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19

GG Vol. 

24. 8. 10.

들어가는 말: 공포에도 종류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1]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이는 게임(및 여타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준적인 점프 스케어(역주: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였다. 당시 이 장면으로 겁을 먹긴 했지만, 스펜서 저택의 복도를 돌아다닐 때 약간 불안해진 것 말고는 그 개들 또는 그 개들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지는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겁에 질렸던 두번째 - 그리고 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 기억은 <폴아웃3(Fallout 3)>[2]에서 였다. 게임 초반 플레이어는 캐피탈 웨이스트랜드를 돌아다니면서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약탈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어둡고 칙칙한 식료품점 수퍼-두퍼 마트(the Super-Duper Mart)를 발견하게 된다.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과 다른 점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며 이 곳에서 약탈자들이 나타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약탈자들의 모습은 가시적이기까지 한데, 한 때 식료품점이었던 이 황폐한 장소의 복도를 초록빛 형광등이 희미하게 비추면서 생기는 그림자로 인해 약탈자들의 실루엣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멀리서 희미하게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종류의 고기가 천장에 걸려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바로 시체고기인데, 인간 신체의 부속물들이 천장의 쇠사슬로 연결되어 늘어져 있는 이 모습은 플레이어도 만약 발각된다면 그렇게 될 운명임을 알려주는 지표다.


게임 초반에 이 장소에 도달했었기 때문에 자원이 별로 없어 이 상황에서 싸울 수 있는 힘이 부족한 상태였으나, <폴아웃3>의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웨이스트랜드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약탈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했다. 적들과 마주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는 동안 내 심장박동은 점점 빨라졌고, 예상치 못하게 모퉁이에서 발소리를 듣거나 약탈자를 발견하게 되면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수퍼-퍼 마트에서는 단 하나의 점프 스케어도 없었지만, <폴아웃3>의 이 시퀀스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정말 무서웠던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 <폴아웃 3>의 수퍼두퍼 마트와 레이더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내가 겪었던 이와 같은 두 종류의 공포 경험은, 두려움과 공포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으며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상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점프 스케어 및 깜짝 놀라게 되는 공포(sudden frights)와 일상적인 공포간 차이, 그리고 스토리텔링, 게임 메커닉, 환경, 분위기에 대한 특정한 접근 방식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기적 형태의 공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Sudden Frights 깜짝 놀래키기


깜짝 놀래키는 것, 즉 "점프스케어"는 많은 호러 게임에서 사용되어왔다. 우리는 호러 게임을 플레이할 때 긴장과 불안, 충격과 공포로 가득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기꺼이 겁에 질리는 것을 기대한다. 갑작스러운 공포(sudden frights)에는 특정한 즐거움이 있으며, 그래서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에서부터 호러 영화에 이르기까지 어떤 (놀래키는) 공포가 다가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는 늘 엔터테인먼트의 일부가 된다. 밤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아웃라스트(Outlast)>[3]와 <암네시아: 다크 디센트(Amnesia: The Dark Descent)>[4]의 게임 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플레이어들을 깜짝 놀래키면서 공포를 주는지를 알아보자. 스포일러 주의


<아웃라스트(Outlast)>는 1인칭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마운트 매시브 정신병원(Mount Massive Asylum)에서 수상쩍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가는 기자 마일즈 업셔(Miles Upshur)가 되어 게임을 플레이한다. 마일즈는 캠코더를 들고 정신병원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거기에 있던 모두가 a) 죽었거나, b) 임상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c) 임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살인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일즈는 “마틴 신부(Father Martin)”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 인물은 자칭 “월라이더(Walrider)”의 수행자로서 후에 정신병원 깊숙한 곳에 감금되어있던 어떤 환자가 조종하는 나노머신의 환영인 것으로 밝혀진다. <암네시아(Amnesia)> 또한 비슷한 1인칭 서바이벌 호러 게임인데, 다만 퍼즐적 요소가 좀 더 복잡하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어떤 성 안의 방에서 깨어나면서 시작하는데, 자신이 다니엘(Daniel)로 불린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게임은 성 깊숙한 곳에 있는 알렉산더(Alexander)라는 남자를 죽이라는 예전의 자신(다니엘)이 쓴 편지에 따라 진행되는데, 성 안에는 각 구역마다 끔찍하게 변형된 모습의 괴물들과 다니엘을 죽이려는 “섀도우”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 두 게임 및 유사한 유형의 호러 게임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두려움을 자아내기 위해 미지의 것(the unknown)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혹은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암네시아>에서 이는 다니엘이 자초한 기억상실증의 결과로서 발생한 말 그대로의 무지(알지 못함)의 형태로 나타나며, <아웃라스트>에서는 취재하는 기자로서의 마일즈라는 인물 설정에서 나타나는데,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생소한 장소를 별 다른 단서 없이 돌아다니는 두 명의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게임 내 환경 디자인에도 반영되어 있다. <암네시아>의 성과 <아웃라스트>의 정신병원에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을 무언가를 계속 추측하게 만드는 미로 같은 복도와 그림자 진 어두운 코너가 디자인되어 있다. 연구자 매즈 할(Mads Haahr)은 호러 게임에서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플레이어의 시각을 변형시키는 다양한 방식들을 분석한 바 있는데, 흐릿하게 만들기(그림자와 안개), 왜곡(플레이어의 시각을 워핑(warp)하는 것), 그리고 매개(<아웃라스트>의 캠코더처럼 2차 렌즈로 세상을 보도록 하는 것) 등은 두 게임 모두에서 발견된다[5]. 두 게임의 1인칭 시점 또한 플레이어의 가시 범주를 제한하는데, 이는 내 눈에 보이는 주변부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아웃라스트>에서 마일즈가 코너를 빠르게 살필 수 있는 "엿보기(peeking)" 메커닉은 플레이어가 자신을 발견한 적과 갑자기 맞닥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효과로서 공포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예측될 때 고조된다[6]. 이와 같은 시각의 변형과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데 이  모든 과정의 목적은 그 긴장을 깨뜨리는 것이 된다.


* <암네시아: 다크 디센트>의 복도.[7]

한편 청각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시야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무가 삐꺽거리고 바람이 부는 소리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바짝 긴장하도록 하는 한편, 특정한 소리는 어떤 적이나 위협이 근처에 있음을 알려준다. <암네시아>에서 몬스터들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는 그들이 다니엘 근처에 있음을 의미하며, <아웃라스트>에서 체인이 쩔그렁거리는 소리나 무거운 발자국 소리는 마일즈를 잡으러 특정 구역의 보스들이 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청각 신호들이 플레이어에게 지침을 주지만, 이 적들은 여전히 "들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8] 존재로서 플레이어에게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공포감을 더한다. 한동안 플레이어의 뒤를 쫓는 소리가 들리다가 마침내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점프 스케어 같은 느낌을 배가시킨다. 일반적인 환경음과 달리, 적에게 추격당할 때의 소리는  강렬한 음악과 함께 헐떡이는 숨소리로 빠르게 바뀐다. 플레이어가 적에게 발견되는 이 시나리오는 갑작스럽게 추격전이 벌어지면서 당연히 공포와 패닉을 유발시키지만, 플레이어는 이러한 추격전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주변을 부지런하게 살피고 청각 신호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플레이어의 뒤에서 적이 나타나면 점프 스케어는 크게 성공한다. 언제 어디서 위협이 발생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갖추고도 예측하지 못한 적의 등장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9].    


무력함은 깜짝 놀라는 공포(sudden frights)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다. 두 게임의 오프닝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달리거나 숨거나 혹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한 위협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옵션이 없는 것이다. 이는 권능에 대한 판타지를 제공해왔던 비디오게임의 전형에 대한 완전한 전복이다. 플레이어는 마법과 힘으로 무장한 용감한 전사가 아니라 단지 지옥같은 공간에서 도망치려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갑자기  나타난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방법이 없으며, 이는 완벽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이에 더해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장르를 정의할 수 있는 메커닉인 자원 관리(resource management) 또한 플레이어의 무력감을 배가시킨다. <암네시아>와 <아웃라스트>의 경우 자원은 플레이어의 구역을 좀 더 밝게 유지하는 것과 연관되는데, <암네시아>에서의 틴더박스나 기름, <아웃라스트>의 캠코더용 배터리가 이에 해당한다. <암네시아>에서는 어둠에 노출되면 죽을 때까지 정신이 쇠약해지고, <아웃라스트>에서는 캠코더의 나이트비전으로 어둠 속의 적들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나이트 비전이 없다면 정신병원 안을 돌아다니는 일이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다. 플레이어는 (모든 자원의 위치를 아는 것이 아닌 한) 대개 게임하는 내내 자원 부족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플레이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일부 구역은 적의 경로와 가까운 곳에 있어 플레이어는 종종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를 무서운 상황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자원을 확보하되 잡힐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그 구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안전을 도모할 것인지는 서바이벌 호러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플레이어들에게 던져지는 전략의 문제다.


* <아웃라스트>의 야간투시경 화면.[10]

깜짝 놀래키는 유형의 게임에서는 안전을 확보하는 것마저 불안할 수 있다. <레지던트 이블>의 경우 플레이어가 게임을 저장할 수 있는 세이프룸이 있지만, <암네시아>와 <아웃라스트>에는 그러한 메커닉이 없다. <아웃라스트>의 경우 마일즈가 게임의 목표에 맞춰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스토리 장면이나 컷신 - 열쇠를 찾은 것, 경비실로 가는 것 등 - 있다. 게임 초반에 플레이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이러한 컷신들이 긴장을 잠시 풀 수 있는 비디오게임의 "체크포인트"와 같은 것이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마일즈가 보안실에 도달하자마자 마틴 신부에게 붙잡혀 마취된 후 정신병원 깊숙한 곳에 갇히게 되는데, 이 부분은 게임 내 주요 점프 스케어 중 하나다. 무력함과 마찬가지로 '그리 안전하지 못한 체크포인트'는 전형적인 비디오게임의 흐름을 뒤집으면서 플레이어를 깜짝 놀래키는데 기여한다.


깜짝 놀래키는 공포와 관련하여 언급할 마지막 부분은 지금까지 논의한 두 게임을 넘어 게임 내 플레이어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에일리언(Alien)>[11]이나 <툼레이더(Tomb Raider)>[12]같은 게임에서 리플리(Ripley)나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는 (갑작스러워) 깜짝 놀래키는 방식으로 죽는다. 리플리가 제노모프(Xenomorph)에게 잡히는 장면이나 라라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건 속에서 손을 놓치는 장면 등은 플레이어를 깜짝 놀래키면서 그녀들이 죽거나 또는 어둠 속으로 추락할 것임을 예상하게 하는데, 이 모든 시퀀스에는 잔인한 유혈이 등장한다. 이러한 다양한 죽음의 시퀀스는 실패를 예감한 플레이어가 이번에는 어떤 끔찍한 방법으로 리플리나 라라를 죽게 한 것인지를 숨 죽인 채 온갖 애니메이션들을 봐야 함을 의미한다. 

갑작스럽게 놀래키는 유형의 공포는 두려움에 대한 기대감, 겁을 먹으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 잘 디자인 된 게임플레이 경험에 대한 보상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음의 점프 스케어를 기대하고 비명을 지르다가 웃어제끼면서 플레이를 이어간다. 갑작스러운 공포를 제공하는 호러 게임들이 초기 유튜버들의 커리어를 띄워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갑작스러운 공포/놀래킴은 즐겁고 기억에 남으며 다른 누군가가 겁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공포/놀래킴은 호러 게임 장르의 기준과 기대치를 충족할 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Persistent Motivating Fears 지속적으로 동기를 유발하는 공포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특정한 행동을 취할 때 우리의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면서, 넬 반 데 모셀러(Nele Van De Mosselaer)는 허구적 게임 플레이어 찰스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여기서 찰스는 공포 게임에서 슬라임과 맞닥뜨리는 등 비디오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을 대표한다:


“화면 속에서 갑자기 초록색 슬라임 괴물이 자신을 향해 기어오자 찰스는 깜짝 놀랐다. 공포로 몸이 움츠러든 그는 콘트롤러의 스틱을 급하게 움직이면서 슬라임으로부터 도망쳤다. 자신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괴물을 보자 목숨이 위태로워진 찰스는 몸을 돌려 주먹으로 괴물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괴물은 고통스럽게 으르렁 거리면서도 찰스를 죽일 수 있었다[13]


모셀러는 처음에는 도망치던 찰스가 몸을 돌랴 슬라임을 죽이려는 행동을 취하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괴물에 대한 찰스의 두려움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가 느낀 공포가 그로 하여금 괴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콘트롤 스틱을 급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었고, 또한 괴물이 너무 가까이 왔을 때는 공격 버튼을 눌러대도록 만든 것이다. 슬라임 괴물을 두려워 하지 않는 또 다른 찰스를 상상해보자. 그는 이미 세번이나 죽임을 당해서 괴물에 대해 (공포보다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 찰스는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콘트롤 스틱을 사용하기 보다는, 괴물을  향해 가기 위해 스틱을 움직일 것이며 공격 버튼을 보다 열심히 눌러댈 것이다[14].”


모셀러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바란, 사소한 수준의 두려움일지라도 다양한 장르와 메커닉에 걸쳐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에 동기를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공포(fear)는 놀람을 유발하는 순수한 정서적 반응을 넘어 오늘날의 게임 디자인에서  게임 내 행동과 메타게임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호러 게임 속에서 평범한 적 대신 끔찍한 좀비가 등장한다면 적에 대한 공격적 대응이 도피하는 반응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공포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방정식에서 제외한다면 공포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은 다양한 것(어둠, 거미, 유령 등)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호러 게임이나 호러 관련 장르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매일같이 다양한 공포(실직하면 어쩌지,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면 어쩌지, 아프고 싶지 않아 등)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을 주도한다. 한정 시간 이벤트를 제공하는 호요버스의 인기 가챠 게임들이나 <로스트 아크>[15],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16] 등 인게임 머니를 벌기 위해 매일 플레이하도록 유도하는 지속형 게임의 플레이 패턴에 대해 생각해보자.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는 이러한 유형의 게임 모델에 있어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한정된 기회를 놓치거나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뒤쳐질 수 있다는 생각은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에 있어 플레이어들이 강박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합법적인 두려움이다. 이러한 게임들은 종종 중독적인 플레이 패턴과 더 연계되지만, 플레이어 집단 내에서 사회적 지위가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슬렌더맨이나 좀비보다는 덜 폭력적으로 보일지라도 플레이어로 하여금 더 자주 게임을 플레이하고 행동을 취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어 플레이어가 실패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이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광범위한 두려움을 활용하는 것인 한편,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 죽음과 현실에서의 죽음이 동일한 위험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죽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정립되어있는 상실 및 그것을 피하려는 욕구를 자극한다. 게임은 상실을 어느 정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Diablo)>나 <파이어엠블렘(Fire Emblem)> 같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할 때 '하드코어' 캐릭터를 만들거나 '영구 사망(permadeath)'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는 게임 내에서 캐릭터가 한 번 사망하면 재시도를 하거나 체크포인트 같은 데서 부활할 수 없어 영원히 캐릭터가 삭제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스타일의 게임플레이는 꽤 인기가 있으며 게임 플레이에 긴장감과 흥분도를 높린다. 사람들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그것이 허구적인 것일지라도 자신이 캐릭터에 대해 내리는 모든 결정에 새로운 감정적 이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Nuclear Anxiety and Lingering Terror 핵에 대한 불안과 지속되는 두려움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의 책 <The Politics of Everyday Fear>의 도입부를 보면 버디 홀리(Buddy Holly)나 제임스 딘(James Dean) 같은 유명인 사고 희생자들이나 체르노빌이나 보팔 등의 유명한 재앙, 그리고 결핵이나 에이즈 같은 악명 높은 질병의 이름들이 챕터 내에 크고 굵은 글씨로 눈에 띄게 표기되어 있다[17]. 이러한 단어들은 우리 내면에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을 일으키는 상징적 힘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한 것들은 과거의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에 대한 기억들을 우리의 마음 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공포 - 과거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예상하게 되는 미래의 공포 - 를 각인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두려운 예측은 겁에 질리도록 하는 공포(terror)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공포 안에서 미래의 공포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18].


다시 <레지던트 이블>과 <폴아웃3>로 돌아오자. 이제 나는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이 촉발시켰던 점프 스케어보다 수퍼-두퍼 마트의 약탈자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미국의 풍경을 담은 웨이스트랜드 내에서 약탈자들이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그들과의 첫 조우 이래 지속적으로 환기되었기 때문이다. 폴아웃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인간이 얼마나 절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폴아웃3>를 플레이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고, 이후 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내내 그런 느낌을 반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거대한 두려움 -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핵 분쟁 및 그에 따른 두려움과 같은[19] -  속에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지속가능성을 잃어감에 따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그에 따른 공포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훨씬 더 단순하고 작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데이비드 페캠(David Peckham)은 "불안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 대해 우리가 치르는 대가"[20]라고 말한 신경과학자 조셉 르두(Joseph LeDoux)의 연구를 언급한 바 있다. 폴아웃과 같은 시리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역사적인 그리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공포를 바탕으로 다가올 수 있는 미래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처럼 점프 스케어를 통해 단순히 사람이 깜짝 놀라는 반응을 일으키는 것 보다는, 수퍼-두퍼 마트에 잠입을 시도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여러 겹의 공포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호러, 공포, 패닉, 그리고 불안이 한데 아우러져 공포의 완전한 패키지로서 함께 제공되는 것이다. 그 공간의 분위기와 매달려있는 사체들은 내가 내 캐릭터에 가할 수 있는 끔찍한 결과를 예측하게 하는 공포를 야기한다. 발자국 소리를 듣거나 발각될 것 같다는 생각은 약간의 패닉을 느끼게 한다. 궁극적으로 폴아웃 세계의 약탈자들이 지닌 함의 및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닌 끔찍한 가능성을 표상하고 있는 방식이야말로 게임 그 자체의 경계를 넘어 우리와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나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


게임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우리가 공포스러운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의미있고 강력한 공포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몰입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정한 공포는 갑작스러운 소리나 끔찍한 괴물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서 발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및 그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가 지닌 끔찍한 의미가 그러한 놀램과 함께 고조될 때 발생한다. 만약 게임이 이런 종류의 위협을 - 그것이 아무리 먼 곳에 있는 것일지라도 - 야기하기 위해 겁주기/놀래키기(scare)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움을 느낄 때다. 갑작스럽게 놀래키는 공포(sudden frights)은 그 원천이 일상적인 것이든 초자연적인 것이든 간에 예상치 못했을 때 발생한다. 반대로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은 '만약에(what if)?'로부터 야기된다. 폴아웃의 경우 너무나 현실적으로 무너진 사회의 모습을 '만약에?'으로 다루었다. 진짜가 아님을 알면서도 겁을 먹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위안도 분명 있겠지만, 우리 자신이 지닌 위험의 가능성 보다 더 불안한 것이 과연 있을까?




[1] Capcom, 1996.
[2] Bethesda Softworks, 2008.
[3] Red Barrels, 2013.
[4] Frictional Games, 2010.
[5] Mads Haahr, ‘Playing with Vision: Sight and Seeing as Narrative and Game Mechanics in Survival Horror’, in Interactive Storytelling, ed. Rebecca Rouse, Hartmut Koenitz, and Mads Haahr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8), 193–205, https://doi.org/10.1007/978-3-030-04028-4_20.
[6] Sara Ahmed, ‘The Affective Politics of Fear’, in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UNITED KINGDOM: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4), 62–81, http://ebookcentral.proquest.com/lib/concordia-ebooks/detail.action?docID=1767554.
[7] Amnesia: The Dark Descent Full HD 1080p/60fps GTX1070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hyUf3Ctx-Ck.
[8] Rebecca Roberts, ‘Fear of the Unknown: Music and Sound Design in Psychological Horror Games’, in Music In Video Games (Routledge, 2014).
[9] Tanya Krzywinska, ‘Hands-on Horror’, Spectator 22, no. 2 (2002): 12–23.
[10] OUTLAST | Full HD 1080p/60fps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zZNfd04GO-U.
[11] Creative Assembly, 2014.
[12] Crystal Dynamics, 2013.
[13] Nele Van De Mosselaer, “How Can We be Moved to Shoot Zombies? A Paradox of Fictional Emotions and Actions in Interactive Fiction.” Journal of Literary Theory 12(2), 2018: 286.
[14] Ibid., 286-287.
[15] Smilegate, 2019.
[16] Blizzard Entertainment, 2004.
[17] Brian Massumi. “Everywhere You Want to Be: Introduction to Fear.” The Politics of Everyday Fea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3; 3-38.
[18] Joseph LeDoux. Anxious: Using the Brain to Understand and Treat Fear and Anxiety. New York: Penguin Books, 2015.
[19] Ryan Scheiding. “War Never Changes? Creating an American Victimology in Fallout 4.” Representing Conflicts in Games: Antagonism, Rivalry, and Competition. Edited by Björn Sjöblom, Jonas Linderoth, and Anders Frank. London: Routledge, 2023; 135-152.
[20] Joseph LeDoux, Lecture, New York State Writers Institute 2016. Cited in David Peckham, Fear: An Alternative History of the World. London: Profile Books, 2023, 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이경혁.jpg

(게임연구자)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이경혁.jpg

(게임연구자)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