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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인터페이스: 연결과 차단 사이

22

GG Vol. 

25. 2. 10.

컴퓨터를 격파하는 법 


인터넷을 배회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분노에 찬 누군가가 컴퓨터나 모니터 (혹은 프린터와 같은 여타의 주변 기기들)를 때려 부수는 밈과 마주친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온 이 밈의 시작은 1997년에 무려 이메일을 통해서 바이럴된 영상이다.[1] 시기를 고려하면 놀랍지 않게도 이 영상은 인터넷 최초의 바이럴 영상 중 하나로 여겨진다. 즉 컴퓨터를 ‘격파’하는 밈은 그 자체로 밈의 역사이자 현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 카타르시스 충만한 밈은 어째서 죽지도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일까. 바꿔 말하면 이 밈은 왜 여전히 작동하는 것일까. 물론 부수지 말아야 할 것을 부숴버리는 쾌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농담을 다큐로 받아 보자. 특정한 세부 장르의 서로 다른 작품들이 어떤 공통된 내러티브적 요소들을 공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컴퓨터 격파 밈’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뼈대를 갖추고 있다. 모니터 안의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좌절 혹은 공포에 휩싸인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그 모니터 혹은 컴퓨터 전체를 때려 부순다. 

 

* 전설이 되어 버린 “badday.mpg”

 

흥미로운 지점은 그들에게 좌절 혹은 공포를 준 대상과 그들이 때려 부수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모니터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오롯이 모니터의 스크린과 키보드 혹은 프린터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상징적 인터페이스(GUI)에서 받은 충격을 엉뚱하게 기계적 인터페이스(스크린, 키보드)에 화풀이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러한 간극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은 모니터 속 전자 회로의 논리적 구조에 직접 접속이라도 할 것처럼 주먹으로 모니터를 꿰뚫어 버린다. 인터페이스는 연결하지만, 또 차단한다. 그에 따라 우리의 신체는 진화/퇴화와 최적화 사이를 불안정하게 진동한다. ‘컴퓨터 격파 밈’은 인터페이스가 처한 아포리아에 관한 우화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해결책도 제시하는 것이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할 것 없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 버리라고.


그런데 매듭이 끊어지는 순간 도래하는 것은 카리스마에 압도된 고요함 같은 것이 아니라 터무니없다는 웃음이다. 안타깝지만 진심 어린 펀치로도 그 모든 복잡다단한 인터페이스의 레이어들을 뚫고 추상 기계라는 ‘물자체’에 다다를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주먹이 가닿을 수 있는 부분은 오직 인터페이스 뿐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밈의 과도한 액션들은 일종의 부조리극으로 기능한다. 밈을 보는 사람들은 뜬금없이 강렬한 타격에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 동시에 인터페이스에 내재한 긴장 관계가 이런 식으로 해소될 수 없음을 갑작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끊어야 할 매듭도 없다는 진실도. 이것이 ‘컴퓨터 격파 밈’이 지금까지 작동을 멈추지 않은 이유이다. 인터페이스에 대한 탐구는 계속된다.

 

  

유동하는 인터페이스

  

 인터페이스는 편재한다. 이 문장은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이제는 거의 모두가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일과 여가를 가리지 않고 쓰게 되는 랩탑/컴퓨터 그리고 우후죽순 늘어나는 식당/카페의 키오스크까지, 사람들은 지금도 손가락을 열심히 놀려서 무언가를 쓰다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처럼 디지털 기기들이 일상을 완전히 에워싸기 전에도 인터페이스는 도처에 있었다. 현재의 디지털 환경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적인 조건 중 하나인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기 전의 시기를 떠올려 보자. 1930년대의 경성을 정처 없이 떠도는 소설가 구보씨의 의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인터페이스에 직면한다. 구보씨가 타고 다니는 ‘전차’에서부터 백화점의 ‘승강기’, ‘전기 보청기’, ‘경성역’, ‘자동차’, ‘축음기’, ‘자전거’, ‘전화’, “'간다(神田)' 어느 철물점에서” 구입한 “한 개의 '네일 클립퍼'”까지. 요컨대 인터페이스는 ‘편재해 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명백한 시대적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1930년대의 경성과 2020년대의 서울은 편재하는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연속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을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는 ‘도처에 있음’이라는 말 속에 혼재하는 다른 두 인터페이스의 맥락을 서로 떼어놓고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폰 노이만 구조의 발명이 그 둘 사이를 가르는 가장 선명한 구분 선이 될 수 있을 텐데, 왜냐하면 이 구조의 컴퓨터는 (애니악ENIAC과는 달리) 소프트웨어적으로 프로그램을 구현할 수 있게 됨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더 고도의 추상화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저 인터페이스의 측면 뿐 아니라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의 측면에서도 인터페이스와 하드웨어 작동 사이의 부분적인 단절은 더욱 심화한다.[2] 이 구도는 박해천이 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상기시킨다.

 

기계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리적 형식으로 존재했다. 이런 시각적 연속성 덕분에, 특정한 조형 언어로 그것을 상징화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스크린을 통해서만 자신의 현존성을 드러낼 뿐, 언제나 조형 언어의 상징적 질서로부터 미끄러져 나간다. 실제로 디지털 제품의 전자 회로는,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적 세계와 감각적으로 불연속적인, 그래서 종종 ‘탈물질적’이라고 과장되곤 하는 미세한 전자들의 운동에 의해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3]

 

관건은 (기계 테크놀로지와는 달리) 트랜지스터에 기반한 디지털 기기들에는 인터페이스가 ‘잘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터페이스 자체를 독립적인 개념으로서 부각하면서 내적인 완결성을 갖춘 하나의 체계가 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인터페이스 역시 디지털 테크놀로지로부터 “미끄러져 나간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개인 컴퓨터에서 가상 머신virtual machine을 구축하거나 혹은 가상화virtualization 기술을 사용한 서버들이 밀집된 데이터 센터에 기반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때, 실행 중인 프로그램은 API를 통해서 가상의 하드웨어가 제공하는 컴퓨팅 리소스를 할당받는 방식으로 물리적인 하드웨어와의 관계로부터 다시 한번 추상화한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의 경험 또한 이와 같은 미끄러짐을 가시적으로 잘 드러낸다. 특히 비디오 게임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데, 왜냐하면 게임은 하드웨어적인 연산을 요구하는 소프트웨어인 동시에 그 연산을 ‘시스템적으로’ 비껴가는 놀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게임이 그래픽 하드웨어의 발전과 밀접하게 맞물려 왔던 역사적 맥락은 이 미디어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선형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식의 목적론적인 환상을 강화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는 지점은 게임이, 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와 같은 행사에서 어떤 스타트업이 공들여 만든 데모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신적인 컴퓨팅 기술을 향한 집착은 게임의 욕망과 완전히 겹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의 역사는 한정된 컴퓨팅 자원의 제약 속에서 인터페이스적 ‘눈속임’의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 사례들로 가득하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들은 당시 디스플레이 기술의 한계를 텍스트로 극복해 보려는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4]에서 장르의 기원부터 인터페이스-하드웨어의 긴장 관계를 내포한다. 이러한 특성은 이 장르의 커뮤니티가 누구보다도 깐깐한 ‘고인물’들로 가득하다는 맥락과 결합하면서 장르적 전형archetype의 핵심으로 전면화한다. 따라서 하드웨어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2023년에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스테이시스: 본 토템>은 마치 살아있는 화석처럼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이 ‘응당’ 따라야 하는 많은 관습적인 디테일을 유지한다. 이를테면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 ‘작동이 되는’ 인터페이스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이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 그것을 찾지 못하면 게임이 실패한 숨은그림찾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게임에서 ‘퍼즐’은 먼저 적절한 인터페이스를 발견한 다음 그것과 올바르게 상호작용을 하는 법을 알아내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과정 중에 플레이어들은 상황적인 증거를 긁어모아서 머릿속으로 ‘연산’하거나 혹은 ‘숨은그림’이 숨겨진 스크린을 마우스로 하릴없이 여기저기 찔러보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쓰게 된다. 결국 작동하는 인터페이스와 상호 작용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또한 본격적인 하드웨어적 연산이 발생하는) ‘실감나는’ 과정은 실제 게임 플레이 중 극히 일부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도록 디자인된 ‘작동이 되지 않는’ 인터페이스는 그저 배경으로 남는 것일까? 이 질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인터페이스의 분류 방법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게임 유저 인터페이스UI는 크게 다이어제틱(diegetic) UI와 논다이어제틱(nondiegetic) UI로 나뉜다. 이런 식으로 나뉘는 기준은 게임이 창출하는 허구의 세계가 UI를 인지하고 그에 따라 반응하는가의 여부다.[5] 일례로 <디아블로> 시리즈의 시그니처와도 같았던 (지금은 사라진) 오버레이 맵은 전형적인 논다이어제틱 UI라고 볼 수 있다.

  

* 와우의 압도적인(?) UI

 HUD(head-up display)로 대표되는 논다이어제틱 UI는 군사적인 기원에 걸맞게, 플레이어들이 더 효율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추상화된 형태(막대그래프,미니맵,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 등)로 빠르게 전달한다. 알렉산더 R. 갤러웨이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미지의 다이어제틱한 공간의 가치는 강등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매우 복잡한 논다이어제틱 의미작용에 의해서 결정된다"[6]라고 썼다. 이 문장은 논다이어제틱 UI가 낭만적인 판타지 픽션의 공간을 어떤 식으로 ‘전쟁상황실’로 탈바꿈시키는지 간결하게 짚어낸다.


반면 <스테이시스: 본 토템>은 다이어제틱 UI에 대부분의 상호 작용을 의존한다. 추상적인 형태의 정보 전달은 지양되며, 플레이어들은 아이소메트릭 뷰로 표현된 이 디스토피아의 공간에 좀 더 시각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심지어는 인벤토리 창에 있는 아이템을 다른 공간에 있는 캐릭터에게 클릭 한 번으로 넘기는 (매우 논다이어제틱하게 느껴지는) 기능마저 QSD(Quantum Storage Device)라는 이름의 기술로 그 세계 내에서 정당화된다. 이처럼 UI는 스테이시스의 ‘배경’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플레이어들은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떼어다가 아이템으로 만들 수도 있다. 또는 그 아이템들을 이리저리 주물럭거리거나, 조합해서 다시 배경으로 되돌려 놓을 수도 있다. ‘작동하지 않는’ 인터페이스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다소 기묘한 순서의 과정을 거쳐서 ‘작동하는’ 인터페이스가 되기도 한다. 그와 같은 프로세스를 여러 번 겪다 보면, 배경/전경 그리고 ‘작동하는/작동하지 않는’의 임의적인 이분법은 희미해진다. 플레이어들은 탐정이라도 된 듯이 집요하게 인터페이스를 쫓지만, 인터페이스는 마치 유령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출몰했다가 다시 사라진다.

 

  

입력과 출력의 이벤트 호라이즌

  

이렇듯 인터페이스와 하드웨어 사이의 어긋남은 (기술의 발전 경로에서 비롯된) 어느 정도 내재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에 비해 인터페이스와 유저들의 신체 사이에서의 ‘단절’은 플레이어들의 심리가 결부된 디지털 게임의 산업적인 추세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후자의 케이스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앞서 이야기했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맥락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다시 말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인터페이스의 미끄러짐은 하드웨어의 ‘실제적인’ 작동과는 다소 독립적으로 디지털 인터페이스 자체의 논리를 유도한다. 그것의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오히려 폴더의 리얼리티 효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용자가 폴더를 더블 클릭한 이후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즉 사용자가 납득하고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 사건들이 전개될 때, 아이콘의 리얼리티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과성의 원리’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다....(중략).... 결과적으로 스크린의 기호 체계는 입력과 출력의 인과율이 지배하게 된다.” [7]

 

애초에 유저들을 기만하기 위해 설계된 다양한 종류의 다크 패턴이나 유저 인터페이스의 인과성 자체를 거의 사보타주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광고 페이지들을 제외하면, 위 인용문에서 제시된 원리는 2025년 현재도 많은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 동일하게 유지된다. 즉 인터페이스가 하드웨어의 작동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과는 별개로 스크린 내에서는 원인(입력)에 따른 결과(출력)가 확고하게 ‘인과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에서는 이러한 인과성의 원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먼저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에 걸쳐 있는 케이스부터 시작해 보자. 입력 버퍼링은 특히 플랫폼 게임이나 대전 격투 게임과 같은 장르를 개발할 때 널리 쓰이는 트릭이다. 이 두 장르의 공통점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세심하고 복잡한 컨트롤이 요구되며, 실패할 시 패널티가 즉각적으로 부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런 버퍼 윈도우 없이 게임을 디자인하게 되면 (입력과 출력의 타이밍이 ‘정확’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불공평하며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개발자들은 점프한 캐릭터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다시 점프 버튼을 누른다고 해도 그 입력이 캐릭터의 다음 행동에 반영이 되도록 하는 식으로 적당한 수준의 버퍼 윈도우를 설정한다. 혹은 대전 격투 게임에서 필살기를 쓰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복잡한 버튼 연타와 조이스틱 움직임을 다른 행동 중에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다음 액션에 반영된다.


물론 이와 같은 입력과 출력 사이의 의도적인 지연은 여전히 인과성 내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게임마다 다른 버퍼 윈도우의 임의적인 길이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경우 상당히 긴 버퍼 윈도우로 인해서 입력한 필살기의 커맨드가 전혀 엉뚱한 순간에 발현되는 불만들이 플레이어들에게서 자주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게이머들은 일상적으로 인과성의 작은 ‘균열’을 종종 감지한다.


그런데 이 케이스에서 더 눈여겨봐야 할 점은 입력 버퍼링이라는 트릭 자체가 플레이어의 주관적 경험에 초점을 맞춘 ‘최적화’를 위해 고안되었다는 사실이다. 게임과 여타 유틸리티 앱의 목적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게임의 최적화는 생산성의 향상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부분의 유틸리티 프로그램들의 목적은 효율적인 일 처리다. 따라서 입력과 출력의 확고한 인과성은 업무를 최적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된다. 게임의 목적은 ‘효율적인 일 처리’가 아닌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입력과 출력의 인과율”은 노는 데에 방해가 된다면 적당히 무시해도 된다. 아니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완전히 깨뜨리는 것도 괜찮다. 단,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그것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감각/착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인터페이스를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얻는 효능감은 게임플레이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최적화란 인터페이스적 감각 속임인 셈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8]에 등장하는 한국 조이스틱의 특수한 진화 과정이다. 과거 오락실에서는 소모품인 조이스틱을 주기적으로 교체하거나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게이머들은 오래되어서 유격이 심한 조이스틱에 익숙해진 채로 동작이 큰 그들 나름의 게임플레이를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후에 등장한 조이스틱들은 새 제품이라 유격이 적었음에도 한국 게이머들의 습관에 맞춰서 일부러 입력값을 민감하지 않게, 즉 의도적으로 ‘멍청하게’ 만들어 왔다는 이야기다. 입력 버퍼링의 사례에서 균열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면, 한국 조이스틱의 예시는 게임의 최적화가 입력과 출력의 인과율을 어떤 식으로 교란하는가에 대한 어떤 범례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유저 편의성’을 향한 인과율의 침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딥러닝을 활용해서 더 적은 컴퓨팅 파워로 업스케일링을 구현하는 기술로서 출발했던 엔비디아의 DLSS(Deep Learning Super Sampling)는 최근 출시한 DLSS 4에 이르면 래스터화로 렌더링된 프레임 하나당 뉴럴neural 렌더링으로 생성된 프레임이 최대 3개까지 더해지는 일종의 실시간 AI 그래픽 생성 기술로 탈바꿈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적 성취가 인터페이스의 인과성과 대체 무슨 상관일까. 이를 연결 짓기 위해서는 게임의 프레임과 입력 지연시간 사이의 관계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 생성된 프레임이 더해질수록 입력 지연시간은 꾸준히 상승한다.

통상적으로 게임의 초당 프레임 개수가 많아질수록 입력 지연시간은 줄어든다. 스크린을 초당 30번 리프레쉬하는 것보다는 60번 리프레쉬 할 때 플레이어가 입력한 값이 바로 다음 프레임에 반영되는 시간 간격이 훨씬 짧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이 높아질수록 게임의 ‘손맛’은 더욱 찰져진다. 특히 거의 자동반사적인 컨트롤이 요구되는 멀티플레이어 FPS 게임을 주로 즐기는 플레이어들이 프레임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와 같은 반비례 관계는 프레임의 일부분을 뉴럴 렌더링에 의존하는 DLSS 업스케일링까지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런데 뉴럴 렌더링만을 이용해서 프레임을 완전히 새로 ‘생성’해 내는 DLSS 4의 멀티 프레임 생성MFG 단계에 이르면, 흥미롭게도 프레임의 개수가 몇 배로 불어나는 동안 입력 지연시간은 극적으로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소폭 상승한다.[9]


여기서 곧바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곱절로 더해진 뉴럴 렌더링된 프레임들이 플레이어의 입력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렌더링 된 프레임들 사이의 ‘빈 시간’을 픽셀 하나하나의 다음 위치를 예측하는 식으로 꼼꼼하게 채워 넣는 AI 연산의 복잡한 과정에는 유저의 ‘인풋’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멀티 프레임 생성 기능을 최대로 설정해 놓고 게임을 플레이할 때, 스크린에 출력되는 대부분의 이미지는 나의 입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다른 무언가라고 봐야 한다. 입력과 출력의 확고했던 인과율은 느슨하고 불투명한 상관관계로 대체된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인터페이스는 직접적으로는 상호 작용이 불가능한 것들을 맞붙이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그러나 그 필요성이 이것은 그저 투명하고 ‘필연적인’ 연결 장치라는 서사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인터페이스는 연결하지만, 또 차단하며, 때로는 연결된 관계 전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일그러뜨리기도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그것은 ‘확장된 기계’나 ‘확장된 신체’로서 단순히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신체를, 그러니까 연루된 모든 것들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할 수 있는 능동적인 행위자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는 어떤 번역을 위한 도구로 혹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장치로 납작하게 이야기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표면 장력이 어마어마한 총체적인 디지털 표면에 가깝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투명한 표면 아래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많은 경우 바로 그 표면이 우리의 감각을 끊임없이 ‘최적화’한다. 플레이어의 입력 없이도 다음 프레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동 사냥’이 전면화된 시대에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중이다. 인터페이스에서 오는 미세한 감각에 오랜 시간을 쏟아온 게이머라면 말 그대로 몸으로 동의할 것이다. 게임은 진정으로 우리의 인생을 바꿔버린 것이다.

 

 

 

 

[1] 클라우드는커녕 소셜 미디어도 이제 막 태동하던 시절이라 이 막대한(?) 용량의 영상은 이메일 주소를 타고 돌며, 다수의 이메일 서버를 다운시켰다. Joe Veix, “The Strange History of One of the Internet's First Viral Videos” Wired 2018.01.12. https://www.wired.com/story/history-of-the-first-viral-video/
[2] 스위칭 소자를 직접 배선으로 이은 하드웨어적인 프로그래밍에 기반한 애니악조차도 진공관과 스위치의 미세한 움직임들을 2진법으로 추상화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3] 박해천,『인터페이스 연대기』, 디자인플럭스, 2009, 166.
[4] AG Staff, “An overview of genre history, by The Art of Point-and-Click Adventure Games: Part I” Adventure Gamers 2020.06.12. https://adventuregamers.com/articles/view/an-overview-of-genre-history-by-the-art-of-point-and-click-adventure-games
[5] 영화에서 배경음악은 대표적인 논다이어제틱 사운드 중 하나다. 공포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으스스한 음악이 그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6] Alexander R. Galloway, The Interface Effect (Cambridge, UK: Polity Press, 2012), 51.
[7] 박해천,『인터페이스 연대기』, 디자인플럭스, 2009, 174.
[8] 전은기,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게임제너레이션, 2021.08.10.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9adda44f-a475-4385-9b30-35cd4146581f
[9] Digital Foundry, “Nvidia GeForce RTX 5090 Review: The Fastest Gaming GPU (A Lot Of) Money Can Buy” YouTube 2025.01.24. https://www.youtube.com/watch?v=Dk3fECI-f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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