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14
GG Vol.
23. 10. 10.
Text: Arjoranta, J., & Siitonen, M. (2018). Why Do Players Misuse Emotes in Hearthstone?: Negotiating the Use of Communicative Affordances in an Online Multiplayer Game. Game Studies: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er game research, 18(2).
1. 들어가며
누가 뭐라 해도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수 만을 두는 컴퓨터와 달리, 변칙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큰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플레이어간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여기서의 큰 축을 담당해 왔다. 게임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상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이에 대한 기대는 정말 대단한데, 다수의 플레이어들에게 소통과 사교는 항상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는 결정적 동기로 이야기 된다(Yee, 2005).
한편,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게임은 악성 채팅으로 가득 차있다. 소소하게는 도배부터 심각하게는 욕설까지 게임 내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발견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스트레스이며 가장 큰 이탈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은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엇게임즈(Riot Games)는 인 게임 내 부정적인 텍스트를 신고를 통해 검토하고 친 사회적인 행동에 보상을 주며, <콜오브듀티>(Call of Duty) 팀은 음성 채팅 중재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나아가,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언제나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긴다는 인식과 함께 게임 디자인적으로 채팅 기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도 하는데 <하스스톤>(Hearthstone)은 이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Why Do Players Misuse Emotes in Hearthstone?>은 <하스스톤>에서 이루어지는 비매너 의사소통 행위(BM)를 추적하는 논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하스스톤>은 채팅이 배제된 게임이기에 이는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의사소통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한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들이 언급한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접근은 플레이어들이 제한된 자원을 통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의미를 협상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인 게임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이번 호에 맞추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하스스톤>이 소통을 제한하는 방법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하스스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제한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하스스톤>만은 아니다. 그의 의도 역시 다양한데, 게임 디자이너들은 공격적인 행동을 줄이고자 할 뿐만 아니라, 게임의 스토리라인이나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가능 방식을 설정한다. 대표적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서 한 플레이어는 적대 세력의 플레이어와 채팅을 할 수 없으며, <저니>(Journey)에서 플레이어는 버튼으로 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하스스톤>에서 사용하는 의사소통 전략은 ‘감정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하스스톤>에서는 채팅이 금지되어 있으며, 플레이어 간 의사소통은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으로 제한되어 있다. 한편, 게임 내 채팅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닌데 친구추가를 한 상대와는 텍스트 기반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럼에도 채팅 기능은 로비에 한정되며 게임을 당장 함께하는 상대와 나눌 수 있는 것은 감정 표현 뿐이다.
그림1. <하스스톤>에서의 감정표현
연구가 시작된 2015년까지 감정표현은 ‘감사’, ‘칭찬’, ‘인사’, ‘사과’, ‘이런!’, ‘위협’으로 구성되었으나 2016년 4월 24일 ‘사과’가 삭제되고 그 자리에 ‘감탄’이 추가되었다.1) 이에따라 데이터 수집도 두 차례 이루어졌는데, 연구자들은 ‘사과’가 ‘감탄’으로 대체된 이전과 이후의 데이터를 비교해보며 디자인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 살폈다. 사용 가능한 감정 표현은 여섯 종류가 있으나 각각의 대사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캐릭터에 따라 약간씩 달라진다. 이를테면 같은 ‘위협’ 표현에 대하여 사제 캐릭터 란두인이 “빛이 당신을 태울 것입니다!”라 한다면, 사냥꾼 캐릭터인 렉사르는 “네놈을 추격해주마!”라고 말한다. 위와 같은 감정 표현은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는데, 방해 받고 싶지 않은 플레이어를 위해 상대방의 감정표현을 차단하는 기능도 있다.
표1. 하스스톤: 오리지널 영웅과 영웅 별 감정표현
한편, 유저의 커뮤니케이션이 마냥 주어진 감정 표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는 커서(터치스크린일 경우 손가락)의 위치, 카드 검토나 주문 선택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과 암묵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3. <하스스톤> 플레이어들이 (잘못된)의사소통을 하는 방법
그렇다면 <하스스톤>의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그들은 주어진 기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아니면 기능을 벗어나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내는가? 저자들은 <하스스톤> 포럼인 ‘Hearthpwn’2) 의 글을 수집하여 이를 살핀다. 그에 따르면, 플레이어들의 비매너 소통에는 ‘감정표현을 사용하는 방식’과 ‘그 외의 방식’이 있다.
1) 감정표현을 사용하기
플레이 중 이루어지는 감정 표현은 주어진 그대로의 의미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그것이 발화되는 특정 맥락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게임이 시작할 때 하는 인사는 인사로 받아들여지지만 고민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을 때의 인사는 재촉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고맙습니다’는 정말 감사를 표할 수도 있지만 상대의 실수를 조롱하는 데에도 사용 가능하다. 즉, 같은 표현이라도 타이밍이나 상황의 단서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캐릭터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의미의 범위를 더욱 확장한다. 이를테면, 같은 ‘감사’인사라도 우서가 하는 ‘고맙네’는 안두인 린의 ‘감사합니다!’는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각 캐릭터의 어조를 살려 감정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상대방을 약 올릴 수 있는 캐릭터의 대사가 드러난다. 실제로, 본문에 언급된 한 플레이어에 따르면, 제이나의 ‘이런!’은 특히나 얄밉다.
그림2. 한국 커뮤니티에서 밈(meme)으로 자리잡은 안두인의 감정표현(욕설은 블러처리)3)
이처럼, <하스스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그 자체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섯 종류의 감정 표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내며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에 사용된다. 따라서, 몇몇 플레이어들은 문맥적 해석을 제거함으로써 합의된 어휘를 개발하고자 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감정 표현은 각각이 의도된 대로 동일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즉, ‘인사’ 표현은 인사를 하는 의미로 발화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감정 표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 역시 존재했다. 그들은 채팅을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공격적인 행동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감정 표현을 통한 비매너 소통은 겉으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제제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편, 모두가 감정 표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감정 표현의 확장된 사용을 재미의 일부로 수용했다. 그들은 각각의 감정 표현이 가지는 미묘한 느낌에 흥미를 가지고 감정표현을 확장시키는 것 자체를 ‘놀 거리’라 생각했다.
2) 플레이를 통하기
<하스스톤>에서 상대방과 소통하는 방식은 감정표현 뿐만이 아니다. 해당 게임에선 그보다도 훨씬 많은 비언어적 표현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플레이어어는 의도적으로 천천히 플레이하며 시간을 끄는 ‘로핑(roping)’을 할 수 있으며, 승리가 확실해진 상태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하며 플레이를 지속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캐릭터나 덱의 선택 을 통해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의 가장 단순한 기능도 여러 방식으로 사용되고 다양한 뜻을 전달한다. 플레이어의 창의성이 개입된다면 어떤 것도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①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경우. 플레이어의 차례가 끝나려 할 때 천천히 타는 밧줄을 가리켜 ‘로핑(roping)’이라고도 함
② 스패밍(spaming)을 비롯한 감정 표현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행위.
③ 항복을 하지 않고 게임을 종료하는 행위.
④ 승리가 확실 해졌음에도 불필요한 공격으로 플레이를 연장시키는 행위
⑤ 게임이 끝난 후, ‘친구 요청’을 보내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
4. 나가며: 비매너라는 회색 지대
한국의 위키피디아 사이트인 ‘나무위키’에는 ‘인성질(하스스톤)’이라는 문서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인성질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하스스톤에서 제공하는 의사 표현 기능을 이용하여 상대를 희롱하는 행위’4)로 본 논문에서 확인한 비매너 소통에 해당한다. 웬만한 논문보다 긴 길이의 위 문서는 여섯 가지의 감정표현만을 가지고 어떻게 상대를 화나게 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전략들은 본문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텍스트가 영미권 커뮤니티를 분석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때 나타나는 유사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현상이 유사한 만큼 본문에서 나타나는 문제의식 또한 공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의 중심 주제인 비매너 플레이는 매우 다층적으로 나타나는 흐릿한 개념이다. 저자들은 비매너 플레이의 다섯 가지 양상을 정리하지만, 항목들에 논쟁의 여지가 있음을 밝힌다. 가령 게임 종료 직전 남은 카드를 모두 사용하는 것은 어떤 플레이어에겐 불필요한 플레이의 연장으로 해석되었으나, 다른 플레이어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동일한 맥락의 같은 행위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 비매너인지 아닌지가 결정됨을 시사한다. 비매너 상호작용이란 깔끔히 떨어지는 명료한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하스스톤>에서 감정표현을 오용하는 것은 비의도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발화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감정 표현은 비매너인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직접적인 욕설 만이 비매너 플레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텍스트 기반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도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표현은 언제나 가능하다. 즉, 단순한 감정 표현 몇가지라도 충분히 상대를 괴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언어적 소통의 공격성은 회색 지대에 위치한다. 무엇이 비매너인지 아닌지는 주관적이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색 지대야 말로 본 논문 제시하는 주목해볼만한 지점일 것이다. 게임에서 비매너 플레이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의 모호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