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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세미나] 우리 삶 속의 게임: : No Time to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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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12. 10.

Text: Malkowski, J., & Russworm, T. M. (Eds.). (2017). "No Time To Dream: Killing Time, Casual Games, and Gender." Gaming Representa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Indiana University Press: 38-56

 

브랙스턴 소더만(Braxton Soderman)의 <No Time to Dream>은 젠더화된 게임 취향을 ‘시간’의 관점에서 규명한 글이다. 그에 따르면 흔히 게이머는 ’하드코어(hardcore)’와 ‘캐주얼(casual)’ 집단으로 구분되고, 이중 하드코어 게이머는 ‘백인 청소년 남성’, 캐주얼 게이머는 ‘중년의 여성’ 집단으로 표상되곤 한다. 즉, 백인 청소년 남성들이 곧 ‘하드코어 게임’을 즐기는 ‘하드코어 게이머’이며, ‘캐주얼 게임’을 플레이하는 ‘캐주얼 게이머’는 곧 중년 여성들이라 인식되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구통계학적 지표를 특정한 취향과 연관시키는 것은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지니는 본질적인 특성의 문제로 환원되곤 하지만, 소더만이 볼 때 캐주얼과 하드코어의 구분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시간의 문제이다.

 


하드코어와 캐주얼


먼저, 하드코어와 캐주얼의 구분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하드코어 게이머는 게임 문화에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집단을 가리킨다. 여기서 열성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자원 투여의 양과 직접 관련되는데,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상당한 수준의 돈을 쓰는 사람들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양(quantity)’은 다시 게임 플레이의 ‘질(quality)’과 연관되어 하드코어 게임이라는 특정한 게임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 하드코어 게임이라는 용어는 곧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야만 플레이 할 수 있는 특정 게임들을 의미하며, 주로 PC나 가정용 콘솔로 즐길 수 있는 1인칭 슈팅 게임, 격투게임, 고자본이 투여된 높은 난이도/그래픽의 게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Chess & Paul, 2019). 하드코어 게이머/하드코어 게임이 높은 자원 투여량을 특징으로 한다면, 반대로 ‘캐주얼 게이머’와 ‘캐주얼 게이밍’은 저비용에 쉬운 난이도로 특징지어진다. 캐주얼 게이머는 게임에 큰 자원을 투여하지 않는 사람들로, 이들이 플레이하는(플레이한다고 여겨지는) 캐주얼 게임은 게임 구성이 비교적 느슨하여 누구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매체로 특정지어 보자면, 하드코어 게임은 PC나 콘솔 게임으로, 캐주얼 게임은 대개 모바일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자원 투여를 기준으로 삼는 개념이니 만큼, 캐주얼과 하드코어 간의 구분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된다. 체스와 폴 (Chess & Paul, 2019)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게임 전문 잡지들로부터 ‘하드코어 게이머’와 ‘캐주얼 게이머’라는 분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분류는 젠더 및 연령 코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는데, 흔히 하드코어 게이머는 ‘젊은 (백인) 남성’으로, 캐주얼 게이머는 그 밖의 ‘중년의 여성’ 등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결과, 하드코어와 캐주얼 간의 구분은 게이머에 대한 대표성 담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진짜 게이머(real gamer)’는 하드코어 게이밍을 하는 ‘젊은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집단이며, 나머지 집단 (특히 캐주얼 집단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여성)은 언제라도 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취미로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젊은 (백인) 남성’에 맞추어 게임을 제작·유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 Open Ai의 이미지 생성 모델 '달리(Dall·E)'에 "하드코어 게이머(hardcore gamers)"를 입력값으로 넣은 결과이다. 하드코어 게이머에 대한 편향된 사회적 관념을 확인할 수 있다 (생성일: 2024. 11.13)
 

대표적으로, 2016년 SIEK(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 Korea)의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는 게임사가 누구를 ‘진짜 게이머’로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허락보다 용서가 빠르다”를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 광고 영상은 플레이스테이션4를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배우자에게 허락을 받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산 이후에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허락/용서를 구하는 주체로서 기혼 남성’과 ‘게임을 원하지 않는 이성 배우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부터 우리는 게임사가 (기혼) 남성을 ‘진짜 게이머’, (기혼) 여성을 ‘비 게이머 집단’으로 상정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2016년 12월 21일자 플레이스테이션4 광고 영상의 한 장면이다. 영상에서 플레이스테이션4 구입을 망설이던 한 기혼 남성은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라는 문구와 함께 쇼핑 카트에 기기를 한껏 담아 달려가는 남성 무리를 마주한다.

이렇게 젠더나 세대, 인종적 코드를 바탕으로 게이머 집단을 나누는 시도는 게임 계 내부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꾸준히 비판 받아왔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 ‘젊은 남성’이라는 집단이 게임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큰 축을 담당해왔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위 광고가 제작된 2016년 기준 전체 게임 이용률은 연령대에 따라 크게 벌어졌으며(10대, 20대, 30대 모두는 80%이상, 40대, 50대, 60~65세는 모두 50%대), 젠더에 따라서도 10%가량 차이 났다(남성: 75.0% /여성: 65.5%). 젠더 간의 차이는 ‘하드코어 게임’이라 일컫는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졌는데, 2016년 기준 PC용 패키지게임과 비디오콘솔게임 모두에서 남성 이용자 수는 여성 이용자 수의 두 배 이상이었다. 더불어 여성 게이머들의 경우 대부분이 모바일로(여성 게이머 92.1%가 모바일게임을 플레이) 퍼즐 게임을 즐긴다(그중 66.2%)고 나타났는데, 이와 같은 지표들은 젠더나 연령대에 따라 선호하는 게임이 다르다는 주장과 공명하고 있었다.

 


시간과 게임


다만, 위와 같은 구분이 발생하는 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게이머 집단을 구별 짓는 문제는 "남성은 어렵고 복잡한 게임을 선호하며, 여성은 쉽고 가벼운 게임을 선호한다"는 식의 선천적인 취향 차이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에서 집단 간 게임 플레이 양상이 달라지는 주된 원인은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시간'의 차이에 있다.


흔히 ‘캐주얼 게임 이용자’로 분류되는 가사 노동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들은 분절된 여가 시간을 보낸다. 가사 노동자는 일상과 노동이 뒤섞인 삶을 살며, 특정한 근무 시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침에는 다른 가족 구성원의 준비를 돕고, 가족들이 집을 떠난 후에는 그동안 쌓인 다양한 가사 업무를 처리하며, 다시 가족이 귀가할 준비를 한다. 이렇게 순환적인 일상 속에서 그들의 노동은 완전히 끝나는 일이 드물며, 삶 전체가 끊임없는 준비와 실행의 연속으로 채워진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가사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가는 필연적으로 제약을 받는다. 짧고 분절된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 그들은 즉시 업무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하기에, 오랜 시간 동안 몰입하거나 높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여가 활동에는 참여하기 어렵다. 따라서 가사 노동자들은 주로 언제든 쉽게 빠져들고 종료할 수 있는 가벼운 형태의 여가를 선호하며, 소위 캐주얼 게임이라 불리는 놀이는 여기에 정확히 부합한다.


캐주얼 게임을 특징짓는 모바일 기기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는 것으로 언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는 편리성을 제공한다. 또한, 그 안의 게임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완료할 수 있으며, 다시 접속했을 때 큰 부담 없이 이어서 즐길 수 있는 설계가 주를 이룬다. 이상의 특성은 분절된 여가 시간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집안)일 사이사이의 짧은 휴식 시간이나 이동 중의 틈새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각 게이머 집단이 지니는 젠더적 관념에 대한 다른 설명을 제공해 준다. 지금까지 하드코어와 캐주얼은 각각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왔지만, 여성의 게이밍이 캐주얼쪽으로 기운 이유는 지금까지 대다수의 여성들이 가사 노동을 수행하였고, 캐주얼 게임이 가사 노동자와 같이 분절된 시간 구조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여가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짧고 파편적인 여가 시간을 보내는 (여성) 가사 노동자들은 하드코어 게임과 같이 한 번에 오랜 시간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놀이를 꿈을 꿀 시간이 없었다(No Time to Dream). 즉, 노동이 젠더화되었기 때문에 놀이 역시 젠더화되어 보인 것이다.



우리 삶 속의 게임 


놀이는 순전히 개인 취향의 문제로 여겨지곤 하지만, 여가는 삶과 함께한다. 곧,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어떻게 노느냐를 결정한다. 그래서 동질적인 집단은 유사한 여가 활동을 하고, 삶의 방향이 바뀌면 향유하는 여가 역시 변화한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팬데믹 시기를 떠올려볼 수 있다. 당시 성별이나 연령을 불문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게임 플레이 시간이 대폭 증가하였는데, 이는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남녀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구분이 점차 흐려지고, 젠더에 따른 노동 시간이 재배치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하드코어 게임이 남성적이고 캐주얼 게임이 여성적이라는 것은 점차 낡은 관념이 되어가고 있다. 젠더에 따른 사회적 활동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질수록 성별에 따른 게이밍 양태 역시 변화하고 있는데, 2023년 게임 백서 기준 여성의 게임 이용률(44.5)은 남성의 이용률(55.5)과 거의 비슷하며, 특히 콘솔 게임 이용률의 경우 젠더 간의 격차가 상당히 줄어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연령대를 고려한다면 더욱 부각되는데, 노동과 젠더가 비교적 긴밀히 묶여 있는 30대부터 50대와 달리, 10대와 20대의 경우 젠더 간 게임 이용률은 거의 차이 나지 않는다. 이상의 지표는 어떤 게임을 즐기는지의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성별에 따른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환경과 시간적 제약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만 함께 고려해야하는 점은 게임 역시 이용자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이다. 게임은 사람들의 생활 양식에 맞추어 여가 활동으로 자리잡았지만, 이용자의 생활 양식을 다시 바꾸어놓기도 한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캐주얼 게임을 생각해 보자. 오늘날 캐주얼 게임은 누구나 짧은 시간에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 인식되고 있지만, 실상 그 플레이 양상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 <캔디크러쉬 사가>와 같은 게임은 간단한 규칙과 직관적인 조작법을 제공하면서도, 끊임없는 레벨 추가와 반복적인 도전을 유도하는 설계를 통해 사용자의 플레이 시간을 연장한다. 이를테면 하트가 다 떨어질 즈음 게임은 아이템이나 무제한 이용권 등을 지급해주는데, 이는 이용자로 하여금 더 오랜 시간을 게임에 보내도록 한다. 우리가 밤새 핸드폰을 부여 잡고 다음 레벨을 깨기 위해 밤을 새는 등 캐주얼하지 않은 캐주얼 게이머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게임을 플레이 하는 과정에서 이용자들은 자신의 생활 패턴을 바꾸기도 하는데, 목표를 달성하거나 레벨을 클리어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거나, 특정 시간에 제공되는 보상을 받기 위해 일정을 조정하기도 한다.


삶은 시간의 집합이다. 우리의 하루는 무수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순간들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을 띤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흘려 보내고,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을 채워가며 삶의 모양새를 빚어낸다. 그리고 게임은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이자, 우리의 삶과 밀착된 또 다른 세계다. 어떤 게임을 즐길지, 얼마나 깊이 몰입할지는 우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주한 선택지들과 긴밀히 얽혀 있는데, 또 어떤 게임을 선택하는지가 다음의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게임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여가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그것은 삶의 구조 안에서 시간을 채우는 동시에, 시간을 통해 삶의 또 다른 구조를 그려나가는 행위다. 게임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레벨을 깨고 점수를 쌓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마다 삶을 들여다보고, 다시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Chess, S., & Paul, C. A. (2019). The end of casual: Long live casual. Games and Culture, 14(2), 10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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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연구자)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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