 광고는 사용자가 기기에 접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사용자의 행동이 조이스틱이나 버튼을 사용하여 변형되거나 매개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Electronic Gaming Monthly의 인터뷰에 실린 데이브 카퍼의 인터뷰도 이러한 의도를 뒷받침한다. 그는 ”플레이어를 특정 루틴에 가두어 게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신체적 접촉을 제거하여 게임 플레이 방식에 혁신을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파워글러브는, 게이머의 플레이 행위에 삼차원 공간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가령 GamePro 기사는 파워글러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플레이어의 손 동작은, 일종의 조이스틱이 되어 3차원 공간에서 손과 손가락의 위치를 감지하는 파워글러브의 센서를 통해 화면의 개체와 캐릭터의 동작을 지시합니다.”4) 


파워글러브 또한 (U-Force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의 동작이 컨트롤러를 거쳐서 입력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플레이어의 몸이 컨트롤러로 변환된다”는 수사를 사용한다. 스캇 굿맨은 인터뷰를 통해 ‘파워글러브 컨트롤러가 제공하는 움직임이 조이스틱이나 버튼의 그것보다 현실의 상호작용과 더욱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파워글러브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플레이에 추가된 3차원 특성이다. 실생활에서는 버튼을 누르거나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공을 감싸서 공을 잡기 때문이다.”5) 


그러나 당시 게임 잡지에 실렸던 많은 리뷰들에서 알 수 있듯이 카퍼와 굿맨이 주장했던 “향상된 상호 작용”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플레이어는 새로운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방법을 새롭게 습득해야 했으며, 이는 게임 플레이를 오히려 더 어렵고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Electronic Gaming Monthly의 리뷰 기사도 U-Force와 파워글러브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두 기기는 그들이 시도하려던 ‘향상된 상호작용’을 아주 간신히 성공시켰다. 비록 게임의 몰입도를 향상시켰기보다는 컨트롤러에 대한 개입만을 증가시킨 것이지만 말이다.”6)


* 1989년 12월, 텍사스 지역 신문인 New Braunfels Herald-Zeitung의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 섹션. 많은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파워 글러브를 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 것을 알 수 있다. 

* VR 기기로 소개된 파워 글러브 


비표준적인 컨트롤러의 가능성 


게임의 물리적인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의 움직임과 더욱 유사한 플레이 경험을 만들고 싶다는 U-Force와 파워글러브의 상상은 오늘날의 VR기술과도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두 컨트롤러 기기를 포함하여 표준적이지 않은 형태의 컨트롤러들은, 2000년대 이후 게임 잡지에서는 초기 형태의 VR 장치로 간주되기도 한다. 1990년대 초 이전 시기에 시도·구상되었던 많은 가상현실 기술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현대의 HMD 기기나 모션 캡처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초기 VR장치 중 일부는 상업적인 의미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VR 장치의 디자인이나 작동원리를 위한 길을 닦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Video Game & Computer Entertainment에 실린 기사에서, 저자들은 실험적인 인터페이스가 기존 컨트롤러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게이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7) 데이브 카퍼는, U-Force가 출시되기 이전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컨트롤러에 사용된 기술이 컴퓨터 및 의료 응용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8) 물론 이것은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미사여구일 뿐, 정말로 그런 목적으로 컨트롤러가 설계되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표준적이지 않은 컨트롤러와 대안적인 인터페이스는 기술의 미래를 상상해줄 뿐 아니라 게임에 참여하고 플레이하는 보다 다양한 방식에 영감을 줄 수 있다. 혹은, 기술 혁신과 이용자의 저변을 넓히는 대안적 상상력은 애초부터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1989년보다 무려 3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컨트롤러를 상상할 수 있을까?




1) Through the use of a carefully designed strap-on interface, the users penis is converted into a joystick capable of moving the character onscreen in all four cardinal directions“.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8JORtc2gAsY
2) Marshall Rosenthall. (1989). Dare to compare: U-Force vs. Power Glove. Electronic Gaming Monthly, 2, 46-48.
3) There's nothing to hold, nothing to jump on, nothing to wear. U-Force creates a power field that responds to your every command--making you the controller. 출처: Nintendo Power Flash Canada. (1989, Summer-Fall). U-Force advertisement. Issue 05.
4) The action of the player's hand, which becomes the joystick, dictates the action of objects and characters on the screen via sensors in the power glove that perceive hand and finger positions in three-dimensional space. 출처: Marshall Rosenthall. (1989). Dare to compare: U-Force vs. Power Glove. Electronic Gaming Monthly, 2, 46-48.
5) But what really makes this and all the Glove games so good is the three-dimensional quality added to play. You actually grab a ball in real life by wrapping your fingers around it - not by pressing a button or moving  a joystick. 출처: Marshall Rosenthall. (1989). Dare to compare: U-Force vs. Power Glove. Electronic Gaming Monthly, 2, 46-48.
6) Both units marginally succeed at what they're trying to do, although this 'enhanced interaction' is really added involvement with the controller units rather than an improved involvement with the games. 출처: Bill Kunkel & Joyce Worley. (1989, August). A question of control: A survey of joysticks & other devices for game players. Video Games & Computer Entertainment, 7, 42-45.
7) Bill Kunkel & Joyce Worley. (1989, August). A question of control: A survey of joysticks & other devices for game players. Video Games & Computer Entertainment, 7, 42-45.
8) Freiberger, P. (1989, January 12). Don't touch that joystick. The Kokomo Tribune, p. 22.


참고문헌-논문: 

Boluk, S., & LeMieux, P. (2017). About, Within, Around, Without: A Survey of Six Metagames. In P. Zagal & S. Deterding (Eds.), The Gameful World: Approaches, Issues, Applications (pp. 23-74). MIT Press. 
Marcotte, J. (2018). Queering control (lers) through reflective game design practices. Game Studies, 18(3), 1-16. 
Pozo, D. (2015). Countergaming’s porn parodies, hard-core and soft. In T. Apperley & D. J. O’Donoghue (Eds.), Rated M for Mature: Sex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pp. 133-146). Bloomsbury Publishing. 


참고문헌-신문기사 및 잡지:

Bill Kunkel & Joyce Worley. (1989, August). A question of control: A survey of joysticks & other devices for game players. Video Games & Computer Entertainment, 7, 42-45. 
Freiberger, P. (1989, January 12). Don't touch that joystick. The Kokomo Tribune, p. 22. 
Marshall Rosenthall. (1989). Dare to compare: U-Force vs. Power Glove. Electronic Gaming Monthly, 2, 46-48. 
PC Leisure. (1990, Winter). Virtual unreality. (Issue 4). 44-47. 
The Cutting Edge: Slip Your Hand Into Action / Nothing Comes Between You and the Game. (1989, May). GamePro, 1, 6-7. 
Nintendo Power Flash Canada. (1989, Summer-Fall). U-Force advertisement. Issue 05. 
GamePro. (1989, May). Power Glove advertisement. Issue 1. 
New Braunfels Herald-Zeitung, December 17, 1989, "Local second graders pen letters to Santa Cl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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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화연구자)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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