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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요리

GG vol.

30

음식과 요리

맛과 냄새가 없는 매체인 디지털게임에서 음식과 요리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이경혁

[editor's View] 먹지 못하는 매체가 먹는다는 본능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동물의 생존에는 먹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인간도 동물이니 먹지 않으면 죽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는 일과 연관됩니다. 다만 인간의 먹거리를 먹이가 아니라 음식, 식량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인간의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 해결과 생존본능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드러냅니다.

이경혁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6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이경혁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강신규

보는 요리, 플레이하는 서바이벌: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 게임 사이의 빈 자리

요리하는 게임은 많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재료를 조합하고, 제한 시간 내 접시를 완성하는 게임 말이다. 그런데 정작 텔레비전 방송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요리 서바이벌’은 디지털 게임 안에서 좀처럼 장르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 비대칭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왜 요리는 방송에서 그토록 잘 작동하는 게임이 되었는데, 게임에서는 요리의 질을 두고 겨루는 경연의 중심에 서지 못할까?

홍현영

노미배 천하제일 와갤요리 대회에 어서 오세요

 케이크는 거짓말이다. 〈포털〉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문장이다. 게임 속 인공지능 글라도스는 플레이어에게 모든 테스트 챔버를 통과하면 케이크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케이크는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짓궂은 장면 이후 플레이어 중 누군가는 화면 너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를 진짜로 굽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레시피 조각을 짜맞춰 베이킹하고 사진을 올렸다. 글라도스의 케이크는 거짓말이긴 했지만 영원한 거짓말이 되지는 않았다.

이명규

하지만, 게임 요리에서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걸

그러나, 다른 여느 일상의 메커니즘처럼 요리를 게임에 구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가치인 맛이라는 스테이터스를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이러한 행위, 또는 메커니즘은 수치화를 기반으로 재창조될 수 밖에 없고, 요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수치화가 대략 가늠이라도 잡히는 다른 요소에 비해 맛이라는 가치를 파라미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은우

《용과 같이》는 한국을 어떤 맛으로 기억하는가― 야키니쿠에서 김치까지, 게임 속 한식의 풍경

무엇보다 (외국) 음식은 게임에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등장한다. 한식은 한국이라는 타지의 음식이며, 많은 경우 (재일)한국인이 운영 또는 소비하는 한식당에서 판매되고 게임 내에서 (재일)한국인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시리즈 내 한식과 함께 또 다른 ‘외국 음식’으로 존재하는 중식의 경우도 상황은 같다.

이정엽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박이선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2000년대 요리 플래시 게임에 대한 회상

고향만두 아저씨는 혹평을 쏟아내며 만두를 뱉었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정성스레 빚은 만두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 만두소에 참기름이 들어가나? 또아리 모양의 만두는 팬에 구우면 안되나? 마우스를 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2000년대 플래시 게임을 했던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경혁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동수

[고스트] 시리즈: 찬바라의 뒤섞인 계보 위에서 패링하기

찬바라를 적극 수용한 게임도 다채로운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98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 [사무라이](侍, 1979), 데이터 이스트의 제목부터 [찬바라](ちゃんばら)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부터 [사무라이 스피리츠](サムライスピリッツ, 1993), [부시도 블레이드](ブシドーブレード, 1997) 등의 대전 격투 게임, 닌자 잠입 액션을 표방한 [천주](天誅, 1998), 최근의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セキロ: シャドウズ ダイ トゥワイス, 2019)까지, 사무라이와 닌자를 주인공 삼은 대부분의 액션 게임을 찬바라 게임의 범주에 집어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미소녀 좀비 액션을 표방한 [오네찬바라](お姉チャンバラ, 2004) 같은 게임도 있으니 말이다.

서도원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이현재

게임에서 재현과 미학적 아우라: <1979 레볼루션: 블랙 프라이데이>와 <믹스테이프>의 고체적 서사�에 대하여 

 실재에 가까운 재현은 매체가 태어난 이래로, 매체를 만드는 창작자와 그것을 소비하는 이용자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상이자 욕망이었다. 게임 또한 ‘실재에 가까운 재현’이라는 이상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행동을 조작하고 결정하게 하며 그 결과를 다시 확인시키는 일련의 모달리티를 통해, 게임은 다른 매체가 좀처럼 도달하지 못한 실감을 구현해왔으며,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느끼는 실감은, 게임이 실재에 다가서는 고유한 방식이었다.

박이선

Why Farming Games Became “Healing”: Between Pixel Farming and Real Fields

In farming simulation games such as Stardew Valley and Story of Seasons, players are given the chance to become farmers living in idyllic rural settings. These games share a similar narrative premise: leaving the city behind, inheriting a family farm, and beginning a new life. What the player first encounters is usually a long-abandoned plot of land overrun with weeds, rocks, and dead trees. The core experience of these games lies in gradually clearing the neglected farm, cultivating the soil, planting crops, tending livestock, and ultimately enjoying the rewards of steady daily labor. Along the way, interactions with the townspeople offer moments of warmth and community.

이선인

「오믈렛에 넣을까요?」 : Taste good or Taste fool!

비디오게임이 미각의 재현에 언제나 주춤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먼저 미각을 전달할 ‘출력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치명적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이 사실의 재현매체도 아니거니와, 아직까지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음식 그 자체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될 만한 사유는 아니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박다흰

먹지 않으면 죽는다 – 게임에서의 음식과 먹는 행위

유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단순히 맛이 좋다는 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피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감각, 살아 있길 잘했다는 감각,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이 바로 ‘살맛’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곧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인간에게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혀있다.

김지수

[논문세미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게임하기: 인도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와 문화적 불협화

이번 글에서 다룰 논문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라는 소도시에서 성인모색기(emerging adult,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를 풀어내고자 하는 글이다. <대항문화로서 인도 게이밍 존(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어떻게 게이머라는 대안적 하위문화 정체성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즐거움과 죄의식 속에서 왜 게임을 그토록 중독적으로 경험하는지를 탐색한다.

오영욱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성훈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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