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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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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4. 10.

매체라는 말은 A와 B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스마트폰을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들이 각각 생각과 생각,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게임도 같은 의미에서 매체다.


그러나 이 매체라는 말은 조금 더 파볼 여지를 갖는다. 이를테면 텔레비전 매체는 물리적 매개체로서 텔레비전 수상기라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시청각 정보를 시청자에게 매개한다.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물리적 매체 안의 콘텐츠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 다시말해 디스플레이 기기, 스피커,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 또한 매체로 불린다.


디지털게임에서 물리적 매체는 PC, 스마트폰, 콘솔게임기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만 다른 매체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물리적 매체 영역 하나를 게임은 더 가지고 있는데, 바로 입력 인터페이스다.



물리적 피드백을 제공했던 게임 인터페이스들


조이스틱과 패드, 키보드와 마우스, ‘펌프 잇 업’의 발판에 이르기까지 디지털게임에는 사용자와 게임소프트웨어 사이를 연결하는 입력장치로서의 인터페이스가 중요한 매체로 자리한다. 게임 소프트웨어가 제시하는 규칙의 세계는 사용자가 규칙에 조응함으로써 완성되며, 때문에 디지털게임에는 사용자의 의도를 기호화하여 소프트웨어에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플레이어가 자신의 의도를 소프트웨어에 되먹이는 과정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감각으로 받아들인 소프트웨어의 신호는 뇌에 이르러 체계화된 상으로 구성되고, 이를 토대로 플레이어는 상황을 추론하여 해법에 맞는 의도를 다시 쏘아보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성이나 몸짓 같은 경우도 인터페이스로 기능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경우 이 과정을 매개하는 방식은 손과 같은 기관을 이용해 특정한 버튼을 눌러 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버튼을 누른다는 말로 대표되는 게임 인터페이스의 활용에는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가 단순히 시청각매체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닌 특정한 상황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촉각이다. 스틱과 패드, 키보드와 마우스와 같은 일반적인 게임 인터페이스들은 대체로 특정한 버튼을 누르거나 스틱을 일정한 방향으로 밀고 당기는 동작을 요구하는데, 이 때 스틱과 버튼, 키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입력이 제대로 들어갔음을 알리는 특정한 촉각적 신호를 보내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오락실부터 유구하게 이어지는, 플레이어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아! 눌렀는데!’는 이 촉각의 피드백과 게임 소프트웨어의 피드백이 보여주는 불일치(이기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변명이기도 한)의 순간을 보여준다. 내 손에 들어온 감각으로는 제 때 스틱을 당기고 버튼을 눌렀지만, 소프트웨어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는 판정을 결과로 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순간에 손가락이 미끄러져 버튼을 제 타이밍에 누르지 못했거나 하는 순간 소프트웨어가 결과값을 출력하기 전에 이미 촉각 신호로부터 ‘아, 망했구나!’를 먼저 체감하기도 한다. 


비단 버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스틱은 움직임의 제한값 – 다시말해 얼마나 오른쪽 방향으로 밀어낼 수 있는지의 한계를 스틱을 움직이다가 최대값의 벽에 부딪혔다는 촉각의 신호로 판단한다. 격투 게임에서 스틱이나 패드를 이용해 연속적으로 방향 커맨드를 입력해야 할 때 우리는 경우에 따라 스틱을 돌리는 모션을 취하곤 하는데, 이를테면 ←↙↓↘→같은 커맨드를 연속으로 입력할 때 우리는 반시계 방향으로 스틱을 끝까지 밀어 돌리게 된다. 이 때 그려지는 스틱의 움직임은 스틱의 가동범위 안에서 촉각을 통해 호의 모양으로 인지된다.



현실의 물리적 피드백이 사라지는 시대


소프트웨어와 상호작용해야 하는 디지털게임의 인터페이스는 그렇게 오랫동안 물리적이고 촉각적인 방식에서 비롯되는 또다른 피드백과 함께 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독특하게도 이런 피드백이 사라진 새로운 게임 인터페이스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바로 터치스크린이다.


모바일 기기들의 보편화되면서 모바일 기반의 게임들이 크게 대중화되었고, 그와 함께 터치스크린은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단지 인터페이스의 중심이 바뀌었다는 말만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앞서 언급한, 촉각을 통한 피드백이 과거의 인터페이스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매끈한 유리 평면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어의 입력은 더 이상 촉각적인 피드백과 함께 하지 못한다. 이른바 가상패드라고 불리는, 터치스크린 안에서 표현하는 별도의 입력방식을 통해 우리는 손가락으로 마치 스틱을 미는 듯한 움직임을 입력하지만, 이 때 손가락은 과거 스틱과는 달리 한없이 미끄러져나간다. 특정한 버튼을 누르면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입력에 반응하지만, 과거와 같이 게임 소프트웨어 바깥에서 주어지는 ‘눌렸음’의 촉각적 신호는 사라진다. 햅틱과 같은 기술을 통해 일정부분 보완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물리적 방식에 기반한 촉각 신호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일련의 가치판단으로 귀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은 특유의 감각에 걸맞는 게임 규칙들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궁수의 전설’이나 ‘탕탕특공대’처럼 오로지 스와이프 동작만으로 이동과 공격을 묶어버리되 고전적인 입력방식의 형식을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고, 아예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에 적합한 장르와 시점으로 넘어가버린 소셜네트워크게임류도 있다. 과거 스틱/패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대전격투게임과 같이 특정한 장르는 아무래도 소화하기 어려운 것이 터치스크린이겠지만, 이 또한 이후 장르가 어떻게 바뀔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숙련도가 머무는 곳은 어디였을까


촉각 피드백이 사라진다는 점을 조금 더 폭넓은 개념, 인터페이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인간-소프트웨어 사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형태가 보편화되고 이 과정에서 물리적 피드백이 점차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간혹 이야기되는 뇌파를 통한 게임 컨트롤을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속 캐릭터의 행동을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컨트롤할 수 있는 경우를 상정한다면 이 과정에서 또한 물리적 인터페이스가 제공하던 촉각적 피드백은 사라진다. 컴퓨터와 신경망을 직접 연결하는, 마치 ‘사이버펑크 2077’같은 세계에서의 게임이라면 아마도 인터페이스의 촉각 피드백은 무의미할 것이다. 오히려 이런 상상 속에서라면 디지털기기가 가상으로 만들어내는 햅틱과 같은 촉각 피드백은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를 활용할 때 나타나기보다는 차라리 마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촉각 수트를 입고 적의 공격을 유사하게 그려내는 것과 같은 방식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인터페이스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물리적 피드백은 점차 사라지고, 그 빈자리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피드백이 메꾼다. 촉각은 아니지만 VR 헤드셋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플레이어가 VR 헤드셋을 쓰고 시선을 돌리면 센서는 플레이어 머리의 동작을 읽어낸 뒤 시선이 돌아간 만큼의 시야를 렌더링하여 실시간으로 뿌려주는 피드백을 제공한다. 현실에서 플레이하지만 인터페이스의 물리적 피드백이 사라질수록 우리가 체감하는 감각은 더욱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온전한 가상의 세계에 강하게 귀속된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띤다. 첫 번째는 말그대로 디지털게임이 그려내고자 했던 가상세계가 보다 제작자의 의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게 변화한다는 점이다. 시청각 뿐 아니라 촉각까지도 의도한 바 대로 피드백해줄 수 있다는 것은 현재도 적용되고 있는 콘솔 게임의 게임패드들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듀얼센스가 제공하는 트리거의 장력 변화나 특정한 상황에 제공하는 햅틱 등은 결국 촉각을 동원해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정보를 보다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고자 함일 것이다.


두 번째는 잘 거론되지 않는 점인데, 이는 결국 플레이어 – 소프트웨어라는 길항구도 안에서 중립적인 영역이 사라져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던 이른바 ‘눌렀는데!’는 바로 그 물리적 피드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터페이스 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변명이 될 것이다. 물론 신경망을 연결한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접속노드가 이상한데?’, ‘핑이 별로네’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손에 직접 누른 타이밍에 들어오던 촉각적 피드백을 근거로 삼던 시절과는 달리 이 때의 항변은 오로지 소프트웨어가 제공한 결과값과 자신의 의도가 만드는 차이로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인터페이스가 갖는 물리적 한계는 한계로만 머무르기보다는 디지털게임의 발전과정 안에서 그 또한 극복, 혹은 마주해야 할 어떤 대상으로 자리하며 게임 플레이 안에 함께 녹아들어 온 바 있었다. 터치스크린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는 그 물리적 피드백의 공백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짝 체험하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게임들이 그 물리적 한계와 함께 어우러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신체가 유발하는 레이턴시를 넘어서는 완벽한 가상세계와의 합일을 꿈꾸게 하는 것도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이지만, 동시에 특유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부었던 인간의 노력과 그 성과들, 이른바 ‘피지컬’이라고 불렸던 일련의 숙련도가 만들어내던 재미의 영역은 그대로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영역에 눌려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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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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